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현장에 찾아오시는 부활의 주님

[요한복음 21장 1절~14절]
1절 -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절 -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절 -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절 -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절 -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절 -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절 -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절 -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절 -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절 -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절 -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베드로와 여섯 제자가 디베랴 호수에 물고기를 잡으러 가나 아무것도 잡지 못합니다. 날이 샐 때 바닷가에 서신 예수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시니 제자들이 물고기를 153마리나 잡습니다. 제자들이 육지에 올라오자 예수님은 숯불 위에 준비하신 생선과 떡을 그들에게 조반으로 주십니다.

1. 디베랴 호수에서 만난 부활의 예수님 (1~7절)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만 관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몇 명이 디베랴(갈리리) 호수에 물고기를 잡으러 갑니다. 선교하러 가지 않고 생업의 장소로 간 것에 대해 성경은 그들이 예수님 명령을 어겼다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생업의 현장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그들이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제자들은 누군가의 말을 듣고 기적적으로 물고기를 많이 잡고 나서야 비로소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일상의 현장까지 직접 찾아오시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가 일상에서 그분을 찾고 만나기 원하십니다.
* 제자들은 왜 갈릴리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내가 어디 있든지 주님이 그 자리에 찾아오실 수 있다는 인식은 왜 중요할까요?

2. 예수님이 육체로 부활하신 증거 (8~14절)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당시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전에는 당시 제자들 중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그분이 부활하신 몸으로 직접 나타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1, 14절). 부활하신 예수님을 디베랴 호수에서 만난 7명의 제자들은 그때 잡은 물고기 개수도 정확히 기억했습니다(2, 11절). 요한이 이것을 구체적으로 기록함은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으로 실재한 사건임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생선 및 떡(빵)으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예수님이 육체로 부활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으나 성경의 증언을 듣고 믿는 복된 사람들입니다(20:29).
* 주님이 부활 후 식사하신 것과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 개수가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섬세하게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 현실과 이성에 갇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제 눈을 사랑으로 밝혀 주소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뜨겁게 체험하며,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교제의 삶을 이어 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성경, 믿음의 확신과 영적 성장의 기초

[요한복음 20장 24절~31절]
24절 -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절 -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절 -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절 -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절 -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절 -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절 -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도마는 주님을 보았다는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8일 후 제자들이 집 안에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도마에게 그분의 손을 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 하시며 믿는 자가 되라 하십니다. 그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자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 하십니다.

1. 최고의 신앙 고백자 도마 (24~29절)
기독교 역사에서 도마는 늘 '의심 많은' 사람이라 불리면서 믿음이 작은 제자의 표상으로 취급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일 뿐입니다(24절). 도마는 어떤 사실을 볼 때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출발해 확실성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는 곧바로 최고의 신앙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겸손하면서도 진실되게 비판적인 도마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도 얼마든지 예수님을 믿고 최고의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도마가 한 신앙 고백은 무엇인가요? 신앙생활에서 겸손하면서도 정직한 의심을 갖는 것은 어떤 유익을 주나요?

2. 성경을 통해서 믿는 신앙 (30~31절)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을 직접 듣고 표적을 보고 그분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시대 이후 사람들은 예수님을 볼 수도,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책 곧 성경을 통해서 믿습니다. 요한이 제시하는 '이 책'(30절)은 요한복음서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신앙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도 책 곧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이 예수님을 처음 믿게 하는 '전도'냐 계속 잘 믿게 하는 '양육'이냐 하는 논쟁이 있지만, 두 가지 목적이 다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바르게 믿을 뿐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해 갑니다.
*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무엇인가요? 복음 전도와 개인의 믿음 성장에 성경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오늘의 기도
주님이 거듭하신 예고에도, 다른 제자들의 분명한 증언에도 의심을 품었던 도마의 뒤늦은 믿음을 기꺼이 받아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봅니다. 생명을 얻게 하는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순전히 믿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입술로, 마음으로, 삶으로 고백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부활의 주님이 선물하신 평강의 은혜, 성령의 능력

