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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창조역사의 시작과 그대략 1:1,2
1. 창조역사의 대략(1)
우리는 여기서 사도신경의 첫조항, 곧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대하게 된다.
(1) 이구절에서 다음 네가지 점을 살펴보게 된다.
1) 창조로부터 나타난 결과 : 그것은 우주의 전구조와 내용물이다. 세계는 위층과 아래층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집으로서 당당하고 장중하며 균일하고 편리한 그리고 각방마다 지혜롭게 잘꾸며진 구조물이다. 하늘은 그밖을 장식하고 있는 영광스런 광명들로 우리 눈에 아름답게 비칠뿐만 아니라 그안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않는 영광스러운 존재들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속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쉽게 관찰할수 있다.
첫째, 무한한 다양성을 볼수 있다. 세상에는 특성과 구조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둘째, 무한한 아름다움을 볼수 있다. 푸른하늘과 녹음이 짙은 대지는 호기심많은 관찰자의 눈에는 그지없이 매력적이다. 그럴진대 창조주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탁월하겠는가!
셋째, 무한한 정확성가 정밀성을 볼수 있다. 자연의 작품들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그것이 다른 어떤 예술작품들보다도 더훌륭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넷째, 무한한 능력을 볼수 있다. 우주는 활동하지 않는 죽은 물질덩어리가 아니다. 지구자체에는 인력이 있다.
다섯째, 무한한 질서를 볼수 있다. 존재들의 상호 의존, 정확한 조화를 이루는 운동들, 그리고 원인들의 놀랄만한 연관성 등이 그것이다.
여섯째, 무한한 신비를 볼수 있다. 자연에는 해명할수 없는 현상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과 땅에서 보는 것으로부터 위대한 창조주의 신성과 능력을 미루어 살필수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언제나 눈으로는 하늘을 바라보고 발로는 땅을 딛고있어야 하는 것이다.
2) 위대한 역사의 원인과 창시자 : 그는 곧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은 '엘로힘'(Elohim)이라고 하는데, 그말은 다음 두가지 의미를 나타낸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능력을 나타낸다. '엘'(El)이란 '강하신 하나님'을 뜻한다. 전능한 힘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모든 것을 아무것도 없는데서 발생케 할수 있겠는가?
둘째, 하나님안에 있는 위격(Persons)이 복수임을 나타낸다. 즉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계심을 나타낸다. 한분이신 하나님을 여러분으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어의 이같은 복수적인 명칭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믿는 우리의 신앙을 모호하게 나타났지만 신약에서는 명백하게 제시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하여 '세상이 그로말미암아 지은바 되었고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것이 없다'라고 몇번이고 되풀이하여 말하고 있다(요 1:3;엡3:9;골1:16;히1:2).
3) 이역사가 성취된 방법 :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즉 아무것도 없는데서 하나님은 천지를 선재물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기술자도 재료없이는 일할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는 무에서 유가 만들어질수 있는 것이다(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은 자연의 법에 예속되지 않으신다). 또한 창조에 있어서 그외의 다른방법으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영원한 물질을 가정하는 것만큼 영원하신 지성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4) 이역사가 발생한때 : '태초에' 즉 시간의 태초이다. 그때 처음으로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시간에 의해 측정될수 있는 존재들의 생성과 함께 시간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시작되기전에는 영원부터 계신 무한하신 존재자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was)'는 말한마디면 충분하다(요1:1).
(2)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네가지 사실을 배우도록 하자.
첫째, 무신론이란 어리석은 이론이며 무신론자들이야말로 사실상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코 저절로 만들어질수 없는 세상이 있는 것은 알면서도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인정하려 들지않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권으로 만물을 주관하시는 만군의 주이시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를 자기의 하나님으로 삼고 그의 이름에 자기의 도움과 소망을 거는 자들은 복되다(시121:2,124:8).
넷째,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모든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느 9:5,6). 모든 것이 그의 것이라면 모든 것은 당연히 그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2. 창조역사의 시작(2)
여기에서 우리는 최초의 물질과 최초의 운동자에 대한 기사를 보게된다.
(1) 혼돈(a chaos)이 최초의 물질이었다. 그것을 여기서는 '땅'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또한 '깊음'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이유는 그것의 광대함과 처음에는 함께 뒤섞여있었지만 후에는 땅에는 분리된 물 때문이었다. 창조주께서는 단숨에 그의 모든 역사를 다 이루실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시지않은 것은 이러한 점진적인 진행을 통해서 대체로 그의 섭리와 은혜의 방법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이 혼돈에 대한 묘사를 살펴보자.
