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1~22절)
다윗의 증조모가 된 룻 - 보아스가 룻에게 약속한 바를 그대로(3:13) 성실히 이행한 장면이다. 그리하여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21절) 그는 다윗 왕가(王家)를 이루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복된 결말은 룻 자신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큰 축복이자 상급이었다. 즉 룻은 남편과 사별(死別)한 후에도 변함없이 시어미를 섬긴 효성, 자기의 모든 행복을 다 포기하고 시어미를 따른 사랑, 그리고 모압의 우상들을 다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한 믿음 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았으며 스스로 선택한 빈곤과 고난의 길 대신에 영광된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이는 곧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풍성한 영적 축복에 동참케 되는 것을 예표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즉 예수께서는 우리의 '고엘'이 되사 우리를 하나님의 후사(後嗣)가 되게 해주신 것이다(롬 8:17). 한편 이와 관련하여 본 주해에서는 '이스라엘의 공동체 의식과 신약의 교회'에 관해 일고(一顧)해 보기로 한다. 이스라엘 사회의 특징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강한 공동체 의식이다. 물론 어느 집단, 어느 민족에게나 자기들의 동일성과 주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공동체 의식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공동체 의식은 여타의 민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런데 이를 단지 혈연적 유대감 내지는 광야에서의 오랜 유목 생활을 통해 조성된 동질 의식 정도로 간주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의 참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도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 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백성이라고 믿는 선민의식(選民意識)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선민 의식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은 데서부터 출발하였으며(창 12:1~3), 출애굽 후 광야에서 다시 '언약'을 맺음으로써(출 19:1~25) 더욱 강력한 민족 의식으로 발전해 갔던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공동체 의식은 단순한 혈연적 차원을 넘어 신앙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그들은 공동체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잡혼 금지 등의 폐쇄 정책을 사용했으나 그것은 혈통 보존 자체를 위함이 아니라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외부 세계에 대해 무작정 배타적, 폐쇄적 자세를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의 신앙을 열방에게 증거하는 사명, 곧 선교적 사명을 지녔던 것이다. 이처럼 외부와 엄연한 구별이 있는 강력한 응집력을 가진 공동체이되 선교적 사명을 가진 열려 있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신약 교회의 예표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 선택되어 축복과 구원을 먼저 받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로서 하나님과 세계 만민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야 했듯이 신약의 교회는 구약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세계 만방에 복음을 증거해야 할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행 1:8).
[1절]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성문'이라 함은 성문 입구의 넓은 장소를 가리키는데 이곳은 백성들의 소송 문제나 일상사의 난제들을 취급하는 재판 장소였다(삼하 15:2). 그리고 '올라가서'라는 말은 성문의 지형적 입지 조건을 가리킨다기보다는(Pulpit 주석) 재판 장소로 나아감을 일컫는 표현일 것이다(신 17:8).
[2절]
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 인을 청하여. 장로들의 직능과 권한이 시대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하였지만 어느 시기에서든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음은 분명하다<신 21:6,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 또한 본절의 10인이라는 수효는 재판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법적 성원수였다고 짐작되며 후에 유대교에 있어서는 한 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회원수이기도 했다.
[4절]
이는 히브리 사회에서 누군가가 토지를 매각할 경우 그 토지를 살 수있는 권리가 1차적으로 '기업 무를 자'에게 있음에 근거한 말이다.
[6절]
내 기업에 손해(損害)가 있을까 하여. 이 근족의 태도 돌변의 원인에 대해 혹자는 룻의 출신지 문제를 들기도 하고 혹은 그가 이미 한 아내의 남편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절에 분명히 밝혀져 있듯이 그는 재산상의 손실을 우려했기 때문에 기업 무를 권리를 포기하였다. 4절에서 그가 기업을 무르려고 한 것은 단지 밭을 자신의 소유로 확보하기 위한 이기적이며 타산적 심산에서 였다. 하지만 보아스의 이야기(5절)를 통해 그러한 의도가 무산되자 그의 태도가 돌변하고만 것이다. 이 근족의 자세는 하나님의 율법까지도 자신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며 하나님의 참된 뜻은 깨닫지도, 행하지도 아니하려는 패역함에 있었다(고후 3:6).
