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나오미의 전략 (3:1-5절)

1. 며느리를 편안하게 해주려는 나오미의 염려는 참으로 칭찬할만하다. 나오미는 룻을 어떻게 하면 잘 결혼시킬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룻은 나오미가 자기를 위해 계획하는 바를 겸손히 사양했지만 나오미는 며느리를 위해 지혜로운 계획을 짜내었다(1절). 죽은 자들의 대를 잇고 가문이 끊기지 않게 함으로써 나오미는 죽은 자들에 대해서도 의로운 일을 행하였다. 나오미는 자기에게 극진하게 대해 준 며느리에게 친절과 감사를 베풀었다. "내 딸아(나오미는 모든 점에서 룻을 친딸처럼 생각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즉 너를 결혼시켜 안정케 할 곳을 구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결혼이란 젊은이들이 안정을 찾는 곳이며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즉 결혼을 함으로서 사랑의 방황이 끝나고 마음은 안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남편의 집에서 그리고 남편의 애정 속에서 얻게 되는 평안함인 것이다(1:9). 결혼하지 않은 자들은 실로 불안정하다.

 
2. 며느리가 발탁되도록 나오미가 택한 방법은 매우 독특하며 미씸쩍어 보인다. 만일 여기에 잘못된 일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룻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켰으며 룻보다 이스라엘의 관습과 법을 더 잘 알고 있는 나오미에게 책임이 있다.
  1) 사망한 자들의 근족이며 살아 있는 자 중에 가장 가까운 사람인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장남이며, 후사 없이 죽은 말론의 처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2절). 그러므로 보아스로 하여금 분명하게 자기 의무를 기억하도록 일깨워 주어야 했던 것이다.
  2) 지금이 보아스에게 그 의무를 기억하게 할 최적의 시기이다. 룻이 추수기 동안 내내 보아스의 곡식 베는 자들과 같이 있었으므로 보아스는 룻과 잘 알게 되었으며 이제 추수는 끝났던 것이다. 보아스가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는 연회를 베풀 때가 그에게 상기시킬 절호의 기회였다(2절).
  3) 나오미는 룻이 이 일을 가장 잘 해내리라고 생각했다. 이런 경우에는 여자가 간청하는 것이 이 지방의 관습이었던 것 같다. 이는 율법에서 잘 말해 주고 있다(신 25:7-9).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라. 아마 룻은 거기서 베풀어지는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룻은 연회를 참석한 사람들이 돌아가고 보아스가 잠자리에 들어서야 비로소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고 자기의 용무를 알려야 했다.
  4) 보아스가 잠들었을 때 룻이 들어가 보아스의 발치에 누운 것은 악한 일 같이 보인다. 그것을 과연 정당화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이것이 전례가 될 수 없다는 데는 모두들 의견을 같이 한다. 우리 법이나 우리 시대는 결코 그 당시와는 같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을 그들이 최선을 다했던 일로 평가하고자 한다. 보아스가 만약 그들의 생각대로 그들의 근족이라면 룻은 하나님 앞에서 보아스의 아내이며 그들의 혼인을 나오미에게는 룻을 보아스의 아내로서 보아스에게 접근하게 할 의도밖에는 없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매우 점잖은 사람이며 덕망있고 경건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오미는 또한 룻이 정숙하며 '순진하여 집안 일을 하는'(딛 2:5) 여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오미는 정직하여 명예로운 일을 계획한 것뿐이었다. 만일 나오미가 지혜롭지 못해서 며느리에게 그렇게 시킴으로써 보아스같이 선량한 사람과 며느리의 애정을 이간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일이 지금처럼 나쁘게 간주되는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룻이 시어머니가 지시하는 일이 악하다고 생각했더라면 룻은 매우 덕있고 분별력을 지닌 여자인지라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Ⅱ. 보아스와 룻 (3:6-13절)

1. 보아스는 일상적인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1) 일반적인 관습에 따라 보아스는 하인들이 보리를 까불 때 그들이 부주의하게 하지 않도록 그들 곁에 있었다.

  2) 보통 때보다 할 일이 더 있는 날에는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먹고 마실 것을 후히 주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3) 보아스는 일군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잠시 즐겁게 지낸 후 적당한 때에 일찌감치 잤으므로 밤중에는 첫 잠이 들어 있었다(8절).

  4) 보아스는 '노적자리 곁에' 누웠다. 그는 조상 야곱같이 소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곡간에서 자기도 하고 또 필요하면 집단에서도 잘 잤던 것이다.


2. 룻은 자기의 일이 잘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보아스가 밤중에 깨어서 발치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누구냐고 묻자 룻은 자기 이름을 말하고 하나님의 율법이 자기의 보호자로 지정한 사람에게 보호를 청하러 왔다는 용건을 말했다(9절). "당신에게는 우리 가문과 재산을 멸망에서 구해 낼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파멸을 구해 주소서.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어서 나를 기꺼이 아내로 맞아 주소서".

 
3. 보아스는 룻을 선하게 받아들였다. 보아스는 룻의 요구가 정당하며 고귀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룻이 요구하는 대로 행했다. 보아스는 룻이 사악한 욕정 때문에 자기에게 온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와 룻의 명예를 용감하게 지켰던 것이다.
  1)보아스는 룻을 칭찬하며 친절하게 말하고 딸이라고 부르며 훌륭한 덕을 지닌 여자라고 높이 평가했다. 고향을 떠나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 땅에 와서 시어머니와 함께 기거하며 시어머니의 생계를 돕는 것은 참으로 친절한 일이었다. 그것 때문에 보아스는 룻에게 축복했었으며(2:12) 이제는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10절)고 말한다. 룻은 재혼하는 문제에 대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남편의 가족과 의논했던 것이다.
  2)보아스는 룻과 결혼할 것을 약속했다(11절). "너를 무시하거나 웃음거리가 되게 할까봐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말대로 다 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율법이 근족에게 요구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또한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백성이 다 아는 바라 네게 거절할 이유가 없느니라"(11절).
  3)보아스는 조건부로 약속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기업을 무를 만한 자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12절). 보아스는 다른 친족에게 가서 그의 생각을 알아보려고 했다. 만약 다른 친족이 친족의 역할을 포기한다면 보아스는 그녀와 결혼해서 토지를 찾아주고 가족을 돌보아 주려고 했던 것이다. 홀 주교는 이 사건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보아스는 바람둥이처럼 룻을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처럼 축복해 주고 친구처럼 격려해 주었으며 친족으로서 약속해 주었고 보호자로서 보상을 약속해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순결을 지킬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희망과 선물을 가득 안고서, 올 때보다 훨씬 행복하게 되어 돌아갈 수 있었다."

