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명기 법전에 나타난 우상 숭배와 거짓 선지자에 대한 입장

1) 우상 숭배(신13:6-18; 신12:29-32)
① 우상 숭배의 미혹에 대한 하나님 백성의 태도는 발자취를 따르지 말며, 연구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매우 가증히 여기시는 일들을 이방 민족이나 우상 숭배자들이 행하여 왔기 때문이다.
② 유혹의 대상이 가까운 친구, 친척 그리고 가족의 일원일 경우, 백성들의 태도는 a. 좇지 말라, b. 말을 듣지 말라, c. 긍휼히 보지 말라, d. 덮어 숨기지 말라, e. 용서 없이 돌로쳐서 죽이라 등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며, 다시는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③ 유혹의 대상이 성읍을 대상으로 한 불량자, 혹은 사악한 자녀들일 경우, 백성들의 태도는 a. 사실 여부를 자세히 조사하여 알아보라, b. 사실화가 되면 성읍 거민을 칼로 죽이라, c. 그 성읍과 거하는 모든 것, 생축을 칼로 죽이라, d. 전리품을 불살라 하나님께 바치라, e. 없앨 물건에 절대 손대지 말아라, f. 영원한 폐허로 남겨두고 다시는 성읍을 건축하지 말아라(신13:12-18).
④ 우상 숭배 사실 여부를 소문으로 들었을 경우, 백성들의 태도는 a. 소문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잘 조사해 보아라. b.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우상 숭배자를 성문에 끌어내어 돌로쳐서 죽이라, c. 죽일 때의 조건은 두세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 한사람의 증언은 불가하다, d. 증인이 먼저 돌로 치라(신17:2-7) 등이다.

2) 거짓 선지자(신13:1-5; 신18:9-22)
① 제거의 대상 : 복술자, 신접자, 박수, 초혼자, 무당, 요술하는 자, 요술객과 무당, 길흉을 말하는자, 인신 제사를 드리는 자, 거짓 예언자, 꿈으로 점치는 자 등이 있다.
② 백성들의 태도 : a. 하나님만을 따르라, b. 그분만을 섬기라, c. 그분만을 경외하라, d. 그분의 명령을 지켜라, e.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라, f. 그분에게 충성하라, g. 그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지 말고 용납하지도 말라, h. 죽이라 등이다.
③ 제거하는 이유 : a.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아니한다, b. 하나님을 배반하게 하는 것이다, c. 하나님의 생명의 길에서 떠나게 하기 때문이다.

2. 멍에와 상급

1) 멍에
zogo"(조고스; 멍에)는 수레를 끄는 짐승들을 연결시키기 위해 목에 걸쳐놓은 것을 말한다. 대하10:4에서 이단어는 폭정을 나타내고, 사14:29;사19:10;사47:6, 단8:25에서는 외국의 지배를 의미하고 있다. 구원은 멍에를 벗기는 것으로 묘사되고(사9:4) 있으며, 하나님께서 멍에를 깨뜨리시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기도 하다(레26:13). 죄인들은 하나님의 멍에 매기를 원치 않지만(렘2:20), 궁극적으로 열방들은 그 멍에를 즐거이 맬 것이다(습3:9). 멍에의 상징적인 의미는 굴복(렘27:8), 무거운 고역(왕상12:4-14), 압박(신28:48), 죄의 짐(애1:14; 갈5:1) 등을 뜻한다.

 
2) 상급
헬라어 신약성경에는 상급 개념을 가진 용어가 다양하게 나온다. 그중에 '상'이라는 말로 번역된 가장 중요한 단어로 misqov"(미스도스)와 그 파생어를 들수 있다. 미스도스는 헬라 및 로마 세계에서는 일의 대가, 급료 혹은 제사장의 사례금 그리고 신의 보응을 뜻하였다. 칠십인역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의미들이 등장한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축복의 표시로써 의인들에게 이세상에서 보상을 주신다(창15:1; 사40:10). 신약에서 이 낱말은 희생을 치루면서까지 일을 잘 해낸 것에 대해 부여하는 명예(눅6:23)뿐 아니라, 고용되어 맡은 일을 행한 것에 대해 지불하는 삯의 개념(마20:8)도 내포하고 있다. 성경은 다른 많은 상급들을 묘사하고 있고, 또 종종 그 상을 받을수 있는 특정한 삶의 방식을 계시하기도 한다.

