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성전의 환상〔1〕 40:1-4
(1) 이환상을 본 시기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다. 그때는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간지 25년째 되는 해였다. 어떤이들은 이때가 처음 포로로 잡혀간지 33년째라고 계산하고 있으나 본문에는 '성이 함락된후 십사년' 되는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땅으로 가시되. 선지자는 멸망당해 황폐해지고 버려진 예루살렘으로 이끌려갔다. 이것은 선지자에게 매우 비참하게 보였을 것이다.
(2)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상중에' 이스라엘땅으로 이끌려갔다(2절). 이번에는 예루살렘의 영광에 즐거운 광경을 보기위하여 간 것이다. 그는 '극히 높은 산위에' 세워졌다. 이는 흡사 모세가 비스가산 정상에 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 두번째의 '약속의 땅'이 된 그땅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 산꼭대기에서 그는 '성읍의 형상같은 것'을 보았는데 그성읍은 그대로 하나의 성전이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거주하기 위한 성읍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위한 성전이었다. 왜냐하면 지상의 교회안에서는 하나님이 인간들과 같이 거하시며 하늘의 교회에서는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때문이다.
(3) '모양이 놋같이 빛난사람 하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성읍의 자세한 부분은 보여주신다(3절). 그리스도를 통해야만이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전의 온갖 유익과 특권을 누릴수 있게되는 것이다. '놋같이 빛나는' 그의 외모는 그가 광채되시는 것과 강한 분이시라는 점을 암시해 준다.
(4) 이성읍 혹은 성전의 규모는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 혹은 막대기로 척량되어졌다(3절).
(5) 선지자는 여호와께로부터 이계시를 받아 교회에 완전하고 완벽하게 전달하라는 임무를 받는다(4절).
Ⅱ. 성전의 환상〔2〕 40:5-26
척량하는 자의 손에 들려있는 '척량하는 장대'에 대해서는 3절에 이미 언급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장대의 정확한 길이를 알게된다(5절). 그길이는 여섯척(규빗)이었는데 여기서 사용된 척은 보통척이 아니고 성전을 재는 척으로, 보통척보다 '손바닥 넓이'(약 4인치)가 더 긴 척이었다. 보통척은 18인치였는데 여기 쓰이는 척은 22인치였던 것이다(참조. 겔 43:13). 어떤학자들은 이장대가 여섯 보통척에다가 전체길이에 한손바닥 넓이만 더한 것이라고 해석하지만 전자가 더타당해 보인다. 이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1) 집바깥 사면에 담이 있었다. 그담은 온집에 빙둘러 있었는데 이는 세상에 교회의 분리를 의미한다.
(2) 방이 붙어있는 여러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1) 척량자는 '동향한 문'에서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그분은 성전의 가장 낮은 끝으로 들어갈때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문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지성소는 서쪽끝에 있었다. 이제 이문에 대한 설명중 다음사항들을 주목하도록 하자.
① 그는 '층계를 올라갔다'(6절). 왜냐하면 하나님께 예배하려 할때 우리는 위로 올라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4:1절의 부름에서도 이와같은 말씀을 하셨다.
② 그문에 붙어있는 방들은 가로 세로가 각6척씩 되는 작은 방들이었다(7절). 이방들은 그 전에서 제사드리는 일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거하는 방이었다.
③ 이방들은 네모반듯하고 한쪽변의 길이가 각각 한장대씩으로, 이는 그곳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사이에 평등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④ 이방들은 매우 많았다. 이는 '내아버지 집에 거할곳이 많도다'(요 14:2)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이것은 하늘에 있는 집과 땅위에 있는 집이 모두 마찬가지이다. 어떤이들은 이 작은방들이, 거대한 교회 곧 전우주적인 교회의 일부분을 이루는, 성도들의 특별한 모임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⑤ 그는 현관을 척량하였다(14절).
⑥ 이현관은 60척이었다. 어떤이들은 고레스왕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건하라는 칙령에서 전의 높이를 60척, 즉 약30야드 남짓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을때 이것이 문자그대로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스 6:3).