Ⅲ. 관대한 사람 보아스 (3:14-18절)

1. 룻을 보아스는 어떻게 보내었는가? 첫째로 비밀을 지키라고 당부했다(14절). 왜냐하면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와서' 밤새도록 보아스 곁에 누웠던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곡식을 선물로 주어서 보냈다. 그것은 집에 있는 가난한 나오미에게는 퍽 반가운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보아스가 룻을 싫어서 보낸 것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보아스가 만일 룻을 빈손으로 보냈다면 나오미는 의심쩍어 했을 것이다. 보아스는 그 곡식을 룻의 베일이나 앞치마나 겉옷에 담아 주었으며, 잘 되어서 주었다.

 
2. 나오미는 룻을 어떻게 맞이했는가? "네가 누구냐? 내 딸아. 신부가 되었느냐 못 되었느냐? 내가 너를 기뻐해도 되겠느냐?" 룻은 나오미에게 되어진 일을 잘 설명해 주었다(17절). 그러자 나오미는 룻에게 되어진 일에 만족하라고 권고한다.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18절).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가 이 일을 다 수행해서 자신이 진실하고 자상한 사람임을 보여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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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보아스의 밭으로 간 룻 (2:1-3절)
나오미는 이제 옛 친구들이 살고 있는 베들레헴에 정착하게 되었다.

1. 나오미의 유력한 친족 보아스(1)
나오미의 친족 중 한 사람인 보아스는 '유력한 자'였다. 이 '유력한 자'란 말은 시리아역에는 "율법에 있어서 유력한 자"라고 되어 있다. 보아스란 이름은 "그 안에 힘이 있다"는 뜻이다. 보아스는 그 당시 몰락한 가문인 엘리멜렉 가문에 속하는 자였다.

 
2. 나오미의 불쌍한 며느리 룻(2,3) 
  1) 나오미의 형편은 매우 비참했으며 그로 인해 개종한 젊은 여자의 믿음과 지조는 큰 시련을 만났다. 나오미와 그 며느리에게는 이삭을 줍는 것 말고는 달리 양식을 구할 길이 없었다.
  2) 그러한 상황에서도 룻의 성품은 매우 착했다(2절). 룻은 자기가 떠나온 모압 땅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이 그녀에게는 모압으로 돌아갈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룻을 죽이신다 할지라도 룻은 하나님을 믿으며 결코 하나님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로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하옵소서." 위대한 본을 보인 룻을 기억하라. 
    ① 룻은 겸손의 본이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가 룻을 가난하게 만들었을 때 룻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삭을 줍는 것은 결국 구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창피합니다." 룻은 자기가 빵 부스러기를 먹으면서 자라지 않았다고 시어머니에게 말하지 않는다. 비록 룻이 그렇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그런 형편이 된 것이다. 룻은 거기 대해서 불평하지 않는다. 
    ② 룻은 근면의 본이 되었다. "나로 가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부지런한 성품은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다 좋은 징조다. 비록 천한 직업일지라도 정직하게 일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노동은 수치가 아니다. 
    ③ 룻은 효도의 본이 되었다. 나오미가 비록 시어머니였지만 룻은 나오미를 충성스럽게 보살폈다. 
    ④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라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룻은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는 본을 보였다. 룻은 어디로 가야 할지 또 누구에게 가서 물어야 할지를 몰랐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 사람을 만나게 해주실 거라고 믿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는 룻을 도우셨다. 룻이 인도해 주는 사람이나 동행해 주는 사람 없이 홀로 이삭을 주우러 갔을 때 룻은 우연히 '보아서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다'(3절). 룻에게는 그것이 우연한 일같이 보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룻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한 것이었다. 조그만 일로 해서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한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우연으로 보이나 실상은 하나님의 섭리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인도하신 것이다.

Ⅱ. 이삭을 줍는 룻 (2:4-16절)
이제 보아스가 아주 고귀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1. 그는 곡식을 추수하기 위해 고용한 하인들에게 왔다. 추수 때는 아주 바쁜 시기이며 손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다. 보아스는 여기서 훌륭한 주인의 본을 보인다.
  1) 보아스에게는 곡식을 베는 일군들을 거느리는 사환이 있었다(6절).
  2) 그러나 보아스는 직접 곡식을 베는 자들에게 가서 일이 어떻게 진척되는가를 보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군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주인이 찾아와서 호의를 보이면 하인들은 흥이 나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보아스와 곡식 베는 자들은 서로 친절하고 경건한 인사를 나누었다. 보아스는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으며 그들은 보아스에게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하고 답례했다(4절). 그들은 여기서 상호간에 존경을 표했다. 주인과 하인 사이가 이처럼 호의적인 집에서는 일이 다 잘되는 것 같다. 그들은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있음을 표했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서로에게 호의를 표한다.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친구들에게 호의를 진심으로 표시하기 위해 정중한 인사를 하자. 둘째, 이같이 짧은 기도 속에서도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며 경건한 간구를 하자. 또한 그것들이 형식에 그치지 않도록 주의하자.
  4) 보아스는 밭에서 낯선 여자를 발견하고 그 여자에 대해서 묻는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여자를 건드리지 말며(9절) 책망하지 말라(15절)고 지시한다. 보아스는 또한 하인들에게 그 여자에게 친절하게 하며 '그를 위하여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리게 한다.' 


2. 보아스는 룻에게 매우 친절했으며 룻에게 많은 호의를 보였다. 그것은 보아스가 룻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또 룻을 관찰해 보았기 때문이다. 

