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베푸신 구원의 새 역사

 

[마태복음 9장 14절~26절]
14절 -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절 -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절 -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18절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절 -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절 -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절 -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절 -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절 -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절 -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절 -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절 -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왜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느냐 묻습니다. 예수님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슬퍼하지 않는다 하시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존된다 하십니다. 예수님이 열두 해 혈루증 앓는 여인을 고쳐 주시고, 한 관리의 죽은 딸도 살리십니다.

 

1. 예수님을 통한 새로운 삶 (14~17절)

예수님의 삶과 사역은 당시 유대인들과 사뭇 달랐습니다. 금식이 한 예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혼인 잔치, 새 옷감, 새 포도주'를 소재로 답변하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기쁨과 환희가 주어졌는데, 이는 마치 신랑과 함께한 혼인집 손님이 즐거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새 옷감을 낡은 옷에 붙이거나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사람이 없듯,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는 당시 바리새인들에 의해 형식화한 종교 의례에는 담길 수 없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새 역사를 맞는 데 걸림돌이 되는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 본문에서 '금식, 낡은 옷, 낡은 가죽 부대'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하나님의 새 일을 경험하는 데 방해되는 고정 관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18~26절)

둘 이상 겹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한 관리가 예수님께 와서 방금 죽은 자기 딸의 몸에 손을 대어 살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의 집으로 향하던 도중,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을 만집니다. 혈루증으로 몸이 부정함에도 '그 겉옷만 만져도 낫겠다.'라는 확신이 담대한 행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대로 고쳐 주십니다. 관리의 집에 도착해 애곡하는 무리를 보시고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습니다(24절). 예수님은 무리를 내보내신 후 소녀를 살리십니다. 두 사건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 혈루증 앓는 여인과 딸의 죽음을 맞이한 관리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내게 인내하는 믿음이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모든 소망이 사라진 듯한 상황에도 주님 은혜의 옷자락에 손을 뻗게 하소서. 죄와 질병으로부터 온전히 구원하시는 주님의 권능을 신뢰하며 마음과 몸을 치유해 주시길 부르짖습니다. '안심하라'는 주님 음성을 듣고, 주님 손에 일으킴받는 하루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죄인을 위해 오신 죄 사함의 주권자

 

[마태복음 9장 1절~13절]
1절 -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절 -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절 -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절 -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절 -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절 -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절 -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절 -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9절 -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절 -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절 -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절 -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절 -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데려온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십니다. 서기관들이 이를 신성 모독으로 여기자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죄 사함의 권능을 보이십니다. 예수님이 마태의 집에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드십니다. 그분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1. 죄 사함의 권능 (1~8절)

믿음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하는 열린 문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계실 때 사람들이 병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려옵니다(막 2:1).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2절)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십니다. 서기관들이 이를 신성 모독으로 여기자,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자신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확증해 주십니다. 무리는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8절)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단수형인 '사람'으로 나오지만 헬라어 원문은 복수형인 '사람들'입니다. 이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와 권능을 드러내는 것이 교회와 성도에게 부여된 사명임을 알려 줍니다.

* 마가복음은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오는 과정을 어떻게 묘사하나요?(막 2:1~12)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믿음은 무엇인가요?

 

2.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시는 하나님 (9~13절)

예수님의 사역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뜻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세리 마태를 제자 삼으신 예수님은 그의 집에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더불어 식사하십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 정부의 하수인으로 간주되었고, 백성을 착취하는 자로 손가락질받았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은 그들과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식적 율법 준수를 의미하는 '제사'가 아닌 진실한 '긍휼'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경건의 모양이 아닌 진실한 긍휼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긍휼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경건 행위야말로 하나님 아버지를 닮은 모습입니다.

* '하나님이 제사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에서 '제사'는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마음으로 누구에게 어떻게 긍휼을 베풀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비난받아 상처 난 죄인과 함께 풍성한 식탁 교제를 나누시는 주님의 긍휼과 사랑을 제 삶으로도 보이기 원합니다. 저와 공동체가 치유와 용서를 구하는 이웃들을 주님께로 이끌고 나아가는 도구 되게 하소서. 차별 없으신 주님의 마음과 행동을 본받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권능의 주님을 거부한 어리석은 간구

 

[마태복음 8장 23절~34절]
23절 -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절 -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절 -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절 -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28절 -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29절 -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30절 -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31절 -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 보내 주소서 하니
32절 -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33절 -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34절 -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님이 배에서 주무실 때 바다 물결이 덮으려 하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구원을 청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작다 하시고 풍랑을 잠재우십니다. 예수님이 가다라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고 귀신들이 들어간 돼지 떼가 몰사하자 사람들이 주님께 떠나시길 요청합니다.