첫째, 그것이 '혼돈하고(흠정역에는 '형체가 없고'-역주) 공허하였기'때문에 그속에 볼만한 것이 전혀없었다. 즉 '혼란'과 '공허'만이 있었다(참조, 사 34:11). 하늘을 사모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아래세상은 윗세상과 비교해볼때 여전히 혼돈과 공허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설사 볼만한 어떤 것이 있었다고할지라도 그것을 볼수 있는 빛이 없었다. 왜냐하면 '흑암'이, 짙은 흑암이 '깊음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혼돈은 거듭나지않은 타락한 영혼의 상태를 묘사한다. 거기에는 무질서와 혼란과 온갖 악한 역사만 있을 뿐이다. 그영혼에는 하나님이 없기때문에 선이라고 부를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전능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복된 변화가 일어나기전까지 그영혼은 흑암에 쌓여있게 된다.
(2) 하나님의 신이 최초의 운동자였다. 그가 '수면위에 운행하셨다.' 하나님의 신이 일하기 시작하셨다. 그가 일하시면 누가 혹은 무엇이 그를 방해할수 있겠는가? 성경은 하나님이 그의 신으로 세상을 지으셨다고 말한다(시 33:6;욥26:13). 그러므로 바로 그위대한 일꾼에 의해서 새창조가 이루어지게 된다. 하나님의 신은 깊음위에 운행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창조자이실뿐만 아니라 생명의 원천이시며 운동의 원동력이시다. 그가 죽어있는 물질을 살리지 않으셨다면 그것은 영원히 죽은채로 있었을 것이다. 이사실은 우리로하여금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죽은 자를 부활시키리라는 사실을 믿을수 있게 만든다.
Ⅱ. 첫째날 1:3-5
우리는 여기서 첫째날 창조역사에 대한 기사를 보게된다. 이날의 역사를 다음 여섯가지로 살펴볼수 있다.
(1) 하나님께서 볼수 있도록 창조하신 모든 존재들중 제일 첫번째로 지으신 것은 빛이었다. 우리는 그빛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의 작품들과 그속에 나타난 그의 영광을 볼수 있고 낮동안에 우리의 일을 할수가 있다. 빛은 무한히 아름다운 것으로 우주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창조에서도 영혼속에서 발생하는 제일 첫번째 것은 '빛'인 것이다. 복되신 성령께서도 지각에 빛을 비추심으로써 의지와 감정을 사로잡으신다. 죄로 말미암아 어두움이었던 자들이 은혜로 말미암아 세상의 빛이 된다.
(2) 빛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만들어졌다. 곧 그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빛을 원하셔서 명령하시자 즉시 빛이 생겼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속하고 능력이 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시되 본질적으로 영원하신 말씀이시다. 그로말미암아 빛이 지어졌다. '그안에 빛이 있었고 그는 세상의 빛이시며 참빛이시기'(요1:9;9:5) 때문이다. 성화된 영혼속에 비취는 신적인 빛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데 그빛은 처음에 '하나님께서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도록 만든다(고후 4:6).
(3) 하나님께서는 원하신 빛이 생기자 그빛을 만족히 여기셨다. 그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4절). 빛이 좋다면 빛의 근원이 되시는 분은 얼마나 좋으시겠는가! 우리는 바로 그분으로부터 빛을 받는 것이다.
(4)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다. 그는 빛과 어두움을 시간으로 나누어 빛을 낮으로 어두움을 밤으로 정하시고 서로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이어지도록 하셨다. 비록 어두움이 낮에는 빛때문에 사라져버릴지라도 그나름대로 쓸모가 있어서 빛과 더불어 자기 차례와 위치를 차지한다. 아침빛이 낮의 일을 돕듯이 저녁그늘은 밤의 휴식을 도우며 우리가 좀더 잠을 잘 잘수있도록 주위에 어둠의 커튼을 드리운다.
(5)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서로를 구별할수 있도록 각각 이름을 붙여주셨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5절).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의 주로서 그들에게 이름을 붙이셨다. 낮과 밤이 변함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매일 낮에는 그를 위하여 일하고 매일 밤에는 그안에서 휴식을 취함으로써 낮과 밤을 그의 영광을 위해 드리자.
(6) 이것이 첫째날의 역사이며 그것은 좋은 날의 역사였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5절). 이날은 세상의 첫날이었을뿐만 아니라 한주간의 첫날이기도 했다. 필자는 한주간의 첫날인 이날을 영광스러운 날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세계가 한주간의 첫날에 시작된 것과 같이 세상의 빛되신 그리스도께서도 한주간의 첫날아침 일찍이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즉 하늘에서 내려온 여명이 그를 통하여 세상에 이른 것이다.
