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받은 은사를 소멸치 말라 (박한응 목사)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22절]

16절 - 항상 기뻐하라

17절 -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절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절 -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절 -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절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치하고

22절 -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은혜 없이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은혜는 마치 자동차의 기름과 같기 때문이다. 기름이 없는 자동차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오히려 남에게 거추장스럽고 피해만 준다. 그러나 기름이 가득 들어있는 자동차는 잘 달릴 수가 있고 목적지를 향해서 어디든지 갈 수가 있다. 또 잘 달리는 자동차라도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 기름을 사서 넣어야 한다. 기름이 떨어지면 아무리 잘 달리는 좋은 차라도 길가에 세워놓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한번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그 은혜가 언제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수시로 은혜의 기름을 보충시켜야 한다. 그래서 부흥회도 필요한 것이고 우리들은 시시 때때로 말씀을 통하여 또는 부흥회를 통하여 신령한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루에 세끼씩 밥을 먹는다. 그렇게 먹고서도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배가 고파진다. 배가 고파지면 우리들은 무엇이든지 먹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받은 은혜는 자꾸만 소멸되어 간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도 항상 다시 기도하고 간구하여 은혜를 보충 시켜야 하며 또 받은 은혜를 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사탄 마귀는 우리가 은혜 받은 것을 시기하여 방해하고 때로는 환난과 시험을 갖다 주어서 그 은혜를 쏟아버리게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은혜를 사탄에게 빼앗기지도 말고, 또 쏟지도 말고, 소멸되지 않고 불 일듯 일어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정말로 해산하는 고통과도 같은 수고와 부르짖음을 통하여 받은 은혜를 쏟아 버린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
그러면 우리가 받은바 은혜를 쏟지 않고 오래 오래 간직하고 충만하게 하는 비결은 무엇이겠는가? 그 비결을 말씀을 통하여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란다.

1.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은혜를 오래 간직하는 비결의 첫째가 모이기를 힘쓰는 것이다. 모일때 역사가 일어나고, 모일때 기사와 이적이 일어난다. 또 모일때 능력이 나타난다. 모일때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모이기를 힘썼다.
  - 사도행전 2:46전반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또 느헤미야 9:1절 이하의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온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성회를 열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성도들이 모일 때에 모이지 않고 혼자서 떨어지게 되면 반드시 사탄의 공격 대상이 된다.
사자, 치타, 표범, 같은 육식성 맹수들이 약한 짐승을 공격할 때에는 무리들 중에서 떨어져 있는 동물을 공격 대상을 삼고 달려든다. 그러면 그 떨어져 있던 짐승은 십중팔구 맹수들의 밥이 되고 만다.
아궁이에서 잘 타고 있는 장작 하나를 꺼내서 따로 놓아 보라. 그러면 그 장작은 금방 불이 꺼지고 만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양의 비유가 있다. 목자가 하루 종일 양을 몰고 다니다가 저녁에 우리에 넣을 때에 양을 세어보니 한 마리가 없다. 목자는 그 한 마리를 찾아서 하루 종일 다녔던 곳을 헤매며 찾아다닌다. 
우리는 절대로 잃은 양 한 마리가 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은혜를 받고 기뻐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자기 혼자만 성령의 불은 꺼지고 연기만 피워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나 나게 하여서 안된다. 그러므로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이것이 받은 은혜를 소멸치 않는 가장 큰 비결이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 성도들이 모이지를 못하게 한다. 방해를 한다. 이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서는 안된다. 한번 넘어지게 되면 또 넘어지게 된다. 한번 시험에 쓰러지면 다음에는 더 작은 시험에도 또 쓰러지게 된다.

2.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한다.
  1) 왜 기도를 해야 하는가?
    ① 기도는 성도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 호흡이 없는 사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죽은 사람은 숨을 쉬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기도가 없다면 그 믿음은 곧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신앙이, 믿음이, 죽지 않으려면 열심히 생명의 호흡인 기도를 하여야 한다.
      - 시편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②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 대화는 상대성이다.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언어라는 선물을 주셨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어떤 생각을 말로써 표현을 한다. 그래서 인간은 그 말을 통하여 사랑을 노래하기도 한다. 우리 인간의 언어 중에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바로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이다. 대화의 통로가 막히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 요한계시록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 수돗물을 수원지에서 아무리 보내도 중간에서 파이프가 막혔다든지, 끊겼다든지, 고장이 났다든지 하면 절대로 수돗물을 받아먹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신령한 대화의 통로인 기도가 막히지 말아야 한다.
    ③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불러온다.
      - 우리 인간의 힘은 제한적이다. 불가능한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소불능 하시다.
      - 마가복음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 마가복음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2) 그러면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① 반드시 주실 것을 믿고, 응답하실 것을 믿고 간구해야 한다.
      - 마태복음 7:7~11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예레미야 29:12~13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야고보서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② 낙심치 말고 기도해야 한다.
      - 기도를 하다가 낙심하는 이유는 응답이 우리가 기대한 것처럼 빨리 오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는 우리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씨를 뿌리고 그것을 거두려면 적어도 몇 달은 가꾸고 보살피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하였으면 기다려야 한다. 내 생각대로 빨리 응답이 없다고 쉽게 낙심해서는 안된다.
      - 누가복음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③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 앞에서 기도는 성도들의 호흡이라고 말씀했다.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은 지속적으로 쉬어야 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기도도 지속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 사무엘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 데살로니가전서 5: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기도를 쉬는 것도 죄라는 뜻이다. 기도를 쉬게 되면 열심히 식어진다. 열심히 식어지면 내게서 은혜가 떠나간다. 은혜가 떠나가면 성령의 불이 꺼진다. 성령의 불이 꺼지면 흑암의 세력 사탄 권세가 찾아온다. 그러면 시험에 빠지게 된다.

