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재림의 날에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18절]
13절 -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절 -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절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절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절 -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절 -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성경 역사상에는 크고 놀라운 날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던 날도 위대한 날이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던 날도 두렵고 놀라운 날이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던 날, 바울이 회심하던 날도 위대한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려고 이 세상에 탄생하던 날도, 십자가에서 죽음 당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날도 위대한 날입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털어서 가장 크고 위대한 날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재림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어떻게 바르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물론 그 재림의 날에 연연해서 지나치게 그 날을 예측하거나 단정해서는 결코 안되지만 재림의 날 자체 만큼은 중요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소망이 없이는 바른 신앙을 가질 수가 없고 바르게 살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는 25절 중에 1절 꼴로 예수님의 재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중요한 예수님의 탄생이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보다도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고로 재림 신앙이 없으면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 초림이 메시아의 탄생으로 성취되었듯이 예수님의 재림도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게 동에서 서편까지 번개가 번쩍함 같이 다 볼 수 있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예언한 말씀과 이 세상을 비교해 볼 때 예수님의 재림이 심히 임박한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하실 그 날에는 특별히 어떤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1. 많은 사람이 크게 놀랄 것입니다.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 때라도 예수님은 다시 오실 수가 있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크게 놀랄 것입니다. 그들은 재림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우습게 알고 등한히 여겨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재림을 믿지않던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크게 두렵고 놀라운 사실일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말세에 비웃고 조롱하는 이들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세지말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목사와 신학자들 중에도 안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이런 사람들은 커다란 놀라움과 두려움을 금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해외에 나간 후에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매일같이 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아빠가 언제 오는지 물어보고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전화도 하지 않고 갑자기 문밖에 와서 문을 두드릴 때 그 가족들의 반가움이 어떻겠습니까? 어느날 예수님도 이와같이 예고 없이 이 세상에 재림하실 터인데 과연 그때는 얼마나 놀랍고 반가운 날이 되겠습니까?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할 때 온 세상이 놀랐고,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질 때 세상은 더욱 놀랐습니다. 그러나 가장 크게 놀랄 일은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먼저 부활합니다.
지금은 예수 믿는 사람도 죽어서 흙에 묻힙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도 죽어서 공동묘지에 묻힌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공중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하여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무덤에서 나올 때 놀라운 변화를 받게 됩니다. 그때의 몸은 이렇게 늙고 병들기 쉽고 죄짓기 쉬운 몸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몸이 되는 것입니다. 번데기와 나비가 전혀 다른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주님의 형상과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영적으로 완전하고 육신적으로도 완전해지고 정신적으로도 완전해집니다.
결국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무덤이 신자들의 몸을 내어 주고, 바다가 죽은 자를 내어 주고, 광야가 그 흙에서 죽은 자를 내어 놓게 됩니다. 그러나 불신자의 시체는 1,000년이 차기까지 그대로 기다렸다가 심판의 부활, 둘째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은 휴거되어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아직 살아 있는 성도들은 어떻게 될까요? 죽었던 신자들이 부활하자마자 살아 남은 그리스도인들도 순식간에 변화되어 들림받아 주님과 연합하게 됩니다. 그들도 주님의 형상을 닮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그것이 이 시간에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나팔과 천사장의 호령과 성도들의 환성을 지금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면 여러분 중에는 '아니오, 안됩니다. 나는 아직도 세상에서 계획한 일들이 많습니다. 좀더 행복해지려고 합니다'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실 때 우리는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몇 천만배 더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당신의 모든 염려와 책임도 다 벗겨지고 몸은 완전히 건강해지고 눈물이 다 씻기워지게 됩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을 때 예수님이 '볼지어다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자 요한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한편 이 때 큰 분리가 생깁니다. 예수님 믿는 참된 성도들은 예수님을 맞으러 올라가고 불신자들은 세상에 남아서 큰 환난을 겪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웬일인가 하고 놀라겠지만 결국 세상은 혼돈해지고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 날은 참으로 두렵고 슬픈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공중에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믿는 파일럿이나 그리스도인들은 들림받아 나오고 비행기는 운행할 사람이 없어 추락하는 현상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들림 받을 때 세상은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불신자들은 주의 재림을 믿지 않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으로 아차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갈라짐이 생길 때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남겨지는 자에 속하겠습니까? 구원받은 무리에 속하게 되겠습니까?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겠습니까? 아니면 남아서 환난에 던지워지겠습니까?

4. 그리스도인들의 봉사의 기회가 다 끝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앞으로 자리가 잡히면 그리스도를 위해서 봉사를 하겠습니다', '앞으로 돈을 좀 더 벌면 주를 위해 봉사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회가 다 지나고 너무 늦을 때가 옵니다. 주님이 오시면 '왜 내가 주님을 위해 일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너무 늦었구나'하고 후회할 때가 올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농부에게 묻기를 '만일 당신에게 200만원이 있다면 100만원은 하나님께 바치겠습니까?' 그랬더니 '물론이지요 200만원이 있으면 100만원은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그러면 농장 둘이 있다면 그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겠습니까?' '물론이죠. 농장 둘이 있다면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죠.' '그렇다면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당신은 돼지 두 마리가 있다면 한 마리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까?'하고 물었더니 '글쎄요, 그런데 나에게 돼지 두 마리가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하더랍니다.
여러분 많은 액수를 드리지는 못해도, 어마어마한 큰 봉사를 할 수는 없어도 지금 가진 그대로 지금 할 수 있는 것으로 주님께 봉사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십시오. 주님이 오실 때 모든 봉사의 기회는 다 지나갑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봉사함으로 하늘에 상급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다 지나가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 가서 잘 믿을걸, 헌금할걸 하고 후회해야 소용없습니다.

