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회개의 초청 14:1-3

 

(1) 회개의 초청이 죄인에게 친절히 베풀어지고 있다(1절).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겨냥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부르신다. 회심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교회울타리내에 있는 자들에게도 선포되어야 한다.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우상은 그들의 거침돌이었다. 죄는 타락이며, 죄로 넘어진 자는 회개에 의해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유의하라. 너는...여호와께로 돌아와서. "너는 네가 의지하는 주 여호와시오 네 하나님이시니 그에게로 돌아오라. 여호와께 돌아오라. 여호와께 완전히 돌아오라." 이 말씀에 근거해서 고대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은 금언을 만들었다. "회개는 위대한 일이로다. 왜냐하면 회개는 사람을 영광의 보좌에까지 데리고 가기 때문이로다."

(2) 회개의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1)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올때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희생이나 제물을 가지고 오라고 요구하지 않고 오직 참회의 기도, 즉 결실을 가지고 오라고 요구하신다. 그것은 입술만의 열매가 아니라 마음의 열매이기도 하다. 마음이 먼저 혀에게 지령을 내려야 한다.

2) 그들은 어떻게해야 하는지도 숙고해야 한다. 그들은 말씀을 가지고 가야할뿐만 아니라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한다. 즉 내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서야할뿐만 아니라 외적생활로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

(3) 그들을 돕고 격려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입에 말씀을 넣어주시기를 기뻐하시며 할말을 기꺼이 가르쳐주신다.

1) 그것은 간청하는 말들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간청하도록 지시하는 일은 두가지이다.

① 죄로부터의 사면 :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갈때는 여호와여 우리의 '모든 불의를 제하소서'라고 아뢰어야 한다. 불의를 제하소서. "그것은 우리를 무게에 못이겨 무릎꿇게 하는 짐이나이다. 그것은 우리를 자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거침돌이나이다. 여호와여. 그것을 치워주소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그것을 제거할수 없기 때문이니이다."

②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열납되는 것 : 선한바를 받으소서. "우리로하여금 당신의 은총과 사랑을 받게하시며 우리 기도를 은혜로이 받으소서. 당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행할수 있게된 선한바를 기뻐하소서." 이것은 불의를 제해달라는 청원에 이어나온다. 왜냐하면 우리에게서 불의가 제거되지 않는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선한 것을 기대할수 없기 때문이다. "선을 주소서. 즉 우리를 선하게 만들고 다시는 불의로 되돌아가지 않게할 선을 주소서."

2) 그것은 약속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이런 말들을 그들의 입에 두심은 하나님을 감동시킴이 아니라 그들을 감동시키기 위함이다. 그들은 두가지 일을 약속하고 서약하고 있다.

① 감사 :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기뻐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70인역에는 우리 입술의 열매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번제에 사용하는 말로써 히브리어와 일치한다(참조. 히 13:15).

② 생활의 개선 : 그들은 이것을 구두로 고백할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개혁할 것에 대해 약속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은 외국 동맹군을 의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우리는 과거처럼(호 5:13; 호 7:11; 호 8,9) 곤경에 처해있을때 앗수르의 도움을 청하지 않으리이다. 우리는 앗수르에게 신세지는 것을 냉소하나이다. 말을 타지 아니하며. 즉 우리는 애굽에 원조를 청하지않을 것이나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굽에서 말을 가져왔기 때문이다(신 17:16; 사 30:16; 호 31:1,3). 우리는 이세상의 이득에 열중하거나 외면적 경건행위를 자랑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런것도 사실상 '우리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해 너희는 우리 신이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들의 입에서는 탄원의 말이 나오고있다.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도움을 얻을줄로 기대해도 된다. 그는 그들이 사면초가의 형편에 있음을 바로 알고계시며 또 그 점을 기꺼이 인정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런 형편에 놓인 자에게 언제나 인자하셨다는 점을 들어 탄원한다. "고아는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을수 있으며, 또 얻을 것이로소이다."

 

Ⅱ. 자비의 약속 14:4-7

 

여기에는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기도에 대한 평화의 응답이 나오고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의 찾음은 헛되지않을 것이다.

(1) 그들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두려워하여 탄원하며 돌아오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순종하면 그의 진노가 그들에게서 떠난다는 것을 확언하신다. 이것이 여기서 약속되는 기타 모든 은총의 기초로 제시된다.

(2) 그들은 불의를 제해달라고 기도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패역'을 고치시겠다고 확언하신다. 그는 예레미야 3:22절에서 그와같이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사유하시는 자비로써 그들의 패역하는 죄를 고치실 것이며 새롭게 하시는 은혜로써 그들의 물러나는 결심을 고치실 것이다.

(3) 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이 받아주시기를 기도하는가? 보라,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내가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라'고 약속되어 있다.

(4)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을 주시며 자기들을 선하게 만들어주시기를 기도하는가? 보라,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라'는 것이 약속되고 있다(5절). 이것은 곧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축복을 보증한다. 그리고 이것은 패역을 치료하는 것에 뒤이어나온다. 사유하시는 자비에는 항상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악하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선하게 되었듯이 그들역시 그 은혜에 의해 더욱 선하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은혜는 어디에서든 점점 자라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합화같이 될것이며 자랄 것이다. 백합은 성장이 매우 빠르다. 백합뿌리는 겨우내 땅속에서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슬로 다시 기운을 얻으며 순식간에 우후죽순처럼 자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도 때때로 어린 회심자를 매우 빨리 성장시킨다. 백합은 참으로 빨리 자라며 모양도 예쁘게 자라지만, 곧 시들어버리며 사람들이 쉽사리 따낸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백합의 꽃과 함께 백향목의 뿌리도 가진다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약속된다. 저기...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레바논의 나무들은 뿌리를 깊이 박으므로 절대로 뽑히지 않는다(암 9:15). 영적성장은 대부분 뿌리의 성장에 있어서와 같이 눈에 보이지않는다는 것을 주목하라. 우리가 그리스도께 많이 의존하여 그로부터 수액과 미덕을 많이 뽑아올리면 올릴수록 우리는 더욱더 신앙적 원칙에서 행동하게 되며 그 신앙적 원리속에서 더욱 견실하고 확고하면 할수록 우리의 뿌리는 더욱 깊이 박히게 된다. 그들은 사면으로 자라게 된다(6절). 그 가지는 사방팔방으로 퍼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포도나무같이 자랄 것이다. 포도나무 가지는 다른 어느 나무보다 멀리 퍼진다. 그들은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다 은혜롭고 열납받게될 것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나무에 비유되고 있다.

1) 보기에 좋은 나무 :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을 것이라'(렘 11:16). 감람나무는 항상 푸르다. 규례와 법도는 교회의 아름다움이며, 성결은 영혼의 아름다움이다.

2) 향기로운 나무 : 그 향기는 레바논...같으리니(6절).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7절). 교회는 온갖 향품이 나는 동산에 비유된다(아 4:11,13). 은혜는 영혼의 향품이다(전 7:1). '그 기념은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될 것이다'(난외주는 그렇게 해석한다). 그들이 사라진뒤에 남는 명예도 '레바논의 포도주' 같을 것이다. 레바논의 포도주는 향긋한 맛이 여운을 남긴다. 여기서 교회는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로 비유된다. 이 나무들은 유용한 열매들을 많이내어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영광을 돌린다.

 

Ⅲ. 엄숙한 권면 14:8,9

 

1. 에브라임에 대한 권면(8)

(1) 에브라임의 회개와 개선 :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어떤학자가 해석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왜 우상숭배를 끊어야하는지 에브라임과 쟁론하시며 설득하신다. "에브라임아 나와 우상이 무슨 상관이냐? 나와 우상 간에 무슨 일치점이 있느냐?" 우리가 읽는대로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을 그런 경지까지 데리고 오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가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리라'(3절)라고 에브라임은 약속하였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우상과 연합하였고(4:17), 하나님은 이제 그에게 역사하셔서 변화를 일으키실 것이다. 그는 우상을 사랑한만큼 그에 비례하여 우상을 싫어하게될 것이다.

(2) 에브라임의 회개를 기뻐하시며 주목하시는 하나님 :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하나님은 에브라임을 돌아보았다. 이것은 에브라임이 참회의 고백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인지 보시기 위해서였다.

(3) 자신을 나무에 비유하시는 하나님 :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곧 네게 그러리라." 그는 그들의 형편에 따라 태양과 방패 또는 그늘과 방패가 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나무의 뿌리와 같다.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힘을 얻어 의무를 이행할수 있게 된다. 우리가 어떤 의의열매를 맺든지간에 그 모든 칭찬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2. 본서를 읽는 모든 자에 대한 말(9)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의무의 이행에 지혜롭고 실천적 신앙에 총명한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비로운 하나님의 진리와 섭리를 아주 쉽게 깨닫는다(요 7:17). 선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정직한 도가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게하는 향기이며 또 그렇게 될 것이다.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죄인은 자신의 그릇된 길에 걸려 넘어질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정직한 도에도 걸려 넘어지리라. 받아들이는 것은 받아들이는 자의 질에 따라 영향을 달리한다. 동일한 햇볕이 밀랍을 녹이기도 하고 진흙을 굳게도 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도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은 모든 죄인중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실족을 하는 자들이다.


Ⅰ. 경고와 책망 13:1-4

 

포로기 이후까지도 우상숭배는 유대민족이 쉽사리 빠져드는 죄였다. 북쪽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그 죄를 범했고 아합시대 이후로는 특히 그러했다.

(1) 하나님은 그들이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규정을 만드셨다(4절). 그는 자기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그들에게 알리셨다. 그는 시내산에서도 그 사실을 하늘로부터 선포하셨다. 또 그는 선지자와 섭리를 통해서도 계속해서 이 사실을 그들에게 증명해 보이셨다. 하나님은 다른 신에 대한 숭배를 금지하는 율법을 그들에게 내리셨다. 나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것이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였다. 나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2) 에브라임은 우상숭배에서 초연한 동안에는 명예를 얻었다(1절). 에브라임이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도다 저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스스로 낮추는 자 특히 하나님앞에서 스스로 겸비하는 자는 높임을 받게될 것이다.

(3) 그들 사이에는 우상숭배가 비탄스러울 정도로 만연하였다(2절). 이제도 저희가 더욱 범죄하여.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다.' 그들은 은으로 우상을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명철을 따라 자기 상상대로 우상을 만들었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의 형상대로 자기들과 유사한 형태의 우상을 만들었다. 우상은 이와같이 장색의 손을 만든 것이었지만 그들의 영혼의 사랑을 받았다.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의 입을 맞출 것이라.

