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이 되는 믿음

[데살로니가전서 1장 2절~10절]
2절 -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절 -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절 -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절 -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절 -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절 -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절 -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절 -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절 -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서로 위로하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18절]
13절 -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절 -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절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절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절 -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절 -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권면을 잘 듣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22절]
12절 -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절 -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절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절 -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절 - 항상 기뻐하라
17절 -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절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절 -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절 -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절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절 -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11절]
1절 -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절 -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절 -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절 -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절 -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절 -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절 -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절 -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절 -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절 -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절 -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영적 무장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11절]
1절 -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절 -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절 -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절 -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절 -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절 -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절 -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절 -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절 -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절 -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절 -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18절]
16절 - 항상 기뻐하라
17절 -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절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 우리는 매일매일 순간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키케로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감사한 마음은 최고의 덕일 뿐 아니라 모든 덕의 어머니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감사는 중요한 것입니다. 감사와 결부시켜 생각하면 사람은 셋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자기 스승을 팔아먹은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얕은 감사의 사람입니다.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조금 궂은 일이 생기면 불평, 원망하는 종류의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입학 시험에 합격해야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불합격했어도, 날씨가 좋을 때만이 아니라 궂은 날씨에도, 건강할 때 뿐 아니라 질병가운데서도 감사할 조건을 찾아내는 사람이 진정 깊은 신앙의 사람입니다.
어느 농촌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새로 교회에 나오던 사람이 몇 주일을 나오고는 안 나와서 심방 가서 왜 안나오냐고 물어보니까 예배당 나온 사이 마당에 고추 서말 널어놓은 것을 그만 누가 훔쳐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계시면 어떻게 예배 보러 간 사이에 도적을 맞을 수 있느냐'고 하면서 이제 예수를 그만 믿어야겠다고 말하더랍니다.
새신자들 가운데는 깊은 신앙이 없기 때문에 이런 조그만 시험이 와도 낙심하기가 쉽고 마귀란 놈은 또 그런 것을 노리고 있다가 더욱 낙심케 하여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채소를 심으면 처음에 새싹이 돋아 나온 후에 벌레가 더 많이 덤벼들어서 그 잎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과정이 지나가야 떡잎이 나고 좋은 채소로 자라듯이 처음 예수믿고 신앙생활하려 할 때는 마귀란 놈이 덤벼들어 시험당한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하면서 나가면 틀림없이 그 시험 다음에 더 큰 축복이 오고 믿음이 크게 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장사가 잘 되고 수입이 좋으면 감사하고 어려운 시험이 오고 괴로운 일이 올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그는 얕은 신앙의 사람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역경 중에도 무슨 일이 잘 안 되어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믿음이 깊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프리카를 가다보니까 한 사람이 자기가 믿던 우상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서는 그 우상의 볼기짝을 마구 때리더랍니다. 그래서 어째서 당신이 믿는 우상을 때리냐고 했더니 '내가 이 우상을 10년 동안이나 믿었는데도 복을 주기는커녕 화만 자꾸 주어서 때립니다'하고 말하더랍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오늘날 예수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런 식으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좋은 일에만 감사하지 말고 궂은 일에도 역경 중에도 실패를 했어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1. 섭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합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도 창조하셨고 또한 모든 것을 섭리 가운데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롬 8:28>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유익하게 되고 선하게 이루어 주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모세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모세를 나일강에 갖다 버린 것도, 또 때마침 공주들이 그 곳에 목욕하려 온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40년동안 고생한 것도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지날 때에 꼭 필요한 일이었고 바로의 궁중에서 40년 지낸 것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써 정치적인 훈련을 받는 기회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모세 자신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 배후에서 다 섭리하시고 인도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지금까지 지나온 경로를 가만히 생각해 보시면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배후에 계신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오늘날 이러한 자리에 있기까지 된 것도 우리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이 배후에서 섭리하고 지배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찬송가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 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 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 하셨네'를 늘 마음속에서 부르며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좋으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잘못할 때 벌이나 주시는 하나님만으로 알기가 쉽습니다.
<마 7:9-11>에 보면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사람도 제 자식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좋게 해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좋으신 하나님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 좋게 해 주신다고 하는 믿음을 가져야 역경을 당했거나 실패를 했어도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해 갈 때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혹은 국가적으로 교회적으로 볼 때 무슨 일이 잘 안되는 것 같고 풍파가 오는 것 같아도 먼 미래를 내다볼 때 반드시 더 좋게 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인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돈 많고 건강하고 어떤 일이든지 항상 잘되기만 해서 고관대작으로 잘 살았다면 예수 안 믿었을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질병이나 실패나 고통이나 고독이나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찾아 나오므로 예수믿고 보니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된 줄로 믿습니다.
시편 기자는 <시 119:71>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알곡은 키질을 하면 할수록 더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긁어모아서 불에 태웁니다.
알곡된 신자는 풍파가 오고 실패가 오고 시련이 오고 어려움이 올 때 더 주님께로 가까이 오지만 알곡되지 못한 신자는 그만 나가 떨어져 영원한 지옥 불에 던지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좋으신 분인 것만 알고 역경 중에도 실패 중에도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합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해서 재난과 불행이 오고 역경이 왔어도 하나님을 계속 믿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결국 그 재난과 화가 변해서 복이 되게 해 주시며 영원한 처소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해 주심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해서 실패한 것도 하나님이 시켰다고 생각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지 마십시오.
요한은 예수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아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무인도에 귀양살이를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깊이 기도하다가 하늘의 영계가 열리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보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그는 다시 돌아와 편안히 살다 세상을 떠나 영원하신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쓰라린 십자가의 고통이 변하여 부활의 영광을 차지했고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배가 파손되는 바람에 바다에서 나무조각을 붙잡고 표류하다가 무인도에 닿았습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나무가지를 꺽어서 움막처럼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바닷가에 나가 고기를 잡아다가 어렵게 나무가지를 비벼서 불을 피워 구워 먹고는 했습니다. 하루는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자기가 피워 놓은 불이 집에 옮겨 붙어서 집이 다 타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그날 밤은 노천에서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배 한 척이 그 무인도로 와서 그 사람을 구출해 주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여기 사람이 있는 줄 알고 왔습니까?'하고 물어보니까 어제 배에 짐을 싣고 지나 가다가 보니까 여기서 연기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짐을 풀어내려 놓고 지금 들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애써서 지어놓은 집이 불타서 그는 낙심했지만 도리어 그 집이 불탄 것 때문에 그 연기를 보고 자기를 구출해 준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하나님은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고 재난과 실패의 역경 속에서도 자포자기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언제나 감사하시는 여러분이 되어 영원을 소유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니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일에만 감사하지 말고 궂은 일에도 역경 중에도 실패한 중에도 감사할 조건을 찾아 범사에 감사하는 깊은 신앙의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