 

● 풍랑을 다스리시고 귀신 들린 자들을 치유하심

자연과 영적 세계도 예수님의 권능 앞에 순종합니다. 큰 파도가 배를 덮칠 상황에서도 주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두려워 떠는 제자들과 대조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을 위협하는 온갖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주권자입니다.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힘은 예수님이 함께하심을 기억하는 데서 옵니다. 가다라로 가신 예수님이 귀신 들린 두 사람을 만나십니다(막 5:1~20). 돼지를 많이 기르는 것으로 보아 이방인의 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 들린 자들이 소리 지르며 돼지 떼에 들여보내 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이 "가라." 명하시니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고 돼지 떼는 바다에 빠져 몰사합니다. 그곳 사람들은 귀신이 떠난 회복의 역사를 경험하고도 예수께 '떠남'을 간구합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구해야 했던 것은 예수님을 '따름'이었습니다.

 

* 가다라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곳을 떠나 달라고 요청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손해를 본다고 예수님을 떠나시게 하면 결국 어떻게 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고난이 따르는 제자의 길, 긴급한 하나님 나라 사명

 

[마태복음 8장 14절~22절]
14절 -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절 -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절 -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절 -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18절 -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하시니라
19절 -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20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21절 -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2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귀신 들린 자들과 병든 자들을 고치심으로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한 서기관이 그분을 따르겠다고 하자 "인자는 머리 둘 곳 없다." 하시고, 한 제자가 아버지의 장사를 먼저 치르겠다고 하자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1. 베드로의 장모와 병자들을 고치심 (14~17절)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치유하십니다. 그분은 열병으로 앓아누운 베드로 장모의 손을 만져 그를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수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치유의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은 그분께 나아오는 모든 병자를 고쳐 온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치유 사역이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의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예언을 성취하신 것입니다(사 53:4).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고난과 징벌을 다 받으셨기에 우리는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받아 누립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돌보시는 예수님은 절망을 소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 예수님이 모든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연약함과 질병을 담당하신 예수님께 내가 드릴 사랑은 무엇인가요?

 

2. 하나님 나라 일의 긴급성 (18~22절)

예수님의 공생애는 철저히 하나님께 집중한 삶이었습니다. 많은 무리가 따를 때도 예수님은 인기와 영광을 따르지 않으시고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다고 말하자, 주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는 말씀으로 제자의 길이 고난의 길임을 설명하십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이 아버지의 장례를 먼저 치르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자, 이를 허락하지 않으시고 "나를 따르라."라고 명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 전파의 사역이 긴급함을 나타냅니다. 고난 없는 영광을 취하라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던 예수님은 영광을 스스로 취하지 않으십니다(4:3~10). 제자의 사명은 희생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인가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제자가 되기 위해 내가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 모든 아픔과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머리 둘 곳 없으셨던 이 땅에서도 하늘의 부요함을 누리신 주님을 본받게 하소서. 오직 하나님의 뜻에 우선순위를 두시고 십자가의 사랑을 끝내 이루신 주님을 저와 공동체도 기꺼이 따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율법을 넘는 놀라운 사랑, 말씀을 따른 놀라운 믿음

 

[마태복음 8장 1절~13절]
1절 -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절 -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절 -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5절 -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절 -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절 -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절 -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절 -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절 -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절 -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절 -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절 -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신 후 한 나병 환자를 고치십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시자 한 백부장이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 달라고 청합니다. 백부장이 주님이 집에 오심을 감당할 수 없으니 말씀만 하시면 하인이 나을 것이라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백부장을 칭찬하시고 하인을 고쳐 주십니다.

