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udy

 

Ⅰ. 앉은뱅이를 고침 3:1-11

이 당시에는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2:43). 본문에는 한가지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1. 기적을 행한 베드로와 요한(1)

베드로와 요한은 각자 12제자들 가운데 자기 형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그들 서로가 자기 형제 이상으로 친밀한 것처럼 보인다. 때때로 우정에 의한 유대가 혈연보다 더 강할수 있기때문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리스도의 부활후 전보다 더욱 친해진 듯하다. 그것은 베드로가 회개하고 하나님이 그를 용납하셨다는 좋은 증거가 되며 이로써 그리스도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가 베드로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2. 사건의 시간과 장소(1)

기적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가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성전에서였으며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올라갈 때였다. 복음의 그물이 쳐지고 많은 고기들이 낚여졌다. 공중 예배에 참가하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성전에 함께 올라가는 것은 위안이 된다. 최상의 사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회이다. 그때는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공중예배와 함께 기도하는 처소와 시간이 정해져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강제성을 갖지않더라도 자기의 기도시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기적의 대상(2,3)

기적적인 치료를 받은 환자가 2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성전 문앞에서 구걸하는 가난한 앉은뱅이였다.

(1) 그는 사고로 다친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불구자였다. 그는 나면서 앉은뱅이가 된 자였다. 이 비참한 경우는 우리에게 우리가 처해있는 본질적인 영적상태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다. 즉 능력이 임하지 않고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우리는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일할수도 걸을수도 없다.

(2) 그는 거지였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할수 없으므로 구걸을 해야만 했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는 자라(2절). 필요한 것은 많으나 일할수 없는 사람은 구걸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된다. 기도와 자선행위는 함께 행해져야 한다.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갈때 자선의 대상은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성전 문앞에서 불쌍한 거지들이 자선이 부족하다고 낙심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중에는 고려되어야할 장점이 확실히 있으며 열마리의 수벌(게으른 자), 또는 말벌(싸우기를 좋아하는 자)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한마리의 꿀벌(부지런한 자)를 굶주리게 내버려두는 것보다 낫다. 그 거지가 누워있던 성전문은 본문에서 미문이라고 불리워진다. 가난한 사람이 그 밑에서 구걸한다고해서 이 문의 아름다움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었다.

(3)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하며 자선을 구하였다(3절). 이것이 그가 요구할수 있는 전부였다. 그는 동냥을 주기를 바랬지만 치유를 받았다.

4. 치유방법(4-7)

본문에서 치유방법이 나타나 있다.

(1) 베드로가 그를 외면하지 않고 그에게 주목했기 때문에 그 거지는 기대감에 부풀었다(4절). 요한도 마찬가지여서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를 보라'고 말하였다. 이 일은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하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거지는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5절).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응답받기를 기대해야 한다.

(2) 동냥을 얻으려는 거지의 기대는 곧 좌절되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그리스도의 친구들과 제자들이 이세상에서 부귀를 누리는 예는 흔치않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이 많이 있었지만 그것은 교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생계비였다. 자신들은 겨우 생계나 유지할 정도였던 것이다. 공적 신용은 엄격하고 성실하게 지켜져야 된다. 또한 자선을 행하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 없는 반면에, 필요한 자금은 있으나 마음이 허락치않는 사람들도 있다.

(3) 그의 기대는 기대이상으로 이루어졌다. 베드로에게는 동냥을 줄 돈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좋은 것, 즉 거지의 질병을 치료해줄수 있는 하늘로부터 받은 능력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영적은사로 매우 부유하게 될수 있다. 그는 거지에게 더좋은 것, 즉 질병의 치료를 주었다. 이제 그는 일을 하여 생계를 꾸려나갈수 있게 되었으므로 더이상 구걸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자기가 동냥을 구하던 사람들에게 줄수 있게될 것이다. 그에게 줄 은과 금은 없었지만 베드로는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하고 말했다. 은과 금은 없는 사람이라도 손발과 감각은 가지고 있다. 이것으로 장님과 앉은뱅이와 병자들을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할수 없다면 은과 금이 있다해도 역시 줄수 없을 것이다. 이제 어떻게 치유가 되었는가 살펴보자. 베드로는 앉은뱅이에게 걸으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고 전제하지 않았다면 그를 희롱하는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일어나서 걸으려고 시도하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한다면 그는 걸을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걸음으로써 그 능력이 그에게 임했다고 증거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그가 위로를 받게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라. 베드로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도와주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7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에게 그의 계명대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하실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키게 하신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을 스스로 하려고 노력할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수 없는 것까지 할수 있게하는 그의 은총을 약속하신다.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7절). 그는 자신이 할일을 했고 베드로 자신도 할일을 했지만 이 모든 것을 이루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그에게 힘을 주신 이는 바로 그분이시다.

5. 환자의 태도(8)

본문은 이 치유가 환자에게 준 영향에 대하여 설명해 준다. 그는 말씀에 복종하여 뛰어 일어나 걸었다. 그는 잠을 자서 몸이 회복된 사람처럼, 자기에게 힘이 있는가 의심하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힘이 생겼으므로, 그가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은 갑작스런 일이었다. 그는 일어나서 걸었다. 그는 힘차게 걸었고 똑바로 움직였다. 이것이 치유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경험한 사람은 그들이 경험한 것을 증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지 않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결연히 서고 그와 더불어 즐겁게 걸어가자.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11절). 그가 왜 그들의 손을 붙잡았는지 물을 필요가 없다. 나는 그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는 기뻐서 그들을 포옹하였다. 이렇게 그는 그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였다. 그는 그들을 붙잡고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치유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고쳐주실때 도구를 사용하신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계속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그는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들에 대한 그의 애정이 너무도 강렬하였지만 그들을 성전밖에 머물게 하지는 못했다. 그는 그들과 함께가기로 작정했는데 그들이 성전으로 들어갔기때문에 그도 따라 들어갔다. 요한복음 5:14절에 나오는 그리스도께서 고치신 혈기마른 자와 같이 그도 곧 성전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주신 힘은 그를 찬양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이 사람은 자신이 뛸수 있게 되자마자 하나님안에서 즐거이 뛰며 그를 찬양했다. 진정한 회심자들은 걸으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러나 젊은 회심자들은 더욱 힘차게 뛰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6. 이 기적의 영향(9-11)

이 기적의 목격자들은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1) 그들은 기적의 진실성에 전적으로 만족했다. 그들은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자인줄 알았다(10절). 그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알아볼 정도로 거기에 오래 앉아있었다. 그들은 이제 그가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을 보았다(9절). 그는 그가 전에 구걸하던 때처럼 마음껏 소리질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들이 성화될때 자비는 완전해진다.

(2) 그들은 그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들은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며(10절) 크게 놀랐다(11절).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이 기적은 이루어졌다고 보여졌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 자신이 치료해 주신 사람들과 함께 있을때보다 사도들이 행한 이 기적으로 더욱 감화를 받게되었다.

(3)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주변에 모였다. 모든 백성들이 달려나아가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 여기서 사람들은 이 위대한 광경을 보기위해 모였다.

 

Ⅱ. 솔로몬의 행각에서 행한 베드로의 설교 3:12-26

앉은뱅이를 고친후 베드로는 본문과 같이 설교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12절). 베드로는 떼지어 몰려드는 백성들을 보자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할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였다. 베드로는 기적에 감동된 백성들을 보았을때,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밭에 복음의 씨를 뿌렸던 것이다. 베드로는 백성들이 자신과 요한을 숭배하는 것을 보고 그러한 숭배심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돌려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1) 그는 기적이 가져오는 명예를 겸손하게 포기했다(12절). 그는 그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불렀는데 이 사람들은 율법과 약속뿐만이 아니라 복음과 성취와도 관련이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두가지를 질문하였다.

1) 왜 그들이 기적을 보고 놀라는가.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12절). 사실 그것이 놀랄만한 일이긴 하지만 이미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나사로를 일으키셨는데 어째서 이 일이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는가?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들에게는 아무 이상도 없는듯이, 그들에게 가장 친숙해야할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불과 며칠전에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는데 그들은 왜 이 일에는 놀라지 않는가?