5. 구원 받을 기회가 다 끝나게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에게 죄에서 떠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라고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오시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도 없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환란 기간에나 천년 왕국 시대에도 믿음을 지켜 구원받는 사람도 있겠으나, 사실 이 시대에 더욱 쉽고 넓게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졌는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그때 가서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나팔소리가 들리고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 당신의 기회는 끝나버리고 맙니다.
노아가 홍수심판 전에 경고할 때 코웃음 치고 조롱했던 자들이 방주의 문이 닫히고 홍수가 나기 시작할 때는 아무리 애걸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때는 이미 지나간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내일 오신다면 당신은 어디에 서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에게 지금 구원받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실 때 당신의 모든 기회는 끝나 버리고 맙니다.

6. 대환난이 시작됩니다.
그 무서운 대환난을 지금은 모두 설명할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세상 역사이래 전에 없었던 큰 환난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 고난이 있고 피를 흘린다고 해도 예수님의 공중 재림 후 있을 대환난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그 환난 때 남아서 큰 환난과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때 아무리 부르짖어 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망의 청황색 말이 온 세상에 달리며 살생할 때 수억만이 죽게 될 것입니다. 고통이 심할 때 사람들은 죽고자 하나 맘대로 죽지도 못합니다.
그때는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릴 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좋은 것을 가져온 다음에 적그리스도가 악한 것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 무서운 환난과 고통을 피하는 길은 오직 한 길, 더 늦기 전에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늦기 전에 예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예수님이 오시겠습니까? 아무도 그 날과 그 시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몸인 교회가 완성될 때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즉 주님이 재림하실 때 마지막 영혼이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어느 선교사가 너무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일하니까 누가 말하기를 '당신 좀 쉬어가면서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자살행위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니까 선교사는 '그러나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에 구원해야 될 마지막 영혼을 구원해야 되니까요'하고 계속 뛰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을 만세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무서운 환난을 피하고 주님을 기쁘게 만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

 

늘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것이 영성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28절]
12절 -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절 -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절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절 -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절 - 항상 기뻐하라
17절 -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절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절 -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절 -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절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절 -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절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절 -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절 -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절 -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절 -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28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며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고 권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고, 성령과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합니다. 바울은 기도 부탁과 문안 인사, 주의 은혜를 전하며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1. 바울의 권면 (12~22절)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교회 지도자와 성도가 단결할 때, 교회 공동체에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납니다. 이를 위해 성도는 교회 지도자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한편 게으른 사람을 타이르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며, 힘이 없는 사람을 붙들어 주어 그들이 넘어지거나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을 선하게 대하며 화목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악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성도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주님과 소통하고 동행함으로써 모든 것에 감사하는 절대 긍정의 삶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는 기도 훈련, 말씀 훈련, 경건 훈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성령의 역사가 불 일 듯 일어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요?
* 적용 질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 무엇에 더 힘써야 할까요?

2. 축복 기도와 당부 (23~28절)
부르신 이들을 끝까지 인도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거룩함을 지키며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거룩함은 성도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길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들이 주님의 순결한 신부로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겸손히 부탁합니다. 신앙의 역사는 기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주 안에서 한 몸을 이룬 성도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믿음을 나눌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는 더욱 든든히 서 갑니다.
* 묵상 질문
그리스도인의 성화(聖化)를 위해 필요한 믿음과 기도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내 안에서 어떤 흠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해야 거룩해질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제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지만 저를 부르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제 삶을 거룩하게 보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모든 상황 가운데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주님의 거룩한 뜻을 날마다 이루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빛의 자녀는 깨어서 주의 재림을 준비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11절]
1절 -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절 -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절 -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절 -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절 -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절 -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절 -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절 -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절 -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절 -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절 -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바울은 주의 날이 도둑같이 이를 것이지만 빛의 아들인 성도에게는 그렇지 않으니, 자지 말고 깨어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우리가 그분과 함께 살게 하셨으니, 서로 권면하고 덕을 세우라 합니다.

1. 피할 수 없는 날 (1~8절)
재림에 대한 잘못된 견해 때문에 미혹되거나 넘어지는 성도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하지만 그 시기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기에(마 24:36), 재림 날이 언제인지 정확히 안다는 사람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한편 재림 날이 오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둠을 좋아하고 죄의 늪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가 결국 재림 날에 파멸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마치 도둑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당혹스럽거나 두려운 일이 아닙니다. 빛과 낮의 아들인 성도는 정신을 차리고 영적으로 깨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사랑', 그리고 구원의 '소망'으로 무장하고 죄와 싸우며 살아가는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 묵상 질문
어둠에 속한 자와 낮에 속한 자에게 주님의 재림은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나요?
* 적용 질문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할 때 마음이 불편하거나 두렵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성도를 세우신 목적 (9~11절)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알려야 합니다. '심판'에만 초점을 맞춰 재림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할 때 이런 오류에 빠집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면 악인은 영원한 형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갑니다(마 25:31~46).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진노의 심판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성도에게 주님의 재림은 '축제'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공로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그분과 영원히 함께하는 구원의 은혜를 누립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진리 위에 굳건히 서도록 서로 권면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신 목적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주님의 재림 날까지 이 땅에서 성도답게 살아가도록 권면하며 덕을 세우는 일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어둠에 있던 저를 빛으로 부르셔서 구원의 감격을 누리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영광스러운 그날을 기다리고 기대하며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늘 거룩하게 동행함이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절~18절]
1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절 -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절 -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절 -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절 -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절 -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7절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절 -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9절 -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절 -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11절 -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절 -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절 -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절 -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절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절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절 -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절 -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바울이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이니 음란을 버리고 아내를 존귀히 대하고 색욕을 좇지 말고 분수를 넘어 형제를 해하지 말라 권합니다. 또 지금처럼 형제 사랑을 계속하고 자기 일에 힘쓰며 주님의 재림과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서로 위로하라고 합니다.

