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의 기록 대상과 목적은(히 1:1-3)?

대상 -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후 교리적, 정치적인 박해 때문에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믿음이 약한 유대인 성도.
목적 - 그리스도만이 유일 절대의 구주이시며 그의 복음만이 참 구원의 진리임을 변증함으로써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의 우월성을, 나아가서는 구약 신앙에 대한 신약 신앙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함 입니다. 동시에 이를 통해 성도들의 배교를 막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성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 우월성에 대한 표현은(히 1:12)?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던 것을 이제 친히 아들이 말씀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격과 메시지에 있어서 구약의 선지자들보다 우월하십니다. 그분은 계시를 복음으로 완성, 종결하신 분이시요, 그분 자체가 계시의 핵심이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무엇보다 우월하다고 말하는가(히 1:1-14)?

천사보다 우월함(히1:4-2:18), 선지자보다 우월함(히1:1-3), 모세보다 우월함(히3:1-19), 여호수아보다 우월함(히4:1-11), 아론보다 우월함(히5:1-10:8).
그리스도는 창조주로 모든 만물보다 우월하십니다.


천사들의 역할은(히 1:6, 14)?

모든 천사들은 성자 예수님을 수종드는 자이며 또한 구원얻을 성도들을 섬기도록 보냄받은 자들임.
천사는 히브리어로는 ‘말라크’, 헬라어로는 ‘아겔로스’이며 둘다 ‘사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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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징계

1) 정의
징계에 해당하는 구약 히브리어에는 r!wm(무사르), tjbwt(토카하트)가 있는데 이 둘은 모두 '정책, 훈련, 가르침, 정정, 교정'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써, 주로 아비가 자식을 교육하는 것과 관련되어 사용된 원어이다(신21:18 ; 잠22:15). 한편 징계에 해당되는 헬라어에는 paideia(파이데이아)가 있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된 두 히브리어와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가지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가정 교육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까지도 내포한다. 예를들면 행7:22에서는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배운 사실을 가리켜서, 또 행22:3에서는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사실을 가리켜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징계'란 하나님이 성도들에 대해 아비와 같은 깊은 사랑의 심정으로 성도의 실수를 교정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주시는 각종 견책을 의미한다(신8:5 ; 왕상12:11).

2) 하나님의 징계 이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당시의 성도들을 징계하시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볼수 있다. 첫째는 성도들의 범죄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성도가 때로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훼손하며, 그 영광을 가리우기 때문에 그러한 범죄에 대하여 그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하여 당신의 거룩과 영광을 보존하시기 위하여, 징계하시는 것이다. 둘째는 성도들이 징계의 과정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더욱 성화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즉 징계는 교정의 목적도 가지고 있다. 실로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의인의 영적 지위는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획득하였지만 그 인격 자체가 완전한 의인이 된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실수할 수도 있다. 이에 하나님은 아비가 자식을 교정시키듯이 성도를 교정시키시고자 징계를 주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징계(Discipline or Chastisement)와 징벌(Punishment)은 다르다. 즉 징벌은 죄인에 대한 단순한 공의의 형벌로써 결국 완전한 멸망에 이르게하는 반면, 징계는 우리 성도를 향한 공의와 사랑의 조화로써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판이란 용어가 일단 한인간의 공과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선언과 그 공의의 시행을 나타내는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용어라면, 징벌과 징계는 성도와 자연인 각각에게 다르게 시행되는 심판의 목적과 대상까지를 나타낸 용어라 하겠다.

2.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의 믿음

1) 문제의 제기
히브리서 13장은 소위 '믿음장'이라 불리우는 유명한 장으로써, 구약 시대의 신앙 영웅들과 그들의 신앙의 특징들을 열거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위대성을 잘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위에서 열거한 네사람이 어떻게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과 함께 구약 시대의 영웅적인 신앙인들의 명단에 나란히 오를수 있는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위의 네사람은 인간적인 결점이나 실수가 매우 많았던 사람들이다. 기드온은 말년에 매우 사치한 생활을 하였을뿐 아니라 에봇을 만들어 두어 백성들이 후에 그것을 우상으로 숭배하게끔 만드는 실수를 저질렀다(삿8:24-27). 또 바락은 사사 시대의 다른 이스라엘 사사들처럼 자발적으로 나아가 적군을 무찌른 적극적인 신앙의 소유자가 아니라 여선지자 드보라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였던 소극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삿4:12-16). 또 삼손은 어리석게도 블레셋 여인 들릴라에게 유혹되어 두눈을 잃었던 인물이며(삿16:4-22), 입다는 무모한 서원으로 인해 딸을 제물로 바쳤던 인물이다(삿11:34-40). 이러한 네사람이 어떻게 신앙적인 인물일 수 있는가?

2) 문제의 해결
위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먼저 그 전제로 알아두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첫째로 신앙의 영웅들이라 해서 결코 흠없는 완전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아브라함이나 모세와 같은 신앙의 영웅들에게도 분명 실수는 있었다. 성경은 역사상 인류 가운데 의인은 한사람도 없었다고 증거한다(롬10:10,22). 둘째로 참신앙인은 흠없이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며 순종하는 사람이다. 즉 인생을 사는동안 그 연약함 때문에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때문에 다시 일어나 믿음의 역사로 나아가는 사람이 바로 참신앙인인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불완전한 죄인이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죄인들의 대속 제물로 내어주셨다는 것이다(롬5:8). 이상의 사실들에 근거해서 볼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는 비록 인간적인 결점이 많았으나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큰 인물들임에 틀림없다. 비록 아브라함이나 모세에 비해 믿음의 역사보다는 실수가 더 많았던 자들이었지만, 그들이 믿음으로 적군을 무찔렀던 역사만큼은 길이 길이 빛날 것임에 분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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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믿음의 주체는 예수님이시다. 본 연구를 통해 저자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여줌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참된 믿음에서 소망을 가지고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성도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그리스도이며, 또한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인 것이다.

