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지금까지 소식으로 들은 문제에 답한후 이제 그들의 편지에 답하기 시작한다. 고린도인들은 지혜와 지식을 강조한 영성 신학의 입장에서 바울이 이전에 쓴 편지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하나씩 다루는데, 가장 심각한 간음 문제를 다루고 이어서 우상 숭배, 잘못된 예배, 몸의 부활 불신 등을 다룬다.

1. 결혼과 관련된 문제들(고전7장)
본문은 영적인 자들은 결혼상태 속에서도 육체 관계를 피해야 한다는 고린도 교회의 일부 교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권면한다. 바울은 어떤 관점에서 처녀들의 결혼과 독신, 과부들의 재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가?

1) 결혼과 사회신분에 대한 태도
고린도 교회에는 결혼을 하더라도 성관계는 가지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결혼 상태에서는 성관계를 금하지 말아야 하며(고전7:2-7), 믿는 배우자와 헤어짐으로 성관계를 해결해서도 안되고(고전7:10,11), 믿지않는 배우자도 반드시 이혼할 필요는 없음을 밝히고 있다(고전7:12-16). 그러나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과부된 자들에게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임을 강조하는데(고전7:8,9), 이것은 바울이 그들에게 종말론적 선교 사명을 암시해 주는 의도였을 것이다.

2) 처녀에 대한 문제
바울은 처녀에 대하여는 주께 받은 계명이 없다고 조심스럽게 시작한다. 바울은 임박한 환난이라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권면하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고린도인들은 결혼을 해야하는지 하지않아야 하는지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입장을 먼저 긍정하고 결혼이 죄가 아님을 지적한다(고전7:25-28). 또한 독신을 권하는 이유와 재혼의 문제도 선교적 사명과 연결하고 있다(고전7:39,40).

2.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고전8:1-11:1)
본문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우상 숭배의 특별 형태를 다루는 내용이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어도 되는가? 우리의 행동은 무엇에 기초하는가? 바울은 왜 사도권을 사용하지 않는가? 이방 성전 잔치에 참여해도 되는가? 시장 음식을 먹어도 되는가?

1) 기독교인의 윤리적 행동의 기초
바울은 고린도인들로 하여금 우상 성전에 가서 우상 제물을 먹지 못하게 하지만 그의 우선적인 관심은 그들의 윤리적 기초가 잘못됨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고린도인들은 우상 제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먹을 행동의 자유가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아직 그런 지식을 가지지 못하는 약한 자들이 있으므로 그런 자유의 권세를 약한 자들의 양심을 상하게 하는데 사용하지 않아야 함을 권면한다. 윤리적 행동은 사랑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이다.

2) 바울의 사도적 변호
바울은 물질적 후원을 받을 권리를 사양함으로써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며, 여러계층의 사람들이 가능하면 더 많이 복음에 참예하도록 자신의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여러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복음을 위해서는 자기 몸을 쳐 복종하는 절제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3) 이방성전 잔치참여와 시장음식을 먹는 문제
바울은 구약의 출애굽 백성이 광야에서 멸망받은 사실을 상기시키며 구원받은 성도는 이방성전 잔치에 절대 참여해서는 안됨을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 음식을 먹는 문제도 다루는데, 먼저 개인적으로는 그 음식을 먹을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가 다른 사람의 양심에 상처를 줄 상황에서는 먹지 말아야 함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구원얻도록 해야 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은 성도의 삶의 원리를 가르칠뿐만 아니라 자신을 그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3. 고린도 교회의 문제(고전11:2-16:24)
본문은 고린도 교회의 신령한 자들이 이미 천상의 영광스런 존재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예배와 부활 등 여러문제들을 수정하는 내용이다. 여자는 기도와 예언시에 왜 머리를 덮어야 하는가? 성만찬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령의 은사는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 성도의 몸은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1) 예배 문제
고린도 교회의 여자들은 기도와 예언시 머리를 덮지않고 남자들과 동등함을 주장하려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본질적으로 남자가 우위는 아니지만 창조법의 기능상 여자는 남자의 권세아래 있음을 명시하고 서로 구별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2) 성도의 부활 문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과 같이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확인하고, 죽은 자 가운데 부활이 없다(고전15:12)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까지 부정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길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옴을 경고했다. 부활한 몸은 현재 몸과 같이 부패할 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부패하지 않을 영광의 몸,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땅에서 부패할 몸이 죽을 것을 두려워 말고 영광의 몸으로 변화될 날을 기다리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쓸 것을 권면한다.