  1) 사환은 보아스에게 룻에 대해서 좋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도록 부탁했다(6,7절). 첫째, 룻은 이방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으로 "추수기에 이삭을 주울 수 있게 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레 19:9,10). 둘째, 룻은 보아스의 집안과 관계가 있었다. 룻은 보아스의 친족인 엘리멜렉의 아내인 나오미를 따라 왔던 것이다. 셋째, 룻은 개종한 사람이었다. 즉 모압 땅에서 떠나 이스라엘 땅에 정착했던 것이다. 넷째, 룻은 매우 예의 발랐다. 허락을 받고서야 비로서 이삭을 주웠다. 다섯째, 룻은 매우 부지런했다. 그래서 아침부터 그때까지 줄곧 이삭을 주웠다. 오직 햇볕이 뜨거울 때만 밭에 세워 둔 조그만한 오두막에 잠시 들어가 쉬었을 뿐이다.
  2) 이리하여 보아스는 룻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 첫째, 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밭에 가서 이삭을 줍지 말고 자기 일군들과 함께 있으라고 한다. 왜냐하면 어떤 곳에 가도 그곳보다 좋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8절). 둘째, 보아스는 하인들에게 룻을 친절하게 대해 주고 존중해 주라고 부탁했다. 룻은 이방인이었으며 그것이 룻의 말이나 옷차림이나 태도에서 역력했을 것이다. 셋째, 보아스는 룻에게 자기 하인들을 위해서 준비한 즐거움에 참예하게 하였다. 보아스는 룻에게 하인들이 길어 온 물을 마실 뿐 아니라 식사할 때에 와서 떡을 먹으라고 했으며(14절) 양념을 치는 것도 허락하였다.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그러면 맛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보아스는 하인들이 앉아서 식사할 때에 직접 참석하여 룻에게 '볶은 곡식을 주었다.' 넷째, 보아스는 비록 보지는 못했지만 룻이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룻을 칭찬했다(11절). 그러나 보아스가 특별히 칭찬한 것은 룻이 자기 고향을 떠나서 유대교에 개종한 사실이었다. 다섯째, 보아스는 룻을 위해서 기도했다.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에 보응하시기를 원하며(12절).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로 나아온 자들에게는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한 상급을 충분히 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개종한 사람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존엄하신 날개 아래 모인 자"라고 부른다. 여섯째, 보아스는 룻에게 이삭 줍기를 계속하라고 격려했다. 보아스는 하인들에게 룻이 곡식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놔두며 룻을 책망하지 못하게 명령했다.
  3) 룻은 보아스의 호의를 겸손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룻은 그 지방의 관습에 따라 보아스에게 큰 경의와 존경을 표했다(10절). 즉 '룻이 땅에 엎드려 절했다'. 룻은 자기가 보아스의 호의를 받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했다. '나는 이방 여인이며(10절)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이 못합니다(13절).' 룻은 보아스가 계속해서 호의를 베풀어 주기를 간청한다. 보아스가 룻에서 곡식 베는 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도록 했을 때 룻은 먹을 만큼만 먹고 곧 일어나서 이삭을 주웠다(14,15절).

Ⅲ. 시어머니에게 보고한 룻 (2:17-23절)

1. 룻은 하루의 일을 끝냈다(17절). 룻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즉 룻은 저녁 때가지 이삭을 주웟다. 룻은 주운 이삭을 흘리지 않으려고 조심했으며 손쉽게 집으로 가져가 곧 식사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 이삭을 떨었다. 룻은 이삭을 하나씩 하나씩 주웠으나 다 모아 보니 보리 한 에바, 곧 약 20되가 되었다.


2. 룻은 시어머니를 존경하였으므로 주운 것을 시어머니에게 보이고 자기가 열심히 일했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룻은 시어머니에게 그 날 있었던 일과 하나님의 섭리가 자기에게 얼마나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이야기했다. 나오미는 룻에게 룻이 어디서 일했는지 물었다.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룻은 나오미에게 보아스가 베풀어 준 친절과 그가 계속해서 친절을 베풀어 주리라는 기대, 또한 그가 추수기 동안 내내 하인들과 같이 일하라고 허락한 말들을 자세히 이야기 하였다(21절). 나오미는 그가 누구인지를 알기 전이었지만(19절) 며느리에게 자비를 베푼 자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으며 용감히 기도의 화살을 당겼다. 그가 누구든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나오미는 이제 보아스가 전에 자기 남편과 아들에게 베푼 친절을 기억하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가 친족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일련의 생각과 그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룻에게 계획하신 일을 일으키는 것을 숙지하자. 룻은 자기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이 보아스라고 말한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누군인가를 생각해 보고는 즉시 기억해 냈다. "그 사람은 우리 근족이다. 그 이름을 듣고 보니 잘 아는 사람이로구나." 나오미는 룻에게 계속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라고 했다(22절).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왜냐하면 다른 밭에서 일하면 보아스의 친절을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주님도 우리에게 너그러이 대해 주시지 않았는가? 다른 밭에 가지 말며 피조물에게서 행복과 만족을 추구하지 말자. 룻은 시어머니가 말하는 것을 충실하게 지켰으며 보리 추수뿐만 아니라 그 후에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이삭을 주워 겨울에 먹을 양식을 장만할 수 있었다(잠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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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슬픔을 당하는 나오미 (1:1-5절)
이 이야기의 연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첫째 구절에 들어 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1절). 그때는 사사 시대의 초기였음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룻과 결혼한 보아스는 여호수아 시대의 정탐군을 숨겨 주었던 라합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를 에훗의 시대였다고도 하고 드보라 시대였다고도 한다. 지식이 해박하던 패트릭 주교는 이때를 기드온 시대였던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기드온 시대에서만이 미디안 사람의 침입으로 기근을 겪었다는 기록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삿 6:3,4). 


1.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다. 이는 유대인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금들에게 내리셨던 심판이었다(레 26:19,20). 나라는 평안했지만 식량이 부족했다. 떡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들레헴조차도 식량이 거의 없었다.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방종함을 고치기 위해서 기름진 땅은 황폐하게 되었다.

 
2. 흉년으로 고생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바로 엘리멜렉의 가족이다. 엘리멜렉이란 이름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뜻이다. 엘리멜렉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였는데 나오미는 "나의 친절한 자 또는 나의 상냥한 자"라는 뜻이다. 그들의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으로서 "병, 폐병"이란 뜻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병역한 자들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3. 이 가족은 흉년 때문에 살기 어렵게 되자 베들레헴에서 요단 건너편에 있는 모압 지방으로 이주했다(1,2절). 이스라엘에는 식량이 귀하던 이 시기에 모압에는 식량이 풍족했던 것 같다. 일찍이 비슷한 이유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이삭이 블레셋땅으로 갔던 것처럼 엘리멜렉도 모압 지방에 가서 흉년이 든 동안만 잠시 머물고자 했다. 엘리멜렉이 가족을 부양하고자 하여 아내와 자녀들을 함께 데리고 간 사실은 분명히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 모압 지방으로 이주한 사실을 정당하다고 할 어떠한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제 정착했으며 이방인의 영토로 이주해서는 안되었다. 왜 엘리멜렉은 다른 사람들보다 멀리 가야만 했을까? 그가 만약 다른 이웃들을 잘 참아낸 그 적은 양에 만족하지 못해서라면 또는 때가 오면 다시 풍년이 오리라는 희망 속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라면 또는 풍년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못한 것이라면 그것은 엘리멜렉의 잘못이며 그로 인해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좋은 땅을 모독한 것이며 형제들의 손을 약하게 한 것이다. 그는 형제들과 함께 자기의 기업을 기꺼이 지켰어야만 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본을 보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장소에 싫증을 내며 불편을 느낄 때마다 즉시 그곳을 떠나는 것은 불평하기 좋아하고 신실치 못하며 침착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또한 그 땅을 떠난다고 해도 하필이면 왜 모압 지방으로 갔는가? 잘 조사해 보았다면 이스라엘 지파가 사는 땅 중에도 풍요한 지역이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요단 건너편에 모압 땅과 경계를 이루던 지역에 살던 지파는 풍족한 식량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하나님을 위한 열심과 이스라엘인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형제들을 위한 사랑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쉽사리 혼자 떠나 모압 사람들 사이에서 살지 않았을 것이다. 


