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2:22의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의 말씀대로 인간의 삶은 죄악의 반복성이 다분하다. 늘 헛된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잡고자 계속적인 범죄가 우리들에게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을 하나님에게 돌리고 그분만을 바라볼때 우리의 삶은 크게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호12:6에 언급된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늘 필요하다.
1. 하나님을 바라보라(호12장)
호12:1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먹으며는 소나 양이 꼴을 먹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꼴을 먹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람를 먹는다. 그리고 동풍은 지형적으로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기를 동반한다. 이 바람은 모든 식물을 말라 죽게 한다(욥15:2; 렘18:17). 이런 헛되고 공허한 일을 누가 하는가?
1) 인간적 판단으로 행동하는 자들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른다'는 비유는 호12:1 후반부에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와 연결된다. 결국 그들이 맺은 계약은 바람을 먹는 것이며 동풍을 따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이 인간의 도움을 바라고 앗수르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인간적 판단 때문에 파멸의 길을 자초하는 것이 되었다.
우리들 역시 인간적 판단에 근거할때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르는 격이 될 것이다.
2)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가 복된 자이다(삼상15:22). 목자가 양을 칠때 양이 말을 듣지 않으면 양의 다리를 꺾었다가 그 다리를 수일에 걸쳐 치료해 준다고 한다. 그러면 그 양이 주인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 때부터 말을 잘 듣는다고 한다.
하나님은 돌아오라고 명령하고 계신다(호12:6).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명령하신다(호12:6). 광야의 놋뱀을 바라본 자만이 구원을 받았듯이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
2. 이스라엘의 멸망 예언(호13장)
하와가 뱀에게 꾀임을 당해 선악과를 먹은데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나님만큼 올라가려는 인간의 욕망을 뱀은 간교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결국 교만으로 형성된 인간의 욕망은 파멸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 에브라임이 교만케된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그 원인을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피할 수 없는 심판은 어떤 형태로 에브라임(이스라엘)에게 나타났는가?
1) 권력과 패망의 왕들
호13:1에 에브라임이 권력을 가졌으며, 그 권력은 에브라임을 교만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왕상12:28에 따르면, 에브라임의 족속인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으로 우상을 섬기게한 사건이 나온다. 본문도 여로보암 2세의 번영이 그와 같은 우상 숭배를 낳게 했다. 호13:11에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왕'이 주는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인간 왕의 통치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이 함께하지 아니하는 통치의 모습이다. 그리고 여기 '왕을 주고'는 미완료형인데, 이에 대해 케일(Keil)은 여로보암 왕을 위시하여 계속 되는 인간적 통치의 왕들로 인한 계속되는 패망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이었다.
2) 배은망덕의 죄
해산하는 고통이 올 때에 아이를 속히 해산해야 하듯, 우리에게 있는 죄를 속히 회개해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로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은혜를 죄악으로 돌리고 그 죄악을 회개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의 죄를 범함으로 인하여 대대의 왕들을 통해 그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온전히 주님께 돌아서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3. 영원한 약속(호14장)
마지막 결론 부분인 14장은 다윗 왕을 구하고 말일에 여호와께 나올것(호3:5)을 에언한 호세아가 이제 남은 자들에게 다시금 선포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호14:2에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라고 기록한다. 호14:2의 메시지는 남은 자, 즉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우리들)을 향한 것인데 이 '선한 바'는 우리들의 무엇을 말하는가? 죄로 가득찬 우리에게 선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롬3:23).
1) 회개와 찬송의 입술
시147:1은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라고 기록한다. 이는 하나님께 찬양하는 입술이 선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14:3에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우리의 신이라고 부르지 아니하겠다는 회개의 모습이 나타난다. 결국 우리에게 '선한 바'는 행위의 올바름이 아니라 수송아지를 대신하는 회개의 입술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입술이다. 이런 의미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심은 그분의 사랑 때문이다(호14:4). 그래서 하나님께 가장 선한 예물은 상한 심령이라고 시51:17은 말한다. 이 '선한 바'가 '남은 자'(남은 이스라엘)에게 속한 것이다.
2) 남은 자를 향한 영원한 약속
호14:5은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고 기록한다. 원래 원문이나 칠십인역(LXX)에도 백향목이란 단어는 없다. 이것은 아마도 레바논 '산의 뿌리' 자체를 의미한 것 같다(욥28:9). 즉 이스라엘의 축복이 백합화 같이 피어오를 것이며, 그 지속성은 영원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산에 뿌리가 박혀 있으니 그 산이 없어지지 않는한 그 뿌리는 영원할 것이다. 그래서 주께 돌아오고(회개) 주의 사랑을 받는 자(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는 이 '영원한 약속'(남은 자에게 임할 약속)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호세아 14장 후반부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이루어진 사실을 언급하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에게 피할 수 없는 심판이 임했지만 남은 이스라엘에게는 심판이 아니라 사랑이 임했다. 그리고 영생의 약속까지 주어졌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한다. 그 명령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패망을 거듭하는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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