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거룩함에 풍성할 것을 권면함 4:1-8

 

1. 선한 것 가운데 더욱 많이 풍성할 것을 권면함(1,2)

  (1) 권면이 주어진 방식 : 그것은 넘치는 사랑 가운데서 주어졌다. 바울은 그들을 형제로서 권면하고 있다. 그리고 매우 진심으로 권면하고 있다.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1절).

  (2) 권면의 내용 : 그들이 거룩하게 행하는 가운데 더욱더 풍성하여 질 것을 권면하고 있다. 바울은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뛰어나게 하고자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자라도 온전하게 되기에는 부족하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인내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더욱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3) 바울이 권면함에 있어서 사용한 논거들 :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알았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들었거나 가르침을 받았었다. 복음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또한 가르치는 것이다. 바울은 그들에게 어떻게 말할 것인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쳤다. 올바로 살지 않고 말만 잘하는 것은 결코 우리를 하늘 나라로 인도해주지 못한다.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가르쳤고 권면하였다. 그들은 그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행하는 자들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행하는 데 있어서 따라야 할 규범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준 명령들'이었다. 그들이 비록 그리스도로부터 큰 권세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명령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이 그들에게 준 명령들을 알았다. 그것은 바울이 주 예수께 받았던 바로 그것이었다.

2. 부정함에 대한 경계(3-8)

  (1) 곧 음란을 버리고(3절). 우리는 이것에 의해서 온갖 부정한 것을 알게 된다. 마음이나 말, 그리고 행함에 있어서 정숙하지 않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배치되는 것이며 복음이 요구하는 거룩함과 배치되는 것이다.

  (2) 특별히 이 거룩함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겠다(3절).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거룩함을 요구하실 뿐 아니라 우리 몸의 순결도 요구하신다. 우리의 몸에는 정결함이 크게 요구되어진다. 4절에는 이 사실이 명백히 함축되어 있다. 여기서 몸이 영혼의 그릇으로, 즉 영혼이 들어있는 것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더러운 욕망에서부터 깨끗이 보존될 수 있어야만 한다. 이성을 가진 영혼이 육체의 성정과 육적 욕정에 사로잡히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색욕을 좇는 사람은 이방인처럼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5절). 그리스도인들은 회심하지 않은 이방인들처럼 행해서는 안된다. 부정의 죄, 특별히 간음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응하시는 큰 불의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않도록'(6절)이라고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복음에 확실히 배치되는 불의와 압박에 대한 경계 혹은 경고로 본다. 그러나 오히려 이 말의 의미는 부정의 죄로 인해 행해진 불의와 악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이 죄는 악한 본성에서 나온 것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보응이 따르게 된다. 부정의 죄는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목적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름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7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을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을 멸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8절).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죄들에 대해 무장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Ⅱ. 형제사랑과 종용함으로 일할 것을 권면함 4:9-12

 

1. 형제사랑에 관하여(9,10)

바울은 그들로 더욱더 사랑하도록 권면한다. 그들은 형제사랑에 있어서 나무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것에 대해서 그들에게 더 이상 쓸 필요가 없었다(7절). 바울은 이와 같이 그들에 대해 좋은 평을 함으로써 그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럼으로써 그들에 대한 그의 권면이 더욱 잘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1) 바울이 그들에게 명한 것 : 그것은 그들 자신들의 덕성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좋은 교훈으로 그들을 가르치셨다.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9절). 선을 행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께 가르치심을 받는 자이다. 하나님께 구원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사람은 또한 서로 사랑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사랑함으로'(10절) 그들이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은 좋은 증거를 나타내 주었다. 그들은 광범위하게 형제사랑을 나타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성도에 대해 이와 같아야 한다.

  (2) 권면 자체가 형제사랑을 더 많이 하라는 것이다(10절). 그들은 더욱더 기도하고 수고하도록 권면 받았음에 틀림없다. 이 땅에서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2. 부르심 가운데서 종용할 것과 열심히 일할 것에 관하여(11,12)

종용하여(11절). 조용하고 온순한 성품을 가지는 것과 평온하고 종용한 가운데 처신하는 것은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사단은 우리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매우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흐트러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용할 것을 힘써야 하겠다. 자기 일을 하고. 아주 바쁘게 남의 일에 참견하는 자들은 대개 거의 종용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며 자기들의 이웃들에게 큰 혼란만 야기시킨다. 적어도 그들은 '자기 일을 하라'고 한 권면에 거의 유의치 못한 것이 된다. 기독교는 우리 자신의 일로부터 우리를 면제해준 일이 결코 없으며 오히려 우리 자신의 일에 부지런할 것을 가르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외인에 대하여 정직히 혹은 단정하고 훌륭히 행할 수 있어야 하겠다(12절). 이것이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며 외인들은 물론 대적들마저 좋은 평을 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아무 궁핍함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어야 하겠다(12절). 자기 일에 부지런한 자는 아무 궁핍함 없이 안락하게 살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양식을 벌 뿐 아니라 그 안에서 가장 큰 낙을 누리게 된다.

 

Ⅲ. 바울의 위로 4:13-18

 

바울은 주 안에서 죽은 친척들과 친구들의 죽음으로 슬픔 가운데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로하고 있다. 그의 의도는 그들로 너무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친구들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기만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우리는 비록 죽음이 그 죽은 이들에게는 유익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슬픔 가운데 빠져서는 안 된다.

(1) 죽은 사람으로 인해 너무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은 마치 우리에게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다(13절). 그것은 내세에 더 나은 소망을 부여하지 않는 이방인같이 행하는 것이다. 내세에 대한 소망으로 우리는 모든 슬픔을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2) 죽은 사람으로 인해 너무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은 죽은 자들에 대하여 알지 못한 결과이다(13절). 자는 자들에 대하여 우리가 결코 몰라서는 안될 것이 있다. 특별히 주 안에서 죽은 자들에 대하여 우리는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들로 인한 우리의 슬픔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그들은 예수 안에서 자는 것이다. 그들은 잠자고 있는 자들이다(13절). 그들은 모든 수고와 슬픔에서 떠나 안식하기 위해서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 안에서 잠자고 있는 것이다(14절). 그들은 잃어진 바 된 자들이 아니며 또한 손실자도 아닌 도리어 죽음으로 큰 유익을 얻게 된 자들이며 이 세상에서 떠나 더 좋은 곳으로 옮겨간 자들이다.

  2) 그들은 죽음에서 일으킨 바 될 것이다. 따라서 잠에서 깨어나게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자는 자들을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기 때문'(14절)이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과 있게 될 것이며 이 세상보다 더 좋은 곳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오실때 그들을 데리고 오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에 대한 가르침은 우리가 교우들의 죽음 앞에서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귀한 위로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가르침에 대해서 철저히 확신한다. 이는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기 때문'(14절)이다.

  3) 그들의 상태는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복되고 영화롭게 되어질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주의 말씀이라고 알리고 있다(15절). 주 예수께서는 저 세상의 큰 영광과 능력 가운데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다. 주께서 호령으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16절). 그는 하늘에서부터 이 세상의 공중으로 내려오실 것이다(17절). 그 나타나심은 영광과 능력, 곧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 가운데서 되어질 것이다. 이 위대하신 구원자가 되시며 심판주가 되시는 이의 영화로우신 현현은 하나님의 나팔로 좇아 선포되어질 것이다. 죽었던 자들은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16절). 그때 우리 살아 남아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한다(15절). 살아 남아있는 자들은 변화될 것이다. 그들은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될 것이다(17절). 일어난 자들과 이와 같이 변화된 자들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져 거기서 그들의 주와 만나게 될 것이다. 여기에 그날에 있게 될 성도들의 큰 기쁨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주와 함께'있을 것이다(17절). 하늘나라에서 가장 첫째 되는 행복은 영원토록 주와 함께 있어 그를 보고 그와 더불어 살며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우들의 죽음을 당한 성도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우리와 먼저 죽은 자들은 모든 성도와 함께 우리 주를 만나게 될 것이고 영원히 그와 함께 있게 될 것이며 그로부터 혹은 서로로부터 결코 떨어지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바울은 우리가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Ⅰ.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더욱 증거함 3:1-5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디모데를 보내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혼자 아덴에 남아있는 것을 족한 것으로 여겼다.

1. 바울이 디모데를 부른 명칭(2)

우리가 우리 형제 디모데를 보내노니(2절). 다른 곳에서는 그를 자신의 아들로 부르지만 여기서는 형제로 부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또한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역자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함께 수고하는 자로 부르고 있기도 하다. 사역자들은 서로 서로 다투거나 경쟁하지 말고(이것은 사역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큰사역을 함께 수행하는 것으로 서로 굳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2. 바울이 디모데를 보낸 목적(2)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2절). 바울은 그들이 굳게 되어지기를 그리고 위로 받기를 바랬다. 우리가 위로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더욱 굳게 되어질 것이다. 바울의 목적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그들의 믿음에 대하여, 즉 그들의 믿음의 대상에 대하여, 그리고 믿음의 상급에 대하여 굳게 하고 위로함을 주는 것이었다.

