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러 이스라엘에 옴 5:1-8
우리 주님께서 베푸신 이적들은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양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어떤이적은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같이 가나안여인에게도 베풀어졌다. 이와같이 엘리사도 한이적을 아람사람 나아만을 위해서 행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선을 행하시며 또 모든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1) 나아만이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을때 큰재앙을 만나게 되었다(1절). 그는 왕에게 귀히 여김을 받고 총애를 받는 자로서 총리의 자리에 있는 자였다. 그는 뛰어난 용사였으나 저주스러운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 누구나 다 자신의 특성중에 스스로를 깎아내리거나 명예를 더럽히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나아만은 세상에서 아주 존귀한 자였으나 홀주교의 말처럼 아람에서 가장 천한 노예조차도 그와 살갗을 바꾸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2) 그는 자기아내를 수종드는 한 작은 계집아이를 통해서 엘리사의 능력을 듣게되었다(2,3절). 이 아이는 이스라엘 태생이었으나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아람나라에 잡혀와 나아만의 집에 있게되었다. 그아이는 그곳에서 엘리사의 명성을 퍼뜨려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이 불행하게 흩어지는 것이 때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널리 퍼뜨리는 아름다운 일로 나타나기도 한다(행 8:4). 참이스라엘 사람이었던 그작은 하녀는 자기나라를 높이기를 원했으며 따라서 단지 한 작은소녀에 불과하지만 이스라엘의 유명한 선지자에 대해서 말해줄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아이는 선한 종으로서 자기주인의 건강과 평안을 원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중에 한사람도 깨끗하게 하지않았다(눅 4:27). 그러나 그작은 소녀는 자기주인이 비록 아람인이었지만 선지자께서 고쳐줄수 있고 또 그리하리라고 확신하였다.
(3) 이에 아람왕이 나아만을 위해 이스라엘왕에게 간청을 하였다. 나아만이 이 작은 정보를 듣고 어떻게 행했는가 보라.
1) 그는 선지자를 자기에게 오도록 부르지 않았다. 병을 고쳐줄수 있을정도의 신적인 능력을 가진 자에게 자신이 직접 찾아가 경의를 표하고자 하였다.
2) 그는 변장을 하고가지 않았다. 비록 그의 용모가 자신의 끔찍한 병을 널리 알리는 결과가 된다할지라도 그는 선지자를 더욱 높이기위해서 많은 수행원과 함께 당당하게 나아갔다.
3) 그는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고 그를 치료해줄 자에게 선사하기 위하여 금, 은, 옷을 가지고 갔다.
4) 그는 자신의 주군인 아람왕이 이스라엘왕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갔다. 그왕은 나아만의 회복을 진심으로 바란 사람이었다.
(4) 이편지는 이스라엘왕을 놀라게 하였다(7절). 그는 이 편지내용이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을 듣거나 읽었을때 유대인들이 하는 관습에 따라서 자기의 옷을 찢었던 것이다. 이는 곧 자기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내가 어찌 하나님이 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수 있으랴(7절). "나는 결코 그러한 권세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2) 자신에 대한 악한 의도로 생각하였다. 그는 자기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는…저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7절). "그는 나에게 문둥병자를 고쳐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내가 할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일 내가 못한다면 그는 그것을 구실삼아 나와 전쟁을 하려할 것이다." 나아만이 총리였기에 그는 더욱 그렇게 의심을 했던 것이다. 만일 그가 엘리사의 능력에 생각이 미쳤더라면 그는 쉽게 편지를 이해했을 것이며 어떻게 해야할지 알았을 것이다.
(5) 엘리사는 그일을 자신이 맡겠다고 제의하였다. 왕이 무슨일로 옷을 찢었는지 들은 엘리사는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만일 그환자를 자기에게 보내주면 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해주겠다고 말하였다. 저가 이스라엘중에 선지자가 있는줄을 알리이다(8절). 즉 "아람의 선지자들이 흉내내지 못하고 이스라엘왕이 감히 엄두도 못낸 그일을 할수 있는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있다는 것을 저로 알게할 것입니다."

Ⅱ. 나아만의 문둥병이 나음 5:9-14
여기서 나아만의 문둥병이 낫게된다.
(1) 선지자는 그에게 확신을 가지고 분명하고 짤막한 지시를 내렸다. 나아만은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구걸하는 자처럼 엘리사의 집문에 당도하였다. 나아만은 자기의 인사에 대한 답례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엘리사는 사환을 통해 답변만을 주었을뿐 그를 맞기위해서 문앞에 가지도 않았다. 이는 자신에게 행해진 그경의를 자신이 매우 흡족히 여기는듯이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하여 그는 한사자를 보내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고 전달만 하였다. 만일 그렇게 하기만하면 그의 병은 치료받을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그약속은 분명했다. 네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10절). 치료법 또한 명료한 것이었다. 요단강에 몸을…씻으라. 그것은 치유의 표징이었을 뿐만아니라 순종의 시험으로서 주어진 것이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자들은 지시받은대로 행하여야 한다.
(2) 나아만은 치료법에 대해서 분노하였다. 이는 그것이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두가지 사실이 그를 격노케 하였다.
1) 엘리사가 직접 그에게 오지않고 종을 보내서 지시를 내리는 등, 그가 자기를 업수이여긴다고 생각하였다. 치유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기에 그는 이 병이 어떻게 치유될 것인가에 대해서 이제껏 이렇게 상상을 해왔었다. 저가 내게로 나아와(11절). 즉 "그는, 아람의 귀인이며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많은 승리를 거두었던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서 나에게 나아올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내앞에 서서 그하나님 여호와의 이름과 내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고 내상처 위에 손을 흔들때 내병은 치유될 것이다." 따라서 이와같이 되지않자 격노하게 된것이다. 그는 자기비위에 맞지않으면 치유받는 것도 달갑지않게 여기는 자였다.
2) 엘리사가 자기나라를 업수이여긴다고 생각하였다.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12절). 그는 이렇게 생각했기에 이스라엘의 강 요단에 가서 씻는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물론 다메섹에 있는 강에서 씻을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강들은 더러운 것을 씻어낼수는 있을지 몰라도 문둥병을 깨끗케하지는 못할 것이다. 요단강은 지정된 강이었다. 따라서 만일 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되기를 바랬다면 그는 "왜" 혹은 "무슨이유로"라고 물을 필요없이 하나님의 뜻에 묵묵히 따라야만 했던 것이다. 나아만은 홧김에 위와같이 말하고는 화가난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엘리사와는 이제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않겠다고 결심이라도 한양 진노가운데 그선지자의 문에서 몸을 돌이켰다. 누가 더 손해일까?
(3) 그의 신하들은 그의 분노를 암암리에 나무라며 선지자의 처방대로 할것을 조심스럽게 간하였다(13절).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13절). 즉 "당신에게 장황한 치료절차를 가지라고 명했더라도 당신은 행했을 것입니다. 하물며 '씻어 깨끗케하라'는 이처방이 너무 쉽다고 순복하지 않겠습니까?" 그나무람은 매우 온당했으며 훌륭했고 또한 매우 합리적인 것이었으며 무시할수 없는 것이었다. 만일 그종들이 나아만의 분노를 더충동질함으로써 선지자에게 보복조치를 취하라고 제의했다면 그결과는 얼마나 불행스럽게 되었겠는가! 그들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1) 나아만 자신이 치료되기를 몹시 바라고 있었다. "무엇이라 한들 당신은 행하지 않으셨겠습니다?" 병든 죄인들이 이와같이 될때, 즉 치유를 위해서 기꺼이 무엇이든지 순복하며, 무엇이든지 버리며, 무엇이든지 하고자 할때 비로소 그들에게 어떤소망이 있음을 주목하라. 어떤조건으로든 그리스도를 기꺼이 맞아들이고자 할때에야 그리스도를 모실수 있게될 것이다.
2) 치료법이 쉬웠다. 씻어 깨끗하게하라(13절). 문둥병을 치료하는 방법이 너무 용이하다고해서 그것을 따르지않는다면 결코 치유함을 받을수 없을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라." "회개함으로 용서함을 받으라, 씻어 깨끗하게 하라."
(4) 지시를 따라 행함으로 치료를 받게되었다(14절). 다시한번 생각을 한 나아만은 그대로 해보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크게 놀라며 기뻐할만한 결과를 얻었다. 그삶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Ⅲ. 나아만이 사례를 표함 5:15-19
우리 주님께서 깨끗케해준 열명의 문둥병자가운데 단하나 사마리아사람만이 감사하기 위해서 돌아왔다(눅 17:16). 여기 이 아람사람도 그렇게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하였다.
(1) 이스라엘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한 나아만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유일성을 고백하였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외에는 온천하에 신이 없는줄을 아나이다(15절). 만일 그가 이전에 다른 문둥병자들이 깨끗케되는 것을 보았다하더라도 확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병이 치유되는 이적보다 치유해주시는 은혜가 그를 더 감동시켰던 것이다. 직접 체험한 자들이 은혜의 능력에 대해서 가장 잘 증거할수 있다.
(2) 선지자 엘리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나는 당신의 여호와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금, 은, 옷 등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선물로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사례를 거절하였다. 그는 매우 가난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그것을 거절한 것도 그것이 필요치 않아서가 아니라 이 아람사람에게 신세를 지지않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종들이 이세상의 부를 가볍게 여기도록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 새로운 개종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께 큰영광이 되었고 또한 그사람에게는 '이스라엘외에는 온천하에 신이 없는줄 안다'고 한 신앙고백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고전 9:18; 고후 11:9절을 보라.
(3) 그는 개종하여 이스라엘 하나님을 경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치유받은 것을 감사하기위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자 했다. 또한 다른 어떤신에게도 결코 제물을 드리지 않겠노라고 결심하였다(17절). 하나님께서는 그를 문둥병으로부터 치유해 주시사 더위험한 병인 우상숭배까지 치유시켜 주셨다. 그러나 그는 두가지의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다.

첫째, 헌신이 도를 넘고있었다. 즉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고자 했을뿐만 아니라 단을 쌓기위해 선지자의 뜰에서 흙을 가져가고자 했던 것이다(17절). 얼마전까지만해도 이스라엘의 강을 아주 우습게 말했던(12절) 그가 이제는 반대로 이스라엘의 땅에 대해서 마치 그땅의 흙으로 쌓은 제단이 하나님께 가장 잘 열납되기라도 한다는듯이 지나치게 가치를 두고있는 것이다.

둘째, 다른면에 있어서 그헌신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즉 자기의 주군인 아람왕을 거스리지 않고 또 왕궁에서의 자신의 직무대로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여지를 가지고자 한것이다(18절). 그는 이일에 대해 용서하심을 요청하였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면서 이미 알고있는 죄를 유보해 놓는다면 그것은 우리를 계속 죄가운데 빠지게 할것이다. 유보는 언약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는 모든죄악을 내어버리고 어떤 림몬의 당도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만일 용서를 구하면서도 계속해서 죄가운데로 행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조롱하며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된다.

Ⅳ. 게하시의 어리석음 5:20-27
하나님의 사람이자 거룩한 선지자인 엘리사는 단지 한명의 사환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는 속된자임이 밝혀졌다. 혹자는, 아합도 오바댜와 같은종이 있었으니 엘리사의 종은 경건한 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도 제자들가운데 유다를 데리고 있었던 것이다.
1. 게하시의 죄(20-25)
(1) 그에게는 그밑바탕에 일만악의 뿌리가 있는 돈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그의 주인은 나아만의 재물을 경시했으나 그는 그재물을 탐냈다(20절). 홀주교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마음은 나아만의 금궤안에 들어있었다. 따라서 그것을 가지러 나아만의 뒤를 따라 쫓아갈수밖에 없었다.
(2) 그는 나아만의 선물을 거절한 주인의 처사를 비난했으며 이방인에게 친절과 관대함을 베푼것에 대해 시기하고 아까와했다.
(3) 나아만이 그를 맞아주기위해 수레에서 내렸을때(21절) 그는 자기주인이 자기를 보냈다는 고의적인 거짓말을 하였다.
(4) 그는 주인을 악용하였다. 그리고 나아만에게 그의 주인이 아무것도 받지않은 것에 대해서 곧 후회한 것처럼 거짓을 전하였다. 두 선지생도를 들먹거린 것은 거짓말만큼이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만일 두생도를 위한 것이었다면 은 한달란트씩이나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5) 그는 나아만으로하여금 거룩한 신앙에서 떠나게 하고 나아만이 지니고 있던 그종교에 대한 좋은인상을 훼손시킬 위험을 초래했다.
(6) 그가 부당하게 얻은것을 감추려한 행동은 자신의 죄를 더크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어쩔수없이 내어놓게 되기까지 그것을 숨겼다(24절). 그리고 그사실을 부인했다. 즉 분부를 받기위해 '들어가서 그 주인앞에 섰던' 것이다. 주인이 그에게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다. 대답하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25절).
2. 그의 죄에 대한 벌(26,27)
엘리사는 즉시 그에게 그의 죄를 질책하였다.
(1) 게하시의 죄는 어떻게 드러났는가. 그는 선지자를 속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지자의 영은 속일수 없다는 것과 성령께 거짓말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임을 곧 알게되었다. 엘리사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그가 무엇을 했는지 말하였다. 비록 그가 숨겼으나 엘리사는 이같이 말하였다. "너는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고 말했으나 내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26절).
2) 그가 품고있는 계획을 말하였다. 엘리사는 게하시가 계획하고 있었던 마음속의 생각과 의도까지도 말해줄수 있었다. 즉 그는 이제 그 두달란트를 가지고 토지와 가축을 산뒤 엘리사를 떠나서 자립해보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이 어찌 은을…받을때냐(26절). 즉 "지금이 네자신을 부요케 할때냐? 네가 주인을 속이며 갓개종한 사람앞에 거침돌을 놓지않고서는 돈을 벌수가 없었더냐?"
(2) 그는 어떤벌을 받았는가.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앞에서 물러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27절). 이와같이 그는 낙인찍히고 치욕스런 이름을 남기게 되었으며 어디를 가든지 수치의 표시를 달고다니게 되었다. 비록 두달란트를 얻긴했으나 그로인해서 건강, 명예, 평강,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를 다잃고, 만일 회개치 않는다면 영혼마저 영원히 잃게되었으니 도대체 게하시가 얻은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욥 20:12절이하를 보라.

# 핵심
5:1-19
엘리사가 아람의 군사령관인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친 기사이다. 나아만은 이방인이었음에도 겸손한 신앙을 배워 고침을 받았다.

# 묵상
문둥병 ( 5:1, 2 )
병균이 온몸을 파고들어 결국에는 몸이 썩는 병입니다. 문둥병은 불치의 병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병을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죄는 문둥병과 같이 성도들의 영혼을 썩게 만듭니다. 죄로인한 부패는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 치유될수 있습니다.
먼저된 그리스도인의 임무 ( 5:3, 4 )
어느곳, 어느때나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으면 담대히 전해야합니다. 성도의 생활은 예배·봉사·가르침·전도로 나눌수 있는데, 이중 어느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수 없습니다. 성도는 오직 모든일을 주께하듯 해야합니다(골3:23). 그리고 주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고전10:31).
아람왕의 편지 ( 5:7 )
이편지를 받고 이스라엘의 왕은 자기옷을 찢고 염려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속에 살면서도 그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어려움이 걱정거리가 될수 있습니다.
인간의 지식 ( 5:8-12 )
하나님이 인간에게 지식을 주신것은 주의 뜻을 잘분별하여 주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기위함과 믿음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을 알수조차 없게되었고(고전1:21), 알아도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선물을 거절한 엘리사 ( 5:15, 16 )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 것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자발적인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인간은 구원에 아무런 역할도 감당할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은사를 자기치부(致富)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은 큰불신앙입니다.
재물을 탐한 게하시 ( 5:20-27 )
문둥병을 얻고 격리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최고로 경계해야할 대상입니다(마6:24). 세상의 재물은 일만악의 근원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딤전 6:11).
악인의 죄악 ( 5:26 )
악인이 아무리 노력하고 자기의 죄악을 감추려할지라도 하나님앞에서 자기가 행한 죄악을 숨길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모든인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온전히 살피십니다. 따라서 그분앞에서는 모두가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게 됩니다(히4:13 ). 최후 심판대앞에서 선악간의 모든일이 밝혀질 것입니다(고후5:10).