Ⅲ. 둘째날 1:6-8
우리는 여기서 둘째날 역사인 궁창의 창조에 대한 기사를 보게된다.
(1) 하나님의 명령 : '궁창이 있으라.' 궁창이란 히브리말로 "펴짐"(expansion)을 뜻하는데 펼쳐진 시트나 드리워진 커튼의 모양을 나타낸다. 이 궁창은 간막이가 된 벽이 아니라 왕래할수 있는 길이다(욥 26:7;37:18;시104:3;암1:6).
(2) 궁창의 창조 : 마치 하나님이 궁창이 생기도록 명령만 하시고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만든 것처럼 보이지않도록 모세는 '그리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셨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또한 친히 우리안에 이루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루시지 않으면 그것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음과 성결, 사랑을 명령하시는 이가 또한 그의 말씀과 더불어 그의 은혜의 능력으로 그것들을 이루신다.
(3) 궁창의 용도와 목적 :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즉 구름으로 뭉쳐있는 물과 바다를 덮고있는 물로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능력의 궁창에 창고를 두시고 거기에서 땅에 물을 주신다. 그를 섬기는 모든 자들의 편안함을 위해 이같이 준비하신 그는 참으로 위대한 하나님이시다.
(4) 궁창에다 이름을 붙임 :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궁창은 보이는 하늘이며 거룩한 성의 도로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궁창위에 보좌를 두셨다고 한다(겔 1:26). 우리는 눈을들어 하늘을 볼때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생각할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늘이 높음을 볼때마다 하나님의 높으심과 그와 우리사이에 있는 무한한 거리를 생각해내야 한다. 그리고 하늘의 광휘와 청명함을 볼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위엄 그리고 그의 완전하신 거룩함을 생각해내야 한다. 또한 하늘의 광대함과 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땅에 미치는 그영향력을 볼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우주적인 섭리를 생각해내야 한다.
Ⅳ. 셋째날 1:9-13
지금까지는 창조주의 능력이 보이는 세계의 위부분을 지으시는데 사용되어 왔다. 하늘의 빛이 밝혀지고 하늘의 궁창이 고정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아래세상, 곧 사람의 자녀들이 거기에서 살며 생활하도록 계획하신 땅으로 내려오신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식탁을 펼수 있도록 땅이 마련되는 기사를 보게된다.
(1) 사람이 살수 있도록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남으로써 땅이 준비되었다.
1) 땅을 덮고있던 물이 물러가 한곳으로 모이도록 명령을 받았다. 물이 이와같이 한곳으로 모이자 하나님은 모인 물을 '바다'라고 칭하셨다. 성경에선 물과 바다를 종종 근심과 고통을 의미한다(시 42:7;69:2,14,15).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이세상에서는 이런 것들을 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단지 하늘아래 있는(하늘에는 그런 것들이 전혀없다) 물결에 불과할뿐이며 게다가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명하신 곳과 정하신 울타리안에만 머무른다는 사실은 성도들에게 큰위로가 아닐수 없다.
2) 물이 물밖으로 드러나 '땅'이라 불렸고 사람의 자녀들에게 주어졌다. 땅은 전부터 있었던것 같다. 그러나 물아래 있었기때문에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사들중 많은 것들이 땅속에 묻혀짐으로해서 헛되이 되는 수가 있다. 그런 것들은 밖으로 드러날때에야 쓸모있게 된다.
(2) 땅이 사람의 생계와 양육을 위해 설비되었다(11,12절). 그당시 바로 필요한 양식은 밖으로 솟아오른 땅의 직접적인 산물들에 의해 준비되었다. 땅은 비옥하여 가축들을 위해서는 풀을, 사람들을 위해서는 채소를 내었다. 또한 장래를 위해서도 양식이 마련되었다. 즉 모든 식물마다 '각기 종류대로 씨'를 갖고있어서 사람이 땅위에 계속해서 존속하는동안 자기의 소용과 유익을 위해 음식물을 땅에서 거두어들일수 있다. 여기서 다음 다섯가지를 살펴보자.