3. 디모데를 보내게 된 동기(3-5)

그들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한 경건한 근심 때문이었다.

  (1) 바울은 위험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으며 잇따라 나타나게 될 결과를 우려하였다.

   1)복음을 위해서 환난과 핍박을 받게 됨으로 위험이 있었다(3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복음을 고백하는 자들이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을 알았으며 의심할 것도 없이 그들 자신들도 환난을 당했다. 바울은 시험하는 자가 어떻게든지 그들을 시험하지 않을까 염려하였다(5절). 마귀는 민감하고도 끈질긴 유혹자로 종종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공격해서 성공을 거두곤 한다.

   2)바울이 우려했던 것은 자신의 수고가 헛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복음 전파의 선한 열매와 결과를 방해하는 것이 마귀의 목적이다. 만일 마귀가 사역자들이 수고하는 것을 방해할 수 없게 된다면 그 마귀는 이제는 어떻게든지 사역자들의 수고의 성과에 대해 방해하려 들 것이다.

  (2) 사도 바울은 왜 디모데를 보내게 되었는지 말한다.

   1) 장차 받을 환난을 그들에게 미리 말했던 것을 그들로 기억나게 하기 위함이다(4절). 그뿐 아니라 바울은 '우리가 고난을 당하도록 세우심을 입었다'(3절)고 말한다. 사도들이 받은 환난들과 핍박들은 단순히 신앙의 원수들의 악에서 비롯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심'에 따라서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미리 경고 받았기에 미리 대비할 수 있었어야 했다. 또한 그들이 당하는 환난이 미리 예고되었던 대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들의 신앙을 더욱 굳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그들의 믿음이 확고하게 보존되고 있는가의 여부를 알기 위함이다. 만일 그들의 믿음이 넘어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시험자와 모든 시험들을 대항하여 굳게 설 수 있을 것이다.

 

Ⅱ. 디모데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옴 3:6-10

 

디모데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온 것에 대해 바울은 대단히 만족해 한다.

1. 디모데가 그들에 대해 전해 준 좋은 소식(6)

너희 믿음을 전하고, 그들은 마음에 요동치 않았으며 빗나가지도 않았다. 너희 사랑을 전하고, 그들의 사랑은 곧 복음과 복음 전도자들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그들은 '다시 그들을 간절히 보고자' 했다. 바울이 그들을 보고자 원했던 것처럼 그들도 바울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

2. 바울이 이러한 좋은 소식으로 얻게 된 큰 위로(7,8)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위로를 받았노라(7절). 바울은 그들에게서 들려온 좋은 소식이 자신이 겪은 모든 환난을 상쇄시키기에 충분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바울에게 새 생명과 활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와 같이 그는 위로를 받았을 뿐 아니라 또한 크게 기뻐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8절).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 굳게 서지 못했다면 그것은 오히려 그들을 죽이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이에 반하여 그들이 지속적인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보다 더 힘이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3. 이 소식의 결과로 하나님께 감사와 기도를 드리게 됨(9,10)

  (1) 바울은 얼마나 감사했는가. 9절에 그것이 나타나 있다. 우리는 가장 힘이 솟을 때 가장 감사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그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혹은 어떻게 기뻐해야 할지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한다. 그의 가슴은 그들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가득 찼다.

  (2) 그는 주야로 그들을 위해 간구하였다(10)절. 즉 그는 낮에 활동하는 가운데서나 밤의 선잠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기도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감사가 넘쳐날 때마다 항상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있었다. 바울은 이것이 온전케 되어지기를 원했으며 이것을 위해 그들의 얼굴 보기를 원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믿음의 내용에 관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 믿음의 명료성과 확신에 대하여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

 

Ⅲ. 바울의 뜨거운 기도 3:11-13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해서 도구가 되어지기를 바랬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과 더불어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다.

1.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기도함(11)

기도는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져야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께 올려지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기도하는 것이 여기에 나타나고 있다.

2. 그가 기도한 내용(12,13)

  (1) 그는 자신들의 길이 그들에게 직행하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11절). 사람들은 여행하는 장소를 정하는 것이 그 사람 자신의 의지나 능력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그의 자녀들이 어디로 가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고 지시해 주시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 가운데서 하나님을 인정하자. 그러면 그가 우리의 길을 지도하실 것이다.

  (2)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잘되기를 위해서 기도한다.

   1) 그들의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12절). 즉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풍성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으로 율법 뿐 아니라 복음의 완성이다. 디모데는 비록 그들의 믿음에 부족함이 있었을지라도 그 믿음에 대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비록 사랑이 더욱 많아져 넘치게 될 것을 위해서 바울이 기도하긴 했으나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도 역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 우리는 우리손에 착고가 채워지든 그것이 벗겨지든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있다. 기도에 덧붙여서 우리는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다시 그들을 향한 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큰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

   2) 그들의 거룩함에 흠이 없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13절). 우리 주 예수께서 끝날까지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거룩함은 하늘나라에 가게 될 모든 자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그곳에서 우리는 흠이 없어야 한다. 우리의 바램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에 굳게 서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이 없어야 하겠으며, 이제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흠이 없이 설 수 있어야 하겠다.


Ⅰ. 바울이 복음 전파할 때의 태도 2:1-6

 

바울은 자신과 실라, 그리고 디모데가 그들의 직무를 어떻게 성실히 수행했는가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여줄 수가 있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1절). 그들의 가르침은 헛되거나 결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도가 행한 가르침의 주제는 온전하고 견고한 진리였다. 바울은 세상적인 목적을 위해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그러한 그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행해왔음을 그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1. 용기와 결단으로 행함(1,2)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2절). 바울은 거룩한 용기를 힘입었으며, 자신이 직면했던 환난들 가운데서도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빌립보에서 좋지 못한 상황을 만났었으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바울과 실라는 착고에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곧 자유롭게 되어 그들은 데살로니가에 갈수 있었으며 그곳에서 이전 만큼이나 큰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었다. 선한 이유로 고난 받는 것은 숭고한 결심의 칼날을 무디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날카롭게 한다. 복음을 전파한 자들은 싸움 중에 전파하였는데, 이는 사도들이 전파하는 것에 힘쓰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거나 아니면 그들이 부딪쳤던 반대에 대해 분투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행함에 있어서 조금도 굽힘이 없었으며, 온 힘을 기울여 수행하였다.

2. 지극한 순수함과 경건히 열심을 행함(3-6)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3절). 의심할 것도 없이 이러한 자신의 신실성에 대한 의식은 바울에게 매우 큰 위로가 되었다. 또한 이러한 의식은 자신의 성공의 한 근거이기도 했다. 그가 전파한 복음은 간사함에서 난 것이 아니었으며 참되고 신실한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전파한 복음은 순수하고 거룩한 것이었다. 바울이 권면한 내용이 이와 같이 참되고 순수한 것이었듯이 그의 말하는 태도 역시 궤계가 없는 것이었다. 바울은 자신의 신실을 역설하고 있을 뿐아니라 그 근거와 증거를 아울러 덧붙이고 있기도 하다.

(1) 그들은 복음을 부탁 받은 청지기들이었다. 바울이 전파한 복음은 그 자신의 말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복음이었다. 사역자들은 큰 은총을 입은 자들이고 큰 영예를 가지게 된 자들이며 큰 신임을 부여받은 자들이라고 하겠다.

(2) 그들의 목적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만일 신실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의 헛된 공상이나 정욕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타락한 인간의 감정을 억제하여 주는 것이다. 이는 그들로 신앙의 능력아래 있게 하기 위해서다.

(3) 그들은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 앞에서 하듯이 행하였다(4절). 그는 우리의 모든 행위들 뿐아니라 우리의 모든 계획들과 목적들을 잘 알고 계시는 이시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보응을 받게 되는 것도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사도들의 신실성에 대한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1) 그는 아첨을 하지 않았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은 쓰지 않았다(5절).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사실을 전파하였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얻고자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려 하지 않았고,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아첨하지도 않았다. 바울이 헛된 소망을 가지고 그들에게 아첨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2) 그는 탐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증거하시는 대로 사역하는데 있어서 '탐심의 탈' 혹은 '탐심의 덮개'를 쓰지 않았다(5절). 그의 목적은 복음을 전파함으로 자신을 부하게 하는데 있지 않았으며 그렇게 하기는커녕 그들에게 양식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3) 그는 명예나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6절). 사도들은 사람들의 돈지갑이나 존경받는 것을 결코 기대하지 않았다.

