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맡기는 믿음

[룻기 3장 14절~18절]
14절 -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15절 -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16절 -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17절 -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18절 -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룻이 새벽까지 보아스 발치에 누웠다가 그의 권고대로 사람들 모르게 돌아가려 합니다. 보아스는 룻의 겉옷에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갑니다. 룻이 시어미니에게 보아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자, 나오미는 그가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않으리라 합니다.

● 일이 성취되기를 기다림 (14~18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룻은 보아스의 배려로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결과를 궁금해하는 나오미에게 룻은 보아스가 한 일을 모두 말합니다. 아울러 보아스가 여섯 번이나 되어 준 많은 양의 보리를 나오미에게 내놓습니다. 보아스가 이렇게 한 것은 자신의 말이 헛된 것이 아님을 확증하고 룻을 안심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나오미는 보아스가 조만간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당장 답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해 안달하지 않고, 오직 잠잠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자 합니다. 보아스에게 청혼한 것까지는 인간의 영역이지만, 성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의 자리에서 창조주의 일하심을 기다리며 순종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임합니다.

* 보아스가 청혼에 대한 답을 유보한 것에 대한 나오미의 반응은 무엇이었나요? 내 계획대로 일이 빨리 진행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절대 순종하는 인애, 수치를 사랑으로 덮는 인애

[룻기 3장 1절~13절]
1절 -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절 -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절 -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절 -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절 -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절 -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7절 -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절 -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절 -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10절 -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절 -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12절 -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13절 -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시키는 대로 단장하고 보아스가 보리 타작 후에 누운 곳에 가서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눕습니다. 밤중에 놀라 깬 보아스에게 룻은 그의 옷자락을 펴 자신을 덮어 달라며 그가 기업을 무를 자라 합니다. 보아스는 룻을 축복하며, 아침에 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합니다.

1. 룻의 용기 있는 청혼 (1~6절)
절대 순종은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합니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보아스와 재혼시키기 위해 보아스가 자고 있는 타작마당에 룻을 보내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워 있으라고 합니다. 이런 제안이 이방인이었던 룻에게는 매우 생소하고 수치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룻은 의심과 염려를 버리고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모든 계획을 준비한 것은 나오미였지만, 그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보아스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가문의 의무와 권리를 이행할 '기업 무를 자'(고엘)에 대해 알고 있었고, 덕망 있는 보아스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깁니다. 결국 나오미의 믿음과 룻의 순종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인간적인 생각보다 하나님께 순종함이 우선입니다.
* 룻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보아스에게로 가서 청혼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내가 깨야 할 고정관념과 습관은 무엇인가요?

2. 보아스의 흔쾌한 허락 (7~13절)
자신의 이익보다 율법에 근거한 공의를 먼저 생각할 때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보아스는 밤중에 발치에 누워 있던 이방 여인 룻의 갑작스러운 청혼을 받고 당황하지 않습니다. 또한 룻을 아내로 받아들였다가 혹시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거나 재정적 손실을 보지 않을까 염려하며 계산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에 근거해 '기업 무를 자'가 되어 주기를 요청하는 룻의 신실함과 간절함에 감동을 받고, 어떤 변명이나 망설임 없이 합법적이고 적극적으로 책임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룻에게서 이해타산을 초월한 인애(헤세드)를 발견하고 자신도 이러한 인애로 응답한 것입니다. 사심 없이 의를 구할 때 자비가 임합니다.
* 보아스는 룻의 청혼을 어떤 관점에서 받아들였나요?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어떤 원칙과 기준으로 판단하나요?

오늘의 기도
세상에는 많은 교훈과 방법이 있지만, 제 행동과 판단의 근거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되길 원합니다. 어느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초점을 맞추고, 의심과 두려움 없이 순종하는 영적 용기를 허락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신실함에 대한 보상은 새 소망의 시작입니다

[룻기 2장 17절~23절]

17절 -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18절 -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
19절 -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절 -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절 -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절 -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절 -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저녁까지 이삭을 줍고 돌아온 룻에게 나오미가 누구의 밭에서 일했는지 묻습니다. 나오미는 은혜를 베푼 보아스를 축복하며 그가 가까운 친족으로 '기업 무를 자' 중 하나라 합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보리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시어머니와 거주합니다.

1. 보아스, 기업 무를 자 (17~20절)
하나님은 곤경에 처한 자녀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나오미는 이방 여인인 룻이 불이익과 조롱을 당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룻은 보아스의 호의 덕분에 열두 되가량 되는 보리를 주웠을 뿐만 아니라, 볶은 곡식까지 먹고 남겨 왔습니다. 나오미는 이 일이 누군가의 호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젊은 과부인 룻의 신변이 염려되어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룻에게서 '보아스'라는 이름을 듣게 된 나오미는 그가 '기업 무를 자' 중 하나임을 알아채고 보아스의 호의를 칭송합니다. 하나님은 '기업 무를 자'를 통해 나오미와 룻으로 하여금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하십니다.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장래 소망이 되어 주십니다.
* 룻이 보아스를 통해 많은 양식을 얻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 나는 누구에게 어떤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어야 할까요?