3. 감사를 쉬지 말아야 한다.
골로새서 3:15절 말씀을 보면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생활은 감사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내게 유리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불리할 때도 감사를 하여야 한다. 내가 모든 일이 잘 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이 잘 안되고 어려울때 하는 감사가 정말 값진 감사가 되는 것이다. 많은 중에서 드리는 것보다 없는 중에서 최선을 다하는 감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축복의 문이 열려진다.

사르밧에 사는 가난한 과부는 온 나라가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에 그 어려운 중에서도 엘리야를 공궤하였을 때에 3년반 동안의 기근을 넘길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다니엘은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들이 금령을 만들어 왕의 어인을 찍어 공포가 된 것을 알고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결과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머리 터럭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았다.
범사란 모든 일을 말한다. 환경이 좋고, 나의 모든 여건이 좋고, 모든 일이 내가 계획한대로 잘 될 때만이 아니다. 모든 일이 어렵고, 생활이 어렵고, 환경이 어려울때 그리고 일이 잘 안될 때에도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다. 
로마서 1:21절에는 감사가 없는 것은 믿음이 없이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하였다.
  - 로마서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디모데후서 3:2절에는 감사치 않는 것은 적 그리스도적인 배도자의 증표라고 하였다.
  - 디모데후서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은 배은망덕하는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감사 생활은 성도들의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은 성도들이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또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시며 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에베소서 5:20)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결코 감사가 없는 신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를 하여야 하는가?
  1)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 성경 말씀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 에베소서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 우리에게 소용되는 식물, 햇빛, 공기, 물 등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물이 모두 다 하나님의 주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이것들 중에서 한가지라도 거둬 가신다면 우리 인간들은 생존할 수가 없다.
  2) 환난과 고난과 역경 중에서도 감사해야 한다.
    - 신자 된 우리들의 생활에는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답답하고, 슬프고, 병들고, 실패와 좌절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을 믿어야 한다.
    - 욥은 극심한 괴로움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였다. 
      → 욥기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 우리가 형통하고 기쁘고 건강할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역경의 때에도, 슬플 때에도, 병들었을 때에도 원망하고 탄식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여야 한다. 여기에 신자의 축복이 있고 특권이 있는 것이다.
  3) 넘치도록 하는 최선의 감사가 되어야 한다.
    -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은혜의 생활을 하면서도 헌금을 할 때에는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라(고후9:7)고 하셨다.

      → 고린도후서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 본문 말씀은 우리 성도들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는 것이다.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임을 깨달아야 한다.
    - 오늘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감사는 마음으로 감사하여 기도와 찬송과 예배를 드려야 하고, 몸으로 감사하여 헌신과 봉사를 아끼지 아니하여야 하고, 물질로 감사하여 넘치도록 드리기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다.

4. 봉사를 쉬지 말아야 한다.
봉사는 곧 행함이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반드시 그 열매가 행함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열심이 없던 사람이 열심을 내고,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기도를 한다. 교회에 봉사하지 않던 사람이 열심히 맡은바 직분에 충성을 한다. 그리고 은혜를 받으면 감사가 넘친다. 이와 같은 것들이 바로 은혜 받은 성도들의 성령의 열매이며 행함이다.
  -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야고보서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 야고보서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봉사를 할 수 있겠는가?
  1) 몸으로 하는 봉사가 있다.
    - 몸으로 하는 봉사는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에서 받은 직분에 충실해야 하며, 교회에서 하는 일에는 무슨 일이든지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다.
  2) 물질로 하는 봉사가 있다.
    - 우리 사람들은 제각기 달란트가 다르다. 또 재능이 다르며 사명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러므로 물질로 하는 봉사는 내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대행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선교 헌금을 한다고 하면 내가 직접 선교사가 되어서 다른 나라에 가서 선교를 하지 못하지만 물질로 선교사를 도울 수는 있다. 

