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2:22의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의 말씀대로 인간의 삶은 죄악의 반복성이 다분하다. 늘 헛된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잡고자 계속적인 범죄가 우리들에게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을 하나님에게 돌리고 그분만을 바라볼때 우리의 삶은 크게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호12:6에 언급된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늘 필요하다.

1. 하나님을 바라보라(호12장)
호12:1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먹으며는 소나 양이 꼴을 먹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꼴을 먹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람를 먹는다. 그리고 동풍은 지형적으로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기를 동반한다. 이 바람은 모든 식물을 말라 죽게 한다(욥15:2; 렘18:17). 이런 헛되고 공허한 일을 누가 하는가?

1) 인간적 판단으로 행동하는 자들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른다'는 비유는 호12:1 후반부에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와 연결된다. 결국 그들이 맺은 계약은 바람을 먹는 것이며 동풍을 따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이 인간의 도움을 바라고 앗수르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인간적 판단 때문에 파멸의 길을 자초하는 것이 되었다.
우리들 역시 인간적 판단에 근거할때 바람을 먹고 동풍을 따르는 격이 될 것이다.

2)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가 복된 자이다(삼상15:22). 목자가 양을 칠때 양이 말을 듣지 않으면 양의 다리를 꺾었다가 그 다리를 수일에 걸쳐 치료해 준다고 한다. 그러면 그 양이 주인의 사랑을 알게 되고 그 때부터 말을 잘 듣는다고 한다.
하나님은 돌아오라고 명령하고 계신다(호12:6).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명령하신다(호12:6). 광야의 놋뱀을 바라본 자만이 구원을 받았듯이 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

2. 이스라엘의 멸망 예언(호13장)
하와가 뱀에게 꾀임을 당해 선악과를 먹은데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나님만큼 올라가려는 인간의 욕망을 뱀은 간교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결국 교만으로 형성된 인간의 욕망은 파멸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 에브라임이 교만케된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그 원인을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르는 피할 수 없는 심판은 어떤 형태로 에브라임(이스라엘)에게 나타났는가?


1) 권력과 패망의 왕들
호13:1에 에브라임이 권력을 가졌으며, 그 권력은 에브라임을 교만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왕상12:28에 따르면, 에브라임의 족속인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으로 우상을 섬기게한 사건이 나온다. 본문도 여로보암 2세의 번영이 그와 같은 우상 숭배를 낳게 했다. 호13:11에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왕'이 주는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인간 왕의 통치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이 함께하지 아니하는 통치의 모습이다. 그리고 여기 '왕을 주고'는 미완료형인데, 이에 대해 케일(Keil)은 여로보암 왕을 위시하여 계속 되는 인간적 통치의 왕들로 인한 계속되는 패망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모습이었다.

2) 배은망덕의 죄
해산하는 고통이 올 때에 아이를 속히 해산해야 하듯, 우리에게 있는 죄를 속히 회개해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로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은혜를 죄악으로 돌리고 그 죄악을 회개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의 죄를 범함으로 인하여 대대의 왕들을 통해 그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온전히 주님께 돌아서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3. 영원한 약속(호14장)
마지막 결론 부분인 14장은 다윗 왕을 구하고 말일에 여호와께 나올것(호3:5)을 에언한 호세아가 이제 남은 자들에게 다시금 선포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호14:2에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라고 기록한다. 호14:2의 메시지는 남은 자, 즉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우리들)을 향한 것인데 이 '선한 바'는 우리들의 무엇을 말하는가? 죄로 가득찬 우리에게 선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롬3:23).

1) 회개와 찬송의 입술
시147:1은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라고 기록한다. 이는 하나님께 찬양하는 입술이 선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14:3에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우리의 신이라고 부르지 아니하겠다는 회개의 모습이 나타난다. 결국 우리에게 '선한 바'는 행위의 올바름이 아니라 수송아지를 대신하는 회개의 입술과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입술이다. 이런 의미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심은 그분의 사랑 때문이다(호14:4). 그래서 하나님께 가장 선한 예물은 상한 심령이라고 시51:17은 말한다. 이 '선한 바'가 '남은 자'(남은 이스라엘)에게 속한 것이다.

