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 43:1-6
에스겔은 이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곳인 하나님의 성전을 끈기있게 척량하고나서 윗세상의 영광을 볼수 있는 영광을 누린다. '이리로 올라오라.' 그는 넓고 화려한 성전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기까지 그것은 환상중에 본바와 같이 죽은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참조. 37장). 그것들은 생명의 영이 안에 들어오기까지는 '생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이유로 선지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충만한 것을 보게된 것이다.
(1) 그는 하나님의 영광 즉 이스라엘과 언약을 하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이교도의 우상들은 금장색이나 칠장이에게나 바쳐야 마땅한 영광이외에는 아무것도 갖고있지 못한다. 이영광은 '동쪽에서부터' 왔다. 그리스도의 별도 동방에서 발견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새벽별이시오 의의 태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사실에서 우리는 다음 두가지를 살펴볼수 있다.
1) 선지자가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볼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같고(2절). 그리스도의 복음도 환히 빛나는 영광중에서 큰소리로 선포되어야만 했고 멀리서도 들을수 있어야 했다.
2) 선지자가 보았던 하나님의 임재는 밝은 빛가운데서 이루어졌다. 땅은 그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빛의 밝기를 견딜수 없으며, 그빛을 보았거나 볼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교회안을 밝히 비추시는 하나님의 영광은 이세상도 비추어 주신다.
(2) 선지자는 이영광이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영광을 보았을때 그는 겸손히 경배하는 심정으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3절). 그러나 '여호와의 영광이 전으로 들어가신'후 '성신이 그를 들어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한 것을' 보게 해주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이 복음교회를 밝게 비추시고 그안에 가득하게 되는 것으로써 성취되어야 했다. 본문에는 구름이 예전처럼 전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기록이 없다. 이는 우리가 이제는 드러난 얼굴로 여호와의 영광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 즉 예전처럼 상징의 구름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직접 대면한다는 의미이다.
(3) 선지자는 즉시 여호와의 영광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희막에서 모세에게 하셨던 것과 비슷하다(레1:1). 들은즉 누구인지 전에서 내게 말하더니(6절).

Ⅱ. 하나님의 약속 43:7-12
하나님께서는 이제 성전에 다시 임재하심으로써 자기백성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사실상 갱신하신다.
(1)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이전 잘못을 깨우쳐 주신다. 이는 그백성들에게 예비된 위로를 위하여 미리 준비를 시키시는 것이다. 그들은 이전에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었다'(7절). '그들과 그왕들은' 심지어 성전뜰에 우상을 위한 제단을 세움으로써 옛날에 자기들이 고백하였던 신앙을 모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존위를 가장 무례하게 모욕하는 행위이다. 이러므로써 그들은 하나님과 자기들사이에 분리의 담을 만들었고 이 담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에게로 흘러오는 하나님의 은총의 물결을 막았던 것이다. 그들과 나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8절).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과 가까이 있었지만 사실은 담을 쌓은 것이었다. 따라서 "교회에 가까울수록 하나님과는 멀어진다"라는 말이 때때로 진리로 드러나고 있다.
(2) 하나님께서는 그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신다(9절). 이제는 그들이 그음란과...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하여 버려야할 것이라. "그리고나서야 하나님께서 자비로 너희에게 다시 돌아오사 너희자신의 성소를 다시 세우려하시니 너희의 우상 곧 '왕들의 시체'를 버려야할 것이라." 선지자는 백성들앞에 성전의 모양 혹은 '형상'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만일 그들이 그형상을 본다면 자기들의 '죄악을 부끄러워할' 것이기 때문이다(10절).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를 회개하도록 만드실 것임에 틀림없다. 선지자는 그들에게 형상을 스스로 측량하게 하고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일을 예비하고 계신지를 알도록 해야한다.
2) 만일 그들이 자신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게 된다면 그들은 형상 그자체보다 더욱 많은것을 알게될 것이기 때문이다(11절). 너는 이 전의 제도와...형상을 보이며 "그리고 그 전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보여주어라." 우리는 하나님전의 모든 특권들 즉 모든규례들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 그들로 그모든 법도와 그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3) 하나님께서는 그백성들이 되어야 할바대로 될것과 자신도 그들이 원하는대로 하실것을 약속하신다(7절). 그리하면 내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거하리라(9절).
