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통해 임한 하나님 나라

 

[마태복음 12장 22절~37절]
22절 -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절 -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절 -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절 -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26절 -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절 -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절 -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절 -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30절 -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31절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절 -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절 -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절 -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절 -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절 -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예수님이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자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쫓아냈다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성령에 힘입어 귀신을 쫓은 것이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한 것이며,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함받지 못한다 하십니다. 사람은 심판 날에 자기 말로 의롭다 함과 정죄함을 받습니다.

 

1. 세상 나라를 허무는 예수님의 권능 (22~30절)

대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만 봅니다.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 하는 사람을 예수님이 고쳐 주시자 이를 본 무리가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메시아에 대한 기대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기적을 행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 눈에 예수님은 너무도 평범해 보이기에 메시아일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가 사악한 귀신의 힘으로 이러한 일을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에 예수님은 마귀가 마귀의 나라를 스스로 허무는 일을 하지 않으며, 성령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미 도래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귀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힘을 가지신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그분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 귀신 들린 자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바리새인들은 무엇이라 비난했나요? 내게 임한 하나님 나라가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2. 성령을 좇는 삶 (31~37절)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의도적으로 성령의 일하심을 부인하고 그것에 대해 혹평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행동이 결코 용서받지 못함을 분명히 하십니다. '단지 말만 했을 뿐인데.'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말은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냅니다.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아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심판 날이 되면 사람들이 무익하게 한 모든 말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성령을 따르는 사람은 마음에 성령이 기뻐하시는 생각을 담고 있으며, 그것은 자연스럽게 말로 표현됩니다. 기도의 자리에서 올리는 간구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언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 의도적으로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나요? 내 말을 다 듣고 계신 하나님 앞에서 고쳐야 할 무익한 언어 습관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가 내뱉은 말이 심판 날에 의와 죄를 판단받을 기준이 되리라는 말씀이 두렵습니다. 제 입술의 모든 말이 오직 선한 향기가 되어 주님 앞에 기쁨으로 드려지게 하소서. 매 순간 제 안에 계신 성령과 함께 주님을 대적하는 교만과 불신을 막아서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택함받은 종의 길, 겸손을 겸비한 긍휼 사역

 

[마태복음 12장 1절~21절]
1절 -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절 -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3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절 -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절 -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6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절 -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절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9절 -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절 -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절 -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절 -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4절 -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15절 -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16절 -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17절 -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절 -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절 -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절 -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21절 -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자 바리새인들인 안식일을 어겼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보다 더 크며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십니다. 또 안식일에 선을 행함이 옳다고 하시며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자 거기를 떠나 사역하십니다.

 

1. 안식일의 주인 (1~14절)

유대인들은 안식일과 관련된 많은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기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을 걷다가 시장해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이에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은 다윗과 성전 제사장들의 경우를 들어 하나님이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성전보다 더 큰 안식일의 주인이시기에 그분의 판단은 옳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신 것은 안식의 참된 의미와 하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외적인 의식에 참된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신앙생활에서 본래 정신을 잃어버린 채 외형만 남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하나님이 택하신 종 (15~21절)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을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신 후에도 드러나고 높아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이사야의 글에 나오는 '하나님의 종' 예언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종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며, 그분의 영을 부어 이방 모든 나라에 공의를 베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그 종은 소리를 지르거나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긍휼과 평화의 방식으로 곤고한 자들을 돌아보아 마침내 하나님의 공의가 승리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 이 예언은 성도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지 잘 보여 줍니다.

* 택하신 종을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어떠한가요? 예수님의 모습에 드러난 겸손, 순종, 긍휼을 나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하나요?

