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죄도 아시는 주님이 신실하게 기다리십니다

[호세아 5장 1절~15절]
1절 -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 대하여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 친 그물이 됨이라
2절 -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그들을 다 벌하노라
3절 -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이 더러워졌느니라
4절 -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5절 -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6절 - 그들이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7절 - 그들이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그들과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8절 - 너희가 기브아에서 뿔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나팔을 불며 벧아웬에서 외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지어다
9절 - 벌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폐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반드시 있을 일을 보였노라
10절 -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11절 -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뒤따르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받는도다
12절 -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13절 - 에브라임이 자기의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그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14절 -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15절 -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에브라임은 음행하고 이스라엘은 더러워져 음란한 마음 때문에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여호와께 돌아가지 못합니다. 또한 여호와를 찾아도 만나지 못합니다. 에브라임과 유다가 진노로 인한 병과 상처를 깨달으나 고칠 자가 없습니다. 고난의 때에 그들은 주님을 간절히 구할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의 죄와 교만 (1~7절)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있는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만으로 완전히 부패한 이스라엘에 철저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도한 지도자들로부터 떠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부요함으로 교만해진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떠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아무리 많은 양 떼와 소 떼를 몰고 와서 하나님을 찾을지라도 교만하고 음란한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우리는 은밀한 죄와 속마음까지 아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회개와 진실한 순종을 드리는 예배자로 서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나와 우리 공동체의 예배에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지 않도록 어떻게 기도하고 준비해야 할까요?

2. 하나님의 심판과 기다리심 (8~15절)
하나님을 떠난 사람에게는 안전지대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브아, 라마, 벧아웬 등은 이스라엘 땅 중에서 지리적으로 적의 침략을 잘 받지 않고, 매우 튼튼하게 건설된 안전한 도시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경계표를 임의로 옮기며 헛된 우상을 좇을 때, 이 도시들 역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철저히 파괴할 것이라고 단언하십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들이 고난 중에 있을 때에 회개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길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고통과 어려움을 만날 때,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을 비추어 주시길 간구해야 합니다.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이에게 돌아오신다는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십시오.
* 묵상 질문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넣으시고 철저히 파괴하실까요?
* 적용 질문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이 죄로 인한 것은 아닌가요? 주님의 기다리심을 신뢰하며 구체적으로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오늘의 기도
마음만 먹으면 작은 죄의 습관 정도는 스스로 끊어 낼 수 있다고 착각했던 저의 교만함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일으켜 주셔야만 바로 설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 품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누구에게 묻고 있나요?

[호세아 4장 11절~19절]
11절 -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12절 -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13절 -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14절 - 너희 딸들이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
15절 -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16절 -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이제 여호와께서 어린 양을 넓은 들에서 먹임 같이 그들을 먹이시겠느냐
17절 -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 두라
18절 - 그들이 마시기를 다 하고는 이어서 음행하였으며 그들은 부끄러운 일을 좋아하느니라
19절 - 바람이 그 날개로 그를 쌌나니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

음행과 포도주는 마음을 빼앗습니다.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니 망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음행해도, 유다는 죄짓지 말고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브라임은 우상과 연합했으니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의 탐욕과 우상 숭배 (11~14절)
신앙은 삶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삶은 필연적으로 우상 숭배와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국가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가나안의 문화와 종교에 완전히 동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의 우상을 섬기며 '음행과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들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아세라나 아스다롯 같은 나무로 만든 우상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풍요의 신 바알을 섬김으로 영적 음행에 빠져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거룩함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이 전부가 되시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과 삶은 죄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인정하십시오.
* 묵상 질문
이스라엘이 음행에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요즘 내 마음은 무엇에 미혹되고 있나요? 내가 의지하는 '나무와 막대기'는 무엇인가요?