(4) 하나님의 전의 일반적인 법이 설명된다(12절). 그것은 이전에는 상단 혹은 성소만 '지극히 거룩하였지만' 이제는 그 전이 있는 온산이 그러하리라는 것이다. 복음시대에는 교회전체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지성소의 특권을 누릴 것이다. 이제 모든성도들은 복음으로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히 10:19). 대제사장만이 수소와 수염소의 피에 힘입어 들어갈수 있었던 곳을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 나아갈수 있게된 것이다.

Ⅲ. 성전의 환상〔9〕 43:13-27
본문은 이 신비한 성전에 있는 제단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그제단 역시 신비하다. 그이유는 우리의 제단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포로생활에서 돌아온후에 성전을 짓기 오래전부터 제단을 갖고 있었다(스 3:3). 그러나 본문의 제단은 성전안에 있는 제단을 말하는 것이다.
(1) '제단의 척수'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13절). 제일 윗부분의 넓이는 약 6평방 야드이고 바닥은 약 7평방 야드였다. 그높이는 약 4야드 반이었다. 제단 아래쪽에는 '밑받침'이라고 불리우는 선반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상 약 1야드 되는곳에 있었다. 이 위에 제사장 몇명이 올라가 수종들게 되어있었고 그보다 약 2야드 위쪽에 또 선반같은 것이 있어서 그위에 또다른 제사장 몇명이 올라서게 되어있었다. 제단에서 태워야할 희생들은, 처음에 낮은곳에 있는 제사장들에게 전해져서 그들이 위에 있는 제사장들에게 건네주고 위에 있는 제사장들이 마지막으로 희생물을 제단위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2) 제단의 '규례'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1) 제단을 봉헌하는데 7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7일동안 매일 희생을 드려야했다(25절). 죄사함을 받기전에는 우리의 인격이나 행위로는 하나님께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죄는 제단과 그위에 드려지는 제물을 성별해주는 그리스도의 피이외에 어떤것으로도 사함받지 못한다. 제단을 봉헌하는 것을 본문에서는 '정결케한다'고 표현하였다(20,26절). 모든희생에는 '소금'이 뿌려져야만 했다(24절). '은혜'야말로 우리의 모든 신앙적인 행위에 뿌려져야 하는 '소금'이 된다(골4:6).
2) 봉헌식이 끝난후의 계속적인 쓰임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다(27절). 그위에서 드려지는 모든재물을 정결케 하기위하여는 먼저 제단이 정결해져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제단에서 제사드리는 자들은 누구인지를 살펴보자. 그들은 '사독의 자손 제사장들'이었다(19절). 그의 이름은 의로움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이신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제사장된 사람들은 의의 자손들이다. 또한 제사드리기전에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바치기에 앞서 우리는 스스로를 거룩하게 해야한다.

# 핵심
43:1-27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임하는 모습과 번제단의 규모 및 봉헌에 관한 설명이다. 이내용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할 경우 구원의 축복을 회복할수 있음을 제시한다.
에스겔 제단형상의 의미(43:13-17)
제단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사함을 받기위한 장소이다. 첫째, 제단의 구조가 밑받침, 아래층, 위층 제단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은 협력과 화합의 의미를 함축한다. 둘째, 제단의 뿔은 권세와 권능을 상징한다. 셋째, 제단의 길이와 폭의 치수가 같은 정방형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은 견고성과 안전성을 시사한다. 제단이 내포하는 이러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의미와 긴밀히 연관된다. 구약의 모든제사를 단번에 영원히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속죄는 죄인을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하게 한다(히 9:12).

# 묵상
동문으로 들어간 여호와의 영광 ( 43:1 )
동문은 성전의 정문이라고 할수 있는데, 본구절에서는 이전에 동문으로해서 성전을 떠나갔었던 여호와의 영광이(10:19; 11:1, 23) 다시 동문으로 되돌아 온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온갖 죄악과 불의함으로인해서 이스라엘을 떠나신 여호와의 영광이 되돌아 온다는 사실은, 곧 여호와의 임재하심이 여호와의 백성가운데서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하나님의 통치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광으로인하여 빛나는 땅 ( 43:2 )
‘땅이 그영광으로 인하여 빛난다’는 본문의 표현은, 모세시대의 성막이나 솔로몬성전의 봉헌식때 있었던 여호와의 현현에 관한 묘사와 얼마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전에는 ‘가득한 구름’으로 언급되었던 반면에 이제는 ‘영광의 빛’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께서 회복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땅은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는 모든곳, 곧 전우주적 의미로서의 지역을 포괄하여 의미합니다. 그래서 떠나셨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세계 전체에 임재함으로 땅의 부정함이 제거되고 거룩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종말에 전우주에 충만할 하나님의 영광을 암시합니다(계18:1; 21:11, 23).