1. 믿음의 사람들(히11장)
독자들은 긴박한 상황 속에 처해있으며(히10:32-34), 그로 인해 안식과 보상과 본향을 갈망했다. 따라서 저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행동했던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 현재의 고난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약속된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믿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신앙인들의 참된 믿음을 통해 저자가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1) 믿음의 본질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내용에 대해 굳게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신약성경은 믿는 내용을 진리로써 받는 것 그리고 확신과 깨달음으로 표현되고 있다. 본문에서 언급된 믿음의 본질은 믿음의 대상이 감각을 넘은 초월 세계에 대한 확신이고 또 그 세계에 대한 믿음은 역으로 그 세계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지식을 통한 믿음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참지식에 이르는 인간 실존의 진리를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믿음이 반지식 또는 비이성적이란 것이 아니다. 믿음은 지식의 차원을 넘은 대상에 대한 지식 이상의 확신을 말하는 초이성적인 것이다.

2) 믿음의 모범들
장차 이루어질 약속에 대한 소망을 바라보며, 한평생을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히11:38)을 지니고 살았던 구약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가장 귀한 복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증거'(히11:39)였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은 하나님 사랑의 실체를 보았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을 받았다. 이렇듯 저자는 믿음의 사람들이 불확실한 계시와 섭리 속에서도 보여준 놀라운 믿음의 모범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처해있는 신앙의 어려움을 너무도 확실히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으로 극복하기를 원하고 있다.

2. 소망의 능력(히12장)
본장에서는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어떻게 믿음 생활을 할 것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신앙의 경주자의 자세는 무엇인가? 시련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다섯번째 경고는 어떤 내용인가?

1) 믿음의 경주자
히브리서 11장에서 강조해 온 믿음의 선진들의 좋은 증거를 보여준 저자는 독자들에게 경건과 신앙에 대한 보다 실제적 교훈을 주고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생활을 경주로 비유하면서 경주에 임하는 진실한 태도를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는 것과 '인내'(히12:1)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경주자는 인내로써 경주해야 하지만 우리는 인내하기에 너무나도 많은 제한과 언약을 지니므로 인내의 표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독자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무관심과 침묵으로 대하고 있다고 생가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징계와 책망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임을 나타내어 '아들됨' (히12:6)을 강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과 사랑을 시사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2) 배교에 대한 경고
저자는 이제 다섯번째의 경고에서 언약의 두장소를 대조하여 새 언약의 우월성을 증거함으로써 독자들의 불경건을 경고한다(히12:18-24). 이제 영존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성도로서 감사와 기쁨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히12:25-29).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는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들어가는 나라이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이미 하나님 나라가 약속되어 있다.

3. 사랑의 능력(히13장)
히브리서 11장과 12장이 믿음과 소망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본장은 사랑의 실천적인 면으로써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의 모습과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은 자로서 행해야할 바른 실천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진정한 예배는 무엇인가? 참된 신앙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또 저자는 어떻게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있는가?

1) 진정한 예배
구약 시대에 성전은 예배의 장소로써만이 아니라 구원의 중심지로도 이해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추방당하고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광야와 같은 곳에서 죽으셨다. 구원이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실천적면을 내포한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유대교의 선민 사상과 같은 사적 소유나 개인적 특권으로 해석해 왔다. 교회의 이러한 태도는 교회를 배타적 공동체로 만들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가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죽으신 그곳으로 따라나서는 것을 내포한다. 즉 백성을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가 있는 그곳으로 나의 삶을 헌신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예배란 첫째는 성문 밖에서 고난당하신 예수로 말미암은 감사의 찬미를 드리는 일이요(히13:15), 둘째는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다(히13:13,16).

2) 참된 신앙인의 삶
성도는 '성문 밖에' 현존하시는 예수께 나아가 임시 체류자로서의 삶을 살때 비로소 하나님께 참된 찬양의 제사를 올릴수 있다. 그 삶이란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신' (히2:17) 예수를 본받아 사랑과 신실함을 구현하는 삶이다. 이런 삶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까지도 희생하는 '능욕을 지는'(히13:13) 삶의 자세가 요청되며 이러한 삶이 바로 거룩한 삶의 모습인 것이다.

