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현실로 이루는 절대 믿음과 용서

[마가복음 11장 20절~33절]
20절 -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절 -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절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절 -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26절 - (없음)
27절 -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절 -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절 -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절 -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절 -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33절 -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베드로가 말씀대로 무화과나무가 말랐다고 하자,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 하십니다.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믿어야 하며, 우리가 남을 용서해야 하나님께 용서받습니다. 예수님의 권위 출처를 묻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는지 반문하시자, 그들은 답을 못합니다.

● 성전의 참모습, 예수님의 권위
예수님 말씀은 능력 그 자체입니다. 베드로는 무화과나무를 뿌리째 마르게 하신 예수님의 능력을 놀라워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타락한 성전과 구별되는 진정한 성전이 갖출 기도의 능력에 대해 교훈하십니다.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절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뜻이면 산도 움직인다는 믿음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기도자는 하나님께 간구한 것을 받은 줄 확신하며, 믿음의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을 너그럽게 용서해야 죄 사함과 함께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이러한 성전의 참모습을 모르는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의 권위 출처를 따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위라면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존하신 하나님은 모든 권위 위에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명자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 예수님이 믿음의 기도를 교훈하시며 용서에 대한 가르침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용서할 사람은 누구며, 믿음으로 간구할 일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열매 없는 성전을 향한 주님의 분노

[마가복음 11장 11절~19절]
11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12절 -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절 -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절 -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절 -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절 -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절 -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절 -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절 -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베다니에 가셨다가 이튿날 나오신 예수님이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에 다가가십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자, 그 무화과나무에서 사람이 영원히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십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 장사꾼들을 내쫓으시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꾸짖으십니다.

1.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뜻 (11~14절)
나무의 잎사귀보다 중요한 것은 열매입니다. 예루살렘에 이르신 예수님은 먼저 '성전'을 둘러보십니다. 다음 날 다시 성전으로 가시는 길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비유 행위입니다. 무화과나무가 맛 좋은 열매(헬, 테헤나)를 맺는 것은 8~9월입니다. 예수님이 자나신 때는 3월 말경이므로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보통 이 무렵에도 작은 열매(헬, 파게)는 열립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나무에는 이것조차 열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에서 강도의 소굴로 전락한 성전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써 성전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이십니다. 열매 없는 신앙, 하나님 뜻을 저버린 삶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 예수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신앙의 연수만큼 성장도 없고 열매도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성전, 만민이 기도하는 집 (15~19절)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 성전은 종교 지도자들의 묵인 아래 장사하는 곳으로 전락했습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은 제물을 비싸게 팔아 이득을 취했습니다. '돈 바꾸는 자들'은 로마 황제 형상이 새겨진 동전을 성전세로 낼 동전으로 환전해 주며 수수료로 이득을 챙겼습니다. 당시 백성은 로마에 세금 내기도 버거울 만큼 가난했는데, 각종 제물 구입과 성전세 때문에 삶이 더 피폐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을 심판하듯 상을 엎으시며 거룩한 분노를 쏟으십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만민이 예배하고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견인하는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 성전에서 예수님이 행하시고 교훈하신 것을 보고 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요? 지금 교회가 회개하고 회복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제가 세상 것들을 사고파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주님의 성전인 저 자신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 부패한 것들을 제거하도록 거룩한 영으로 함께하소서.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것을 늘리기보다 성령의 열매, 복음의 열매를 맺는 데 힘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나귀를 타신 겸손의 왕

[마가복음 11장 1절~10절]
1절 -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절 -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절 -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절 -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절 -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절 -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절 -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절 -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절 -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절 -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님이 예루살렘 근처에서 제자 둘을 보내시며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대로 '주가 쓰시겠다'고 하며 나귀 새끼를 끌고 옵니다. 그 위에 제자들이 겉옷을 얹고 예수님이 타시자, 무리가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호산나'라고 외치며 찬송합니다.