⑦ 작은방들과 문과 현관에는 창이 있었고(즉 아래에 있는 회랑을 향한 창문이었다) 그둘레에는 창이 있었다(16절). 이것은 하늘로부터 오는빛이 교회를 환히 비추는 것을 상징한다. 그 작은방에도 희미하게나마 빛이 있었다. 그러나 그창문들은 좁은 창문이었다. 지상의 교회가 발견하는 사실들은 나중에 다음세상에서 볼수 있는 것에 비하면 무척이나 좁은것에 불과하다.
⑧ 여러뜰에 대하여 설명되었다. 가장 외곽의 것으로부터 그안쪽의 뜰과 오로지 제사장만이 드나들수 있는 가장 안쪽의 뜰까지 설명되었다. 이 뜰들은 각기 현관 혹은 둘레에 회랑이 있었다. 이는 성전에 봉사하는 사람들을 바람이나 기타 나쁜 일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⑨ 문기둥 위에는 종려나무가 새겨져 있었다(16절). 이는 하나님의 전 뜰에서 '의인이 종려나무같이 번성함'을 의미하는 것이다(시 92:12). 이들은 마치 종려나무처럼, 고난의 짐에 눌리면 눌릴수록 더욱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
⑩ 뜰안의 박석깔린 땅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17,18절). 이것은 반석으로 포장된 것을 의미하는데 그색깔은 불타는 석탄같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때 이세상의 가장 빛나는 영광이 우리 발밑에 깔리기 때문이다.
2) 북향한 문간(20절)과 남향한 문간(24절)은 '먼저 척량한 동향한 문'과 같았다(21절). 이성전에는 부와 지혜로 유명한 동방자손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동향한 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북쪽과 남쪽을 향한 문들도 있었는데 이는 가난하고 덜 진보한 민족들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었다. 새예루살렘에는 열두문이 있어서 동서남북 각방향으로 세개씩 향하고 있다(계 21:13). 이는 '동서로부터 많은사람이 이르러' 그곳에 앉을 것이기 때문이다(마8:11).
Ⅲ. 성전의 환상〔3〕 40:27-38
안뜰에 대하여 기술되어 있다. 안뜰의 척량은 남쪽문에서부터 시작하여(27절) 동쪽문을 지나(32절), 북쪽문으로(37절) 진행되어 간다.
(1) 안뜰로 들어가는 이문들은 바깥뜰에 있는 문들과 꼭 같다. 초신자였던 사람이 성숙한 기독교인이 된다하더라도 은혜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이다.
(2) 바깥뜰로 들어서는 각문간에는 일곱층계가 있었으나, 안뜰로 들어서는 각문간에는 여덟층계가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 점점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이세상과 그중에 있는 것들로부터 더욱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점을 특별히 나타내 준다(31,34,37절). 바깥뜰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들보다 일곱층계를 더올라가야 하지만 안뜰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은 그들보다도 여덟층계를 더올라가야만 한다.
Ⅳ. 성전의 환상〔4〕 40:39-49
(1) 안뜰로 들어가는 문현관에 있는 상들에 대한 설명이 기술되어 있다. 본문에는 '여덟상'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그위에서 희생을 잡는 소용'으로 쓰이는 것들이었다(41절). 그상들은 복음시대에 하나님의 전에 드려져야할 수많은 영적희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상들은 제사에 쓰일 고기들을 잡는 곳이었으며(43절) 또한 번제의 희생을 씻는 곳이었다(38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제단에 가까이 나아가기전에 손과 마음 즉 영적 희생물들을 씻어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미 언급된 작은방들의 용도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다.
1) 그중 몇개는 노래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44절). 시편을 노래하는 것은 복음시대에 예배를 드릴때도 여전히 계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모두 노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나머지는 제사장들을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 제사장이라함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들' 즉 성전을 깨끗이 하고 유지보존하는 임무를 띤 제사장들과(45절),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을 모두 의미하는 것이다(46절).
(3) 제사장들만 들어갈수 있는 안뜰은 가로와 세로가 각 백척씩이었다(47절). '절앞에 있는' 제단은 안뜰의 중앙에 놓여있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제단이시며 희생이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때면 언제나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4) 그 전에 있는 현관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다. 그현관은 우리에게, 하나님전에 나아갈때 성급하고 무모하게 서두르지 말것을 가르치고 있다. 오직 엄숙하고 장중하게 바깥뜰을 지나 안뜰을 통과한후 현관을 거쳐 나아가야만 한다.