# 해설
문둥병에서 고침받는 나아만 ( 5 )
지금까지 엘리사의 사역은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람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의 불치병을 엘리사가 고쳐줌으로써 그의 사역이 이방지역은 물론 이방인에게로 확대되어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상반되는 나아만과 게하시라는 두인물을 통해 하나님의 기묘한 구원의 섭리를 살펴볼수 있습니다.
1. 문둥병자 나아만
1)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장관으로 왕에게는 물론 백성들에게조차 인정과 존경을 받는 뛰어난 용사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문둥병이라는 불치병이 찾아와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는 달리 문둥병자를 격리시키지도 않고, 부정하게 여기지않는 아람의 사회적 풍토로인하여 나아만은 자신의 일을 계속 수행할수 있었습니다. 이러한때에 나아만의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계집종이 있었는데, 이계집종이 문둥병을 고칠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이계집종은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를 소개하면서, 엘리사라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둥병도 고칠수 있으리라고 확신있게 말해 주었습니다.
a.징벌로 나타나는 문둥병(삼하3:39)
b.부정한 병(레13:44-45)
2) 이스라엘로 오는 나아만
계집종의 말을 들은 나아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이었기에 엘리사에게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나아만은 아람왕에게 엘리사를 만날수 있도록 이스라엘왕에게 선처를 부탁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아람왕은 나아만을 귀하게 생각하였기에 그의 부탁대로 외교적인 예를 갖추어 이스라엘왕에게 나아만의 병을 고칠수 있도록 선처해달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편지를 받은 이스라엘의 요람왕은 옷을 찢으며 커다란 걱정과 고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요람왕은 나아만의 집에 있는 계집종보다도 믿음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도, 엘리사도 안중에 없었기에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아람왕의 전갈이 마치 선전포고를 알리는 소식으로 조인되었던 것입니다.
a.예물(삼상9:7)
b.야곱이 노함(창30:2)
2. 고침받은 나아만
1) 엘리사의 처방
엘리사는 아람왕의 편지를 받은 요람왕이 근심중에 있음을 알고서 왕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얼마후에 나아만의 일행들이 엘리사의 집앞에 당도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의 신분을 알고도 그를 완전히 무시한채 밖으로 나오지조차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의 종을 시켜 간단한 처방만을 내렸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면 깨끗이 고침받으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a.예수님이 세례받으신 요단강(막1:9)
b.실로암 못에서 씻으라(요9:7)
2) 고침받은 나아만
나아만은 엘리사의 태도에 분노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접대와 정성어린 치료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또한 깨끗하지도 못한 요단강에서 씻으라는 말에 분개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아만의 종들은 이러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나아만에게 설득력있게 호소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어려운 일을 요구한것도 아닌데 치료받기위해서는 엘리사의 말대로 순종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은 곧 수긍을 하고선 엘리사의 말에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문둥병이 치료되어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회복되는 이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a.교만에서 나오는 분노(왕하19:28)
b.고침받은 나아만(눅4:27)
3) 예물을 드리고자하는 나아만
고침을 받은 나아만은 즉시 엘리사에게로 찾아왔습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엘리사에게 감사의 예물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그것을 정중히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에 대한 어떠한 보상도 원치않았던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고자 하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에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이스라엘의 흙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는 이것으로 주의 제단을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울러 나아만은 자신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신분상 어쩔수없이 림몬신앞에 절을 하게 될텐데 이를 용서해달라고 엘리사를 통하여 여호와께 간청하였습니다. 비록 여호와를 만난 나아만이었지만 자신의 지위와 목숨마저도 여호와를 위해 초개같이 버릴마음의 준비는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인 나아만의 회심과 나아만의 계집종의 믿음은 이스라엘의 요람왕의 불신앙과 비교할때 참으로 고귀한 것이었습니다.
a.감사의 예물(창33:11)
b.정중한 거절(창14:23)
3. 게하시의 탐욕
1) 게하시의 탐욕에서 나온 거짓말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는 나아만의 선물을 거절하는 엘리사의 모습을 보고선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적군이기에 그에게서 최소한의 이익을 취하여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나아만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마치 엘리사의 말인것인양 나아만에게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즉 엘리사에게 예기치못한 손님이 와서 그들에게 줄 은 한달란트와 옷 두벌을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a.엘리사의 종인 게하시(왕하4:12)
b.평안이냐(왕하9:11)
2) 선물을 받은 게하시
게하시의 말을 들은 나아만은 기쁜마음으로 두배의 은과 옷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명의 하인들을 시켜 운반토록 하였습니다. 게하시는 언덕에 이르자 종들을 돌려보내고 그선물들을 자기의 집에 감추었습니다. 그는 완벽하게 모든일들을 처리했다고 자신하였습니다.
a.아간의 죄(수7:1)
b.숨긴 은과 옷(수7:21)
3) 문둥병의 저주를 받은 게하시
엘리사는 하나님의 계시로 게하시의 범죄를 알았습니다. 그는 게하시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는 질문을 던졌으나 게하시는 또다른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나아만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으로 문둥병이 치유되었는데, 이제 게하시는 정반대로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의 결핍으로 문둥병이라는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게하시는 자신의 탐욕으로 문둥병이라는 저주의 올무를 뒤집어쓰게 되었습니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사환으로서, 그는 특별한 사명과 함께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할수 있었던 특권도 누렸던 종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범죄는 더욱 큰저주를 불러오게 한 것입니다.
a.모세의 문둥병(출4:6)
b.문둥병에 걸린 미리암(민12:10)
결론
나아만의 치유와 게하시의 저주받은 소식은 이스라엘과 아람전체에 퍼졌을 것입니다. 이는 바알의 힘만을 의지하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일종의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나아만의 질병을 치유한 엘리사의 사역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널리 이방인들에게까지 보편적으로 확대되어 간다는 사실을 예시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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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를 도움 4:1-7
엘리사의 이적은 과시하기 위한것이 아니라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 기록된 이 이적은 진실한 박애의 행위였다. 그리스도의 이적들 또한 그당사자들에게 놀라운 은총이었다.
1. 그과부의 탄원을 들음(1)
엘리사는 한 가난한 과부의 탄원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제사장들뿐만 아니라 선지자들도 역시 아내를 취했던것 같다. 결혼은 누구에게나 귀한 것으로서 성직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해서 결혼하기에 합당치 않은것은 아니다. 본문의 가난한 과부의 탄원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사실을 알수 있다.
(1) '선지자의 생도'중의 한사람인 그과부의 남편은 엘리사가 잘아는 사람이었다.
(2) 그는 경건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사람이 배교하는 시대에 자신의 정결을 지켰던 사람이었다. 즉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아니한 칠천인 중의 한사람이었다.
(3) 그는 이미 죽었다. 아무리 예언의 영감을 덧입은 사람들이라할지라도 그것이 사망을 막아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4) 그는 갚지못할만한 빚을 남기고 가난하게 죽었다. 그는 방탕하거나 사치스럽거나 무절제한 생활때문에 빚을 진것이 아니었다. 이는 그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라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로 고난을 당하는 경우, 즉 재난을 당하거나, 대신 빚을 지거나 혹은 자신의 경솔함으로인해 파산하거나하여 빚가운데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빛의 자녀들'이 항상 '이세상에 대해' 지혜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선지자는 박해에 의해서 가난하게 되었던것 같다. 즉 이세벨이 다스렸을때 선지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웠으며 특히 가족이 있는자들은 더욱 그러하였다.
(5) 채주들은 그과부에게 아주 가혹하였다. 그과부는 의지하고 지내는 두아들이 있었는데 채주들은 그들의 노동력을 그과부의 자산으로 계산하였으며 따라서 그아들들은 빚을 갚기위해 7년동안(출21:2) 종살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곤경에 처한 그과부는 의로운 자의 자손은 버림받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믿고 엘리사에게 나아갔던 것이다.
2. 엘리사가 그과부를 도움(2-6)
그는 실질적으로 그가난한 과부를 곤경가운데서 구해주었다. 즉 그녀로하여금 빚을 갚게 해주었을뿐 아니라 그녀의 가족이 생계를 유지할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당장 필요한 작은물질을 주지않았으며 기름을 팔아 스스로의 힘으로 이세상을 살아나갈수 있도록 해주었다.
(1) 그는 그녀의 형편을 고려하여 그녀가 할일을 지시하고자 하였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2절). 그리고나서 엘리사는 돈이 될만한 것이 있는지 물어보고는 기름 한병외에는 내다팔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되었다. 만일 그녀가 이 기름 한병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름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기름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엘리사는 그녀가 이웃들에게 신뢰받고 있었음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이웃들에게 '빈그릇'을 빌어올 것을 명하였다. 그는 그녀와 그녀의 아들들에게 문을 닫을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나서 그녀에게 한병의 기름은, 마치 사르밧 과부의 밀가루가 다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리 부어도 그칠줄 몰랐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것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가진자가 받을 것이다.
(2) 그녀는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을 굳게 믿고서 선지자가 시키는대로 따랐다. 그녀와 두아들들은 그들의 기름이 마치 아무리 흘러내려도 여전히 가득차 있는 생수의 샘처럼 그칠줄 모르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
(3) 기름은 받을수 있는 빈그릇이 있는한 계속해서 나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요구하는것 이상을 주시는 분이시다. 만일 그릇이 더있었더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들도 충분히, 즉 전부 가득히 채우셨을 것이다.
(4) 엘리사는 그녀에게 기름을 가지고 어떻게 할것인지에 대해서 지시를 한다(7절).
1) 그녀는 그기름을 살만한 능력이 있는 부자들에게 그것을 팔아야 했다.
2) 그녀는 기름을 판돈으로 빚을 갚아야 했다. 양심적으로 다른사람에게 마땅히 주어야할 것을 주는것은 신앙인의 기본적인 율법이다.
3) 나머지 기름은 그대로 둘것이 아니라 그녀와 자식들의 생계를 이어나가는데 사용해야 했다. 즉 그들은 정직한 삶을 위하여 그것을 사용해야 했다.
① 가난하고 곤경가운데 처한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할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비록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굶주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찾는다하더라도 지금 이적을 기대할수는 없다. 그러나 자비를 바랄수는 있는 것이다.
② 하나님께 풍성한 복을 받은자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하심에 따라서 사용해야 한다.

Ⅱ. 수넴여인에게 아들을 얻게함 4:8-17
오랫동안 아들을 가지지 못하다가 늙어서 아들을 얻게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에 대한 옛실례였다. 여기 엘리사의 이적가운데서 그것을 찾아보게 된다.
1. 수넴여인의 접대(8-11)
수넴은 2:25절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엘리사가 자주 다니던 곳으로 사마리아와 갈멜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매우 친절한 '한 귀한여인'이 살고있었다. 엘리사처럼 유명한 사람이 눈에 뜨이지않게 그곳을 오갈수는 없었다. 아마도 이 경건한 부인은 그가 그지역에 머무는 것을 알고는 함께 식사를 하자고 간청했을 것이다(8절). 그는 겸손하고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였으므로 처음 그곳에 들어가기까지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후에는 그리로 갈때마다 그집에 들렀다. 그녀는 자기남편에게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1) 자신이 초대한 손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고 그러므로 그가 자기집에 선을 행하리라는 것이었다.
(2) 자신이 그를 위해서 하려고하는 친절이 자신들에게는 큰부담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즉 그녀는 그를 위해서 작은방을 하나 짓고자 했다. 가구는 침상, 책상, 의자, 촛대 등 아주 간소한 것이었으나 그의 편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엘리사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아주 만족했던것 같다.
2. 엘리사의 감사의 보답(12-17)
(1) 그는 그녀를 위해 왕에게 원하는 것을 구해주겠다고 제안하였다(13절).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것이 있느냐. 즉 "네남편을 위해 문관으로든 무관으로든 어떤직위를 주랴?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었으면 좋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자기에게 그러한 좋은 직위들은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즉 "우리는 현재 잘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자리에 오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 수넴여인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했으나 몇년이 지난후에 그녀는 왕에게 나아가 호소한다(참조. 8:3,4).
(2) 엘리사는 그녀를 위해서 하늘에 그녀의 소망을 구해주었다. 엘리사는 그녀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었으면 좋은지에 대해서 자기의 사환과 의논하였다. 게하시는 그에게 그녀가 자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즉 많은재산이 있으나 그것을 물려줄 아들이 없으며 그녀의 남편이 늙었으므로 이젠 자식을 가질 소망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만일 엘리사가 그녀를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이일에 대한 은총을 얻어준다면 현재 그녀에게 있는 유일한 슬픔을 제거해주는 것이 될것이었다. 그는 즉시 그녀를 불러오도록 하였다. 그녀는 늘 하던대로 겸손하고 정중하게 '문에 섰다'(15절). 그때에 엘리사는 그녀에게 1년안에 아들을 낳으리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었다(16절). 그리고 그약속은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즉 엘리사가 말한때에 그녀는 '아들을 낳았던' 것이다(17절).

Ⅲ. 죽은 수넴여인의 아들을 살림 4:18-37
우리는 아이가 출생한후에 엘리사가 그 선한 수넴여인에게 갑절로 환대받았으리라는 것을 쉽게 추측해볼수 있다. 여태까지는 엘리사가 자신을 그녀에게 빚진자로 여겼었으나 이제부터는 살아있는한 그녀가 자신을 그에게 빚진자로 여길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그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줄수 있었을 것이다. 그아이는 또한 선지자에게 매우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아이는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진 아이였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부모에게도 매우 사랑받는 아이였으리라고 생각할수가 있는데 이는 그들이 나이들어서 얻은 아이였기 때문이다.
1. 아이의 죽음(18-21)
약속의 아이, 기도로 얻은 아이, 사랑받던 아이가 갑자기 죽게되었다. 그러나 현명하고 경건한 그어머니는 이 기가막힌 재난을 당하고도 침묵을 지켰으니 얼마나 감탄할만한가! 그녀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살아난 것과 그일을 한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에게 임한것을 들었었다. 따라서 그녀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자신이 주신것을 그렇게 빨리 거두어 가신분께서 그 거두어 가신것을 다시 돌려주리라고 확신하였다. 이러한 믿음을 가졌기에 그녀는 자기의 죽은아이를 장사할 준비를 전혀 하지않았으며 도리어 다시 살릴준비를 하였다. 즉 선지자가 자기아이를 다시 일으켜줄 것을 바라면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위에 두었던' 것이다(21절). '여자여, 네믿음이 크도다.'
2. 어머니의 슬픈호소(22-28)
매우 다행스럽게도 그사건은 엘리사가, 멀지않은 갈멜산의 선지학교에 있을때 일어났다.
(1) 그녀는 자기의 남편에게 선지자에게 가는것에 대해서 알렸다. 그러나 무슨용무로 가는지는 알리지 않았다. 이는 그가 그녀를 가게할만큼 믿음이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22절). 이 부부가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는가 보라. 그녀는 남편에게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어서 자신의 여행에 대해서 알려주었고 남편또한 자기아내에게 친절해서 비록 그녀가 자기의 용무를 알리지 않았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2) 그녀는 할수 있는한 아주 황급히 그선지자에게 갔다(24절). 따라서 선지자는 멀리서 그녀를 알아보고 사환을 보내 무슨일이 잘못되었는지 물었다(25,26절). 대답은 일반적인 것이었다. 평안이니이다. 그녀가 호소하기위해 찾아온 사람은 게하시가 아니었기때문에 그녀는 이말로 그를 따돌렸던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친지들을 죽음을 통해 부르실때 "이는 우리에게나 그들에게나 잘된 일이다"라고 침착하게 말할수 있도록 교훈을 받는다. '평안하다'함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일이 평안하기 때문이다. 만일 떠나간 자들이 하늘나라에 간것이라면 그들에게는 잘된 일이다. 그리고 만일 그슬픔에 의해서 우리가 바른길 가운데로 더욱 나아가게 된다면 뒤에 남아있는 우리에게도 잘된 일이다.
(3) 그녀는 선지자에게 와서는 현재 당한 재난에 대해서 겸손하게 이유를 물었다. 엘리사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이는 그녀가 무슨일때문에 그러는지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매우 애처롭게 말하였다. 그녀는 선지자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1) 이제 자기에게서 거두어간 그아이를 자신이 구한적이 없다고 말하였다. 내가 내주께 아들을 구하더이니까(28절). "천만에요. 내가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은 아실 것입니다. 즉 그것은 내제의가 아니고 당신의 제의였습니다. 나는 아들이 없다고 애태우지 않았었습니다. 한나처럼 구하지도 않았고 라헬처럼 '나로 자식을 낳게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2) 아이를 다시 살려줄 것을 호소하면서 선지자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함을 보여주었다.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그리고 당신이 그러지 않을줄을 내가 압니다."
3. 아이가 다시 살아남(29-37)
여인은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여기에 간단히 기록된 것보다, 더상세한 설명을 엘리사에게 했을 것이며 엘리사는 그녀에게 그아이가 살아날 것에 대해 더분명한 약속을 했으리라고 추측된다.
(1)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황급히 그 죽은아이에게 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자기의 지팡이를 주면서 그것을 아이의 얼굴에 놓도록 명하였다(29절). 홀주교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자만에서 비롯된 일이므로 실패하였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놀라운 은총을 그렇게 값싸게 행하지는 않으실 것이며 또 그것이 그렇게 쉽사리 임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는 그러한 은총이 과소평가되지 않게하기 위해서이다.
(2) 그여인은 선지자와 함께가 아니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30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그녀는 지팡이에 대해서 그리 큰기대를 하지않았다. 그녀는 선지자의 직접적인 손길을 원했다. 그녀는 바르게 처신한 것이었다.
(3) 선지자의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께서 죽은아이를 다시 살려주셨다. 선지자는 죽은아이가 자신의 침상에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32절).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사람 뿐이라(33절).
1) 선지자는 아마도 게하시에게 지팡이를 건네주어 그것으로 이일을 해결하려고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을 아주 크게 시험했던 것을 절실히 깨닫고서 이 큰일에 온정성을 다해 힘을 쏟았다.
① 그는 '여호와께 기도하였다'(33절). 마치 엘리야처럼 '이 아이의 혼으로 그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권세있는 자로서 죽은자를 다시 살리셨다. '소녀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나사로야 나오라' 이모든 것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생명의 주가 되신 분으로 능력있으신 분임을 나타내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엘리야와 엘리사는 종처럼 간구함으로 그일을 행하였다.
② 그는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렸다'(34절). 그는 마치 그아이에게 자신의 체온과 혼의 일부를 전해주기라도 하려는듯이 그렇게 하였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이름으로 생명의 호흡을 그에게 불어넣기라도 하려는듯 '자기입을 그입에' 대었고, 그아이의 눈을 다시 뜨게하여 생명의 빛을 보게하려는듯 '자기눈을 그눈에' 대었으며, 그아이의 손에 다시 힘을 얻게하려는듯 '자기손을 그손에' 대었다. 그리고나서 그는 마치 근심과 염려가 가득한 자처럼 '내려서 집안에서 이리저리 다녔다.' 그는 마치 자신이 하려는 일에 완전히 몰두해있는 자처럼 그렇게 행동하였다. 그리고나서 그는 다시 '아이위에 올라 엎드렸다'(35절).
2) 그일은 점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첫번째 간구에서는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해졌다'(34절). 그것이 선지자에게 계속해서 기도하도록 힘을 주었다. 잠시후에 '그아이는 일곱번 재채기를 하였다.' 그것은 그아이가 살아났을뿐 아니라 정상적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3) 그아이가 소생함으로써 어머니에게 얼마나 기쁨이 되었겠는가(36,37절). 따라서 근심했던 모든사람들이 '위로를 적지않게 받았다'(행20:12).

