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으로보는 성경 - 창세기 ①
천지 만물과 인간 역사의 시작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어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다. 하지만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 죄와 사망의 길로 빠지고 만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더디지만 다시 믿음의 사람을 택하시고 완전한 구원 역사를 펼쳐 가신다.
창세기 한눈에 보기
본문
| 1:1~2:3
| 2:4~3:24
| 4~5장
| 6~10장
| 11장
| 12~23장
| 24장
| 25~36장
| 37~5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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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 천지 창조
| 첫 사람 아담과 하와
| 가인과 아벨
| 노아와 홍수 심판
| 바벨탑
| 아브라함과 사라
| 이삭과 리브가
| 야곱과 열두 아들
|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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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원시 역사
| 족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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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약 2,000년간
| 약 300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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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인물
| 아담, 하와, 노아
|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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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창세기에는 저자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없다. 대부분의 교회 역사와 전승은 모세를 저자로 본다 (수 1~7; 눅 24:27; 요 7:1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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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다(1:26~28)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단지 물리적인 형상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데, 때로 하나님은 인간의 모습을 띠지만 불타는 관목의 모습으로도 나타나신다.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존엄성과 신성함을 의미할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께 반응하는 인격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닮았다.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한편 고대 근동의 애굽이나 앗수르 같은 나라에서는 왕을 신의 '형상'이나 대리인으로 묘사했다. 또 왕의 동상이나 신상은 통치자를 대신해 권위를 과시했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표현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첫 사람 이야기(2:4~25)
창조의 여섯째 되는 날 하나님은 첫 사람을 창조하셨다. 히브리어로 '아담'은 사람을 의미한다. 창세기는 인간의 창조에 관해 두 가지 이야기를 전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언급하는 다소 일반적인 이야기다(1:26~30).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창조의 과정을 보여 준다(2:7~25). 두 이야기는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기보다 둘째 이야기가 첫째 이야기를 보충하며 세부 사항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야기에서 핵심은 '돕는 배필'이다. 하와는 종이 아니라 동반자다. 하와가 아담보다 늦게 지어졌으므로 아담에게 복종해야 한다거나, 나중에 창조된 하와가 한층 개선된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하와는 동반자가 되기 위해 지어진 존재다.
첫 범죄 이야기(3장)
창세기는 죄가 어떻게 세상에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인류는 스스로 죄를 선택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통해 자신이 유일한 결정권자이며 권위자임을 천명하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과 거역을 선택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다. 그 결과 낙원에서 쫓겨나고 고난으로 가득 찬 세상살이가 시작되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에 분리가 생기면서 훨씬 살기가 힘들어졌다.
첫 살인 이야기(4:1~15)
아담과 하와의 장남인 가인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된다. 그의 후손 라멕에 이르면 살인이 일상사가 될 정도다(4:23~24). 죄의 뿌리는 이기심과 교만이다. 자신만 중요하다는 신념인 것이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한 후 자기 목숨을 걱정하며 하나님께 보호를 요청한다. 사랑의 하나님은 이를 들어주신다. 가인이 하나님께 표를 받았다는 점은 하나님만이 징벌하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인은 '금지'라는 형벌을 받았다. 그는 놋 땅, 곧 방랑의 땅에서 살아야 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6:1~4)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일반적으로 천사들을 뜻한다. 창세기 6장에서는 하나님을 거역한 타락한 천사들로 보거나 경건한 셋 후손의 가계를 말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으나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쨌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은 비범했다. '네피림'이란 '타락한 자들'을 뜻하는데, '떨어진 사람들'로 볼 수도 있다. 이들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이 세상에 실망하시고 그들의 수명을 120년으로 제한하시는 것으로 연결된다.
노아와 방주(6~8장)
노아가 지은 배는 히브리어로 '테바'인데, 이는 수납할 수 있는 상자를 가리킨다. 영어 성경도 '상자'를 뜻하는 고어인 'ark'로 번역했다. 구약성경에서 '테바'라는 단어는 오직 두 번 사용되었는데, 노아의 방주(7:1)와 아기 모세를 담아 나일 강에 떠내려 보낸 갈대 상자(출 2:3, 5)다. 헬라어로는 '키보트스'인데, 이는 신약성경에서 방주(마 24:38; 히 11:7), 언약궤의 궤(히 9:4; 계 11:19) 등에 사용되었다. 방주의 원자재는 '고페르 나무'(6:14)인데, 삼나무 일종이었을 것이다. 이는 가볍고 신축성이 좋은 나무였다. 후에 이 나무는 베니게인들이 배를 만들 때 사용되었다. 배의 안과 밖에는 역청을 칠해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으며, 위에는 빛이나 공기가 들어오게 하는 창을 만들었다. 노아의 방주는 항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단지 뜰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방주에는 노아 가족 8명과 함께 정결한 짐승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새는 암수 일곱씩이 탔다. 이러한 방주는 세례의 상징(벧전 3:20~21)이자 구원의 예표다. 방주에 탔던 사람들과 동물들이 구원받았듯이(히 11:7),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롬 8:1~2).