3. 바사왕 다리오(Darius)

성경에는 다리오 왕이 3명 나타난다. 첫째는 메대 사람 다리오로서 62세에 벨사살 왕을 죽이고 바벨론의 왕이 된다(단5:30,31). 다니엘서 외에는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으며, 당대의 비문들은 나보니두스(벨사살)와 고레스 사이에 다른 바벨론 왕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다. 둘째는 캄비세스 왕의 뒤를 이어 바사와 바벨론의 왕이 된 다리오 1세로써 B.C.521-486년까지 다스렸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도와주었고(스4:5; 학1:1), 또한 고레스 왕의 칙경을 확인시켜 주었다(스6:1-14). 셋째는 다리오 2세로써 B.C.423-408년까지 바사와 바벨론을 다스렸으며, 느12:22에는 바사왕 다리오라고 불렀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의 고초를 피력하면서 하나님께 주의 자비와 긍휼에 따라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시금 불쌍하게 여겨달라고 간구한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호소는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 멸망후에 곧바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다. 그 약속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면서 영원한 나라의 회복에까지 연결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경륜과 그 사랑에 의지하며 겸손하게 낮아져야 할 것이다.

1. 선지자의 애통(애3:1-18)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당한 자는 내로다"(애3:1)라고 말했다. 여기서 '노하신 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왜 '고난당한 자'가 선지자 예레미야 자신이라고 했는가? 또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난당하는 진상은 무엇인가?

1) 민족의 아픔이 선지자의 아픔
하나님의 노하셨다는 것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우상 숭배와 거짓 예언과 죄악이 관영하므로 바벨론이란 채찍을 들어 징계하신 것을 말한다. 바벨론의 침략은 주전 605년에 1차 침략이 있었고, 2차 침략은 주전 597년에 있었으며, 3차 침략은 주전 586년에 있었다.
이러한 침략으로 예루살렘은 황폐하게 되었고, 많은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으며,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시위대 장관인 느부사라단에 의하여 라마에서 풀려나서 자유의 몸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다.

2) 하나님의 사람의 애통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을 보며 애통해 하는 아픔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마음이 불붙는듯하여 죽은 영혼들에게 그 사랑을 전파한다.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사람과 민족을 보면서 안타까이 여기고, 그 민족과 개인의 죄를 위하여 중보 기도를 담당하는 자이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복음에 빚진 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2. 고난중에 소망을 가지고 간구함(애3:19-54)
선지자 예레미야는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3:25,26)라고 했는데, 잠잠히 기다리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사람이 젊었을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다고 한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한 입에 티끌을 대라고 한것은 무슨 의미인가?

1) 겸손하게 하나님께 간구함
하나님은 기다리고 잠잠히 참는 자에게 선을 베푸신다. 따라서 고난과 환난 중에도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때를 맞을수 있다. 그리고 젊었을때 멍에를 메면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할수 있고, 하늘의 상급 또한 크다. 하나님의 일에 숙달되어서 더욱 성숙하고 능숙하게 일할수 있기 때문이다. 입에 티끌을 대라는 말은 자신을 지극히 낮추라는 말로써 겸손하게 낮아지며 수욕을 달게 받으면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태도를 의미한다.