이스라엘에게 보일 성전 ( 43:10 )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 전을 보이라고 명하신 것은, 새로운 계시를 백성에게 선포하라고 명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성전형상의 계시는, 새로지은 성전을 보면서 그곳에서 그들이 저질렀던 부끄러운 죄악, 즉 우상숭배를 기억하며 또한 이제 그들에게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갖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의 환상은 열국에서 포로로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국으로의 귀환과 제사에 대한 기대를 갖게하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속죄제물을 삼는 흠없는 숫염소 ( 43:22 )
이말은 죄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백성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속죄제물이 되셨음을 의미합니다. 속죄일에 두마리의 염소중 제비를 뽑아 한마리는 여호와께 드리고 한마리는 광야로 보내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염소는 아사셀 염소라고 불리웠습니다. 이와같이 백성의 죄를 다 지워 광야로 보내진 아사셀 염소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백성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 해설
하나님의 영광의 귀환과 제단척량 ( 43 )
유다를 심판하시사 멸망을 결정하실때에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떠나셨습니다(참조, 겔10:18-19). 유다와 및 이스라엘이 회복된뒤 하나님께서는 다시 돌아오십니다. 본장은 바로 그와같이 돌아오시는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동시에 새성전의 제단을 척량함으로써 새시대에 드려져야할 제사가 어떤것이어야 하는가를 말해줍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의 귀환
1) 동문으로의 귀환
성소의 구조는 동쪽으로부터 성소로 들어가는 현관이 있고 그다음에 성소가 있고 그 맨뒤에 지성소가 있는 형상입니다. 다시말하면 지성소는 맨서쪽에 있으며 따라서 동문으로 들어가면 지성소까지 직선으로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외의 문들은 지성소까지 가기위해서는 돌아 들어가야만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서론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나가실때도 동문으로 나가셨고 돌아오실때에도 동문으로 돌아오십니다.
a.동문위에 머무심(겔10:19)
b.동문의 특별함(겔46:1)
2) 영광의 충만
동문으로 나갔다가 동문으로 다시 되돌아오신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에 좌정하시사 여호와의 영광이 전안에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성전 안에 충만하게 된것입니다. 이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이 거룩하고 완전하고 강력하시어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의 백성들(참조, 고전6:19;계21:2)가운데 충만히 거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줍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지금 자신의 백성들이 계시는 곳마다 충만하게 임재하십니다.
a.영광의 충만(레9:23)
b.성령충만(엡5:18)
3) 영원히 거하심
본문에 의하면 다시 돌아오신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계십니다. 다시오신 하나님의 영광은 이전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자기백성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백성들에게 되돌아오신 하나님께서는 다시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원히 그들과 함께하십니다(참조, 계21:3).
a.항상 함께하심(마28:20)
b.하나님과의 동거(계21:3)
2.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할 일
1) 우상숭배 제거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권능에 의해 새언약하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옛언약하에서 보다 더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이보답의 첫번째 행동은 우상숭배와 우상숭배자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들로서 마땅히 우상을 버려야하며, 또한 우상을 숭배하여 물을 흐리는 악인들을 그들가운데서 제거해야 합니다.
a.하나님 사랑(마22:37)
b.악한자를 내어쫓으라(고전5:13)
2) 회개
회개가 없이는 죄용서함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대속제물로 보내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인간이 그의 죄에서 속죄함을 받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속죄의 근거가 될뿐 그속죄의 효력이 모든인간에게 무차별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속죄의 효력은 오직 하나님앞에 자기죄를 고백하는 자들에게 미칩니다. 따라서 새언약하에 있는 자들도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참조, 요일1:5-10).
a.회개와 천국(마3:2)
b.자백과 용서(요일1:9)
3) 말씀준행
죄에서 떠나 회개하였다는 것으로 모든상황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죄에서 떠나 회개함으로 의에 속한자가 되었다면, 그는 자신이 의에 속한자라는 것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이 나타냄의 시금석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참조, 요14:15-24). 즉 믿음의 열매를 맺느냐 못맺느냐 하는 것입니다(참조, 약2:14-26). 말씀준행은 온전한 백성이 되기위해 반드시 걸어야하는 연단의 과정이며 하나님나라 건설을 위한 성도의 여정입니다.