3) 예루살렘을 위한 헌금 문제와 기타 문제
고린도 교회는 이상과 같은 문제들 외에 그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위해 어떻게 모금하고 예루살렘에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바울은 그들에게 갈 계획을 말하고 먼저 디모데를 보낼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아볼로를 보내달라는 그들의 질문에 답하고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는 권면을 한후에 다시 주께서 임하실 것이라는 미래의 종말을 준비하는 삶을 촉구하였다.

고린도 교회에는 헬라 영육 이원론적 관점에 기초하여 육체적으로 방탕한 삶을 죄로 여기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 결과 현실의 삶에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의 현실의 삶은 미래주의 강림과 몸의 부활을 준비하는 단계임을 밝히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을 권면하였다. 복음의 빚진 자로서 항상 더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주의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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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의 권징

1) 정의
교회에서 말하는 권징이란 교회의 교리적, 도덕적 순결을 유지하기 위한 한방법으로써 복음의 바른 진리에서 떠나 이단 사상으로 교회를 어지럽히거나 심각한 윤리적 죄를 범하고서도 회개치 않는 교인들에게 응분의 징계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2) 권징의 목적
권징을 시행하는 목적은 여러가지로 언급할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첫째 교회 전체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함이며, 둘째 영적으로 병든 상태에 처한 자를 치유하여 마침내 그 개인도 구원하기 위함이다.

칼빈(John Calvin)은 권징의 목적을 말하기를
① 악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② 악인들의 악영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③ 마침내는 악인들도 회개토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처럼 권징은 교회 전체의 교리적, 도덕적 순결을 유지하고 나아가 그 권징의 대상이 된 죄인까지도 회개시켜 구원하려는데에 궁극적 목적이 있지, 단순히 징벌 그 자체나 교회법의 엄격한 시행을 통한 교회의 기강 확립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3) 권징의 바른 시행
교회에서의 권징의 대상은 교회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 중 징계받아 마땅한 죄, 곧 교리적으로 복음의 바른 진리를 거스르는 자(행20:28-30 ; 고전15:12-19 ; 딤전1:18,19)와 각종 불의를 범한 자(행5:1-11 ; 고전6:9,10 ; 갈5:19-21)이다. 그리고 교회에서의 모든 권징은 개인적 권면으로부터 시작하되 범죄자가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을때에 비로소 전 공화의 차원에서 징계를 사용해야 한다(마18:15-17). 한편 교회는 권징을 엄격히 시행하는 동시에 사랑과 용서의 정신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권징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훼방받지 않게하며 나아가 성도들로 하여금 동일한 죄악에 물들지 않게하려는 동시에 나아가서는 그 죄인도 회개시켜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려는 것인 이상 그 목적이 달성되었으며 출교받은 자라 할지라도 그가 회개하였을 경우 다시 교회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고후2:5-11).

2. 부활의 확신이 주는 유익

① 현세에서의 아무 댓가 없는 선행을 기꺼이 하게 된다(눅14:14).
② 신령하게 변화된 몸을 더럽히는 죄를 짓지 않게 된다(고전6:16 ; 15:44).
③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에 더욱 열심을 내게 된다(고전15:14,15).
④ 사람 중에서는 불쌍한 자처럼 보여도 마음에 평안이 있다(고전15:19).
⑤ 현재의 모든 고난도 감내 할수 있게 된다(고전15:30-32).
⑥ 썩어질 세상 것들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버리게 된다(고전15:50).
⑦ 현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알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게 된다(고전15:58).

3. 음행죄

1) 음행의 본질
당시의 헬라 문화권이 대부분 그러했지만 특히 고린도에는 우상의 신전에서 일하는 여사제가 남자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고린도인처럼 행하다' 라는 말이 '매춘 행위를 하다' 라는 의미를 지니게 될 정도였다. 문제는 고린도 교인들 중의 일부가 여전히 옛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창기와 음행하는 죄악을 범한 것이다. 이에 바울은 성도란 예수그리스도와 합하여 영적으로 하나된 자들이란 사실을 상기시켜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고전6:14-17)과 성도가 자신의 몸을 음행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그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전을 더럽힘으로써 심각한 신성 모독에 빠지게 됨을 경고한 것이다(고전6:18-20).