2) 왜 그들은 기적의 도구에 불과한 사도들을 지나치게 찬양하는가?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절). 그들이 이 사람을 걷게한 것은 확실하나 그로인해 사도들이 하나님에 의해 보내졌을뿐만 아니라 세상에 축복을 주기위하여 보내졌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 자신과 권능과 경건으로 기적을 일으킨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이 행한 능력은 오로지 그리스도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능력을 주실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즉 그들은 경건으로인해 능력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베드로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였다. 사람들이 그들의 권능과 경건을 찬양했던 것은 그 사람들의 잘못이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가 우상화되어서는 안된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있어 찬양할 점은 기적을 행한 것에 대한 명예를 그들 자신에게 돌리지않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그리스도께 돌렸다는 것이다. 유능한 사람들을 볼때 우리는 그들이 매우 겸손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2) 그는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했다(13-16절).

1) 그는 그리스도를 조상들에게 약속된 참메시야라고 전했다(13절).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시다. 그는 하나님께는 아들로서 사랑받고 우리에게는 구세주 예수로서 사랑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올리심으로써 그를 영화롭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으로 그를 영화롭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족장과 맺은 약속에 따라 그를 세상에 보내셨다. 그들이 전한 복음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생각과 의지에 대한 계시였다.

2) 그는 단호하고 명백하게 그들을 예수의 살인자로 규정한다.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13절). "너희는 그를 마치 공공연한 불평꾼인양 그를 비난하는 아우성을 치는 소리에 넘어갔다. 그가 화려함과 권능으로 오지않았기 때문에 너희는 그를 부인하고 의절하며 메시야로 생각하지 않았다" 너희가 앞에서 부인하고(13절). "너희는 빌라도보다도 악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빌라도는 너희가 그의 판결에 따르기만 한다면 저를 놓아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했다." 주 예수의 결백보다도 더한 어떤 것, 즉 그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이 그를 죽인 자들의 죄를 더하게 했던 것이다. "너희가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너희는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14절). 저희는 생명의 파괴자인 살인자는 살려주고 생명의 주이신 구세주는 죽였다. 너희는 생명의 주를 죽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너희는 자비심을 버렸을뿐만 아니라 그것에 역행했다.

3) 그는 앞서 2:32절에서 한바대로 예수의 부활을 주장한다. "너희는 생명의 주가 그의 생명을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로다."

4) 그는 이 무능한 사람에 대한 치료를 그리스도의 권능때문이라고 한다. 그이름을 믿으므로 그이름이 너희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16절). 그는 재차 반복하여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라고 하였다.

첫째, 그는 이 기적의 진실성에 관해서 그들에게 호소한다. 고침을 받은 이 사람은 바로 '너희가 보고 아는' 그 사람이다. 그 적은 공공연하게 너희 모든 사람앞에서, 곧 성전문에서 일어났다. 치유는 완전했다. 그것은 완전히 나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너희는 그가 걷고 뛰는 것을 볼수 있다.

둘째, 그는 병고침의 능력에 대하여 알려준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왕의 명령은 비록 하급관리가 집행하였더라도 왕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것처럼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위로 그의 명령은 수행된다. 그리스도의 권능은 그이름을 믿음으로 임하게 되며 그들이 영광을 받게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목적을 위해서이다. 믿음으로 이런 기적을 행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능력을 받았으므로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에게 돌리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들이 세상에 전해야할 위대한 복음의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권능과 영광의 초석이시고 위대한 치유자이시며 구세주시라는 사실을 확증했으며, 또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유일한 길로써 그를 믿는 위대한 복음의 의무를 권고하였다.

(3) 그는 그들도 은총을 구할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 그들을 격려했다(17, 18절). 그는 그들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나, 또한 그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1) 그는 그들의 죄가 그들의 무지때문이었다고 솔직히 비난함으로써 그들의 죄를 덜어준다. 그는 그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들의 엄중한 책임을 완화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 죄악에 있어 그 자신도 그들의 형제가 되기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도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그를 알지못한다고 맹세했던 적이 있었다. 너희가 알지못하여서 그리 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도 그리한줄 아노라(17절). 이것은 베드로의 사랑에서 나온 말이며 나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자기의 핍박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자신들이 하는바를 알지못했던 사람들을 변호해 주었던 그의 선생은 베드로에게 모범이 되었다. 통치자들이나 백성들 중에는 악의를 품고 그렇게 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대세에 따라 무지하게 행동했을 뿐이었다.

2) 그는 죄인의 결과를 가볍게 해준다. 그것은 성경에 쓰여진대로 한 것이었다(18절). 그래서 그는 성경에 기록된대로 그리스도는 고난받으실 필요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 너희가 그 성경말씀을 이루었으나 너희는 그것을 알지못하였다. 그러나 너희를 도구로 쓰심으로써 하나님은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하신 것을 이와같이 이루셨느니라." 이것이 그의 계획이었으나, 너희의 독선으로 너희 모두는 이 계획을 알지못하였다. 하나님은 너희가 너희 자신의 열정을 만족시키고 있는동안 성경을 이루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죽기까지 핍박하고 미워한 그들의 죄는 정상을 참작할 여지가 없지만 그 죄는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은총을 갈망하도록 용기를 주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죄사함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제 그들에게 소망을 갖도록 용기를 주었던 은총을 나타내는 근거가 되었다.

(4) 베드로는 그들 모두에게 그리스도인이 될것을 권고한다(19-26절).

1) 그는 그들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를 말해준다. 즉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된 씨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25절). 육체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를 인하여, 이스라엘 족속뿐만 아니라 땅위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지자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형제가운데서 세우실 것을 약속하신 모세와 같은 선지자였다(22절). 그리스도는 선지자이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모세와 같이 그의 백성들을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시는 인도자이시다. 모세는 종으로서,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신실하였다. 모세가 온유와 인내의 전형이었듯이 예수도 그러하다. 모세만한 선지자가 없었다. 그러나 모세보다 더크신 이가 여기 있으니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이시다. 그는 맨 먼저 이스라엘에서 세움 받으셨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첫번째 수혜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가운데 세움을 받으셨던 것이다. 그가 자기 백성에게 오신다면 그들은 마땅히 그를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구약의 교회는 '사무엘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들'(24절)로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이 종들은 계속하여 그들에게 능욕당했으므로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보내셨던 것이다. 그들은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앞으로부터 이를 것'(19절)과 그날이 '만유를 회복하실때(21절)임을 믿어야만 한다. 주님의 부재는 많은 죄인들을 안전하게 해주고 성도들을 불신받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임재는 서둘러 진행되고 있으며 죄인과 성도 모두를 영원히 잠잠하게 만들 것이다. 주의 임재는 다음의 두가지를 가리킨다.

① 만유의 회복(21절). 즉 모든 피조물의 혁신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의 마지막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에 이르러 전보다 더욱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타난다.

② 이와 함께 더위에 지친 자들에게 시원한 그늘같이 유쾌하게 되는 날(19절)이 올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의 고생과 수고가 끝난후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겨진 휴식을 갈망한다. 그때 주앞으로부터 오는 유쾌함은 주앞에서 영원한 것이다.

2) 그는 그들이 꼭 해야할 것을 가르쳐준다. 그들은 회개해야만 한다. 곧 새롭게 시작해야만 한다. 베드로도, 그 자신이 그리스도를 부인했으나 회개했으므로 그들에게도 그렇게하기를 요구한다. 그들은 돌이켜야 하며,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죄를 회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죄로부터 돌이켜야 하며 다시는 죄에게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위대한 선지자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예언자들이 들었던 것처럼 거룩한 믿음을 가지고 들어라. 무엇이든지 들어라. 그의 법이 너의 모든 행위를 다스리게 하라. 그가 네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나 환영하라. " 만일 우리가 주의 말씀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멸망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아니하는 자는 백성중에서 멸망받으리라(23절). 구세주의 충고를 듣지않으려는 자는 파괴자의 수중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3) 그는 그들이 무엇을 바라야할 것인가를 가르쳐준다.

