하나님의 참되심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3장 1절~8절]
1절 -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절 -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절 -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4절 -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절 -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절 -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절 -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절 -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정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유대인이 지닌 특권 중 하나는 하나님 말씀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믿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사람의 거짓말이 하나님의 참되심을 풍성하게 하거나, 사람의 악행이 하나님의 선을 이루지 않습니다.

 

●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불의와 불성실로는 하나님의 의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지만, 그분이 맡기신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대인의 신실하지 못함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부정하는가?'라고 질문합니다.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심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또 사람들은 인간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심판하시는 것이 옳은지 묻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대해 그릇된 반론을 펼치는 자들을 향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해 그분 영광이 드러나실지라도 그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죄를 옹호하기를 그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대어 살 때 그분의 의가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납니다.

 

*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사람들은 어떻게 오해했나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거듭난 속사람입니다

 

[로마서 2장 17절~29절]
17절 -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절 -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절 -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절 -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1절 -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절 -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절 -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절 -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5절 -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절 -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절 -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절 -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절 -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유대인이 율법을 자랑하며 선생이라 자처하면서도 율법을 범하면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율법을 범하면 할례가 무할례가 되고, 무할례자가 율법을 지키면 무할례를 할례로 여깁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아닌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입니다.

 

1. 특권이 무효화되는 삶 (17~24절)

하나님이 주신 특권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맹인을 인도하는 안내자', '어둠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는 자', '어리석은 자와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특권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도둑질이나 간음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도 그와 같은 일을 행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았습니다. 성도는 특권이 무효화되지 않도록 책임을 잘 감당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유대인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면서도 어떻게 행했나요? 알고 가르치는 것에만 그칠 뿐 내가 행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할례의 참된 의미 (25~29절)

할례가 주어진 시기는 아브라함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신 후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할례를 통해 확증하셨습니다(창 17장).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받은 할례가 마지막 심판 때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을 지지키지 않으면서 할례를 자랑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오히려 마음에 할례를 행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모습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마음의 할례는 새 언약의 표징으로, 성령께 힘입어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의 법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변화를 받아 그분 뜻을 온전히 이루는 삶의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 육신의 할례와 마음의 할례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요? 마음의 할례를 받은 성도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신앙 연륜과 직분, 성경 지식을 제 의로움으로 여기지 않게 하소서. 자기 자랑으로 두꺼워진 제 마음 가죽을 끊어 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할례자가 되게 하소서. 제 안에 계신 성령님! 말씀을 알고 가르치는 대로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리스도

 

[로마서 2장 12절~16절]

12절 -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절 -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절 -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절 -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절 -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하나님이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그날,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심판받습니다. 율법을 듣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의인입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한다면, 그들 마음에 새겨져 있는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 보인 것입니다.

 

1. 율법이 없는 죄인, 율법이 있는 죄인 (12~13절)

종이 주인의 마음과 생각을 알면서도 주인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주인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잘 안다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아는 것으로는 안 되고 오직 율법대로 행해야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이방인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율법을 주지 않으셨기에 율법을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각자 행위대로 심판받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기준을 따르면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의롭게 되는 길을 열어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 유대인과 이방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각각 어떠한가요? 하나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지키지 않으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2. 은밀한 것을 판단하시는 하나님 (14~16절)

하나님의 심판 기준은 공의롭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 기준을 '행함'에서 '마음과 양심'의 문제로 끌고 갑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외적 행동으로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 모습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지켰지만 실상 그들 마음은 부패한 무덤 같았습니다. 이방인들의 경우에는 율법을 받지 않았지만 그들 마음과 양심에 새긴 하나님의 법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양심은 선악을 분별하는 기능을 합니다.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 양심은 알지만 그 뜻대로 행하지 못하기에, 결국 이방인들은 양심의 법으로 심판받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내면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이 심판주로 임해 모든 은밀한 것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 사람과 달리 하나님은 사람의 어떤 부분까지 살피시나요? 마음과 생각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세요.

 

오늘의 기도

겉으로 보이는 행위뿐 아니라 제 은밀한 생각까지도 감찰하시는 하나님! 외식과 위선의 옷을 벗고, 내면을 매 순간 말씀으로 비추어 단정히 하길 원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살아 내어, 복음에 부끄럽지 않은 제자 되도록 함께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공평한 척도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로마서 2장 1절~11절]
1절 -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절 -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절 -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절 -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절 -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절 -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절 -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절 -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절 -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절 -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절 -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남을 판단하면서 자신도 같은 악행을 하는 자는 심판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용납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고 회개치 않으면 심판 날에 임할 진노가 쌓입니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선을 행한 자에게는 영생으로, 불의를 따른 자에게는 분노로 보응하실 것입니다.

