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자들의 음모에 가담한 제자는(눅 22:1-6)?

가룟 유다.
가룟 유다의 역할은 무리가 없을때를 틈타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계획에 유다가 가담한 것은 그들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죄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든 일을 섭리가운데 이끄셔서 구원 사역을 완성지으십니다.

 
유월절을 예비하시는 과정가운데 하나님이 교훈하시는 것은(눅 22:10-13)?

장래의 일을 아시는 하나님임을 알수 있음.
예수님의 최후와 관련된 모든 일은 영원전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예정되어 있었으며,
예수님께서는 장래 일을 미리 아시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수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때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제도는(눅 22:14-20)?

성만찬 예식.
성만찬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며 살기로 결단하는 의식입니다. 이는 또한 그리스도가 재림하실때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과 더불어 갖게될 메시야적 축연을 상징합니다.

 
떡과 잔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눅 22:19,20)?

그리스도의 몸과 피.
이는 우리를 위하여 찢기고 흘리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합니다. 이것을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며 그리스도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고 새로운 언약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유월절 식사후에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다툼은 무엇인가(눅 22:24-27)?

누가 크냐 하는 다툼.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고난과 죽음을 앞에 두고 계신데도 그들은 권세를 얻었을때의 논공 행상(論功行賞)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후에 그들은 예수님이 사로잡히자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제자들에게 주어질 직위는 어떤 것인가(눅 22:28-30)?

나라를 맡아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는 지위.
이 나라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이며,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다스리는 원리는 지배하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특징은(눅 22:40-44)?

시험에 들지않기 위한 기도(눅 40절).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눅 42절).
성령이 돕는 기도(눅 43절).
힘쓰고 애쓰는 기도(눅 44절).
간절한 기도(눅 45절).
솔직한 기도(눅 42절).


유다의 범죄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눅 22:47, 48)?

적대자들을 데리고 예수께로 와서 예수님을 넘겨줌.
낮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백성들 때문에 밤에는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은신해 계셨기 때문에 적대자들은 예수님을 잡을수 없었습니다. 이때 유다가 예수님의 은신처를 그들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결국 그는 모든 범죄자의 모형이 되었습니다.

 
제자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쳤을때 예수님이 보이신 반응은(눅 22:50)?

떨어진 귀를 만져 낫게 하심.
주님은 자기를 잡으러온 무리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싸움의 성격을 정확히 아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순종과 섬김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이유는(눅 22:54-62)?

인간은 그 본성상 누구나 다 연약한 존재이고(고전1:25),
죄를 범하지 않은 인간은 한명도 없고(롬3:10),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할때 죄를 짓게 됩니다(아10:28).
그러나 성경은 베드로를 통해 죄를 범했다하더라도 즉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요일1:9).


닭울음 소리를 듣은 베드로의 행동은(눅 22:60-62)?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함.
이는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곧 회개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릇된 길로 나갈때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돌이켜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 늘 기억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슨 죄로 재판을 받으셨나(눅 22:66-71)?

신성 모독죄.
그러나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죄없으신 분으로 유대 지도자들의 모함에 의해 그리고 로마 총독의 잘못된 판결로 인해 무고하게 처형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건을 가장 고귀한 대속의 사건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심문 절차는(눅 22:54-23:25)?

① 대제사장의 심문(눅22:54).
② 산헤드린의 공회심문(눅22:66).
③ 빌라도의 1차 심문(눅23:1).
④ 헤롯의 심문(눅23:7).
⑤ 빌라도의 2차 심문(눅23:11).
⑥ 빌라도의 판결(눅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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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의 신앙은(눅 21:1-4)?

자신이 소유한것 전부를 주님께 바쳤고(눅 4절),
타인들의 이목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눅 1-4절),
자신의 마음을 전부 주께 바쳤으며(눅 4절),
가난해도 주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바쳤고(눅 4절),
예수님께 인정받는 참신앙을 가졌습니다(눅 3, 4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는(눅 21:7-9)?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고(눅 8절),
난리와 소란이 나며(눅 9, 10절),
자연 재해가 있고(눅 11절),
성도에게 박해가 있습니다(눅 12-19절).