 

Ⅱ. 그들 가운데서의 바울의 생활 태도 2:7-12

 

1. 사도들의 유순함에 대한 언급(7-10)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자 되어'(7절)라는 말씀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마치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7절) 친절하게 그들을 돌보았다. 이것은 엄격하게 다스리기 보다는 사람들을 설복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유모가 아기의 보챔을 참고 사랑으로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해 주며 아기를 가슴에 꼭 품고 소중히 기르듯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와 같은 태도로 성도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이러한 유순함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1) 가장 사랑이 넘치는 태도로 그들이 잘되기를 바랬다. 너희를 사모하여 (8절). 그들의 영원한 영적 번영이 바로 바울이 열심으로 사모했던 것이었다.

  2)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자청해서 기꺼이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그들에게 내어주고자 했다(8절). 그는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고자 했으며 또 헌신하였다.

  3) 자신의 사역이 다른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육체적으로 수고하였다. 형제들아 우리가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9절). 그는 사역의 수고를 위해 자신이 직업을 가지고 있었음을, 즉 장막 짓는 자로 일했음을 덧붙이고 있다. 이는 자신의 양식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 일을 위하여 낮뿐 아니라 밤 시간의 일부를 사용하였다. 이는 낮 동안에는 사람들의 영혼에 유익을 줄 기회를 가지기 위해서였다.

  4) 사도들이 거룩하게 행한 것에 대해 그들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또한 증거하고 계심을 말하고 있다.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10절). 그들은 사도들이 공중 앞에서 행한 외적 행위들의 관찰자들이었으며, 하나님은 사도들의 은밀한 행위 뿐 아니라 그들이 따랐던 내적 원리들에 대한 증거자이셨다.

2. 사도들이 사역의 직무를 신실하게 수행했음을 언급함(11,12)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선한 그리스도인들이었을 뿐 아니라 신실한 사역자들이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권면하였으며 또한 그들을 위로하였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인격적인 훈계로 경계하였다. 이것은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한 것이었다. 바울은 그들의 영적 아비였다. 그리고 그들은 유모처럼 길렀으므로 아비로서, 즉 아비의 권위로서라기 보다는 아비의 애정으로서 그들을 경계하였던 것이다. 이는 '그들을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12절)이었다.

  1)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위대한 특권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나라와 영광에 부르신 것이다.

  2)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위대한 의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것이다.

 

Ⅲ. 바울의 사역의 성공과 그 결과 2:13-16

 

1. 데살로니가 사람들 가운데서 바울 사역의 성공(13)

  (1)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태도 :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13절). 복음의 말씀이 비록 다른 사람들과 성정이 같고 똑같이 연약한 사람들인 우리 자신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사도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전한 말씀이며, 기록되어진 말씀이고 오늘날에도 전하여지고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들의 생각이나 가르침들을 넣는 자들은 몹시 비난을 받아야 한다. 또한 말씀을 들을 때 사람들의 설교나 사람들의 말을 듣는 정도로 그치는 자들 역시 비난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말은 그들 자신들만큼 부서지기 쉬우며 소멸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거짓되고 어리석으며 변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고 지혜로우며 의롭고 미쁘며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2) 그들이 받아들인 이 말씀의 놀라운 역사 :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13절). 성경 진리의 이 내적 증거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비록 그것이 성경의 신적 기원에 대해 전혀 생소한 자들에게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치 못하다 할지라도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증거를 가지는 것이 된다.

2. 바울의 성공적인 전도의 좋은 결과들(13-16)

  (1) 바울 자신과 그와 함께 수고한 동역자들에게 있어서 : 그로 인하여 그들은 쉬지 않고 감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13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신실되이 여기신 것과 자신의 사역이 성공을 거둘 수 있게 하신 것에 대해 아무리 감사해도 충분치 못하였을 것이다.

  (2)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있어서 : 그 말씀은 그들 속에서 효과있게 역사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고난 가운데서 인내할 수가 있었다.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자 되었으니 저희가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14절).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표시이다. 우리가 그것을 위해서 고난을 받게 될 때 그것은 복음이 가져다 주는 좋은 결과라고 하겠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의 고난을 언급한다.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 먼저 복음을 들었다. 그리고 먼저 그들이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았다. 이는 유대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가장 잔혹한 대적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극한 열성과 극렬한 핍박이 동족을 나뉘게 했을 것이다. 각처에서 유대인들은 핍박의 주모자들이 되었다. 특별히 데살로니가에서 그러했다. 그래서 바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15절). 그들은 주 예수를 죽였으며 선지자들을 죽였다. 그리고 사도들을 미워하였으며 할 수 있는한 그들에게 온갖 악행을 가하려고 하였다. 그들이 주 예수를 죽였다면 그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못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종교적인 분별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대적이 되었다. 그들의 핍박하는 마음은 강퍅한 마음이었다. 그들은 사도들이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금하였다. 그들은 이방인들에 대해서 시기하였으며 분노했다. 이는 이방인들이 함께 구원을 얻도록 허락되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은 그들의 죄를 채웠다. 이것으로 인해서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다. 즉 그들에 대해 분노가 예정되었으며 곧 그들에게 닥치게 될 것이었다. 예루살렘이 로마인들에 의해서 멸망되어 유대민족이 끊어지게 된 것은 이후 오래지 않아서였다.

 

Ⅳ. 떠나 있는 것에 대한 바울의 변명 2:17-20

 

바울은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지 못한 것을 변명하고 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떠난 것은 (17절). 그는 원하지 않는 중에서 밤중에 베뢰아로 보냄을 받았다. 비록 그가 몸은 떠나있었을지라도 마음은 그들과 함께 있었다. 심지어 몸이 떨어져 있는 것조차 오직 잠시동안 뿐이었다. 이 세상은 우리가 항상 있을 곳이거나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다. 거룩한 영혼들이 만나서 결코 떨어지지 않게 될 곳은 하늘나라이다. 바울은 진심으로 다시 그들을 보게 되기를 원했으며 또한 힘썼다. 우리가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17절). 그러나 사람의 일이 마음대로 어떻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힘쓰기는 했으나 더 이상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사단은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가는 것을 막았다(18절). 사단은 하나님의 일을 언제나 대적하며 할 수 있는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높이 평가했으며 그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확증시키고 있다. 그들은 바울의 소망이며 기쁨이며 자랑의 면류관이었다. 아울러 그의 영광이요 기쁨이었다.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심은 자들과 거두는 자들이 함께 기뻐할 것이다. 비록 그가 결코 그들에게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할지라도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오실 것이다.



Ⅰ.서언 1:1

 

1. 제명(題銘)과 저자(1)

바울이 이 편지의 저자이다. 그는 자신과 더불어 실루아노(혹은 실라)와 디모데를 언급하고 있다. 이 편지를 받을 사람들은 회심한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었다. 이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교회로 말하여지고 있다. 그들 가운데 이방인들은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선 자들이었으며 그들 가운데 유대인들은 예수를 약속된 메시야로 믿는 자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열심이었으며 헌신적이었다.

2. 문안(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 혹은 은총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모든 평화와 번영의 근원이 된다.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으로 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으면 어떠한 선한 것도 바랄 수 없다. 가장 선한 것이란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로부터 기대되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Ⅱ. 하나님께 감사함 1:2-5

 

(1)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를 기쁘게 하였던 일들과 그들 가운데 높이 칭찬할 만한 일들을 이제 막 언급하려 하면서 그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말로써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못할 때일지라도 우리는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감사하는 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2) 바울은 찬양 혹은 감사에 이어서 기도를 드린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어떤 유익으로 인해서 감사를 드리게 될 때 이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이 많아질수록 선하심을 더욱 많이 받기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3) 바울은 특별한 것들로 인해서 하나님께 매우 감사하였다.

  1) 그들에게 부여된 구원을 가져다 주는 은혜들.

   ①그들의 믿음과 그들의 믿음의 역사 : 그들의 믿음은 진실하고 살아있는 믿음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하는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진실한 믿음이 있는 곳은 역사가 있게 된다.

   ②그들의 사랑과 사랑의 수고 : 사랑은 수고에 의해서 드러나게 된다.

   ③그들의 소망과 소망의 인내 : 기초가 든든한 영생의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인내의 연단에 의해 나타나게 된다.

  2) 바울은 이러한 세 가지 기본적인 은혜들 즉 믿음, 소망, 사랑을 언급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실성에 대해서도 주목을 한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3절)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하나님 앞에서와 같이 행할 때 그것이 믿음의 역사일수 있으며 사랑의 수고일수 있고 소망의 인내일수 있으며 또한 신실일수가 있다. 바울은 이상의 은혜들이 흘러 나오는 근원 즉, 하나님의 택하시는 사랑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4절). 이와 같이 바울은 여러 갈래를 그 근원으로 소급해가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좋은 이유가 된다. 이는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택함 받은 자들의 어떤 공로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자신의 선하신 기쁨과 순전한 은혜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그 열매로 알 수가 있다.

