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몸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장 12절~23절]
12절 -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절 -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절 -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절 -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절 -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절 -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절 -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절 -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절 -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절 -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절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절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죄의 종은 부끄러운 열매를 얻고 사망에 이르고, 하나님의 종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영생에 이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

 

1. '죽을 몸'을 지혜롭게 사용하라 (12~14절)

지배권의 변화는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성도는 죄에서 의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그리고 법의 영역에서 은혜의 영역으로 옮겨진 자입니다. 그러면 죄와는 완전히 무관한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매일 삶에서 죄의 유혹을 받고 때론 넘어지기도 합니다. 바로 '죽을 몸'(12절)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영이 살아나 하나님의 은혜와 명령에 반응하게 되지만, 거듭난 후에도 여전히 '죽을 몸'을 가지고 삽니다. '죽을 몸'은 이전에 죄 가운데 살 때의 습관과 악한 욕망을 그래도 지닌 몸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죄의 결과로 죽을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성도는 자기 몸을 죄의 지배 아래 두지 말고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성도의 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도구여야 합니다.

*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서 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 몸이 죄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버려야 할 습관이나 행동은 무엇인가요?

 

2. 거룩함에 이르라 (15~23절)

고상한 가치나 이상적인 목표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이는 실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울도 이와 같은 측면에서 권면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건짐받아 의의 영역으로 옮겨졌다면, 마땅히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순종하려는 마음과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몸의 지체를 의의 통치 아래 두려는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이는 우리 노력만으로 되지 않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됩니다.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화의 삶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삶을 뒷받침합니다.

* 죄로부터 멀어진 성도가 살면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화의 삶을 살기 위해 내 말과 행동에서 변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오늘도 주님의 은혜 아래 거하며 거룩한 열매를 맺기 원합니다. 제 온몸과 마음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의의 무기로 사용되게 하소서. 거룩하신 하나님 뜻에 즉시, 기쁘게, 온전히 순복하는 순종의 종이 되어 주님 안에서 복과 영생을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을 위해 살라

 

[로마서 6장 1절~11절]
1절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절 -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절 -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절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절 -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절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절 -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절 -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절 -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절 -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절 -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은혜를 더하려고 죄에 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해 세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장사된 우리는 그분의 부활과도 연합한 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죄에 대해 단번에 죽으시고 하나님께 대해 살아 계신 것처럼, 우리도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살아 있습니다.

 

1. 죄에 대해 죽은 자 (1~4절)

죄가 가득한 곳일수록 하나님 은혜가 더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에 대해 누군가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하려면 죄를 더 지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분명히 답합니다. 물론 죄가 더한 곳에 은혜도 더욱 넘칩니다(5:20). 그러나 의롭게 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다시 죄에 거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해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해 다시 살아나 그분과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은 성도는 죄의 지배에 자신을 내어주는 방종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게 된 새 생명 가운데 거합니다.

* 성도가 죄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스도를 통해 새 생명을 누리게 된 내가 멀리할 죄는 무엇인가요?

 

2. 하나님께 대해 살아 있는 자 (5~11절)

죽은 사람은 어떤 일에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이전에는 죄의 명령에 무조건 반응하고 따랐지만, 이제는 죄의 유혹에 저항하고 맞설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의 몸'(6절)이 십자가에서 죽어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변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죄의 몸'은 육체 그 자체가 아니라 죄가 요구하는 대로 자신의 몸을 죄의 도구로 사용하는 타락한 본성을 의미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살아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누리려면 죄와 결별하고 의와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하나님께 대해 살아 있는 자답게 오늘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요?

 

오늘의 기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해 세례를 받은 저는 죄에 대해 죽었으니, 더 이상 죄 가운데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에 품고 주님과 깊이 연합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죄와 욕심에는 철저히 죽고, 하나님께는 신속하게 반응하는 새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죽음을 가져온 불순종, 생명을 가져온 순종

 

[로마서 5장 12절~21절]
12절 -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절 -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절 -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절 -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절 -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절 -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절 -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절 -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절 -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절 -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해 세상에 죄와 사망이 들어왔고, 한 사람 예수님으로 인해 은혜와 의의 선물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더하게 되었다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습니다. 이 은혜는 의를 통해 많은 사람 안에서 왕 노릇 해, 예수님을 통해 영생에 이르게 합니다.