2) 음행에 빠진 이유
고린도 교인이 음행에 빠진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해한데 그 원인이 있다(고전6:12,13). 즉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해하여 성도란 무슨일이든 해도 괜찮다는 식의 도덕 폐기론에 빠져 있었다. 나아가 헬라의 이원론적 사고에 젖어있던 그들은 육을 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취급하여 어떻게 사용해도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죄와 율법에서의 자유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누리되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야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며, 자신의 거룩한 지체를 쾌락이라는 죄악의 도구에 내어 맡겨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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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교만(고전4:18,19 ; 5:2,6)과 능력(고전4:19-20 ; 5:4)의 주제를 이어가면서 고린도전서 1-4장의 배후에 있는 권세와 복음의 위기에 대한 문제, 특히 바울과 교만한 자들의 권세를 다룬다. 즉 고린도전서 5,6장에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현재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에 도취하지 말고 현재 삶 속에서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는 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는 이러한 삶을 살지 못하였기에 바울은 본 서를 통해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음행하는 일과 믿지 않는 자들 앞에 송사를 가져가는 부끄러운 성도들을 향한 잘못을 꾸짖고 있다.

1. 음행한 사람(고전5장)
본문은 성도가 음행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그런 행위에 우유부단한 교회의 태도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바울은 그런 자에 대하여 어떻게 판단하는가? 이 땅에서의 교회의 성격은 무엇인가? 성도가 음행하는 자들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1) 음행자는 축출되어야 한다
고전5:1은 음행 자체의 성격을 보여주고, 고전5:2은 고린도 교회가 음행하는 자에 유연하게 대천한 태도에 대한 바울의 실망을 보여준다. 이는 그동안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음행한 그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 즉 바울은 음행하는 사람을 믿음의 공동체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네번이나 명령한다. 바울은 축출의 방법과 이유를 제시한다. 그리고 유월절 비유를 통해 교회는 이땅에서 순전하고 진실한 공동체로써 유지되어야 한다고 그 축출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제시한다.

2) 이전에 쓴 편지에 대한 오해를 수정함
바울은 교회의 태도로 돌아가서 고린도인들이 바울이 이 문제에 대하여 이전에 쓴 편지를 오해하고 무시한 것과 연결한다. 바울이 이전에 쓴 편지의 진의는 음행하는 자들은 교회 안에서 축출해야 하되 교회 밖에서는 전도와 회개의 대상으로 한정하여 사귈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직접가서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성령 안에서 사도적 권세를 행사하던 이전의 편지를 통하여 그들의 문제를 해결한다.

2. 세상 법정에서 성도의 고소건(고전6:1-11)
본문은 교회 안의 그릇된 일을 불의한 외부인들 앞에서 판단받게 함을 책망하고 교회 안에서의 성도의 판단하는 권세 사용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성도의 판단하는 권세는 어디까지 해당하는가? 성도는 현재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윤리적 삶이 없이도 미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가?

1) 교회의 수치
교회가 교회 안의 문제를 불의한 외부인들 앞에 송사하는 것은 성도가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까지 판단할 것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온 수치스런 처사이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믿지않는 자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될 것이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의 수치는 소송에 의해서 해결될 수 없는 사건이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실패한 삶을 보여준다. 바울은 교인들이 이런 모든 싸움에 휩쓸리기보다는 해를 당하거나 속임을 받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지적하고 있다.

2) 어리석음의 수치와 행악자에 대한 경고
바울은 피차 송사하는 성도들은 그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교회를 수치스럽게 하는 행위임을 지적한다. 성도들은 믿음에 기초하여 비복수적 윤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 만약 고린도 교회처럼 송사나 분쟁이 있을 경우 세상 법정에까지 나아가면 그 교회는 하나님께 향한 정체성을 잃고 스스로 파멸하는 결과까지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처럼 행할 경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위험을 경고한다(고전6:8). 이 경고성 명령은 그들이 회심한 자들이라는데 근거한 성도의 윤리 요구인 것이다.