2) 남은 자를 향한 영원한 약속
호14:5은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고 기록한다. 원래 원문이나 칠십인역(LXX)에도 백향목이란 단어는 없다. 이것은 아마도 레바논 '산의 뿌리' 자체를 의미한 것 같다(욥28:9). 즉 이스라엘의 축복이 백합화 같이 피어오를 것이며, 그 지속성은 영원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산에 뿌리가 박혀 있으니 그 산이 없어지지 않는한 그 뿌리는 영원할 것이다. 그래서 주께 돌아오고(회개) 주의 사랑을 받는 자(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는 이 '영원한 약속'(남은 자에게 임할 약속)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호세아 14장 후반부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이루어진 사실을 언급하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에게 피할 수 없는 심판이 임했지만 남은 이스라엘에게는 심판이 아니라 사랑이 임했다. 그리고 영생의 약속까지 주어졌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한다. 그 명령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패망을 거듭하는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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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세아의 신학

1) 야훼의 백성
호세아는 보통 명사 !yhla (엘로힘; 하나님)보다는 고유 명사 hwhy(야훼)를 즐겨 사용하였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기 위함이다.

2) 계약 파기
호세아는 하나님 백성의 죄를 세분야에서 찾았다.
첫째, 계약을 어기고 그 법을 무시한 사실이다. 시내산으로 지적되지는 않았지만 출 19,20장의 사건을 잘 알고 있었고,이스라엘의 불순종을 꼬집었다(호4:6; 호8:1,12).
둘째, 왕국 역사에서 기드온의 왕위 거절(삿8:23), 사무엘의 왕권 비평(삼상8:10-18)과 일맥 상통한 예후의 유혈 혁명(삼하 10장; 호1:4), 백성들의 왕 요구(삼상8:6,19; 호13:10)등을 언급하며 사울의 취임지 길갈을 하나님이 왕을 미워한 장소로(삼상11:15; 호9:15) 왕제도 자체를 신의 뜻을 거역하는 악으로 간주하였다(호8:4; 호13:11).
셋째, 위선적 예배를 지적한다. 문제의 발단은 왕국 분열 직후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건립이요(왕상12:29), 이것이 특별한 질책의 대상이 되었다(호8:6; 호13:2). 그러나 가장 비난 받은 것은 가나안의 풍요신 바알 숭배이다. 일기와 농업에 연결된 바알은 생명의 생산 보존자요, 그 이름 자체가 '남편'이란 뜻의 남녀 성의 결합을 의미한다.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면이 대부분인 바알 예배는 도덕적인 요구가 없다. 이세벨의 바알 종교부흥 운동을 휩쓸었던 북왕조의 야훼 신앙의 퇴색은 바로 이스라엘의 음녀화를 말한다(4:10; 호5:3; 9:1). 호세아의 세아들의 이름도 이런 배경에서 지어진 이름이다(호1:4,6,9). 야훼가 이스라엘의 남편이 아니라(호2:2)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불충성을 말한다. 바알과의 타협을 거절하고 야훼가 '처음 남편' (호2:7,16)으로 장가들었다고(호2:19) 상기시킨다. 또한 곡식, 술, 기름, 과일 등의 생산도 하나님이 하신다고 선언한다(호2:8; 호9:22; 호14:8).

3) 복귀 시기
계약 파기가 목적이 아니라 계약 관계 지속이 신의 의도이다. 이스라엘 선택시의 사랑은 영원 불변하며, 창녀된 아내를 사오기까지한 사랑이다.

4) 징벌
호세아는 희망적인 예언자이기는 하지만 낙관주의자는 아니었다. 돌아오는 이스라엘을 맞을 준비는 되어 있으나 이스라엘의 회개는 쉽게 오지 않게 되어 있다. 변심과 참회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심한 '얻어 맞음'이 없이는 안되게 되어 있는 처지에서 채찍은 무섭다. 좀 같으며 썩이는 것같이(호5:12), 공중의 새 그물 같이(호7:12), 이슬 같이, 쭉정이 같이(호13:3), 사자 같이, 표범 같이, 곰 같이(호13:7-19) 심하게 징계하실 것이라 하였다.