① 그들은 죄사함받아야 한다.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19절). 죄의 용서는 죄를 없애버린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서지 않는한, 우리는 죄를 용서받을수 없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용서도 없다. 회개함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희망은 우리를 회개하도록 하는 강력한 유인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것은 가장 우선적이고 중대한 선포이다. 죄를 용서받음으로 우리가 얻는 위로의 열매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를때'이다. 수고와 싸움의 시기 동안에는 안으로는 의심과 공포, 밖으로는 고통과 위험의 시기인데, 죄사함으로 인한 만족한 열매를 얻을수 없다. 그러나 유쾌하게 되는날이 오면 모든 눈물은 마르게될 것이다.

②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위로를 가져야 한다(20, 21절).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20절). 그리하여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키면 우리는 언제나 그와 함께있을 것이며,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를 만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세상에 우리와 함께 육체를 가지고 계실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제자들의 눈앞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하늘이 종말까지 그를 받아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이지않는 것들의 증거'이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킨 모든이에게 그가 보내어질 것이라고 약속되었다.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20절). 그의 영적인 임재를 구하라. 세상에 보내진 그는 바로 너희를 위하여 보내진 것이니 너희는 그의 오심으로 위로를 받으라. 종말에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심은 너희에게 축복이 되리라. " 이것은 21절의 그때까지 하늘이 그를 받아둘 것이라는 구절과 관계된것 같다.

(5) 그는 그들이 돌이켰을때 이러한 것들을 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한다.

1)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언약의 자손이라(25절). 이 말씀속에는 두가지 특권이 언급되어 있다.

① 그들은 선지자들의 자손이었다. 그들가운데서 선지자가 일어났고 그들에게 선지자가 보내졌다. 예언이 중지된 시대의 사람들도 선지자들의 자손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적합한데 그들도 매 안식일마다 그들의 회당에서 읽혀지는 선지자의 외침을 들었기 때문이다(13:27).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속히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바대로 예언자들과 예언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이 헛되이 받아들이지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② 그들은 자손들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과 맺으신 계약'의 상속자들이었다. "메시야의 약속이 너희에게 주어졌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그 약속이 너희에게 유익하게 되도록 간구해야 한다." 땅위의 모든 족속이 그리스도안에서 축복을 받는다면, 육에 따른 아브라함의 혈연은 더큰 축복을 받을 것이다.

2) 이스라엘 민족은 신약의 은총을 맨처음 받았다. 가장 먼저 그들에게 구속자가 보내지셨는데, 이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아직도 그들의 위로를 위하여 그가 보내지리라고 소망할수 있는 용기를 그들에게 주는 것이었다(20절).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를 너희에게 먼저 보내셨기 때문이다(26절). 즉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특히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는' 큰축복을 주셨던 것이다.

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언제 사명을 받으셨는지 알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를 세워 그를 보내셨다.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로 세우셨다. 하나님은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그를 보내셨고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구하기위해 그를 보내셨다. 어떤 학자들은 "그의 부활은 그를 높이시려는 의도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시어 우리를 떠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복음과 성령안에서 우리에게 새롭게 다시 보내진 것이다.

② 그는 '먼저 너희에게 즉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언약의 자손인 너희에게' 보내지셨다.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목회는 선지자들이 그러했듯이 유대인들에게 국한되었었다. 그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위하여' 오셨으므로 제자들에게 다른 지방으로 가지말라고 명령하셨다. 부활하신후에 그는 실로 만방에 전파될 것이었으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야만 했다(눅 24:47). 그리고 그들이 다른 나라에 갔을때 그들은 먼저 유대인을 찾아 그들에게 전도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리스도는 부활하시자 제일 먼저 그들에게로 가셨던 것이다.

③ 그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주시려고 먼저 너희에게 보내사. 그는 너희가 당연히 받아야할 비난을 하시기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의롭게 하시기위해 오셨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때도 그 축복을 남겨놓으셨다. 그는 '제자들을 축복하신후 그들을 떠나셨다'(눅 24:51).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며 우리도 오직 그를 통해서만 축복받기를 간구할수 있다. 가장 큰축복은 우리가 다른 모든 축복을 받을수 있도록 우리를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는 것이다. 죄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의 섭리를 죄에서 우리를 돌이키게 하고 죄에 대항하게 해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죄를 버릴뿐만 아니라 그것을 미워할수도 있게된다. "그러므로 너희의 임무를 행하라. 즉 회개하고 돌이켜라.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그 악함을 버리게 하시며 너희를 축복하려하시기 때문이다."

 

# 해설

베드로의 능력 ( 3 )

전장의 끝부분은 예루살렘 교회의 진정한 공동체로써의 탄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적과 함께 주의 은혜가 넘침으로 믿는 자의 수가 더해 갔습니다. 본장에서는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교회가 갖은 시련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증거하는 공동체로써의 온전함을 갖추기 위한 많은 모습을 대하게 됩니다.

 

1. 고침받은 앉은뱅이

1)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정한 시간에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그때의 시간은 제구시 즉, 오후 3시였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만나게 됩니다. 이 앉은뱅이를 사람들이 메어와서는 미문이라는 성전문에 두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40년이상을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서 소외된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성전미문 곁에 자리를 잡고앉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에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는 유대인들이 늘 그곳을 지나다녔기 때문입니다. 미문은 이방인의 뜰을 지나 여인들의 뜰로 들어갈때 통과하게 되는 문이었던것 같습니다.

a.성전(눅18:10)

2) 나사렛 예수의 이름

사도들은 유대인 남자들이었던 까닭에, 성전 바깥뜰(이방인의 뜰)을 지나 계단을 올라 여인의 뜰(성전내부의 첫뜰)로 들어갔고, 다시 이스라엘의 뜰로 들어갔습니다. 제사 의식은 좀더 들어가 성전 가장 안쪽뜰(제사장의 뜰)에서 행해졌습니다. 일반 유대인들은 보통 그안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에서 조금더 걸으면 바깥뜰과 안뜰을 나누는 성전벽이 있습니다. 이 성전벽에는 이방인이 들어가면 죽을 것이라는 경고문이 헬라어와 라틴어로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은 이 문에 앉아있는 앉은뱅이를 만난 것입니다. 실상 사도들은 그 사람이 구하는 유의 도움을 줄수는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더나은 것을 주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이 앉은뱅이는 걸을수 있게된 것입니다.

a.그리스도의 이름(사9:6)

b.치유의 능력(막16:17)

3) 나타난 이적

누가는 이적을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행2:43절에는 교회내에서 여러가지 기사와 표적이 발생한 것을 말합니다. 사도들은 많은 이적을 행했으며 특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고치는 이적을 많이 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와 표적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음을 알게됩니다. 이적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건한 두려움을 주었고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경외심을 갖도록 했으며 사도들의 교훈과 사도직을 확증해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적들로인해 사도들이 증거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더욱 신빙성있게 되었고 능력있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본문에서 표적중의 하나를 선별해서 기록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사도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성전미문에 앉아 있던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아보고는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랐습니다.

a.찬양으로 감사함(계5:12)

b.이적으로 인한 놀람(마15:31)

 

2. 베드로의 설교

1) 솔로몬 행각

앉은뱅이의 일로 놀란 무리들은 모두 솔로몬 행각에 모여들었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성전 바깥뜰 동편 끝에 있는 행각이었고 이방인들의 뜰 동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부속 건물이었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보고 잔뜩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 모여든 군중들이 날때부터 앉은뱅이였으나 이제 생전 처음으로 건강한 두다리를 갖게된 그사람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설교할 자연스런 기회를 갖게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와 요한이 그 앉은뱅이를 걷게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들의 능력도, 경건도 아니었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를 고친 것은 예수님의 권능의 이름이었음을 말한 것입니다.

a.솔로몬 행각(요10:23)

b.인간이 행한 일이 아님(요3:27)

2) 부활의 증인

베드로는 부활의 증인으로서 이적을 보게된 사건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치료의 능력은 예수께로 말미암았음을 베드로는 힘있게 증거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서 믿음을 찾으셨고 아무리 미미한 형태라도 믿음이 있으면 고치셨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것도 바로 믿음에 의해서였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듯이, 불과 몇달전 예수님은 성의 북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었습니다. 그분의 시체가 십자가에서 내리우고 장사되었을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그분의 종말인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하고 로마 관원들에게 넘겨져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이 일의 증인이었던 것입니다.

a.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히12:2)

b.그리스도의 증인(요15:27)

3) 하나님의 종

베드로는 모인 무리를 향해 예수를 소개하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을 가리켜 '거룩하고 의로운 자'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입은 사람에게 쓰는 고유명사였습니다. 그분은 여호와의 종으로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듯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될 분'이셨습니다(참조, 사52:13). 누가는 예언의 성취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말한 종이기도 하시지만, 모세가 예언한 대선지자이기도 하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보내사 그의 백성을 자기들의 죄에서 돌아서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또한 땅의 모든 족속이 그안에서 복을 받을 아브라함의 후손이기도 하시다는 것입니다.

a.죄사함(시51:1)

 

결론

앉은뱅이를 고친 것은 사도들이 행한 많은 기사와 표적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가는 속에서 이 표적은 예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능력으로 보여집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이름에 의한 것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예언들의 성취와 함께 열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시대는 회개를 통해 얻을수 있는 것임을 베드로의 메시지는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 핵심

3:1-10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치유한 것은 구약에 예언된바 메시아 시대에 임할 축복의 성취였다.

