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탄생의 역사적 배경은(눅 2:1, 2)?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 황제로 제직하며 호적령을 내렸고,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으로 있었을때.
아구스도(Augustus B.C.27-A.D.14)는 로마의 공화정을 종식시키고 강력한 힘을 가진 황제로 즉위하였으며 주변 국가들을 차례로 평정하여 로마의 세력을 크게 넓힌 자였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14년마다 인구 조사를 하여 제국의 통치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였고, 특히 세금 부과에 적절히 이용하였습니다.


메시야 탄생 소식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누구였는가(눅 2:8-14)?

양치는 목자들.
목자라는 직업은 그 당시 가장 천한 직업에 속하였는데 본 서는 복음이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맨처음으로 전해졌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는 양인 우리를 영적으로 돌보시는 목자로서의 예수님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나셨음을 알려주는 표적은 무엇인가(눅 2:11, 12)?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
하나님의 역사는 강하고 능력있는 자보다 약하고 부족한 자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외양을 추구하는 자에게 그리스도는 때로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메시야의 탄생 소식을 들은 목자들의 반응은(눅 2:15-20)?

즉시 베들레헴으로 가서 아기를 찾아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구유에 누인 아기가 메시야인지 율법적으로 따지거나 의논하지 않고 소박한 믿음으로 달려가서 확인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점에서 믿음은 학식이나 이론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실행하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이에게 지어준 이름은(눅 2:21)?

예수.
이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미리 알려주신(눅1:31) 것으로써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1:21)이심을 확증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눅 2:25-38)?

시므온과 안나.
이들은 제사장도 아니고 유명한 사람도 아니며 단지 메시야를 기다리며 의롭게 살아가는 평범한 노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심령에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에게 임하십니다.

 
시므온은 예수님께서 장차 어떻게 되리라고 예언했나(눅 2:34, 35)?

비방받는 표적이 된다고 함.
유대인들은 승리의 메시야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고난받는 메시야를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메시야의 고난을 예언하셨고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장 과정은 어떠했는가(눅 2:40, 52)?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지셨음.
예수님의 영육은 균형있는 성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신자들의 성장 과정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소년 시절의 예수님을 잃은 이유는 무엇인가(눅 2:43, 44)?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것을 모르고 동행 중이라 생각하며 하룻길을 갔기 때문임.
예수님과 늘 동행해야 하는 우리가 주님의 뜻보다는 자기 생각을 앞세울때 그리고 그 생각대로 살아갈때 우리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잃을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찾은 것은 언제, 어디서인가(눅 2:44-46)?

잃은지 사흘후 성전에서 찾음.
문제는 예수님이 움직이고 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착오를 일으키고 움직이며 변하는데 있습니다. 주님은 늘 한결같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교제를 나누려면 바로 내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누가복음을 쓴 목적은 무엇인가(눅 1: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을 확실히 알게하려 함.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역을 말하는 것으로써 지어낸 이야기나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실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누가의 기록 원칙은 무엇인가(눅 1:3)?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살펴 차례대로 기록함.
성경을 공부하는 자의 자세도 이러해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들도 사도 바울로부터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 결과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행17:11,12).

 
당시의 제사 방법은(눅 1:6-10)?

①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흠이 없이 행함.
② 제비를 뽑아 성소에 들어감.
③ 모든 백성은 밖에서 기도함.
예배는 인간의 욕구에 따라 드려서는 안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드려져야 하며 인간은 겸손히 회개와 순종의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사가랴 기도의 특징은 무엇인가(눅 1:13)?

자녀를 위한 부모의 간절한 기도.
하나님 앞에 흠이 없이 행하며 드리는 기도.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가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한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눅 1:20)?

벙어리가 됨.
의로운 사가랴였지만 말씀을 의심하는 불신앙에 빠졌을때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진노하셨습니다.

 
벙어리가 된 사가랴가 성소에서 취한 행동은(눅 1:22, 23)?

그냥 벙어리된 상태로 직무를 마쳤음.
의심의 징벌이 임했지만 이를 감추려 하지않고 자신의 불신앙을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수태한 엘리사벳이 취한 태도는(눅 1:24, 25)?

다섯달 동안 숨어 있었으며 주님께 감사함.
자랑하며 과시하기 보다는 겸손히 하나님의 일을 받아들이며 준비하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대화 과정을 정리하면(눅 1:26-38)?

① 천사의 은혜로운 인사와 마리아의 놀람.
② 천사가 마리아의 메시야 수태를 알림, 이에 대한 마리아의 설명 요구.
③ 천사의 설명, 마리아의 순종.
성도들은 은혜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불신하지 말고 더욱 자세히 깨닫기위해 힘쓰며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을 순종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모친이 될 마리아는 어떤 사람인가(눅 1:26,27)?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다윗의 자손으로서 요셉과 정혼한 처녀임.
하나님 앞에서 순결했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천사의 명령을 들은 마리아가 맨처음 취한 행동은(눅 1:39, 40)?

엘리사벳을 문안함.
마리아는 선배 신앙인을 찾아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하고 믿음과 순종의 자세를 더욱 굳혔습니다.


마리아를 맞이하는 엘리사벳의 태도는 어떠했나(눅 1:41-45)?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시켜 주고 마리아의 믿음을 북돋워 줌.
인간적인 생각으로 걱정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며 마리아를 ‘내 주의 모친’으로 칭함으로써 메시야의 오심을 믿음으로 준비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마리아 찬가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가(눅 1:46-55)?

①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눅 46-48절).
②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과 긍휼을 찬양(눅 49, 50절).
③ 교만하고 권세있으며 부한 자를 내치고 비천하고 굶주린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을 찬양(눅 51-53절).
④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찬양(눅 54, 55절).

 
마리아 찬가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눅 1:49-55)?

