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영원한 구원을 얻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절~14절]
1절 -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절 -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3절 -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절 -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절 -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절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절 -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9절 -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10절 -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11절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절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절 -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절 -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예수님이 성전이 무너지리라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그 시기와 말세의 징조를 묻습니다. 세상 끝에는 거짓 그리스도가 출현하고 난리와 전쟁이 일어나며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믿는 자는 환난을 당하나 끝까지 견디면 구원 얻을 것입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끝이 올 것입니다.

 

1. 세상 끝 날의 징조 (1~8절)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 대왕(헤로데 1세)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재건한 것입니다. 수십 년에 걸친 공사였고, 헤롯이 죽은 후에도 공사가 계속되어 성전은 이전보다 웅장한 외관으로 단장되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러한 성전의 겉모습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그 안에서 행해지는 의미 없는 종교 의식을 보시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림의 날과 세상 끝의 징조는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 전쟁, 기근, 지진 등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고 재난의 소문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세상 끝이 가까울수록 성도는 징조나 사람에게 집중하면 안 되고 깨어 기도하며 영광스러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 제자들이 성전을 바라보는 시간은 예수님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전쟁, 기근, 지진 등의 소식이 들려올 때 성도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2. 끝까지 견딜 이유 (9~14절)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믿는 사람이 미움받고 환난당합니다.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 현혹하며 불법이 판을 칩니다.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식고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끝까지 견뎌 내야 합니다. 변절하지 않고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근거는 부활의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고통의 상황에 즉각 개입하시지 않는 이유는 복음이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핍박받는 성도들이 있지만, 구원 완성을 향한 하나님의 시곗바늘은 계속 움직입니다.

* 성도들이 고난당하는데도 주님이 즉시 재림하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믿음 때문에 고통당하는 지체를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기도

온 교회의 주인이시요 천하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 보이는 성전 건물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슬퍼해야 하는 것은 한 영혼이 멸망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천국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게 하시고, 믿음으로 끝까지 견뎌 구원의 영광을 얻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외식하는 이들을 향한 경고

 

