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히 심문받으시는 공의의 심판주

[요한복음 18장 15절~27절]
15절 -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절 -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절 -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절 -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19절 -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절 -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절 -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절 -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25절 -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절 -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절 -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그분의 제자들과 교훈에 대해 심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드러내 놓고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으니 들은 자들에게 물으라 하십니다. 대제사장의 집 뜰에서 불을 쬐던 베드로가 사람들의 질문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자 곧 닭이 웁니다.

● 심문받으시는 예수님, 부인하는 베드로
만유의 심판주이신 예수님이 세상 심판대 앞에 서십니다. 사람들 눈에는 예수님이 심문당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당당히 그분의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안나스는 밤에 공회를 열어 불법 심문을 진행합니다. 당대의 공식 대제사장이 아닌 그가 심문하는 것 자체도 불법입니다. 그럼에도 안나스는 마치 자신이 최종 심판자인 것처럼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그의 질문에 예수님은 답을 주지 않으시고, 자신을 손으로 치며 윽박지르는 대제사장의 종을 책망하십니다. 그즈음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공언한 베드로는(마 26:35) 비겁하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예수님은 심문당하실 때 어떤 제자의 도움도 없이 홀로 이 세상 최종 심판자로서의 면모를 당당하게 보여 주십니다. 세상의 권력자가 최종 심판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최종 심판자십니다.

* 안나스의 심문 과정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한 최종 심판자는 누구인가요? 내가 심판자가 되지 않고 최종 심판자 되신 주님께 맡길 일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자발적으로 기꺼이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

[요한복음 18장 1절~14절]
1절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2절 -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3절 -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4절 -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5절 -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6절 -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7절 -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그들이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8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절 -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절 -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절 -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12절 -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절 -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절 -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예수님이 제자들과 기드론 시내 건너편에 가시니 유다가 군대와 사람들을 데리고 옵니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고의 귀를 벤 베드로에게 칼을 꽂으라 하시며 아버지께 주신 잔을 마시겠다 하시니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나스에게 끌고 갑니다.

1. 체포되시는 예수님 (1~11절)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자발적으로, 당당히 걸어가십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신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꺼이 감당하기로 하셔서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4절). 그분은 체포하러 온 자들 앞에서 스스로 정체를 밝히시며, 제자들이 체포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8~9절).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벤 베드로에게 자신은 기꺼이 죽음의 잔을 마시겠다고 하셨습니다(10~11절). 예수님은 신성을 지닌 전지전능한 하나님 아들이시지만 대속 제물이 되는 죽음의 길을 가시기 위해 자발적으로 체포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십자가 사명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기꺼이 감당하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 체포되시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이셨나요?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 위해 내가 기꺼이 감당하는 편을 선택할 일은 무엇인가요?

2. 안나스에게로 끌려가신 예수님 (12~14절)
예수님은 인류 대속을 위한 어린양이십니다. 예수님을 끌고 가 먼저 심문한 사람은 그해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였습니다. 예수님 심문의 주체인 산헤드린 공회 의장은 가야바지만, 이미 대제사장을 지냈고 실세였던 안나스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것은 당시 힘의 역학 관계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가야바는 민족을 살리기 위한 희생양 이론을 펼친 사람입니다(11:47~52). 그러므로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가 심문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 희생양이 될 것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세속적으로는 로마 총독과 유대 권력자들 간의 정치적 계산에 '희생'된 것이지만, 하나님 관점으로는 속죄양으로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희생의 길은 우리를 구원한 유일한 대속의 길입니다.
* 예수님이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 심문받으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나의 작은 희생으로 사람들에게 큰 유익을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십자가 고난을 모두 아시면서도 초연히 하나님 뜻을 쫓으신 예수님의 길을 따르게 하소서. 세상의 방법으로 대응하지 않고 끝까지 사람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새기게 하소서. 무엇보다 아주 깊숙이 찾아온 두려움을 기도로 이겨 내신 예수님의 무릎을 닮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 됨의 온전한 모델,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 됨