(4) 우상숭배에 대한 진노의 위협이 나온다. 그들이 송아지와의 입맞춤을 너무나 좋아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로하여금 자기 어리석음을 깨닫게하실 것이다(3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실망을 당하며 악한 가운데서 쫓겨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저희는 아침 구름같으며 쉽게 사라지는 이슬같으며. 두가지는 다 쉽게 사라지며 날은 항상 가물고 덥다. 그러므로 그들의 후손도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며 우상에 대한 그들의 기대도 그렇게 됨이 마땅하다. 쭉정이 같으며. 즉 그들은 그처럼 가볍고 무가치하게될 것이다. 연기같으리라. 즉 그들은 그처럼 해롭고 성가시게될 것이다(사 65:2). 그들은 굴뚝의 연기처럼 곧 무산되고 사라질 것이다.

 

Ⅱ. 방종에 대한 책망 13:5-8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풍족한 양식을 마련해 주셨다(5절). 내가 광야 마른땅에서 너를 권고하였거늘. 즉 나는 광야 곧 극히 마른땅에서도 너를 위해 양식을 마련해 주었다. 그때 보통 방법으로는 구원을 결코 기대할수 없었다. 그들을 알고 거기서 먹여주신 하나님은 진정한 친구이셨다.

(2) 그들은 배은망덕하게도 하나님의 은총을 몰가치하게 남용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돌보셨을뿐만 아니라 가나안을 소유하게 하셨다. 저희가 먹이운대로 배부르며(6절).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자 포식하였다. 그들이 풍족한 것을 사용하는데 좀 절제했더라면 희망도 엿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해졌던 것이다. 그들은 사치와 육욕으로 마음이 교만해지고 거만해지며 태평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최상의 논평은 모세의 입에서 나왔다(신 32:13-15).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그들은 더이상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희가...마음이 교만하며 이로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생활근거임을 알아야 한다. 비록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처럼 기적의 양식을 먹고 살진않더라도 일반 섭리를 통해 사는 것 역시 하나님을 생활근거로 하는 것이다.

(3) 그들의 배은망덕에 대한 하나님의 분개는 지당하다(7,8절). 내가 저희에게 사자같고...표범 같으리라. 어떤학자는 "내가 앗수르의 길에서 표범같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들이 보호와 원조를 구하러 가고 있는중에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을 기습할 것이다. 그는 그들의 염통을 찢을 것이다. 사자는 먹이의 가슴을 노린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와같이 그들을 삼킬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에게 두려울 것이다. 그 심판들은 '염통꺼풀을 찢을 것이며' 영혼을 혼란으로 채워 갈갈이 찢어놓을 것이다.

 

Ⅲ. 파멸의 불가피성 13:9-16

 

9절 말씀은 나머지 모든 말씀의 요약이자 그 내용이다. 즉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모든 책임은 그들 자신에게 있다.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네 패망은 네게서 말미암으며 너로부터 유래한다. 따라서 이렇게 읽을수도 있다. "이스라엘아 네 자신으로인해 네가 개방하였나니"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구원의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너를 도와주는 나. 다음과 같이 생각할수도 있다. "네 형편은 매우 악하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 너는 스스로 패망하였도다. 그러나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를 돕겠노라."

(1) 이스라엘은 스스로 패망하였다. '사마리아는 하나님을 배반하였다'고 한다(16절).

1) 그들은 진노의 날에 대비하여 진노를 쌓아두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패망한다. 그들의 이런 죄악이 현재의 멸망에 기여하였다. 그들의 이전 죄는 하나님께 쌓이고 그의 곡간에 봉해져 있다(신 32:34,35; 욥 14:17). 인간의 죄는 용서를 받을때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2) 그들은 그 자신의 구원을 위해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행하려 하지 않으므로 그들 자신이 파멸의 원인이 되고있다(13절). 그들은 죄로인해 고통과 고뇌속으로 던져질 것이며 그 고통은 매우 예리하고 가혹할터이나 구로하는 여인의 고통처럼 구원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비록 인간을 징계하시지만 그들의 유익을 의도하신다. 그들이 징계를 받음은 멸망되지 않도록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따라서 구원의 기쁨을 기대할수 없다(13절). 회개를 지체하는 자들은 회심에 실패할 위험이 있다. 여기에는 그들이 처하게될 운명의 파멸이 슬프게 묘사되고 있다(15,16절). 에브라임이 형제중에서 결실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 지파는 죄로 말미암아 열매맺지 못하는 지파로 변한다. 그 도구는 '동풍'인데 이것은 침입할 외적을 상징한다. 동풍은 '여호와의 바람'이라고 불리운다. 에브라임은 부요한 지파인가? 외적은 그 지파를 알거지로 만들고 그 부의 재원을 고갈 시킬 것이다. 에브라임은 인구가 많고 번성한 지파인가? 대적이 그 인구를 줄일 것이며 희소하게 만들 것이다. 사마리아는 황폐할 것이니 그 거민이 없어질 것이다.

(2) 하나님은 이 자멸하는 백성의 도움이셨으니 그들의 유일한 조력자이셨다(10절). "내가 네 왕이 되리라"(한글 개역에는 '내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로 되어있음-역주). 이 왕은 구원하며 다스리는 왕이다. 비록 그들이 그의 백성이 되기를 거절하고 그를 배반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들의 왕이 되고자 하셨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 자신들보다 낫지 못하시다면 우리의 형편은 말이 아닐 것이다.

1) 그들에게 다른 왕이 없을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이 되실 것이다.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네 왕이 이제 어디 있느냐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재판장들은 공의를 집행함으로 공안을 유지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열방처럼 자기들에게도 왕을 달라고 하고 사무엘을 배척했다. 그러나 여호와가 그들의 왕이었다. 열지파는 다윗가가 아닌 다른 왕의 통치를 소원했다. 그 이유는 다윗가의 왕들이 너무 전제적이어서 학정을 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로보암을 세우면서 보다나은 정치를 희망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뜻에 응하여 먼저 사울을 주시고 그 다음에 여로보암을 주셨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무엇이 나아졌는가? 하나님은 분노중에(우리중에, 삼상 12:18,19) 사울을 주셨고, 얼마뒤 길보아산에서 진노중에 폐하셨다. 열지파의 왕정은 열지파에 대한 분노에서 주어진 것이다. 그들은 다윗가에 대한 불평불만에서 이반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앗수르왕의 힘으로 진노중에 그 왕정을 폐하려 하신다.

2) 하나님은 다른 어떤왕도 해줄수 없는 일을 그들에게 해주신 것이다(14절).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그들의 해방은 속량에 의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보석금을 지불할 자가 누구며 또 그 보석금이 무엇인지를 안다. 왜냐하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준 분은 인자였기 때문이다(마 20:28). 그리스도는 죽음을 폐하셨고 사망권세를 깨뜨리셨다. 그는 사망의 성질을 변개시켜 우리로하여금 사망에게 승리할수 있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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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이스라엘에 대한 권면 12:1-6

 

(1) 에브라임은 곤경에 처했을때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함으로 어리석은 죄를 범하였다고 선고를 받았다(1절).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에브라임 사람들은 엄숙한 동맹에 의해 자기 세력안에 앗수르인을 확보했다고 생각했다.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그러나 그들은 강력한 군주가 더이상 자기 말에 예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될 것이다. 그들은 많은 공물에 의해 애굽을 동맹국으로 확보했다고 생각했다.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그러나 애굽사람들은 공물을 받고 대의를 저버렸다.

(2)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론하셨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쟁론하시고. 이는 유다가 비록 얼마전에 하나님과 함께 다스렸고 성도들에게 신실하였다할지라도 이제 그는 타락되어 가기 때문이다.

(3) 에브라임과 유다는 그들의 조상 야곱을 상기하였다. 이는 그들로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시겠다고 경고하면서 이 백성을 야곱이라고 부르셨다(2절). "그러나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그 사랑하는 이름을 어떻게 잊겠느냐?" 하나님과 야곱사이에 있었던 것에서 우리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배울수가 있다. 그는 야곱의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여호와는 곧 야곱 자손의 전세대를 통한 기념 칭호였다(5절). 여기에 두가지 기념 칭호가 나타났는데 이로 말미암아 그는 다른 모든 자들과 구별되며, 우리에게 인정받으신다. '여호와'란 "그는 자존하시다"는 의미이다. 그는 여호와이시다.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는 말과 같다. 이것은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도 계시며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이다.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이며 독특한 이름이다. '만군의 하나님'이란 곧 만유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를 의미한다. 그는 그의 명령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무리를 부리시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를 부르는 호칭과 속성은 그를 기억케해주는 것이므로, 그를 기억하기 위하여 따로 형상을 만들 필요가 없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야곱의 하나님이신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너의 하나님이시니라. 너는 그에게 반역하였으므로 회개하고 신앙으로 그에게 돌아서라. 너의 하나님이신 그에게 돌아와 그를 사랑하고 복종하며 그를 의지하라."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가난하고 곤고한 자를 구제하고 원조함으로 인애를 지키며, 그들에게 마땅히 주어야할 것을 지불함으로 공의를 지켜라. 모든 자에게 친절하라."

 

Ⅱ. 죄에 대한 책망 12:7-14

 

(1) 죄에 대한 책망 : 에브라임은 우상숭배를 하여 그의 하나님으로부터 돌이켰고 공의와 공정의 법을 깨뜨렸다고 책망받았다.

