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합하라

[고린도전서 1장 1절~17절]
1절 -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절 -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절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절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절 -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절 -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절 -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절 -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절 -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10절 -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절 -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절 -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절 -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절 -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절 -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절 -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절 -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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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회의 분쟁
10절 : 권면 _ 분쟁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절 : 저작 동기 _ 바울이 분쟁의 소문을 들음
12-16절 : 분쟁 원인 _ 분파하여 다툼(바울, 아볼로, 게바, 그리스도파) / 사도에게 직접 세례 받음을 내세움
17절 : 해결책 _ 보내심의 목적은 세례가 아닌 복음 전파임

* 도움말
1. 사도(1절) :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는 ‘보냄을 받은 자’, ‘대권자’ 란 뜻으로, 이는 고린도전서가 인간의 말이 아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얻기 위해 반드시 경청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의미한다.
2. 바울…아볼로…게바…그리스도(12절) :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들의 이름 아래 분파를 형성하고, 자신의 선생이 더 우월한 선생이라고 주장했다.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를 추종하지 않았던 이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에게 직접 속했다고 주장하고 분파를 형성했다.

* 말씀묵상
1.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
바울은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꾸짖기에 앞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사랑을 증거하며 여전히 거룩한 성도임을 인식시켰고(2절), 그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소원했습니다(3절). 사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풍성한 지식과 그리스도의 증거와 성령의 은사’(5-7절)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받은 이러한 은혜를 무익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그러한 은사를 주신 것과 자신이 이제 꾸지람을 베풀려는 궁극적인 의도가 그들을 미워하여 망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마지막 날까지 견고케 하기 위함임을 증거합니다.

2. 진정한 신앙의 핵심
바울에 따르면, 그들이 분쟁을 일으킨 일차적인 요인은 바로 고린도교회에서 사역했던 영적 스승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스승인 베드로와 바울, 아볼로에게서 영적 지식을 전수받았고, 직접 세례를 받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로 이러한 은혜로 인해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존경하고 또 자신에게 세례를 준 스승의 이름을 중심으로 분파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껍데기 신앙을 질책한 후, 진정한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줍니다. 그 신앙의 핵심은 바로 복음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입니다. 영적 스승과 세례는 모두 선한 것이로되 복음과 십자가를 비켜 가게 되면 결국 그들을 타락시키는 것이 됩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고린도교회의 분쟁 원인은 무엇이며, 바울이 말한 해결책은 무엇입니까?(12-17절)
2.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11절)
* 깊은 묵상
1. 고린도교회처럼 당신의 교회나 공동체도 분파하여 다투고 있지는 않습니까?
2. 당신의 삶과 인간관계는 무엇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습니까? 신앙적 요인입니까 아니면, 세속적 요인입니까?
* 적용 기도
참 믿음과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을 따라 살게 하소서.


