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과 구원의 갈림길

[열왕기하 22장 14절~20절]
14절 -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할하스의 손자 디과의 아들로서 예복을 주관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하였더라 그들이 그와 더불어 말하매
15절 - 훌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기를
16절 -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이 읽은 책의 모든 말대로 하리니
17절 - 이는 이 백성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며 그들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곳을 향하여 내린 진노가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18절 - 너희를 보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말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들은 말들에 대하여는
19절 -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20절 - 그러므로 보라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자들이 왕에게 보고하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삶

[열왕기하 22장 1절~13절]
1절 -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디다요 보스갓 아다야의 딸이더라
2절 -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3절 -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에 왕이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 서기관 사반을 여호와의 성전에 보내며 이르되
4절 - 너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올라가서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에 드린 은 곧 문 지킨 자가 수납한 은을 계산하여
5절 -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넘겨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작업자에게 주어 성전에 부숴진 것을 수리하게 하되
6절 -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성전을 수리하게 하라
7절 - 그러나 그들의 손에 맡긴 은을 회계하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진실하게 행함이니라
8절 -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9절 -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 보고하여 이르되 왕의 신복들이 성전에서 찾아낸 돈을 쏟아 여호와의 성전을 맡은 감독자의 손에 맡겼나이다 하고
10절 -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11절 -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12절 - 왕이 제사장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야의 아들 악볼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3절 -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네게 있는 게 무엇이냐

[열왕기하 4장 1절~7절]
1절 -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2절 -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3절 -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절 -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절 -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절 -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절 -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기적을 체험하려면

[열왕기하 4장 1절~7절]
1절 -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2절 -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3절 -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4절 -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절 -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절 -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절 -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현대가 아무리 과학 만능 시대라고 하지만,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만 하는 제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기적을 바라고 기대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부족함 없이 사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고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언젠가는 직면하게끔 되어 있고 불치의 병인 문둥병이 정복되니까 이제는 암병이나 AIDS같은 병이 사람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는 것을 보아도 인간은 한계상황의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선지생도 즉 목사후보인 신학생 한 사람이 아내와 자식을 두고 갚을 수 없는 빚을 남겨둔 채 죽었습니다. 이 빚 때문에 자식들이 종으로 팔려갈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빠졌을 때, 선지생도의 아내가 선지가 엘리사를 찾아와 호소했습니다. 이때 엘리사는 그 딱한 사정을 듣고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진 것이라고는 기름 한 병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엘리사는 나가서 빈 그릇을 많이 빌려 오라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 빈 그릇들을 빌려 와서 또 시키는대로 기름을 그릇들에 붓기 시작했더니 빈 그릇이 다 찰 때까지 계속 채워져서, 그 기름을 팔아 먼저 그 빚을 갚고 남은 것은 가족의 싱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기적을 베푸시는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편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만 갖추어지면 얼마든지 기적이 일어나서 경제문제도 해결되고 불치의 병이 고침 받기도 하고 불가능한 일들이 가능해지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적을 체험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있는 바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엘리사는 제일 먼저 '네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선지생도의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기적을 베푸심에 있어서 많든 적든 우리의 가진 것으로 일을 시작하시는데, 우리에게 있는 바를 하나님께 맡기도 위탁하는 일(Commitment)이 있어야 합니다. 잘났든 못났든 하나님께 맡기고 헌신하는 사람에게 기사와 이적을 베푸십니다. 시 37:5절에 보면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하였고, 잠 16:3절에는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맡기거나 의지하지는 않고 하나님의 기적만 바라는 것을 봅니다.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고도 남은 기적을 행하실 때도 비록 보잘 것 없는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이지만, 그 어린 소년이 예수님의 손에 맡길 때 축사하시고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많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잘나고 못나고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의지하는 신앙이 있느냐 없는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밀가루 통의 기적도 그 과부가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말씀대로 마지막 한 때 먹고 죽으려고 하던 것이지만, 한 끼니 덜 먹고 죽은 셈치고 두 식구의 생명과 같은 것을 믿고 맡길 때, 기적이 일어나서 그 흉년이 다 지날 때까지 밀가루 통이 마르지 아니하고 기름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며 평안히 먹고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맡기고 헌신하기 어려울 때야말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축복받는 절호의 기회(Chance)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병고쳐 주면 예수 믿고, 안고쳐 주면 그만두겠다는 생각으로 교회에 나와 기도해 달라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하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죄만 짓고 병은 더 안고쳐질 수가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고, '살든지 죽든지 이몸을 하나님께 맡깁니다'라는 태도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맡기는 일이 없이는 하나님의 기적이 안나타납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었던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 시퍼런 바다물에 목숨걸고 몸을 내어 맡길 때 걸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George Muller)씨가 전국의 고아를 다 모아놓고 나서 자기의 가진 것이라고는 일 파운드 몇 실링밖에 안 되는 것을 몽땅 하나님께 내어놓고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평생 5만번도 넘는 기적적인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수천명의 고아를 먹여 살렸습니다.
이와같이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고 비우면 우리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역사하고 생수가 강같이 흘러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헌신하는 것이 기적의 첫째 조건입니다.

