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베드로의 변명 11:1-18
이것은 믿지않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믿는 유대인들에게도 대단히 놀라운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받아들인 경위는 살펴볼만한 가치가 있다.
(1) 예루살렘과 그 인근 교회들에게 이 소식이 즉시 전달되었다. 사도가 예루살렘에 당도하기 전에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는다함을 들었다(1절). 즉 지금까지는 대화만 하는 것도 불법으로 여김받았던 바로 그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다. 이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명예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오만과 완고한 편견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진리도 거스린다. 이방인들은 그들에게 전파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으며 또한 이 말씀에 복종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기대한 이상의 역사가 그들 가운데 일어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로 간주하였다. 그러므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유순해질 수 있는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다가 너무 쉽게 좌절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2) 유대인 신자들은 이와같이 잘못된 편견을 품는 과오를 범하였다(2,3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2,3절). 그러므로 그의 사도권을 박탈하지 않는다면 사도직의 명예가 훼손된다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교회가 주는 은총을 독점하여 다른 사람들을 그 은혜에 참여치 못하게 함은 대단히 불상사이며 손실이 되는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노골적인 대적자들이나 가까운 친구들로부터 비난받는 것은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다만 우리가 한 일이 떳떳하다면 우리의 형제들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베드로처럼 동요됨이 없이 그 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열성과 용기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사려 깊은 것 같으나 실상은 냉혹하고 무정한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도량이 넓고 관대하며 자애로운 정신을 지닌 사람도 편협한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3) 베드로는 자기의 정당성을 입증하며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오해를 풀기에 충분하도록 이 문제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하였다(4절).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4절).
1) 베드로는 그들이 이 문제를 올바로 이해했다면 자기와 논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남을 비난하는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비난하기에 앞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일을 잘 살펴 이해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 베드로는 기꺼이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또 그는 하나님 안에서 이방인에게도 소망이 있음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하여 이전의 생각(이방인들의 현재 생각)을 버렸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환상을 통하여 더이상 의식법을 구별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여기서 우리가 앞서 10:9절이하에서 살펴보았던 그 환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5,6절). 10장에서는 보자기가 '땅에 드리웠다' 하였는데 여기서는 '내 앞에까지 드리웠다'고 한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모든 자기 계시를 심지어 우리에게까지도 보여주심으로 우리의 믿음에 따라 적용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보자기가 그의 앞까지 이르자 '이것을 주목하여 보았다'(6절). 우리가 신령한 일들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 하면 우리는 그 일에 마음을 다 쏟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베드로는 양심에 걸려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자기에게 모든 종류의 고기를 구별하지 말고 먹으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한다(7절). 그러나 유대인들처럼 그도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피하려고 생각하였으므로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를 거부하였노라고 변명한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8절). 그러나 전에는 더러웠던 사람들과 짐승들이라도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질적으로 변화시켰으므로 베드로가 이것들에 대한 과거의 관념을 바꾼 사실은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이 일에 대하여 그가 세번이나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다는 사실에서 볼때 그가 단순한 망상에 빠진 것이 아님을 그들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10절). 또한 이것이 하나님의 환상이었음을 그에게 더욱 확신시켜 준 사실은 그것들이 공중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늘로 다시 올라갔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자를 따라가라는 성령의 특별한 지시를 받았다. 그는 고넬료의 사자들이 그에게 온 시간이 그가 환상을 본 직후였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하며, 또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할 것 같아서 성령께서 '아무 의심말고' 그들과 '함께가라'고 명령했었음을 알린다(11,12절). 그는 주저함없이 그들을 따라나서야만 했다. 그는 할례받은 신자들도 몇명 데리고 갔다는데 그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 일에 대하여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않았고 조언을 받아들이며 성급하지 않고 신중하게 행동하였다.