1. 주님을 위해 준비된 나귀 새끼 (1~6절)
하나님 아들 예수님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신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시며 맞은편 마을에 있는 나귀 새끼를 끌고 오게 하십니다. 그 모든 과정이 예수님이 일러 주신 대로 성취된 것은, 그분의 전지전능하신 신적 권위를 잘 보여 줍니다. "주(헬, 퀴리오스)가 쓰시겠다."라는 표현 또한 만물에 대한 왕의 권위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모두 주님께 속한 것이며, 우리는 단지 청지기일 뿐입니다. 주님이 쓰시겠다 말씀하실 때, 기쁜 마음으로 '즉시' 순종하는 것이 청지기의 자세입니다.
* 나귀 새끼 주인은 "주가 쓰시겠다."라는 한마디에 어떻게 반응하나요? 주님이 내게 맡기신 것 중 지금 주님이 쓰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2. 겸손하신 왕 (7~10절)
예수님은 겸손과 평화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은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창 49:11; 슥 9:9). 또한 나귀 위에 겉옷을 얹거나 겉옷 혹은 나뭇가지를 길 위에 펼쳐 놓는 행위는 왕의 즉위식과 관련됩니다(왕상 1:38~40; 왕하 9:13). 당시 왕들은 나귀보다 몸집이 큰 노새를 탔고, 나귀는 주로 평민이 탔습니다. 그러므로 나귀 새끼를 탄다는 것은 예수님이 과시하기 좋아하는 교만한 왕이 아니라 겸손히 섬기는 왕임을 보여 줍니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10:42~45) 본을 몸소 보이신 것입니다. 환호하는 무리는 예수님이 다윗 왕국의 번영을 재현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주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영광이 아닌 고난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 나라 회복, 이것이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직장 혹은 가정에서 나는 어떻게 겸손과 섬김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닮은 겸손과 섬김이 제 삶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도우소서. 제가 누리는 모든 소유가 주님이 선물로 주신 것들임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쓰겠다고 하실 때, 언제든, 무엇이든 기꺼이 내어 드릴 수 있는 순종과 헌신의 사람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치유받은 바디매오, 길에서 주님을 따르다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46절 -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절 -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절 -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절 -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절 -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절 -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여리고에서 나가시는 분이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이 그를 부르시자 그는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나아옵니다. 보기를 원한다는 그의 말이 예수님이 믿음이 그를 구원했음을 선언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님을 따릅니다.

1. 부르짖는 믿음 (46~48절)
주님을 향한 부르짖음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라는 소리를 듣고서 그분께 자기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칩니다. 이는 그가 전에 예수님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바디매오는 앞을 보지 못하기에 예수님을 찾아갈 수는 없었지만, 그분이 행하신 일을 들은 후 마음으로 그분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어떤 대상을 마음에 품고 믿느냐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바디매오의 확고한 믿음이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많은 사람에게 저지당합니다. 바디매오는 장애물에도 굴하지 않고 힘을 다해 더 크게 외칩니다. 그가 예수님의 주의를 끌 수 있는 방법은 소리를 지르는 것밖에 없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주님은 곤고한 자의 부르짖는 간구를 들으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 나사렛 예수시라는 말을 듣자 바디매오는 어떤 태도를 보이나요? 내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2. 치유와 헌신 (49~52절)
믿음의 부르짖음은 반드시 선한 응답을 가져옵니다. 바디매오의 외침은 결국 예수님을 멈춰 서게 합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그의 소원대로 눈을 고쳐 주십니다. 눈을 뜬 바디매오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길에서'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 길은 예루살렘을 향한 길입니다. 예루살렘은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장소입니다. 이는 바디매오가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의 길을 걷는 제자가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이 그를 부르신 것은 제자로 부르심이었습니다. 병이 낫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유된 후에 어떤 길을 걷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 예수님이 말씀으로 치유해 주시자 바디매오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지금 내가 걷는 길은 누구를 따르며 무엇을 추구하는 길인가요?