1. 거룩하게 행하라 (1~12절)
하나님 자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판단과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쳤으니, 배운 대로 힘써 행하라며 세 가지를 권고합니다. 첫째, 음란과 색욕을 따르지 말고 거룩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부부 사이에 정절을 지키도록 권하면서 특히 남편들에게 더욱 강조합니다. 정절을 지키지 않는 것은 거룩함을 요구하신 하나님(레 11:44~45)을 부인하는 것이기에 심판이 따릅니다. 둘째, 이미 잘하고 있지만 형제 사랑하기를 더욱 힘쓰라는 것입니다. 셋째, 게으르게 있지 말고 생업을 성실히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외부에서 교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교회 공동체가 궁핍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은 성도에게 무엇을 바라시나요? 성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몸과 마음과 영혼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2. 부활을 기억하라 (13~18절)
성도에게 죽음이란 삶의 끝이 아니라, 주님과 만나 영원히 사는 결혼의 관문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죽음을 대할 때 슬퍼하지 않고 기뻐합니다. 바울 당시에는 이미 죽은 성도가 예수님의 재림 때 살아 있는 성도와 마찬가지로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지금 살아 있는 성도뿐만 아니라, 이미 죽어 육신이 썩은 성도 또한 예수님의 재림 때에 하나님이 초청하실 것이라고 확언합니다.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요 생명의 원천이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살아서도 영원하신 하나님과 동행하고, 또한 죽어서도 부활에 초대되어 영원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원한 존재입니다.
* 묵상 질문
성도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 적용 질문
부활의 소망으로 슬픔과 아픔을 이겨 낼 수 있도록 위로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 삶에 깊숙이 찾아오셔서 교훈하시고 책망하시고 바르게 하시고 의롭게 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하소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할 그날을 소망하며 더 거룩해지고, 더 사랑하고, 더 성실하게 오늘을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환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교회 되게 하소서

[데살로니가전서 3장 1절~13절]
1절 -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2절 -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절 -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절 -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5절 -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6절 -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7절 -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절 -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9절 -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10절 -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11절 -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12절 -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절 -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지 못하는 바울은 교회가 환난 중에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일꾼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냅니다. 돌아온 디모데가 전한 믿음과 사랑의 소식을 듣고 위로받은 바울은 그들이 서로 사랑으로 행하고 주님 강림하실 때 흠 없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1. 디모데를 파송함 (1~7절)
험한 세상에서 교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어려움에 처한 성도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도와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며 파괴하려는 어둠의 세력에 맞서 지혜를 발휘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로 디모데를 파송해 그들의 믿음을 굳건히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으로서 영적 통찰력을 지닌 바울은 그들과 함께 있었을 때 이미 앞으로 닥칠 환난을 미리 일러 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고난을 겪고 있는 지금 그들에게 더 많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기에 디모데를 파송한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고난을 극복하는 성도의 모습은 고난받는 또 다른 성도에게 위로와 힘이 됩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은 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냈나요?
* 적용 질문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도록 내가 붙들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2. 교회를 위해 기도함 (8~13절)
'그리스도 중심'으로 생각할 때 성도는 고난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주 안에서 굳건하게 섭니다. 이에 바울은 새 생명을 얻은 것처럼 기뻐합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그들을 만나 그들의 믿음이 더욱 풍성해지고 성숙해지도록 돕고자 밤낮으로 기도합니다.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기에 바울은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또한 성도 간에 서로 사랑이 깊어지고 그 사랑의 폭이 넓어져 그들이 불신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끝으로,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데살로니가 성도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부족한 것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기도할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성장합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나요?
* 적용 질문
내 신앙생활에서 보충해야 할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저는 무엇을 염려하고, 무엇으로 위로받고,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말씀을 통해 돌아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위로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믿음을 굳게 하며, 기쁨과 감사로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취할 자세