전능하시고 거룩하시며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권세있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분.
하나님의 권능과 긍휼은 자기를 의지하고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지할데 없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가(눅 1:50,54)?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
하나님은 잘나고 권세있는 자, 교만한 자를 결코 긍휼히 여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비천하고 못난 자, 겸손한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사가랴가 하나님을 찬송한 이유는(눅 1:67-80)?

그 백성을 속량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구원하신 사실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사가랴의 요한에 대한 기대는 무엇인가(눅 1:76-79)?

하나님의 선지자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
신앙의 부모는 자녀들이 주님의 구원 사역에 쓰임받기를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성장 과정은(눅 1:80)?

자라며 심령이 강해지며 빈들에 있었음.
육신의 성장뿐만 아니라 영적인 성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빈들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영적 훈련을 받던 광야를 말합니다.

 

 

출처 : 갓피플


1. 삭개오

1) 시대적 배경
당시의 로마 제국은 식민지 국가에 대한 원활한 세금 징수를 위하여 그나라 백성들을 세리로 고용하였었는데 여기에 유대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러한 로마의 식민 정책에 대해 강한 적대감과 특별히 세금 징수에는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로마 제국에 고용된 유대인 세리들에 대한 반감도 당연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세리를 창기와 같은 죄인들로 취급하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리들과 함께하시고 게다가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를 구원하심으로써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신 것이었다.

2) 성품
그들의 침략자인 로마의 앞잡이로 세금을 거둔 사실에서 그의 기회주의적 성격이 엿보이며, 세리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많은 돈을 모은 것으로 보아 재물욕도 강한 인물로 보인다. 또한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때 예수님을 보기위해 뽕나무에까지 올라갈 정도로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음을 알수 있으며, 일단 예수님을 알아보고난 후에는 즉시 순종하고 주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한 것으로 보아 강한 결단력의 소유자였음을 알수 있다.

3) 교훈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희 회개한 삭개오는 이제 지금까지의 자신의 죄악된 삶을 청산하고 자신의 부정한 재산까지도 돌려주기로 자발적으로 결심하였다. 삭개오의 이러한 회개는 한사람의 삶까지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받던 사람까지 구원하심으로써 예수님의 구원의 범위는 한계가 없음도 보여주셨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서 누구든지 진정으로 회개하고 우리 주님께 나아오는 자는 모두다 받아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알수가 있는 것이다.

2. 예수의 예루살렘 성전파괴 예언과 그 성취

1) 역사적 배경
A.D.66년 당시의 로마 황제였던 네로는 전제국에 황제숭배 정책을 강화하였고 이에 대하여 여호와 유일 신앙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은 크게 반발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네로의 정책에 반발하여 열심당을 조직하고 반란을 일으켰는데 네로는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베스파시아누스를 파견하여 유대 전쟁을 일으켰다. 이 유대 전쟁은 A.D.66-70년까지 4년간 계속되었는데, 70년에 결국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말았다. 이때 성전도 파괴되고 말았다. 한편 성전의 파괴는 베스파시아누스가 네로의 죽음으로 로마로 돌아가서 황제가 된후 대신 파견된 그의 아들 디도에 의해 이루어졌다.

2) 의의
예수님의 성전 파괴 예언은 세상 종말에 관한 예언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이 예언이 A.D. 70년에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예언에 관한 사실이 모두다 성취됨을 보여준다 하겠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서 언제나 주님의 말씀과 성도의 자세를 가슴 깊이 새겨서 언제나 마지막을 예비하는 깨어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잊지 않아야 하겠다.

3. 예수 부활의 역사성

1) 성경적 증거
예수 자신의 예언 : 예수님께서는 공생에 기간 동안 자신이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사실 것이라는 사실을 수차례 예언하셨다(마12:38-40 ; 마16:21 ; 마17:9,23 ; 눅9:22 ; 요2:19-21).
빈무덤 : 성경은 분명히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당한 사실 그리고 장례된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동시에 그 무덤안에 있던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사실에 대해서도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마27:57-66 ; 막15:42-47 ; 눅23:50-24:11). 사복음서를 비롯하여 신약 성경 전체는 바로 예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근본 전제로 하여 기록되었다. 만일 예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많은 성경의 기자들이 각자의 인격과 신앙 양심상 그렇게 한결같이 자신들의 책에 예수 부활을 기록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2) 초대교회 당시의 증거
초대교회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 이후 끔직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로 로마 제국 전역에 전파되었다. 예수 부활이 이러한 일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3) 속사도와 교부들의 증언
주를 목격한 사도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이를 계승한 1,2세기의 속사도들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이단들의 출현에 맞서 이들 이단들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의 변증은 확고한 예수 부활 신앙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러한 속사도들로부터 전수된 확고한 부활 신앙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여리고에서의 삭개오의 사건과 므나에 대한 비유가 조용히 끝을 맺으며 주님께서는 안식일을 평온하게 보내셨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부터 주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온예루살렘을 '호산나'의 환호성으로 들끓게 하시더니 어느새 성전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신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기념케 하시며 당부하시고는 모진 고통속에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다시 살아나셨다.

1. 인자의 영광과 눈물(눅19:28-21:38)
인자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진정한 왕권을 행사하는 영광스런 입성이다. 그러한 명예로운 왕으로서의 입성에 귀하고 멋있는 백마를 타시지 않고 왜 어린 나귀를 타셨을까? 또한 어떤 수모와 고통에도 감정의 동요가 없으신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후 곧바로 성전을 보시며 진한 눈물을 흘리셨다. 무엇이 우리 주님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시게 했는가?

1) 겸손한 왕의 눈물
예수가 탄것은 왕의 준마가 아니라 나귀 새끼였다. 인자로 오신 그의 왕국은 과시나 세상적 영광이 아니라 철저히 겸손과 섬김의 표상이다. 이것은 예언의 성취이다(슥9:9). 나귀 새끼는 천하고 멸시받는 동물로써 그것을 택하심은 인자의 겸허성을 나타낸다. 그는 즉석의 떠들썩한 환호성에 응답하신후 폐부로부터 흐르는 눈물을 보이셨다. 말은 없었으나 그것은 인간들에 대한 그의 깊은 동정이다. 예루살렘이 높고 거룩한 사명을 감당치 못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게될 것을 슬퍼하시고 연민하시는 것이다.