1) 저는 상고여늘. 난외주는 그것을 고유명사로 보아 "그는 가나안 사람이다"라고 해석한다. 가나안 사람은 야곱과 이스라엘에게서 지배받을 가치도 없는 존재이다(참조. 암 9:7). 그러나 가나안은 때때로 상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에 에브라임은 교역함에 있어서 속인 것으로인해 책망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을뿐만 아니라 상업으로 부유해지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만일 그들이 공정한 상인이었다면 전혀 책망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가나안 사람과 같이 그들이 거래하는 모든 일에서 속이는 상인이었다. 에브라임은 수많은 술책과 기만으로 사취하였다.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2) 에브라임은 이 죄에 대해 자신을 정당화시킨다(8절). 에브라임은 일반적인 사취로인하여 기소를 받고있다. 그는 그 혐의를 부인하지 않지만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한다. 그는 속임수 저울을 사용하여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호세아가 그의 사취에 대하여 말하였으나 그는 자신이 아무해도 끼치지 않았다고 자신하였다.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육적인 마음은 종종 그들의 세속적인 번영과 성공으로 인하여 그들의 악한 방법을 자랑스럽게 여기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큰 실수이다. 에브라임이 여기서 말하는 모든 말은 그의 어리석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재물을 실제로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본래 허무한 것이기 때문이다(잠 23:5). 우리가 가진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마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소용을 위하여 재물을 가진 것처럼 "내가 재물을 얻었다"고 말하나 우리는 청지기로서만 실제로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악한 방법으로 축재하는 것이 우리에게 해롭지않으며 우리를 안전하게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참조. 사 47:10; 잠 1:32). 그는 자신이 좋은 평판을 유지하였다고 변호한다. 육적인 마음은 그들의 이웃의 좋은 평판을 근거로 자신을 좋게 여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아무도 정죄치 못하도록 교묘하게 부정을 행하였다. 무릇 나의 수고한 중에서 죄라할만한 불의를 발견할 자 없으리라. 즉 아주 악한 것은 없고, 단지 용서할수 있는 매우 경미한것 뿐이다. 그것은 흔히있는 부정이며 관습적인 것이고, 모든 사람이 행하는 것이다. 아무도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을 더 악하다고 생각할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보듯이 보시지 않으신다. 사람이 판단하듯이 판단하지 않으신다. 그는 또한 우상숭배로 인하여 책망을 받는다. 즉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숭배한 죄이다. 그것은 헛된 일이다(11절). 저희는 과연 거짓되도다. 저희는 이익을 주지 못하고 속일 뿐이다. 호세아는 우상숭배로 인하여 악명높은 두장소를 언급한다.

① 요단건너편에 있는 길르앗은 앞에서 언급한 죄(호 6:8)로 인하여 낙인 찍혔다.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그것은 놀랄만한 일이며 슬피 애곡할만한 일이다.

② 길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길갈에서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렸으며(호 9:15) 거기서 그들의 제단은 마치 씨뿌릴 밭이랑에 쌓인 인분더미 같았다(호 8:11).

(2) 죄에 대한 진노의 위협 :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하게 하기를 명절일에 하던것 같게 하리라(9절). 즉 내가 너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장막에 거하면서 사십년간 방황하던 때와 같은 상태에 있도록 하겠다. 그것은 광야에서 정해진 기간이었다. 에브라임은 죄라 불릴만한 불의가 자기에게 없다고 생각했다(8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라할만한 불의가 그에게 있으며 만일 그가 회개하여 고치지 않는다면 그 불의가 발견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에브라임이 격노케함이 극심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몰수된 생명을 탈취하실 것이다. 그 주께서 그 피로 그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즉 하나님께서는 그를 죄없다 아니하실 것이다. 그의 피가 그 자신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삼하 1:16). 저의 수치를 저에게 돌리시리라.

(3) 이전의 자비에 대한 회고 : 이전의 자비는 배은망덕을 그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위해 내려진 것이다.

1) 하나님은 그들을 비천한 장소에서 끌어올리셨다. 에브라임이 부유해졌을때 그는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이다'(신 26:5)는 고백을 망각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해마다 그들에게 고백하도록 규정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그것을 상기시키신다(12절). 그들은 그 조상 야곱의 명예뿐만 아니라 그가 라반의 가련한 종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했다. 야곱은 악한 형을 피해 '아람들로 도망했고' 거기서 '아내를 얻기위해' 탐욕스런 삼촌을 섬겼으며 '양을 쳤다.' 이는 그에게 재산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야곱은 양을 치며 장막에 거주하는 검박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거짓 저울은 그 후손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그를 보호하셨다. 이것은 그와 그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를 찬송하게 하며 동시에 그들의 창시자요 시혜자이신 하나님께 배은망덕하게 행했다고 하는 오명을 그들에게 돌리게 한다.

2) 하나님은 그들을 불행에서 구출하셨고 빈궁과 종살이로부터 건지셨다(13절). 하나님은 선지자 곧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셨다. 모세는 여수룬의 왕(신 33:5)으로 불리지만 그가 이스라엘을 위해 한일은 하나님의 지시와 그의 말씀의 권능에 의해 선지자로서 행한 일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배은망덕한지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에 있어서 나타난다. 그들은 그의 선지자들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했다. 그들은 선지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의도에 부응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내셨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그들의 성장시에 그들의 교육을 보살피셨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실례는 10절에 나타나 있다.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을 인도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에게 계속 말씀하셨다.

(4) 죄와 진노가운데 임하는 큰 자비(일부 학자가 생각하듯이, 9절) : "나는 애굽 땅에서부터 네 하나님 여호와된 자니라. 나는 그때 거기서 너를 내 백성으로 삼았고 그 이래로 일련의 끊임없는 자비의 섭리를 통해 네 하나님으로 자인해 왔노라. 그리고 나는 지금도 네가 비록 악하다하더라도 네게 대해 자비를 품고 있노라. 그래서 나는 너로 장막에 거하게할 것이니라. 그것은 광야에서 거하던것 같지않고 명절일에 거하던것 같을 것이니라." 즉 그것은 그 기쁨으로 지내는 초막절 같을 것이다(레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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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하나님의 인자하심 11:1-7

 

(1)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매우 자비로우시다.

1) 그는 이스라엘이 어렸을때 그들을 사랑하였다(1절). 이스라엘이 어렸을때에 내가 사랑하여. 그들이 애굽에서 처음에 한민족으로 번성하기 시작했을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의 사랑을 베푸시고 그들을 선택하심은 그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었다(신 7:7,8). 그들이 어린아이처럼 무력하고 어리석으며, 추방당하며 의지할데 없는 어린아이처럼 되었을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다. 성숙한 자들, 아니 나이를 많이 먹은 자들도 가끔 그들이 어린시절에 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회상해야 한다.

2) 하나님은 그들을 종되었던 집에서 건져내셨다.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헤롯이 죽자 예수와 그의 부모를 애굽에서 불러냈을때,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고 말한다(마 2:15). 애굽에서 그리스도를 부르심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적인 노예상태에서 그에게 속한 그 모든 사람들을 불러내실 것에 대한 상징이었다. 어린아이가 이끄는 끈으로 가르침을 받듯이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하나님께서는 가정교사와 같은 의식법의 규례로써 그의 계명의 길로 걷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들에게 어떤 잘못이 있을때 그는 그들의 의원이 되셨다. 내가 저희를 고치는줄을. 하나님은 온화하고 너그러운 방법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인도하셨다(4절).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저희를 이끌었고.

첫째, 그는 사람의 줄로 이끄셨다. 즉 인자한 사람들이 끄는 것처럼 그러한 줄로 사람들을 다루셨다.

둘째, 그는 사랑의 줄, 또는 사랑의 밧줄로 이끄셨다. 이 단어는 전자보다 더 강한 줄을 의미한다. 그는 그들을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내가...저희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이것은 자기 가축에게 자비로운 선한 농부의 보살핌같은 것을 암시한다. 선한 농부라면 쉴새없이 심한 노동을 시킴으로 가축을 곤고케 하지않을 것이다. 애굽에서 그들은 혹사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해내어 농부가 자기 가축에게 멍에를 풀어주고 꼴을 먹이듯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진영주위에 만나를 내리셨다. 즉 하늘로부터 천사의 양식을 주셨다.

(2)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감사치 않았다. 그들은 귀머거리였고 하나님의 음성에 불순종하였다. 그들은 우상을 좋아하였고 그것을 숭배하였다. 우상숭배는 처음부터 범한 죄였으며, 처음부터 내내 그들을 매우 쉽사리 사로잡은 죄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무시했다. 내가 저희를 고치는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 감사치않는 것의 밑바닥에는 무지가 있다(호 2:8). 그들에게는 배반하려는 강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것이 가장 날카롭게 책망받고 있는 제목이다(7절).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그들이 물러갔다는 것은 언제라도 범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또한 그것은 그들이 죄를 범하려고 결심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들의 마음은 죄를 행할 결심으로 완전히 굳어졌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회개와 개혁을 싫어하였다. 저희가...돌아오기를 싫어하니(5절).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사역자들은 그들이 반역했던데서 하나님께로, 즉 비참한 타락의 늪에 빠졌던데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부름은 공허한 외침에 그치고 말았다.

(3) 하나님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자 애굽에서 건져내셨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신실하려고 하지않았다(5절).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비록 그땅이 매우 비참한 노예의 집이기는 하지만 그 애굽 땅으로조차 돌아가지 못할 것이니라. 왜냐하면 앗수르 사람이 그들의 임금이 될 것이고, 그는 바로가 행한 것보다 더 그들을 가혹하게 부릴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들에게 가나안을 주신 하나님은 거기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6절). 칼 곧 외적의 칼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이길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계속하였음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그의 심판을 계속 내리셨다.

 

Ⅱ. 진노가운데 있는 자비 11:8-12

 

(1) 이스라엘 형편에 대한 하나님의 심중의 쟁론, 즉 공의와 자비간에 쟁론이 벌어진다. 거기서 승리는 명백히 자비의 편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우리안에 있는 것과 같은 갈등이 하나님안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가 얼마나 중한 벌을 받아 마땅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인간의 방법에 따라 표현한 것이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1) 공의가 이스라엘에 대해 내놓은 제안 : "어쩔 도리가 없는 아들처럼 에브라임을 포기해버리라. 어린양을 사자에게 내주어 갈기갈기 찢기듯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 내어주라. 그들을 아드마같이 놓으며 스보임같이 두라." 이 두도시는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당한 도시이다.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은 이와같이 버림받아 마땅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와같이 그들을 다루신다해도 전혀 그들에 대해 잘못하시는 것이 아닐 것이다.

2) 이 제안에 대한 자비의 반대 :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수 있으랴?" 온유한 아버지가 스스로 다짐하듯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못된 아들을 어떻게 버릴수 있겠느냐? 그래도 그는 내 아들이므로 나는 그렇게 할수 없느니라. 그들은 나에게 친근한 백성이었고 그들중에 선한 자도 있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회개하고 고칠지도 모르느니라. 그런즉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할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는 마치 이스라엘에 대한 동정으로 인하여 이상한 애정이 꿈틀거림을 의식하기라도 하는양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오랜 쟁론끝에 자비는 심판에 대해 승리를 거두고 기뻐한다(9절). 집행유예가 더 오래 연장될 것이라고 선포되고 있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그들은 진멸당하지 않고 고침을 받을 것이다. 이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 나는 네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자니. 인간의 분노는 사람을 지배하나 하나님은 친히 진노의 주인이시다. 그가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우리에게 큰 격려가 된다.

