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I. 사라가 이삭을 낳음 21:1-8
구약에서 이삭처럼 그렇게 큰 기대가운데에서 태어난 인물은 거의없다. 그가 그렇게 큰기대를 받게된 이유는 그가 얻게될 탁월한 개인적인 명성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약속해 오셨고 경건한 자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후손, 곧 그리스도를 그가 예표하게 된다는 바로 그사실 때문이었다.
1. 이삭의 잉태와 출산에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1,2).
(1) 이삭은 약속에 따라 태어났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태어났다(2절).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때를 어김없이 지키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비록 그의 약속하신 자비가 우리가 정한때에는 오지않을지라도 하나님이 정하신때에는 반드시 올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때가 가장 적합한 때이다.
(2) 이삭은 일반적인 섭리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약속의 능력에 의해서 태어났다. 참된 신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에 의해서 인간본연의 능력으로서는 할수 없는 일을 할수가 있다는 사실을 유의하라. 왜냐하면 그들은 그약속으로 말미암아 신의 성품에 참예하기 때문이다(벧후 1:4).
2. 이삭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종(3-5)
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그의 아들의 이름을 '이삭', 곧 '웃음'이라고 지었다(3절). 그렇게 이름을 지은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아브라함이 이삭에 관한 약속을 받을때 기뻐서 웃었기 때문이다(17:17).
둘째, 사라가 약속을 받을때 불신과 불신앙으로 웃었기 때문이다.
셋째, 후에 이삭 자신이 이스마엘에게 비웃음을 받았기 때문이다(9절). 아마도 이스마엘은 그의 이름때문에 웃었을 것이다.
넷째, 이삭이 상속받은 약속이 모든 시대에 모든 성도들에게 기쁨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3. 이 자비가 사라에게 끼친 감명(6,7)
(1) 그자비는 사라로하여금 기쁨에 넘치게 해주었다(6절). 하나님이 나로 웃게하시니, 곧 하나님이 내게 기뻐할 이유와 기뻐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의미이다. 우리 주의 모친도 이와같이 마음에 기뻐하였다(눅 1:46,47). 우리가 무엇때문에 기뻐하든지간에 그기쁨이 '어리석은 자의 웃음'이 아닌한에는 그기쁨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 어떠한 자비의 위로든 그위로는 우리의 친구들도 그안에서 우리와 함께 기뻐하게 한다. 듣는 자가 다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왜냐하면 기쁨은 쉽게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58절을 보라.
(2) 그자비는 그녀를 놀라움으로 가득채웠다(7절). "그일은 도무지 있을수 없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말했다면 우리는 믿지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언약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은 그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기대를 모두 뛰어넘는 것임을 명심하자. 누가 감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도록 그의 아들을 보내시며,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위하여 그의 성령을 보내시며, 우리를 시중들게 하시기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보내시리라고 말할수 있었겠는가? 그처럼 큰죄가 용서받으리라고 누가 감히 말할수 있었겠는가?
4. 이삭의 유아시절에 관한 짧은 설명(8)
아이가 자랐다. 이제 그는 젖을 먹지않고 단단한 음식을 먹을수 있을만큼 자라서 젖을 떼었다. 히브리서 5:13,14절을 보라.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떼던 날에 잔치를 베풀었다. 그이유는, 아이들을 자라게 하고 그들이 유아시절의 여러가지 위험을 무사히 지나도록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섭리로써 배려하시고 사랑하신다는 뚜렷한 예증이 되기 때문이다. 시편 22:9,10; 호세아11:1절을 보라.

Ⅱ. 이스마엘을 내보낼 것이 논의됨 21:9-13
여기에서는 이스마엘을 내어보내는 일이 고려되고 결정된다.
(1) 문제는 이스마엘 자신이 그의 어린동생 이삭에게 행한 무례한 짓으로인해 야기되었다. 사라가 친히 그장면을 목격하였다. 이스마엘은 여기서 '애굽 여인의 소생'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애굽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가한 400년동안의 박해가 여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15:13). 이때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열네살이 많았다. 도무지 상대가 될수 없는 어린아이에게 그처럼 무례한 짓을 행했다는 것은 이스마엘의 비열한 성품을 잘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2) 사라가 이스마엘을 내어쫓자고 제안하였다. 이 여종과 그아들을 내어쫓으라(10절). 이말은 다소 화가난 가운데 말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말이 마치 예언의 영에 의해 말해진 것처럼 인용되고 있다(갈 4:30). 그러므로 그말은 또한 보이는 교회안에 이름을 두고있는 모든 위선자들과 세속적인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판결이기도 한것이다.