 
말세의 때를 묻는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눅 21:7,8)?

미혹을 받지않도록 주의하고 거짓 그리스도를 좇지말라 하심.
예수님은 말세의 일로 미혹케하는 자가 많이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주의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세가 가까웠다고 신앙생활을 잘하고 그렇지 않다고 신앙 생활을 게을리하는 것은 옳지못한 발상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도가 핍박을 당할때 생각해야 한점은 무엇인가(눅 21:12, 13)?

믿지않는 자들 앞에서 복음이 증거됨.
핍박으로 인해 도리어 복음을 증거하게 될것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사를 보면 순교자들을 통해 복음이 증거되고 전파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성도가 핍박을 당할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시는가(눅 21:14-19)?

구제와 지혜를 베푸시고 머리털 하나도 상치않게 보호하심.
이는 성도들이 전혀 해를 입지않거나 무사히 풀려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도가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아래 있으며,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해도 그 고난을 견디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종말과 핍박의 때에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눅 21:29-31)?

하나님 나라가 가까운줄 알아야 함.
흑암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웠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악의 권세가 더욱 맹렬할수록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위축되거나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낮과 밤에 하신 일은(눅 21:37,38)?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감람산에서 쉼.
예수님께서 밤에 예루살렘에 거하지 않으신 이유는 아직 때가 되지않았기 때문에 적대자들에게 은신처를 알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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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권위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에게 무슨 대답을 하셨나(눅 20:1-8)?

요한의 세례에 관한 질문으로 도리어 그들을 침묵시킴.
유대 교권주의자들은 종교적 권위가 공회에 있으며 공회가 인정하지 않는 권위는 용납할수 없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의 권위를 무효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권위는 하늘로부터 주어집니다.


포도원 농부 비유의 내용과 그 의미는(눅 20:9-18)?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세상이 도리어 능욕하고 아들까지 죽였으나 그 죽인 자들은 결국 심판을 당하게 된다는 내용.
예수님은 유대인 공의회 산헤드린에서 자신을 죽일 것을 알고 이 비유를 통해 경고하신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에 대한 유대 지도자들의 오류는 무엇인가(눅 20:19-26)?

구약 경전 일부를 유대인 입장에서만 곡해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사건을 오해했고,
위선과 외식을 유발시켜 형식주의적 신앙의 오류를 저질렀으며,
참사랑이 결여된채 무조건 진리를 배척하는 배타주의에 빠져있었고,
내세의 영원한 구원보다는 현세의 안정을 더 갈망한 세속 지향주의의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잡지못한 이유는(눅 20:19)?

백성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백성을 자극하여 민요가 날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정하신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어떻게 부활이 없음을 입증하려 했나(눅 20:27-33)?

부활이 있다면 일곱 형제의 아내되었던 여자가 부활때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반문함.
이는 계대 결혼(형이 자식없이 죽으면 아우가 그아내를 맞이하여 형의 후사를 잇게하는 혼인 제도)을 인정하는 그 당시 상황에서 나온 유치한 발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후의 상태가 어떠하다고 말씀하셨나(눅 20:34-40)?

결혼 제도가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도 없고,
천사와 같이 됨.
부활은 단지 육신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육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의 부활관은 더이상 세상의 법칙에 지배를 받지말고 새로운 하늘의 법칙에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칭한 이유는 무엇인가(눅 20:41-44)?

혈육적으로 다윗이 조상이기 때문.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후손이지만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셨음.
이는 서기관들을 당혹케하려는 예수님의 역공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자인하도록 하기위한 것입니다.

 
서기관들이 버려야할 점은(눅 20:45-47)?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면서 속으로는 과부의 재산을 삼키는 행위.
서기관들은 소수였지만 권력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온갖 특혜를 누리며 지위를 이용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재물을 착취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은연중에 이런 죄악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잘 살펴야할 것입니다.