데살로니가전서

현재 삶에 충실하며 재림을 기다리라
데살로니가는 바울 일행이 박해로 인해 짧은 기간에 복음을 전했던 곳이다. 그럼에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에게 본이 될 만큼 믿음과 사랑이 빠르게 성장했다. 성도들은 계속되는 박해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켰으나 잘못된 종말론으로 인해 위기에 봉착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현재 삶에 충실하라고 권면한다.

데살로니가전서 한눈에 보기

본문

1장

2장

3장

4~5장

구성

데살로니가 교회의 현재와 과거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한 교훈

요점

문안과 칭찬

데살로니가 교회 사역에 대한 회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한 기도와 교훈

저자

바울

기록 연대

AD 51년경

장르

서신서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쓴 바울의 편지)


데살로니가전서 배경
바울은 예루살렘 공의회 직후에 2차 전도 여행으로 마게도냐의 빌립보와 암비볼리,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도착했다(행 17:1~9). 그곳에서 3주간에 걸쳐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이 시기해 폭동을 일으키자 바울은 베뢰아를 거쳐 남쪽의 아덴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아덴에서 그는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 속히 오게 한다(행 17:15). 바울은 마게도냐의 상황을 알고 싶어 실라와 디모데를 그곳으로 파송했으며, 그들은 고린도에서 재회한다(행 18:5). 바울은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전해듣고 감사하며 몇 가지 권면의 메시지를 담아 편지를 보낸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바울이 가장 먼저 쓴 서신이며, 종말론을 심도 있게 다룬다.