2.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선지생도의 집에도 남편이 남긴 빚더미를 안고 힘겹게 살다가 그나마 마지막 기름 한 병이 남았을 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최후에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바닥을 봐야 통하는 길이 열린다'는 옛말이 옳습니다. 홍해바다를 가르실 때 10리나 20리 전부터 미리 갈라지게 하신 것이 아니라, 뒤에 애굽 군사가 추격해 오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닷가에 이르러 빠져 죽거나 해야 할 막판에 이르러서야 홍해가 갈라져 육지같이 건너게 되었고 뒤따라 오던 애굽 군사는 합장되면서 수장지내게 되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법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에 닿는 순간에야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최후에 도우시는 분임을 믿고 끝까지 기다려야지, 끝까지 가보지 않고 중간에 낙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결코 체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전 10: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견디다 견디다 쓰러지기 직전에 건져 주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The end self the beginning of God)라고 했고,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다'(Man's extremity is God's opportunity)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끝났다고 절망할 때가 시작일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도 결코 종점이 될 수없습니다.
엘리욧이라는 선교사는 땅과 재산을 다 드려 병원을 건축했는데 홍수가 나면서 다 무너져 떠내려갔습니다. 절망하여 엎드린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아직도 너의 하나님이다. 지금도 너는 나를 신뢰할 수 있느냐?' 라는 세미한 음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약혼자 엘리자베스에게 편지하면서 '이제 나의 수고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계 3:10절에 보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고 하셨는데, 이는 끝까지 참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의 응답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도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라야 받습니다.
여러해 전에 부동산 붐이 한참일 때 부동산 매매로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스승이 되는 교장 선생님이 퇴직금 얼마 탄 것을 맡기면서 좀 늘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마포 어느 곳에 땅을 몇 백평 사드렸는데 웬일인지 도무지 땅값이 오르지 않으니까 자기는 많은 돈을 벌면서 스승은 이렇게 대접한다고 땅을 팔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땅을 판지 두 달도 안되면서 길이 뚫리고 개발이 되면서 땅값이 한 20배가 오르더랍니다. 끝까지 믿고 기다려야 하는데 많은 신자들이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낙심하기 때문에 약속의 성취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요단강 물을 다섯 번, 여섯 번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 낫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단계 일곱 번 들어갔다 나온 다음에야 어린 아이 살같이 희어져 깨끗이 나았습니다.
하나님은 최후에 도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이 안계신 동안 마르다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이때 무덤을 막은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마르다는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하고 푸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 말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하고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죽은 이후에라도 하나님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 엿새동안 돌 때까지 금도 가지 않고 무너질 조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 마지막 일곱 바퀴를 완전히 다 돈 다음에야 그 철벽같이 견고한 여리고성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려면 끝까지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절대 중간에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맙시다.

3. 순종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선지생도의 아내가 엘리사의 말대로 다 믿고 순종했을 때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순종하는 믿음이 없으면 기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내 이성의 판단으로 불가능해 보여도 계산과 타산으로는 맞지 않는 것 같아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어떻든지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든지 감각으로 느끼기에는 어떻든지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이적을 행하실 때, "물을 떠 오라"하면 떠 오고, "일복 항아리 다 채우라"하면 다 채우고, "떠다 대접하라"할 때, 그대로 믿고 순종할 때, 물이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연회장은 그 맛있는 포도주가 어디서 생겼는지 몰라도 물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했습니다. 즉 믿고 순종해야 기적을 체험합니다.
예수님은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고, 막 11:23,24절에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 앞에 자신의 경험과 지혜와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온전히 순종할 때 기적이 나타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살아계시며 믿고 구하는 자들에게는 크신 능력으로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것은 자신의 가진 바를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위임하며 기적이 나타날 때까지 끝까지 믿고 기다리고 순종하는 자만이 체험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기적을 날마다 피부로 생생히 체험하며 사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아 멘 -