1) 땅뿐 아니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땅뿐만 아니라 거기에 있는 모든 내용물의 당연한 소유주이시며 그것들을 마음대로 처분하실수 있는 분이시다. 땅은 본래 '공허'하였다(2절). 그러나 이제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재산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2) 일반적인 섭리는 계속되는 하나의 창조활동이다. 그속에서 '우리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계속 일하신다.' 땅은 지금도 여전히 풀과 채소를 내며 해마다 열매를 내라는 이명령을 받고있다. 이런 것들은 세상의 위대한 창조주요 주인이신 하나님의 지칠줄 모르는 능력과 다함이 없는 선하심을 보여주는 영구한 실례들이다.
3) 비록 하나님께서 보통은 자연의 법칙을 따라 제 2원인들의 기능을 사용하시지만(하나님은 제 1원인이시다) 그럴지라도 그는 그것들을 필요로하시거나 거기에 얽매이시지 않는다.
4) 필요한 것들은 사용할때가 이르기전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짐승과 사람이 창조되기전에 그들을 위해 풀과 채소가 미리 마련되었다.
5) 하나님은 우리가 땅의 소산물로부터 얻는 모든 유익에 대해 홀로 그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Ⅴ. 넷째날 1:14-19
여기에는 넷째날의 역사, 곧 해와 달과 별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런 것들은 위세상을 아주 아름답게 할뿐만 아니라 이 아래세상에 많은 축복을 주는 장식물들이다. 우리는 하늘의 광명들의 창조에 대해 다음과 같은점들을 생각해 볼수 있다.
1. 일반적인 면(14,15)
(1) 하늘의 광명들에 관한 명령 :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3절) 빛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말하자면 빛이 사방에 흩어져 무질서하게 있던 빛의 혼돈상태였다. 그런데 이제 이빛이 모아져 모형을 이루어 그처럼 영광스럽고 쓸모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가 빛이신만큼 그는 또한 빛들의 아버지이시며 조성자이시다.
(2) 이 땅을 위한 이 광명들의 용도
1) 이것들은 시간, 곧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의 구별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해아래에서는 '모든 목적이 이룰때'가 있는 것이다(전 3:1).
2) 이것들은 활동의 지시를 위해 존재한다. 이것들은 일기의 변화를 보여주는 징조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농부들은 제 2의 원인들이 작용하기 시작했을때 하늘의 모습을 보고 일기가 좋을지 나쁠지를 분별하고 예견하여 일을 처리할수 있게되는 것이다(마 16:2,3). 이것들은 우리가 길을 걸을수 있고(요 11:9) 매일 해야하는 일을 할수 있도록(요 9:4) 땅에 빛을 비춘다. 하늘의 광명들은 우리의 즐거움과 유익을 위해 우리에게 빛을 비춘다. 이들은 우리를 섬기도록 지어져서 충실하게 그일을 행하여 어김없이 제때에 빛을 비춘다. 우리 또한 이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빛들과 세움을 받았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그것들과 같이 우리의 창조목적에 응답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주의 초만 태울뿐 그의 일은 신경쓰지 않는다.
2. 특별한 면 (16-18)
(1) 하늘의 광명들이란 곧 해와 달과 별들이다. 이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1) 해는 모든것중 가장 큰광명이다. 시편 19:1-6절을 통하여 우리는 해를 지으신 분으로서의 하나님께 그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는 법을 배울수 있다.
2) 달은 작은 광명이지만 여기서는 비교적 큰광명들 중의 하나로 간주된다. 가장 유용한 것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다. 비교적 큰 이광명들은 최상의 은사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겸손하고 충실하게 힘껏 선을 행한다.
3) 또 별들을 만드시고. 성경은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거나 우리를 천문학자로 만들기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성도가 되도록 하기위해 기록되었다. 이 광명들은 하나님아래 있는 대리 주관자들이다. 여기에서 작은 광명인 달은 '밤'을 주관하게 된다. 그러나 시편 136:9절은 별도 그일을 함께 맡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하신'. 가장 훌륭하고 명예로운 통치방법은 빛을 비춰주며 선을 행하는 방법이다. 유익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존경을 받으며 그들의 삶은 광명같은 빛나는 삶이 되는 것이다.
(2) 이모든 사실로부터 다음 사항을 배우자.
1) 해와 달과 별을 섬긴 고대 우상숭배의 죄와 어리석음을 알자. 여기서 이런 것들에 관한 설명을 볼때 이것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사람의 종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신으로 삼고 그것에 신적인 경의를 표시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크나큰 모욕이며 우리 자신에게도 치욕거리가 된다.
2) 이모든 것들을 지으신 하나님께 대해 매일 경배를 드리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와 찬양의 엄숙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동시에 지혜이다.