5) 회복 약속
호세아의 중요 부분마다 약속의 구절이 길게 달려 있다. 분별의 사랑은 종국에 가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한다(호2:14,15). 놀라운 선언은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섬멸하지는 않으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호11:8). 이처럼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으로 대조시켰다. 지난 날에 대한 심판이 열매가 풍성한 하나님의 구속적인 은혜로 작용하는 것이다(호14:7).

2.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결과

1) 이스라엘에서 참된 예배가 끝이 날 것이다(호9:1-9)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되어 잡혀갈 땅에서는 하나님께 예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호9:3-5).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에 그에게 예배하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2) 이스라엘에는 지속적인 열매가 없을 것이다(호9:10-17)
이것은 포로되어 잡혀가는 이스라엘에게 장래에 대한 소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열매가 풍성한 포도나무가 되게 하고 또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부르셔서 많은 자녀를 허락하셨지만, 이제는 그들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며, 장래에 대한 소망도 없을 것이다(호9:11,12,14,16).

3) 이스라엘 왕국과 아울러 그들의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호10:1-15)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모시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왕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호10:3). 그들과 그들이 소유한 모든 재산은 앗시리아로 옮기어 갈 것이며(호10:6), 사마리아에서는 왕위를 이을 자가 끓어질 것이다(호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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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나 죄악 속에서 살고 있다. 더 나아가 그 죄악들을 보면서 자기도 그 죄를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따라서 우리의 의지대로만 움직여 간다면 우리는 죄로 인하여 영원히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다.
호세아서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행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축복이 있음도 잊지 않고 언급하신다.

1. 패역함의 원인(호4-6장)
인간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기 때문에 성경은 그 죄들을 고발하고 있다. 호4:2은 다섯가지의 죄를 고발하고 있다. 저주, 사위(詐僞), 살인, 투절(偸竊), 간음 등이 그것이다. 이 부분의 히브리 원문은 부정법 절대형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의 죄악상이 만연되었음을 강조하는 한 단면이다. 이 땅에서 자행되는 이스라엘의 죄악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악한 것인가? 그러면 이러한 죄악의 원인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
이것이 호세아가 설교한 첫부분의 주제이기도 하다. 지식이란 히브리 말의 어근은 tpd(다아트)이다(렘4:22; 5:4). 여기서 다아트는 [dy (야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단순한 지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사단이 하나님을 알듯이 어떤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한다"(롬1:21)는 마귀의 지식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요일4:7,8)과 또는 계명을 지키는 것(요일2:3,4)이 꼭 동반되어야 한다.

2) 회복의길
이스라엘이 패역한 원인을 호세아는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수님도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요17:3).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송용조 목사는 회복의 길이"하나님 앞에서 진실과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가지는것"임을 강조한다.

2. 형벌의 날과 길갈(호7-9장)
호9:7"형벌의 날이 이르렀고"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형벌의 날은'길갈'이 주는 의미를 찾음으로써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면 호9:15의 '길갈'과 '형벌의 날'은 어떤 상관성을 갖는가?

1) 하나님의 공의(죄 그리고 심판)
호9:15에 악이 '길갈'에 있기에 저희를 미워하고 그 행위가 악해서 내집에서 쫓아내신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여기서 길갈은 가나안 입성의 첫 장소로써 하나님의 긍휼을 크게 입은 곳이다. 내집은 호8:1에서 보듯이 기업의 백성, 이스라엘 자체를 의미하는데, 이는 무형한 하나님의 집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 깊이 임했던 길갈(내 집)에 형벌의 날에 임할 심판이 내려진 것이다.

2) 오늘날의 물질주의
송용조 목사는 이스라엘의 악한 행위에 비추어, "오늘날 만연한 물질주의와 육체적 쾌락주의는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고 음행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악을 일깨우시고자 호세아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 여겨진다. 오늘날의 만연한 물질주의는 분명 우리 기독교인들이 거부해야 할 문제이다. 만약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물질주의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본문의 이스라엘 추방의 의미는 오늘날 교회에도 주어질 것이다.