4. 엘리멜렉이 죽은 후 두 아들은 모압 사람의 딸과 결혼한다(4절). 이것이 옳지 못한 행위였다는 데에는 모두들 동의한다. 시리아역에는 "그들이 이방인 아내를 취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다"고 되어 있다. 그들과 결혼한 여자들이 유대교로 개종했던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오르바는 자기 신에게로 돌아갔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15절). 룻이 모압 왕 에글론의 딸이었다는 유대인의 전설은 근거 없는 것이다. 


5.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이 죽자 나오미는 아주 비참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남편은 죽었으며(3절) 갓 결혼한 두 아들도 죽었다(5절). 시리아역에는 그들이 이방인 아내를 얻어서 율법을 어겼기 때문에 "그들의 날 수가 단축되었다"고 되어 있다. 남편을 잃자 나오미는 아들들을 더 의지하게 되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을 때 불쌍한 나오미의 심령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 것인가. 아들을 잃고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홀연히 임하리니 누가 그를 위로하랴(사 49:9, 51:19). 이렇게 절망한 자를 위로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Ⅱ. 돌아오는 나오미 (1:6-18절)

 
1. 이스라엘 땅에 대한 나오미의 깊은 애정(6)
모압 지방에서 나오미는 안식처를 얻었으며 곤궁할 때 식량을 얻었지만, 그곳을 영원한 안식처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거룩한 땅이 아니면 어느 곳도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1) 하나님은 마침내 그의 백성에게로 돌이키셔서 자비를 베푸신다. 마침내 하나님은 자비롭게 그의 백성을 권념하사 그들에게 식량을 주셨다. 하나님의 선물은 풍족하다. 하나님은 이렇게 찾아오셔서 생명을 유지케 하는 빵을 주심으로써 우리 영혼을 살리신다. 흉년 뒤에 이런 자비를 만난 것이 더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늘 그런 자비를 누리며 흉년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더라도 그 자비를 아주 귀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2) 마침내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자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다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부득이한 이유로 좋지 못한 곳에 머무르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이유가 없어지게 된 때에는 결코 그곳에 계속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못하고 악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대단한 고통이다. 그러한 피치 못할 형편이 지나갔는데도 계속해서 그러한 환경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죄악이다. 모압 땅은 이제 나오미에게는 슬픈 장소가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이제 나오미는 가나안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땅에서 실망하게 되면 하늘을 더욱 사모하게 될 것이다.