[요한복음 20장 11절~23절]
11절 -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12절 -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13절 -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14절 -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15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16절 -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17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18절 -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절 -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절 -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절 -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절 -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3절 -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무덤 밖에서 울던 막달라 마리아가 두 천사와 예수님을 만납니다.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가서 주님을 본 일과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이릅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 제자들이 모인 곳에 예수님이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으라." 하십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현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추론이나 논리의 귀결로 믿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현현하셔서 부활의 몸을 직접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도 그 분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는 예수님 목소리를 듣고서야 믿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을 들었을 뿐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 보여 주신 손과 옆구리를 봄으로써 믿게 되었습니다. 부활을 목도한 이의 증언은 또 다른 사람을 믿음으로 이끕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파송하십니다. 이를 위해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으라." 하십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의 사명은 예수님의 부활과 그분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현현하셔서 주신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언제, 어떻게 확실히 믿게 되었나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예수님을 사랑한 빈 무덤의 증인들

[요한복음 20장 1절~10절]
1절 -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2절 -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3절 -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4절 -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5절 -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6절 -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7절 -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8절 -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9절 -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10절 - 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안식 후 첫날 일찍이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베드로 및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달려가 사람들이 주님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 합니다. 두 제자가 달려가서 무덤에 들어가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이 세마포와 따로 놓인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1. 빈 무덤을 발견한 막달라 마리아 (1~2절)
다 알고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따르면 믿게 되는 것이 신앙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을 예고해 주셨지만, 제자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빈 무덤의 첫 번째 발견자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님의 부활을 예상하고 무덤에 찾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빈 무덤을 보자 누가 시체를 훔쳐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빈 무덤의 첫 번째 증언자로서 영예를 얻는 것은 온당합니다. 비록 부활을 믿지는 못했어도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안식 후 첫날 일찍이 무덤에 찾아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행동으로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됩니다(20:14~17). 비록 주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주님을 사랑해서 따라가면 결국 그분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 주님의 무덤에 간 막달라 마리아의 행동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다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으로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세요.

2. 빈 무덤을 확인한 두 제자 (3~10절)
무덤의 증인과 부활의 증인은 다릅니다. 예수님의 핵심 제자 베드로와 애제자(요한)도 빈 무덤을 직접 보았지만 부활과 연결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들도 누가 시체를 훔쳐 갔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체를 쌌던 천과 수건이 남아 있으니 의아해했을 것입니다. 당시 그들은 빈 무덤의 증인이기는 했지만 아직 부활의 증인은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빈 무덤을 보고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지 않고 자기들 집으로 돌아갑니다. 다만 그들도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사랑해서 끝까지 따라갔기에 나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증인이 됩니다. 부활은 이성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을 목도한 증인들의 증언을 성령이 믿게 하심으로 믿게 됩니다.
* 예수님 시체를 쌌던 세마포와 수건을 본 두 제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성적으로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사망 권세의 돌을 옮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빈 무덤을 보고도 주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처럼, 절망적인 현실로 인해 눈이 가려져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도우소서. 다시 사신 주님을 향해 사랑으로 달음질해 기쁨과 승리를 맛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왕의 장례로 엄수된 예수님 장례

[요한복음 19장 38절~42절]
38절 -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39절 -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40절 -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41절 -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42절 -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유대인의 준비일에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갑니다.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100리트라쯤 가져옵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싸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있는 동산 안의 새 무덤에 둡니다.

1.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38~39절)
참제자의 증거는 위험과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데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처음엔 부족했지만 훗날 온전한 제자가 된 이들도 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의 눈이 무서워 제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행동은 부족한 제자의 모습입니다(12:42~43).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 지내는 행위가 유대인들의 공분을 살 수 있었음에도 빌라도에게 그 주검을 달라고 요청해 자신이 제자임을 드러냈습니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장례하는 데 요셉과 힘을 합쳐 제자가 되었음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도 부족한 제자지만 점점 변화되어 온전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요셉과 니고데모가 온전한 제자로 변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내가 부족한 제자임을 느낄 때는 언제며, 그럴 때 어떤 기도를 드리나요?