(3) 아브라함은 그제안을 싫어하였다. 아브라함에게 그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11절).
1) 이스마엘이 사라로하여금 그같은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는 사실이 그를 근심케 만들었다.
2) 사라가 그와같은 처벌을 고집했다는 사실이 그를 근심케 만들었다. "그애를 꾸짖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애를 내어쫓아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4) 하나님이 그일을 결정하셨다(12.13절). 아브라함의 언약의 후손은 아주 처음부터 언약밖에 있는 사람들과는 뒤섞이지 않고 구별되는 특별한 백성이어야 했다. 이스마엘이 내어쫓긴다고해서 그가 파멸하는 것은 아니었다(13절). 즉 "그도 네 씨니 한민족을 이룰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언약의 외적인 분배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라고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자비에서도 축출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비록 그가 교회에서 쫓겨났을지라도 '세상에서까지 쫓겨나지는' 않았다. 내가 그로 한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여기서 다음 두가지 사실을 명심하자.
첫째, 민족들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시고 형성하시며 조정하신다.
둘째,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에 대해서는 외인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의 축복은 충분히 받는다.

Ⅲ. 하갈과 이스마엘이 내어쫓김 21:14-21
(1) 여종과 여종의 아들은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쫓겨났다(14절). 이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종은 신속했다. 아침에 일찍이. 그것은 또한 유순한 복종이었다. 그자신의 마음은 그렇게 하고싶지 않았다할지라도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자 곧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명령받은대로 묵묵히 실행하였다.
(2)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정착해 살도록 가르쳐준 곳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광야에서 방황하였다.
1) 그들은 그곳에서 극심한 곤경에 빠졌다. 그들의 양식은 다떨어졌고 이스마엘은 병에 걸렸다. 하갈은 몹시 슬퍼하며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녀는 구원할방도를 단념하고 '그자식의 죽음'만을 기다렸다(15,16절).
2) 이 곤경가운데서 하나님이 '그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17절). 하나님은 하갈을 위로하시기위해 천사를 보내셨다. 그녀가 광야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16:13).
① 천사는 '하나님이 저기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다'고 말하여 그녀를 안심시켰다. 비록 이스마엘이 광야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그의 소리를 들으신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간에 거기에는 하늘로 향해 뚫려있는 길이 있는 법이다.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18절).
② 천사는 그녀가 그아이를 돕기를 분발해야 하는 이유로서 그아이에 관한 약속, 즉 그로 '큰민족'을 이루리라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③ 천사는 그녀에게 당장 필요로 하고있는 물질에 눈을 돌리게 했다. 즉 그때 '그녀는 샘물을 보았다.' 위로를 받을 충분한 이유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매일 슬픔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주의하라. 사람들곁에는 은혜 언약안에서 주어진 샘물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을 열어 그들의 상처를 보게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의 눈을 열어 그들의 치료제를 보게하시기까지 그들은 그사실을 알지 못한다(요 16:6,7).
3) 사도바울은 하갈과 이스마엘에 관한 일들을 비유(갈 4:24)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일들은 비유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비유는 다음의 사실들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줄것이다.
첫째, 유대인들처럼 그리스도안에서 세워진 약속에 의해서 의를 추구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줄것이다.
둘째,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서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줄것이다. 언약의 위로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버리는 자들은 만족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지만 결국은 만족을 얻지못한채 주저앉아 버리고 만다.
(3) 마침내 이스마엘은 바란광야에 정착하였다(20,21절). 그곳은 거친 곳으로서 거친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그는 그와같이 거친 사람이었다(16:12). 여기서 다음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계신다는 몇가지 증표가 있었다. 하나님이 그아이와 함께계시매.
둘째, 그는 활쏘는 자가 되었다.
셋째, 그는 자기 어머니의 친척들중에서 한사람과 결혼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애굽 여인중에서 그의 아내를 택하였다. 비록 그가 활을 잘쏘는 사람이었다할지라도 그는 결혼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그의 어머니의 충고와 동의없이 일을 처리한다면 합당한 배우자를 얻을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Ⅳ.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의 동맹 21:22-32
우리는 여기서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사이의 맹약에 관한 기사를 본다. 비록 마음대로 땅을 빌어쓰기는 했으나 아브라함이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에게 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우정은 귀하게 여겨졌고 그들의 호의를 샀다.