 

 

출처 : 갓피플


삭개오가 뽕나무에 올라간 이유는(눅 19:1-5)?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그는 여리고의 조세를 책임지고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거두며 그 지위를 이용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동족들로부터 ‘매국노’, ‘착취자’, ‘죄인’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는 자신의 문제로 고민에 빠져 예수님을 꼭 만나고 싶어 염치불구하고 뽕나무 위로 올라간 것입니다.
상황을 탓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신앙은 은혜를 얻습니다.

 
삭개오의 구원의 과정을 정리하면(눅 19:5-7)?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당함(눅 7절).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 위로 올라감(눅 4절).
예수님이 그를 보시고(눅 5절).
예수님이 그의 집에 유하심(눅 5, 7절).
삭개오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함(눅 6절).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결과는(눅 19:8-10)?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일으킴.
그리스도에 의해 생에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삭개오는 자신이 행하려고 결심한 바를 선언합니다(눅 8절). 이것은 자발적이며 율법의 요구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귀인이 종에게 한 므나씩 맡긴 것이 의미하는 바는(눅 19:11-19)?

귀인이 맡긴 일을 종들이 얼마나 성실하고 충성되게 이행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키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리우셨다가 심판주로 재림하실때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도록 맡겨주신 명령을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 보신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이익을 남긴 므나의 양이 아니라 자세입니다. 한므나로 열므나를 남긴 종이나 다섯므나를 남긴 종이 똑같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한 므나를 그대로 가져온 종이 책망을 받은 이유는(눅 19:20-24)?

교묘한 핑계로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임.
만약 장사를 하다가 잘못되어 겨우 본전만 가지고 왔더라도 성의만 있었다면 책망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명령을 아예 무시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목적은(눅 19:28-40)?

영원한 희생 사역을 성취하시고,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기 위하여,
죽음을 가져오는 사단을 치시고,
영광과 승리의 왕이 되시기 위해서,
또한 재림때 심판의 자격을 가지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때 타신 짐승은(눅 19:28-36)?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
이는 스가랴 9:9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히 사람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눅 19:35-40)?

무리들 -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송함.
바리새인들 - 못마땅하게 생각함.
무리들은 옳은 태도를 보였으나 그들도 예수님의 고난을 깨달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한편 바리새인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인정치 않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신 이유는(눅 19:41-44)?

예루살렘은 A.D. 70년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성전까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물리적인 파괴뿐만 아니라 현재 지도자들 사이에 팽배한 영적 형식주의로 인한 정신적, 종교적 황폐를 보시고 비통해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맨먼저 하신 일은(눅 19:45,46)?

성전을 정결케 하심.
예수님께서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화를 내신 이유는 상인들이 성전 관리들과 짜고 폭리를 취하여 백성들에게 부담을 가중시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은혜로운 곳이 착취와 폭리의 소굴로 전락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치하기로 꾀한 자들은 누구인가(눅 19:47,48)?

대제사장, 서기관, 백성의 두목들.
이들은 성전 체제의 옹호자들로 그 체제에서 가장 덕을 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출처 : 갓피플


불의한 재판장을 비유로 말씀하신 목적은(눅 18:1-8)?

낙망치 말고 기도하도록 권함.
기도 응답이 없으면 낙심하여 기도를 포기하고 맙니다. 그러나 응답이 쉬나타나지 않아도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차이점은(눅 18:10-13)?

바리새인은 공적을 자랑하는 기도, 세리는 회개의 기도를 함.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만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는 기도는 경계하십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분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회개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세리가 의롭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는(눅 18:11-14)?

자기를 낮추었기 때문임.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자랑보다는 허물이 많습니다. 세리는 이를 깨달았고 바리새인은 이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하나님 나라는 어떤 관계가 있나(눅 18:15-17)?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 같이 받들지 않으면 들어갈수 없다고 하심.
예수님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믿음과 소망을 칭찬하시며 어른들의 멸시하는 태도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은 무엇인가(눅 18:15-17)?