제공:프리셉트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고린도전서 15장 1절~11절]
1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절 -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절 -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절 -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절 -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절 -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절 -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절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절 -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절 -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절 -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말씀 포인트 : 부활을 아는 것과 부활을 믿는 것은 다릅니다. 부활의 원천이신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먼저 있어야 나의 부활과 영생을 취하게 됩니다. 부활에 대한 바울의 고백을 살피면서 자신의 믿음을 새롭게 점검해 보며, 이 부활 신앙이 오늘 각자의 삶의 현장에 살아서 역사하는 신앙으로 구체화되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1)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은 무엇인가요?(1~2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전한 복음을 굳게 지키고 믿어서 구원을 받으라고 당부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사역,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최후 심판과 재림에 관한 교훈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부활 신앙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고린도 교회를 향해 복음의 진리를 상기할 것을 촉구하며 부활을 언급합니다. 복음은 이해하고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가슴과 영으로 확신하며 삶에서 행함으로 나타나야 하는 통합적 가치입니다. 바울은 ‘헛되이’라는 말을 사용해 복음이 잘못 해석되고 수용되는 것을 지적하며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함을 강조합니다. 복음은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알리는 가장 고상한 지식이며 가장 보편적인 은총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복음을 바르게 지키고 전파해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2)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떻게 전파되어서 자신에게까지 이르렀다고 설명하나요?(3~8절)
바울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후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게바와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맨 마지막으로 만삭되지 못한 자신에게도 부활을 보이셨다고 설명합니다.
바울은 이제부터 말하려는 기독교 진리의 핵심인 부활 신앙에 대해, 주님이 자신에게 직접 보이신 것임을 설명하며 그 중요성과 확실성을 강조합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예수님이 임의로 만들거나 즉흥적으로 일으킨 사건이 아니라 구약에 예언된 그대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임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죄인 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아를 통해 사망을 이기는 부활의 비밀을 고안하셨는데, 이는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바울은 주님이 죽으신 사건이 실제 사실임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 제자들에게 보이셨음을 증언합니다. 바울은 특히 부활의 목격자들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는데, 그 이유는 주님의 부활이 명확한 사실이라는 것과 부활의 증인 가운데 자신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체험을 소개하면서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변화되었고 이후의 삶은 주님과 함께하고 있음을 생생히 증언하며 부활 신앙이 얼마나 강력하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강조합니다.

3) 바울은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동적으로 고백합니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요?(9~10절)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던 자신은 사도라 칭함 받을 자격이 없지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도보다 수고하고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여러 서신을 통해 자신의 사도직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함이지 결코 자신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늘 자신을 ‘죄인 중 괴수’라고 말하며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식하고 있던 겸손한 리더였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모든 사도 중 가장 작은 자라고 말합니다. 과거에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했던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 어떤 사도보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며 수고했음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목숨을 걸고 전심전력을 다하여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수십 차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바울은 복음 전파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장 18절~31절]
18절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절 -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절 -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절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절 -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절 - 우리는 십자게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절 -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절 -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절 -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절 -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절 -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절 -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절 -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절 -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말씀 포인트 :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십자가를 빼놓고는 기독교 신앙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는 죄를 징벌하는 정의와 죄인을 용서하는 사랑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죄를 심판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우리가 의지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뿐입니다.

1) 사도 바울이 전한 것은 무엇이었나요?(18, 23절)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다시 말해 십자가의 도를 전했습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절묘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본래 정의란 죄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죽어야 할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기 위해 강구하신 방법이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공의를 이루셨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향한 사랑도 성취하셨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죄와 사망이 해결되어야 하는데, 십자가는 이 둘을 동시에 해결했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에 선포할 것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뿐입니다.

2) 십자가의 도,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18, 23~24절)
사도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즉 십자가의 도를 전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우선 십자가의 도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항하지 못하고 죽은 것은 표적이 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오셨다면 오히려 믿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피 흘려 죄를 씻으시려는 계획이 성취될 수 없었습니다. 한편,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었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들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극적인 사랑의 표현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반면, 부르심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도를 통하여 구원의 능력을 맛보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십자가를 사랑하고 증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십자가에 대한 반응은 둘로 나뉘고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자랑하려면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참조 27~31절)
구원이란 인간적으로 이해되거나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 자체가 불합리합니다. 죄인은 벌을 받아 죽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또 신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헬라 철학의 이원론에서는 성립될 수 없는 논리였습니다. 헬라 철학자들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가로 놓여 있어서 왕래가 불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이 인간이 되는 성육신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분이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죽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신비는 인간의 지혜로 이해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얻는 은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은 우리는 오직 주님만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출처 : 생명의 삶