[데살로니가전서 1장 2절~10절]
2절 -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절 -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절 -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절 -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절 -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절 -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절 -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절 -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절 -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사람에게 자세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자세, 공부하는 자세, 예배드리는 자세 등등,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의 자세가 그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그 사람은 자세가 틀려 먹었어'라고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자세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난 데살로니가 교회의 하나님을 향한 자세는 대단히 훌륭했기 때문에, 이것이 모든 거듭난 사람들이 마땅히 취할 자세라고 보아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
하나님께 대한 자세 중 가장 중요하고 첫째가 되는 자세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인데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가 아름답고 훌륭했습니다. 살전 2:13절에 보면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말씀을 받는 자세가 훌륭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는 우리의 마음 중심으로 받고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의 종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능력이 있고 생명이 있어도 그 말씀을 단순한 사람의 교훈 정도로 받는다든지 믿음으로 받지 않는 자에게는 근본적으로 속사람을 변화시키는 말씀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받고 전심으로 믿는 자 속에서 생명으로 역사하는 법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약 1:23절에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 때 영적으로 거듭나고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벧전 1: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올바른 자세는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의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다"(히 11:6)고 했습니다.
크리스찬이 되는 첫 단계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믿음으로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잘못 보도되기 쉬운 신문은 그대로 의심없이 보고 믿으면서 생명을 버리시기까지 하면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제자들이 목숨을 버리고 순교하면서까지 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공리이다(God is the great ax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학에 있어 공리는 이론 체계의 연역의 기초가 되어서 공리 자체는 다른 명제로부터 증명되지 않는 명제입니다. 증명할 필요가 없는 대 전제이므로 그대로 인정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주의 대 공리로 인정하고 먼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나중에 그것이 지식으로 변하고 체험으로 바뀌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무엇이나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들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은 비과학적이라며 안믿으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카네이션 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그 질과 원소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꽃의 진리라든가 그 아름다움은 과학적 세계에서는 증명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정이나 사랑, 존경, 책임, 시와 같은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학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 공리를 둬서 믿음으로 시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사가 있습니다. 포도주가 되는 것은 포도나무를 통해서 수분이 올라와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것을 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물이 포도나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 뿐입니다. 물이 포도나무를 통해서 포도주가 되는 것은 이상하지 않고 물이 직접 포도주가 된 것은 이상합니까?
시계가 평상시에는 한 시간에 60분씩 돌아가지만 특별한 때에는 주인이 단번에 24시간, 48시간도 돌려 놓을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두뇌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거나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고 못믿겠다는 사람은 10년을 교회에 다녀도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수학의 공리와 같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믿고 그대로 행할 때에 이해가 되고 지식이 되고 체험이 되는 것입니다.
밀가루를 그냥 두어서는 음식이 안됩니다. 물을 넣어서 반죽을 하고 익혀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귀한 진리의 말씀이라도 그 말씀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말씀과 무관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믿음을 합할 때 그 속에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우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선 자세
오늘 본문 말씀 중에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살전 1:9)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은 우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선 자들이었습니다. 우상이란 육신의 소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신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 죄악된 자아를 버리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보면 무신론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상 숭배는 제일 큰 죄로 여기고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서는 새겨서 깎아 만든 우상도 우상이지만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고 가치를 두는 모든 것을 강력하게 금지했습니다. 즉 하나님 외의 다른 것에 가치와 의미를 두는 것은 우상입니다. 숭배나 예배란 말의 영어 Worship은 worthship, 곧 가치를 두고 인정한다는 말의 뜻을 가진 복합 명사로 풀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인 가치를 하나님께 두지 않고 물질이나 쾌락이나 애정이나 사업에 둔다면 그것들이 그 사람의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업에 궁극적인 가치를 둔 사람은 그 사업이 파산될 때 투신 자살하게 되고, 애정에 궁극적인 가치를 두면 그것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지고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찬은 이 세상 모든 것은 있어도 없는 것같이 생각하여 집착을 버리고 언제나 하나님께만 신뢰를 두고 궁극적인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크리스찬이 하나님으로 만족한다면 그는 우상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강물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랑의 깊이를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완전히 하나님의 사랑에 전생애를 맡기고 뛰어들어야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서도 우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 더 귀한 가치를 두는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 외의 다른 것에 더 귀한 가치를 두는 것은 우상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절대적이듯이 우리 또한 우리의 모든 가치와 의미를 하나님께만 두는 삶, 곧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킨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3.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세
살전 1:1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우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섰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거할 곳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사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선 자는 거기 머물고 다시 멀리 떠나지 않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만 있으면 진액이 올라와 꽃피고 열매를 맺듯이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여 그 안에 거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생명과 능력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우리 소원의 뿌리가 넘치도록 만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짐을 풀고 맡기는 생활을 하십시오. 근심, 걱정 모두를 맡겨 버리십시오. 우리 신앙 생활은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버리므로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입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어 그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거하는 생활을 하시는 여러분들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
또 오늘 본문 말씀 중에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살전 1:9)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섬기고 예배하는 대상이지 식모나 머슴을 부려먹듯이 부려먹거나 이용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하나님 제일주의로 섬기며 살면 영원하고 참된 만족과 기쁨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영어에 예배라는 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Worship과 Service입니다. Service는 예배라는 뜻도 있고 봉사한다, 섬긴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한편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섬기는 자세가 고귀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다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믿음의 역사'. 참된 믿음과 살아있는 믿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역사가 나타납니다.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해야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납니다.

둘째, '사랑의 수고'.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 헌신적인 수고로 나타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하지 않고는 사랑을 실천할 수는 없습니다.

셋째, '소망의 인내'. 영생의 소망이 확실한 사람은 고난과 시련이 와도 견디게 됩니다. 일찍이 믿음의 선조들이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생의 소망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 믿음은 시작(과거)이요, 사랑은 과정(현재)이요, 소망은 완성 (미래)입니다.