독자들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이제까지 저자는 독자들에게 책망과 격렬한 어투로 여러 충고들을 하였다. 또한 자신만의 독특한 신학적 전개를 통하여 유대교와 비교할 수 없는 기독교의 우월성을 논증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권면과 책망 그리고 논증들이 결코 사사로운 감정에 의하지 않고 그들의 신앙 성숙을 위한 교훈이었음을 말한다. 따라서 수신자들은 이 말을 시비없이 받아들여 주었으면 하는 양해의 말을 부드러운 어조로 피력하고 있다(히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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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보자 그리스도

1) 중보자의 요청
태초 범죄 이전에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은 본래 중보자가 없이 서로 교통할 수 있었다. 그때에 하나님과 자유의지를 가진 전피조물의 대표인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언약을 맺으면서 이를 어길 경우 필히 죽을 것이고 이를 지킬때에만 생명이 보장되기로 약속하였다. 그런데 인간은 이를 어겼다. 때문에 인간의 죽음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공의의 주이실뿐 아니라 사랑의 주이신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언약의 법대로 책임을 지게하시되 범죄한 인간 자신은 회개를 조건으로 새생명을 얻을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다시말해 다른 존재 곧 중보자가 인간을 대신하여 죄값을 치르면 그 인간은 구원 얻는 구속의 법을 인간의 범죄 이후 세우신 것이다. 이렇게하여 죄가운데 영원히 죽을수 밖에 없었던 인간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구속의 법에 따라 비로소 중보자를 통한 구원의 길이 열리게된 것이다.

2) 중보자의 필연성
하나님을 향하여 인간의 죄를 대속할 중보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연적으로 만족되어야 했다. 첫째 하나님을 향하여 인간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인간이면서도 절대무능하여서 타인을 위한 완전한 희생 제물이 될수 있어야 했다. 또한 완전한 제사장도 필요하였다. 둘째 인간을 향하여서는 완전한 죄용서를 보증할 수 있는 자이어야 하기때문에 오직 홀로 사죄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을 가지신 자이어야 했다. 종합해서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곧 양자 모두의 요구에 만족될 수 있는 자이어야 하기때문에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이어야 했다. 그런데 먼저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는 없으므로 먼저 하나님이신 분이 완전한 인간이 되사 중보자로서 태초에 세워진 구속의 법을 성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구속의 원리에 따라 삼위 하나님 중 제2위이신 성자께서 성육신하사 하나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 되어 대속 희생을 치르게 된 것이다.
한편 제2위 성자께서 성육신하기 이전 구약 시대의 모든 인간 대제사장들은 그들 자신이 죄를 가지고 있었을뿐 아니라 인간의 죄용서를 보증해 줄수 있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불완전한 중보자들로서 단지 완전한 중보자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그림자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구약 시대의 동물 희생 제사도 그 자체가 구속의 효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신약의 예수그리스도 대속 희생을 예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구약의 동물 희생 제사는 미래 예수의 구속 사역과의 관련성 안에서만 구속의 효력을 소급 적용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2. 완전주의자 비판

1) 완전주의자(Perfectionism)들의 주장
교회사에서 완전주의가 하나의 교리로 주장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 시대이다. 중세 가톨릭 교회에서는 인간이 완전에 이르는 단계를 3단계로 즉 초보자, 진보자, 완전자 단계로 구분하고 죄와 싸워 성결케되려는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을때 인간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하게 된다고 가르쳤다. 중세의 금욕주의와 수도원 운동은 이런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서 근거한 것이라고도 볼수 있다. 이러한 가톨릭 교회의 완전주의 교리는 종교개혁 시대에 거부되었다가 18세기 영국 청교도들에 의해 다시 주장되기 시작했다. 감리 교회의 창설자인 요한 웨슬리(John Wesley)도 성령의 특별한 체험에 의해 성도는 생전에 완전애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완전주의자 중 한사람인 윈디쉬(H.Windish)는 말하기를 '성도는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사람이다. 그의 생활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도 영적 상태가 성결과 성실함에 있어서 모범적이다'라고 했다.

2) 완전주의에 대한 비판
성경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중생한 성도는 과거 죄의 권세 안에 사로잡혀 죄에 대해 무감각하고 심지어는 반복해서 범죄하던 상태에서 죄와 투쟁하며 점차 의로운 상태로 나아가는 성화에 대해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만 성도가 이생에서 완전하여 질수 있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마5:48에서의 말씀의 참뜻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기에 힘쓰라는 것이지 하나님처럼 완전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또한 요일3:9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고의로 계속해서 범죄치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도덕적으로 전혀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에서는 생전에 완전케된 사람은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볼때 완전주의는 성결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성경의 가르침에서 한걸음 더나아가거나 비켜간 것이라 볼수 있다. 누구든지 죄없다 하는 자는 스스로 속이는 자(요일1:8)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리고 완전을 지나치게 강조할때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율법주의와 금욕주의를 낳을수 밖에 없으며 거기서 한걸음 더나아갈때 영적교만이나 자만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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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옛 언약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 언약으로 대체되었음을 설명한다. 본 서의 저자는 모세의 율법으로 말미암은 모든 제사 제도는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에 지나지 않음을 밝힌다. 이제 예수의 영원한 속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산 길'이 열렸으므로 죄사함을 받은 성도들이 신앙의 인내를 가지고 살아야 함을 권고하고 있다.

1. 새 언약의 중보자(히8장)
본장에서는 새 언약에 따른 새 제도를 위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본장에서 옛 언약은 낡아없어지는 성격의 것이지만, 새 언약은 이후로 영원토록 우리에게 적용되는 불변의 언약이라는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어떤 분인가? 새 언약의 필요성은 무엇이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

1) 하늘보좌에 앉으신 대제사장
본장에서 저자는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있으며 하늘 위엄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성소와 참장막에서 봉사하신다고 말한다(히8:1,2). 이 말씀은 예수께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후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으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으로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여기서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예수의 왕권을 의미한다(계19:16). 따라서 하늘 보좌에 계신 대제사장 되신 예수는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일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하늘나라에서 간구하는 분이시다(히7:25). 첫언약은 예레미야 당시부터 새 언약으로 대체될 날을 바라보고 있으며,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패역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제시하신 약속이다.