사도 요한(3:1)

세베대의 아들이자 사도 야고보의 동생이다(마 4:21). 어부였던 그는 본래 세례요한의 제자였으나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듣고서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요 1:35). 성격이 급했던 그는 “보아너게”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막 3:17) 주의 일에도 뜨거운 열성을 보였다. 시몬 베드로, 형 야고보와 더불어 주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그는(마 17:1) 요한복음과 요한 일,이,삼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때 밧모 섬으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난 후에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 묵상

초대 교인들의 정해진 기도생활 ( 3:1 )

당시 유대인들은 3시(오전 9시), 6시(정오), 9시(오후 3시)로 시간을 정하여 하루 세번씩 규칙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규칙적이고 성실한 신앙생활은 우리를 점점 성숙하고 능력있는 신앙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치유받은 앉은뱅이 ( 3:2-16 )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간때도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성전미문에 있던 앉은뱅이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게 했습니다. 베드로의 치유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의 능력은 사람이 감당치 못합니다. 이때 치유받은 앉은뱅이는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앉은뱅이는 배후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보다 도구로 사용된 인간 베드로에게 더 감사할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증거한 것과 그 사실을 믿은 앉은뱅이의 믿음이 합치되었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능력의 과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데 만족했습니다. 이처럼 치유의 목적은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돌리는데 있습니다.

‘나 같은 선지자 하나’ ( 3:18-22 )

본문 22절의 ‘나’는 모세를 가리키고 ‘나 같은 선지자’는 백성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집에서 충성했습니다(히3:5). 그러나 모세와 같은 선지자(신18:18)로 오신 예수는 그의 집 맡으신 아들로 충성했습니다.

유쾌하게 되는 날 ( 3:19 )

유쾌한 날이 되기위해서는 회개하고 돌이켜 죄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도 볼수 있듯이 인간의 비참함은 회개하지 않는데서 비롯됩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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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오순절의 성령강림 2:1-4

여기서는 성령강림을 설명해 주고 있다.

1. 성령강림의 시간과 장소(1)

(1) 그것은 오순절날이 이미 이른 때였다.

첫째, 성령은 종교적인 축제때에 임하였는데 그것은 군중들이 이스라엘 각지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으므로 이 일을 사방에 퍼져나가게 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이 유대인의 명절은 지난 유월절과 같이 복음전파에 기여하였다.

둘째, 이 오순절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켜졌다. 그러므로 성령이 불의 혀같이 이 명절에 임하게 된 것은 한민족에게 뿐만아니라 온세계에 복음이 전파된다는 의미에서 적절한 것이다.

셋째, 이 오순절은 일주일의 첫날, 즉 일요일이었다. 그것은 그날을 기독교의 안식일로써 확고하게 해주었고, 그날에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고 성령이 강림하셨다는 두가지 위대한 축복을 교회가 영원히 기억하게 하였다. 매주일은 그날에 대한 기도와 찬양속에서 완전하고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지켜져야 한다.

(2) 그것은 '저희가 다같이 한곳에 모였던 때' 였다.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예루살렘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곳은 하나님이 선택한 곳이요, 거기서부터 주의 말씀이 전파되리라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시고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따라서 이제 여기서 그들을 만나시고 축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이 명예를 주셨고 지역간에 불화하지 말것을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그것은 하나님은 모든 곳에 남은 자를 두시며 예루살렘에도 남은 자를 두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들은 한마음으로 모여있었다. 당시 그들은 평상시보다 더욱 연합하여 기도하였고(1:14), 이것은 더욱 서로를 사랑하게 해주었다. 이리하여 주님은 그의 은총으로 그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도록 예비하셨다. 비둘기같은 성령은 시끄럽고 소란한 곳으로 오시지 않고 파도치는 수면이 아닌 잔잔한 수면으로 오신다. 우리도 높은 곳에서 임해 오시는 성령을 체험하고자 하는가? 우리 모두 한마음이 되어 서로서로 사랑하자.

2.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신 방법(2,3)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가끔 구름속에 임재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러나 성령은 구름을 타고 내려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령은 인간의 마음을 덮고있는 구름을 흩어버리기 때문이다.

(1) 본문에서는 그들에게 기대감을 일으키게 하는 바람 소리가 있었다고 한다(2절). 그것은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하게 임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빨리왔으며 함께 기다려왔던 사람들조차 놀라게 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들려온 소리였다. 그것은 바람소리였는데 그 이유는 성령의 역사는 바람과 같기 때문이다(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그것은 휘몰아치는 강한 바람이었다. 그것은 강하고 격렬하였으며 마치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릴듯이 놀라운 위력을 가지고 임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위력있는 영향력과 작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방뿐만이 아니라 저희 앉은 온집에 가득하였다. 그 집을 가득 채운 이 바람은 제자들에게 경외감을 주었을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매우 숙연한 분위기에서 성령을 받도록 도왔을 것이다. 따라서 성령에 대한 확신이 위로받는 길이 된다. 그 축복받은 바람의 거친 일격은 인간의 영혼이 부드럽고 순한 미풍을 받을수 있게 준비시킨다.

(2) 본문에는 눈으로 볼수 있는 표적으로 은사가 내린다. 그들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3절). 그리고 그것은 각자에게 임하여 있었다. 자연주의자들은 유성을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이 아닌 부드러운 불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었다.

1) 제자들 자신이 신앙을 확고하게 하기위하여 외적이며 감지할수 있는 표적이 있었다.

2) 그 표적은 불이었다. 이것은 세례요한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그가 불과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줄 것이라고 한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그때 그들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율법이 불길속에서 주어줬던 것과 마찬가지로 복음도 그러했다. 성령은 불과 같아서 마음을 녹이고, 불순물을 태워버리고 영혼속에 경건함과 헌신적인 사랑을 일깨워준다. 그리스도는 이 불을 세상에 보내기 위해 오신 것이다.

3) 이 불은 갈라진 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성령의 역사는 여러 모양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 표적에 관련되는 것은 그중에서도 특히 방언의 은사라고 말할수 있다. 그것들은 혀의 모습이었다. 그리스도는 성령에 의하여 세상에 말씀하시고자 하셨으므로 제자들에게 그들이 아는바를 세상에 공포할수 있는 능력을 가질수 있도록 이 성령을 보내셨다. 이 혀들은 갈라졌다. 이 혀들은 나누어져 있었으나 그들은 여전히 하나였다. 표현은 다양하더라도 진실한 사랑의 일치는 가능하다.

4) 이 불은 성령이 그들과 함께 상주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들가운데 머물렀다. 우리가 추측할수 있는 것처럼 표적이 곧 사라진다해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언제나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

3. 성령강림의 직접적인 효과(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4절). 그들은 성령의 은총으로 충만해 있었고 그 성화하시는 능력아래에서 전보다 더욱더 충만하여졌다. 그들은 성령의 위로를 충만하게 받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속에서 전보다 더욱더 기뻐하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성령의 은사도 충만하였다. 그들은 복음의 확장을 위한 기적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열두 사도뿐만이 아니라 120명의 제자들이 거의 동시에 성령충만하게 된 것이 확실하다. 이 사람들은 1,2절에 함께있었던 사람 모두를 언급한다. 그들은 그들의 모국어외에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상어로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들을 이끄시는대로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고 그의 이름을 찬양하였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까지도 이해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전의 생각이나 명상으로 말했던 것이 아니라 성령이 그들을 이끄시는대로 말했다. 성령은 그들에게 방언과 마찬가지로 할일도 알려주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일들이었다.