성도들을 격려함 (1장)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며 박해와 유혹을 견뎌 냈다. 그들의 믿음에 관한 소문이 멀리 떨어진 지역에까지 퍼질 정도로, 그들은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 바울 일행은 그들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라고 격려한다.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태도 (2장)
바울 일행은 사도로서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마치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르는 것처럼, 생명을 아끼지 않고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겼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박해를 당하면서도, 복음 전하는 자의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순수한 신앙인들이었다. 바울 일행은 이러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자신들의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일꾼 디모데 (3장)
바울은 자신이 직접 데살로니가로 갈 수 없어 대신 디모데를 보낸다.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을 돌아보며 그들을 굳게 세워 박해를 견디고 미혹되지 않도록 도와야 했다. 그의 사역은 바울 전도 팀의 존재 목적이었다. 디모데가 돌아와 그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자, 바울은 크게 위로받고 감격스럽게 고백한다.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8절).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 (4장)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잘 지켰으나 여전히 옛 습관과 세상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바울은 먼저 그들에게 성도의 바른 자세인 거룩함을 언급한다. 이어서 형제를 사랑하며, 성실하게 일함으로 자신의 삶을 책임질 뿐 아니라 다른 형제를 돌아보라고 권면한다.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삶 (5장)
'주의 날'(그리스도 재림의 날)이 도둑같이 임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빛(낮)의 자녀로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한다. 이는 자신만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차 권면하며,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고, 약하고 힘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는 삶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다시 오실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들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염려를 그치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 언제, 어떻게 다시 오시는가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그분이 죽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제대로 살게 하시기 위함이다. 따라서 현재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덕을 세우는 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데살로니가전서 한눈에 보기

본문


1:1~3:13

4:1~12

4:13~5:11

5:12~28

1:1

인사

1:2~10

믿음의 본

2:1~3:13

바울의 사역

요점

데살로니가 교회

그리스도인의 생활

그리스도의 재림

마지막 교훈

저자

바울

연대

51년경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부터 약 20년 후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교회에 보낸 첫 편지로서 60년 무렵 이후에 기록된 복음서들보다 훨씬 앞서 쓰였다. 바울은 49년 겨울에 데살로니가에 도착해 체류하다가 격심한 반대에 부딪혀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는 곳마다 반대파 무리가 훼방하는 바람에 바울은 혼자 아덴(아테네)에 들렀다 먼저 고린도로 갔고, 바울 대신에 실라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의 신생 교회를 돌아보고 뒤늦게 고린도에 당도한다. 바울은 이들에게서 기쁜 소식을 듣고 고무되어 이 편지를 쓴다.

목적

바울은 속히 떠나느라 데살로니가 교회를 돌보지 못했다(행 17:5~9). 그래서 신생 교회는 여러 현안을 놓고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조직이나 체제가 갖춰지기 전이었고, 최대 현안은 '언제 주님이 재림하시는가'라는 문제였다. 바울은 재림을 기다리는 기간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한 실천적인 지침을 준다. 이런 가르침에 앞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한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아버지처럼 바울은 기쁨과 사랑의 눈길로 교회를 바라본다.