[요한복음 17장 20절~26절]
20절 -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절 -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절 -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절 -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절 -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절 -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절 -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사람들뿐 아니라 그들의 말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십니다. 또한 그들도 하나 되어 자신과 아버지 안에 있기를 기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자신의 영광을 그들이 보기를 원하시고, 그들 안에 아버지의 사랑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1. 제자들의 하나 됨 (20~23절)
성도들의 하나 됨은 세상에 주님을 보여 주는 방편입니다. 예수님은 택하신 첫 제자들과 그들의 전도로 제자 된 이들이 하나 되기를 간구하십니다. 하나 됨은 사이좋게 지내거나 성만찬을 같이 하거나 지도자를 중심으로 위계질서가 확립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 됨의 진정한 모델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의 하나 됨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상호 내주하며 깊은 신뢰로 알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받아들임으로 인격이 점유되어 온전히 하나가 됩니다. 이 모델에 따라 제자들도 서로를 받아들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 됨을 통해 참사랑과 기쁨을 경험하고, 세상에 주님 사랑을 전하고 믿게 하는 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 제자들이 본받아야 할 하나 됨의 모델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인들의 하나 됨이 복음 전도에 유익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예수님의 사역 요약 (24~26절)
예수님의 사역 중심에는 사랑의 관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이 있는 곳에 함께 있도록, 그들이 자신의 영광을 보도록 기도하십니다. '나 있는 곳'(24절)이 장소라면 하나님이 계신 처소가 될 것이고, 조건이라면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저자 요한의 성향으로 볼 때 후자가 유력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예수님이 창조자라는 것을 완전히 알고 경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하나님 이름(인격)을 나타내는 것이고, 하나님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자신도 그들 안에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 사역의 초점이 제자들과 서로 내주하는 사랑의 완성에 있었듯, 오늘 우리 사역도 그러해야 합니다.
* 공생애 기간 예수님의 사역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예수님의 사역 목적과 나의 사역 목적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어떻게 개선해 가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주님이 그토록 원하셨건만 여전히 하나 되지 못한 저와 지체들, 교회의 모습을 용서하소서. 이기심과 자존심을 앞세운 모습을 철저히 버리고 주님 말씀에 집중해 하나 됨을 이루게 하소서. 사랑으로 연합해 믿음의 진정성과 주님의 제자 됨을 세상에 증명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제자를 견실하게 세우는 사랑의 간구

[요한복음 17장 6절~19절]
6절 -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절 -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절 -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절 -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절 -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절 -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절 -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절 -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절 -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절 -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절 -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절 -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절 -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절 -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들이 아버지 말씀을 받고 지키며,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보전하셔서 그들이 아버지와 자신처럼 하나되게 하시고, 악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아버지 말씀인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1.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역 (6~8절)
예수님의 사역은 한마디로 '말씀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주셨고, 하나님 이름에 걸맞은 성품을 말씀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 사역을 거부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분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믿었습니다. 나아가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하나님 말씀을 지켰습니다. 비록 부활하시기 전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고 제자로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배신자 가룟 유다가 있었지만, 예수님의 제자 사역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 예수님의 제자 삼는 사역은 어떤 면에서 성공적이었나요?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이 이해되지 않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2.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간구 (9~19절)
예수님의 제자 사랑은 그분의 기도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십니다. 첫째, 제자들의 보존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지금까지 그들을 보호해 오셨는데, 자신이 떠난 후 그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둘째, 제자들의 거룩함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성결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선결 요건입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제자들도 사명 완수를 위해 진리로 거룩해져야 합니다. 셋째, 제자들의 기쁨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여기서 기쁨은 모든 일이 잘 풀려서 얻는 기쁨이 아닌 하나님 뜻을 행하면서 얻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스승이 제자를 세우는 사랑의 기도입니다. 제자 된 우리 삶에서도 그 사랑의 기도가 그대로 나타나야 합니다.
* 예수님은 왜 세상을 위해 기도하시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나요? 예수님의 기도가 내 삶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간절한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던 주님의 마음이 제게 큰 위로가 됩니다. 주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저와 공동체 안에 주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소서. 말씀으로 거룩해지고 한마음으로 주님의 기도에 동참하는 교회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

[요한복음 17장 6절~19절]

