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오히려 소망이 되었으니

[예레미야애가 3장 19절~39절]
19절 -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절 -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절 -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절 -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절 -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절 -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절 -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절 -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7절 - 사람은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28절 -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메우셨음이라
29절 - 그대의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 혹시 소망이 있을지로다
30절 -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31절 - 이는 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32절 -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33절 -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34절 -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것과
35절 -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것과
36절 -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다 주께서 기쁘게 보시는 것이 아니로다
37절 -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
38절 -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하느냐
39절 -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

1.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19~32절)
예레미야는 소망의 근거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분을 잠잠히 의뢰하고 기다리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지켜보는 예레미야의 마음은 고통으로 가득합니다. 그는 과거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수차례 죽음의 위협을 감수했던 일을 언급하며, 현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황폐해진 유다를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19절)은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과거 경험을 뜻하고, 그가 ‘낙심’(20절)한 이유는 지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절망적인 현실에서 예레미야는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함을 발견합니다. 죄악으로 인해 성읍이 파괴되고 유다 백성이 열방에 흩어졌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뜻하신 최종적인 섭리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여전히 이스라엘을 붙들고 계시고 언젠가 자비를 베푸실 날이 오리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또한 그는 고난이 주는 유익에 관해 깊이 생각합니다. 사람이 젊은 날에 멍에를 메는 것은 비록 힘든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될 것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을 땅에 대는 겸손한 자세로 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도우실 것입니다.

* 어려움에 빠질 때,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나요? 고난 속에서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인지 나누어 보세요.
예레미야가 겪은 고초와 재난, 그리고 그로 인한 ‘쑥과 담즙’의 경험은 하나님과 그분의 심판이 엄위함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모든 교만의 뿌리를 뽑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만듭니다. 예레미야가 다시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올바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의미 없이 그분의 자녀들에게 고초와 재난을 허락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임한 심판과 징계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어려운 상황 때문에 절망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우리를 살립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 인생에 고난을 허락하셨다는 것과 그 고난 속에 특별한 계획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멍에를 메게 된 것은 주께서 메우셨기 때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28절). 주께서 우리에게 멍에를 메게 하시고, 땅의 티끌에 입 맞추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하십니다. 지금은 근심하게 하실지 모르나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다시 긍휼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

2.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것인가요?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어떻게 말하나요?(33~39절)
하나님이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일을 보고 계시고 그분의 주권적인 섭리로 통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고통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유다의 철저한 패망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었지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그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갇힌 자들을 발로 밟는 일, 지존자의 얼굴 앞에서 사람의 재판을 굽게 하는 일, 사람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궁극적인 유익을 위해 유다를 심판하셨고 그들에게 고생과 근심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움직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주의 명령이 아니면 누가 이것을 능히 말하여 이루게 할 수 있으랴”(37절). “화와 복이 지존자의 입으로부터”(38절) 나옴을 그는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죄들 때문에”(39절) 벌을 받는 것이니 하나님을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일어난 일이기에 그분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며 받아들여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선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은 쉽게 이해하지만, 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직접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심판을 당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면 그 거부감은 더욱 커집니다. 하지만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의 모든 행동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친다고 본다면 우리 모두는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악에 우리도 연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유다 백성이 그들의 죄악 때문에 끔찍한 파괴와 상실을 겪은 사건은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의 악을 미워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가 됩니다. 그 당시 유다에서는 법 집행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약한 자가 고통과 굴욕을 당하고, 타락한 지도자가 사회를 지배했습니다. 유다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버리고 이방 신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율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에게 고난과 슬픔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복과 은혜와 평강을 주시려는 것입니다(민 6:24~26).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오늘도 주권적으로 우리의 삶에 간섭하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19절)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죽을 고비와 고난을 뜻합니다. ‘인자’는 여호와의 언약적 사랑과 신실하심을 나타내는 중요한 단어이며, ‘긍휼’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23절).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침마다 만나를 공급해 주신 것처럼 그분의 인자와 긍휼로 인해 그분의 백성에게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멍에’는 소, 나귀 등의 목에 얹어 쟁기나 수레를 끌게 하기 위한 도구지만, 종종 ‘압력, 굴복, 예속, 율법의 제한’ 등을 비유하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28절)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사람들이나 하나님께 불평불만을 말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입을 땅의 티끌에 댈지어다”(29절)는 입이 땅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이라는 말로,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복종을 의미합니다. “자기를 치는 자에게 뺨을 돌려대어 치욕으로 배불릴지어다”(30절)는 대적의 경멸과 비난을 참아 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다에 임한 재앙으로 절망에 빠진 예레미야가 새 소망을 갖게 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암담한 상황이었지만, 백성은 예레미야로 인해 한 줄기 강렬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지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두려움에 빠진 백성에게 희망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본심이시며, 우리 죄악을 다루기 위해 환난과 대적을 잠시 허락하시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계획 있는 심판이요 그분의 징계는 사랑의 징계입니다(시 66:10). 고통 속에서도 나를 정금같이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됩니다.