고넬료 역시 한 환상을 보았다(13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13절). 베드로는 고넬료가 본 자기에 관한 환상과 자기가 본 고넬료에 관한 환상 이 두가지로 그 일에 대하여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는 10장에 나온 천사가 고넬료에게 한 말에 또다른 내용이 추가되고 있다. 10장에는 '베드로를 청하라'(흠정역 성경에는 '그러면 그가 너에게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말하리라가 첨가되었음-역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고 되어있다(14절). 복음의 말씀은 그 말씀으로 인하여 우리로 하여금 영원토록 구원을 얻게하며 단순히 듣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믿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가족까지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이는 성경에 '너와 네 집에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즉 너의 집안 모든 사람들이 너 자신처럼 구원의 유익에 동참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너희 집안의 가장 천한 종에게까지 이를 것이라는 말이다. 이제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도 임하게 되었다. 더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만든 사건은 청종하는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신 일이었다. 이 사실은 명백하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말을 시작할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15절).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되어진 사실을 입증하셨고 그것을 시인하셨음을 선포하셨다. 베드로는 이 자리에서 주님이 하셨던 말씀을 상기하였다. 요한은 물로 세례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16절). 성령은 그리스도의 선물이요 그의 약속의 성취며 결과이다. 그 크신 약속은 그가 하늘나라에 가실 때 그들에게 남기신 약속이었다. 그러므로 이 은사가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는 그의 입으로 약속되었고 이제 그의 손으로 성취되었다. 성령의 은사는 일종의 세례이다. 그때 말씀하신 약속과 지금 내려진 이 은사를 비교함으로써 그는 그 문제가 그리스도 자신이 결정하신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17절).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17절) 즉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 베푸신 자들에게 물로 세례주는 것을 내가 거절하겠느냐?" 반대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자진해서 교통하시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의 공동체에서 제거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4) 그들은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그 문제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비난하던 사람들 중에는 그들의 비난이 부당하고 근거가 없다는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고집을 꺾지않는 일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있는 사람들은 베드로가 한 말을 듣고 평안을 되찾았으며 베드로가 행한 일에 대하여 더이상 공박하지 않았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품었던 화를 풀고 평안을 얻었을뿐만 아니라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는 자기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자비를 하나님께서 불쌍한 이방인들에게 베풀어주심을 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도다'(18절)하며 감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회개의 은혜를 허락하셨다. 성령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로인하여 슬퍼하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발견케하사 그에게서 참 기쁨을 얻게 하신다. 진실한 회개는 생명에 이르게 한다. 회개함으로써 죄에 대하여 죽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게 된다. 그 회개의 순간만 사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그렇게 살기 시작하여 영원한 삶에 이를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사이다. 그것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이며 또 우리 안에서 회개케 하는 것도 그의 강력한 은사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려고 작정하는 곳에서 항상 회개를 먼저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사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행 5:31)하셨을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그런 은혜를 주셨다.
Ⅱ. 안디옥에서 교회가 섬 11:19-26
우리는 여기서 안디옥 교회의 설립과 성장하는 모습을 대하게 된다. 안디옥은 이 당시 시리아의 수도였으며 전 로마 제국의 3대 도시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었다. 안디옥에서는 복음전도의 성공이 상술되었던 점으로 봐서 이 책의 저자인 누가와 이 책을 받는 것으로 되어있는 데오빌로가 안디옥 출신이라는 사실을 추정하기도 한다.
(1) 제일 처음으로 이곳에 복음을 전한 이들은 스데반의 순교시에 일어났던 예루살렘의 핍박을 피하여 흩어진 사람들이었다(19절).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전하였다고 한다. 교회가 당한 아픔으로 선한 사업이 이루어졌다. 원수들은 그들을 흩어지게 하여 소멸시키려 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흩어지게 하여 쓰시고자 작정하셨다.
1)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은 자기들의 사명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다. 복음전파자들을 핍박하던 자들은 이방인 세계에 복음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원했지만 그들의 그러한 노력은 오히려 그일을 촉진시켜 주는 결과를 낳았다. 이 도시에서 핍박을 받으면 저 도시로 도망을 다녔을망정 그들은 신앙만큼은 가지고 다녔다.