겸손하고 가식이 없는 신앙.
전적으로 의지하고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앙.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기를 나타내는 신앙입니다.

 
약대와 바늘의 비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눅 18:24, 25)?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움을 교훈하심.
인간이 소유한 재물이 주는 기쁨이 너무 커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잊게 만듦으로 하나님 나라를 얻기위해 선행되어야할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를 억제한다는 점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구원받을 사람은 누구인가(눅 18:26,27)?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 공적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믿음 자체도 우리 자신의 공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눅 18:34)?

들어도 깨닫지 못함.
제자들도 고난받는 메시야상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고난은 피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에서는 고난이 필수입니다.


여리고 소경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나(눅 18:35-43)?

예수님을 알고 확실한 소원을 가지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순수한 믿음.
그는 육신의 장애를 통해 영적인 장애를 깨닫고 예수님께 이 문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주님의 긍휼과 자비에 매달렸습니다. 그결과 그는 육신의 장애뿐 아니라 영적으로 구원을 얻고 많은 백성의 신앙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출처 : 갓피플


형제의 잘못을 몇번이나 용서해야 하나(눅 17:3, 4)?

하루 일곱번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하라 하심.
7은 완전수입니다. 즉 하루에 일곱번 용서하라는 말씀은 모두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마18:21). 그 이유는 우리 역시 하나님께 용서받아야할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의 표본으로 제시하신 것은 무엇인가(눅 17:5, 6)?

겨자씨 한알.
겨자씨 한알은 무척 작아서 극히 보잘것 없어 보이지만 그것이 심어져 자라면 커다란 나무가 됩니다. 작고 보잘것 없다 할지라도 그안에 생명이 있는 믿음이라면 이와 같이 자라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고침받은 사마리아인 문둥병자가 칭찬받은 이유는(눅 17:11-19)?

고침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함.
열명의 문둥병자가 나음을 입었으나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사람은 사마리아인 뿐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육체의 회복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구원을 얻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보다 큰 구원에 이를수 있는 첩경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느때에 임하냐는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눅 17:20,21)?

‘하나님 나라는 볼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있다 저기있다고도 못하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안에 있느니라’고 하심.
하나님 나라는 물리적인 처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을 말하는 것으로 성도들 가운데 주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리새인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질문한 이유는(눅 17:20, 21)?

주의 날이 도래했다는 소문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 질문에 답할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주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이에 예수님은 천국은 눈에 보이게 도래하지 않으나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선행될 일은 무엇인가(눅 17:22-25)?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함.
예수님께서는 왕으로 오셔서 권세와 능력으로 이세상을 다스리고 영광을 얻기전에 먼저 많은 고난을 당하고 사람들에게 버림받게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영광을 고난과 연결시켜 언급합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고난이 곧 영광인 것입니다.

 
인자의 나타나는 날의 상황은 어떠하다고 하는가(눅 17:26-30)?

안일하게 생각하던 때에 불현듯 심판이 임함.
노아의 때, 롯의 때에 사람들은 전혀 심판의 기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신들의 일에 바쁘다가 심판을 당했습니다. 평안한 때에 심판을 맞을 준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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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실한 청지기가 칭찬받은 이유는 무엇인가(눅 16:1-8)?

미래를 대비했기 때문.
청지기는 실직한후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현재의 기회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지혜롭다는 평가를 얻은 것이지 부정직과 사기술을 용서받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미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현재를 충실히 활용하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힘써야할 것입니다.


청지기의 의미는(눅 16:1)?

‘관리하다’라는 의미로 한가정의 재산이나 집안 전체를 관리하도록 위탁받은 고용인을 가리킴.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물인 이세상을 맡아 관리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눅 16:9)?