2. 이스라엘의 타락과 멸망 (15~19절)
죄는 강력한 전염성을 갖습니다. 그것은 순식간에 주변을 오염시키고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총체적 부패는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했고, 어찌할 수 없는 한계 상황까지 도달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유서 깊은 신앙 도시인 길갈과 벧아웬(벧엘)을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 만들어 남 유다에서 찾아오는 순례자들까지 우상 숭배로 끌어들였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이제 더는 길갈과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시며, 우상과 연합한 이스라엘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죄의 유혹은 피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입니다. 미련하게 정면으로 맞서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죄의 가능성이 있는 현장을 멀리하는 것이 거룩함을 지키는 지혜입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은 특히 북 이스라엘의 부패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시나요?
* 적용 질문
그리스도인으로서 피하고 멀리해야 할 '길갈과 벧아웬'은 어디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만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실제 삶에서 주님 외에 사랑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꼭 붙잡고 있는 제 모습을 봅니다. 주님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시고 그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으면

[호세아 4장 1절~10절]
1절 -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절 -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절 -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4절 -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5절 -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6절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7절 -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8절 -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9절 -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10절 -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배경 이해하기]
2절부터 구체적으로 언급된 북 이스라엘의 죄악은 모두 십계명과 연결된 죄들입니다. 살인과 간음은 6, 7계명을, 저주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는 3계명과 9계명을 어기는 죄들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죄들에 대해 본문은 행동의 지속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부정 절대형 동사를 사용했는데, 이는 북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질러 왔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범죄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의 지속적 범죄의 원인으로 먼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결여를 언급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의와 불의를 분별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은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 할 제사장들의 직무 태만을 지적하십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 이외에도 백성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질 리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제사장들은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을까요? 바로 탐욕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속죄제물은 먹지 않고 모두 태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사장들은 백성이 바치는 속죄제물을 사사로이 취했고, 더 많은 속죄제물을 받고자 백성이 죄 짓기를 은근히 바라기까지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사장들의 탐욕이 북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가져온 것입니다.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하나님이 북 이스라엘 백성과 쟁변하시다(1~3절)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수용적이지만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비판적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의 ‘쟁론’이라는 말은 법적 소송을 제기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백성을 심판하시기에 앞서 율법에 근거해 심판의 정당성을 논고하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씀하시면서 북 이스라엘 공동체의 세 가지 현실을 언급하십니다. 첫째, 북 이스라엘에는 진실이 없습니다. 여기서 진실이 없다는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거짓되어 신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둘째, 북 이스라엘에는 인애가 없습니다. 인애는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인데, 이스라엘은 이 사랑에 근거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인격적 관계에 기초한 지식으로, 지적 차원을 초월합니다. 이 지식의 결여가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그 결과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본문 연구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쳐야 망하지 않는다(4~10절)
북 이스라엘의 죄의 원인은 첫째,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둘째, 종교 지도자들의 죄가 원인입니다. 오늘날처럼 성경 말씀으로 하나님 말씀을 직접 대할 수 없었던 당시에는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백성에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에게 말씀을 가르쳐 바로 이끌어야 하는 자신들의 소명을 잊고,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데 급급해 말씀 가르치기에 소홀했습니다. 제사장들의 타락으로 그들의 영적 권위가 지켜지지 못하자 백성이 종교 지도자들과 다투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이에 하나님은 제사장과 다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4절).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의 타락의 원인이 되는 종교 지도자들의 죄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5절). 이 말씀은 낮이든 밤이든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모두 쓰려져 멸망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말씀을 바로 알지 못한 결과 그들은 번성할수록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열심히 죄를 범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은 여호와를 따르는 일을 그치고 세상을 따랐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모두 행한 대로 심판하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잊었음에도 오히려 번성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입니다.


[묵상 포인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북 이스라엘은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영적 지도자가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가르쳤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알고 계속 번성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말씀을 삶으로 보여 줄 때에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됩니다.