절망을 통한 승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열왕기하 5장 1절~14절]
1절 -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2절 -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절 -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절 -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절 -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절 -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7절 -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절 -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절 -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절 -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절 -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절 -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절 -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절 -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우리는 절망에 부딪칠 때 그 절망이 빨리 지나고 희망이 찾아오기만 기다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냥 방관하며 기다리기 보다 우리는 절망을 통해서도 승리를 이루도록 믿음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절망을 통해서도 승리를 이루기 위한 길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가 되고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말씀은 깊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완전히 실망하거나 절망할 때까지 은혜나 구원을 베풀어 주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망하기를 기다리시며, 우리를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기도 하십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절망의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 본 사람들입니다. 질병으로 사경을 헤매었든지, 가정 생활에 실망을 느꼈든지, 어떤 사람을 통하여 실망했든지, 어떤 상황 속에서 절망에 처해본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더욱 깊은 만남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케 되곤 합니다.
모세도 바로의 궁중에서 공주의 아들로 많은 학문과 무술을 연마해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때 미디안 광야로 쫓겨가는 절망적인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생하는 가운데 몸은 늙고 배운 지식은 다 잊어버리고 말은 우둔하고 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절망을 느끼게 될 때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귀한 종으로 쓰임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절망하고 손들고 항복하기를 40년 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야곱도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였지만 참으로 하나님께 항복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큰 축복을 받은 것은 얍복강 여울에서 진퇴양난의 절망에 처했을 때였습니다. 20년 전에 속여먹은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온다고 했을 때, 완전히 하나님께 항복하고 깨어지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Israel)'이라고 불리우는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처하고 절망할 때가 바로 하늘 문이 열리는 기회가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절망의 때에 오히려 소망을 가지고 속히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입니다.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라의 커다란 구국공로가 있는 장군이었습니다. 아람 나라를 구원해서 왕의 총애와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큰 장군이었지만 그는 문둥병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왕의 총애를 받고,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고,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재물을 소유했을지라도 문둥병에 걸려 몸이 점점 썩어 들어가므로 그 모든 것이 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조그만 식모 계집아이가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장군이지만 문둥병이 걸려 썩은 냄새가 온 방안을 뒤덮고 옷에는 고름과 헌데 조각이 온통 붙어 있는 것을 볼 때에, 불쌍하기 짝이 없는 그 계집아이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담대히 나아가 말했습니다. "우리 주인 어른이 만일 내 고향 사마리아에만 계셨더라면 엘리사라고 하는 훌륭한 선지자에 의해 문둥병이 나을 수 있을터인데"라고 말입니다. 그때 나아만의 아내는 정신이 번쩍 들어 남편 나아만에게 가서 얘기했더니 나아만은 그 얘기를 믿고 왕에게 나아가 허락을 받아 소개편지와 은 10달란트와 금 6,000개와 비싼 옷 10벌을 가득 가지고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나아만이 이스라엘 왕에게 그것을 보였더니 왕이 그것을 깜짝 놀라 옷을 찢으며 통곡했습니다. '이건 틀림없이 아람 나라가 전쟁을 하기 위해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이냐? 어떻게 나더러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엘리사가 그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왕이여 왜 두려워하나이까?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는 것을 보여 드리리다. 저에게 그 사람을 보내소서'라고 전했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문까지 왔는데, 엘리사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게하시라는 사환이 나와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번 씻으라고 우리 주인이 말하더이다'라는 말만 전하는 것을 듣고 나아만은 노하여 그냥 물러가려고 했습니다. 나아만은 저가 자기에게로 나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 줄 알았는데 아람 나라의 강보다 훨씬 더러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씩이나 목욕하라는 말을 듣고 노하여 몸을 돌이켜 떠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종들이 나와서 가로막으며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말을 듣고 나아만은 요단강에 가서 이때까지 가지고 있던 장군의 명예와 교만과 훌륭한 옷들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처참한 문둥병의 상처를 드러내 놓고는 요단강에 들어가 한 번, 두 번, …일곱번, 물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일곱 번 몸을 잠그었다는 것은 완전한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순종하고 목욕했더니 그 살이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일곱 번째 들어가기 전까지는 요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조금도 나은 기색이 없었지만 일곱번째 완전한 순종을 할 때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너무 기뻐 엘리사의 처소에 와서 금 은 좋은 옷을 풀어 놓으며 줬더니 엘리사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난 그런 것 싫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흙이라도 퍼 가지고 가서 당신이 섬기는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하며 이스라엘 땅의 흙을 퍼 가져다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우리가 절망 중에 처했을 때에도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절망의 상황 속에서 구원과 축복을 소망해야 합니다.
나아만 장군은 수리아의 국무총리와 같은 수석장관이었습니다.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요, 큰 사람, 존귀한 자였습니다. 아람 나라를 구원한 위대한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자였습니다. 한 나라는 구원했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는 절망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크고 존귀한 사람이고 구국의 공로가 혁혁한 사람이라고 했더라도 자기는 문둥병자이니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와 같이 모든 인간은 다 큰 부귀와 권세를 가졌다 해도 죄악의 문둥병에 걸린 절망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이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나아만은 작은 소녀의 말을 귀답아 듣게 되어 치료를 받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된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고민이 있습니까?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이 멀지않은 증거입니다.
어서 속히 손들고 하나님께 항복하며 나아오십시오. 여러분의 절망은 여러분의 진정한 구원과 축북의 기회입니다.

