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사랑

 

[로마서 8장 31절~39절]
31절 -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절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절 -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절 -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절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절 -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절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절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절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배경 이해하기]
독일의 신학자 필리프 슈페너(P. J. Spener)는 로마서 8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만일 성서를 반지에 비유한다면, 로마서는 보석이고, 8장은 그 보석에서 가장 빛나는 중심부의 정점(sparking point)이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칭함 받은 성도가 성화의 삶을 살아 마침내 도달하게 되는 영화로움에 대해 설명합니다. 성도가 온전히 성화되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합니다. 영화에 이를 수 있는 것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성도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과 환희의 찬양이 로마서 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칭의(Justification), 성화(Santification), 영화(Glorification)의 세 단계로 구분합니다. 바울은 이 구원의 과정에 심각한 고난과 고통이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끝내 성도를 영화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견인(perseverance)이 성도를 구원과 천국에 이르게 하는 근원적이고도 확실한 근거임을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성도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관찰과 묵상]
1. 하나님이 택하신 자를 대적하거나 고발하거나 정죄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31~34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 주신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의롭다 하시며,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십니다.
바울은 성도가 성화의 삶을 살고 마침내 승리할 것을 이야기하며,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세 가지 이유를 전합니다. 첫째, 자신의 독생자까지 내어 주신 하나님이 성도가 영광스러운 승리의 자리에 서도록 능력을 주시기 때문이고(32절), 둘째, 의로우신 하나님이 부여하신 성도의 의로움을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33절). 셋째, 하나님과 성도의 중보자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위해 변호하고 간구하시기 때문에(34절) 아무도 성도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또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지 못하게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확신에 차서 선포하는 이유는, 성도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서 거룩한 삶과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성도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구원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을 주시고 구원으로 이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거나 무너뜨릴 수 없기에, 바울은 영화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의 걸음을 옮기도록 권면합니다.
적용과 나눔
일상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다 힘든 상황에 직면했을 때 힘을 얻는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영화나 스포츠 중계방송을 처음 볼 때는 결과를 몰라 긴장하고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알고 볼 때는 긴장되거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성도의 삶에는 여러 가지 영적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성도는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맞설 수 있습니다.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절)라고 선포합니다. 성도가 치르는 전쟁은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승리가 보장된 전쟁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 성도를 위해 일하십니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시 118:6~7).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전쟁에 패배는 결코 없습니다.

2. 바울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어떻게 확언하나요?(35~ 39절)
어떠한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도,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도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35~39절은 ‘사랑의 찬가’ 또는 ‘환희의 찬가’라는 별명을 지닙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환난과 고통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는 까닭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승리는 어쩌다가 운 좋게, 간신히 얻는 승리가 아닙니다. ‘넉넉히 이기는’ 승리입니다(37절). ‘넉넉히 이기다’에 해당되는 헬라어 ‘휘페르니카오’는 ‘압도적으로 승리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첫째, 구원과 승리의 절대적인 원인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35절). 바울은 자신이 복음 전파를 하면서 겪은 어려움(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등)을 언급하며, 이러한 고통과 고난도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둘째, 성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활 속에서 체험함으로 확신 가운데 서야 합니다. 바울이 겪은 어려움은 그만의 어려움이 아닙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성도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성도는 연약한 존재지만, 하나님과 함께할 때 강한 존재가 됨을 기억하며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모든 어려움과 근심에서 승리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적용과 나눔
나는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언제 경험했나요?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도의 삶은 평탄하고 안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신앙의 길을 걷는 중에 큰 시련과 고난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께 항변하거나 불만을 토로합니다. “하나님, 왜 하필 저입니까?” “도대체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 저를 사랑하시는 게 맞습니까?” 그런데 성도는 이러한 질문이 떠오를 때에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하는 것은 사탄의 계략입니다. 사탄은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게 하고 넘어지게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건져 주시며 지켜 주십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8).

 

*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도는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 어떤 존재도 성도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도의 구원은 보장받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어려움과 고난도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의지하면 고난과 박해와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푯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도가 경험하는 승리는 넉넉한 승리, 압도적인 승리입니다.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을 맛본 사람에게는 결코 두려움이 없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보잘것없는 죄인에게 크나큰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 삶에서 맞닥뜨리는 고난과 어려움에 낙심하지 않게 하소서. 저를 향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기억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승리를 맛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약속의 말씀을 이루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로마서 9장 1절~13절]
1절 -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2절 - (1절에 포함되어 있음)
3절 -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절 -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절 -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6절 -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7절 -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절 -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절 -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절 -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절 -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절 -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절 -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바울은 골육 이스라엘로 인해 크게 근심합니다. 그들에게는 양자 됨, 영광, 율법, 예배, 약속이 있고, 그리스도도 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가 다 이스라엘은 아닙니다. 육신의 자녀가 아닌 약속의 자녀가 하나님 자녀며, 하나님 뜻은 택하심을 따라 부르시는 이로 인해 세워집니다.