1. 내 삶에서 하나님의 성실과 인애를 언제 체험했는지, 이웃에게 하나님의 성실과 인애를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을지 나누어 보세요.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가장 멀다’라는 말은 아는 것과 아는 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다른가를 잘 표현하는 말입니다. 제임스 패커는 그의 저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은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정보 차원의 지식으로,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는 다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표현할 때 사용한 동사는 인격적 관계에 기초한 경험적인 지식입니다. 6:3절의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에서 ‘알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야다’는 남녀 간의 관계를 통해 아는 경험적 앎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북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인애를 체험하지 못하면 이웃에게 그것을 행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진실(히, 에메트)은 하나님의 충성과 불변을, 인애(히, 헤세드)는 일차적으로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의미하지만, 이 두 단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과 이웃에게 그대로 행해야 한다는 실천적 행동까지 내포하고 있습니다.

2.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수 있는지 나누어 보세요.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을 향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꾸짖습니다. 이유는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받은 한 달란트를 그냥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주인에게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요?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마 25:24~25).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두려움이 종에게 잘못된 행동을 유발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은 배우는 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북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에게는 하나님 사랑도 이웃 사랑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사랑한 것은 자신의 이익뿐이었습니다. 모두 태워 드려야 할 속죄제물이 자신들의 몫이 된다는 것 때문에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가르치기보다 오히려 백성이 죄를 범하기를 바랐고 부추겼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된 것은 바로 자기애와 탐심이었습니다.

[기도문]
온갖 이유를 대면서 하나님 알기를 소홀히 했던 저를 용서하소서. 말씀을 묵상하고 배우고 실천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말씀으로 채워진 사람,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삶

[호세아 4장 1절~10절]
1절 -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절 -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절 -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4절 -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5절 -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6절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7절 -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8절 - 그들이 내 백성의 속죄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그들의 죄악에 두는도다
9절 -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동일함이라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벌하며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리라
10절 -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은 진실과 인애도 없고 저주와 살인 등 죄악뿐 입니다. 여호와는 그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모든 것이 쇠잔할 것이라 하십니다. 백성이 지식을 버리고 율법을 잊어 여호와도 그들을 버리고 행위대로 벌하시니,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자손도 늘지 못합니다.

1. 이스라엘 자손과의 논쟁 (1~5절)
하나님은 선택하신 백성에게 영적 특권에 부합하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언약 백성으로서 바른 모습과 자질을 상실한다면, 하나님은 엄중하게 추궁하고 징계하실 것입니다.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마땅히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드러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탄식하며 그들과 논쟁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그들의 삶은 온갖 죄악이 가득한 사회를 만들고, 모든 피조물도 황폐하고 고통당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을 아는 지식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모습보다 더 추악한 것은 없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삶과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을 닮은 성품과 그분을 아는 지식이 온전히 드러나고 있는지 늘 살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논쟁하신 이스라엘의 모습은 무엇이고, 그 모습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나요?
* 적용 질문
내 삶과 공동체, 우리 사회 안에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치게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2. 백성과 제사장에 대한 심판 (6~10절)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만 존재 가치를 얻고 참된 만족과 기쁨을 누립니다. 하나님은 지식이 없어 망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책임을 제사장들에게 돌리십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죄악에 빠진 백성을 돌이킬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의 신분과 특권을 이용하여 부를 쌓는 데 혈안이 되어 자신들뿐만 아니라 백성까지 죄악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따르지 않은 삶은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아무리 노력해도 헛수고로 끝날 뿐입니다. 우리의 행위를 모두 보시고 그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말씀 앞에 매 순간 마음과 삶을 비추며,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친밀히 동행할 때 진정한 만족과 수고의 열매를 풍성히 얻게 됩니다.
* 묵상 질문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생각나게 하려면,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없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하고 허망한지 깨달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날마다 부요해지기를 소원합니다.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잊지 않고 잘 섬기는 사람들로 자라도록, 교회 공동체와 제가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끝없는 용서와 사랑으로 은혜 앞에 세우시는 주님

[호세아 3장 1절~5절]
1절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절 -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절 -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4절 -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5절 -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겨도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여호와는 호세아에게 음녀가 된 아내를 사랑하라 하십니다. 호세아는 그녀에게 음행하지 말라 합니다. 후일 이스라엘은 포로지에서 돌아와 여호와와 다윗 왕을 찾고 마지막 날에 여호와를 경외해 은총을 입을 것입니다.