a.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14:21)
b.죽은 믿음(약2:17)
3. 제단
1) 정방형
정방형이란 네각이 동일한 길이를 가진 사각형을 말합니다. 이 사각형은 안정과 완전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제단의 형태가 정방형이라는 것은 자기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죄용서가 완전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a.죄용서의 견고함(사1:18)
b.구원의 확실성(요10:28)
2) 피의 제사
인류최초로 제사를 드린 가인과 아벨중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셨습니다. 그이유는 아벨의 제사가 피의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곧 생명을 바치는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새언약하에서는 피있는 제사가 열납됩니다. 그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며 우리의 헌신이어야 합니다. 이 두가지가 있을때 온전한 제사가 가능합니다.
a.영적예배(롬12:1)
b.피제사(히9:22)
3) 계속 드려져야할 제사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는 쉬지않고 드려져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쉬지않고 내려지는 것과 대응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사이의 사랑이 교차할때 온전한 관계가 지속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언약하에서도 하나님은 쉬지않는 제사를 원하십니다.
a.아침마다 바쳐야할 상번제(겔46:15)
b.쉬지말고 기도하라(살전5:17)
결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사 은혜와 권능으로 우리에게 돌아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그은혜를 따라 옛죄악을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가운데 모든 일상속에서 의를 행하며 죄악을 제거하여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화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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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성전의 환상〔7〕 42:1-14
선지자는 성소에 관하여 매우 정확한 모습을 본후 이제 다시 바깥뜰로 인도된다.
(1) 우리에게는 매우 복잡하게 보이는 작은방들의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단지 총괄적으로 다음의 사실만 알수 있을 뿐이다.
1) 공중의 예배하는 장소인 성소주변에는 사실들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뜰에서 예배할뿐만 아니라, 예배전후에 각자의 방에 들어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은밀한 중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
2) 이 작은방들의 수효는 매우 많았다. 이방들은 삼층으로 되어있었다(5,6절). 방들이 이렇게 많은이유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섬기는 여선지 안나같은 사람들을 위해서이다(눅 2:37).
3) 이 작은방들은 비록 은밀한 곳이었지만 성전가까운 곳에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를 대중가운데 헌신할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해서였다.
4) 이 방들앞에는 광이 십척되는 '통한 길'이 있었다(4절). 이길을 통하여 이 방들에 거하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얘기하며 체험을 나눌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를 위하여 지어졌고 기독교인들은 성도들간의 교제를 위하여 지어진 존재들이다.
(2) 이 방들의 용도가 지정되어 있다(13,14절).
1) 이것들은 여호와앞에 나아가는 제사장들을 위한 방이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거룩한 방'이라고 불리어진다. 왜냐하면 거룩한 것들을 다루는 직무를 맡은사람들이 봉사하는 기간동안 사용할 방이기 때문이었다.
2) 제사장들은 그곳에 '지성물'들을 두어야 했다. 즉 자기들의 몫으로 할당된 제물의 일부를 두어야했던 것이다.
3) 제사장들은 그곳에 각자의 의복을 두어야 했다. 그의복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제단에서 수종드릴때 입으라고 지정해주신 것이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온후 제사장들의 의복을 준비했던 기록을 찾아볼수 있다(느 7:70,72). 제사장들은 제사를 마친후에 의복을 그곳에 벗어두고 '백성의 뜰로 나갈때'에는 즉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그들의 질문에 답해주기 위하여 나갈때에는 일반백성들이 입는것과 같은 '다른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Ⅱ. 성전의 환상〔8〕 42:15-20
우리가 밟고있는 거룩한 땅이 얼마나 넓은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이 신비한 성전을 척량하는 기록이 나온다.
(1) 그것은 각방향으로 오백척씩이었다(16-19절). 척량하는 장대 한척은 약 3야드반이니 한쪽길이가 약 1마일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 신비한 성전의 외곽이 이토록 넓은것은 복음시대에 교회가 현격하게 팽창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의 전에는 수많은 이방인들을 위한 공간이 예비되어야만 하는 것이다(사 49:18;60:4).
(2) 규모가 이렇게 큰이유는 '거룩한 것과 속된것' 사이에 거리를 두어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인 것들과 거룩한 것들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이름과 다른이름들, 하나님의 날과 다른날들, 그리고 하나님의 책과 다른책들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 핵심
42:1-20
성전의 제사장 방들을 설명하고, 성전전체의 크기를 측량하는 내용이다.