2. 다른 밭에 가지 말라 (21~23절)
윗사람의 자상한 배려와 아랫사람의 전적인 순종은 합력하여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추수를 마치기까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나오미는 룻에게 절대로 다른 밭에 가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왜냐하면 보아스의 인품을 볼 때 빈말을 할 리 없고, 다른 밭보다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장차 기업 무를 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룻이 계속 보아스와 대면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에 순종한 룻은 보아스의 호감을 얻어 장차 다윗의 할머니가 될 뿐 아니라, 육신을 입고 오신 메시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누립니다. 순종은 복된 길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 나오미는 룻에게 왜 보아스의 밭 외에 다른 밭에 가지 말라고 했나요? 사랑하는 가족의 권고이기에 간과하지 말고 마음에 새길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평안한 때든, 고난의 때든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을 갖기 원합니다. 암흑 같은 하루를 지날지라도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신실한 자녀 되게 하소서. 새 소망의 내일은 오직 주님 손에서만 시작됨을 믿습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의 사람은 사랑과 은혜의 통로입니다

[룻기 2장 8절~16절]
8절 -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절 -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절 -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절 -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절 -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절 -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14절 -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절 -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16절 -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보아스가 룻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자 룻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행한 일에 여호와께서 보답하시고 상 주시기를 구합니다. 식사 때도 그는 룻에게 먹을 것을 넉넉하게 주며, 소년들에게 명령해 룻에게 호의를 베풀고 꾸짖지 말라 합니다.

1. 분에 넘치는 호의 (8~13절)
은혜는 인간의 예측과 상상을 초월합니다. '보아스'라는 의외의 인물을 통해 하나님은 룻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보아스는 생면부지의 이방 여인 룻에게 따뜻한 관심을 표현합니다. 마음껏 이삭을 주울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줍니다. 또 목이 마를 때면 언제든지 일꾼들이 길어 온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줍니다. 마실 물이 귀했던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이것은 엄청난 특권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온 이방 여인에게 여호와께서 보응해 주시길 축복합니다(12절). 그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룻은 일용할 양식을 마련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상하고 배려 깊고 섬세하게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 보아스가 룻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베푼 이유는 무엇인가요? 룻처럼 하나님의 배려와 특권을 받은 적이 있나요? 그 경험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나요?

2. 풍성한 혜택과 선물 (14~16절)
하나님의 사랑은 인색하지 않고 더할 수 없이 풍성합니다. 하나님은 최소한의 필요를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으시고, 흘러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룻은 단지 밭에서 이삭을 마음껏 주울 수 있기만을 원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룻으로 하여금 떡과 볶은 곡식을 배불리 먹게 하고, 이삭이 많이 흩어져 있는 곡식을 묶는 단 사이에서 줍도록 허락했습니다. 게다가 일꾼들에게는 이삭을 다 거두어들이지 말고 조금씩 남겨 두어 룻이 동정을 받는다는 느낌 없이 거둘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존재입니다. 주님은 죄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구원자입니다.
* 보아스가 룻에게 베푼 호의는 무엇이었나요? 죄인인 나는 주님께 받은 과분한 사랑을 어떻게 되돌려 드리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항상 기대 이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저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일하심은 메마른 적도, 멈춘 적도 없으십니다. 의심이 들 때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능력, 그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저를 사랑하신 것을 기억하며 감사로 응답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사람에게 우연이 하나님께는 필연입니다

[룻기 2장 1절~7절]
1절 -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절 -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절 -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절 -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절 -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절 -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절 -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룻이 나오미의 허락을 받고 이삭을 주우러 나가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릅니다. 베들레헴에서 온 보아스가 그녀를 보고 사환에게 누구의 소녀인지 묻습니다. 사환은 그녀가 나오미와 함께 모압에서 왔으며, 잠시 쉰 것 외에 아침부터 계속 이삭을 줍고 있다 대답합니다.

1. 룻, 보아스의 밭에 이르다 (1~3절)
믿음으로 도전하면 하나님이 그 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모압에서 온 이방인 룻은 시모를 봉양하기 위해 밭에 나가 이삭을 줍겠다고 합니다. 당시 율법은 분명 가난한 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추수 후에 떨어진 이삭을 주울 수 있는 권리를 규정했지만, 대부분의 백성은 자기 이익을 위해 그 율법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밭 주인에게 냉대를 받거나 이삭 줍는 일을 금지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압 여인인 룻이 이삭을 줍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당할지도 모르는 온갖 어려움을 각오하고 밭으로 나간 룻은 '우연히'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에 도착합니다. 우리의 걸음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안에 있습니다(잠 16:9; 20:24 참조).
* 룻이 이삭을 줍기 위해 밭으로 나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감당해야 할 도전은 어떤 것인가요?