 

오늘의 기도

제 신념을 고집하며 다른 사람을 정죄한 것을 용서하소서. 하나님께는 겸손과 순종을, 사람에게는 긍휼과 자비를 잃지 않으셨던 주님 모습을 선명히 새기길 원합니다. 늘 사랑에 집중하셨던 주님 뜻을 좇아 하나님을 높이고 사람을 살리는 저와 공동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쉼과 평안을 주시는 분

 

[마태복음 11장 20절~30절]
20절 -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절 -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절 -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25절 -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절 -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절 -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절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절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절 -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배경 이해하기]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전하신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입니다. 예수님은 선포된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시며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고을들’(마 11:20)은 갈릴리 지방의 도시들입니다(마 4:15, 23). 특별히 갈릴리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예수님이 많은 권능을 보이신 곳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이적을 보이셨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것에 대해 책망하시며, 고라신과 벳새다에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1:21). 고라신은 예수님의 초기 사역지인 가버나움에서(마 8:5) 약 3km 거리에 있던 곳입니다.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 동북쪽에 위치한 고을로(막 6:45; 눅 9:10),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며, 특별히 맹인의 눈을 치료해 주신 곳입니다(막 8:22). 또한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책망하십니다(마 11:23).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에 있어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곳이었으며, 동시에 많은 이적을 보이신 곳이었습니다(마 8:5~13, 14~17; 9:1~8).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은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을 어떤 도시들과 비교하며 책망하셨나요?(20~24절)
예수님은 고라신과 벳새다를 두로와 시돈과 비교하시고, 가버나움을 소돔과 비교하시며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고라신과 벳새다의 악함을 지적하시기 위해 두로와 시돈을 언급하십니다(21절). 두로와 시돈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악한 이방 도시들입니다(사 23장; 겔 26~28장; 욜 3:4~8). 또한 가버나움의 악함을 지적하시기 위해 당시 지상의 음부로 인식되던 소돔을 언급하십니다(23절). 두로와 시돈, 소돔을 언급하신 이유는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이 예수님의 이적을 가까이서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 죄악이 얼마나 큰지를 강조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벳새다에서 소경을 고치셨고(막 8:22~26),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눅 9:12~17). 또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셨고(요 4:46~54), 귀신 들린 자를 고치셨으며(막 1:21~28), 중풍병자를 치유하셨습니다(마 9: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에 더 큰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까닭은 그 도시들이 예수님의 수많은 이적을 경험했음에도 마음을 완악하게 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찾겠다’고 하신 것처럼(눅 12:48), 많은 은혜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그에 따르는 책임이 큼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이 경험하게 하신 특별한 은혜를 떠올려 보세요. 지금 나는 그 은혜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중 단연코 가장 큰 은혜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하나님이 베푸신 큰 사건을 믿음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값을 치를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를 기억하고, 받은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받은 사람이 행할 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은혜를 잊고, 마치 예수님 없는 사람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좇아 달려가는 인생의 모습들을 보면,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하는 음성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가 가장 큰 은혜를 얻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그에 해당하는 책임을 다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들은 그것을 온전히 행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에게 무엇을 약속하시나요? 예수님은 어떤 마음을 지니셨나요?(28~30절)
예수님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을 초청하시며 그들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안식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수고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피아오’(kopia,w)는 ‘육체적으로 곤고하고 지치다, 감정적으로 낙담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로마의 압박 속에서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낙담하고 지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또한 ‘짐을 진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르티조’(forti,zw)는 ‘누군가에 의해 무거운 짐이 지워진 자’라는 뜻인데, 여기서의 짐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의해 강요되는 율법적, 종교적 행위들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압제와 율법적 요구로 무거워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초청하시어 쉼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28절). 이 쉼은 단순히 육체적 쉼을 뛰어넘는 영혼의 안식, 진정한 안식인 천국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을 주시는 예수님은 자신에 대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온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라우스’(prau<j)는 친절하고 너그러움을 말하며, ‘겸손’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페이노스’(tapeino,j)는 낮아짐, 심지어 지위와 신분까지 낮추는 비천과 겸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기쁨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스스로를 낮추시고, 세상 사람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친절함과 너그러움으로 그들에게 참된 안식을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 앞으로 나아가 짐을 내려놓는 자들은 참 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적용과 나눔
나는 무엇 때문에 마음과 어깨가 무거운가요? 내 염려나 근심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나누어 보세요.
해가 거듭될수록 우리의 삶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뉴스에서는 힘든 상황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소식들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관계적인 어려움, 건강의 어려움 등 사람들은 최소한 한 가지 이상씩 어려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힘들고 지친 마음을 달래고자 다양한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도 우리에게 진정한 쉼과 안식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을 만나 어려움을 토로하며 대화해 보아도 진정으로 마음을 공감하며 위로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이시며 온전한 치료자가 되시는 예수님은 신음하고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우리를 날마다 그분의 참된 안식으로 초청하십니다. 그리고 세상과 사람들은 절대로 줄 수 없는 평안과 안식을 약속하시며 두 팔을 벌리십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아간 사람은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능력을 얻고 나아가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은 그분이 행하신 수많은 권능을 경험하고서도 회개하지 않은 고을을 책망하십니다. 주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 중심으로부터 회개하고 주님께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 날에 모든 사람은 행한 대로 보응받을 것입니다(롬 2:5~6).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값없이 초청하십니다. 그분은 온유하고 겸손하셔서 모든 사람을 받으십니다. 그 초청에 응답해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 참된 안식을 누립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주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성령께서 제 마음을 주장하셔서 마음 깊이 회개하게 하소서. 힘들고 어려울수록 주저하지 않고,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 품으로 달려가 진정한 평안을 얻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온유와 겸손으로 누리는 참된 안식