Ⅳ. 두가지 기적 4:38-44
엘리사는 자기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선지생도들을 가르치며 아버지와도 같이 그들을 양육한다. 우리가 8:1절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그땅에 거하는 자들의 사악함때문에 그곳에 기근이 발생했다. 그기근은 엘리야의 시대의 두배가 되는 7년동안이나 계속되었다.
(1) 엘리사는 독이 있는 음식을 안전하고 유익한 것으로 만들었다.
1) 그는 자신이 모든 선지생도들에게 영혼을 위한 생명의 양식을 먹이는동안 그들의 육신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도록 자기의 종에게 지시하였다. 그는 단지 채소로만 국을 끓일것을 지시하였다(38절). 선지생도들은 절제와 금욕의 본이 되어야만 하였다.
2) 채소를 캐러간 종들중 한사람이 실수하여 유독한 채소를 캐왔으며 그것을 국에 넣었다. 본문에서는 그것을 '들 외'라고 하였다(39절). 어떤이들은 생각하기를 그것이 "콜로신드", 즉 강한 설사를 일으키는 위험한 채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생도들은 엘리사에게 그음식의 유해함에 대해서 불평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40절).
4) 엘리사는 즉시 나쁜맛을 제거했으며 따라서 그유해한 국으로인한 나쁜결과를 방지하였다. 전에 소금으로 좋지못한 물을 고친것처럼 지금도 가루로 쓴국을 고친 것이다(41절). 이제 모든것이 다 잘되어서 사망의 독뿐 아니라 솥안에 있는 어떤해도 다 없어졌다.
(2) 그는 적은양의 양식으로 많은무리를 먹였다.
1) 엘리사는 보리떡 이십과 채소 얼마를 선사받았다(42절). 그것은 기근이 한창이었던 당시로서는 다른 어떤것보다 특별히 귀한 선물이었다.
2) 그는 거저받았으므로 거저주었다. 그는 그자신이나 나중의 누구를 위해서라도 남겨두지 말고 그모든 것을 선지생도들에게 나누어 줄것을 명하였다. 선지자의 아버지는 선지생도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마음이 있었다.
3) 비록 보리떡이 적었으나 엘리사는 그 이십덩이로 일백명을 먹였다(43,44절). 그의 사환은 많은 사람앞에 이런 적은양의 음식을 내어놓는 것은 자신의 상전을 부끄럽게만 할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떡이 무리에게 충분할 것임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했으며 그것은 결국 사실로써 드러났다. 그들은 모두 먹었으며 남기까지 하였다. 이는 그들이 떡을 잘먹지 않아서가 아니라 먹는대로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 핵심
4:1-7
빚으로 아들을 노예로 빼앗긴 한선지자의 부인이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된 사건을 기록한 내용이다.
처음익은 식물을 받은 엘리사(4:42)
첫열매는 하나님께 바쳐야했으며, 제사장과 같은 하나님의 종에게 주어졌다(민 18:13; 신 18:4). 따라서 그분의 종인 선지자들도 당연히 먹을수 있었다. 본래 이러한 예물은 성전에 바쳐야 했다. 하지만 당시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져있었다. 따라서 참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중에는 예물을 금송아지가 있던 벧엘과 단의 신당에 바치지않고 하나님의 참선지자에게 가지고 갔던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 묵상
믿음있는 자 ( 4:1-7 )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고자 하는 순종의 자세가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보이지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여기며 믿고따르는 것입니다(히11:1).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믿음있는 자를 귀히 보시고 기뻐하십니다(히11:6).
하나님의 사람을 대접 ( 4:8-16 )
하나님의 사람을 대접한 사람은 기대치않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대리인이며 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대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과 같습니다(갈6:6, 7). 히브리인들의 자녀관은 자녀를 하나님의 복과 선물로 이해하여 다산(多産)을 큰복으로 생각했습니다. 자녀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분명한 의식이 있을때 바른 자녀교육과 건전한 양육이 실행될수 있습니다(시127:3).
시련속에서의 성도의 자세 ( 4:17-25 )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위해 시련을 주시기도 합니다(창22장: 막4장). 이때 성도는 겸손히 하나님을 먼저 의뢰하는 신앙을 키워야 합니다.
엘리사의 이적이 보여주는 교훈 ( 4:17-24 )
구약의 여러 이적사건들은 신약시대에 있을 예표입니다. 엘리사의 이적은 예수님께서 죽은자들을 다시 살리시는 이적(막5:35-43; 요11:1-44)을 행하실 것에 대한 예표입니다. 이는 또한 장차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새생명을 얻게되고 부활의 영광까지 누리게 될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 ( 4:27-28 )
심지어 하나님의 사람이라하더라도 모든것을 다 알수 있는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도를 사람에게 드러내시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그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마13:9).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한 경륜과 섭리에 대한 인간의 거부나 의심의 태도를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절대순종만이 요구될 뿐입니다(삼상15:22).
게하시의 태도 ( 4:29-31 )
게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의지하지 않고 개인의 신비주의적인 힘을 의지했습니다. 신앙은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않으면 그것은 모래위에 세운 집과 다를게 없습니다(마5:24-27).
엘리사와 예수님의 이적의 차이 ( 4:32-37 )
엘리사는 죽은자를 살리기위해 여러행동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죽은자를 살리셨습니다(요11:43, 44).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셨기에 말씀만으로도 살리실수 있습니다(히3:1-6). 예수님은 생명과 부활의 주관자이지만(요11:25) 엘리사는 그 은혜아래 있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엘리사의 이적 ( 4:38-44 )
하나님은 위대하고 능력이 있으시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살수 있습니다. 그것은 또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의 예표가 되기도 합니다(마14:16 이하). 구약의 많은사건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해 간접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풍성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 ( 4:42-44 )
인간이 풍성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손이 짧거나 자비와 사랑이 결핍되어서가 아닙니다(사50:2). 그것은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심을 믿지않기 때문이요(히11:6), 또 그믿음에 근거하여 간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약4:2). 설혹 간구할지라도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욕심으로만 기도하기 때문입니다(약4:3).

# 해설
이적을 통해 백성들을 돕는 엘리사 ( 4 )
본장에서는 엘리사가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이적을 통해 해결해주는 4가지 사건들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엘리사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죽은 생명을 소생시키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 할수 있는 의식주문제를 해결해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적속에는 주의 백성들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이 숨쉬고 있습니다.
1. 과부를 돕는 엘리사
1) 엘리사에게 찾아온 과부
어느날 엘리사에게 선지자의 미망인이 찾아왔습니다. 이여인은 선지자인 남편이 죽자 빚진돈을 갚지못하여 두아들이 노예로 끌려갈 지경에 이른 불쌍한 과부였습니다. 이과부는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당시 이여인에게는 음식과 연료로 쓸수 있는 기름 한병밖에는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었던 것입니다. 과부의 모든상황을 들은 엘리사는 그여인에게 빌릴수 있는 그릇들을 모두 모아 그녀의 집에서 아들과 함께 그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명하였습니다.
a.선지자 생도(왕하2:3)
b.불쌍한 과부(신24:17)
2) 기적을 체험하는 과부
선지자 미망인은 엘리사가 시킨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의 병에서 나온 기름이 모든그릇을 가득채운 것이었습니다. 이 미망인은 아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여인은 즉시 엘리사에게 찾아가 이모든 일들을 고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그녀에게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돈으로는 생활을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제 이여인은 앞날의 생활까지도 보장받게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기적은 주의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보호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a.병의 기름이 가득함(왕상17:16)
b.하나님의 사람(신33:1)
2. 수넴여인을 돕는 엘리사
1) 엘리사를 환대하는 수넴여인
엘리사는 사마리아와 이스라엘등지를 여행할때마다 수넴지역에 들러 어느 한집에 머무르곤 하였습니다. 이집의 주인인 수넴여인은 영적분별력과 신앙적인 열심이 있었기에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인지를 분별할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여인은 남편의 동의하에 엘리사가 편히 쉴수 있도록 거처를 마련하는 등의 환대를 베풀었습니다. 엘리사는 이러한 수넴여인의 따뜻한 정성에 무엇인가 보답할 마음으로 수넴여인에게 소원을 물어보았으나 수넴여인은 정중히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가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였습니다. 즉 수넴여인에게는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수넴여인을 불러 1년안에 아들을 갖게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때 수넴여인의 기쁨은 말로 형언키 어려울정도로 컸습니다.
a.수넴 지역(수19:18)
b.득남에 대한 예언(창17:21)
2) 아들의 출생과 죽음
엘리사의 예언대로 수넴여인은 1년뒤에 득남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의 사랑속에서 나날이 자라가던 이아들이 들에서 두통으로 쓰러지더니 이내 곧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수넴여인은 즉시 갈멜산에 있는 엘리사에게로 정신없이 찾아갔습니다. 엘리사를 보자마자 수넴여인은 그의 발을 안고 우는 것이었습니다. 수넴여인의 이러한 행위는 겸손과 절망을 표현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엘리사는 수넴여인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선지자의 권위의 상징인 지팡이를 게하시에게 주면서 소년의 얼굴위에 놓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a.사랑스런 자식(사49:15)
b.과부의 아들이 죽음(왕상17:17)
3) 죽은 아들을 살리는 엘리사
엘리사는 죽은 아들을 자기침상에 눕혔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린후 죽은아이 위에 올라 엎드렸습니다. 이러한 엘리사의 간절한 모습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죽은아이의 몸이 점점 따뜻해지더니 얼마후에 아이가 일곱번 재채기를 하며 살아난 것입니다. 엘리사는 방으로 수넴여인을 불렀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못했던 수넴여인은 살아난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기쁨과 감동으로 어찌할바를 몰랐습니다. 그녀는 엘리사의 발앞에 엎드려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여호와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런후 그녀는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가득안고 아들과 함께 방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선대한 수넴여인에게 기적으로서 보답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건은 생명의 주인되시는 분이 누구이신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메시지이기도 하였습니다.
a.죽은아이를 살린 엘리야(왕상17:22)
b.소녀를 살리신 예수님(막5:41-42)
3. 길갈에서의 이적
1) 흉년이 든 길갈
엘리사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기거하는 길갈에 당도하였는데, 그곳에는 흉년이 들어 먹을것이 부족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사환에게 음식을 만들 국솥을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때 선지자중 한명이 들에 나가 먹을만한 것이라 생각되는 야등덩굴을 따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어떠한 음식인줄도 모르고 국속에 집어넣고 끓였습니다.
a.길갈(왕하2:1)
b.흉년에 대한 예언(왕하8:1)
2) 국을 해독시키는 엘리사
선지자 무리들은 맛있어 보이는 국을 먹다가 이내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그맛이 지독하여 도저히 먹을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그국에 약간의 밀가루를 넣었습니다. 그러자 독한 맛이 사라지고 매우 맛있는 국이 되어 선지자들은 아무탈 없이 그것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영적기근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숭배가 독을 마시는 것과도 같은일임을 상기시켜주는 사건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살길임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a.물근원을 고친 엘리사(왕하2:21-22)
b.물을 해독한 모세(출15:25)
3) 백명에게 주어진 음식의 이적
길갈옆에는 바알살리사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사람이 자신이 추수한 첫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엘리사에게로 가져왔습니다. 엘리사는 그에게 이음식으로 이곳에 모여든 백명의 사람들을 먹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종들이 음식을 나누어주자 놀랍게도 백명에게 충분히 제공하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a.첫열매는 여호와의 것(출13:12)
b.오병이어의 기적(마14:20-21)
결론
엘리사의 네번에 걸친 이적사건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의 역사를 다시한번 입증해주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엘리사가 행한 이적들은 좁게는 어려운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드러나 있으며, 넓게는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얼마나 깊고 큰지를 입증해주는 예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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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여호람의 통치 3:1-5
여기서 아합의 아들이자 아하시야의 형제인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다. 비록 그가 악한사람이긴 했으나 그에 대해 칭찬할만한 일이 두가지 기록되어 있다.
(1) 그는 자기아버지의 우상을 없앴다. 그는 여러가지 악을 행하였으나 아버지 아합이나 어머니 이세벨같지는 않았다(2절). 아마도 여호사밧이 아합의 집과 동맹을 맺은것이 그자신의 가문을 욕되게 하긴했으나 아합의 집을 개선하는데에는 어떤영향을 미쳤던것 같다. 여호람은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숭배하고 그의 선지자들과만 상의하기로 결의하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다'(2절). 그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합가문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다.
1) 그는 단지 '그아비의 만든' 바알의 주상을 제하였을 뿐이었다. 그는 백성들사이에 만연해있는 바알숭배를 제하지 않았다. 그것은 예후때에 가서야 이루어졌다(10:19). 자기집을 개혁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라를 개혁시키는 일에 자신의 권력을 사용했어야 했다.
2) 그는 바알의 주상을 없애고 여로보암이 정책적으로 저지른 죄인 금송아지의 숭배를 좇았다(3절). 저가…그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는 그것에 의해서 두지파와의 분리가 유지되기 때문이었다. 진실로 돌이키지 않는자들은 단지 자신들에게 손해가 되는 죄를 떠날뿐 자신들에게 득이 되는 죄에 대해서는 계속 애착을 가진다.
3) 그는 단지 바알의 주상을 치웠을뿐 반드시 그것을 파괴했어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않았다.
(2) 그는 자기형제 아하시야가 잃은것을 할수 있는한 회복하려고 힘썼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에 대해 그의 아버지보다 더훌륭하였듯이 왕의 면모에 있어서도 그의 형 아하시야보다 더훌륭하였다. 모압은 아합이 죽자 곧바로 이스라엘을 배반했었다(1:1). 그리고 우리는 아하시야가 그들을 징벌하기 위한 어떤시도라도 했던것을 보지못했다. 모압왕이 바친 공물은 이스라엘왕의 수입으로는 매우 상당한 것이었다. 즉 그것은 '새끼양 십만의 털과 수양 십만의 털'이었다(4절). 그당시 세금은 돈보다는 그지방의 특산물로 바쳤다. 모압의 배반은 이스라엘에게 대단한 손실이었다. 그런데도 아하시야는 나태하고 안이하게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러나 궁전의 다락이 험준한 산만큼이나 그에게 치명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1:2). 결과적으로 난간의 무너짐은 왕좌에, 그보다 더뛰어나고 활동적인 자를 앉게해 주었다.

