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떠한 피조물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우위에 계시다. 그는 천사보다 뛰어나시며 모세나 그 어떤 선지자보다 앞서시는 분이시다. 바로 그러한 분이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의 형제가 되시며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계신다. 본문을 통해 기자는 독자들이 처한 위험 앞에서 구약을 완성하신 대제사장 메시야인 예수를 바라봄을 통해 배교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1. 선재하신 뛰어난 메시야(히1장)
본문은 예수그리스도의 선재성과 천사보다 우월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구약성경의 성취자로서의 예수를 부각시키고 있다. 왜 예수그리스도의 선재성을 강조해야만 했으며 천사보다 뛰어남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구약성경의 성취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독자들의 배교 방지
본 서는 크게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교리부(히1:1-10:18)와 성도의 믿음을 촉구하는 시행부(히10:19-13:25)로 나눌수 있다. 이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신적 속성을 강조하는 히1:1-4:14은 비교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집중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저자가 이처럼 예수의 우월성을 여러 관점에서 논증하고자 애쓰는 것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성도들의 배교 방지를 위해 먼저 유대인들이 존귀히 여기던 구약적 존재들보다 예수께서 우월하심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하여 저자는 선지자(히1:1), 천사(히1:4-2:18), 모세(히3:1-6) 등과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예수만이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들에게 온전히 보여주며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 상황화의 가능성
성경은 단순히 문자적 이해에 그쳐서는 시대의 문제에 적절한 해답을 줄수 없다. 즉 말씀은 그 시대의 맞는 적절한 해석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히브리서는 상황화의 가능성에 대한 많은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2. 첫번째 경고(히2:1-4)
본 서신은 5차례의 경고가 주어진다(히2:1-4 ;히3:7 ; 히4:13 ; 히5:11 ; 히6:20 ; 히10:19-39 ; 히12:25-29). 이러한 경고는 본 서신의 기록 목적을 살펴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기자는 점점 더 심각한 경고를 통해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주어진 경고는 무엇인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자는 경고를 하고 있는가?

1) 경고
본 서신에 기록된 다섯부류의 경고는 독자들의 영적 침체와 배교를 염두에 두고 저자가 최후의 진지를 사수하려는 비장한 마음으로 진리의 말씀에 입각하여 신앙의 경고와 권면을 주고있다. 이중에서 본장에 기록되어 있는 권고는 복음을 받은 개종한 독자들이 그 말씀을 등한히 여기고 교회 지도자의 교훈을 불순종할때 초래되는 신앙적 표류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히1:1-3이 계시의 완성이신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다면 본문은 계시의 완성이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독자들은 구약 시대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율법과 제사 제도를 고집함으로써 하나님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숭고한 말씀인 복음을 저버릴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을 주의하여 간절히 삼가지 않는 성도는 뒤로 떨어져 떠내려 갈수 밖에 없으며 이교적이며 세상적인 습성에 물들어 위험한 급류 속에 휘말려 들어가 지극히 고귀한 것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는 과거 천사를 통해 주어진 율법을 어겼을때 징계를 받았던 것처럼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히2:2,3)을 권면한다.

2) 등한히 여기는 자의 결과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신있게 공언하는 사람들이 이처럼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면 그들은 구원을 잃어버리게 될 것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즉 영혼의 파멸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바로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는'바로 그 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3. 고난받는 대제사장(히2:5-18)
본문은 그리스도의 본성과 사역을 증거하고 있으며 복음을 무시하고 슬그머니 신앙의 대열에서 빠져나가는 독자들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앞에서 언급한 독자들에 대한 저자의 경고(히2:1-4)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필요성은 무엇인가? 고난을 통해 형제되신 그리스도의 진정한 구원론적 필연성은 무엇인가?