 

●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첫 사람 아담은 인류를 대표합니다. 성경은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결국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담의 범죄는 아담 이후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의 범죄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비참함에 처한 인류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시고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한 사람 아담을 통해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른 것처럼,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게 된 결과는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은 하나님 뜻을 따른 온전한 순종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생긴 소망 없는 비참한 삶을 끝내고 영생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성도는 그 영생의 길을 걸으며 그리스도처럼 순종하고 하나님 은혜 아래 사는 자입니다.

 

* 첫 사람 아담의 범죄가 온 인류에 끼친 영향은 어떠한가요? 아담의 불순종이 아닌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을 본받아 돌이킬 일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참소망의 근거, 십자가에 담긴 사랑

 

[로마서 5장 1절~11절]
1절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절 -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절 -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절 -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절 -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절 -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절 -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절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절 -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절 -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절 -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그분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므로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 되고 원수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1.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삶 (1~5절)

성도가 사는 방식, 즐거워하는 이유는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의롭다 하십니다. 이로써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또 마지막 날에 거룩하고 영화롭게 될 것을 즐거이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미래 소망은 현재의 삶에도 선한 영향을 끼칩니다. 성도는 평안의 때만 즐거워하지 않고 고난의 때도 즐거워합니다. 고난 자체는 쓰디쓰지만 그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 가며, 하나님의 상급과 영생에 대한 궁극적인 소망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 결코 헛되지 않기에, 성도는 성령을 통해 마음에 부어 주신 하나님 사랑을 간직하며 살아야 합니다.

* 바울은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나요? 내가 하나님 사랑으로 즐거이 견딜 연단의 과정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이 확증하신 사랑 (6~11절)

하나님 사랑은 우리 소망의 근거가 되며, 그 사랑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바울은 하나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명백한 사실에 근거해서 설명합니다. 경건하지 않은 우리, 죄인 된 우리, 원수 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렇듯 죄인을 위한 대속의 죽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크신 사랑을 확증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심판과 죽음에서 건짐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확신은 성도의 기쁨이자 소망의 근거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은혜를 입은 성도는 소망 가운데 즐거워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화목함을 누리는 크신 은혜와 사랑을 자랑하며 전해야 합니다.

* 예수님이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실 때 우리는 어떠한 상태였나요? 예수님을 통해 내게 확증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제가 아직 연약하고 죄인이며 원수 되었을 때 아들의 생명을 내어 주신 하나님! 그 사랑을 오늘도 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미래 영광뿐만 아니라 제가 현재 겪는 고난의 과정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이 저를 믿음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심을 믿고 하나님만을 소망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의 '의'입니다

 

[로마서 4장 18절~25절]
18절 -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절 -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절 -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절 -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절 -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절 -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절 -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절 -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아브라함은 100세나 되어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것이 의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범죄 때문에 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셨습니다.

 

1. 바랄 수 없는 중에 믿음 (18~22절)

살다 보면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을 겪곤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불가능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은 99세 된 아브라함에게 많은 민족이 생기게 하겠다는 약속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를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현실을 보면 결코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바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고 하나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자기 최면으로 믿은 것이 아닙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아브라함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바라고 믿은 하나님 약속은 무엇인가요? 내가 믿음으로 취할 약속은 무엇인가요?

 

2.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을 믿음 (23~25절)

전능하신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심으로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인간의 눈에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하나님이 이루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아브라함의 일보다 더 큰 일에 대해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죽음에서 살리신 사건입니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여기십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를 새로운 하나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는 놀라운 큰일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가 곧 성도입니다.

*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예수님을 살리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어떤 소망이 생기나요?