넷째, '하나님 보시는 앞에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봉사는 눈가림만 하는 거짓이나 위선이 되기 쉽고 바라고 기대했던 대가가 돌아오지 않을 때 낙심하게 되고 또 칭찬듣고나면 교만해지기 쉽지만,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은 진실하고 충성되어 하나님 앞에서 장차 큰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되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이 모든 것을 신실하게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인정받았던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진실하고 충성된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 아 멘 -

사랑으로 돌본 영혼들이 내 기쁨과 면류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절~20절]
1절 -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절 -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절 -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절 -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절 -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6절 -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절 -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절 -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9절 -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10절 -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절 -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절 -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13절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14절 -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15절 -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절 -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17절 -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절 -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19절 -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절 -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바울이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요, 사도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일하며 아버지처럼 권면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고 고난을 견딘 그들은 바울의 영광이며 기쁨입니다.

1. 자녀를 기름같이 (1~12절)
복음 전도자는 돈, 명예, 권력에 대한 세속적 욕망을 이겨 낼 때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거짓이나 간사함, 아첨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아이에게 젖을 주는 유모의 심정을 품었기에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고 데살로니가 성도를 위해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 주고자 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며 자신들의 생계비를 충당했습니다. 바울은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동함으로 신앙의 본을 보였으며,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하듯 온화하게 권면하고 위로하고 가르쳤습니다. 성도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양육하고 인도하는 것은 영적 지도자의 책임입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은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했나요?
* 적용 질문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오늘 무엇을 결단해야 할까요?

2. 고난이 있을지라도 (13~20절)
복음의 열매는 십자가라는 고난 속에서 영글어 갑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놀라운 부흥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동족에게 핍박을 당합니다. 이는 유대에 있는 교회가 동족 유대인에게 핍박받은 것과 같습니다. 복음이 진리임을 아는 사람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비난과 핍박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을 지키는 데살로니가 성도는 바울의 소망이요 기쁨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이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서게 되는 것이 우리가 자랑할 면류관입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이 전해 준 복음을 데살로니가 성도는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 적용 질문

고난이 따를지라도 내가 받아들여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 안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열망과, 교회와 지체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열정을 부어 주소서. 오늘도 믿는 자 가운데 역사하는 말씀에 붙들려,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믿음으로 고난을 이기고 사랑으로 수고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환난 가운데 받은 복음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10절]
1절 -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절 -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절 -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절 -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절 -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절 -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절 -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절 -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절 -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절 -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배경 이해하기]
바울은 2차 선교 여행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했으나 유대인들의 훼방으로 교회의 기초를 공고히 하지 못한 채 떠나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아덴과 고린도에서 선교하다가 디모데를 파견해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편을 물었는데, 그들이 동족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신앙생활에 모범을 보이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종말에 대한 잘못된 생각으로 혼란스러워한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에게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 줌으로써 그들이 올바른 신앙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본 서신을 기록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먼저 1~3절에서 바울은 실라 및 디모데와 더불어 은혜와 평강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를 축복하고, 성도들의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4~10절에서는 그러한 감사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데살로니가 성도를 칭찬하고 격려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는 많은 환난 중에서도 바울과 주를 본받아 마게도냐와 아가야 일대의 모든 성도에게 모범이 되었을 뿐 아니라, 우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종말 신앙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바울의 기도(1~3절)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린 것은 그들의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때문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율법의 행위와 대조되는 표현입니다. 즉 기독교 신앙을 가진 후에 성도들이 과거와 달라진 삶,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도 확연히 다른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뜻합니다. ‘사랑의 수고’란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4:9~10).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동족에게 핍박을 당함에도 불구하고(2:14), 믿음을 버리지 않고(3:6)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인내하며 핍박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이 소망은 곧 종말에 있을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입니다(10절; 살후 1:3~10).

본문 연구 2: 환난 가운데 믿음을 지킴(4~8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당시 상당히 불안하고 적대적인 상황 가운데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도행전 17:1~9절에 따르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회당에서 3주간에 걸쳐 복음을 선포했고 그 결과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듣고 개종했습니다. 바울의 선교 활동으로 사람들이 회당을 떠나 기독교 신앙을 갖자 바울을 시기한 유대인들은 불량한 사람들을 부추겨 성을 소동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위험한 집단으로 오해받아 공격받고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은 널리 소문날 정도였습니다.

본문 연구 3: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재림을 소망함(9~10절)
당시 헬라인들의 모든 삶은 우상 숭배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우상을 섬기고, 가정에서도 가신을 섬기고, 사회단체 안에서도 우상을 섬겼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우상 숭배를 중단했을 때 그들은 경제적 손실, 물리적·심리적 박해, 공권력에 의한 박해는 물론 인간관계를 통한 개인적인 박해도 감수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손실을 감수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단했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그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려 내셨고, 예수님이 지금은 하늘에 계시지만 앞으로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소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묵상 포인트]
참된 신앙이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을 넘어, 이전 삶이 새로운 생활 양식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과 능력을 통해 고난 중에도 복음을 포기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만 ‘사랑’하며,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삶입니다.