(2)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들을 위해 계획한 선을 그들이 받을수 있도록 그들에게 자격을 주실 것이다(10,11절). 저희가...여호와를 좇을 것이라. 이것은 열지파에 대한 언급으로 부분적으로 에스라 시대에 두지파와 함께 돌아온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하여 성취되었지만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 즉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복음교회에서 더욱 완전한 성취를 이루었다. 그들은 부름을 받고 모였다. 이 부름은 사자의 포효소리가 숲속의 모든 짐승들에게 미친 것과 같은 그러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 틀림없다. 여호와께서 소리를 발하시면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복음이 그 마음에 이르게 된 자들은 떨며,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부르짖었다. 그때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구원을 받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그때 이 약속은 성취되었다.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며 오되. 이것은 가나안 서편에 있는 이방인들의 부름을 가리키는것 같다. 왜냐하면 복음이 퍼져나간 것은 특히 그 길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19절에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행하여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역사된 강한 표적과 기사를 언급하고 있다. 그때 자손들이 서편에서부터 떨면서 왔다. 그리고 육적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에 흩어졌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효과적으로 소집될 것이라는 약속이 있다(11절). 저희가...떨며. 저희가 애굽에서부터 새가 날듯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매우 신속하게 올 것이다. 서로 매우 멀리있던 자들이 그리스도안에서 만날 것이며, 교회안에서 연합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앞에서 갖는 우리의 거룩한 떨림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끌고 우리를 그에게서 떠나지 않게할 것이다. 그가 사자처럼 포효할때 종들은 떨며 그에게서 도망하나 자녀들은 떨면서 그에게로 도망한다. 그들의 복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내가 저희로 각집에 머물게 하리라(11절). 복음의 부름가운데로 나아오는 모든 자들은 복음교회에서 처소와 일컬음을 얻게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안에 거하게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집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안에서 편안히 있을 것이다. 그들은 대저택을 갖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3) 에브라임과 이스라엘의 반역은 앞에 언급된 약속의 대상이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암시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에브라임과 이스라엘로 말하면 그들은 거짓과 궤휼로 하나님을 에워쌌기 때문이다.

(4) 유다의 순수성에 대한 훌륭한 칭찬은 열지파의 패역을 가증시키는 요소가 되며 아울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제외시키는 요소가 되며 아울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제외시키고 유다에 대해서는 자비를 예비하신 이유를 나타내는 것이 되기도 한다(참조. 호1:6,7). 유다는 하나님과 함께 다스린다. 즉 그는 하나님을 섬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존귀이며 주권이다. 그들은 선한 사람들의 길로 다녔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며 하늘에서 강한 권리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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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종교와 정치의 타락에 대한 경고 10:1-8

 

(1) 민족적인 죄는 민족적인 심판을 가져온다.

1) 그들은 의의 열매에 있어서 풍성하지 못하였다. 여기서 그들의 모든 사악함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1절). 이스라엘은 빈 포도나무이다. 만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못한다면 그것은 모든 나무중에서 가장 쓸모없는 나무이다. 그런 포도나무는 아무데도 쓸데가 없다(겔 15:3,5).

2) 그들은 제단과 우상들을 많이 만들었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에게 후하면 후할수록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 일에 그것들을 더욱더 낭비했다.

3) 그들의 마음은 나뉘었다(2절). 그들은 그들의 우상들에 대해서 하나가 되지 못했으며 그들의 왕들과도 불화한채 서로 멀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중에 우애라곤 전혀없었다. 그들의 마음이 나뉜 채로였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과 바알사이에서 머뭇거렸다.

4) 그들은 가장 엄숙한 태도로 자신들이 말한 것과 행한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4절). 저희가...거짓맹세를 발하여 언약을 세우니. 백성들은 충성의 맹세를 깨뜨렸고 왕들은 대관식의 선서를 어겼다. 그들은 국가들간의 동맹을 깨뜨렸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예배하는 일에서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조약의 파기에 대하여도 크게 노여워하셨다.

(2) 그들은 그들의 왕과 통치에 대하여 전혀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우리는 마치 왕이 없었던 자들과도 같나이다. 즉 공안을 유지하여 줄 자도 없었고 우리를 위하여 싸워줄 자도 없었나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이와같은 일이 닥친 것은 당연한 일이나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은총가운데 있는 자들은 "사람들중에 가장 위대한 자라 할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대적할수 있으랴?"라고 말할 것이나 하나님의 보호밖으로 벗어난 자들은 절망으로인하여 "사람들중에 가장 큰 자라 할지라도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할수 있으랴?"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 국가의 통치는 약하여질뿐만 아니라 아주 멸망할 것이다(7절). 사마리아 왕은 물위에 거품같이 멸망할 것이며. 그 포말은 수면위에 큰징후를 일으키지만 단지 거품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다윗가를 배반한 후의 이스라엘의 왕들이 그러하였다. 그들의 통치는 아무 기초가 없었으므로 단지 위에 떠있는 찌끼일뿐이었다.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치시며.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의 손을 빌어 그 일을 행하실 것이다. 즉 앗수르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 일을 행할 것이다. 하나님이...그 주상을 헐으시리라(2절). 만일 하나님이 은혜가 우리들의 죄에 대한 애착을 근절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로 우리 주변에 죄의 소지가 있는 그들을 분명코 멸하실 것이다. 가시와 찔레가 그 단위에 날 것이니. 즉 그것들은 페허가 될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일어나서 땅을 진동시키실때 우상숭배자들이 떨게 된다(사 2:21). 본문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때에 저희가 산더러 우리를 가리우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위에 무너지라 하리라(8절).

 

Ⅱ. 심판과 회개의 촉구 10:9-15

 

(1)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의 죄를 회상해야 했다. 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패괴하였다는 말을 들었었다(호 9:9). 그리고 본문에서도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의 시대로부터 범죄하였거늘(9절). 그 시대에 범한 사악함이 지금 재생되어 재연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시대를 통하여 부단히 계속되어 왔다. 당시 사정이 좋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무리가 기브아에 서서 흉악한 족속을 치는 전쟁을' 세번째 교전때까지 면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그들 모두를 따라잡지 못하고 600명이 도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죄는 기브아의 죄보다 더 악하였다.

(2) 그들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받았다(10절).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들을 긍휼히 보시고 남겨두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인들의 죽음과 멸망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징계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그들을 견책하는 내 선지자들의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기때문에 '저희가 두가지 죄에 걸릴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는 것'을 통하여 내가 그들을 징계할 것이니라." 또는 "내가 그들을 그들의 두 이랑에 묶을때," 즉 "밭가는 소처럼 앗수르인들에게 노예로서 밭을 오르내리며 두이랑에 묶이게 할때" 이와같이 하나님의 자유민이 되려고 하지않는 자들은 그들의 대적들의 노예가 될 것이다.

(3)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였다. 왜냐하면 입에 망을 씌우지 않아서 즐겨먹을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11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그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그의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내가 앗수르인들과 다른 정복자들로 그들위에 타도록 하리라." 그들은 사람들이 타는 짐승에게 하듯이 그들을 엄히 다스릴 것이다(시 66:12).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유다 사람들은 혹독하게 취급을 당할 것이나 에브라임처럼 그렇게 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포코크 박사(Dr,Pocock)는 이 말씀을 다른의미로 해석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으로 그의 율법에 복종하도록 그들에게 취하신 온화한 방법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그는 마치 농부가 일을 시키기위하여 그의 가축을 훈련시키듯이 그들을 다루셨다. 에브라임은 '길들인 암소'여서 사용하기에 적합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아름다운 목'을 취하여 그 손에 그를 익숙하게 하셨고 마구를, 즉 하나님의 계명의 멍에를 그위에 채웠으며,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어 이방인의 관례에 의해 그들이 유혹받지 않도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순종하게 하시기위해서 그들에 대하여 온갖 귀하고도 그럴듯한 수단들을 사용하셨다. 그는 유다로 밭을 갈고 야곱으로 흙덩이를 깨뜨리도록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순종가운데 있으려 하지않고 곁길로 나가버렸다.

(4) 그들은 기도, 회개, 개혁을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초대받고 권고받았다(12,13절). 그들은 '하나님의 밭'이다(고전 3:9). 그리고 그 의무가 농사짓는 일에서 빌어온 말로 표현되었다. 그들은 묵은땅을 기경해야 했다. 즉 그들은 잡초와 가시같은 애욕과 욕망의 온갖 부패된 것에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케하여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상하고 회개하는 심령의 소유자들이 되어야 했다. 즉 잘 기경된 땅이 뿌리를 내릴수 있도록 씨를 받아들이듯이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여야 했다(참조. 렘 4:3). 그들은 자기를 위하여 의의 씨를 뿌려야 했다. 즉 선한 행위가운데로 돌아와야 했으며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성령을 위하여 심어야 했다(갈 6:7,8). 그들은 여호와를 찾아야했다. 즉 여호와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했으며 뿌려진 씨앗을 축복해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하여야 했다. 그 일을 하는 것은 때가 있다. 지금이 곧...때니. 만일 우리가 자신을 위하여 의를 심으면, 즉 우리가 그의 은혜를 의지하는 가운데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부지런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를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실 것이다. 즉 의를 심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 곧 의를 비처럼 내리실 것이다. 우리는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었다.' 우리의 생활이 그러했던 것은 지나간 것으로 충분하다(13절). "너희는 죄의 일로 매우 많은 수고를 했느니라. 그런데 하나님의 일로 짐이 무겁고 햇빛이 뜨겁다고 불평하려는가? 너희는 자신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많은 일을 저질렀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다시 무엇인가를 행해야하지 않겠는가?"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너는 피조물들을 의존하고 네 자신의 힘과 계략을 의존하였느니라. 그리고 너의 소망들은 너를 속였으므로 돌아와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주안에 있는 너의 소망은 너를 속이지 않을 것이니라."