오늘의 기도
믿음으로 부르짖을 때 외면하지 않고 응답하실 주님 앞에, 제 간절한 소망을 아룁니다. 소망을 이루어 주시는 그 길, 그 자리에서 다시 세상길로 향하지 않고 주님만 따르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만이 제 문제의 해결자심을 고백하며 주님을 간절히 외쳐 부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간절함으로 얻은 인생 역전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46절 -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절 -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절 -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절 -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절 -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절 -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배경 이해하기]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길은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 고난을 감당해야 하는 죽음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져 죽을 것이며,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고 세 차례 말씀하셨지만(8:30~31; 9:30~32; 10:32~34), 제자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권좌에 오를 생각만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길에 여리고에 이르십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27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예루살렘과 가깝습니다. 겨울에 많이 춥지 않아 이스라엘 왕들이나 헤롯이 별장을 짓고 겨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물이 풍족해 포도원도 많았고, 동서 무역이 성행했습니다. 여리고는 환경적으로는 맹인이 구걸하며 먹고살기에 괜찮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맹인 바디매오의 소원은 눈을 뜨는 것입니다. 그런 바디매오의 인생에 소망을 주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며, 온갖 병자를 고치셨다는 소식입니다. 이는 그에게 복음(Good News)이었습니다. 바디매오에게 나사렛 예수를 만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과 함께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참조, 사 35:5).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에 그의 믿음은 부르짖음으로 표출되고,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관찰과 묵상]
1. 나사렛 예수시라는 말을 듣자 바디매오는 뭐라고 외치나요? 잠잠하라고 꾸짖어도 그가 계속 외친 이유는 무엇일까요?(46~48절)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보게 해 주실 것을 믿었기에, 잠잠하라는 사람들의 꾸짖음에도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 외쳤습니다.
맹인 거지 바디매오 이야기는 모든 공관복음에 언급되는 주요 기사입니다(마 20:29~34; 눅 18:35~43).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았음에도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믿고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십자가 죽음을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10:32~37). 그런 야고보와 요한에게 다른 제자들이 화를 내자 예수님은 큰 사람,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섬기는 자와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자마자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 칭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치유하고 구원할 메시아로 부른 것입니다(참조, 눅 4:18). 또한 그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이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요, 치료자 되심을 믿고 소리쳤던 것입니다.
적용과 나눔
주님 앞에 나아갈 때 간절한 마음이 왜 중요할까요? 무뎌진 마음을 새롭게 해 간절히 기도할 문제가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누구나 큰 문제나 어려움이 생기면 처음에는 빨리 해결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반복되고 지속되다 보면, 어려움에 익숙해지면서 무감각해지기 쉽습니다. 간절함이 있을 때는 이런저런 방법도 알아보고 열심을 다해 해결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어떤 변화가 없고,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면 절망감이 슬며시 마음에 들어와 자리 잡습니다. 간절했던 마음은 점점 사라지고 이내 상황에 익숙해집니다. 익숙함이라는 마취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안정과 편안함까지 주어 우리 내면을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과 간절함을 잃어버리면 문제나 어려움이 생겨도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이시며 도움이심을 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영적 무감각은 내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간절하게 부르짖고 구할 것이 있다면, 그에 맞는 간절한 믿음을 갖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2. 바디매오의 외침에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보기를 원한다는 바디매오의 말에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나요?(49~52절)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외침을 들으시고 멈추어 그를 부르셨습니다. 보기를 원한다는 바디매오의 말에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외쳤습니다. 바디매오의 간절한 외침은 결국 예수님을 멈추어 서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를 부르시고 자신을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로 믿는 그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선지자나 랍비, 그리고 나사렛 예수 정도로 이해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바디매오의 고백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생각나게 합니다(8:29). 예수님이 그의 소원을 아시면서도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51절)라고 물으신 이유는 그의 믿음을 드러내려고 하신 것입니다. 잘못된 편견과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를 향해, 바른 믿음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며 분명한 자기 소원을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하시며, 그의 영적, 육적 구원을 이루어 주심으로 모든 문제는 ‘믿음’으로 해결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결국 바디매오의 믿음은 육신의 치유를 넘어 영혼의 구원을 얻는 데까지 이릅니다. 치유가 구원받은 표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후 바디매오는 구원자요, 치유자인 예수님을 길에서 즉시 따르는 제자가 됩니다.   
적용과 나눔
믿음과 구원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나의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 선택해야 할 믿음의 행동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바디매오에게는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 메시아로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자 자신의 소원을 이루실 예수님을 향해 소리쳤고, 사람들이 방해하자 더욱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예수님께 외치자 치유와 구원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행동은 단순합니다. 단지 주님께 불쌍히 여겨 도와 달라고 외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눈먼 자의 심령으로, 가난하고 겸손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면 반드시 응답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주님을 믿음으로, 겸손히 부르짖는 자에게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는 응답이 임할 것입니다.


*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아입니다. 바디매오에게는 예수님을 이러한 메시아로 고백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행동이란 단순합니다. 단지 예수님께 나를 불쌍히 여겨 도와 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간절한 외침이 예수님을 멈추어 서게 했듯, 문제 상황에서 간절히 주님을 찾고 구하면 인생 역전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믿음은 문제 해결의 중요한 열쇠입니다.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바른 믿음입니다. 우리가 겸손히 갈급한 심령으로 예수님을 메시아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고 구하면, 믿음이 구원의 은혜로 이어지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주님만이 저의 구원자요 치료자 되심을 고백합니다. 문제에 무감각해져 간절함을 잃지 않게 하소서.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제 소리를 들으시고 제게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세상 영광 뒤로하고 섬김의 길 가는 제자

[마가복음 10장 32절~45절]
32절 -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절 -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절 -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35절 -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절 -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절 -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절 -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절 -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절 -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절 -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절 -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절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절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이 다시 인자가 맞게 될 고난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에 앉기를 요구하고, 이를 안 열 제자가 화를 냅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종이 되라 하시며,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 하십니다.