2) 영광과 눈물의 승화
인간의 고뇌에 대한 우리 주님의 뜨거운 연민의 정은 그의 몸을 다 내어주도록 지극한 것이다. 지금도 그가 거룩한 친구로서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눈물을 흘리는 인자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호산나'하고 옷을 깔며 외치는 자들이 며칠뒤에는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칠 자들임을 알고 계신다. 그럼에도 바리새인의 간섭에 제자들이 잠잠하면 돌들이라도 찬양할 것이라면서 굴욕을 온유로 받아내셨다. 실로 인자로 오신 그분의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한 분이시다.

2. 인자의 수난(눅22,23장)
주님의 때가 이르는 바로 전날 만찬석상에서 자기의 고난을 받을 것을 예증적으로 보이셨다. 떡을 떼어주며 이것은 내 살이라 또 포도주는 너희를 위한 나의 피라고 하시며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있다고 말씀하신다. 왜 주님은 떡과 포도주로 자신의 몸을 말했으며 그것의 참뜻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하필이면 사랑하며 지도했던 제자의 손에 겨우 은전 삼십에 매도되는가? 왜 가시면류관보다 더 아픈 제자의 가시를 택했는가?

1) 화목 제물이신 인자
떡과 포도주 이것들의 뜯겨짐과 부어짐은 고통받는 생활의 수고로 일그러진 피곤, 가난, 수치와 어두움 그리고 죽음의 형상이다. 그분은 십자가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미리 예증적으로 보여주면서 나를 기념하라고 부탁하신다.
슬픔과 사랑이 섞인 그분의 부탁과 희생 그리고 용서와 감내, 인자는 가룟 유다에게 영혼을 뚫는 칼을 허용하신다. 사랑하는 제자 중에서의 배신, 사단은 언제든지 가장 가까운 자, 가장 사랑하는 자를 통하여 무섭게 역사하는 것을 알고 모든 신자는 경계해야 한다.

2) 핏방울과 포용의 기도
돈은 선한 면에서든 악한 면에서든 인간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돈을 맡았던 유다는 돈을 만지며 탐욕이 늘어났다. 부도덕과 범죄적인 행동을 증오하도록 강력하게 훈련받은 예수의 제자가 빠진 이 엄청난 악행의 굴레, 인자는 지성소에 가장 가까운 겟세마네의 은밀한 장소를 찾아 그의 이 비참하도록 당한 배신의 쓰라림과 내일의 고난을 아버지께 아뢰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드리는 처절한 모습에서 우리는 인자의 고뇌와 포용과 그의 사랑의 희생을 본다.

3. 인자의 승리(눅24장)
전날에 어떤 참혹한 일이 있었든지, 얼마나 그를 증오하고 경멸하며 살해했든지, 아무도 기억조차 하기 꺼림칙하고 칙칙한 그 시점에 주님은 무덤속에 계시지 않았다. 안식일 다음날 새벽 그는 부활하셨다. 왜 유대인들이 꺼려하는 안식일에 그리고 첫목격자가 그동안 훈련시켰던 제자들이 아닌 여인들이었을까?

1) 선구적인 신앙 열정의 보상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그 주님이 주일에 부활하심으로 그의 사역의 절정을 이루셨고 교회의 기초를 세우셨다. 당연히 부활을 기대하고 주님을 만나러 가야할 사도들(남성)이 주저하는 판에 선구자적인 여인들이 주저함 없이 새벽에 갔다. 아끼고 예비해 두었던 귀중한 향품을 가지고 갔다. 열정적인 신앙 앞에서는 고난도, 두려움도, 장애물도 맥을 못쓴다. 여인들이 염려하던 돌문(장애물)은 이미 제거되었다. 그들의 신앙은 천사를 보는 영안을 뜨임받았고 부활의 소식을 최초로 접하고 전하라는 영광을 얻었다.

2) 복음의 진수 확정
죽음은 패비일수 밖에 없으나 하나님은 인간이 알지못하는 시야의 은신처에서 크고 비밀한 승리를 창출하셨다. 이 역사는 감당할수 없을만큼 너무도 훌륭한 인류에의 선물이다. '길이요 진리,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를 지속적으로 믿고 따르는 참신자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은총이다. 이 은총을 입은 자는 세상의 지위가 바뀌어진다. 살아있는 복음의 씨앗을 인자가 안겨주셨고 그 씨앗을 받은 성도는 영원의 차원을 살아가는 승리의 증인이 된다.

인자는 겸손하고 겸허하게 고난을 감당하시고 그의 모든 사역을 남김없이 '다 이루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 우리는 그 인자를 죽은자 가운데서 찾는 어리석음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제자들은 그렇게도 미리 '고난받고 죽었다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는 주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날 아침에 여인들이 먼저 목격하고 전해주는 것도 확실히 믿지못하고 의아해하는 우를 범했다. 우리는 확실하게 승리하신 주님을 확실히 믿고 증거해야 한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유대인의 예수 배척

1) 배척의 근본원인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한 근본원인은 한마디로 그들의 잘못된 메시야관 때문이었다. 즉 그들은 잘못된 메시야관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 주께서 참메시야로 오셔서 당신의 메시야적을 선포하시자 이것이 그들에게 걸림이 되어 배척이 일어났던 것이다.