Ⅱ. 세왕이 모압을 치러감 3:6-19
여호람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곧 모압을 진압하려 한다.
(1) 이원정을 하는데 있어서 이스라엘왕 여호람과 유다왕 여호사밧이 서로 협력을 한다. 여호람은 군대를 소집하고(6절) 유다의 경건한 왕 여호사밧에게 협력을 구한다.
1) 그는 여호사밧을 설득해서 그의 동맹자가 되게한다. 당신은 나와 함께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뇨(7절). 이렇게해서 그는 여호사밧을 끌어들였다. 유다와 이스라엘, 이 둘은 비록 불행하게 서로 나뉘어 있었지만 공동의 적인 모압을 치기위해 하나가 될수 있었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을 자매국가처럼 대하였다. 마음속으로 옛날의 상처를 잊지못하거나 용서하지 못하는 자들은 결코 서로의 평화와 힘을 위한 친구가 될수 없다.
2) 그는 여호사밧과 신뢰할만한 친구로서 서로 의논하였다(8절). 그는 자기보다 더지혜롭고 경험많은 여호사밧에게 모압을 치기위해서 어느길로 가야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그들을 치기위해 가장 가까운 길인 요단을 건너 행군해서는 안되며 '에돔광야 길'로 둘러가야 한다고 일렀다. 이는 유다에게 공물을 바치는 에돔왕을 설득하여 자기들과 합세케 하기 위해서였다.
(2) 이 원정중에 동맹군은 큰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들은 적과 대면하기도 전에 물이 모자라 전멸될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9절). 이스라엘왕은 현재 처한 곤경과 임박한 위험을 몹시 애통해 하였다. '이 세왕을 불러 모을'자는 바로 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으며 현재상황을 몰인정한 처사로 여기고 있다.
(3) 이 위급한 상황속에서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묻자는 선한제안을 한다(11절). 그들이 지금 있는장소는 그들에게 선조들로부터 전해오던 이적을 어쩔수 없이 생각나게 하는 곳이었다. 즉 그곳은 바위로부터 물을 낸 장소였다. 추측컨대 아마도 이러한 생각이 여호사밧으로하여금 이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고 묻게끔 고무하였을 것이다. 여호사밧이 이제 여호와께 물으려 했다는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길을 행하기전에 그리했더라면 더좋았을 뻔하였고 만일 그랬더라면 이러한 곤경은 막을수 있었을 것이다.
(4) 엘리사가 그들이 의논할 가장 적합한 사람으로 추천되었다(11절). 엘리사가 전쟁에 참여한 것은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으로, 즉 하늘로부터의 특별한 지시에 의해서였을 것이다. 이스라엘왕의 신복중 한사람이 왕도 모르고 있을때 엘리사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그는 아합왕 시대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였던 오바댜같은 자였을 것이다. 엘리사는 왕이 아닌 그러한 사람에게 자신을 알게하였다.
(5) 왕들이 엘리사에게 간청한다. 그들은 직접 엘리사가 있는곳으로 내려갔다(12절). 스스로를 낮춘 그는 이와같이 높여졌으며 크게 되었다. 즉 세왕이 그의 방문을 두드리고 도움을 청하였던 것이다.
(6) 엘리사가 그들을 맞는태도는 다음과 같았다.
1) 사악한 이스라엘왕에게는 매우 직선적이었다. "내가 당신과 무슨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13절). 그들은 당신이 잘될때에 당신을 지지하던 자들입니다. 이제 그들로하여금 곤경에 처한 당신을 돕게 하십시오. 당신을 지배하는 이세상과 육신으로하여금 당신을 돕게 하십시오. 어찌하여 하나님께 물으려 하십니까?"(참조. 겔14:3) 엘리사는 그의 사악함에 대해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그를 마주하거나 보고싶지도 않다고 맞대놓고 말한다(14절). 왕으로서 여호람은 존대받아야할 자이고, 엘리사는 신하로서 그에게 경의를 표해야할 것이나 선지자로서 그는 왕으로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여호람은 이 가혹한 대우를 잘 참아낼만큼 자제력이 있는 자였다. 그는 지금 바알선지자들에 관한 말을 듣고자 하는것이 아니고 매우 통탄할만한 현재의 상황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선지자에게 드러내놓고 그처지를 선지자의 동정어린 배려에 겸손하게 내어맡기는 탄원자인 것이다. 그는 자신을 무가치한 자로 인정하였지만 다른왕들이 자기때문에 파멸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2) 유다의 경건한 왕에게는 큰존경을 표했다. 따라서 엘리사는 '그의 낯을 보아서' 즉 그로인해서 그들 모두의 문제를 여호와께 물었다.
3) 엘리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시하심을 받기위하여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잠시 흥분한 것으로인해 기도가 되지않아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받을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려고 그는 거문고를 타며 시를 노래하는 경건한 악사 한사람을 청했다. 이 거룩한 음악에 의해서 엘리사의 심신이 새로와지고 그의 마음의 격정이 가라앉게되자 여호와의 손이 그에게 임하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임하심은 세왕이 찾아온 것보다 그를 더욱 존귀케 해주는 것이었다.
4)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를 통해서 현재 그들이 처한 곤경이 잘해결될 것이며 또한 영화롭게 될것임을 확신케 해주셨다.
① 그들은 즉시 물을 공급받게될 것이다(16,17절). 그들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기위해서 그는 '이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고 명한다. 엘리야는 기도로 구름으로부터 비를 내렸지만 엘리사는 아무도 알지못하는 곳에서 물을 끌어내고 있다. 이물의 근원은 나일강의 수원만큼이나 비밀한 곳에 있었다. 하나님은 제2의 원인에 구애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산업을 견고케하시는' 것은 대개 흡족한 비를 통해서(시68:9)이나, 여기서는 비없이, 적어도 이곳에서만은 비없이 행하셨다.
② 물의 공급은 승리의 징표가 될것이다(18절).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일이라. "당신은 단지 멸망할 자리에서 구원받을 뿐만아니라 승리를 얻고 돌아갈 것입니다." 그들은 그반역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될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Ⅲ. 이스라엘 연합군의 승리 3:20-27
1. 양편의 전쟁(20-25)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해서 약속하신 물과 승리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을 보게된다. 더우기 물은 승리의 징표일뿐만 아니라 그수단으로 주어졌던 것이다.
(1) 그물은 거의 전멸할뻔했던 군대를 살려냈다(20절). 이구원은 예루살렘에 있는 제단에서 아침소제를 드리는 시간에 주어졌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잘 상당될만한 어느특정한 시간을 정할수는 없다. 이는 우리의 대제사장이 항상 우리를 위해 그의 희생제물을 드리며 간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시되어온 매일의 제사시간을 귀하게 하기위해서 그시간을 축복의 시간으로 정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녁소제를 드릴때 즈음'에 다니엘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단9:21).
(2) 적들은 에돔광야를 가로지르는 오랜 행군으로인해 지친 동맹군과 싸우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며, 자만하여 거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1) 그들은 쉽사리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첫째, 그들은 이스라엘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골짜기에 물이 있는것을 보았으며 그것을 피로 착각했다(22절). 왜냐하면 그들은 골짜기가 마른것을 이미 알고있었기 때문에 설마 그것이 물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해가 떠올라 그것을 비쳤는데 아마도 하늘이 붉었고 날씨가 좋지못했던것 같다. 그래서 물이 붉게 보였고, 결국 그들은 '이는 피라'고 믿었을 것이다.
둘째, 그들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즉 만일 그들의 진영이 이와같이 피가 가득하다면 필경 그들은 '서로 죽인것'(23절)이며 왕들은 죽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모압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23절).
2) 운명적으로 그들은 스스로의 멸망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경솔하게도 이스라엘의 진영을 약탈하기 위해서 쳐들어갔다. 그리고 자신들이 속은것을 알았을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엘리사가 승리를 확인시켜 준것에 힘을 얻어 강력하게 그들을 공격하여 패퇴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영토에까지 추적을 해서(24절). 그땅을 황무케했으며, 성읍들을 파괴하고 우물을 메우고 나무를 베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단지 왕성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것마저 파괴하는 장비를 사용하여 성벽을 무너뜨렸다.
2. 모압왕의 최후의 발악(26,27절)
우리는 본장의 마지막인 이대목에서, 마지막 정복될 위기에 처한것을 안 모압왕이 어떤일을 행했는가 하는것에 대해 보게된다.
(1) 그는 대담하고 용기있는 일을 시도했다. 즉, 그는 특별히 뽑은 칠백명을 거느리고 에돔왕의 진지를 급습하였다. 그의 생각에 에돔왕은 대가를 바라고 이원정에 출정하였기때문에 만일 세차게 공격한다면 크게 버티지 못할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게되면 그길로 도망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되지 않았다. 에돔왕조차 그에게는 너무 벅찬 상대여서 그를 물러나게 할수가 없었던 것이다(26절).
(2) 이것이 실패하자 그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짓을 행했다. 즉, 그는 자기의 아들, 곧 자신과 백성들에게 가장 귀한자인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될 맏아들을 취하여 그를 '성위에서 번제로 드렸다'(27절). 그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이일을 행한 것이었다. 자기의 신 그모스의 은총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신은 피와 살인, 그리고 인간의 멸망을 기뻐하는 마귀였다. 포위한 자들을 두렵게 만듦으로써 그들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제사를 '성위에서', 즉 그들이 보는앞에서 행했다. 이는 그가 항복하기보다는 지키기위해서 얼마나 필사적으로 싸울것인가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자신의 성과 생명을 내어주는 값을 얼마나 비싸게 요구할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 핵심
3:1-27
여호람의 통치와 모압의 반란에 대한 진압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나무를 베리라는 예언(3:19)
엘리사의 예언이 가나안땅의 과목을 베지말라는 신 20:19,20절의 말씀에 어긋난다는 점을 근거로, 이예언이 참된 계시라기보다는 엘리사의 민족주의적인 신념에서 나온것이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 하지만 모압땅은 엄격한 의미에서 가나안이 아니다. 그리고 그의 예언은 본장 24,25절이 보여주는대로 정확히 성취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임을 입증하였다.

# 묵상
여호람의 개혁 ( 3:1-3 )
여호람은 아합의 아들로 아하시야와 형제입니다. 그는 바알의 주상은 제하였지만 악한길에서 돌이키지는 않았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그의 전인격과 삶의 완전한 변화가 있어야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지음받은 새피조물이기에 옛것은 완전히 버려야합니다(고후 5:17).
위험에 처한 두사람 ( 3:8-12 )
곤경에 처한 두왕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입니다. 여호람은 절망에 빠져 곤경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원망했고,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뜻을 알기위해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신앙은 어려움이 닥쳐올때 그힘을 발휘하며 그속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욥5:17; 벧전1:7).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어려움에서도 결코 굴하지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담대한 신앙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곤경속에서의 하나님 ( 3:13-20 )
하나님을 의지할때만이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수 있습니다. 연합군이 물이 없어 난처해 할때, 엘리사는 여호사밧에 대한 배려로 물을 얻도록 도와줍니다. 오직 구원자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이세상에 구원을 줄만한 다른이름은 없습니다(행4:12).
대리구원 ( 3:14 )
구약에서는 종종 다른사람을 통해 구원이 나타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창19:29).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보여주기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서 구원은 개인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대리구원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믿는이들의 역할은 복음을 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갑옷 입을만한 자 ( 3:21 )
전쟁에 참전할만한 자라는 뜻으로, ‘싸움을 예비한 자’, ‘방패와 창을 함께한 자’라는 유사한 표현들이 있습니다(대상12:24, 34). 이스라엘에서는 전쟁에 참전하여 나라를 지키는 것을 남자의 고유한 존재가치로 보았습니다. 한편 성도의 고유한 존재가치는 하나님나라 건설에 적극 동참하고, 또 사탄과의 영적전투에 부름받아 열과 성을 다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딤후1:8; 2:3, 4).
전쟁승패의 주관자 ( 3:26 )
전쟁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삼상17:47). 이세상 역사, 그중에서도 특히 한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인간의 힘과 지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모든 사건들과 인격들의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위기가 닥쳤을때 기도해야 합니다(시50:15).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제사 ( 3:27 )
번제는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온전한 헌신을 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제사로 제물로는 소나 염소 등의 동물을 드립니다(레1장).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계십니다(레18:21).