[마태복음 23장 25절~39절]
25절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절 -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절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절 -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9절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절 -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절 -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절 -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절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절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절 -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절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절 -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배경 이해하기]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유대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것에 반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각 지방에 널리 퍼져 생활해 사람들과 자주 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충분한 교육을 받았으며, 경제적인 여건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무엇보다 율법 지식과 경제적 여건을 토대로, 율법에 충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지위, 교육 수준, 경제력, 율법적 삶과 같은 요인들은 자연스럽게 이들이 자신들이 속한 지역 공동체에서 인정받고,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제사장들의 부패가 이들의 권위를 상대적으로 높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백성의 인정은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었고, 교만은 자신들이 받을 대접에만 관심을 가지고, 실제적인 신앙에는 무관심해지는 결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는 점차 심화되어 예수님 당시에는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자들’로 불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 3절에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를 행하고 지키되”라고 말씀하시며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생각에 유익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시면서도, 그들을 질책하셨고 오늘의 본문에서는 일곱 번이나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관찰과 묵상]
1.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뭐라고 선포하셨나요? 그들을 ‘외식’하는 자라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25~31절)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율법대로 사는 것처럼 꾸미며 사람들에게 존경과 대우를 받았지만, 내면은 탐욕과 방탕 등의 죄악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23장 13절부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모두 일곱 번이나 화를 선포하십니다. 16절에서 “눈먼 인도자여”라고 말씀하신 것을 제외하고는 여섯 번의 화를 선포하실 때에 그들을 외식하는 자들로 규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을 외식하는 자들로 선포하신 것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해치고 그릇된 지식을 선포하는 잘못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외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권위와 체면에 집착하는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했더라면 변화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면에 가득한 교만과 무지한 백성의 높임 때문에 자신들의 한계를 직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체와 허상 사이의 간극을 억지로라도 메우기 위해 외식을 택했고, 그 외식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의 주장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4절까지 ‘맹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면서 그들의 무지함과 그들의 잘못된 인도를 비판하셨고, 25절부터는 그 근본적인 원인인 외식을 직접 거론하시며 겉으로는 율법에 충실한 삶을 산다 하면서도 내면에는 탐욕과 방탕, 부정이 가득함을 힐난하셨습니다.
적용과 나눔
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외식하진 않나요? 참된 신앙인으로 온전히 서는 데 방해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을 심도 있게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왜 율법을 주셨는지를 아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율법을 만드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율법에 담긴 참된 의에 대해서는 탐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수 없게 했고, 그들에게 비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까지 잘못 인도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잘못은 우리도 동일하게 범할 수 있는 종류의 잘못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내 생각과 세상 기준을 토대로 살면서 온전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면서 교만하고 만족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2.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선지자와 의인의 무덤을 단장하며 어떤 생각을 했나요? 예수님은 뭐라고 책망하셨나요?(29~36절)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만일 그들이 조상 때 살았더라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를 죽인 그들의 죄를 드러내시며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을 공부하며 이에 대한 다양한 측면들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국의 역사와 친숙했습니다. 유대 역사에서 실패에 해당하는 부분은 대부분 신앙의 부패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조상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이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조상들과 다른 판단과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조상들과 자신들을 비교하며 자고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교만과 무지의 산물입니다. 그들에게는 선조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인간의 한계에 대해 통찰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선조들보다 더 큰 잘못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의롭기 때문에 의인을 결코 핍박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인이신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뱀’으로 부르시는 것을 넘어 ‘독사의 새끼’라고까지 부르셨습니다. 유대적 관점에서 사람을 뱀으로 부른 것 자체도 강한 공격이지만, 독사의 새끼라고 부른 것은 엄청난 책망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외식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과도 같습니다.
적용과 나눔
누군가의 잘못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어떤 일을 반면교사 삼았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들을 포함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잘 안다고 착각했습니다. 이러한 무지는 교만으로, 교만은 행악으로 이어져 그들이 비교의 대상으로 삼았던 조상들보다 더 큰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셨고, 제자들에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이 무지하여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꼭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사람에게 높이 평가받기보다 하나님께 칭찬받기를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할 때 남을 쉽게 판단하는 죄를 버리고, 겸손히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자신들의 생각과 사는 방식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눈만 의식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잘못된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의 신앙까지 망가뜨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외식하는 자’, ‘독사의 새끼’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한계에 유의하지 않으면, 어느새 교만해져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동하려 힘쓰는 성도는 훗날 하나님께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을 것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제 생각과 경험, 가치관이 하나님 말씀보다 앞섰던 교만을 회개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바르게 깨닫도록 성령께서 조명해 주소서. 모든 일에 겸손과 믿음으로 반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고질적 죄악에 임할 지옥의 심판

 

[마태복음 23장 25절~39절]
25절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절 -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절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절 -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9절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절 -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절 -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절 -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절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절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절 -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절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절 -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절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겉만 깨끗한 그릇과 회칠한 무덤 같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조상이 선지자를 죽일 때 자신은 가담치 않았을 거라 장담하지만, 그들도 그들 조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주님이 암탉처럼 예루살렘을 모아 품으려 하셨으나 그들이 원치 않았기에 황폐해질 것입니다.

 

1. 종교 지도자들의 고질적 위선 (25~32절)

주님은 외면이 아닌 내면으로 평가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의 정결 의식을 따라 외적 정결에는 열심을 냈지만, 그들 내면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겉은 새로 단장한 무덤처럼 깨끗하게 했지만, 속은 더러운 것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위한 무덤과 의인들을 위한 비석을 만들며, 자신들이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선지자와 의인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의로운 척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조상과 비교해 다른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을 비난했고(11:18), 지금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기에 지옥 판결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경고를 귀담아듣고 외면보다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 회칠한 무덤의 안과 밖은 어떻게 다른가요? 예수님 당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 다르지 않은 내 내면의 죄악 된 모습은 무엇인가요?