결 론
은혜는 절대로 1회용이 아니다. 부흥회 때만 잠시 반짝하는 순간적인 것은 더 더욱 아니다. 은혜는 항상 우리 안에서 충만하여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로마서 8:9)고 하였다.
어제 은혜를 받았으면 오늘도 받아야 하고, 또 내일도 받아야 하고, 날마다 받아서 은혜가 충만해야 한다. 그리고 받은 은혜는 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 심령에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한번 불이 붙었다가 꺼진 나무는 다시 불을 붙이려면 잘 붙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받은바 은혜를 굳게 잡아 지켜야 한다.
  - 요한계시록 2: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 요한계시록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한가지 주의 할 것은 지금 받은 은혜로 만족하지 말고 그 은혜가 불일듯 일어나서 더욱 큰 은혜를 받고 충만하여야 하겠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31절에 “너희는 더욱 큰 은혜를 사모하라”고 말씀하였고 디모데에게는 부탁하기를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더욱 불 일듯 하게 하라”(디모데후서 1:6) 고 말씀하였다.
받은바 충만한 은혜를 잘 간직하여서, 그 은혜를 누리고, 그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항상 승리한 삶이되시기를 바란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참으로 악한 세상이 되었다.
  -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사탄 마귀들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하는 이때에(마24:24) 정신을 차리고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므로 악한 영들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 요한계시록 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항상 은혜 안에 거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성령을 소멸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것이든지 모양도 내지 말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까지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온전한 믿음을 간직하였다가, 주님 앞에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제목 :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 (박한응 목사)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18절]

16절 - 항상 기뻐하라

17절 -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절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어려운 시대 속에서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뜻대로 살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쓸때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베푸사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함께 하실 줄로 믿는다.
  - 이사야 41:9~10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이사야 41:13~14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가 있겠는가?

1.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부를 때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고 불렀다.

  - 디모데전서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또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화하셨을 때에 구름 속에서 음성이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17:5) 고 하였다.

  - 마태복음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온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서 행함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세상에서도 부모의 뜻대로 행하면 효자가 되고,
임금의 뜻대로 행하면 충신이 되고,
선생의 뜻대로 행하면 모범생이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 로마서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에베소서 5: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금년에는 무조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 뜻대로 지켜 행하는 자가 되시기 바란다. 
  -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어떤 이유나 조건이나 변명을 대지 말고 먼저 하나님 우선주의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며 또한 축복의 길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죽어도 해야 하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죽어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2.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인가?
  1) 항상 기뻐하며 사는 생활이다.
    -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모든 일이 다 기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기쁜 일보다 슬프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들이 더 많이 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다.
    - 갈라디아서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이 기쁨의 생활은 성령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였을때, 성령이 충만하였을때, 참 기쁨을 맛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항상 성령의 충만한 생활을 하라”는 말씀이다. 
    - 성령이 충만한 곳에는 사탄이 틈탈 수가 없다.
    - 성령이 충만한 곳에는 항상 승리만이 있다.
    - 성령이 충만한 곳에는 기쁨이 있다.
    - 성령이 충만한 곳에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며 사는 생활이다.
    -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당부하였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은 기도를 1회용으로 생각하였다. 기도는 절대로 1회용이 아니다. 기도는 응답이 이루어 질때까지 해야 하며, 간절히 기도해야 하며,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하며, 우리의 생활 전체가 기도의 생활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한번의 기도에도 응답을 받는 경우가 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 10일간 기도하여 성령을 받았다.
    - 바울은 그 몸의 병을 위하여 세번 기도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살면서 요셉이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110세를 산 후에 죽고 나니까 이스라엘 민족에게 핍박이 왔다. 그러니까 350년간 온갖 고역을 겪으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그 결과 모세를 통하여 드디어 출애굽의 응답을 이루어 주셨다.
    - 또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은 그발강 가에 집단 수용되어 살면서 기도하기를 70년, 이스라엘 민족은 드디어 해방을 맞이하였다. 
    - 사무엘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리라”(삼상12:23)고 하였다.
  3)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생활이다.
    -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감사’이다. 감사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들어서 벌써 척하면 알아듣는다. 그런데 이 감사에 단서가 있는데 “범사” 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도 사실상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모든 것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일에 감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슬프고, 나쁜 일에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다. 신앙은 아픈 것만큼 성장한다.
    - 시편 119:71~72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3.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들에게 공짜로 무엇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고(갈6:7) 믿음대로 이루어 주시며(마9:29) 행한대로 갚아주시는(마16:27) 사모한대로 은혜주시는(시107:9) 하나님이시다.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갈라디아서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마태복음 9: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 마태복음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 시편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 고린도후서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1) 모든 삶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축복의 사건으로 바꿔준다.
    - 우리들의 생활은 축복의 생활이 되어야 한다. 모든 일이 복되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삶을 살아야 한다.
    - 신명기 28:2~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2) 모든 날들을 찬송과 기쁨의 날로 만들어 준다.
    - 근심과 걱정은 모두 아침 안개의 사라짐 같이 사라지고, 슬픔과 한숨은 빽빽한 구름이 물러감 같이 물러가고, 기쁨과 즐거움의 날들이 되게 해 주신다.
    - 이사야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3) 내가 사는 모든 날들이 천국의 날이요 내가 사는 그 어느 곳이든지 천국이 되게 해 주신다.
    - 예수님과 함께하는 생활은 어디서 어떤 환경에서 살든 바로 그곳이 천국으로 변화될 수가 있다. 문제는 환경과 조건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다.
    - 주님과 함께하는 삶은 항상 기쁨과 즐거움의 연속이다. 두려움이 없다. 근심 걱정이 아침 안개의 사라짐같이 물러간다. 
    - 시편 23:4~6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결 론
금년 한해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란다.
이제까지는 불평과 원망과 불순종으로 살아왔지만 금년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와 사랑과 축복 속에 사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란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28절]
12절 -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절 -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절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절 -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절 - 항상 기뻐하라
17절 -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절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절 -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절 -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절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절 -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절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절 -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절 -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절 -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절 -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28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화목을 위해 사도 바울이 권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14~15절)
게으른 자를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를 격려하고, 힘없는 자를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며,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을 대할 때 항상 선을 따르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향한 당부의 말씀으로 편지를 맺으려 합니다. 12절에 ‘구하노니’, 14절에 ‘권면’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마지막으로 갈수록 권면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라고 말합니다. 게으름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반대되는 악이기 때문입니다. 성실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란 ‘낙담한 사람, 마음이 작아진 사람들’로, 특히 박해와 핍박으로 인해 마음이 위축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또 바울은 육체적 질병으로 약해져 힘이 없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자신을 지탱할 수 없는 사람들을 교회가 격려하고 위로해야 함을 권고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바울 역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역설적 가르침을 줍니다.