함께 기도하기
- 환난 중에서도 모든 상황을 붙들고 계신 분이 하나님임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를 기대하며 고난을 인내하게 하소서.
- 날마다 하나님을 바로 알기에 힘쓰게 하시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바탕으로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아파도 감사한 사랑의 회초리

[예레미야애가 3장 1절~18절]
1절 -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
2절 - 나를 이끌어 어둠 안에서 걸어가게 하시고 빛 안에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셨으며
3절 - 종일토록 손을 들어 자주자주 나를 치시는도다
4절 -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5절 -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절 - 나를 어둠 속에 살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7절 -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내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8절 -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9절 -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들을 막으사 내 길들을 굽게 하셨도다
10절 - 그는 내게 대하여 엎드려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에 있는 사자 같으사
11절 - 나의 길들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적막하게 하셨도다
12절 -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심이여
13절 - 화살통의 화살들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14절 -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절 - 나를 쓴 것들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16절 - 조약돌로 내 이들을 꺾으시고 재로 나를 덮으셨도다
17절 - 주께서 내 심령이 평강에서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내어버렸음이여
18절 -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선지자는 여호와의 매로 자신이 고난을 당한다며, 여호와께서 종일 자주 치시니 자신이 죽은 자처럼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기도를 물리치시고 자신을 과녁으로 삼아 백성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 심령이 평강에서 떠나고 소망이 끊어졌다고 고백합니다.

● 아파도 감사한 사랑의 회초리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유다 백성이 고난으로 신음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자신을 치시고 어둠 속에 살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백성의 고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여기고 아파하며 민족적 고통에 동참하는 태도입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영적 답답함일 것입니다. 그가 부르짖어 도움을 간구했으나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물리치셨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평강과 소망마저 끊어졌습니다. 여호와의 분노는 무서운 회초리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순물을 제거해 정금처럼 우리를 순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 묵상 질문
선지자는 누가 여호와의 매로 인해 고난당한다고 표현했으며,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 적용 질문
내가 당하는 고난으로 여기며 함께 아파하고 짐을 져야 할 '공동체의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앞에 물 쏟듯 마음을 쏟으십시오

[예레미야애가 2장 18절~22절]
18절 -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19절 -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20절 -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오리이까
21절 - 늙은이와 젊은이가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사오며 내 처녀들과 내 청년들이 칼에 쓰러졌나이다 주께서 주의 진노의 날에 죽이시되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도륙하셨나이다
22절 - 주께서 내 두려운 일들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절기 때 무리를 부름 같이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는 피하거나 남은 자가 없나이다 내가 낳아 기르는 아이들을 내 원수가 다 멸하였나이다

시온은 밤낮 주를 향해 부르짖으며 기진한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해 주를 향해 손을 들어야 합니다. 여인이 자기 아이를 먹고 제사장과 선지자가 주의 성소에서 죽임당해도 주께서 긍휼히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시는 날에는 남은 자가 없습니다.

1. 기도의 권고 (18~19절)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는 성도가 해야 할 시급한 일은 회개와 간구입니다. 선지자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백성에게 거듭 권고합니다. 밤낮으로 눈물을 강물처럼 흘릴 만큼 진정으로 가슴 아파하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백성은 일과를 마치고 안식할 초저녁에 쉬지 말고 일어나 하나님 앞에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특별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녀들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길거리에서 굶주려 쓰러져 있는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한 기도가 시급했습니다. 백성의 죄 때문에 자녀들이 처참한 기근에 내몰려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살아야 국가도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까지 하나님께 숨김없이 쏟아 놓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특권입니다.
* 묵상 질문
선지자는 백성에게 어떻게 기도하라고 권면하나요?
* 적용 질문
공동체와 내 삶에서 정말 시급한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요?

2. 긍휼에 호소 (20~22절)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해 그분께 모든 것을 솔직하게 아뢰는 기도에는 호소력이 있습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아룁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부모가 죽은 자녀를 먹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사장과 선지자는 탐욕에 빠져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르게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간신히 종교 생활을 흉내 낼 뿐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죄를 범한 성소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성도는 죄로 인해 어려움을 당할 때도 망설이지 말고 진실한 회개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왜 죽임을 당했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아뢰어야 할, 부끄럽고 안타까운 모습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의 건져 주심 없이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죄를 정직히 고백하며 주님께 부르짖게 하소서. 세상과 물질에 매여 영적으로 죽어 가는 자녀들을 위해, 믿음이 무너진 가정과 교회를 위해 뜨거운 눈물로 기도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애가 끊어지는 심정을 아십니까