2) 예수의 배척자들
정치적 이유 때문에 예수를 배척한 부류는 헤롯 가문을 비롯한 헤롯 당원들로서 예수가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 하며 백성들의 환호를 받게 되자 경계하지 않을수 없었다. 또다른 한부류 일반 유대 민중들은 예수가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다. 종교적 이유로 예수를 배척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보기에 예수는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으며, 신적 권위를 빙자하는 신성 모독자였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정치적 기득권에 걸림이 되자 무조건적으로 예수를 배척했었다. 또한 예수의 인간적 측면 즉 외모와 혈연관계, 학식이나 사회적 지위등에 얽혀 심지어는 지역 감정에 빠져 처음부터 예수를 경시하였던 그 당시 사람들의 배척 양상이다.

3) 배척의 결과
예수께서 스스로 유대인들로부터 배척받으신 것은 택한 성도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 사역의 성취를 위해서였다. 유대인들의 배척으로 세계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한 복음이 자연스럽게 이방 지역에까지 확산되게 되었고, 이로써 결국 예수그리스도는 세상 만민의 구주가 되어 그를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실수 있게 되었다.
예수께서 스스로 유대인들로부터 배척받으신 것은 택한 성도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 사역의 성취를 위해서였으며, 이로 인해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구속 역사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4)유대인의 배척의 의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히려 이것을 당신의 구원 섭리가 이루어지기 위한 계기로 삼으셨음은 먼저 그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은총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준다.

2. 베다니

1) 명칭
'베다니'는 나사로의 고향으로 '번민하는 자의 집' 또는 '가난한 자의 집'이라는 뜻으로 탈무드에 의하면 '푸른 과일의 집'을 의미하기도 한다.

2) 위치
예루살렘 동쪽 약 3.2Km 지점. 감람산 동편에 위치한다.

3) 관련기사 및 역사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와 그 오라비 나사로가 살고있던 마을이고, 예수께서 종종 머무르셨던 곳(마21:17 ; 막11:1)이다. 문둥이 시몬의 집이 있는곳(마26:6)으로 마리아가 예수께 항유를 부었던 곳이기도 하다.

4) 영적 교훈
베다니는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값비싼 항유를 부었던 장소이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감사히 여기며, 이에 대한 보답으로써 자신의 가장 값진 것이라도 아낌없이 희생할수 있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예수께서는 가난하고 비천한 마을 베다니를 즐겨찾으시고 사랑과 위로와 은총을 베푸셨다. 오늘날 예수께서는 가난하고 비천한 심령을 찾아가사 위로하시고 은총을 베푸신다.

3. 하나님의 나라의 이해

1) 용어의 이해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용어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늘나라(천국)' 두가지가 있다. 문자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의 통치권자 곧 하나님을 강조하는 용어이며, '하늘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 혹은 통치 범위를 강조하는 용어로 볼수 있다.

2) 하나님 나라의 의의
성경이 궁극적으로 증거하며 지향하는 것이 바로 천국이다. 그리고 천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땅에 임하여 있음은 우리 심령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입증하고 계시다. 이처럼 확실히 도래하는 천국의 절대 가치에 대한 발견이다(마13:44-46). 천국이 있기에 이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이방인의 삶이요, 순례자의 삶이다. 그럼에도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에 얽매여 하늘 본향을 망각하고 길을 벗어나고 있지는 않은가? 이처럼 확실히 도래하고 또 절대 가치를 가진 천국에 이미 참여한 자로서 그리고 훗날 완전히 실현될 천국에 들어갈 자로서 나의 자세는 올바른가 하는 문제이다. 올바른 자세는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관계에서와 이웃을 향한 수평적 관계에서의 바른 삶의 자세를 모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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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눅9:51) 예루살렘으로 사역의 정점부분을 감당하시러 가고자 하는때부터 사마리아인, 세상에 얽매인 속된자들, 율법사, 바리새인, 바알세불 선봉자 등이 예수님을 배척한다. 우리 주님은 그많고 불쾌한 배척에도 아랑곳없이 70인의 제자를 파송하며 외식에 관하여, 회개에 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용서에 관하여 많은 교훈을 베푸신다.

1. 속된 배척자들의 양상(눅9:51-10:37)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예루살렘을 가시고자 할때 제자들이 사마리아인의 한촌에 들어갔더니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흥분한 야고보와 요한이 불을 내려 저들을 멸하게 하자고 하니 예수께서 꾸짖으셨다. 그뒤에 어떤 율법사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를 시험할때 예수는 비유로써 사마리아인을 두둔하는듯한 말씀을 하셨다. 그들의 배척의 원인은 무엇이며 제자들의 흥분은 어떤 연유에서이며 율법사에게 비유로 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세상에 얽매인 자
사마리아인들의 소원은 예수가 자기들과 함께 머물면서 자기들의 적을 막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예루살렘을 목적지로 그곳을 통과만 하겠다는 것에 그들은 격분하여 배척한 것이다. 바로 며칠전에 변화산상에서 엘리야, 모세를 목격한 두제자는 그 엘리야때의 갈멜산의 불을 생각하고 멸하게 해달라고 흥분하여 외쳤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적인 생각에 얽매인 좁은 소견의 그들을 꾸짖으셨다. 사마리아인들은 개처럼 취급받는 소외된 자들이다. 주님은 그들의 밑바닥에 내재하는 겸손함과 순수한 인간미를 바라보셨다.

2)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
예수를 배척한 사마리아인들이 있다고 해서 예수도 여느 사람처럼 그들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지 않는다. 당당하고 위태로운 율법사에게 대조롭게 비천하지만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천민을 비유한 것뿐이다. 반드시 사마리아인이 선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누구라도 안목이 편협하여 세상적인 감정에 사로잡힌다든지 주님을 따르기 원하면서도 세상일을 먼저한 다음에 남은 시간에 주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와 같다고 엄히 경계하신다.