3. 신령한 사람의 자기 몸 사용법(고전6:12-20)
본문은 고린도 교회 가운데 신령한 사람은 창기에게 가서 몸으로 음행을 행할 자유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다루는 내용이다. 죄로부터 자유케되어 구원받은 사람은 윤리적으로 아무렇게 살아도 죄가 되지 않는가? 몸이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1) 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한다
고린도 교회의 신령하다는 자들은 위와 같이 자유와 몸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6:12에서 직접 그들이 기독교의 자유를 오해하고 있음을 반박하고, 고전6:13,14에서 몸의 본질에 대한 오해도 반박한다. 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하고 주는 몸을 위하여 존재한다. 우리의 몸은 아직 하나님이 부활시키실 때까지 완전하지 못하다. 따라서 바울은 음행을 통해 영적인 감응력에 치명타를 받을 수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음행을 피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 몸은 성전의 전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이런 신학적 근거 위에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명시한다. 즉 몸은 창기와 합하면 저와 한몸이 되고 주와 합하면 한영이 된다. 바울은 음행할 수 없는 신학적 근거로써 몸이 성전의 전이라고 제시한다. 그러므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대하여 요셉이 과감하게 물리쳤듯이(창39:12),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늘 인식하고 요셉과 같은 신앙이 필요하다.

고린도 교회에는 신령하다고 하면서 음행을 행하거나 불신자들 앞에서 형제를 고소하거나 몸으로 음행하는 자유의 권리를 자랑하는 자들이 있었다. 바울은 그들의 윤리적으로 부패한 삶이 근본적으로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근거함을 지적한다. 성령의 은사들을 마치 구원의 증거로 제시하며 윤리적으로 부패한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신비주의자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용하고 몸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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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자가의 도의 이중성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그들의 결여된 영적 분별력으로 인해 미련한 것으로 취급되는 반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믿는 신자들에게는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말함으로써 십자가의 도는 그것을 대하는 자의 태도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고전1:18-25). 사실 십자가의 도는 불신자들에게 미련한 것으로 보일수 밖에 없다. 바울은 그 이유를 유대인과 헬라인이라는 두민족의 특성과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다. 유대 민족은 출애굽 시대부터 예수께서 사역하실 당시까지 끊임없이 이적과 기사의 역사 속에서 살아왔으므로 그들의 종교 역시 표적을 통해 확립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참표적이 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많은 사도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 되었다. 또 헬라인들은 철학적 지혜 속에서 모든 만물의 근원을 캐고 인생의 해결책을 찾으려 했으며, 이성적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배격했다. 따라서 헬라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는 복음, 즉 '십자가의 도'는 미련한 것일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역을 믿는 신자들에게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요, 참지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의 이중성이다.

2. 고린도 교회 분쟁의 분파

1) 바울파
바울의 이름으로 모이는 자들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설립자였으므로 바울을 존경한 나머지 파당을 형성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바울의 사도권을 도전받았으므로(고전9:1-3) 그를 변호하기 위해서 바울파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주류적인 파당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2) 아볼로파
아볼로는 헬라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학문이 많고 구약성경에 능통했으며 웅변에도 능하였다(행18:24-28). 그러나 그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은 요한의 세례밖에 모를 정도로 미미하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바른 신앙을 갖게 되었다(행18:25,26). 그런후에 그는 고린도에 와서 사역을 했는데 (행18:27,28 ; 행19:1) 그런 그가 고린도 교회에 한 당파에 이름을 제공하게 된 것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헬라적 세련미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당파의 사람들은 철학을 좋아하고 이성적인 경향의 사람들이었다. 주의할 것은 바울과 아볼로를 훌륭한 동역자로 생각했다(고전3:4-9). 뿐만아니라 아볼로도이 분쟁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에베소로 와서 고린도에는 돌아 가려 하지 않았다. 이로 보아 바울이나 아볼로는 이 분쟁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스스로 파당을 만들고 분쟁한 것으로 여겨진다.

3) 게바파
이 파가 어떻게 베드로의 아랍어 표현인 게바라는 이름으로 모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이 파를 형성한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직접 세례를 받은 유대인들이거나 아니면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고 사도중 으뜸가는 베드로를 지도자로 모시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로 보여진다.