2. 절망적인 듯한 방법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방법으로 구원하시고 축복하실 때가 많습니다.
고전 1:18,19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보기에 세상적으로 어리석어 보이는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을 고침받기 위해 자신의 부귀와 권세를 다 써봤으나 소용이 없었고, 아람 왕의 권세도 소용 없었고, 이스라엘 왕도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사 55:8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구원과 축복이 무슨 굉장한 방법, 고상한 방법으로만 되는 줄로 아는데 사실 하나님의 방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아만이 구원받은 것은 포로로 잡혀온 식모 계집아이를 통해서 놀라운 복음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볼품없는 야인 엘리사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도 단순하게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라고 하는 지극히 어리석어 보이는 방법을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사람은 절망적인 듯한 방법에 대해서도 어린 아이처럼 단순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겸손히 순종해야 됩니다.
죄악의 문둥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에 믿음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고침을 받습니다.
육신의 병도 단순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할 때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믿고 순종하는 자가 축복을 받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의 기량과 역량을 발휘하여 고기를 잡으려 했으나 한 마리도 못잡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는 말씀을 듣고 안될 것 같았지만 그대로 믿고 순종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나아만 장군도 처음에는 화가 나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서 일곱 번 목욕하라는 말이 참으로 황당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교만과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히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진리는 단순합니다.
철학이나, 법학이나, 심리학을 몰라도 괜찮습니다. 도리어 인간의 학문이 진리를 가리울 때가 많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요 1:12).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하셨습니다(고전 1:18).
여기서 나아만 장군의 훌륭한 점은 첫째로, 잡혀온 소녀 식모의 말을 단순하게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법입니다. 절망에 처한 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복음을 단순한 믿음으로 받게 됩니다.
둘째로, 변장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선지자를 찾아 갔습니다. 위선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셋째로, 빈 손으로 가지 않고 정성어린 예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엘리사가 결국 받지는 않았지만 그의 간절하고 정성어린 마음이 그 예물에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로, 요단강에서 옷을 벗고 일곱번 목욕했습니다. 장군의 계급장 붙은 옷을 다 벗어 던지고 문둥병 환부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겸손히 순종했습니다.
절망의 상황 속에서 절망적인 듯한 방법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거기에 온전히 순종할 때 진정한 승리와 축복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과 세상에 대해 절망을 느낀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간적으로나 세상적으로 절망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어떤 이는 큰 환난과 시련을 통하여, 또 어떤 이는 질병이라는 가시로 절망을 느끼게 합니다. 어떤 이는 남편이나, 아내를 통하여 인간에 대한 절망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는 은혜와 축복의 길이 됩니다. 어떤 분은 자식으로 인한 말할 수 없는 근심과 고민 때문에 하나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그 절망이 구원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어떤 이는 경제적인 실패로 절망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구하고 받는 길이 됩니다.
인간의 절망을 통하여 헛된 소망을 버리고서야 참된 하나님 안에서의 소망을 붙잡게 됩니다. 세상에서 절망할 때 하늘의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실패와 고통으로 많이 깨어지고 다듬어진 사람을 하나님은 귀한 그릇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완전히 자아가 깨어진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즐겨 사용하십니다. 고로 실패와 고통은 하나님의 또 다른 형태의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후 1:9절에서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형 선고 받은 줄로 알 만큼 극심한 핍박을 받았는데, 그것은 결국 하나님만 의지하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의 상황 속에서 구원과 축복을 소망하십시오. 그리고 절망적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거기에 온전히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절망을 통해 영원히 승리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 아 멘 -