2) 그들은 복음전하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에서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한후 그들은 다시 베니게와 구브로 섬과 수리아까지 더 나아갔다. 비록 그렇게 돌아다니면 다닐수록 적들에게 자신이 노출되지만 그들은 여행을 계속하였다. "좀더 멀리"하는 것이 그들의 표어였다.
3) 그들은 각처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아직 이방인들이 같은 상속자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들이 그렇지 않으면 불신자로 그냥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4) 그들은 특별히 여기서 헬라파 유대인이라 불리우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여기의 복음전파자들 중 대부분은 유대와 예루살렘의 출신이었지만 바나바(행 4:36)와 시몬(막 15:21)같은 이들은 구브로와 구레네 태생의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헬라파 유대인이었으므로 자기들과 입장이 같은 그 지역 사람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갖고 안디옥 사람들에게 복음전하기에 전념하였다. 이들은 그들에게 주 예수에 대하여 전했다. 주 예수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전도의 변함없는 주제였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이밖에 그 누구를 전하겠는가?
5) 그들은 복음전파에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21절). 그들의 전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였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시매(21절). 그들은 단지 듣는 이들의 귓전까지만 그 말씀을 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과 양심에까지 파고 들게 하셨다. 이들은 사도가 아닌 평범한 사역자들에 지나지 않지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시니 놀라운 일을 행했다. 이로써 풍성한 선한 열매를 맺었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21절). 그들은 믿게 되었다. 즉 그들은 복음의 진리를 확신하게 된 것이다. 이 믿음의 증거는 주께 돌아온 사실로 들어났다. 그들은 율법의 의를 얻으려 하는데서 돌아와 믿음으로 얻는 의인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하는데로 나아왔다. 그들은 주 예수께 돌아왔고 예수께서 그들의 모든 것이 되셨다. 우리가 아무리 신앙을 고백하고 또 잘 믿는체 하여도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참으로 복음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
(2) 안디옥에서 시작된 이 선한 사업은 사울과 바나바의 사역을 통해 속행되어 큰 성과를 거두었다.
1) 예루살렘 교회가 거기에 바나바를 파송했다. 예루살렘의 교인들은 안디옥에서도 복음이 받아들여졌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22절).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22절).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에게 바나바를 파송한다. 그들은 그를 사절로서 안디옥에 보냈으며, 바나바는 멀리 안디옥까지 가야 한다. 바나바는 이런 사역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이런 일에 대한 재능이 바나바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 일을 맡는 것이 가장 적합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사역을 수행하도록 각자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신다. 바나바는 복음이 정착된 것과 자기와 같은 고향 사람들인 구브로 사람들이 복음전파의 도구로 수고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기뻐하였다.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23절). 그는 그들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목격했다. 어떠한 일에든지 선한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 일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볼 때에 기뻐해야 하며 더구나 전혀 예기치 않던 곳에서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더욱 기뻐할줄 알아야 한다. 바나바는 믿고 나온 사람들의 믿음을 가능한 한 굳게 다지는 일을 하였다. 그는 그들을 권하였다. 바나바는 '권고의 아들'이라는 자기 이름에 부합하는 일을 하였다. 즉 그는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달리 해석하면 '위로의 아들'이 되는데 그는 거기서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위로하며) 권하였다(어떤 영역본에는 위로하며라는 말이 삽입된 성경도 있음-역주). 바나바는 그들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으며 그래서 더욱 진지하게 그들과 모든 것을 견디어 나갔다. 주께 붙어 있다는 것은 그를 좇는 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이며 그를 따르다가 낙심하거나 기진하지 않는 것이다. 그를 꼭 붙잡아야 할뿐만 아니라 그에게 꼭 붙들려 있어야 한다. 또 전심으로 모든 이해력을 다 발휘하여 굳건하고 신중한 결심으로 붙어 있어야 한다. 여기에 그의 훌륭한 성품이 언급되어 있다.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24절). 그는 의로운 사람일뿐만 아니라 착한 사람, 즉 착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주의 사역자들은 자신과 그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외부에 있는 사람들의 칭송을 얻는다. 그는 착한 사람, 즉 구제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이는 그가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준 사실을 보아 알 수 있다(행 4:37). 그는 성령의 은혜와 은사들을 풍성히 받았다. 그가 만일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좋은 성품을 타고났다 하여도 이 사역을 감당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믿음의 은혜가 충만하였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열매가 풍성하였다. 바나바는 교회내에 있는 사람들을 잘 가르쳐 튼튼하게 함과 동시에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들이는 선한 일을 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니라(24절).