1) 고난의 필요성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으로 본다면 죄인이 구원받기 위해 예수께서 죽음을 당하실 필요는 없었다. 속죄의 필요성은 하나님 자신의 온전하심과 그 성품에 의해서 요구되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으셨다. 인간은 형벌받아야 했고 그의 거룩하심은 타락한 죄인들과의 사귐에서 즐거움을 누릴수 없었으나 그의 자비는 우리의 구원을 열망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자신의 성품과 일치되게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동시에 하나님의 속성을 영광스럽게 나타내 보이시고 그 속성들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제시하며(시85:10,11), 그것들은 새로운 빛으로 감싸서 우주를 찬양케하는 방편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천사들의 왕(히1장)이신 예수께서 또한 중보자로서 인간의 형제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형제됨을 강조하기 위해 먼저 추상적으로(히2:11)설명했고 이어서 구약성경으로부터 인용(히2:12,13)한다. 형제됨의 목적은 죄와 사단으로부터 끌어내어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하심'(히2:16),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려하심'(히2:17)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유명한 명칭인 '대제사장'이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이 명칭은 본 서신의 중심 사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신약의 어느 책에서도 그에게 부여하지 않는 독특한 신학적 용어로써 예수께서 이루신 구속사역 속에 구약 시대의 속죄 행위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2) 형제 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형제되심을 부인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그리스도의 형제라고 주장한다면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은 불가피한 것이다. 우리가 근심할때에 하나님, 곧 그리스도가 형제의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신다는 것을 알면 놀라운 위로가 된다. 그것은 천사보다 그 어떤 선지자보다 우월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고난을 통해 우리와 함께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형제이시다. 그는 인생의 모든 고통을 체험하신 형제이시다. 또한 모든 속죄를 다 이루신 완전한 대제사장이시다. 따라서 예수를 떠나는 일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 아닐수 없다. 형제가 되신 예수께서 지금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는 이 사실을 깨달을때 감격적인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히브리서의 사상 형성

예수의 대제사장직은 신약성경의 다른 책들에서 그대로 되풀이되어 나타난다(요17장; 계1:13).
이 개념은 장차오실 메시야에 관한 시편 110편의 해석과 제사장이신 메시야와 왕이신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유대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히브리서에 나타난 이러한 사상 개념의 독특한 발전은 사상 전승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창조적으로 반영하는 그리스도인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세의 율법은 '장차 나타날 좋은 것들의 실체가 아니고 그림자일 뿐'(히10:1)이고, 땅의 장막들은 하늘에 있는 '참된 장막의 모형'(9:23,24)이라는 개념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의 관계에 대한 헬라 철학을 반영한듯 하며, 저자가 쌓은 헬라 문화의 훈련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학자들 중에는 히브리서에 나타나는 다양한 관점을 통하여 헬라의 영향을 받은 유대인 철학과 알렉산드리아의 필로(B.C.20년-A.D.40년) 사상과 눈에 띠게 유사한 점을 발견한 사람도 있고 또 어떤 학자들은 히브리서의 신학적인 면에서 영지주의적 요소들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바울이 히브리서 저자에게 미친 영향의 범위는 분명하지 않다. 히브리서는 바울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지만 반면에 유사성도 있다. 전반적으로 볼때 히브리서에서 율법과 이스라엘의 희생 제사로 시도한 바울의 접근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히브리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상(像)은 유대교 사상이나 헬라문화 그리고 원시 기독교에 기인된다는 사실은 분명한 사실이다.

2. 저작권

1) 바울
2세기 말부터 동방 교회는 바울을 저자로 간주하고 히브리서를 바울 서신들 중의 하나로써 로마서를 기록한 뒤 또는 데살로니가후서 뒤에 쓴 것으로 여긴다. 서방 교회는 동방 교회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A.D.325년부터 바울이 저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오늘날 거의 모든 학자들은 문학, 양식, 문체, 신학적인 면에서 바울의 저서가 아니라는 입장에 동의한다. 바울은 익명으로 서신을 쓰지 않았다. 그는 주장과 권면을 뒤섞지 않고 오히려 항상 편지 끝에 중심되는 간청을 남겨두었다. 바울의 문제는 때때로 거칠고 눈에 뜨일 정도로 여담에 흐르거나 때로는 문장을 끝맺지 않지만 이 서신은 대단히 잘 다듬어져 있다.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은 바울의 독특한 주제들이 빠져있는 것 같다. 첫째 율법을 통한 의인(義認)이 아닌 믿음을 통한 의인, 둘째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동등성, 셋째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 등이다. 바울의 서신에는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형상은 나타나 있지 않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적을 없애주는 희생 제도의 기초로써의 율법을 무시했으며, 오히려 죄를 드러내고 죄를 자극하는 도구로써의 율법을 강조했다. 바울은 두번째 회개(히6:4-8 ; 히10:26-27 ; 히12:17)의 불가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2) 아볼로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알렉산드리아의 아볼로가 히브리서의 저자라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은 다른 것보다 유력하다. 아볼로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행18:24)였다. 따라서 루터는 아볼로가 많은 헬라의 수사학과 철학의 훈련을 통해서 히브리서의 문체와 사상을 알게될 것이라 추정한다. 아볼로는 바울과 디모데와 가깝게 지냈다(고전16:12). 이것으로 히브리서의 바울적 특징과 디모데에 관한 그의 관심(히13:23) 모두를 알게될 것이다.

