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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 13:1-3

우리는 본문에서 바나바와 바울이 이방인의 복음전도에 대해 거룩한 사명을 부여받은 사실을 보게 된다.

(1) 본문은 안디옥 교회의 현재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 안디옥 교회는 훌륭한 사역자들로 잘 구비되어 있다. 그 교회에는 '몇몇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1절), 이들은 뛰어난 은사와 은혜를 받고 훌륭하게 봉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아가보는 교사가 아니라 선지자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선지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은 교사들이었다. 안디옥은 기독교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대도시였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많은 교사들이 필요하였다. 본문에는 바나바의 이름이 먼저 명기되고 바울의 이름은 나중에 수록되지만, 후에는 이 순서가 뒤바뀐다. 본문에는 또 세명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그중 한사람은 시므온 혹은 시몬 즉 검둥이 시몬으로 불리워졌다. 다른 한사람은 구레네 사람 루기오였으며, 마지막 한사람은 마나엔이란 자이다. 마나엔은 어떤 특정 신분의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그는 분봉왕 헤롯과 함께 양육된 자로서 그와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궁중의 고관으로 발탁될 수 있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그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 분봉왕과 함께 동료 핍박자가 되기보다는 성도와 함께 수난자가 되는 것이 훨씬 나았다.

2) 그들은 사명을 충실히 감당했다(2절). 그들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2절). 근면하고 신실한 교사들은 주님을 진실되게 섬긴다.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섬긴다.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주님을 섬기는 일은 교회와 교회의 교사들의 정해진 임무임에 분명하다. 경건한 금식은 우리가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 유용한 것이다. 비록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신랑되시는 주님과 함께있던 동안에는 많이 금식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그가 떠나버린 이후로는 많은 금식을 행하였다.

(2) 성령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울 것을 명령하신다.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2절). 성령께서는 그들의 임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바나바와 바울은 이전의 부르심을 통해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이 문제는 이 일이 있기에 앞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간에 결정된 일이었다. 즉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할례받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맡았듯이,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으로 가도록 결정되었다. 성령의 명령은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그의 성령을 통해 자신의 사역자들을 임명하신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하여 선별하시는 몇명의 사람들이 있으며, 이들을 "선별하라"는 성령의 지시는 그 지시를 적절하게 판단할 능력을 구비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법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와 성령을 위해 선별된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를 위하여 그들을 따로 세우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일을 감당해야 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로서 선별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선별된다. 그리스도는 결코 종들을 태만하게 방치해 두지 않으신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안정을 얻기위해서가 아니라 고난을 당하기 위해 선별된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사명은 지금까지 부름받은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감당하던 바로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3) 사역자로서의 일반적 사명이 아닌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안수받는다. 본문에는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3절)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위해 기도했다. 선한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하고자 떠나려할때, 그들을 위해서 엄숙하고도 특별한 기도가 행해져야 한다. 그들은 주께서 분부하신 다른 일을 수행할때와 마찬가지로 금식 기도를 드렸다(3절).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를 베풀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기쁜 마음으로 떳떳하게 떠나갈뿐만 아니라 명예롭고도 훌륭한 평판을 가지고 떠나는 것은 인정하면서 안디옥 교회에서 현재 그들이 맡고있는 직무를 해제시켜 주었다. 그들은 그 두사람이 현재 짊어진 사명 위에 축복이 임할 것을 기원했으며, 또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셔서 그들이 성공적으로 사명을 완수하게 해주실 것을 간구하였다.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이 그들보다 먼저 영예롭게 되는 것을 시기하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기꺼이 그 임무를 위임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개간해야할 묵은 땅이 있는 지방들을 복음화시키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그들을 파송하였다.

 

Ⅱ. 소경이 된 엘루마 13:4-13

1. 바나바와 바울이 유명한 섬 구브로에 이르게 된 경위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4,5)

구브로는 바나바의 출신 지방이었다(행4:36). 따라서 그는 이 지방에서의 그의 수고의 첫열매를 그들이 거두기를 바라 마지않았다. 그들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그들을 크게 격려하는 것이었다(4절). 그들은 실루기아로 가서 거기서 바다를 건너 구브로로 향했다. 그들이 최초로 도착한 도시는 살라미였다(5절). 그리고 그때 그들은 그곳에 선한 복음의 씨를 뿌렸으며 거기서부터 바보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온 섬 가운데로 지나며(6절) 앞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5절). 이처럼 그들은 스스로 자만하는 유대인들마저도 배척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코 은밀하게 행동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교리에 대해 유대 회당의 지도자들이 공공연히 비난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였다. 그들이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5절). 요한은 잡일을 돌보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들 돕는 그들의 조력자였다. 요한과 같은 사람은 특히 낯선 지방에서 여러모로 그들에게 기여하는 바가 컸을 것이다.

2. 그들과 박수 엘루마와의 대면에 관한 특별한 설명(6-12)

(1) 바보에는 서기오 바울이라 하는 이방인 총독이 있었는데, 그는 사도들을 격려하였다. 그는 로마 황제의 지배를 받는 이 지방의 총독이었다. 그는 감정이나 편견 따위로 사로잡히지 않고 이성에 따르는 총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총명함은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이 세상의 어리석음 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현명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추구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면 그들은 마땅히 이 총독에게 그 메시지의 내용을 알려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메시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2) 그곳에는 유대인 박수 엘루마가 있었는데, 그는 바나바와 바울을 반대했다. 이 엘루마는 예언의 은사를 사칭하는 박수요 거짓 예언자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성직자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여호수아의 아들을 의미하는 바예수였다. 이 이름은 구원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리아어로 이 이름은 바쇼마인데, 그 의미는 교만의 아들 혹은 과장의 아들이다. 그는 그 지방의 총독과 함께 있음으로써 왕실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는 바나바와 바울을 대적하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총독으로 하여금 그들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애썼다(8절). 즉 그는 총독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했던 것이다. 이와같이 특히 사단은 훌륭한 사람들이나 권력자들이 경건하게 되는 것을 저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단은 그들의 본보기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울(여기서 처음으로 바울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은 거룩한 분노로서 자신을 적대하는 엘루마를 공박하였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9절). 사울이란 이름은 그가 히브리인이었을 당시 이름이었고, 바울이란 이름은 그가 로마 시민이 되었을 당시의 불린 이름이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는 가장 정통적인 유대인의 이름으로 불리어졌다. 그러나 이제 그가 이방 가운데로 파송되었을 이때부터 그는 로마식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그는 이 사건에 봉착하여 성령으로 충만하였다. 즉 그는 엘루마에게 하나님의 분노를 퍼부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지녔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어떤 개인적인 원한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영에 임한 성령의 강한 감화력에서 온 것이다. 그는 엘루마의 사악한 뻔뻔스러움에 대적하여 그를 주목하였다. 본문에서 바울은 엘루마의 정체를 폭로하고 있다(10절). 바울은 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10절).