6절 -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절 -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절 -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절 -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절 -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절 -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절 -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절 -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절 -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절 -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절 -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절 -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절 -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절 -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배경 이해하기]
요한복음 13~17장은 다락방 강화로, 예수님이 공생애 마지막 유월절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서로 섬기도록 교훈하셨습니다. 요한은 죽음으로 향하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고뇌가 담긴 겟세마네 기도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의 영광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16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 부활, 승천 후에 남겨질 제자들이 험난한 앞날을 맞게 되겠지만, 그들에게 천국과 영생이 예비되어 있음을 약속하시며 위로하십니다. 이후 17장에서 예수님은, 마치 온 이스라엘의 죄와 연약함을 대신 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구약의 대제사장처럼 온 교회와 제자들을 위해 중보하십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은 후 부활, 승천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인류 구원의 대사명’을 이룰 때 우주 만물은 주권자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것이고, 자신도 온 피조 세계의 구속자로서 큰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기도하십니다. 이어 6절 이하에서는 대제사장으로서 제자들을 위해, 나아가 신약의 온 교회를 위해 중보하십니다.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은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드리셨나요?(6~13절) 제자들이 보전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11절)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을 제자들에게 잘 전했으니 이제 그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그들 중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보전되고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니다. 제자들이 보전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 됨’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교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도 그들이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 살아가야만 그들을 통해 건강한 교회가 세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드리신 기도는 그들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그들을 통해 세워질 신약 교회 전체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포함한 성도 모두가 그 기도의 수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냈다고 확증하십니다. 구약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정확히 안다는 것은 그 존재의 모든 특징과 능력을 전인격적으로 체험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이 한마음으로 연합해 세상의 모든 죄악과 유혹과 싸울 수 있도록 간구하셨습니다. 우리를 분열하게 하는 요소는 불평, 인색, 비판, 시기, 쑥덕거림, 대적, 회피, 무관심, 무시, 고립과 같은 요소들인데(엡 2:11~22),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의 다름을 뒤로하고 복음 안에 하나 됨으로써 세상의 악과 더불어 싸워 승리할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그들 중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보전될 수 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향해 나아가시면서도 자신이 가진 기쁨이 제자들 안에도 충만히 차고 넘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적용과 나눔
우리에게 허락된 다양성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하나가 되어야 하나요?

하나님은 우리를 각양각색으로 창조하셨기에 주님의 몸 된 교회도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답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같이 사랑하라는 복음의 핵심 명령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래서 분열, 불일치, 불화로 찢겨 신음한다면 복음은 더 이상 전파될 수 없습니다. 다투고 싸우는 교회를 통해 세상이 복음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 된 교회의 아름다운 모델은 바로 삼위 하나님의 일치된 모습입니다. 이는 획일화된 통합이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가치를 간직하면서 한마음으로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믿는 자들은 핵심 가치를 공유하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 됨의 모델도, 하나 됨의 기준도 하나님입니다. 사도 바울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시고, 우리가 그 모퉁잇돌을 기준으로 좌우로 연결되고 적재적소에 배치되면 하나의 성전으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연합은 죄로 인해 분열되었던 각 사람의 내면의 자아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 형제자매가 하나 되고, 궁극적으로 주님과 모든 성도가 더 큰 유기체로 연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은 마침내 우리가 죄 된 본성과 싸워 승리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을 무엇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도록, 또 그들이 어떻게 변화되도록 기도하셨나요?(15, 17절)
예수님은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 주시도록, 진리로 거룩하게 하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시지만, 남은 제자들은 이 땅에서 완수할 사명이 있습니다. 서로 연합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 땅 곳곳에 든든하게 세우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16절) 자들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그들을 거룩하게 해 달라고, 세상과 구별시켜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18절)라는 이중 문장 구조는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10:14~15), 혹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15:9)에 사용된 용법과 같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동일하게 그러하심을 표현함으로써 그분의 신적 기원을 나타내며, 그만큼 중요함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시는 선교 위임 사명이 그만큼 중차대함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그분을 믿은 제자들과 온 인류가 구원 얻도록 스스로를 제물로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도를 드리십니다(19절). 
적용과 나눔
어렵고 힘든 순간에 세상을 피해 숨고 싶은 유혹을 느낀 적은 없나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내게 어떤 도전을 주나요?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삶의 어려운 도전들이 피해 가지 않습니다.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부터 듣는 간증과 달리 모든 환우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의 기업도 부도를 맞기도 하고, 성도의 억울한 사연이 당장 이 땅에서 신원받지 못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지, 도대체 하나님은 내 형편과 상황에 관심이 있기나 하신지, 나의 부르짖음을 듣고는 계신지, 영혼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도 모르는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고 싶어집니다. 많은 청년이 세상을 피해 일주일 내내 교회 안에만 머무는 캥거루족이 되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제자가 사탄과 악한 영들의 공격을 피해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 숨어 지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명령하시며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를 세상 가운데로 보내십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뱀처럼 지혜로운 마음, 비둘기처럼 순결한 마음입니다.


*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제자들을 위해 대제사장적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들이 분열하지 않고 하나가 되며, 한 명도 멸망당하지 않고 모두 기쁨이 충만하도록 간구하셨습니다. 또한 악에 빠지지 않고 진리로 거룩하게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간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는 세대를 넘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에게도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이때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하십시오. 도전과 시련을 회피하는 자가 되지 말고 도리어 마귀를 대적하고 승리하는 자가 되도록 힘쓰십시오.  