  3) 바울이 감사를 드린 또다른 이유는 그들에 대한 그의 사역의 성과 때문이었다. 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 때문만 아니라 자신이 무익하게 수고하지 않았다는 것 때문으로도 감사하였다. 그들이 그가 전한 복음을 즐거워하였다는 것은 그들이 선택받았다는 증거였으며 하나님께 사랑하심을 받았다는 증거였다. 또한 복음은 말로만 그들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도 이르렀다. 그것은 단순히 귀만 즐겁게 하고 기분만 만족케 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쳤다. 즉 신적인 능력이 복음에 함께했던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단지 앵무새처럼 기계적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효력을 마음 가운데서 느낀다면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가 택함받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성령으로 된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에 협력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단지 죽은 문자에 불과할 것이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나 영은 살리는 것이다. 복음은 그들에게 큰 확신으로 이르렀던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진리임을 충분히 확신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자 했으며 자신들의 영혼을 복음계시의 진실성에 기꺼이 내맡기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과 그와 함께 수고한 자들이 자신들 가운데서 어떻게 처신했으며 자신들을 위해서 그들이 무엇을 했는가를 알았다.

 

Ⅲ. 복음의 선한 성과에 대한 언급 1:6-10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 가운데서 성과를 거둔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사도들과 사역자들의 좋은 본을 주의 깊게 배웠다(6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들을 따르는데 성심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이 가운데서 그들은 우리가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할 완전한 본이 되시는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되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이와같이 행했다. 그들은 고난 가운데서도 기꺼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함께 힘쓰고자 했다. 아마도 이러한 노력은 비싼 값을 치른 것으로 말씀을 더욱 귀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성령의 기쁨으로. 이 성령은 우리가 많은 환난을 당하게 될 때 우리에게 더욱 풍성한 위로를 주시는 이시다.

(2) 그들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다(7,8절).

  1) 그들의 본은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인상깊게 하는 인장 혹은 도구였다. 그들은 스스로 좋은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본을 보임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2) 그것은 아주 널리 퍼져나가 데살로니가 지경을 넘어서 온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성도들에게까지 전하여졌다.

  3) 그것은 매우 유명하였다. 주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시의 주변 지역 뿐 아니라 각처에 잘 알려지게 되었으며 유명하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 퍼진 복음의 좋은 성과로 인하여 다른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용기있게 받아들였으며, 또 복음을 위해서 기꺼이 고난까지도 받고자 했다. 그들이 속히 믿음을 가지게 된 사실은 외부에 널리 알려졌다. 이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자신들에게 복음이 전해지자마자 곧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들의 믿음의 결과는 유명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상 숭배를 끊어버리고 자신들을 살아계시고 진실하신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기다렸다(10절). 그가 오실 것을 믿고 또 그가 오셔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실 것을 소망하는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거룩한 종교의 한가지 고유한 특징이다.


# study
(1~28절)
재림과 성도의 삶 - 앞장에서 그릇된 재림관에 기인한 무질서한 생활을 지적한 바울은 본장을 통해 재림의 시기와 이를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즉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언제 임하게 될지 모르는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항상 깨어 근신하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무장하라, 권면, 화목, 위로, 인내, 선행을 실천하라, 기쁨과 감사와 기도를 생활화하라, 성령과 예언을 보존하고 이를 소중히 여기라고 권면하면서 이러한 실천적인 신앙 생활을 통해 그들이 순전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구원의 반열에 동참할 수 있도록 간구하고 있다. 본장에 제시된 이와 같은 바울의 권고와 교훈은 단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말세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성도들은 도적같이 임하실 신랑 예수를 온전히 영접하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항상 깨어 있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마 25:1~13; 막 13:28~37; 눅 12:35~40; 계 3:11; 계 16:15).
[2절]
주의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로서<욜 서론, 여호와의 날> 악인들에게는 멸망의 날이요(사 2:12; 렘 30:7; 겔 13:5; 욜 1:15; 암 5:18) 성도들에게는 부활과 구원 및 승리의 날이며(4:14~17) 나아가서는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날이기도 하다(마 13:30, 38~43; 막 9:1; 계 11:17; 계 19:6).
[3절]
저희가...할 그때. 불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내면적 평온과 외적인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있다고 느낄 때를 가리킨다.
[5절]
빛의 아들. 빛 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자녀(요 1:9)란 뜻이다.
[6절]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열 처녀 비유(마 25:1~13)를 기억케 하는 표현이다. 여기에서 '자지 말고'에 해당하는 헬, '메카듀도멘'은 도덕적 타락, 또는 영적 나태 및 무관심에 빠지지 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8절]
믿음과...투구를 쓰자. 사탄의 유혹과 공격을 방어하는데 필요한 신앙적 무장을 가리킨다<엡 6:10~20, 성도의 영적 전쟁>.
[11절]
권면하고에 해당하는 헬, '파라칼레이테'는 '권하다', '이끌다', '격려하다', '위로하다'라는 의미로서 충고보다는 격려의 뜻이 강조된 말이다. 따라서 진정한 권면이란 상대방의 잘못을 꼬집은 차원을 뛰어넘어 그의 단점이 장점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4:1~6; 행 14:22; 고후 2:7; 딛 3:1, 2). 성도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위한 권면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골 3:16, 17).

(12~22절)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의무 - 재림을 기다리는 데살로니가 교인들 뿐 아니라 오늘날의 성도들까지도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적 의무로서 목회자들에 대한 의무(12, 13절), 성도들간에 서로 지켜야 할 의무(14, 15절), 개인적 의무(16~18절), 영적 의무(19~22절) 등이 열거되어 있다.
[12절]
수고하고. 성도들의 신앙 생활을 지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다스리며는 교인들을 치리한다는 의미이고(딤전 3:4, 5, 12) 권하는 자란 도덕적, 윤리적 측면에서 성도들의 삶을 훈계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세 가지 사항은 목회자에게 주어진 사명으로서 주의 사역자들이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겔 33:6, 종교 지도자의 책임>.
[14절]
규모 없는 자란 그릇된 재림관으로 인해 현실 생활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며 마음이 약한 자는 환난과 박해를 이겨내지 못하고 상심하거나 의기 소침해진 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힘이 없는 자는 신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자로서 소위 실족하기 쉬운 자들을 가리킨다.
(16~18절)
성도의 삶의 자세 - 고전 13:13절의 신망애와 함께 성도들의 마땅한 생활 자세를 극명하게 요약하고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이는 특히 이미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얻고 현세의 모순된 세상에서 사탄의 세력과 자신의 죄악된 본성과 싸우면서 미래의 건전한 영육의 구원을 사모하는, 즉 구원론적 관점에서 바라본 성도의 실존적 상황과 비교하여 보면 더욱더 큰 감동을 준다.
[16절]
항상 기뻐하라. 먼저 과거적 시점에서 우리는 비록 완전한 성취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이미 구원을 얻어서 천국의 시민권을 완전히 성취했으니 약간의 어려움에 시달릴지라도 그 마음 깊은 곳에는 기쁨이 용솟음치지 않을 수 없다. 크고 절대적인 축복을 얻은 자가 작고 상대적인 세상 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기뻐한다는 것은 자발적 감정인데 이것이 명령형으로 제시된 점에 유의하라. 하나님은 인간에게 완전한 축복을 주셨기 때문에 이처럼 말하실 수 있는 것이다.
[17절]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로써 끊임없는 신앙 각성을 가짐으로써만 성공적 인생을 살 수 있고 또 목적지에 안전히 이를 수 있느니 매순간 주님의 도움을 구하라는 현재적 시점의 충고이다.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는 '모든 상황과 환경'이란 의미이다. 성도는 이미 영원한 천국의 모든 것을 소유하였으므로 모든 상황에 있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룻 서론, 감사의 요소와 의무>.

[19절]

성령을 소멸치 말며. 각자에게 임하는 성령의 사역을 불에 비유한 것으로서, 성령만이 인생에게 줄 수 있는 은사의 능력과 기쁨을 방종한 생활로써, 광신적 열광이나 지나친 지적 독선으로써 스스로 막아 버리는 어리석음을 경계한 것이다. 한편 성령은 성도가 중생한 즉시 성도 각자에게 내주하여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의 영적 자세에 따라 성령 충만을 그야말로 날마다 부어질 수도, 그야말로 꺼진 불처럼 될 수도 있다. 성도는 자신의 인격 속에 내주하는 성령의 불을 소중히 간직하여 그야말로 불처럼 타오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20절]

여기서 예언이란 말씀 속에 내포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풀이하는 일을 가리킨다. 멸시치 말고. 남용하거나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라는 뜻인데 이러한 경고를 외면할 때는 멸망에 이르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벧후 3:16).