제사장들의 방(42:13,14)
이 방의 용도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지성물을 먹는 곳이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된 자로서, 먹고마시는 일까지도 성별되어야 했다. 둘째로, 성물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하나님께 봉헌된 제물은 거룩한 것이므로, 특별한 곳에 구별하여 보관해야 했다. 셋째로, 제사장이 의복을 갈아입는 곳이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제사예복과 평상복을 엄격히 구분해서 사용했다. 제사를 필한 제사장들은 거룩한 방에서 일상복으로 갈아입고난 다음 성전밖으로 나갈수 있었다(레 16:23,24).

# 묵상
거룩한 방의 용도 ( 42:13 )
여호와를 가까이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고 또 그것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제사장들은 제사음식을 성소에서 먹어야 했습니다. 솔로몬성전에서는 제물을 성전 안뜰에서 먹게했으나, 에스겔이 환상중에 본 성전에서는 그것을 거룩한 방에서 먹게했던 것입니다. 다만 화목제물은 제사드린 자와 제사장이 함께 먹는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방에서 먹지 못합니다. 또한 이 방에서는 성전에서 수직하는 제사장들이 예복을 갈아입기도 했습니다. 즉 제사장들은 제사를 마치고나면 바깥뜰로 나갈때에는 제사예복을 벗어두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후에 나가야했기 때문입니다.
거룩과 속됨의 구별 ( 42:20 )
전을 다 척량한후에 척량한 사면(四面)담은 6척 정도로서 매우 낮은 담이었는데, 이것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용도로 세워졌습니다. 한편 ‘속된’ 것은 원어상 ‘평범한’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거룩한’ 전을 일반적인 영역에서 구분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 해설
제사장들의 방 척량 ( 42 )
겔40-41장에서는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건물인 성전외벽과 바깥뜰문, 그리고 안뜰문과 성소를 척량했습니다. 그뒤를 잇는 본장은 성전의 남쪽과 북쪽뜰에 각각 두개씩 있는 골방을 설명합니다. 이 골방들은 제사를 수직하는 제사장들이 쉬는 장소인 동시에 거룩한 의복을 갈아입는 곳이며, 또한 제물을 비축해놓는 창고이기도 했습니다.
1. 구별되어야할 제사장
1) 외부로부터의 구별
앞에서 우리는 성전 남과 북편에 있는 골방들이 제사장이 제사를 수직하기 전후에 거룩한 의복을 갈아입는 장소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장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당시에는 외부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거룩하지 않은 외부로부터 구별되어 성전안에 들어와서 성전 가장 거룩한 곳에서 제사를 준비하고 제사를 수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a.몸의 구별(민6:2)
b.이스라엘을 구별하신 여호와(렘1:5)
2) 속된 것으로부터의 구별
제사장이 성전밖에서 들어온뒤 거룩한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며 또 제사를 끝낸뒤에는 거룩한 옷을 세상밖으로 가져가지 않기위해 거룩한 옷을 갈아입고 나가야 한다는 것은 제사장이 세상의 속된 것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이와같이 예배를 집행하는자는 세상의 속된것을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a.속된 것을 분별하고(레10:10)
b.세상사랑은 하나님사랑과 반대(요일2:15)
3) 속된 생각으로부터의 구별
하나님은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참조, 잠16:2). 따라서 제사를 드리는자는 그몸만 외부와 세상의 속된 것으로부터 구별되었다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참제사를 드리려면 드리는 자가 그마음까지도 모든 속된 것과 악한 것으로부터 떠나 영육간에 거룩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전인격을 하나님께 내어맡긴채 진리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a.지켜야할 마음(잠4:23)
b.마음을 다하여(마22:37)
2. 제사에 전념해야할 제사장
1) 전용공간의 필요
성전 남북편에 각각 두개씩 있는 골방들은 제사장들의 휴식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 바른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제사를 수직하는 일은 전심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기때문에 힘든 일입니다. 따라서 제사를 수직하는 자는 다음제사를 위해서 휴식을 필요로 합니다. 이휴식에는 육체적 휴식뿐만 아니라 정신적 휴식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공간적인것 뿐만아니라 시간적인것도 포함됩니다. 제사장은 그와같은 조건하에서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영력을 재충전함으로써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전념할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점에서 오늘날 목회자들도 그들이 예배에 전념할수 있도록 여러가지 필요한 것들을 제공받아야 합니다.