 

1. 동족을 향한 바울의 마음 (1~5절)

전도는 한 영혼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바울은 동족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수모와 거절을 당했습니다. 유대인은 선택받은 선민이었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죽이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동족을 향한 애틋함으로 복음 전파를 계속합니다. 바울을 통해 복음 전도자의 두 가지 자세를 배웁니다. 하나는 사랑의 마음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서 분노 대신 슬픔을 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을 미워하거나 폄훼하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민족이라는 것과 그들이 지닌 특권을 인정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대상일수록 사랑의 마음, 존경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 복음을 거절하는 동족 유대인을 향한 바울의 심경은 어떠했나요? 예수님을 모르는 가족과 친구에게 복음을 전할 때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까요?

 

2. 폐해지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6~13절)

간절히 간구했는데 응답이 없으면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 뜻을 깨닫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 아님을 이삭과 이스마엘을 통해 설명합니다. 둘 다 육신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이룰 상속자로 이삭을 부르셨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셨고 에서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택하셨기에 그들 행위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 뜻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 이삭과 이스마엘, 야곱과 에서 이야기는 하나님의 어떤 면을 잘 보여 주나요? 내가 누리는 구원은 내 공로인가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가요?

 

오늘의 기도

형제의 구원을 위해 생명까지 내놓으며 간구했던 바울의 모습이 영혼 구원을 위한 제 메마른 기도에 도전이 됩니다. 보잘것없는 저를 약속의 자녀로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 은혜를, 믿지 않는 가족과 친척과 이웃에게 담대히 나누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사랑 덕분에 넉넉히 이깁니다

 

[로마서 8장 31절~39절]
31절 -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절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절 -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절 -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절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절 -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절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절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절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주신 하나님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해 의롭다 하신 자들을 아무도 정죄하지 못하며, 살아나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니 그 무엇도 우리를 주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31~36절)

하나님 사랑에 대한 확실한 믿음은 안정된 삶의 근거입니다. 바울은 다섯 가지 물음을 던지고 답합니다. 이 물음들은 모두 하나님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시는가? 누가 우리를 정죄하는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는가?"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31절)이라는 전제 앞에서 분명해집니다. 즉, 우리를 대적할 존재가 없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시며, 하나님은 우리를 송사하지 않으시고, 누구도 우리를 정죄하거나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살얼음판을 걷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을 의지해 담대히 구원의 길을 걷는 자입니다.

* 바울이 던진 다섯 가지 물음은 무엇이며 그 답은 무엇인가요? 다섯 가지 물음 가운데 내가 고민하던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넉넉히 이기느니라 (37~39절)

고난을 이겨 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바울도 자신의 삶에 있었던 수많은 고난을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이라는 단어로 묘사합니다(35절). 일반적으로 이러한 일들을 겪으면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르니코멘'은 '가장 영광스럽게 이기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덕분입니다. 사망, 생명, 천사들, 권세자들, 현재 일, 장래 일, 높음, 깊음,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에 힘입어 살아가는 자는 모든 일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승리합니다.

* 바울이 모든 일에서 우리의 승리를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바울이 확신 있게 전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승리를 내 삶에서 얼마나 누리나요?

 

오늘의 기도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주신 하나님이 저를 아끼시니 그 누구도, 어떤 상황도 두렵지 않습니다. 눈앞에 놓인 현실이 소망 없어 보여도, 그 무엇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순간순간 경험하며 담대히 이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룸이 하나님의 '선'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30절]
26절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절 -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절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절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절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은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룹니다.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1.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님 (26~27절)

우리는 때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또한 믿음이 부족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과 구원의 깊이와 너비가 어떠한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올바른 기도를 드리기에 우리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에도 소망이 있는 것은 성령이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성령이 친히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기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성령을 따르는 기도가 곧 하나님 뜻을 따르는 기도입니다. 성도는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의지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훈련해야 합니다.

* 무엇을 기도할지 모르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은 누구인가요? 어떻게 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를 드릴 수 있을까요?