[23절]

도덕적, 윤리적으로, 나아가서는 신앙적으로 성결한 생활을 계속하라는 의미이다(3:13; 빌 2:15; 골 1:22; 딤전 3:2; 딛 1:6; 벧후 3:14). 영과 혼과 몸. 이를 인간의 보편적 구성 요소에 대한 언급으로 보아 소위 말하는 삼분설 또는 이분설 논쟁이 제기되는 구절이다. 여기서는 영혼과 육체를 포함하는 전인격을 주 앞에서 성결하게 유지하도록 교훈하기 위한 언급이라고 이해하는 것으로 족하다.

[26절]

입맞춤은 초대교회의 성도들 사이에 행해졌던 인사법(눅 7:45)으로서 특히 사도 바울은 '거룩한 입맞춤으로...문안하라'는 형식의 인사말을 즐겨 사용했다(롬 16:16; 고전 16:20; 고후 13:11). 한편 이러한 입맞춤은 처음에는 남녀 구별 없이 형제애의 표현으로 행해졌으나 A.D. 3세기부터는 남녀로 구분되어 시행되었으며 폐단이 많아 얼마 지나지 않아 폐지되고 말았다. 한편 이러한 풍습은 시대와 사회적 가치 기준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것이므로 어떤 식으로 인사하느냐는 것은 그리 중요한 사실이 못 된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과 축복을 기원하는 마음과 말로써 인사할 수 있어야 한다(창 43:29; 룻 2:4; 삼상 15:13; 시 129:8; 눅 1:28)<삼하 20:9, 성경에 나타난 인사법>.

[27절]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즉 자신의 편지를 데살로니가 모든 교인에게 빠짐없이 읽어 주라는 사도적 당부인데 이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세계 만민에게 들려 읽히라고 확대 해석되어야 한다.

 

# 해설

종말을 전제한 사도의 교훈 (12~22절)

종말에 대한 개인.역사적 차원의 문제를 다룬 앞단락에 이어 바울은 이제 그 종말을 향하여 가는 과정으로서 이 땅에서의 마땅한 삶의 모습을 요약하고 있다. 하나님의 종에 대한 권위 인정(12, 13절), 성도간의 유기적 연합(14, 15절), 개인에 있어서의 성령 충만한 삶의 모습(16~22절) 등의 내용으로 전개되는 본문은 간략하지만 엄정하게 성도의 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본 서신 전체를 통해 우리는 기독교의 성경은 진정한 삶의 모습과 원리를 보여 주는 동시에 영원한 미래를 제시하며 거기에 합당한 현재의 삶을 준엄히 요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끝맺는 말 (23~28절)

최후까지 성도가 보존되기를 축도하고, 또 이 편지는 단순한 개인 편지가 아니라 전회중에 대한 교훈이므로 함께 읽고 따를 것을 사도의 권위로 명령한 후 마지막 문안 인사말에서도 예수의 권위와 이름으로써 말하는 바울의 철저한 예수 제일 신앙을 읽을 수 있다.

 

# 핵심

1~22절

예수의 재림은 예기치 못한 때에 이뤄질 것이므로 성도가 항상 영적으로 깨어 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 묵상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 (2~11절)

그리스도의 재림은 갑자기 도적같이 임하기 때문에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이 날을 '주의 날'이라고도 하며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의 날'이라 했습니다. 이 날은 불신자들에게는 멸망의 날이요(사 2:12; 겔 13:5), 신자들에게는 부활과 승리의 날입니다. 때문에 성도들은 항상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16~18절)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성도들이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기쁨은 단순한 기쁨이 아닌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빌 4:4). 또한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열심을 다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는 환난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의 인간 본성 구분 (23절)

바울은 인간의 본성을 영과 혼과 몸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리스 교부들은 영을 하나님과 교통하는 이성적인 부분으로, 혼은 동물에서 발견되는 생명이나 감정, 감각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혼과 몸(창 2:7; 마 6:25), 영과 몸(전 12:7; 고전 5:35)을 혼용해서 사용한 곳도 있습니다. 바울의 인간 본성에 대한 언급은 그리스 사고에 젖어 있는 교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 study
(1~18절)
종말론적 교훈 - 본 서신의 후반부(4, 5장)가 시작되고 있는 본장을 통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재림과 종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지적함과 동시에 그들이 올바른 신앙관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권고를 통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지녔던 소극적인 재림관, 곧 현실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종말관을 지양해야 하며, 보다 건전하고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실해야 된다(전 9:10; 엡 4:28; 살후 3:12)는 귀중한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1~12절)
종말을 예비하는 성도의 삶 - 도덕적 교훈을 다루고 있는 이 부분은 부도덕한 생활을 청산하라는 권고를 비롯해서 형제 사랑과 근면 생활에 대한 권유가 언급되어 있다.
[1절]
종말로. 서신의 결론 부분을 암시하거나 실천적 부분을 소개할 때, 또는 문장을 전환하고자 할 때(빌 3:1) 사용하는 표현으로서 이러한 형식은 바울 서신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바울의 임박한 종말관을 엿볼 수 있는 구절이다(엡 6:10; 빌 4:8; 살후 3:1).
[3절]
거룩함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 중 하나인데(계 4:8), 여기서는 성도들의 성결한 삶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내리신 지상 명령일 뿐 아니라(레 19:2) 그분의 자녀가 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조건이기도 하다(눅 1:75; 고후 7:1; 엡 4:24; 벧전 1:16; 벧후 3:11).
[5절]
색욕. 사실 인간의 욕망 중 가장 자제하기 힘든 것 가운데 하나가 성적 욕망이다. 이 욕망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 나아가서는 국가마저도 파멸케 하는 엄청난 범죄를 동반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성경 역사와 인류 역사를 통해 입증된 불변의 진리인 것이다<신 27:21, 성경에 나타난 성범죄 이해>.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된 성도들은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는 것(엡 4:22~24)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6절]
이 일에...해하지 말라. 정욕에 사로잡혀서 타인의 아내를 범하는 죄를 짓지 말라는 뜻이다.
[8절]
저버리는 자. 색욕에 대한 바울의 권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자, 곧 하나님께서 성도를 부르신 목적이 오직 거룩하게 하는 데 있다는 진리를 외면하는 자를 가리킨다.
[9~10절]
여기에서 형제 사랑이란 혈육간의 사랑이라기보다는 성도들간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교제를 의미하는데(요 15:13; 요일 3:16) 이것이야말로 기독교 윤리를 대표하는 고귀한 덕목이라 할 수 있겠다(3:12; 마 22:39; 요 13:35; 히 13:1; 약 2:8; 벧전 1:22).
[12절]
외인. 원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지칭할 때 사용한 말이나 여기서는 불신자들을 가리킨다(고전 5:12; 골 4:5). 한편 성도들은 불신자들에게 신앙 생활 뿐 아니라 일반 생활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마 5:16).
[13절]
자는 자는 죽은 자를 뜻한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죽음'을 '잠'으로 표현했는데(신 31:16; 왕상 2:10; 단 12:2; 마 27:52; 요 11:11~13; 행 7:60) 이는 그들이 오래 전부터 이미 부활에 대한 소망을 지니고 있었음을 추정케하는 자료가 된다. 소망 없는 다른 이.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갖지 못하는 불신자들을 가리킨다.
(14~17절)
휴거에 대하여 - 이 부분에는 '휴거'(공중 들림)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어원 : 휴거(携擧, Rapture)는 '붙잡다'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라피오'(Rapio)에서 유래한 말로서 '들림을 받는다'는 뜻인데 성경에는 이 단어가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다.
2) 정의 :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미 죽은 성도들과 살아 있는 성도들이 모두 지상으로부터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게 되는 현상을 가리킨다(16, 17절).
3) 모형 : 이러한 휴거는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창 5:24; 왕하 2:11)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전도자 빌립(행 8:39, 40)과 사도 바울(고후 12:1~4)도 이와 유사한 체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가장 완벽하고도 확실한 형태의 휴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사건(눅 24:50, 51; 행 1:9~11)을 들 수 있다.
4) 휴거의 시기 : 휴거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성경 구절은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및 7년간 대환난을 기점으로 하여 발생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환난 전 휴거설(Pre-tribulation view) : 휴거와 재림 사이에 7년간의 대환난이 있으며 휴거는 대환난 전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견해

  ② 환난 중 휴거설(Mid-tribulation view) : 7년 대환난을 전 3년 반, 후 3년 반으로 양분하여 그 중간 시점에 휴거가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

  ③ 환난 후 휴거설(Post-tribulation view) : 7년 대환난 후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성도들의 부활과 휴거가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

5) 휴거라는 단어 자체와 그 시기 등은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휴거와 관련해서 기억해야 할 사항은 영생과 영벌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시점 곧 부활과 재림의 시기가 반드시 도래한다는 점이다. 여하튼 휴거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과 동거하게 되는 사건으로서 이것이 바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계 19:9)인 것이다(계 20:1~15).