 

오늘의 기도

불신앙을 버리고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었던 선진들을 본받기 원합니다. 제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시고 저를 의롭게 하기 위해 다시 사신 주님! 신실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이신칭의와 아브라함의 믿음

 

[로마서 4장 9절~17절]
9절 -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절 -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절 -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절 -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절 -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절 -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절 -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절 -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절 -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배경 이해하기]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이신칭의(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칭함 받음)의 복음을 자세히 풀어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는데, 이것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앞서 3장에서 이신칭의의 의미를 세 가지로 소개했습니다. 첫째, 이신칭의는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믿음을 지님으로 이루어지기에 인간의 자랑을 배제합니다(3:27~28). 둘째, 하나님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기에 이방인에게도 이신칭의의 구원을 베푸십니다(3:29~30). 셋째, 이신칭의의 구원은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고 완전하게 합니다(3:31). 율법이 고발하는 인간의 거짓 됨과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인간의 무능력에서 구원할 자는 복음 안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의롭다 여김을 받은 자, 어떤 자격이나 공로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의를 입은 자들이라고 선언합니다. 바울은 4장에서 아브라함을 이신칭의의 사례로 들며 3장의 세 가지 핵심 내용을 강력하게 뒷받침합니다. 이를 입증하면 율법을 파기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믿음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확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찰과 묵상]
1. 아브라함은 어느 때에 의롭다고 인정받았나요?(9~10절; 참조. 창 15:6; 17:24)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신칭의의 실례로 구약의 아브라함을 언급합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의 할례를 말합니다. 왜 이신칭의를 설명하면서 구약의 할례를 언급한 것일까요? 왜냐하면 바울이나 유대인들에게 할례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의 복과 구원이라는, 매우 중요한 하나님과의 언약의 표지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먼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구체적인 시기를 언급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은 때는 할례를 받은 이후가 아니라 할례를 받기 이전이었습니다(창 15:6). 이는 아브라함의 이신칭의가 인간의 행위나 자랑에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보여 줍니다. 그는 할례를 받기 전부터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여겨졌습니다. 바울은 이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어떠한지를 보여 줍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이 할례 받기 전에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인정받은 사건은 그가 믿는 이방인의 조상이 되며, 동시에 의롭다 인정받은 후 할례 받은 사건은 그가 유대인의 조상도 됨을 논증합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할례는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은 의를 확인해 주는 표시, 도장(seal)의 기능을 하는 셈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할례 사건은 바울의 이신칭의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적용과 나눔
구원의 조건으로 믿음보다 행위(공로)를 강조하면 어떻게 될까요?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은 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이신칭의의 구원에는 ‘칭의’와 ‘성화의 과정’이 있습니다. ‘칭의’(justification)는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반면 ‘성화’(sanctification)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모습과 다르게 변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 후에는 죄의 문제와 싸워야 하고, 죄를 극복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성령과 함께할 때 성도는 영적으로 성숙해진다고 말합니다. 결국 구원은 내가 이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주도권을 가지고 계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겸손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십자가 아래에서 자신을 부인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조금씩 성화됩니다. 하지만 이 같은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의 갈라디아 교회를 비롯한 초대교회 안에는 복음을 잘 믿고 순종하던 자들이 한순간에 복음을 변질시켜, 이신칭의가 아닌 이행칭의(행위로 구원받음)를 주장해 교회를 어렵게 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외적인 자랑이나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습니다.