 

2.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28~30절)

우리 삶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28절은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지만 동시에 가장 오해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선'(헬, 아가토스)은 이 땅의 삶에서 좋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에 따르면, 하나님이 합력해 이루시는 선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창세전에 미리 정하시고, 때가 되어 부르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시고, 마침내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살면서 만나는 고난이나 기쁨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과정이라고 여길 때 어떤 일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이 합력해 이루시는 '선'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요? 하나님은 고난이나 기쁨을 통해 나의 내면을 어떻게 만져 주시나요?

 

오늘의 기도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저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성령님이 계시니 감사합니다. 제게 허락하신 모든 사람과 상황을 통해 선을 이루시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게 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깨달아, 인내하고 기도하고 소망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탄식하는 피조물, 속량될 그날을 고대하다

 

[로마서 8장 18절~25절]
18절 -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절 -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절 -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절 -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절 -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절 -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절 -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절 -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현재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탄식하는 모든 피조물의 소망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요,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입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몸의 속량을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 피조물과 성도들의 탄식

참된 믿음은 현재 겪는 고통이 아닌 미래 나타날 영광에 시선을 둡니다. 바울은 피조물과 성도의 현재 삶을 '탄식'이라는 단어로 묘사하며 삼중의 탄식을 언급합니다. 곧 피조물의 탄식(19~22절), 하나님 자녀들의 탄식(23~25절), 그리고 성령의 탄식(8:26)입니다. 피조물은 파멸과 썩어짐으로부터 해방될 것을 고대하며 탄식합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하게 된 피조물은 그들을 지배하는 악한 세력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고대합니다. 또 하나님 자녀인 성도들도 죄의 몸을 벗어 버리고 신령한 몸을 입게 될 것을 바라며 탄식합니다. 성도들과 피조 세계의 탄식은 장차 있을 완성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영광스러울지 잘 보여 줍니다. 성도는 불완전한 이 땅에 마음을 두지 말고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기대해야 합니다. 절망이 아닌 소망을 선택하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 영광스러운 미래와 대비되는 피조물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요? 장차 있을 영광스러운 구원의 완성을 고대하며 현재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영으로 사는 하나님 자녀

 

[로마서 8장 12절~17절]
12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절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절 -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절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절 -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절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육신대로 살면 죽고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성령이 증언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한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1. 빚진 자 됨 (12~13절)
성도는 복음의 은혜에 빚진 자입니다. 바울은 성도에게 일어난 놀라운 변화를 설명하면서 '빚진 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 이상 육신에 매여 살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은 큰 복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성도는 이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신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죽을 몸을 지니고 살아가기에 죄는 항상 가능성으로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 것인지, 성령을 의지해 생명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날마다 육체의 욕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성령이 주관하시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 바울이 하나님 은혜로 변화된 성도를 '빚진 자'로 묘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령을 따르며 죽여야 하는 몸의 행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양자 됨 (14~17절)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울은 이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묘사합니다. 선민이라 자처한 유대인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자가 있으면 신성 모독으로 간주해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과 성도 사이의 친밀함을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는 '아빠, 아버지'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사용하신 단어입니다(막 14:36; 눅 11:1~2). 성령은 우리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확증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영광뿐만 아니라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셨듯 고난은 영광에 이르는 필수 과정입니다.

* 바울은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를 어떻게 묘사하나요?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다운 말과 행실은 어떠할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친밀하게 나아가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항상 성령님과 함께 한 걸음씩 내딛는 자녀 되게 하소서. 주님과 함께 받을 상속자의 영광을 고대하며 주님이 가신 고난의 길을 당당히 따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성령의 법 아래 거하며 생명과 평안을 누리라

 

[로마서 8장 1절~11절]
1절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절 -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절 -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절 -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절 -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절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절 -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절 -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절 -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절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인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정죄함이 없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십니다.

 

1.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됨 (1~8절)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의 BC와 AD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십니다. 이전에 율법 아래 살 때는 율법을 지킬 힘이 없었기에 정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율법은 곧 정죄와 사망의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삶이 가능해졌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가 담당해야 하는 모든 죄값을 대신 지불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을 믿을 때 성령께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좇는 육신의 삶을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생명과 평안을 누립니다. 성도는 매사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생각과 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육신의 일과 영의 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생명과 평안을 누리기 위해 내 마음과 생각에서 정리할 것은 무엇인가요?