(1) 놀라운 기적 : 그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난 기적이었다. 왜냐하면 마음속에서 언어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언어들을 배운적도 전혀 없었고, 들어본적도 전혀 없었다. 그들은 학자나 여행자도 아니었다. 사실 베드로는 모국어로 사람들 앞에 나와서 이야기할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연설자가 아니었다. 인간의 입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 입들을 새롭게 만드셨다.

(2) 매우 합당하고 유용하고 요긴한 기적 : 제자들이 사용했던 언어는 히브리어의 방언인 시리아어였다. 이러한 그들에게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을 사명이 주어졌다. 그러나 여기에서 시작부터 극복할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그들이 각 민족에게 권위있게 설교할수 있게 하기위해 그들에게 각 민족의 말로 설교할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다. 모든 것을 생각해 볼때, 이것은 그리스도가 행하신 치유의 기적보다 더위대한 일로 평가될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첫결과였다.

 

Ⅱ. 예루살렘에 운집한 군중들의 여러가지 생각 2:5-13

여기서는 이 특별한 은사에 대한 군중들의 주목을 설명하고 있다.

1. 예루살렘에 운집한 군중(5,6)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5절). 이것은 당시 알려져있던 지역에서는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1) 여기서 그 사람들이 떠나온 나라들이 어디인가를 알수 있는데(9-11절)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거주자와 같은 동방으로부터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유대가 기록되어 있다. 다음에 가바도기아와 본도의 주민들이 나오는데 그 나라는 특별히 아시아라고 불리워진다. 다음으로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에 사는 사람들이 언급되는데 그 나라는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역시 로마에서 온 여행자였다. 그리고 이집트 남부지방, 그레네 근방의 리비아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그레데 섬에서 온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막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원래 유대인이었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당시의 유대인 저술가들은 유대인에 대하여 말하기를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로서 유대인이 섞여 살지않는 민족은 없다고 하였다.

(2) 모든 유대인과 개종자들이 이때에 예루살렘에 모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거기에 기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메시야가 나타나리라는 기대가 퍼져있었다. 그래서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살고 있었다.

2. 타국인들이 놀라와 함(7-12)

타국인들은 제자들이 그들의 언어를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1) 그들은 제자들이 모두 갈릴리인들이며 그 모국어 밖에는 어떤 다른 방언도 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7절). 하나님은 지혜있고 권세있는 자들을 깨뜨리기 위하여 세상의 약하고 어리석은 자를 택하신다.

(2) 그들은 제자들이 유창하고 완벽하게 말하고 있음을 알았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되는 것이 어찜이뇨(8절).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11절). 그들에게 있어서 자기의 모국어를 듣는다는 것은 기쁘고 놀라운 일이었다.

첫째, 사도들의 강론을 통해 그들이 들은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업적, 곧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대한 것이었다. 아마도 사도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 그리고 복음의 은총에 대하여 이야기했을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이다.

둘째, 그들은 사도들이 이러한 위대한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것에 관하여 사람들을 그들의 언어로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그들은 사도들이 유대어로 말한다해도 이해할수 있을만큼 유대어를 습득하고 있었을 것이므로 사도들의 방언은 더욱 기이한 사건이었으며 또한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동시에 그것은 친근감을 주었고 그들의 호의를 얻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각 민족의 말로 성경이 읽혀지고 공중예배가 집행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대한 분명한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3) 그들은 그것을 보고 놀랐다. 다 놀라며(12절). 그들은 이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심하였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묻고 또 서로서로 물었다. "이 어쩐 일이냐?" 그들은 가시덤불 곁에 섰던 모세처럼 옆에 서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3. 유대인들의 조롱(13)

이 일을 비웃었던 사람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었던것 같다. 그들은 저희가 명절때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새 술에 취하였다고 하였다(13절). 그들 본토 유대인들은 그 말들이 실제 다른 나라의 말이라는 것을 몰랐고 따라서 방언을 술취한 사람의 술주정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집의 주인인 주님을 술주정꾼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의 식솔인 제자들을 술주정꾼이라고 부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Ⅲ. 예루살렘에서 행한 베드로의 설교 2:14-36

본문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유대인들 곧 그 조롱했던 자들에게 즉석에서 행했던 설교를 통해 성령의 첫열매를 보게된다. 그는 그들이 취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15절). 베드로의 설교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3천명이 그날에 회개했는데 베드로의 설교만 기록되어 있다. 전에는 겁에 질려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그가 이제는 용감하게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1. 서론(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14절). 그들은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그들을 비웃는 유대인들 앞에 당당히 서서 말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역자들 중에서 더 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창과 검으로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가르치도록 부름받는다. 베드로는 자기가 말한바를 아주 확신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혔다. 그는 유대인들과 특히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일을 너희로 알게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했다.

2. 그들의 불경스런 증상에 대한 답변(15)

너희의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15절). 이제 방언으로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양식있게 말하고 있으며 그들이 이야기하는바가 무엇인지도 알고있었다. "때가 제 3시이니 너희는 그들이 취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제 3시는 우리 시간으로 아침 9시를 이르는데 안식일이나 거룩한 축제일에 유대인들은 이 시간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3. 놀라운 성령강림에 대한 설명(16-36)

그는 이것을 두가지로 해석한다. 즉 말씀의 성취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결과이다.

(1) 그것은 구약성경의 예언의 성취이다. 그는 요엘서 2:28절을 자세히 말하고 있다. 비록 성령으로 충만하였지만 그는 성경을 무시하거나 자신을 성경위에 두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결코 성경을 떠나지 않았다.

1) 베드로가 인용한 본문(17-21절) : 여기서 말세, 즉 복음의 때에 대하여 언급되고 있다. 이 복음의 때가 말세로 불리우는 이유는 이때에 복음에 의하여 인간가운데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지며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의 마지막 섭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날은 예언되었고 약속되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날을 대망하여 놀라지 말라. 그날을 기다리며 영접하라"는 뜻이다. 이 사도는 본문 전체를 인용하고 있는데 온전한 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여기서 예언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① 하늘로부터 오는 성령의 은사가 전에 없이 풍성하고 광범위해지리라는 것이다. 이제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모든 육체에게,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부어질 것이다. 유대학자들은 성령은 현자와 부자 그리고 이스라엘의 자손이 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규정에 제한받지 않으신다.

② 성령은 그들속에서 예언의 성령이 되리라는 것이다. 이 능력은 성의 구별없이 주어져서 아들이나 딸이나 모두 예언하게 된다. 또한 나이의 구별없이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18절). 즉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그의 남종과 여종으로 부르신다. 딸(17절)과 여종(18절)에 대한 언급은 남자와 똑같이 특별한 성령의 은사를 받았던 여성들을 생각하게 한다(1:14).

③ 그들이 예언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유대나라에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은총의 능력에 굴복하지 않는 자들은 복수를 당하게될 것이다. 그리하여 굴복하지 않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후 4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파괴가 여기서는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로 불리워진다. 그와 같은 황폐는 전에도 이후에도, 어느 곳, 어느 나라에서도 없었다. 그것은 주님의 날이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백성들에게 복수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어도 심판의 날이었으며 영화로운 날이었다. 유대인의 멸망은 곧 기독교인의 구원이었다.

둘째, 가공할만한 파멸의 전조가 예언되고 있다.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20절).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사 서문'에서 전쟁의 전조들, 즉 무서운 천둥과 번개와 지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불타는 혜성이 일년간이나 그 도시의 하늘에 떠있어서 새빨간 검이 도시를 가리키고 있는것 같았다고 한다. 불과 연기는 문자 그대로 도시와 마을, 회당, 그리고 마침내는 성전까지 불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셋째, 주의 백성은 특별히 보호될 것이라는 것이 약속되어 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1절). 로마의 공격으로 폐허가 될때 기독교인들은 한사람도 다치지 않았다. 구원받은 남은 자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주의 이름을 부른다. 그들의 강한 성은 그들이 부르는 주님의 이름인 것이다.