 

2. 예루살렘을 징계하시는 하나님 (33~39절)

예루살렘은 다윗 이래로 유대인에게 특별한 도시입니다. 성전이 있었기에 거룩한 성, 하나님의 도성이라 불렸습니다. 그렇다 해도 하나님 뜻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이 그 성을 멸망시키십니다. 아벨로부터 사가랴에 이르기까지 의인들을 죽인 악행에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품듯이 주님은 그들을 모아 품으려 하셨으나 그들은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시고, 그 성은 마침내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언은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의 공격으로 성취됩니다. 택하신 백성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면 심판 받습니다. 성도는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죽인 예루살렘은 결국 어떻게 되나요? 경외함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가볍게 여기는 일은 없는지 돌아보세요.

 

오늘의 기도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의 능력이 제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사람의 시선과 인정에 목말라 겉모습만 치장하는 위선을 버리고, 속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데 힘을 쏟게 하소서. 주님의 임재와 사랑 안에서 인생이 늘 새로워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외식하는 자들을 향한 주님의 준엄한 경고

 

[마태복음 23장 13절~24절]
13절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절 - (없음)
15절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절 -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절 -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절 -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절 -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절 -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21절 -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22절 -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
23절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4절 -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예수님이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천국 문을 닫아 자기는 물론 누구도 못 들어가게 하고, 두루 다니며 얻은 교인을 지옥 자식 되게 합니다. 성전의 금과 제단의 예물을 성전과 제단보다 크게 여기고, 식물의 십일조는 드려도 더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버렸습니다.

 

1. 천국 문을 막아선 자들 (13~15절)

책임과 의무를 잘 감당하지 못한 지도자에게는 주님의 준엄한 책망이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영적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스스로도 천국에 들어가기 합당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얻은 교인을 그들보다 더한 지옥 자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알고 행한다며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닮은 그들의 복제품이 형편없었습니다. 이로써 그들 삶의 실체가 어떠한지 명백히 알 수 있었습니다. 진실하게 천국 백성다운 삶을 사는 지도자라면, 그의 영향을 받는 사람 또한 천국 백성으로 변화됩니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교인들을 어떤 길로 이끌었나요? 나를 본받는 이들에게 나는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나요?

 

2. 정의, 긍휼, 믿음이 따르는 삶 (16~24절)

성도는 그릇된 판단으로 말씀을 왜곡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성전이나 제단을 두고 맹세한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성전의 금이나 제단의 제물을 두고 한 맹세는 반드시 지키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금보다 성전이 크고 제물보다 제단이 크다 하시며, 맹세의 대상보다 중요한 것은 맹세를 들으시는 하나님임을 강조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일조를 드리되 더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소한 것(하루살이)에 집착하다가 더 중요한 것(낙타)을 소홀히 하는, '길러 낸' 순종과 실천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외형적 율법 준수가 아니라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 성도가 십일조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소한 것에 집착하다가 큰 것을 놓친 일은 없는지 생각해 보세요.

 

오늘의 기도

저는 누구를 닮기 위해 애쓰는지, 어떤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지 돌아봅니다. 복음을 바로 전하기 위해 말씀 앞에서 처절히 고뇌하고, 온전한 신앙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게 하소서. 말씀에 눈이 열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복을 얻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위선을 버리고 진실하게,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마태복음 23장 1절~12절]
1절 -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절 -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절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절 -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절 -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절 -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절 -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절 -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절 -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절 -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절 -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절 -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들 말은 행하되 그들 행위는 본받지 말라 하십니다.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한 분뿐이고 지도자도 그리스도 한 분 뿐이며 우리는 다 형제이기에,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입니다.

 

● 본받을 것과 본받지 말 것

가르침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큰 실망을 안겨 줍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행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모세의 자리'는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의 자리입니다. 종교적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면서 율법이 가르치는 참뜻은 저버린다면, 이는 위선입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이 달랐던 이면에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을 의식하는 삶에는 위선과 교만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친히 본을 보이신 최고의 선생이십니다. 예수님은 높아지려 하지 말고 정반대로 섬기는 자가 되라 명하십니다. 스스로 낮추는 자를 높여 주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입니다.