 

2. 현재 삶에서 영원을 누림 (9~11절)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삶을 묘사하며, 몸은 죄로 인해 죽었지만 영은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타락의 결과로 육체는 죽음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영은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다 인정받아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영이 살아난 것을 체험한 성도는 여전히 죄의 몸을 지니고 이 땅에 살지만 소망을 가집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이후 자신도 부활해 신령한 몸을 지닐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영원의 관점에서 현재를 보아야 합니다. 또한 자기 속에 거하시는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사랑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 몸과 영의 상태는 어떠할까요? 내 영을 살리신 주님이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는 확신으로 간구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저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려 육신을 입고 저주와 형벌을 대신 당하신 주님! 그 크신 은혜를 잊고 여전히 육신의 일을 좇는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제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 성령님께 꼭 붙들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율법 아래 있는 죄인의 곤고한 외침

 

[로마서 7장 7절~25절]
7절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절 -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절 -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절 -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절 -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절 -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절 -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절 -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절 -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절 -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절 -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절 -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절 -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절 -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절 -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절 -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절 -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절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율법으로 죄를 알게 되어 죄는 살아나고 나는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나는 죄 아래 팔려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지만 죄의 법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사망의 몸을 지녀 곤고한 나를 건져 낼 이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1. 죄와 율법의 작용 원리 (7~13절)

율법 앞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 유대인으로 살던 자신의 삶의 방식을 아담 이래로 죄 아래 사는 모든 사람의 삶의 방식과 연결짓습니다. 경건한 유대인으로 살던 때 그는 자신이 의로운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결코 자신이 의롭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특히 십계명 중 열 번째 '탐내지 말라'는 계명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 자신을 떠올리며, 거룩하고 선한 율법과 계명이 죄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사망 선고를 내렸다고 고백합니다. 이렇듯 선한 것을 통해서도 사망을 이끌어 내는 것이 죄의 위력입니다.

* 율법 앞에서 인간이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사실이 어떻게 드러나나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과 현재 내 모습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2. 죄 아래 있는 자의 외침 (14~25절)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마음 따로 몸 따로'라는 말을 합니다. 바울도 그와 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선민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 유대인으로 살 때 그는 자신이 율법대로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후 과거의 자기 모습을 보니 죄악투성이였습니다. 선한 율법의 요구를 알면서도 악을 행했습니다. 그는 자기 속에 있는 죄가 자기를 주장했음을 알았습니다. 마음으로는 율법을 따르길 원했지만 행할 능력이 없어서 죄에 사로잡힌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곤경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이렇듯 몸과 마음이 분열된 소망 없는 인간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 바울은 유대인으로 살았던 과거 자기의 모습을 어떻게 묘사하나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느끼는 내적 갈등은 어떠한가요?

 

오늘의 기도

더럽고 추한 제 죄악을 진리의 말씀으로 밝혀 돌이키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선을 행할 능력이 제게 없음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의지하오니 제 곤고한 외침이 감사와 찬양의 외침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

 

[로마서 6장 12절~23절]
12절 -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절 -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절 -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절 -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절 -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절 -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절 -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절 -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절 -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절 -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절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절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배경 이해하기]
로마서에서 바울은 죄로 인해 전적으로 타락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자력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 즉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를 통해 얻습니다. 이신칭의는 바울이 기록한 로마서의 기본 주제이자 기독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즉 죄인 된 인간이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며, 하나님이 그분을 믿는 자들을 의롭다 칭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칭의’는 법정 용어로, 의로우신 하나님만 선언하실 수 있는 죄 용서의 사법적 행위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은 성도는 ‘칭의’의 자리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즉, 성화(Sanctification)되어야 합니다. 성화의 근거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바울은 이 연합이 세례를 통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6:1~8). 세례를 통해 성도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연합함으로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살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성화의 삶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관찰과 묵상]
1.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게 된 성도는 자신의 지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요?(12~13절)
성도는 죄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지체를 죄에게 내주지 말아야 합니다. 또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몸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요청되는 첫 번째는 주종 관계의 분명한 확립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습니다(6절). 하지만 이것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죄가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성도의 의지적 결단과 다짐이 필요합니다(12절). 사탄은 성도가 계속해서 죄에 종노릇하도록 미혹하고 넘어뜨리려 합니다(벧전 5:8). 따라서 성도는 죄와 피를 흘리기까지 싸워(히 12:4) 죄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하고, 유일한 주인 되신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살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삶의 목적의 분명한 발견입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13절). ‘불의의 무기로 내준다’는 것은 ‘죄에 내맡기어 악의 도구가 된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이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도구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을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성도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13절). 하나님이 성도에게 원하시는 한 가지는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12:1).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의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적용과 나눔
성도로서 거룩하게 살아가려 할 때 어떤 점이 어렵나요? 어떻게 하면 기쁨으로 성화를 이루어 갈 수 있을까요?
신학자 존 머리(J. Murray)는 “아직 풀려나지 않은 노예에게 노예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노예 됨을 조롱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칭함 받은 성도에게 ‘거룩한 삶을 살라’는 명령은 할 수 없는 불가능에 도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미 얻은 구원의 은혜로 인해 충분히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전히 환경과 상황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더라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여전히 마음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의롭다 칭함 받은 성도는 자신의 의가 아닌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과거에 죄의 종으로 살았다면 지금은 은혜의 포로가 되어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거룩한 삶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성도에게 거룩한 삶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의롭다 칭함 받은 사람이 기쁨으로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삶입니다.