 

[마태복음 11장 20절~30절]
20절 -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절 -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절 -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25절 -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절 -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절 -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절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절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절 -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권능을 많이 행하신 고을들인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이 회개하지 않자 책망하십니다. 지혜로운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심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가 주님께 오면 쉼을 얻습니다. 주님의 멍에는 쉽고 그분의 짐은 가볍습니다.

 

1. 예수님을 믿지 않는 교만 (20~24절)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결과가 미약하면 실망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기적을 행하셨는데, 특히 갈릴리 도시들에서 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럼에도 회개하지 않는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을 향해 예수님은 엄히 경고하십니다. 예수님이 죄 많은 도시로 알려진 두로, 시돈, 소돔에서 사역하셨더라면 그들은 벌써 회개하고 돌이켰을 것입니다. 특히 가버나움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생생히 보는 특권을 누렸음에도 교만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가까이 있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목격하고도 교만하면 은혜의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성도는 교만함으로 특권과 은혜를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 예수님이 언급하신 두로, 시돈, 소돔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최근에 교만과 불순종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2.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 (25~30절)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신 자는 은혜와 평강을 누립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예수님으로 인해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인생입니다. 누구든 특권을 가졌어도 교만하면 음부에 처하지만, 낮은 자리에 있어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자로 살면 하나님 나라를 누립니다. 곧 예수님을 영접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하늘 혹은 음부에 처하는 엄청난 차이가 생깁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의 삶에는 참된 안식이 주어지는데, 그가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과시하는 위선적인 삶은 결국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은 삶이 되고 맙니다. 온유와 겸손을 구하며 순종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게 되고 우리 삶에 참된 평강이 임합니다.

* 참된 쉼을 얻기 위해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나요? 예수님 앞에 내려놓을 나의 무거운 짐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형언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 누린다 하면서도 제게 주어진 짐을 무겁게만 느꼈던 심정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오롯이 받는 것을 방해하는 교만과 불신을 떨쳐 버리고,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멍에를 함께 메고 온전한 쉼을 얻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온전한 믿음

 

[마태복음 11장 1절~19절]
1절 -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2절 -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절 -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절 -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절 -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7절 -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절 -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절 -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절 -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절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절 -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절 -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절 -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절 -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절 -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절 -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절 -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옥에 갇힌 요한이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 '오실 그이'가 맞는지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이 듣고 보는 것을 알리라 하시며, 그분으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 있다 하십니다. 요한은 곧 '오리라' 한 엘리야로, 주님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이 세대는 요한도 예수님도 오해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정체성

고통과 압제에 시달리는 백성은 구원자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로마의 압제 아래 있던 유대인은 자신들을 속박에서 해방시켜 줄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구원자를 바랐습니다. 유대인의 기대와 예수님의 모습은 거리가 멀었습니다. 세례 요한조차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이 메시아신지, 다른 메시아를 기다려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사야서를 인용해 자신이 메시아로서 하나님의 회복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확증해 주십니다(사 35:5~6; 61:1). 세례 요한이 메시아의 길을 예비해 놓았음에도 많은 유대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분에 대해 자기중심적인 비난을 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의 자녀 된 성도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바르게 이해하고 영적 회복을 갈망해야 합니다.