1. 영광의 자리를 구하는 야고보와 요한 (32~40절)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세상 영광을 구하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세 번째로 고난을 예언하시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여전히 예수님이 영화를 누리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이 생각한 영광은 예수님이 권력을 휘두르는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첫 번째 고난을 예언하셨을 때 항변했던 베드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영광의 좌우편을 구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분의 잔과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는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과 죽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아들이심에도 예수님은 모든 결정을 아버지께 맡긴 채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으십니다. 진정한 제자는 세상 영광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 예수님이 세 번째 고난을 예언하실 때 야고보와 요한은 무엇을 요구하나요? 구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주님 뜻과 다르게 구한 것은 무엇인가요?

2. 인자가 온 궁극적 이유 (41~45절)
예수님이 추구하신 자리는 섬김과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영광의 자리를 두고 화내며 다툽니다. 섬김은 제자들과 세상 권력자들을 구별되게 하는 모습입니다. 제자들도 이 사실을 알았지만, 죄인의 속성으로 인해 세상 가치를 버리지 못합니다. 세상 권세는 자기가 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만, 섬김은 내가 먼저 불편과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놓으신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가장 큰 섬김입니다. '대속물'(헬, 뤼트론)은 노예나 전쟁 포로를 자유의 몸이 되게 하기 위해 치르는 값을 뜻합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으뜸입니다. 섬김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자 하나님 나라의 최고 가치입니다.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른 사람의 자유와 회복을 위해 오늘 나는 어떤 섬김과 희생을 행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세상 영광과 십자가의 영광은 다른 길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마음에 제 마음을, 주님 뜻에 제 뜻을 맞추게 하소서. 높아짐의 잔이 아닌 고난의 잔을 기꺼이 받아 마시며, 섬김의 대표 되신 예수님처럼 저도 그 길을 갈 수 있는 믿음과 용기와 은혜를 허락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늘 부자로 사는 주님의 제자

[마가복음 10장 17절~31절]
17절 -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절 -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절 -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절 -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절 -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3절 -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절 -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절 -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절 -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절 -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절 -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절 -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절 -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어떤 이가 영생 얻는 길을 묻자 예수님이 계명을 지키라 하십니다. 그가 다 지켰다고 하자,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 하십니다. 그가 근심하며 돌아가니, 예수님은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면, 현세와 내세에서 복이 있습니다.

1. 한 가지 부족한 것 (17~22절)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달려와 영생에 관해 질문한 한 사람은 십계명을 어려서부터 다 지킬 만큼 경건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물질에 대한 소유욕을 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나름대로 구제를 실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예수님 말씀에는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람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때문에 결실하지 못하는, 말씀이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와 같습니다(4:18~19).
* 영생 얻는 길에 관해 예수님께 질문한 사람은 왜 근심하며 갔나요?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지 못하게 하는, 내게 부족한 그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2. 제자의 헌신과 보상 (23~31절)
주님을 위해 헌신하면 반드시 주님이 보상해 주십니다. 낙타와 바늘귀 비유는 일종의 과장법입니다. 이는 부자라는 이유로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유하게 살 수 있지만 하나님이 요구하시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함을 교훈합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고 자부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놀라운 복을 약속하십니다. '먼저 된 자'란 이 땅에서 재산과 권력 등을 누리며 살아가는 첫째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욕심대로 살면 내세에서는 나중 된 자, 즉 끝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위해 모든 걸 버려 아무것도 없는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는 나중 된 자이지만, 내세에서는 첫째가 될 것입니다.
* 재물이 많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영혼을 잃는 것보다 물질 잃는 것을 더 속상해하는 연약함을 용서하소서. 물질을 포기하고 사람을 얻으라고 말씀하실 때, 제 의지를 쳐서 복종시켜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이 땅에서 부요한 자가 아니라 천국에서 부요한 자로 인정받는 주님의 참된 제자 되기 원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창조주의 의도를 따라,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마가복음 10장 1절~16절]
1절 -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2절 -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절 -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절 -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5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절 -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절 -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절 -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절 -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절 -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11절 -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절 -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13절 -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절 -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절 -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바리새인들이 이혼에 대해 묻자, 예수님은 부부는 한 몸이기에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답하십니다. 또한 배우자를 버리고 재혼하는 것은 간음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십니다.