분류

서신서


데살로니가 교회 (1:1~3:13)
바울이 최초로 쓴 편지답게 다른 서신서에서 볼 수 있는 유려한 필체나 형식미는 드러나지 않는다. 바울은 짤막하게 안부를 전하고 곧장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한다. 이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
그런데 신생 교회도 어려움을 피하지 못했다. 바울을 공격하는 자들이 교회를 상대로 바울을 비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일할 때 자신의 이익이나 권력을 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바울의 적들은 각종 추문으로 바울을 모함했다. 적대자들은 주 예수님과 선지자들을 공격했던 것과 똑같이 교회를 공격했다. 바울은 자신이 교회를 위해 한 일은 이들 거짓 교사들과 다르다고 웅변한다. 적대자들에 대한 바울의 분노는 데살로니가 성도에 대한 사랑에 정비례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는 바울에게 자식들이나 마찬가지고, 바울은 그들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 감사하게도 그들이 믿음 안에서 굳건하다는 디모데의 보고를 듣고 바울은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4:1~12)
성장 단계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 역시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요한 실천적인 지침들을 배워야 한다. 바울은 믿는 자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특히 성에 관해 가르친다. 그들은 이방 땅에 사는 사람들이기에 유대인들과 달리 성에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로마와 그리스에 있는 교회들은 이렇게 성에 관한 느슨한 태도 때문에 타락할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 공동체에 매춘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편 바울은 성실하게 일하고, 영적으로 늘 깨어 있으며,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한다.

그리스도의 재림 (4:13~5:11)
바울의 가르침에도 데살로니가 성도 사이에는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먼저 죽은 자들은 영영 잊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였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만 예수님의 재림 때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고민했다. 그래서 주님이 언제 오시는가는 무척이나 궁금한 문제였다. 바울은 두 가지 질문에 차례로 답한다. 먼저 죽은 자들도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먼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제자들이 뒤를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전부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뿐이다. 주님은 밤에 도둑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오실 것이다. 우리는 늘 깨어서 그분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 교훈 (5:12~28)
바울의 편지 마지막 부분에는 각종 교훈과 당부가 빼곡히 나열된다. 우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한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울은 많은 당부를 쏟아 낸다. 그러면서 모든 형제 앞에서 이 편지를 읽어 주라고 부탁한다. 자신의 가르침이 왜곡될까봐, 또는 이 편지 내용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염려하는 것이다.

다시오시는 예수님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18절]
13절 -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절 -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절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절 -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절 -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절 -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우리 성도들은 누구나 예수님의 재림에 관심이 있고 또한 그날을 사모하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여러 현상들과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볼 때 우리의 가장 기쁘고 가장 복스러운 소망이 되는 예수님의 재림이 참으로 가까왔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오늘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재림 때의 상황과 그후의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알아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재림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 구절
성경에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기사는 초림(탄생)에 관한 기사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성경의 4분의 1이 재림에 관한 기사입니다. 성경 25절에 1절꼴이나 되는 많은 말씀이 재림에 관한 기사인 것입니다.
재림에 관한 많은 말씀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 한 곳만 본다면, 요한복음 14:2, 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다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거할 처소 즉 천국에 우리들의 집을 다 준비하여 다시 와서 우리를 데리러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몇년 몇월 몇일에 오신다고 하면서 성도들을 미혹케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아무도 모르게 오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대략 어느때쯤 오시리라는 것은 암시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때의 성도들을 깨어 준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또 어둠에 속한 자들에게는 도적같이 오시지만, 빛에 속한 자녀들에게는 도적같이 오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4, 5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재림을 '알지 못함'을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성도가 되어서 재림도 모르고 휴거도 모르면 안됩니다. 또 '죽음'을 '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다 잠을 자다가 주님 재림하시는 날, 다 깨어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 세상에만 소망을 둔 사람에게는 죽음이 가장 슬픈 일이겠지만 재림의 소망을 가진 이에게는 죽음이 슬픔이 아닙니다. 구약에는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셨고 신약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말씀입니다.

2. 재림 때에 있을 하늘의 큰 소리
예수님의 재림 사건은 지구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하늘에서 세 가지 큰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호령'하는 큰 소리가 들립니다.
이 큰 소리는 마침내 주님께서 사단의 권세를 이겼다는 뜻이요,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재림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큰 소리는 또한 '오라'고 하는 소리입니다. 주께서 큰 '호평' 소리와 더불어 재림하십니다.

둘째, 천사장의 '큰 소리'입니다.