2. 하나님 나라와 인자(눅10:38-13:30)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의 예수님 접대 장면은 너무도 생생하여 마치 극중에서 그들의 모습을 본듯한 느낌이 든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초대한 장본인이고 그분께 맛있고 훌륭한 만찬을 대접해 드리기 위해 기쁜 마음과 정성으로 최선의 봉사를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경고를 받았고 할일없이 예수의 발앞에 앉아서 마치 일하기를 꾀부린듯한 마리아는 칭찬을 받았다. 그들의 경고와 칭찬과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의미로 연결되어졌는가?

1) 인자의 경고와 칭찬
마르다는 주님을 편하게 모시기 위해 부산스럽게 바빴다. 그것은 그녀의 헌신의 표상이다. 그녀의 모습은 관대하고 아량있고 은혜베풀기 위해 어떤 수고도 감내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주님은 마르다의 일시적인 심술을 자상하게 경고해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진리를 간파하고 주님의 심중을 헤아리는 것은 마리아이다. 마르다가 봉사자라면 마리아는 선지자이다.

2) 하나님 나라와 인자
마르다가 음식 준비로 분주할때에 마리아는 주님의 '때'를 위해 간직했던 옥합을 가져왔다(막14:3). 그 예지적 정신은 깊은 신앙에서 수반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름다운 조화로 이루어진다. 숙고하는자와 행동한는 자, 영접하는 자와 말씀을 듣는 자, 그리스도의 교회는 둘다 요구된다. 안내자와 후원자 그 두부류가 주님의 안에서 바르게 당겨주고 밀어줄때 교회는 성장한다. 다만 예수님의 발앞에 앉은 목적이 주님의 자취를 따르려는 것일때에 한해서이다.

3. 인자가 배척한 자들(눅13:31-19:27)
예수는 자신이 배척당하시는 중에도 많은 교훈의 말씀을 주셨다. 그중에 천국을 많이 말씀하시며 천국에 들어갈 자는 겸손한 자, 회개한 자, 가난한 자의 양상으로 멸망당할 자는 외식하는 자, 부자, 교만한 자로 대체로 구분하셨다. 그렇다면 인자가 배척하는 부자들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심판받고 가난한 자 특히 나사로는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가? 그렇다면 구원의 진리가 왜곡되는 것이 아닌가?

1) 회개와 용서
곡간에 재물을 많이 쌓아둔 탐욕스러운 부자(눅12:16-21), 거지 나사로와 대조되는 호화판의 부자(눅16:19-31)는 그들의 탐욕과 교만이 그들을 불신앙으로 몰고간 것이 증명된다. 그들의 부는 선지자들의 전과에 귀를 먹게하는 도구가 되었으므로 인자는 그것을 경계하고 배척한 것이지 부자를 무조건 멸시한 것이 아니다(눅16:31). 그리고 외식하는 자들은 그 위선적 교만으로 회개의 기회를 놓친다. 그러나 세리와 같이 자기를 죄인시하며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는 이미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았다. 거지 나사로는 단순히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겸손과 고난중에도 인내한 신앙의 결과이다(눅16:25).

2) 인자가 배척한 자들
'교만은 패배의 선봉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 주님도 교만이라는 이름으로 부와 인습과 율법에 얽매인 위선적인 사람들을 극히 싫어하신다. 그들에게는 진정하게 자신을 돌아볼 빈자리가 없을뿐 아니라 회개의 여지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신다.

주님은 그의 사역에서 배척을 당하시면서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우리가 그 시민이 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많은 비유와 분량으로 전혀 새로운 개념을 교훈하셨다. 그것은 평화와 의와 기쁨의 날, 칼과 왕관 없이 세워질 나라,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거룩함과 사랑으로 함께하는 나라이다. 그 나라에 이르는 자는 세상에 얽매여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자거나 외식하고 교만한 자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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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릴리 바다

1) 명칭
'갈릴리'라는 말은 '고리' 또는 '주변'이라는 뜻인데 이는 사방의 산지 둘레에 성읍 또는 바다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구약 시대의 명칭은 '긴네렛 바다, 긴네롯 바다'(수12:3), 신약 시대의 또 다른 명칭은 '디베랴 바다, 게네사렛 호수'였다. 단순히 '바다'(막2:13) 또는 '호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2) 위치
예루살렘 북쪽 약 96Km 지점의 갈릴리 지방 동편에 있는 팔레스틴의 최대의 담수호이다.

3) 관련기사및 역사
예수의 공생에 초기 활동은 주로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갈릴리 지역에서 행한 24회의 이적 가운데 18회가 이 바다에서 행해졌다. 예수께서는 이 바다에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네제자를 부르셨고, 이 바다 위를 걸으셨고,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으며, 이 바다 위에서 일곱 비유를 가르치셨다. 부활후 예수께서 낙심한 제자들을 찾아오신 곳도 이곳이었다(요21:1). 갈릴리 호수 서안은 경사가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평원 지대로써 여기에 디베랴, 벳새다, 가버나움, 막달라, 고라신 등의 여러 성읍이 있다.

4) 영적 교훈
성지 가나안 땅의 호수로 특히 예수 당시 많은 이적과 교훈이 베풀어졌던 갈릴리 바다는 그 모든 일의 증인으로써 오늘도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 예수님의 치유 사역 이해

1) 치유 사역의 목적
예수께서 치유 이적을 베푸사 각색 병자들을 고치신 근본 목적은 기타 다른 초자연적인 이적들과 마찬가지로 천지 만물에 대한 당신의 주권과 신적 능력을 보이사 성도들의 믿음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치유 사역들은 그분이 분명 신적 능력을 소유하신 분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수 자신이 곧 구약에서 예언한바의 메시야이심을 증거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택한 죄인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사 천국의 영생 복락에 들어가게 하는 메시야 사역의 본질에 대한 하나의 증거가 된다. 예수의 치유 사역은 궁극적으로 죄인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증거로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2) 치유의 방법
예수께서 사용하신 치유의 방법은 대게 말씀만으로 치유하신 것이다. 그리고 기타 재료를 사용하시거나 혹은 귀신을 쫓으심 등의 치유 방법을 사용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사용하신 치유의 방법들을 보면 말씀만으로 고치심, 손을 상처 부위에 대심, 귀신을 쫓으심, 손을 만지심, 기름을 사용하심, 상처 부위에 침을 뱉어 안수하심, 재료를 사용하심이 있다.

