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벧엘에서 온 유대인들

포로기의 유대인들에게는 예루살렘 멸망을 기리기 위해 유대인들이 제정한 금식의 날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의 보증을 받은바 없는 완전히 그들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진실한 헌신으로 이날을 지켰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단순한 의식이 되어 있었다. 이방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그날을 없애려 했지만 제사장으로부터 공인을 받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현대 유사 기독교의 많은 문제들처럼 이 문제는 그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형식적이며 무익한 것이다.

2. 유대인의 금식
율법적이었던 유대인의 금식은 스가랴의 책 속에서만 등장하는 문제가 아니다. 신약에 들어서 예수님의 지탄이 되었던 외식적인 금식이었던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다른 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시장에서 금식을 하고 일부러 힘든 표정을 지어 금식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1) 외식적인 금식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하여 하나님을 위해 금식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금식을 했던 것이다(슥7:5,6). 포로 생활에서의 힘든 삶을 하나님 앞에 부르짖던 금식이 편안한 삶 속에서는 외식적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들은 자신의 육체적인 쾌락을 위하여 금식을 행했다. 그들은 진정으로 죄에서 떠나서 하나님 앞에 금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려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2) 금식하는 자세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올바른 태도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비단 금식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나갈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대로 다른 이들에게 보이고자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날이 오면 갈급함과 애통의 의미를 갖는 금식은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로 변화될 것임이 기록되어 있다(슥8:19).

3. 성도들의 삶

1) 공의를 베푸는 삶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해롭게 하지 말며 진실한 재판을 행하고 인애와 긍휼을 베풀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이것은 외적인 삶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이웃을 해치려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슥8:16,17 말씀을 통해 성도들의 삶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며 마음으로 서로 해칠 것을 생각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여러 가지 방식을 취한다. 먼저 구약에서 율법을 내려 주셔서 성도들의 삶의 방향을 정해 주셨다. 그리고 이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게 따르지 않자 선지자를 계속적으로 보내셔서 말씀을 전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단 하나의 구원의 문이며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약의 율법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셨기 때문이다.

4. 언약의 회복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시고자 했지만 종국에 가서는 하나님이 백성을 괴롭히는 대적들을 모두 멸망시킬 것이며 예루살렘은 회복될 것이다. 즉 백성들은 시온으로 돌아와 예루살렘에서 거하게 되며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 회복된 예루살렘에는 고난이 없으므로 생명이 길어져 노인들이 많고 또한 아이들이 가득할 것이 예언되어 있다. 이 모습은 사65:20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회복된 하나님의 성은 평화롭고 사람들의 수명이 길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돌이키사 은혜를 베푸시겠노라고 말씀하셨다. 그와 더불어 성도들이 행해야 할 삶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삶과 삶의 정신은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기도 하다.

5.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여러 가지 금식

사월의 금식 : 시드기야왕 4월 9일(B. C. 586년)에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에 정복한 사건을 기억하여 지킨 금식을 가리킨다(왕하25:3,4).
오월의 금식 : 바벨론왕 느부갓네살 19년 5월 7일 바벨론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과 왕궁을 파괴한 사건을 기억하여 지키는 금식을 가리킨다.(왕하25:8,9 ; 렘52:12,13).
칠월의 금식 : 유다의 총독 그달리야가 암살된 것을 기억하여 지키는 금식이다(왕하25:25 ; 렘41:1-3)
시월의 금식 : B. C. 588년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시작한 날을 기억하여 지키는 금식이다(왕하25:1).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스가랴 선지자가 8개의 환상을 본지 2년이 지났다. 이때는 이미 성전 재건이 어느 정도 많은 진척이 있었을 때였다. 어느날 벧엘에서 온 몇 사람들이 '금식에 관한 질문'을 하였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성이 훼파된 4월, 왕국과 성전이 무너진 5월, 그달랴 총독이 죽은 7월, 끝으로 예루살렘성이 포위되기 시작한 10월, 이렇게 네번 금식을 하였다. 그런데 벧엘에서 온 사람들이 질문한 요지는 해방이 된 오늘날도 그 옛날 일을 계속해야 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에 대한 스가랴의 답변이 본문의 내용이다.

1. 금식에 대한 질문과 첫번째 답변(슥7:1-7)
본문은 벧엘 사람들이 계속해서 5월에 금식해야 하는지를 질문하고, 하나님께서 답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찌하여 5월에 금식을 하였는가? 그리고 벧엘 사람들은 어찌하여 5월에 금식을 하였는가? 그리고 벧엘 사람들이 물은 질문의 요지는 무엇인가? 이때 하나님의 답변은 무엇이겠는가?