2.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어떤 이유로 주어졌나요?(11~13절) 이 약속은 무엇을 의미하나요?(16절)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이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언약은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습니다. 이는 ‘율법에 속한 자’뿐 아니라 ‘믿음에 속한 자’(그리스도인)에게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 받는 은혜를 베푸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후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서 칭의의 모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이같이 행하셨다고 말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 아브라함을 보고, ‘의롭게 됨’이 할례와 무관함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13절)는 약속은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는 언약, 곧 아브라함이 열국의 조상이 되고 땅을 소유하게 되며, 천하 만민이 그를 통해 복을 얻을 것을 표현한 말로 보입니다(창 15:4~6; 17:2~8). 아브라함의 칭의는 믿음을 통해 얻어졌습니다(11절). 약속된 상속권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믿음을 통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분 약속이 아브라함의 모든 자손에게, 즉 율법을 가진 유대인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가진 이방인에게까지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세상의 상속자, 모든 믿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적용과 나눔
내 인생에서 믿음의 변환점이 된 말씀이나 사건은 무엇인가요?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에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율법이 완전하고 선하다 해도 인간에게는 그것을 완전히 준수하고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며 언약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성장해 가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의 믿음은 연약했습니다(창 12장).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그의 믿음은 새로워지고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여정은 장거리 여행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은 단번에 성장하지 않고, 인생의 굴곡을 통과하며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조금씩 성장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부르시고, 죽은 자를 산 자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은 믿음이었다고 말합니다(4:17~20). 따라서 성도는 아무리 어두운 현실을 만나더라도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1:17)을 기억하며, 결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그분의 언약 백성으로 삼아 주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풍성히 누릴 수 있습니다.

 

* 바울은 이신칭의의 복음과 아브라함의 믿음을 유기적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롭게 여기신 때는 그가 할례를 받기 전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의롭다고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무할례자로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모두 믿음의 의로 구원의 반열에 동참합니다. 성도는 신앙 연수가 더할수록 인간의 공로나 행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 믿음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 받음을 감사하며,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아무런 자격 없는 저를 택하셔서 믿음의 반열에 세워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외에 의의 근거로 삼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기 원합니다. 제 의와 삶의 이유 되신 주님만 믿고 따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믿음으로 성취되는 은혜의 약속

 

[로마서 4장 9절~17절]
9절 -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절 -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절 -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절 -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절 -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절 -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절 -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절 -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절 -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은 무할례 시입니다. 할례의 표는 무할례 시의 믿음을 의로 인 치신 것입니다. 이로써 그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와 할례자의 조상이 됩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 하신 언약은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습니다.

 

1. 아브라함, 모든 믿는 자의 조상 (9~12절)

구원의 길에서 믿음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습니다. 유대인은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며 행했던 할례를 엄격히 지켰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을 개로 여길 만큼 할례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할례에 대한 유대인의 오해와 집착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보여 주신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음을 상기시킵니다(창 15:6). 할례를 받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아브라함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육체의 표식이나 율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표를 주신 하나님 의도는 무엇인가요? 믿음만을 붙잡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세상의 상속자 (13~17절)
믿음은 인간의 생각과 예측, 상상력을 뛰어넘습니다. 아브라함은 99세에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다시금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따라 원래 이름이었던 '아브람'에서 '아브라함'(많은 사람의 아버지, 창 17:5)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얻은 복은 그의 노력이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구원은 믿음에 의한 하나님 은혜의 사건입니다. 우리 삶은 흔들리지 않는 은혜의 반석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세상의 상속자가 된 중요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나의 행함과 노력을 의지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은혜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사람의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복음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게 하소서. 보잘것없는 저를 하나님의 상속자로 삼아 주신 은혜에 항상 감격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믿는 자에게 주신 의, 전적 은혜의 선물

 

[로마서 4장 1절~8절]
1절 -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절 -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절 -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절 -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절 -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절 -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절 -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절 -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은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받았습니다. 일하는 자는 삯을 은혜 아닌 보수로 여기지만, 일하지 않은 불경건한 자가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믿음은 의로 여겨집니다. 불법이 사함받고 죄가 가려져 주님이 그 죄를 인정치 않으시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이 받은 의 (1~3절)

하나님 앞에서 누구도 자신의 행함과 의로움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은 '믿음'을 말할 때 항상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어떻게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지 설명합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도 후손에 대한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별들을 보이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창 15:5~6). 이는 하나님 약속을 전적으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로운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그분을 향한 온전한 믿음입니다.

*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았나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분 말씀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각각 어떻게 대하실까요?