부활은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12절~28절]
12절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절 -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절 -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절 -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절 -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절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절 -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절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절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절 -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절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절 -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절 -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절 -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절 -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절 -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절 -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아버지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의사로부터 “이 아이는 귀가 없는 채로 태어났습니다. 평생을 귀머거리로 지내야 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차분한 표정으로 확신 있게 말했습니다. “귀가 없이 태어났더라도 그것 때문에 평생을 귀머거리로 지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25년 후, 뉴욕의 한 권위 있는 의사가 엑스레이 필름을 들고 진료실로 들어와 “기적입니다. 모든 각도에서 이 청년의 머리를 촬영했지만 청력 기관의 징후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정상인 청력의 65퍼센트를 갖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치유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고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성공 철학의 대가인 나폴레옹 힐(Napoleon Hill)입니다. 그는 「당신 안의 기적을 깨워라」라는 책에서 자신의 청력에 대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대한 믿음’ 덕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 위의 글을 읽고 묵상한 후 과학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지, 주변에서 기적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서로 나눠 봅시다.
기적은 그 본성이 독특하며 예측 불가능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와 반대로 과학은 ‘사실들의 주체나 조직적으로 정리된 일반 법칙들의 작용을 보여주는 진리들을 다루는 지식이나 연구의 한 분야’입니다. 기적은 일련의 법칙에 의해 작용하지 않습니다. 기적의 발생을 예견할 방법은 없으며, 기적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도 전혀 없습니다. 과학을 추구하는 사회는 그처럼 ‘비과학적이고 드문’ 사건들을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자유롭게 일하십니다. 그런 행동은 과학이 알 수 있는 ‘일반 법칙들의 작용’ 범위 안에서 목격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드물지만 특별 목적에 따라 일반 법칙들을 뛰어넘어 행동하시기도 합니다. 그 결과가 기적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자신을 나타내기 원하시는 창조적이고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이런 축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실제적인 축복입니다. 따라서 이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2. 고린도교회의 어떤 사람들이 믿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12절)
그들은 죽은 자가 살아나는 부활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이시니까 부활할 수도 있지만 그들과 같이 죄 가운데 태어난 사람들은 부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죽은 지 매우 오래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현실적인 의문도 있었습니다. 사기 그릇을 깨뜨렸을 때 속히 조각들을 모아도 완전해지지 않고 작은 조각들을 찾을 수 없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하나님도 죽은 지 오래 되어 그 형체마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살아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에 대해 잘못 알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믿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은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제대로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나의 생각에 딱 들어맞는 것만 믿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해가 되든, 되지 않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나보다 더 크심을 알기에, 지금은 이해되지 않아도 성경이 그것을 말씀하시면 믿을 수 있습니다.

3. 만약 부활이 없다면 어떤 결과를 맞이합니까?(13~19절)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지 못하셨을 것이고, 우리가 전파하는 일과 믿는 일도 모두 헛것이 되며,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도 부활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성도들이 전하는 메시지도, 믿음도 헛것이 됩니다. 여기서 헛것이란 속이 텅 비어 빈껍데기뿐인 상태를 말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교회도 텅 비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무덤 안에 그분의 시신이 썩는 채로 존재한다면 우리의 복음과 메시지는 헛것이 되고, 그동안 우리는 새빨간 거짓말을 한 것이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하며,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도 진리로 가득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여전히 죄에 묶여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죽음이 모든 사람의 지배자가 됩니다. 부활이 없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어떤 부자도, 권력자도 죽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레온 모리스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그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인보다 낫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우리는 사망을 이겼습니다.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4. 성도들의 부활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는 무엇입니까?(16, 20절)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우리도 부활할 수 있습니다.
나무를 보고 어떤 나무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려 있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그 나무가 사과나무인지를 아는 데 사과 열매 하나이면 충분합니다. 사과가 하나밖에 없다고 그 나무를 배나무나 포도나무로 여기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살아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20절). 우리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합니다.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우리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비록 지금은 부활이라는 나무에 예수님이라는 열매 하나만 달려 있지만, 그 열매는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서 새로운 몸으로 영원한 삶을 살게 될 우리의 소망에 대한 징표입니다. 열매가 달리지 않았을 때는 이 나무나 저 나무나 모두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열매가 하나 달리면 그 열매는 그 나무의 정체성이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뒤를 따라 부활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분이 장차 오시는 날이 그 열매가 맺히는 날입니다.