하늘의 보화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써 불의한 청지기가 마음대로 사용한 세상의 재물을 의미함.
이는 불신자들이 세상에서 장차의 유익을 얻기위해 지혜롭게 투자하듯이 신자도 천국에서의 유익을 위해 재물을 이용하는 법을 배우라는 뜻입니다.

 
성경의 재물관은 어떠한가(눅 16:10-13)?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수 없고 재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맡아 관리하는 것임.
비록 재물은 하나님보다 열등한 것이지만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서 재물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관리를 맡은 청지기답게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의 정체는 무엇인가(눅 16:14,15)?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하는 자들입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떠들어대도 결국 그들의 정체를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인정받기보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였고 무엇보다도 재물욕이 강했습니다. 모든 힘은 궁극적으로 재물로부터 나온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선지자 및 하나님 나라의 관계는(눅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합니다.
즉 율법과 선지자는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지시합니다. 따라서 전자는 수단이고 후자는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수단에 얽매여 목표를 잊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던 죄인들이 목표를 제대로 보았습니다.


부자와 나사로는 결국 어떻게 되었나(눅 16:19-22)?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서 고통을 겪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웠음.
현실에 보이는 현상이 곧 본질은 아닙니다. 부자는 날마다 연락하였고 나사로는 극심한 고통을 당했으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영원한 미래가 있었던 것입니다.


부자의 두가지 요구에 대한 대답은 무엇인가(눅 16:24-31)?

① 나사로를 통해 물을 찍어달라 함 - 부자는 살았을때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제 나사로가 위로받는 것이 마땅함.
② 나사로를 형제에게 보내 경고하게 함 -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으면 된다고 함.
이는 심판의 불가피성과 불변성을 나타내 줍니다.

 

 

출처 : 갓피플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원망한 이유는(눅 15:1,2)?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었기 때문.
율법은 죄인과 어울려도 부정해지므로 이를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근본 취지는 죄를 근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통해 죄가 근절되기 보다는 만연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회개에 관한 세가지 비유는 무엇인가(눅 15:3-32)?

① 잃은 양의 비유 ② 잃어버린 드라크마 비유 ③ 탕자의 비유.
이 비유들의 공통점은 ‘잃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잃은 양에 대한 주인의 사랑,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에 대한 여인의 애착, 집을 나간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애절한 사랑은 곧 잃어버린 자, 소외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한 기쁨은 어떤 것인가(눅 15:7)?

회개할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합니다.
사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므로 회개할것 없는 의인이란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착각일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회개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또한 누구에게 기쁨이 되나(눅 15:10)?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기쁨이 됨.
죄인의 회개는 개인의 구원을 가져올뿐만 아니라 온우주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회복을 가져오게 됩니다.

 
탕자가 회개했음을 알수 있는 대목은(눅 15:12-24)?

스스로 돌이켜(눅 17절), 죄를 시인하고(눅 18절), 책임을 지는 태도를 취함(눅 19절).
회개는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마음을 돌이켜야 하고 그다음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시인해야 하며 그죄에 대한 값을 기꺼이 받기로 다짐하고 끝으로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큰 아들은 어떤 점에서 탕자인가(눅 15:25-32)?

돌아온 동생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불평하며 마음으로부터 아버지를 떠났음.
형식적인 효자, 형식적인 종교인들이 바로 외식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가장 격렬한 말로 저주하셨습니다(눅11:39-52).

 

 

출처 : 갓피플


잔치에 갔을때 행할 지혜로운 자세는(눅 14:7-11)?

자기를 겸손히 낮춤.
자기를 높이려는 것은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자기를 낮추는 것이 영광을 얻는 방법입니다.

 
‘상좌’가 의미하는 바는(눅 14:7)?

잔치의 좌석은 보통 ㄷ자형으로 배열이 되어 있었는데 상좌는 세면의 중앙 부분을 의미함.
바리새인들은 상좌에 앉아서 섬김을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의 거짓과 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이 복된가(눅 14:12-14)?