 

# 해설

종말을 예비하는 성도의 삶 (1~12절)

앞장을 일단락 짓는 '종말로 형제들아'라는 어두가 암시하듯 4장은 전반부(1~3장)의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칭찬과 격려에 이어 후반부(4~5장)의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교훈과 권면 부분의 서론격에 해당한다. 그 교훈은 단적으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고난에 직면한 교회는 주님의 재림, 즉 세상의 종말까지는 언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는 엄연한 현실에 대한 각성, 그에 대비하는 건전한 교리 확립, 경건한 삶의 권면 등이다. 본문은 다음 단락에 언급된 데살로니가 교회의 종말론에 대한 오해 등 교리적인 가르침에 앞서 먼저 종말을 예비하는 성도의 합당한 삶을 천명하고 있다. 특히, 바울은 말세의 대표적인 징조로 나타나는 자유 방임 및 쾌락 추구 현상(딤후 3:1~5)에 대해 경종을 울리면서 소극적으로는 성적인 순결을 유지하는 삶(1~8절)을, 적극적으로는 형제 사랑의 삶을 촉구한다(9, 10절; 롬 12:9, 10). 한편,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직업을 갖고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이유를 생활비 충당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복음 증거의 한 방편으로 언급한다(11, 12절; 잠 13:4; 롬 12:11).

개인 종말과 역사 종말의 문제들 (4:13~5:11)

종말에는 각 사람이 한 사람씩 죽음을 대면하는 개인 종말과 훗날 예수께서 재림하심으로 이 땅의 역사가 종결될 역사 종말 두 측면이 있다. 이 부분의 전반부인 4:13~18절은 개인 종말 측면에서 예수의 재림을 보기 전에 죽은 자는 영영 예수님이 계시는 하늘 나라로 못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고, 후반부 5:1~11절은 역사 종말의 경고와 그 시기의 불확실성이 야기하는 두 가지 문제 즉 공포와 태만, 두 측면에 대한 권면이다. 여기서 바울은 성도로 세움받은 독자들에게 그 죄를 대신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이제 남은 문제는 우리가 깨어 있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일 뿐임을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는 우리가 깨어있기만 하면 결과적으로 예수의 재림은 급작스러운 것이기는 하나 두려운 것이 아님을 설득시켜 준다.

 

# 핵심

1~12절

이방 교회인 데살로니가 교인들 사이에 아직도 잔재해 있는 부정한 행실들을 완전히 청산하고서 거룩한 삶을 살라고 촉구하는 내용이다.

휴거(17절)
바울은 주의 재림 때, 성도들이 산 채로 공중으로 들림받아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고 했다. 이를 가리켜 '휴거'(携擧)라고 하는데, 이는 '끌어 데리고 가다'라는 뜻이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르파조'는 '강력한 힘으로 낚아채다'라는 뜻으로, 한글 개역 성경은 '끌어올려'로 번역하고 있다.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휴거의 모형론적 사건으로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 에녹(창 5:24)과 엘리야의 승천(왕하 2:11)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성도의 휴거가 어느 시점에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 묵상

종말 때를 맞은 성도들의 삶 (3~12절)

종말의 때일수록 성도들은 성적 순결을 간직함은 물론 형제 사랑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특히 음란을 버리고 거룩한 존귀함으로 자기 아내만 취하고, 이방인과 색욕을 좇지 말며 형제를 해하지 않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주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해서도 안됩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어느 한 면에서 만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전반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자들 (13~14절)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성도들은 이미 얻은 영원한 생명을 아무 방해 없이 완전히 누릴 나라로 갑니다. 때문에 뒤에 남은 성도들은 그 복된 여정을 축하해 주어야 하며, 그분을 본받아 흠 없는 삶을 살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주의 재림의 과정 (16절)

바울은 주의 재림을 다음과 같이 믿었습니다. 먼저 주께서 호령하십니다. 15절과 함께 생각해 보면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하는 명령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장의 소리가 납니다. 이는 죽은 자를 소생시키기 위한 신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들립니다.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이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입니다. 후에는 살아 남은 자도 죽은 자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휴거하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됩니다.

 

 

출처 : 바이블25

# study
(1~13절)
교회를 향한 바울의 관심 - 사탄의 방해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하지 못했던 바울은(2:18) 자기 대신 파송한 디모데로부터 그곳 교인들이 환난과 박해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신앙 생활에 열중한다는 소식을 듣고 본장의 내용을 통해 그들을 격려하며 위로하고자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바울의 사랑어린 배려와 지속적인 관심을 재삼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바울의 이러한 배려와 관심은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여러모로 핍박과 환난을 받고 있는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위로와 보호하심을 예시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절]
우리가...우리만...좋게 여겨. 여기 '우리'라는 말은 복수를 나타내지 않고 단수적인 용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우리만'에 해당하는 헬, '모노이'가 '혼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증된다. 실제로 디모데가 데살로니가로 파송된 직후 실라도 곧이어 떠났을 것으로 추정되므로(행 18:5) 아덴에는 바울 혼자 남아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바울이 자신을 '우리'로 표현한 것은 동역자들과 잠시 떨어져 있긴 하지만 복음 사역이라는 중차대한 사명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3절]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한 자들을 비롯하여 기존의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믿음을 연단하는 과정으로서 반드시 고난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마 10:17; 행 14:22; 빌 1:29; 벧전 2:21).
[5절]
시험하는 자. 직접적으로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핍박했던 유대인과 그곳의 이교도를 뜻하나 궁극적으로는 복음 사역을 훼방하는 사탄의 세력(2:18)을 가리킨다.
[7절]
모든 궁핍과 환난. 바울은 전도 여행을 다니면서 물질적으로 많은 궁핍(헬, 아낭케)을 겪었을 뿐 아니라 이교도들과 유대인들로부터 숱한 환난(헬, 들립세이)을 당하게 되었다(고후 6:4, 5; 고후 11:23~27; 고후 12:10). 너희 믿음으로...받았노라. 바울이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박해를 받으면서도 더욱 열성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커다란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되었음을 의미한다(행 18:5). 이러한 바울의 태도는 모든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헌신과 봉사에 대한 표상이다.
[10절]
너희 믿음의 부족함.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 연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신앙적인 지식이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웃 교회들의 모범이 될 만큼 열성적인 신앙을 보였으나 재림과 종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결여되어 신앙 생활에 많은 혼란과 어려움이 뒤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11~13절)
바울의 간구 -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간구가 언급되어 있다. 이 기도는 본 서신의 전반부(1~3장)를 종결짓는 부분으로 그들에 대한 바울의 지극한 사랑과 관심이 잘 나타나 있다.
[12절]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해야 함은 물론이고 불신자들에게까지도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편협한 신앙관을 지닌 자들은 통상 불신자들을 적대시하며 그들에게 조그만 사랑과 관용마저 베풀지 않은 인색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체험한 신실한 성도들은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실천가이어야 할 것이다(마 5:16, 43~48; 골 1:10; 딤전 6:18; 딛 2:7; 딛 3:8; 히 10:24; 약 2:17; 벧전 2:12; 요일 3:18).

# 해설
교회를 향한 사도의 사랑 (1~13절)
본서를 쓰고 있는 동기와 상황을 다시금 밝히면서 교회를 향한 자신의 목자적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그 내용은 디모데의 파견과 그 보고(1~8절), 그 보고를 접한 바울의 기쁨(9, 10절), 교회 보존을 위한 기도(11~13절)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배경은 이미 1:1~10절 개요에서 설명한 바 있다. 한편 11~13절에 나타난 주의 재림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순결을 강조하는 바울의 기도는 본서 전반부(1~3장)의 종결 부분으로서 곧이어 4장부분에서 전개될 종말론 교훈을 암시하면서 두 단락간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다.

# 핵심
1~13절
바울이 디모데를 통해 전해 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소식은 큰 기쁨이 되었다. 이에 그는 그들의 믿음이 더욱 성숙하기를 위하여 기도했다.
디모데 (2절)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루스드라에서 만났을 때, 그는 이미 그리스도인이었다(행 16:1). 따라서 그는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때 유대인인 어머니 유니게, 외할머니 로이스와 함께 복음을 듣고 회심한 것 같다(딤후 1:5).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으로서(행 16:1) 그가 어릴 때 작고한 것으로 추측된다.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의 동역자 내지 조력자로 삼았는데 그는 맡은 바 사역을 충실히 감당했다. 데살로니가, 마게도냐, 에베소 등지에서 사역한 그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 묵상

디모데를 파송한 바울 (2~3절)

바울은 자기 대신 교인들을 굳게 하기 위해서 디모데를 파송합니다. 즉, 아직 영적으로 어린 성도들의 신앙을 확고하게 하고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며, 온유한 마음을 가진 목자의 심정으로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바울은 디모데를 자신을 대신하여 데살로니가 교회로 파송했던 것입니다.