 

1. 말과 행동이 다름에 진노하심 (1~5절)

성도는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바울은 남을 판단하지만 그 판단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율법을 가진 것을 자랑하면서 율법을 가지지 못한 이방인들을 율법의 잣대로 비판한 유대인들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그들의 판단은 이방인들을 업신여김과 고집스러움으로 나타나지만, 실상은 그들 또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판단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삶이 되기 쉽습니다. 성도는 모든 판단을 공의의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 삶을 말씀에 기초해 바르게 세우는 데 힘써야 합니다.

* 남을 판단하면서 똑같이 행동하는 자들은 어떤 운명에 처하나요?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에 앞서 왜 자신을 살펴야 할까요?

 

2. 행한 대로 보응하심 (6~11절)

모든 평가에는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평가하실 때도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참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광과 존귀를,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환난과 곤고를 주십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7, 10절) 자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께 옳다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합니다(3:20, 23). 하나님의 공정한 기준에 따라 행위로 평가받은 후 영광과 존귀를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며,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옳다 인정하심을 얻기 위해 참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사람을 판단하시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그 기준에 따라 나를 돌아볼 때 나는 어떠한 판단을 받을까요?

 

오늘의 기도

남들을 냉혹하게 판단하고 정죄하면서도 제 잘못과 허물에는 관대했음을 회개합니다. 혼자 의롭다 여기는 고집을 버리게 하소서.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사랑의 시선으로 지체들을 바라보고 선을 행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큐티)

하나님 없는 마음, 넘치는 죄의 목록

 

[로마서 1장 26절~32절]
26절 -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절 -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절 -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절 -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절 -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절 -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절 -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불의한 사람들은 부끄러운 욕심을 따라 순리대로 쓸 것을 역리로 쓰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상실한 마음을 따라 온갖 합당치 못한 일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런 일은 사형에 해당한다고 정해 두셨음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그렇게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합니다.

 

1.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심 (26~27절)

오늘날은 절대 진리, 절대 가치가 상대화된 시대입니다. 성경의 진리 또한 그러합니다. 성경은 동성애에 관해 분명히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죄라고 규정합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그들의 욕심대로 내버려 두신 결과 중 하나로 동성애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라질 때 창조 질서와 상관없는 동성애가 나타났고, 하나님은 그 죄에 마땅한 대가를 받게 하셨습니다. 음란한 세상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합니다. 성도는 음란한 세상에서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죄악을 경계하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준비되어야 합니다.

* 바울은 동성애에 대해 어떤 관점을 취하나요? 주변 사람들이 동성애에 관해 바른 지식을 갖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2. 상실한 마음과 죄악들 (28~32절)

더 이상 관여하지 않고 포기할 때 우리는 "네 마음대로 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장에는 하나님이 내버려 두셨다는 표현이 세 번 나옵니다(24, 26, 28절).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니 사람들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일들을 행합니다. 그 악덕 목록이 29~31절에 소개됩니다.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그분의 모든 선하심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시기, 사기, 수군수군함, 비방, 교만, 자랑 등 일상에서 쉽게 짓는 죄도 포함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죄조차 하나님이 버려두신 결과라고 말합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멀어지고 결국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가 되고 맙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자들은 죽는다고 정하신 하나님의 엄정한 기준을 성도는 기억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 결과는 어떠한가요? 내가 좀 더 예민하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행으로 인식할 죄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상실한 마음이 얼마나 추악하고 뻔뻔한 죄악을 불러오는지 깨닫습니다. 이 세대에 만연한 성적 타락과 물질주의, 증오와 분열을 회개합니다. 옳지 않은 일을 정욕대로 합리화 하지 않으며, 거룩함의 기준 되는 주님 말씀을 늘 마음에 품고 지키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내버려 두심

 

[로마서 1장 18절~25절]
18절 -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절 -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절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절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절 -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절 -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절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절 -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그분이 만드신 만물이 드러나 있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 핑계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되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를 우상과 거짓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사 서로 몸을 욕되게 하셨습니다.