4) 그리스도파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파당으로 바울이 그리스도파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이 파는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그리스도파가 아니다. 왜냐하면 보편적인 면에서 본다면 다른 세파의 사람들도 그리스도파에 속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울이 자신의 말에 따라 그리스도에 속한다면 바울도 자신이 꾸짖는 파당에 속하게 되므로 자기당착에 빠지게 되며 바울파와도 모순되게 된다. 따라서 이 파는 분명히 대립되는 한 파당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파는 게바파와 성격이 유사한 율법주의자들이거나 주님의 형제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와 그 형제들을 추종하는(고전9:5) 파이거나 다른 세파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그 세파에 대항하는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만든 파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아래 모였지만 배타적인 파당을 형성해 고린도 교회의 분쟁에 참여한 것이 분명하며, 그들 자신들은 그리스도와 관계되어 있음을 주장하는 영적 교만을 서슴치 않았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은사에 풍족하게 되었다. 그들은 말과 지식 등 뚜렷한 은사들을 자랑하며 뚜렷하지 않은 은사들, 특히 바울의 십자가 고난의 은사들을 경시하게 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 그리고 그의 사도적 사역이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기초함을 논증한다.

1.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고전1,2장)
본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이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를 오해한 것을 바울이 수정해주는 내용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은사들을 자랑할때 어떻게 대했는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1) 끝까지 견고케하실 주님
바울의 사도권이 신적 기원을 가진다고 강조되는 것은(고전4:15 ; 고전9:1,2)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바울이 교회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고린도 교회, 특히 '신령하다는 자들'이 바울과 모든 교회와 스스로를 구별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 특히 모든 구변과 지식으로 풍족하게 하심을 감사하는데 그 감사는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더욱 견고케 하게 되어 그들이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감사의 내용에서 그들이 주의 나타나심을 기다려야 하고 그리스도의 날까지 주와 교제하며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될 것을 은근히 촉구하고 있다.

2) 세상 철학에 기초한 지혜와 성령으로 계시된 지혜
바울이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하는 것으로 볼때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완전히 분리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 문제가 본질적으로 지혜 문제에 있음을 지적한다. 고린도 교회는 교회 지도자들을 지혜의 선생으로 보고 그들이 '말의 지혜'가 고린도인들의 지혜 있음을 자랑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들을 선호하면서 바울에게는 적대적이다. 그래서 바울은 구원을 주는 복음은 세상의 지혜, 즉 말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 즉 '십자가의 도' 자체에 있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미렴함, 즉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되었고 또한 세상의 미련한 것들, 즉 고린도인들의 택함을 통해서도 계시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세상의 말과 지혜로 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복음 전파는 하나님의 지혜를 계시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바울은 철학적 지혜로 복음을 이해하려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복음은 성령을 소유한 자들에게만 계시됨을 강조한다.

2. 그리스도에 기초하여 분쟁을 해소함(고전3장)
본문은 스스로 신령하다면서 분쟁하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될 것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신령하지 못한 증거는 무엇인가? 고린도 교회가 자랑해도 되는 것은 무엇인가?

1) 신령한 자가 되는 것과 분쟁이 있는 것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의 복음으로 고린도 교회의 분쟁의 원인을 해소시키려고 했다. 이제 다시 고린도 교회 안에 시기와 분쟁이 있는 것과 신령한 자들이 되는 것은 배타적인 요소임을 밝힌다. 그 교회의 분쟁의 원인은 구체적으로 교회와 지도자의 다양성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울은 농사 비유에서 사도들은 스스로 자랑할 수 없음을, 건축 비유에서 사도들은 유일한 기초인 예수그리스도 위에 조심스럽게 짐을 지어야할 것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을 촉구한다.

2) 모두 그리스도의 것
고린도인들은 지혜의 사도들의 이름으로 분쟁하면서 그들에 속해 있음으로 인해 스스로 지혜 있음을 자랑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의 소유자임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울은 성도들이 현재 구원받았음을 기독론적 관점에서 깨달아야할 것을 권면한다.

3. 고린도인들과 그들의 사도(고전4장)
본문은 고린도인들이 복음과 교회 그리고 교회 선생들의 역할을 신학적으로 오해한 점, 특히 바울의 가르침과 사도적 권세에 대한 오해를 다루는 내용이다. 사도는 누구의 종인가? 참사도된 표시는 무엇인가? 고린도인들이 잘못됨 복음에 기초하여 바울을 적대할때 바울은 어떤 태도로 권면하고 있는가?

