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구원하는 믿음
[히브리서 10장 32절~39절]
32절 -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절 -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절 -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절 -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절 -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절 -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절 -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절 -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1.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이 빛을 받은 후에 겪은 일은 무엇입니까?(32~33절)
성도들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겪어야 했으며 견뎌야 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고 구경거리가 되었으며, 환난을 받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빛이란 복음과 복음을 통해 받은 구원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본래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었습니다. 이것을 어둠이라 부릅니다. 사람들은 어둠 아래 신음했고 사탄의 자녀로 살았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빛이 비추었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되어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 빛이 우리에게 비추자 우리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빛의 자녀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을 힘들게 했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핍박을 가했습니다. 특히 히브리서가 기록되던 로마시대는 핍박의 강도가 심했습니다. 그때 많은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고난의 큰 싸움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참고 견디는 성도들은 사람들의 비방을 받았으며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세상 친구들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자연히 같은 고난을 받은 성도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 가운데서 사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성도가 사는 데는 많은 시련이 있습니다. 그것을 인내하며 견디는 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2. 당시 성도들이 신앙 때문에 감옥에 들어간 사람들의 곁을 지키고, 소유를 빼앗겨도 기쁨으로 당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34절)
성도는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동정하고, 산업을 빼앗겨도 기쁨으로 감당한 이유는 그것이 ‘더 낫고 영구한 산업’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산업이란 삶의 토대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산업이 없이는 삶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게 된 성도들은 세상에서 핍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사회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세상과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았으며 모든 사회적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오늘날도 이슬람 사회에서 예수님을 믿으면 그 사회에서 축출되고 심지어 죽음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의 성도들은 산업을 빼앗겨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 소유나 주변 사람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주시는 영구한 산업, 즉 천국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강한 로마제국도 하나님 나라보다 강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산업은 한시적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던 성도들은 하늘의 영원한 산업을 바라보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이 땅의 산업에 대한 집착을 떨쳐 버렸습니다. 그리고 갇힌 형제, 자매들을 찾아 위로하고 함께 기도하며 고난을 견뎠습니다.
3. 하늘의 더 낫고 영구한 산업에 대해 안다면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35절)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모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호수아가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얻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실 것입니다.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 은혜와 갖가지 기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축복이 그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는 천국을 바라보며 세상의 환난과 핍박 앞에 담대해야 합니다. 담대함으로 나아가는 성도에게 하늘의 상급이 준비되어 있음을 기억합시다.
4.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담대한 마음으로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36~37절)
과거 믿음의 선배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려움도 불사했습니다. 오늘날도 신앙 때문에 핍박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담대함이 필요하고 인내가 요구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인내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그 동안의 고통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또 인내해야 하는 다른 이유는 세상에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이 지체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승천하실 때 천사들은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은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큰 힘이었으며 버팀목이었습니다. 요즘은 재림에 대한 믿음도 많이 약화되었고 재림 신앙은 이단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말씀에 근거하여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 주님을 붙잡고 끝까지 인내하며 살아야 합니다.
5. 장래에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음을 안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까?(39절)
하나님은 현실의 불합리함에 대해 절망하던 하박국 선지자에게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는 답을 주셨습니다(참조, 합 2:4). 이 말씀은 로마서 1장 17절에서도 인용되었습니다. 성도들이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믿음의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에 있습니다. 39절은 우리를 ‘영혼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본래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이루어집니다. 39절에 나온 ‘구원함에 이르는’이란 표현은 구원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런 표현은 우리가 완전한 구원, 즉 하나님의 나라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영적 싸움이 치열함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그것을 지키고 승리하는 과정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이어지는 11장은 믿음으로 환난을 이기고 최후 승리한 믿음의 선배들을 보여 줍니다. 참 믿음이라면 영혼 구원에 이르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후 승리를 맛보는 믿음입니다. 신앙을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구원의 감격을 쉽게 잊어버리고 이 세상의 것에 취해 살지 마십시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천국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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