2) 새 언약의 은혜
하나님 자신과 맺은 언약을 온전치 못한 것으로 만든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친히 중보자로 오게 하셨다. 독생자 예수께서 이땅에 오셔서 자기 몸을 깨뜨리시고 피로써 새 언약을 세우신 것이다. 이 언약은 행위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언약이 아닌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은혜의 언약이다. 새 언약의 우월함과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성도는 거룩한 행실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 거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2. 영원하고 온전한 희생제사(히9:1-10:18)
본문은 옛 언약이 가지는 가치의 한계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본래 의도인 더 좋은 언약의 필요성을 증거한다. 또한 옛 언약의 성취를 위해 그리스도 죽음의 필연성을 강조함으로써 율법을 좇아 드렸던 옛 제사의 불완전성과 그리스도의 일회적 희생이 온전성을 설명한다. 첫 언약으로 말미암은 장막의 의미는 무엇인가? 율법 제사의 한계는 무엇인가?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이 새 언약의 은총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율법 제사와 장막
저자는 구약의 성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궁극적으로 장막과 촛대, 진설병, 지성소, 법궤 등은 모두 하늘 성전의 모형이라고 말한다. 구약 성전의 제도들의 원형인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킴으로 첫 언약에 속한 예법과 제도의 약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 언약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만나서 속죄받고 은혜받으며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 보편화되지 못했다(히9:6,7). 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에 있어서의 제약을 나타내므로 지성소로 들어가기 위한 새 언약의 필요성을 요청한다. 자신을 위한 제사를 드린 점에서도 옛 언약의 약점이 있다(히9:6). 새 언약은 대제사장이 자신을 위해 피를 드리지 않는다. 또한 옛 언약의 모든 예법은 심령보다는 육체적인 것에 강조점을 두었다(히9:10). 따라서 히9:10이 첫 언약에 따른 제도가 개혁때까지만 맡겨둔 것이라 하여 그 자체가 약점이 있어 반드시 개혁이 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2)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
본문은 율법이 장차올 좋은 일, 즉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며 모형이므로 구약 시대의 제사는 매년 반복되었고, 그것은 단지 죄를 일깨워줄 뿐이다. 짐승을 잡아드리는 번제와 속죄제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제물로 취하셔서 율법을 패하시고 새 언약을 세우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우리로 죄사함의 확신을 갖게 하셨다(히9:12).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는 지난날의 죄와 앞으로의 죄까지도 모두 해결하여 준다.

3. 네번째 경고(히10:19-10:39)
저자는 본문에서 예수의 피로 이제 모든 이들이 주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고 대제사장 되신 예수로 인해 양심과 몸이 정결케 되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무엇인가? 또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1)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번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예수의 죽음으로 모든 성도들은 지성소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얻었다(히10:19). 이제 예수는 '산 길' (히10:20)이 되시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구약의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가로놓여 일반인은 물론 제사장들도 지성소에의 접근을 막았다. 그러나 이 휘장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찢어져(마27:51 ; 막15:38) 지성소까지 나아가는 길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 것이다.

2) 구원받은 성도의 삶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써 우리를 위해 열어주신 길은 휘장 가운데로 열려진 생명의 길이다. 이 길을 통해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자마다 담력을 얻어 하나님이 계시는 성소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길은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성을 갖는데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의 상태로 확산되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참마음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히10:22). 또한 우리가 믿는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잡아야 하며(히10:23),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그날이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히10:24,25).

예수의 대속 사역은 첫 언약을 완전히 새것으로 대치시켜 놓았다. 이제 모든 불완전하고 의심스러운 것들은 지나가고 예수를 통하여 얻어진 확실한 구원과 화해를 우리들이 소유할 수 있게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더이상 죄악 세상에서 방황하거나 하나님을 단순히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담대한 마음으로 매일 발걸음을 하나님께로 향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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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멜기세덱의 정체
멜기세덱(Melchizedek)은 역사적 인물인가 아니면 천사이거나 신화적 인물인가? 그가 만일 역사적 인물이라면 왜 히브리 기자는 그를 가리켜 '아비도 어미도 족보도 시작도 생명의 끝도 없는' 인물로 소개하고 있는가?

1) 역사적 인물로서의 멜기세덱
창세기 14장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하여 318명의 가신들로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그 동맹군을 격파한 사건은 분명 역사적 사건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승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를 영접하였던 멜기세덱이 역사적인 인물임도 분명한 사실이다. Melcisendek(멜기세덱)이란 이름의 뜻은 '의의 왕'이다. 그리고 그는 당시 예루살렘의 옛 지명인 살렘의 왕이며 또 제사장이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왕과 제사장직을 겸하는 것은 고대 제정일치 사회에서는 흔히 있었던 일이다.