# 해설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언하는 엘리사 ( 3 )
엘리야의 선지자직을 승계한 엘리사의 위대한 사역이 본문속에 계속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리고와 벧엘등지에서 이적을 행하고 사마리아에 돌아온 엘리사에게 여호람왕이 찾아옵니다. 이왕은 모압정벌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에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완승을 예언합니다. 엘리사는 이제 민족을 위한 공적인 사역에도 힘쓰게 되는 첫출발을 하게된 것입니다.
1. 여호람의 모압정벌
1) 여호람의 이스라엘통치
아하시야왕이 죽고, 그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왕위는 아하시야의 동생이자, 아합의 둘째아들인 여호람이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의 결과로 심판을 받아 죽게된 아하시야를 목격하였기에 부분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악하게 행동하지도 않고 아합이 만든 바알의 주상도 훼파시켰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이 펼쳤던 종교정책을 계속하여 이어받았기에 완전하게 죄악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습니다.
a.아합의 아들인 여호람(왕하1:17)
b.바알의 우상을 훼파(왕하10:26-27)
2) 이스라엘을 배반한 모압
모압은 오므리때에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모압족속은 많은 양들과 양털을 이스라엘에 조공으로 바쳐왔습니다. 그러던중 아합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즉위하자, 모압왕인 메사는 이스라엘을 배반하여 스스로 독립코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호람은 이러한 모압족속을 징벌해야하는 사명감을 갖게되었습니다. 그는 이를위해 유다의 여호사밧에게 원조를 부탁하여 동맹군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에돔족속은 이스라엘의 속국이었기에 이동맹군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배반한 모압을 징벌하기위해 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에돔족속이 힘을 규합하였던 것입니다.
a.롯의 자손인 모압족속(창19:36-37)
b.모압의 배반(왕하1:1)
3) 낙심에 잠긴 여호람
모압을 징벌코자 함께모인 동맹군들은 에돔광야를 통하여 공격하기로 하고 그쪽으로 행군하였습니다. 그런데 행군한지 7일만에 먹을 물이 다떨어져 버렸습니다. 행군길에 물이 없다는 것은 다시말해 행군을 할수 없다는 말이고, 모압정벌이 실패했음을 알리는 전주곡과도 같은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여호람은 낙심에 잠길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유다의 여호사밧왕은 실망에 잠기기보다는 주의 선지자를 찾아 여호와의 뜻을 물어보아야 한다고 희망적인 제안을 하였습니다. 이때 여호람의 신하중 한사람이 엘리사를 소개합니다. 여호사밧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신실한 종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찾아가자고 제안을 하였고, 이에 세명의 왕이 함께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a.여호수아의 낙심(수7:7)
b.여호와의 선지자(왕상22:7)
2. 엘리사의 승리예언
1) 여호람과 대면한 엘리사
여호람을 위시한 세명의 왕이 엘리사앞에 당도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여호람을 보자마자 당신의 부친이 믿던 바알신에게 찾아가 도움을 구하라는 가시돋힌 말을 하였습니다. 이는 여호람에게 바알신의 무력함을 강조하면서 바알신 숭배에서 떠나지않는 여호람의 죄악을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호사밧을 보아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a.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함(왕하5:16)
b.거문고 탈 자(삼상10:5)
2) 승전을 예언하는 엘리사
엘리사는 먼저 특별하신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물을 공급해주시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동시에 모압에 대해 이스라엘 군대가 완승을 거두리라는 승전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군대가 모압의 좋은나무를 베고, 모든 샘들을 틀어막고 밭에 커다란 돌들을 놓아 모압인들의 생활환경을 무참히 파괴시키게 될것이라고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속에는 살아계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올바로 깨닫기 원하시는 여호와의 인자하신 사랑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a.견고한 성읍을 황무케 하심(사25:2)
b. 물의 심판(계17:1)
3. 이스라엘의 완승
1) 착각에 빠진 모압군대
모압의 군대들은 이스라엘 동맹군들의 공격소식을 접하고 철통같은 수비태세를 취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까 계곡으로부터 붉은피가 흘러내려 오는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압진영에서는 생각하기를 3개국의 연합군이 서로 불화를 일으켜 서로 살육을 했을것으로 판단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미 전쟁은 끝난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전리품이라도 취해야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본 피는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로 하나님께서 이적으로 행하신 물이었던 것입니다. 모압군대는 한번도 계곡에서 물이 흐르는 것을 못보았기에 그만 착각속에 빠졌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전쟁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전쟁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a.악인들의 착각(신32:27)
b.여호수아의 착각(수9:15)
2) 처절하게 패배한 모압
착각에 빠져 적진을 향해 돌격한 모압군대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연합군에 의해 무참히 살육당하였습니다. 기세가 오른 연합군들은 모압을 침략하여 많은사람들을 죽이고 엘리사의 예언대로 나무와 샘, 그리고 밭 등을 황폐화시켰습니다. 그러나 모압의 가장 주요한 성이라 할수 있는 길하레셋은 빼앗을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은 사해남단 동쪽의 계곡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는 강력한 성읍이었고, 저항도 거셌기에 정복할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a.모압에 관한 경고(사15:1)
b.모압의 슬픔(렘48:31)
3) 이스라엘의 완승
모압의 메사왕은 길하레셋에 은신하고 있다가 동맹국들중 가장 약하다고 생각한 에돔을 향해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그러자 메사왕은 자신들의 민족신인 그모스신이 자신들에 대하여 진노하고 계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메사왕은 그모스신의 진노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자신의 맏아들을 성위에서 인간제물로 바쳤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메사왕의 행위를 보고서 동맹군들은 모압에서 철수하여 각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비록 길하레셋을 점령치 못하였고, 메사왕을 사로잡지는 못하였지만 이스라엘의 승리는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로 완승을 거두게된 것입니다.
a.모압의 죄(암2:1)
b.맏아들을 제물로 드림(미6:7)
결론
이스라엘과 모압과의 싸움은 우상숭배의 허구성에 대조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앞으로 더욱 나아갔습니다. 한편 완승에 대한 예언의 성취는 엘리사의 선지자적 위상을 이스라엘 민족위에 천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방에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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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엘리사가 엘리야를 좇음 2:1-8
엘리야의 생애와 그에 관한 사건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이 그렇듯이 조금밖에는 기록되어 있지않다. 그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찾아볼길이 없고 그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 아합의 통치 몇년인지, 그가 사라진 것이 여호람의 통치 몇년인지도 알지못한다. 그러므로 그가 얼마동안이나 활동했는지에 대해서도 추측할수가 없다. 다만 약20년쯤 활동하지 않았나 추정해볼 뿐이다.
(1) 하나님께서는 회오리바람으로 그를 하늘로 데려가시기로 결정하셨다(1절). 하나님께서 왜 다른선지자들과는 달리 엘리야에게만 그런 특별한 영광을 베푸셨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말할수 없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 즉 우리와 마찬가지로 죄를 안 사람이었으나 죽음을 맛보지 않았다. 여기서 다음내용을 추측해볼수가 있다.
1)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그의 크고 특별한 헌신을 돌아보셨다.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그리고 선지생도들로 하여금 그의 열심과 충실을 본받아 그들이 살고있는 타락한 현실에 대하여 올바로 증거할수 있도록 힘을 주기위해 이것을 작정하셨다.
2) 하나님께서는 현재 교회의 어둡고 부패한 상태를 굽어보시사 이세상의 삶뒤에 또다른 삶이 있음을 매우 분명한 증거로 나타내시고 또 신실한 소수의 무리들의 마음을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의 희구로 향하게 하시고자 이와같이 작정하셨다.
3) 하나님께서는 복음적인 섭리를 의도하셨다. 따라서 엘리야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승천과 모든 믿는자들에게 열려있는 천국문에 대한 하나의 모형이며 상이었다. 엘리야는 믿음과 기도로 하늘과 많은 교제를 나누다가 이제 그곳으로 올리워지는 것이다. 이는 비록 짧은 삶이지만 이땅에 사는동안 우리가 하늘과 교제를 가진다면 그영혼(즉 그사람)은 그곳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릴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2) 엘리사는 엘리야가 이땅에 있는한 그와 함께 있으며 결코 그를 떠나지 않을것을 결심하였다. 엘리야는 그를 떨어지게 하려고 했던것 같다. 즉 그는 엘리사를 길갈, 벧엘, 여리고에 머물게 하려했다(2,4,6절).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영화롭게 하시려는지 알고있었으나 그는 그와같이 영화롭게 되는것을 보이고자 하지않았다. 어떤이들은 이것을 그의 겸손으로 생각한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어느곳이든 머무르게 하려고했으나 허사였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하늘로 가기까지 결코 그를 떠나지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2,4,6절). 그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엘리야가 살아있는동안 그와 거룩한 천국의 대화로 교훈을 얻고자해서 였다.
2) 엘리야가 떠나는 것에 대해 만족하기를 바램에서였고 또한 그가 들려올라가는 것을 보고자해서 였다. 그렇게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굳게하고 보이지않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였다.
(3) 엘리야는 승천하기전에 선지학교를 방문하여 그들과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이스라엘의 많은 성읍에 그러한 학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아마 사마리아에도 있었던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선지자의 생도들'을 볼수가 있는데 두개의 금송아지중 하나가 세워져있는 벧엘에서조차 그수효는 상당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저주를 무시한채 최근에 건설된 여리고에서도 많은 생도들이 있었다. 예루살렘과 유다나라에는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성전봉사자가 있었으나 이스라엘나라에는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혜스럽게도 이학교들을 만드셔서 훈련을 시킴으로서 그곳에서도 종교의식을 행하게 하셨다.
(4) 선지생도들은 이제 엘리야가 곧 이세상을 떠날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있었다.
1) 그들은 엘리사에게 그사실을 말했는데 벧엘뿐 아니라(3절), 여리고에서도 그러했다(5절).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위로 취하실줄을 아나이까(3,5절). 엘리사도 그것을 잘알고 있었기에 '그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했으며'(같은경우에 처한 주의 제자들처럼;요16:6) 따라서 그는 그것을 재삼 들을필요가 없었고 귀기울이지도 않았다.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3,5절). 그는 엄숙한 침묵으로 사태를 받아들이면서 말하였다. 나도 아노니 잠잠하라(슥2:13).
2) 선지생도들은 비록 가까이 있지는 않았으나 멀리 떨어져서 그일의 증인이 되고자 그뒤를 따라갔다. 오십인이 가서 멀리서서 바라보며(7절). 그들은 호기심때문에 그렇게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멸시받은 선지자를 하늘이 존귀케하는 것을 직접 보게함으로써 그들을 증인으로 삼으시고자 하셨던 것이다.
(5) 엘리야가 요단강을 가른 이적은 하늘의 가나안에 들어가는 그의 승천의 서곡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땅의 가나안에 들어갈때 나타났던 이적과 같은 것이었다(8절). 엘리야는 승천하기위해 요단저편으로 가야만 했다. 이는 그곳이 그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그곳에 간것은 모세가 죽은 장소에 더가까이 이르기 위함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이렇게함으로 가장 멸시받던 그지역을 존귀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갈때 요단강을 가르심으로 그를 높이셨던것 같이 이일을 통해서 올리워지려는 엘리야를 높이셨다(수 3:7). 하나님께서 신실한 자들을 데려가실때 죽음은 곧 요단강이 된다. 즉 그것은 승천하기 바로전에 있는 것으로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한길, 곧 안전하고 편안한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그강을 갈랐는데 이는 주의 속죄함을 받은자들로 하여금 건너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Ⅱ. 엘리야의 승천 2:9-12
1. 자기대신 엘리사를 세움(9,10)
엘리야는 처음 엘리사를 만나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을때보다 훨씬 진지한 마음으로 그를 후계자로 삼을 결심을 했다(참조, 왕상 19:19).
(1) 엘리야는 엘리사의 한결같은 애정과 시중에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자신이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는지, 즉 마지막 떠나기전에 어떤축복을 내려주기를 원하는지 구하라고 말하였다.
(2) 가장 좋은것으로 부하게 될수 있는 좋은기회를 가지게된 엘리사는 여기서 갑절의 영감을 구한다. 그는 부도 영광도, 그리고 위험에 처하지 않기를 위해서도 구하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과 그세대를 섬기기 위한 자격을 갖추게 해달라고 구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구하였다.
1) 영감 : 그가 구한것은 엘리야의 능력안에 있는 영의 은사나 은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내게 영감을 주소서"라고 하지않고(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사임을 잘알고 있었다) "영감이 내게 있기를, 즉 나에게 이것이 있어지도록 하나님께 구해 주소서"라고 구했던 것이다.
2) 엘리야의 영감 : 이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을 선지자였기 때문이었다. 즉 그의 사역을 수행하고 선지생도들의 아버지가 되고 적들과 상대해야 하고 그가 겪었던 것과 똑같은 어려움들을 헤쳐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3)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 : 그는 엘리야가 가진것의 두배를 말한것이 아니며 다른 일반선지자들이 가진것의 두배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선지자들에게서는 엘리야밑에서 배웠던 엘리사에게 주어졌던 그러한 큰영감을 기대할수 없었다. 엘리사는 엘리야밑에서 배웠던 것이다.
(3) 엘리야는 두가지 단서하에 엘리사가 구한것을 약속하였다(10절).
1) 엘리사가 그것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엘리야는 그것을 '어려운 일'이라고 부름으로써 엘리사에게 할바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행하시기에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너무 큰것을 원하고 있다는 말이다.
2) 그가 마지막까지 자기와 함께하고 자기의 마지막을 봐야한다는 조건이었다. 나를 내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10절).
2. 엘리야가 승천함(11)
엘리야는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는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승천했다. 카울리(Cowley)의 말처럼 그는 모든인류가 빠지는 도랑을 뛰어넘어 하늘로 올라간 두번째사람이었다. 우리는 본문에서 알수 있는것으로만 만족하자.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셨을때 엘리야는 일하고 있었다. 그는 엘리사에게 교훈을 주고 용기를 주며 앞으로 수행할 사역에 대해서 지시하고 일깨워주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는 뒤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함이었다. 그는 이제 그가 가게될 저세상에 푹빠진 사람처럼 묵상하거나 기도하고 있지않았으며, 사람들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가진자로서 가르침에 열중하고 있었다.
(2) 하나님께서는 그를 호송할 것들을 보내셨다. 불수레와 불말들(11절). 이는 그를 왕처럼, 승리자처럼, 아니 승리자보다 더존귀한 자처럼 당당하고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성경에서 천사들은 '그룹'과 '스랍'으로 불리운다. 여기에서의 것들은 비록 그들의 위엄에는 미치지 못하나 그이름들에 합치되는 것들이라고 볼수 있다. 그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스랍'이 '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화염'으로 자기사역자를 삼으신다고 했다(시 104:4).

둘째, '그룹'이(많은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수레'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병거'로 불리기도 했다(시 68:17). 수레와 말들이 불처럼 나타났는데 이는 불사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밝혀주기 위한 것으로 엘리야를 불사르거나 고통스럽게 하지않았으며 그장면을 멀리서서 보는자들에게 분명하고 찬란하게 그의 승천을 보게 해주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한 열심으로 불탔었다. 그리고 이제 하늘의 불로 정련되고 승천하게 된것이다.
(3) 이 불수레와 불말이 엘리사와 엘리야를 갈라놓았다.
(4) 엘리야는 어디로 옮기워졌는가.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11절). 엘리야는 한때 격정에 못이겨 죽기를 바랬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와같은 엄청난 특전을 베풀어주실만큼 지극히 자비로우셔서 그는 죽음을 보지않았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경우와 에녹의 경우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것을 보여주셨다.
1) 하나님께서는 만일 인간이 죄를 짓지않는다면 어떻게 세상을 떠나게될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곧 죽음에 이르지않고 승천하게됨을 가르쳐 주신다.
2) 하나님께서는 복음에 의하여 분명히 드러난 또다른 생명과 그것의 불멸성에 대해서, 그리고 엘리야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늘나라가 열려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보여주셨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승천의 한모형이기도 했다.
3. 엘리사가 슬퍼함(12)
엘리사는 위대한 선지자를 잃게된 것을 비통해하였다.
(1) 그는 엘리야의 마지막을 보았다. 이로써 그는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이 있기를 구한 자신의 요구가 허락되었음을 확신했다. 그는 끝까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는 주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기로부터 은사가 있기를 바래서였다(행 1:10). 그장면은 잠깐동안 보였다. 그리고 곧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다.
(2) 그는 자신뿐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큰손실인 이일을 슬퍼하는 표시로 자신의 옷을 찢었다. 비록 엘리야가 승리자로서 하늘로 갔지만 그를 잃는것이 세상으로서는 좋은것이 못되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고 유용한 자들을 데려가실때 슬퍼하지도 애통하지도 않을만큼 눈물이 마른자들은 필시 마음조차 굳어있는 자들임에 틀림이 없다. 엘리야가 떠나가는 것이 엘리사가 뛰어나게 되는 길이었으나 그는 엘리야의 떠나감을 슬퍼하였다. 이는 그를 사랑했기때문이며 언제까지라도 섬기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3) 그는 엘리야에게 매우 존경스러운 호칭을 부여하였다. 그자신으로서는 젊은날의 지도자를 잃어버린 것이기에 '내아버지여 내아버지여'라고 하고 백성들에게는 가장 훌륭한 수호자를 잃어버린 것이기에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마병이여'라고 했다. 아마도 엘리야는 만일 그들이 죄만 짓지않았더라면 모두를 그수레로써 하늘에 데려가고자 했을 것이다.

Ⅲ. 엘리야를 이은 엘리사 2:13-18
우리는 여기서 엘리야의 승천이후 곧바로 나오는 내용을 보게된다.
1. 엘리사의 능력(13-15)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엘리사와 함께하신다는 증거와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은 것을 증거하는 표적이 언급되어 있다.
(1) 엘리사는 엘리야의 직무를 상징해주는 그의 겉옷을 받았다. 그는 엘리야를 위하여 그옷을 입었을 것이다(13절).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을때, 그는 자기의 겉옷을 엘리사에게 남겨주었다. 그것은 그에게 영감이 임했다는 증거이므로 수천의 은금을 물려받은 것보다 더욱 값진 것이었다. 엘리사는 그옷을 자신이 입어야할, 귀중한 의미가 있는 옷으로 여겨 집어들었다. 그옷으로 인해 기꺼이 부름에 순종하여 엘리야의 종이 되었던 그는 이제 그옷으로 존귀케되어 그의 후계자가 된것이다.
(2) 그는 요단강을 가르는 엘리야의 능력을 받았다(14절). 그가 그의 아버지(엘리야)와 헤어진후 선지학교의 생도들에게 돌아올때 요단강이 그들사이에 놓여있었다. 그강은 엘리야가 영광으로 나아갈때 길을 내주기위해 좌우로 갈라졌었다. 이제 그는 사역을 위해 나아가는 자신에게 길을 내주기위해 그강이 또 갈라질지의 여부를 시험할 참이었다. 엘리야의 마지막 이적이 엘리사의 첫번째 이적이 될것이다. 강을 가르는데 있어서 그는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 엘리야의 겉옷을 사용하였다(8절). 이는 그가 자기선생의 방법을 그대로 따르고자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엘리야의 하나님께 구했다.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14절). 그는 "엘리야는 어디 계십니까"라고 하지않았다. 그의 말은 곧 이러한 뜻이었다. "엘리야를 인정하시고 보호하시며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시고 여러가지로 그를 영화롭게 하시다가 이제 마지막으로 특별히 그를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여호와여 나는 엘리야의 영감을 약속받은 자가 아닙니까? 그약속을 이행하여 주십시요." 뒤이어 나오는 말은 원문으로 aph-his로서 "그도"라는 뜻인데 우리는 그것을 다음의 절, 즉 '저도 물을 치매'로 연결시키고 있다. 그러나 어떤이들은 이것이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의 응답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는 여전히 계시다. 그것도 가까이에 계시다. 우리는 엘리야를 잃었지만 엘리야의 하나님을 잃지는 않았다. 그는 세상을 버리지 않으셨다. 즉 그는 불변하시어서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시다." 자기선임자의 경건하고 충성된 정신과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은 틀림없이 그선임자들이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은혜를 경험할 것이다. 엘리야의 하나님역시 엘리사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경건한 선지자들의 하나님이셨던 여호와께서는 어저께나 오늘이나 또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다. 만일 우리가 앞서간 경건한 자들의 영감, 즉 그들의 하나님을 가지고 있지않다면 그들이 남기고간 옷이나 거처 또는 저서 등이 우리에게 무슨소용이 있겠는가?
(3) 그는 선지생도들에게서 엘리야와 같은 존귀함을 받았다(15절). 일어나는 일을 보려고 요단강 부근까지 따라갔던 여러 선지생도들은 엘리사가 돌아올때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것은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위에 머물렀다'는 확실한 증거로 삼았다. 따라서 그들은 그가 안전하게 물과 불을 지난것과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영광을 축하하고자 왔다. 그앞에서 땅에 엎드리고(15절). 그들은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은반면에 엘리사는 밭을 갈다가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또 그가 바로 하나님께서 존귀케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자라는 것을 알았을때 선지생도들은 마치 모세가 죽었을때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하였듯이(수1:17) 기꺼이 자기들의 우두머리이자 아버지로서 엘리사에게 복종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존귀케하시는 자에 대해서 그가 누구든 복종할수 있어야 한다.
2. 선지생도들의 헛된 수색(16-18)
선지자의 생도들은 불필요하게도 엘리야를 찾고자 했다.
(1) 그들은 엘리야가 떨어져서 어떤산이나 계곡에 살아있거나 죽었으리라고 생각했다(16절). 아마도 그들중 몇몇은 엘리사가 선택받은 것에 대한 저항감에서 이것을 주장했을듯 싶다. "엘리야가 정말로 사라졌는지 먼저 확인해보도록 합시다"
(2) 그들이 끈질기게 간청하자 결국 엘리사는 허락을 해주었다(17절). 그들은 엘리사가 더이상 반대하기가 민망하기까지 주장을 하였다. 엘리사가 허락을 한것은 그가 자기의 선생을 존경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다시 그겉옷을 내어주고 싶지않아서 그렇다는 오해를 받지않기 위해서였다.
(3) 그결과는 그들로하여금 자신들이 제의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게끔 만들었다. 수색자들이 헛되이 지쳐서 돌아오자 엘리사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나무랐다. 내가 가지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18절). 산과 골짜기를 가로질러 찾아다니는 것이 결코 우리를 엘리야에게 이르게 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의 경건한 신앙과 열심을 본받는 것이 때가되면 우리를 그에게 이르게 해주는 것이다.