 
2. 두 며느리, 특히 그 중 한 며느리가 나오미에게 보여준 애정(7-18)
나오미도 그들의 애정을 매우 고마워했다.
  1) 나오미가 유다 땅으로 돌아갈 때 두 며느리는 친절하게도 얼마 동안 나오미와 동행해 주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알수 있다. 즉 이스라엘 사람이었던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매우 친절했으며 그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오르바와 룻은 나오미의 친절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을 서로 친족이 되게 해주었던 사람들은 비록 죽었으나 그들은 화목하게 살고 있었다. 두 며느리는 모압 신을 섬겼으나(15절) 나오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겼다. 그러나 그러한 차이가 있다고 해서 서로간의 사랑이나 친절이나 또는 친척 관계에 있어야 할 호의를 해치지는 않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종종 불화하게 된다(마 10:35). 그러므로 이들이 화목하게 사는 것은 무엇보다 칭찬할 만한 일이다.
  2) 두 며느리가 얼마간 나오미와 동행하자 나오미는 깊은 사랑으로 그들에게 돌아가라고 권고한다(8,9절).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나오미는 그들에게 친정 어머니가 시어머니 보다 훨씬 잘 해 줄 것이며 특히 친정에는 집이 있는데 시어머니인 자기에게는 자기 혼자도 기거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을 말해 준다. 
    ① 나오미는 그들을 칭찬해 주면서 보냈다. 
    ② 나오미는 기도해 주면서 그들을 보냈다. 친척들과 헤어질 때 기도하면서 헤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합당한 일이다. 나오미는 축복하면서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시어머니의 축복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축복하면서 나오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유일한 참 신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두 번이나 말한다. 그때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모든 선의 유일한 근원이신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다시 결혼했더라면 행복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③ 나오미는 깊은 애정을 표시하면서 두 며느리를 보냈다. 나오미는 그들에게 입맞추었다. 그들에게 줄 만한 좀더 좋은 것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으나 금이나 은이 나오미에게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작별의 입맞춤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표시가 될 것이다.
  3) 젊은 두 과부는 어진 시어머니와 헤어진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인 나오미와의 친교를 매우 기뻐했으며 또한 소중히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이처럼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이다. 또한 그들은 나오미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의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오르바는 후에 자기의 신에게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나오미와 함께 갈 결심을 했던 것 같다.
  4) 나오미는 그들이 자기를 따라오지 못하게 설득한다(11-13절). 
    ① 나오미는 자기의 괴로운 처지를 말했다. 가나안에 다른 아들이 있거나 가까운 친척이 있어서 이 과부들을 결혼시킬 기대만 있었다면 이들이 베들레헴에 안락하게 정착하리라는 희망을 갖게 했을 것이다. 나오미가 처했던 비참한 상황 중에서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녀가 해주고 싶은 대로 두 며느리에게 해줄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오미는 자기가 받아야 할 고통이 두 며느리에게 내려진 것을 가장 애통해 한다. 자비하고 관대한 사람은 자기의 고통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슬퍼하거나 괴로움 당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자기의 당하는 고통을 더 견디기 쉬운 것으로 여기곤 한다. 며느리가 곤궁해지는 것을 보느니 자신이 곤궁해지는 것이 나오미에게는 차라리 쉬웠다. 
    ② 그러나 두 며느리를 데리고 감으로써 그들을 모압의 우상 숭배에서 구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나오미가 함께 가려고 하는 그들을 말린 것은 과연 잘한 일인가? 나오미는 물론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자신과 같이 가더라도 자기가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친척의 비위를 맞추고 친구들의 청을 들어주기 위하여 혹은 교제 때문에 신앙을 고백한다면 그것은 별 가치가 없으며 오래 지속되지도 못한다. 또한 그들이 나오미와 같이 간다 하더라도 나오미는 그들에게 신중하게 선택하게 하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신앙을 고백하는데 따르는 값을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게 하려 했을 것이다. 최악에 대해서 말해 주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 마음에 열심을 가지고 "주여 어디로 가시든지 좇겠나이다"하고 담대히 말한 사람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너라. 내가 지내는 것처럼 너도 그렇게 지낼 수 있겠느냐?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이것을 알라. 그런 다음에 네 마음 속에 나와 운명을 같이 할 생각이 드는지 생각해 보라"(마 8:19,20). 나오미도 이렇게 며느리들을 대했다. 신중하게 생각한 뒤에 결심하게 된 생각이라면 마음 속에 늘 기억될 것이다. 성급하게 익은 것은 곧 썩게 된다. 
  5) 오르바는 고향과 친지들이 강력하게 부르는데 마음이 기울자 가지의 부패된 성향에 쉽사리 굴복하여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소리를 높여 다시 울었으며'(14절) 나오미가 애틋하게 한 말에 몹시 감동되었다. 그러나 두 며느리가 받은 감동은 서로 달랐다. 그들이 가나안으로 가게 되면 틀림없이 불편을 겪게 되리라고 한 나오미의 말은 오르바를 모압 지방으로 돌아가게 했다. 하지만 룻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녀의 결심을 더욱 굳게 했을 뿐이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맞추었다. 즉 애정 어린 작별을 영원히 고한 것이다. 오르바의 입맞춤은 나오미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며 나오미와 헤어지기 싫어한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나오미 때문에 자기 고향을 떠날 만큼 나오미를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귀히 여기며 그리스도를 사랑하지만 그로 인해 구원얻는 데까지는 나아오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위해 다른 것들을 버릴 마음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만 그리스도를 떠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으며, 다른 것들을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젊은 청년 역시 근심하며 그리스도를 떠났던 것이다. (마 19:22). 그러나 '룻은 그를 좇았더라.' 그녀가 집을 떠날 때부터 이미 나오미를 따르기로 결심했는지의 여부는 나타나 있지 않다.
  6) 나오미는 룻에게 돌아가라고 설득하며 동서의 예를 들어 더욱 권고한다.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즉 "언젠가 돌아가고자 한다면 지금 돌아가라. 이는 너의 지조에 대한 최대의 시련이다. 이 시련을 극복하면 너는 영원히 내 사람이다."
  7) 룻은 결코 나오미를 버리지 않을 것이며 자기 고향과 옛 친척들에게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변함없는 결심을 엄숙히 선언함으로써 논쟁을 끝낸다(16,17절). 
    ① 누구도 이 말보다 더 단호하고 용감하게 말할 수는 없다. 룻의 동서는 가버렸지만 룻에게는 또 다른 용기와 할 말이 있었던 것 같다. 이것은 더 나은 것을 선택하도록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한 보기이다. 룻은 시어머니에게 더 이상 가라는 말은 하지 마시라고 간청한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결코 나오미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따르겠다는 룻의 결심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즉 룻은 하나님과 하늘 나라를 섬길 결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룻은 나오미와 함께 가려고 한다. 즉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겠나이다. 비록 그곳이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라이며 또한 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할지라도 어머니와 함께 가는 길이라면 어떤 길이든 즐거울 것입니다." 둘째, 룻은 나오미와 함께 기거하려고 한다.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비록 오두막집에 묵는다 하더라도 아니 야곱이 돌로 베개를 삼았던 곳보다 못한 곳에 묵는다 하더라도 나는 따르겠나이다." 셋째, 룻은 나오미와 이해 관계를 같이 하려고 한다. 즉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될 것입니다." 넷째, 룻은 나오미의 신앙을 따르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룻은 그녀의 전부를 바로 그 제단에 바칠 결심을 한다. 즉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다섯째, 룻은 나오미와 죽음도 기꺼이 같이 하려고 한다.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을 것입니다.' 여섯째, 룻은 나오미와 같은 무덤에 장사되고 나오미 옆에 묻히기를 바란다. 거기 장사될 것이라. 룻은 자기 시신에 호의를 베풀어서 모압 땅으로 가져가기를 원하지 않고 나오미와 영혼을 함께 함으로써 함께 다심 살아나고 함께 영원히 저 세상에 살게 될 날을 소망하면서 함께 흙이 되기를 바랬다. 룻은 엄숙한 맹세로 나오미를 따르려는 자기의 결심을 확고히 한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이는 고대의 저주하는 문체이다). 
    ②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돌이키는 전형이다. 우리도 어떤 순간에 이러해야만 한다. 첫째, 우리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모셔야 한다. "이 하나님이 영원토록 나의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분을 나의 하나님으로 자백했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모실 때는 그 백성들로 우리 백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그들이 가난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만약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들은 틀림없이 우리의 백성이다. 셋째, 그들과 운명을 같이 했다면 기꺼이 그들과 운명을 같이하고 그들이 지내는 것처럼 지내야 한다. 
  8) 나오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18절).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그것이 바로 나오미가 자기를 따르려는 룻의 마음을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그때까지 이야기한 목적이었다) 그녀는 룻이 자신의 의도를 깨달은 것을 보고 아주 만족해서 '그에게 말하기를 그쳤다.'

Ⅲ. 베들레헴에 돌아온 나오미 (1:19-20절)
나오미와 룻은 피곤한 걸음을 수없이 걸은 후에 마침내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들은 아주 적절한 때에 도착했다. 왜냐하면 그때는 보리 추수를 시작할때 였는데 이 보리 추수가 끝난 후에 밀을 추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겨울을 준비할 기회가 생겼다.

1. 이들을 보자 이웃 사람들에게 동요가 일어났다(19절).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전에 나오미와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은 나오미에게 몰려와서 나오미의 형편에 대해서 묻자 나오미가 다시 베들레헴에 돌아온 것을 환영했다. 혹은 아마도 그들은 나오미가 마을의 짐이 되지 않을까 하여 떠들썩 했을 것이다. 그럴 정도로 나오미는 매우 가난해 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이가 나오미냐?' 고 묻는다. 전에 나오미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처한 나오미를 보고 놀랐다. 고생으로 인해서 나오미는 매우 상해 있었고 많이 변해 있었다. '이가 나오미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정과 연민에 차서 이렇게 물었다. 즉 " 이사람이 바로 그렇게 부유하게 살며 훌륭한 집을 지니고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던 그 사람이란 말이냐?" 고통이란 순식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병들고 나이든 노인들이 얼굴이 변하고 성질이 변하는 것을 보면 베들레헴 사람들이 "이가 나오미냐"고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그런 모든 변화 특히 엄청난 변화를 감당하게 해주신다.