죄인의 소망은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열왕기하 25장 18절~30절]
18절 - 시위대장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19절 - 또 성 중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내시 한 사람과 또 성 중에서 만난 바 왕의 시종 다섯 사람과 백성을 징집하는 장관의 서기관 한 사람과 성 중에서 만난 바 백성 육십 명이라
20절 -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사로잡아 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21절 -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22절 -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더라
23절 - 모든 군대 지휘관과 그를 따르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를 지도자로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느도바 사람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와 그를 따르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로 가서 그달리야에게 나아가매
24절 - 그달리야가 그들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인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며 바벨론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25절 - 칠월에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부하 열 명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 또 그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26절 - 노소를 막론하고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27절 -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왕 에윌므로닥이 즉위한 원년 십이월 그 달 이십칠일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28절 - 그에게 좋게 말하고 그의 지위를 바벨론에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왕의 지위보다 높이고
29절 - 그 죄수의 의복을 벗게 하고 그의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양식을 먹게 하였고
30절 - 그가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양이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느부사라단이 대제사장을 비롯해 사로잡아 간 백성이 리블라에서 죽임당합니다. 그달리야는 남은 백성에게 바벨론 왕을 섬기면 평안할 것이라 하나 이스마엘과 부하들이 그를 죽이고 애굽으로 갑니다. 여호야긴은 잡혀간 지 37년 만에 석방돼 바벨론 왕 앞에서 양식을 먹습니다.

1. 처형된 유다 지도자들 (18~21절)
지도자의 부재는 결국 나라의 소멸로 이어집니다.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과 왕궁과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사릅니다. 그리고 성전의 관리들과 바벨론에 저항하며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하맛 땅 리블라(립나)로 잡아가 처형합니다. 유다를 이끌 지도자들이 사라져 이제 유다에는 바벨론에 대항할 만한 인재가 없습니다. 또 성전 기물과 성전을 관리할 인적 자원마저 모두 잃어 성전 예배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시대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한 지도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그분의 길을 따르려는 지도자가 없는 나라는 결국 망하고 맙니다. 지도자가 회개하고 돌이킬 때 나라가 굳건히 세워집니다.
* 묵상 질문
유다의 유력자들이 끌려가 처형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나라와 교회의 지도자를 위해 날마다 기도하나요? 오늘 특히 기도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2. 여호야긴의 석방 (22~30절)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죄인들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바벨론 왕은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삼아 유다에 남은 자들을 관할하게 하지만, 두 달 만에 그달리야는 살해되고 불안한 정국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여호야긴은 37년 만인 55세에 감옥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됩니다. 본문에는 '유다 왕'이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됩니다. 이는 그가 유다 왕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유다 백성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후일 여호야긴의 손자 스룹바벨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해 하나님 성전의 기초를 놓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삼하 7:14~16)을 기억하시고 신실하게 그 언약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 묵상 질문
여호야긴의 석방은 유다 백성에게 어떤 의미를 주나요?
* 적용 질문
나를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나요? 내일을 준비하게 하는 작은 희망의 빛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인생의 주인이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제게 유일한 소망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더라도 저와 함께하시고, 원수의 목전에 설지라도 제 머리를 들게 하시는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뒤 찾아온 비극

[열왕기하 25장 1절~17절]
1절 -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2절 -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3절 -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4절 -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가 아라바 길로 가더니
5절 -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6절 -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7절 -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8절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절 -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0절 -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으며
11절 -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12절 - 시위대장이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13절 - 갈대아 사람이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 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 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4절 -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15절 - 시위대장이 또 불 옮기는 그릇들과 주발들 곧 금으로 만든 것이나 은으로 만든 것이나 모두 가져갔으며
16절 - 또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받침들을 가져갔는데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
17절 - 그 한 기둥은 높이가 열여덟 규빗이요 그 꼭대기에 놋 머리가 있어 높이가 세 규빗이요 그 머리에 둘린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라 다른 기둥의 장식과 그물도 이와 같았더라