5. 일상에서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제한하는 영역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경우에 따라서 나에게 유익한 부분만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을 오해하고 제한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부활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지만, 우리는 또 다른 영역에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적 영역만큼은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우리가 맡기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할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의지하고 싶은 것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영역에서 창조주이시고 주인이십니다.

6.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환난을 이기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성도들은 세상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 살고 삶 자체에 고난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모호하게 당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시험이 닥칠 때, 부활의 주님을 생각하면 새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의심과 절망을 떨쳐버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십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부활이라는 놀라운 사건 앞에선 작게 보입니다. 지금 닥친 어려움이 있다면, 부활의 주님을 생각하면서 힘을 내고 소망을 가지십시오.

출처 : 생명의 삶

부활은 여전히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12절~19절]
12절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절 -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절 -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절 -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절 -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절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절 -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절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1. 고린도 성도들 중에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어떻게 되셨을까요?(13, 16절)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도 죽은 사람들 중에서 살아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 오셨기에 죽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인성을 갖지 않고 신성만 가지셨다면, 그분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부활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사람이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무덤에서 3일을 보내신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사람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무덤 속은 분명히 비어 있었고, 수많은 목격자가 예수님을 보고 만졌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음식을 드셨고 사람들과 대화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분이십니다. 만약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도 다시 살아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셨고 우리처럼 죽으셨으며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도 그분처럼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부활은 분명히 있었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를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2. 만약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과 복음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14~15, 17절)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전하는 것은 거짓이고,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헛것이란 비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메시지가 속이 꽉 차 있으려면 예수님의 무덤은 반드시 비어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무덤 안에 그분의 시체가 썩은 채로 존재한다면, 우리의 복음과 메시지는 비어 있는 것 즉 헛것이 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팔아 거짓을 전한 사람이 될 뿐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거짓말을 전한 우리가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것은 마땅합니다. 또 부활이 없다면 죽음은 여전히 정복되지 못한 과제로 남아 있을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병 고침을 받았다고 해도, 일이 잘 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는 동안 모든 일이 형통하다고 해도 죽음과 그 다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십자가만 있고 부활이 없다면 복음은 반쪽짜리일 뿐입니다.

3. 만약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지경에 처하게 됩니까?(19절)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합니까?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부활은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레온 모리스라는 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어느 누구이든 그리스도인보다 낫다.” 그만큼 부활이 없는 기독교, 부활이 없는 성도는 생각할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이라는 소망을 갖고 있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견디고 이겨냅니다. 심각한 질병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까닭도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때로 부당한 대우와 핍박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 이유도 부활의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쾌락, 즐거움, 편안함 등을 포기하고 절제하는 이유도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부활이 없다면 그동안 모든 삶은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쓸모없는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있지도 않은 것에 인생을 투자하는 일보다 더 허망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성도들이 불쌍해 보여도, 마지막 때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부활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증거가 되십니다. 부활은 확실히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이 땅에서 조금 손해보고 포기하며 살아도 좋습니다.

4. 내게 부활 신앙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임을 믿고 지금의 어려움을 잘 견디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나의 부활을 믿는다면 다가오는 고난들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몸으로 예수님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새 힘을 줍니다. 부활의 몸은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몸과 다를 것이 없기에 지금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도 견딜 수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기뻐할 수 없을 때 기쁨을 주고,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5.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고 복음을 전하는 것과 확신을 갖지 못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탄생만큼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도들조차 성탄절을 거창하게 지키지만 부활절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여기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죽으심과 더불어 기독교의 기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할 때마다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도자가 먼저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고 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면, 그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담대하게 부활을 전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출처 : 생명의 삶