[예레미야애가 2장 11절~17절]
11절 -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
12절 - 그들이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기절하여 그의 어머니들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머니들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냐 하도다
13절 - 딸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까 처녀 딸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까 너의 파괴됨이 바다 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쳐 줄소냐
14절 -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가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그들이 거짓 경고와 미혹하게 할 것만 보았도다
15절 - 모든 지나가는 자들이 다 너를 향하여 박수치며 딸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웃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모든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16절 - 네 모든 원수들은 너를 향하여 그들의 입을 벌리며 비웃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그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17절 -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령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무너뜨리사 원수가 너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하며 네 대적자들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백성이 패망해 선지자는 그의 눈이 눈물에 상하고 창자가 끊어졌다고 고백합니다. 예루살렘의 파괴는 비할 데가 없을 만큼 큽니다. 선지자들은 헛된 묵시를 보았기에 시온을 돌이키지 못했고, 원수들은 예루살렘을 비웃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1. 선지자들의 잘못 (11~14절)
하나님 백성이 바른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지도자가 책임 있게 사역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참상을 보며 창자가 끊어지고 간이 쏟아졌다고 표현할 만큼 비통해합니다. 어머니들이 자신의 품 안에서 굶어 죽는 아이를 보면서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전쟁과 약탈과 기근으로 먹을 것이 없어 어린 자녀들이 길거리에서 기절한 장면은 예루살렘의 비참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선지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백성의 죄악을 드러내고 그들에게 닥칠 재난을 경고하며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외쳐야 함에도 오히려 예루살렘이 안전할 것이라는 거짓 메시지로 백성을 미혹하게 했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헛된 말로 성도를 안심시키려 하지 말고, 아파도 바른말을 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을 당시, 선지자들의 영적 상태는 어땠나요?
* 적용 질문
바른길을 가도록 내가 권면할 사람은 누구며, 영적 지도자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2. 원수들의 조롱 (15~17절)
하나님 백성은 세상의 빛이지, 조롱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폐허가 된 예루살렘은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변 국가들은 '온전한 영광'이라고 일컫던 성이 왜 이렇게 무너졌느냐며 예루살렘을 조롱했습니다. 원수들은 자신들이 예루살렘을 무너뜨렸다고 즐거워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멸망은 하나님이 원수들에게 잠시 권세를 부여하신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그 백성의 대적이 되십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수치를 당한다면 속히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예루살렘을 무너뜨린 주체는 실제로 누구며, 원수들은 어떻게 착각하고 있었나요?
* 적용 질문
남의 실패를 나의 성공으로 연결 지으려는, 좋지 못한 생각을 할 때는 언제인가요?

오늘의 기도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저를 돌아보게 하소서. 평안과 위로만을 전하는 거짓 가르침 대신 진리의 말씀으로 죄가 드러나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는 은혜를 사모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임재의 상징인 성전도 범죄하면 버리십니다

[예레미야애가 2장 1절~10절]
1절 -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딸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가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그의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도다
2절 -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들을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딸 유다의 견고한 성채들을 허물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욕되게 하셨도다
3절 -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 들이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불사름 같이 야곱을 불사르셨도다
4절 - 원수 같이 그의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그의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드는 아름다운 모든 사람을 죽이셨음이여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5절 - 주께서 원수 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그 모든 궁궐들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사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6절 - 주께서 그의 초막을 동산처럼 헐어 버리시며 그의 절기를 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그가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7절 -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
8절 - 여호와께서 딸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그들이 함께 쇠하였도다
9절 -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부서져 파괴되고 왕과 지도자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 가운데에 있으며 그 성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10절 - 딸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주께서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야곱의 거처를 삼키시고 유다의 성채를 허무셨습니다. 원수 앞에서 맹렬하게 야곱을 불사르시고 이스라엘을 삼키셨으며,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습니다. 초막과 절기와 제단과 성소와 성벽과 성문을 허무셨습니다.

1. 불에 탄 삶의 터전 (1~5절)
하나님의 진노는 천둥같은 기세로 유다 땅을 덮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언약 백성으로 그 아름다움이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불순종하자,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영광을 땅에 던지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할 의무를 무시하고 교만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언약을 저버린 백성의 터전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시고 허물어 버리셨습니다. 아름다운 뿔처럼 높아졌던 그들의 권세와 영광을 모두 자르시고 영광의 도성을 불로 태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유다의 원수가 되셔서 그들을 향해 진노의 활을 당기셨습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잃어버린 예루살렘의 결국은 어떠한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께 받은 복으로 마음이 높아져 자기 자랑에 빠지지 않았는지 돌아보세요.

2. 무너진 제단 (6~10절)
하나님의 심판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머무시던 성전도 파괴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죄악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성전의 절기와 안식일을 폐하였습니다. 왕이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성전의 제사장들이 탐욕에 빠지고, 장로들이 성소 안에서 우상을 섬기자,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셨습니다. 유다 지도층의 죄로 인해 하나님이 진노를 발하시고 성소를 미워하시며 제단을 버리셨습니다. 그리하여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성전을 짓밟고 성전 기물을 자기 나라로 옮겼습니다. 그 결과 유다 왕과 지도자들은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한 심령과 정결한 마음으로 그분 앞에 엎드릴 때까지 연단하십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진노가 왜 예루살렘 성전에까지 임했을까요?
* 적용 질문
교회가 거룩함과 영광을 회복하도록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 고통인지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형식적인 예배, 나 중심의 믿음에서 벗어나 말씀에 전적으로 순복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면 죄를 인정합니다