1) 참사도의 표시
바울은 자신의 사독적 권세를 주장하기에 앞서서 먼저 종으로서의 사명을 보여준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인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들, 특히 바울에 대해 판단하는 것을 경고하고 오직 주의 심판의 날에 드러나기까지 기다려야 할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자신의 참된 사도됨의 증거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십자가 고난의 신학으로써 고린도인들의 영광의 신학과 대조된다.

2) 호소와 권면
바울은 그의 사도적 권세와 고린도 교회의 잘못된 행동과 신학을 수정할 권리를 다시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아버지와 자녀의 비유를 통해 호소하는 태도로 변증한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호소함에도 불구하고 태도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매를 가지고 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바울은 철저히 종말론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대하지만 단순히 기다리지 않고 철저히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어긋나는 모습을 수정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복음 전파로 세워지고 하나님의 모든 은사로 풍성해졌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모든 은사들, 특히 말과 지혜의 은사를 헬라적 개념으로 오해하여 스스로 신령한 자로 자랑하는데 사용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풍성한 은사는 인정하지만 그 은사들을 자신을 자랑하는데 사용하는 잘못된 태도를 수정하고 자신의 고난의 사역을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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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린도전서의 신학적 의의

첫째, 이교(異敎)와 기독교인의 투쟁을 묘사하고 있으며, 유일신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교회의 제반 행정에 관한 실질적인 교훈을 주고 있다. 즉 '성만찬의 본질, 교회의 권징, 교회나 사회의 교류, 공중 예배에 관한 규례' 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셋째, 초대교회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시해 주고 있다. 즉 당시 초대교회의 성립과 발전, 교리의 확립과 대립, 바울의 전도여행 등에 관한 기록으로 그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넷째, 교회의 은사, 예배 행위, 그리스도인의 은사, 교회론등에 관한 실제와 이론을 보여주고 있다.

2. 고린도 지역의 역사적 배경

고린도는 그리스의 고대 도시로 유명하다. 그리스의 시인 호머(Homer)는 고린도를 '풍요로운 고린도'로 표현할 정도였다. 또한 역사가인 투키디데스(Thucydides B.C.460-400년)는 조선 기술과 뛰어난 상업술을 칭찬했다.
B.C.655년 사이프셀러스(Cypselus) 왕조가 고린도를 정복하고, 그곳에서 금으로 도금한 조상(彫像)을 올림피아 신전에 헌물함에서 고린도 지역의 풍부한 자원을 엿볼 수 있으며, 그의 아들 페리안더 시대의 고린도는 그리스의 중심 상업 도시로 번성하였다.
또한 고린도는 무역의 중심 통로였다. 당시 이탈리아와 아시아, 이탈리아와 그리스간의 유일한 통로였다. 이런 이점을 살려 고린도인들은 통행세를 부과하여 많은 부를 축척하였다. 이러한 예는 당시 아프로디테신전에 있던 수천명의 매춘보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밖에 고린도는 그림과 조각의 본 고장이라 할만큼 예술이 발달하였다.
예수님 당시의 고린도는 어떠했는가? 로마의 속주인 고린도는 아가야라는 행정 구역에 속하게 되었다. B.C.146년 뭄미우스(Mummius)라는 집정관에 의해 고린도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때 그 유명한 '고린도의 놋쇠'라는 합금 금속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후 쥴리어스 시이저(Julius Caesar)가 폐허의 고린도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다. 이후 로마인과 유대인들이 몰려와 다시금 상업 도시로 번성하였다.
따라서 고린도는 다양한 사회적 성격을 띤 민주주의 사회였다. 그런고로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한 제문제들은 이러한 사회상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고린도의 귀족들은 정치적인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자들이기 때문에 혈통적 명예의식이나 권위의식은 없었다. 고린도는 항구 도시라는 특성에 걸맞게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운집해 있는 지역이다. 때문에 이들간의 분쟁이 끊임없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3. 고린도 교회의 상황

1) 긍정적인 고린도 교회의 상황
당시 고린도는 부의 상징이며 쾌락과 타락의 대명사였다.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하지 않지만 이방 종교의 사원보다는 초라한 건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기쁨과 환희에 충만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6:11)라는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교인들은 어느 누구의 인도함에 따라 교회에 모인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지대로 스스로 모인 것이며, 스스로 그 직분을 담당했다. 즉 말씀 봉독, 기도, 찬송, 강론 등은 성경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루어졌다.