첫째, 그는 마귀의 대리자이다. 이 엘루마는 비록 그가 바예수, 즉 예수의 아들로 불리웠지만 실제로는 마귀의 자식이었다. 그는 두가지 점에서 마귀와 닮았다. 하나는 간교하다는 점이다. 엘루마에게서 참된 지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는 모든 궤계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다른 하나는 악하다는 점이다. 그는 악행이 가득한 자로 악의에 찬 심술궂은 인간이었다. 한 인간이 간교와 악행으로 가득차게 되면 정녕 마귀의 자식이 되기 마련이다.

둘째, 그는 하나님 나라에 대항하는 적대자이다. 만약 그가 마귀의 자식이라면 그가 모든 이의 원수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바울은 엘루마의 현재의 죄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10절). 주의 길은 항상 바르다. 오직 그 길만이 천국과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이 올바른 길들에서 벗어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이 길에서 벗어나 방황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여 이 길에 반대되는 불의한 편견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주의 길을 굽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 주의 바른 길을 그릇되게 하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마음이 너무도 완악하여져서 그 일을 중단하지 못한다. 바울은 엘루마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그가 당장 소경이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11절). 엘루마는 복음의 빛을 보지않기 위해 자신의 눈, 즉 마음의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즉시 그의 육안도 햇빛을 보지 못하도록 감겨져 버렸다. 그는 총독의 눈을 멀게 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자신의 눈이 멀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것은 관대한 처벌이었다. 왜냐하면 이 심판은 잠시동안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회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그의 시력은 회복될 것이다. 아니, 그가 회개하지 않아도 시력을 회복했으리라고 볼 수 있다. 이 심판은 즉각적으로 실행되었다. 본문에는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었다고 기록되어 있다(11절). 이제 그는 벌을 받아 소경이 됨으로써 자신을 더이상 총독의 양심의 안내자로 가장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였다(11절). 이제 거기서 그의 노련한 모든 마술도 종말을 고했다.

(3)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는 엘루마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총독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가 이렇게 된데에는 바울의 기적이 기여하는 바가 컸다. 총독은 매우 지각이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그 기적의 신적인 근거에서 암시되는 어떤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는 바울의 설교를 통하여 들은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하게 여겼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속에는 기이한 것이 매우 많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자주 논할수록 그속에서 더욱 기이하고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총독은 이 기적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본문은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12절)라고 전한다. 본문에는 그가 세례를 받았다는 내용의 언급이 없다. 그러나 그가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3. 바울과 그 일행들이 구브로 섬을 떠남(13)

바울과 그의 일행들은 그 지방을 떠나 버가로 갔다. 거기서 요한은 바울과 바나바의 승낙도 얻지 않은채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그의 실수였다. 그리고 우리는 본문에서 그의 그와 같은 실수를 거듭 발견한다.

 

Ⅲ.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바울의 설교 13:14-41

밤빌리아에 위치한 버가는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가 거기서 무엇을 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다만 본문에는 '저희가 버가에 이르니'(13절), '버가로부터 지나'(14절)라고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본문에서 그들이 간 다음 장소는 또다른 안디옥, 즉 그들이 파송된 장소인 시리아의 안디옥과 구별하기 위해 비시디아 안디옥이라 불리는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곳에는 대단히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때 그들에게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들에게 행한 바울의 설교는 14절 이하에서 볼 수 있다.

1.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있는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감(14)

그들이 안디옥에 왔을때, 그들은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을 먼저 예방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이들 유대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좋은 증거가 되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그들의 예배 시간으로 준수하였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주(週)의 첫날이 안식일로 준수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유대인들과 만나게 될때에는 반드시 제 칠일을 안식일로 준수하였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예배 장소인 회당에서 유대인들을 만났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낯선 사람들이었다. 이와같이 우리도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신실한 예배자들을 찾아다녀야 하며 그들의 집회에 참석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낯선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당에 들어와서 좌정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우리는 공중의 예배장소에서 낯선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편의를 도모해야 한다는 점에 주의하자.

2. 그들에게 전도할 기회가 주어짐(15)

본문의 그 회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반적인 예배의식을 전하고 있다(15절).

(1) 그들은 그날에 해당하는 교훈이 수록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었다'

(2)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후 회당장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설교를 요청하였다(15절). 회당장들은 그들에게 심부름꾼을 보내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고 전했다. 비록 그들이 복음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적어도 바울의 설교를 들어보려는 호기심 정도는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바울에게 백성에게 권고할 말을 들려 주기를 간청했다. 공공의 예배 집회에서 겨우 성경만 읽는다는 것은 만족할만한 일이 못된다. 그곳에서는 반드시 성경이 해설되어져야 하고 또한 백성들은 거기서 권고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공공의 예배집회를 주관하고 관장하는 자들은 항상 권고의 말씀을 준비해야 한다. 간혹 낯선 사역자로부터의 권고의 말씀은 백성들에게 큰 유익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볼때 본문의 회당장들은 다른 일반적인 회당장들보다 더 고결하고 관대한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바울의 설교(16-41)

바울은 그의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도할 기회가 주어졌을때 이를 기꺼이 수락하였다. 본문은 당시의 상황을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16절)라고 전한다. 그는 그들로부터 호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열성을 보여주기 위해 연사처럼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곧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16절)고 말했다. 바울의 이 설교속에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임할 심판을 납득시키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약속받은 메시야로 받아들이고 용납하도록 그들을 설득시키는 그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1) 그는 유대인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으로 인정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이 백성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큰 일들을 행하셨다.