[예레미야애가 1장 18절~22절]
18절 -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그러나 내가 그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고통을 볼지어다 나의 처녀들과 나의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19절 - 내가 내 사랑하는 자들을 불렀으나 그들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들의 목숨을 회복시킬 그들의 양식을 구하다가 성 가운데에서 기절하였도다
20절 -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내가 환난을 당하여 나의 애를 다 태우고 나의 마음이 상하오니 나의 반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에서는 칼이 내 아들을 빼앗아 가고 집 안에서는 죽음 같은 것이 있나이다
21절 - 그들이 내가 탄식하는 것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으며 나의 모든 원수들은 내가 재난 당하는 것을 듣고 주께서 이렇게 행하신 것을 기뻐하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그 선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셔서 그들이 나와 같이 되게 하소서
22절 - 그들의 모든 악을 주 앞에 가지고 오게 하시고 나의 모든 죄악들로 말미암아 내게 행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병들었나이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의로우시지만 유다 곧 자신이 그 명령을 거역했기에 처녀들과 청년들이 사로잡혀 갔다고 고백합니다. 환난을 당해 그의 마음이 상한 것은 유다의 반역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다가 재난당한 것을 기뻐하는 원수들도 유다와 같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1. 공의의 하나님 (18~20절)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말씀에 순종하며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유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이로 인한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젊은이들을 포함해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자녀들이 칼에 죽임을 당해 온 성읍이 초상집같이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을 당한 유다는 주변 동맹국에 도움을 청해 보았지만 아무도 도우러 오지 않았습니다. 탐욕에 빠진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양식을 구하러 다녔지만 찾지 못하고 기절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백성은 하나님께 반역한 자신들의 죄가 큼을 인정하며, 하나님이 의로우심을 고백합니다. 성도는 사랑의 하나님뿐만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도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의로우신 하나님은 반역한 유다 백성을 어떻게 다루셨나요?
* 적용 질문
의로우신 하나님이 지금 내게 원하시는 순종은 무엇일까요?

2. 탄식의 간구 (21~22절)
유다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공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징계받는 고통 속에 있을 때 위로해줄 이가 없다는 것은 더욱 비참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원수들은 예루살렘이 심판받는 것을 보며 조롱했습니다. 이에 선지자의 아픔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동일시한 그의 탄식과 기도가 쏟아집니다. 자신을 조롱하는 원수들의 악행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는 원수들이 그들의 죄악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와 공의의 판결을 받고 처벌되기를 간구합니다. 성도의 소망은 공의를 실현하시는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온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는 심판주이시기 때문입니다.
* 묵상 질문
원수의 심판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이웃의 재난과 아픔을 보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나요?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만 내세우며 지속적으로 불순종했던 저를 용서해 주소서. 죄로 무너진 영역을 의로우신 주님의 눈으로 정확히 보게 하시고, 말씀의 빛으로 새롭게 하셔서 저와 공동체가 순종의 길을 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민족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끌어안다

[예레미야애가 1장 12절~17절]
12절 -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13절 - 높은 곳에서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치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나를 피곤하게 하여 황폐하게 하셨도다
14절 - 내 죄악의 멍에를 그의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하게 하셨음이여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넘기셨도다
15절 - 주께서 내 영토 안 나의 모든 용사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청년들을 부수심이여 처녀 딸 유다를 내 주께서 술틀에 밟으셨도다
16절 - 이로 말미암아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 같이 흘러내림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생명을 회복시켜 줄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
17절 -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방에 있는 자들에게 명령하여 야곱의 대적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그들 가운데에 있는 불결한 자가 되었도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유다 곧 자신을 괴롭게 하시고 황폐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죄악으로 인해 유다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유다를 넘기셨으니 선지자의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흘러내립니다. 시온이 두 손을 폈지만 그를 위로할 자가 없습니다.

1. 하나님의 진노 (12~14절)
예루살렘이 겪는 아픔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불순종한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 그들을 괴롭게 한 것입니다. 골수에 불을 보내 이기게 하셨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극심하다는 뜻입니다. 그물이 쳐졌다는 것은 유다 백성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도망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백성의 죄악을 멍에로 삼아 그들의 목에 올려놓으시니 백성은 그 무게를 견딜 수 없어 피곤해합니다. 또 하나님은 죄를 범한 백성을 그들보다 월등히 강한 원수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이처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은 두렵고 처참한 결과를 낳습니다. 성도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유다 백성이 겪는 고통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어느 정도로 컸나요?
* 적용 질문
죄를 극도로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죄와 싸워 이기려고 얼마나 노력하나요?