Ⅳ. 수질을 좋게함과 아이들을 저주함 2:19-25
엘리사는 엘리야보다 더많은 이적들을 행했다. 어떤이들은 그이적들이 숫자상으로 정확히 갑절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본문에는 두가지의 이적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여리고에 자비를 베푼 이적이고 하나는 벧엘에 재앙을 내린 이적이다.
1. 여리고의 수질을 좋게함(19-22)
여기에 여리고의 물이 좋은물로 바뀐 축복이 기록되어져 있다. 여리고는 명령에 불순종하여 세워진 곳이었다. 그러나 비록 그성이 불법으로 세워진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안에서 경건의 노력들을 찾아볼수 있다. 엘리사가 이곳에 온것은 엘리야의 승천을 멀리서 본자들보다 더상세히 설명을 해줌으로써 생도들의 믿음을 굳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오십인이 엘리야를 수색하는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1) 여리고 사람들은 그에게 자신들의 불평거리를 말했다(19절). 그들은 엘리야에게는 그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았었다. 이는 아마도 엘리야는 엘리사만큼이나 그들과 가까이 있지않았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그주변은 좋은곳으로 멋진 전망을 지니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의 물은 마시지 못하는 것이었고 토양도 열매를 맺지못하는 것이었다. 어떤이들은 여리고의 전지역이 메마른땅과 나쁜물은 아니며 단지 어떤지역만 그랬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2) 그는 곧 그들의 불평거리를 고쳐주었다. 선지자들은 각처에 다니며 하나님말씀을 정확히 적용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메마른 영혼을 풍성한 결실을 맺는 영혼으로 바꾸는 여러모로 애쓰는 자들이었다. 엘리사는 그들의 물을 고쳐줄 것이다.
1) 그들은 새그릇에 소금을 담아 그에게로 가져와야 했다(20절). 만일 소금이 물을 좋게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면 그렇게 적은양으로 무엇을 할수 있었겠으며 또 새그릇에 담아야 되는 이유는 무엇이었겠는가? 그러나 그것들은 도움이 될것으로 반드시 행해져야 했으며 이로써 그들의 믿음과 순종은 시험을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우리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법칙을 준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2) 그는 소금을 물근원에 던졌다. 그러자 물줄기와 그물이 닿는 토양이 고쳐졌다. 이와같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하는 것이다. 그마음이 은혜의 소금으로 고쳐져야 한다. 이는 거기부터 생명이 나기 때문이다. 마음을 정결케하라. 그리하면 손도 깨끗해질 것이다.
3)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이것을 행하는체 하지않았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물을 고쳤으니(21절).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라는 말로 자비를 베품으로서 그들은 이후에, 꼭 같은 서두로 시작하는 그의 교훈과 책망과 명령을 더욱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4) 그고침은 단지 그당시에만 효력을 나타냈던 것이 아니라 영속적이었다. 그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22절).
2. 벧엘에서 아이들을 저주함(23-25)
벧엘에 또다른 선지학교가 있었다. 엘리사가 여리고에 이어 그곳에 가자 그곳 생도들은 그를 극진히 환영하였다. 그러나 그곳 사람들은 그에게 욕을 퍼부었다. 여로보암이 세운 금송아지 우상중 하나가 벧엘에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자랑했으며 따라서 그들을 책망하는 자들을 미워하였다. 선지자들이 길을 다닐때 그들의 별명을 부르며 조롱한다든지 혹은 가능하면 그들을 자기들의 성읍에서 쫓아내는 것이 그들의 상투적인 행위였던것 같다. 만일 엘리사에게 행해진 욕설이 처음있었던 일이라면 그처럼 심하게 벌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대하 36:16절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선지자를 능욕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죄중의 하나였다.
(1) 그러면 그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벧엘의 '젊은아이들', 즉 길에서 놀고있던 남녀아이들이 그를 보러나와서는 그를 둘러싸고 마치 그가 바보이기라도 한양 놀려대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23절). 그들이 모욕을 주고자 했던것은 선지자라고 하는 그의 특성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영예롭게 높이셨다는 사실은 충분히 그의 대머리를 가리울만하였고 그러한 조롱을 받지않도록 할만한 것이었다. 이아이들은 배운대로 말하였다. 그들은 특별히 선지자들에게 더러운 별명을 부르고, 욕설을 내뱉는, 우상을 숭배하는 부모들에게서 그런것들을 배웠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이 병아리들은 어미닭을 따라서 울었던 것이다.
(2) 이것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능욕한 이스라엘에 마침내 임하게될 파멸의 전조로서 그것을 경고하기위해 나타난 것이었다. 엘리사는 한동안 인내심을 갖고 그들의 조롱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드디어는 '돌이켜 저희를 보았다.' 이는 혹 근엄하고 엄한 표정을 지으면 그들이 당황해할까 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들이 하나님께 행한 그불경을 벌하기위해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였던' 것이다. 그의 저주는 즉각 이루어졌다. 즉 두마리의 암콤이 수풀에서 나와서 그자리에서 42명의 아이들을 찢어죽였던 것이다(24절). 선지자는 분명히 정당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신의 감동에 의해서 그것을 행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는 그아이들의 부모를 벌하고자 했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게 하고자 했다. 자녀들에게서 위안을 얻고자하는 부모들은 그들을 잘 교육해야 한다. 우리가 교육을 태만히했던 자녀들에게서 선을 기대한다는 것은 헛된일이며 막을수 있었던 불행에 대해서 비탄해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 핵심
2:1-25
엘리야의 승천과 그의 뒤를 이어 선지자가 된 엘리사의 첫번째 이적이 기록되어 있다.
선지자의 생도(2:3,5)
이스라엘에 처음 선지자학교가 세워진때는 사무엘시대였다(삼상 19:20). 엘리야 당시는 그때로부터 이미 200여년이 흐른뒤였지만, 여전히 선지자운동은 활발하게 계속되었다. 이들은 당시 타락한 이스라엘종교의 개혁을 주도했던 세력이다.
무자비하신 하나님(2:23-25)
“젊은아이”(23절)는 철부지 어린아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다자라 사리판단이 분명한 젊은청년을 가리킨다(비교, 창 41:12─당시 요셉의 나이는 30세였다). 이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조롱하다가 저주를 받아 죽은것은 일견 지나친 보복으로 생각될수도 있다. 하지만 저들의 조롱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였다. 따라서 그들의 죽음은 당연한 심판의 결과였다.

# 묵상
스승에 대한 엘리사의 태도 ( 2:1-10 )
스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받고 스승을 따르기위해 끝까지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할때에 자기들이 다칠까 염려하여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마26:56).
엘리야의 승천사건 ( 2:1-4 )
본문은 바알종교와 일생동안 투쟁했던 엘리야사역의 최종적인 완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또한 여호와신앙의 최종적인 승리와 하나님의 구속사의 궁극적인 성취를 예표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온세상의 죄와 싸워 승리하시고 부활, 승천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일꾼들에게 믿음과 소망을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기쁨으로 성역에 동참케 하십니다. 성도들은 신앙선배의 삶을 통해 구속사역에 동참하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하겠습니다(고전4:16).
엘리야에게 구한 엘리사 ( 2:9, 10 )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했습니다. 그의 요구는 더위대하기를 구한것이 아니라 엘리야를 따를만한 후계자가 되기를 원한 것입니다(신21:17).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가장좋은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고전14:1).
죽음을 보지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 ( 2:10 )
에녹, 엘리야가 있습니다. 엘리야의 승천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사람은 사탄의 권세에 내버려두시지 않고 직접 자기품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장차 영광스러운 주님품으로 성도가 승천하게 될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옷을 취함 ( 2:12-14 )
이는 엘리사에게도 그와같은 능력이 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도 승천하신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행2:1-4). 주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시지 않고 그의 영을 보내사 교회와 세계를 지키십니다.
엘리야의 몸 ( 2:15, 16 )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야의 몸을 찾음은 인간이 육신을 가지고서는 거룩한 하늘나라에 올라갈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엘리야가 불말과 불수레를 타고 승천하면서 어느지점에 이르러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 영혼은 하늘로 승천하고 육신은 마치 허물처럼 벗겨져 지상으로 떨어졌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변화하여 영광의 몸을 덧입은 사람은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앞에 나아갈수 있습니다(고전15:51-53).
하나님의 심판 ( 2:23-25 )
하나님은 어린아이까지도 당신의 의에 기준하여 심판하십니다. 또한 아이들이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조롱했다는 것은, 그들의 가정교육상태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들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영을 배반하고 욕하며 증오하면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어른과 같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 해설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의 사역 ( 2 )
엘리야는 아합에서부터 아하시야 재위기간동안 무수한 고난속에서도 의연하게 맡은바 사명에 충실하였던 선지자였습니다. 이제 본장에는 엘리야가 승천함으로써 비게될 그의 자리를 엘리사가 계승하는 장면이 시작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영적지도력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극적으로 승계되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엘리야의 승천
1) 벧엘에 온 엘리야와 엘리사
자신의 맡은바 사명을 완수한 엘리야는 이제 자신이 이세상을 떠나야할 시점에 다달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의 제자인 엘리사도 감지할수 있었습니다. 벧엘북쪽의 길갈에 있던 엘리야는 승천하기에 앞서 선지자의 생도들이 있는 벧엘로 가고자 했습니다. 가기에 앞서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길갈에 머물러있으라고 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와 떨어질수 없다고 결심한터였기에 엘리야의 명을 거역하고 엘리야의 뒤를 따랐던 것입니다. 결국 이 두사람은 함께 벧엘로와서 선지자의 생도들을 만났으며, 엘리야는 깊은 감회속에서 이들을 격려하고 위로하였습니다. 물론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도 엘리야의 승천을 알고있었던 것입니다.
a.예배와 희생의 장소인 벧엘(삼상10:3)
b.우상숭배 장소인 벧엘(왕상12:28-29)
2) 여리고에 온 엘리야와 엘리사
벧엘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난 엘리야는 다시금 엘리사에게 이곳에 머물라고 제의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엘리사는 정중히 거절하면서 충성을 다해 엘리야를 섬기며 함께 동행할 것을 다짐합니다. 또다시 두사람은 함께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생도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 있는 생도들도 벧엘의 생도들과 마찬가지로 엘리야의 승천을 알고선 이를 엘리사에게 알고있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알고있으니 잠잠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한편 엘리야는 요단을 향해가면서 똑같은 요구를 엘리사에게 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역시도 똑같은 대답과 행동을 취하면서 요단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a.여리고성에 대한 저주(수6:26)
b.여리고에서의 죽음(왕상16:34)
3) 승천하는 엘리야
요단강 기슭에 도달한 엘리야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그것을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그겉옷으로 요단강 물을 쳤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요단강물이 갈라지고 강바닥이 말라서 두사람은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널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출애굽당시 홍해가 갈라졌고, 또한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넜듯이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동일하게 임하심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무엇이든지 요구하라고 제의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엘리야의 계승자로서 사역을 감당할수 있는 영감을 갑절로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는 엘리야의 능력으로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자신의 승천을 엘리사가 볼때에 이요구가 이루어지리라 말하였습니다. 이러던중 갑자기 하늘로부터 불수레와 불말이 다가와 두사람을 격리시키더니 회리바람이 엘리야를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리하여 엘리야는 에녹이후 두번째로 육신의 죽음을 보지않고 영광스럽게 승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a.겉옷을 던진 엘리야(왕상19:19)
b.불수레와 불말(왕하6:17)
2. 엘리사의 능력
1) 요단강을 가르는 엘리사
엘리야의 승천을 직접 목격한 엘리사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영적인 아버지요 스승인 엘리야와의 이별도 가슴아픈 일이었고, 이제 엘리야의 뒤를이어 사명을 감당해야하는 책임또한 엘리사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엘리야의 계승자로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승천할때 벗겨진 엘리야의 겉옷을 취하여 요단강물을 쳤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했던것처럼 요단강물이 갈라졌습니다. 이로써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a.요단강을 건넌 백성들(수3:17)
b.나아만이 고침받은 요단강(왕하5:14)
2) 엘리야를 찾는 무리들
여리고에 있던 선지자들은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엘리야의 모습과, 엘리사가 요단강을 건너는 모든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이은 영적지도자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엘리사 앞에와서 땅에 엎드려 그에게 존경심을 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아주 먼곳으로 옮겨졌으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엘리사에게 엘리야를 찾기위한 수색대를 보내도록 간청하였습니다. 엘리사는 필요없는 일이라 말렸으나 이들이 하도 간청하기에 수색대를 보내 찾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수색대들은 3일동안 엘리야를 찾았으나 헛수고만 하였습니다. 따라서 선지자들은 엘리사의 말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더욱 존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a.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왕상19:19)
b.지도자에 대한 존경(히13:17)
3. 엘리사가 행하는 이적들
1) 물을 정켤케하는 엘리사
여리고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영적지도자로 엘리사가 세워졌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이곳 여리고의 가장 큰문제인 좋지않은 물문제를 엘리사에게 가져왔습니다. 엘리사는 물의 근원지로 가서 소금을 뿌리는 상식밖의 일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물에 소금을 넣으면 더나빠지는게 상식적인 일인데 놀랍게도 소금을 넣었더니 물이 좋아지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은 지금까지 바알을 섬기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새삼 깨닫도록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아울러 엘리사의 선지자적 정통성을 만방에 알리는 사건이기도 하였습니다.
a.소제물에 뿌리는 소금(레2:13)
b.소금기둥이 된 롯의 처(창19:26)
2) 저주받은 젊은아이들
엘리사는 여리고를 떠나 벧엘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벧엘은 여로보암이래로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엘리사가 길을 가고있는데, 젊은아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하면서 엘리사를 조롱하였습니다. 이 젊은아이들은 금송아지를 숭배했던 부모의 영향을 받아 여호와를 무시하고 있었고, 자연히 여호와의 선지자인 엘리사에 대해서는 경멸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들을 저주하였습니다. 비록 어린나이라 할지라도 여호와에 대한 그들의 무례한 태도는 용서받을수 없는 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의 저주로 암콤이 나타나 이들중 42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젊은아이들의 죽음은 자신들의 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우상을 숭배한 그들부모들에게 임한 형벌이기도 하였습니다.
a.포로를 대머리로 만듦(신21:12)
b.심판의 상징인 대머리(사3:24)
결론
엘리야의 승천과 함께 엘리사라는 새로운 영적지도자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처럼 요단강을 가르는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과 함께함을 확신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이제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암흑기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과 동거동락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는 사명자의 첫발을 힘차게 내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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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엘리야가 아하시야의 죽음을 예언함 1:1-8
이스라엘의 악한왕 아하시야는 하나님의 섭리와 선지자에 의해, 즉 하나님의 채찍과 말씀에 의해서 징계를 당한다.
(1) 그는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케 하는' 자들이 어떻게 잘되기를 기대할수 있겠는가?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기를 거절했을때,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했으며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바쳐오던 복종을 거절하였다(1절).
(2) 그는 어떤 내적원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심한 사고에 의해서 병에 걸렸다. 그 다락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2절). 아하시야는 모압을 진압하려 하지않았다. 그는 전쟁터에서 죽을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비록 집에 있었다할지라도 그는 안전하지 못했다. 왕궁이라고해서 항상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3) 그는 근심중에 자신이 낫겠는지의 여부를 예그론의 신에게 묻기위해 사자들을 보냈다(2절).
1) 그의 질문은 매우 어리석었다. 이 병이 낫겠나(2절). 차라리 이렇게 묻는것이 자연스런 물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나을수 있겠는가?"
2) 그가 바알세붑에게 사자를 보낸것은 매우 사악한 일이었다. 바알세붑은 바알신들중 하나로 "파리의 주"(the lord of a fly)라는 의미를 가진 신이었다. 아마도 바알세붑은 마귀의 권세나 제사장의 재주를 통해 큰파리가 윙윙거리는듯한 소리를 냄으로 자신의 답변을 주었거나 아니면 온나라에 들끓던 파리떼들을 제거했거나 파리떼가 가져오는 전염병을 퇴치시켜 주었던것 같다. 신약성경에서는 바알세붑을 '귀신의 왕'이라고 했다(마12:24).
(4)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왕이 보낸 사자들을 만나서 에그론의 신을 만나러갈 필요를 없애주는 답변을 주어 그들을 돌려보낸다.
1) 그는 충심으로 왕의 죄를 책망한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3절). 이는 즉 "너희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여 에그론의 신에게 물으려하는 것이냐"는 말이다. 에그론은 블레셋의 아주 보잘것없는 마을(슥9:7)로서 오래전에 이스라엘에게 정복되었다. 왕의 죄는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하는 영광을 마귀에게 준것이기에 악한 것이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일이 더욱 악한 것이라고 평한다. "네가 그렇게 한것으로 보아 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해줄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만아니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전혀 계시지않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않다면 너는 신의 답변을 얻기위해서 그렇게 멀리까지 사자들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2) 그는 분명하게 왕의 운명을 말해준다. 가서 그에게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4절).
(5) 신복들이 왕에게 그말씀을 전하자 왕은 누가 그말을 하였는지 물었고 그사람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엘리야가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린다(7,8절). 그옷차림은 그가 전에 아버지의 궁전에서 보았던 엘리야의 옷차림과 똑같았던 것이다. 그는 털이 많은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두르고 있었다. 즉 검소하고 소박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Ⅱ. 불을 내린 엘리야 1:9-18
(1) 왕은 엘리야를 체포하라는 명을 내린다. 만일 에그론의 신이 그에게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면 그는 아마 그예언에 순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같은 여호와의 선지자의 말은 곧 그의 죄에 대한 책망이며 또한 그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기에 그는 참을수가 없었다.
(2) 엘리야를 체포하기위해서 오십명의 병사와 함께온 오십부장이 산꼭대기(어떤이들은 갈멜산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에 앉아있는 엘리야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항복할 것을 왕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명했다(9절). 이제 엘리야는 전처럼 동굴속의 은신처에 몸을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대담하게 산꼭대기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일단 경험한 사람은 더욱 대담해지게 된다. 오십부장은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렀다. 만일 그가 진정으로 엘리야를 선지자로 보았다면 그를 체포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만일 그가 엘리야를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받은 자로 생각했다면 그는 엘리야에게 왕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허세는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3) 엘리야는 자기의 직무를 입증하기위해 이 거만한 죄인들을 소멸토록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 하였다. 이사건은 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게해서 재물을 태운지(왕상18:38) 얼마 지나지않아서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이 그사실을 무시했기때문에 이제 재물위가 아니라 죄인들인 그들 자신위에 불이 내린 것이다(10절).
1) 선지자들은 하늘과 깊은관계가 있는 자들이다. 그들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 원하는바를 실행시킨다. 엘리야는 단지 말만했으나 그말은 실제로 이루어졌다.
2) 하늘역시 선지자들과 큰관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꺼이 선지자들의 간구를 해결하고자 하시며 그들에게 가해진 유해를 보상하고자 하신다. 물론 엘리야는 하나님의 신의 감동에 의해서 이와같이 행하였으나 우리 구주께서는 전체를 따르지 못하게 하셨다(눅9:54).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너희는 너희가 어떠한 영을 받아야하는지 알지못한다." 이는 다시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너희는 어떠한 영을 받아야하는지 생각지못하고 있다. 너희는 제자로 불리울 자들로 구약 율법시대와는 다르다. 두려움의 율법시대에서는 엘리야가 불을 요구하는 것이 충분히 합당했겠으나 성령과 은혜의 시대에서는 결코 그러한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둘째, "너희는 이때에 어떠한 영을 받아 행해야할지 알지못하고 있다. 그것은 엘리야의 시대와는 다른 것이다. 그는 거룩한 열심히 그렇게 행했으나 너희는 감정으로 그렇게 하려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을 두었으나 너희는 단지 너희자신의 명성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4) 아하시야는 마치 전능한 힘에 의해 좌절할수는 없다고 결심한양 엘리야를 체포하기위해서 두번째로 병사들을 보냈다. 오십인과 또다른 오십부장이 보내졌다. 이번역시 지난번 만큼이나 무분별하고 오만했다. 그리고 더다급히 재촉하였다. "속히 내려오라(11절). 머뭇거리지 말라. 왕이 보고자 하신다." 엘리야는 조금도 개의치않고 또다른 불을 구했다. 그러자 그오십부장과 오십인은 그자리에서 죽임을 당했다.
(5) 세번째 오십부장은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과 엘리야의 자비에 자신을 내어맡겼다. 그는 자기선임자들의 운명을 보고는 깨달음을 얻었다. 따라서 선지자에게 내려오라고 명령하는 대신 그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들 자신들의 응당받아야할 죄과와 선지자의 능력을 인정하면서 자신과 그의 병사들의 생명을 살려줄 것을 간청하였다. 원컨대 나의 생명을…귀중히 보소서(13,14절).
(6) 엘리야는 이 세번째 오십부장이 요구한것 이상의 것을 들어주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순복하는 자들에게는 기꺼이 자비를 베푸신다. 어느누구도 자신들을 하나님의 자비에 내어맡겨서 무익하게 된적은 결코 없었다. 이 오십부장은 자기의 생명을 건졌을뿐만 아니라 자기의 뜻을 이루게까지 되었다. 엘리야는 천사의 명을 받고 그와 함께 왕에게로 내려갔다(15절). 엘리야는 담대하게 왕에게 나아가서는 전에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했던 것을 왕의 면전에서 다시 말하였다(16절). 즉 그가 정녕 그리고 곧 죽으리라고 말하였다. 그는 왕이 진노할 것을 두려워하거나 불행을 동정하여 선고를 내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죽음을 언도하셨고 또한 그로하여금 에그론의 신이 자신을 구할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사람들을 보내게 하셨다. 이예언은 아하시야에게 청천벽력과 같았다. 그말씀이 선지자의 입에서 나왔을때 왕이나 주위에 있는 어떤신복들도 감히 그에게 어떤폭력도 가하지 못했으며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마치 다니엘처럼 그는 아무해도 입지않고 그사자굴에서 빠져나왔다. 결국 며칠후 그예언은 성취되었다. 아하시야는 죽었고(17절),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나라는 형제 여호람에게 넘어갔다.