갚을 것이 없는 사람.
벗이나 친척, 이웃 등에게 잔치를 베풀면 그들이 갚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갚음을 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혜택이나 갚음을 얻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갚음을 얻도록 행해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이란(눅 14:16-2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을 받도록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를 말함.
외적으로는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고 사죄와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고,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여 구원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 초청은 어느 누구에게도 국한되지 않고 민족, 신분의 차이를 초월하여 선포되었으며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간절히 권고합니다.

 
큰 잔치의 비유에서 청함 받은 사람들이 사양한 이유는(눅 14:16-20)?

밭을 사고, 소를 사고, 장가들었기 때문.
이들이 댄 이유는 모두 그럴듯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럴듯한 이유 때문에 주님이 베푼 구원의 잔치를 사양하곤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세속의 일이 아니라 천국의 일이요, 영생의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큰 잔치에 청함받은 사람들 대신 참석한 사람들은 누구인가(눅 14:21)?

가난한 자들, 병신들, 소경들, 다리를 저는 자들.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이 바뀐 이유는 원래 청함받은 자들이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천국 잔치는 자격없는 자들에게 베푸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될수 없는 자는 누구인가(눅 14:26-33)?

① 가족과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는 사람.
②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지 않는 자.
③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는 자.
요컨대 세상의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겨야 주님께 합당한 제자가 될수 있습니다.

 
소금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눅 14:34,35)?

소금은 좋은 것이지만 그맛을 잃으면 아무쓸데도 없어 버려지게 됨.
소금은 맛을 내는 양념, 소독, 방부제, 제물용 등 다양하게 사용되지만 그맛을 잃으면 버려질 뿐입니다. 이처럼 맛을 잃은 신자는 아무쓸모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출처 : 갓피플


예수님께서 회개를 촉구하시며 예로 드신 사건은 무엇인가(눅 13:1-5)?

빌라도의 어떤 갈릴리 사람 학살 사건과 실로암 망대 붕괴 사건.
유대인들은 죽음, 병, 과부됨, 무자식 등 모든 불행을 죄의 결과로 보고 갈릴리 사람들의 죽음을 죄에 대한 진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무런 불행도 당하지 않은 우리들 역시 그들과 똑같은 죄인임을 강조하며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열매맺지 못한 무화과나무 비유의 의미는(눅 13:6-9)?

나무 - 유대 백성, 열매 - 회개, 주인 - 하나님, 과원지기 - 예수님.
이 비유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유대인이라도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닥칠 것과 그리스도의 회개 촉구, 하나님의 인내에는 정해진 시한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회당장이 안식일을 들어 예수님을 비난한 이유는(눅 13:10-14)?

예수님께서 십팔년 동안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진 여인을 고치셨기 때문.
귀신과 질병에서 놓임받는 일은 안식일 준수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법조문에 사로잡혀 안식일에 근본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에게 외식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이유는(눅 13:15, 16)?

안식일에 자기 육축은 돌보면서 그보다 중한 사람 돌보는 일은 비난하므로.
이들은 율법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데 사용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은(눅 13:18-21)?

겨자씨, 누룩.
겨자씨는 아주 작은 것이로되 땅에 심기워 자라면 커다란 나무가 됩니다. 누룩도 적은 양이 가루속에 넣어진 후에는 모든 가루를 부풀게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에는 미약해 보이지만 나중에는 크게 창대해짐을 교훈합니다.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냐’는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눅 13:23,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구원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은 혈과 육으로 들어가거나 인간의 노력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만 들어갈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떠나도록 충고한 이유는 무엇인가(눅 13:31-33)?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기 때문에 유다 지방으로 도망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배려뒤에는 교활한 음모 즉 예루살렘에서 연합하여 예수님을 처치할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통치권 안에서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헤롯의 음모 계획을 들은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나(눅 13:32,33)?

예정하신대로 꿋꿋이 주님의 갈길을 가셨음.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헤롯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귀신과 병과 죄악의 추방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중단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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