1. 현재 내가 처한 어려운 상황은 무엇인가요?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킬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함께 나누어 보세요.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데살로니가 성도의 신앙 열심을 시기하고 증오해서 거리의 불량한 자들을 선동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핍박하기도 했습니다(행 17:4~10). 그러나 놀랍게도 성령께서 그들 마음속에 충만한 기쁨을 주셔서 그러한 극심한 환난을 이겨 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도가 받는 환난이 극심하면 극심할수록 하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성도에게 주심으로 그 환난을 능히 이겨 내게 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행 14:22). 실제로 주님의 복음을 확신 있게 전파하던 바울이 일생 동안 환난과 핍박을 받았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고후 11:23~27). 환난을 당한다고 해서 신앙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는, 세상이 주는 위협과 환난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닌 참된 기쁨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 환난을 기쁨으로 당당히 이겨 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주님을 만난 후 내 삶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복음을 알기 전과 알게 된 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세요.
데살로니가 성도의 믿음이 멀리까지 소문난 이유는 그들의 변화된 삶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옛 관습을 단호하게 끊어야 합니다. 회심이란 의지의 방향을 전환하고 삶을 전체적으로 재정비하는 것입니다. 이전의 삶을 단호하게 끊어 버리는 것이야말로 신앙생활을 위해 가장 먼저 결단해야 할 일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 생활 방식을 버리고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만 섬기고 사랑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견디면서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그분은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이십니다. 신앙이란 막연하고 수동적인 종교성을 뜻하지 않습니다.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기쁨으로 환난을 견뎌 내는 적극적인 자세가 진정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실 날을 소망하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문]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고, 기쁘게 주님만을 사랑하며, 재림의 날을 소망함으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본이 되는 교회는 아름다운 소문이 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10절]
1절 -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절 -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절 -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절 -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절 -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절 -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절 -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절 -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절 -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절 -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바울과 실루아노, 디모데가 주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합니다. 바울 일행은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기억하고, 그들이 환난 중에도 복음의 능력으로 믿는 자의 본이 된 것과 강림하실 주님 기다림을 칭찬합니다.

1. 복음의 능력이 나타남 (1~5절)
하나님은 사랑으로 선택하신 이들을 통해 교회 공동체를 만드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에 교회를 세우고 많은 결실을 맺었습니다(행 17:1~4 참조). 비록 유대인의 박해로 그들은 데살로니가를 떠나게 되었지만, 고난 속에서도 데살로니가 성도는 믿음으로 사역하고, 부활하신 주님께 소망을 두고 인내하며,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데살로니가 성도의 삶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치유와 회복과 변화를 일으키며 구원의 확신을 주는 절대적인 능력입니다. 이것이 가능함은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 묵상 질문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믿음으로 사역하고, 사랑으로 수고하며, 소망으로 인내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 우리 교회가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2. 믿는 자의 본이 됨 (6~10절)
주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의 향기는 담을 넘어 주위로 퍼져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는 시련 속에서도 성령 충만함으로 기쁘게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과 그 주님을 전하는 바울 일행을 본받고자 힘쓴 데살로니가 성도의 믿음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도 우상을 버리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한 데살로니가 성도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 사이에 회자되었듯이, 오늘날 우리 믿음도 가정과 교회를 넘어 널리 퍼져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전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환난 속에서도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인 데살로니가 성도는 어떤 사람들로 소문났나요?
* 적용 질문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선한 영향을 끼치며 본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사랑으로 저를 택해 주시고, 오늘도 은혜와 평강으로 제 삶을 이끄시니 감사합니다. 우상을 철저히 버리고,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의 삶으로 널리 소문나는 저와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Ⅰ.주의 재림의 때에 대하여 5:1-5

 

(1)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의 특정한 시기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것이 불필요한 일이며 무익한 일임을 말한다.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1절). 예수의 재림에 대해선 어떤 정해진 시기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에 대해서 아무 계시도 받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이나 혹은 우리들이 이 봉해진 비밀에 대해서 알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사역을 행해야 할 때와 시기는 우리가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지켜야 할 우리의 의무이자 관심사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와 시기에 관해서는 설명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인해 우리가 전혀 알 필요가 없는 것이거나 혹은 알게 되었을 경우일지라도 우리에게 전혀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2)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큰 놀라움을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밤에 도적같이(2절). 보통 밤의 잠자는 시간에 도적이 오는 것처럼 최소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주의 날에 그러한 놀람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3)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두렵게 임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3절). 주의 날에 저희에게 멸망이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은 갑자기 있게 될 것이다. 그 날은 그들이 육적인 평안과 안일 가운데 있을 때 닥치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마음 가운데 이르기를 '평안한다, 안전하다'하여 그 날이 있을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홀연히 정해진 시기에 그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은 또한 결단코 피하지 못하는 멸망이 될 것이다.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3절).

(4) 바울은 그들에게 그 날이 의로운 자들에게 어떻게 위로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4,5절). 즉 그들의 특성과 특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들은 빛의 아들들이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복된 상태로서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상태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방 세상에 있는 자들처럼 죄와 무지의 상태 가운데 있지 않았다. 그들은 낮의 아들이었다. 그들은 더이상 우상 숭배의 어두움 가운데 있지 않았으며 빛에 속한 생명과 불멸을 가져다 주는 복음 가운데 있었다. 이것으로 인해 그들이 갖게 될 유익에 대해서는 4절이 말씀해주고 있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4절). 그들은 분명한 경고를 받았다. 따라서 밤에 도적같이가 아니라 낮에 친구같이 오시는 인자 앞에서 위로와 신뢰로써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Ⅱ. 성도로서의 합당한 모습에 대하여 5:6-10

 

바울은 여러 가지 필요한 의무를 권한다.