 

*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말과 행동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평가하셨나요? 사람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그리스도를 아는 자가 실천할 가장 큰 계명

 

[마태복음 22장 34절~46절]
34절 -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절 -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절 -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절 -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절 -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절 -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41절 -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절 -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절 -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절 -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절 -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절 -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 율법 중 어느 계명이 크냐 묻습니다. 예수님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라고 하십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말했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물으시니 바리새인들이 답변하지 못합니다.

 

1. 율법사의 시험 (34~40절)

하나님이 주신 계명 중 가장 큰 것을 찾으려는 시도는 유대인들의 관심사였습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해 율법 중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의 의도를 아심에도 예수님은 교훈의 기회로 삼으십니다. 예수님은 '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하십니다(신 6:5).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는 말은 둘째 계명이 첫째 계명과 동등함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레 19:18). 이 두 계명이 율법의 핵심 요약입니다. 율법사는 지식적 측면에서 질문하지만, 예수님은 '사랑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답하십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균형 있게 실천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됩니다.

* 예수님이 율법의 핵심으로 드신 계명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을 이루도록 내가 보완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2. 다윗이 '주'라 부른 메시아 (41~46절)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만 이해하면 바르게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바리새인들이 '다윗의 자손'이라 답합니다. 유대인들은 시편 110편 1절을 메시아에 관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예수님은 이 시를 인용해, 다윗이 메시아를 '주'라 한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혈통으로 오신다는 것만 알 뿐,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로 오신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넘어뜨리려는 예수님이 다윗이 '주'라 불렀던 바로 그분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영원히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로 부른 것은 메시아의 어떤 면을 드러내나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때마다 그분 앞에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항상 사랑을 말하지만 여전히 사랑이 메마른 저를 긍휼히 여겨 주소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데 힘써, 제 전 존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하루 되게 하소서. 전심을 다한 하나님 사랑이 이웃을 향해 공감하고 행동하는 사랑으로 펼쳐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부활 소망으로 섬길 산 자의 하나님

 

[마태복음 22장 23절~33절]
23절 -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4절 -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절 -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6절 -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절 -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절 -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9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절 -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절 -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32절 -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절 -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상속자 없이 죽은 맏이를 대신해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들었는데 그도 자식 없이 죽고 이 일이 여섯 동생에게 차례로 일어날 경우, 부활 때 형수는 누구의 아내이겠는지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한 자들은 서로 혼인함이 없고,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 가르치십니다.

 

1. 부활에 관한 사두개인의 질문 (23~28절)

사두개인은 모세 오경만 받아들이고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던 당파로,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부활과 관련된 질문을 합니다. 일곱 형제가 있는데 큰형이 장가들어 아들이 없이 죽었고, 둘째도 셋째도 형수와 결혼해 그러했고, 일곱째까지 형수와 결혼한 경우 부활 때 이 여인은 과연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남자가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의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한 상속자가 있게 하라는 규정이 있습니다(신 25:5). 사두개인은 부활의 개념이 율법과 조화되지 않는다고 여겼기에 부활에 대한 반론으로서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이 예수님께 질문한 사례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나요? 성경을 알지 못할 때 내가 품었던 오해는 무엇이었나요?

 

2.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 (29~33절)

부활은 세상 이치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에게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모르고 있다며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첫째, 부활한 몸은 천사들과 같아지기에 이전 방식대로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활 때에는 시집가거나 장가가는 일이 없기에 그들이 제시한 사례의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십니다. 둘째, 성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통해 이미 부활의 하나님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주권자신 하나님은 영원을 함께할 존재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부활은 우리가 죽은 후에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입니다. 부활은 가상의 소망이 아닌 역사적 실재입니다.

* 사두개인의 두 가지 오해는 무엇인가요?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지금 고민하며 힘들어하는 그 일의 비중은 어떠할까요?