2) 부정적인 고린도 교회의 상황
이들 교인들에게는 사랑과 질서가 없었으며 영적인 무지, 교만, 사도권에 대한 반박, 부도덕한 행실 등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교회를 향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형제들이며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교회"라고 언급하였다. 이는 함부로 하나님의 교회와 자녀들을 비방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4. 고린도전서의 내용 전개

본 서는 세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1-4장으로 당시 고린도 교회는 예수파, 아볼로파, 바울파, 베드로파 등으로 분립하여 끊임없이 교회 분쟁이 야기되었다.
둘째, 5,6장은 계모와의 간통사건을 무게있게 다룬 것으로 당시 음행에 관한 문제를 다룬 부분이다.
셋째, 고린도 교인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결혼, 독신, 이혼, 재혼과 우상에 바쳐진 제물을 먹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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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

고린도전서의 저자가 바울이란 사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첫째로 서신 자체가 바울이 이 서신의 저자라는 사실을 증거한다(고전1:1 ; 고전3:4-6 ; 고전16:21). 둘째로는 서신의 문체와 사상이 바울 서신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셋째 초대교회의 여러교부들이 이 서신의 저자가 바울 사도임을 증거했다. 주후 95년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가 고린도 교회에 글을 보내어 그들의 계속되는 분과 문제에 대하여 언급할때 이 서신을 인용한 것으로 입증된다. 또한 이그나티우스(Ignatius), 폴리갑(Polycap) 등 많은 교부들이 이 사실에 동의하였다.

2. 저작 장소와 시기

본 서신을 쓰기전에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에 보냈다(고전4:17 ; 고전16:10 ; 행19:22). 디모데가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로 가고 있는 동안에 고린도로부터 사람들이 와서 여러가지 소식과 문의 편지를 받고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고린도전서를 써준 것으로 생각된다. 고전16:8로 보아 에베소에서 이 편지를 썼다고 여겨진다. 바울이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에 머무른 것은 두번 알려져있는데, 한번은 고린도 교회를 설립한 후 잠깐 방문했던 적이 있으며(행18:18-21), 또 한번은 3년간 장기적으로 머문적이 있다(행20:31). 고전16:19에 아시아의 여러교회의 문안을 전하는 것으로 보아 바울은 이미 그곳에 상당기간 머무르고 있었다고 여겨지며, 바울이 고린도에 가서 겨울을 날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여름철 이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바울이 두번째 에베소에 체류하던 시기에 본 서신을 기록했다고 보며, 그가 에베소를 떠나기 전인 주전 54년에서 55년으로 그 저작 시기를 생각할 수 있다.

3. 고린도

고대의 화려하고 부유했던 고린도는 주전 146년에 로마 군대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오랜 후에 시저(Caesar)에 의하여 그 도시는 로마의 식민지로 재건되어 주전 29년 이래로 아가야 속주의 수도가 되었다. 새로이 건설된 고린도는 그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동서 교역로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고린도는 동서 사방으로부터 문물이 모이는 무역 항구로 부유한 도시가 된 동시에 수많은 민족들과 종교, 사상들이 혼합을 이루는 장소였다. 그 도시의 도덕적 분위기는 매우 타락되어 있었으며 아프로디테(Aphrodite) 신전에는 수많은 종교적 창녀들이 있어 간음과 같은 성적인 타락 행위를 공공연히 유포시켰다. 이 도시에 있던 12개 이상의 신전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사랑의 여신 아데미에 바쳐진 신전이었다. 아데미 여신의 숭배자들은 이 신전에서 봉사하던 여사제들과 어울려 종교 의식의 한 절차로 음행을 저질렀는데, 한때 이 신전에는 1천명의 여사제들이 있었다. 이처럼 고린도는 거대한 상업 도시로써 음란과 방탕이 만연해 있었으며, 아데미 여신 숭배를 종교라는 미명하에 음란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4. 고린도 교회

제2차 전도여행 중 바울은 주후 49년경에 마게도냐로부터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 와서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은 1년반 동안 고린도에 머무르면서 손수 장막을 지음으로 그의 일행의 경비를 충당하였다. 그때 로마로부터 황제의 추방령에 의하여 고린도에 온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부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그를 도왔다(행18:1-3). 바울의 헌신적인 전도 활동의 결과 고린도에는 상당히 큰 그리스도인 회중이 형성되었다. 그 교회는 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얼마간 포함되어 있었으며(행18:4 ; 고전7:18), 사회적으로는 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상류 계급과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고전11:21). 고린도 교회의 주요 인물들로는 회당장이었던 그리스보(행18:8), 디도 유스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글로에, 스데바나, 가이오, 에라스도 등을 들수 있다.