2. 보아스, 룻에 대해 묻다 (4~7절)
일의 종류나 가치보다 일에 임하는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룻은 남의 밭에서 이삭을 주우면서도 결코 대충하지 않습니다. 잠깐의 휴식 시간 외에는 조금도 꾀를 부리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이삭을 주웠습니다. 때맞춰 보아스가 밭에 도착합니다. 보아스와 일꾼들의 관계는 서로 축복하는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보아스가 룻을 발견하고 누구냐고 묻자, 사환은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룻의 장점을 열거합니다. 룻의 부지런하고 성실한 태도뿐 아니라 시모에 대한 효심을 가지고 모압에서 돌아온 착하고 충성된 여인임을 부각해 칭찬합니다. 사람의 눈에 하찮아 보이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신앙의 시금석입니다.
* 사환이 처음 본 룻을 보아스에게 극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일이 맡겨졌을 때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행하나요?

오늘의 기도
사소한 배려와 헌신도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넉넉하신 하나님을 닮고 싶습니다. 제 것을 스스로 챙기기보다 넘치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임을 기억하며 이웃을 넉넉하게 섬기길 원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아무 보장이 없어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

[룻기 1장 15절~22절]
15절 -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절 -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절 -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절 -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절 -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절 -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절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절 -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돌아가라는 나오미의 권면에도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하며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합니다. 보리 추수를 시작할 때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합니다. 사람들이 나오미로 인해 떠들자, 그녀는 하나님이 징벌하신 자신을 '나오미'라 하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합니다.

1. 룻의 신앙적 결단 (15~18절)
믿음의 길을 선택할 때 영원한 복이 임합니다. 룻은 오르바처럼 자기 고향에 남으면 재혼해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9절). 하지만 룻은 보장된 미래보다 아무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시어머니를 따라가는 선택을 합니다. 룻의 이런 결단은 단순한 효심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이자 철저한 헌신의 발로입니다. 그리고 이방 땅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은 나오미의 신앙이 맺은 열매이기도 합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선택권을 주었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했습니다. 자신의 행복보다 시어머니를 따르겠다는 룻의 결단은 당장은 어리석어 보였지만, 이는 결국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엄청난 은혜의 시작이었습니다.
* 왜 룻은 아무 보장이 없는 시어머니를 좇아갔을까요?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지금 하나님만을 좇아가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2. 베들레헴으로의 귀환 (19~22절)
자존심을 꺾고 스스로 부족함을 고백할 때 회복의 은총이 시작됩니다. 한때 유력한 가문이었던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이방인 며느리 룻과 함께 처량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사람들은 "이이가 나오미냐?"하면서 놀라워합니다. 이는 10여 년 전 고향을 떠날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변한 나오미의 처지에 대한 동정과 조롱이 섞인 표현입니다. 이에 나오미는 구차한 변명 대신 자신이 잘못과 처지를 솔직하게 인정하며, 자신을 '고통'이라는 뜻의 '마라'로 부르라 합니다. 또한 지금 자신이 받고 있는 고통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이 징벌하신 것이므로, 그 징벌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받아들이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과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때로 우리 삶의 그릇을 비우게도 하십니다.
*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내 실수와 잘못으로 뼈아픈 실패를 했을 때 내 반응은 어떠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제가 구하는 것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니, 결국 하나님이 없어도 괜찮은 삶을 추구한 것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이 보장해 주는 편안한 환경을 원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만이 제 유일한 보장이 되는 삶을 소망하오니 그 길을 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끝까지 신실하십시오

[룻기 1장 15절~22절]
15절 -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절 -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절 -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절 -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절 -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절 -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절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절 -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배경 이해하기]
룻기는 작은 두루마리 책들인 다섯 ‘메길로트’(Megilloth, 오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각 절기 때마다 메길로트를 읽었는데, 칠칠절(오순절)에는 룻기, 유월절에는 아가서, 장막절에는 전도서, BC 586년 예루살렘 멸망을 기념하는 아브(Ab)월 제9일에는 애가, 부림절에는 에스더를 읽었습니다. 룻기를 읽는 칠칠절은 룻의 약혼이 이뤄진 때로 봅니다. 룻기를 유대인의 주요 절기 중에 읽었다는 것은, 그것이 유대인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었음을 알려 줍니다. 또한 룻기는 사사 시대가 시대적 배경이기에 70인역과 한글 성경에서는 사사기 다음에 위치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잠언 다음에 나옵니다. ‘룻’은 히브리어로, ‘여자 친구’라는 의미입니다. 룻이 그만큼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룻은 자신의 고향인 모압에서 이방 사람들과 만났고, 이방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었지만, 남편을 슬픔과 고통 속에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남편을 먼저 잃은 나오미는 두 며느리의 슬픔과 고통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을 자유롭게 해 주고 새로운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하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의 권면에 오르바는 자기 어머니 집, 곧 이전에 섬기던 신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를 강하게 붙잡습니다. 사람에게 신실한 룻의 마음은 결국 하나님께 신실한 마음으로 연결됩니다.