2.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말하며(16~18절), 그들의 영적 정결함과 풍성함을 위해 무엇을 권면합니까?(19~22절)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권면합니다.
16~22절은 모든 성도가 삶의 현장에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영성에 대한 권면입니다. 바울은 먼저 항상 기뻐할 것을 강조합니다. 기쁨은 하나님의 속성이요 성령의 열매며, 삶의 원동력 또한 기쁨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실히 믿는 자만이 상황과 조건을 초월할 수 있는 믿음을 얻고 그로 인해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 기도는 성도의 영적 호흡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함께 영으로 호흡하며 끊임없이 친밀함을 누립니다.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누리고 인도하심을 확신하기에 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바울은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며, 범사에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권합니다. 바울은 성령님을 성도들의 삶을 거룩함으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소개합니다.

3.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축복하며 선언한 내용은 무엇입니까?(23~24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온 영과 혼과 몸이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한다고 축복합니다. 또한 미쁘신 하나님이 성도들을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능히 이루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바울은 본론 전체를 마무리하면서 예수님이 재림하심으로 역사에 종말이 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평강의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실 것을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일부러 당황하게 만들거나 놀라게 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평강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평강의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원하시는 것은 온전한 거룩함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성품이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온전한 거룩함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 안에 거하는 지름길입니다. 바울은 성도의 온전한 거룩함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서의 삶에 대한 보증과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분은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그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시겠다는 언약을 우리 삶에서 실제로, 능히 이루실 것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4.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 가난한 사람, 장애인, 어르신, 청소년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눠 보십시오.
교회 안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인생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서 예배할 때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 안의 다양성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게 하는 여러 상황들과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교회의 지도자와 성숙한 믿음의 동역자들이 그런 일을 잘 감당해 줄 것을 권면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는 마음이 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인정받지 못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교회를 피난처 삼아 도망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멋지게 성공하고 꿈을 이뤄 남은 생애를 하나님 앞에 헌신하려는, 열정적이고 건강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른들의 꿈과 희망이 되는 아이들도 있고, 질풍노도의 상황 속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청소년들과 청년들, 삶의 무게에 지친 중장년과 노인 등 다양한 연령과 세대들이 함께합니다. 각 세대별로, 각 연령별로, 각 직업별로, 각자가 처한 상황별로 교회가 어떻게 이들을 도울 수 있을지, 그들에게 무슨 말씀을 권면하고 가르쳐야 할지를 살펴야 합니다. 교회가 성도들을 말씀과 성령 안에서 견고하게 세우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룰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5.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나눠 보십시오.
때에 따라 기뻐할 수는 있겠지만, 항상 기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기도하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일 역시 쉽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하기는 쉬워도, 범사에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권면의 말씀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일, 이 세 가지는 사실 한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 가능해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령충만’, ‘하나님과의 동행’, 또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과 늘 함께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강력한 죄의 권세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분리시켜 하나님이 복 주시는 통로를 차단합니다. 그래서 기쁨이 사라지고, 기도가 멈추며, 감사하기보다는 불평과 원망을 말하는 삶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은 바로 죄인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서 죄의 권세를 끊고 하나님 앞에 거룩함과 정결함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일은 하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실 때 가능해집니다.