(1) 아비멜렉과 그의 국무총리이며 군대장관인 비골이 동맹을 제안하였다.
1) 그동맹을 맺게된 원인은 아브라함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이었다(22절).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우리는 이사실을 중요시하지 않을수 없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있는 자들과 우호관계를 맺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가려 하노라'(슥 8:23).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을 갖고있는 자들과 교제를 가진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유익한 일이 될것이다(요일 1:3).
2) 대체로 그동맹의 취지는 두부족간에 확고하고 변함없는 우호관계가 지속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아비멜렉은 그의 아들과 그의 후손 그리고 그의 땅이 그맹약의 혜택을 받게하고자 하였다.
(2) 아브라함은 우물에 관한 세부조항을 첨가하며 그맹약에 동의하였다. 그맹약에 관한 아브라함의 이러한 처리에서 다음 몇가지 점들을 살펴보자.
1)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이 신용과 양심을 존중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즉시 그와 맹약을 맺었다.
2) 아브라함은 자신이 아비멜렉의 종들과 다투었던 우물에 관한 문제를 아비멜렉에게 부드럽게 말했다(25절). 정직한 사람에게서 기대할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자마자 즉시 시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3)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매우 훌륭한 선물을 주었다(27절). 서로 호의를 베푸는 것은 사랑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할때 나의 것은 곧 나의 친구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4) 아브라함은 맹세로써 그언약을 조인하였고 그곳에 '브엘세바' 곧 '맹세의 우물'이라는(31절)새이름을 붙임으로써 그언약을 증거하는 기록으로 삼았다.

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 21:33,34
그는 여러날, 곧 '히브리인' 혹은 '나그네' 아브라함으로서의 그의 특성을 유지할수 있을정도의 기간동안 머물렀다. 그는 거기에서도 그의 신앙을 변함없이 실천하였을뿐만 아니라 밝히 고백하기도 하였다.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33절). 필시 그는 그가 심어놓은 작은 숲을 그의 예배당 혹은 기도처로 삼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작은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여호와를 부를때 우리는 그를 '영생하시는 하나님'으로 보아야 한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세계가 있기전에도 계셨고 시간과 날들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때에도 계실 것이다(참조, 사 40:28).

# 핵심
21:1-7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심으로써 자신의 약속을 충실하게 지키셨고, 아브라함은 그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짓고 할례를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명하신바에 순종하였다.
엘로힘과 여호와(21:17)
본절에서 하갈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와 앞서 하갈이 만났던 “여호와의 사자”(16:7)를 비교해 보면, 하나님을 일컫는 히브리원어가 서로 다르다. 즉, 전자에는 ‘엘로힘’으로, 후자에는 ‘여호와’(야훼)로 쓰였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구속의 언약과 관련된 것이고, 엘로힘은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권위와 관련된 이름이다.

# 묵상
이삭과 웃음 ( 21:1-7 )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입니다(17:19).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웃음(17:17)과 사라의 웃음(18:12)을 연상시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 ( 21:8-13 )
이들의 갈등의 근본원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못한데 있습니다. 죄는 인간에게 깊은 근심을 안겨줍니다(11절).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약속의 아들을 통해서 이어집니다(12절).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잘못에까지 은총의 길을 마련하십니다(13절).
이스마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 21:13-20 )
하나님은 약속과 무관한 자라도 한민족을 이루도록 복을 주셨습니다(13절). 이스마엘의 부르짖음을 듣고(17절), 눈을 밝혀 샘물을 보게하시며(18절), 그와 함께하셨습니다(20절). 이처럼 우리는 모두 진노의 자녀였지만 하나님은 상관없는 우리를 받아들여 영혼의 샘물이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은 혈통이나 종족에 제한되어 있지않고 온인류에게 미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됩니다.
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의 동맹 ( 21:22-31 )
동맹은 그들의 생존과 관련되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들이 아브라함과 동맹을 맺으려고한 이유는 ①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기 때문이요, ②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셔서 그의 세력이 확장되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르는 자를 지켜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동맹을 맺은 것을 기념하여 그곳 우물을 브엘세바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이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으로, 이들이 맺은 언약이 계속 지켜지기를 바랐기때문에 지은 이름입니다.