Ⅵ. 다섯째날 1:20-23
다섯째날에 이르기까지는 생물의 창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는데 바로 이 다섯째날의 기사에서야 비로소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다섯째날에 물고기와 새가 창조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물에서 나왔다. 여기서 다음 두가지를 살펴보자.
(1) 물고기와 새의 창조(20,21) :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이 생겨나도록 명령하셨다. '물들은 번성케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가 친히 이명령을 실행하셨다. 하나님이 큰물고기와…모든 생물을 창조하시니라. 여느 동물들만큼이나 다양하고 수가 많으며 진지한 구조를 지니고있는 곤충들도 이날에 만들어졌다. 보일(Boyle)은 자신이 큰코끼리를 보고 놀랄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개미를 보고도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에 대해 놀라움을 느끼며 찬양을 드리게된다고 말하곤 했다. 동물들이 부여받은 민감한 생명의 놀랄만한 능력들과 그들 신체의 기이한 구조, 그리고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 특성들이 제대로만 인식된다면 이모든 것들은 무신론자들과 이교도들의 반론을 부끄럽게 하고 잠잠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경건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돕는다(시 104:25).
(2)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번성할수 있도록 축복하심 : 생명이란 점점 쇠약해지는 것이다. 생명의 힘은 돌의 단단함과 같이 오래가지 않는다. 생명은 일부러 불어끄지만 않는다면 끝까지 다 타고마는 촛불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창조주께서는 각각의 개체들을 만드셨을뿐만 아니라 또한 그개체들이 번식하도록 준비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시니라(22절).
Ⅶ. 여섯째날의 첫번째 부분 1:24-25
여기서 우리는 여섯째날 역사의 첫번째 부분을 대하게 되는데 이날에 땅의 짐승들, 곧 육축과 땅에 속하여 기는 것들이 지어졌다. 앞에서와 같이 이번에도 주께서 말씀을 하셨다. 즉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내라'고 하셨다. 또한 주께서 일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모든 것들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시되 여러가지 모양뿐만 아니라 여러 특성들, 습관, 음식물, 생활양식 등을 따라 만드셨다. 그래서 어떤 것들은 풀과 채소를 먹고 사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고기를 먹고살고, 어떤 것들은 대담한가 하면 어떤 것들은 겁이 많고 또 어떤 것들은 말처럼 사람을 돕지만 먹이로는 쓰이지않는데 반하여 어떤 것들은 양처럼 사람을 돕지는 않지만 먹이로 쓰인다. 그런가 하면 소처럼 두가지에 다쓰이는 것들이 있고 또한 들짐승처럼 아무데도 쓰이지않는 것들이 있다.
Ⅷ. 여섯째날의 두번째 부분 1:26-28
여섯째날의 두번째 부분의 역사는 곧 사람의 창조이다.
(1) 사람은 모든 피조물들중 가장 나중에 창조되었다. 이것은 세상을 창조하는 일에 사람이 하나님을 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갖지 못하게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맨마지막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사람에게 영광과 은총이 아닐수 없었다. 왜 영광이 되는가? 창조의 방법이 덜완전한 것에서부터 보다더 완전한 것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왜 은총이 되는가? 사람이 거할 저택이 그를 받아들일수 있도록 완전히 준비되고 꾸며진 이후에야 비로소 그가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창조받은 즉시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들을 소유하여, 그것들을 관찰하며 즐거움을 얻을수 있게되었다.
(2) 사람의 창조는 다른 피조물들의 창조에서 보다 신적인 지혜와 능력이 더욱 두드러지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드러난 행위였다. 이제까지는 빛이 있으라, 궁창이 있으라, 땅이나 물은 이러저러한 것을 내라는식의 말씀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명령의 말씀이 의논의 말씀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다른 피조물을 지은 것은 사람을 위함이었다. 이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이일은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직접해야할 일이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권위를 가진 자로서 말씀하고 계신다. 아마도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드디어 준비작업을 마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자. 자, 사람을 만들자." 사람은 이제까지 만들어진 모든 것과는 다른 피조물이 되어야 했다. 육체와 영혼이, 하늘과 땅이 그안에서 합쳐져야 했다. 그는 두세계에 다 연결되어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친히 사람을 짓는 일에 착수하실뿐만 아니라 마치 그일을 협의하기위해 회의를 소집하는 것처럼 자신을 표현하기를 기뻐하셨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이 그일에 관해 의논하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신 분께서 또한 사람을 다스리도록 해야한다.