3) 누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누가가 이 책의 히브리 원전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현대 학자들은 히브리서와 사도행전 사이의 유사점을 특히 스데반의 설교(행7장)부분에서 찾아낸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누가의 신학과는 너무나 현저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누가가 히브리서 저자일 가능성은 희박하며, 더욱이 히브리서 또한 히브리 원전을 헬라어로 번역한 증거가 전혀 없다.

4) 바나바
터툴리안(A.D.220년경 사망)은 히브리서의 저자를 구부로 태생으로써 레위족인 바나바로 생각한다. 레위족(레위에서 시작된 제사장 족보)은 성전 제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바나바는 그렇게 깊이있는 글을 쓸수 있을 정도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추측을 뒷받침할만한 것은 거의 없다.

5) 그밖에 사람들
로마의 클레멘트 실바누스(실라), 빌립(일곱 집사 중의 한명) 그리고 브리스길라 등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오리겐은 "이 서신을 쓴 사람은 하나님이 정확히 아신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 중 가장 유력한 후보지도자는 아볼로와 바나바를 들지만 오리겐의 견해가 가장 유력하며 앞으로 계속 지지될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명칭

본 서신의 명칭은 한마디로 애매하다. 초기 전승은 본 서신의 명칭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거나 언급하는 경우 '히브리인들에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주후 2세기경 활동한 판테누스와 터툴리안 역시 본 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본 서의 표제만은 '히브리인들에게'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명칭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는 알려져있지 않다. 다만 2세기에 이 문서가 바울 서간집에 포함되었을 때 편집자가 '로마인들에게'와 같은 말에서 유추하여 이 명칭을 붙인 것으로 볼수 있다. 이 명칭은 단순히 수신자가 유대인들 또는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편집자의 막연한 느낌을 반영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명칭에 관한 불확실성은 본 서신의 역사적 배경을 고찰하는데 있어서 불리한 점이 되어왔다. 물론 서신의 내용에서 역사적인 언급들을 찾아내어 추론할 수도 있지만 본 서신에서 역사적인 언급들은 매우 애매하고 단편적이다. 따라서 본 서신의 명칭에 관한한 누구도 확정적인 주장을 하기는 어렵다.

2. 수신자

만일 '히브리인에게'란 명칭이 원래의 명칭이 아니라 편의상 편집자가 본 서신에 갖다붙인 이름이라면 수신자를 밝히는데 있어서 명칭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이 문제는 가능한한 성경 본문의 내증에 근거하여 밝혀져야만 한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본 서의 수신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거나 그의 말씀을 듣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들은 어떤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아 예수님을 알고 있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집단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개종한 이래 계속 박해를 받았는데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생활이 시작된 직후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아주 떠날 위험에 대해 경고함으로써 계속 신앙의 전진을 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헬레니스트였음을 본 서신에서 추론할 수 있다. 그들은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옛 제사의식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구약성경을 읽은데서 얻은 것이지 예루살렘의 성전 예배를 직접 접한데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암시되어 있다. 본 서신의 수신자들은 계속되는 박해의 위협 속에서 유대교로 회귀하려는 강한 유혹에 처한 헬라어에 익숙해 있던 유대인 기독교인들로 보여진다.

3. 저자

1) 바울 저자설
본 서신이 누구에게 보내졌는지 확실히 알지못하여 또한 누가 이 서신을 보냈는지도 알수 없다. 바울이 저자라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와 유세비우스 등의 신념은 동방 기독교의 판단에 영향을 주었고 궁극적으로는 4세기 말엽에 서방 교회의 판단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본 서신에 대한 바울의 저작설은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의 경우처럼 단정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본 서신에 나타난 문체와 사상의 양식은 바울의 것과 같지 않다. 즉 본 서신은 구약성경의 헬라어 역인 70인역에서만 구약성경을 인용했으며 바울의 문체보다 훨씬 유창한 헬라어를 구사하고 있다. 특히 바울 서신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대제사장 기독론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은 바울의 저자설을 부인하기에 충분하다.