에셀나무 ( 21:33, 34 )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에셀나무는 평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비멜렉과의 평화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심은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언약을 영원히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다져 나갔습니다.

# 해설
이삭과 이스마엘 ( 21 )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약속하신 시기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하신 자녀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을 받고 선택되어 25년만에 이삭을 받았습니다. 이삭은 태어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의 후사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므로 결국 이스마엘을 내쫓게 됩니다. 그리고 그랄왕 아비멜렉과의 평화조약이 언급됩니다.
1. 이삭의 탄생
1) 사라의 잉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신실하여 어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신대로 90세의 사라에게 오셔서 아들을 수태케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약속은 그분의 능력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인간의 나약성과 절망적인 상태를 하나님께서는 소망과 용기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또한 불가능한 상태를 가능한 축복으로 바꾸셨습니다.
a.변치아니함(히6:17)
b.아들을 얻음(창21:2)
c.하나님만이 잉태케 하심(시113:9)
2) 이삭의 출생
아이를 가진 사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기한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짓고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첫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하여금 큰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복을 주어 복의 근원이 되게하리라 하셨습니다.
a.백세에 얻은 아들(창21:5)
b.리브가의 남편(창26:8)
c.이스라엘 자손들의 조상이 됨(출32:13)
3) 크게 기뻐하는 아브라함 부부
이삭의 출생으로 아브라함 부부는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나이많은 사라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들을 낳은 사실에 대해 듣는 자들이 모두 기뻐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삭이 자라 젖을 뗄때 아브라함은 종교의식과 더불어 대연을 베풀어 그들 부부의 기쁨을 표출하였습니다.
a.하나님의 대사를 인하여(시126:2)
b.주의 구원을 인하여(삼상2:1)
2. 하갈 모자의 추방
1) 이삭을 희롱하는 이스마엘
이삭이 젖을 떼는날 대연을 베풀고 크게 기뻐하던 사라는 한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마엘의 나이는 17세 가량이었으니 이삭으로인해 자신의 위치와 상속권이 깨어졌다는 것을 알고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마엘은 어린동생 이삭을 희롱하며 못살게 굴었을 것입니다.
a.육신에 속함(고전3:3)
b.희롱함(창39:14)
2) 근심하는 아브라함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광경을 목격했던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여종과 그아들을 내어쫓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와 하갈의 관계악화로 인한 가정 불화와 하갈 모자를 추방하라는 사라의 요구에 근심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일부일처의 결혼 제도가 왜 준수되어야만 하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a.세상근심(고후7:10)
b.질병의 고통(사38:17)
3) 추방당하는 하갈 모자
근심하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일어나 떡과 물 한가죽 부대를 취해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선 그녀와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추방당한 하갈 모자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목마른 그들에게 샘물을 발견케 하실뿐만 아니라 이스마엘로하여금 큰민족을 이루겠다고 축복하셨습니다.
a.학대하지 말아야 함(신24:14)
b.혹독함(출6:9)
3. 아비멜렉과 언약을 체결함
1) 인정받는 아브라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하시므로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분명하게 알고 주변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크게 번성하며 그세력이 날로 확장되어 가는것을 알고서 아브라함을 두려워하였습니다.
a.만물속에 함께하시는 하나님(느9:6)
b.가까이 계신 하나님(행17:27)
2) 아비멜렉의 평화제의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하심을 깨달은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와서 평화를 제의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과 더불어 맺고자 원했던 것은 동맹관계였습니다. 이는 그들의 생존과 관계되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동맹을 맺게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아브라함의 세력이 크게 신장되었음을 나타냅니다.
a.사람과 사람사이의 언약(창26:26)
b.다윗과 요나단(삼상20:16-17)
c.그랄의 왕 아비멜렉(창20:2)
3) 서로 언약을 맺음
아비멜렉의 평화제의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우물을 늑탈한 행위에 대해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로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영생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a.분명한 결의(창42:15)
b.서약의 맹세(행23:12)
결론
오랫동안 기대하던 일이 드디어 이루어졌습니다. 즉 아브라함으로하여금 큰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아브라함 가정에 이삭이 태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 이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헛되이 끝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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