 

1. 우상 숭배, 하나님을 모르는 삶의 모습 (18~23절)

하나님은 사람들과 떨어져 초연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신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잘못하면 심판하시고 잘하면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은 창조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다른 피조물보다 존귀하게 그분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여야 하는 인간이 타락함으로 마음이 어두워져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만물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알 수 있어야 했지만, 타락한 인간은 허망한 생각과 미련한 마음으로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섬겼습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에 진노하십니다. 불경건한 불의함을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질 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와 달리 타락한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나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지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2. 심판, 더러움에 내버려 두심 (24~25절)

자녀가 죄의 길로 행하면 부모는 타이르고 훈계합니다. 그럼에도 계속 말을 듣지 않으면 내버려 두기도 합니다.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난 자녀는 잠시 자유를 만끽하지만, 이것은 그들 삶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음의 정욕대로 사는 타락한 인간을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러자 그들 몸이 악한 죄에 빠지게 되었고, 결과는 우상 숭배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거짓이라 여기는 자의 내면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서실 자리가 없습니다. 결국 그는 피조물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 두고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은 무서운 징벌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사라지고 세상 것이 마음에 자리 잡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 바울이 묘사하는 우상 숭배가 오늘날에는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요? 현재 내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만물 가운데 선명히 드러난 하나님의 권능과 신성을 부인하려는 이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내버려 두심이라는 무서운 징벌과 마주하기 전에, 우상을 내몰고 주님만 섬기게 하소서. 주님을 아는 만큼 감사하며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인간의 불의와 하나님의 진노

 

[로마서 1장 18절~25절]
18절 -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절 -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절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절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절 -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절 -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절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절 -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배경 이해하기]
사도 바울은 전 세계를 정복하고 가장 강력한 나라를 이룬 로마인들 앞에서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에 대해 설명합니다. 당시 로마는 지중해 국가 대부분을 복속시킨, 고도로 문명화된 나라였습니다. 이 같은 로마 제국인들에게 속국에 불과한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복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치스럽고 화려한 문화에 눈이 익은 로마인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심각한 상황을 현미경처럼 보여 줍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떠난 인류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the total depravity)의 본성을 18~32절에서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죄의 목록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까닭은, 인간의 내면은 하나님 없는 죄의 실상을 발견하기 전까지 만물 안에 계시된 참된 복음의 능력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의 복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인간의 죄성(sinful nature)을 1:18~3:20절에서 논증하고 난 뒤 인간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란 무엇이며, 진노의 원인과 결과는 어떠한지 순차적으로 밝힙니다. 몸이 아픈 환자가 의사 앞에서 검진을 받듯이, 죄인은 정직하고 정확하게 자기 영혼의 상태를 이해해야만 영혼을 잠식한 병을 치유하고 복음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찰과 묵상]
1. 바울은 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고 역설하나요?(19~20절)
하나님을 알 만한 것들이 피조물 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된 세계 안에, 곧 온 우주 만물 안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드러내셨습니다.
바울은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설명합니다(17절). 그러나 인간은 불경건과 불의한 행동들에 의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국 이러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진노’란 헬라어로 ovrgh,오르게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상반되는 세상의 불의와 악에 대한 그분의 반응’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의 진노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바울은 현재 시제를 사용해 지금 진노가 나타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사람은 ‘불경건’한 사람입니다(18절). 불경건으로 번역된 헬라어 avse,beia아세베이아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그분께 불순종하는 태도와 성품을 의미합니다. 다음은 ‘불의’한 사람입니다. 불의는 헬라어로 avdiki,a아디키아인데, 의에서 벗어난 사악하고 무법한 행동을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바울이 볼 때 하나님의 진노가 발생하는 궁극적 이유는 눈에 보이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는 불경건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까닭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피조 세계에서 볼 수 있음에도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의도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적용과 나눔
오늘날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이성 중심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원과 믿음의 세계입니다. 이 두 세계는 대립적이고 모순된 것처럼 보이나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에 해당합니다. 아담의 원죄 이후 인간은 눈에 보이고 이성으로 이해되는 것만을 믿으며, 믿음의 세계를 무시하거나 이성의 세계에서 분리하려 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들더러 스스로 지혜로운 자로 여기나 우둔한 자라고 말합니다(22절). 이들이 그릇되게 행동하는 이유는 인간이 이성의 세계를 우상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마음에 두려 하지 않으려는 고집 때문에 보이는 세계 안에 보이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이사야는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는 자와 같다고 말합니다(사 6:9~10). 예수님도 나면서부터 눈먼 자를 고치시며, 눈먼 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나 눈멀지 않은 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못 보는 역설(paradox)을 말씀하십니다(요 9장).