(3)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지어졌다. 이 두단어는 같은 뜻을 의미하며 서로가 그뜻을 더욱더 잘나타나게 만든다. '형상'과 '모양'이란 말은 가장 닮은상태를 의미한다. 그럴지라도 여전히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는 무한한 거리가 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같은 속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시는 분이시다. 사람에게 입혀진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도 거울속에 비친 그림자나 동전에 새겨진 왕의 초상화 정도에 지나지않는 형상이다. 사람에게 입혀진 하나님의 형상은 다음 세가지 점에서 볼수 있다.
1) 사람의 신체가 아닌 영혼의 특성과 구조에서 볼수 있다(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몸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몸에도 이같은 명예를 주셨는데 그것은 곧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와 같은 몸을 입으셨고 그가 또한 머지않아 자신의 것과 같은 영광을 우리 몸에 입히실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것은 사람의 위대한 영혼이다. 사람의 영혼에게 있는 세가지 귀중한 능력, 곧 이해력, 의지, 활동력을 생각해볼때 사람의 영혼이란 본질상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수 있는 가장 밝고도 맑은 거울과 같은 것이다.
2) 사람의 위치와 권위에서 볼수 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다스리게 하자. 사람이 자기보다 열등한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지배권을 받았기때문에 그는 이를테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이나 총독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형상은 그가 다스린다는 사실에서보다는 자유의지로써 자신을 지배한다는 사실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3) 사람의 순결과 정직에서 볼수 있다. 사람에게 입혀진 하나님의 형상은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함에 있다(엡 4:24;골3:10).
(4)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지어졌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곧 이어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이 뒤따른다. 하나님께서 결심하신바를 곧 실천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이 서로 다르나 하나님께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다른 피조물들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한종류당 한쌍씩이 아니라 여러쌍을 지으셨던것 같다(20-22절). 그러나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오직 한쌍만을 만드시지 않으셨던가? 그리스도는 여기에서 이혼을 반대하는 논증을 끌어내신다(마 19:4,5). 우리의 첫조상 아담은 한아내로 제한을 받았다. 만일 그가 그녀를 버렸다면 그에게는 달리 결혼할 사람이 없었다. 이사실은 결혼의 계약이 마음대로 취소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은 한남자와 한여자를 지으셨다. 이것은 모든 민족들이 자기들이 한혈통이며 한줄기로부터 나온 자손들이라는 것을 알고 이로써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다음의 두가지를 주셨다.
1) 광대한 유산 : 땅에 충만하라. 사람의 자녀들에게 부여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은 '온땅에 거하도록'(행 17:26) 지어졌다. 이땅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하여금 보다 나은상태를 준비하는 수습생으로서 거하게 하고자 정하신 장소이다.
2) 이 유산을 누리며 계속해서 존속할 수많은 가정.
(5)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나서 그에게 자기보다 열등한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지배권을 주셨다.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비록 사람이 이들중 어느것도 부양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다. 하나님은 이렇게하여 사람에게 영예를 주시고자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사람들은 이들 피조물로부터 그들 생명의 안전을 유지하고 또한 그것들에서 음식을 얻게되었다.
Ⅸ. 여섯째날의 세번째 부분 1:29, 30
여섯째날 역사의 세번째 부분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모든 육체를 위하여 양식을 마련하신 기사이다(시 136:25).
1. 사람을 위하여 마련된 양식(29)
채소와 열매가 그의 음식이 되었다. 여기서 다음의 세가지 점을 생각해보자.
(1)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점 : 우리가 흙에서 나왔듯이 또한 우리는 흙으로부터 부양받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또하나의 양식인 영생에 이르게하는 양식은 주께서만 우리에게 주실수 있다.
(2) 우리가 감사하게 만드는 점 : 주께서 우리의 몸을 위하신다. 우리는 그에게서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고 편안케하는 모든 것을 받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히 누릴수 있도록 모든것을 주시는데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또한 윤택한 생활과 즐거움을 위해서 갖가지 맛있는 것들을 풍성히 주신다.
(3) 우리가 우리 분깃에 순응하여 만족하게 만드는 점 :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위해 식물을 주셨다면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의 탐욕을 위해 식물을 구하지않도록 하자(참조, 시 78:18;단 1:15).
2. 짐승들을 위하여 마련된 양식(30)
하나님께서는 소를 위하여서도 염려하시는가? 확실히 그렇다. 그는 짐승들에게도 먹기좋은 식물을 마련해 주신다. 그러므로 황소뿐만 아니라 젊은 사자들도 그에게서 음식을 공급받으며 어떤 까마귀들도 그의 섭리의 보호를 받는다. 그는 위대한 주부이시며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부유하고 후한 분이시다.