2) 그리스도의 예표로써의 멜기세덱
멜기세덱을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 본 사람은 히브리서 기자만이 아니다. 일찍이 메시야 시편 중의 하나로써 메시야의 통치와 심판에 대해 노래한 시110편 기자는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가진 메시야가 멜기세덱의 반차로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여기서 멜기세덱은 창14:18에 언급된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대제사장직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한편 1965년 쿰란동굴에서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사본에서는 사61:1,2을 주석하면서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는 자가 멜기세덱이라 하였다. 또 시82:2의 주석에서 멜기세덱이 왕으로서 종말에 하나님의 복수의 심판을 대행하여 벨리알과 그의 부하 악령들의 권세에서 모든 빛의 자녀들을 구원하여 주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후기 유대 전승에는 멜기세덱이 천사장 미가엘과 동일존재로 등장한다. 그리고 유대의 사두개파 제사장들은 멜기세덱을 그들의 조상으로 보았다. 이처럼 이방인이며 고대 가나안 땅의 한 부족 국가인 살렘의 왕에 불과했던 역사적 인물이 구약 시대로부터 히브리서 기자에게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 언급된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은 첫째 그가 동시대의 타락했던 가나안 족속들과는 달리 여호와께 대한 순전한 믿음을 소유한 '의의 왕'이었고, 둘째 그가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에 의해 아브라함을 영접하였으며, 셋째 히브리서 기자가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의 출생이나 기원이 전혀 신비에 쌓여있어 신성을 소유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하기에 적절한 인물이었으며, 넷째 그가 살렘의 왕이면서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왕직과 제사장직을 동시에 예표할 수 있었으며, 다섯째 그가 승전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영접한 당시의 상황이 택한 성도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멜기세덱은 진정한 의와 평화의 왕국을 구현할 만왕의 왕이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로 언급된 것이다.

2. 한번 비침을 얻고 타락한 자

1) 문제 제기
성도의 '견인 교리'란 한번 구원받은 성도는 성화의 과정에서 일시적 방황은 있으나 완전히 타락하여 멸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히6:4-6에서는 '성령에 참예한 바'된 자가 타락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2) 문제의 해결
우리가 먼저 명심해야할 것은 성경의 어떤 본문을 해석할때는 해당 본문만 볼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며 해당 본문을 전후로한 문맥을 분명히 파악한 상태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 66권은 표면적으로 볼때 각각 다른 인간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인간 저자들 배후에 계시는 한분 성령님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연속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본문을 성경의 다른 곳에서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는 성도의 견인 교리(요3:36 ; 요5:24 ; 히3:14 ; 벧후1:10)와 조화 시키려고 힘쓰는 것이다. 이를 조화시킨 학자들의 대표적인 견해를 살펴보면 첫째로 본문은 실제로 성도가 타락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성도가 타락의 길로 가서는 안됨을 경고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둘째로 교회 안에도 참 성도뿐 아니라 거짓 성도인 가라지도 있는데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참 성도와 동일한 영적체험을 하기도 하나 결국은 타락으로 가게 되는데 이러한 자들에게 심판의 경고를 준 것이다. 셋째로 아직 신앙이 미숙한 성도들이 위의 둘째 경우를 현실적으로 교회 안에서 목격하고 실족하게 되는 것을 막기위해 그러한 자들의 최후가 어떠함을 보여준 것이다. 위의 세가지 견해는 가능한 것이다. 특히 둘째, 셋째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교회 안에서 발견된다. 예를들면 12사도 중의 한사람인 가룟유다(행1:16-20), 마술사 시몬(행8:21-23) 등을 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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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예수의 십자가 속죄 사역을 대제사장의 속죄 사역과 비교하며 설명한다. 기자는 예수의 제사장직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직으로써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성을 가진 제사임을 강조함으로써 구약의 제사와 비교되지 않는 우월성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1. 대제사장 그리스도(히4:14-5:10)
본문은 안팎의 곤경으로 인해 영적 침체 상태에 빠진 독자들(히10:32-34)을 염두에 두고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종의 형체를 가져 우리와 같이 되셨고(빌2:6), 인간의 연약과 시험당함을 체험하셨다(히14:15). 그렇다면 예수와 대제사장의 유사점은 무엇인가? 또한 대제사장보다 우월한 것은 무엇이며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의 비유를 통해 기자가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1) 대제사장 예수
구약의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과 화목케 하는 중보적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사역을 수행하는 대제사장은 1년에 한번씩 모든 백성을 대표해 제사를 드렸다. 예수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되어 온 인류에 대한 대속 사역을 감당하셨다. 그러나 예수의 대제사장직은 구약의 대제사장과 비교할 수 없는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 구약의 제사장이 1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 자기와 모든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는 제사를 드렸으나, 예수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드려 영원한 제사를 드렸다(히7:27). 또한 예수는 죄가 없으시면서도 죄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죄있는 인간들이 겪어야할 모든 연약을 체휼하시고 인간들과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후에 영원한 하늘나라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제사를 드렸다(히9:11-14).

2) 멜기세덱 반차의 대제사장
멜기세덱은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는 자로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었다(히7:3). 예수 역시 그의 제사장 직무는 영원히 계속된다.
예수의 대속 사역의 효과는 그의 보혈을 의지하는 자에게 과거의 죄뿐만 아니라 현재의 죄에도 동일하게 영원히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예수의 사역효과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유대교의 제사 제도를 통해 현재의 죄를 시험받고자 하는 독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2. 세번째 경고(히5:11-6:20)
기자는 독자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몇마디의 실질적인 훈계를 하고있으나 독자들의 마음이 둔하기 때문에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수신자들의 영적 상태는 어떠했는가? 독자들의 종교적 지식이 그처럼 결핍된 이유는 무엇인가? 또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수신자들의 영적 상태
수신자들은 비록 그리스도인이 된지 오래지만 멜기세덱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할만큼 둔한 자들이었다(히5:11).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 말씀의 초보'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필요로 하고 있었으며, 이들이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은 먹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히5:12). 이들은 자신들의 게으름과 우둔함으로 말씀을 삶 속에 적용시키지 못하며 말씀의 여러가지 은혜와 축복을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히5:13). 또한 이들은 지각을 사용,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히5:14). 이처럼 본 서신의 수신자들은 오랜 신앙의 연륜에 걸맞는 신앙 성장을 이루지 못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기자는 그들의 신앙을 책망하여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다.