 
2. 나오미의 마음은 침착했다. 나오미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비난하는 자가 있었으나 나오미는 가난하나 긍지가 있었으므로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나오미란 이름은 "기쁜" 혹은 "상냥한"이란 뜻이다. 그러나 기쁜 일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나를 마라 즉 괴로움이라 불러라. 나는 이제 비통한 여자가 되었다." 
   1) 나오미는 자신의 처지가 변한 데 대해서 전혀 투덜거림이나 불평 없이 하나님의 섭리를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그녀는 자식을 잃고 과부가 되어서 '비어 돌아온 것이다'(21절). 아마도 그녀는 가진 것을 다 팔았을 것이며 몸에 걸친 옷 한 벌을 제외하고는 가지고 갔던 것을 하나도 가져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오미는 그같은 고난 속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인정한다.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신 이는 여호와시며 나를 괴롭게 하신 이도 전능자이시다." 시련을 당할 때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는 것보다 영혼을 만족케 하는 것은 없다. 그 만드신 모든 것을 우리에게서 없이 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자신으로 채우시는 방법을 알고 계시다.
  2) 나오미는 이러한 변화에 순응하고 있다.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라. 이제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에게나 내 이웃에게 즐거운 자가 아니다. 나의 현재 형편에 맞는 이름으로 즉 마라라 칭하라." 하나님이 그녀를 괴롭게 하셨을지라도 나오미는 그 섭리에 순응하려 하며 마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고난은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며 환난은 인내를 낳는다.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룻기 3장 1절~9절]
1절 -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절 -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절 -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절 -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5절 -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절 -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7절 -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절 -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9절 -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말씀 포인트 : 본문은 다윗의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가 되는 보아스와 룻의 만남을 다룬 말씀입니다. 모압에서 모진 고생을 한 후 귀국하여 어려운 생활을 하던 나오미는 순종적인 며느리 룻을 생각하고 그에게 새로운 결혼을 계획합니다. 합법적으로 룻의 아내가 될 수 있는 보아스라는 사람을 선택하여 그와의 은밀한 만남을 주선하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시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여 친족 보아스에게 나아가는 룻의 모습이 믿음의 모습 속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방 여인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시어머니를 공양했던 룻에 대한 축복이 전개되는 발단 부분으로, 집약적이지만 섬세하게 상황이 묘사되고 있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설렘과 감동을 안겨 줍니다.

1) 시어머니가 룻에게 한밤중에 타작마당으로 가라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1~2절)
시어머니 나오미는 젊어서 과부된 며느리 룻을 불쌍히 여겨 그녀에게 안식할 가정을 마련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스라엘 풍속은 모든 법적 결정권이 남성에게 있기 때문에 남편이 없거나 아들이 없는 여인은 여러 가지 법적 혜택에서 제외되었고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없었습니다. 룻을 불쌍히 여긴 나오미는 룻의 남편이 될 만한 기업 무를 자를 찾았고, 그가 보아스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보아스에게 룻을 맡겨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선 후, 두 사람을 은밀하고도 효과적으로 연결시켜 주고 있습니다. 며느리를 사랑하는 시어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의 동기에서 출발한 지혜로운 행동과 결단이 보이는 아름다운 대목입니다.

2) 나오미의 제안에 룻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떻게 행동하나요?(5~6, 9절)
룻은 모압에서 이스라엘로 올 때부터 나오미를 어머니로 여기며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과 그녀의 말에 순종할 것을 다짐했고 지켜 왔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룻은 나오미의 말에 순종하여 어머니의 말씀대로 다 행하겠다고 말하고 그대로 행합니다. 룻의 아름다운 마음 역시 좋은 믿음의 본이 됩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사랑했고, 그녀의 뜻과 생각을 존중했으며, 몸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룻은 시어머니가 시킨 모든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시행합니다. 말씀에 순종한 룻은 보아스를 만났고, 보아스와 함께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결국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게 되고, 다윗의 증조모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면 이러한 복과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3)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 유익을 얻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눠 보세요.
현대 부모와 자녀의 문제는 과도한 사랑에 기인합니다. 사랑이 모자라서라기보다는 사랑이 넘쳐나서 문제가 됩니다. 과잉보호와 지나친 사랑은 부족한 사랑만큼이나 치명적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보호합니다. 자녀는 이런 부모의 사랑 때문에 숨 막혀 하거나 무조건적으로 반항하게 됩니다. 절제된 사랑, 기다리는 사랑, 내어 주고 희생하는 사랑이 자녀를 건강하게 세워 줄 수 있습니다. 부모의 모든 말씀이 진리일 수는 없지만, 자녀를 믿음 안에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자 하는 부모의 말씀 안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자녀들은 주님 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약속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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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룻기 1장 15절~22절]
15절 -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절 -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절 -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은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절 -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절 -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절 -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절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22절 -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1. 시어머니 나오미는 남편을 잃은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라고 권고합니다. 그러자 룻의 동서인 오르바는 어떤 선택을 합니까?(15절)
시어미니의 제안을 받은 오르바는 남편이 죽은 후 그 백성과 그 신(모압)에게 돌아갔습니다.
나오미의 인간적인 설득은 오르바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간다는 것은 앞날을 전혀 보장받을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녀는 나오미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설득에 모압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믿음의 길을 가다가도 상황과 환경이 열리지 않으면 쉽게 이성과 경험을 의지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오르바의 행동입니다. 그녀는 유다 사람에게 시집을 와서 유다 사람의 풍습과 문화를 좇아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가면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남편이 죽게 되자 오르바는 자신이 믿던 하나님을 버립니다. 여기서 남편과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섬겼던 오르바의 내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있고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다 할지라도 자신이 가슴으로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진정한 믿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2. 룻은 남편을 잃고 동서인 오르바도 떠난 상황에서 어떻게 하기로 결심합니까?(16절)
룻은 자신에게 어머니를 떠나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자신도 가며, 어머니가 머무시는 곳에 자신도 머물며, 어머니의 백성이 자신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자신도 죽겠다고 간청했습니다.
오르바와 달리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고백은 단지 어머니에 대한 가족애를 넘어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 수준에 이르는 것입니다. 룻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룻의 고백은 진실로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 되신다는 올바른 신앙에 근거한 것입니다. 룻은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곳으로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룻의 이러한 결심은 완전한 자기희생의 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의 표현이며 사랑과 헌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룻의 결단은 신앙의 결단이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3.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하고 싶다는 룻의 굳은 결의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어디이며 그녀가 뜻을 정한 내용은 무엇입니까?(17절)
룻은 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자신도 죽어 거기 장사되고 싶고, 자신이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룻은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 주기 위해 이스라엘 사회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서약의 형태인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했습니다. 룻이 맹세할 때 ‘여호와’(Jehovah)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란 성호는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 사회에서만 사용하는 고유한 명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룻이 이 명칭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녀가 이제 언약의 백성으로 새롭게 거듭났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룻의 신앙에 근거해 볼 때, 그녀는 맹세할 때 언약을 어긴 자에게 반드시 벌을 내리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엄숙히 맹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룻은 이방 여인이지만 믿음 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이 아니라 믿음임을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룻은 단순히 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간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따라 신앙의 숭고한 여정을 선택한 것입니다.