2. 위로자 없는 슬픔 (15~17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그 백성이 불순종하고 죄를 범하면 그들과 맞서 싸우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용사들을 멸하셨습니다. 술틀에서 포도를 밟을 때 붉은 포도즙이 나오듯,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진노의 틀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시니 유다 백성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울며 두 손을 펴서 애원해도 시온을 위로할 자가 없습니다. 시온은 두려운 대적과 홀로 맞서 외로이 싸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 사방의 적에게 명령하셔서 그들을 공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이 고립된 것은 죄로 인한 자업자득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심판과 고독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위로가 찾아옵니다.
* 묵상 질문
예루살렘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할 사람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죄악으로 고통당할 때 그 원인과 위로를 지금까지는 어디서 찾았나요? 앞으로는 어디서 찾아야 할지 생각해 보세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징계는 죄에서 돌이키기 원하시는, 자녀를 향한 사랑임을 깨닫게 하소서.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눈물이 마르지 않게 하시고, 저를 깨끗하게 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손길에서 참된 위로를 받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슬프다 이 성이여!

[예레미야애가 1장 1절~11절]
1절 -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2절 -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3절 -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4절 -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5절 -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6절 -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그의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도다
7절 -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8절 -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9절 -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10절 - 대적이 손을 펴서 그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들을 막아 주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그 성소에 그들이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11절 -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이으려고 보물로 먹을 것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1. 예루살렘은 지금 어떤 상황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예레미야의 심정은 어떠한가요?(1~4절)
예루살렘은 열국 중에서 큰 성이었는데 과부같이 되고, 열방 중에서 공주 같았는데 이제 강제 노동을 하는 자처럼 되었습니다. 많던 유다 사람들이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 이방의 포로로 사로잡혀 가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화려하고 활기찼던 예루살렘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며 예루살렘의 멸망에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합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부름받은 이후 40여 년간 유다 백성을 향해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거듭 외쳤으나 그들은 그 예언의 말씀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BC 605년부터 예루살렘에 대한 바벨론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시드기야 11년(BC 586년) 5월 10일에 예루살렘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성전과 왕궁은 불에 타서 무너지고 제사장과 방백과 유력한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이 폐허로 변해 가는 참혹한 광경을 직접 목격한 선지자는 그 처참한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면서 그 슬픔과 비통함을 다섯 편의 애가로 표현합니다. 선지자는 먼저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백성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기에, 예루살렘 성읍이 적막해졌다고 말합니다.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고 불타 버린 예루살렘 성은 과거 아름다웠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과부처럼 보잘것없고 초라해졌습니다. 이제는 이방에 조공을 바치는 비천한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백성이 살육당하고 포로로 붙잡혀 갔기에 절기 때마다 드리던 성전 예배도 끊어졌다고 예레미야는 탄식합니다.

* 하나님의 영광과 보호가 떠난 예루살렘 모습은 참담합니다. 공동체와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황폐해진 예루살렘의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과 보호가 떠나 버리면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참담한 처지에 처하게 되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이 과거에 영화를 누렸던 것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거리와 성전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웃음소리가 들렸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열국 중에서 강한 나라가 되고 열방 중에서 공주와 같이 존귀하게 대접받았던 것도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보호막이 사라지자 유다 백성은 약하고 상한 모습으로 쇠락해졌습니다. 강한 대적이 들이닥쳐 하루아침에 가족을 끌어가고 성전 기물을 강탈해 갔습니다. 집과 거리는 불태워지고 칼로 무너졌습니다. 안락하고 활기찼던 성안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하고,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적막한 성읍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배가 끊어짐으로써 제사장들은 탄식하고, 절기마다 즐겁게 노래하며 춤추던 처녀들은 근심에 잠겼습니다. 지금 내 삶에 무너지고 황폐해진 부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2.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환난과 고통을 당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고 있나요?(5, 8~9절)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고 유다 백성이 포로로 사로잡혀 간 것은 그들의 죄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의 범죄로 인해 예루살렘은 환난을 당하고 곤고해지고 조소거리가 되었습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비극적인 상황을 보며 탄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이 비극의 원인에 눈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도성으로 불리던 예루살렘의 멸망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의 죄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선왕(善王)이었던 요시야 이후에 있었던 왕들은 모두 죄악 된 욕망과 그릇된 판단으로 나라를 통치했으며 예레미야를 핍박하고 그의 예언을 배척했습니다. 백성들 역시 우상 숭배와 영적 타락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이방 족속을 통해 임한 것입니다.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하게 되었으며 유다의 어린 자녀들이 포로로 사로잡혀 갑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범죄로 인해 더러워지고 낮아졌다고 말합니다. 즉 죄로 인해 불결해졌기에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내치셨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다’는 것은 예루살렘이 이방의 풍습을 좇고 그들의 신을 예배했음을 말합니다.