1) 금식보다 우선되는 순종
이스라엘에게 5월은 치욕적인 달이다. 그 달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게 함락되어 성전은 불에 타고 왕궁은 폐허가 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5월이 되면 그 때를 기억하여 슬피 울며 금식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훼파된 성전이 힘차게 재건되고 있고, 포로에서 귀환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벧엘 사람들은 이러한 시점에서 굳이 상처 있는 과거를 회상하여 슬퍼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제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금식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2)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시는 하나님
사무엘은 불순종하는 사울 왕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상15:22) 라는 말씀으로 그를 경고하셨다. 우리가 성경 속에서 나타난 번영과 실패의 뒤안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느냐 불순종했느냐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말씀의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망각한채 형식적인 제사 의식 속에서만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신앙의 결과는 공허와 허무뿐이다.

2. 실생활의 의를 촉구함(슥7:8-14)
하나님의 앞단락에 이어 금식 준수의 진정한 의의가 무엇인지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그럼 하나님께서 두번째로 답하신 금식 준수에 대한 답변은 무엇인가? 더불어 하나님은 조상들의 불순종을 상기시켰다. 그럼 조상들이 범한 불순종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떠했나?

1) 삶 속에서의 의로운 생활
하나님은 앞단락에서 금식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순종함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이번에도 하나님은 금식 준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정의를 구현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답변을 하셨다. 이같은 말씀은 이미 오래 전에 조상들에게 간곡하게 권면한바 있었다. 하지만 조상들은 이를 완강히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반항의 표현으로 돌릴 정도였다. 이에 하나님은 크게 진노하시며 그들의 어떠한 부르짖음에도 듣지 않으셨고,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맡기어 열국으로 삼으셨으며, 이스라엘 땅이 황무지가 되도록 징계하셨다. 결국 이스라엘 조상들은 불순종의 대가를 혹독히 치루었던 것이다. 따라서 금식 준수 이전에 생활 속에서 의와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2) 공의를 행하라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할 때의 북이스라엘은 최고의 번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성장은 종교적인 타락과 도덕적인 부패를 야기시켰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바알 숭배의 종교적 타락을 꾸짖었고, 아모스 선지자는 사회에 팽배해진 불의를 질타하기도 하였다. 현재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 정도 의식주 문제는 해결되고 있다. 하지만 도덕과 윤리의 부패는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이때가 비로소 성도들의 신앙의 빛을 발할 시점이라 사려된다.

3. 기쁜 절기로 바뀌게 될 금식(슥8장)
본문은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세번째, 네번째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 하나님의 세번째 답변은 무엇이며, 네번째 답변은 무엇인가? 그리고 본문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라는 칭호가 총15회,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는 칭호가 10회에 걸쳐 나오고 있다. 그럼 이 말씀이 이렇게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임하게 될 기쁨
하나님의 세번째 답변은 예루살렘의 영원한 회복을 약속하시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성전 재건이 이루어지는 그 땅을 축복하사 많은 추수를 거두도록 하시겠다는 용기와 소망을 주었다. 아울러 하나님의 백성답게 실생활에서 도덕적인 의를 다하도록 권면하셨다. 끝으로 하나님의 마지막 답변은 지금까지 행했던 네번의 슬픔의 금식이 때가 되면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동시에 새 예루살렘에 영원한 구원이 있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금식에 대한 답변을 마치셨다. 하나님께서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강조하여 사용하신 이유는 당시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2) 순종하는 자에게 임하는 상급
순종하는 자에게 상급이 임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증해 주신 축복이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저주마저도 축복으로 바뀌게 된다. 저주를 받아 기업을 잃게 된 레위 지파도 비느하스의 의로운 순종에 힘입어 다른 지파의 십일조를 받게 되는 축복을 누렸던 것이다.

하나님은 본문에서 금식 준수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금식 자체보다 더 중요하고 순종해야 할 본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성취이자 새 언약의 완성자이신 메시야가 예루살렘을 영원히 회복하시고 구원을 베푸신다는 소망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모든 신앙 행위를 버리고 이제는 메시야를 대망하며 동시에 메시야를 소망하는 성도답게 이 땅에서의 삶 속에서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홍마를 탄 사람들(슥1:7-17)

홍마를 타고 온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루살렘을 감시하는 천사들과 함께 오신 그리스도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는 고난받는 예루살렘에 대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해주신다.