2) 바나바는 사울을 데려오려고 다소로 갔다. 바나바는 다소까지 가서 사울을 만나 안디옥에는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자기와 함께 사역하기를 간청했다(25,26). 여기서 바나바가 착한 사람인 것이 두가지 사실로 잘 나타나고 있다.
첫째, 그는 숨겨진 유능한 사람을 찾아내어 그의 재주를 발휘하도록 하는데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사울을 발굴하여 대중 앞에 끌어 낸 이가 바로 바나바였다. 발아래 있는 등불을 가져다가 등경위로 올려 멀리까지 골고루 비치게 하는 것도 훌륭한 선행이다.
둘째, 바나바는 사울을 안디옥에 데려와서 설교자(행 14:12)로 삼았다. 이는 그가 돋보이기 때문에 자기의 명성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비록 자기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하여 기꺼이 사울을 안디옥에 데려왔다.
3) 우리는 여기서 좀더 많은 교훈을 얻게 된다. 그들이 안디옥 교회에서 봉사했던 일들에 대하여 배우게 된다. 바울과 바나바는 일년 내내 거기서 그들을 위하여 신앙을 위한 집회를 열며 복음을 가르쳤다(26절). 무리를 가르치는 것은 교역자들이 담당해야할 임무의 하나이다. 그들은 기도와 찬양에 있어서 교인들의 대언자가 되어야할뿐 아니라 성경을 펴서 교인들에게 주의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는 하나님의 대언자가 되어야 한다. 교역자들은 많은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을때, 즉 고기 떼가 몰려있는 곳에 복음의 그물을 던질 기회를 얻을때, 매우 큰 용기를 얻는다. 설교는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교회내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도하는 편이다. 안디옥 교회에 주어진 명예는 무엇이었는가?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6절). 바울이나 바나바와 같은 위대한 사도가 장기간 체류하면서 가르쳤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에는 많은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따라서 그곳의 그리스도 교회는 사람들이 제일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포기한 사람들을 가리켜 제자들, 생도들, 학자들이라 하였는데 이후부터는 일괄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워졌다.
첫째, 이 이름이 생김으로써 적그리스도인들이 붙였던 악의에 찬 호칭이 이 이름으로 대체되었던 것 같다. 이적들은 그리스도인을 나사렛단(행 24:5) 즉 이단이라하여 정당한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렇게해서 그들은 일반 대중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들에 적대적인 편견을 갖도록 조장했다. 이러한 편견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적들도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호칭을 스스로 정하였는데 이것은 적절한 것이었다.
둘째, 이렇게해서 개종전에 유대인 또는 이방인이라는 명칭때문에 서로 구별되던 사람들도 개종후에는 동일한 한가지 명칭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나는 유대인이었다" 혹은 "나는 이방인이었다" 고 말하지 않고 둘 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동일한 명칭으로 호칭하게 되었다.
셋째, 그들은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그 명칭을 "예수란 이름에서 따오지 않고 그의 직분을 나타내는 그리스도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호칭을 취함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호칭을 통하여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적들은 이 이름을 통하여 그들을 경멸하여 죄인들로 매도하려 하였지만 오히려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의미로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되었다.