* 요즘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금 회개와 결단의 시간을 가져 보세요.
예루살렘이 당한 끔찍한 환난의 주요 원인은 우상 숭배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라고 예레미야가 예언했을 때 백성들은 왜 그런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나를 버려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렘 16:11). 나라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기 시작하면서 사회가 악해지고 백성은 우상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파괴된 예루살렘 성읍을 바라보고 슬퍼하며 울던 예레미야는 이제 그 고통의 원인이 외부의 대적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의 죄악임을 선포하며 유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합니다. 과거에 예레미야가 똑같은 말씀을 외쳤을 때는 듣지 않았던 백성이 이제는 선지자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될 때 가장 시급한 일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죄와 잘못이 드러난다면 빨리 회개하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본문 이해를 위한 도우미]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2절)에서 ‘친구’는 유다가 대표적으로 의지했던 동맹국인 ‘애굽’을 의미하는데 애굽은 BC 586년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했을 때 원군을 파견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애굽이 실질적으로 유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3절)에서 ‘궁지’는 아주 좁은 장소를 뜻하는 말로, 더 이상 피해 달아날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처했음을 의미합니다.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4절). 예전에는 성전에 올라가 절기를 지키려는 순례자들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북적거렸지만 이제는 황량해지고 인적이 끊겼습니다.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9절)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예루살렘이 이방 풍습을 좇고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숭배한 사실을 말합니다. 즉 예루살렘이 하나님께 ‘음행의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10절). 이는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성전 기구들을 모두 강탈해 바벨론으로 옮겨 간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조차도 제사장 신분이 아닌 이상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이교도들이 거룩한 성전을 마구 짓밟은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을 의인화해 그 처참함을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불순종했기 때문에 다른 이방인보다 더 큰 진노를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본문은 “위로할 자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며, 그 길을 걷지 않을 때 모든 영광이 떠나갑니다.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 때 확립됩니다. 본문은 불순종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사실적으로 보여 줍니다. 그러나 슬픔과 한탄 중에도 자신의 죄에서 원인을 찾고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정확히 의도한 바입니다.

함께 기도하기
-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가 일어설 수 있도록 슬픔을 함께 나누며 영적으로,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기도하게 하소서.
- 죄로 인해 고난을 받을 때, 다시금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철저히 회개함으로 죄에서 돌이켜 전화위복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Ⅰ. 회개의 기도 5:1-16

 

비탄에 잠긴 하나님의 백성들은 은혜의 보좌에 자신들의 슬픔을 터뜨린다. "지난 일을 기억하시고 오늘날 당하는 일을 감찰하옵소서. 모든 백성이 당한바 환난을 작게 여기지 마시고 간과해 버리지 마옵소서"(느 9:32). 그들의 모든 호소는 '수욕'이라는 한마디 말로 집약되고 있다. 우리의 수욕을 감찰하옵소서. 그들이 당한 것을 수욕이라고 볼때, 그것은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셨던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손상시킨 것이었다.

(1) 그들은 죄에 대한 수욕을 받아들였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그들의 어린 시절, 곧 그 민족형성 초기에 조상들이 지은 죄에 대한 수욕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그들 선조들의 죄에 대한 참회였으며 그들 자신이 집착해왔던 죄에 대한 참회였다. 그러한 그들의 죄때문에 이제 고통받는 것은 마땅하였던 것이다.

(2) 그들은 자기들을 부끄럽게 만든 몇몇 세목들을 들어 그들이 당하고있는 수욕을 설명한다.

1)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그 좋은 땅을 강탈당하였다(2절). "그 땅이 외인들에게 돌아갔나이다. 그들이 우리가 지어놓은 집에 거하오니 이것이 우리의 수욕이 되나이다."

2) 그들의 형편과 나라는 과부와 고아같이 되었다(3절). 우리는 아비없는 외로운 자식이오며. "우리는 의지할데가 없나이다. 나라의 아버지인 우리 왕은 베임을 당했나이다. 아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것같이 보이나이다. 우리 어머니, 우리 성읍은 이제 과부가 되어 학대와 모욕을 받으니 이것이 우리의 수욕이니이다."

3) 그들은 생활 필수품을 구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예전에는 물을 마음대로 쓸수 있었으나 이제는 은을 주고 물을 마시게 되었나이다. 전에는 땔감을 가져다 썼으나 이제는 값을 주고 섶을 얻되 한다발을 얻기위해 비싼 값을 치루게 되었나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양식을 무슨 수로 구하겠는가? 그들중 몇은 그것을 얻을려고 자기들의 자유를 팔았다(6절). 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이것이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의 거래였나이다. 우리가 죽기를 무릅써야 양식을 얻사옵나이다." 그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성을 몰래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칼에 베어 죽임당할 위험에 빠져버렸다. 광야에는 칼이 있으므로(9절).

4) 그들은 종살이를 하게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받은 어떤 수욕만큼이나 큰 수욕이었다(5절). 우리를 쫓는 자는 우리 목을 눌렀사오니. 그 멍에의 고통은 극심하였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비참한 포로들은 '곤비하여 쉴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밤의 안식도 안식일의 휴식도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과 그의 종들과 선지자들의 부드럽고도 자비로운 통치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 대적들과 종들에게 준엄한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였다.

5) 잔치를 벌이곤 했던 자들은 이제 주리게 되었다(10절). "심한 주림, 글자 그대로 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고 말라붙어 타버렸나이다."

6)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능욕과 굴욕을 당하였다. "여인들이 심지어 거룩한 시온에서조차 능욕을 당하였나이다"(11절).