Ⅹ. 전 창조역사의 결론 1:31
1. 하나님의 자기 역사에 대한 평가
하나님이 그지으신 모든것을 보셨다. 그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작품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능에는 반드시 전지가 따른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의 산물들에 대한 영원하신 지성의 엄숙한 반성이었다. 하나님은 이렇게하여 우리에게 자신의 일을 반성하는 모범을 보이셨다. 우리가 하루의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게 되었을때 우리는 낮동안에 행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2. 하나님의 자기 역사에 대한 만족
하나님은 모든 것이 선하게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그것이 보시기에 좋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문제를 듣기도전에 대답하지 않도록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1)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지으신 모든 것이 좋았다.
첫째, 그모든 것이 창조주께서 마음에 원하신 그대로 꼭 들어맞았기때문에 좋았다.
둘째, 그모든 것이 창조의 목적에 합당하며 그계획된 것이 보이는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자로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사람에게 쓸모 있기때문에 좋았다.
셋째, 그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때문에 좋았다.
(2) 그지으신 모든 것이 심히 좋았다. 한날 한날의 역사(둘째날 역사를 제외하고는)가 보시기에 좋았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모든 것이 심히 좋았다. 그이유로는 다음 두가지가 있다.
첫째,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의 모든 과정들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것은 인간이 창조주 영광의 보이는 형상으로, 그리고 찬양함에 있어서 온피조물의 입노릇을 하기로 되어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둘째, 각각의 부분이 다 좋았다. 그러나 모든것이 합쳐지자 심히 좋았다. 섭리와 은혜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작품의 영광과 선하심, 아름다움과 조화 등은 이때와 같이 그러한 것들이 완성되었을때에 가장 잘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때가 이르기전에는 판단하지 말라.
3. 이 역사가 마친때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날이니라. 이같이 하나님은 엿새동안에 세상을 지으셨다. 그렇다고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단번에 세상을 지으실수 없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빛이 있으라' 하시고 '빛이 있게'하신 분께서 또한 "세상이 있으라"고 말씀하실수 있으며 그랬다면 순식간에, 즉 부활때처럼 (고전 15:52) '홀연히' 세상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방법대로 자신의 시간에 그일을 이루셨다. 따라서 안식일도 하나님께서 창조의 시간을 정하실때 그것을 고려하신만큼 세상에서 신앙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것이다.
# 핵심
1:1-31
6일에 걸친 천지창조 과정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1일부터 3일사이에 빛, 하늘과 바다, 땅과 식물을 각각 창조하셨다. 그리고 4일부터 6일까지는 앞서 마련하신 각각의 영역에 알맞은 피조물들, 곧 태양계의 발광체, 조류와 어류, 동물과 사람을 창조하셨다. 피조물들이 살아갈수 있는 완벽한 생태계를 순서대로 구성하신 창조주의 지혜가 빛난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다.
창 1장의 ‘날’에 대한 문제(1장)
‘날’에 대해서 ① 문자그대로 24시간 ② 한시대나 단계 ③ 처음 세날들은 장구한 기간이고, 나중의 세날들은 각기 24시간씩이라고 보는 학설 등이 있다. 이중 어느하나를 단정적으로 확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참된 믿음자체가 반드시 문자적인 해석원리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본장의 초점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유일한 창조주이심을 보여주는데 있다.
# 묵상
인간창조의 의의 ( 1:26-31 )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후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손으로 친히 빚어 만드신 만물의 영장이므로 하나님과 교제할수 있고 또 그럴때에만 인간의 존엄성을 지닐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할 관리자(청지기)로서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과 사명을 부여받았으며 이점에 대해서 인간은 하나님앞에 책임이 있습니다.
# 해설
태초의 천지창조 ( 1 )
창1장은 창세기의 서언인 동시에 성경전체의 서언입니다. 본장은 천지창조, 그리고 인류의 기원에 관한 기록입니다. 인류와 자연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느냐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난제중의 난제이기도 합니다. 본장은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해 말해온 철학자들의 그어떤 기술보다도 확실하고 훌륭하며 만족스럽고 유익한 지식을 제공합니다.