(5) 그들은 현세적인 행위와 현세적인 의뢰 모두를 인하여 철저히 멸망받을 것을 경고받았다(14,15절). 그러므로 너희 백성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즉 자국내의 반란이 국의의 침공이든 요란함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이 의뢰한 산성들은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훼파한 것같이' 포위되어 약탈될 것이다. 이것은 근자에 일어났던 어떤 사건을 가리킨다. 아마도 살만은 근자에 어떤 마을이나 성('벧아벨'은 '아벨의 집'이라는 뜻이다.)을 정복한 앗수르의 살만에셀왕과 동일 인물인듯 싶다. 그는 다른 주둔군들을 두렵게하여 속히 항복을 받아냈다. 하나님은 사마리아가 이와같이 황폐될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거민들은 벧아벨에서 있었던 것처럼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멸절하리로다(15절).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었다. 그의 통치 기간에 전 왕국이 엎드러졌다. 따라서 이 말은 호세아를 가리키거나 반역으로 말미암아 멸절된 그의 전임자들중 어떤이들을 가리키는 것인듯 싶다. 그것은 갑자기 아침이 동터오듯이 아침에 행해질 것이다. 이런 유혈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15절).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벧엘은 단과 더불어 송아지가 있었던 장소였다. 그들의 모든 악이 있다고 말해진 길갈은 바로 그 가까이에 있었다. 거기에는 그들의 큰악, 곧 글자 그대로 하면 "악중의 악"이 있었으며, 그들의 죄의 총채와 본질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왕이 너희에게 그와같이 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벧엘이 너희에게 그와같이 행할 것이라"고만 말씀하신다. 우리가 입은 모든 화는 무엇이든지 우리가 범한 죄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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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심판에 대한 경고 9:1-6

 

(1)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인 간음에 대하여 책망받았다. 이스라엘아...네가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1절). 그들이 우상을 세우고 숭배했을때,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에게서 떠나 행음한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만 돌려야할 애정과 찬미와 신뢰를 거짓신들에게 돌렸다. 각 타작마당에서...값을 좋아하였느니라. 이는 그들의 우상에게 제물과 첫열매를 바치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들은 우상에게서 보상을 받기를 좋아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땅의 소산을 우상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2) 그들은 기뻐하지 말아야했다. 이스라엘아...기뻐 뛰놀지 말라. "너희 음행과 술수가 그렇게 많은데, 너희가 평안이나 기쁨과 무슨 관계가 있으랴?"(왕하 9:19-22). 어떤자는 이 당시 그들에게 기뻐할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유력한 동맹국과 맺은 어떤 동맹 때문이었을 것이다.

(3) 그들은 그들의 영적인 음행에 대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받았다. 그들의 땅은 평상시 생산했던 산물도 내지않을 것이다. 비옥한 땅인 가나안은 거기에 거하는 자들의 사악함을 인하여 불모지로 변할 것이다(2절). 타작마당이나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할 것이며 잔치는 더더욱 생각할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땅은 그들을 기르는 일을 그칠뿐만 아니라 그들의 거처가 되는 일도 그칠 것이다. 그땅은 그들이 오기전에 가나안 사람들에게 행한 것처럼 그들을 토해낼 것이다(3절). 이와같이 그땅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슬프고 쓰라린 심판이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우리의 첫조상이 쫓겨난 것과도 같았다. 여호와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기를 기대할수 없다는 것을 주목하라. 그들은 어떤 땅에서도 안식이나 만족을 얻지못할 것이다. 어떤자는 속박받던 옛집인 '애굽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은 앗수르에서 도망하여 그곳으로 갈 것이다(호 8:13). 다른자들은 앗수르로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거기서 부정한 것을 먹도록 강요받을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먹기에 적합치않은 것으로 그들의 율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적의 땅에서 그들은 하나님께 받으실만한 희생제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거나 그의 은총을 입을 기회를 갖지못할 것이다. 그들은 드릴수 있는 어떤 제물이나 제단을 얻지못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드릴 전제조차 얻지못할 것이며, 다른 제물은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들은 기쁨의 제물대신에 거상입은 자의 식물을 먹을 것이다. 상중에는 성물을 먹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거상을 입은 자의 떡을 먹는 자는 더럽혀지며 제단에 참예할 자격이 없다. 그들의 영혼을 위한 빵은 그들의 명을 유지하기에 필요한 빵이 되어, 여호와의 집에 드리지 못하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명절일이 돌아와도 그들은 편치못할 것이다(5절). 그들은 그들이 흩어져있는 땅에서 멸망할 것이다(6절). "보라 저희가 멸망을 피해 여호와의 땅에서 나간다할지라도, 즉 앗수르인에 의해 그들의 나라가 멸망하였으므로 폭풍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것을 자신하면서 애굽으로 간다할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불평하며 말했던 것처럼(출 14:11) 애굽에 무덤이 있음을 알게될 것이니라." 그들의 장막으로 말하자면 그곳은 그들이 이전에 거주하였고 그들의 보물을 간수하던 곳으로 '은 보물'을 위한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황폐하게 되고 찔레가 뒤덮을 것이다.

 

Ⅱ. 심판의 경고와 악에 대한 책망 9:7-10

 

(1) 언급된 멸망이 속히 임할 것이다. 그 멸망이 다음과 같이 임박하였다(7절).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임한 것을. 따라서 하나님의 참으시는 때가 끝났다.

(2) 이 결과 그들은 선지자들에 관한 자신들의 견해를 부끄러워할 것이다.

1) 그때 그들은 선지자로 자처한 자들이 죄중에 있는 자들에게 아첨하여, 그들을 흔들어 안심하고 잠자도록 하게한(아합의 선지자들이 한것 같이, 왕상 22:24) 어리석고 미친 자들임을 알게될 것이다.

2) 그들은 그때 참선지자들, 즉 하나님의 신실한 대사들을 알게될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들을 조롱하는 것은 그들이 벌받을 죄이었다.

(3)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죄악이 밝히 드러나게됨으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8절). 에브라임의 파숫꾼은 내 하나님과 함께한 것처럼 행세하며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셨다'는 말로 그 거짓말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행위에 새잡는 자의 그물'이다. 최선의 것이 부패했을때는 최악의 것이 된다.

(4)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 조상의 죄에 대하여 그들과 계산하실 것이다(9,10절).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다음과 같이 악하였다. 저희는...심히 패괴한지라. 그들은 사단의 깊은데까지 멀리내려갔다(참조. 사 31:6). 현재의 음란함과 사악함이 기브아의 시대 만큼이나 몰염치하고 대담하다. 그러므로 그때 기브아가 받은 것처럼 그러한 복수외에 무엇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 조상의 타락을 들어 그들을 질책하시는 기회로 삼으신다(10절). 하나님께서는 처음 그들을 한민족으로 만드셨다.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하나님은 가난한 여행자가 광야에서 포도를 만났을때처럼 그들을 보고 매우 기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위해서 그들을 특별한 민족으로 따로 세우셨다. 그러나 그들은 바알브올에 가서 부정하고 비천한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가운데 모압인들과 결탁하였다(민 25:2,3). 그리고 그들은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렸다.' 이것은 그들 조상의 행위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선히 행하셨으나 그들은 하나님께 배은망덕하게 행하였다. 마찬가지로 현세대 역시 스스로 심히 패괴하였다.

 

Ⅲ. 후손의 멸망에 대한 경고 9:11-17

 

(1) 에브라임의 죄 : 그들의 예배는 부패하였다(15절). 저희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길갈은 우상숭배로 유명한 곳이었다(호 4:15;12:11;암 4:4;5:5). 그 장소는 다른시대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엄숙한 계약을 맺은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수 5:2,10;삼상 10:8; 호 11:15). 그로티우스(Grotius)는 여기에 신비적인 의미가 있다고 추정한다. 시리아어의 골고다는 히브리어의 길갈과 같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골고다에서 처형된 것을 가리킬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 사건은 유대 민족의 가장 큰 죄이었을뿐만 아니라, 진실로 저희의 모든 악이 그것에 집약되어 있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에 대해 진노하심 :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셨다(12절). 그는 그들을 미워하신다. 저희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서 저희를 미워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가증스런 죄가 범하여진 곳에서 죄인들을 미워하신다. 그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쫓아내고. 즉 그들은 쫓겨날 것이다.

(3) 진노의 결과로 이스라엘 후손이 멸절되고 버림받게 됨 :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은 "창성함"(창 41:52)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모세의 축복은 에브라임의 만만을 예언했다(신 33:17).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영광이었다(11절). 에브라임은 두로만큼 강하고 부요하였으며, 또한 교만하고 안전하였다.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같이 날아가리니(11절). 그들의 자녀들은 잡혀가고, 그들 가문의 소망은 끊쳐질 것이다. 에브라임이 침을 입고 그 뿌리가 말라 과실을 맺지못하나니(16절). 그들은 자멸할 것이다(11절). 해산함이나 아이뱀이나 잉태함이 없으리라. 그들은 그들의 대적의 손에 의해 멸망할 것이다. 그들은 폭행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다(12절). 에브라임은...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13절). 어미들은 자녀들을 낳기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할 것이나 잔인한 대적들은 와서 모든 사람들을 칼로 멸할 것이다. 갈대아 주석과 많은 랍비들은 자녀들이 살인자들에 의하여 끌려나간 것을 그들의 자녀들이 몰록에게 제물로 드려진 것으로 해석한다. 도망한 소수의 사람들은 흩어지게될 것이다(17절). 저희가 열국가운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선지자의 기도는 그것과 관련되어 있다(14절). 여호와여 저희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즉 "그들을 비참하게 하시느니 오히려 자녀를 갖지못하게 하소서." 그리스도께서는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눅 23:29). "그러므로 배지못하는 태와 마른 유방을 주소서. 왜냐하면 사람의 손에 떨어지기보다는 자비가 크신 주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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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8:1-7

 

선지자는 경종을 울려야 했다. 이는 대적이 그들의 땅을 점령할 목적으로 오고있기 때문이었다.

(1) 하나님의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1절) : 그들은 어리석게 행했을뿐만 아니라 거짓되이 처신하였다. 무리가...내 율법을 범함이니라. 그들은 '선을 싫어 버렸다.' 즉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을 버렸으니, 실제로 그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었다.

(2) 대적의 침입 :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1절). 대적이 저를 따를 것이라(3절). 만일 우리가 여호와의 집을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이해한다면 독수리는 성전을 불태운 산헤립이나 느부갓네살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수 있다. 그러나 만일 위 내용이 앗수르왕에 의해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여호와의 집은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로 간주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우호언약을 깨뜨리는 자들은 자신을 쉽사리 노략물로 내주고 만다.

(3) 하나님과의 관계 대한 그 백성의 위선적인 주장(2절) : 저희가 장차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리라. 그것도 형통할때는 하나님의 길을 바라지도 않고 멸시했던 그들이 곤란중에 처하게 되자 그것을 아는체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 내가 당신을 사랑하나이다"라고 말할수 없을때, "나의 하나님 내가 당신을 아나이다"라고 말했다고해서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4) 선지자의 권면(5절) : 저희가 어느때에야 능히 무죄하겠느냐. 이것은 절대적으로 깨끗해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얼마나 오래있어야 우상숭배에서 깨끗해지고 그 죄에서 벗어나게 되겠는가"라는 의미이다. 고통중에서 그들은 "얼마나 오래있어야 하나님이 자비의 길로 우리를 돌이키실 것인가"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얼마나 오래있어야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의무의 길로 돌아올 것인가"라고 묻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5) 몇가지 구체적인 죄의 사례.