[관찰과 묵상]
1. 나오미가 룻에게 큰며느리 오르바처럼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고하자, 룻은 어떻게 반응하나요?(15~17절)
룻은 어머니와 함께 가고 머물 것이며, 어머니 백성이 자기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죽는 일 외에는 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모압 족속의 시작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관련 있습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천사들이 롯의 가족을 도망하게 했고,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롯의 큰딸이 아버지 롯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해 낳은 아들이 모압입니다(창 19:37). 모압 족속은 암몬 족속과 함께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신 23:3).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은 유대인과 결혼해 하나님의 백성에 속할 수 있었습니다. 나오미는 오르바와 룻, 두 며느리에게 자신에게는 아무런 육체적인 소망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권면합니다. 이에 오르바는 돌아가고 룻은 더 강하게 어머니를 붙좇습니다. ‘붙좇다’(1:14)는 히브리어로 ‘다바크’인데, ‘착 달라붙다’, ‘엉겨 붙다’라는 뜻을 갖습니다. ‘다바크’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에서 ‘합하여’로도 번역된 단어입니다. 즉 룻은 나오미와 깊은 친밀감으로 ‘착 달라붙어’ 나오미의 민족과 하나님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한 것입니다. 룻이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대 가문에 속해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룻에게는 계산이 없었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도 없었습니다. 오직 신실함 하나로 시어머니를 선택하고, 죽어 무덤에 묻힌다 해도 끝까지 섬기겠다고 확언합니다. 룻의 이러한 신실한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사사 시대의 배역한 이스라엘 백성과 대조됩니다.
적용과 나눔
나오미를 따르겠다는 룻의 결단을 다시 읽어 보세요. 룻의 결단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결단과 어떤 점이 유사한가요?
룻이 나오미를 따라가기로 결단한 내용에는 여섯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첫째는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간다’라는 인생의 목적지에 대한 결단입니다. 둘째는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 것이다’라는 살아갈 장소에 대한 결단입니다. 셋째는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다’라는 존재론적 정체성 및 소속에 대한 결단입니다. 넷째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다’라는 신앙 및 종교에 대한 결단입니다. 다섯째는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이 나의 죽을 곳이다’라는 마지막 순간에 대한 결단입니다. 여섯째는 ‘어머니께서 묻히시는 곳이 내가 묻힐 곳이다’라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자리에 대한 결단입니다. 룻이 했던 결단은 그의 생애에서 중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결단도 이와 같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베들레헴에 도착한 후 나오미는 자기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답하나요? 나오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19~21절)
나오미는 자신을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괴롭게 하셨고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풍족함을 위해 떠났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나오미의 이름은 ‘희락’, ‘기쁨’, ‘즐거움’이란 의미입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그녀가 유대 땅에서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과 함께 거할 때는 이름처럼 기쁘고 풍성하고 안정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모압으로의 이주하고 정착한 후 그녀는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이라는 큰 시련을 만났습니다. 쓰디쓴 인생의 상처를 안고 고향 땅을 다시 밟습니다. 나오미의 심경은 무척 괴로웠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을 전능자가 징벌하셨고 괴롭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나오미의 고백 속에는 비록 원망이라 할지라도 모든 일의 주권자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인정과 고백이 녹아 있습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의 고향 사람들을 만났을 때, 자신을 ‘나오미’라고 부르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를 ‘고통’, ‘괴로움’, ‘쓰라림’ 등을 의미하는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오미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비록 빈손이지만 가난한 마음으로 약속의 땅을 밟은 순간부터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끝까지 신실한 사랑으로 자신과 함께하는 며느리 룻이 한 줄기의 소망이었습니다.
적용과 나눔
평안할 때와 고난당할 때 자신의 정체성에 어떤 변화를 느끼나요? 현재 겪는 어려움 속에 감춰진 은혜들은 무엇일까요?
나오미는 하나님을 ‘전능자’(20절)라고 표현합니다. 전능자는 히브리어로 ‘샤다이’인데, 이는 ‘충분하다’, ‘넘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성취하시는 능력자이십니다. 나오미가 자신의 이름을 더 이상 ‘나오미’(희락, 기쁨)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고통, 괴로움)라고 부르라고 한 이유는 전능자가 자신의 삶을 괴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입니다. 그녀는 마라로 전락했지만, 어쩌면 그녀는 그제야 전능자 하나님을 만났는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고, 하나님 백성 사이에 거하기를 선택했습니다. 만약 나오미가 전능자 안에 가려져 있는 은혜를 알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은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믿음의 사람 룻과 함께 베들레헴에 이르렀다는 것, 둘째, 룻의 믿음의 본이 나오미 자신이었다는 것, 셋째, 하나님이 때를 맞추셔서 베들레헴에 도착한 시기가 보리 추수를 시작할 때였다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든, 고난당할 때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 하나님은 신실한 사랑과 선한 마음을 소중하게 보십니다. 이방 여인 룻은 홀로 된 시어머니를 죽을 때까지 섬기며 하나님 백성 되기를 선택합니다. 남편 잃은 자신의 처지보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를 더 생각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룻은 인간적인 계산이나 합리적인 길을 선택하지 않고 ‘마라’(괴로움)로 전락한 나오미에게 끝까지 신실한 사랑을 보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전능자의 손길로 룻을 인도해 다윗의 조상이자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하십니다. 평안할 때든, 고난당할 때든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신실한 마음에는 상급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고난 중에도 제 유익을 구하기보다 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살피는 긍휼의 마음을 부어 주소서. 시작은 미약하지만,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 끝까지 신실함을 지켜, 룻처럼 결말이 아름다운 인생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마음이 가난해질 때 주님의 길이 열립니다