4. 최근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현실 사이에 갈등을 겪은 일이 있다면 나눠 보십시오. 그때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결과를 얻었습니까?
룻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기로 선포했습니다. 사람은 인생에서 위기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면하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룻은 달랐습니다. 그녀의 선택 기준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지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룻은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했습니다. 룻의 신앙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신앙이었습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면 하나님의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룻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어머니를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곳에 가시든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상황과 환경을 초월한 온전한 충성입니다. 우리는 룻의 충성의 결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룻은 다윗의 족보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에 속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방 여인 룻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룻을 그분의 거룩한 비전을 이루는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비전이 우리를 통해 완성될 것입니다.

5.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나눠 봅시다.
충성은 상황과 환경을 초월해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충성은 사랑에서 기인합니다. 충성은 곧 사랑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신 성품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룻은 결혼과 동시에 남편이 믿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모든 가치관과 생활양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하나님을 따르기 불편한 상황과 조건에서도 충직하게 하나님께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조건과 환경에 의해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룻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이런 마음입니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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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앉은 이유는(룻 4:1)?

당시 성문은 성문 입구의 넓은 장소를 가리키는 곳으로 이곳은 백성들의 소송 문제나 일상사의 난제들을 취급하는 재판장소 였음.
고대에는 성문앞 광장이 생활의 중심지였습니다. 성 밖의 사람들은 타지방에서 생산되는 물품들을 이곳에서 팔았습니다.
보아스도 기업으로 무를 일에 관해 재판받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보아스와 룻의 결합의 의미는(룻 4:10-22)?

구속자와 구속받은 자의 새로운 결합이요, 빈곤에서 부에 이르는 결합이요, 오벳을 낳는 결실이 풍부한 결합이요, 후에는 궁극적으로 구세주를 탄생시키게 된 목적있는 결합이었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음으로 인한 룻의 변화는(룻 4:13)?

선민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되었고, 라합, 다말과 더불어 다윗의 계보에 올랐으며 나아가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게 됨.
룻은 자기 민족인 모압과 섬기던 신 그모스를 버리고 온전히 여호와를 믿은 결과 놀라운 은총을 입게된 것입니다.

 
보아스의 족보를 통해 알수 있는 것은(룻 4:18-22)?

궁극적으로 만민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경륜을 발견하게 됨.
빛나는 가문인 ‘다윗의 가문’, ‘그리스도의 가문’이 이방 여인 룻에 의해 혈통이 이어진 것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출처 : 갓피플

룻의 구원 과정을 보면(룻 3:1-18)?

원래는 이방인이었고 죄인이었으며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자였음.
그러나 룻은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믿음의 행위를 보였으며 자기를 부인했음.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축복의 약속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세운 룻의 결혼 계획은(룻 3:1-5)?

보아스를 기업무를 자로 정하고 룻에게 행할 바를 지시함.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보아스의 결혼을 위해 하나의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이란 타작하는 날 밤에 룻이 보아스의 침소에 찾아가서 기업무를 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기를 요구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룻은 시모 나오미의 말에 아무런 불평없이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안식할 곳’이라는 말의 의미는(룻 3:1)?

가정을 가리키는 말로써 나오미가 룻을 위하여 새로운 남편을 구해주겠다는 뜻임.
가정은 생활의 토대요 신앙 교육의 산 도장이며 외롭고 고단한 심신을 달래주는 안식처입니다. 때문에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먼저 내 가정을 신앙 공동체로 가꾸어야 합니다.


시어머니인 나오미가 룻을 향해 은혜를 고백하는 이유는(룻 3:10)?

하나님께서 며느리 룻을 통하여 가정의 대를 잇고 하나님의 기업을 세우실 것을 믿었기 때문임.

 
현숙한 여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룻 3:11)?

여호와를 경외하고 정욕을 좇지 않음(룻 10, 11절).
부모를 공경하여 타인의 칭찬을 받음(룻 5,10절).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가사를 잘 돌봄(잠31:12-19).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타인에게 지혜를 베풂(잠31:20,26).
남편의 칭찬과 자식의 공경을 받음(잠31:28,29).


‘기업을 무른다’는 의미는(룻 3:13)?

자기 형제나 친족이 어려움에 처했을때 그것을 해결해주어야 하는 의무를 시행한다는 의미.
본문에서는 친족의 부인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게 함으로 그 죽은 자의 대를 이어주는 일을 의미함.
고대 사회에서는 여자의 청혼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이같은 룻의 특이한 행위는 기업을 잇기 원하고 기업 회복을 위한 간절한 소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당시 행음자들에 대한 형벌은(룻 3:14)?

이스라엘의 규례에 의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함.
추수때는 주인과 일꾼들이 타작마당 근처에서 잠을 자면서 밤에 습격해 올지 모르는 도적들에 대비했습니다. 때문에 보아스는 다른 사람들이 행음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철저히 경계시켰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표현의 의미는(룻 3:18)?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란 신앙의 표현임.
여기에서 나오미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경륜의 손길을 느끼고 확고한 신앙에 서있었고 하나님의 일하실 때를 기다리는 지혜로운 면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해야할 일을 다한 후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모든 염려와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출처 : 갓피플

이삭 줍기에 관한 규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룻 2:2)?

모세의 율법에는 추수때 가난한 자, 고아, 과부, 이방 나그네를 위해 곡식의 일부를 남겨놓도록 규정되어 있음(레19:9; 23:22; 신24:19).
이는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계시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권을 보장하시겠다고 하는 성경적인 구제 정신의 표현입니다.


온전한 상을 받을 자는 누구인가(룻 2:12)?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한 자(잠11:19).
계명을 두려워하고 동역함으로 수고한 자(전4:19).
주를 위해 핍박받고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마10:4).
담대하고 죽도록 충성하는 자(계2:10).
의인을 영접하고 선한 싸움에 승리한 자입니다(계3:5,21).

 
보아스는 누구인가(룻 2:8-16)?

룻의 친족이요 룻과 결혼한 자.
그리스도의 모형.
밭의 주인(룻 3절).
안식과 은혜의 공급자(룻 9-12절).
필요의 충족자(룻 15-20절).

 
보아스의 행위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신앙의 자세는(룻 2:8-16)?

말씀대로 준행하고, 은혜를 감사할 줄 알았으며, 사려 깊은 겸손의 자세를 지니고 있었음 .
자신의 의를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의 의를 자랑하고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취함으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의의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한 에바의 양은(룻 2:17)?

한 에바는 약 22리터, 즉 열두 되 정도의 분량임.
이 양은 나오미와 룻이 며칠동안 먹을 수 있는 많은 양이었습니다.

 
기업 무를 자의 자격은(룻 2:20)?

혈연적인 관계에 있어야 하고,
자원해야 하며,
고엘로서의 능력을 구비해야 함.
보아스는 나오미의 땅을 다시 사주었고 룻과의 결혼을 통해 메시야의 계보를 잇게 됩니다.


출처 : 갓피플

룻기서의 내용은(룻 1:1-21)?