첫째, 온땅의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하나님, 곧 '이 백성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다.

둘째, 하나님은 이 백성의 조상들을 자신의 친구로 선택하셨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으로 불리워졌다. 바울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는 이유를 알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곧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신 이유는 그가 예전에 그들의 조상들을 택한 그 선택에 충실하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은 그 백성을 높이셨으며 그들로 한민족을 이루도록 하셨고 그들이 애굽 땅에서 나그네로 있을때 그들을 그 보잘것없는 곳에서 일으키셨다. 그들은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있어서 결코 빚진 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혀야만 한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께 빚진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행하시는 그 이상의 어떠한 사건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넷째, 하나님은 큰 권능으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다. 하나님은 수많은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그들을 구원하셨다. 그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자기 백성의 압제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셨던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은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저희 소행을 참으셨다(18절). 하나님은 사십 년간의 그들의 광야생활을 위해 엄청난 양의 식량을 마련하셨다. 그는 기적들을 통해 그들을 매일 먹이셨다. 또한 그는 그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셨으며, 모세의 기도와 중재를 통해 수없이 돌이키심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억제하셨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사는한 하나님을 관대하신 사랑의 아버지와 용서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였지만, 그는 결코 그것에 싫증을 내지 않으셨다.

여섯째,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19절). 본문에는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곱째,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그들을 압제하던 자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들을 일으키셨다(20, 21절). 먼저 하나님은 사사를 보내주셨다. 하나님은 비록 그들이 반역의 백성이었을지라도 그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구원자를 일으키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그들을 통치하셨다.

그후, 그들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은 기스의 아들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다며 마침내 다윗을 그들의 왕으로 삼으셨다(22절). 하나님은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저들의 왕으로 세우사 그와 그의 후손들과 더불어 충성의 언약을 맺으셨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증거를 인용하고 있다. 바울이 인용한 증거 중 첫째는 하나님의 선택은 거룩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내가 다윗을 찾았다고 말씀하셨다. 찾는다는 것은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도에 적합한 인물을 찾기위해 이스라엘의 모든 가문들을 샅샅이 뒤지셨다. 그렇게해서 찾아낸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다. 두 번째 증거는 다윗이 하나님을 닮은 성품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그를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22절).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던 자라는 의미이자 그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사람이란 의미이다. 세 번째로는 그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였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를 바라고 노력할 것이며 또한 그렇게 행할 능력을 구비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정권 교체는 그 국가가 완전하지 못함을 시사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정권은 메시야의 영적인 왕국으로 반드시 이양되어야 하며, 이제 그 왕국이 비로소 수립되었다. 이제 유대인들은 바울의 복음전도에 대해 전혀 시기할 필요가 없었다.

(2) 바울은 우리 주 예수에 관하여 그들에게 충분히 설명했으며 바로 이 예수가 다윗의 약속된 후손임을 증거 한다(23절). 이 사람의 씨에서 즉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부터 그의 약속에 따라 이스라엘을 위해 구세주를 세우셨으니 그가 곧 예수이시다. 예수는 그 이름이 뜻하는 바대로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야 주신다.

1)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가장 사악한 적인 죄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실 구세주에 관한 소식이 전해졌을때 이러한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소식이 그들에게 얼마나 기쁜 일이었으며 동시에 그들이 그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일만한 것으로서 얼마나 환영하여야 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구세주를 일으키셨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세주를 세우셨다. 이렇게 볼때 복음은 이스라엘을 거부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모으기 위해 계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렬한 찬양을 받던 옛 왕가인 다윗의 씨 중에서 구세주를 일으키셨다. 또한 그는 다윗과 맺은 그의 약속에 따라 구세주를 일으키셨다. 그렇다면 어째서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해들었을때 그토록 그것을 냉대했는가?

2) 바울은 예수에 대해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예수의 선구자는 모든 사람들이 선지자로 인정할 위대한 인물인 세례 요한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오시는 앞에서 전파했던'(24절) 세례 요한의 경고를 충분히 주지하였으므로 결코 메시야의 도래를 돌발적인 사태로 언급할 수 없었다.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파함으로써 그가 들어오시는 길을 예비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보여 주었으며 회개할 것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을 촉구하였다. 그는 메시야가 곧 오시리라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주지시켰다.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25절). 그는 "이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내가 너희가 기대하는 메시야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너희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나는 결코 그가 아니다. 바로 그는 지금 문밖에 서 계신다. 보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니 너희는 오실 그가 어떤 분이신지 감히 상상할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② 그를 마땅히 환영해야할 유대의 관원들과 백성들은 그의 핍박자요 살해자들이었다.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전파했을때, 그들은 결코 의의 치욕적인 죽음을 은폐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항상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전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백성들 곧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들과 그들의 관원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27절). 그들의 죄는 '그들이 그를 죽일 죄를 전혀 찾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빌라도에게 그를 죽여달라고 요구한 것이었다'(28절). 그들은 빌라도로 하여금 그를 처형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러나 실상 빌라도는 예수를 처형할 의향이 없었을뿐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들은 그에게서 최소한의 죄도 입증하지 못했지만, 그에게 그토록 참혹한 죽음을 선고했다. 이렇듯 메시야를 학대했으므로 그들은 마땅히 메시야로부터의 모든 은사를 받을 수 없게 되었을 것이나 그들은 여전히 그 은사를 받았다. 즉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복음의 전도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이유는 그들이 그를 알지 못했기(27절) 때문이었다. 그리스도는 이 사실로 말미암아 그들이 범한 죄의 정상을 참작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저들이 그 하는 바를 알지 못하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베드로도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도다'(행 3:17)라고 말했다. 또하나의 이유는 그들이 매주 안식일마다 선지자의 말씀이 낭독되는 것을 들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메시야가 고난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선지서를 읽지만 정작 그들은 선지자들이 말했던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복음의 말씀을 귀로 듣기는 하나 그 의미를 머리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구약성경의 예언들을 성취하시기 위해 관원들과 백성들을 주관하셨다. 그리하여 본문에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27)라고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들을 어길 경우라도 이들을 통하여 성경의 예언들이 성취될 수 있었다. 메시야의 고난에 관해 예언된 모든 말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29절). 즉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장사될 것에 관한 예언까지도 모두 성취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를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다'. 이 사건을 본문에서 언급한 것은 그의 부활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그를 무덤에 내려놓고 그를 단단히 묶어 두었다고 생각했다.