# 핵심
40:1-49
이스라엘의 회복을 성전회복과 직결시키면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이스라엘을 향한 축복의 본질임을 상기시킨다.
# 묵상
선지자의 포로와 예루살렘 함락시기 ( 40:1 )
본문에서 선지자는 자신이 사로잡힌지 25년이 경과했으며, 또한 예루살렘성읍이 함락된때로부터는 14년이 지났다고 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에스겔 선지자가 소명을 받은지 20년이 경과한 때였습니다. 이처럼 선지자가 유다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언급하면서 그시기와 연대들을 첨부하는 것은, 자신의 소명이나 예언내용이 분명히 역사적 사실가운데서 이루어진 진실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상 ( 40:2 )
꿈이나 황홀경 등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신비한 것을 보는것인데, 그것은 단순히 신기한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에스겔 등 많은 선지자들이 이상을 통해서 민족의 앞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알수 있었습니다.
성전척량에 대한 이상 ( 40:5-14 )
에스겔은 이상중에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성전을 척량하는 한사람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천사가 이상중에 성전을 척량한 것은, 에스겔에게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대신 지을 새성전의 크기를 알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환상은 결국 파괴된 성전의 복구를 암시하며, 나아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해줍니다.
성전의 각 문벽위에 새긴 종려나무 ( 40:16 )
종려나무는 신성함과 생명력 그리고 영광을 상징하는 나무로서 성전조각에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종려나무(Palm tree)는 대추가 열리는 대추야자나무로 아라비아 사람들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무였고, 더욱이 용도가 다양했기때문에 매우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이나무는 일반적으로 번영(시92:12)과 아름다움(아7:7,`8)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유대사람들은 성전과 회당, 그리고 돌에 이 종려나무를 새겼던 것입니다. 또한 이나무는 승리의 상징으로써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때 사람들이 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 호산나를 외치기도 했습니다(요12:13).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층계 ( 40:31 )
이는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자는 누구나 감사와 찬송으로 영광돌려야 함을 의미합니다. 외부에서 성전의 바깥뜰로 들어오는데 일곱계단이 있고, 그곳에서 다시 안뜰로 올라오는데 여덟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의 수를 합하면 15입니다. 이는 성전에 올라가는 시편의 숫자와 일치합니다(시120-134편). 그래서 층계마다 한편의 시를 노래하며 하나님의 전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참으로 하나님앞으로 나아가는 자의 모습은 이러해야 합니다. 실로 사람의 근본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분만을 즐겁게 해드리는데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하라고 가르쳤습니다(고전10:31).
속건제 ( 40:39 )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을 범하거나 이웃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을때 이를 용서받기 위한 것으로써, 희생제물을 드리는 이외에 벌금을 물고 또 손해배상을 해야하며 제사장에게 배상액의 2할을 지급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속건제는 범죄한 것에 대해서 사함받기 위한 제사라는 점에서 속죄제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몸을 드려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씻김받을 필요없는 순결한 속죄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인해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은 것입니다.
새성전의 제사장의 자격 ( 40:46 )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사람으로는 레위의 후손중 사독의 자손들이 선택되었습니다. 솔로몬이 반역에 가담한 아비아달 대신에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삼은후부터(왕상1:8; 2:26,35) 마카비시대까지 사독의 후손이 성전을 관할하는 대제사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역시 사독후손을 유일한 정통제사장 가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오늘날의 성도는 각각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몸을 관리하는 청지기이며,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고전3:16).
# 해설
새성전 척량 ( 40 )
에스겔 1장은 서론이며 2-32장은 범죄한 이스라엘과 이방의 멸망을, 33-39장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40-48장은 회복된 이스라엘이 누리게될 거룩한 삶을 예언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장은 40-48장 부분을 여는 첫장으로서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중심이 되는 성전의 크기와 의미를 척량이라는 상징적 행동을 통해 말해주는 부분입니다.