2) 기다리는 자에게 응답하심
선지자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한없는 탄식을 하면서도 다시금 겸손하게 기도하며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회복해 주실 것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멍에를 계속하여 짊어지고 나아갈 것을 종용하였다.
하나님의 멍에는 인간의 힘으로 지기에는 버겁고 힘들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멍에를 친히 지시기에 우리는 순종함으로 따라갈 따름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큰 성과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따라서 우리는 겸손히 낮아져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3. 하나님께의 간구(애3:55-66)
선지자 예레미야는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애3:55)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예레미야는 "저희가 내게 보고하며 나를 모해함을 주께서 다 감찰하셨나이다"(애3:60)라고 했는데, 무엇을 보수하고 모해하였는가? 그리고 저의 손으로 행한대로 응보해 주시기를 구했는데, 이는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1) 원수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간구
선지자 예레미야는 실제적으로 깊은 구덩이에 빠뜨림을 받아 극한 고난을 받은 적이 있다(렘38:6). 그렇지만 여기서의 깊은 구덩이는 바벨론에 의한 큰 수욕과 고난을 의미한다.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큰 수욕과 고난중에 하나님께 간절한 간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군이 예레미야에게 행한 모든 일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신다고 예레미야는 피력하였다. 또한 '저의 손으로 행한 일에 대한 보응'은 바벨론이 메대 바사에게 끝내는 멸망당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 간구는 주전 539년에 바사의 다리오에 의하여 성취되었다.

2) 하나님은 백성들의 신원에 응답하심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신원을 간과하시지 않는다. 특히 큰 수욕과 고난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에 속히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주권적으로 인도하신다. 그러나 자신의 주권을 행하심에 있어 하나님의사람들의 간구를 신원하여 행하신다. 따라서 민족을 위한 믿는 자들의 간구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이다.
믿는 자의 기도를 기쁨으로 신원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밤낮으로 부르짖어 민족과 세계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속히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민족이 바벨론에 의하여 큰 수난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애통하며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또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신의 간구를 이미 능히 알고 계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에 대하여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망은 역사적으로 일점일획의 변함없이 성취되었다. 따라서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하여 그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간구에 친히 천군천사를 동원하시어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실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하나님께 합당했던 유다 왕들(하나님을 의지한 왕들)

통일 왕국 이스라엘이 B. C. 931년에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열된 후에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하기까지(B. C. 586년) 약 345년동안 왕국이 존속되어 왔다. 유다의 19왕 중에 8명이 하나님의 눈에 선한 왕이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유다의 8왕이 모두 똑같이 하나님을 기쁘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왕들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 행동하려 하였고, 그 노력을 어느 정도 수행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8명의 왕은 다음과 같다.
① 아사(B. C. 911-870, 왕상15:9-24; 대하14-16장)
② 여호사밧(B. C. 873-848, 왕상22:41-50; 대하17-20장)
③ 요아스(B. C. 835-796, 왕상 12장; 대하23:16-24:37)
④ 히스기야(B. C. 728-686, 왕하 18-20장; 대하 29-32장)
⑤ 요시야(B. C. 640-609, 왕하22:1-23:30; 대하 34,35장)
⑥ 아마샤(B. C. 800-783, 왕하14:3)
⑦ 웃시야(B. C. 783-742, 왕하15:34)
⑧ 요담(B. C. 742-735, 왕하15:34)

2. 시온(Zion)

시온은 예루살렘의 남동쪽에 있는 다윗성을 가리킨다. 다윗은 여부스 족속의 요새를 빼앗아 후에 다윗성으로 삼는다. 구약에서 '시온'이란 단어는 154회 나오며, 이와 병행되는 용어로는 다윗성, 예루살렘, 살렘,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 성소 그리고 이스라엘 등이 있다. 시온은 예언서와 시편 그리고 예레미야애가에 자주 나온다. 이 단어는 마지막 때의 구원의 도시라는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또한 왕의 거처, 수도 그리고 제사 중심지를 나타내기 위해서도 사용되었지만, 죄와 심판의 도시라는 의미로는 아주 드물게 나온다. 이사야의 후반부에서는 공동체의 상징으로 나오며,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도시, 공동체 그리고 성전의 의미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시온은 하나님의 거할 처소요(사8:18), 영원한 치리 장소이며(마4:7), 구원얻을 자의 피난처요(욜2:32), 신약 복음의 출처가 된다. 그러므로 시온은 예루살렘 도성을 가리킬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 왕국(시125:1)이라 할수 있다.