사랑이 없으면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1절 -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절 -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절 -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절 -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절 -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절 -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절 -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절 -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절 -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절 -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절 -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절 -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절 -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1. 바울은 사랑이야말로 가장 좋은 길임을 알았습니다(고전 12:31).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1~3절)
그리스도인들에게 방언과 같이 유익한 하나님의 선물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유익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방언과 같은 은사를 귀하게 여깁니다. 그 은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소중한 것이고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비밀을 아는 지식이 있으며 큰 믿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는 데 앞장서고 전적으로 자신을 희생한다면 사람들에게 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일을 사랑이 없이 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며 그들을 지탱하게 하는 버팀목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 없이 일하지 않기를 결심해야 합니다. 타성에 젖기 쉬운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잊기 쉽고, 이웃에게 대한 사랑을 소홀히 하기도 쉽습니다. 우리는 가르치는 것도, 구제하는 것도, 헌신하는 것도 사랑의 바탕 위에서 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말과 행동은 하나님도 기억하시지 않습니다. 사랑 없이 일하는 것은 허공을 치는 것과 같고 사람을 지치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만이 의미 있는 일입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습니까? 그것은 세상의 사랑과 어떻게 다릅니까?(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어서 세상의 이기적인 사랑과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세상에도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도 아름다울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것입니다.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 쪽이 돌아서거나 애정이 식으면 사랑도 유지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다릅니다. 그분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으로 흐릅니다. 그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이 사랑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그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랑이 없습니다. 주고받는 사랑은 있지만 일방적으로 영원토록 흘려보내는 사랑은 없습니다. 그 놀라운 사랑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 사랑의 물결이 우리에게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그 사랑을 다시 흘려보내기를 바라십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로입니다.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예수님을 닮고 그분의 사랑을 닮아가야 합니다.

3.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해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세 가지 중에서 으뜸인 것은 무엇입니까?(13절)
바울은 영원한 것 세 가지로 믿음, 소망,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모두 귀한 것이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랑을 가장 귀한 것으로 지목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 소망, 사랑의 절대적 가치보다 영원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믿음은 사람을 구원합니다. 믿음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소망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천국과 상급에 대한 소망은 넘어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웁니다. 하지만 믿음과 소망은 세상에 있을 때에만 유효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만, 천국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눈으로 볼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지만, 천국에 들어가면 더 이상 소망을 품지 않고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은 다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할 것입니다. 사랑은 세상이나 천국에서 동일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위대함입니다. 믿음과 소망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한 후에 사라지고 그 모양이 바뀌지만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찬송할 것입니다.

4.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는 사랑과 나의 모습은 어떻게 다릅니까? 내게 어떤 부분이 가장 부족합니까?
현대인은 휴식도 없이 바쁘게 살아갑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고, 그분의 사랑을 묵상할 기회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잠시 일을 멈추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들을 묵상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내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에도 하나님은 나와의 교제를 위해 항상 기다리십니다. 하루에 10분만이라도 하나님과 대화하며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가슴에 새겨보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5. 사랑 없이 의무감으로 하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그 일을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는지 돌아보십시오.
무슨 일이든지 처음에 사랑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섬기는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일을 처음 맡았을 때 기쁨과 감격을 누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없어지고 사람들에 대한 사랑도 사라지게 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적 봉사보다 내적 사랑을 더욱 원하십니다. 어쩌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잠잠히 있는 것을 더 좋아하시는지도 모릅니다. 열심히 일하더라도 사랑을 회복하십시오. 사랑의 마음을 갖고 일하면 야곱처럼 7년을 수일처럼 여기게 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자유