# 핵심
1:1-18
아하시야가 병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에게 도움을 구했다. 엘리야는 그가 죽음을 맞게되리라고 예언했다. 그예언대로 아하시야는 끝내 병에서 회복되지 못했다.
바알세붑(1:2)
문자적으로 ‘파리들의 주’(lord of flies)라는 의미. 이 이름에 대해서는 두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높은곳의 주’(lord of the high place)라는 뜻인 ‘바알세불’이라는 이름을 히브리인들이 경멸하는 뜻에서 이렇게 불렀다는 해석이다. 또하나는 질병을 다스린다고 믿어졌던, 파리형상의 우상을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이다.

# 묵상
아하시야의 잘못 ( 1:1-4 )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로 그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는 병이 났을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의 다른신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병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은혜를 보여주시고자 할때가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 ( 1:9-12 )
하나님은 모든생명을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무엇보다도 생명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도 인간에게 생명을 주고 더풍성히 얻게하기 위함입니다(요10:10). 그러나 하나님은 그생명이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교만하게 행동할때는 취하시기도 하십니다(행5:1-11).
오십부장의 태도 ( 1:9-12 )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지않았고, 인간왕만을 두려워했으며, 왕의 악한 명령에도 복종했고, 엘리야에 대한 태도가 불손하므로 결국 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왕앞에선 엘리야 ( 1:13-16 )
왕이 곧 죽게될 것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기때문에 어떤권력자나 위험속에서도 담대히,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죽기까지 증인의 사명을 다해야함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라고 하시면 목숨을 걸고 전해야하는 것입니다(암3:8). 결코 벙어리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 해설
아하시야에 내린 재앙 ( 1 )
열왕기하는 계속되는 분열왕국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합의 아들인 아하시야는 부모로부터 전혀 신앙교육을 받지못하고 오직 우상숭배하는 것만 가르침받은 왕이었습니다. 따라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아합의 경우처첨 그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수는 없었습니다.
1. 병든 아하시야에게 임한 예언
1) 병든 아하시야
여로보암과 아합의 악행을 그대로 전수받은 아하시야에게 두가지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첫번째는 모압이 이스라엘에 반기를 들고 독립을 쟁취했다는 것입니다. 모압은 아하시야의 조부인 오므리에 의해 정복당한후 아합때까지 거의 400년간을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합이 죽고 연약한 아히시야가 이스라엘왕으로 즉위하자 곧바로 반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둘째로 아하시야가 다락난간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부상은 치명적인 것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사자들을 블레셋의 성인 에그론에 보냈습니다. 그곳에는 바알세붑이라는 우상이 있었는데, 이우상에게 치유의 능력이 있을것으로 아하시야는 믿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곳의 선지자들로부터 치유되리라는 희망의 소식을 듣고자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아하시야의 생각은 그가 하나님앞에 얼마나 불신앙적인 삶을 살고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예라 할수 있습니다.
a.이스라엘을 배반한 모압(왕하3:5)
b.병이 낫겠나 물어보라(왕하8:7-8)
2) 엘리야에게 임하신 여호와
아하시야가 자신의 사자들을 에그론에 보낼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나타나 아하시야에게 전할 예언을 말하도록 시켰습니다. 그예언의 내용은 여호와를 무시하고 그를 경배치않은 왕에게 죽음이라는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결국 아하시야는 바알세붑에게 계시를 구하고자 했으나 여호와께서 미리 응답해주신 결과가 된 것입니다.
a.디셉사람 엘리야(왕상21:17)
b.죽음에 대한 예언(왕하1:16)
3) 예언을 들은 아하시야
엘리야는 에그론을 향해가는 아하시야의 사자들을 만나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해 주었습니다. 이에 왕의 사자들은 발걸음을 돌려 아하시야에게로 와서, 왕이 죽게될 것이라는 엘리야의 예언을 그대로 전해 주었습니다.
a.블레셋의 오대성읍중 하나인 에그론(수13:3)
b.예언하는 엘리야(왕상17:1)
2. 아하시야의 신하들에게 내린 재앙
1) 예언자가 누구인지 알게된 왕
예언을 전해 들은 아하시야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누가 감히 왕의 죽음을 함부로 말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괘씸하기 그지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이런말을 할수 있는 사람은 엘리야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직접 만나지는 않았으나, 아버지인 아합때에 그에 대한 소문을 들어 잘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자들에게 그에 대한 외모를 말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듣고보니 엘리야가 분명하였습니다.
a.허리에 가죽띠를 한 요한(막3:4)
b.디셉사람 엘리야(왕상17:1)
2) 신하들에게 내린 재앙
아하시야는 즉시 엘리야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오십부장은 오십명의 군사를 이끌고 엘리야에게로 갔습니다. 이들은 엘리야를 잡고자했으나 그만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다죽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비극을 보고서도 아하시야는 또다시 군사를 보냈으나 이들도 똑같은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에 도전하는 결과가 죽음뿐임을 명백히 보여준 사건들입니다. 이처럼 죄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까지도 파괴하는 힘을 갖고있는 것입니다.
a.심판의 불(마25:41)
b.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불(출9:24)
3. 아하시야의 죽음
1) 무릎꿇은 오십부장
두번의 비참한 죽음앞에서 아히시야는 더욱더 분노하여 또다시 오십명의 군사와 오십부장을 엘리야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세번째로 온 오십부장은 이전에 있었던 사건들을 잘알고 있었기에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경의를 표하고 엘리야의 권위에 순종한다는 의미로 엘리야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심판하고 계심을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이전 오십부장들처럼 죽기를 원치않았기에, 엘리야에게 자비를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a.경의를 표하기위해 무릎을 꿇음(롬14:11)
b.무릎꿇고 기도한 다니엘(단6:10)
2) 죽음을 선포하는 엘리야
여호와의 사자가 엘리야에게 말하였습니다. 곧 두려워말고 오십부장과 함께 아하시야에게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두려움없이 왕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먼저 왕을 책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을 의지한 왕의 불신앙적 범죄행위를 지적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의 결과로 왕이 죽게될 것임을 단호하게 선포하였습니다.
a.두려워말라(수1:9)
b.엘리야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왕상19:7)
3) 아하시야의 죽음
엘리야의 예언이후로 아하시야는 그예언대로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았고 끝내는 죽고 말았습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는 진리가 아하시야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예언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아하시야가 죽자 그의 동생인 여호람이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이는 아하시야에게 아들이 없었기에 동생이 계승한 것입니다. 이때 유다는 여호사밧의 아들인 여호람이 아버지인 여호사밧과 공동섭정 2년째가 되는 해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는 같은 이름을 가진 왕들이 나란히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a.유다왕 여호람(왕하8:16)
b.왕이된 여호람(왕하3:1)
결론
아하시야의 죽음은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통치했던 오므리왕가, 곧 오므리, 아합으로 이어지던 왕가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선왕인 아합의 통치와 그비극적인 결말을 목격하면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우상숭배의 폐단을 막았어야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의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셨습니다. 그분은 회개치않는 자에게는 무섭게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아하시야는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목숨을 잃었고, 이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얼마나 준엄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 사건이라 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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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절로 구하는 엘리사

 

[열왕기하 2장 1절~18절]
1절 -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절 -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절 -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4절 -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절 -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절 -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7절 -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절 -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절 -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절 -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절 -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절 -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3절 -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절 -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15절 -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16절 -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17절 -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18절 -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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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겉옷

 

[열왕기하 2장 13절~15절]
13절 -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14절 -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15절 -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더보기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열왕기하 2장 1절~12절]
1절 -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2절 -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3절 -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4절 -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5절 -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6절 -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7절 -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8절 -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9절 -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10절 -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1절 -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12절 -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한눈으로보는 성경 - 열왕기하 ②

멸망의 이유를 생각해 보라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는 하나님이 진노를 멈추실 수 없을 만큼 가득 찼다. 하나님은 심판을 경고하시면서도 계속해서 돌이킬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과 말씀을 버린 민족은 망하고 백성은 사로잡혀 본토를 떠난다.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도 하나님은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소망의 빛을 주신다. 37년간의 감옥살이에서 해방된 여호야긴 왕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표한다.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아람(13:1~13, 22~23)
이스라엘 왕 여호아하스가 죄를 범하자 하나님은 이방 민족을 보내 심판하신다. 하지만 학대로 고통받는 이스라엘의 간구에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 주신다(13:5). 이 구원자는 우선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왕일 가능성이 있다. 요아스가 벤하닷을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회복하기 때문이다(13:25). 하지만 아람을 괴롭힌 더 큰 세력, 곧 앗수르의 왕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죄가 관영한 이방을 심판하시기 위해 또 다른 이방을 사용하기도 하신다. 하나님이 온 세계의 왕이시기 때문이다(사 45장 참조).

 

엘리사의 죽음(13:14~21, 24~25)

열왕기하의 중심인물인 엘리사 선지자가 죽음을 맞는다. 엘리사는 죽음 후에도 능력을 과시한다. 엘리사의 무덤에 던져진 시체가 그의 뼈에 닿자 회생해 일어선 것이다. 엘리사의 예언대로 요아스는 아람을 세 번 쳐서 이기고 성읍들을 회복한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전쟁(14:1~22)

유다 왕 가운데 반역으로 죽임을 당한 부자(父子)가 있다. 요아스는 밀로 궁에서 신복들 손에 죽고, 그의 아들 아마샤는 예루살렘에서 반역을 일으킨 무리에게 쫓기다가 라기스에서 죽는다. 아마샤는 어리석게도 이스라엘 왕 요아스를 도발했다가 벧세메스에서 크게 패하고 사로잡혀 예루살렘에 돌아온다. 이후 15년을 더 살지만 결국 반역자에게 살해된다.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14:23~29)

여로보암 2세는 이스라엘을 41년간 통치한 이스라엘 최장수 왕이다. 게다가 그는 아밋대의 아들인 요나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 즉 레바논에서 사해까지 영토를 확대한다(14:25). 이런 왕에 대해 열왕기는 고작 일곱 절로 진술을 마친다. 성경의 관심은 세상적 업적이나 성취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모스와 호세아 선지자는 번영한 여로보암 2세 시대의 이스라엘 부패상을 통렬한 어조로 비판한 바 있다.

 

이스라엘을 통치한 반역의 왕들(15:1~31)

유다 왕 아사랴(웃시야) 통치 52년 동안 이스라엘 왕조에는 수많은 반역자와 구데타가 일어난다. 스가랴를 반역한 살룹, 살룸을 죽인 므나헴,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를 죽인 베가, 베가를 죽인 호세아 등이다. 반역의 배후에는 아람과 앗수르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 므나헴은 자신의 반역을 지지하지 않은 딥사(15:16; 수 17:7~8, 므낫세 지파의 땅인 답부아)를 초토화하면서 부족한 정통성을 무마하기 위해 앗수르에게 은 1,000달란트를 주고 지원을 받는다. 이 앗수르 왕이 '불'이라고도 불리는 디글랏 빌레셀 3세다(주전 745~727년). 딥사와 친족인 길르앗 사람들은 베가를 도와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를 죽이고 반역한다(15:25). 이때 브가히야와 함께 죽은 이들은 왕을 지키는 친위대인 듯하다. 호세아가 베가를 죽이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된다.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15:32~16:20)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군대가 유다를 친 것은 요담(15:37)과 아하스 왕(16:5)의 왕권 교체기였을 것이다. 당시는 요즘과 달리 군사를 동원해 달려오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유다 왕 아하스는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 지나가게 할 정도로 악독한 우상 숭배자였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앗수르 왕에게 공물을 바치고 아람과 이스라엘의 포위에서 벗어난다. 또 앗수르 왕을 영접하기 위해 다메섹에 갔다가 앗수르의 제단 구조에 감명을 받고는 그것을 그려 와 하나님의 성전을 앗수르 식으로 개조한다.

 

이스라엘의 멸망(17:1~41)

앗수르는 이스라엘 마지막 왕 호세아에게 무거운 조공을 요구한다. 호세아는 앗수르를 버리고 애굽을 택한다. 애굽 왕이 '소'(So)라고 소개되는데, 이 이름은 지명이다. 사이스(Sais)라고도 하는 소(So) 지역을 다스린 바로는 24왕조의 테프나크트(Tefnakht)로 알려져 있다(17:4). 호세아의 배신에 분노한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는 3년 동안 이스라엘을 침공해 전 국토를 파괴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앗수르로 끌려가고, 이방인들이 사마리아에 와서 정착했다. 열왕기 저자는 이스라엘이 가치 없는 우상들을 섬기고 악한 왕들을 선택하느라 하나님을 등졌기에 결국 망했다고 요약한다(17:35~41).

 

 

 

 

살아남은 유다(18:1~19:37)

유다의 희망은 아버지 아하스와는 전혀 다른 아들 히스기야였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18:5).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앗수르를 배반하자(18:7), 앗수르 왕 산헤립이 전쟁에 나선다. 산헤립의 유다 침공은 크게 세 부분이다. 히스기야가 항복하고 조공을 바쳤다는 내용(18:13~16), 랍사게의 육성 도발(18:17~19:7), 편지를 통한 산헤립의 두 번째 위협(19:8~37)이다. 첫번째 본문이 종합적 요약이고, 둘째와 셋째 본문은 전쟁의 세부 사항으로 보인다. 유다는 산헤립에게 항복했지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을 지킨다. 서둘러 돌아간 산헤립은 자식에게 암살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히스기야의 회복과 실책(20:1~21)

병들어 죽게 된 히스기야는 극적으로 살아나지만,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이 보낸 사자들에게 왕궁의 모든 것을 내보인다(20:12~13). 약 140년 후 앗수르와 유다를 멸망시킬 강대국 바벨론은 당시에는 앗수르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가 자랑한 유다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왕의 아들이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환관'으로 번역한 단어는 아카드어(고대 메소포타미아어)에서 온 '사리스'로, 그 우두머리는 왕의 최측근인 랍사리스다(18:17). 우리말은 이를 환관장으로 옮긴다(단 1:3). 훗날 다니엘과 세 친구가 이 지위에 오른다.

 

므낫세의 죄(21:1~26)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12세에 왕이 되었고, 아버지와 달리 모든 가증한 일과 악을 행해 유다 멸망의 주범이 된다. 특히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린다. 그런데도 므낫세는 55년이나 왕위에 머물며 남북 왕조를 통틀어 최장수 왕이 되었고 심지어 제명에 죽는 복까지 누린다. 므낫세의 태평성대(?)는 앗수르가 가신국들을 압도하고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것과 관련이 깊다. 앗수르의 왕 앗수르바니팔은 동쪽의 엘람과 바벨론에서부터 서쪽의 아람과 유다, 나아가 애굽까지 제압했다. 앗수르가 쇠약해진 것은 므낫세의 아들 아몬이 왕위에 올랐을 때다. 유다 궁중에도 세력 다툼이 전개되면서 반앗수르 세력이 일어나 아몬 왕을 죽인다. 하지만 반역은 '그 국민'(암 하아레츠)에게 진압되고(21:24) 유다의 마지막 전성기 요시야 시대가 열린다.