2) 신앙의 결핍
수신자들이 '듣는데 둔했던' 원인은 그들의 마음이 기독교와 유대교사이에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이며, 많은 시련을 겪게하는 믿음을 저버리게 하려는 많은 시험이 그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험 역시 실제적으로 비슷하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고 시도하기 예사이며 대단히 심각한 희생을 요구하는 종교적 충성이 익숙해지기를 피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이러한 근본적 이유들에 덧붙여서 진지한 성경 연구의 결여, 훈계에 대한 부모의 소홀, 불규칙적 교회 출석, 비교훈적·비성경적 설교, 영성을 위한 훈련의 부족 등을 들수 있다.

3. 멜기세덱과 그리스도(히7장)
본문에서 저자는 하나님께로의 길을 열어주는 유일한 대제사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 제사장은 바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 예수그리스도이다. 예수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는 사상적 근거는 무엇인가? 아론의 제사장직과 비교해 대제사장의 직분의 우월성은 무엇인가?

1) 멜기세덱적 대제사장의 사상적 근거
히브리서 5장에서 인용한 시110:4과 창14:17-20이다. 시110:1의 인용에서 확장된 4절의 인용은 히브리서의 독특한 신학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멜기세덱이 여러 왕들을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하는 창세기 14장의 장면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아론의 제사장직보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우월하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족보가 없다. 그는 시작과 끝이 소개되지 않는 제사장으로 그의 제사장 직분은 영원성이 있다. 이렇듯 멜기세덱은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제사장이며 왕으로서의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이다.

2) 대제사장직의 우월성
예수는 모든 민족들이 기다려온 인류의 참제사장이시다. 그의 제사장직은 레위 계통의 불완전한 계속적 속죄의 필요성을 지닌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도이시며 인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중재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맹세로 세워진 제사장이며, 그의 제사장직은 양도할 수 없는 것이다. 조그마한 흠이 없는 온전한 분으로서 그의 제사는 완전한 것이었다.

본 연구는 예수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을 설명하고 있다. 그분의 대속적 사역은 단번에 이루어진 영원한 효력이 있는 완전한 제사이다. 그는 새 언약의 지성소인 하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이 놀라운 사실은 날마다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한다. 이제 우리는 예수안에서 언제든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 막힌 담이 그리스도로 인해 허물어진 그의 영원한 속죄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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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는 도리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oJmologiva(호몰로기아)이다. 이는 oJmo"(호모스)와 lovgi"(로고스)의 합성어 oJmologevw(호몰로게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먼저 호모스는 '같은, 유사한' 등의 뜻을 갖고있다. 즉 어떤 사물과 혹은 사람과 겉모양이나 내적 성격에 있어서 닮았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로고스는 '언어' 또는 '말'(마12:32,37)이라는 뜻을 갖고있다. 그러므로 위 두단어의 합성어 '호몰로게오'의 문자적인 뜻은 어떤 사실이나 의견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같은 말을 하다'이다. 이에 유래한 명사 '호몰로기아'는 동의(Assent), 일치(Consent)라는 뜻을 갖는다. 여기서 한걸음 더나아가 '호몰로기나'는 다른 사람이 어떤 사건 또는 사실을 경험하여 알고서 말하는 것에 대해 자신도 똑같이 동의하여 그 말이 진실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행위를 가리키는 공언(Profession, 고후9:13) 또는 고백 및 증거(딤전6:12,13)라는 뜻으로 확대하여 쓰였다. 따라서 본문에서 우리의 믿는 도리 oJmologiva(호몰로기아)란 곧 우리 모든 성도들이 모두 일치하여 공개적으로 똑같이 행하는 신앙고백이라는 것이다. 이는 성도들간의 진정한 신앙의 일치를 촉구하는 권면이기도 하다.

2. 하나님 말씀의 능력

① 하나님의 말씀은 만물을 창조하였다(창1장 ; 시33:6).
② 하나님의 말씀은 고난중에 있는 자를 위로한다(시119:49,50).
③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렘15:16).
④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를 물리친다(마4:1-11).
⑤ 하나님의 말씀은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린다(마8:18 ; 요11:43,44).
⑥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깨끗케 한다(요15:3 ; 엡5:26).
⑦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과 영생을 준다(요6:68 ; 행13:26).
⑧ 하나님의 말씀은 성결케된 자를 견고히 세운다(행20:32).
⑨ 하나님의 말씀은 만물을 붙든다(히1:3).
⑩ 하나님의 말씀은 거듭나게 한다(벧전1:23).
⑪ 하나님의 말씀은 사단과 그에 속한 세상을 심판하신다(벧후3:5-7 ; 계19:13-15).