[7절]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원래 신을 벗기는 행위는 상대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함이었다. 즉 계대 결혼을 거부당한 미망인이 장로들 앞에서 상대편에게 나아가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았던 것이다(신 25:9). 그러나 본절에서는 이 행위가 땅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 혹은 양도한다는 뜻을 상징하는 행동으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는 이스라엘의 관습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변모된 예라 하겠다. 한편 본절의 '확정하다'(히, 카에스)는 법적 용어로서 효력의 확고성을 나타내 준다.
(9~12절)
룻과 보아스의 결혼 - 이제 보아스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것과 룻과의 결혼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성문에 모인 백성과 장로들의 축복을 받았다. 보아스는 단순히 자신의 인간적 애정에 연연하여서가 아니라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 룻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는 율법을 준수함에 있어서도 단지 율법의 조항만을 문자적으로 지킨 것이 아니라 율법의 근본 정신인 사랑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룬 것이다.
[11절]
여호와께서...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룻이 현숙한 여자임은 베들레헴의 모든 주민들이 알고 칭찬할 정도였다(3:11). 이제 그 룻이 베들레헴의 유력자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으니 옛날 야곱의 아내 라헬과 레아가 열두 아들을 낳아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형성된 것처럼 큰 축복받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야곱의 아내들 중 라헬과 레아만 언급되고 사실상 더 많은 아들들을 낳았던 여종 빌하와 실바의 이름은 빠졌는데, 이는 여종의 자식들이 입양 형식을 빌어 그 여주인의 자식으로 간주되던 당시의 관습을 보여 준다(창 30:3~13). 너로...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이번에는 보아스를 위하여 축복을 비는 내용이다. 이 축복의 말은 같은 내용을 시적으로 반복해서 표현하는 히브리어 특유의 동의 대구법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대구법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조할 때 흔히 사용되었다.
[12절]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베레스는 유다와 다말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보아스의 직계 조상이다. 다말 역시 룻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계대 결혼법에 따라 아들을 낳았다(창 38장)<신 25:5~10, 계대 결혼법>. 하지만 룻은 다말과는 달리 순결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았다.
[13절]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이렇게 함으로써 모압 여인 룻은 가나안 여인 라합 및 다말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게 되었다(마 1:5). 구속 역사 속에서 모압의 인상은 매우 부정적이다. 모압 족속은 본래 근친 상간에 의하여 생겨난 부족이며(창 19:31이하), 바알브올 사건 때에는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는 올무가 되기도 하였다(민 25장). 그래서 모압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율법에 규정되기도 했다(신 23:3). 이처럼 혈통적으로 볼 때 모압의 딸 룻은 마땅히 저주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지만 자기 민족의 신인 그모스를 버리고 온전히 여호와를 신앙함으로써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은총을 힘입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았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거둔 놀라운 승리였던 것이다<마 8:11~13, 유대인과 이방인 구원의 관계>.
[15절]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히브리인들에게 '일곱'이라는 숫자는 '충만'이나 '완전'을 상징한다. 또한 하나님께 자녀의 축복을 풍성하게 받았을음을 상징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삼상 2:5). 따라서 본절은 룻의 사랑과 효성이 하나님 앞에 귀하게 열납되었음을 뜻한다. 우리는 여기서 부모에 대한 효도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님을 목도하게 된다(출 20:12).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만 충성하면 될 뿐이고 가족이나 형제를 돌볼 필요가 없다는 미성숙한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눅 14:26)을 곡해한 데서 기인한다.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
[16절]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나오미가 오벳을 양자로 삼을 것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일 가능성이 크다.
[17절]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늙은 나오미는 룻을 통하여 아들 말론을 대신할 상속자 오벳을 얻게 되었다. '오벳'이라는 이름은 그 아이와 조모와의 관계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즉 '오벳'은 '종' 혹은 '섬김'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 이름의 의미처럼 오벳은 그 조모인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그녀의 노년에 좋은 봉양자 역할을 잘 감당했을 것이다.
(18~22절)
다윗의 계보 - 이 부분에는 베레스로부터 보아스를 거쳐 다윗에 이르는 계보(系譜)가 기록되어 있다. 비록 룻의 이름이 여기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유대의 가장 유력한 가계인 다윗 왕조가 룻을 매개체로 하여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룻의 위치는 매우 탁월하다. 룻을 매개체로 하는 이 중요한 족보는 대상 5~15장에 다시 기록되어 있고 나아가서 신약성경 마 1장과 눅 3장에도 등장한다. 우리는 이 계보를 통해 궁극적으로 만민(萬民)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 본문의 족보에 기록된 사람의 수효는 총 연대에 비해 매우 적은데 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름이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 대수(代數)를 10으로 제한한 것은 10이라는 완전수를 통해 이 족보의 완전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중 베레스로부터 나손까지 5대는 애굽 생활 430년 동안 살았던 사람들이고 나머지 5대(살몬에서 다윗까지)는 출애굽으로부터 다윗의 사망에 이르는 476년 사이에 생존하였던 자들이다.