 

오늘의 기도

논리와 이성의 판단만으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말씀을 오해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어느새 부활 소망을 잃어버리며 지낸 제 삶에 부활의 능력을 불어넣어 주소서.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누릴 기쁨과 영광을 사모하며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

 

[마태복음 22장 15절~22절]
15절 -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절 -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절 -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절 -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절 -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절 -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절 -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절 -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자기 제자들과 헤롯당원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옳은지' 묻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십니다. 이 말씀에 놀란 그들이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1.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의 계략 (15~17절)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은 추구하는 바가 달랐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잘 지켜 거룩한 백성다운 삶을 살기 원했고, 헤롯당원은 왕으로부터 주어지는 권력과 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처럼 다른 두 그룹이 한마음이 되어 '세금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여기서 세금은 로마 관리들이 거두던 인두세를 의미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세금 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답하시면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기에 헤롯당원이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한편 세금을 바쳐야 한다고 답하시면 유대 민족의 정서를 건드리기에 바리새인이 저항할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든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도록 해 정죄하려는 악한 속셈이었습니다.

*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이 한마음으로 예수님을 시험한 질문은 무엇인가요? 진퇴양난에 처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2. 가이사의 것 vs 하나님의 것 (18~22절)

인간의 악한 계략은 도리어 예수님의 지혜를 드러낼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시험임을 간파하셨습니다. '예'나 '아니요' 둘 다 올무에 걸리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게 해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당시 동전에는 황제의 형상과 함께 그를 신의 아들로 묘사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이사의 것'이라 답하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것'으로서 더 크고 영원한 나라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 가이사 형상이 새겨진 동전이 가이사의 것이라면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은 누구의 것일까요?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매 순간 세상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제 삶을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언제나 참되시고 진리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겉모양이 아닌 진정으로 따르게 하소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소임을 성실하고 신의 있게 감당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초대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2장 1절~14절]
1절 -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절 -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절 -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절 -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절 -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절 -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절 -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절 -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절 -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절 -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절 -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절 -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절 -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절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배경 이해하기]
마태복음 22장은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초청과 이를 거부한 이스라엘에 대해 보여 줍니다. 누가복음 14장에도 큰 잔치 비유가 등장하는데, 이는 유사하면서도 각기 다른 목적과 세부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본문의 위대한 혼인 잔치 비유는 천국에 대해 설명합니다(2절). 예수님은 천국을 하나님이 베푸신 혼인 잔치와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 사이에 관계로 비유하십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계 19:7).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로 초청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40). 하나님의 초청은 이스라엘에게서 열방에게 주어집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2). 하나님은 그분의 종들을 통해 세상 모든 사람을 하나님 나라로 부르십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혼인서약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혼인서약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관찰과 묵상]
1.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했나요?(2~6절)
잔치에 오기를 싫어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습니다.
임금은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종들을 보내어 청하고,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어 초대에 응할 것을 강권합니다. 재차 초청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임금의 혼인 잔치는 초청에서뿐만 아니라, 그 준비에 있어서도 완벽합니다.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4절). 임금은 잔치에 대한 모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와 같이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는 초대받은 사람은 누구나 와서 값없이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잔치입니다. 그런데 “돌아보지도 않고”(5절)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정성껏 준비한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마음은 굳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 바빠서 임금의 잔치에 갈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실상 그들은 헛되고 그림자와 같은 세상 재물을 쌓기 위해 임금의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임금의 초청을 가볍게 여기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적용과 나눔
복음을 전하며 교회로 초대했을 때 거절당한 경험이 있나요? 복음 전도자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신약성경의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명령을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8).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 사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마지막 메시지는 동일합니다. 그것은 지상 대명령으로 복음으로의 초청인 선교 명령입니다.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성도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초대받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님의 꿈이고, 하나님 나라로의 초대입니다.