2. 짐승의 네 뿔(슥1:18,19)

짐승의 네 뿔은 이스라엘을 흩어지게 만든 네 세력을 의미하고 있다. 즉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 유대인을 없애려 했던 바사, 후에 나타날 로마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3. 네 명의 공장(슥1:20,21)

이 공장들의 정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으로는 크게 두가지가 있어 왔다. 그 한가지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네가지 심판을 나타낸다는 의견이며, 또 한가지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네 세력을 멸망시킨 세력이라는 주장이다.
즉 바벨론을 멸망시킨 고레스, 바사를 패배시킨 알렉산더 대제, 헬라를 정복한 로마의 장군들 그리고 로마를 멸망시킬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 공장들은 이전의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을 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슥1:21).

4. 척량줄을 가진 사람들(슥2:1-13)

성경에서 예루살렘이나 성전을 척량하는 네가지의 사례 가운데 한가지로 천년왕국 때 척량될 것이다. 천년왕국의 예루살렘은 사람이 매우 많아서 성벽 밖까지 살 것이며,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보호하실 불 성곽이 되실 것이다.
성경에 성전을 척량한 나머지 세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다. 우선 계11:1,2에서 성전은 대환란 때에 척량된다. 그리고 겔40:3,5에서는 천년왕국 때, 계21:15에서는 천년왕국 시대 이후에 척량될 것임을 알리고 있다.

5. 하늘에서 여호수아와 사단의 대결 (슥3:1-10)

이 구절을 통해서 사단은 지옥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전에 머물러 있으면서 성도들을 참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단의 참소는 여호수아도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깨끗한 옷을 입히시며 사단을 책망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주시다. 이 부분에서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순'(旬)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주를 믿는 성도들의 더러워진 영혼을 깨끗케 하시고 사단의 참소로부터 성도들을 지켜 주시며 천년 왕국을 통치하실 것이다.

6.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슥4:1-14)

성경에서 등대는 하나님의 증인을 나타내는 말로 스가랴서에서는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있는 말이며 감람유는 성령을 가리키고 있다. 이 감람나무는 두 분류를 나타내고 있는데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엘리야와 모세의 예언적 분류로 나타내고 있다.

7. 날아가는 두루마리(슥5:1-4)

스가랴가 본 두루마리는 장이 이십 규빗이고 광이 십 규빗이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저주의 말씀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여기서 맹세에 대한 것과 도적질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심판의 때는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이며, 이 심판은 육체와 영적인 죽음 모두를 포함하게 될 것이다.

8. 에바 가운데 있는 여인(슥5:5-11)

스가랴가 무거운 납조각으로 덮어 있는 날아가는 에바(바구니)를 보고 있을때 뚜껑이 열리며 한 여인이 그곳에 앉아 있음을 보았다. 그녀는 죄악을 나타내는 여인으로 뚜껑은 하나님께서 악을 제어하실 능력이 있으심을 알려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바로 악이 머물게 될 바벨론 도성이다.

9. 네 병거(슥6:1-8)

두 놋산 사이에서 나온 하늘의 네 바람이 모는 네 병거를 보았는데 서로 다른 빛깔의 말이 병거를 끌었다.
여기서 두 놋산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키며 병거들은 심판을 수행할 하나님의 사자를 가리킨다. 한편 홍색은 전쟁과 유혈, 백색은 거짓 평화, 흑색은 기근과 기아, 회색은 죽음을 각각 의미한다.

10. 면류관을 쓴 여호수아(슥6:9-15)

스가랴는 세명의 유대인 포로가 바벨론에 남은 자들에게 선물로 받은 은과 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여호수아에게 이 선물과 금관을 씌워주라는 명을 받는다. 여호수아는 메시야를 상징하는데, 메시야는 제사장이며 왕으로서 하나님의 전을 세울 분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다리오왕 2년 11월 24일 스가랴 선지자는 하룻밤에 8가지 환상을 보았다. 이날은 성전 재건을 시작한지 5개월째 되는 날이며, 이들에게 축복을 약속한지 2개월째 되는 날이다(학2:18,19). 따라서 8가지 환상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상들은 전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악한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동안의 고난을 떨쳐버리고 용기와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1. 첫째, 둘째, 셋째 환상(슥1:7-2:13)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환상들을 보았다. 그는 첫째로 홍마를 타고 화석류 나무 사이에 있는 자를 보았으며, 둘째로 네 뿔과 공장 4명을 보았고, 셋째로 척량줄을 잡고 있는 자를 보았다. 각각의 환상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1) 낙심된 자에게 용기를 주는 환상
스가랴가 본 첫번째 환상은 하나님께서 시온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시기 위하며 평화로운 세계를 재건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두번째의 환상 중에 네 뿔은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4개의 대적자 곧 앗수르, 바벨론, 헬라, 로마를 상징한다. 그리고 4명의 공장은 하나님의 사자들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4개 국가를 멸망시킨다는 것이다. 즉 두번째 환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원수들을 심판하사 멸망시키신다는 것이다. 세번째 환상은 그동안 황폐했던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재건하시고 보호하사 영화로운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드시겠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번영과 안전을 보장해 주시고, 원수들의 멸망을 보증해 주시겠다는 말씀은 백성들에게 한없는 기쁨과 용기를 주었다.