a.합당한 자의 집에서 머묾(마10:11)
b.유월절장소를 제공한 사람(마26:18-19)
2) 제물의 필요
제사를 수직하는 자가 제사때에 드릴 제물을 직접 세상에 나가 마련할수는 없는 일입니다. 물론 급박한 상황이라면 그러한 경우에 닥칠수도 있겠지만 평상시에는 그런일이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때 제사장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일에 전념할수 없게되기 때문입니다. 이런이유로 제사장들은 그들이 드릴 제물을 백성들로부터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비록 신약시대이지만 지금도 이규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교인들은 그들의 소득의 일부를 하나님께 바치고, 목회자는 그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준비하고 집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예물바치는 것을 마땅히 여기는가운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a.백성이 바쳐야할 제물(레4:14)
b.레위지파의 안심(느10:39)
c.아낌없는 바침(행4:32)
3. 공급받아야할 제사장
1) 공적활동를 위한 재물
제사장은 제사수직의 의무뿐만 아니라 성전을 유지보존시키고 그제반 사항들을 지켜야할 의무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에게는 그일을 감당할 유지비가 필요합니다. 백성들은 따라서 그유지비를 공급해야 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헌금을 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자가 받아야할 권리이며, 성도가 해야할 의무입니다.
a.베드로를 대접한 고넬료(행10:48)
b.곡식떠는 소와 말(고전9:9)
2) 가족부양을 위한 재물
제사장은 그의 모든시간과 능력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수직하는 일에 바치기때문에 가족부양을 위한 노동을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가족의 생계를 일반백성, 곧 성도들이 책임지도록 명령하셨습니다(참조, 신14:27). 이러한 이유로 성도는 목자가 그의 가족을 잘 부양하도록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야 합니다.
a.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하고(말3:10)
b.제사장은 제단과 함께 나눔(고전9:13)
3) 영성을 위한 뒷받침
제사장이 제사를 잘못드리면 백성들 또한 그영향을 받게됩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제사장이 하나님앞에 온전히 설수 있는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배려에는 물질적인 것도 있겠고 정신적인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볼때 성도는 목자의 영혼을 위하여 많은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a.목자를 위한 기도(살후3:1-2)
b.목자에게 바쳐야 할것(히13:17)
결론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제사는 분명 다릅니다. 신약시대에는 모든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수 있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도 예배를 전담하는 목자의 역할은 막중합니다. 그들의 영성과 능력에 따라 양들의 가는길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양들은 그들의 목자의 거룩과 능력과 전력투구를 위해 가진것을 나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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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성전의 환상〔5〕 41:1-11
(1) 선지자는 뜰을 본후 드디어 '성소'에 이르렀다(1절). 만일 우리가 신앙의 초보단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지시들을 성실히 수행하고 그럼으로써 유익을 얻는다면, 우리는 한걸음 더나아가 하늘나라의 비밀을 접하게 될것이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뜰에 기꺼이 거하는 자들은 결국 그의 성소에까지 이르게 될것이다.
(2) 우리 주 예수께서 이성전이 헐릴것에 대해 말씀하셨을때 듣는이들은 예루살렘에 두번째로 세워진 이성전을 의미하는줄 알았으나 그는 성전이신 자신의 몸을 의미하신 것이었다(요 2:19,21). 에스겔의 환상은 그 두가지에 다 관련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집'(딤전 3:15)이라고 불리우는 성전이신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과 성령이 거하는 '살아있는 성전' 곧 그몸의 모든지체를 다 포함하는 것이다.
(3) 이성소의 '문벽'은 서로 멀리 떨어져있었다. 즉 결과적으로 문이 넓어진 것이다. 율법시대와 비교해보면 요즈음은 교회로 인도하는 문이 넓다고 말할수 있다. 그문을 좁게 만들었던 분리의 벽, 곧 의식법이 없어진 것이다.
(4) 지성소는 정방형이었다(4절). 새예루살렘도 정방형으로(계 21:6), 이는 안전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5) 윗층은 아랫층보다 넓었다(7절). 재목들은 단단히 묶였다(하나님께서는 높이 지으시더라도 단단하게 지으신다). 우리가 가장 거룩한 믿음안에서 스스로를 높이 지을수록 살아있는 성전인 우리마음은 점점더 넓어진다.

Ⅱ. 성전의 환상〔6〕 41:12-16
(1) '서편 뜰뒤에 있는 건물'(곧 성전뒤쪽에 있는 건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12절). 이건물은 뜰안에 독립적으로 세워져 있었다. 이 환상중에서 이부분은 아마, 이방인들사이의 교회가 유대인들의 성소못지 않으며 오히려 전혀 다른특성을 가지고 있다는점을 의미하는 듯하다.
