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사람들의 오만불손한 계획 11:1-4
10장의 마지막부분은 다음의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홍수후에' 노아의 자손들에 '의해서' 혹은 자손들 '사이에' '땅의 열국 배경이 나뉘었다.' 즉 그들이 여러부족으로 나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러지파 혹은 집단이 어떤경로를 거쳐 나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노아가 지시를 했거나 아니면 그아들들끼리 서로 합의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자손들은 먼곳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싫어했던것 같다. 그들은 함께모여 북적댈수록 더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나 노아보다도 더현명하다고 생각하고 함께 모여있을 궁리를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몇가지 점을 보게된다.
1. 함께 모여살려는 그들의 계획을 유리하게 했던 이점들(1,2)
(1) 온땅의 구음이 하나이요(1절). 곧 그들의 언어가 하나이었다. 사실 그들 모두가 서로간의 말을 알아들을수 있었을동안에는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도울수 있었으며 서로 헤어지기를 싫어하였을 것이다.
(2) 그들은 '시날 평지'가 그들의 거처로 정하기에 매우 유리하고 널찍한 장소인 것을 발견하였다(2절). 그평지는 그들 모두를 '수용할'수 있을만큼 널찍하고, 당시 그들의 숫자를 모두 먹여 살릴수 있을만큼 '비옥한' 땅이었다.
2. 그들이 서로 결속하여 한집단으로 거처하기 위하여 취한 방법(3,4)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평화롭게 떠남으로써 자기들의 경계를 넓히고자 하기보다는 자기들의 요새를 구축할 생각을 품었다. 그들이 만장일치로 가결한 내용은 이것이었다. 자, 성과 대를 쌓아(4절).
(1) 그들은 이일을 착수하기위해 서로를 격려하고 권고하였다. 그들은 '자 벽돌을 만들자'(3절)고 말하였고 또 '성을 쌓자'(4절)고 말하였다. 그들은 서로를 격려함으로써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결의를 굳게 하였다.
(2) 그들이 성과 대를 쌓는데 사용한 재료 : 그땅은 평지였기때문에 돌로 회반죽도 나지않았다. 그럴지라도 이 사실때문에 그들이 낙망하여 그일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돌대신에 벽돌을, 회반죽대신에 진흙이나 역청을 사용하였다. 결심이 굳은 사람들은 어떤수단을 써서든지 자신의 목적을 이룰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선한 일에 그와같은 열심을 가졌다면 우리가 흔히 그러듯이 그일을 하는데 있어서 여러모로 형편이 마땅치 않는다 핑계아래 우리의 일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3) 그들은 세가지 목적을 위해 이 성과 대를 쌓았던것 같다.
1) 이일은 하나님을 모독하기위해 계획되었던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이 대를 쌓되 '그꼭대기가 하늘에 닿게'까지 쌓으려고 하였는데 명백히 그것은 하나님께 도전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와 경쟁하려는 태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2) 그들은 그일로 인해서 자신들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했고 세상에 자기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들은 그들의 자만심과 야망과 어리석음의 기념물을 남기고 싶어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역사의 기록에서도 이 바벨탑 건설자들중에 한사람의 이름조차 발견하지 못한다.
3) 그들은 서로 흩어지는 것을 면하기위해 이일을 하였다. 아마도 야심적인 니므롯이 이모든 일에 관여했을듯 싶다. 그는 세계적인 군주정치를 꾀했다. 그래서 그일을 이루기위해 그는 공동의 안전을 위해 연합한다는 구실아래 그들을 한집단으로 묶어 그의 감시아래 두고, 그렇게하여 그들을 지배할수 있는 권력을 장악하려고 궁리하였다. 우주적인 군주가 되는것, 곧 만민의 주요 왕중의 왕이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대권이다. 그러므로 그일을 꾀하는 자는 자기의 영광을 결코 다른이에게 주시지않는 하나님의 보좌를 빼앗으려고 도전하는 자인 것이다.
Ⅱ. 그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11:5-9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바벨탑을 쌓는 자들의 계획을 파기시키시는 것을 보게된다.