2. 예수님을 장사 지냄 (40~42절)
십자가로 인류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장례는 특별하게 치러집니다. 로마 정치범으로 처형당한 것이기에 가족도 시체를 찾으러 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장사 지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메시아 왕의 즉위식으로 묘사되었듯, 장례식도 왕의 장례식으로 묘사됩니다.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품의 양은 일반인의 장례식에서 쓰는 양을 훨씬 넘어서는 왕의 장례식 수준이고(39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무덤에 예수님이 장사되신 것도 일반인의 장례를 뛰어넘는 것입니다(41절). 이러한 장례는 메시아 왕으로 등극해서 온 인류를 위해 대속적 죽음을 담당하신 예수님께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 향품의 양과 새 무덤을 미루어 볼 때 예수님의 장례는 어떠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대속적 죽음을 담당하신 예수님께 나는 어떻게 헌신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경험해야만 진정한 믿음으로 용기 있게 헌신할 수 있음을 봅니다. 마음에만 머물러 있던 주님을 향한 제 사랑에 십자가 은혜를 쏟아부어 주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왕이신 주님을 당당하게 인정하고, 진실하게 섬기는 제자로 드러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사명의 성취, 성경의 성취

[요한복음 19장 28절~37절]
28절 -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절 -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절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31절 -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절 -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절 -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절 -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절 -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절 -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절 -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모든 일이 이루어진 줄 아신 예수님은 성경을 응하게 하시려 "내가 목마르다." 하십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 하신 후 영혼이 떠나가십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치워 달라 하자 군인들이 그 죽으신 것을 보고 옆구리를 찌르니 피와 물이 나옵니다. 이 일은 성경을 응하게 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죽음 (28~30절)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죽음은 역사적 실재입니다. 예수님은 고통을 경감하는 진정제를 탄 포도주가 아니라 생명을 연장해 고통을 더하는 신 포도주를 마시셨습니다. 죽음을 제외하고 자신을 통한 하나님 뜻이 완수되었기에 "다 이루었다."(신적 수동태, "다 이루어졌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죽음에 입박해서 예수님이 하신 세세한 행동은 성경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십자가 죽음을 주도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외형적으로는 로마 군인에게 죽임당하신 것이지만, 심층적으로는 인류 구원을 위해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내어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 뜻을 완수하신 것으로 요약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뜻에 따라 자신의 영혼을 주도적으로 내어 주신 것은 바로 우리를 위함입니다.
* 예수님이 주도적으로 죽음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삶이 하나님 뜻을 완수하는 것으로 요약된다면, 내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2. 성경 예언의 성취 (31~37절)
세상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통해 그분의 뜻을 성취하십니다. 예수님 옆에 있던 두 사람은 로마 군인에게 강제로 다리를 꺾여 죽임당했지만, 예수님은 다리가 꺾이지 않으셨습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자발적으로, 주도적으로 죽음을 선택하셨고 자기 영혼을 이미 하나님께 내어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군인의 창에 옆구리를 찔려 물과 피가 섞여 나와 죽음이 확인되었을 뿐입니다. 이 일도 유대인들이나 로마 군인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 성취된 것입니다(출 12:46; 시 34:20).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아래서 일어납니다. 우리 삶도 예수님처럼 하나님 뜻과 성경 말씀을 성취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 십자가에서 예수님 영혼이 떠나신 후 성경대로 이루어진 일은 무엇인가요? 성경 말씀이 내 삶을 통해 성취되도록 온전히 순종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참혹한 십자가로 사명을 다 이루신 예수님! 고통과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 말씀을 완전하게 이루신 예수님 앞에서 제 존재 목적을 확인하고 저를 바로 세웁니다.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에 감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뜻을 선명히 이루는 삶으로 화답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장 28절~37절]