 

1.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심 (1~4절)

예수님의 사랑은 율법의 규정을 뛰어넘습니다. 당시 나병 환자는 부정한 자로 간주되어 사람들과 격리되었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 한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고쳐 주시길 간구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이 부정하다고 규정한 나병 환자를 비난하며 멀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대시며 그를 고치셨습니다. 율법 조항보다 나병 환자가 당하는 고통에 주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손길은 부정함으로 인해 사람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그에게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경험하게 한 은혜의 손길이었습니다. 간절함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주님은 지금도 긍휼과 은혜의 손길로, 능력의 손길로 응답하십니다.

* 예수님 앞에 나아온 한 나병 환자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었나요? 은혜의 손길로 회복되길 소망하며 주님께 간구할 일은 무엇인가요?

 

2.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5~13절)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예수님을 감동시킨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중풍으로 고생하는 하인이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의 지휘관으로, 보통 주인이라면 하인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애로워서 예수님께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라고 대답하십니다. 백부장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특별한 이유는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는 그의 고백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말씀만으로 치유하실 수 있는 분임을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놀랍게 여기시며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데 필요한 것은 말씀대로 이루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 백부장의 믿음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믿음을 보시는 주님 앞에 나는 어떤 믿음을 보여 드릴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제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져 깨끗하게 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요. 전능하신 손을 내미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 즉시, 기쁘게, 온전히 순종하게 하소서. 말씀의 능력을 신실히 믿으며 주님이 칭찬하시는 하루와 평생을 가꾸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좋은 열매를 맺고 반석에 세우는 인생

 

[마태복음 7장 13절~29절]
13절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절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15절 -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절 -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절 -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절 -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절 -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절 -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절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절 -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절 -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절 -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절 -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절 -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절 -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8절 -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29절 -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열매로 그 사람을 알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불에 던져집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권능을 행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자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1. 올바른 선택을 하며 살라 (13~23절)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그 선택은 우리를 '넓은 문'과 '좁은 문'으로 인도합니다. 이때 어떤 문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인생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맞게 됩니다. 넓은 문은 편안한 길로 연결되어 많은 사람이 선택하지만,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좁은 문은 좁고 꼬불꼬불한 길로 연결되어 선택하는 사람이 적지만, 천국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문입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열매를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달콤한 말뿐인 행함 없는 위선의 삶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성도는 경건의 모양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통해 자기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 넓은 문과 좁은 문은 각각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나요?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렵지만 후일 선한 결과를 바라보며 선택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지혜로운 건축가 (24~29절)

겉만 보면 집이 얼마나 튼튼한지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강하게 불면 그 집의 상태가 어떤지 알게 됩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바람과 물을 만나면 쉽게 무너지지만, 반석 위에 세운 집은 아무리 큰 바람과 물이 들이닥쳐도 끄떡없습니다. 최후 심판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한 사람과 실천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 누가 진정으로 지혜로운 삶을 살았는지 판명 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매 순간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고 있는지 살피고,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을 돌이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기로 결단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롬 12:1).

*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되나요? 지혜로운 건축가가 되도록 내가 특히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 앞에 놓인 넓은 문과 좁은 문 사이에서 주저하지 않고 생명의 길을 택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만 읊지 않고 팔다리로 행하도록 믿음과 지혜와 힘을 더하소서. 거센 고난을 묵묵히 이겨 내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인생 되기를 간구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

 