아마도 천사장 미가엘의 소리일 것입니다. 성경에는 천사장 미가엘이 나오는데 대체로 전쟁의 천사, 군인의 천사장입니다. 사단 마귀의 권세를 완전히 정복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큰 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셋째, 큰 '나팔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도 가브리엘 천사장의 소리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가브리엘 천사장은 세상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도, 마리아에게도 소식을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 소식을 알리느라고 큰 나팔 소리를 울릴 것으로 봅니다. 이와 같이 이 지구상에 전무후무한 큰 사건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 성도들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3. 재림 후에 생길 성도들의 변화
예수님이 공중에 재림하실 때에 땅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죽은 성도들의 몸은 다 분해되어 흩어졌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시 일으키십니다. 혹 어떤 시체는 무덤에 잘 보관되어 있을 것이고, 어떤 시체는 바다 밑이나 물고기 뱃속에 있을 것이고 어떤 시체는 사막에 실종된 채 있을 것이고, 어떤 시체는 화장을 지내서 재가 되어 흩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상태에 있든지 상관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함이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날이야 말로 '위대한 아침'이 될 것입니다.

둘째,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공중에 들림을 받습니다.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여 먼저 올라가고 후에 그때까지 살아 남았던 성도들이 변화를 받아 들려 올라갑니다. 그것이 휴거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들리움을 받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자, 예수 믿고 거듭난 자만이 들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거절한 자, 부인한 자는 지상에 남아서 무서운 환난을 겪게 되고, 나중에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갑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을 롯의 때와 비교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불로 심판하실 때에 롯의 식구들은 구별하여 끌어 냈습니다. 또 노아의 때와 비교했습니다. 노아의 가족은 하나님을 위해 살았고 다른 사람들은 죄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물로 심판하실 때에 다른 사람들은 홍수로 다 멸망했으나 노아의 가족은 방주 안에서 안전히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도 이런 구별과 분리가 생겨납니다. 예수를 믿은 자에게는 큰 기쁨의 날이 될 것이고, 예수 믿기를 거절한 사람은 큰 슬픔의 날이 될 것입니다. 큰 구별의 날이 옵니다. 그리하여 남편과 아내가 구별됩니다. 남편 위해 기도하던 아내는 들림받고, 끝까지 거절한 남편은 지상에 남게 됩니다. 부모와 자식이 분리됩니다. 그렇게 구원받기를 위해 기도하던 자녀는 들림받게 되고, 끝까지 고집부리면서 믿지 않던 부모는 남았다가 지옥에 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24:40절이하에 보면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다가 하나는 들려 올라가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게 되고, 둘이 잠을 자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셋째, 우리의 몸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올 때는 사상 최대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몸이 빛나는 눈과 썩지 않는 아름다운 몸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님과 같은 영화로운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몸은 심장병이나 암과 같은 질병의 위협을 받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의 못난 성품도 다 변화를 받습니다. 각양 각색으로 죽어 있던 몸을 빛나고 썩지 않는 아름다운 몸으로 변화시킬 때 우리의 성품 또한 영화롭게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연합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죽음으로 헤어졌던 부모, 형제,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 연합하게 됩니다. 죽음으로 헤어진 사람들은 그날 아침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과 성도들이 천국으로 들어간 다음에는 어린 양 혼인 잔치가 베풀어집니다. 그리고 나서 각자 행한대로 상급을 받습니다. 상급은 수고하고 힘쓴 만큼 받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를 정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직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밤 예수님이 오신다면 영원히 잃어버린 자가 됩니다. 세상 일에 붙잡혀 믿지 않던 분들, 혹은 예수님을 한쪽 귀퉁이에 밀어 던졌던 분들은 잘못된 생활을 청산하고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게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머지 않아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십니다.