③ 그는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셨다'. 이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전하지 않으면 안될 위대한 진리이다. 왜냐하면 이 사건이야말로 복음의 주축으로서 복음의 전 구조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일어나셨다.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30절). 그의 원수들은 그를 무덤에 내려놓음으로써 그가 항상 거기에 매여있기를 기도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렇게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 그의 부활에 관한 충분한 증거가 있었다. 그가 여러날 보이셨으니(31절).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 되었다.' 그 증인들은 비록 그와 같이 죽을지라도 그 일을 수차례 증거하였으며 항상 그 일을 증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울이 직접 그리스도를 목격하였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를 환상 중에 보았기 때문이다. 이 환상은 그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것보다 더욱 확실한 것이었다.

㉢ 그리스도의 부활은 약속의 성취였다. 그것은 참된 소식이었을뿐만 아니라 복된 소식이었다. 바울은 "우리가 이를 전파하되 기쁜 소식을 너희에게 전파하는도다(32,33절). 너희 유대인들은 각별한 태도로 이 기쁜 소식을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전하는 상상할 수 없는 최상의 보상을 얻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너희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이 너희에게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구약 성경의 위대한 약속은 아브라함의 자손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민족들을 축복하실 메시야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모든 민족들 앞에 일으켜지신바 된 것은 그 모든 민족들에게 공평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이었다. 그가 모든 민족들 앞에 일으켜지신바 된 것은 그 모든 민족들에게 공평한 은혜를 베푸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셨다(33절). 즉 하나님은 그를 다시 일으키셨다. 이것은 그가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사셨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 곧 메시야를 보내실 것에 대한 약속의 성취이다. "이 사람이 오시리라고 하신 바로 그분이다. 비록 너희가 바라던대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너희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너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그분이 성취하심을 보게 되리라." 바울은 이 약속이 성취된 유대인들 속에 자신을 포함시킨다. 즉 그는 우리가 그들의 자손이라고 말한다. 유대인들 자신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 대해서 불평을 토로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약속을 파기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메시야를 통해 축복 받게 되리라는 약속 그 자체는 그러한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달리 성취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고 시편 2편의 기록을 확증하는 훌륭한 증거였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2:7). 또 그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롬1:4). 그가 처음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하나님은 그에 관해서 하늘로부터 음성을 발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마3:17)고 선포하셨다. 이 말씀은 시편 2편의 '너는 내 아들이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실때 선포되었던 모든 사실들이 이제 그의 부활을 통해 명백하게 입증되었다. 이미 오래 전에 선포되었던 하나님의 뜻이 비로소 부활을 통해 분명히 드러났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셨다.

㉤ 그는 삼일만에 썩지 않고 부활하셨다. 그는 그 삼일 동안 썩어버릴 인간의 몸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천국의 생명을 입으셨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약속된 메시야임을 더욱 확증시켜 준다. 그는 부활하사 더이상 죽지 않으셨다. 나사로는 무덤에서 나올때 수의를 입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옷을 다시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수의를 다시 착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버려두고 나오셨다. 실제로 그가 더이상 죽지 않기 위해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참으로 확실한 은총을 가져다준다. 만약 그리스도가 죽어서 다시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가 부활하셨더라도 다시 죽을수밖에 없었다면, 우리는 확실한 은총을 받지 못했을 것이며 적어도 그것을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죽은후 곧 부활하셨으므로 육신이 썩지 않으셨다. 이러한 사실은 '다윗의 미쁜 은사' 중의 하나였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35절).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기'(36절) 때문에 이 약속이 다윗에게서는 성취될 수 없었지만 이는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그 조상 다윗의 생애와 죽음 그리고 장례에 관한 간략한 설명과 그가 계속해서 사망의 권세의 지배를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의 생애는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다윗은 유능하고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세상에서 선한 일을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섬기듯이 자신의 세대를 섬겼다. 그는 사람들의 선을 이루기 위하여 섬겼으나 사람들의 뜻에 따라 섬기지는 않았다. 다윗은 그의 세대에 커다란 축복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세대를 위한 종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세대에는 저주와 재앙과 멍에가 많았다. 세상에서 선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따라서 우리는 그 공동체에 봉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기서 다윗과 그리스도의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그들의 차이점은 다윗이 오직 자신의 세대만을 섬겼던 것에 반해 그리스도는 모든 세대를 섬기셨다는 점이다. 그리스도는 해와 달이 존재하는 한 모든 세대들을 섬기며 그들을 통치하시기 위해 영원히 사실 것이다. 본문은 다윗의 죽음을 '그가 잠들었다'라고 전한다. 살아있을 동안 하나님과의 자신의 세대를 섬기기 위해 애쓴 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잠이자 평온한 안식이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신 목적을 모두 이룰 때까지 결코 잠들지 않았다. 하나님의 증인들은 그들의 증언을 완전히 마치기까지는 결코 죽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을 완전히 성취한 후에 올 애쓴 자들의 잠은 달콤한 것이다. 본문은 다윗의 장례에 대해 '그가 조상들과 함께 묻혔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는 계속 무덤에 머물러 '썩음을 당하였다'. 우리는 그가 다시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그는 썩음을 당하였으므로 썩지 않게 하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 예수를 통해 성취하셨다. 본문은 '하나님이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느니'(37절)라고 전한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오직 예수만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는 결코 이해되지 못한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주 예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후에 그것을 다음과 같이 적용시키고 있다.