2) 바나바 저자설
주후 220년에 글을 쓴 터툴리안은 히브리서의 저자로 바울의 동료이며 사도인 바나바를 지적한다. 이 견해는 아프리카 지역의 교회들의 일반적인 견해로 보여진다. 바나바는 초대교회의 유력한 인물로써 '권위자'(행4:36)라고 불렀으며 헬라 사상에 젖어 있던 구브로 출신의 레위인이었다. 이런 점에서 제사 제도를 구속사에 정확하게 적용하여 기술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했으므로 히2:3의 내용과 부합된다. 그러나 이것은 터툴리안이 지나치게 반유대주의적인 편에 있는 가짜 바나바의 편지와 성경의 사용법이 유사한 것을 보았을뿐 초대교회 당시의 외적 증거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3) 기타 저자설
419년 칼타고 회의때가서야 비로소 본 서에 대한 바울의 저작설이 동방에서처럼 사방에서도 전통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비평적 판단을 하는 주석가들은 여전히 본 서의 저자가 로마의 클레멘트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누가를 본 서의 번역자 또는 편집자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 칼빈은 누가나 로마의 클레멘트를, 루터는 아볼로 저작설을 주장하였다. 한편 하르낙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함께 본 서를 썼다고 주장했다. 분명한 것은 저자는 제2세대 그리스도인으로서 70인역에 정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풍부한 어휘력을 가졌으며 바울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수사학적인 문체의 대가였다. 그는 성경에 능한자로써 스데반과 빌립의 동료들이며 이방 선교의 선구자들이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의 사고 방식을 이어받은 한 헬레니스트였다. 그러나 실제로 누가 본 서를 썼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그 진상을 아실 뿐이다.

4. 기록연대

본 서의 기록 연대에 관하여 성전이 아직 기능을 하고 있었던 시대로 보는 견해가 전통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많은 현대 신학자들이 성전 파괴 이후로 연대를 계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크게 본 서신의 기록 연대는 조기 기록설(A.D.58-60년)과 예루살렘 멸망 직전설(A.D.70년이전)과 그 이후의 설(A.D.80-90년)로 각각 나누어진다. 이와 같은 본 서신의 기록 연대는 로마의 클레멘트 히브리서 인용, 성전 제사의 진행여부, 박해 시기, 신학적 발전 여부에 따른 내, 외증에 의해 결정한다.

5. 목적

그 당시 독자들은 예전에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현재 계속되는 기독교 안에 대한 박해와 죄의 문제로 딜레마에 빠져 유대교로 회귀함을 통해 제사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들은 세례 이후 죄의 문제로 시달리면서 예수를 믿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신학적 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히브리서 독자들의 특별한 상황에 비추어서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그들에게 예수를 믿는 것이 계속 우리에게 도움이 됨을 논증하기 위해 히브리서의 대제사장 기독론을 전개한다. 여기서 저자는 예수께서 현재 대제사장 되심과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계속적으로 주고 계심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종말론적으로 한번 영원히 효과있는 제사로써 과거의 죄뿐 아니라 현재의 죄도 해결해 줄수 있는 제사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좀 새로운 논제로 이 문제의 해결을 전개한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제목 : 은혜의 보좌 앞으로 (홍문수 목사)

 

[히브리서 4장 14절~16절]

14절 -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절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절 -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특권

1. 기도의 특권 - 험한 세상 살아가면서 도움을 받으라고 주신 특권이다. (영적 무기)

  - 예수님 때문에 얻은 축복이다.

  - 이사야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하나님과의 관계회복 - 죄를 해결해야 한다)

  - (14절) 예수님 = 큰 대제사장 (중보자 - 인간과 하나님과의 연결)

  - 마가복음15:37~38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갈 수 있다)

  - 로마서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와 하나님을 연결해주시고, 기도해 주신다) 

  - 요한복음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2. 기도의 실천 - 은혜의 보좌 앞으로

  -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모든 고난을 받으시고, 체휼하시므로 인간을 동정하신다. (15절)

  - 은혜의 보좌 앞에 어떻게 나가야 하나? (16절)

    1) 때를 따라 - 하나님은 항상 준비되어 있으시다. 언제나 기도하라.

      - 데살로니가전서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 시편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2) 담대히 - 기도의 권리,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라.

      - 요한일서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3. 기도의 종류 : 간구, 도고(중보기도), 합심기도(통성기도)

  1) 간구

    - 예레미야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비한 놀라운 복을 주신다) 

    - 시편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2) 도고 (중보기도)
    - 디모데전서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3) 합심기도 (통성기도)

    - 마태복음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 기도는 특권이자 책임이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다.

  - 사무엘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 기도의 특권을 누리고, 기도의 책임을 감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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