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디모데에게 어떻게 꾸짖을 것인가에 대하여 가르침 5:1,2
사역자들은 직책상 책망해야 한다. 즉 그리 즐거운 일이 못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사역자들의 직무의 일부분이다. 늙은이를 꾸짖을 때는 매우 친절하게 해야 한다. 경의는 그 사람의 나이나 직위의 고하에 따라서 나타내야 한다. 젊은이에 대해서는 사랑와 자비를 가지고 형제에게 하듯이 꾸짖어야 한다. 책망을 받을만한 자들을 꾸짖는 일에 있어서 온화함이란 상당히 필요한 것이다.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를 대하듯 하며 나무라야 한다. 젊은 여자에게는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이 꾸짖어야 한다.
Ⅱ. 과부에 대해서 언급함 5:3-16
일반적인 규례는 '참 과부인 과부를 경대하라'는 것이며, 그들을 부양하고 존경과 관대함으로 그들을 도우라는 것이다.
(1) 과부는 외로운 자로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로, 참 과부로 여겨지는 자이어야 한다(5,6절).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참 과부가 아니다(6절). 즐기는 과부는 참 과부가 아닌 것이다. 그러한 자는 살았으나 죽은 자다. 즉 그러한 자는 송장과 같아서 교회 안의 산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아무 목적도 없이 세상에 있는 자들이며, 삶의 중요한 목적을 잊어버린 그런 존재들이다.
(2) 교회는 친척이 있어 자신들을 부양할 수 있는 과부들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말아야 한다(4절). 16절에도 그것이 기록되어 있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고 또 봉양하는 것은 신앙에 합당한 것이다. 자녀들은 자신들의 부모를 아무리 봉양한다 할지라도 결코 충분히 보답할 수 없다. 바울은 8절에 이 말을 반복한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가족을 부양해야 할 것을 그들의 욕망을 위해 쓴다면, 그들은 믿음을 부인한 처사이다. 자선의 대상을 선들에 대해 낭비하지 않기 위함이며, 진정으로 자선의 대상이 되어야 할 자들에 대해 더욱 힘쓰게 하기 위함이다.
(3) 바울은 교회의 구제를 받기에 합당한 과부들의 자격에 대하여 지시한다. 그들이 넉넉했을 당시 기꺼이 모든 선한 행실을 했던 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한 배려가 취해져야만 한다. 자신들이 곤경 가운데 처해 있을 당시 긍휼을 얻었던 자들은 자신들이 부한 가운데 있을 때 긍휼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
(4) 구제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야 할 자들이 해당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11절).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저희가 한창일 때이므로 규례에 묶여 사는 것에 진력나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시집가고자 하여 처음 믿음을 저버릴 것이다.' 사도는 젊은 과부들이 시집갈 것을 권하고 있다(14절). 게으른 자들이 단지 게으른 것에 그치는 것이란 드물다. 그들은 이웃 가운데 해를 끼치게 되며 형제들 간에 불화를 낳게 한다. 만일 가정 주부가 자기의 할 일에 마음을 쓰지 아니하고 수다만 늘어놓고 다닌다면 이는 기독교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비방할 기회를 주는 것이 될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가난한 과부들을 잘 돌보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매우 좋은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고 있고 또 극한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받아야 될 공공의 구제금을 나눠주는 데 있어서는 세심한 주의가 있어야만 한다. 신앙에 대한 평판, 그리고 기독교회들에 대한 평판은 교회의 자선을 받는 사람들의 특성이나 행동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기독교는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친구들을 도와야 할 것을 당연한 것으로 가르친다. 부자들은 교회가 자기들의 가난한 친척을 돕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Ⅲ. 장로, 공적인 책망, 안수식, 그리고 디모데의 건강에 대하여 5:17-25
1. 사역자들의 처우에 대하여(17,18)
그들이 항상 존경받을 수 있도록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17절). 초대 교회 당시에는 다스리는 자와 가르치는 자가 따로 있지 않았으며, 동일한 사람에 의해서 이 두 가지가 다 시행되었다. 사역자들이 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잘 다스리는 것과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것이 그것이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이 일에 수고한 자들은 배나 존경 받을 가치가 있는 자들이다. 너희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나님께서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시는 것인가? 하나님 자신의 종들을 위하여 염려하시는 것이 아닌가? 소는 단지 없어질 빵을 만들기 위해 곡식을 떨지만 사역자들은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의 빵을 탈곡한다. 사역자들을 굶주리게 하거나 혹은 넉넉하게 공급하지 못한 자들은 훗날 하나님께 문책 받을 것이다.
2. 사역자들을 송사하는 것에 대하여(19-21)
송사는 있어야 하지만 그것이 헛소문이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송사는 믿을만한 두 세 증인이 입증해주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송사는 바로 그 증인들 앞에서 행해져야만 한다. 즉 피고는 원고와 대면하여야 한다. 어떤 사람에 대해 송사가 행해졌을 때 그것이 증명되어지도록 아주 세심히 살피되 범죄한 자들은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는다(20절). 이는 상처 입은 부위만큼 치료하기 위해서다. 즉 20절에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는 것처럼 죄에 빠질 위험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실족함으로 책망받은 자들의 본보기를 통해 경계시키기 위해서이다. 공개적으로 꾸짖으라는 것은 책망받는 무리들의 유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제시된 것이기도 하다.
3. 사역자들이 안수하는 것에 대하여(22)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역의 직무를 수행케 하기 위해서 주는 안수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학자들은 그것을 죄를 사해 주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즉'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가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고 본다. 그렇게 볼 때, 경솔한 자들은 자기들 스스로 다른 사람들의 죄 가운데 참여하는 것이 되고 만다.
4. 죄사함에 대하여(24,25)
어떤 사람들의 죄는 너무 명백하고 분명해서, 교회가 그것에 책망을 하여도 거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24절)가 그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죄악은 분명한 조사가 있기 전까지는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 회개의 증거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다. 죄에는 감춰진 것이 있고 드러난 것이 있다. 어떤 이들은 겸손하게 회개에 이르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정반대이기도 하다. 어떤 죄라 할지라도 결코 숨겨질 수는 없다.
5. 디모데에 대하여(23)
바울은 21절에 디모데에게 그의 직무를 잘 유의해서 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편벽되이 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역자들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평가를 받게 된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자기들의 사역에 있어서 편벽되이 한 적이 있다면 염려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의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써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람들이 마땅히 자신들의 몸을 돌보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그들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가장 적절하고 유용하게끔 사용하시기 위해서이다. 포도주는 우리의 사역과 유익을 위해 방해 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도움 되는 것으로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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