첫째, 바울은 설교 도중 청중들에게 이 모든 일이 그들과 관련이 있음을 전했다(26절). 즉 바울은 "이 구원의 말씀은 너희에게 전해진 것이다. 만약 너희에게 전해진 이 구원의 말씀을 너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희의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그는 그들에게 친절과 경의를 표하면서 그들을 여러분 형제들이여 라고 불렀다. 여기서 바울이 구원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들은 바울 자신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유대인들, 즉 히브리인들 중의 히브리인들이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그들에게 이 구원의 말씀이 전해졌다. 그보다는 그들의 죄에서 구원을 받도록 하려고 그들에게 이 구원의 말씀이 보내진 것이다. 훌륭한 가문 출신이라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이다. 왜냐하면 구원이 반드시 경건한 부모들의 자녀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구원의 말씀만은 그들에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그들 중 또 한부류는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이었다.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너희에게 보내셨거늘. 이제 너희는 그 계시 종교에 대해서 더욱 탐구하고 그것이 지시하는대로 따라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여 그 유익함을 확실히 얻도록 하라.

둘째, 바울은 설교를 마치면서 그가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한 것을 청취자들에게 적용시킨다. 이제 그들은 이 모든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으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것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바울은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이 구원의 말씀을 믿는다면, 그들은 형언할 수 없는 유익을 얻게 되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우리는 이것을 너희에게 전하라는 사명을 받았고 너희는 그 말씀을 주목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는 단순히 그들 앞에 설교하기 위해 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들에게 설교하기 위해서 섰다. 그가 그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른 것은 그들의 동족으로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하기 위함이었다. 복음전도자들이 청중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도자들은 그들의 행복과 번영에 진지한 관심을 표명하며, 그들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청중들도 동등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사람은 누구나 알아야할 두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간의 자손들에게 부여된 하나의 사면 행위라는 사실이다. 이 은총의 행위가 보증되고 선포된 것은 곧 그리스도의 중보의 댓가로 인한 것이다.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노라(38절). "여러분의 죄는 사해질 수 있을 것이다. 죄사함은 이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죄사함은 그의 공로로 얻어지는 것이며, 그의 이름으로 주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너희에게 가져다주는 구원이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우리를 위해 대행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너희가 알 것은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못하던 모든 일에도'(39절) 그리스도만이 그를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복음을 영접하고 따라야 하며 그것에 반대되는 율법을 추종하지 말아야 한다. 죄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마땅히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어야 하며,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자로 용납되는 것이어야 한다. 진실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들은 그들의 모든 죄를 면제받는다. 죄인이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다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히 의로 인치심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를 통하여 죄에 대한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나 그의 지배에 서로 순종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를 통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한다면, 그들은 극도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40,41절). 바울은 "그런즉 주의하라. 너희는 선지자들이 말한 축복과 은혜에 미치지 못할까 주의하라. 곧 너희는 선지자들에게 말씀된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고 말했다(40절). 이러한 위협적인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그러한 일들이 닥치지 않도록 하기위해 우리를 주의시키고 일깨우는 경고의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70인역 성경을 사용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를 멸시하고 무시하며 그것에 머리 숙이기를 꺼려하는 자들은 멸망하게 마련이다.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는 선지자들의 예언이 너희에게 임하는 심판이 되지않도록 주의하라."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경이로움을 표하지 않고 구원받으려는 자들은 놀라고 멸망할 것이다. 교회의 특권을 향유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그 특권으로 말미암아 더욱 견딜 수 없을정도로 정죄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할때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불신앙의 유대인들이 기대할 것이라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하실 것이며 그 일은 사람이 그들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못할 일이라는 사실뿐이다. 이 말씀은 그들의 죄에 관한 예언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들의 죄는 그들이 도무지 하나님의 위대한 업적 즉 그리스도를 통한 세상의 구원을 믿지않으려 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아무리 진지하게 그 사실을 밝힌다해도 그들은 도무지 믿지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당대에 하나님의 이러한 위대한 업적을 볼 수 있는 영예와 특혜를 누렸지만 실상 그것을 믿는 은총을 누리지 못했다. 또한 이 말씀은 그들의 파멸에 대한 예견일 수 있다. 즉 그들이 얼마나 천국의 사랑을 받은 민족인가를 생각할때, 그러한 파멸이 그들에게 임하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행악자, 특히 그리스도를 경멸하는 자에게는 낯선 재앙이 임하게 마련이다.

 

Ⅳ.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행한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 13:42-52

본문의 내용은 사도들 특히 바울의 변명으로 구성되었다. 우리는 본문에서 바울이 자신에 대해 신중하고도 주의 깊게 변호하고 있음은 관찰할 수 없다.

(1) 유대인들 중에는 바울의 복음전도에 대해 격앙하는 자들이 몇명 있었다. 그들은 복음을 계속 듣는 것을 참지 못하여 회당 밖으로 나가버렸다(42절).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시사한다.

첫째, 그들의 공공연한 불신앙 :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에 대한 그들의 경멸을 공개적으로 공언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편견을 심어주려고 애썼다.

둘째, 그들의 완고한 불신 : 그들은 자신들이 복음을 믿지않는다는 사실과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 위해 회당을 나가버렸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진하여 복음에서 떠났을 때, 복음이 그들을 지나쳐 버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그를 떠나지 않는한 결코 먼저 인간에게서 떠나시는 법이 없으시다.

(2)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지않으려고 나가버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방인들은 기꺼이 그 복음을 경청하려 했다.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42절).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이 자신들에게도 전파될 수 있기를 간청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버리고 짐스러워하는 것들을 오히려 동경하였다. 이제 바울은 그들의 초청을 받았으므로 떳떳하게 복음을 전도할 수 있었다. 그토록 간절하게 먹을 것을 구하는 자에게 생명의 떡을 나눠주기를 어찌 거절할 수 있으며, 식탁에서 자녀들이 먹는 떡이라 할지라도 문밖에서 구걸하는 그들에게 어찌 나눠주기를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들었더라도 단번에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그들은 그 가르침을 거듭 돌려주기를 간청했다. 우리는 한번 들었던 것을 우리 마음속에 깊숙이 뿌리내리기 위해 그리고 움직이는 못을 단단히 고정시키듯이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붙잡아 두기위해 거듭해서 듣기를 간구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다시 듣기를 원치 않던 것을 이방인들이 재차 듣기 원했다는 사실로 인하여 유대인들의 사악한 성격은 더욱 악화되었다.