3) 치유와 성도의 신앙
예수께서 병자 자신에게 반드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자에 대한 긍휼하심 때문에 치유를 베푸신 경우도 많다. 오히려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사랑 때문에 치유받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의 치유 사역에 대한 성경의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새삼 가슴 깊이 새기게 된다.

3. 가버나움

1) 명칭
헬라어 kapernaouvm(카페르나움)은 본래 '마을, 동리, 촌'등을 뜻하는 히브리어 '케파르'와 '나훔'이런 인명이 결합된 명칭으로써 곧 '나훔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2) 위치
고고학적 발굴의 결과 가버나움의 위치를 카르벳 미니예에서 북동쪽으로 약 4Km 떨어진 '텔훔(Tell Hum)으로 추정하고 있다.

3) 관련기사 및 역사
가버나움은 북부 요단강을 횡단하는 동서 무역로 상에 위치한 갈릴리 지역의 주요 성읍으로써 일찍부터 번성했다. 예수께서는 공생에 초기 나사렛을 떠나 이곳 갈릴리 해변의 가버니움을 전도 사역의 근거지로 삼으셨다. 베드로와 안드레의 집이 이곳에 있었다. 또 이곳 세관에 있던 알패오의 아들 레위(마태)를 제자로 삼으셨다. 가버나움은 많은 기적을 베푸신 곳으로 유명하다. 요6:16-59의 가르침을 비롯하여 많은 설교와 교훈이 이 회당이나 그밖에 지역에서 행해졌다.

4) 영적 교훈
많은 기적과 가르침이 베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가버나움 성읍 주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예수께서는 이 성읍의 철저한 멸망을 예언하셨다. 이 성읍은 회교도에게 전멸당하여 오늘날까지 폐허지가 되어 있다. 이곳은 말씀이 이루어진 역사의 현장으로써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언의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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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로 오신 예수는 이제 그가 세상에 와서 해야할 일들을 그 목적대로 차근히 진행하신다. 누가는 다른 복음서에 이미 알려진 것들은 생략하고 매우 중요하면서도 소개되지 않은 예수의 사역을 세세히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은 가난한 자들, 소외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다. 또한 주린 자들을 넉넉히 먹이시며 결실없는 수고에 지친 자들을 부르셔서 사람 낚는 어부로 삼으셨다.

1. 인자의 제자들(눅4:14-7:23)
예수는 많은 병자,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시며 게네사렛 호숫가에 이르렀다. 수많은 무리가 옹위하여 미는지라 한배에 올라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다. 그 배의 주인은 시몬이다. 그는 지난밤에 그의 오랜 경력과 기술을 다하여 고기를 잡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밤새도록 한마리도 못잡는 참패의 현장에 서있다. 왜 세상 일은 이렇게 피곤만을 안겨주며 결실이 없는 것일까? 예수님은 왜 그러한 저급한 자들을 제자로 부르셨을까?

1) 결실없는 수고에 열매를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다'는 말은 시몬만의 말이 아니다. 현세의 기독교인 일꾼들에게서도 자주 나오는 말이다. 그것은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전문 지식과 능력을 다 발휘한다해도 모든 일의 열쇠이신 주님에게 전적으로 부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때는 피곤과 낙담과 무열매만 돌아온다. 그러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주님의 명령에 지금까지의 방법을 버리고 전적으로 순종하여 핵심의 깊은 곳으로 갈때 피곤은 사라지고 열매가 맺힌다.

2) 사람낚는 어부들
명령대로 행한 시몬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두배에 잠길 정도로 심히 많이 잡힌 고기로 인해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정작 놀라야할 일은 무식한 어부에서 일약 인류의 주인이며 구속자에게 선택되어 사람낚는 어부가 된것이다. 주님은 자기를 버리되 하나님 나라의 의를 포기하지 않고 순종하여 행하는 자들을 불러모아 제자 삼으셨다. 그들은 인간의 눈으로 볼때는 저급해 보일지라도 주님의 마음에 합한 최고의 신앙적 인격자이다.

2. 세상에 보이신 인자의 긍휼(눅7:24-8:21)
예수보다 앞서 태어나 인자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아낌없이 감당하던 세례 요한,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예수의 행한 일들을 듣고는 자기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어 예수의 메시야성을 확인해 본다. 그토록 철저하게 예수의 신들메를 감당키도 어렵다며 예수의 메시야되심을 전파하던 그의 심경의 변화는 무엇 때문인가? 왜 예수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로 답변하실 뿐이었는가?

1) 질병과 죽음에서 구원
요한은 심판 시대였던 구약적인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에게는 탁월한 능력으로 심판하시는 메시야일 것으로 기대했던 예수가 무능해 보였을 것이다. 그 예수는 단순하고 순순하게 병자를 고치고 불구자를 돌아보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의 자선 사업에만 몰두하고 계시니 말이다. 인간이란 종종 흔들린다. 요한이 아무리 견고한 신앙인이라도 신이 아닌 이상 잠시 흔들렸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이 더 인상적이고 결정적인 방법으로 추진되기를 열망할때 우리의 방법과 다른 주님의 것에서 요나처럼 혼돈될때가 종종 있다.

2) 진정한 인자의 사역
예수는 요한의 제자들이 보는데서 고침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리고 예언된 말씀대로 자신의 사역의 길을 답변하시며 '나를 인하여 실족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조용히 깨우쳐 주시며 그대로 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셨다. 예수는 결코 폭압적인 왕권을 휘두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병들고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의 친구인 인자로서 오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그분의 사랑 때문이다.