1. 음녀 고멜을 용서하고 사랑함 (1~3절)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논리와 계산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남편의 사랑을 저버리고 다른 사람의 사랑을 구하다가 비참한 노예 상태에 처한 아내 고멜을 다시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남편으로서의 사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호세아의 모습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보여 줍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도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때문입니다. 죄에 빠진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건져 주시는 주님만을 붙드십시오. 그 용서와 사랑에 감격하며, 죄의 길에 다시 서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통해 자기 생명으로 우리 죗값을 대신 지불하신 주님의 사랑이 헛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음행한 아내 고멜을 향한 호세아 선지자의 사랑은 무엇을 보여 주나요?
* 적용 질문
용서와 사랑의 주님을 언제 어떻게 경험했나요? 오늘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누구며,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2. 탕자 이스라엘의 회복과 축복 (4~5절)
하나님의 사랑은 중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에 대한 사랑의 손길을 결코 거두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생활은 그들이 회개하고 다시는 죄악의 길로 가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철저한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으로서 특권을 상실하고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어 이방의 종으로 고통을 겪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국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회복과 은총을 맛보고, 다윗의 혈통으로 오시는 참된 왕 메시아를 소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성도는 온 마음과 삶을 하나님께로 돌이켜 은혜 안에 거하며 그분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회복시키시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이 회복과 축복으로 이끄실 것을 기대하며 인내해야 할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다리고 만나 주셨던 주님을 기억합니다. 완전한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아 형제를 용납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순간순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말씀과 동행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아골 골짜기 제 인생에 주님 오심이 소망입니다

[호세아 2장 14절~23절]
14절 -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절 -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절 -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절 -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절 -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0절 -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21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
22절 -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르엘에 응답하리라
23절 -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그를 위로하시고 포도원을 주실 것입니다. 그는 그날에 어렸을 때와 애굽에서 올라오던 날처럼 응대하며 여호와를 남편이라 부르고 주와 혼약을 맺어 영원히 살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 백성이 아닌 자를 백성이라 하시고, 그들은 주를 '내 하나님'이라 할 것입니다.

1.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으로 (14~18절)
하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돌이켜 회복시키십니다. 이스라엘은 계속되는 심판 경고에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멸망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방의 풍습과 타협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따라간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은 저주와 심판의 장소인 아골 골짜기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끝까지 찾아가 위로하시며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친히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고 온전한 관계로 회복하겠다고 하십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소망의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더라도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바른길로 이끄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주님은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바꾸십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은 어떻게 절망적인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실까요?
* 적용 질문
낙심과 침체의 순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어디서 공급받고 있나요?

2. 하나님과의 온전한 연합 (19~23절)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진정한 회복과 응답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지 못할 죄인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장가들겠다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그들과 영원히 깨지지 않는 관계를 맺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깊은 연합을 이룬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성품, 즉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이 심겨, 삶 속에서 그 성품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마음껏 누리는 복을 받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어 "주는 내 하나님이십니다."라는 고백과 찬양을 우리의 성품과 삶으로 드릴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은 어떤 심정으로 이스라엘에게 장가들겠다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셨을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백성을, 주님의 신부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새롭게 되어야 할 성품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일보다 제가 얻을 것들을 더 기대하며, 하나님을 저의 부족함을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만 여기고 살았던 것을 고백합니다. 다시금 하나님과 깊이 만남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과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임을 모든 순간 기억하십시오