(2) 성소와 다른건물의 장식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안쪽벽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로 장식되었는데 그것들은 번갈아가며 새겨져 있다. 각그룹들은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요 하나는 '어린사자의 얼굴'이었다(19절). 이것들은 인간보다 지혜롭고 사자보다 용맹한 천사를 의미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승리의 종려나무가 그앞에 놓여져있기 때문이다.
(3) '외전과 내전의 문설주'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그것들은 '네모졌다'(21절).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성소의 문이 이것보다 좁았었다. 그러나 이네 그문은 넓어졌다. 왜냐하면 복음시대에는 '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구약시대보다 더욱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이다(히 9:8). 이문들에 대한 설명이 나와있다(23,24절).
(4) 분향단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본문에는 '나무제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22절). 만일 향을 이위에서 피운다면 이제단은 불에 타버릴 것이다. 따라서 이는 복음성전에서 피워지는 향은 순전히 영적인 것이요 그불도 영적인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이제단은 '상'이라고 불리었다. 이제 우리가 할일은 이미 바쳐진 위대한 희생제물로 인하여 여호와의 상에서 잔치를 즐기는 일밖에 없다.

# 핵심
41:1-26
성소와 지성소 및 성전 내부장식에 대해 상세히 묘사한다.
에스겔성전과 솔로몬성전(41:1-26)
이 두성전의 모습은 성소바깥문(1,2절; 왕상 6:2), 지성소의 벽과 골방(5-11절; 왕상 6:5-10) 등의 크기나 규모에 있어서 유사하다. 그러나 솔로몬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건립된 것인 반면에, 에스겔성전은 바벨론 포로생활중에 환상을 통해 계시된 상징적인 것이다. 또한 솔로몬성전의 주된 의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중에 거하신다는 약속에 있으나, 에스겔성전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는 신약교회를 예표하고 있다(히 9:23-26).

# 묵상
척량하는 자가 들어간 곳 ( 41:3 )
본절에서 에스겔은 들어가지 못하고 성전을 척량하는 사람만이 들어갔다고 하는것은 바로 그곳이 내전, 곧 지성소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에스겔도 제사장이므로 외전 곧 성소에는 들어갈수 있었으나 대제사장만이 들어가는 지성소까지는 들어갈수 없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소와 지성소의 휘장이 갈라져 이제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믿는 모든사람이 하나님앞에 나아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전 ( 41:15 )
외전은 곧 성소를 말합니다. 솔로몬의 성소에는 향단과 진설병상과 등대가 있었습니다. 이곳의 등불이 밤낮 꺼지지않도록 돌보는 것이 제사장들의 주된 임무였습니다. 그리고 지성소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곳이었다면, 성소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곳이요 그분과의 만남을 요청하는 곳입니다.
그룹 ( 41:18 )
하나님을 모시고 다니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성을 나타내는 존재로서, 에덴동산을 지키고(창3:24) 하나님께서 타고 날으시기도 합니다(시18:10). 이그룹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천사들중에 제일 높은지위의 존재들로 이해했습니다. 에스겔은 지성소에도 새겨진 이그룹에 대해서 처음에는 사람, 사자, 독수리, 소의 형상을 한것으로 보았으며, 환상중의 성전에서는 사람과 어린사자의 얼굴을 한 그룹을 보았습니다.
제단의 재료 ( 41:22 )
본문에 언급된 제단은 나무제단인데, 본래 솔로몬성전에서는 놋제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성소안에 나무제단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속죄제물이 되셔서 나무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막힌담을 허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단위에 태워진 희생제물과 속죄피를 의지하여 하나님앞에 나아갔듯이, 성도들 역시 참 희생제물되신 그리스도만을 의지해야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게됩니다.

# 해설
새성소 척량 ( 41 )
전장은 성전의 바깥뜰로 들어가는 네 문과 그주변 부속물의 크기와 형태를 말함으로써 새성전의 의미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 다음장인 본장은 바깥뜰을 지나 안뜰문과 및 그주변 부속물의 크기와 형태,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의 크기와 형태를 말함으로써 새성소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알려줍니다.