[룻기 1장 1절~14절]
1절 -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절 -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절 -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절 -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절 -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6절 -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절 -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절 -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절 -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절 -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절 -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절 -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절 -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절 -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흉년으로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에서 거류하던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유다 땅으로 돌아오던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 합니다. 며느리 중 오르바는 모압으로 돌아가고 룻은 나오미를 붙좇습니다.

1. 가나안을 떠나 모압으로 (1~5절)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세상의 방식을 좇으면 뼈아픈 대가를 치릅니다. 엘리멜렉 가정은 베들레헴에 흉년이 와서 먹고살기가 힘들어지자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버리고 이방 땅인 모압으로 이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을 떠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명령을 거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민 36:6~9 참조). 그들이 10년 동안이나 모압 평지에 머문 것을 보면, 단순히 기근을 피한 일시적 이주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불신앙적 태도 때문에 이들 가족은 큰 고초를 겪습니다. 가장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모두 죽고,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에 머무르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 엘리멜렉 가정이 가나안을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 가정과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 편인가요?

2. 모압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6~14절)
아무리 비참한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살길이 열립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가나안 땅의 기근이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합니다. 비록 지금은 참담한 상황이지만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에게는 각기 친정으로 돌아가서 새 출발을 하도록 설득합니다. 이때 나오미는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당한 불행을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린 죄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어디든지 주님을 따라가겠다는 확고한 신앙과 결단이 서 있나요?

오늘의 기도
저는 어려움 앞에서 당황하고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합리적인 방법이나 제 힘과 지혜를 하나님의 약속보다 더 의지하지 않게 하소서. 저를 궁극적으로 선한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굳건히 붙드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룻기

아름다운 역전 드라마
룻기는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께 삶을 의탁하는 자를 인도하시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풍성한 복을 내려 주신다는 것을 룻기는 보여 주고 있다. 이방 여인 룻의 믿음, 효심 그리고 성실함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어 삶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룻기 한눈에 보기

구분

내용

중심 단어

주제

발단


  엘리멜렉 가정의 몰락 (1:1~5)

이름, 죽다

나오미 가정의 고난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옴 (1:6~22)

돌아가다

전개

  룻과 보아스의 만남 (2:1~23)

이삭을 줍다

나오미 가정의 회복 과정


  보아스가 기업 무를 책임을 약속함 (3:1~18)

기업을 무르다

절정

  보아스가 기업 무를 책임을 이행함 (4:1~12)

기업을 무르다

결말

  오벳의 출생과 베레스의 계보 (4:13~22)

이름, 낳다

나오미 가정의 회복


엘리멜렉 가정의 몰락 (1:1~5)
룻기의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이스라엘의 기근, 모압 땅으로 이주, 이방 여인과 두 아들의 결혼,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이 이어진다. 이는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옴 (1:6~22)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이 죽음과 상실을 반전시키는 전환점이 된다. 룻이 함께 돌아온다(15~18절).

룻과 보아스의 만남 (2:1~23)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은 이삭을 주워 생계를 이어 간다. 이때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 보아스가 룻을 돕는다. '유력한 자'라는 칭호는 보아스가 의로운 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나오미와 룻을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보아스가 기업 무를 책임을 약속함 (3:1~18)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임을 알아차린 나오미가 적극적으로 가정의 회복을 도모한다. 룻은 나오미의 지시에 따라 타작마당의 곡식 단 더미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보아스의 발치에 눕는다. 그리고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로서 자신을 아내로 받아 달라고 청한다(9절). 보아스는 더 가까운 친척이 기업 무를 책임을 포기하면 자신이 그 책임을 기꺼이 지겠다고 약속한다(12~13절).