2. 하나님을 알되 섬기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나타나나요?(21 ~25절)
바울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은 우상 숭배와 육체적 타락에 빠져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과 바꾸고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섬기게 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18절 이후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진 사람들이 타락해 가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들은 피조 세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에 대해 알 수 있음에도 그분께 합당한 영광과 감사를 돌리지 않아 생각이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허무하고 지각없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영과 혼과 육이 타락해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과 믿음의 세계를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진 사람은 영적으로 타락하게 되고(21~22절), 영적 타락은 우상 숭배로 이어집니다(23, 25절). 그리고 인간의 우상 숭배(탐심)는 비도덕적이고 육체적인 타락으로 귀결됩니다(24절; 골 3:5). 회개할 기회를 주셨는데도 진리를 마음에 두지 않으려는 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그들이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내버려 두는 것’은 ‘포기하는 것’(abandon, give up)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심으로 결국 심판의 진노에 이르게 하십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을 떠난다면 자신 혹은 사회가 어떤 죄악에 침식당할지 함께 나누어 보세요.
바울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영적, 종교적, 육체적으로 타락하며, 상실감으로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해, 극도의 공허감과 무의미감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영혼, 믿음, 절대적 사랑의 세계를 거부하고 그것을 대체하기 위해 일시적인 만족을 주는 것들을 좇습니다. ‘중독’, ‘쾌락’, ‘성적 타락’, ‘탐욕’, ‘물질’, ‘성공’, ‘헛된 이념과 사상’, ‘지식’ 등 대체제를 추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포장합니다. 결국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팀 켈러의 말처럼 ‘나를 만든 신’을 찾지 않고 ‘내가 만든 신’을 추구하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참된 만족을 느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입니다. 이로 인해 내면에 숨어 있던 죄악이 때가 되면 봇물처럼 터져 나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권위를 거부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는 복음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는 구원의 능력을 누립니다.

 

*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피조 세계에 그분의 신성과 영광을 계시하셨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권위와 창조 질서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 인류는 하나님을 거부하며 부패한 본성대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떠난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셨음에도 돌이키지 않는 자들은 그분의 ‘내버려 두심’으로 심판받습니다. 한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셨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임을 인식하고 주님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의로우신 하나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섭이라 착각해 죄의 길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죄의 자리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바울의 사명, 우리의 사명

 

[로마서 1장 8절~17절]
8절 -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절 -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절 -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절 -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절 -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절 -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절 -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절 -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절 -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절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로마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을 감사하며, 로마의 복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며, 오직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삽니다.

 

1. 복음의 빚을 진 자 (8~15절)

전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바울은 기도드릴 때마다 로마 성도들 보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어 견고한 믿음으로 서게 할 뿐 아니라 바울 자신도 격려를 받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는 헬라 문화권이나 그 밖의 사람들, 지혜 있는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로 통칭되는 모든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신을 이방인 선교를 위해 구원의 길로 불러 주셨기에, 그는 이방인에게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선교 사역은 그들에게 빚을 갚는 현장이었습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빚진 자의 마음으로 복음 전도에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 바울은 자신이 누구에게 빚진 자라고 말하나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은 무엇이며, 그 사명을 어떤 마음으로 감당해야 할까요?

 

2.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16~17절)

복음은 문화적 장벽과 상식적 이해를 초월합니다. 당시 지중해 지역에서는 명예와 수치가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누군가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면 당시 사회에서는 소외되고 무시당했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었음에도 바울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전했습니다. 그들 문화에서 어리석은 내용으로 치부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전했습니다(고전 1:18~24).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그 안에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들은 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믿음은 구원의 길을 시작할 때뿐만 아니라 구원의 길을 마칠 때까지 필요합니다.

* 바울은 믿음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어떤 구약성경 구절을 인용하나요?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응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의 기도

죄 가운데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절하던 저를 살리기 위해 독생자를 내어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까요! 이 사랑의 빚 때문에 복음의 빛을 들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모든 이에게 차별 없이 열어 두신 구원의 길, 예수 그리스도를 만방에 알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예수님 안에서 얻은 성도의 놀라운 지위

 

[로마서 1장 1절~7절]
1절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절 -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절 -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절 -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절 -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절 -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절 -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복음은 하나님이 그분 아들에 관해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입니다. 아들은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그 이름을 위해 은혜와 사도 직분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인사말에서부터 '복음'에 대해 말합니다.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으로는 구약성경의 약속을 따라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성령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해 능력으로 하나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해 사도로 택하심을 받고 이방인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로마 성도들을 이어 주는 것은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도는 '구별된 무리'라는 뜻입니다. '사랑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이라는 표현은 모두 성도를 설명하는 수식어입니다(7절).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사용되던 표현이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로 확대 적용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존귀한 성도입니다.

 

* 복음이 임시방편적이거나 우발적인 사건이 아님을 바울은 어떻게 설명하나요? 내가 믿고 확신하는 복음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깨닫는 것이 은혜

 

[로마서 7장 7절~20절]
7절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절 -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절 -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절 -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절 -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절 -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절 -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절 -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절 -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절 -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절 -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절 -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절 -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절 -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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