[고린도전서 10장 23절~33절]
23절 -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절 -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절 -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절 -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절 -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절 -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절 -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절 -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절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절 -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절 -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1. 능력이 선으로 인정받는 세상에서, 바울은 세상의 일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23절)
바울은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고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바울은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만약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죄가 아니라면)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구원받은 바울을 얽어매고 속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자유인이고, 그 자유는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은 시장에서 파는 것을 마음껏 사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먹어도 전혀 거리낄 것이 없는 담대함과 자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경우에 바울을 움직인 것은 그의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을 움직이게 한 요소는 과연 그것이 유익한 일인가, 덕을 세우는 일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유인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덕을 세우기 위해 스스로 자유를 제한했습니다. 그가 자유를 포기한 까닭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함이고, 연약한 사람들의 성숙을 위함이었습니다. 성숙한 사람들은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며 자신의 자유를 포기합니다.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이었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2. 바울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일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24절) 이를 위해 그가 일상에서 제시한 예들은 무엇입니까?(25~30절)
바울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라고 권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명제였습니다.
바울의 삶에서 첫 번째 명제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욕구가 해결돼야 하고, 자신의 안전이 확보돼야 하며, 자신의 명예가 충족돼야 합니다. 그들의 중심에 항상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라도 이익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보는 시각입니다. 바울은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인생 법칙에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이 있었습니다. 먼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울에게 또 다른 기쁨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나눠주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실족시키지 않으려 했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유를 제한했습니다. 세상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귀하게 보는 사람들을 통해 더욱 좋아지고 천국을 바라보게 됩니다.

3. 바울에게 이웃들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 외에 또 다른 삶의 기준은 무엇입니까?(31절)
바울에게 또 다른 명제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명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먹고 마시는 것조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바울에게 전도뿐 아니라 사소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흔히 우리는 세속적인 일과 성스러운 일로 나누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세속적인 일은 없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고, 그 일에 충성하면 상을 받게 됩니다. 하찮게 보이는 일들, 예를 들면 거리를 청소하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 등은 결국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바울에게 먹고 마시는 일은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기회였습니다. 우리도 그 귀한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울과 다른 점은 귀한 기회를 자주 놓치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시고, 모든 일에서 우리를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4. 나는 일을 할 때 주위를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전혀 의식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한쪽으로 치우치기를 잘 합니다. 일을 하면서 주위의 눈치를 심하게 보거나 다른 사람들을 아예 무시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일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연약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것으로 여기고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연약한 사람들 사이에 서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도 의식하고 연약한 사람도 의식하면서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5. 모든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최우선으로 둡니까?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손해 보기를 감수합니까?
우리는 이런저런 상을 받는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들은 분명히 자랑스러운 신앙인들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말과 함께 겸손하고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임을 공공연하게 자랑했던 공인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실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보다 행동과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하나님의 일꾼은 이렇게 산다

[고린도전서 4장 1절~8절]
1절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절 -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절 -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절 -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절 -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6절 -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7절 -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8절 -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1.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입니까?(1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꾼이자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성도에 대해 ‘그리스도의 일꾼’이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표현합니다. 일반적으로 신약성경에 나오는 종이나 일꾼은 ‘둘로스’(종) 아니면 ‘디아코노스’(집사)라는 단어로 많이 쓰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특이하게도 본문에 기록된 일꾼이라는 단어로 ‘휘페레테스’라는 헬라어를 선택했습니다. 이 단어는 배 밑창에서 노 젓는 사람을 뜻하는데, 그 일은 중노동이었기에 노예들이 그 일을 담당했습니다. 배 밑창에서 노 젓는 일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변에 볼 것도 없고 남의 이야기를 들을 것도 없습니다. 그저 선장의 구령에 맞춰 노만 저을 뿐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일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묵묵히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바울이 성도에 대해 표현하는 두 번째 단어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맡은 자’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인데, 주인을 대신해 일꾼들을 감독하고 주인의 행정적인 일들을 맡아서 처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로마에서는 자신의 후계자가 될 아들도 ‘맡은 자’의 손에 맡겼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종의 신분이지만 마치 주인처럼 온 집안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꾼이자,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이라는 이중적인 신분을 가진 특별한 존재입니다.