[마태복음 7장 1절~12절]
1절 -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절 -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절 -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절 -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절 -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절 -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7절 -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절 -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절 -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절 -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절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절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배경 이해하기]
산상수훈 말씀 가운데, 예수님은 5~6장에서 주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이 지녀야 할 삶의 원리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이어서 7장에서는 실천적 규범을 강조하십니다. 7장의 첫 단락인 1~6절에서는 타인을 함부로 비판하는 일을 금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의 모습은 타인을 비판하기에 앞서 그를 사랑으로 감싸주고, 용서하고, 용납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도하는 것임을 제시하십니다. 두 번째 단락인 7~12절에서는 기도의 원리와 태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반드시 좋은 것으로 응답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방법으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기도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기도의 모습을 통하여 겸손한 믿음과 스스로 노력하는 태도, 그리고 기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까지 인내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은 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고 하시나요? 타인을 비판하는 자가 범하는 오류는 무엇인가요?(1~5절)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자신도 비판받게 되고,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헤아림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판하는 사람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신의 눈 속에 들보는 깨닫지 못합니다.
인간은 남의 죄는 쉽사리 발견해 지적하면서도 자신의 죄는 간과하는 악한 본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허물은 보지 못하면서, 남의 허물은 잘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기준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죄와 허물을 질책하기 이전에 나 자신에게 있는 죄를 먼저 다루어야 합니다. 내 눈 속에 ‘들보’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타인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려고 하는 것은 위선적인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비판하고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2절). 형제가 잘못을 범했을 때 그를 용서해 주지 않고 심판하면, 그 심판 때문에 우리도 마지막 날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니다. 또한 우리는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기 전에 나의 행동과 동기를 점검해야 합니다. 만일 누군가를 비판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먼저 스스로 동일한 비판을 받을 만하지 않는지 점검하십시오. 나 자신을 먼저 판단하고, 이웃은 사랑으로 용서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적용과 나눔
교회와 일터와 가정 등에서 나는 판단하는 사람인가요, 용납하는 사람인가요? 나의 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타인을 판단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기를 원하십니다. ‘판단하다’라는 말은 ‘비판하다’, ‘정죄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타인에게서 흠을 잡아내는 것으로, 타인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생각에서 나오는 행위입니다. 타인에게 부족한 점이 있거나, 그가 잘못을 저질렀거나, 타락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를 비난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손을 내밀어 그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타인의 실수나 단점을 비판의 눈이나 심판의 눈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눈, 곧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타인의 실수와 단점보다 나 자신의 죄를 크게 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이웃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 용납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이 성도의 참된 모습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기를 요구하시나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기도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7~11절)
기도 응답을 받기까지 구하고, 찾기까지 찾으며, 열리기까지 두드리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듯,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하늘 아버지이심을 믿을 때 담대히 필요를 구할 수 있습니다.
마태는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록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의 본질적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어떤 누구도 산상수훈에 기록된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간구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삼중적 기도의 방법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라는 세 가지 명령은 모두 하나님께 간구하라는 권면입니다. 첫 번째로 ‘구하라’는 것은 자신의 결핍을 인식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결핍과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두드린다’는 것은 구한 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믿음으로 바라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렇듯 주님이 제시해 주신 삼중적 기도 방법을 따라 기도할 때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때로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다면 기도의 자세를 달리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기도의 방법을 따라 기도할 때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적용과 나눔
최근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 응답받은 기도가 있나요? 나의 기도 생활에서 보완할 부분은 무엇인지 나누어 보세요.
응답받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성도가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또한 구체적이며 간절하게 내 필요와 간구를 아뢰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도의 올바른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해서 언제나 내가 원하는 방법과 원하는 때에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과 형태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확실히 응답하시지만, 다양하게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의 응답인지 알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더라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응답의 과정이 온전히 지날 때까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과정이 지나가고 결과가 나타날 때야 비로소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 가운데 자신이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한 후에는 믿음과 인내와 감사로 응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한 성도에게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 비판하지 말라는 것은 불의를 못 본 체하거나 잘못을 무조건 덮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불완전하니 서로 비판을 거두고 용납하라는 의미입니다. 죄는 미워하지만 죄인은 품어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 육신의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며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하나님은 기쁘게 응답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인내하며 기도하는 사람은 항상 좋은 것으로 응답받습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형제의 연약함을 비판하고 판단했던 교만을 회개합니다. 저를 용납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하며 기도하게 하소서. 날마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 하나님의 선한 응답을 경험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장 1절~12절]
1절 -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절 -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절 -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절 -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절 -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절 -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7절 -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절 -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절 -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절 -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절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절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비판한 대로 비판받을 것이니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눈의 들보를 뺀 후에야 형제 눈의 티를 빼 줄 수 있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아야 합니다. 구하고 두드리고 찾는 이에게 하늘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합니다.

 

1. 비판하지 마라 (1~6절)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향한 비판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은 쉽게 비판합니다. 이러한 행동의 이면에는 상대방보다 자신이 더 의롭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누군가를 마땅히 비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에 대해 몰이해하고 마음이 교만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손을 보십시오. 손가락 하나는 상대방을 향하지만,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합니다. 자신의 눈 속에는 들보 곧 건축물의 기둥 같은 큰 허물이 있는데, 상대방의 눈 속에 있는 티 곧 작은 먼지를 보고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비난하지 않고 서로 세워 주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 하늘나라 백성의 순례길입니다.