[호세아 2장 2절~13절]
2절 -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3절 -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그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4절 - 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5절 -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6절 -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절 -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8절 -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
9절 - 그러므로 내가 내 곡식을 그것이 익을 계절에 도로 찾으며 내가 내 새 포도주를 그것이 맛 들 시기에 도로 찾으며 또 그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릴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10절 - 이제 내가 그 수치를 그 사랑하는 자의 눈 앞에 드러내리니 그를 내 손에서 건져낼 사람이 없으리라
11절 -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12절 - 그가 전에 이르기를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하던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에게 먹게 하리라
13절 - 그가 귀고리와 패물로 장식하고 그가 사랑하는 자를 따라가서 나를 잊어버리고 향을 살라 바알들을 섬긴 시일대로 내가 그에게 벌을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음행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를 벌거벗기고 그 자식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 하십니다.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고 곡식과 모든 것을 주신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주께서 모든 것을 빼앗고 수치를 드러내어 그가 바알을 섬긴 날만큼 벌을 주실 것입니다.

●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임을 모든 순간 기억하십시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농경 사회에 편입되어 많은 경제적.문화적 혜택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서 얻은 넘치는 복이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바알이 풍요로움을 준다고 생각해,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바알을 섬겼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재물과 지식, 관계와 생명까지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으로 주어진 선물임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에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서 바알을 섬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현재 내 삶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결코 변개되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호세아 1장 1절~11절]
1절 -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절 -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절 -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절 -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절 -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절 -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절 -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절 -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절 -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11절 -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호세아 2장 1절]
1절 -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하나님은 음란한 북 이스라엘의 예표로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와 결혼해 자식을 낳으라 하십니다. 그들의 세 자녀 이름을 통해 경고하시며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 하시지만, 결국 이스라엘 자손을 셀 수 없이 많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하실 것입니다.

1. 호세아의 결혼과 세 자녀 (1:1~9절)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서 떠나면 멸망에 이릅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는 북 이스라엘에 호세아의 결혼과 세 자녀 이름을 통해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장남의 이름인 이스르엘은 아합 왕가가 멸망한 장소의 지명으로, 예후 왕가 역시 동일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둘째 딸의 이름인 로루하마는 북 이스라엘이 더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이 임하지 않음을, 셋째 아들의 이름인 로암미는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언약이 무효하게 됨을 나타냅니다. 우리 시선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바라보고, 우리 마음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음란하고 더러운 죄를 버리고, 넘치는 긍휼로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호세아의 결혼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말씀하기 원하셨나요?
* 적용 질문
내 삶은 하나님의 어떤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고 있나요?

2.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 (1:10~2:1절)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겉으로 볼 때 북 이스라엘의 배도와 멸망은 아브라함의 언약과 출애굽, 가나안 정복, 다윗 왕국의 건설로 이어지는 하나님 나라에 결정적인 장애 요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부패한 북 이스라엘의 멸망이 결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무너뜨리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은 은혜 안에 머무는 남은 자들을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을 바닷가의 모래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지게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루하마), 하나님의 백성(암미)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며 영적 지위와 영광을 회복할 것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됩니다.
* 묵상 질문
새 이스라엘을 인도할 '한 우두머리'는 누구며, 이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 적용 질문
내 삶에서 하나님의 열심을 통해 회복되어야 할 영역이나 문제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그럼데도 불구하고'의 은혜로 저를 찾아오시고 새 역사를 써 가시는 주님! 죄의 유혹에서 건져 저를 주님의 백성으로, 긍휼히 여길 자로 다시 세워 주소서. 변화된 마음으로 회복의 은혜를 주위에 흘려 보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깊이 뿌리내린 신앙이 되려면...