7) 그들의 모든 즐거움이 다하였다(14절). 마음 내키는대로 웃고 했던 '소년들은 노래하지 못하게' 되었다. 온백성들이 그렇게 되었다. 우리 마음에 희락이 그쳤고 우리의 무도가 변하여 애통이 되었사오며(15절). 이 구절은 그들의 절기에 누리던 기쁨과 그들이 행하던 아름답고 경건한 '무도'에(삿 21:21) 적용시킬수 있다.

8) 그들의 모든 영광이 다하였다. 공의로운 정치가 그들의 영광이었으나 이제는 사라져버렸다(14절). 왕의 위엄이 그들의 영광이었으나 그것 역시 사라져버렸다.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왕 자신이 굴욕당했을뿐 아니라 면류관도 떨어져버렸다. 즉 그에게는 아무 후계자도 없었던 것이다. 세상의 면류관은 쇠하여 사라질 물건이다. 그러나 은혜롭게도 '시들지 아니하며' 결코 쇠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이 있으며, '진동치 못할 나라가' 있는 것이다.

 

Ⅱ. 여호와의 영원한 주권 5:17-22

 

(1)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이 받은 재난보다도 성전이 파괴된 사실에 더깊은 염려를 표명하고 있다(17,18절). "사람들이 자기들의 죄악으로 시온산을 더럽혔으므로 하나님께서 그곳을 황무하게 하신 것은 당연하나이다. 여우들이 거기서 숲속에서처럼 언제나 자유롭게 노나이다."

(2)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다는 신조로 스스로 위로한다(19절).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무엇이 세상을 뒤흔들지라도 그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어지럽게 하지는 못한다. 세상에 어떠한 변혁이 있을지라도 영원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으시며, 지혜롭고 거룩하며 공의롭고 선하며 무한히 영원토록 계시는 분이시다.

(3) 그들은 자기들이 현재 당하고있는 하늘의 노여움에 관해서 하나님께 겸손히 간구한다(20절).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가 당신 마음속에서 사라졌나이까? 당신은 한결같으신 분이니이다. 그러니 당신의 성소의 보좌가 훼파된다해도 당신은 우리에게 이전과 같은 분이 되시지 않겠나이까?" 우리는 하나님과 쟁변할수 없지만 그에게 호소할수는 있는 것이다(렘 12:1).

(4) 그들은 은총과 자비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여호와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지는 마시고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사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소서"(21절). 이 말로 끝을 맺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의 랍비들은 22절에 나타나는 슬픈 말로 이 책을 끝맺고 싶지않으므로 이 기도를 반복하여 그것으로 본장을 읽고 쓸때 맨마지막 말이 되게하였다. 이것은 시편 80:3,7,19절의 반복되는 기도와 일맥상통 한다.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소서.' "진실한 회개의 개심으로써 우리를 우상에게서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만일 하나님께서 자비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면, 은총으로 우리의 날도 새롭게 하실 것이다.


Ⅰ. 죄과의 열매 4:1-12

 

본장은 예루살렘의 비참한 변화에 대한 비탄으로 시작된다. 예전에는 정금과 같던 그 성읍이 영광을 잃어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1) 예루살렘의 영광이요 보호물이었던 성전은 황폐케되었다. 어떤이들은 1절에 나오는 금을 '성전의 금,' 곧 성전에 입혀졌던 정금으로 이해한다(왕상 6:22). 성전이 불에 탔을때 그 금은 훼손되었다. '성소의 돌'은 불로인해 내려앉아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다. 그 돌들은 도처의 폐허속에 뒤섞여버렸다.

(2) 어떤 특별한 의미에서 '시온의 아들들'이라고 볼수 있었던 방백들과 제사장들은 능욕을 당하였다(2절). 이스라엘은 금, 은과 같은 보배로라기보다는 그 사람들로인해 더욱 부유하였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질항아리처럼 깨져버린 것이다. 그들은 가난해지고 포로로 잡혀갔으며 비천한 자들로 멸시받게 되었다.

(3) 어린아이들은 떡과 물이 없어 굶어죽게 되었다(3,4절).

(4) 상류층의 사람들은 궁핍에 빠지게되었다(5절). 그들은 좋은 가문 태생으로 교양있게 자란 자들이었으나 전쟁으로인해 모두 헐벗게 되어 거리에 버림받았으며 누울 잠자리조차 없어졌다. 때때로 '궁핍한 자가 거름 무더기에서 일어나는'(시 113:7) 경우가 있으나 여기서는 부유하던 자가 '거름더미'를 안게 되었던 것이다.

(5) 위엄으로, 혹은 고결함으로 존귀하였던 사람들은 그 공동의 재난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다(7,8절). '존귀한 자'들에게 변화가 왔다. 이 존귀한 자들(Nazarites)은 절제있는 식사로 인해서, 특히 그들의 얼굴을 모세의 얼굴처럼 빛나게 했던 하나님께 대한 헌신가운데서 누리는 즐거움으로 인해서,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었다.' 그들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음으로해서 건강이 넘치는 안색과 기운찬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이사야 52:14절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 것처럼) '그들의 얼굴은 상하였다.' 그 얼굴이 숯보다 검고(8절). 그들은 한편으로는 굶주림으로 한편으로는 슬픔과 혼란으로 비참하게 보였다. 거리에서 알 사람이 없도다. 그들을 존경하던 자들이 이제는 그들을 무시하였다.