 

*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오늘날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을 더 사랑하고 작은 자를 영접한 상급

 

[마태복음 10장 34절~42절]
34절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절 -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절 -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절 -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절 -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절 -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40절 -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절 -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절 -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화평이 아닌 검을 주러 오셨기에 가족 안에 불화가 따릅니다. 가족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주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제자를 영접하는 자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기에, 제자인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상을 잃지 않습니다.

 

1. 잃으면 얻게 되는 역설 (34~39절)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이 세상에서 평강과 기쁨을 누리기 위함이라면, 이는 말씀을 오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강을 주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믿는 자는 예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리지만, 이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가장된 평강을 거부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며, 목숨을 잃을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신앙의 길을 걸을 때 참된 평강을 누립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보다 그분을 더 사랑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성도가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겪는 아픔과 손해는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선택하고자 기꺼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반드시 영생의 복을 누립니다.

*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내가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 (40~42절)

복음 전도자를 영접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하나님)를 영접하는 것이니라"(4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예수님-하나님'의 연결 고리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당시나 오늘날이나 복음을 전하는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냉수 한 그릇을 구해야 할 형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작은 자 같은 제자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자에게 상이 있다고 하십니다. 성도는 연약한 이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마땅히 호의를 베풀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작은 호의와 사랑을 기억하시고 상 주십니다.

* '작은 자'(42절)는 일차적으로 누구를 가리킬까요? 내가 작은 도움이라도 주며 격려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가 주님보다 더 열렬히 반응하는 것은 없는지요. 주님이 제 모든 것 되시기에 생명이 위험 받는 순간에도 주님만을 선택하는 믿음을 주소서. 작은 선행 하나도 결코 지나치지 않으실 주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제 손으로 사랑을 펼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담대함의 비결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33절]
16절 -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절 -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절 -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절 -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절 -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절 -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절 -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절 -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24절 -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절 -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절 -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절 -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절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절 -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절 -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절 -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절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절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하십니다. 사람들이 제자들을 공회에 넘길지라도 성령께서 할 말을 주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면 주님도 하늘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하실 것입니다.

 

1. 고난의 때를 사는 지혜 (16~23절)

세상이 교회를 환영한 시기는 없었습니다. 세상과 교회는 가치관의 충돌로 인해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는 예수님은 양을 이리 떼 속으로 보내시는 심정입니다. 그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와 '순결함'입니다. 제자들이 장차 '예수님 이름 때문에' 공회에 넘겨지고 이방 왕들에게 고난당하겠지만, 오히려 그 일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박해가 심해질 때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고난을 끝까지 견디는 일입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성도를 붙드시고 필요한 말을 주시는 성령입니다. 고난당하는 성도에게 가장 큰 위로와 힘은 예수님이 심판주로 다시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 예수님으로 인해 제자들이 고난당할 때 누가 함께하시며 도우시나요? 내가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함으로 대할 이는 누구인가요?

 

2. 하나님만 두려워할 이유 (24~33절)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제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님과 신실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제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 편이 아닌 예수님과 한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한마음, 한뜻이 되면 힘겨운 상황을 넉넉히 견디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이들이 제자들을 위협하겠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몸과 영혼을 모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제자들을 살피시고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진리를 선포할 자리에서 움츠러들면 안 됩니다. 생명의 위협 가운데서도 신실하게 예수님을 증언하고 복음을 전하면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그를 인정하리라 약속하십니다.

* 세상 권세자들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불신자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고 증언하는 말을 담대히 하나요?

 

오늘의 기도

사람들의 외면과 핍박이 두려워 복음을 담지 못한 제 입술과 행실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제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을 의지해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주님을 시인하게 하소서. 세상의 미움과 박해를 이상히 여기지 않고,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담대히 견디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부르심과 보내심

 