3. 멍에와 하나님의 의(호10,11장)
호10:11은 하나님의 징계로써 오늘 그들의 곤고한 날을 예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호10:12에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는 말씀은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셔서 너희에게 의를 가르치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11절과 12절은 엄청난 차이를 주고 있다. 전자는 징계요, 후자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사랑의 깊이
호11:1은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라고 기록한다. 여기의 bha(아헤브; 사랑)는 '선택의 사랑'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셨던 것처럼(말1: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 이 사랑의 표현이 11절과 12절에 나타난다.
11절은 이스라엘이 율법에서 허락한 축복은 좋아하나 율법이 요구하는 의무와 책임은 싫어한다는 내용이다. 그러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의 의를 비처럼 내리신다고 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가를 나타내는 한 단면이다. 그리고 호11:8에 가서는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고 하신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곧 우리를 향한 사랑임을 알게 된다면,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 우리의 온 마음이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2) 하나님께 나아가는자
예수의 비유 말씀 가운데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올때 아버지는 아들의 더러운 그 모습 그대로 맞이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모습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이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들 역시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져서 더 이상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그의 사랑을 끊지 아니하신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식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계명을 지키는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스라엘은 이것이 부족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씻어 주시고자 그의 독생자를 보내셨다. 이것은 의를 비처럼 내리시는(호10:12)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이 사랑을 깨닫고자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길 하나님은 언제나 기다리시고 계신다(계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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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세아서의 문체와 구성방법

호세아서는 아모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구성에 있어서 논리적이지 못하고 단편적인 기사들을 나열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논리의 결핍은 고대의 유명한 저서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호세아서의 서론 부분은 이 예언서 전체에 대한 서론으로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 서론에 이어지는 산문체의 예언의 말씀과도 논리적 연관성이 없다. 그러므로 완벽한 예언서로 구성되었다기 보다는 단편적인 예언의 말씀들을 종합해 한데 모아 놓은 것일 뿐이다. 이 예언서는 마치 파도가 칠때 물결이 반복되는 것과 같은 반복적인 히브리 문학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대담한 선포 랍소디(Rhapsody) 시가 계속해서 반복되어지는 문학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개개의 메시지에서 선포되는 예언 역시 변화 무쌍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속을 꿰뚫고 있는 주제나 말씀은 놀라우리만큼 분명하다. 호세아는 타락한 백성들을 향한 여호와의 열정적인 사랑으로 이 예언서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가 메시지를 선포했던 방식은 아모스와는 다르다. 아모스는 죄를 범한 자가 백성이든 왕이든 누구에게나 대담하고 강렬한 어투로 비난한다. 그러나 호세아는 하나님의 인애를 가지고 탄원으로 백성들을 설득하려 한다.

2. 호세아 시대에 일어난 일들

호세아가 활동한 시대는 슬프고 비극적인 시대였다. 하늘의 진노가 이 배도한 백성들 위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 나라는 분단의 고통을 겪었으며, 그것은'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한 여로보암'이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긴 그의 수법으로 인한 것이다. 법적인 의무는 이완되었으며, 종교적 주장은 무시되었다. 바알신은 여호와의 상대가 되었으며, 어두운 숲 깊숙한 곳에서는 이교도적이고 퇴폐적이며 살인적인 의식이 자행되었다. 외국의 침략과 내분으로 시달리게 되자 나라 안은 평화와 번영이 사라지게 되었고, 무력과 살인으로 왕좌를 노리는 다른 나라와의 동맹으로 그들은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의 백성들에게 사로잡히고 온갖 수모를 겪었으며, 온 나라가 완전히 위신을 잃게 되었으나 일부는 영적인 충절을 잃지 않았다.

3.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에 대한 여러 관점

1) 상징적 관점
이 결혼은 실제로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에서의 설명은 단순히 환상이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상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예언자에게 부정한 여인과 혼인하라는 명령은 결코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별히 제사장에게는 금지된 것이다.(레21:7,14). 이러한 관점의 대표자인 영(Edward J.YOUNG)은 만일 호세아가 부정한 여인과 진정으로 결혼했다면 그의 사역은 흔들렸을 것이며, 그의 세자녀들이 태어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각각의 이름의 뜻에 관하여 주신 메시지의 내용(호1:4-7-9)은 호세아의 사역중의 메시지와 관련되어 그 의미를 갖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2) 실제적 관점
이 결혼은 실제 발생했으며, 고멜은 단지 결혼 전에 일시적으로 매춘부 역할을 한 부정한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며, 만일 우리가 다른 방법으로 취급한다면 결코 논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이다.