넷째, 이렇게해서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게 되었다.
다섯째, 이렇게해서 그들은 그들 자신과 모든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이름을 고백하도록 하고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도록 하는 강력하고 영속적인 책임이 부과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들을 전적으로 헌신하도록 하였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인가? 그러면 우리는 그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맞도록 행동하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그리스도인임을 고려하여 그들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바르게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라는 이름때문에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도록 처신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리스도께 속해있기 때문이다.
Ⅲ. 안디옥 교회의 헌금 11:27-30
우리 주 예수께서는 승천하시자 사람들에게 은사를 부어주셨다. 예수는 사도나 전도자에게뿐만 아니라 선지자들에게도 은사를 내려주셨다.
(1) 이 선지자들 중 몇명이 안디옥을 방문하였다. 그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27절).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온 것이다. 예루살렘은 선지자들을 잡아죽이고 농락함으로 악명이 높았으므로 이제는 이들 선지자들까지도 상실하게 되었다. 이들은 안디옥에 왔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인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왔고 그들이 그 교훈을 잘 받아들이자 '장차 되어질 일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지자로 보냄 받았다.
(2) 이 선자자들 중 하나인 아가보라는 사람이 기근이 다가온다는 특별한 예언을 하였다. 아가보는 이 다음에 바울이 옥에 갇힐 일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음을 우리는 다시 대하게 될 것이다(행 21:10,11). 여기서 그는 일어나 예언을 하였다(28절). 이는 그가 예언하였던 것을 암시하는듯 하다.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28절). 그가 예언한 내용은 무엇이었던가? 천하에 흉년이 크게 들어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흉년은 어떤 특별한 한 나라만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천하 즉 로마 제국에 걸쳐서 닥칠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일반적으로 기근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으나 아가보는 이제 목전에 임한 특별한 기근에 대하여 예언을 했다. 이 기근의 도래는 어떠했던가. 그 기근은 그의 즉위 2년부터 시작하여 적으로 4년까지 계속되었다. 요세푸스등 많은 로마의 역사가들이 이 기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3) 그들은 이 예언을 선용하였다. 그들은 기근이 목전에 임했다는 예언을 들었을때 자기들의 곡식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자선 기금을 위해 내놓았다.
1) 그들이 이 일에 대하여 결정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있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29절). 그들이 구제하기로 정한 사람들은 유대에 사는 형제들이었다. 비록 우리가 기회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행을 해야하지만 우리는 권속들에 대하여 항상 특별한 배려를 해야한다. 가난한 사람을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중의 가난한 사람은 더욱 잘 보살펴주어야 한다. 성도의 교제가 이런 일에까지 연장되어서, 안디옥에 있는 교인도 유대에 있는 가난한 교인들을 형제라 불렀으며 그들을 구제하기 위한 구호품들을 준비하였다. 우리는 이 지역의 기독교 개종자들 중 거의 대다수가 가난한 사람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만일 기근이 온다면 그들은 곤경을 격게 될 것이며 만일 그들 중에 아사자라도 생기는 날에는 기독교인들에게 큰 욕이 돌아갈 것이다. 제자들이 이 일에 대하여 결정한 합의사항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힘대로 이 선한 일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상인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외국에 물품을 보내 수송효과로 이윤을 올리듯이 우리도 구제를 필요로 하는 먼데 있는 사람들에게 구제품을 보내어 그 효과를 높여야 한다. 그러므로 또한 우리가 이러한 요청을 받을때 우리는 더욱 앞장서 이를 감당해야 한다. '자기 힘대로'라고 말할때 그 기준은 자기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심사숙고 해야 한다.