 

2. 불법을 사하심에 관한 다윗의 선언 (4~8절)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은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불법을 없애 주십니다. 이것이 믿음이 주는 사죄의 은총입니다. 바울은 은혜와 행위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몫을 은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보수'로 여깁니다. 하지만 일하지도 않고 경건하지도 않은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다윗은 시편 32편에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에게 복이 있다고 노래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를 노래한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은혜를 누립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의 죄와 불의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십니다(히 8:12).

* 다윗은 어떤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나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죄 사함의 복을 누리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때때로 제 부족함과 연약함을 사탄이 들먹이며 참소합니다. 그럴지라도 제 믿음을 의로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며 담대하게 하소서. 모든 죄가 가려지고 용서받음으로 죄인이 의인의 자리에 설 수 있는 복을 제게 주신 주님을 송축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예수 그리스도, 율법을 완성한 하나님의 의

 

[로마서 3장 21절~31절]
21절 -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절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절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절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절 -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절 -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절 -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절 -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절 -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절 -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절 -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하나님이 율법 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의를 나타내시고,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으나,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그러니 믿음의 법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1. 화목제물 예수님과 하나님의 의 (21~26절)

율법의 잣대로는 모두가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비참함을 설명하던 바울이 극적인 반전을 전합니다. 21절의 헬라어 원문에는 '이제는'과 '율법' 사이에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러나'는 죄와 심판 아래 놓인 인간에게 새로운 소망이 펼쳐질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을 통해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는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을 향한 그분의 '사랑'이 조화를 이룬 위대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죄에 종노릇하던 이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죄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때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 인정해 주십니다.

* 죄 아래 놓인 인간이 의롭게 되는 길은 무엇인가요? 나의 죄를 위해 화물제물이 되신 예수님께 어떠한 감사를 드리고 싶나요?

 

2. 믿음,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는 길 (27~31절)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공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습니다. 어떤 이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율법이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믿음이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 도리어 굳게 세운다고 말합니다. 율법은 우리의 전적 무능함을 깨우치고 우리로 자랑하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구원의 길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줍니다. 율법과 복음은 그림자와 실체요 예언과 성취입니다.

* 인간이 구원을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죄인이었던 나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율법을 온전히 행할 능력이 없기에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실존을 마주합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 앞에 놓인 저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 이제는 율법이 가리키는 주님의 의 아래서 참자유를 누리며 믿음의 법을 따르고 가르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우리는 머리에서 발까지 철저히 죄인입니다

 

[로마서 3장 9절~20절]
9절 -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절 -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절 -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절 -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절 -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절 -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절 -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절 -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절 -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절 -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절 -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절 -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습니다. 의인, 깨닫는 자, 하나님을 찾는 자,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율법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며, 온 세상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고, 율법은 죄을 깨닫게 할 뿐입니다.

 

1. 이 땅에 의인은 없다 (9~18절)

죄는 인간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조종합니다. 인간은 죄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바울은 죄 아래 있는 인간의 모습을 시편의 구절을 인용해 설명합니다. 성경은 이 땅에 의인과 하나님을 찾는 자가 '하나도 없음'을 고발합니다. 목구멍, 혀, 입술, 입, 발, 눈은 철저히 타락해 거짓과 폭력, 교만함이 가득합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죄의 지배 아래 놓인 인간의 실상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음을 선언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죄로 인해 신음할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성도는 존재의 비참함 가운데서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 바울은 죄 아래 있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라고 말하나요? 내가 버릴 죄의 모습과 습관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 심판 아래 있는 죄인 (19~20절)

율법이나 양심의 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율법은 유대인이 죄 아래 있으며 심판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은 양심이 그들의 불의함을 고발하기에 하나님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 사람을 행위로 판단하시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바울은 소망 없는 인간의 모습을 법정에서 입을 다문 피고인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유죄 선언에 한마디도 항변하지 못하는 상태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바라볼 분은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죄인 된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나는 침묵하는 죄인이 아닌 하나님과 소통하는 자녀의 특권을 누리나요?

 

오늘의 기도

선한 것 하나 없이 전적으로 타락한 이 죄인이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오직 주님 은혜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붙들어 주소서. 영원한 죽음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저를 건져 내어 생명으로 옮겨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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