3) 이교도적 관점
비교적 좁게 받아 들여지고 있는 것으로써 이 이야기 속에는 이교도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곧 고멜은 호세아 당시에 우상 숭배가 이스라엘에 널리 퍼졌던 것처럼 거짓 신을 숭배했다는 의미에서 부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이유는 이 설명이 앞에서 드러난 윤리적 관점을 제거시킬 뿐 아니라 성경 자체가 간음 행위를 영적으로 불결한 행위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예언적 관점
이 결혼은 실제로 일어났는데 고멜은 결혼할 당시에는 순결했으나 그 후에 부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위 예언적인 관점(Proleptic view)이라고 불리우는 이 관점은 보다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일 고멜이 호세아와 결혼할 당시에 매춘부가 아니었다면 두번째 관점에 대한 반대 논리는 제거된다. 호세아는 그의 아내가 장차 부정한 여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결혼에 대하여 숙고하고 그것을 실행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에는 윤리적인 문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호세아가 고멜을 지극히 사랑했다는 관점과도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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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상대방이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고멜과 결혼을 하게 된다. 호세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것을 보면서 그와 같은 모습으로 고멜을 깊이 사랑하였다.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고멜을 사랑하게 된 동기는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결국 그들의 결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 나누어지고 있다. 즉 두사람의 연합은 예언자적인 의미를 담은 연합인 것이다.

1.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호1장)
호세아서에 나타난 고멜은 실제적 인물인가? 아니면 단지 이스라엘을 비유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존재하는가? 만약 상징적인 인물이라면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1) 실제적인 상황
일부 신학자들은 음란한 아내에 대하여 직업적 창기가 아니고 그 잠재성을 가진 처녀라고 말한다. 즉 신실치 못한 이스라엘 백성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음란한 아내가 그 잠재성을 가진 처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스라엘 역시 아직 죄악으로 빠지기 전의 모습일 것이다. 이는 호세아서 전체의 흐름을 가로막는다. 호세아는 한명의 고멜을 사랑한 것이지 여러명의 창기를 다루었던 것은 아니다. 신약에서 메시야는 세리와 창기들, 즉 죄인들을 찾아 다니셨다. 이 점을 볼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강력한 호소의 수단으로서 호세아의 실제적인 상황을 사용하신 것이다.

2)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일은 치명적인 죄이다. 고멜을 더럽다고 말하는 이스라엘은 바로 자신들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택 받은 백성을 향하여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스라엘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호세아가 고멜을 사랑하는 모습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했다. 호세아가 고멜을 사랑하듯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며, 또한 우리를 거룩한 모습으로 사랑하신다(롬5:8).

2. 음란한 아내로서의 이스라엘(호2장)
칼빈(Calvin)는 호1:2의 "여호와를 떠나"를 '여호와를 따르는데서 떠나'로 해석했다. 이는 여호와를 알고 따르다가 그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는 말이다. 이렇게 여호와를 떠난 이스라엘에게 호2:19은 "내가 네게 장가들어"라고 말한다. 성경에 '장가든다'는 표현이 세번 나오는데, 매번 부가적 축복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부가적 축복들은 어떤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긍휼이 근거가 됨
"장가든다"는 표현에 대해, 박윤선 박사는 "새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종교적 관계가 완전하여 지며 영원하게 됨을 약속하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렘31:34에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시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장가드신다. 호2:19,20은 그들에게 장가들겠다고 하시면서 세가지의 부가적 요소를 첨가시키신다. 첫째는 영원한 삶, 둘째는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 그리고 셋째는 진실함이 포함되어 있다.