(3) 유대인들과 개종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복음전도에 영향을 받았다.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43절).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에 복종하였고 복음이 주는 유익과 위안을 받았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좇았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의 제자, 더나아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들은 그의 사역자들과도 연합해야 하며 또한 그들을 추종해야 한다.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 중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기꺼이 환영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항상 은혜 가운데 있으라'는 권고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그들을 권고하고 격려하였다. 하나님의 은총은 그 안에 항상 거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끊임이 없을 것이다.

(4) 다음 안식일 날(44절) :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하여 모이니(44절).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전도의 결과로 안식일 날에 많은 무리가 회당에 모였다. 혹자는 호기심으로 왔고 다른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이 어떠한가를 보기위해서 모였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 말씀을 한번 더 듣기위해 모였다. 그들은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온 것이다. 이제 바울은 이로써 이방인들에게 떳떳하게 전도할 수 있었으며, 그들 중 가장 열성적인 청중들을 만나보게 되었다.

(5) 유대인들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격노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그 복음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보고서도 분함을 참지 못하였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그득하여(45절). 그들은 사도들이 무리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에게 품었던 심정과 동일했다. 그러나 그들은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섬뜩했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사도들이 전한 가르침을 반대하였다. 그들이 바울이 말한 모든 것에 트집을 잡아 '그가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였다.' 그들은 반박을 위한 반박을 했으며, 바울을 반박할 아무런 근거도 찾아내지 못하자 그리스도의 그의 복음에 대해 악담을 퍼부으면서 모독을 했다. 일반적으로 비난으로 시작한 사람들은 신성모독으로 끝맺기 마련이다.

(6) 이처럼 유대인들이 복음을 반대하였으므로 사도들은 그들에 대한 전도의 책임을 벗게 되었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유로이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유대인들에게는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는데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선언함에 있어서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하였다'(46절). 복음 전도자들은 때에 따라서 사자와 같은 담대함과 비둘기 같은 온순함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대의를 반대하는 자들이 도전을 개시할 때, 그리스도의 대의를 옹호하는 자들이 소심해져서는 안 된다. 복음의 적들의 몰지각한 행동은 그리스도의 동료들을 위협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더욱 담대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신뢰하고 누구를 증거해야 하는지를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에게 은총의 복음을 전한 것이 정당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도 정당했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1)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전파의 혜택이 우선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주어졌음을 인정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라고 말했다. 즉 그들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던 자들이며 그리스도께서도 먼저 그들에게 보내심을 받았다고 인정하셨던 것이다.

2)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그들은 '너희가 스스로 버렸다'고 단정했다. 만약 인간들이 스스로 복음을 버린다면, 하나님께서도 마땅히 그들로부터 복음을 빼앗아버리실 것이다. 본문에서 그들은 유대인들을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들"로 규정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영생을 누릴 자격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서 그것을 누려야 한다고 자부할만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의 의미는 "너희가 영생을 누리지 못함은 명백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너희가 너희 자신에 대해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에, 즉 너희 입으로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했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생이 주어지는데 너희는 그것을 거부하였다. 따라서 너희의 운명은 결코 영생을 얻지못할 것이다" 는 의미이다.

3) 바울과 바나바는 이 사실을 전하는 근거로 삼는다.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46절). 이 말은 '너희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의미이다.

4) 바울과 바나바는 이 일을 하나님의 보증에 의한 것으로 정당화시킨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47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것을 따르는 것이다. 메시야가 유대의 불신을 예상하고 '내게 헛되이 수고하였도다'라고 말하려 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듣는다. 즉 '이스라엘이 모이지 않는다하여도 그는 영광을 받으리라.'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47절)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빛으로 세우심을 받으셨다. 그래서 그는 이해력을 깨우쳐주시며 영혼을 구원하신다. 그는 땅끝까지 이르러 이방의 빛과 구원이 되신다. 모든 나라가 결국 그의 왕국이 우리 나라에도 세워짐으로써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7) 유대인들이 경멸하여 거절한 복음을 이방인들은 기쁘게 받아들였다(48,49절). 이방인들은 그들에게 이러한 행운의 기회가 오게 된 것을 얼마나 기뻐했던가?

1) 그들은 복음의 위로를 받아들였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48절). 복음은 그들에게 복된 소식이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기꺼이 메시야 왕국의 은혜를 환영하였으며, 또한 유대인들이 받은 약속을 나누어 가질 수 있었다. 이방인들은 단지 그들에게 은총이 주어졌다는 소리만 듣고도 기뻐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해야할 때, 그들이 과연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의심함으로써 괴로워한다.

2) 그들은 이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즉 그들은 주의 말씀 곧 복음을 영화롭게 하였다. 그들은 복음을 알면 알수록 더욱더 그것에 대해 감복하였다. 이 복음에는 얼마나 놀라운 빛과 능력과 보배가 따르는가! 이제 복음은 널리 확산되어 유대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영광은 퍼져나갈수록 더욱 빛나며, 그것은 촛불과 같지 않고 태양과도 같아서 멀리가지도 그 강렬한 빛을 발한다. 그리하여 이제 그 복음의 지식은 그들에게까지 이르렀다. 주의 권능에 복종하고 그의 인자하심으로 위로를 받는 자들은 주의 말씀에 대해 최고의 영광을 돌린다.

3) 이방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에 충심으로 순종하였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48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심으로 믿게된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신 자들이며 성령께서 그들을 복음으로 부른 것을 성령께서 효력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에게 이 믿는 은혜를 모두 주셨다. 또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라 함은 자신들의 영원한 상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영생을 확신하려는 목표를 지닌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 안에 이러한 영생을 향한 목적 의식을 심어주신 것도 다름아닌 하나님의 은혜였다.