사탄을 지칭하는 말 (5절)

사탄이란 '시험하는 자'를 말하는데, 이를 지칭하는 말로는 바알세불(마 12:27), 거짓말쟁이(요 8:44), 벨리알(고후 6:15), 귀신의 왕(막 3:22), 살인한 자(요 8:44), 이 세상  임금(요 14:30), 뱀(고후 11:3), 악한 자(엡 6:16),  꾀는 자(계 12:9), 대적자(벧전 5:8), 참소하는 자(계 12:10) 등이 있습니다.

사랑의 실천 강령 (11~13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 교인끼리 피차간에 사랑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것을 권면합니다. 이는 마음이 굳게 되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 study
(1~20절)
바울의 변백 - 앞장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바울은 이제 자신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박해받았던 일들을 회상하면서 그러한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복음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하고 있다(1~16절). 이에 덧붙여 바울은 아직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그의 사랑과 관심이 여전히 식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17~20절). 이러한 바울의 고백 가운데서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쏟았던 그의 뜨거운 부성애적인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고전 4:14; 고후 6:13; 요삼 1:4).
[1절]
헛되지 않은. 문자적으로 '공허하거나 무익하지 않은'이란 뜻으로서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의 복음 사역으로 인해 데살로니가 지역에 많은 개종자들이 나오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2절]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사도 바울 일행이 빌립보 지역을 순회하던 중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을 고쳐 준 일이 있었는데 그 여종의 주인은 복채를 얻을 수 없게 되자 그들 일행을 기이한 풍속을 전한다는 이유로 관원들에게 고발하였다. 이 일로 인해 바울과 실라는 옷이 찢기고 구타를 당했으며 마침내 투옥까지 당하는 등 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행 16:19~24).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 앞에는 마귀의 시험을 비롯하여 불신자들의 비방, 심지어는 완고한 신앙인들의 훼방 등 숱한 고난과 역경이 놓여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당할수록 좌절하지 않고 바울과 실라가 보여 주었던 것처럼 오히려 담대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고난을 통해 참된 기쁨을 맛보게 하신(벧전 1:6)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태도라 할 수 있겠다(행 16:25~34).
[3~4절]
복음 전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신앙적 태도를 나타내 주고 있다. 사실 말씀을 전한다는 것 자체가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사명이기 때문에(마 10:27; 막 16:15; 눅 9:2; 행 5:20; 딤후 4:2) 이 일을 기피하거나 이로 인해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등 기타 부정한 목적이 가미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헌신한다는 마음으로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고전 4:1, 2).
[5절]
아첨의 말은 단순히 타인을 의식해서 하는 말 뿐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미리 계산에 넣어 하는 말을 뜻한다. 탐심의 탈은 겉으로는 복음 전파라는 허울 좋은 구실을 내세우나 안으로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위선적인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자들이야 말로 외식하는 자요 양의 옷으로 눈가림을 하여 노략질을 일삼는 이리(마 7:15)와 같은 존재로서 소위 거짓 선지자들의 대표적인 실상이라 할 수 있겠다.
[7절]
유모가 자기...같이 하였으니. 대리모의 자격으로서 위탁받은 자녀를 양육한다는 입장보다는 친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기르는 것같이 소중하게 대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즉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영적 부모가 되어 '순전하고 신령한 젖'(벧전 2:2)으로 그들을 양육하며 모성애와 같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보살폈음을 가리킨다.
[8절]
목숨까지...됨이니라. 기독교가 추구하는 가치 중 가장 고귀한 것은 사랑이며(고전 13:13)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것은 자기의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내어 줄 수 있는 자기 희생적인 사랑이다. 이러한 사람은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증거되었고 세례 요한, 스데반, 베드로 등 복음을 위해 순교한 믿음의 선진들에 의해 계승됨으로써 오늘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헌신적인(마 16:24) 성도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쉬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 우리들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마 22:37~39) 다음으로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며(마 22:39; 롬 12:10; 벧전 1:22) 나아가서는 원수들까지도 사랑하는 실천적인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요일 서론, 성경에 나타난 사랑의 이해>.
[9절]
너희 아무에게도...전파하였노라. 바울은 전도 여행에 소요되는 경비를 위해 헌금을 걷거나 기부금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 그 비용을 충당했다(행 20:34; 고전 4:12; 고후 11:9). 물론 당시의 관습으로는 전도자들이 교인들로부터 경비를 지원 받는 것이 당연한 일로 인식되었다(고전 9:4, 12, 14).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교회로부터의 재정적 지원을 마다했다. 이는 연약한 교회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그의 사려 깊은 믿음의 발로이며 주께 대한 헌신적인 삶을 실천하고자 했던 그의 신앙적 열성을 짐작케 하는 단적인 실례가 된다. 사실 하나님께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거저 얻게 된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상을 바라지 않고 전파한다는 것 자체가 성도들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도리이며 의무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우리들은 복음 사역에 종사하는 자들이 과연 어떠한 자세로 말씀을 전해야 하는지 분명히 깨달을 수 있다(행 20:34, 35; 고전 4:12; 고전 9:15; 고후 11:7; 살후 3:8).

[13절]

하나님의 말씀을...받음이니.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에 의해 선포되는 복음을 윤리적 규범 또는 도덕적 가치의 차원으로 곡해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이에 비추어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인간적인 차원으로만 해석하려는 그릇된 시도들은 단호히 배격되어야 한다.

[14절]

그리스도 예수.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보다도 교회의 머리로서의 그리스도를 강조한 표현이다. 너희도 너희...것을 받았느니라.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동족에게 핍박을 받은 이유는 그들이 개종함으로 인해 이전의 관습과 우상 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방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일로서 온갖 고통과 수난이 뒤따르기 마련이다(딤후 3:1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러한 자들의 고통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성령을 통해 도우시고 보호하신다(롬 8:26; 히 2:18).

[15~16절]

유대인들의 이러한 죄악성은 종교적인 완고성 및 편협성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그들은 선민 의식에 대한 병적인 우월감에 빠져 있었으므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아주 싫어했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복음 사역자들을 훼방하고 개종자들을 박해하는 등 온갖 악행을 자행했던 것이다(행 16:19~24; 행 17:5~9)<레 20:24, 선민 사상 이해>. 이처럼 자신의 그릇된 사고 방식이나 배타적인 신앙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들은 오히려 불신자들보다도 더욱 혹독한 심판을 받게 된다(마 11:22; 요 9:41; 롬 2:9).

[17절]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이 잘 나타나 있는 표현으로서 이는 골로새 교인들을 향한 그의 마음 곧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골 2:5)라는 구절 속에 나타난 간절한 심정과 상응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비록 몸은 떨어져 있을지라도 상대방을 향한 사랑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함으로써 영적으로 서로 교통할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하겠다(히 13:18, 19).

[19절]

우리의 소망.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구원의 대열에 참여하게 되기를 바울 일행이 간절히 바란다는 의미이다.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구원받는 일이 바울에게 있어 진정한 기쁨이요 영광이며 나아가서는 복음 사역에 대한 승리의 징표가 된다는 뜻이다(고전 9:25).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현실적이고 일시적인 보상에 집착하지 말고 장차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영원한 상급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롬 3:27; 고전 1:31; 고후 1:14; 빌 2:16).

 

# 해설

사도 바울의 자기 변호 (1~20절)

이는 앞 단락에서 언급했듯이 전날 데살로니가 교회 개척 사역의 직접적 걸림돌이 되었던 유대인들의 다양한 교권주의적 방해 및 자신의 사도권과 그 순결성에 대한 도전을 변호한 부분이다. 빌 1:15~18절에서처럼 바울은 자기 개인에 대한 비방에는 관용의 태도를 보였지만 그것이 자신의 사도로서의 사역과 관계되어 결과적으로 복음 사역에 지장이 올 경우에는 단호히 변호하고 있다(갈 1:11~24). 본문은 그 내용상 복음 전파의 동기와 행동 변호(1~12절), 유대인들의 박해와 죄(13~16절),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바울의 지속적인 사랑(17~20절) 등으로 나누어진다. 한편 9,~10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당시의 관습으로는 전도자들이 교인들로부터 생활비를 지원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음에도(고전 9:4, 12, 14) 불구하고 바울이 손수 선교 여행비를 벌 목적으로 수고한 것은 곧이어 4, 5장에 개진될 일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종말론 오해로 생긴 현실 생활 경시 풍조를 바로잡기 위한 좋은 모범이었음에 틀림없다(4:11, 12).