2. 초대에 응하지 않은 자들에게 임금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또 종들에게는 어떤 명령을 내렸나요?(7~10절)
진노한 임금이 초대에 응하지 않고 도리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합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게 합니다.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자들은 초청자 명단에 있었던 유대인들을 뜻합니다. 그들은 엄청난 특권인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다른 어떤 이들보다도 더 먼저 잔치에 들어갔어야 할 이들이 오히려 초대장을 들고 온 종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며 잡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6절). 이로 인해 임금의 초청은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모두에게 주어집니다.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완벽하게 준비하신 천국 복음이 이방인들에게까지 향하게 되었습니다(롬 10:12). 임금의 명을 받은 종들이 “네거리 길에 가서”(9절) 사람들을 찾아 초대합니다. 여기서 ‘길’은 출구를 의미합니다. 네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구원의 길을 만난 것입니다.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초대에 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나님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약한 자나 강한 자나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그 누구라도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 원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위대함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임금이 잔치에 초대된 손님을 보러 들어올 때 예복을 입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옷’은 예수 그리스도 대속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옷을 의미합니다. 그 옷을 입지 않고서는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이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납니다.
적용과 나눔
나의 전도 대상자는 누구인가요? 나는 그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님이 열어 놓으신 구원의 대상자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도 복음 전도 대상에서 제외될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민으로 택하신 유대인들도 복음이 필요하고, 길거리에 있던 이방인들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구원과 은혜의 잔치인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를 위해서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종들이 필요합니다. 종들은 때로 복된 소식을 전하다가 모욕과 핍박을 당하기도 합니다. 구약시대에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들도 고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묵히 전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 그것을 받는 자들이 있었지만, 핍박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2000년 교회 역사 가운데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한 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혼인 잔치는 바로 종들의 순종을 통해 알려지고, 많은 사람이 초대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 나라는 초대받은 자들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종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로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값없이 초대받은 사람이며, 하나님께 보냄 받은 종으로서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행 20:24)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지만, 그곳에 들어가는 데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내 열심과 노력이 아닌,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서 열리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천국 잔치에 값없이 “오라!” 불러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 주님의 초대를 소중히 여기고, 구원의 천국 잔치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명자로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하늘 왕의 초대에 성도가 준비할 예복

 

[마태복음 22장 1절~14절]
1절 -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절 -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절 -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절 -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절 -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절 -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절 -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절 -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절 -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절 -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절 -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절 -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절 -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절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천국은 아들의 혼인 잔치를 연 임금과 같습니다. 그가 종들을 보내 초청한 이들을 부르지만, 그들은 거절하고 종들을 죽입니다. 임금이 그들을 진멸하고 종들더러 네거리 길에서 아무나 데려오게 합니다. 그러나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쫓겨납니다. 청함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 입은 자는 적습니다.

 

1. 거절과 새로운 초대 (1~10절)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지속적으로 구원의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들의 혼인 잔치에 초대하는 어떤 임금에 비유해 말씀하십니다. 임금이 종들을 보내 사람들을 초청하지만 그들은 거부합니다. 사람들은 '돌아보지도 않고'(5절) 밭과 일터로 가 버리고, 종들을 모욕하고 죽입니다. 진노한 임금이 자기 군대를 보내 살인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태웁니다. 임금은 종들에게 다시 네거리 길에서 선인이든 악인이든 상관없이 누구든지 '만나는 대로'(10절) 초청해 오라고 명합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잔치에 참여합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거부로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구원 역사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세계 각처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하나님이 초대하신 결과입니다.

* 어떤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자 그들 반응은 어떠했나요? 주님의 은혜로운 초대를 무시하고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요?

 

2.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11~14절)

복음을 듣고 구원으로 초대받는 사람은 많지만,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적습니다. 임금이 잔치 석상을 둘러보다가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사환들을 시켜 그를 쫓아냅니다. 임금의 초대를 받아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이 먹고 즐길 수 있는 단 한 가지 조건은 '예복'입니다. 이 비유에서 예복은 '믿음에 합당한 삶'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선한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그 믿음이 참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가 삶(행위)입니다. 은혜로운 초대로 구원받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성도에게는 마땅히 하나님 백성다운 삶의 열매가 따라야 합니다.

* 혼인 잔치에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하나님 백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과 행동을 어떻게 바꾸어 갈까요?

 

오늘의 기도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청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저를 말씀으로 부르시는 초대에 기쁨으로 달려가게 하소서. 구원자와 주인 되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믿지 않는 이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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