1. 경계할 것과 근신할 것(6,7)

이 두 가지는 명백히 구분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상호 보완적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경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근신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근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래 경계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1)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6절). 우리는 안일한 가운데 있거나 부주의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으며 영적 게으름이나 나태함 가운데 빠져서도 안되겠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의무에 대해 매우 무관심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잠자고 있음으로 해서 내세의 것들에 대해 생각지 않거나 혹은 자신들이 꿈꾸고 있음으로 해서 그것들에 대해 올바르게 생각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계하도록 하자. 또한 깨어 있는 자들답게 그리고 경계하는 자들답게 행하도록 하자.

  (2) 우리는 또한 근신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얽어매려는 이 세상의 본능과 욕망을 삼가야 한다. 경계할 것과 근신할 것은 낮의 아들된 그리스도인의 특성과 특권에 가장 적합한 것이다. 이는 자는 자들은 밤에 잠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기 때문이다(7절). 그들은 자신들의 위험을 감지할 수 없었기에 잤던 것이며 자신들의 의무를 알지 못했기에 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이 행하는 것은 적합치 않다.

2. 경계할 뿐만 아니라 든든히 무장할 수 있어야 함(8-10)

우리의 영적 대적들은 많을 뿐 아니라 강하고 사악하다. 우리는 그들의 시험에 대비하여 자신들을 무장시킬 필요가 있다. 특별히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인의 세 가지 큰 은혜로 갖추어진 영적 무기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8절).

  (1)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를 경계하도록 그리고 근신하도록 지켜 줄 것이다. 믿음은 대적들의 공격에 대한 최상의 방어책이 될 것이다.

  (2) 우리는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불태워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것들에 대한 진실하고 뜨거운 사랑은 우리로 경계하고 근신하게 할 것이다.

  (3) 우리는 구원의 소망을 가져야만 한다. 영생에 대한 이 선한 소망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투구가 될 것이며 단지 잠간에 불과한 죄의 낙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이 구원의 소망을 가지는 근거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사람들의 공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 공로에 대한 가르침을 대적하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다음과 같은 것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세우심 : 하나님이 우리들을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9절). 만일 우리가 우리의 구원 받게 된 것을 끝까지 탐구해 올라가게 된다면 하나님의 세우심이라는 것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위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소망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공로와 은혜 :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 얻음과 구원에 대한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세우심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며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하려 하셨느니라(10절). 즉 영원히 그와 함께 연합하여 영광 중에 살게하려 하셨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는 우리로 살든지 죽든지 자기의 것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즉 우리가 이곳에서 사는 동안 그와 더불어 살 뿐 아니라 우리가 이곳을 떠나서도 그와 함께 살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Ⅲ.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행해야 할 것에 대한 권면 5:11-15

 

여러 의무들에 대해서.

1. 서로 밀접히 관계하는 자들에 대하여(11)

그러한 자들은 서로 위로하거나 서로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도록 해야 한다(11절). 그들은 스스로 그리고 서로서로 위로하거나 권면해야 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위로와 번영에 대해서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또한 서로 덕을 세워야 했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서로 나눠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하고 찬양하는 일에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하며 피차 좋은 본이 되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이와 같은 것들을 행했다('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했다). 선을 행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선을 행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더욱더 선행하도록 독려 받기 위해 더욱 권면을 받을 필요가 있다.

2. 사역자들에 대하여(12,13)

  (1) 복음 사역자들이 그들의 직무을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 사역자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수고하되 부지런히 수고해야 하며 힘이 다하기까지 해야 한다. 그들은 수고하는 자들로 불리우는 자들이므로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된다. 사역자들은 또한 사람들을 다스려야 한다. 그들은 엄격하게 다스리지 말고 사랑으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영적인 인도자들로서 양떼들에게 좋은 본을 보임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들은 주 안에서 사람들을 다스리는 자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법으로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또한 사람들을 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제대로 행하도록 가르쳐야 하며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책망할 수 있어야 한다.

  (2) 사역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의무에 대하여 : 사람들은 그들을 알아야 한다. 목자가 양떼를 알아야 하는 것처럼 양들도 자기들의 목자를 알아야 한다. 그들은 사랑 안에서 자신들의 사역자들을 높이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그들의 사역을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하는 일이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과 사람들의 영혼의 잘됨을 보다 증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실한 사역자들은 그들의 사역 때문에 결코 가볍게 평가되어져서는 안된다. 그들은 그 사역 때문에 높이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3. 서로에게 해당되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언급함(13-15)

너희끼리 화목하라(13절).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 야기될만한 혹은 계속될만한 어떤 견해 차이를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행함으로, 그리고 화목과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적합한 수단들을 강구함으로 자신들끼리 화목할 수 있어야 한다.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14절). 모든 단체에는 무질서하게 행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자들은 질책을 받아야 하며, 자신들의 영혼에 대해서 행하는 해로움이나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서 행할지도 모를 해에 대해서 분명하게 지적 받아야 한다.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14절). 소심하고 겁이 많은 마음이나 그런 류의 마음들은 모두 낙담하거나 근심된 마음에서 연유된 것들이다. 그러한 자들은 용기를 얻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멸시치 말아야 할 것이며 그들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선한 말과 위로의 말이 그들에게 어떤 효력을 나타낼런지 누가 알겠는가?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14절). 혹 자신들의 일을 잘 감당하지 못하거나 자신들이 져야할 짐을 잘 지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연약함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하며 그 짐의 한쪽 끝을 들어줌으로 그것을 잘 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14절). 우리는 잘 참고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의무는 그 사람이 선하건 약하건, 지위가 높건 낮건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 대하여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할 수 있는한 모든 일에 있어서 최선의 것을 행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모든 사람에 대하여 최선의 것을 생각해야 한다. 삼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15절). 우리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앙갚음하는 일을 행하지 않게 해야 한다. 용서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용서받는 자들로서 또한 용서받기를 바라는 자들로서 우리에게 합당한 것이다. 항상 선을 쫓으라(15절).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힘써 행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행하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선을 행해야 한다. 먼저 우리 자신들 가운데서 그렇게 행하고 그 다음 '기회가 되는 대로 모든 이에게' 그렇게 행해야 한다.