[배경 이해하기]
3차례에 걸쳐 유다를 침공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과 수많은 귀족을 포로로 끌고 바벨론으로 돌아가면서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웁니다. 시드기야는 3년 동안 바벨론을 섬기다가 돌연 느부갓네살을 배신하고 애굽과 연합하기로 결정합니다. 예레미야와 많은 선지자들이 바벨론의 압제는 하나님과 언약을 깬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기에 그 고통과 수치를 달게 받으면 구원의 날이 곧 임하리라 선포했지만 왕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애굽의 도움을 의지하고자 합니다. 이에 분노한 느부갓네살은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을 보내 예루살렘 성을 3년간 포위하고 압박합니다. 유다는 애굽의 도움 덕분에 19개월을 버티긴 했지만 강력한 바벨론 군대가 토성을 쌓아 공격해 오자 결국 함락되고 맙니다.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시드기야의 실정(1~7절)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배반하자 느부갓네살은 군대 장관을 보내 유다를 치게 합니다. 사실 예루살렘은 해발 600m의 고지대에 있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공략하기 어려운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벽보다 더 높은 토성을 쌓고 성을 완전히 고립시킨 바벨론의 군대 장관은 19개월 뒤 북쪽 성벽을 뚫고 성을 함락합니다. 사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숨을 곳이 없는 광야에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40년 동안 멸망당하지 않고 오히려 마주하는 적들과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견고한 성벽과 애굽 세력만을 의지하면서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됩니다.
시드기야 왕은 급히 성을 빠져나와 아라바 길로 도망가지만 곧 사로잡힙니다. 시드기야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왕 자신은 두 눈이 뽑힙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결국 바벨론으로 압송당해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예루살렘 성전과 언약궤가 있는 한 이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성벽과 왕궁이 초토화되고 성전이 철저히 유린되면서 헛것이 되고 맙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라는, 다윗 왕권과 그 나라를 영원히 보존해 주시리라는 약속에는 “그들이 언약에 충실할 때”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는 것을 유다 백성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 버린 나라와 인생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본문 연구 2: 예루살렘 성전 훼파(8~17절)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솔로몬이 완공한 아름다운 왕궁과 성전은 모두 불타버립니다. 본문의 사건을 묘사한 예레미야 52:28~30절을 보면 느부갓네살은 모두 네 차례 침공을 통해 모두 4,600명의 장정,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약 18,000명의 백성을 포로로 사로잡아 갔습니다. 또 성전의 많은 기물을 약탈해 갔는데, 이때 성전을 떠받드는 두 기둥 야긴(세우심)과 보아스(능력)도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 갑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면 그분의 ‘세우시는 능력’도 떠나갑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성전은 모두 세 차례 지어졌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그 영광은 모두 얼마 가지 않아 이방인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더럽혀지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성전 가운데 당신의 이름을 두시고 당신의 백성을 만나 주시겠다던 하나님, 그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파괴되자 백성들은 공황 상태에 빠진 채 다른 나라로 끌려갑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은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지만,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영원토록 거하십니다. 유다에 남겨진 이들은 그 땅에 거하며 바벨론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평안할 것’이라는 약속을 예레미야를 통해서 받습니다(렘 42:7~17).

 

[묵상 포인트]
하나님은 계속해서 유다 백성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거짓 선지자들의 낙관적인 전망만 믿은 시드기야와 유다 지도자들은 나라를 멸망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난 성전은 훼손되고 수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순종하는 자녀에게 주신 약속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이라면 인내로 견뎌 내야 합니다. 그러한 고난의 시간이 있었다면 언제, 무엇 때문이었는지 함께 나누어 보세요.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막에 모래 폭풍이 불어닥칠 때 맞서 싸우면서 나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때는 납작 엎드려 폭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특히 그 폭풍을 일으키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라는 말씀은 신자의 삶에 불가능이란 없으니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부추기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성도가 해 내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폭풍 앞에 잠잠히 엎드려 고난의 시간을 견뎌 내는 것이 하나님의 본래 뜻이라면, 모든 도전을 이겨 낼 수 있다며 큰소리치는 것만큼 오만한 주장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에 대해 오래 참으시며 그들이 징계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회개하며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십니다. 시드기야는 사실 백성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선지자 예레미야에게도 자주 하나님의 뜻을 묻곤 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묻기만 할 뿐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악을 행했으며 그저 여론에만 귀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대상이 있나요?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 밖에 있다가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한 적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보세요.
예루살렘 성이 포위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히스기야 당시에도 유다는 앗수르의 수십만 대군에 의해 온 땅이 유린당하고 예루살렘이 포위당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사건과는 대조적으로 당시 앗수르 군대는 밤사이 18만 5천 명의 병력을 잃은 채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분을 경외한 히스기야 왕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셔서 그 전쟁에 직접 간섭하셨기 때문입니다(왕하 19:19). 반대로, 동일한 상황 속에서 시드기야는 우상을 섬겼고, 이스라엘을 도울 힘이 없는 애굽의 군대만을 의지했기에 결국 패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사람들과 다른 나라를 의지하는 사람은 결국 그들에게 버림당하는 아픔을 경험합니다. 시드기야와 함께 달아났던 병사들은 왕을 보호할 임무가 있었던 호위 무사들입니다. 그러나 왕에게 위기가 닥치자 그 누구도 목숨을 내어 놓고 그를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다급한 상황이 닥치면 충성의 맹세 따위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악해서가 아닙니다. 마음으로는 신의를 지키기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기에 두려움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유일한 방패요 구원의 뿔이 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기도문]
겪어야 할 고난이라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견디게 하시고, 폭풍 속을 지날 때 귀한 교훈을 얻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 생명 길입니다