[호세아 14장 5절~7절]
5절 -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6절 -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7절 -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마가복음 4장 5절~6절]
5절 -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절 -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마가복음 16장 17절]
17절 -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자연의 선물 중 하나가 나무입니다. 만일 사방을 둘러봐도 푸른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까요? 한창 푸르름을 자랑하는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우리에게 주는 활력과 휴식들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 그루의 나무가 크고 튼튼하게 자라려면 무엇보다도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뿌리가 얕으면 바람이 불 때 쉽게 쓰러지고 햇빛이 쬐일 때 시들어 말라 죽고 맙니다. 그래서 어떤 나무는 뿌리가 1,000m 내지 1,500m나 된다고 합니다.
훌륭한 신앙은 뿌리가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신앙의 뿌리가 깊어야 환란의 폭풍이 와도 쓰러지지 않고 시험의 햇빛이 내려 쬐어도 시들지 않고 잘 극복하여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호세아서에 보면 선민 이스라엘을 레바논의 백향목에 비유했는데 그 까닭은 레바논의 백향목은 나무 중에서도 가장 크고 뿌리가 깊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신앙의 사람이 되려면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도 뿌리가 깊지 못하면 환란과 시험이 올 때 시들어 말라 버리고 말며 더욱이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깊이 뿌리를 내린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1. 심지가 깊어야 합니다.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곧 싹이 나오기는 하지만 햇빛이 내리 쬐이면 뿌리가 깊지 못해서 곧 시들어 죽고 만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밭은 사람의 마음이요, 씨앗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요, 햇빛은 환란과 핍박을 의미합니다.
막 4:16, 17절에 보면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란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흙이 얕다는 것은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마음이 얄팍해서 쉽게 기뻐하고 쉽게 근심하며 쉽게 흥분하고 쉽게 식어버리는 감정적인 사람을 의미합니다. 곧 감정에 치우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는 마치 얇은 양은 남비가 금방 파르르 끓었다가 금방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흙이 깊어야 온전히 뿌리를 내릴 수 있고 뿌리가 깊어야 그 나무는 좀처럼 시들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아라비아 사막에 있는 종려나무는 그 강한 햇빛을 받아도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잘 자라는데, 그 이유는 얕은 곳에서는 물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물을 찾아 뿌리를 매우 깊이 내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지가 깊은 신자는 감정의 지배도 받지 않고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중심이 깊어서 오직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쉽게 기도 응답이 오지 않아도 낙심하지 않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듣고 보는 데에 따라 요동치 않으며 오직 말씀 위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주님과 그분의 말씀을 신뢰함에 변함이 없고 그 중심의 심지가 깊어 쉽게 요동하지 않는 신앙을 소유한 자라 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이지는 않지만 내면 깊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열정을 품고 있는 자인 것입니다. 이렇듯 심지가 깊은 자가 신앙의 뿌리 또한 깊이 내리는 것입니다.