2. 하나님의 일꾼인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이런 요구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옵니까?(2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성공’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하나님은 우리의 성공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무엇보다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사람들이 일의 크기나 성공 여부에 관심을 집중시킬 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다섯 달란트를 남겼든, 두 달란트를 남겼든 그 양에 연연해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마음을 다해 충성했느냐, 충성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과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일꾼이고 ‘맡은 자’이기에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기준은 ‘인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청지기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 한다면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일할 것이고 사람의 귀에 좋은 말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은 하나님만을 의식합니다. 바울은 ‘내가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갈1:10)라는 말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납니다. 바울처럼 날마다 누구에게 충성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인이 하면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며 그 일에 주의하는 사람에게 어떤 결과가 있습니까?(3~5절)
그리스도인이 하면 안 되는 일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판단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각 사람의 순수한 동기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일꾼과 ‘맡은 자’가 해야 할 일이 충성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판단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일을 작게 여기라고 권합니다(3절). 사람들은 우리를 판단할 수도 없고, 그 판단이 정확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 성도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신을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바울은 3절에서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잘 하는지, 못 하는지 판단할 자격과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성도를 사랑할 뿐이지 판단하는 일은 주님의 몫으로 넘겨야 합니다. 마지막 판단은 주님이 오실 때 완벽하게 이뤄지기에 그때까지 비판의 입술과 눈을 닫고 모든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자신의 책임에 집중해야 합니다. 나는 충성할 뿐이지 비판하지는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4. 하나님보다 세상에 더 충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성공하는 인생보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눠 봅시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병에 걸리면 하나님을 바라보기 힘듭니다. 또 하나님에게 충성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아부하고 충성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가시적인 성과와 사람들의 평판 등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분을 향한 중심만을 올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을 하나하나 처리하면서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세상은 사라질 것이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5. 나는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조급한 판단을 늦추기 위한 유익한 방법에 무엇이 있는지 나눠 봅시다.
지금 우리는 무한 경쟁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실수가 나의 기회가 되고, 그 반대로 다른 사람의 탁월함이 내게 불이익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하면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려 합니다. 다른 사람의 강점을 감추고 약점만 들춰내어 험담을 합니다. 이런 삶에 익숙해지면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이 무서운 죄악이라는 경각심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남을 판단하는 것은 부메랑이 되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 때문에 내가 높아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결국 세상의 논리에 불과합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덮어줄 수 있는 아량이 참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출처 : 생명의 삶

십자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고린도전서 1장 18절~25절]
18절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절 -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절 -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절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절 -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절 - 우리는 십자게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절 -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절 -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1. 하나님이 사람들을 구하시려고 보여주신 구원의 길은 무엇입니까?(18절)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까?(21절)
하나님은 구원의 길인 십자가의 도를 제시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도는 ‘전도’라는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은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라는 것은 모든 인간이 죄인이기에 많은 선행, 수양, 지식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음을 믿을 때에만 구원받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또 ‘십자가의 도’는 서로 소통해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토의의 대상이 아닌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인정받고 싶어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도’를 구원의 길로 정하셨고, 그것을 믿는 사람만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십자가의 도’라는 것도, 전도라는 것도 너무 배타적이고 세상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아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도’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더라도 하나님이 그 길을 정해 놓으셨기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도’에는 영원토록 타협점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듣고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만 있을 뿐입니다.

2.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길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입니까? 그 길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23절)
구원의 길인 ‘십자가의 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오래전에 흉악범을 처벌하는 데 쓰이던 끔찍한 사형 도구였습니다. 십자가는 사람을 가장 천천히, 진액을 다 짜내서 죽이는 도구로 고안되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시민들은 아무리 흉악한 죄를 짓더라도 십자가형만은 면제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은 가장 고통스런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죽은 시체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이방인)에게나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고 고통스러우며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모르셨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를 택하셔서 세상의 모든 수치와 고통 즉 온 세상의 짐을 자신의 아들에게 짊어지게 하시고 죄 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미련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며 피하게 만드는 십자가를 하나님의 아들이 지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습니다.