1) 일반적인 문제에서 그들은 악을 행하였다. 저희가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말미암지 아니하였고(4절). 그들이 사무엘을 배척하고 사울을 선택했을때 그렇게 행하였다. 또한 그들이 여로보암을 세웠을때 그렇게 하였다. 호세아가 예언한 그때도 그러하였다. 그 당시 왕을 세우고 다시 폐위시키는 일은 아주 흔했던것 같다(왕하 15:8 이하).

2)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들은 더욱더 악을 행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송아지를 세워 하나님을 대적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들을 신으로 불렀지만(왕상 12:28,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 신이라') 하나님은 그것들을 우상이라 부르셨다. 그 말은 "슬픔" 또는 "환난"을 뜻한다. 이는 그것들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며, 그것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멸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우상들의 근본에 대해 추적해 보라. 그러면 그것들이 사람의 상상의 산물이며 그 손의 작품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6절). 그들이 경배한 송아지는 여기서 사마리아의 송아지라고 불리우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아합 당시 사마리아가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을때에 송아지가 궁정 가까이에 있도록 거기에 세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사람은 송아지를 섬기는 것은 애굽인에게서 빌어온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고안해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애굽인들은 살아있는 암소를 아피스 신으로 숭배했지만 금송아지를 숭배한 것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만든 금과 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모아졌다. 즉 그것은 기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난한 신이었다. 이것은...공장이 만든 것이라 참신이 아니니(6절). 만들어진 신은 하나님이 아니다. 만일 그것들이 신이 아니라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자신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그들은 하나님과 자신의 땅과 산 자의 땅에서 파멸당할 것이다(4절). 우상숭배의 미혹을 당한 자들중에 어떤자들은 자신들이 그것에 속임을 당하였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될 것이다. 우상에 대한 그들의 실망이 비유에 의해 예증되었다(7절). 저희가 바람을 심고. 그들은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림으로 열매를 거둘 것을 기대하듯이 우상숭배로부터 이익을 거둘 것을 기대하고,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기 위해 매우 많은 어려움과 값을 치루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긴 이웃나라들이 번성한 것처럼 그들도 번성하기 위해서 우상을 숭배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을 심는 것과 같아서 전혀 증식하여 소출할수 없다. 그들은 광풍, 곧 큰 회리바람을 거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을 위하여 거짓 신을 모신 것이 아니라 참하나님을 반대한 것이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무익한 것이며 어둠의 일은 결실이 없는 것이다.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롬 6:21)

 

Ⅱ. 이방을 의지한 죄 8:8-14

 

(1) 그들은 그들의 동맹국의 수를 늘렸다(9절). 에브라임이 값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그들은 열국의 우호를 사기위해 많은 값을 들였다. 연애하는 자가 없어서 돈을 주고 고용한 그들은 이웃나라들 가운데서 행동이 좋지못하였음이 틀림없다. 이스라엘은 이미 삼키웠은즉. 즉 이방인들에 의해서 삼킴을 당하였다. 그 땅은 먹히었다(7절). 그리고 메말라 황폐하게 되었다. 그들은 신용을 잃어 파산한 상인같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열국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다(9절). 그들은 도읍을 얻기위해 앗수르로 갔다. 여기서 그들은 홀로 처한 들나귀처럼 완고하고 다루기 어려웠다. '저희가 열방사람에게 값을 주었을지라도' 그들의 안전을 위하여 지불한 것은 도리어 그들의 적들에게 더 쉽게 먹이가 되게할 것이다. 그들은 앗수르왕의 우호를 사려고 노력하였으나 앗수르왕은 도리어 이스라엘에게 짐이 되었으며 그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였다(왕하 15:19,20). 그리고 이것들로인해 그들은 근심할 것이다. 저희가 모든 방백의 임금이 지워준 짐을 인하여 쇠하기 시작하리라(참조. 사 10:8).

(2) 그들은 그들의 제단과 성전을 늘렸다. 그들은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였다(12절).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하나님의 율법에 속한 일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이다. 그것들은 율법제정자의 위대함을 선포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들이다. 즉 그것들은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으로 우리의 영원한 행복은 그 율법을 우리가 지키고 순종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이 있다는 것은 큰 특권이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서기였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대로 기록하였다.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의 많은 것을 받은 자들이 복되다면 우리를 위해 기록된 하나님의 복음의 더욱 크고 많은 것들을 가진 우리는 얼마나 더 복되겠는가! 그러나 이 율법의 위해한 것들은 비이성적이고 난해한 것으로서 '관계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는 주의 도리를 알기를 원하지 아니하나이다'(욥 21:14). 그들은 거의 소용이 없는 경건의 모양을 유지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제단을 많이 만들었다(11절). 에브라임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봉헌한 제단의 증가는 다른신들에게 봉헌하는 제단을 유입하게 할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제사를 증가하였다(13절). 그들의 제단은 늘 연기가 나고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기위하여 고기를 잡아드렸다. 마치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의식법을 준수함으로써 하나님의 모든 도덕적인 율례의 의무에서 면제받기를 원하는 듯했다.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고기만 드리고 통회하고 믿는 마음의 영적인 제사를 드리지 않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열납하시겠는가? 범죄의 용서를 구하는 탄원은 결국 죄에 대해 저주하실 것을 바라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그것은 우상의 다수에 따라 응답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고 전각들을 세웠으며(14절). 어떤학자는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심판에 반항하는 '전각들'을 궁궐로 이해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유다도 하나님의 심판이 널리 시작되었을때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고 그것에서 안전을 찾으려 한것으로 인하여 책망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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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지도자들의 죄 7:1-7

 

(1) 이스라엘의 현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1,2절).

1) 하나님은 은혜롭게 그들을 위하여 선처해주시려고 계획하셨다.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개혁하려 하셨으며, 그들중에 있었던 부패를 일소하려 하셨으며, 그들의 평화와 번영을 그들에게 회복시키려 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어리석음은 다시 그들을 후퇴시켰다.

2) 그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방해하고 자신의 문에 빗장을 걸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치료하려 하실때에 숨겨있던 그 사악함이 드러났다. 그들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이 취해지자 더욱 터무니없는 악이 자라났다. 그들은 회개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가장하였다.

3)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통치하심에 대한 실제적인 불신이 그들의 모든 사악함의 밑바닥에 깔려있다(2절). 내가 그 여러 악을 기억하였음을 저희가 마음에 생각지 아니하거니와. 즉 "저희가 절대로 그 심중에 말하지 아니하고, '내가 그 여러 악을 기억하였음을' 생각지 아니하도다." 이것이 죄인의 무신론이다. 하나님이 무지하거나 잊어버린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이와같이 스스로를 속이는 자들이 비로소 잘못을 깨우칠때가 올 것이다. 이제 그 행위가 저희를 에워싸고.

4) 하나님이 그의 심판을 시작하셨다. 안으로 들어가 도적질하고 밖으로 떼지어 노략질하며. 어떤학자는 그들이 서로 도적질하고 노략질했다는 것을 그들의 악한 사례로써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인 것처럼 보인다. 그들중에는 도적들이 은밀하게 만연해 있었다. 그리고 강도떼, 즉 외국침입자들은 공공연히 밖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2) 왕실, 즉 왕과 방백들이 죄에 대해 특별히 기술되어 있다. 그들은 그들의 백성들의 악을 기뻐하였다(3절). 저희가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방백들을 기쁘게 하도다. 궁정에는 술취함과 주연이 풍성하였다(5절). '우리 왕의 날'은 곧 방백들과 함께 지내는 즐거운 날로 그들은 술병으로 그를 병나게 하였다. 그가 이와같이 취하였을때 '왕은 오만한 자들로 더불어 악수하였다.' 한나라의 통치를 맡은 자가 스스로 통치권을 잃어버렸다. 음란과 부정이 조신들 사이에 매우 만연하였다. 이것은 4, 6, 7절에 언급되었으며, 술취함에 대한 책망이 이 항목가운데 들어있다. 왜냐하면 술은 욕망의 불에 기름과 같기 때문이다(잠 23:33). 간음하는 자들은 여기에서 빵굽는 자에 의해 달궈진 화덕에 여러번 비교된다(4절). 저희는...그 마음을 화덕같이 예비하니(6절). 저희가 다 화덕같이 뜨거워져서(7절). 불결한 마음은 가열된 화덕같다. 빵굽는 자는 그의 화덕에 불을 붙이고 그것에 연료를 가득 집어넣는다. 아침에 그는 화덕이 잘 가열되고, 그가 뜻한바 그 목적대로 잘 예비된 것을 발견한다. 그와같이 이 악한 사람들은 어떤 탐욕스럽거나 불결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음모를 꾸밀때 그 악을 행하는데 완전히 심취되어, 비록 잠시동안 그 불을 끌수 있다할지라도 그 불은 여전히 안에서 타올라 기회만 주어지면 마치 구멍만 있으면 불길이 새어나오듯 그들의 의도는 명백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들은 그들중에 몇명 되지않는 좋은 재판관들을 삼켰다. 이 재판관들은 그들이 가열한 불을 끄고자하였다. 그 왕들은 모두 차례로 엎드러지고 그 가족들도 그들과 함께 넘어졌다. 왕국은 혼란에 빠질수밖에 없었다. 가슴에는 불꽃이 타고 있었다. 즉 그들은 서로에 대한 격노와 악의로 화덕같이 뜨거웠다. 이것이 그들의 재판장을 삼키고 그들의 왕들을 엎드러지게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무질서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Ⅱ. 나라 전체의 죄상 7:8-16

 

사마리아의 죄뿐만 아니라 에브라임의 불의도 드러났으며, 지도자들의 죄는 물론 백성들의 죄도 폭로되었다.

(1)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구별한 것처럼 자신을 이방에게서 구별하지 않았다. 에브라임이 열방에 혼잡되니, 그들은 이방인들과 연합하였고, 동화되어 그들중에서 자신의 특성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한 이방을 대적하기 위하여 다른 이방의 도움을 구하려고 열방사이를 오르내렸다. 그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되지 않았다. 저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그래서 한쪽은 타고 다른쪽은 반죽 그래도 남아있었다. 그러나 양편 어느쪽도 쓸만하지 않았다.