3. 인자의 권능(눅8:22-9:50)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때 귀신들린 자가 '나사렛 예수여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며 소리쳤다. 예수는 그 귀신을 꾸짖어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령하셨다. 뿐만 아니라 군대 귀신들을 명하여 돼지떼로 들어가게 하신 주님 또한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시면 죽음까지도 그 예수의 명령대로 물러간다. 귀신들은 어떻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며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일까?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의 원천과 이유는 무엇인가?

1) 자연을 다스리시는 인자
복음서 곳곳에서 귀신들이 먼저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자기들을 멸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며 소리지른다. 그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 자신이심을 증명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사랑의 주인이기도 하고 사단은 그의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알고 믿고 명령에 떨며 순종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약2:19). 그러므로 사단이 가져다주는 죽음도 하나님의 명령엔 순복하며, 하나님의 피조물인 모든 자연 만물, 풍랑까지도 인자의 명령에 잠잠해질수 밖에 없다.

2) 인자의 권능과 인애
인자이신 예수는 귀신을 쫓거나 죽은 자를 살리실때 그리고 풍랑을 잠잠케 하실때조차도 전혀 신적 권위를 강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고침받은 자들이 인자의 메시야성을 떠드는 것을 잠잠하라고 경계시키셨다. 그것은 인자가 모든 것을 명령하고 주관하실수 있는 신적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시는 인애의 표출이시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배고픈 무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아름다운 자비의 산물이다.
인자로 오신 그리스도는 그의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 인간적인 편견이나 조급함을 전적으로 배제하신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직분을 당당하면서도 소란스럽지 않게 수행하신다. 그분은 내색하지 않는 지극한 인애를 가지고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인자는 겸손하면서도 인내로써 강한 신앙을 가진 자에게, 끝까지 소망하는 자에게 응답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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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가랴

1) 인적 사항
'여호와께서 기억하고 계시다'는 뜻으로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며(눅1:5), 마리야의 친척인 엘리사벳의 남편이다.

2)시대적 배경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B.C.27-A.D.12)가 유대를 지배할 당시 헤롯 대왕의 치하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으로 활동했다.

3) 생애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의인이었으나 후사가 없어 근심하며 기도하였다(눅1:6,7).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려고 반열에 따라 성전에 올라가 분향하던 중 아들을 얻게되리라는 예언을 받았으나 이를 의심하여 벙어리가 되었다. 아들을 얻고 성전에서 할례를 행한뒤 아이의 이름을 지을때 이르러 혀가 풀려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눅1:60-66).

4) 영적 교훈
하나님은 세상과 야합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직분에 충실한 자를 축복하신다. 하나님의 구속을 사모한 사가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다.
하나님은 인간이 한계에 도달했을때 비로소 당신의 사역을 수행하신다.

2. 유월절과 무교절

1) 용어의 정의
유월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hst(페사흐)는 '넘어간다, 면제하다'로써 이는 이스라엘 출애굽 사건과 관련해서 나온 의미이다. 한편 '무교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twx!(마초트)는 '누룩을 넣지않고 구운 빵'을 뜻한다.

2) 절기 준수 기간
유월절은 보리 추수가 시작되는 시기 즉 태양력으로는 3,4월 유대력으로는 아법월(니산월) 14일 저녁에 지켜졌다. 그리고 무교절은 유월절에 이어 곧바로 15-21일까지 7일간 지켜졌다(레23:5,6 ; 민28:16,17). 유월절과 무교절이 연이어 지켜졌기 때문에 이 두절기 기간을 통틀어서 유월절이라 하기도 하고, 무교절이라 하기도 하지만 두 절기는 엄연히 구별된 절기이다.

3) 의의
유월절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구속 사역을 예표한다. 그리고 유월절 행사는 곧 예수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성만찬의 예표가 된다. 유월절을 지키면서 미래에 메시야를 통한 온전한 구원을 소망하였던 것처럼 영적 선민인 성도들도 성만찬을 지키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며, 천국의 영원한 구원을 소망하는 것이다.

3. 인자의 이해
사복음서에는 예수의 호칭으로 '인자'라는 용어가 약90여회 나오는데 그중에 누가복음에 기록된 것만 26회이다. 이는 예수의 여러측면 가운데 '인자'이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1) 정의
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에는 단지 피조물로서 인간을 가리키는!da wb(벤 아담)과 연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리키는 vwka wb(벤 에노쉬)가 있다. 헬라어에서는oJ nio" ton anqrw'pou(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하나만 사용되고 의미는 히브리어와 같다. 히브리인은 이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한데 첫째, 창조주와 대칭하는 피조물로서의 인류 혹은 개별적인 인간을 가리키고 둘째,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가리키며 셋째, 종말에 하늘 권세를 가지고 도래할 메시야를 기리킨다.

2) 예수의 자기 호칭 '인자'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칭하셨을때 메시야로서의 당신의 사역과 인자로서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며,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일하신 신적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셨고, 십자가 수난을 당하실때도 '인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셨다. 승천과 재림에 관련해서도 '인자'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셔서 예수 자신이 단7:13에 예언된 인자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예수께서는 자신이 인성을 가진 인간임을 나타내기 위해서도(눅6:5) 또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나타내기 위해서도 이 호칭을 사용하셨다(눅12:8-10).

3) 의의
우리의 육적 대표자인 첫째 아담은 우리에게 죄와 사망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물려주었지만 우리의 영적 대표자인 둘째 아담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과 구원 그리고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되돌려 주셨다. 이에 실로 인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할때 천국의 영생 복락과 회복될 우리자신의 모습에 대한 기대와 소망에 가슴 부풀게 되며, 더욱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지 않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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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는 특이하게 서두에서부터 기술자로서의 자기 변명과 자기 숨김의 방법을 사용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탄생전에 있었던 영적인 메시지의 교류 현상을 비롯하여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확인된 예수의 어릴때의 모습을 생생하고 실감있게 나타낸다. 또 지극히 견고한 신앙인의 시므온과 늙은 여선지자 안나의 찬미를 통하여 그리고 공생에 초기에 시험받으시는 예수의 모습에서 인자로서 오신 그리스도의 목적과 의의를 확고하게 나타내고 있다.