1. 천지창조의 시작
1) 태초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때를 태초라고 합니다. 태초란 영원에서 시간이 시작되는 시원점입니다. 즉 영원으로부터 시간이 분리되어 나온시점, 바로 그때가 태초입니다. 창1:1절의 태초는 시간이란 개념이 형성되기전의 영원한 어느 한점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초란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시작하심으로써 개시된 시간의 출발점을 의미합니다.
a.땅의 기초가 놓였던 시기입니다(욥38:4)
b.장엄한 찬양이 있었던 시기입니다(욥38:7)
c.그리스도가 같이 계셔(미5:2)
2) 하나님께서 창조하심
창1: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재 존재하는 우주가 의식이 없는 어떤 힘이나 생명이 없는 물질들이 모여서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적인 창조의 결과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우주와 그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천지의 주재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심으로써 만물의 주인이요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a.말씀이 함께 계시어(요1:1-2)
b.생명의 말씀과 더불어(요일1:1)
3) 무에서 창조하심
창1:1절에서 사용된 '창조하시니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바라)입니다. 이말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부터 어떤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참조, 시51:10;사65:17-18;암4:13). 모든 것이 가능하시고 일체의 일들이 가능하신 전능자 하나님이시기에 무에서 유로의 창조가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고 이후 당신이 창조하신 물질을 사용하여 전우주를 자신의 뜻에 맞도록 조성하여 나가셨습니다.
a.시작과 나중이신 하나님(계22:13)
b.만물의 원인자 하나님(요1:5)
2. 첫째날부터 셋째날까지
1) 첫째날
첫째날의 하나님 창조는 '말씀'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이 창조의 서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데 이말씀은 6일간의 창조기사에서 10회나 반복되어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의 창조 첫째날에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은 만물생성의 근원입니다. 빛이 없는 상태에서 생물의 존재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중에 제일 먼저 빛을 창조하신 것은 만물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당신의 사랑과 섭리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습니다.
a.빛은 환한 것(잠13:9)
b.빛과 낮(창1:3-5)
c.하나님이 빛(시27:1)
2) 둘째날
첫째날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둘째날에 궁창을 창조하셨습니다. 빛의 창조가 시간의 시작이라면 궁창의 창조는 공간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물을 궁창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누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위의 물은 궁창을 떠다니는 수분 즉 구름을 가리키고 아래의 물은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수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a.궁창에 위엄이 있어(신33:26)
b.궁창의 기초는 땅(암9:6)
c.궁창에 하나님의 보좌가(겔1:26)
3) 셋째날
셋째날의 창조역사는 천하의 물을 한곳으로 모이게하여 뭍이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뭍은 땅이라고 하고 물이 있는 곳을 바다라고 하여, 하나님께서는 바다와 대륙이 구분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물과 구분된 땅에 식물이 나서 번성하도록 창조하셨으며 풀과 씨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열매맺는 과목을 내라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a.초목과 채소가 없었던 땅(창2:5)
b.창조된 식물(창1:11)
c.바다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시89:9)
3. 넷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
1) 넷째날
하나님은 넷째날에 해와 달과 별들을 궁창안에 만드셨습니다. 첫째날에 만드신 빛들이 이 천체들을 통하여 우주를 밝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천체의 창조는 그것들의 공전과 자전을 포함한 것이었습니다. 지구의 자전은 주야를 나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주변의 광명으로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a.하나님이 창조하심(창1:16)
b.사람을 위해 비취게 하심(마5:45)
c.하나님이 명명하신 천체들(시147:4)
2) 다섯째날
다섯째날에 하나님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와 궁창에 날으는 새들을 창조하셨습니다. 물고기와 새는 다함께 처음부터 다양한 종류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물고기와 새들을 지으신후에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이는 생물체들의 진화를 주장하는 자연과학자들의 견해에 대하여 명백히 그오류를 지적하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각종의 어조류들은 처음부터 오늘의 모양으로 지음받은 사실을 본장은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a.물은 생물들의 서식처(창1:20-22)
b.물속의 동물(시104:25)
c.물고기는 인간의 식물(창9:2-3)
3) 여섯째날
창조사역의 마지막날인 여섯째날에 하나님은 세가지 유형의 짐승들을 지으셨습니다. 즉 육축과 기는 것, 그리고 땅의 짐승입니다. 이러한 구별은 그짐승들의 성질과 기능에 따라 적응하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특히 창조의 마지막이 되는 이날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생명서식의 조건과 제반환경을 모두 이루신 이후에야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까닭은 인간이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a. 하나님 보시기에 좋음(창1:25)
b.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창1:27)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창1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천지창조는 먼저 절대 초월자이신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을 포함하여 전피조물의 재료를 순식간에 무에서 유로 창조하시고 이후 6일간의 시간을 두고 오늘날과 같은 질서와 조화가 있는 모습의 우주로 조성하여 나가셨던 것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결국은 창조자로 말미암아 그존재를 부여받았음을 본장은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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