2) 예수그리스도의 오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찾아가서 장가 들겠다고 하신 근거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다. 이스라엘의 어떤 모습도 하나님을 끌어 들일 수는 없었다. 즉 이스라엘의 모습이 하나님을 찾아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긍휼과 자비하심 때문에 그들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은 인간의 모습이 좋아서 오신 것이 결코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그분을 이 땅에 오게 한 것이다(요3:16)

3. 몸값을 치루어야 했던 호세아(호3장)
종이 황소에게 상처를 입었을 때에 그는 은 30세겔을 받았다(출21:32). 그런데 여기 고멜을 위하여는 은 15개 밖에 되질 않는다. 제롬(Je-rome)은 이 은 15개에 대해서 "그 달 15일에 애굽에서 나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즉 이스라엘이 출애굽히는 날이 15일이기 때문이며, 한 호멜 반은 45말인데, 이는 율법이 출애굽한 후 45일 뒤에 선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 반
은 30에 팔리운 예수(마27:3)는 아무 죄가 없으셨다. 은 20에 팔리운 요셉(창37:28)도 그 형들에게 잘못한 것은 없었다. 오늘 여기 호세아 역시, 은 15개와 보리를 가지고 고멜을 찾아가야 할만큼의 잘못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값을 치루는 부분 속에는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사랑이 담겨져 있다. 요셉이 팔리움으로 그의 가족을 구원하였고, 호세아가 고멜을 위해 값을 치룸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듯이, 예수가 은 30에 팔리움으로 인하여 죄악의 노예가 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2) 노예 상태의 이스라엘을 위함
선지자에 의해서 일부는 돈으로, 일부는 물품으로 지불된 것은 보통 여종의 몸값에 해당한다. 보리 한 호멜 반은 간음의 의심을 받은 여인을 위해 드려진 예물이었다(민 5장). 그리고 은 15개는 액수가 적은 것으로 보아 신분의 미천함을 확실하게 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노예 상태를 부각시키는 한 단면이다. 이스라엘은 영적인 노예 상태였으므로 그들은 이방의 음란함과 물질주의에 허덕이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런 우리들을 위하여 값을 치루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마5:44).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대로 실천하시고 계신 말씀임을 깨닫는다. 인간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특별한 축복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 원수가 된 이스라엘을 찾아오셔서 자신의 사랑을 그대로 쏟아 놓으신다. 우리 역시 그 사랑을 받았으므로 호세아가 고멜을 위해 사랑을 쏟듯이 우리의 이웃에게 사랑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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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세아서의 위치

호세아의 명칭은 저자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그 이름은 구원이란 뜻이다. 호세아가 12소선지서 중 맨 앞에 기록되어진 이유는 이 책이 그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것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 중에서 가장 방대한 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스가랴서가 호세아서보다 조금 더 길지만 내용이 포로 시대 후의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학자들의 일반적인 결론은 요엘서의 연대를 유다왕 요아스 시대(B.C.835-796)로 보는데 호세아서는 여로보암 2세때(B.C.793-753)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때 호세아서가 12소선지서의 첫째 책이 된 것은 그 연대도 고려한 것이겠지만 특별히 그 분량을 생각한 때문일 것이다.

2. 호세아서의 세가지 악

1) 우상 숭배
예배는 종교의 중심이다. 예배를 통해서 사람은 그가 믿는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며, 하나님과 의식적인 교제에 들어간다. 예배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생활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려는 경험 가운데로 이끄는 것이다. 예배가 부패할때 신앙과 도덕이 부패한다. 호세아는 이 관계를 명확하게 하려는 예언자 가운데 최초의 사람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가운데는 이교적 요소가 많이 섞여 있었다. 즉 그들의 신관은 가나안인들의 영향으로 타락했고 여호와와 바알을 동일시했으며 심지어 그들의 하나님을 바알이라고 부를 정도였다(호2:16). 그들의 성소에는 여호와 대신 송아지의 상을 세웠다. 그들의 예배는 장식과 연락에 기울어지고 신령성이 없었다(호2:8-13).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였고 입술로만 하나님을 불렀다. 호세아는 종교에 대해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라 주장했다.