[18절]
'...의 세계(혹은 계보)는 이러하니라'는 문구는 성경에서 족보를 기록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표현이다(창 5:1).
[22절]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본서는 다윗의 출생을 밝힘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다윗 왕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귀하고 영광스러운 가문으로 여겨졌으며, 예수께서도 '다윗의 자손'이라 불리신 바 있다(눅 1:27). 이와 같이 빛나는 가문도 이방 여인 룻에 의해 그 혈통이 이어졌으니 이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요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며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만주의 주이시다(롬 3:29; 갈 3:14). 그러므로 재능이나 혈통, 권세 등 지위 고하와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앞에 겸손히 순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이 함께하게 될 것이다.
# 해설
보아스, 룻, 나오미의 행복 (13~17절)
잘 살려고 이방에 갔을 때는 거지가 되었지만(1:2) 비탄에 잠겨 돌아왔을 때는 오히려 큰 낙을 얻게 된(4:12) 이들 두 여인의 행로에서 우리는 한치 앞을 모르는 인간의 몽매함과 하나님의 경륜의 깊이를 이해하게 된다. 한편, 바로 뒤의 4:18~22절과 더불어 본서의 대단원인 이 부분이 비교적 세 등장 인물의 개인적 행복을 강조한다면, 후반부는 그 역사적 축복을 언급한 것이다.
유다에서 다윗까지의 족보 (18~22절)
사실 이 요약 족보가 본서의 기록 목적을 강력히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즉 1:1~18절에 설명된 대로 기구한 세 인물이 만나 펼친 인생 행로를 눈에 안 보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인도하여 창 49:8~12절에서 예언된 대로 유다 지파에서 다윗 왕이 태어나고 또 이 다윗 왕의 가계에서 예수가 태어났음을(마 1장) 본 족보는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외면적으로 세 인물의 인생 유전을 말하는 본서에서 전역사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존재와 경륜을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 핵심
1~17절
룻이 나오미와 그녀의 신앙을 좇아 하나님을 따를 결심을 하게 된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였음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은 수혼(嫂婚)의 율법(신 25:5~10)과 기업 무를 자의 율법(레 25장)을 통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셨다. 나오미의 괴로움이 기쁨으로 변했고, 그녀의 손자가 다윗 왕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관할하므로(히, 마크라; 3절)
이 구절은 해석상의 어려움을 일으킨다. '팔다'라는 의미의 이 용어는 완료형으로서 '팔았다'는 의미로 번역할 수도 있고(NKJV), 곧 있게 될 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 '팔려고 한다'(NIV)는 의미로 번역할 수도 있다. 앞의 번역을 선택할 때는 나오미 가정이 모압 땅으로 이사갈 때 그 소유지를 이미 양도했음을 뜻한다. 뒤의 번역일 경우 나오미가 지금 자기 남편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고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묵상
성문에 올라가서 앉은 보아스 (1절)
당시 성문은 성문 입구의 넓은 장소를 가리키는 곳으로(신 15:7), 이곳은 백성들의 소송 문제나 일상사의 난제들을 취급하는 재판 장소였으며 생활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도 기업으로 무를 일에 관해 재판받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성도는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눅 18:1~8).
보아스와 룻의 결합 (10~22절)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결합할 때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요 1:12). 이는 구속자와 구속 받은 자의 새로운 결합이요, 빈곤에서 부에 이르는 결합이요, 오벳을 낳는 결실이 풍부한 결합이요, 후에는 궁극적으로 구세주를 탄생시키게 된 목적 있는 결합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룻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되었고, 라합, 다말과 더불어 다윗의 계보에 올랐으며 나아가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게 됩니다. 즉, 룻은 자기 민족인 모압과 그 신 그모스를 버리고 온전히 여호와를 신앙한 결과 놀라운 은총을 입게 된 것입니다.
보아스의 족보의 의미 (18~22절)
궁극적으로 만민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경륜을 여기서 발견하게 됩니다. 빛나는 가문인 다윗의 가문, 그리스도의 가문이 이방 여인 룻에 의해 혈통이 이어진 것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출처 : 바이블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