2)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현실적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올 것 같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악인들이 형통케 되는 것을 볼 때 성도들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한 약속을 주셨다. 반드시 메시야 시대가 올 것이며, 또한 악인들은 심판받아 영벌에 처하게 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이 우리 앞에 임하게 되리란 것이다.

2. 넷째, 다섯째, 여섯째 환상(슥3:1-5:4)
스가랴는 계속해서 환상을 보게 된다. 네번째 환상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사단에게 고발을 당하나 결국은 영광의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쓰게 되는 장면이었으며, 다섯번째 환상은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를 본 것이다. 그리고 여섯번째로는 날아가는 두루마리의 환상을 보았다. 그럼 이 세가지의 환상은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가?

1) 평화로운 시대의 도래
스가랴가 본 네번째 환상에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녀들을 상징한다. 따라서 '내 종 순'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죄가 사함받고 이 땅의 죄악을 제하시사 마침내 평화로운 은혜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알려 주고 있다. 다섯번째 환상에서 등대와 일곱 등잔은 성전뿐만 아니라 신약 시대의 교회를 상징한다. 그래서 지금의 성전 재건이 스룹바벨의 손에서 반드시 성취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감람나무는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두 직임, 곧 왕과 제사장 직분을 말하며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가리킨다. 또한 이 두 직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될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여섯번째 환상은 이전의 5가지 환상과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 이 환상은 도적질하는 죄와 거짓 맹세하는 자를 심판하시겠다는 내용이다. 이 두가지 죄는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율법과 언약을 거절한 죄로써 이 죄악을 심판하사 메시야 시대가 도래할 때에는 이 죄악이 소멸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2)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범한 대표적인 죄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 맹세하여 언약을 저버린 죄이며, 동시에 이웃의 것을 도적질하는 등 율법을 저버린 죄악이다. 이 모든 죄는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배반한 행위이다. 하나님은 이 죄를 반드시 저주하사 불사르겠다고 하셨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을 망각하고 내 생각대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3. 나머지 환상들(슥5:5-6:15)
스가랴는 일곱번째 환상을 보았다. 이는 죄악을 에바에 담아 먼 이방 시날 땅으로 옮겨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여덟번째 환상은 두 산 사이에서 나온 네 병거를 본 것이다. 그럼 이 두 환상에 담기 각각의 의미는 무엇인가? 끝으로 스가랴는 여호수아의 대관식을 보게 되는데, 이 대관식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1) 환상들을 성취하실 순되신 그리스도
스가랴가 본 일곱번째 환상은 예루살렘에 있던 불경건함이 죄악의 소굴인 시날 땅으로 옮겨져서 예루살렘은 거룩하게 된다는 예언을 담고 있다. 이 환상은 앞으로 도래할 메시야 왕국에서는 어떠한 죄악도 용납될 수 없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스가랴가 마지막으로 본 여덟번째 환상에서 네 병거는 사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온 열방을 뜻한다. 그래서 이 환상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시만이 임하사 하나님 백성들의 최후 승리를 예고하는 것이다. 이는 곧 원수들의 완전한 멸망이요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끝으로 스가랴는 대제사장인 여호수아의 대관식을 보게 된다. 이는 왕이며 제사장이신 '순', 다시 말해 여호수아에 의해 예표된 그리스도의 강림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이 그리스도가 스가랴가 본 8가지 환상을 이루실 분임을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2) 믿음으로 기다려야 할 환상들
하나님은 때때로 환상을 통하여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셨다. 요셉도 다니엘도 그들이 본 환상을 소망할때 그 환상들이 삶 속에서 이루어진 역사를 체험하였다. 그렇다면 스가랴가 본 환상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소망해야 할 하나님의 계획들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다만 우리들이 그 하나님의 계획을 소망하며 기다릴 때 그 언약의 축복에 동참케 되는 것이다.