 

Ⅳ. 그리스도인의 여러 다른 의무들에 대하여 5:16-22

 

우리는 여기서 여러 짤막한 권면들을 대하게 된다. 이 의무들은 대단히 중요한 것들로서 우리는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고 있는지 잘 살펴볼 수 있다.

(1) 항상 기뻐하라(16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다면 항상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 생활은 기쁜 생활이자 계속적으로 기뻐하는 생활이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17절). 항상 기뻐하는 방법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더욱더 기도에 힘쓴다면 더욱 기뻐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기도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해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일을 행해야 하기 때문에 적합한 시기에 기도하는 것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도는 모든 다른 합당한 일들과 모든 선한 일들을 더 나아가게 할지언정 가로막지는 않는 것이다.

(3) 범사에 감사하라(18절). 만일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한다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여건에서건 즉 부한 가운데서건 역경가운데서건 항상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록 역경이라해도 그것이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최악의 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불평할 어떤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항상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기뻐할 것을 명하시며, 또한 범사에 감사할 것을 명하신다.

(4) 성령을 소멸치 말며(19절).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은 자들로 일컬어진다. 우리는 이 거룩한 불을 소멸치 않도록 유의해야 하겠다. 연료 공급을 중단할 때 불이 꺼지는 것처럼 만일 우리가 성령을 억제한다면 우리는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 된다. 또한 물을 붓거나 흙을 끼얹음으로 불이 꺼지듯이, 우리의 육체의 욕정과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땅에 속한 것에 마음을 둠으로써 성령을 소멸치 않도록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5) 예언을 멸시치 말고(20절). 우리는 예언을 말씀의 가르침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비록 설교가 평이하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라 할지라도 설교를 멸시치 말아야 한다. 우리의 의무이자 관심사가 되는 것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은 여러 번 들어도 유익한 것이다.

(6)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21절). 우리는 설교자에 대한 신뢰도에 준해서 무엇을 얻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설교자들이 말하는 것이 진리인가 그렇지 않은가 성경을 상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시험하려 함으로 정함이 없는 가운데 있어서는 안된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 결국에는 확고하게 서서 좋은 것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범사에 헤아리는 것은 반드시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함이다.

(7)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22절). 마음속에 부정한 생각을 채우고 삶 가운데서 어느 정도 악행을 용납하는 것은 곧 마음 가운데 치명적인 잘못으로 발전된 경향이 매우 큰 것이다. 반면에 마음의 순결과 생활의 순결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사랑하게 하며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죄의 모양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자는 오래지않아 실제적으로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Ⅴ. 맺음말 5:23-28

 

1.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23)

  (1) 바울의 기도의 대상은 평강의 하나님이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23절). 바울이 기도한 내용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평강과 화목에 의해서 최상으로 이루어질 것이었다.

  (2) 그가 기도한 내용은 그들의 성화였다. 하나님이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23절). 또한 그들의 보전이었다. 즉 그들이 '흠이 없게 보전되기를' 바랬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된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반드시 보전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이 온전히 이루어짐으로 우리를 흠이 없게 보전하사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그의 영광의 보좌 앞에 흠없이 나아가기까지 하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2.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는 바울의 위로의 확신(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24절). 하나님의 신실성이 곧 그들이 마지막까지 보전될 것에 대한 보증이셨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원하시는 것을 행하실 것이다. 그는 그들에 대해서 기뻐하실만한 모든 선한 것들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충실성은 우리에 대한 신실성에 달려 있다.

3. 바울의 기도의 요청(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25절). 형제들은 이와 같이 형제 사랑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더욱더 좋은 사역자들을 보내실 것이며 그들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은 더욱더 많은 유익을 얻을 것이다.

4. 바울의 문안(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26절). 바울은 이와 같이 자신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로부터 우정어린 문안을 보내고 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도 서로 자기들의 이름으로 문안하게 했을 것이다. 즉 그들로 서로에 대해 사랑과 애정을 나타나게 했을 것이다.

5. 이 편지를 읽게 하라는 엄한 명령(27)

이것은 권고일 뿐 아니라 주님에 의한 명령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편지는 모든 거룩한 형제들에게 읽혀져야 했다. 이것을 위해서 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은 알려지지 않은 언어로 계속 감춰져 있어서는 안되었으며 여러 나라 말로 통역되어야 했다. 성경은 또한 그리스도인의 대중집회에서 읽혀질 수 있어야 했다.

6. 다른 서신들 가운데서도 보통 나타나 있는 사도의 축복(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28절).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복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그 은혜를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부족을 채우는, 영원히 흐르면서도 넘치게 흐르는 은혜의 샘이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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