4) 그들은 복음을 믿게되자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전파함에 있어서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였다.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49절). 이 초심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입은 충만한 은사를 기꺼이 전파하려 하였다. 그리스도를 알게된 자들은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를 알리도록 노력할 것이다. 크고 부유한 도시들에 거주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은 그 복음을 독점하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들과 마찬가지로 구원받아야할 영혼을 간직한 평민들이 거주하는 지방으로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8)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에 교회의 씨앗들을 뿌린 후에 다른 곳에서도 그와 같은 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그들이 그곳에서 자신들이 가르침을 확신시키기 위해 기적을 베풀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바가 없다. 하나님은 흔히 확신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기적을 사용하시지만, 그곳에서는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성령의 직접적인 감화를 통하여 믿음이 생기는 것 자체가 그 일을 겪은 자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기적이었다.

1) 불신앙의 유대인들이 그 지방에서 사도들을 추방하게 된 경위 :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게 하였다(50절). 사단과 그의 대리자들은 복음 전도자들이 성공적으로 일한다고 판단하게 될때 가장 격노한다. 세상의 가장 선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선한 일을 행할 때, 해를 당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첫째, 유대인들이 사도들을 괴롭히기 위해 사용한 수법 : 사도들을 대적하기 위해 그들은 경건한 귀부인들을 선동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가치아래 있던 자들이 본문에 언급된대로 그리스도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도대체 여성 핍박가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여성 고유의 상냥함과 연민도 잊었단 말인가! 더구나 이들이 귀부인이라니! 어떻게 이런 여성들이 자신들의 명예를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삼척동자라도 이들을 경건한 여성으로 결코 보지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종을 살해하려고 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할 수 있었을까? 유대인들은 이 경건한 귀부인들뿐 아니라 그 성읍의 상관과 통치자들 즉 성내의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사도들과 대적시켰다.

둘째, 유대인들은 사도들을 그 지경에서 쫓아낼 때까지 계속해서 핍박하였다. 결국 그들은 사도들을 추방하고 말았다. 사도들이 퇴각한 것은 두려움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들의 폭력 때문이었다. 하나님께는 이러한 핍박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사도들에게 더욱 온정을 쏟게 하셨다. 왜냐하면 핍박받는 자들을 동정하고 그들을 더욱 돕고자 하는 심정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경으로부터 사도들을 추방시킨 것은 그들이 경내에서 행한 일을 묵인하는 것보다 더많은 지지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 사도들이 불신앙의 유대인들을 포기하고 거절한 방법(51절) : 본문은 '두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라고 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도들은 더이상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선언하였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불신에 대한 그들의 증오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그들이 믿기만 하면 동등하게 하나님께 용납되고 선한 사람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그들은 똑같이 혐오의 대상이 된다.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사도들은 그들에게 도전하였고, 그들과 그들의 악행에 대한 자신들의 경멸을 표현하였다.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사도들은 자신들이 그들에게 복음의 은총을 공정하게 전해 주었다는 증거를 남겼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에 제자들에게 발마저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명하신 것이다(마 10:14:, 눅 9:5). '사도들이 그들을 떠나 이고니온으로 간 것'은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들에게 부과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3) 그들이 안다옥을 떠날때 초심자들의 상태(52절) : 제자들은 사도들의 일을 계속 수행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기뻐하였다. 혹자는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의 지경에서 추방당할때 제자들이 비통과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추측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틀린 생각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들의 확신에 찬 기쁨은 그들의 모든 두려움을 삼켜버렸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붙잡고자 하는 확고한 결의로 가득차 용기백배하였다. 우리가 경건의 능력을 통하여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직면하게 되는 곤경에 대해 경건한 신앙고백을 통해서 더욱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된다.

 

# 해설

구브로에서의 전도사역 ( 13 )

사도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 시작됩니다. 본장을 통해서 알게되는 것은 전도 및 선교의 사역을 성령께서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움을 받아 안디옥 교회의 파송으로 선교사의 여행은 시작된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고 택함 받은 그릇으로서의 삶을 바울은 그의 사역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안디옥 교회의 선교사 파송

1) 선교의 전진 기지

복음의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을 거쳐 마침내 안디옥까지 전해졌습니다. 당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라는 매우 관심을 끄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나바와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 그들이었습니다. 성령의 지시는 틀림없이 교회의 여러 선지자 중 한사람을 통해 주어졌을 것입니다. 그 한사람이 금식하며 기도할때에 성령의 분명한 메시지를 받은 것입니다. 즉, 바나바와 사울을 더 먼지역의 사역을 위해 안디옥 교회에서 따로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동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분명한 뜻으로 인정하고, 그 두사람을 파송하기에 앞서 안수함으로써 그 뜻을 순종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안디옥의 온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의 선교사역에 동참했습니다.

a.교회의 선지자(엡4:11)

b.성령의 사역(행16:6)

2) 구브로에 나타난 복음의 능력

그후 바나바와 사울은 오른테스 강 하구에 있는 안디옥 항구 실루기아 피에리아로 내려가 배를 타고 구브로 섬으로 향했습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습니다. 당연히 바나바의 마음을 더욱 끌었음은 분명합니다. 구브로의 살라미에 도착하여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섬 전체를 횡단여행하며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구브로 섬은 그 길이가 약 224km이며 그 폭은 약 96km가 됩니다. 당시 구브로 섬은 인구가 조밀한 편이었습니다. 따라서 선교사 일행은 구브로 섬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선교사 일행이 구브로 섬의 서쪽 끝에 있는 바보에 도착했을때 총독 서기오 바울을 만납니다. 그 총독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은 유대주의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있었고, 엘루마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 박수 바예수의 영향을 받았었습니다. 바예수가 바울의 전도를 방해하자 바울은 그의 악행을 책망하고 바예수는 소경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서기오 바울이 회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보에서 사울이 총독 서기오 바울을 만난 후부터 사울은 계속 바울로 불립니다.

a.거짓 선지자(마7:15)

b.악의 관영(롬1:29)

 