1. 인자에의 확증(눅1:1-7)
누가는 "처음부터 목격자가 되고 일꾼된 자들의 전하여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눅1:2)한 사람들이 '우리' 중에 많이 있다고 기록함으로 동기를 표명했다. 그리고 '데오빌로 각하'에게 그 배운바의 확실함을 알게하려는 기록 목적을 나타냈다.
누가는 왜 자신을 '우리' 중의 하나로 표현했나? 예수의 인자성을 하필이면 이방인이며 신분이 높은 한 개인에게 글로 써보내는 방법을 택했는가? 그리고 목격자들의 증언이란 어떤 것들인가?

1) 찬양자들의 증언
누가는 자신이 목격자는 아니지만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며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픈 뜨거운 사명감이 그의 속에서 불타고 있음을 간략하면서도 신중하게 말하고 있다(눅1:1-4). 그는 바울과 그외의 많은 목격자들을 만나서 세밀하게 자료를 수집했을 것이다.
더욱이 생존해 있던 예수의 모친 마리아를 만나서 여러가지 생생한 증언을 들었을 것으로도 보인다. 그리하여 마리아 자신과 사가랴와 시므온의 찬미가 온전하게 증언되어진다. 역사는 목격자들의 증거에 의해 운행된다.

2) 인자에 대한 확증
찬양자들의 찬양속에 '돋는 해'로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구원의 뿔'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속에 우리를 찾으러 오신 인자의 모습으로 각인되고 있다.
그리고 '데오빌로 각하'는 총독 정도의 직위에 해당하는 상당한 신분의 이방인 개종자다. 그는 분명히 학식이 높고 사려깊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자도 교육시키고 이해시킬수 있도록 체계적이고도 확실하게 기술했다.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일점의 오점도 없도록 감동적으로 조명하심이 도처에 보여진다.

2. 인자로 오신 구세주(눅1:8-80)
천사 가브리엘은 규례에 따라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가랴에게 나타나 엘리사벳이 수태한 것을 고지한다. 그러나 사가랴가 선뜻 믿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이를 낳기까지 벙어리가 된다. 여섯달 후에 사가랴에게 나타났던 천사가 마리아에게도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알려준다. 왜 예수보다 요한의 수태고지를 앞서했는가? 사가랴의 벙어리된 의미는 무엇인가? 엘리사벳의 숨어있음은 무슨 연유인가?

1) 두 모성의 만남과 태중의 문안
가브리엘의 수태고지대로 두 여성은 수태하였고, 경고한대로 사가랴는 벙어리가 되었다. 사가랴는 그의 간구함이 들릴 정도로(눅1:13) 믿음의 사람이었으나 응답받는 순간의 불신앙의 발언이 그의 혀를 굳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마리아를 맞이하는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라며 태중의 아이가 할말을 대언하고 있다. 요한은 예수 앞에 나서 그의 길을 예비한 자이므로 앞서 고지되고 앞서 태어났다.

2) 요한과 인자의 탄생
엘리사벳은 감사가 넘치는 심정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와 거룩한 안식을 위해 숨어 있었다. 그후 이 여인의 극적인 만남은 늙은 몸에 그리고 처녀인 몸에 잉태된 그 놀랍고 형용하기 어려운 감격과 수치심 등이 두 여인을 더욱 가깝게 포옹하도록 하였다.
드디어 어머니들의 곤혹및 기쁨속에 요한이 먼저 출생하였고, 육개월뒤 마굿간에서 예수가 탄생한다. 수태로부터 탄생의 모든 것이 낮아질대로 낮게오신 인자의 모습이다. 탄생을 축하하는 자도 가장 비천한 밤새 양을 지키는 목자들뿐이다.

3. 인자의 성장과 시험(눅2:1-4:13)
요한의 어릴때의 묘사는 잠시 스쳐지나가지만 예수의 유년 시절은 비교적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예수는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위에 있다고 했다. 그의 열두살때의 유월절 전례뒤에 성전에 머물렀던 이야기를 통하여 무엇을 전하려는 것인가? 그 예수는 왜 삼십세쯤 되어 가르침을 시작하였나? 왜 본격적인 사역에 앞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나? 그것이 인자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1) 인자의 인성과 시험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삼일간이나 가족과 떨어져 랍비들과 더불어 듣기도 하고 묻기도 했다. 그는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의아해 하는 모친에게 성자로서의 답변을 했다. 그러나 그는 부모에게 순종하여 받드는(눅2:51) 인자의 모습으로 삼십세까지 철저하게 인자로서의 효도를 감당했다. 그는 인자로서 인생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식욕, 물질욕, 명예, 권세욕을 친히 부딪쳐 보고 그 시험을 이김으로 연약한 인간들을 붙들어 주시는 구원의 뿔이 되셨다.

2) 인자로 오신 구세주
예수의 오심과 삶의 모습은 모든 인간의 표준점임을 알게 한다.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2:52). 이 말씀대로 그는 육신적으로 성장해가며 함께 지적인 성숙을 한것이 분명하고 신앙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신뢰받는 표준적인 삶을 살으신 참인자이시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이땅에 오셨다. 그러나 그의 오신 모습과 자라나심과 그의 사역의 모든 모습은 결코 왕으로서의 요란함이 아니다. 그는 인류의 영적 구속자로서 제물의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다. 그는 물방울이 스며들듯이 조용하고 평온하게 인류의 심령속에 잦아들어 자신의 형체는 흔적도 없이 내어주러 오신 인자이시다. 인자로 오신 그리스도는 인류의 모든 짐을 다 감당하기에 충분하시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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