28절 -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절 -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절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31절 -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절 -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절 -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절 -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절 -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36절 -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7절 -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배경 이해하기]
요한복음 19장은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마침내 죽음에 이르시게 되는 고난의 사건을 보도합니다. 그 과정에서 진리를 외면한 빌라도와 예수님의 대적들, 그리고 조직에 순응해 잔인하게 형을 집행한 로마 군병들, 남겨진 예수님의 어머니,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가 버린 제자들과 끝까지 남은 제자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소개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함을 알았지만 무죄 선고와 방면은 황제에게 불충한 것이라는 유대 지도자들의 비난과 민란의 위협에 굴복해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언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 명패에 히브리어와 당시 공용어인 로마어와 헬라어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적어 넣음으로 예수님이 모든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왕으로 오신 분임을 만방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순간에도 남겨질 육신의 어머니를 생각해 제자에게 부탁하시면서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보이시지만, 동시에 사명을 다 이루셨음을 공적으로 선포해 인류 구속의 사명을 완수하십니다. 예수님의 고난 당하심, 못 박히심, 죽으심, 창에 찔리심, 병사들이 제비뽑기까지 그분의 죽으심과 관련한 모든 일은 구약 예언의 성취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신 것이 아니라 자발적 의지로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인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으셨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합니다.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의 가상칠언(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말씀) 중 본문에 나타난 말씀은 무엇이며, 그분의 어떤 면을 드러내나요?(28~30절)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분의 완전한 인성(人性)과 완전한 신성(神聖)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가상칠언(架上七言)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19:26~27),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막 15:34), “내가 목마르다”(28절), “다 이루었다”(30절),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 46). 이 중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는 요한복음에만 등장합니다.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이 실제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신체적 갈증이 극에 달하셨고, 고문과 못 박힘으로 과다하게 출혈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동시에 인류 구원의 영적 목표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고통을 경감시키는 마취제인 몰약 탄 포도주는 거부하셨지만(막 15:23), 목마름을 면하게 하는 우슬초에 매단 해면의 신 포도주는 받으셨습니다(29~30절). 이로써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시 69:21)라는 예언을 온전히 성취하십니다. 이후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시는데, 이는 연약한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대속하시는 죽음임을 공적으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영혼이 떠나가시니라”(gave up his spirit, NIV)에 쓰인 헬라어 ‘파레도켄’은 ‘내놓다’, ‘포기하다’라는 뜻으로, 스스로 생명을 내놓고 죽음을 선택하셨음을 강조합니다.
적용과 나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때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나누어 보세요.

각 사람에게는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이룬 자는 예수님처럼 인생 마지막 순간에 담대히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현장은 죄수로서 못 박혀 피 흘리며 죽는 자리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성공 기준이 세상과 달랐음을 보여 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분을 실패한 혁명가로 여기고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막 15:31)라며 손가락질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감당하는 일이 얼마나 엄중한지 아셨기에 온갖 수모를 당하시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분은 비록 패배한 것 같아 보였지만, 우주 만물을 죽음의 권세에서 생명의 나라로 성공적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승리했음을 온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 이루었다”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으려면 매일 자신을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2. 유대인들은 왜 예수님의 시신을 치워 달라고 요청했나요?(31절) 로마 병사들은 왜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았나요?(32~37절)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시신을 골고다산 위에 방치해 둘 수 없어서 서둘러 치워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다른 죄수들은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기에 다리를 꺾어 호흡 곤란과 출혈로 사망하게 했지만, 예수님은 이미 돌아가셨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성경의 예언대로 된 일입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예수님은 모든 인류가 죄로 말미암아 겪어야 했던 고통을 한 몸에 감당하시다가 운명하셨습니다. 다음 날은 유월절과 안식일이 겹친 날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시신을 신속히 치워 줄 것을 요구했고, 이에 로마 당국은 본래 죄인이 오래도록 고통 당하다가 짐승의 밥이 되도록 버려두는 관습과 달리 서둘러 십자가형을 종료하려 합니다. 로마 병정들은 다른 죄수들의 다리를 꺾어 호흡 곤란과 과다 출혈로 신속히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예수님은 이미 스스로의 의지로 일찍 생명을 버리신 상태였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대신 병사들은 스가랴의 예언대로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 죽음을 확인했습니다(슥 12:10). 그때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함께 쏟아졌습니다. 요한일서에서 요한은 ‘물과 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며(요일 5:6),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라고 기록합니다. 
적용과 나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내가 영원한 죽음을 면하게 되었음을 실감하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마르틴 루터는 “성경책을 짜 보라. 그 속에서 피가 나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을 짜면 짐승의 피가 나오고 신약을 짜면 예수님의 보혈이 나올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죄와 그것을 사함 받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제사들의 기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심지어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환난에서 구원 얻은 백성을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계 7:14) 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 어린양 예수의 피로 씻어 희어진 의의 옷을 입은 자들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라는 말은 죽음으로만 죄 사함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죄를 지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치러야 할 대가는 죽음뿐입니다. 그 진노의 불길을 자신의 죽음으로 막아서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분의 보혈이 우리 각 사람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으면, 죽음은 우리를 지나갈 것입니다.