2) 이 예언을 당시의 사건에 적용시킴 :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16절). 이것은 곧 모든 육체에 오리라던 성령의 역사이며 우리는 다른 것은 기다려서는 안된다. 이 은총의 성령, 곧 옹호자 혹은 위로자는 약속에 따라 주어졌으며 동일한 약속에 따라 땅끝까지 교회와 더불어 계속될 것이다.

(2) 그것은 그리스도의 선물이었다. 베드로는 이 성령의 은사로부터 예수에 대한 설교로 나아갔다.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22절).

1) 22절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요약한 것이다. 베드로는 그를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고 있다.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가운데 베푸사 너희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는 인간에게 비난받고 정죄당한 분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증거하신 분임이 틀림없다. 그는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분이었다. 너희 자신이 그가 어떻게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는지를 증거해주는 증인이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들은 바로 하나님이 그를 통해 하신 일이며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런 능력을 행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기적중에서 베드로가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가를 보라. 기적이 일어난 사실 자체는 부정될 수가 없다. 이런 일들은 너희 자신이 아는바대로 너희 가운데서 일어났다. 너희들은 그의 기적의 목격자이다. 거기서 얻어지는 결론은 논쟁할 여지가 없다. 분명히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의 구세주라고 선포하심으로써 그를 증거하셨다.

2) 그의 죽음과 고난에 대해 설명한다. 이것은 가장 위대한 기적이었다. 곧 하나님의 증거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것처럼 보였으며, 또한 사람들 가운데서 인정된 사람이 바로 그들에게 버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난과 죽음, 이 두가지 신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23절). 먼저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써 놀라운 은총의 행위이며 지혜로운 행위였다. 하나님은 그를 죽음에 내어주셨다. 그러나 어떠한 것도 하나님을 비난할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예지로써 행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십자가를 받아들이게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아버지 당신의 뜻대로 되어지이다' 또한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들이 행한 일로써 몹시 죄악스럽고 어리석은 행위였다. 그것은 그들의 도덕적 타락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행위였으며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사악한 손으로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이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그때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외쳤던 사람들도 섞여있을지 모른다. 베드로는 그들의 믿음과 회개를 더욱 효과적으로 촉구하기 위하여 특별히 그들에게 십자가 사건의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3) 부활에 대해서 증거한다(24절). 그를 죽음에 내어놓으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그를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셨다.

① 베드로는 그의 부활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있을수 없었음이라(24절). 그가 죽으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을때 이러한 영혼의 고통과 슬픔에서 아버지는 그를 풀어주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육체가 부활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빛으로 인하여 갇히시고 죽음의 속박을 받게되셨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속에 생명을 갖고 죽음의 왕을 정복했기 때문에 죽음의 세력에 억류당하지 않는다.

② 베드로는 그의 부활의 진리를 증거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32절). 그들이 성령의 강림을 통해 권능을 받은 것은 그들로 하여금 유능하고 신실하며 용기있는 증인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③ 베드로는 그것이 성경말씀의 성취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윗이 말한대로 그는 죽음과 무덤에 사로잡혀 있을수 없었던 것이다. 베드로는 구약 본문을 자세히 인용하였다(25-28절).

㉠ 우리 주 예수는 모든 것을 그의 아버지께 돌렸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25절). 그는 그의 고난이 하나님의 영광에 상당히 기여함을 아셨기때문에 그 자신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의 목표로써 두었다.

㉡ 그는 아버지의 현존과 능력을 확신했다. 나로 동요치않게 하기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25절). 하나님이 우리의 우편에 계시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 우리 주 예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그의 사역을 수행하셨다.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25,26절). 그의 사역의 결과를 바라보는 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 변함없는 기쁨이 되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그 계획에 부응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그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 그의 고난과 죽음은 행복한 결과를 낳는다.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않게 하실 것임이로다(26,27절). 그의 소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혼과 육체가 계속 분리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27절).

둘째, 육체가 무덤속에 있게 되는 것은 잠시동안뿐이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않게 하실 것임이로다(27절). 그는 죽어야만 하지만 결코 썩음을 당하지는 않는다.

셋째, 그의 고난과 죽음은 축복받은 영원불멸로 들어가는 입구가 될 것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그로하여금 이 길을 세상에 알리고 이 길을 열게하셨다.

넷째, 그의 모든 슬픔과 고난은 완전한 복락안에서 끝나게 될 것이다.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그의 앞에 놓인 대가는 하나님의 지지로 인한 기쁨, 곧 충만한 기쁨이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기쁨이요,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맛보게 될 기쁨인 것이다. 그안에서 그들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 이제 베드로가 이상의 본문에 대해 주석한 것을 보자. 그는 인간과 형제라는 제목으로 그들에게 설교했다.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수 있노니(29절). 여기에서 다윗은 그 자신에 관하여가 아니라 단지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 자신에 대하여 말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이 썩음을 당치 않으리라고 한것이 아니다. 그가 썩음을 당했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확실히 한 예언자로서 메시야를 염두에 두고 말했던 것이다. 다윗은 그의 후손중에서 메시야가 태어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중에서 한사람을 그 위(位)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30절). 우리 주 예수께서 탄생하실때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눅 1:32). 성령에 따라 그리고 그의 신성에 의해 그는 다윗의 아들이 아니라 다윗의 주가 되셨다. '그의 영혼이 분리되지 않겠고 그의 육체가 썩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다윗의 말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31절).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성경에 기록된대로 다시 사셨으니 '우리가 이 모든 일에 증인이 되라.' 본문에는 그의 승천에 관해서도 약간 언급되어 있다. 다윗은 죽었다가 부활하지도 않았고 하늘에 올라가지도 못하였다(34절). 베드로는 더나아가 다른 시편을 인용하면서 다윗이 다른 사람 즉 그의 주가 되신 다른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시 110:1).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35절).

4) 이 과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시킨다.

① 이것은 그 당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주는 의미를 설명해 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어떤 일이냐'하고 물었다(12절).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3절). 성령의 은사는 이미 성취된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이것은 모든 남은자에게 주신 약속이다. 나아가 여기에는 거룩한 사랑이 언약되어 있다.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것은 단지 위대한 일의 전조에 불과하다."

② 이것은 예수께서 참메시야이며 구세주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이것으로 베드로는 설교를 끝낸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받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36절). 사도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그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되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 17:9). 그러나 이제는 그 사실을 선포해야만 한다. 그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가능성있는 것이 아니라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그들로 그것을 확실히 알게하라.

첫째, 하나님은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히던 바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셨다. 하나님이 그를 영화롭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가했던 경멸은 오히려 그의 영광을 빛내주었다.

둘째, 하나님은 그를 주와 그리스도로 삼기까지 영화롭게 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혔던 바로 그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이것이 복음의 위대한 진리이다.

 

Ⅳ. 베드로가 한 설교의 효과 2:37-41

우리는 지금까지 성령이 복음전도자들에게 미친 놀라운 역사를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성령이 복음을 듣는 이들에게 내리신 축복된 성령의 열매를 살펴볼 것이다. 이 신성한 메시지가 처음으로 전파되자 이 메시지속에는 신의 능력이 들어있는것 같았다. 본문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려고 모여들었던 사람들로 풍성히 거두어들인 첫열매들을 보게된다.

1. 그들의 질문(37)

그들은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37절). 그들은 설교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마음이 완고한 자들에게 이런 갑작스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을 그들의 사악한 손에 책임지웠고 그것은 그들을 격분케할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도 명백하고 성경에 기초를 둔 설교를 들었을때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1) 그 설교는 그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저희가 … 마음에 찔려(37절). 베드로는 그들의 양심을 일깨웠고 그들의 마음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죄인들은 그들의 눈이 열릴때 죄로인하여 마음이 찔릴수밖에 없다.

(2) 그 설교는 그들에게 의문을 던져주었다.

1) 그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질문을 털어놓았다. 사도들로부터 그들은 확신을 얻고 따라서 그들로부터 조언받고 위로받기를 바랐다. 그들은 베드로가 그들을 불렀던대로 사도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른다(29절). 그것은 우정과 사랑의 표현이다. 목회자는 영적인 의사이다. 그리고 타인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처럼 생각하는 목회자들과 마치 형제와 같이 자유롭고 친밀하게 지내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2) 그들은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물었다.