출처 : 생명의 삶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28절]
12절 -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절 -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절 -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절 -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절 - 항상 기뻐하라
17절 -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절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절 -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절 -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절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절 -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절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절 -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절 -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절 -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절 -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주라
28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동부 아프리카에 부흥이 일던 시절에, 아프리카 그리스도인 몇 명이 선교사들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서양인들보다 더 솔직한 어투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사들이 충격을 받고 그 이유를 묻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임을 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했죠? 그러나 우리는 당신들이 구원받은 사람인 것을 알지 못하겠어요. 당신들끼리도 사이 좋게 살지 못하잖아요!”
우리는 일상에서 무심코 실패들을 행합니다. 예배, 사역, 교회 건축 등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잘 행합니다. 또 예수님에 대한 아름다운 메시지도 잘 전합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일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신앙과 삶의 조화입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과 일터에서 어떤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느냐가 신앙의 승패를 가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의 글을 묵상하면서 참된 신앙의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평범한 일들 중에 실천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되면 대개 어떤 일은 해야 하고, 어떤 일은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에 대해 어떤 일을 하고, 안 하는 문제로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면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일상에서 하면 안 되는 일과 주님을 위해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와 능력을 적극적으로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속화를 경계하는 과거의 신앙 훈련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엄격하고 옹졸한 율법주의 삶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극적인 면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이크 머독은 저서에서 “생활을 바꾸지 않는 한 인생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뒤집으면 “인생이 바뀌지 않는 한 생활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활이 바뀌기를 기대하지 말고 인생이 바뀌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이 바뀌어야 비로소 생활이 변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서 생활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1.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첫 번째 뜻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16절).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항상 기뻐한다는 것은 환경에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실망스러운 상황이나 현실 속에서 기뻐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기뻐하려면 특별한 힘을 필요로 합니다. 그 힘은 우리 안에서 나오지 않고 성령님의 능력에서 비롯합니다. 갈라디아서 5:22에 나열된 성령님의 열매들 중에 희락 즉 기쁨이 있습니다. 오직 성령님 안에서만 항상 기뻐하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했던 성도들은 고통 속에서도 항상 기뻐했고, 그런 모습은 초대교회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권합니다. 이것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스스로 환난 중에도 기뻐하는 본을 보였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서도 즐거워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기뻐했습니다. 현재의 고난보다 장차 올 영광이 더욱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것을 의지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2.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두 번째 뜻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17절).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쉬지 않고 기도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고 그분의 임재를 인식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입술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입니다. 비록 입술로 항상 기도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그분을 향해 아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중심이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잠이 들어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바란다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마음을 다른 것에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을 움직여 기도하더라도 마음이 재물이나 다른 사람이나 우상에게 있다면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그 마음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러면 숨을 쉬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자연스럽게 계속 이어집니다.

3.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세 번째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18절). 범사에 감사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범사에 감사하려면 나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으로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3중적 권면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감사할 일도, 불평할 일도 많이 있습니다. 각 사람의 기준에서 행복한 일과 불행한 일이 명확합니다. 그러면 범사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려면 모든 일을 나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과 목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서 일어난 일들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면,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잣대로 모든 일들을 잰다면 어느 것은 짧고, 어느 것은 길어서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잣대로 보면, 환난은 결코 감사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그것이 달리 보이고 감사의 이유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려면 나의 생각을 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만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나의 시각과 생각이 바뀌고, 불평할 일도 감사할 일로 바뀝니다. 그러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4. 나의 삶에 기쁨과 감사와 기도가 흘러넘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명령에 대한 순종은 나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비록 일상에서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 끊임없이 발생하더라도 우리는 기뻐하는 것, 감사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기뻐할 수 없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쁨과 감사라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먼저 나의 뜻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그분의 뜻에 복종하기로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입술을 열어 선포하십시오. ‘나는 기쁨과 감사를 선택했다’라고 말입니다.

5.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혹시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일에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에 실패하는 원인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려면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성령님의 도움을 받을 길이 없어집니다. 쉽게 짜증이 나고 불평이 끊이지 않으며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과의 교제를 회복하십시오.


출처 : 생명의 삶

본을 보인 데살로니가 성도들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10절]
1절 -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절 -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절 -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절 -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절 -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절 -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절 -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절 -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절 -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절 -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1.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은 무엇입니까?(2~3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하나님 앞에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울 서신서는 대부분 칭찬과 감사와 축복으로 시작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편지도 성도들을 향한 격려와 칭찬으로 시작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관해 기억하는 세 가지 미덕은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믿음을 가지고 여러 가지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또 사랑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핍박을 받는 중에도 인내했습니다. 이 믿음, 소망, 사랑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삶에 나타난다는 것은, 이들의 신앙이 하나님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지표가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적극적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칭찬하고 사랑하며,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입니다.