스가랴가 본 8가지의 환상들은 '새 언약' 시대의 도래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성전 재건에 힘을 모은 백성들에게 엄청난 도전과 용기를 주는 것이었다. 또한 이날을 대망하는 성도들의 자세에 대해서도 깨닫게 해주었다 결국 눈앞의 현실보다는 다가오는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하루 하루를 준비하며 소망 중에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임을 스가랴는 무언중에 외치고 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스가랴서의 특징

1) 문학적 특징
스가랴서는 일반적으로 두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문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앞부분(슥1-8장)은 산문체로 되어 있고 뒷부분(슥 9-14장)은 시적인 문체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뒷부분은 묵시 문학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단일인임은 의심받고 있지 않다. 비평학자들은 앞부분에서 사용된 선지자, 이름, 시대, 사단 등의 기록이 뒷부분에 가서 발견되지 않는다거나 사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동일 저자가 아님을 주장하고 있지만 공통된 표현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은 주제의 변화 때문에 일어나는 차이로 보아 저자의 통일성은 의심할 수 없다.

2) 내용적 특징
앞부분 환상을 통해 종말론적 희망과 메시야 왕국의 왕으로서 스룹바벨을 제시하는 등 신학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뒷부분 스가랴 9-11장에서는 수리아와 베니게, 블레셋에 임할 여호와의 심판을 예언하였고 스가랴 12-14장에서는 이방 세력의 최후 공격과 그 성읍의 구원과 여호와께서 최후의 승리를 하실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스가랴의 환상은 다리오 왕의 통치하의 종말론적 분위기 속에서 발전된 묵시 문학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선지자 스가랴 이전에 예언되던 종말 사상과 묵시 문학은 이때 결합되어 스가랴의 환상을 해석하고 새로운 지배 계급의 권위를 보장하려 하기도 하였다.

3) 신학적 특징
스가랴는 그의 책에서 많은 신학적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많이 하고 있으며, 구원론과 더불어 말세론까지도 다루고 있다. 기독론에 있어서는 메시야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것(슥9:9), 은 30냥에 팔리실 것(슥11:12,13), 십자가에 달리실 것(슥12:10), 십자가의 피로 우리 죄를 씻으실 것(슥13:1) 등이다. 메시야 사상은 스가랴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선지자 이사야, 미가, 예레미야, 에스겔, 학개 등에 의해서도 발전되고 심화되었다. 또한 스가랴는 구원론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환상을 통해 예언하고 있는데 사단에게 정죄받는 더러운 옷 입은 여호수아의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는 환상은 메시야께서 죄를 깨끗게 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스가랴에 의한 여호와의 날은 심판의 날이며 구원의 날이고 하나님의 영광의 날이 될 것이다. 그에 의하면 그 날이 되면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멸망할 것이며, 성 예루살렘이 이루어지고 이방인들은 예루살렘에 몰려올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2. 여호와의 진노하심

1)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이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악한 행실을 용납치 않으시고 원하지 않으신다. 이스라엘은 그들 조상의 악한 행실을 본받고 있었다. 그리고 선지자의 말을 그들 조상들이 듣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 또한 듣지 않았다. 그들의 범죄 행위는 불신앙과 우상 숭배, 위선 등이었다. 이러한 잘못된 생활은 여호와의 진노를 부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2) 회개의 요구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심판이 아니다. 스가랴는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고 있는데 하나님께 돌아올 것과 열조들을 본받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과거에도 끊임없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조상들의 행실을 본받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3) 열조들은 어떻게 되었나?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제한되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모든 인간은 죽음에 이르고 열조들이나 선지자들이나 모두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존재하고 영원히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 빗나감이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말씀은 현재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일인 것이다.

3. 아이성 싸움


수 7:3-7에 걸쳐 등장하는 아이성 싸움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나친 자만에 대한 교훈을 주는 부분이다.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 이스라엘은 자만이 지나쳐서 한낱 작은 성에 지나지 않던 아이 성을 얕잡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명목상의 전투 부대만 보내기로 하였지만 이스라엘 군대는 참패를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대적은 작을지라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며 생활 속에서 항상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스가랴 선지자는 앞으로 임하게 될 메시야와 그의 나라 그리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통치를 바라보면서 이때를 맞이하기 위해서 백성들이 먼저 진실되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스가랴 선지자는 이스라엘 조상들이 생전에 범했던 행악들과 사악함 그리고 이에 대해 진노하사 임했던 심판들을 상기시키면서 열조들의 죄악을 본받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여호와 앞에서 자복하는 자만이 앞으로 임하게 될 영광스런 축복에 동참하게 될 것을 가르친다.