3. 선지자의 묵시

1) 계시방법
선지자는 계시의 수신자이다. 그 계시는 미래를 특징 지어준다. 그래서 선지자는 객관적 계시의 수신자이며, 선지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신적 계시의 산물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이 선지자의 마음속에 들려지거나 인상 지워지게 함으로써 육체적인 청각 기관을 사용하지 않고도 알수 있도록 하셨다. 또 어떤 메시지들은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심으셨을 수도 있다(사22:4).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했고, 또 예언과 메시지가 이루어짐으로써 하나님의 승인을 받았다.
선지자들의 계시 수납 방법은 ① '말씀'과 '들음'을 통해서(사8:1; 사18:4), ② '보여 주심'과 '봄' 또는 '환상'을 통해서(렘1:11,12; 겔 1-3장), ③ 선지자의 몸의 '들어올림'을 통해서(고후12:1-4) 받는 경우가 있었다.

2) 계시내용
계시의 수납자인 선지자가 계시하는 내용은 4가지가 있다.
첫째,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은 유일신론을 원칙으로 한다.
둘째,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존재하는 독특한 유대 관계를 계시한다.
셋째, 하나님과의 언약적 유대 관계의 결렬, 즉 이스라엘의 죄악들을 지적하며 계시한다.
넷째,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은 선지자들의 종말론적 관점에서 계시한다.

4. 하나님의 진노

예레미야애가를 통해 하나님이 유다 백성에게 나타내신 진노의 극한점은 당신을 위해 세운 성막과 제단과 성소를 헐어내시겠다는 표현에서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성별되게 여기시던 제단, 성전, 언약궤, 절기 등은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사용하셨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이스라엘의 패역하고 악한 죄악으로 인해 과감하게 버리시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는 참고 기다렸지만 돌아오기는 커녕 더 악해지고 죄를 범함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심판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들이 죄악된 모습으로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는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이므로 우리의 진정과 신령으로 드려지는 예배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형식적이며 이례적인 모습으로 성전과 제담을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과 헌신의 마음으로 진노하심을 피할수 있어야 할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성의 멸망으로 인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애곡과 훼파된 성의 모습 그리고 멸망 원인이 나온다. 유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 친구들, 즉 애굽과 동맹한 나라들을 믿었으며, 또한 극한 우상 숭배를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를 격동시켰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채찍을 들어 유다를 크게 징벌하셨으며,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징벌받은 예루살렘성을 보면서 밤새 애곡하였다.

1. 예레미야의 애곡(애1:1-22)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같고 본래는 열방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드리는 자가 되었도다"(애1:1)라고 하였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예루살렘은 저희 가운데 불결한 자 같도다"(애1:17)라고 한 뜻은 무엇인가?

1) 열방들의 배신
이스라엘은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기에 열방중에 가장 융성한 나라였다. 그리고 남북이 분열된 후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 왕들의 시대에는 그 융성함이 지속되었다. 그때에는 많은 나라들이 가까이에서 친구가 되었고, 유다는 공주와 같이 존귀한 자였다. 그러나 멸망후에는 열방중에 그 누구도 위로해 주지않고 등을 돌렸으며, 오히려 바벨론에게 조공을 드리는 자가 되었다. '불결한 자'는 율법에 그 누구도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정결법'이 패망한 이스라엘에 적용되었던 것이다.

2) 하나님을 버린 결과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열방의 힘을 의지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결과를 보면서 한없는 탄식과 눈물로 애가를 지었다. 이것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큰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다. 모든 도움과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도 구체적인 도우심을 베푸신다. 인본주의와 환경에 따라 사는 신자들은 결국 실망케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다른 곳을 의지하고 떠나면 채찍을 들어서라도 다시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만드신다. 우리는 이러한 징계를 받기전에 늘 자신의 신앙적 현주소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2. 훼파된 성의 상태(애2:1-10)
선지자 예레미야는 "처녀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고...진노하신 날에 그 발등상을 기억지 아니하셨도다"(애2:1)라고 기록하였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시고 원수 앞에서 오른손을 거두셨다고 하신 뜻은 무엇인가? 그리고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다고 했는데,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1)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떠난
처녀 시온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구름은 하나님이 주신 재앙을 각각 상징한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이 재앙을 유다와 예루살렘에 가득차게 하신 것을 뜻한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발등상은 하나님의 성전을, 뿔은 권세를 상징하고, 오른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이 유다의 왕과 관리들은 버리시고 도움의 손길을 주시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또한 예루살렘 처녀는 유다 백성을 말하는데, 유다 백성이 유다와 예루살렘 멸망을 보면서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을 뜻한다.