2.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은 이유는 무엇입니까?(4~5절)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전한 복음은 말로만 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사람의 의지와 상황을 초월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기에 사람의 어떠한 저항이나 거부가 허용되지 않는 일방적이고도 적극적인 선택입니다. 또 이 선택은 특정한 부류나 민족에게 제한되지 않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하는 거룩하고 광대한 것입니다. 이 선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런 하나님의 선택아래 있음을 확증하는 이유는 첫째, 바울과 그의 일행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데살로니가 지역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 둘째,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 복음을 받아들인 것, 셋째, 그들 가운데 성령의 능력과 큰 확신이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단순히 말로만 된 것이 아니라, 강력한 역사가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복음이었습니다. 여기서 ‘능력’이 외형적인 증거라면, ‘큰 확신’은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 개개인 안에 나타나는 내적인 증거입니다.

3.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어떤 면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까?(6~10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고,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 왕성하게 복음을 전했으며, 예수님을 믿고 우상을 버렸고,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종말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교회에게 환난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부딪칠 수밖에 없는 내적, 외적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짓고 살아가던 죄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법 안에 들어오게 될 때,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되는 영역들이 발생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옛 성품을 버릴 수밖에 없는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는 주변 문화와 사람들과의 충돌이 환난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후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새 사람을 입고 변화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주변 이웃, 특히 유대인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시기와 질투, 공격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성도들은 성령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았고, 주님의 계명과 진리를 힘써 지키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말씀에 순종하는 모범적인 교인들이었습니다. 이런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소문은 곧 인근 지역의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퍼져 나갔고, 다른 지역의 성도들이 따라야 할 신앙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바울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고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을 따르면서 불신자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4. 최근에 복음 전파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진통을 겪으며 수고하고 인내했는지 나눠 보십시오.
고난은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것이지만,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만큼의 희생과 헌신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지는 나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크기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에는 고난이 따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갖게 되자 복음을 믿지 않는 동족에게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특히 더 큰 환난과 핍박을 받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늘 고난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편하고 안전하게 전할 수 있는 곳만 찾아다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복음의 불모지, 우상 숭배와 이방 철학 사상이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복음을 적대시하고 복음을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으로 뛰어들어 온갖 박해와 비난을 받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는 당연히 반대와 공격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이 세상의 세속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을 향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은 주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나는 어떤 ‘믿음의 본’을 보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배든 사역이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뤄져야 합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기독교의 근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부끄럽고 가증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의 영광’에 의해 가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탐욕’이 우선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말은 허울 좋은 광고 문구로 전락해 순수하게 사역하고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 언론은 ‘너희가 추구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며 교회를 향해 질책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추상적인 문구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에는 삶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변화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고 구체적인 열매를 맺을 때, 참된 믿음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할 내 삶의 자리를 살피며,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일 수 있을지 나눠 봅시다.

출처 : 생명의 삶

본이 되는 교회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10절]
1절 -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절 -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절 -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절 -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절 -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절 -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절 -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절 -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절 -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절 -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어부인 아버지가 일찌감치 아들에게 노젓는 법을 가르치기로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흉내 내면서 노를 저어 보지만,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노를 주체하지 못해 쩔쩔 맵니다. 노 하나를 다루는데도 힘이 드는데 거센 물살을 가르며 배를 움직여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아들이 낑낑대며 땀을 흘릴 때마다 아버지는 아들의 곁으로 다가와 “오른발을 디딤목 위에 얹는 게야. 왼발을 바닥에 두고 왼손을 노위에 가볍게 얹기만 하면 돼. 그리고 오른손으로 노를 힘있게 잡아야 해. 그리고 이렇게 젓는 거야”라고 자세히 가르쳐 줍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따라 그대로 해보지만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애를 먹는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보다 못해 씨익 웃으며 일어나 아들의 등 뒤에 자신의 몸을 대고 두 팔을 내밀어 아들의 작은 손 위에 자신의 큰 손을 얹습니다. 그리고 노젓기를 시작합니다. 아들은 힘들이지 않고 신나게 물살을 가릅니다. 아버지가 노젓는대로 따라가면서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요. 이렇게 해서 아들은 노젓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1. 위의 글을 읽고 묵상한 후 아버지와 나의 관계를 생각하고 나에게 아버지를 닮은 모습이 있다면 나눠 봅시다.
미국 캘리포니아 연안 몬트레이는 오랫동안 펠리칸들의 천국이었습니다.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아 올릴 때 잔챙이는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는데, 이것이 펠리칸들의 먹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잔챙이 고기들을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펠리칸들은 스스로 먹이를 구할 생각을 않고 여전히 버려진 것만 찾아다녔습니다. 결국 펠리칸들은 한두 마리씩 굶어 죽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본 어부들은 남쪽 지방에서 스스로 먹이를 잡을 줄 아는 펠리칸 몇 마리를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러자 새로 온 펠리칸들이 능숙하게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 굶주렸던 펠리칸들도 물고기를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본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거룩한 부모에게서 거룩한 자녀가 나오고, 주일을 잘 지키는 부모에게서 주일을 지키는 자녀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인 것같이 우리도 예수님과 하나 되기를 간구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닮은 한 가족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 자신을 구별해 드릴 준비가 돼 있습니까?