보아스가 기업 무를 책임을 이행함 (4:1~12)
가까운 친척이 증인들 앞에서 기업 무를 권리를 보아스에게 넘긴다. 이로써 보아스는 나오미 가정의 기업을 잇는 자가 되고, 룻은 그의 아내가 된다(9~10절). 사람들이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11~12절). 그들은 룻이 라헬, 레아, 다말처럼 가문을 잇게 할 자가 되기를 소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오벳의 출생과 베레스의 계보 (4:13~22)
보아스와 룻이 낳은 아들 '오벳'이 나오미의 품에 안긴다. '오벳'은 장차 다윗의 할아버지가 된다. 몰락했던 나오미의 가정은 이로써 완전히 회복한다.
※ 나오미 가정의 몰락과 회복

몰락 (1:1~5)

회복 (4:13~22)

굶주림

풍요로움

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

새로운 생명의 탄생

가정의 이름이 없어짐

가정의 이름이 이어짐

천대의 대상인 이방 여인 룻

라헬과 레아와 같은 어머니로 칭송받는 룻

모압으로 떠남, 땅을 상실

베들레헴에 정착, 땅을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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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22절)
다윗의 증조모가 된 룻 - 보아스가 룻에게 약속한 바를 그대로(3:13) 성실히 이행한 장면이다. 그리하여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21절) 그는 다윗 왕가(王家)를 이루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복된 결말은 룻 자신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큰 축복이자 상급이었다. 즉 룻은 남편과 사별(死別)한 후에도 변함없이 시어미를 섬긴 효성, 자기의 모든 행복을 다 포기하고 시어미를 따른 사랑, 그리고 모압의 우상들을 다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한 믿음 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았으며 스스로 선택한 빈곤과 고난의 길 대신에 영광된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이는 곧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풍성한 영적 축복에 동참케 되는 것을 예표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즉 예수께서는 우리의 '고엘'이 되사 우리를 하나님의 후사(後嗣)가 되게 해주신 것이다(롬 8:17). 한편 이와 관련하여 본 주해에서는 '이스라엘의 공동체 의식과 신약의 교회'에 관해 일고(一顧)해 보기로 한다. 이스라엘 사회의 특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강한 공동체 의식이다. 물론 어느 집단, 어느 민족에게나 자기들의 동일성과 주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공동체 의식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공동체 의식은 여타의 민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데 이를 단지 혈연적 유대감 내지는 광야에서의 오랜 유목 생활을 통해 조성된 동질 의식 정도로 간주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의 참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도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백성이라고 믿는 선민의식(選民意識)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선민 의식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은 데서부터 출발하였으며(창 12:1~3), 출애굽 후 광야에서 다시 '언약'을 맺음으로써(출 19:1~25) 더욱 강력한 민족 의식으로 발전해 갔던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공동체 의식은 단순한 혈연적 차원을 넘어 신앙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그들은 공동체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잡혼 금지 등의 폐쇄 정책을 사용했으나 그것은 혈통 보존 자체를 위함이 아니라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외부 세계에 대해 무작정 배타적, 폐쇄적 자세를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의 신앙을 열방에게 증거하는 사명, 곧 선교적 사명을 지녔던 것이다. 이처럼 외부와 엄연한 구별이 있는 강력한 응집력을 가진 공동체이되 선교적 사명을 가진 열려 있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신약 교회의 예표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 선택되어 축복과 구원을 먼저 받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로서 하나님과 세계 만민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야 했듯이 신약의 교회는 구약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계 만방에 복음을 증거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행 1:8).
[1절]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성문'이라 함은 성문 입구의 넓은 장소를 가리키는데 이곳은 백성들의 소송 문제나 일상사의 난제들을 취급하는 재판 장소였다(삼하 15:2). 그리고 '올라가서'라는 말은 성문의 지형적 입지 조건을 가리킨다기보다는(Pulpit 주석) 재판 장소로 나아감을 일컫는 표현일 것이다(신 17:8).
[2절]
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 인을 청하여. 장로들의 직능과 권한이 시대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하였지만 어느 시기에서든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음은 분명하다<신 21:6,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 또한 본절의 10인이라는 수효는 재판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법적 성원수였다고 짐작되며 후에 유대교에 있어서는 한 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회원수이기도 했다.
[4절]
이는 히브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토지를 매각할 경우 그 토지를 살 수있는 권리가 1차적으로 '기업 무를 자'에게 있음에 근거한 말이다.
[6절]
내 기업에 손해(損害)가 있을까 하여. 이 근족의 태도 돌변의 원인에 대해 혹자는 룻의 출신지 문제를 들기도 하고 혹은 그가 이미 한 아내의 남편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절에 분명히 밝혀져 있듯이 그는 재산상의 손실을 우려했기 때문에 기업 무를 권리를 포기하였다. 4절에서 그가 기업을 무르려고 한 것은 단지 밭을 자신의 소유로 확보하기 위한 이기적이며 타산적 심산에서 였다. 하지만 보아스의 이야기(5절)를 통해 그러한 의도가 무산되자 그의 태도가 돌변하고만 것이다. 이 근족의 자세는 하나님의 율법까지도 자신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며 하나님의 참된 뜻은 깨닫지도, 행하지도 아니하려는 패역함에 있었다(고후 3:6).
[7절]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원래 신을 벗기는 행위는 상대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함이었다. 즉 계대 결혼을 거부당한 미망인이 장로들 앞에서 상대편에게 나아가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았던 것이다(신 25:9). 그러나 본절에서는 이 행위가 땅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 혹은 양도한다는 뜻을 상징하는 행동으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는 이스라엘의 관습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변모된 예라 하겠다. 한편 본절의 '확정하다'(히, 카에스)는 법적 용어로서 효력의 확고성을 나타내 준다.
(9~12절)