2) 민족적 죄악으로 인한 재앙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도 죄악이 만연할때에는 버리신다. 하나님의 버림은 영원한 버림이 아니요, 택한 자들을 다시 부르기 위한 일시적인 버림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회복에 대하여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포하게 하셨다. 우리가 범죄할지라도 영원히 버리시지 않으시고 다만 징계만 하실뿐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에게는 큰 은혜가 아닐수 없다.

3. 예루살렘 멸망으로 인한 비참상(애2:11-22)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황폐된 모습을 보면서 "내 눈이 눈물에 상하여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애2:11)라고 하였다. 이처럼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에 대하여 애달파하였다. 그러면 이 패망의 원인 중에 하나로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다"(애2:14)는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하나님은 옛날에 명하신 말씀대로 다 이루셨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1) 하나님의 뜻을 분별치 못함
유다는 거짓 선지자의 잘못된 묵시 때문에 망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은 계속해서 유다의 회개와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이 나와서 평안할 것이고 안전할 것이라고 거짓 예언하는 바람에 유다 왕과 백성이 미혹되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와 거짓 예언과 죄악이 가득한 유다를 모세오경에 약속한대로 징벌하셨다. 그 결과로 여인들은 기근으로 자신의 자식을 먹었고,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주의 성소에서 살육당하였으며, 노인과 아이들은 돌볼 사람이 없어서 길바닥에서 기진하였고, 처녀와 소년들은 전쟁터에서 바벨론의 칼에 죽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포로가 되어 이방 땅으로 끌려갔다.

2) 거짓 영을 잘 분별해야 함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전하는 참된 목자가 있는 반면, 거짓 영의 사주를 받아 잘못된 사술을 전하는 거짓 목자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짓 영, 거짓 목자는 오늘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에 비춰 분별하는 성도들은 언제나 올바른 길을 갈수 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이 융성할때에는 친구와 같이 아첨하지만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을 보면 오히려 비웃고 조소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그 백성의 징계를 보면서 눈물로 탄식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 성도들은 예레미야처럼 징계받을때 눈물로 회개하는 동시에 회복의 은혜에 대한 믿음을 지녀야할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저작권에 대한 비평

예레미야애가의 저자가 예레미야라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신학계에 비평학이 들어오면서부터는 저작권에 대한 비평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대의 비평가들은 내증에 근거하여 부수주의의 역사적 전통을 부인한다. 첫째는 예레미야의 두 예언이 문체가 너무나 다르고, 두서너 가지의 역사적인 암시들을 볼때에 이것이 예레미야 시대보다 훨씬 후대의 상황과 사건을 언급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반면에 B. C. 586년의 예루살렘 멸망외에 다른 어떤 후대의 사건이 이와같은 비극적인 애가를 짓도록 영향을 줄수 있었는지 의문시 된다. 만약에 예레미야가 저자가 아니라고 하면 그것을 쓴사람이 누구이든간에 예레미야와 동시대의 인물이어야 하며, 갈대아 정복자들에 의해서 시온이 겪은 그 처참한 비극을 목격한 자라야 한다. 또한 애가서와 예레미야서 사이에 문체와 어투에 있어서 괄목할만한 유사점들이 많이 있음을 볼수 있다(렘8:21; 렘9:18; 애1:15,16; 애2:11). 그러므로 두저자 사이에 판정이 다르다는 것에 근거한 논리는 건전한 성경 해석에 따르는 것이 아님을 볼수 있다. 둘째는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도구로써 사용하고 있음을 믿었는데, 애3:59-66은 갈대아인이 하나님의 복수의 몽둥이를 실컷 맞아야한 합당한 원수로 묘사하고 있기에 충돌이 있다. 그러나 이 두관점이 서로 충돌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확실히 바라보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악한 동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복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사야 10장에도 이와 유사한 앗수르에 대한 태도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관점이 다르다는 점에 근거하여 저자가 다르다는 주장이 좋은 기초 위에 서있지 않음을 결론지을수 있다.