[말씀으로 기도하기]
예수님이 기도하신 대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악에 빠지지 않고 하나 됨을 힘써 지키며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소서. 그래서 마지막 날까지 기쁘게 사명을 감당하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순종으로 지는 십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

[요한복음 17장 1절~5절]
1절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절 -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절 -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절 -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절 -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아버지께 아들을 영화롭게 하셔서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아버지는 그분이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십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1. 십자가와 영광 (1~3절)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광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광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는 수치고 부활은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뿐 아니라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도 영광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광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은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모든 사람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고별 설교(13:31~17:26)를 마무리하시면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자신이 기꺼이 십자가를 짐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이 일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영광이 됩니다. 자기를 희생해 하나님 뜻을 이루는 영광의 삶을 사신 예수님을 본받는 것, 이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 예수님은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하셨나요? 내가 희생을 감수하고도 이룰 하나님 뜻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 순종과 영광 (4~5절)
예수님의 공생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광의 삶이셨습니다. 영광의 삶은 꽃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님은 많은 표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자(使者)임을 보이셨습니다. 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섬긴다는 유대인들의 행위가 위선임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심으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의 삶은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교제하심을 통해 누리신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완전한 신뢰 관계에서 행하신 창조 사역에 나타납니다. 제자는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그 영광의 삶을 따라갑니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이루신 사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나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에 하나님이 행하라고 맡기신 사명에 순종하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 예수님을 본받기 원합니다. 매일매일을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걸음으로 채우게 하소서. 주님을 온전히 앎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그 생명을 나누어 주님 뜻을 이루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부족함을 끝까지 품으시는 사랑의 주님

[요한복음 16장 25절~33절]
25절 -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절 -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절 -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절 -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절 -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30절 -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31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절 -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절 -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겠다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오셨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가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세상을 이기었으니 환난을 당해도 담대하라 하십니다.

1. 제자들의 피상적 이해 (25~30절)
인간의 이성으로는 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하고 또 '조금 있으면' 보리라는 예수님 말씀은 수수께끼 같은 것이었습니다(16:16). 이에 예수님은 '때가 이르면' 비유가 아니라 '밝히' 이르겠다 하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28절). 이에 제자들은 이제 모든 것을 알고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후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바로 깨달았다고 보기 힘듭니다. 말씀을 피상적으로 이해해 놓고 다 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듣는 바른 자세는 자신의 불완전한 이해를 인정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어느 정도나 이해했을까요?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다 안다고 착각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2. 부족함을 받아 주시는 예수님 사랑 (31~33절)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을 고백하지만 그들 중심을 아시는 예수님은 부드럽게 반응하십니다. "너희가 믿는다고?" 예수님은 그분을 따르겠다는 제자들의 의지는 인정하시지만, 그들이 여전히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지 못함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32절)라고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쁜 제자들이야."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때 지나치게 자책하지 말고 다시 내게 와서 평안을 누려라."라 하십니다. 제자들의 연약함을 지적하시면서도 그들이 돌아올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실수해도 걱정하지 말고 돌아와 다시 평안을 누리라는 말씀은 세상 끝 날까지 기억할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다던 제자들은 이후 어떻게 행동하나요? 평안을 약속하시고 끝까지 기회를 주시는 주님 사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제 연약함으로 인해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잠시 무너질 때도 평안으로 저를 다시 부르시는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요. 넘어지기 쉬운 저를 결코 혼자 버려두지 않으시는 주님! 감당하기 어려운 환난에도 세상을 이미 이기신 주님이 함께하시니 담대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근심이 '충만한 기쁨'으로 반전될 그날

[요한복음 16장 16절~24절]
16절 -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17절 -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18절 -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19절 -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절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절 -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22절 -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23절 -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절 -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제자들은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리라는 말씀을 알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지금은 근심하나 다시 예수님을 뵐 때 그들의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으나, 구하면 받고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예고 (16~22절)
성도에게는 현재 고난이 아닌 미래 영광을 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제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로 죽음과 부활 사건을 설명하시지만, 제자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 일이 닥쳤을 때 제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그분 사랑으로 인해 그날 일을 예고하십니다. 세상이 예수님의 죽음을 기뻐할 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로 인해 슬픔이 놀라운 기쁨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기록된 말씀을 통해 '근심하지 말라' 권고하십니다. 고난을 잊어버릴 큰 기쁨과 영광의 날이 곧 오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이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왜 미리 말씀하셨을까요? 말씀을 통해 '근심하지 말라' 하시는 주님 음성에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요?