어느날 피어슨(A. T. Pierson) 박사님이 죠지 뮐러(George Muller)씨에게 '당신의 위대한 삶의 비결과 하나님의 사업에 성공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좀 말씀해 주십시오' 했더니 겸손히 머리 숙인채 답하기를 '박사님, 항상 저는 오늘 예수님이 나를 데리러갈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삽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들림받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도의 알파와 오메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24절]
23절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절 -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오늘은 '성도의 알파와 오메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는 것은 시작과 끝이라는 뜻입니다. 희랍어에 있어서 제일 첫 자가 알파이고 마지막 자가 오메가입니다. 성도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는 것은 성도에게 있어서 시작과 끝이 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원(salvation)과 성별(separation)과 성화(sanctification)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세가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만난 그 순간부터 영광의 본향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관계되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1. 먼저는 구원받아야 합니다.
행 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죄인을 불러내사 용서하시고 하늘나라 가족의 일원으로 삼으신 다음 그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전인생 행로에 함께하시어서 종국에는 천국으로 데려가시는 전과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며 모든 사람이 다 그의 자녀이기 때문에 아무도 멸망당하지 않는다고 잘못 가르치며 심판과 지옥과 대속의 가르침은 무시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책임으로만 돌리기도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사람이 영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을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느날 종교 지도자들과 대화하실 때, 그들이 비록 하나님의 율법과 절기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4)고 하셨습니다.
반면 요 1: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된다'(become)는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 자연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become)때가 반드시 있어야 됨을 보여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가 없는 사람은 잃어버린 자이며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고 하나님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자일뿐만 아니라, 금생과 내생에 아무런 소망도 없는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롬 3: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예수를 떠나서는 모두 다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상태요, 구원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감방 안에 있는 흉악범이나, 음부 탕녀도, 훌륭한 가정의 도덕군자나, 순결한 가정주부도 예수를 믿어 구원받지 않으면 무서운 멸망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한편 구원이란 매우 위급하고 절실한 문제입니다. 불길 속에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소방대원을 생각해 보십시오. 풍랑이 심한 바다에 빠져 부르짖는 사람을 구원하려고 구명보트를 타고 나가는 용감한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와 마찬가지로 영혼 구원도 죄에 따른 영원한 지옥 형벌이라는 심각한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도 영혼 구원하는 일이야말로 전적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은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갈보리 산상에서 예수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그 분의 구속의 피를 받아들이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순수하게 회개하고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고 당신의 이름을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해 주십니다. 교회 명부에 이름을 올리거나 세례받고 직원이 되었다고 저절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유럽에서는 이런 형벌법이 있었습니다. 사형수를 벽과 바닥은 번쩍번쩍 빛나고 지붕은 없어서 푸른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좋은 방에 넣어 둡니다. 그래서 처음엔 '이만하면 괜찮다'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얼마 지나지않아 벽 사이가 점점 좁아져 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공포와 전율로 하루하루 지내다 결국에는 벽사이에 끼어 터져 죽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이런 상황에서 한 다정한 손길이 찾아와 그를 무죄로 판명해 주고 살려 준다면 그는 그 끔찍한 죽음에서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손을 펴사 죄인을 구원해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어떤 죄인이라도 믿음의 손을 펴서 주님을 붙들기만 하면 주께서 그를 들어올려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리고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지 오늘 구원받았다가 내일 다시 구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면 이것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하루살이 생명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보다 사단의 힘이 더 크다는 결론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구원하신 성도는 사단이 다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뒤에는 흉악한 행동을 하고 사람을 죽여도 괜찮으냐라고 질문하는 분이 있는데 사람이 구원받은 뒤에는 새로운 성품을 부여받기 때문에 그런 행동하기를 원치 않게 되고 적은 잘못이라도 마음이 괴롭고 답답해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처음도 나중도 이 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2. 성별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고후 6:17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죄악이 가득찬 도시 고린도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구별된 생활을 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는 구원은 받았으나 아직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구별된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성별이 소극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댄스홀에도 가지 않아야 하고 술 담배도 안 먹어야 하고 저속한 영화도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과 봉사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에 죄악된 생활로 보내던 시간을 주님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등을 돌리고 잘못된 생활을 끊는 것으로만 그치면 다시 마귀의 유혹을 받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나타내야 합니다.