[마태복음 10장 1절~15절]
1절 -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절 -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절 -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절 -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5절 -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절 -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절 -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절 -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절 -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절 -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1절 -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절 -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절 -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절 -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배경 이해하기]
마태복음의 특징 중 하나는 소위 5대 강화(講話)라고 불리는 다섯 개의 예수님의 긴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기록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강화는 5:1~7:29절의 산상수훈 말씀, 두 번째 강화는 10장의 제자의 길에 대한 말씀, 세 번째 강화는 13장에 기록된 일곱 가지 천국 비유, 네 번째 강화는 18장에 기록된 하늘나라 시민의 생활 자세, 마지막 다섯 번째 강화는 24~25장의 감람산 강화입니다. 오늘 본문의 장면은 두 번째 강화인 ‘제자의 길’에 대한 예수님의 긴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것은 구속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공생애 3년 동안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은, 마지막 사명이셨던 십자가 구속사건 후 천국 복음 전파의 연속성을 위해 사람들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시고 천국 보좌에 앉아 계신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이어 갈 사역자들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불완전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신 천국, 도래한 천국을 확장시키고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완성할 사역자들이 필요할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로 하여금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이 부르신 열두 제자(사도)는 누구인가요?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떤 권능을 주셨나요?(1~4절)
예수님이 부르신 열두 제자는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어부였고(4: 18~22), 마태는 세리(9:9; 10:3)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생각나게 합니다. 열두 제자는 영적인 이스라엘로, 이스라엘의 심판과 구원, 소망 성취의 상징입니다(마 19:28; 행 28:20). 예수님이 열두 명을 제자로 부르신 이유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으로 삼아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제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쎄테스’(maqhth,j)는 ‘배우다, 익히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해 ‘배우는 자, 익히는 자’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님께로부터 참되고 명확한 진리와 천국의 비밀에 대해 배워야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로부터 제자로서의 마땅한 삶의 모습을 익혀야 했습니다. 한편 마태는 열두 제자를 ‘사도’로도 기록합니다(2절). ‘사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avpo,stoloj)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제자’가 배우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로서 제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힌 것을 전하는 사명까지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출신지나 경력, 지적 수준도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같은 제자들을 부르시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적용과 나눔
예수님의 제자인 나에게는 어떤 권능 또는 은사가 있나요? 복음을 전할 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오늘날 성도는 열두 사도의 사도적 지위를 공유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제자이며 동시에 예수님의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각자 삶의 자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복음 전파를 위해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각자 필요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롬 11:29). 하나님이 은사를 주신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일’, 즉 복음 전파를 위함입니다. 하지만 이 은사를 잘못 사용해 나의 유익을 취하고 나의 욕심을 채운다면, 하나님은 그에 대해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시고 사도로 세우신 열두 명은 특별한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세상적으로 볼 때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처지나 여건이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하나님은 권능으로 함께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디로 가라 하셨나요? 제자들이 할 일은 무엇이며, 전도 여행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5~10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의 고을이 아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가서 온갖 병든 자를 고치며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또 전도 여행을 위해 최소한의 것만 갖추라고 하십니다.
‘내보내다’(5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스텔로’(avposte,llw)는 ‘어떠한 임무를 주어 대리로 파견하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의 강조점은 첫째,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내는 자를 대리한다는 것입니다. 보내시는 예수님의 권위가 제자(사도)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셨던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할 수 있는 권위와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1, 8절). 둘째,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내는 자가 준 임무를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냄을 받은 열두 사도는 복음 전파는 물론 예수님의 모든 말씀에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의 고을이 아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야 합니다(5~6절).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이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선민 이스라엘 중 영적 위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8절).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라’(9절)는 말씀을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얻은 하나님 나라 복음의 소식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보답을 기대하거나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내신 이가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10절).
적용과 나눔
가족이나 친척 중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가 있나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구체적인 방법이나 아이디어를 나누어 보세요.
세상에는 하나님 나라와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십니다(딤전 2:4). 오늘도 복음 전도자들은 세상 이곳저곳을 누비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교사들처럼 먼 곳에 나가 복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에는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며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여기서 자기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육체적 돌봄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영혼 돌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가족 중에, 또 가까운 이웃 중에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에게는 복음 전파의 사명이 있기에 영혼을 돌보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선물로 허락하실 것입니다.