본 서의 역사적 배경은 죄의 악순환으로 인해 혼란이 거듭되는 사사 통치기로 한 나약한 젊은 미망인 룻이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굳게 지키고 그의 시모 나오미에게 헌신을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다윗 왕가의 일원이 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룻의 이야기를 통해 가르쳐 주고자 하는 교훈은(룻 1:1-21)?

아무리 어둡고 혼란한 시기라 할지라도 그에 휩쓸리지 않고 신앙의 정도를 걸으며 역경을 믿음으로써 이겨낼때 하나님은 그 믿음에 합당한 축복을 내려주심.
소수의 무리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남은 자들을 통해서 오늘도 구원의 역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나오미가 잃은 것은(룻 1:1-21)?

남편(룻 3절), 아들들(룻 5절), 신앙적 열심(룻 8,15절), 하나님의 보호(룻 13절), 자부 오르바(룻 14절),
즐거움(룻 20절), 하나님의 축복(룻 21절).

 
나오미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룻 1:5-7)?

이국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홀로된 나오미는 환난 속에서도 어려움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구원자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원의 반열에 서게됨.


룻의 성품은(룻 1:16-22)?

① 신앙적인 성품 - 결단력이 있고(룻 16, 17), 신앙의 지조를 지켰으며(룻 17), 축복을 얻기 위해 고난을 감수함(룻2:2).
② 내면적인 성품 - 신의와 지조를 지켰고(룻 16), 시모를 잘 공경했으며(룻2:2,3), 근면, 겸손, 순종적이며(룻 2:7,13;3:5), 사랑이 많고 현숙한 여인이었음(룻3:10,11).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길은(룻 1:16)?

남자는 할례를 통해서, 이방 여자는 신앙 고백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었음.
이것으로 볼때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폐쇄적이 아닌 개방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룻은 이방 여자였지만 여호와께 대한 신앙 고백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룻이 시모를 떠나게 되는 유일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했는가(룻 1:17)?

죽음.
룻은 이것을 ‘여호와 이름’으로 맹세하였습니다.
이 당시 근동의 이방인들은 ‘엘로힘’으로 신을 호칭하였고 ‘여호와’는 히브리인들만 사용했는데, 여기서 룻이 이방 여인으로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점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출처 : 갓피플

1. 결혼의 의미
하나님의 문화 명령(창1:27, 28)으로 인하여 남녀가 한몸을 이루는 결혼은 사회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창2:18-24). 따라서 성경도 결혼에 관한 규례와 교훈을 많이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이방인들의 문란한 윤리관에 대하여 엄히 경계하고 있다(레18:1-5; 살전4:3-6).

1) 구약
일반적으로 히브리인들은 결혼하지 않는 것을 커다란 수치으로 여겼으며, 결혼을 해서도 자녀가 없는 것을 역시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이는 모두 다 언약 공동체의 영속성과 관련된 것으로 하나님과의 순수한 언약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지고의 목표였던 것이다. 때문에 자손이 없는 여인은 남편을 부끄럽게하는 요소로 간주하여 자녀를 생산한 여인보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창16:4; 삼상1:5, 6). 한편 결혼식은 매우 특별하고 성대하게 치루어졌는데(아3:11; 사61:10), 수놓은 옷을 신랑·신부에게 입혔고, 친구들이 결혼식에 동행했으며, 음악을 곁들인 피로연을 일주일 동안이나 지속함으로써 흥을 한껏 돋우었다(창29:27). 신랑은 신부가 자신의 여자가 되었다는 것을 자신의 외투로 신부를 감싸는 것으로 상징화 했다(겔16:8; 룻3:9). 결혼은 문서로 공인되었고(토빗서7:13,14), 특별한 결혼식장에서 기도 후에 예식을 마쳤다(시19:5; 토빗서7:16,17).
일반적으로 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가족과 함께 살았으며, 신혼의 남자는 일년 동안 병역의 의무가 면제되기도 했다(신24:5). 부부관계에 대하여는 일부일처제가 성경적이라 말할수 있는데, '한 남자에 한 여자를' 그리고 젊어서 취한 여자에게 신실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잠5:18, 19; 말2:14,15). 이방인과의 결혼 및 근친상간의 결혼도 엄격하게 금지되었다(레18:6-18; 레20:11, 12, 14).

2) 신약
신약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수님의 결혼에 관한 해석 및 가르침은 구약의 것을 능가할만큼 탁월하였다. 일부일처제는 성경적인 결혼관으로 변함이 없었으며, 결혼은 '영원한 관계'라는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밝히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막10:6-9). 한편 이혼에 관하여는 '음행' (porneiva, 포르네이아)한 연고 없이는 이혼할 수 없도록 가르치셨다(마5:32; 막10:2-12). 사도 바울도 자신의 기록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재차 강조하였는데(고전7:10, 11), 아직 결혼 전인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인과 결혼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전7:12-16; 벧후3:1, 2).

3) 결혼에 관한 비유
성경은 자주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하고 있으며(렘3:1-14; 겔16장; 호1-3장),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골3:18, 19; 벧전3:1, 7). 예로 들면 남편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의 음행을 저지른 아내 이스라엘(렘3:1, 2; 호1:2), 자신은 돌이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을 간구하는 이스라엘(렘3:3-5), 음란한 이스라엘이 언제든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하나님(렘3:6-14; 호2:14-20) 등이 바로 그것이다.

2. 구속사

1) 의미
구속사란 신·구약성서에서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든 행위에 관한 역사이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18세기 중엽 독일의 경건파에 속하는 벵겔(Bengel 1687-1752)이란 사람인데, 그는 성서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서 점차로 실현되어 나간 하나님의 목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즉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사건은 단순한 연대기적 기록이 아니라 목적론적 원칙에 따라 기록되었으며, 구속사라는 중심되는 명맥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2) 전개
벵겔의 이러한 생각을 이어받은 사람이 다비(Darby)와 스코필드(Scofield)였다. 그들은 성서 주석을 통하여 이러한 벵겔의 주장을 더욱 보편화했지만 구속사를 일종의 '시대경륜론' (dispensationalism)으로 만들어 버리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 한편 헤겔 철학과 접목을 시도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벡크(I. T. Beck)이다. 그는 성경에 기록된 여러단계들 사이에는 논리적 연관성이 존재하며, 그 단계마다 동일한 중요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모든 단계들이 유기체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후 랑케(Ranke)의 근대적 역사관을 도입한 호프만(J. C. Hoffman) 등은 성서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종교적 가치를 성공적으로 발견하였고, 그리스도의 영이 역사 가운데서 움직이는 곳이 교회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밖에 바르트, 불트만, 브루너, 쿨만 등 성서 해석에 과학적 탐구 방식을 도입한 학자들에 의해 구속사 관념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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