2. 애가의 주제와 목적 그리고 가치

1) 주제
애가의 대주제는 죄악많은 유다에 임한 재앙과 거룩한 도시와 주님의 성전에 임한 처참한 멸망을 애도하는 것이다. 애곡의 대상은 비참한 상황에 놓인 백성들만이 아니고 그런 참극을 야기시킨 죄를 행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통하여 선지자는 매맞은 유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공의로운 손길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의 은혜를 간구해야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2) 목적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 그 자체에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변치않는 언약의 하나님의 회복하심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도 결코 유다를 버리지는 아니할 것이다. 따라서 애가서의 목적은 하나님의 심판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서 미래의 교훈으로 삼게하기 위함이며, 또한 궁극적인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여 실의에 빠진 백성들에게 새소망을 주기 위함에 있다.

3) 가치
애가서의 현대적인 가치는 시간과 역사의 제약을 받지않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것을 생활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음에서 찾을수 있다. 즉 교회의 영적 영광과 그 영광이 상실되었을 때의 비극, 죄의 극악성,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 언약의 본질과 언약 백성의 의무 그리고 우리들의 명예에 의존하는 어리석음 등이다. 그러므로 애가서는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의 혼탁한 교회 현실을 신중히 검토하고 자비와 긍휼이 무한하신 하나님께 돌이키도록 사랑의 채찍을 가할 것이다.

3.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애가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애가는 서로 상이한 점이 많이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삶의 정황에 있어서 동일한 선상에 놓여있다. 즉 B.C. 586년 예루살렘성의 함락 사건을 정점으로 전자는 예루살렘 함락을 경고하고, 후자는 재앙의 비참함과 절망적인 애도를 보여주고 있다.
삼판이 내리기전 예레미야는 예언을 통해서 멸망과 징표를 보여주었는데(렘13:1-11), 이 예언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썩은 띠나 깨어진 오지 그릇과 같이 극심하여 처참하게 파괴될 운명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땅에서 유랑하는 자가 될 것이며, 저주받은 골짜기가 매장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렘 19장).
반면에 예레미야애가는 예루살렘 함락을 보고 체험한 한 시인이 그 비참한 현실앞에서 절망하고 애통해 하며,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노래하였다. 그리고 고난과 수난을 당하는 자가 절망하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여호와를 신뢰하면 민족이 다시 번영할 수 있다고 희망을 제시한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저자

본 서 자체에는 저자가 누구인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히브리 성경에서는 본 서를 구약성경에서 룻기와 전도서 사이에 있는 mybwtk(케투빔)이라 불리는 성문서 사이에 수록하였다. 이러한 편집은 저자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시편과 잠언 시가서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예레미야라는 것을 제시한 것은 칠십인역 번역자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다. 칠십인역 번역자는 현존하는 히브리 사본에 나타나지 않는 말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로잡혀 가서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 대하여 애도하며 말하기를" 이라는 부분을 첨가하고 있다. 또한 요세푸스와 탈무드의 기자 역시 이 사실을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오리겐을 미롯한 교부들과 칼빈 역시 본 서의 저자가 예레미야임을 인정했다.
본 서와 예레미야서의 유사성을 살펴보면 저자에 대한 관점이 더욱 명백해질 수 있다. 내용상으로는 예루살렘이 멸망을 기술한 점에서 동알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문체상으로 '내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흐름'(렘9:18; 렘13:17; 렘14:17; 애1:16; 애2:11,18; 애3:48,49)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죄악(렘23:11; 애2:14; 애4:13)과 '처녀 내 백성의 파멸'(렘8:11,21; 애2:11; 애3:48; 애4:10) 등의 표현이 유사한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주제상으로도 하나님의 백성이 징계 당함에 대한 비통과 눈물속에서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도 동일하다.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 볼때 본 서의 저자는 예레미야라는 사실이 더욱 명백해진다.