(6)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질질끌며 멸망해갔다. 이는 다른 어떤 심판보다도 기근이 그 성읍을 멸망케하는 주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그 스스로가 멸망해가는 것을 느끼도록 조금씩 멸망해 갔다. 예루살렘의 죄악은 소돔의 죄악보다도 중하였으므로 그 죄악에 따른 형벌또한 소돔보다 중한 것이 당연하였다. 소돔은 예루살렘이 받았던 은총을 전혀 받은적이 없었다. 자비한 부녀가 손으로 자기 자녀를 삶아 먹었도다(10절). 그들의 상황은 자녀들을 먹이고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방법이 없을정도로 비참하였다(4절). 그러나 더욱 비참한 것은 그들이 자녀들을 음식으로 삶아 먹고자 하는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완전한 멸망이었으며(11절), 깜짝 놀랄만한 멸망었다(12절). 이 사건은 세상 열왕에게 그리고 예루살렘을 알고있던 '천하 모든 백성'에게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위대한 왕의 성'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성을 보호하시기 때문에 어떠한 대적이 공략하더라도 무위로 끝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Ⅱ. 환난의 원인 4:13-20

 

(1)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렇게 파멸시킨 원인이 된 죄악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정당하게 해주었다(13,14절). 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그들에게 특별히 책임지워진 죄목은 핍박이었다. 거짓 선지자들과 부패한 제사장들은 '성읍중에서 의인의 피를 흘리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자녀들의 무죄한 피를 흘려 몰록에게 제사하였을뿐만 아니라, 그들가운데 거하는 의인들의 피를 흘려 진리와 참된 종교에 대한 적개심이라는 더욱 잔인한 우상에게 제사하였던 것이다. 핍박하는 것만큼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혐오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2)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을 증명하기 위해 이웃들이 증언한다. 죄에 빠져 살면서도 깨끗한 척하는 그들을 그 이웃들이 비난하였다. 사람이 저희에게 외쳐 이르기를 부정하다 가라...하였음이여(15절). 이웃들은 모두 그들에게 무안을 주며 소리질렀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좋은 땅에 살면서도 그토록 자신을 진노케하는 백성들을 참지않으시리라는 것을 예견하였다. 그 땅은 예전에 그들의 선조에게 했던 것처럼 그들을 토해내려고 하였다. 저희가 도망하여 방황할때에 이방인이 이르기를 저희가 다시는 여기 거하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이웃 나라들은 이제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리라'고 말하였다. 그 이웃들은 그들이 추방당하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께서 다시 권념치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어찌 스스로 도울수 있으리요?" 라고 말하였다. 사실 이것은 이웃들이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상의 모든 사실로도 그들을 버리시지 않는다.

(3) 그들은 고난속에서 절망한다. "우리가 볼때, 우리의 처지는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도다." 우리의 마지막이 이르렀도다(18절). "우리 교회와 나라의 마지막이 다가왔도다." 그들이 피한 피난처는 그들에게 실망을 안겨다주었다. 그들은 이곳과 또다른 강력한 동맹국에게 도움을 바랐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꿈에도 도와줄 생각을 하지않는 자들에게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17절). 우리가...우리를 구원치 못할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그 나라는 그들의 기대를 좌절시켰다. 그리하여 핍박자들이 그들을 정복하였다(18절). 저희가 우리 자취를 엿보니 우리가 거리에 행할수 없음이여. 갈대아인들은 그 성을 포위하고서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들을 쏘아 맞힐수 있도록 성벽보다 더높은 포대를 세웠다. 갈대아인들은 그들을 화살로 이리저리 추적하였다. 우리를 쫓는 자가 공중의 독수리보다 빠름이여(19절).

 

Ⅲ. 교만한 에돔에 내릴 형벌 4:21-22

 

다윗이 지은 여러 애가에는 공통적으로 어떤 위로의 말이 포함되어 있다. 이 위로의 말은 사망으로부터의 생명과 같고 어둠속에서 빛나는 빛과 같은 것이다. 본문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 애가에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용기를 북돋기위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예언되었다.

(1) 시온이 당하고 있는 환난이 다할 것이다(22절).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환난은 그것의 임무를 완수한 후에는 더이상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2) 에돔이 누리고 있는 승리또한 다할 것이다. 이것은 반어적으로 말해졌다(21절). 처녀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려무나. "지금은 예루살렘이 다 마셔야할 차례가 된 이 떨리는 잔이 네게도 이를지라." 에돔 족속의 멸망은 이 예레미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되었다(렘49:7이하). "네게 이르게될 잔이 너를 취하게 하리라. 네가 취하여 어찌할바를 몰라 비틀거리고 넘어지며 마치 노아가 취했을때처럼 벌거벗고 망신을 당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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