2) 계약의 파괴
호세아는 계약의 신성을 무시하는 민족의 멸망을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고 권위있게 강조하는 예언자들 가운데 첫번째 사람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계약 관계에 있으면서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알 우상을 섬기고 외국을 의존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체결된 계약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

3)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죄악과 책임을 그들 백성에게 두지 않고 그 종교 지도자들에게 두었다. 국가의 급속한 멸망은 그 종교 지도자들이 부패하였을 때에 왔다.

3. 호세아의 공헌

1) 새로운 신관
호세아가 이스라엘 종교에 대해서 한 최대의 공헌은 그의 신관이다. 호세아가 가르친 새로운 교훈은 야훼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라는 관념이었다. 호세아는 야훼와 이스라엘을 사랑의 끈으로 묶으려고 노력하였다. 호세아 이전에는 아무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그와 같은 강렬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호세아의 죄의 성질에 대한 심오한 해석과, 구속하시고 신생케 하시는 힘으로써의 하나님 사랑에 대한 관념은 후대 종교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고난에 대한 새로운 해석
사회적, 정치적 재난은 죄의 결과라는 것은 모든 히브리 예언자들이 인정하는 원리였다. 그러나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당하는 모든 고난은 야훼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해석하였다.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품을 떠난 백성들이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즉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채찍이라고 해석하였다.

3) 야훼를 아는 지식
호세아는 야훼를 아는 지식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임을 아는 것이 종교 경험의 불가결의 요소라고 생각하였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을 그들의 무지의 결과로 보았다. 즉 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불충성은 무지에서 온 것이라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가치를 알았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생명임을 알았다. 의와 사랑과 믿음은 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온다.

4) 안정의 소재
호세아 시대의 정치 지도자들은 두파로 갈라져 하나는 앗수르와 동맹할 것을, 다른 하나는 애굽과 동맹할 것을 주장하였다. 호세아는 이 두파에 대하여 다같이 경고하고 외국과 동맹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였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멸망은 군사력의 부족에 기인하지 않고 종교적, 도덕적 부패가 그 원인임을 명백히 하였다. 이스라엘을 강하게 하는 오직 하나의 길은 도덕적 신생뿐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저자

이 책의 저자는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라고 호1:1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다소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였다. 호세아의 실제적 출생지가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북왕국 이스라엘 출신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호7:5에서 북왕국의 왕을 가리켜 '우리 왕'이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1:1에 유다 왕들을 먼저 기록함은 호세아가 다윗 왕의 계통을 정통으로 여기는 사상적 입장을 가졌기 때문이다.

2. 시대적 배경

대체적으로 호세아의 사역 시기를 주전 764-742로 잡는다. 당시는 이스라엘이 부와 번영을 누리던 시대였다. 왕하14:25에 따르면, 여로보암 2세(Jeroboam Ⅱ B.C.793-753)가 솔로몬 시대를 견줄만한 부와 번영을 누렸으며, 아람의 침략으로 잃었던 영토까지 되찾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 아들 스가랴(Zechariah B.C.753) 이후 살룸(Shallum B.C.753)과 혁명을 일으킨 므나헴(Menahem B.C.752-742),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Pekahiah B.C.742-740), 다시 혁명을 일으킨 베가(Pekah B.C.740-732)와 이스라엘 최후의 왕 호세아(Hosea B.C.732-722)를 거쳐 패망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유다는 호1:1에 언급된대로 애굽 변방까지 강성하여 암몬 사람에게 조공을 받았던(대하26:8) 웃시야(Uzziah B.C.767-739)와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여 점점 강성하였던(대하27:6) 요담(Jotham B.C.739-731)과 다윗 왕과 비교해 볼때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여 하나님께 징벌을 받은(대하28:1-7) 아하스(Ahaz B.C.731-715)와 성전 중건과 개혁을 일으킨 히스기야(Hezekiah B.C.715-686)가 나라를 다스린 시대였다. 대체로 이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치적인 안정 속에서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의 공격을 받아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됨으로써 주전 722년에 멸망하고 말았다.