2. 데살로니가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습니까?(7절)
데살로니가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단 3주간의 복음 전파로 설립되었습니다. 바울은 계속되는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에 데살로니가로 쫓겨왔지만, 그곳에서도 편하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세 안식일 정도만 말씀을 전하고 베뢰아로 다시 쫓겨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행 17장). 따라서 데살로니가교회는 매우 연약한 개척교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데살로니가교회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서 본이 되는 교회로 자랐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3절). 마침내 데살로니가교회에 관한 소문은 각처에 퍼지게 되었습니다(8절). 사도 바울이 보기에도 더 이상 권할 말이 없다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8절). 그 성장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역사는 짧지만 본이 되는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교회였습니다.

3. 데살로니가교회가 본이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5절)
데살로니가교회는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능력, 성령, 확신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복음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흡수력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핍박을 받는다는 것이 같은 의미로 여겨지던 시대에 데살로니가교회는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환난 중에도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6절). 그리고 그 복음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을 주었습니다(5절). 복음을 받아들인 후 얻는 기쁨, 구원을 얻는 기쁨,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이 고난보다 더욱 크다는 것을 알았기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고난도 당연한 일로 생각한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면 믿음이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단순히 복음을 받아들이면 복을 받는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음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더욱 성장하고 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말씀을 받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믿음을 자라게 하는 관건이 됩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하나님의 복음을 순전하게 기쁨으로 받아들였고 그 복음은 능력의 복음, 성령의 복음, 큰 확신의 복음이 되어 교회를 자라게 했습니다.

4. 데살로니가교회가 본이 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6절)
데살로니가교회는 환난 중에도 예수님과 사도 바울 같은 신앙의 선배들을 본받았기 때문에 주위에서 칭찬을 듣는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가 짧은 역사에도 본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던 두번째 이유를 ‘우리와 주를 본받았기 때문’이라고 증언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예수님을 본받고, 데살로니가교회에 복음을 전해준 바울과 실라 같은 신앙의 선배들을 본받았습니다. 이것이 칭찬을 듣는 교회의 비결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본받는다면 결코 칭찬을 들을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십계명을 받아 오지만, 아론은 사람들의 음성을 듣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출 31~32장). 교회가 교회답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면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만이 교회다워지고 본이 되는 교회로 자라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예수님을 본받고 복음을 전해준 바울과 실라를 본받았습니다. ‘본받다’라는 것은 따라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본은 바울에게 전해졌고, 바울의 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교회는 주변의 교회들에 모범이 되었습니다. 본이 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본이 되시는 예수님을 닮으려 할 때 본이 됩니다.

5. 내가 받아들이기 가장 어려웠던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편입니까?
사람이 자라는데는 균형 잡힌 영양소의 섭취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영적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편견없이 듣고 순종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게 하는 비결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는 배우려고 하지만, 신앙의 연수가 많아지면 배우기를 즐겨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분의 백성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라기를 멈춥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지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양한 방법으로 먹고 날마다 자라십시오.

6. 나는 자신 있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상대방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신앙의 본이 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주위에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쉽게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들에게서 예수님을 닮은 모습을 한 가지씩 찾아내고 그것을 본받기 시작하면 예수님을 닮아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본받으면 나의 자녀들도, 나에게 배우는 학생들도 예수님을 닮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예수님을 본받지 않으면 자녀들도, 제자들도 예수님을 본받는 삶과 거리가 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르기 싫어할 것입니다. 바울은 ‘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이런 담대함은 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들의 자신감입니다.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을 향해 ‘나를 본받으라’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먼저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출처 : 생명의 삶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천국은 우리가 절대 죄를 지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우리 발을 올무에 빠지게 할 유혹자가 전혀 없기 때문에, 끈질기게 달려드는 원수를 대항하여 늘 경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곳은 악한 자들이 괴롭히던 일을 그만 두고 곤한 자들이 편히 쉬는 곳입니다. 천국은 “더럽혀지지 않은 기업”으로, 완전히 거룩한 땅입니다. 따라서 완전히 안전한 곳입니다. 사실 성도들은 이 땅에서도 이따금씩 이와 같은 천국의 안전한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린양과 하나된 자들은 모두 다 안전하다고 가르칩니다. 의인들은 모두 그 길에 꼭 붙어 있을 것이요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자기 영혼을 맡긴 자들은 그가 신실하며 변개치 않는 보존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렇게 우리를 지지해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도 안전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미끄러질 염려가 전혀 없는 천국의 영광스러운 안전이 아니라 그를 믿는 자는 아무도 영원히 멸망치 않고 그가 있는 곳에서 그와 함께 영원히 살거라는 예수님의 확실한 약속으로부터 오는 거룩한 안전함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의 이 견인 교리를 자주 묵상하십시오. 그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자신 있게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영광을 돌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름이 그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시며 여러분 귀에 대고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는 약속의 말씀을 속삭여 주시기 바랍니다. 언약의 큰 보증이신 우리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는 신실하고 참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족 중 가장 약한 자인 여러분도 그의 택한 모든 족속들과 함께 반드시 하나님 보좌 앞에 세우실 것입니다. 이렇게 기분좋은 사실을 묵상할 때, 주님의 포도나무 열매에서 나오는 맛있는 포도즙을 마시며 낙원의 맛있는 열매들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는 말씀을 요동치 않는 믿음으로 믿으십시오. 그러면 저 위에 있는 온전한 성도들의 영혼을 황홀하게 만들어 주는 이 모든 즐거움들을 미리 맛보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스펄전의 아침묵상