2. 시대적 배경

예레미야애가의 배경은 주전587-586년에 유대와 예루살렘에 임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성을 18개월동안 포위하여 점령한 사실이다. 포위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기근과 질병으로 가득찼고, 점령으로 인하여 성은 완전히 파괴되고 불에 타버렸다.
남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한 이래 유다는 예루살렘성을 하나님이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패역한 결과로 하나님이 바벨론을 들어 예루살렘성과 성전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자 유다 민족들은 자신들의 눈을 믿을수 없었고, 따라서 이들의 비애는 이루 말할수 없었다.
예루살렘의 훼파를 전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약속하신다. 그리고 바벨론의 포로지에서도 이런 약속을 선지자 에스겔과 다니엘을 통하여 주셨다. 이러한 약속은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메대 바사의 고레스 왕의 포고령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또한 완전한 회복은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메시야를 통하여 영원한 왕국을 이루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약속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성취되었으나 유다 민족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유다 민족이 이 애가를 상당히 애독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알수 있는데, 그것은 이 애가가 유대의 중요한 연중 행사 중 다섯 두루마리 책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브월 9일에 애가는 성전의 파괴를 기념하기 위하여 금식하면서 읽혀졌다. 또한 로마 교회는 성주간의 마지막 3일 동안 애가서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3. 전체 내용 요약

애가는 다섯편의 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들의 첫 4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으로 구성된 이크로스틱 시(각 행의 첫 자음을 모으면 알파벳 순서로 끝까지 이루는 시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시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동질성 상실에 대한 큰 슬픔을 표현하는 것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에게 읽혀지길 바라는 의도에서 저작되었다. 시대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의 파괴,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야의 유배,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감 등의 극심한 고통속에서 쓰여졌다.
1장은 예루살렘 성의 파괴로 인한 성의 비참함이 묘사되면서 예레미야의 탄식과 애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2장의 초반절 역시 예루살렘이 비참한 모습을 기술하였고, 후반절에는 예루살렘 성의 멸망 원인인 거짓 선지자의 잘못된 예언을 기술하면서 선지자의 탄식이 기록되어 있다. 3장에는 저자의 애통이 계속되면서 백성들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유다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신실하심을 좇아 긍휼을 구하고 있다. 4장은 다시금 예루살렘의 비참한 현실에 대한 탄식과 선지자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기술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위로와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나타난다. 5장에서는 유다 백성의 처지를 하나님께 신원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간구함으로 끝마치고 있다.

4. 구속사적 의미

본 서는 예루살렘의 파괴로 인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애통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애통의 5편의 시를 쓴 것으로만 요약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긍휼을 구하고 있다. 또한 백성에게는 진정으로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종용하고 있다. 그래서 본 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회개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기록하고 있다.
본 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인류의 죄악을 사하시는 은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5. 내용 분해

Ⅰ. 예루살렘 성의 멸망과 애통(1장)
1.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태(1:1-11)
2. 예레미야의 탄식(1:12-22)

Ⅱ. 예루살렘 성의 모습과 멸망 원인(2장)
1. 비참한 성의 모습(2:1-10)
2. 성의 멸망 원인(2:11-22)

Ⅲ. 예레미야의 간구와 회개 촉구(3장)
1. 선지자의 탄식(3:1-18)
2. 회개의 촉구(3:19-54)
3. 선지자의 간구(3:55-66)

Ⅳ.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죄악(4장)
1. 시온의 비참(4:1-12)
2. 시온의 죄(4:13-20)
3. 에돔의 심판(4:21-22)

Ⅴ. 하나님께의 회개와 간구(5장)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