1. 성소의 거룩성
1) 선지자가 들어가지 못함
성전바깥뜰 문으로부터 성소까지 선지자 에스겔은 인도자와 함께 이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지성소앞에서 에스겔은 멈출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를 척량하기위해 천사만이 그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이었지만(참조, 겔1:3), 지성소에는 들어갈수 없는 자격이었기때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이사실은 지성소가 얼마나 거룩한 장소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는 거룩한 곳이어서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도 들어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a.거룩한 회막(출29:43)
b.거룩한 성(계22:19)
2) 입구의 좁아짐
성소입구 현관의 넓이는 14규빗이었습니다. 성소로 들어가는 입구의 넓이는 10규빗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는 다시 6규빗으로 줄어듭니다. 성소현관에서 지성소로 들어갈수록 그입구가 점점 좁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성소로 갈수록 장소가 거룩해지기때문에 거룩한 장소에 접근하기 어렵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지성소로 갈수록 그곳은 거룩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a.하늘에 닿은 사다리(창28:12)
b.좁은 문(마7:13-14)
3) 두그룹과 종려가지 형상
여기서 말하는 그룹은 에스겔이 첫 이상중에 본 그룹과 다른그룹입니다. 첫 이상중에 본 그룹은 하나님을 수종하는 그룹이며(참조, 겔1:4-10), 여기서의 그룹은 지성소안에서 법궤를 수호하는 그룹입니다. 이 두그룹의 얼굴이 사람과 사자라는 것은 지혜와 왕의 용맹과 지도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수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이 두그룹이 생명력과 영광을 상징하는 종려나무 형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두그룹이 하나님의 거룩을 우러러보고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지성소가 거룩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a.그룹들과 종려(왕상6:32)
b.종려가지를 든 백성들(계7:9)
2. 구원의 완전성
1) 정방형 지성소
천사가 지성소에 들어가서 지성소를 척량해보니 지성소는 가로 및 세로가 각각 20규빗이 되는 정방형이었습니다. 정방형이란 모든사각이 같은크기로 구성되어 있어 흐트러짐이 없는 안정된 형태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장소인 동시에 이스라엘 모든백성들의 죄악을 사함받기위해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 들어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죄용서를 받는 장소입니다. 이러한 장소가 안정을 상징하는 정방형의 형태를 하고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이 완전할뿐 아니라 인간의 죄를 구속하시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완전하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a.성막에 충만한 영광(출40:34)
b.구원의 확실성(요10:29)
c.하나님의 해방(롬8:1-2)
2) 두그룹과 종려가지
앞에서 종려가지는 생명력과 풍요, 그리고 영광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종려가지는 그외에도 승리라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종려가지는 경기에서 우승한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시지만 이세상 역사가 지속되는한에 있어서는 선과 악의 싸움의 연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죄악가운데서 다 구원하시기까지 악의 세력과 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안에 종려가지의 형상으로 새겨져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승리하시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반드시 구원하신다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하나님의 자기백성 구원의 필연성과 완전성을 종려가지 형상이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a.세상을 이기심(요16:33)
b.십자가의 승리(골2:15)
c.승리하신 다윗의 뿌리(계5:5)
3. 성도의 삶에 주는 교훈
1) 신앙의 단계성
새성전은 성전밖의 지대보다 높은곳에 위치했습니다. 성전안의 성소는 성전지대보다 높은곳에 있었습니다. 성소안에서 지성소는 성소보다 좁은문을 통해 들어갔습니다. 이모든 것은 지성소까지 이르려면 보다 거룩하고 고상한 단계를 거쳐가야 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상징은 성도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려면 신앙의 단계를 거쳐야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a.그리스도(엡4:13)
b.지식의 자람(골1:10)
2) 영적삶의 온전성과 치밀성
성전은 전체적으로 매우 짜임새있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전체 100규빗의 정방형안에 성전의 각건물들과 부속물들은 한치의 빈틈없이 건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실을 통해 우리는 또한 신앙인의 영적삶이 치밀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성도의 삶은 대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삶에는 완전, 곧 성화를 위한 치밀성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a.온전하라(마5:48)
b.두렵고 떨림으로(빌2:12)
3) 성도의 거룩성
앞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성전은 그전체가 거룩 자체였습니다. 성전은 세상과 다른, 악인이 범접할수 없는 거룩함 그자체였습니다. 이것은 성전된 몸을 가진(참조, 고전6:19) 성도역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줍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a.거룩한 구별(레11:44)
b.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롬6:22)
결론
새성전은 옛성전보다 훨씬 거룩하고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옛언약하에서보다 새언약하에서의 하나님의 은혜가 크며 그구원이 확실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줍니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는 크고 그구원은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운데 그말씀에 따라사는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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