전에 어떤 훌륭한 성도가 '나에게 만일 하나님과 교회에 배치된 생활이 있다면 나는 용감히 그 생활을 버리겠다'고 말했는데 요사이 보통 신자들은 그것을 바꾸어서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의 일꾼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성도들은 주일 낮, 밤, 수요일 예배시간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성실한 생활을 저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재미있는 TV프로그램이나 안락한 환경이 당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다면 그것도 죄인 것입니다.
미국의 로버슨(Dr. Lee Roberson) 목사님이 플로리다주의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하는 기간 동안 한 부유한 가정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의 호주는 믿지 않고 부인만 믿는데 그나마 세상 향락의 즐거움을 끊지 못하는 엉터리 신자였습니다. 댄스홀, 술집, 세상 향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다니는 여자였는데 집회 도중에 성별된 생활에 대한 설교를 듣고 은혜받고 회개해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구별된 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나는 이제부터 세상의 속된 것을 다 끊어버렸습니다. 이제 나의 유일한 소망은 당신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며 전도하니까 남편은 처음부터 '바보같으니. 그렇게 되면 내 사업은 다 망쳐 버려'라고 단호하게 예수 믿기를 거절했습니다. 아내는 당신이 예수만 믿으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돌봐주실 것이라고 다시 권면했지만 로버슨 목사님이 그 집을 떠날 때까지도 그는 전혀 믿으려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떠난 후 3일 만에 목사님께 전보가 왔는데 그의 남편이 구원받고 교회나가게 되었다는 기쁨에 넘친 내용의 전보가 왔던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그의 아내가 이전에 즐겨하던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끊고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구별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지 만약 그전과 같이 적당히 세상과 어울려 지내면서 믿었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속한 성도로서 참으로 영향력 있는 삶을 사는 비결은 성도의 성별된 생활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롬 12: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성별된 생활을 하려면 먼저 성도들과 교제에 힘쓰며 주의 일에 힘쓰고 교회 활동에 몸과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3. 성화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거룩한 생활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화라고 하면 죄가 없고 죄악된 성품도 없는 완전한 상태인 줄 알고 미리 겁을 먹는 사람이 있는데 진정한 성화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첫째, 성화는 하나님의 일과 목적으로 위해 따로 세웠다는 뜻입니다.
렘 1:4, 5절에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여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하나님의 일과 목적을 위해 특별히 성화시키고 구별해 두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우리를 단순히 천국에만 데려가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영광을 위해 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다음에는 세상과 구별하여 따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화가의 붓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것이지만 그 붓이 화가의 손에 맡겨지지 않으면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질 수 없습니다. 또 훌륭한 음악가가 아무리 오르간 연주를 잘 한다 해도 오르간을 그 연주자에게 연주하도록 맡겨주지 않으면 아름다운 음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에 어긋나게 살면 하나님의 사업에 커다란 지장을 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을 온전히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도록 구별된 사람들이므로 그 뜻에 맞도록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성화는 은혜 안에서 계속해서 성장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과 같아지도록까지 계속 성장해야 됩니다. 은혜 안에서 성장 발전하는 것이 성화의 일면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믿은 다음에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어떤 분은 '성화는 그리스도인의 예수화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꼭 닮아 심지어 '아버지를 먹고 토했다'고까지 하는 말을 들었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면 점점 예수를 닮아가고 성장해야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의 사상대로 살고 주님의 사랑을 실현하는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성장이 있으려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생각하는 생활을 하며 늘 기도에 힘씀으로써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교제를 가져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충성된 생활을 하여 그것의 결실로 봉사와 전도의 생활, 십일조와 감사의 생활로 열매를 맺을 때 은혜 안에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성화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완성되는 것입니다.
요일 3: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하였고 고전 15:49절에서는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는 아담의 형상을 입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을 때가 오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집니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이 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에 홀연히 변화받고 그리스도와 같이 됩니다. 그때에 우리는 절대 완전해지고 구원이 완성되고 성화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한 순간 이미 구원을 얻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과 구별되며 온전하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성도의 처음과 나중은 곧 구원과 성별과 성화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미 우리가 얻은 구원을 굳게 붙잡고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또한 성별되고 성화된 삶을 살도록 끝까지 선한 수고를 다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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