1. 바깥뜰과 문의 척량
1) 동문부터의 척량
에스겔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때로부터 이십오년이 지난해 정월십일에 에스겔은 새성전에 관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환상가운데 천사가 새성전을 척량하였는데, 그천사는 성전으로 들어가는 네 문가운데 동문부터 척량하였습니다. 동문은 태양이 뜨는곳에 위치한 문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출입하는 거룩한 문입니다 (참조, 겔9:19;겔43:4). 또한 그문은 지성소로 곧장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천사는 성전 바깥문중 동문을 가장먼저 척량했습니다.
a.동문으로 나가심(겔10:19)
b.동문으로 들어오심(겔43:4)
2) 일곱계단
동문 척량때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나머지 다른 세문인 북문, 남문, 서문을 척량할때에 그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곱계단을 올라가야 한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일곱은 완전수이며 거룩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칠일동안 이세계를 창조하신 것에서 그수의 의미가 드러납니다(참조, 창2:1-3). 이렇게 볼때 이계단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자가 하나님앞에 거룩하고 완전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말해줍니다.
a.제칠일의 거룩성(출20:11)
b.일곱교회(계1:20)
3) 종려나무 장식
바깥뜰 문으로 들어가면 좌우에 세개씩의 방이 있고 그다음으로는 안으로 들어가는 현관이 있었습니다. 그현관 문벽위에는 종려나무 문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종려나무는 생명력과 풍요, 그리고 영광과 승리를 상징합니다. 이것으로 볼때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에 이무늬가 새겨져 있다는 것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자가 종려나무와 같이 자신의 모든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쳐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a.종려나무 형상(왕상6:29)
b.종려나무(요12:13)
2. 안뜰과 문의 척량
1) 여덟계단
바깥뜰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곱계단을 올라가야 했으나 안뜰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덟계단을 올라가야 했습니다. 이것은 지성소에 점점 가까워지기 때문에 바깥뜰에서 안뜰로 들어가는 자는 더욱더 거룩해지고 온전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한편 그 두계단을 합하면 15가 되는데, 성전에 올라가면서 읊는 시의 편수도 15입니다(참조,시120-시134). 이로 보건대 이계단은 그편수와 맞춘 것으로 보여지며, 이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누구나 감사와 찬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줍니다.
a.온전하라(마5:48)
b.거룩한 자가 되라(벧전1:15)
2) 여덟제단 상
성전 안뜰문에 들어가면 여덟개의 제단상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성전과 다른 형태입니다. 솔로몬성전에는 이처럼 많은 제단상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옛성전에 비해 새성전에 이처럼 많은 제단상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적제사가 많은것과 드려지는 영적제물도 많을것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줍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구나 하나님앞에 나아가 제사를 드릴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a.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요4:24)
b.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음(히10:19)
3) 수직하는 자들의 방
성전안에는 성전을 수직하는 자들의 방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한 장소입니다. 따라서 그곳은 관리되어야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은 성도된 우리의 몸입니다(참조, 고전6:19). 따라서 우리는 우리몸을 거룩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관리를 위해서는 항상 깨어 우리자신들이 죄의 길로 빠지지않도록 경계해야만 합니다.
a.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림(롬12:1)
b.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고후6:16)
3. 새성전 척량의 목적
1) 거룩성 회복
하나님께서 새성전을 척량하는 형식으로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목적은 크게 세가지입니다. 그가운데 첫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하여금 거룩성을 회복하게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성전을 세밀히 보여주심으로 자기백성들이 그성전과 같이 거룩히 되기를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a.진리로 거룩하게 하심(요17:19)
b.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심(엡1:4)
2) 제사회복
성전은 하나님께 나아가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올바른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기위해 세워졌습니다. 옛성전에서는 그역할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새성전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시는 것은 옛성전에서 이루지못한 그역할을 바로 감당케 하기 위함입니다. 바른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하시려는 것입니다.
a.열납된 아벨의 제사(창4:4)
b.참으로 드리는 예배(요4:23)
3) 하나님의 백성됨의 회복
하나님과의 바른관계 회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은 하나님되시고 백성들은 백성되게 하는것을 의미합니다. 성전은 그중심 무대인 동시에 핵심 무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새성전을 보여주시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히 하나님의 백성됨의 관계속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선포해주는 것입니다.
a.아들됨(롬8:14)
b.하나님과 함께하는 그백성들(계21:3)
결론
옛성전은 보이는 성전이요, 불완전한 성전이었습니다. 그성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새성전은 보이지 않는 성전이요, 완전한 성전입니다. 이성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바로 나아갈수 있습니다. 이성전은 큰의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며, 작은의미에서는 우리의 몸을 지칭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며 우리의 몸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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