첫째, 그들은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르는 입장에 선 사람처럼 말했다. 우리가 못박았던 그 예수가 주이시며 그리스도이신가? 그렇다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우리는 어떻게 될까? 자비를 구하는 것외엔 아무 도리가 없다. 우리가 영원히 죽게될 위험에 빠져있음을 깨닫게 되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영원히 살 소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그들은 자기들에게 제시된 것은 무엇이나 즉시 행할수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죄를 깨닫게된 사람들은 평화와 용서에 이르는 길을 기꺼이 알고자 한다.

2. 베드로의 답변(38,39)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그들에게 그들이 꼭 해야할 것을 간단하게 지시했다(38,39절). 확신을 얻은 죄인들은 용기를 내야만 한다. 그들의 경우가 비록 비극적이긴 하지만 절망적인 것은 아니며 그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1) 본문에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들이 해야할 과정을 설명한다. 회개하여(38절). 이것은 배가 난파한후에 널빤지를 얻는 것과 같다. 이것은 세례요한과 그리스도께서 가르쳤던 것과 똑같은 의무였으며, "회개하라, 회개하라, 너희 마음과 너희 길을 돌이키라"고 지금도 외쳐지고 있다.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38절).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굳게 믿고, 공개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며, 불신앙을 버려라."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예수의 이름을 믿고 그가 선조들에게 약속되었던 그리스도이며 메시야라는 것을 믿으라. 그들은 사죄함을 받기위해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만 한다. 이 말씀은 그들 개개인에게 부과되었다. 너희가 아무리 큰죄를 지은 죄인이라 하더라도 회개하고 믿으면 세례를 받을수 있다.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은총은 충분하며 너희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 은총은 각자에게 알맞게 주어질 것이다.

(2) 베드로는 그들에게 결단할 용기를 준다.

1) 죄사함을 얻으라(38절). 너희 죄를 고백하라. 그러면 너희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세례를 받으라. 그러면 진리안에서 너희가 의롭다 여김을 받을 것이다. 이것을 목적하라. 그리고 그리스도께 그것을 구하면 너희는 그것을 얻을 것이다.

2)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38절). 누구든지 죄사함을 얻은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게된다.

3) 너희 자녀들도 계약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죄사함과 성령을 선물로 주겠다는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39절).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내 자녀들은 어떻게 되는가? 버림을 받겠는가? 우리와 함께 구원을 받게 되는가?"하고 질문하는 것이 당연하다. "구원을 받는다"고 베드로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 약속은 지금부터 영원히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4) "그 약속은 지금은 너희 자녀에게만 미치지만 너희와 너희 자녀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 축복은 모든 먼데 사람들을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이 보편성에 한가지 제한이 덧붙여져야 되는데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각국의 개개인들에게만 축복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부르심을 먼데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치게 하실수 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3. 주의 사항(40)

이러한 가르침에는 유용한 경고가 뒤따른다. 여러말로 확증하며(40절). 그는 많은 내용을 간결하게 말했지만(38,39절), 아직도 하고싶은 말이 많았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유익한 말씀을 들었을때는 간절하게 더듣고자 한다.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 그는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였다. 너희 자신을 멸망에서 구하기 위해 힘쓰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와 함께 죄가운데 있던 자들이 멸망할때 너희는 그들과 같이 되지않으리라.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죄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지말라. 이 패역한 세대에서 너희를 구하라. 그들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들이 받을 재앙을 피하라. 사악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는 것은 그들로부터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들이 우리를 몰아세운다면 격류에 떠내려가는 위험보다는 격류를 거슬러 헤엄치는 고통이 더낫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친 사람들은 사악한 자들과의 사회적 관계를 끊어버림으로써 자신들의 성실성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4. 설교의 결과(41)

그것은 상당한 성공이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임재하였고 그로인하여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목격한 자들이었으나 말씀의 가르침을 듣고 변화되었다. 그들은 말씀을 받아들였다.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이고 환영하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그들은 기쁘게 말씀을 받아들였다. 헤롯은 말씀을 기쁘게 듣기만 했으나 이들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설립하신 거룩한 예식에 참여함으로써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제자중에 들게 되었다. 기독교인의 계약을 받아들인 사람은 기독교인의 세례도 받아들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였다.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은 모두 입으로는 말씀을 가르치고 손으로는 세례를 주었다. 왜냐하면 곡식을 거두기위해 너무 바쁠때였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삼천명을 회개시킨 것은 떡 몇조각으로 사오천명을 먹인 것보다 더위대한 일이었다. 삼천명이 그들에게 더해졌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일때 그의 백성을 우리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Ⅴ. 초대교회 교인들의 경건과 사랑 2:42-47

이 절에서 우리는 초대교회의 역사,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이나 가장 순결무구한 모습의 교회를 보게된다.

1. 성례의 준수

그들은 거룩한 성례를 지켰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기위해 지정하시고 약속하신 모든 방법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해야 한다.

(1)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계속 열심히 참가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 자기의 이름을 그리스도에게 드린 사람은 그의 말씀을 경청해야만 한다.

(2) 그들은 성도의 교제를 계속하였다. 서로 교제하며(42절)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46절). 그들은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다. 제자가 한사람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동류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음을 볼수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였는지 살펴보자. 그들은 예배를 통하여 친교를 나누었다. 그들은 성전에서 만났다. 거기서 그들의 집회를 가졌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연합은 우리가 서로서로 나눌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 성전에 있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우리의 일과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모였다. 그들은 서로 불화하지 않았으며 그들 사이에는 거룩한 사랑만이 있었다.

(3) 그들은 자주 모여서 성만찬을 거행했다. 떡을 떼며(43절). 그들은 집집마다 돌아가며 떡을 떼었다. 그들은 가정집에서 그 예식을 집행하였다. 이와같이 그들은 작은 회당 혹은 가정 교회를 순방하였고 거기서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모인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성찬식을 행하였다.

(4) 그들은 계속 기도하였다. 성령이 임재한후에도 그들은 그전처럼 계속 기도했다. 왜냐하면 기도가 영원한 찬양속에 흡수되기까지는 아무것도 기도를 대치할수 없기 때문이다.

(5) 그들은 감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즉 날마다 하나님을 찬미하였다(47절). 이것은 기도에 있어 필수적인 내용이며 결코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2. 성도의 교제

그들은 거룩한 예식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연합하였다.

(1) 그들은 기독교인의 교제를 위해 자주 만났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있어(44절). 그들은 함께 모여서 그들 상호간의 사랑을 표현하고 증대시켰다.

(2)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또한 서로 구하기만 하면 기꺼이 돕고자 했다. 그들은 형제애의 원리에 따라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

(3) 그들은 아주 명랑했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46절). 그들은 인간의 식탁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식탁이 주는 위로를 받았다. 그것은 그들에게 기쁨을 주었고 그들의 마음을 거룩한 즐거움으로 가득차게 하였다. 그리스도인만큼 기쁨을 누릴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기쁜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공동식사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웃에게 관대하게 대하도록 해주었다. 그들은 순전한 마음 즉 관대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은 한조각이라도 혼자 먹지않고 가난한 사람을 식사에 초대하였다. 이와같이 기독교인들은 마음을 열어놓아야 하며 인색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4) 그들은 자선기금을 모았다(45절). 그들은 재산과 소요를 팔아 각사람의 필요를 따라 형제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것은 재산을 없앤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을 없앤 것이었다. 이를통해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부자의 신실함을 시험해 보기위해 '너의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고 하신 명령의 의미를 알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계속적인 구속력을 갖는 법률을 만들기위한 선례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경우는 특수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네 임의로 할수가 없더냐'(5:4)하고 말한바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그들은 이것을 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나 형제들에 대한 사랑,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 기독교를 발전시키려는 열정, 유아상태에 있는 교회에 대한 보살핌 등은 존경할만한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대로 봉헌하면 된다.