1.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심리(5,6)
하나님은 죄와 죄인들에 대해 시행하시는 그의 모든 소송절차에 있어서 두말할나위 없이 공정하시다. 그들은 '아담'의 자손들이었다. 히브리어로는 그렇게 되어있다. 자손이되 불순종하여 죄지은 아담의 자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본성적으로 불순종의 자녀들인 것이다. 경건한 에벨은 이 불경스러운 무리들가운데에 서지않았다. 이는 그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로 불리우고 있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2. 이문제에 관한 영원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결의(7-9)
(1) 하나님은 그일을 중단시키기전에 그들이 그일을 그만두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그들을 참고 기다리셨다. 이는 그들로하여금 회개할 여지를 얻게하려 하셨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명령과 훈계로써 그들을 이일에서 돌이키게 하시려고 애쓰셨으나 허사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고 법의 저지를 받지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손을 묶기위해서 부득이 또다른 방침을 세우시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들의 범죄에 해당하는 형벌을 내리시지 않고 오히려 완화하셨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보게된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를 우리의 죄대로 갚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 이제 천둥과 번개를 가지고 내려가서 반역하는 무리들을 단숨에 살라버리자"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렇게 하시지않고 단지 "내려가서 그들을 흩어버리자"고만 말씀하신다. 그들은 죽어야 마땅했으나 다만 추방되었을 뿐이었다. 그이유는 하나님의 인내가 그를 격노케하는 세상에 대하여 매우 크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세가지 일이 벌어졌다.
1) 그들의 언어가 혼잡하여졌다. 말로써 다투거나 서로의 말에 대한 오해로 야기되는 논쟁들은 이러한 언어의 혼합때문일 경우가 많다.
2) 그들의 건축하는 일이 중단되었다. 그들이 성쌓기를 그쳤더라(8절). 이것은 그들의 언어가 혼합하여짐으로 생긴 결과였다. 왜냐하면 언어의 혼잡은 그들이 서로를 도울수 없도록 만들었을뿐만 아니라 그들로하여금 여호와의 손이 그들을 치신다는 사실을 알게함으로써 그들의 사기를 꺾어 계속해서 일을 해나갈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대적하여 싸우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은 그만두는 것이 지혜이다.
3) 성과 대를 쌓던 자들이 온지면에 흩어졌다(8,9절). 그들은 각각 종족과 방언을 따라 각자에게 배당된 지역과 장소로 떼를 지어 떠나갔다(10:5,20,31). 그들은 그곳에 붙여진 이름을 통하여 그들의 영원한 수치의 기억을 뒤에다 남겨놓았다. 그곳은 '바벨' 곧 '혼잡'이라고 불려졌다. 위대한 명성을 가지려고 꾀하는 자들은 대개가 '악한' 이름으로 끝나고 만다. 결국 사람의 자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또다시 그들이 하나로 모인적이 없었으며 또한 마지막날, 곧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모든 민족을 그앞에서 모으시는 날까지는 결코 한데 모이지않을 것이다(마 25:31,32).
Ⅲ. 셈의 계보 11:10-26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계보를 보게되는데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계보가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그계보는 하나님의 벗인 아브람으로 끝나며 더 나아간다해도 그것은 언약의 씨 곧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리스도로서 종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리스도의 계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다(마 1:1). 여기서 다음 몇가지 점을 생각해 보자.
(1) 이 계보의 사람들에 관해서는 그들의 이름과 연수외에는 아무것도 더 기록되지 않았다. 성령께서는 속히 그들을 거쳐 아브람의 이야기로 옮겨가시고자 하셨던것 같다. 우리는 이세상에서 살다가 우리 앞서간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지 못하는가! 심지어 우리가 살고있는 동일한 장소에서 살던 사람들에 관해서 조차도 우리는 얼마나 모르는가!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재 멀리 떨어져서 살고있는 우리의 동시대인들에 대해서도 잘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시대의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지나간 것을 다시 찾으신다'(전 3:15).
(2) 그들의 연수가 점차적으로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셈은 육백세까지 살았다. 그러나 그나이도 홍수전에 살던 족장들의 연수에 비하면 짧았다. 그다음 세사람은 그연수가 오백세에 미치지 못하였고, 그다음 세사람은 삼백세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들이후의 사람들중 데라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연수가 이백세에 달한 사람은 없었다. 그이후로 사람들은 보다 적은 연수를 살았다. 그래서 모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는 연수를 칠십이나 팔십으로 헤아렸다.
(3) 그로인해 히브리인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에벨은 홍수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중에는 가장 오래 산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의 장수는 그의 뛰어난 신앙과 하나님의 길을 엄격히 고수함에 대한 보상이었을 것이다.
Ⅳ. 아브람에 관하여 11:27-32
여기서부터는 아브람의 기사가 시작되는데 이후로 그의 이름은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유명해진다.
1.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27,28)
이곳은 아브람이 태어난 땅이며 우상숭배가 가득한 지방이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는 에벨의 자손들조차 타락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은혜로 말미암아 약속의 땅을 물려받을 자들은 마땅히 자기들이 어디에서 태어났고, 본래 자기들의 부패하고 죄스런 상태가 어떤 것이었으며, 자기들이 떨어져나온 원래의 바위가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2. 그의 친족들(27-30)
이들은 아브람을 인하여, 그리고 다음이야기에 그들이 관계되어 있기때문에 언급되었다.