5. 저작 동기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후 그 교회는 계속 성장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안정되고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었다. '글로에의 집 사람들'(고전1:11)을 통하여 들은 고린도 교회의 소식은 바울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하는 것이었다.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고린도 교회 안에 분파가 생겨 서로 다툰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바울을 분노케한 것은 이방인들까지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자들을 여전히 용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자가 자기의 계모와 동거 생활을 하고있는데 교회가 그것을 묵인하며, 어떤 자들은 교인으로서 여전히 창녀들과 간음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교회에서 성찬을 하기전에 온 교우가 함께하는 예찬에서 부유한 자들은 실컷 먹고 마시는데, 가난한 자들은 그들의 빈약한 음식으로 인하여 모멸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성찬전에 실컷 먹고 마신 자들은 이미 취하여서 성찬에 경건하게 참석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한편 영적인 감성주의에 빠진 고린도 교인들은 성령의 은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절제치 못하여 예배의 질서가 파괴되곤 하였다. 특별히 방언의 은사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성령의 역사를 오해하는 경향도 있었다. 또 하나 바울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게한 것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전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며 장래의 부활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거나 영적인 부활만을 말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소식들 외에 고린도 교인들이 써보낸 편지(고전7:1)에 여러가지 문제들이 제기 되었다. ① 그리스도인으로서 결혼하는 것이 좋은지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이방인과 결혼한 자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하는 것, ② 그리스도인이 된 종과 주인의 관계는 어떠해야 되는지, 또 그리스도인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종노릇해서는 안되는 것인지 하는 것(고전7:21-24), ③ 시장에서 파는 우상의 제물을 사 먹을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 ④ 예배 참석시의 복장 문제로 특별히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었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에 가장 큰 위험을 미친 것은 영지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로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육을 벗은 영적 인간에게는 완전한 구원과 무조건적 도덕적 자유가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영향이 고린도 교회에 부도덕한 생활과 성령의 은사에 대한 오해와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는 문제를 일으켰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만을 강조함으로써 모든 이단적 영향들을 배격하고자 하였다(고전1: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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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행복하고 보람있는 삶 (최낙규 목사)

[고린도전서 10장 23절~33절]
23절 -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절 -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절 -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절 -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절 -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절 -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절 -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절 -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절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절 -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절 -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23~24절)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살지 말고 남을 위해 사는 삶
(31~33절)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
*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고 보람있는 삶이다. -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라.

제목 : 오직 예수의 십자가 (곽요셉 목사)

[고린도전서 2장 1절~5절]
1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절 -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절 -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절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절 -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기독교의 진리 : 예수님과 십자가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 응답을 받는다.
(2절) 예수님과 십자가의 사건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시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다. (필연적인것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이다.(하나님의 계시)
예수 십자가의 사건으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는 것이다.
(고전1:18)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 것이다.

  - 고린도전서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23~25) 십자가에 대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복음)

  - 고린도전서1:23~25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십자가를 통해 깨달는 것
  - 나는 죄인이다.
  - 고귀한 사람이다.
(2절) 구원 받은 사도의 고백이다.
내가 죽어야 주님이 역사하신다.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 안에서만 답을 얻을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따라 갈때 구원받고 승리하며 축복받는다.

제목 :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지혜로 (이수영 목사)

[고린도전서 2장 1절~9절]
1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절 -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절 -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절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절 -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절 -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절 -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절 -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절 -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5절) 전할 것을 전하지 않고 사람의 말과 지식으로 전도했음을 깨달고 결심한 말이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지혜로 전도할 것을 결심)
(6~9절) 복음의 사역은 사람의 능력과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 십자가)
복음을 복음 그대로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고 전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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