2) 그들은 자기들이 결정한대로 실행하였다(30절). 그들이 '이를 실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그 일에 대하여 논의했을 뿐만 아니라 결정된 사항을 실천에 옮겼다. 이런 유의 많은 선한 사업들이 계획되고 추진되지만 실행되기는 어렵고 따라서 무의로 끝나기 쉽다. 그러나 그들의 연보는 모였고 바나바와 사울을 예루살렘에 보낼만큼 충분한 양의 물품이 모아졌다. 그들은 그것을 유대의 교회에 있는 장로들에게 보내서 자기들이 힘대로 모았듯이 받는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도록 부탁하였다. 바나바와 사울이 이것을 수송하였다. 복음의 사역자가 교회 구제품을 전달하는 일을 맡는 것은 늘 있는 일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 경우이다.
# 해설
안디옥 교회의 설립 ( 11 )
교회가 보편적인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준비해야할 것이 많이 있듯이, 사도들의 의식에 있어서, 또한 안디옥 교회의 준비에 있어서도 동일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본장에서 베드로는 할례자들의 비난을 받은 일로인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실로 그들을 깨우치자 저희가 잠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또한 흩어진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 교회를 세우려는 예루살렘 교회의 노력과 그 일로인해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로 성장하는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베드로의 변명
1) 할례자들의 비난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행한 일은 예상할 수 있는대로 베드로보다 먼저 소문으로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엄격한 유대인 신자들에게 '왜 거룩한 규례들을 어겼느냐'는 질문 공세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베드로가 한 일이 불신자 유대인의 귀에 들어가면 베드로 자신뿐 아니라 동료들까지도 당혹한 지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행위는 종교적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미도 적지 않았습니다. 유대에는 이방인들과 친하게 지내는 유대인들을 민족의 반역자로 비난하는 투쟁적인 민족주의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때 베드로의 행위는 이방인과 친교를 갖는 것뿐 아니라 점령군의 일원인 로마 군인들과도 친교를 갖는 행위였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은 여러가지였습니다. 할례받은 신자들이란 표현을 통해서 우리는 아직도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는 그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먹음은 그를 받아들이고 교제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a.할례와 무할례(갈6:15)
b.편협한 태도(막9:38)
2) 베드로의 변명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있는 할례받은 신자들에게 그가 본 환상과 그것의 성취, 그리고 고넬료의 집에 갔던 일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답게 자기가 이전에 갖고 있던 편견을 하나님이 어떻게 깨우쳐 주셨는지 그 경위를 담담히 증거했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택한 백성을 두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은 베드로의 증언을 들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말한대로 고넬료와 그의 식구들이 베드로가 설교하는 동안 성령을 받았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조차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다는 결론밖에 내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a.환상(사21:2)
b.생명을 얻는 회개(고후7:10)
3) 무죄 선고
베드로의 변명은 자신이 행한 것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에 의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시지 않으셨음을 알고, 자신 또한 그렇게 할수밖에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베드로와 성도들은 이방인의 개종을 하나님이 주도하셨으며 또한 이 일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두가지 중대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첫째는, 교회가 그리스도 공동체로 보전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 시대의 신자들과 성전 예배자들 사이에 커다란 쐐기를 박은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호의적으로 보았으나 이일 후로는 유대인들이 교회를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a.하나님의 공평(롬10:12)
b.유대인의 핍박(살전2:15)
2.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
1) 환난으로 인해 흩어진 자들
처음으로 교회는 적극적으로 이방인들을 개종시켰습니다. 누가는 다시금 스데반의 순교를 이야기하면서 그 일이 준 또다른 결과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일은 사마리아 전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스데반의 죽음은 사울이 더 열렬하게 교회를 핍박하도록 자극했으며 결과적으로 그를 개종시켰습니다. 세번째 결과는 복음이 이방인의 땅으로 퍼져나간 것입니다. 누가는 환난으로 인해 흩어진 자들이 할례없는 헬라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첫발을 내딛게 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a.스데반의 순교 결과(행8:1,4)
b.헬라인에게 복음전파(요7:35)
2) 안디옥에서의 복음전파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은 오른테스 강 하구에서 상류 쪽으로 24km 가량 올라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도시는 B.C.300년에 세워졌고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이 여러개로 분할되었을 때 그중 한나라의 수도였습니다. 안디옥은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로마제국 내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였고 명실공히 국제적인 도시였습니다. 이곳에서는 세월이 갈수록 인종이나 종교의 차이가 그 중요성을 잃어 갔습니다. 이 안디옥이라는 도시에 박해를 피해 유대를 빠져나온 신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안디옥에서 먼저 유대인 공동체에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보다 진취적인 사람들은 그곳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이방인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열렬히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얼마 지나지않아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계속해서 현저한 이방인 교회로 남게 되었습니다.