1. 열조에게 진노하셨던 하나님(슥1:1,2)
하나님은 다리오왕 2년 8월에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하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파할 당신의 말씀을 전하셨다. 이 날짜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열조의 죄악에 대해 진노하셨는데, 이는 역사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 동시에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를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열조에게 진노하셨던 하나님
다리오왕 2년 8월은 학개 선지자가 사역을 시작한지 2개월 후의 일이요, 이미 성전 재건이 시작된 후이다(학1:1,15). 따라서 이렇게 정확한 날짜를 기입한 것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동시대에 같은 사명을 하여 백성들을 격려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조상들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진노가 여실히 드러났던 사건은 바로 주전 586년에 성전은 물론이거니와 나라마저도 멸망 당했던 일이었다. 이때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무참히 짓밟혔으며 또한 포로로 끌려가 비참한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이러한 지난 과거를 다시 상기시킨 이유는 당대의 후손들이 조상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심어 주기 위해서였다.

2)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지난 과거를 되돌아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미래는 과거의 연장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하나님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와 동행할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제는 나의 하나님으로 내 안에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그분을 보았던 것이다.

2. 내게로 돌아오라(슥1:3,4)
하나님은 백성들을 향하여 "그러므로…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럼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슥1:3에서만도 '만군의 여호와'를 세번씩이나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끝으로 너희 열조의 무엇을 본받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가?

1) 친밀한 관계를 원하시는 하나님
학개서를 보면 이미 백성들은 마음이 흥분되어(학1:14)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시리라 (학1:13)는 축복의 말씀을 받았다. 따라서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은 여호와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오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더욱더 친밀한 관계를 원하신다. 그럴 때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니"라는 약속을 하나님은 하고 있다. 이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만군의 여호와'라는 언약의 명칭으로 보증하고 있는 것이다. 백성들은 이때 용기와 새 힘을 갖게 된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위해서는 열조들의 악한 길과 악한 행실을 본받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길'과 `행실'은 상징적인 의미로 `삶의 방식'을 뜻한다. 결국 나라의 멸망을 몰고 온 그릇된 삶의 방식을 가졌던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2) 여호와께 돌아가자
주홍같은 진홍같이 붉은 죄악을 지닌 우리들을 향해 "와 우리가 변론하자"고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마귀의 음흉한 흉계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이 세상에서 믿음의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오직 여호와께로 돌아가야만 한다.

3.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슥1:5,6)
슥1:5에서는 두 개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열조들이 "돌쳐 이르기를"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슥1:6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열조들의 고백이라 할 수 있는데, 열조들이 깨닫고 고백한 내용은 무엇인가?
1)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계획
두 개의 질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살아서 역사한다는 진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열조들은 주의 말씀을 증거한 선지자들도 결국은 죽어서 사라지는 존재에 불과함을 대조적으로 보여 주는 말씀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돌쳐 이르기를"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진노로 바벨론에게 끌려가는 열조들이 말했던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경탄하면서도 그 말씀을 믿지 못했던 자신들의 무지를 탄식하는 말이다. 이때 열조들은 자신들의 죄악에 대해 경고하셨던 하나님의 뜻대로 징계가 임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열조들은 비록 징계를 받은 몸이지만 늦게나마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고백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열조들은 회개의 기회를 놓친 뒤였기에 이러한 고백이 무의미하였다.

2) 영원히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않는 우리들이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 해답은 자명해진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을 향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원하고 계신다. 그 뜻은 바로 이 세상의 음란을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살전4:3)

스가랴 선지자는 지난 과거를 돌이키면서 현재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열조들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강한 권고였다.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 길만이 메시야의 영광스런 도래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스가랴는 본격적으로 자신이 본 이상과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전파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사모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스가랴서의 서론

성전 재건이라는 커다란 포부를 안고 바벨론에서 본국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방해와 의욕 상실로 성전 공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이때 학개 선지자와 함께 스가랴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성전 재건을 추진하도록 독려하였다. 스가랴는 성전 재건이 단순한 공사가 아니라 앞으로 오실 메시야의 영광을 성전에 모시도록 하는 성스러운 일이며, 미래를 건설하는 일이라 설득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용기를 얻어 힘을 모아 성전 재건을 완성하였으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기로 하였다.