(1) 그의 아버지는 '데라'였다. 그에 대해서 성경은 그가 강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말한다(수 24:2). 우상숭배는 그처럼 일찍부터 세상에 뿌리박고 있었다. 그러므로 선한 윤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그같은 시대의 조류를 거슬러 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2) 여기에는 그의 형제들에 관한 기사가 있다.
1) 나홀 : 이삭이나 야곱 모두가 그의 가정에서 자기 아내들을 취했다.
2) 하란 : 그는 롯의 아비로서 '아비 데라보다 먼저 죽었다'(28절). 자녀들이라고해서 자기 부모들보다 더오래 살것이라는 보장은 있을수 없다. 왜냐하면 죽음이 반드시 연상을 따져서 나이든 자를 먼저 데려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의 그늘에는 아무구별이 없는'(욥 10:22) 법이다. 그가 그아비 데라보다 먼저 죽었다는 말은 그의 가족이 우상숭배가 가득한 나라에서 빠져나오는 복스런 이동이 있기전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그의 아내는 '사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하란의 딸 이스가와 동일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브람 자신은 그녀가 그의 이복누이라고 했다(20:12). 그녀는 아브람보다 열살 아래였다.
3. 갈대아 우르에서의 출발(31,32)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의 아비 데라, 조카 롯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는 다음장(12:1)에서 더잘 알게될 것이다. 이장은 그들이 우르와 가나안의 중간쯤인 하란 혹은 카란(charran)이라는 곳에 머무르는 것으로 끝난다. 그들은 거기에서 데라의 머리가 뉘어질때까지 머물렀다. 그이유는 아마도 그노인이 노쇠에 따른 여러가지 질병으로인해 여행을 계속해 나아갈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란에까지는 이르나 가나안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있지는 않으나 결코 거기에 이르지는 못하고 만다.
# 핵심
11:1-9
성경학자들은 시날 땅의 바벨에 왕국을 세운 니므롯의 후손들에 의해서(10:9,10) 바벨탑 건축이 시도되었다고 추정한다. 바벨탑 사건은 대략 세가지 점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된 사건이었다. 첫째, 이름을 내고라는 말씀(4절)은 인간들이 기념비적인 업적을 달성하여 스스로 영광을 얻으려 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 복종함으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해야하는 삶의 본연의 목적과는 정반대되는 시도였다. 둘째, 흩어짐을 면하자는 말씀(4절)은 그들이 죄악의 결과로인한 인간상호간의 관계단절(3:7)을 자구적인 노력으로 극복하고자 했음을 시사한다. 이같은 시도는 구원을 하나님께 대한 복종과 믿음에서 그리고 그분과의 영적인 교제에서 찾으려는 것과 정반대였다. 셋째, 학자들은 이탑이 우상숭배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었다고 추정한다. 그것은 단순한 탑이 아니라 마르둑(Marduk)이라는 신을 섬기는 신전의 일종인 지구라트(ziggurat)였다고 한다. 이렇듯 바벨탑은 하나님께 대해 인간이 도모한 최초의 조직적인 반항이었다.
# 묵상
바벨탑 사건 ( 11:1-9 )
사람들은 시날 평지에 이르러 하늘에까지 닿는 대를 쌓아 흩어짐을 면하기로 하였습니다. 흩어짐은 하나님의 축복에 따른 자연스런 귀결입니다(9:7). 그러나 인생들은 흩어짐을 면하기위해 높은 대를 쌓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보다 자신의 명예를 얻기위해 급급한 자는 죄를 범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사건이 주는 교훈은 인간의 욕심은 반드시 하나님과 대적하게 되며, 하나님을 예배하러 모인 무리는 반드시 말씀으로 무장하여 흩어져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대규모 공사와 인본주의에 입각한 통일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는 무리를 흩으신 방법 ( 11:7, 8 )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의 협력은 비록 타락한 상태일지라도 놀라운 힘을 발휘하여 아무도 그것을 막을수 없을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인 언어를 혼잡케함으로써 서로 하는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여 사람들을 흩으셨습니다. 이사건은 신약시대에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도들의 설교를 알아들은 사건(행2:1)과 큰대조를 이룹니다.
홍수후의 변화 ( 11:10-26 )
홍수후에 인간의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었음을 볼수 있습니다. 인간의 범죄로인해 빚어진 하나님의 심판은 자연계에까지도 영향을 미쳐 인간의 수명이 크게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죄의 결과는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사래 ( 11:29, 30 )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이었는데 그이름의 뜻은 ‘나의 공주’입니다. 그녀는 아브람의 이복누이(20:12)로서 아브람의 아내가 되었지만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그녀는 이삭을 낳고 ‘열국의 어미’(사라)가 되었습니다.