a.이방인의 개종(엡3:6)
b.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갈3:28)
3) 바울과 바나바
예기치 않은 이 복음의 확산 소식이 사도들과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알려지자 그들은 '위로의 아들' 바나바를 안디옥에 대표자로 보냈습니다. 바나바는 몹시 기뻐하면서 그곳에 머물며 이 역동적인 안디옥 교회의 진행에 필요한 일을 감독하고 지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역이 그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알고, 그는 옛친구 사울을 데리러 다소에 가서 안디옥으로 데려가 일년 동안 함께 사역하며 교회를 든든히 세워갔습니다.
a.견실한 생활(고전15:58)
b.권면(살전2:4)
4) 안디옥 교회의 선교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온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로마 전체가 크게 흉년이 들 것을 예언했고, 실제로 기근이 닥쳤습니다. 이때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은 헌금을 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했습니다. 이방인들로 주종을 이룬 안디옥 교회가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도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 처음 불린 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a.그리스도인이라 불림(벧전4:16)
b.부조를 보냄(롬15:26)
결론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인'이란 용어가 세번 나오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붙여진 이름과 행26:28절 그리고 벧전4:16절 입니다. 각 경우 모두 직설적이든 암시적이든 불신자들의 입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에 그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신자가 신자다워질 때에, 그 이름은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마땅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교회들이 될 것입니다.
# 핵심
11:1-18
보수적인 유대인 신자들이 고넬료 사건에 대해 반발하자 베드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적극 변론했다. 그 결과, 그들도 이방 선교의 당위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성령 세례(11:16)
성령께서 죄인의 심령에 임하사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하시는 중생 사역을 뜻한다. 이는 개인의 일생 동안 단한번 일어나는 단회적 사건이다. 아담의 타락이래 모든 인간의 심령이 부패해졌으므로 성령세례 없이는 아무도 영적으로 거듭날 수 없다. 따라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자는 이미 성령세례를 받은 자이다.
# 묵상
베드로와 할례자들 ( 11:2, 3 )
할례자들은 베드로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고 해서 베드로를 힐난했습니다. 이와같이 유대의 할례자들은 아직까지도 주께서 말씀하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민족적 독선과 우월감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명하심대로 행한 베드로 ( 11:12 )
성령의 명에 따라 베드로는 가이사랴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을 가까이할 수 없는 속된 존재로 생각했지만 성령이 명하실 때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성령의 지시에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인간의 작은 지혜로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밝히 알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설명후의 반응 ( 11:18 )
베드로가 욥바에서 받았던 환상과 성령의 명에 따른 고넬료 방문을 설명하자, 유대의 사도들과 형제들은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신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신앙 고백을 한 사람들은 모두 존귀히 여김을 받을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구원을 얻기위한 전제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구브로와 구레네 몇사람의 안디옥 사역 ( 11:20 )
이들은 헬라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에는 사람들이 베니게와 구브로, 안디옥에 와서도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으나 이제는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져,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혼합된 교회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 11:22-26 )
이 교회에 파송을 받은 사람은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사도들이 인정하였던 신실한 자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된 곳도 이곳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크리스티아노스’에서 온 말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지칭할때 쓰던 단순한 호칭으로 경멸의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스러운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신자들은 이 호칭을 2세기경에 정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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