2. 숨은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나무가 튼튼하려면 보이는 줄기와 잎만 무성해서는 안되고 보이지 않는 뿌리, 숨은 뿌리가 많고 튼튼해야 합니다. 햇빛이 좋다고 뿌리까지 훤히 다 드러내 보인다면 그 나무는 곧 시들어 죽고 맙니다. 이와 같이 튼튼하고 열매를 잘 맺는 신자가 되려면 보이지 않는 은밀한 신앙 생활에 보다 많은 관심과 수고를 기울여야 합니다. 남이 안보는 데서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읽고 묵상하며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구제하여 숨은 선행이 많은 사람은 뿌리가 깊은 나무와 같이 튼튼하고 훌륭한 신자입니다.
뿌리가 노출된 나무는 이내 말라 버리고 마는 것처럼 밖으로 보이려고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낙심하고 타락하게 됩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 봉사하고 선을 행하면 환란과 핍박이 올 때, 남이 인정해 주지 않을 때, 낙심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통성기도와 합심기도도 가르치셨지만 남이 보지 않는 골방에서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선한 일을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한테 상을 다 받으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 상받을 것이 없어진다고 경계하셨습니다.
이사야서 38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죽게 되었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하며 기도하여서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15년의 생명을 연장해 주셨고, 앗수르 나라의 압제에서도 구원해주셨습니다. 바벨론 나라에서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많은 사절단이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을 때 히스기야 왕은 너무 기분이 좋고 신바람이 나서 궁중에 있는 모든 보물과 무기고와 모든 소유를 그들에게 남김없이 다 보여 주었습니다. 숨긴 부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서 큰 노여움과 책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고 하는 무서운 말씀이 있었습니다. 적대국에게 노출시킨 것들은 적대국에게 다 빼앗길 날이 오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죄명을 붙인다면 '노출죄'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죽다가 살아났으면 '나의 하나님이 이렇게 살려 주시고 앗수르 군대도 다 멸절시켜 주셨습니다'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했어야 될 터인데, 히스기야 왕은 당장의 기분에 들떠서 그 모든 부귀와 영화가 자기 탓인양 자랑하면서 다 노출시켰습니다.
영적인 생활에도 숨겨진 부분이 많아야 뿌리가 깊은 신자입니다. 은밀한 가운데 우리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며 선악간에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께 더 많은 믿음의 선한 수고들을 보이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신앙의 숨겨진 뿌리가 튼튼한 자가 믿음의 거목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3. 굳은 돌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흙이 얕고 밑에 굳은 돌이 있으면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시들어 죽고 맙니다. 그러므로 굳은 돌멩이가 제거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신자들 마음 속에 굳은 자아가 있는 사람, 강퍅한 자아가 속에 숨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 깊숙히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겔 36:26절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히 3:13절에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죄악과 교만으로 마음이 굳어진 사람은 마음이 딱딱해서 말씀을 깊이 받아 들이지 않고 건성으로만 듣고 비판하다가 맙니다. 자아가 강하기 때문에 말씀을 들을 때 반론만 제기하면서 순종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제멋대로 해석하고 비판만 합니다.
또, 이 굳은 돌은 제거되지 않는 숨은 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숨은 죄가 있는 사람은 흙 밑으로 뿌리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자꾸만 강퍅해집니다. 그러므로 힘이 들고 어려워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숨은 죄를 처리해야만 합니다.
'강퍅하다'는 말은 '뻣뻣하다'(stubborn), '목이 곧다'(stiff necked)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는 마음의 하나입니다. 육신의 병 중에서도 굳어지는 병은 무섭습니다. 간경화증, 동맥경화증은 모두 굳어져서 죽는 병입니다. 암도 세포가 돌같이 딱딱하게 굳어져 나가는 병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굳어지는 것은 더욱 무섭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하고 결국 멸망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성도들을 강퍅한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고난의 방망이로 깨뜨리십니다. 예전에 제가 저 신내동 쪽으로 심방을 가다 보면 질그릇 공장이 있었는데, 곡괭이나 삽으로 흙을 파다가 물에 풀어 체로 걸러서 햇빛에 말려서 그것들을 흙벽돌처럼 덩어리로 잘라다가 방망이로 깨뜨립니다. 큰 덩어리는 큰 방망이 같은 것으로 인절미 치듯이 보들보들하게 두들겨서 멋있고 예쁜 질그릇을 빚어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도 토기장이와 같아서 곡괭이나 삽으로 찍듯이, 영혼들을 고난을 통하여 찍어내서 교회로 부르십니다. 그 다음에는 아집과 교만으로 꽉 찬 자아를 고난의 방망이로 깨뜨리십니다. 실패와 낭패를 통하여 깨뜨리십니다. 시련의 방망이로 깨뜨리시고 그리하여 굳은 자아가 제거될 때 하나님께 귀한 그릇으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 5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말씀하시듯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심령은 깨어지고 바스러진 심령입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을 받을 때 두렵고 떨림으로 받습니다. 사 66: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아가 빨리 깨져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참으로 하나님 앞에 심지가 깊고 은밀한 중에 믿음의 선한 수고를 다하며 강퍅한 마음의 굳은 돌이 깨어지고 제거되어 뿌리깊은 신앙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고통에 대하여 성도가 취할 반응