그리스도 재림의 시기는(살전 5:2)?

갑자기 도적같이 임하여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만이 아심.
이날을 ‘주의 날’이라고도 하며 구약 시대에는 ‘여호와의 날’이라 했습니다. 이날은 불신자들에게는 멸망의 날이요(사2:12; 겔13:5), 신자들에게는 부활과 승리의 날입니다. 때문에 성도들은 항상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잔다’라는 단어의 의미는(살전 5:6)?

6절 - 영적인 무관심.
7절 - 본성적인 잠.
10절 - 자연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신 목적은(살전 5:9)?

우리를 노하심에 이르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데 있어서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는 실제적인 일들은(살전 5:12-15)?

예수 -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깨어 있든지 자든지 우리와 항상 함께 거하심.
목회자 - 수고하는 자로서 신앙을 지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다스리며, 교인들을 치리하고 권하는 일.
성도 - 사랑 안에서 귀히 여기며 화목해야 합니다.
모두 -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워야 합니다.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 단순한 기쁨이 아닌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빌4:4).
쉬지 말고 기도하라 - 열심을 다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 환란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하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구분했는가(살전 5:23)?

바울은 인간의 본성을 영과 혼과 몸으로 구분함.
그리이스 교부들은 영을 하나님과 교통하는 이성적인 부분으로, 혼은 동물에서 발견되는 생명이나 감정, 감각과 관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혼과 몸(창2:7; 마6:25), 영과 몸(전12:7; 고전5:35)을 혼용해서 사용한 곳도 있습니다.
바울의 언급은 그리이스 사고에 젖어있는 교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결국 성도들의 전인격을 가르킵니다.


출처 : 갓피플

종말때 성도들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뜻은(살전 4:3-6)?

거룩하고 서로 사랑하며 일하기를 힘쓰는 것.
특히 음란을 버리고 거룩과 존귀함으로 자기 아내만 취하고 이방인과 색욕을 좇지 말고 형제를 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종말을 앞둔 성도들의 합당한 삶은(살전 4:11, 12)?

성적 순결을 간직함은 물론 형제 사랑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또한 주의 재림이 가까왔다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해서도 안됩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어느 한면에서만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전반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합당한 생활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스도 재림시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자들의 위치는(살전 4:13, 14)?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데리고 오심.
그리스도의 재림시에는 죽은 성도나 살아있는 성도들이 부활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됩니다. 아울러 이 재림은 단 일회적인 사건으로 동시적으로 일어납니다. 때문에 이 재림을 일직선상에 놓고 전후 관계를 따질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생각했던 주의 재림의 과정은(살전 4:16)?

주께서 호령하심 - 15절과 함께 생각해 보면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고 하는 명령으로 볼 수 있음.
천사장의 소리 - 죽은 자를 소생시키기 위한 신호.
하나님의 나팔 소리 -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남.
후에 살아남은 자도 죽은 자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휴거하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됩니다.


출처 : 갓피플

바울이 디모데를 파송했던 이유는(살전 3:2, 3)?

교인들을 굳게하기 위해서임.
즉, 아직 영적으로 어린 성도들의 신앙을 확고하게 하고 모든 박해에서 벗어나게 하고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온유한 마음을 가진 목자의 심정으로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입니다.


‘시험하는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살전 3:5)?

사단을 지칭함.
사단을 지칭하는 말에는 바알세불(마12:27), 거짓말장이(요8:44), 벨리알(고후6:15), 귀신의 왕(막3:22), 살인한 자(요8:44), 이 세상 임금(요14:30), 뱀(고후11:3), 악한 자(엡6:16), 꾀는 자(계12:9), 대적자(벧전5:8), 참소하는 자(계12:10) 등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권한 사랑의 실천 강령은(살전 3:11-13)?

교인끼리 피차간에 사랑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함.
이는 마음이 굳게되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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