*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체휼하신 완전한 인간이시며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완전한 구세주십니다. 그분은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대속의 죽음에 기꺼이 내어놓으셨습니다.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처럼,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버려 죽으심으로 승리하고 영생 얻는 본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은 패배로 보아도 하나님 보시기에 승리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 이루었다”라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매일 자신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아시고 십자가에 자기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천 년 전에 있었던 대속의 사건을 매일 제 삶에 되새기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과 사명을 이루어 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십자가 명패의 의미, 메시아 왕위 즉위식

[요한복음 19장 17절~27절]
17절 -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절 -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절 -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절 -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절 -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절 -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23절 -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절 -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절 -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절 -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절 -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십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빌라도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한 패를 십자가 위에 붙입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네 깃으로 나눠 가지고, 속옷을 제비 뽑아 가집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십니다.

1. 십자가 명패 (17~22절)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요한은 유대인들의 정치 공세에 밀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사건을 '메시아 왕위 즉위식'으로 그립니다. 빌라도는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붙입니다. 이는 죄 패가 아니라 일종의 즉위식 현판입니다. 그것도 3개 국어로 기록해 이 즉위식이 국제적 행사임을 보여 줍니다. 놀라운 것은 로마 총독 빌라도가 즉위식의 준비 위원장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사형수의 패를 죄 패로 쓰지 않고 즉위식 현판으로 쓴 것에 대해 유대인들이 반발하자 그는 자신이 마땅히 할 일을 한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세상 왕국의 종을 사용하셔서 메시아 왕위 등극식을 행하십니다.
* 빌라도가 예수님의 십자가 명패에서 '자칭'이라는 말을 뺀 것은 결국 어떤 의미가 있나요? 메시아 즉위식 관점으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2. 십자가와 교회 (23~27절)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은 곧 메시아 즉위식이었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인들은 전리품으로 죄수의 속옷을 취하는 일에만 몰두했을 뿐 이 사건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무지몽매한 이들의 행동까지도 하나님이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시 22:18). 반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현장까지 따라와 그분 곁을 지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애제자(요한)와 여인들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는 아직 알지 못했지만, 그들이 여기까지 따라온 것은 예수님에 대한 극진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애제자와 모친에게 서로를 새로운 가족으로 선언하시고, 그들은 하나의 가족이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 애제자와 예수님의 모친이 십자가까지 따라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사랑하는 예수님을 어디까지 따라갈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저 대신 고난과 수치 속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하루를 살게 하소서. 옷 한 조각 구하느라 십자가 은혜를 바라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시고, 지체들과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드높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조롱 속에 역설적으로 드러난 메시아 왕의 정체성

[요한복음 19장 1절~16절]
1절 -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2절 -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3절 -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
4절 -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5절 -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6절 -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7절 -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8절 -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9절 -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10절 -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12절 -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절 -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절 -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절 -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절 -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군인들은 그분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혀 조롱합니다. 빌라도가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 하자, 유대인들은 그가 자신을 하나님 아들이며 왕이라 하여 가이사를 반역하니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넘깁니다.