룻과 보아스의 결혼 - 이제 보아스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것과 룻과의 결혼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성문에 모인 백성과 장로들의 축복을 받았다. 보아스는 단순히 자신의 인간적 애정에 연연하여서가 아니라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 룻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는 율법을 준수함에 있어서도 단지 율법의 조항만을 문자적으로 지킨 것이 아니라 율법의 근본 정신인 사랑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룬 것이다.

[11절]

여호와께서...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룻이 현숙한 여자임은 베들레헴의 모든 주민들이 알고 칭찬할 정도였다(3:11). 이제 그 룻이 베들레헴의 유력자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으니 옛날 야곱의 아내 라헬과 레아가 열두 아들을 낳아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형성된 것처럼 큰 축복받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야곱의 아내들 중 라헬과 레아만 언급되고 사실상 더 많은 아들들을 낳았던 여종 빌하와 실바의 이름은 빠졌는데, 이는 여종의 자식들이 입양 형식을 빌어 그 여주인의 자식으로 간주되던 당시의 관습을 보여 준다(창 30:3~13). 너로...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이번에는 보아스를 위하여 축복을 비는 내용이다. 이 축복의 말은 같은 내용을 시적으로 반복해서 표현하는 히브리어 특유의 동의 대구법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대구법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할 때 흔히 사용되었다.

[12절]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베레스는 유다와 다말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보아스의 직계 조상이다. 다말 역시 룻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계대 결혼법에 따라 아들을 낳았다(창 38장)<신 25:5~10, 계대 결혼법>. 하지만 룻은 다말과는 달리 순결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았다.

[13절]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이렇게 함으로써 모압 여인 룻은 가나안 여인 라합 및 다말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게 되었다(마 1:5). 구속 역사 속에서 모압의 인상은 매우 부정적이다. 모압 족속은 본래 근친 상간에 의하여 생겨난 부족이며(창 19:31이하), 바알브올 사건 때에는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는 올무가 되기도 하였다(민 25장). 그래서 모압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율법에 규정되기도 했다(신 23:3). 이처럼 혈통적으로 볼 때 모압의 딸 룻은 마땅히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지만 자기 민족의 신인 그모스를 버리고 온전히 여호와를 신앙함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총을 힘입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거둔 놀라운 승리였던 것이다<마 8:11~13, 유대인과 이방인 구원의 관계>.

[15절]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히브리인들에게 '일곱'이라는 숫자는 '충만'이나 '완전'을 상징한다. 또한 하나님께 자녀의 축복을 풍성하게 받았을음을 상징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삼상 2:5). 따라서 본절은 룻의 사랑과 효성이 하나님 앞에 귀하게 열납되었음을 뜻한다. 우리는 여기서 부모에 대한 효도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님을 목도하게 된다(출 20:12).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만 충성하면 될 뿐이고 가족이나 형제를 돌볼 필요가 없다는 미성숙한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눅 14:26)을 곡해한 데서 기인한다.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

[16절]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나오미가 오벳을 양자로 삼을 것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

[17절]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늙은 나오미는 룻을 통하여 아들 말론을 대신할 상속자 오벳을 얻게 되었다. '오벳'이라는 이름은 그 아이와 조모와의 관계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즉 '오벳'은 '종' 혹은 '섬김'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 이름의 의미처럼 오벳은 그 조모인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그녀의 노년에 좋은 봉양자 역할을 잘 감당했을 것이다.