1. 결혼과 이혼에 대한 가르침 (1~12절)
결혼은 남녀 간의 언약을 넘어 하나님과의 언약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의 이혼관은 지극히 남성 중심입니다. 그들은 모세 율법도 자기 편의대로 악용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인간이 타락한 후에 받은 모세 율법보다 우선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9절)라는 말씀은 남성 편의 위주의 이혼에 대한 강력한 경고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남자든 여자든 자기 편의대로 배우자를 버리고 재혼함은 정욕을 따르는 것이기에 간음과 다를 바 없는 죄악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며, 이혼은 죄입니다. 배우자와의 언약이요 하나님과의 언약인 결혼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 예수님은 모세 율법에서 이혼 증서를 허락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 하시나요? 부부 관계에 위기가 찾아올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하나님 나라와 어린아이 (13~16절)
예수님은 작은 어린아이까지 사랑으로 품으십니다. 앞서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9:36). 그러나 제자들은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오자 꾸짖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다시 가르치십니다. '이런 자'(14절)란 단순히 나이가 적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스스로가 어린아이처럼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수록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안아 주시고 안수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안아 주심은 용납과 사랑의 표현이며, 안수와 축복은 그분을 의지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 마음입니다.
*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을 제자들이 꾸짖자,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에 어떤 은혜가 임할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한 몸으로 묶어 주신 배우자를 더욱 소중히 여기기 원합니다. 서로에게 어떤 허물이 있더라도 가정의 하나 됨을 지켜 냄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게 하소서. 가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어린아이 같은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해 위로를 경험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제자다운 삶에 예비된 상급

[마가복음 9장 38절~50절]
38절 -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절 -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절 -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2절 -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43절 -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절 - (없음)
45절 -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절 - (없음)
47절 -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절 -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절 -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절 -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그분 이름을 의탁해 능력을 행하고 즉시 그분을 비방할 이는 없다 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형벌이 있습니다. 만일 손과 발과 눈이 죄짓게 한다면, 그것을 없애서라도 영생에 들어가야 합니다.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 제자다운 삶
성도는 제자다운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자 요한이 금합니다. 이 권세를 자신들에게만 주어진 배타적 특권이라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누구에게든 주님이 허락하십니다. 당시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41절)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손해를 감수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을 돕는 이는 반드시 상을 받습니다. 주님은 물 한 잔 건네는 일도 귀하게 보십니다. '나(예수)를 믿는 이 작은 자들'(42절)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 그래서 주변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죄짓도록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받을 것입니다. 제자는 맛을 내는 소금처럼 제자다운 맛을 내는 사람,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 믿는 사람 중에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는 사람을 예수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내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먼저 섬기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마가복음 9장 30절~37절]
30절 -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절 -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절 -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절 -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절 -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절 -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절 -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절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예수님이 다시 인자가 당할 고난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서로 누가 크냐고 길에서 쟁론한 것을 아시고,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사람 중의 끝이 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 (30~35절)
하나님 나라에서 실현되는 가치는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다릅니다. 예수님이 다시 고난을 예언하시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누가 더 크냐로 논쟁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섬김'에 관해 가르치십니다. 섬긴다는 것은 끝이 되는 것입니다. 가령 식사를 할 때도 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먹도록 도와준 후에 먹습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자기에게 도움을 줄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상대방의 유익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이 같은 섬김은 세상 가치관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 가치를 재평가하고, 참된 가치를 제시합니다. 첫째가 되기보다 모든 사람의 끝이 되어 섬기는 마음이 곧 예수님의 마음입니다(빌 2:5~8).
* 하나님 나라의 가치 기준으로 살고자 할 때,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오늘 끝이 되어 섬길 자리는 어디인가요?

2. 어린아이 영접과 하나님 영접 (36~37절)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의 본보기로 어린아이를 안아 주십니다. 어린아이처럼 미숙한 대상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무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섬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로서 죄인들을 먼저 섬기신 분입니다. 어린아이를 '내(예수) 이름으로' 영접하라는 것은 마치 예수님을 대하듯 소중하게 맞으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은 하나님을 영접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 하나님이 어린아이 속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과 동일한 권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과 함께하십니다.
*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안으시면서 섬김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시나요? 오늘 내가 예수님을 대하듯 소중히 여기며 섬길 사람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끝이 되어 섬기기보다 첫째가 되어 섬김받길 원하는 저입니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큰 자가 되려는 야망을 버리고, 예수님이 보이신 섬김의 본을 따라 '모든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끝이 되게 하소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영생을 함께할 자로 알고 주님을 영접하듯 대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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