3. 제사의 의미

구약 시대의 희생 제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영적인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방도로 이해된다. 그 가운데 속죄제는 다른 제사들과 함께 죄(무의식으로 지은 죄와 의식적으로 범한 죄까지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과의 친교에 장애되는 것을 제거해 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에 화목제는 하나님과 예배자가 함께 봉헌된 제물에 참여하여 서로 영적 교제를 나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제사를 아주 밀접한 결합을 이루어 주는 참된 교제로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명백한 암시가 바울이 인용한 예증과 유추에서 발견된다. 바울은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고 말하면서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성찬을 받는 자들)이 아니냐'(고전10:18)고 하였다. 제사 제도의 의미에서 보면 예배자들은 제단, 즉 제단으로 인하여 상징된 하나님의 임재에 참예한 것이었다. 바울은 이방인 예배자들의 우상 숭배에도 이와 비슷한 참여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귀신과의 교재라 생각했다(고전10:20,21). 제사에 참예함으로써 예배자는 신과의 교제에 참예한다.

4. 성령과 교회와의 관계

그리스도가 머리되시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 기원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완결된 사업이며,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사업의 피조물로서 존재한다. 그리스도가 머리되시는 교회는 동시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사귐이다.
성령의 은사와 그 사업은 새시대의 도래와 선조들에게 약속한 것이 성취된다는 예표이다. 교회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하나의 사귐이라 함은 불가분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교회와 떨어질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하는 성도의 신앙고백은 그것이 하나님 자체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시말해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중보자적인 실체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하나님과 부합되는 어떤 실체이지만 개인의 신앙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도 하나이고, 거룩한 공회에 대한 신앙고백은 하나님에 대해 신앙의 본질적이고도 귀중한 요소를 표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고백이 신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사업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행위와 인간을 불러모으시고 깨우쳐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과 마주치도록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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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모세나 그 어떤 선지자보다 뛰어난 분이시며 집 지은 자요, 또 집 맡은 아들이시다(히3:3). 단지 권속으로 그리고 종으로서 하나님께 충성한 모세와 비교될 수 없는 분이시다. 본 연구를 통해 모세보다 뛰어난 그리스도를 살펴본다. 그리고 두번째 엄중한 경고를 통해 우리를 멸망시키고 불신앙의 결과를 강조함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됨'(히3:14)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그리스도의 우월성(히3:1-4)
본문에서 저자는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형제들에게 사도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그렇다면 모세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를 논증하는 본문으로 변증적이요, 목회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모세보다 뛰어난 점은 무엇인가? 또 어떤면에서 모세보다 뛰어난 영광을 소유하고 계시는가?

1)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 충성한 권속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으나 하나님의 집에 충성한 권속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수는 그 집을 지으신 자로 충성했으므로 모세보다 더 영광스러운 직분을 가진다(히3:3). 독자들은 모세의 이름과 명성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기자는 율법 수여자의 높은 존귀함과 훌륭한 섬김의 직분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계속해서 예수는 그보다도 더욱 존귀함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모세는 그 인격이나 업적에서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를 자신의 해방자요, 지도자요, 율법 수여자요, 선지자요, 하나님 앞에서의 대변자로서 거의 우상처럼 숭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모세와 같은 선지자'(신18:15)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신약의 모세이시다. 두사람은 율법은 모세로 은혜와 진리는 예수를 통해 수여된 새 체제를 가져온 분이다.

2) 모세보다 뛰어난 영광을 가진 예수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시며(빌2:6), 영광과 빛의 근원이시기 때문에(요1:4,5,9) 그분과 비교될만한 영광스런 존재는 없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피로 하나님의 집을 세우셨으므로 그 집에 속한 자에 불과한 모세보다 더 존귀하신 분으로 언급된다(히3:3). 이러한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살리는 의의 직분을 가졌기 때문에 정죄의 직분을 가진 모세보다 영광스럽다고 증거하고 있다(고후3:9,10). 모세와 그리스도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두분 모두 하나님께서 부여한 사명을 한시도 잊지않고 살았다.

2. 충성의 두 모델(히3:5,6)
본문에서 저자는 그리스도가 모세보다 더 존귀하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한 것에 비해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모세의 직분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또한 예수의 직분은 무엇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집이 되는 조건은 무엇인가?

1) 사환과 아들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했다. 이 말은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장차 도래할 예수와 그 복음을 소개하는 자로서 충성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계시를 전달하는 임무를 띤 사환이었다. 모세가 비록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있다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충성한 반면에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충성하였다. 종과 아들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저자는 모세와 예수께서 충성하였다는 점에서는 유사할지 모르나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암시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탁월한 존재이긴 하였으나 본질적으로 일반 사람들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집을 맡은 자이며 아들로서 질적인 우월성을 갖는다.

2) 하나님의 집
여기서 하나님의 집은 구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신약 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의 집'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성취하시리라는 확신과 자랑스러움을 인내 속에서 견고하게 붙잡고 나아가야 함을 상기시키고 있다.

3. 두번째 경고(히3:7-4:13)
저자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서신의 첫머리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여러부분과 여러모양으로'(히1:1) 말씀하셨을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수반되는 불신앙의 위험에 대한 실예 혹은 상징으로써 광야 생활중에 일어난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사건을 인용하고 있다. 본문의 엄중한 경고는 무엇인가? 배교의 무서운 위험과 그 대비책은 어떤 것인가? 또한 배교의 결과는 무엇인가?