2. 죄의 종일 때는 어떤 열매를 맺나요? 또 하나님의 종일 때는 어떤 열매를 맺나요? (20~23절)
죄의 종일 때는 사망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는 영생의 열매를 맺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23절).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변화하는 데는 세 단계의 과정이 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17절), 즉 복음을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말미암습니다(10:17). 두 번째 단계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17절), 즉 들은 복음을 ‘마음으로’부터 믿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이야기합니다(10:10). 세 번째 단계로, 이제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할 것이 아니라(마 7:21) 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17절). 순종은 의지적 결단이며 직접적 행동입니다. 바울은 곧 지(知), 정(情), 의(意), 전인격적인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훈의 본’(지), ‘마음’(정), ‘순종’(의), 이 모든 것이 균형 잡혀야 건강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믿음으로 죄의 종에서 의의 종,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었다면, 계속되는 인생 여정 가운데 요청되는 것은 말씀에 대한 전적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거룩한 삶이며, 거룩한 삶의 열매는 영생입니다(22~23절).
적용과 나눔
진정으로 하나님의 종이 된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요? 참된 종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떠할지 나누어 보세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종이 된 성도는 첫째,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다른 어떤 것도 주인으로 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20:3). 예수님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24). 죄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종이 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분께만 순종하며 그분만을 찬양해야 합니다. 둘째, 주인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며, 자신의 경험이 맞다며 자신의 주장을 주인의 뜻보다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인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따르는 것이 종이 할 올바른 일입니다. 셋째, 주인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전 4:2).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종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충성입니다. 충성은 일상의 성실함에서 시작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 아닌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받는 삶은 하나님의 종 된 성도가 걸을 마땅한 길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 받은 사람은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함은 성도가 이 땅에서 끊임없이 이루어 가야 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는 죄의 지배를 받는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 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구원받았음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주인 되신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하며 헌신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따라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성도는 영생의 열매를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자신의 전 존재를 주님께 드린 종이 받는 선물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마땅히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기꺼이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율법에 얽매인 삶, 성령으로 자유로워진 삶

 

[로마서 7장 1절~6절]
1절 -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절 -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3절 -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절 -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절 -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절 -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법은 사람이 살 동안만 그 사람을 주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율법에 대해 죽임당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그리스도께 가서 하나님을 위해 열매 맺습니다. 우리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이 아닌,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1. 율법으로부터의 해방 (1~3절)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그분의 거룩한 성품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율법이 악하다거나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율법이 인간을 지배하고 얽매었던 원인은 죄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담긴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행하는 일마다 율법의 요구와는 정반대됩니다. 율법은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을 사망으로 이끄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지킬 능력이 없는 자에게 주어진 율법은 과격하게 표현하면 재앙 자체였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그의 영향에서 벗어나듯, 하나님은 율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삶을 혼인 관계에 빗대어 어떻게 설명하나요? 율법에 매이는 삶과 율법에서 자유로운 삶은 무엇이 다를까요?

 

2. 하나님 영의 지배를 받는 삶 (4~6절)

모든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 조항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비난하셨습니다. 그들의 율법 준수가 올바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한 성도는 율법에 대해 죽은 자라고 말합니다. 더 이상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새로운 삶이 가능해졌는데, 곧 하나님 영의 지배 아래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영이 살아난 성도는 하나님 영의 지배 아래 살아갑니다. 겉모습이 아닌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해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할 때 사망을 위한 열매가 아닌 하나님을 위한 선한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을 위한 열매와 사망을 위한 열매는 각각 어떻게 맺게 되나요? 내가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해 맺은 삶의 열매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이 율법에서 자유롭게 하셨는데도 여전히 율법에 매여 행동하고, 율법을 잣대로 판단하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에 힘입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며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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