3. 전체 내용 요약

먼저 1-3장을 첫부분으로 볼 수 있는데, 호세아의 결혼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하나님의 명을 받은 호세아가 성실치 못한 고멜을 아내로 취하게 되고 그녀에게서 두아들(이스르엘,로암미)과 딸(로루하마)을 낳게 된다. 이들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에게 증거되고 있다. 마지막까지 고멜을 버리지 아니하는 호세아를 통하여 징계와 회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본다.
그리고 4-11장을 두번째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전체가 13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이중에 7단락이 이스라엘의 범죄를 나열하고 있다. 대체로 이들을 요약하면,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 우상 숭배, 잘못된 외교 정책, 회개를 거역하는 죄, 배교 등이다. 이에 대해 4단락에서 그들의 죄에 대한 징벌(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한다. 그러나 마지막 단락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 부분은 12-14장인데, 전체적으로 다음의 순서를 가진다.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범죄, 이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심판을 피하지 못하는 파멸, 회복에 대한 약속 등 분명히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다. 범죄자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 그러나 호세아서 전체를 볼때 범죄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읽을 수 있다. 결국 마지막에 호세아가 고멜을 찾듯이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셨다.

4. 구속사적 의미
호세아에서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먼저 이스라엘은 음녀이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국가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욕구를 만족하고자 음란한 열정을 쏟고 있다고 지적한다(호4:1-2; 호12:8; 호13:2). 결국 그들은 열방의 물질주의가 주는 함정에 빠졌다. 이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악의 병은 스스로는 회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하여 그들을 깨우쳐야만 했으며, 그 병을 치료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회개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했다. 돌아옴에 대하여 호12:6은 하나님만 바라볼 것을 원하고 있으며, 그리하면 의를 비같이 내린다고 기록하고 있다. (호10:12)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광야에서 그들을 돌보시고 계시를 주시며 가나안을 정복케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보다 가나안의 문화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계신다고 호세아서는 기록한다. 이제 그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은 회복의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다. 호세아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세가지의 구속사적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1) 언약갱신
이 언약 갱신은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변경하는데서 나타난다. ym[al (로암미; 내 백성이 아니다)가 ym[ (암미; 너는 내 백성이다,호1:10; 2:1)가 되고, la[rzy(이스르엘; 피흘림)이 하나님께서 풍요를 주신다는 뜻(호2:22, 23)으로 되며, hmjral (로루하마;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가 hmjr (루하마;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로 되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그들의 저주가 축복으로 변했다. 이들의 새로운 이름을 정리하면 내 백성, 소망, 긍휼 등이며, 이들은 하나님의 새백성의 이름이다.

2) 하나님의 새 백성
이 새 백성은 신랑과 신부의 개념에서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신랑이고 언약 백성은 신부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신부, 즉 새 백성으로 맞이한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창조 언약과 아브라함, 모세, 다윗 언약의 혜택을 모두 베푸신다. 이는 신약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에 비유한 상징들을 이해하게 한다(엡5:26,27; 계21:2,9; 계22:17).

3) 새 지도권
호세아 첫부분에 유다 왕을 나열함(호1:1)과 남북이 통일됨으로써 북이스라엘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호1:1)그리고 이스라엘이 돌아와서 다윗 왕을 구한다는 것(호3:5) 등은 호세아의 사상이 다윗 계통임을 가리킨다. 즉 다윗의 혈통에서만 예수그리스도(메시야)가 올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호세아는 언약의 새 백성에 대한 지도권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지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언약주가 될 것이다(호6:6). 이는 이방이나 유대 모두에게 속한 것이다(롬10:1).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제목 :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이병우 목사)

 

[호세아 10장 12절~13절]

12절 -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3절 -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1.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회개하라)
  - 묵은 땅은 폐허를 말한다. 우리의 심령도 마찬가지다.
  - 잠언20:4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부지런하라)
  - 에스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새 마음을 주어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
  - 묵은 경험이 굳어지게 만든다.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
  - 묵은 지식으로 인하여 교만하게 된다.
  - 묵은 감정이 굳어지게 한다.


2. 공의를 심고 사랑을 심자. (의로운 씨앗을 뿌려라)
  - 시편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 고린도후서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심는대로 거둔다)


3. 그 의를 비처럼 내려주신다. (축복의 비, 은혜의 비를 너희에게 내려주신다)
  - 아모스5:6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 이사야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여호와를 찾으라)
  - 야고보서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 신명기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 시편65:10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 이사야44: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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