1) 엄중한 경고
본 서신의 독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과거에 속했던 유대교로 다시 돌아서거나 배교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 유대인 성도들은 광야 생활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이스라엘 열조들이 비극적인 결과를 기억해야만 했다. 그들이 그리스도께 대하여 불순종한다면 그들 역시 과거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열조들의 불행한 전철을 밟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열조들의 불신앙은 '마음을 강퍅하게 하다'(히3:8,15), '마음이 미혹되다'(히3:10)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굳어버린 마음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노하심 아래 멸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자는 성도들의 배교의 위험을 엄중히 경고하면서 그 대비책으로 '피차 권면'(히3:12)하라고 말한다. 또한 이 대비책은 '매일 또는 날마다' 실행하여야 하며,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히3:13), 즉 현재의 삶이 계속되는 동안에만 행할 수 있음을 말한다.

2) 무서운 결과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예정 때문이 아니며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있어서의 어떤 결함 때문이 아니다. 성경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3:19)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처럼 불신앙은 우리를 참된 영혼의 안식으로부터 몰아낸다.

본 연구를 통해 배교의 위험 속에 있는 독자들의 실존적 어려움을 강한 어조로 진리를 고수할 것을 간곡히 권고하는 기자를 만나게 되다. 끝까지 견디며 견고히 진리를 파수하는 자만이 진정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길가에 뿌리운 씨앗이나 돌밭에 뿌려진 씨앗의 공통점이 결실치 못함에 있음을 보여주셨다(마13:19-22).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보편 속죄설 비판

1) 보편 속죄설의 논지
보편 속죄설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전인류가 즉 복음을 믿지않는 자들까지도 결과적으로 다 구원받게 된다는 완전한 이단 사상인 만인 구원설(Universalism)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보편 속죄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대상은 전인류이며 또 그리스도께서 애초에 그들 전부를 위해 죽으셨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이 생겨나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가 신앙을 조건으로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신앙으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릇 행하여 각기 제갈 길로 갔기 때문이라고(사53:6)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로써 그리스도가 '세상'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가르치는 구절들(요1:29 ; 요3:16 ; 요일21:2 ; 요일4:4) 그리고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가르치는 구절들(롬5:18 ; 고전15:22 ; 고후5:14 ; 딤전2:4,6 ; 히2:9 ; 벧후3:9)을 제시한다.

2) 보편 속죄설 비판
첫째,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인간의 불신앙 때문에 좌절된 것으로 만든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하심에 절대 배치된다(시62:11 ; 계4:8). 둘째, 하나님의 예지 능력에 의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실줄 미리알고 계시면서도 그들을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어 죽게하신 모순을 가져온다(시139:1-6 ; 히4:13). 셋째,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부분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만든다. 또한 보편 속죄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견해대로 그리스도의 속죄는 다만 구원을 가능케하는 것이고, 인간의 신앙에 의해서만 구원이 확실시 되도록 한것이라고 할때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자체를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한편 보편 속죄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주장처럼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할때 '세상'은 모든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택함받고 구원받을 성도가 특정한 한 지역이나 민족에 국한되어 있지 아니하고 세계 만민 가운데 편만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할때 '모든'도 개개인 전부다가 아니라 택함받은 자들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상의 사실에서 우리는 보편 속죄설은 많은 자체 모순을 가질뿐만 아니라 성경의 지지도 받지 못함을 알수 있다.

2. 그리스도의 우월성
히브리서는 삼위일체의 한분으로서 절대 초월자요 창조자로서 전피조물과는 절대적으로 구분되는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그분의 구속 사역이 곧 구약의 성취요, 신약의 출발점이었음을 강조하여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넓게는 구약 신앙에 대한 신약 신앙의, 좁게는 구약의 일부 내용에 근거한 유대교에 대한 신·구약 정통 신앙을 온전히 계승한 기독교 신앙의 우월함과 필연성 등을 강조해 주고있다.

1) 선지자보다 우월하심(히1:1-3)
일반 선지자들은 죄인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자이나 주님은 제2위 하나님으로서의 말씀의 주체가 된다.

2) 천사보다 우월하심(히1:4-2:18)
천사들은 아름다운 영적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수종드는 사역자에 불과하나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또한 창조자로서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다.

3) 모세보다 우월하심(히3장)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받은 인간 신분의 종으로서 유적 이스라엘을 위해 일했으나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적 이스라엘을 위해 사역하셨다.

4) 여호수아보다 우월하심(히4:1-11)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속한 안식을 얻도록 하였으나 주님은 하늘에 속한 안식을 주셨다.

5) 아론보다 우월하심(히5:1-10:18)
아론이 죄인된 대제상으로 동물로 제물을 삼아 제사드렸으나 주님은 죄 없으신 대제사자장으로서 흠없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셨다.

3. 불순종의 원인

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할때(창3:1-6).
②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할때(시78:19).
③ 하나님을 피해 다른 신을 섬길때(시139:7).
④ 세상 지혜를 과신할때(사47:10).
⑤ 풍요로 인해 하나님을 잊을때(호13:6).
⑥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할때(롬2:28).
⑦ 악한 세력에게 미혹될때(벧후3:17,18).
⑧ 마음이 강팍할때(시95:8-11).
⑨ 하나님의 법을 멸시할때(사5:24).
⑩ 하나님 공의를 의심할때(시10:11)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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