[호세아 6장 1절~3절]
1절 -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절 -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절 -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요즈음 자라나는 세대들은 우리 어릴 적과 비교해 볼 때 너무나 모든 것이 편비하고 풍족해서인지 고생이나 고통에 쉽게 넘어지는 것을 보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물질적인 풍족함 뿐만 아니라 고통을 이기는 법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우리 자신부터가 고통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배우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동네에 술을 많이 마시는 아버지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알콜중독이 된 그 아버지 때문에 그의 가정은 파산이 되었고 그의 두 아들은 파산된 가정을 떠나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수년 후에 한 심리학자가 그 알콜중독자의 두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알아보았더니 한 아들은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깨끗하고 총명한 좋은 사람이 되었고, 다른 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절망적인 술 주정꾼이 되고 말았더랍니다. 그때에 개별적으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둘이다 똑같은 대답으로 "당신 같으면 나의 아버지와 같은 분을 모셨을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 라고 되묻더랍니다.
한 개인이 훌륭한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나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생활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데 있지 않고, 어떤 사건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말하기를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10%가 사실이고, 90%가 그 사실에 대한 반응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고통과 근심거리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걱정과 근심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라는 찬송가 가사와 같이 고통은 누구나 예외없이 당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경제적인 고통,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가게 되는데 문제는 어떤 고통을 당하느냐가 아니라 고통을 당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긍정적으로 반응하느냐, 부정적으로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태능을 지나 의정부 쪽으로 가다보면 길 양편에 채소밭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더러운 쓰레기를 많이 펄쳐놓아서 흙이 안보일 정도인데 대지는 그 쓰레기를 흡수하여 배추, 시금치, 파등 싱싱하고 맛있는 채소를 내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그것을 잘 흡수하고 소화시키면 성공과 승리의 좋은 열매를 내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남들에게 불평하며 낙심하고 좌절하면 그는 패배자가 되고 폐인이 되는 것입니다. 고통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을 당할 때 잘 소화시키며 긍정적인 반응을 하게 되면 기적이 나타나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사람은 역경을 최상의 축복의 기회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발전과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매섭고 빡빡한 사람이 부드럽고 온순한 사람이 되고, 몰인정한 사람이 동정적이고 이해가 깊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결하여 집니다.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수건으로 죄악의 때를 밀어내서 깨끗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 119:67절에서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했고 또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고통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반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1.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역경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고통과 고난의 높은 산을 방파제로 바꿀 수도 있고 옮겨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기 쉽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미워하거나 하나님이 나를 영영 돌보시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조차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고통을 겪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으십시오.
오늘 본문에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론 우리를 연단시키고 바로 잡기 위해서 고통으로 찢으실 때가 있지만 도로 싸매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욥기 5:18절에 "하나님은 아프시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우연이란 없습니다. 반드시 배후에 하나님의 채찍의 손길, 사랑의 손길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잘못해서 죄값으로 받는 고통이라도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 4:1절에 보면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라고 했고 예레미야 애가 3:32절에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했습니다.

2.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평상시에는 신앙 생활을 잘 하는듯 보이다가도 그의 삶에 극심한 고통과 어려움이 닥쳤을 땐, 하나님은 뒷전으로 하고 인간적인 노력과 방법으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기도 합니다. 살아계셔서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기억지 못하고 기도할 것조차 잊어버리고 홀로 깊은 절망 가운데 빠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통에 대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은 반드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유한한 힘과 지혜로는 극복하거나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더욱 전능하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기도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도 고통을 당할 때 이방 나라 앗수르를 찾아가지도 말고 야렙 왕을 찾아가지도 말고(호 5:13) 오직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강하게 권면하며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설령 우리의 잘못과 죄로 말미암은 고통이라 할지라도 다시 우리를 싸매어 주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환난과 고통은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시 50: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하였고 시편 81:7절에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하셨습니다. 시편 120:1절에는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라고 간증했습니다. 고통을 당할 때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납니다.

3. 회개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죄 때문에 오는 고통이라면 속히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통이 물러가고 회복의 은혜가 임합니다. 애 3:40, 41절에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고 했으며 오늘 본문에도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고통을 당할 때,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즉시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앗수르를 찾아가거나 야렙 왕을 찾아갈 생각 말고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잠깐 사이에 고통이 지나간다는 뜻)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사 1: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미워서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도 아니며, 능력이 없어서 복을 안 주시고 문제 해결을 안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고통을 당할 때 믿음으로 언제나 긍정적인 반응을 합시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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