* 성도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비판의 입을 닫고 격려와 사랑으로 축복할 지체는 누구인가요?

 

2.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7~12절)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게 하시고, 두드리면 열어 주시는 것은 영적 세계의 원리입니다. 성도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의 간구에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아버지는 없습니다.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간절히 구하는 그분의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기도하고 응답하시는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말씀하신 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12절)라는 황금률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성도의 수직적 관계는 사람간의 수평적 관계로 이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좋은 것을 받은 자답게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 예수님은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셨나요?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보완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인생이기에, 제 간구가 미약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참된 위로와 소망 됩니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는 주님 말씀을 삶에 새겨, 비판 대신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 가는 저와 공동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염려를 묵상하지 말고 주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25절~34절]
25절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절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절 -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절 -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절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절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절 -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절 -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절 -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절 -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지 염려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새나 백합화보다 귀하며,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이 필요함을 아버지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더하십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아야 합니다.

 

1. 새와 꽃을 보고 생각하라 (25~30절)

염려는 인간 삶의 당연한 모습 중 하나입니다. 어떤 철학자는 '염려'(걱정)를 인간 실존의 모습으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처한 형편과 나약함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삶에서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염려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음식이나 의복으로 인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해야 합니다. 공중의 새와 들에 핀 꽃을 보면, 그것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이 엿보입니다. '하물며'(30절) 그분이 택하신 백성을 새나 꽃보다 더 소중하게 돌보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도에게는 '하물며'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자녀입니다.

* 하나님은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을 어떻게 돌보시나요? 하나님께 모든 염려를 맡길 때 내 마음과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2.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라 (31~34절)

사람은 살면서 저마다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하며 우선하는지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식주 문제가 기도의 핵심 내용이 되어선 안된다고 하십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것을 책임지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모든 것'에 마음을 뺏겨 하나님 나라와 뜻을 뒷전에 두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을 기준으로 올바로 정립되어 있는지 늘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내일에 대한 염려를 떨쳐 버려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오늘과 내일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주관자입니다.

* 예수님이 의식주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 나라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기 위해 내가 결단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안위와 행복을 스스로 얻으려다 염려와 근심을 쌓아 간 미련함을 떨쳐 버리길 원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저를 존귀히 여기시는 주님! 제 작은 믿음에 은혜를 더하셔서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시고, 제 삶을 책임지시는 주님의 손길 안에서 만족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올바른 금식 태도, 올바른 재물 사용

 

[마태복음 6장 16절~24절]
16절 -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절 -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절 -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9절 -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절 -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절 -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절 -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절 -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절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금식할 때는 슬픈 기색 없이 몸을 단정히 해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만 보여야 합니다. 보물은 땅이 아닌 하늘에 쌓아야 하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듯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기지 못합니다.

 

1.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금식 (16~18절)

하나님께 온전히 매달려야 할 때 우리는 '금식'합니다. 이는 철저히 낮아져 하나님만 의지하기 위한 결단의 표현이지만, 때로 은근히 자기 자랑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 유대인들은 금식 중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씻지 않거나 얼굴을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위선으로 보시고 금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십니다.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금식의 기간이나 횟수를 자랑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며 겸손한 모습으로 금식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 예수님 시대 유대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금식했나요? 내 삶에서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한 위선적 행동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2.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 (19~24절)

재물에 대해 주신 예수님의 말씀은 물질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때보다 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재물에 집착하며 사는 것은 땅에 보물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땅에 감춘 보물은 좀이 먹어 상하게 되거나 도둑이 훔쳐 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뜻을 따라 재물을 올바로 사용하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드림이 점점 약해지는 시대입니다. 보물을 쌓아 둔 곳에 마음도 있기 때문에 성도는 물질의 사용처에도 분명한 우선순위를 세워야 합니다. 자기 필요를 채우는 데 급급해 하나님의 일에 소홀해선 안 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니, 재물을 삶의 주인 삼아선 안 됩니다. 헌금 생활은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헌금 생활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세요.

 

오늘의 기도

제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가장 귀한 보배임을 고백합니다.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 두지 않고, 감사와 겸손과 섬김으로 썩지 않을 보물을 하늘에 쌓게 하소서. 공허한 땅의 것을 붙잡으려 움켜쥐었던 손을 펴서 하나님께 올려 드림이 기쁨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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