(18~22절)

다윗의 계보 - 이 부분에는 베레스로부터 보아스를 거쳐 다윗에 이르는 계보(系譜)가 기록되어 있다. 비록 룻의 이름이 여기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유대의 가장 유력한 가계인 다윗 왕조가 룻을 매개체로 하여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룻의 위치는 매우 탁월하다. 룻을 매개체로 하는 이 중요한 족보는 대상 5~15장에 다시 기록되어 있고 나아가서 신약성경 마 1장과 눅 3장에도 등장한다. 우리는 이 계보를 통해 궁극적으로 만민(萬民)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 본문의 족보에 기록된 사람의 수효는 총 연대에 비해 매우 적은데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름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 대수(代數)를 10으로 제한한 것은 10이라는 완전수를 통해 이 족보의 완전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중 베레스로부터 나손까지 5대는 애굽 생활 430년 동안 살았던 사람들이고 나머지 5대(살몬에서 다윗까지)는 출애굽으로부터 다윗의 사망에 이르는 476년 사이에 생존하였던 자들이다.

[18절]

'...의 세계(혹은 계보)는 이러하니라'는 문구는 성경에서 족보를 기록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표현이다(창 5:1).

[22절]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본서는 다윗의 출생을 밝힘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다윗 왕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귀하고 영광스러운 가문으로 여겨졌으며, 예수께서도 '다윗의 자손'이라 불리신 바 있다(눅 1:27). 이와 같이 빛나는 가문도 이방 여인 룻에 의해 그 혈통이 이어졌으니 이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요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며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만주의 주이시다(롬 3:29; 갈 3:14). 그러므로 재능이나 혈통, 권세 등 지위 고하와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앞에 겸손히 순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이 함께하게 될 것이다.

 

# 해설

보아스, 룻, 나오미의 행복 (13~17절)

잘 살려고 이방에 갔을 때는 거지가 되었지만(1:2) 비탄에 잠겨 돌아왔을 때는 오히려 큰 낙을 얻게 된(4:12) 이들 두 여인의 행로에서 우리는 한치 앞을 모르는 인간의 몽매함과 하나님의 경륜의 깊이를 이해하게 된다. 한편, 바로 뒤의 4:18~22절과 더불어 본서의 대단원인 이 부분이 비교적 세 등장 인물의 개인적 행복을 강조한다면, 후반부는 그 역사적 축복을 언급한 것이다.

유다에서 다윗까지의 족보 (18~22절)

사실 이 요약 족보가 본서의 기록 목적을 강력히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즉 1:1~18절에 설명된 대로 기구한 세 인물이 만나 펼친 인생 행로를 눈에 안 보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인도하여 창 49:8~12절에서 예언된 대로 유다 지파에서 다윗 왕이 태어나고 또 이 다윗 왕의 가계에서 예수가 태어났음을(마 1장) 본 족보는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외면적으로 세 인물의 인생 유전을 말하는 본서에서 전역사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존재와 경륜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 핵심

1~17절

룻이 나오미와 그녀의 신앙을 좇아 하나님을 따를 결심을 하게 된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였음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은 수혼(嫂婚)의 율법(신 25:5~10)과 기업 무를 자의 율법(레 25장)을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셨다. 나오미의 괴로움이 기쁨으로 변했고, 그녀의 손자가 다윗 왕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관할하므로(히, 마크라; 3절)

이 구절은 해석상의 어려움을 일으킨다. '팔다'라는 의미의 이 용어는 완료형으로서 '팔았다'는 의미로 번역할 수도 있고(NKJV), 곧 있게 될 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 '팔려고 한다'(NIV)는 의미로 번역할 수도 있다. 앞의 번역을 선택할 때는 나오미 가정이 모압 땅으로 이사갈 때 그 소유지를 이미 양도했음을 뜻한다. 뒤의 번역일 경우 나오미가 지금 자기 남편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고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묵상

성문에 올라가서 앉은 보아스 (1절)

당시 성문은 성문 입구의 넓은 장소를 가리키는 곳으로(신 15:7), 이곳은 백성들의 소송 문제나 일상사의 난제들을 취급하는 재판 장소였으며 생활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도 기업으로 무를 일에 관해 재판받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성도는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눅 18:1~8).

보아스와 룻의 결합 (10~22절)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결합할 때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요 1:12). 이는 구속자와 구속 받은 자의 새로운 결합이요, 빈곤에서 부에 이르는 결합이요, 오벳을 낳는 결실이 풍부한 결합이요, 후에는 궁극적으로 구세주를 탄생시키게 된 목적 있는 결합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룻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되었고, 라합, 다말과 더불어 다윗의 계보에 올랐으며 나아가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게 됩니다. 즉, 룻은 자기 민족인 모압과 그 신 그모스를 버리고 온전히 여호와를 신앙한 결과 놀라운 은총을 입게 된 것입니다.

보아스의 족보의 의미 (18~22절)

궁극적으로 만민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경륜을 여기서 발견하게 됩니다. 빛나는 가문인 다윗의 가문, 그리스도의 가문이 이방 여인 룻에 의해 혈통이 이어진 것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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