2. 비시디아의 안디옥에서

1) 요한 마가의 이탈

이 선교사들의 안디옥 출발때에는 요한 마가를 수종자로 둔 바나바와 사울로 언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구브로를 떠날때에는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됩니다. 라나바의 위대성은 그가 기꺼이 바울을 지도자로 내세움으로써 드러납니다. 그래서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밤빌리아의 버가로 갑니다. 그러나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요한 마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 경우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즉 그는 자기 삼촌이 부차적인 위치로 밀려난 상태에서 계속 여행을 하고 싶은 심정이 사라졌을지도 모르며, 바울과 바나바가 버가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들어가기로 결정하자 처음 따라 나설때의 예상보다 기간도 길어지고 고생도 예상되므로 포기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무슨 이유로 일행을 떠났든간에, 바울은 그것을 옳지 않게 여겼습니다.

a.수종자(딤후1:18).

b.사역자의 임무(고전1:17)

2) 안식일의 첫 설교

비시디아 안디옥은 로마의 통상 요충지로 해발 900m나 되는 곳에 있었습니다. 이 도시는 행정상으로는 로마의 속주 갈라디아에 속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갈라디아의 여러 도시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관행대로 도착후 첫 안식일 아침에 그곳의 회당을 방문하였습니다. 개회 기도와 성경 낭독이 있은후, 회당장이 이 두방문객에게 혹시 예배자들에게 권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청했습니다. 바울은 그 부탁에 응했습니다. 바울은 이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행하신 권능의 역사를 토대로, 최근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권능의 역자들을 선언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의 구원이 이날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 참석한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게 값없이 제공되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바울은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으라고 말합니다.

a.하나님의 은혜(고전3:10)

 

3. 안식일의 두번째 설교

1) 유대인들의 시기와 논쟁

바울의 설교는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과 특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 중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었습니다. 이때 참석했던 이방인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이방인들의 큰 무리가 회당에 나왔습니다. 회당의 정회원 중 많은 사람들은 바울을 시기했고 바울이 설교를 시작하려고 하자 공박하고 비방하며 나섰고, 자연히 집회는 무질서하게 되었습니다.

a.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시31:19)

b.비방함(벧후2:12)

2) 제자들의 기쁨과 성령충만

복음전파의 놀랄만한 성공은 유대인들의 시기를 불러일으켜 유대인들은 바울의 말을 변박하고 비방했습니다. 심지어는 핍박을 계속하여 성밖으로 쫓아내기까지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전하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선교활동의 새로운 전환점을 선포합니다. 이방선교를 위한 새로운 출발이 하나님의 명령이요, 예언의 성취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쫓겨난 사도들은 성령과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사역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a.이방의 빛(눅2:32)

 

결론

사도행전에서 이방인들이 복음을 열렬히 받으려고 하는 반면 유대인 공동체의 대다수는 복음을 배척하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인해 바울의 사역은 이방인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그는 사49:6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회복의 메시지를 이스라엘에게 전하고 또한 이방인에게 빛이 되라는 사명을 말합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종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복음사역에 참여케 하신 이유를 알게 합니다.

 

# 핵심

13:1-12

본장과 14장은 바울의 1차 전도여행 기사이다.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은 바울 일행의 첫 사역지는 구브로였다.

안수(13:3)

머리에 손을 얹고서 그 사람에게 영육간의 복이 임하기를 비는 행위이다. 직분자를 세울때 직임을 수여하는 상징적 표시로서 안수하기도 한다(신 34:9). 구약 시대에는 인간의 죄를 전가하는 의미로 희생제물에게 안수하기도 했다(레 16:21).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실 때와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 안수하셨다(막 6:5). 그리고 바울과 사도들도 안수 기도하여 병을 고치거나 성령이 임하시도록 했다(8:17; 28:8).

 

# 묵상

안디옥 교회의 파송 ( 13:2, 3 )

성령께서는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명하셨습니다. 즉 성령께서는 안디옥 교회로 하여금 선교사를 파송하도록 명하셨는데, 이는 주를 섬겨 금식할때 일어난 일입니다. 이로써 안디옥 교회는 역사상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거짓 선지자 바예수 ( 13:6 )

바나바와 사울은 바보에서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바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서기오 바울이 구브로 총독으로 있을때 수행원이었는데, 총독이 복음듣는 것을 방해하다가 바울의 저주를 받아 소경이 되었습니다.

총독 서기오 바울 ( 13:7 )

바나바와 사울을 부른 서기오 바울은 지혜있는 사람이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한 바울이 한 일을 보고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는 적절한 기회를 주셔서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왕정제도 ( 13:20-22 )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때까지는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인도하였고, 그후 사무엘때까지 사사가 다스렸으며, 사무엘 이후에는 백성이 왕을 요구하여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렇게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를 거부한 행위입니다. 결국 사울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구하여 선택한 왕이었고,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선택된 왕입니다. 또한 사울은 사십년 후 폐위되었으나, 다윗은 그의 씨에서 구주가 탄생하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의 회개의 세례 ( 13:24 )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세례요한은 존경하면서도 그가 증거하는 예수님은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를 명확히 밝힘으로써 유대인들의 잘못과 편견을 깨우쳐 주고자 한 것입니다.

메시야에 관한 구약예언의 성취 ( 13:27-30 )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구약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즉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된 구약의 말씀이 다 응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십니다.

대속주이신 예수님 ( 13:38, 39 )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지못하나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이 복음의 진수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주제이기도 한데,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함으로써 우리의 영원한 대속주가 되신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합니다. 율법은 다만 죄를 깨닫게 하는 몽학선생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한 사람만이 영원한 복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이방선교의 근거 ( 13:46, 47 )

유대인들의 비방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유대인에게 먼저 전하지 못함은 그들이 복음을 거부했기 때문이며, 그래서 자신들이 이방인에게로 향하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신앙적 교만에 빠져있음으로써 자신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스스로 내다버린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즉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선교의 근거로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는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이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교만한 유대인들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파되게 한 주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인류의 주인이요, 구원자이십니다.

유대인들에게서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 ( 13:51 )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 본문은 유대인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다는 상징적인 행위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 땅을 밟은후 발을 깨끗이 하고 돌아오는 관습이 있었는데, 바울과 바나바도 그들과 더이상 관계가 없다는 뜻으로 이러한 행위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곧 심판날에 그들이 자신의 죄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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