[열왕기하 25장 1절~17절]
1절 -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2절 -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3절 -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4절 -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가 아라바 길로 가더니
5절 -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6절 -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7절 -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8절 -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열아홉째 해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복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9절 -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0절 - 시위대장에게 속한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었으며
11절 -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들과 무리 중 남은 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모두 사로잡아 가고
12절 - 시위대장이 그 땅의 비천한 자를 남겨 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13절 - 갈대아 사람이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 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 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4절 -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15절 - 시위대장이 또 불 옮기는 그릇들과 주발들 곧 금으로 만든 것이나 은으로 만든 것이나 모두 가져갔으며
16절 - 또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받침들을 가져갔는데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를 헤아릴 수 없었으니
17절 - 그 한 기둥은 높이가 열여덟 규빗이요 그 꼭대기에 놋 머리가 있어 높이가 세 규빗이요 그 머리에 둘린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라 다른 기둥의 장식과 그물도 이와 같았더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을 2년간 포위합니다. 성벽이 파괴되자 시드기야와 모든 군사가 도망치지만 곧 잡힙니다. 시드기야의 아들들은 죽임당하고 시드기야는 두 눈을 잃은 채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성전과 왕궁이 파괴되고, 백성이 끌려가고, 성전 기구를 빼앗깁니다.

1. 바벨론의 유다 침공 (1~7절)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저버리면 패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와 백성에게 갈대아(바벨론) 군대에 항복하는 길만이 살길이라며 하나님 뜻을 전했습니다(렘 21:9; 38:18 참조). 그러나 시드기야는 하나님 뜻을 믿지 못하고 바벨론 왕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왕하 24:20). 이 일로 9년 만에 다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했고, 18개월간 포위 당한 예루살렘은 젖먹이가 목말라 혀가 입천장에 붙을 정도의 기근으로 고난당합니다(애 4:4). 시드기야는 도망치다 사로잡혀 눈 앞에서 아들들이 살해되고 그의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습니다. 위기일수록 하나님의 뜻과 길을 살펴야 합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이 정하시는 길만이 살길이요 생명 길입니다.
* 묵상 질문
바벨론 왕에게 항복하라는 하나님 뜻을 거역한 시드기야의 결국은 어떠했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길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2. 성전과 왕궁 파괴 (8~17절)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며, 반드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을 철저히 훼파합니다. 그들은 다윗이 준비하고 솔로몬이 정성을 다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성전 기구를 모두 약탈했습니다. 성전 안에는 하나님 임재와 백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 있는 이상 예루살렘은 절대 멸망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백성이든 죄를 범하면 징계하시며 예루살렘과 성전도 가차 없이 버리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23:27 참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예외란 없습니다. 심판으로 인해 하나님이 주권자 되심이 드러나고 열방이 그분께 순복하게 됩니다.
* 묵상 질문
열왕기 저자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경위를 자세하게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징계받기 전에 먼저 고백하며 회개할 죄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계속 경고하셨는데도 불순종하다가 마침내 멸망에 이른 유다 백성의 비참함을 보며 이 땅의 교회와 저를 돌아봅니다. 늦기 전에 회개하도록 깨우쳐 주소서.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주님께 두 손 들고 나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인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종이 되다

[열왕기하 24장 8절~20절]
8절 -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9절 -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10절 - 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11절 - 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12절 -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13절 -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14절 - 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15절 - 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6절 - 또 용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곧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17절 -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18절 - 시드기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요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19절 -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20절 -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 왕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 바벨론 왕이 침략해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빼앗고 여호야긴과 왕족, 용사, 장인 등을 잡아갑니다.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고 시드기야라 합니다. 그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