# 해설
바벨탑 사건 ( 11 )
타락으로인해 이미 죄성이 유전되는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려는 의지를 가졌습니다. 특히 홍수후에 인간이 다시 번성하게 되었을때 인간은 하나님앞에서 또다시 그교만성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때까지 온땅의 많은 종족들이 갈라져서 살았으나 아직은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려는 야심과 흩어짐을 면하려는 계획으로 바벨탑을 건설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하여 하나님께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본장에서 아브라함 이 등장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1. 바벨탑 사건
1) 악한 계획
시날 평지에 거하던 노아의 후손들은 그들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것과 흩어짐을 면하기 위한 목적에서 바벨탑을 쌓으려는 악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하는 것은 헛된 명예욕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마땅히 창조주이신 하나님만 의뢰하고, 그분만을 높여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는데 이는 땅에 널리퍼져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직접적인 위반입니다.
a.악인의 자랑과 즐거움(욥20:5)
b.인간의 계획속에 교만(창11:4)
c.악한 정열(마23:15)
2) 환경을 악용함
인간들이 성과 대를 쌓게된 원인적인 배경은 그들의 언어가 하나였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언어는 본래 하나로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언어가 하나라는 것은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모으는 주요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로 부여된 언어를 자신들의 교만과 명예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악용하는 죄를 범했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습니다.
a.흩어지지 말자(창11:4)
b.여호와께서 원치않는 일을 행함(단5:23)
3) 바벨탑 건축의 실패
하나님없이 이루어지는 경영은 인간의 욕심과 죄의 본성에서 출발하기때문에 경영의 과정에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뒤따릅니다. 인간의 악한 계획에 따라 건축되는 바벨탑을 하나님은 이미 아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함으로써 실패하게 하셨습니다.
a.인간의 계획을 무산시킴(창11:7)
b.번성함은 하나님의 섭리(창17:2)
c.니므롯이 시날에 세워(창10:10)
2. 셈족의 전기
1) 셈의 후예
본문에 언급되어 있는 족보를 보면 하나의 큰흐름이 있는 것을 알게됩니다. 본장에 언급된 족보는 성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근원을 밝히기위해 쓰여졌다고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긴 족보이야기를 언급한 이유는 새롭게 시작하는 한세대의 주인공이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임을 밝혀주기 위함입니다.
a.아비의 수치를 덮어줌(창9:23)
b.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신7:6)
c.그리스도의 조상을 냄(눅3:36)
2) 수명이 점차로 줄어듦
본장에서 족보에 언급된 이름의 수명이 점차적으로 감수됨을 볼수 있습니다. 셈은 육백년을 살았고, 아르박삿은 사백육십오년, 셀라와 에벨은 사백육십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벨렉이후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벨렉과 르우는 이백삼십구년, 스룩은 이백삼십년, 나홀은 일백사십팔년을 살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인간의 수명이 칠십세 혹은 팔십세를 헤아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수명이 짧아지게된 이유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범죄때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따라서 범죄는 인간의 생명을 줄어들게 하는 행위임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a.에벨(창11:14-15)
b.스룩(창11:21)
c.인간수명은 칠십이 고작(시90:10)
3. 데라의 자손
1) 데라의 아들
데라는 아브라함과 나홀 그리고 하란 등 세아들을 낳았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는 우상을 섬기는 자였다는 것외에는 별로 주목할 것이 없습니다(참조, 수24:2). 본장에 기록된 데라 아들들의 이름의 순서는 노아의 아들들과 같이 나이순서에 따라 된것이 아닙니다. 즉 세아들 중에서 아브라함이 제일먼저 언급된 것은 그가 장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차지하는 위치 때문입니다.
a.셈의 후손(창11:10)
b.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의 아비(창11:27)
2) 갈대아 우르
데라가 거주했던 지역은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바그다드 남동쪽의 비옥한 땅으로 아브라함 당시에는 고대문화의 중심지로 부와 이방종교들의 집결지였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기전에 데라는 하나님을 알지못하고 이방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a.데라의 고향(창11:31)
b.우상숭배(수24:2)
c.아브람이 소명받은 곳(행7:2-3)
3) 가나안을 향하는 데라의 가족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가족들을 이끌고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을 가려고했으나 도중에 하란에 거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데라의 가족들이 머문 하란은 북부 메소보다미아의 중요한 상업도시였으며 갈대아 우르와 마찬가지로 셈족사이에 성행한 달신을 섬기던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하란에서 이백오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a.광활한 땅(수1:4)
b.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창12:1)
c.약속의 땅을 향하여(히11:9)
결론
홍수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후손들이 동방으로 옮겨가서 시날 평지에 거주하면서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악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간섭으로 바벨탑의 건조는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의지와 그것의 무상함에 대한 표상입니다. 인간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인류를 향하여 당신이 계획하시고 건설하실 한나라와 민족을 선택하시기위해 아브라함을 준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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