2. 스가랴서에 대한 고찰

1) 저자 스가랴
제사장의 후손인 스가랴는 바벨론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책은 팔레스틴에서 쓰여졌다. 그는 B. C. 520년경부터 선지자의 사역을 시작하였다.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의 스가랴는 스가랴서의 내적 증거를 통해 스가랴서의 저자로 인정받고 있다. 교회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성전에서 죽임을 당한 스가랴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위한 최초의 순교자라고 묘사하기도 하였다.

2) 스가랴서에 등장하는 예언
스가랴서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종이며 순(筍)처럼 날 메시야(슥3:8), 비천하게 오실 그리스도(슥6:12),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슥6:13), 여호와의 성전을 지으심(슥6:12,13), 승리로 입성하는 메시야(슥9:9), 은 삼십을 위한 배신에 대한 예언(슥11:12,13), 예수께서 손과 발에 못박히심(슥12:10), 하나님께서 치신 목자로서의 그리스도(슥13:7), 주님께서 감람산으로 돌아오실 것임(슥14:3-8) 등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그 어떤 소선지서 보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많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에도 종말론에 대한 예언을 많이 담고 있는데, 예루살렘이 포위될 것(슥12:1-13 ; 슥14:9,16), 열국을 심판하심(슥12:9 ; 14:3), 유다의 적들의 첫 승리(슥14:2), 유다지형의 변화(슥14:4,5), 주의 왕국에서의 장막절(슥14:16-19), 예루살렘과 그 백성들의 성결(슥14:20,21) 등에 대한 예언도 담고 있다.

3) 스가랴서가 주는 교훈
스가랴서는 여러 가지 예언을 통하여 메시야나 종말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그리고 스가랴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스가랴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왕국을 회복시키실 것이며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보좌로 회복시키실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들은 구원을 받고 회복될 것임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이신 것이다.

3. 스가랴서의 내용분해

Ⅰ. 이스라엘의 행위에 대한 경고(1:1-6)


Ⅱ. 스가랴가 본 환상들(1:7-6:15)
1. 말탄 자들(1:7-17)
2. 네 뿔과 네 명의 공장(1:18-21)
3. 예루살렘을 척량하는 자(2:1-13)
4. 여호수아와 대제사장(3:1-10)
5. 순금 등대(4:1-14)
6. 날아가는 두루마리(5:1-4)
7. 에바 안에 앉은 여인(5:5-11)
8. 네 병거(6:1-8)
9. 여호수아의 면류관(6:9-15)

Ⅲ. 금식에 대하여(7,8장)

Ⅳ. 왕이 오심(9-14장)
1. 왕의 초림(9-11장)
2. 왕의 재림(12-14장)

 

4. 스가랴가 본 환상들

스가랴는 하룻밤 동안 모두 열가지의 환상을 보고 그 의미를 듣게 된다. 홍마를 탄 사람들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직접적 출현을, 짐승의 네 개의 뿔은 이스라엘을 흩어버린 이방의 네 세력을, 네 명의 공장(工匠)은 심판을, 척량 줄을 가진 사람들은 천년왕국 때에 있을 예루살렘 척량을, 하늘에서 여호수아와 사단의 대결을 통해서 죄를 씻어 주실 분의 등장에 대한 예언을,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를 통해서는 성령을,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통해서는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에바 가운데 있는 여인을 통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죄와 반역을, 네 병거는 하나님이 심판을, 면류관을 쓴 여호수아를 통해서는 메시야의 세가지 사역을 나타내는 등의 열개의 환상을 보게 된다. 이 모든 환상들은 각기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예언들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교훈들을 주고 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저자와 시대적 배경

1) 저자
본 서의 저자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을 지닌 스가랴이다. 스가랴는 구약성경에만도 29명 이상이 등장할 정도로 당시에는 흔한 이름이었다. 스가랴는 잇도의 후손인데, 잇도는 포로 시대 이수에 유다로 돌아온 제사장들 중에 한 명이었다. 따라서 잇도의 손자인 스가랴는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선지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 가운데는 스가랴서의 후반부인 9-14장은 저자가 다르다고 주장하며, 혹자는 슥11:13과 마27:9,20을 인용하면서 예레미야가 저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헬라 시대 또는 마카비 시대의 어떤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 서의 전반부(1-8장)는 스가랴의 초기작이요, 후반부(9-14)는 그의 말기 작품으로 보고 있다.