1. 유다 포로 이송 (8~17절)
진정한 자유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 가능합니다. 쇠사슬에 결박된 채 포로로 끌려간 여호야김에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 여호야긴 역시 바벨론의 침공으로 석 달 열흘 만에 폐위됩니다(대하 36:6, 9). 악한 왕으로 평가받았던 여호야긴의 짧은 통치는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악은 사람 마음 안에 품은 동기와 연결됩니다. 이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을 대신해 그의 숙부 맛다니야를 시드기야로 개명하고 유다 왕으로 세웁니다. 유다는 바벨론의 종속국이 되어 주권을 상실했는데, 이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분의 계명을 저버린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께 등 돌린 유다 백성이 바벨론의 종이 된 것처럼,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참자유를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 묵상 질문
여호야긴의 통치 기간이 짧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세상에 종노릇하지 않고 하나님을 따르는 종이 되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2. 시드기야의 통치 (18~20절)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여호야긴 대신 명목상 유다 왕으로 세워진 시드기야 역시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충고를 무시하고 친애굽 정책을 펼치다가 결국 예루살렘 멸망의 빌미를 제공하는 비극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시드기야와 예레미야 선지자의 유대 관계를 감안할 때(렘 37:3~4),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자주 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왕들과 마찬가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인물로 평가받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죄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은 행함이 있을 때에야 그 가치가 드러납니다.
* 묵상 질문
유다가 연이어 바벨론의 침공을 받은 원인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 뜻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이기심이나 욕심, 허영심이 있다면 무엇에 대한 것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제 고집대로 행할 때 고난과 징계가 임함을 깨닫습니다. 말씀대로 분명히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 즉시, 기쁘게 순종하는 믿음을 주소서. 죄에 사로잡히지 않고 진리 안에서 참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인간 역사 속에서 성취되는 전능자의 말씀

[열왕기하 23장 31절~37절]
31절 - 여호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삼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32절 -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33절 - 바로 느고가 그를 하맛 땅 립나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나라로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
34절 - 바로 느고가 요시야의 아들 엘리아김을 그의 아버지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35절 -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 그가 바로 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백성들 각 사람의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징수하였더라
36절 -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37절 -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열왕기하 24장 1절~7절]
1절 -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간 섬기다가 돌아서 그를 배반하였더니
2절 -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3절 -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4절 -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5절 -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6절 -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7절 -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점령하였음이더라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합니다. 바로 느고는 여호아하스를 리블라에 가두고 요시야의 다른 아들 엘리아김을 왕으로 삼고 여호야김이라 합니다. 여호야김은 바벨론을 배반하는데, 이는 므낫세의 죄로 인해 여호와께서 유다를 멸하시려 함입니다.

1. 아버지와 다른 아들들 (23:31~37절)
부모의 신실한 신앙이 자녀에게 전수되지 않는 것은 비극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요시야의 아들들인 여호아하스와 엘리아김(여호야김)이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평가합니다. 이로써 요시야가 시행한 모든 개혁은 대를 이어 가지 못하고 당대에 그치고 맙니다. 여호아하스는 백성이 세운 왕으로 유다를 석 달간 다스리지만 애굽에 잡혀가 거기서 죽습니다. 엘리아김은 애굽 왕이 유다를 속국으로 삼고자 세운 왕입니다. 예레미야는 엘리아김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렘 22:17). '하나님 보시기에' 탐욕과 죄악을 일삼는 이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다음 세대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의와 공의를 행하도록 우리 세대가 믿음으로 그들을 양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묵상 질문
요시야의 개혁이 대를 이어 계속 진행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과 상관없이 세상에서 잘나가는 자녀가 아닌, 믿음 좋은 자녀로 아이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바벨론의 침공 (24:1~7절)
하나님은 '말씀대로' 이루시기 위해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십니다. 여호야김 시대에 고대 근동의 세력 판도를 뒤집어 놓을 큰 전투가 있었습니다. 강대국 애굽과 신흥 강대국 바벨론이 갈그미스에서 격돌하면서 근동의 패권은 바벨론 왕에게 넘어갑니다. 바벨론이 그 여세를 몰아 유다를 침공하자 여호야김은 느부갓네살의 봉신이 되어 바벨론을 섬깁니다. 그러나 애굽까지 정복하려던 바벨론의 시도가 실패하자 여호야김은 3년 만에 바벨론을 배반합니다. 이는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재침공하는 구실이 됩니다.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한 것은 말씀이 성취된 사건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바벨론의 유다 침공이 이루어진 당시 고대 근동의 세력 판도는 어떠했나요?
* 적용 질문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 오늘 내가 붙들 약속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세상이 요동하고 상황이 나빠질 때 죄악의 길에 서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하게 하소서. 소망이 사라지는 듯 보여도 낙심의 손을 늘어뜨리지 않고 주님의 계획과 사랑이 변함없음을 신뢰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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