 

요시야의 개혁(22:1~23:37)

8세에 왕이 된 요시야는 31년간 유다를 다스린다. 그는 재위 18년에 성전을 보수하게 하는데, 대제사장 힐기야, 서기관 사반 등이 왕을 돕는다. 이때 하나님의 율법책이 발견되는데, 그 내용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신명기와 흡사하다고 본다. 율법책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는 마음을 다해 모세의 율법을 따르기로 하고 유다 전역에 걸쳐 개혁에 돌입한다. 이방 신전을 부수고 유월절을 지키고 벧엘의 제단을 무너뜨린다. 이처럼 여호와를 따른 왕은 요시야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23:25). 하지만 개혁은 성공하지 못한다. 당시 요시야를 도와 여호와께 돌이키라고 선포한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응답은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거나 구하지 말라"(렘 11:14)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 대한 노여움을 풀지 않으신 것이다. 한편 경건함과 개혁 의지는 요시야에게 있었지만 군사력이 미약했다. 결국 요시야는 애굽 왕 바로 느고의 길을 막다가 므깃도에서 죽고 만다. 바로 느고는 차기 왕으로 세워진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잡아가고 요시야의 다른 아들인 여호야김(엘리아김)을 왕으로 세운다.

 

유다의 멸망(24:1~25:26)

주전 612년 앗수르의 니느웨가 멸망한다. 신흥 바벨론은 주전 605년 갈그미스에서 애굽을 꺾는다. 애굽 왕은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했고 애굽 강에서 유브라데 강까지 애굽의 영토는 바벨론이 차지한다(24:7). 여호야김(엘리아김)도 바벨론을 섬겼지만 3년 후 반역을 일으키고, 바벨론은 여호야김을 제거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 이때 여호야김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유다는 바벨론에게 항복한다. 결국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사람은 석 달간 통치한 여호야긴이었다. 유다 백성과 지도자는 물론, 성전과 왕궁의 보물까지 전부 바벨론에 강탈당하고 오직 비천한 자만 그 땅에 남는다. 마지막 왕인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맛다니야)는 이름뿐인 나라를 지탱하라고 바벨론이 세운 허수아비 왕이다. 하나님은 시드기야에게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내 바벨론을 섬기는 것이 최선임을 알려 주셨지만, 시드기야는 명분을 좇아 바벨론을 배신한다. 바벨론은 9년 만에 돌아와 예루살렘을 포위한다. 결국 성은 함락되고, 도망치다 붙잡힌 시드기야는 자기 아들들이 처형되는 장면을 보고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주전 586년 예루살렘은 최후를 맞는다. 이때를 열왕기는 시드기야 제11년, 느부갓네살 제19년 아브월(다섯 번째 달, 양력으로 7~8월) 7일이라 하고(왕하 25:8), 예레미야는 같은 해 탐무즈월(네 번째 달, 양력으로 6~7월) 9일이라고 한다(렘 39:2). 예레미야가 말한 날짜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리고 침투한 날로(왕하 25:3), 당시 왕궁 시위대 감옥 뜰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에게 멸망의 의미를 생생하게 각인시킨 날이다. 열왕기가 기록한 날짜는 느부사라단, 즉 바벨론 왕의 사절단이 예루살렘에 들어와 공식적으로 성을 접수한 날이다. 성전이 무너지고 모두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간 후, 바벨론은 사반의 손자 그달리야에게 유다를 관할하게 한다(25:22). 하지만 애굽을 추종하는 자들이 일어나 그달리야를 살해한다.

 

여호야긴의 회복(25:27~30)

북 이스라엘처럼 남 유다도 철저히 파괴된다. 성전은 폐허가 되고, 예루살렘은 잿더미가 된다. 약속의 땅에 대한 대망은 이렇게 끝난 듯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잊지 않으신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지내던 백성은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발견한다. 주전 562년, 바벨론으로 잡혀 온 지 37년 만에 여호야긴은 옥에서 나와 일평생 바벨론의 보살핌을 받는다. 머지않아 하나님이 바벨론에 옮겨 놓으신 자들도 고토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출처 : 생명의 삶

한눈으로보는 성경 - 열왕기하 ①

불완전한 왕들의 역사
열왕기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과 선한 왕의 역사가 반복된다. 대부분이 아버지의 악행을 답습하는 악한 왕이다. 어떤 왕은 산당을 없애지 못하고 어떤 왕은 바알을 숭배해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 어떤 왕은 하나님을 잘 의지하다가 나중에 이방의 힘을 의지하기도 한다. 이 땅의 불완전한 왕들은 우리로 하여금 완전한 왕을 사모하게 한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열왕기하 한눈에 보기

본문

1:1~13:21

13:22~17:41

18:1~20:21

21:1~25:30

1:1~2:18

2:19~8:6

8:7~13:21

13:22~16:20

17:1~41

18:1~19:37

20:1~21

21:1~26

22:1~23:30

23:31~25:26

25:27~30

요점

엘리야의 승천

엘리사의 기적

엘리사와 왕들

전쟁하는

나라들

이스라엘 멸망

살아남는 유다

히스기야의 실책

므낫세

요시야

유다 멸망

여호야긴의 회복

주제

엘리사

이스라엘 멸망

히스기야

유다 멸망

저자

미상. 열왕기 저자는 신명기에 매우 능통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왕들의 역대지략과 선지자들의 금 등 많은 사료를 조사해 열왕기를 기록했다.

연대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후 기록되었다.

목적

열왕기 후반부는 멸망으로 치닫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상황을 담고 있다. 북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게, 남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게 멸망한다. 하나님은 엘리야에 이어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호세아 등의 선지자를 보내 계속 경고하신다. 하지만 두 왕조의 멸망은 막을 수 없었다. 열왕기 마지막에 남 유다가 간신히 살아남았음이 암시된다.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 원년(주전 562년)에 사로잡혀 간 지 37년 된 유다 왕 여호야긴이 옥에서 나왔다는 것이다(왕하 25:27~30). 여전히 포로 신분이긴 했지만, 하나님의 섭리로 여호야긴은 바벨론 왕의 은혜를 입는다.

분류

전기 예언서, 역사서


엘리야의 승천(1:1~2:18)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난간에 떨어져 병이 들자,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사자을 보내 자신의 병이 낫겠는지 묻게 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대신 우상을 의지한 것이다. 엘리야는 왕이 보내는 사자들을 만나 왕이 죽을 것이라 예언한다. 왕은 엘리야를 잡아 오도록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을 보내지만, 엘리야는 두 번이나 불을 내려 그들을 살라 버린다. 세 번째로 오십부장과 군사 50명이 오자 엘리야는 그들과 함께 왕에게 가서 직접 왕의 죽음을 선포한다. 아들 없이 죽은 아하시야에 이어 아합의 다른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된다. 이 사역을 마지막으로 엘리야는 하나님께 올라간다. 엘리야의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은 엘리사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에게 임한 능력의 갑절을 달라고 청한다. 엘리야는 하늘로 올라가고, 엘리사는 능력을 받고 돌아와 기적을 행한다.

엘리사의 기적(2:19~8:6)
엘리사는 아합 왕 때 부름받아 50여 년에 걸쳐 이스라엘 여섯 왕의 치세 동안 활동한다. 엘리사는 많은 이적을 행했다. 곤경에 처한 과부를 돕기 위해 기름을 공급했고,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기도 했으며, 나병(한센병) 환자인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을 고쳤다. 쓴 물을 고치고, 독이 든 국을 해독하고, 보리떡 20개와 채소로 100명을 먹이기도 했다. 제자가 물에 빠뜨린 도끼를 떠오르게 한 것처럼 개인적인 일에도 개입했지만, 요아스 왕이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왕하 13:14)이라 했듯이 국가 대사에 관여하며 모압과 아람 군대를 격파하고 국제 정제를 좌우하기도 했다. 번번이 이스라엘 정복에 실패한 아람 왕은 첩자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다가 엘리사의 능력을 알게 된다. 엘리사를 잡기 위해 군대를 보내지만, 여호와의 군대가 호위하는 선지자를 당할 수 없었다.

 

선지자를 조롱하는 벧엘의 아이들(2:23~25)

선지자와 관련된 일 중에는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종종 있다. 이사야는 애굽과 구스가 앗수르에 정복되고 수치를 당할 징조로서 벗은 몸과 벗은 발로 3년을 지냈다(사 20:1~6). 예레미야는 유다 땅에 임할 멸망의 징표로서 결혼하지도, 자녀를 낳지도 않았다(렘 16:2). 그런데 선지자의 행위에 자기희생적 면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엘리사는 자신을 조롱하는 아이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해 42명이나 암곰 둘에게 찢겨 죽게 했다. 지나친 보복이 아닌지 의아한 대목이다. 우선 사건이 일어난 곳이 벧엘임을 주목해야 한다. 당시 벧엘은 우상 숭배의 본진이었다. 그곳에서 자란 '작은 아이들'(23절, '네아림 크타님', 청소년을 뜻함)이 하나님을 경외할 리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도 존중하지 않았다. 엘리야가 요단 강에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사실을 우습게 여기고,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에게도 "어디 한번 올라가 봐라."하며 조롱했던 것이다. 이때 엘리사의 외양이 빌미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엘리사의 대머리는 여호와의 징계로 여겨지던 나병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비난하면 안 되었다.

 

이스라엘 vs 모압(3:1~27)

양치기 출신 모압 왕 메사는 아합이 죽은 후 이스라엘을 배신한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유다 및 에돔과 동맹을 맺고 모압을 치기 위해 올라간다. 사실 유다가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과 연합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광야에서 마실 물이 떨어졌다. 이에 유다 왕 여호사밧은 엘리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은 외면했지만 유다 왕을 위해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 모압을 그들 손에 넘겨주신다는 것이다. 모압 왕 메사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기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다.

 

엘리사의 기적 사역(4:1~44)

엘리야의 사역 중심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선지적 기능이었다면, 엘리사의 사역에서는 하나님의 긍휼을 드러내는 목회적 기능이 강조되었다. 빚진 과부를 위해 계속 채워진 기름병 기적, 수넴 여인의 아들이 다시 살아난 기적, 독이 든 국물이 가루를 넣어 해독한 기적, 보리떡 20개와 채소로 100명을 먹인 기적 등은 경건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손길이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스라엘 vs 아람(5:1~7:20)

아람과 관련된 두 사건은 나병 환자와 연관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엘리사가 나병에 걸린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을 고쳐 준 일이다. 나아만 장군은 치유되고, 탐욕을 부린 게하시가 대신 나병을 얻는다. 두 번째 사건은 아람이 사마리아를 포위했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물러간 일이다. 포위된 이스라엘 백성은 식량이 바닥나자 서로 자녀를 잡아먹는 절망적 상황에까지 이른다. 왕은 이 일이 엘리사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엘리사를 죽이려 한다. 네 명의 나병 환자는 생존을 위해 아람에 항복하려다가 아람 병사들이 진영을 버리고 도망한 것을 먼저 알고는 이 아름다운 소식의 전달자들이 된다.

 

수넴 여인(8:1~6)

수넴 여인은 앞서 4장에 등장한 바 있다. 그녀는 엘리사의 배려로 기근을 피해 블레셋 지방으로 이주했다가 7년 만에 돌아온다. 그런데 소유권에 문제가 생겼고, 이를 호소하러 왕에게 나아간다. 때마침 게하시가 왕 앞에서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게하시의 보증 덕분에 집과 밭을 도로 찾는다. 우연한 일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정확한 시간에 일하시는 분이다.

 

아람 왕 벤하닷과 하사엘, 유다 왕 여호람과 아하시야(8:7~29)

 

 

분열왕국

 

벤하닷과 하사엘(8:7~15)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 아람 왕 벤하닷이 병들자 하사엘을 엘리사에게 보내 자신이 병에서 살 수 있을지 묻는다. 엘리사는 하사엘이 장차 왕이 될 것임을 알린다. 하사엘은 죄로 가득 찬 본 성에 따라 자기 손으로 왕을 시해하고 아람 왕이 된다.

 

여호람과 아하시야(8:16~29)

모압과 아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에돔은 약소국이었다. 그런데 유다는 그런 에돔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여호람은 아버지 여호사밧이 아직 살아 있을 때 왕이 되었다. 여호사밧이 아팠거나 왕권이 확고하지 못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여호람의 8년 통치가 끝나고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된다. 하지만 아하시야는 고작 1년을 통치하고 예후에게 살해된다. 열왕기 저자는 여호람의 아내이자 아하시야의 어머니가 아합의 딸 아달랴인 점을 상기시키며 이런 집안이 제대로 될 리가 없음을 보여 준다.

아합 왕 때부터 길르앗 라못은 이스라엘과 아람의 격전지였다. 유다는 동맹을 맺은 이스라엘 편에서 싸웠다. 이스라엘 왕 요람은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부상 당하고 치료를 위해 별궁이 있는 이스르엘로 돌아간다. 패전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유다 왕 아하시야도 병문안차 이스르엘을 방문한다. 친정을 염려한 어머니 아달랴의 성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반정을 위해 조성된 환경이었다.

 

예후의 반정과 지리적 특징(9:1~10:36)

길르앗 라못(9:1~37)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선포하신 대로 아합의 가문이 모두 멸망한다. 이 일을 맡아 행한 사람은 군대 장관 예후였다. 엘리사는 제자 중 하나를 길르앗 라못으로 보내 아람과 대치하고 있는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아합의 집을 치라 전하게 한다. 다른 장관들 눈에 선지자의 제자는 그저 '미친 자'로 보였지만, 예후는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삼으셨음을 믿고, 신속히 병거를 몰아 아합의 아들 요람이 요양하고 있는 이스르엘로 향한다.

 

이스르엘(9:21~37)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는 병거를 타고 가 나봇의 토지에서 예후를 맞는다. 요람은 나봇의 토지에서 죽고, 아하시야는 예루살렘을 향해 도망치다가 이블르암 근처에서 공격을 받는다. 예후가 두 왕을 처단하고 이스르엘 궁에 돌아오는 것을 이세벨이 창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예후의 명을 받은 내시가 이세벨을 창밖으로 내던지니 엘리야가 전한 말대로 이루어진다.

 

사마리아(10:1~11)

이제 예후는 아합의 아들 70명이 있는 사마리아 성으로 향한다. 먼저 장로들과 아합의 아들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아합의 아들 중 하나를 왕으로 세우고 맞서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예후의 의도를 파악하고 서둘러 충성을 맹세한다. 아합의 아들들 70명을 죽여 그 머리를 예후에게 보낸 것이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아합에 속한 모든 자가 죽었다.

 

유다(10:12~14)

아합과 동맹한 유다도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아하시야의 형제 42명은 이스라엘의 왕자들에게 문안하러 가다 예후에게 모조리 살해된다.

 

바알 신당(10:15~36)

예후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손을 잡는다. 여호나답은 반바알 운동의 지도자로서, 그의 자손은 훗날 레갑 사람들로 불린다(렘 35:6~10). 예후의 마지막 개혁 작업은 바알 선지자들을 모조리 처단하는 것이었다. 먼저 바알 선지자들을 제사에 초대하기 위해 자신이 바알 숭배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처럼 꾸민다. 바알을 섬기는 모든 사람이 한 명도 빠짐없이 신전에 몰려 들었고 근위병 80명이 이들을 모두 죽이고 바알 목상들을 불사른다. 여호와의 명령대로 아합 집을 멸망시킨 예후는 4대에 걸쳐 왕권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여로보암의 죄에서는 떠나지 않는다. 이때부터 아람 왕 하사엘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의 땅이 잘려 나가기 시작한다.

 

아달랴의 유다 통치(11:1~21)

아합의 딸 아달랴는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죽자 남은 왕의 후손을 죽인다. 예후가 죽인 왕자 42명 외에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왕의 자손을 죽이고, 다윗 집에만 허락된 유다의 왕권을 찬탈하고 스스로 여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린다. 하지만 남은 자가 있었다.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유모와 함께 살아남았다. 요아스는 아달랴가 통치하는 6년 동안 성전에서 숨어 지낸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와 남편인 대제사장 여호야다였다. 아합과 이세벨이 그랬던 것처럼 우상 숭배에 공을 들이던 아달랴로서는 여호와의 성전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6년 후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성전에서 아달랴를 대적하는 반정을 일으키고, 어린 요아스를 왕위에 앉힌다. 여호야다는 요아스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삼을 때 율법책을 준다. 아달랴는 백성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기 위해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간다. 백성은 아달랴는 물론 바알의 제사장 맛단까지 처형한다.

 

유다의 정통성을 회복한 요아스(12:1~21)

성전에서 자란 요아스 왕은 성전 수리에 공을 들인다. 요아스는 비교적 선한 왕이었지만 나라에는 외우내환이 닥친다. 의지하던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우상 숭배에 빠져 아세라를 섬기기 시작한다(대하 24:17~19). 나라는 다시 아람의 공격을 받고, 아람 왕 하사엘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요아스는 아버지 아하시야처럼 살해된다.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 왕조(왕하 1~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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