1. 조롱 속에 드러난 예수님의 정체성 (1~5절)
하나님은 세상 왕국의 종을 사용해 그분의 뜻을 드러내십니다. 빌라도는 세상 왕국인 로마 황제의 신하입니다. 겉보기에 그는 로마 황제의 신하로서 예수님을 심문하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 왕국을 선전하는 사람으로 쓰입니다. 그의 부하들은 예수님을 조롱할 의도로 왕이 입는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웠지만, 이로써 그분이 진정 왕이심을 보여 줍니다. 빌라도는 자색 옷을 입힌 예수님을 무리 앞에 세우고 "보라 이 사람이로다"(5절)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 사람이 유대인의 왕이라고?"라는 뉘앙스로 유대인들을 설득하려 한 말이지만, 저자 요한의 입장에서는 심층적으로 "참사람을 보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아 왕이시요 참사람이심은 만물이 고백하고 선포할 진리입니다.
* 빌라도와 군인들의 말은 결국 예수님이 어떤 분이심을 나타내나요? 예수님이 참사람이심이 내게 주는 의미와 교훈은 무엇인가요?

2.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줌 (6~16절)
생존을 위해 진리를 저버리는 선택은 어리석습니다. 무리 앞에서 예수님을 조롱거리로 만들어 석방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던 빌라도의 전략은 통하지 않습니다. 또 예수님을 위협하려 했던 그는 오히려 더 겁에 질리고 맙니다.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에서 고민하던 빌라도에게 가해진 결정적 한 방은 예수님을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친구)'이 아니라 반역자라는 말이었습니다. 빌라도는 결국 정치적으로 결정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줍니다. 빌라도는 신념을 따르지 못한 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도 가이사만이 왕이라 하며 메시아 왕을 버립니다. 빌라도도 대제사장들도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사탄 왕국의 신민이었습니다.
* 빌라도가 예수님을 넘겨주게 된 결정적 말은 무엇이었나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진리를 저버리는 결정을 하지 않으려면 어떤 삶의 기준을 가져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눈앞의 이익을 욕심내고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주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했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제 입장이나 생각과 다르다고 남들을 말로, 행동으로 무자비하게 대했던 완악함을 용서하소서. 아무 죄 없으신 주님이 묵묵히 가신 고난의 길에 저도 서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정치적 왕국이 아닌 진리 왕국의 왕

[요한복음 18장 28절~40절]
28절 -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절 -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30절 -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절 -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
32절 -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33절 -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절 -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절 -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절 -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39절 -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절 -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고 가 고발합니다. 심문하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자신은 왕이며 진리를 증언하러 세상에 왔다고 하십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려 하지만 유대인들은 강도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합니다.

1.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28~32절)
예수님의 죽음은 말씀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기소로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 서십니다. 유대인들은 사형를 언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결국 이 기소로 예수님은 십자가 처형을 당하십니다. 요한은 이것이 말씀의 성취라고 기록합니다(32절). 여기서 말씀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미리 주신 '예수님 말씀'입니다(12:32~33). 요한은 놀랍게도 구약성경의 하나님 말씀이 성취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예수님 말씀'의 성취를 기록합니다.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기에(10:30) 예수님 말씀의 성취는 하나님 말씀의 성취와 동일한 권위를 갖습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힘이나 유대인들의 간계로 죽임당하셨을지라도, 이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며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 예수님의 죽음은 정치적 희생인가요 말씀의 성취인가요? 내가 주님의 섭리로, 말씀의 성취로 받아들여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의 왕 (33~40절)
예수님은 세상 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왕이십니다. 빌라도의 질문을 볼 때 유대인들이 제기한 죄목은 '유대인의 왕'을 사칭한 것이었습니다.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로마에 대항하는 정치 지도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그러한 왕인지를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내 나라(왕국)'는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정치적 왕국이 아니라 진리의 왕국입니다. 진리에 속한 자만 그 왕국의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정치적 왕국의 왕을 꿈꾸는 사람이 아님을 곧바로 알아차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참된 진리의 왕국을 건설하러 오신 분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나라'는 어떤 나라를 가리키나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나라의 시민이 되는 조건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진리가 무엇인지 바로 알지 못하면 악에게 질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진리에 무관심한 세대 가운데 살면서 무뎌진 제 심령을 성령께서 깨우쳐 주소서. 날마다 밭에 감춰진 보화를 찾듯 진리의 음성을 세밀히 듣고 순종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신실히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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