 

# 핵심

1~20절

바울이 지난 날 복음을 전했을 때,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에게 보여 주었던 사랑을 회상하면서 감사하고, 그들을 재방문하고 싶어하는 소망을 피력한 내용이다.

 

# 묵상

복음의 순수성 (5절)

바울은 아첨의 말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단순히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바울은 탐심의 탈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는 속과 겉이 다른 자세를 가지고 욕심을 부리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에게 영광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복음을 증거했음을 의미합니다.

죄의 결과 (15~16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잠재해 있던 죄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능멸했고 또한 구속주로 오신 예수님도 영접치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복음 증거자들의 복음 사역을 훼방한 죄까지 저지르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들은 결국 상습적으로 저지른 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받을 면류관 (19절)

면류관은 존귀한 위치에 있는 왕이나 경기의 승리자, 영광스러운 지위에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도가 받을 면류관은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의 대가로 주어지는 의의 면류관(딤후 4:8), 생명의 면류관(약 1:12), 기쁨의 면류관(살전 2:19), 불멸의 면류관(고전 9:25), 영광의 면류관(벧전 5:14), 자랑의 면류관(살전 22:19) 등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 study
(1~10절)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 - 본서를 기록하기에 앞서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가 짧은 역사에 비해 신앙 생활에 모범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박해를 받는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켜 나간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교인들 사이에 종말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만연됨으로써 신앙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더욱 열성적으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함과 동시에 재림과 종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그들이 보다 건전한 신앙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입장에서 본 서신을 기록하게 된 것이다. 한편 본서 전체의 서론 부분에 해당되는 본장은 복음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앙적으로 초보 단계에 있던(행 17:1~4)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 가운데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신앙 생활에 열중함으로써 이웃 교회에 본이 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신실한 신앙이란 결코 연륜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열정적인 태도에 달려 있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절]
실루아노는 '실라'를 로마식으로 표기한 이름이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 중 한 사람으로서(행 16:20, 37)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최초의 이방 교회인 안디옥으로 파송된 신실한 주의 사역자였다(행 15:22, 32). 뿐만 아니라 그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시 동반자로 참여했으며(행 15:40; 고후 1:19), 후일 베드로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던(벧전 5:12) 열성적인 복음 사역자였다. 은혜와 평강<삼하 20:9, 성경에 나타난 인사법>.
[2절]
너희 무리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1절)를 지칭하는 말로서 이는 당시 복음을 영접한 그곳의 몇몇 사람들이 야손의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써(행 17:5~9) 형성, 발전하게 되었다.
[3절]
우리 주...소망의 인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이 믿음으로 인해 오는 환난을 참고 견딜때 비로소 구원에 대한 산 소망을 지닐 수 있게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벧전 1:3~9).
[4절]
택하심(헬, 에크로게)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루어진 절대적인 선택이란 의미를 지닌 말로서(행 9:15; 롬 9:11; 벧후 1:10) 구원의 근거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엡 2:8, 9) 나타내 준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성도들은 택하심을 입은 것이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깨달아(롬 3:24; 5:15; 딛 2:11) 더욱 겸손한 태도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일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6절]
많은 환난. 복음을 영접한 성도들이 바울과 실라를 추종하는 것을 시기하여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사건(행 17:1~10)과 이를 계기로 유대인들이 계속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박해했던 일을 가리킨다(2:14).
[9절]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한 자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썩어져 가는 구습에 얽매인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새사람'을 입는 거룩한 결단(엡 4:22~24)인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우상 숭배의 습성에 젖어 있었던 이방인들로서 우상을 버린다는 것은 마치 자기 자신의 전부를 버리는 것과 같은 고통과 아쉬움이 뒤따랐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한 자들에게 있어서도 각양 각색의 우상들, 곧 물욕, 권력욕, 명예욕 등 허탄한 욕망들을 제거하는 일이야말로 최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왕상 14:23, 우상론>.
[10절]
장래 노하심.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임하게 될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뜻한다(습 1:14; 요 3:36; 롬 9:22; 엡 5:6; 골 3:6; 계 11:18). 여기에 언급된 하나님의 진노는 범죄한 인간들에 대한 보응으로서(렘 14:10; 암 3:2; 롬 1:18) 결코 어긋남이 없는 필연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 해설
널리 퍼지는 믿음의 소문 (1~10절)
이 편지 전체, 특히 1~3장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 역사적 배경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3:1~6절과 행 17:1~18:11절에 언급된 내용을 요약하면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시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했으나 유대인 등의 훼방으로 교회의 기초를 공고히 하지 못한 채 황급히 떠나가야만 했었다. 얼마 후 바울은 아덴과 고린도 등 헬라 지방에서 선교하다가 디모데를 파견하여 믿음의 시련 가운데 두고 떠난 자신의 개척 교회인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편을 물었다. 그 결과 뒷 단락 2:1~20절에서 언급될 바울의 사도권과 복음의 진정성 등에 약간의 논란이 있었으나 전반적으로는 데살로니가 성도가 역경을 이기고 믿음을 지킨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바울은 특히 재림을 전제로 한 성도의 소망과 인내와 성결을 가르치는 본 서신을 집필하게 되었다. 그 첫 단락인 본문은 간단한 서두 인사에 이어 아버지가 장성한 아들을 대견해 하는 듯한 어조로 넘쳐 흐르는 기쁨과 칭찬의 말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바울 자신이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공의가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 인한 것임을 5절에서 강력히 고백하고 있다.

 

# 핵심

1~10절

간단한 인사말에 이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신앙 성장을 이룬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 칭찬하며 격려하는 내용이다.

 

# 묵상

환난을 이길 수 있었던 데살로니가 교인들 (6절)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성령에 의한 기쁨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환난을 극복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환난을 당할 때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성령을 바라보며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요 17:22).

복음을 들은 그리스도인의 행동 (9~10절)
복음을 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우상을 버리고,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렸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들은 자는 신앙의 전인격적인 회심과 더불어 죄된 습관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며 충성해야 합니다. 또한 재림하실 때까지 열매를 거두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신앙관을 가져야 합니다.

 

출처 : 바이블25

서로 살리는 관계가 되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28절]
12절 -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절 -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절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절 -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절 - 항상 기뻐하라
17절 -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절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절 -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절 -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절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절 -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절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절 -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절 -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절 -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절 -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28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 주제별 목록 작성
관계에 대한 교훈
12절 :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알라(존경하라)
13절 : (교회 지도자들을) 가장 귀히 여기라 / 너희끼리 화목하라
14절 :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라 /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 /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15절 :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라 / 항상 선을 좇으라
26절 :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 도움말
1. 화목하다(‘에이레뉘오’, 13절) : 서문에서 사용한 “평강”(에이레네)의 명령형 동사다. 바울은 서로에게 평강을 끼쳐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다.
2. 규모 없는(14절) : “규모 없는”의 헬라어 ‘아탁토스’는 ‘정함이 없는, 무질서한, 규칙적이지 못한, 훈련되지 못한, 게으른’ 등을 의미한다.
3. 소멸하다(‘스베뉘미’, 19절) : 성경에서 이 단어는 주로 불(횃불, 등불 등)을 끄는 것을 의미한다.

* 말씀묵상
1. Message(메시지)
바울은 이미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신앙의 개혁을 위한 중요한 교훈들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짚어 보아야 할 문제들이 몇 가지 더 남아 있었습니다.

2. 영적 지도자를 존중히 여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의 사도권마저 의심했던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들이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를 어떻게 여겼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의 교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만이 그 말씀이 역사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므로, 그들이 그동안 바울이 전해 준 교훈들을 차질없이 실천하기 위해서는 신앙 지도자들의 권위를 인정해야만 했습니다(12-13절). 또한 스스로 영적인 개혁을 도모할 수 없는 연약한 성도들을 사랑으로 돌보아 주어야 했습니다(14절).

3. 하나님의 뜻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는 주님이 우리에게 늘 영적으로 건강하고 충만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15-18절).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비관적인 감정에 몰아넣는 사단의 모든 거짓말에 강력히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감성을 강인하게 유지하는 것은 깨어 근신하고, 성령을 소멸치 않는(19절) 중요한 방법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모든 교훈을 실천함으로써 주의 날까지 거룩하게 자신을 돌보기를 원하십니다(20-24절). 주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구원을 확증할 뿐만 아니라(24절) 다른 이들을 문안함으로써 그들의 형편을 돌보는 삶을 소망하십시오(26절).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바울이 관계에 대해 교훈한 부분을 찾아 밑줄을 긋고,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오(12-15, 26절).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온전한 신앙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16-18절)
* 깊은 묵상
1. 바울이 한 권면 중에서 당신에게 적용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함께 나누어 봅시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을 위협하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원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은 당신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23-24절)
* 적용 기도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하며 항상 기뻐하고 내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


제공:프리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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