3.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들에게 십자가는 과연 무엇입니까?(24~25절)
십자가는 이방인들에게 미련한 것이고, 유대인들에게는 저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자 지혜입니다.
요즘 나오는 제품들을 보면 얼마나 놀라운 기술을 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경이롭게 보이는 지혜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의 능력이 무한정인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무능력한 분으로 보았습니다. 능력이 있다면 십자가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끔찍하게 죽는 것을 비지성적인 행위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통해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최고 능력이자 지혜입니다. 그 십자가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십자가 안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자신의 외아들을 죽이시고, 그 대신에 세상 모든 사람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능력이 십자가에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그 놀라운 십자가를 이해합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지혜이며 능력인지를 알게 됩니다. 십자가는 사람의 생각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4. ‘십자가의 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십자가가 그토록 무시무시한 형벌이었기에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배타적인 것을 싫어하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십자가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외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구원의 길을 만들어 놓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도는 다른 것과 결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선포해야 합니다. 때로 십자가를 전하는 것 때문에 미움을 받아도 쉬지 말고 십자가를 전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외에 사람이 구원받을 다른 길은 전혀 없습니다.

5. 십자가가 가까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자신에 대해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진리로 들려 나를 변화시킨 경험을 나눠 봅시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십자가 목걸이, 귀걸이를 많이 하고 다닙니다. 그만큼 십자가는 대중적인 것이 되었고, 자신을 지켜 주는 마스코트 정도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우리가 그렇게 쉽게 취급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는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만 알 수 있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조차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기는커녕 양지만 쫓아다니려 합니다. 성도라면 십자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지혜를 알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사랑이 십자가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알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출처 : 생명의 삶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고린도전서 3장 23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여러분은 희사(喜捨)로 인해 그리스도의 것이 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께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의 피값으로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구속하시려고 그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또한 헌신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성별하여 그분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또 관계상으로도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제 그분의 이름으로 불리며 그의 형제 중 한 사람이요 그와 함께 유업을 이어받을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님의 종이요, 친구요, 신부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실제로 수고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에 빠질 때마다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이런 큰 죄를 범할 수 없다”며 저항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친구는 불멸의 행동 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재물 때문에 죄를 짓게 될 상황에 빠질 때면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라고 말한 다음 그것을 만지지 마십시오. 혹시 어려운 일이나 위험에 처해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 악한 때를 믿음으로 견고히 서 계십시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온 힘을 다해 그곳에서 일어나 일하러 가십시오. 이마에 땀이 흘러 좀 어슬렁거리며 쉬고 싶다는 유혹이 생길 때면 이렇게 외치십시오. “아니, 나는 멈출 수 없어.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니까. 내가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산 바 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두 짐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잇사갈과 같을 거야.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러니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릴 수 없어”라고 말입니다. 쾌락의 노랫소리가 듣기 좋아 의의 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까? 그 음악에 대고 “너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라고 대꾸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할 일이 생기면 즉시 그 일을 하십시오. 가난한 사람이 구걸하거든 갖고 있는 물건뿐 아니라 여러분 자신까지 그에게 주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신앙고백이 절대 거짓되지 않게 하십시오. 항상 그리스도인다운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하는 것이 나사렛 사람 같으며, 그 행동과 대화가 천국의 향내를 물씬 풍기는 사람, 그래서 여러분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 안에서 주님의 사랑과 거룩한 표정을 발견하고 여러분이 구세주의 것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하십시오. 옛날 로마 시대에는 자신의 정직과 고결함에 대한 이유로 “나는 로마인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근사한 구호가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라는 구호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이 구호를 자주 외치십시오.


출처 : 스펄전의 아침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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