(2) 그들은 이상하게도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하지 못했다(9절). 그들은 외국인들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부분적으로 국가의 멸망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며' 침식되었다. 공공연한 전쟁으로써 그들을 삼키는 자도 있었고(왕하 13:7처럼, 수리아왕이 타작마당의 티끌같이 그들을 진멸하였다), 어떤자는 평화의 조약을 가장하여 아무유익이 없는 것을 위하여 비싼 값을 지불하게 하였다(왕하 16:9). 그들은 그들 자신의 악정으로 말미암아 부분적으로 쇠퇴하였다. 백발이 얼룩얼룩할지라도 이는 쇠퇴하고 기우는 상태의 슬픈징조를 보여주는 것으로 낡아지고 소멸해가는 것을 나타낸다.

(3) 그들은 그들의 악한 길로 계속하여 나아갔다(10절). 이스라엘의 교만은 전에 행하였던대로(5:5) 여전히 그 얼굴에 증거가 되었으며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겸손치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타락으로 고난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께 구하려고 생각지 아니하였다.

(4) 그들은 고통중에 있을때 악한 방법을 취하였다(11,12절).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같이 지혜가 없어서. 비둘기같이 악의가 없는 것은 칭찬할만하지만 비둘기같이 바보가 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이 비둘기는 자기 새끼를 빼앗기고도 슬퍼하지 않고 같은 장소에 다시 둥우리를 짓는다. 그와같이 에브라임은 대적에 의해 자기 백성을 빼앗기고도 야만스럽게 대하는 자들과 관계를 계속한다. 그 비둘기는 쉽게 유혹을 받아 그물로 들어간다. 즉 위험을 식별할수 있는 지혜나 이해가 전혀없다. 그들은 그와같이 자기들을 멸망시킬 이웃나라들과 동맹을 맺었다. 비둘기는 놀라운 일을 당했을때 자기 주인의 세심한 배려아래서 안전한 곳에 머무는 용기를 갖지 못하고 처음에는 한곳에서 은신처를 찾으며 방황한다. 그러다가 자신을 노출하고 만다. 고난중에 있는 이 백성은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같이' 맹금으로부터 보호받을수 있는 곳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에서 빠져나와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애굽을 부르며, 그들이 회개와 기도로 말미암아 그들의 하나님에게서 찾을수 있는 도움을 앗수르에서 구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올무에 걸리게 되었다.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그래서 그들을 곤경에 처하게 하리라. 이는 그들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보고 돌아갈 것을 생각하게 하려 함이라." 그들은 그들의 외국동맹군을 자랑하고 의기가 충천하였다. 내가...떨어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 들려준대로 저희를 징계하리라. 그들은 여러번 사람의 도움이 헛되다는 것, 그리고 인자중에는 아무도움이 없다는 것을 들었었다. 그들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서 그와같은 사실을 들은 적이 있으며, 그들이 그때 들은대로 이제 보고 느끼게될 것이다.

(5) 하나님이 그들을 보유하시고자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반역했다(13-15절). 하나님께서는 마치 자애로운 군주가 사랑스런 백성에게 하듯이 저희를 구속하셨으며(13절) 많은 곤란중에서 저희를 구원하셨다. 내가 저희 팔을 연습시켜 강건케 하였으나(15절). 즉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힘이 부러진 팔처럼 연약하여졌을때 그 힘을 다시 강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수리아를 이기도록 하셨고(왕하 13:16,17), 그들의 해안을 회복시켜 주셨으며(왕하 14:25,26), 전쟁을 수행할수 있도록 그들에게 능력으로 띠를 띠우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한 언약을 기억하셨지만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그들의 위험스런 적이기라도 한양 하나님으로부터 도망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의 율법을 주셨다. 그것은 모두 거룩하고 공정하고 선한 것이었다. 그는 그 율법으로 그들을 바른 길로 행하게 하려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악을 꾀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보내신 그의 메시지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위선적인 신앙고백과 거짓된 개심의 약속으로 여호와께 거짓말을 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좋은 일을 계획하셨으나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 악을 꾀하였다(15절). 죄는 해로운 것이다. 즉 그것은 하나님께 해로운 것이다. 그것은 반역이다. 그들은 이에 대해 벌받을 것이다(13절). 화있을진저 저희가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6) 그들이 헌신을 보임은 단지 시늉에 불과하였다(14절). 그들이 개인적 고난중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을때, 그들은 신실하지 않았다. 그들이 비록 여러 좋은말을 사용하였지만 '성심으로 부르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전혀 자기에게 부르짖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다. 모세는 비록 말한마디 하지 아니하였지만 오직 그의 마음이 믿음으로 기도하였기에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말을 들었다(출 14:15). 이 사람들은 늘 소리를 내었지만 하나님께 부르짖지 아니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옳지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시인하고 받아들이시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슬퍼 부르짖는 것'이라고 하셨다. 어떤학자는 그것은 그들이 바알에게 부르짖곤 했던 그들의 기도의 시끄러움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나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그들의 곡식과 포도주를 그들에게서 취하지 마시기를 위해서 기도하였다. 육적인 마음은 오직 현세적인 자비만 탐하고 현세적인 심판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개혁을 가장하였지만 어느것도 진실한 것이 아니었다(16절). 저희가 돌아오나. 즉 그들은 돌아올 것처럼 가장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렘 4:1).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즉"나를 향해 돌아올뿐만 아니라 나에게로 돌아오라." 그들의 이 위장은 그들을 속이는 활처럼 만든다. 그 활은 굽혀지고 당겨지지만 힘을 주기만 하면 활과 시위가 모두 부러진다. 이스라엘 방백들의 죄는 하나님과 그들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다투는 그들의 '혀의 거친 말'이다. 방백들은 그들의 적이 아니며 자기 백성의 칼에 의해서 쓰러질 것이며, 이것은 그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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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이스라엘의 참회의 결의 6:1-3

 

이것은 백성에게 회개할 것을 요청하는 선지자의 말이거나 아니면 백성들 서로가 권면하는 말로써 이해할수 있다.

(1) "우리가 더이상 앗수르에게 가지말고, 야렙왕에게 사람을 보내지도 말자. 다만 우리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그를 경배하며 우리의 소망을 그에게 두자."

(2) "우리가 그에게로 돌아가자. 이는 그가 찢으셨고, 그가 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로 돌아가자. 우리가 그를 변절한연고로 그가 우리를 치셨으므로, 우리가 그에게로 돌아가기까지 그는 우리와 화해하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라. 찢으신 분이 우리를 치유하시리라. 치셨던 분이 우리를 싸매어 주시리라." 마치 유연한 손을 가진 능숙한 외과 의사가 부러진 뼈나 피흘리는 상처를 싸매어주듯 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자비로 그것을 하실 것이다. 아니, 어떤의미에서 그는 치유하시려고 찢으신 것이다. 어떤학자는 이것은 특별히 바벨론에서 유대인들이 귀환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고난가운데서의 그들의 구원이 그들에게 있어서 마치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기대한다(2절). "여호와께서 이틀후에 우리를 살리시며(즉 하루나 이틀안에, 잠깐사이에) 제 삼일에, 즉 시체가 우리 눈앞에서 매장되었다고 간주되었을때 그가 우리를 일으키실 것이며, 우리는 그앞에서 살 것이라.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부활과 같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잠시동안 버리신다할지라도 영원한 자비로 모으실 것이라." 그러나 이것은 더나아가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리스도께서 제 삼일에 살아나실 것을 상징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는 모든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곧이어 뒤따를 영광에 대해 증거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말씀속에서 이 비밀을 주의하지 않았지만 그 말씀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문자그대로 성취되었다. 그것은 그분은 오셔야할 분이시며 우리는 어떤 다른사람을 기다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확증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언이 이와같이 "그가 우리를 일으키심으로 우리는 살게되리라"라고 표현된 것은 옳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첫열매로 부활하셨고, 우리는 그와 함께 그리고 그를 통하여 살게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3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비로 되돌아오실때 그는 그들에게 자신에 대한 더많은 지식을 주실 것이다. 그때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라'(사 11:9).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열매와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사는 생명으로 이해될수 있다. 우리는 지식을 얻는 더 큰 수단뿐만 아니라 지식을 증진시켜주는 은혜도 갖게될 것이다. 우리의 지식은 온전하여질 것이고, 그러면서도 영원히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의 나아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그것은 그가 자기 처소로 돌아가셨을때 우리에게서 거두어 들이셨던 그의 은총을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즉 우리를 기쁘게 맞아주실 것이다. 늦은 비는 땅을 신선하게 하고 열매를 맺게하는 것이다. 이제 이것은 포로로부터 구원에서 한걸음 더나아가 그리스도와 복음의 은혜가운데서 완전한 성취를 보았다. 그의 나아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이는 그가 때가차서 오신 까닭이다. 세례요한 자신은 밝은 새벽별이었다.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을 것이다'(시 72:6).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늦은 비와 이른 비 둘다라고 할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열매맺는 선한 일은 그로 말미암아 시작되고 계속되기 때문이다.

 

Ⅱ. 책망과 권면 6:4-11

 

유다와 에브라임은 모두 여기에서 두가지 악한 일로 책망을 받는다.

(1) 그들은 불안정하였다. 즉 물같이 동요하였다(4,5절).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가를 보이시려고 인간의 방식대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을 베푸시려고 하셨으나 그들은 그에 대한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다.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내가 명예를 걸고 너희를 구원할수 없을때 너희를 내던지는 것외에 다른 무엇을 할수 있을까?" 여기에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소행을 보라.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같도다. 때때로 그들에게 나타났던 선은 아침 구름과 이슬처럼 곧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들의 인애를 열납하실까? 아니다. 왜냐하면 그 인애는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침구름과 이슬같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우리 자신에게 유익을 전혀 주지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훌륭한 약속을 하고 실행치 않을때, 지속적이고 불변하여 끊임없이 행하지 못할때 그들의 인애는 아침의 구름이나 이슬과 같다고 할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조악하고 기형적이기 때문에, 마치 통나무나 돌을 사용하기위하여 쪼개듯이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쪼개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라." 그들은 걸핏하면 선지자들이 그들을 죽였다고 말하였다. 그때 선지자들은 성실하게 그들에게 대해 처신하였다. 그들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일정치 못하였다(4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쪼개셨다. 죄인들의 마음은 마치 거친 돌과 같다. 그것이 모양을 갖추기위해서는 상당한 수고를 필요로 한다. 또한 그것은 옹이가 많은 통나무와 같다. 그래서 어려운 손질을 많이 하지않고는 다듬어지지 않는다. 종종 목회자들이 심하게 책망해야할 사람들이 있다. 진실을 말한다는 이유때문에, 책망받는 자가 책망하는 자를 정면으로 대항하고 그를 원수처럼 여긴다 하더라도 말씀을 깎고 다듬는 일을 해야한다.