노아 홍수 일지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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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내용
| 경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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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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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 600세 되는 해) 2월 10일경
| 방주에 타고 일주일을 기다림
| 7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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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전기
| 물이 증가하는 기간
| 2월 17일
| 홍수의 시작
| 40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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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경
| 비가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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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물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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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후기
| 물이 줄어들고 마르는 기간
| 7월 17일
|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묾
| 약 110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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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 산들의 봉우리가 보임
| 약 74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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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경
| 까마귀를 내보냄
| 40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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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경
| 세 번째 비둘기를 내보냄
| 약 22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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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601세 되는 해) 1월 1일
| 방주 뚜껑을 열어젖힘
| 약 28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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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 방주에서 나옴
| 약 57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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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아 홍수 콘서트」(이재간,두란노)
셈, 함, 야벳 자손의 분포(10장)
![](https://t1.daumcdn.net/cfile/blog/994C72375EA7DF1415)
바벨탑(11:1~9)
바벨은 '하나님의 문'이라는 뜻이다. 바벨탑을 쌓던 이들은 이 탑이 위대함으로 향하는 입구이자 하나님만큼이나 능력 있게 되는 길이라 본 것이다. 보통 구약성경에서 '바벨'은 바벨론을 암시하는 언약이기도 하다. 창세기 기자가 바벨론의 지구라트(ziggurat, '높은 곳'이란 뜻), 즉 벽돌로 축조된 거대한 피라미드형 탑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하나님이 인간의 교만을 낮추시기 위해 개입하시자 언어가 혼잡해지고 인간은 뿔뿔이 흩어진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11:27~23:20)
하나님은 아브라함 혹은 아브라함과 여러 번에 걸쳐 언약을 맺으신다. 먼저 12장 2절에서 "내가...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가게 된다. 그는 이미 75세였지만 자식이 없었다. 어쩌면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도착해야 이 언약이 이루어지는 줄 알고 서둘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오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브람이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하자 15장에서 하나님은 별들을 보여 주시며 다시 그와 언약을 세우신다. 한편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어두운 미래를 펼쳐 보여 주신다. 아브람의 후손들은 400년 동안 이방에서 노예가 되었다가 풀려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약속의 땅에 도착할 것이다(15:13~16). 이 언약은 연기 나는 화로와 이글거리는 횃불로 성사되는데, 이 이미지는 하나님이 백성 앞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앞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을 구출하는 미래상을 암시한다. 17장에서 하나님은 얼굴을 대면한 만남을 통해 또 약속을 확증하신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짐하는 뜻으로 할례를 받게 된다. 무엇보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좀 더 긴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사래도 이름이 '왕비'를 뜻하는 사라로 바뀐다. 이 역시 새로운 출발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다.
아브라함의 이동 경로(11:27~12:9)
![](https://t1.daumcdn.net/cfile/blog/99A76F415EA7DFAA32)
멜기세덕은 누구인가(14:17~20)
만약 히브리서 기자가 멜기세덱을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 풀이해 주지 않았다면, 이 장면은 다소 이채롭기는 하지만 집필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멜기세덱이라는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으로, 이는 '악에 빠져서'를 의미하는 소돔 왕 베라의 이름과 대조를 이룬다.
하갈 이야기(16장)
하나님이 여러 차례 약속해 주셨지만, 사래는 아기를 갖지 못한다. 결국 아브람과 사래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이를 가지려 한다. 아내가 아이를 갖지 못하면 여종을 취하는 것이 당시 관습이었기 때문에 아브람은 하갈을 취하라는 사래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을 신뢰하지도 못했고, 인간적인 도의도 지키지 않았다. 사래는 하갈이 임신했을 때와 자신이 아이를 낳은 후 두 번이나 하갈을 내쫓은 것이다(16:4~6; 21:9~21). 하갈을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심지어 하나님은 하갈에게도 말씀을 주신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가 많은 후손의 아비가 되리라는 약속이었다. 이스마엘이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겠지만, 아브람처럼 그를 통해 많은 사람이 복을 받으리라고는 약속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하갈이라는 이방인 여종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삭의 자손들을 통해 일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결정은, 다른 자식들을 돌보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구약 역사를 통해 선지자들은 다른 나라를 가리켜 이스라엘을 책망하기 위한 도구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또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도록 도와주었다.
새 언약에 비추어 본 아브라함 언약(17장)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약조는 할례로 징표를 삼았다(17장). 아브라함 이전에 언약을 받은 사람은 노아다. 하나님은 홍수 후 다시는 인류를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9:15~17).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해 내신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선포한다. 이 언약은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라는 요구를 부과하기도 했다. 그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두 돌비에 새긴 계명을 주셨다. 이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상자인 '언약의 법궤'에 넣어 보관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몫을 다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거짓 신을 섬기고 율법을 무시했다. 이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새로운 언약, 곧 희생 제사와 할례와 같은 외적 국면들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와 정신을 통해 표현되는 언약을 제시하신다(렘 31:31~33). 새로운 언약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통해 성취된다. 그분은 최후의 만찬에서 새 언약을 수립하시고(막 14:24), 십자가 죽음으로 이를 완성하셨다(히 8:8~13). 새로운 언약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출처 : 생명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