 

* 예수님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자랑할 것 하나 없는 이들을 열두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제자로 부르셨을 뿐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킬 사도로 파송하시며, 사역에 필요한 권능을 그들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보내신 분의 권능으로 맡겨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복음 전파의 사명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주님을 의지하고 말과 행동으로 이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그분의 제자입니다. 먼저 주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주님이 우리 삶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보잘것없는 저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상에 보내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권능과 은사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은혜로 감당할 복음 전파의 사명

 

[마태복음 10장 1절~15절]
1절 -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절 -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절 -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절 -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5절 -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절 -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절 -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절 -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절 -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절 -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1절 -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절 -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절 -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절 -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귀신을 내쫓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십니다. 제자들은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전파하고,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귀신을 쫓아내되 거저 주어야 합니다. 여행을 위해 최소한의 준비만 갖추고, 어떤 집에 들어가든 평안을 빌어야 합니다.

 

1. 열두 제자를 부르심 (1~4절)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할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부르심'이 의미하듯 사람들이 와서 제자 삼아 달라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각 사람을 부르셔서 제자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칠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태는 열두 제자를 '사도'('보내심을 받은 자'란 뜻)로 부릅니다. 이는 사도행전에서 자주 사용하는 호칭입니다. 제자들은 단지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것을 전하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주님의 은혜로운 '부르심' 받았음과 동시에 사명을 감당하도록 '보내심' 받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와 사명을 선명히 인식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삽니다.

* 열두 제자는 어떤 방식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나요? 내 삶은 '부르심'과 '보내심', 곧 은혜와 사명이 조화를 이루나요?

 

2. 제자들을 파송하심 (5~15절)

성도는 예수님의 주요 관심사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길을 걸을 때 곁길로 가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파송하시는 장면에서 예수님의 주요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이 가까이 왔다"(7절)라고 전파하라 명하십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권능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 금이나 은, 두 벌 옷이나 지팡이를 가져도 안 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해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물론 특정 세부 사항을 일반화시켜 오늘날 성도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임재를 드러내는 일은 꼭 필요합니다.

* 파송받은 제자들이 전파해야 하는 핵심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나의 주요 관심사는 예수님의 관심사와 얼마나 비슷한가요?

 

오늘의 기도

아무 자격 없는 저를 은혜로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의 귀환 사명을 맡겨 주시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오직 주님만 의지하며 복음을 충성되이 전하게 하소서. 사람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 사명을 끝내 이루셨던 주님의 능력을 제게 덧입혀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예수님의 긍휼 사역과 상반된 반응

 

[마태복음 9장 27절~38절]
27절 -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절 -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절 -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절 -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절 -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32절 -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절 -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절 -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35절 -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절 -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절 -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절 -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두 맹인과 귀신 들려 말 못 하는 사람을 고치십니다. 무리는 놀랍게 여기나 바리새인들은 귀신의 왕을 의지해 귀신을 쫓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불쌍히 여겨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십니다. 제자들에게는 추수할 일꾼들을 청하라 하십니다.

 

1. 예수님의 치유와 바리새인들의 반응 (27~34절)

동일 사건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간청했던 두 맹인, 귀신 들려 말 못 하는 사람의 치유를 본 무리,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반응이 각기 다릅니다. 예수님을 통해 보게 된 두 맹인은 예수님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당부하셨음에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많은 사람에게 전합니다. 귀신 들려 말 못 하던 자가 나은 것을 본 무리는 기이히 여기며 놀랍니다. 반면에 같은 사건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힘을 빌려서 이같은 일을 한다고 비난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을 보고 찬양하며 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훼방하고 대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일하심에 믿음으로, 순종으로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 두 맹인과 무리,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반응은 어떻게 다른가요?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자비를 경험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2.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36~38절)

성도는 예수님이 사람을 보시는 관점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신 이유는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많은 사람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경제적 가난과 영적 곤고함 가운데 살고 있는 많은 무리를 보셨습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처럼 향방을 모르고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를 찾지 못해 지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연약한 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해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성도에게 있습니다. 긍휼의 눈으로 사람들을 볼 때 비로소 그들에게 꼭 필요한 구원이 보입니다.

*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보시며 예수님은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추수하는 일꾼으로서 내가 참목자이신 예수님께 이끌 사람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목자 없는 양 같던 제 삶에 찾아오셔서 치유하시고 회복하시는 주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일에 대한 모든 의심을 거두고 기쁨으로 찬양하게 하소서. 주님의 마음을 품은 선한 일꾼이 되어 세상에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고 두루 전파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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