하나님은 그 예언하신 말씀을 성취하셨다. "내가 내 입의 말에 따라 내 심판으로써 그들을 죽였노라." 하나님의 말씀은 죄나 죄인에 대하여 죽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큰 수고를 무릅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지만 그 수고를 통하여 원하는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예고한 불행을 내리신다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을 가혹하다고 비난할수 없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이 공정하고 의롭다고 분명하게 고백한다.

(2) 그들은 그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치 못하였다(6,7절).

1) 하나님이 그들과 맺은 언약은 다음과 같다(6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여기서 인애는 4절에 있는 인애, 즉 선함(헤세드), 경건, 고결함으로 번역되는 것과 동일한 단어이다. 그것은 모든 실천적 신앙에 대해 사용되며 신약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대해 널리 사용되는 자비(charity)와 같은 단어이다. 이것은 예레미야7:22,23절에서 충분히 설명되었다. 아마 이것은 그들이 버린 하나님과 그들이 쫓아간 이방신들과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 언급되었을 것이다. 경건의 능력은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요구하시는 주요한 일이므로, 그것이 없는 경건의 모양은 아무소용이 없는 것이다.

2) 그들은 이 언약을 얼마나 만홀히 여겼는가! 그들에게는 지키도록 위탁된 선한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제사와 번제의 장롱속에 있는 인애와 경건,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보석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장롱은 지켰지만 그들의 진실을 팔아버렸다. 천박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보석들을 저당잡혔다. 그것때문에 하나님이 그들과 쟁론하신 것이다(7절).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아담이 순결의 언약을 범한 것처럼 그렇게 그들은 은혜의 언약을 범했다. 여기서는 하나님과의 불성실한 관계를 하나님께 패역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욕이며 대적이기 때문이다. 요단 건너편을 바라보라. 그 지역은 이웃나라들에 대하여 가장 위험하게 드러나있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그 지역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고자 부심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거기서 매우 대담하게도 대부분이 하나님의 존엄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라"(8절). 갓과 므낫세 반지파의 지경에 있던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었다. 라못 길르앗은 레위인의 성읍으로 요단 건너편에 있는 세 도피성중 하나였다. 거주민들은 거룩한 지파이었지만 행악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뇌물을 위하여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하였다. 거룩한 일을 주요임무로 삼는 자들이 가장 악한 자만큼이나 악하였다(9절). 제사장의 무리가 잔인하고 피에 목말라 하였다. 그들은 교활하였다. 그들은 세겜 길에서 살인하였다. 그들은 예배하러 예루살렘으로 가고자하는 자들이었다(그 목적을 위하여 세겜 길이 나 있었다). 아니면 어떤학자가 생각하듯이 '세겜 길에서'라는 말은 그들의 조상 레위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사기와 속임으로 세겜 사람들을 죽였던 것과(창34장) 같은방법을 나타낸 말인지도 모른다.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그것은 육체적인 면뿐만 아니라 영적인 면에서도 행한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명백하여 부인할수가 없는 것이다. "유다를 들여다 보라. 그러면 너희는 그들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였음을 발견할 것이라"(11절).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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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여러가지 죄에 대한 질책 5:1-7

 

(1)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열거되고 있다(1절).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귀울이라. 그들은 모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민족적인 죄에 관여했으므로, 민족적인 심판에 해당될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을 대적하는 증거가 제시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이다(3절).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지만(4절)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아셨다.

(3) 그들은 사람들을 죄나 곤경으로 끌어들이는데 부지런하였다. 너희가 미스바에서 올무가 되며 다볼위에서 친 그물이 됨이라(1절). 그들은 그들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일에 있어서 간교하고 잔인하였다(2절).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그들은 행음하였고, 자신의 몸을 육신의 정욕으로 더럽혔고, 자신의 영혼을 우상숭배로 더럽혔다(3절).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교제하려는 성향이 전혀없었다. 그들로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그릇된 길로 들어서게한 음란한 영은 그들을 끊임없이 방황하게 한다(4절).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없이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돌아갈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기능의 적당한 활용과 하나님의 성령의 일반적인 도움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행동을 취할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악명높은 오만죄와 무례죄를 범하였다(5절). 창기가 그 옷차림으로 증명되듯이(잠 7:10) 화려하고 야단스럽게 예배하는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우상에게로 떠나갔고, 그들의 자녀들을 우상숭배로 양육하였다(7절). 하나님을 따르는데서 스스로 돌이킬뿐만 아니라 사악한 길로 그들의 자녀들을 훈육한 자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이다.

(4)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하나님이 너희와 쟁변하시고자 그리고 너희 죄로인하여 너희에 대해 그분이 진노하심을 나타내시고자 나오시도다." 그들이 자기들의 죄악으로 넘어질 것이다. 이 사실은 그들의 얼굴에 증거가 되는 교만에 뒤따라 나온다(5절). 그 죄악을 인하여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지만 얻지못할 것이다(6절).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갈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것은 주로 유다에 대한 언급인듯이 보인다. 그들은 통상 하던대로 엄숙한 절기에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갔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위하여 온전하지 못하였다. 양떼와 소떼만 가지고 여호와를 찾으러가고 영혼과 마음을 함께하지 않은 자들은 여호와를 만날 것을 기대할수 없다. 왜냐하면 수천마리의 수양으로도 하나님의 은총을 살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과 그들의 분깃은 다 삼키운바 될 것이다.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그러므로 새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라. 그들의 기업이란 그들의 우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기업을 위하여 그 우상을 하나님 대신에 선택하였다. 한달이 그들을 삼킬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때때로 죄많은 백성을 속히 처리하신다. 한달이 여러해에 걸쳐 복구할수 있는 것보다 더욱더 많은 기업을 삼킨다.

 

Ⅱ.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경고 5:8-15

 

(1) 그들로하여금 다가오는 심판에 주목하게 하는 큰 경종(8절) : 너희가 기브아에서 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호각을 불며. 이 두성읍은 유다와 이스라엘 두나라의 인접도시였다. 기브아는 유다왕국의 접경지방이었고 라마는 이스라엘왕국의 접경지방이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경고가 두나라에 보내졌다. 벧아웬에서 깨우쳐 소리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전에 이미 심판이 확실함을 말씀하셨었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서 그는 그들에게 심판이 가까웠음을 말씀하신다. 이 나팔소리는 9절에서 설명되었다. 내가 이스라엘 지파중에 필연있을 일을 보였노라. 그 말뜻 그대로 그것은 참된 혹은 확실한 일이다.

(2) 하나님이 쟁변하시는 근거 : 하나님께서 유다 방백들과 쟁론하시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대담하게 죄를 범하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10절). 그들은 하나님의 권리까지 침해했으며, 선과 악의 구분을 무시하였다. 어떤학자는 유다의 방백이 이스라엘의 방백보다 더욱 절대적이고도 독단적인 권력을 휘둘렀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해 그들과 쟁론하신다.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같이 부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 백성과 쟁론하시는데 이는 그들이 죄를 좇기 때문이었다(11절).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좇기를 좋아하므로. 즉 여로보암과 역대 이스라엘 왕들의 명령을 즐겨 좇았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백성들에게 단과 벧엘에 있는 송아지를 숭배하도록 법으로 강요하였다. 그리고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에브라임은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당하며,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당하였다. 웅크리고 아양떠는 발바리같은 복종은 맹렬하고 사나운 불독같은 폭군에게 가장 큰 이득을 준다.

(3)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각각 대하신 방법.

1) 하나님께서는 보다 작은 심판으로 시작하시는데, 그것은 때때로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진행된다(12절).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같으며. 즉 심판은 에브라임에게 좀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재 에브라임이 보는 것과 같은 병이기 때문이다(13절). 하나님의 심판은 때때로 악한 사람에게 좀처럼 그리고 썩는 것이나 벌레와 같이 임한다. 그들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조용히 임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 안전하고 번창하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소모되고 쇠멸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될 것이다.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천천히 그리고 오래 지체하며 여유를 두고 하실 것이다.

2) 그 심판이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을때 하나님께서는 더 큰심판으로 그들에게 임하실 것이다(14절).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같으니. 만일 작은 심판들이 소기의 목적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큰심판을 보내실 것이다. 어떤 심판에 있어서는 다른 심판보다 더 즉각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내가 움켜갈지라.

(4) 상이한 방법의 상이한 효과 : 하나님께서 작은 심판들로 그들과 다투셨을때, 그들은 피조물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13절). 그 당시 그들은 앗수르로 사람을 보내어 원조를 청하고, 야렙왕에게 애걸하였다. 어떤학자는 야렙왕이 앗수르왕 디글랏 빌레셀 아니면 불이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곤경에 처했을때 그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으며, 그들과 제휴함으로써 기울어가고 있는 국세를 다시 세우려고 하였다. 환난의 때에 육적인 마음은 그들의 병은 보지만 그 원인인 죄는 보지않는다. 그들은 그들을 구원할수 있는 창조주께 직접가는 대신에 그들에게 아무도움도 줄수 없는 피조물에게 갔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찾은 앗수르의 왕들은 그들을 돕기는커녕 도리어 압제하였다(대하 28:16,20). 그들은 야렙왕에게 예물을 드렸고(호 10:6), 그를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에 대한 그의 신실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속였다(렘 17:5,6).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보다 큰심판을 보내실때, 그들은 결국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15절).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그곳은 하늘, 또는 은혜의 보좌인 속죄소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벌하실때, 그는 자기 처소에서 나오신다(사 26:21).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실때 그는 그의 곳으로 돌아가신다. 거기서 그는 은혜베풀기를 기다리신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자신에게로 돌아오도록 하실 것이며, 더이상 그들에게서 물러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이 돌아오는 것에 대한 실례가 두가지 있다.

1) 죄에 대한 그들의 참회의 고백 :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즉 그들이 자기 죄를 깨닫고 하나님앞에 그것으로인해 자신을 낮추게 될때까지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난보다 자기 죄에 대해 더 탄식할때 그들에 대한 어떤 소망이 시작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겸허한 탄원 :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만일 그들이 이와같이 그를 구한다면 비록 그를 찾는 것이 늦었다는 말을 듣는다하더라도 아직 너무 늦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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