2. 기도의 특권과 응답의 기쁨 (23~24절)
예수님은 '지금'과 '그날'을 구분하십니다. '그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시는 때를 가리킵니다. '지금'은 근심의 때지만(22절) '그날'은 기쁨의 때라 하십니다. 그 이유는 첫째, '지금'과 달리 '그날'에는 예수님 말씀이 다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그날'에는 성령님이 오셔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명쾌하게 해석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이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더는 묻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그날'에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할 특권이 주어지고 기도 응답 받을 것이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제자들의 근심은 충만한 기쁨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무엇이든 예수님 이름으로 구하고 받는 특권을 누리고, 기도 응답을 통해 예수님 임재를 맛보는 기쁨을 경험합니다.
* '그날'이 되면 왜 제자들이 예수님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질문할 필요가 없나요? 나는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충만한 임재와 기쁨을 얼마나 누리나요?

오늘의 기도
일상을 짓누르는 염려와 근심으로 기쁨과 소망을 잃어버리는 제 모습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약속을 붙들고 간구하게 하소서. 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애통을 기쁨으로 바꾸실 주님의 시간을 잠잠히 바라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말씀과 삶의 올바른 해석자, 보혜사 성령님

[요한복음 16장 1절~15절]
1절 -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2절 -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3절 -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절 -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5절 -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절 -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절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절 -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절 -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절 -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절 -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절 -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절 -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절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절 -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출교하고 죽이는 이들이 그 일을 하나님 섬기는 일로 생각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시면 오시는 보혜사는 죄, 의,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진리 가운데로 제자들을 인도하시며, 예수님의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시고,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 제자들의 근심과 성령 파송 약속
우리에게는 삶의 정황을 바르게 깨우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후에 유대인들은 제자들을 박해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벌받은 자의 제자라는 유대인들의 판단과 조롱으로 괴로워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미리 교훈을 주십니다. "유대인들의 생각이 틀리다. 그들은 나와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내가 떠나면 보혜사 성령님이 너희에게 오셔서 무엇이 죄고, 무엇이 의며, 누가 심판받을 자인지 해석해 주실 것이다. 또 그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각 상황에 맞게 바른 행동을 하도록 너희를 이끌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박해 상황에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삶에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올바로 해석해 주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결코 실족하지 않습니다.

*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가는 것이 왜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하셨나요?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사건과 상황을 해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세상에서 박해받는 것은 참제자의 증표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8절~27절]
18절 -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절 -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절 -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21절 -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22절 -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3절 -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24절 -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25절 - 그러나 이는 그들의 율법에 기록된 바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26절 -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절 -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예수님을 미워한 세상은 그분께 택함받은 우리도 미워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아무도 못한 일을 하셨기에 그들은 죄를 핑계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로부터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을 증언하실 것이고 제자들도 증언해야 합니다.

1.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이유 (18~25절)
예수님의 제자가 세상에서 박해받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과 반대편인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하듯 예수님과 연대해 그분과 한편인 제자들도 미워하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세상 편이 될 것인지 예수님 편이 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 곧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심판을 면하지 못함은, 예수님 자신이 누구인지 그들에게 이미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러했듯 까닭 없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이들은 결국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기 때문에 미움과 박해를 받을 때 우리가 예수님께 속한 제자임이 증명됩니다.
* 세상에서 미움과 박해를 받을 때 예수님 제자들이 기억할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요?

2. 예수님의 증인 (26~27절)
예수님이 떠나신 후 그분이 옳다는 것을 세상에 증언할 이들이 있습니다. 첫째,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기에 진실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모든 진리를 알고 계신 성령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곧 예수님임을 증언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 예수님과 처음부터 함께하면서 예수님의 표적을 목도하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증언자 자격이 충분합니다. 다만 그들이 증인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표적과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는 성령님의 도움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제자로 부름받은 우리 역시 예수님의 표적 사역과 말씀 사역에 대한 증인의 사명을 성령님과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 보혜사 성령님이 예수님을 증언하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나요?

오늘의 기도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저를 건져 주님 나라로 옮겨 주신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요! 핍박에 대한 두려움을 구원의 감격과 굳건한 믿음으로 이기기 원합니다. 타협과 적당주의를 버리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권능에 힘입어 "오직 예수!"를 힘 있게 선포하는 증인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