2) 시대적 배경
스가랴는 학개 선지자와 스룹바벨과 동시대 인물이었다. 스가랴서의 내용이 전반부(1-8장)와 후반부(9-14장)로 나뉘어지듯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두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인 1-8장은 학개 시대와 동일하다. 즉 주전 538년에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본국으로 귀환한 이들은 주전 536년부터 성전 재건을 시작하였으나 여러 가지 방해로 2년(B. C. 534년)만에 공사는 중단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로 하여금 성전 재건 공사를 독려케 하여 주전 520년에 공사가 다시 시작되어 주전 516년에 성전 재건 공사가 끝마치게 되었다. 이때가 전반부의 시대적 상황이었다.
그리고 후반부인 9-14장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불분명하다. 다만 주전 480-470년경으로 다리오 1세가 물러나고 아하수에로 왕이 통치하던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

2. 기록 연대와 기록 목적

1) 기록 연대
본 서의 기록 연대는 앞에서 언급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즉 전반부(1-8장)는 주전 520년경 학개가 예루살렘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두달 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스가랴 7장은 주전 518년경에 기록되었다. 따라서 전반부(1-8장)는 주전 520-518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후반부(9-14장)는 슥9:13에 헬라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수 십년이 지난 주전 48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2) 기록 목적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약간은 다르다. 전반부에 있어서 첫번째 기록 목적은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의 성결한 신앙을 확립하는데 있었다. 이들은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영적인 무관심과 율법의 무지 그리고 도덕적인 불의한 삶이 심각한 문제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전에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그들의 성전이었던 것이다. 둘째로, 성전 재건을 중단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성전 재건을 완성하도록 독려하기 위함이었다. 셋째로 성전 완공은 메시야의 영광을 상징하며, 그분의 임재하실 처소를 마련하는 성스러운 일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후반부의 기록 목적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기록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메시야 왕국의 승리와 영광을 마음속으로 간직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3. 특징과 내용 구성

1) 특징
본 서의 특징으로는 첫째로 메시야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많은 예언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실 메시야에 대해 순(슥3:8 ; 슥6:12), 종(슥3:8), 목자(13:7), 왕, 제사장(6:13)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에 있을 복음의 부흥(슥12:10-13:1),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과 메시야의 통치 그리고 하나님 왕국에 관한 예언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스가랴는 마치 구약의 요한계시록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신약에 있어서 메시야를 언급할 때에 스가랴서를 많이 인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구원받은 자의 삶의 윤리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스가랴 3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죄씻음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롭고 영화롭게 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동시에 구속받은 성도의 신앙이 삶 속에서 분명히 나타나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슥7:9,10 ; 슥8:16,17). 셋째로 본서는 요한계시록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말세론에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본 서의 말씀을 30개 정도로 인용하였다. 스가랴서의 말세론은 '그 날'로 언급된 여호와의 날에 집중되고 있다. 이날은 성도에게 구원의 날이지만 악인들에게는 저주와 심판이 임하는 날이다. 동시에 본 서에는 메시야 왕국과 메시야의 통치를 언급하면서, 새 예루살렘이야말로 성도들이 거처할 영원한 낙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2) 내용 구성
본 서의 내용은 크게는 두 부분, 적게는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크게 나눌 때 전반부는 1-8장까지로 회개에의 촉구와 여덟 가지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 후반부인 9-14장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다. 한편 본 서의 내용을 네 부분으로 나눌때 첫 단락은 슥 1:1-1:6까지로서 조상들처럼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요청하고 있다. 두번째 단락은 슥1:7-6:15로서 스가랴가 본 8가지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환상들은 이스라엘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세번째 단락은 7,8장으로서 금식 문제에 대한 벧엘 사람들의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끝으로 네번째 단락인 9-14장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언급하면서 메시야에 관한 거부와 메시야의 통치에 대한 두번의 경고를 하고 있다.
루터(Luther)는 생전에 스가랴서에 대하여 모든 예언서의 정수라고 설명하였다. 이만큼 스가랴서는 예언으로 가득차 있는 심오한 진리의 말씀이다. 특별히 본 서는 외적으로는 성전 재건에 대한 말씀을 담고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성전 자체에 담겨져 있는 의미 곧 성전이신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풍부한 기독론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본 서는 그리스도 나라의 완성에 대해 우리들에게 참된 소망을 던져 주고 있다. 이처럼 메시야 왕국과 그의 통치에 대한 영광스런 소망은 유대의 남은 자들에게 구원에 대한 새로운 용기와 각오를 새롭게 심어 주었다. 마찬가지로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장차 심판주로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대망하면서 어두워져 가는 현실 속에서도 용기와 새 힘을 가져야 하겠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