3. 기적과 표적

하나님은 그들을 소유하시고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표적을 보이셨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43절). 그러나 그들에게 기적을 행할 힘을 주셨던 것이 주께서 그들에게 행하셨던 일의 전부는 아니었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47절). 그들의 입속에 있는 말씀이 기적을 행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노력을 축복하셨다.

4. 결과

사람들은 그것으로 감화를 받았다. 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하였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43절). 그들은 참으로 존경받을만한 풍부한 영적은사를 받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들을 마음으로 숭배하였다. 사람마다 그들의 경외스러운 가르침과 삶을 보고 감화를 받았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호의를 가졌다. 그들을 경멸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그들에게 친절했다. 그들은 온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 본문에서 그들이 온백성의 칭송을 받은 것으로 볼때,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것은 제사장들의 술책에 의해 강요된 것임을 알수 있다. 이제 이사람들은 본래의 마음과 정신으로 되돌아왔다. 꾸밈없는 경건과 자애는 존경을 받을 것이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불신자들에게 모범이 될 것이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 앞에서 거꾸러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왔으며 그들은 틀림없이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 해설

오순절의 성경강림 ( 2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한자리에 모였던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를 들으며 마음이 찔려 통회하는 심령들을 하나님은 받으셨습니다. 회개와 세례를 경험한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도와 삶을 통한 아름다운 헌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1. 오순절

1)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

오순절은 유월절 다음에 오는 안식일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오순절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날은 또한 '맥추절', '칠칠절', 혹은 '맥추의 초실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날은 세계의 각처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세가지 연중 대절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많은 순례자들이 오순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몰려든 것입니다.

a.오순절(출23:16)

2) 성령의 강림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모인 곳은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누가는 그들이 한곳에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집에 모였을때 바람과 불이 임했습니다. 여기에서 바람과 불은 성령의 권능의 상징들입니다. 세례요한은 그것을 장차 오실이의 사역으로 예언했었습니다. 그 예언이 지금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지상사역을 완성하신 '장차 오실 그이'께서 자기 백성들을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a.강한 바람(욥38:1)

b.불 세례(마3:11)

3) 난 곳 방언으로

그 첫번째 효과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큰무리들이 매우 놀라 기이히 여겼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난 곳 방언으로' 듣게됨을 신기해 하였습니다. 방언의 역사가 최초의 기독교 오순절에 띤 형태는 분명히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언을 들은 사람들은 각각 출신 지역의 언어임을 식별했으며, 그말의 내용을 즉시 이해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말로 말한 주제는 하나님의 큰 일들이었습니다.

a.방언(막16:17)

b.하나님을 찬양함(눅2:13)

 

2. 베드로의 설교

1) 요엘의 예언 성취

베드로의 설교는 기본적으로 예수님은 메시야이시며 구주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와 동료들이 술에 취했다는 비방을 가볍게 일축한뒤, 말세에 모든 육체에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겠다는 예언을 상기시키고, 지금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그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요엘서를 인용하는 중에 '그후에'라는 불분명한 표현을 '말세에'로 대치합니다. 그말의 자연스런 의미는 말세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신약성경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간의 전기간을 말세라고 합니다. 당시의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은 베드로가 인용하는 요엘서의 하늘과 땅의 징조들을 쉽게 간과해 버릴수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초림으로 시작해 놓으신 일들을 재림하실때 완성하실 것입니다. 모든 육체에 부어질 성령은 그때부터 성취되기 시작하여 지금도 계속해서 완성을 향해 가고있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성령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나이와 성별과 계층간의 구별이 없는 시대입니다.

a.말세(딤후3:1)

b.그리스도의 재림(마24:30)

2) 증인의 고백

베드로는 예수님의 기적들은 예수님 자신을 그들에게 증거하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말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대략적으로는 알고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자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뵈었던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활 사건은 예수님이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다윗의 증거를 들어서, 다윗의 말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예언의 영으로 장차오실 메시야를 가리켜 한 말이며, 이분이 바로 예수님의 경우에 적용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또한 다윗이 '내 주'라고 부르면서, 그분이 자기의 원수를 발아래 복종시킬때까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라는 초대를 받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을뿐 아니라 지극히 높은 위치로 올라가셨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영광의 자리에서 이제 자기의 영을 보내셨고, 성령의 오심은 그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이 사실을 회개하고 믿을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a.부활의 근거와 약속(시16:10)

b.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심(엡1:20)

 

3. 새로운 공동체

1) 회개와 세례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의 마음이 찔렸습니다. 이는 베드로의 새로운 시각에서 예수님의 잡힘과 고난, 그리고 죽음의 진술을 들은후 였습니다. 그들은 메시야를 죽였던 것입니다. 적어도 메시야를 죽게 동조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눌린 무리에게 베드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사함과 성령을 받게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날 많은 사람들은 베드로의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3천명이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아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a.회개(눅24:47)

2) 공동체의 삶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 즉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이 교회는 성령과 사귐을 갖는 새시대의 공동체가 되기위해서 메시야와 함께죽고 함께사는 부활의 생명으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식사와 기도로 교제했고, 재산을 함께 통용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증언했으며 큰권능과 기사와 표적이 사도들과 다른 지도자들에 의해 행해졌습니다.

a.기사와 표적(막16:20)

 

결론

새로운 공동체는 매일 성전에 모였습니다. 거기에는 기쁨이 있었고 그들의 교제는 풍성했습니다. 온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던 것입니다. 누가는 이 공동체가 보였던 결과에 대해서, '매일 구원받는 사람이 더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성의 강조는 지금 현대교회에게 요청됩니다.

 

# 핵심

2:1-13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결과, 제자들은 성령충만하여 본격적으로 복음증거에 나섰다.

 

# 묵상

오순절의 성령강림 ( 2:3-13 )

바람소리와 같은 것과 더불어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즉 성령이 사람들에게 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불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상징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여러곳에서 하나님이 불과 함께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볼수 있습니다(출3:2; 13:21; 19:18; 왕하1:9-12; 2:11; 6:17). 또한 이때 성령충만의 증거로 받은 은사는 방언입니다. 방언은 교만한 백성의 언어를 혼란시킨 것(창11:1-9)과 달리 성령안에서 하나가 되게하는 것으로, 성령을 통해 주어진 은혜의 선물이며, 복음이 온세계로 전파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방언을 들었던 사람들은 다 놀라며 의혹하여 그 제자들이 새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했습니다.

말세의 현상 ( 2:17-20 )

하나님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실 것입니다.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게 됩니다. 땅에는 피와 불과 연기가 차고,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그날’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맞이할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구원의 필수조건 ( 2:21 )

주의 이름을 불러야합니다. 그러나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해서 모두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만 구원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 ( 2:37-42 )

베드로의 설교에서 구원의 방법이 소개됩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복음을 들으면서 믿음이 생기고 설교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렸습니다. 설교를 듣는 순간 십자가의 사건이 나를 위한 사건이요,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발견했습니다. 둘째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마음과 행동의 변화를 말합니다. 이는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고 죄를 뉘우치고 의로우신 하나님만을 알고자하는 마음으로 가득참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접입니다. 구원의 약속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세례를 받아야합니다. 그래야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성령을 받는 방법 ( 2:38, 39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 받아야합니다. 참된 회개를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성령의 선물은 제한없이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이 받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족속이 다 구원얻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 ( 2:42-47 )

지도자에게 말씀을 배웠고, 형제끼리 서로 친목했으며, 항상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성전에 열심히 모여 함께 떡을 떼었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또한 백성들의 칭찬을 받았고, 성도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었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교회에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십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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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 1:1-5

1. 데오빌로(1,2)

먼저 누가복음에 나오는 데오빌로를 상기하고 우리가 그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 본서를 읽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누가가 본서를 헌정한 그의 후원자는 데오빌로이다(1절). 성경에서 특정한 이름이 불리어질 때 그 이름에 대해 우리는 마치 우리 각자의 이름이 불리어지는 것처럼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2) 여기서 누가의 복음서는 '그가 먼저 쓴 글'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그는 '먼저 쓴 글'에 이어 이제 영감을 받아 본서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완전히 행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며, 또한 지난날에 수고했다고해서 앞으로 더많은 수고는 하지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누가는 먼저 쓴 글을 기초로하여 본서를 저술하려고 한다. 새로운 설교와 새로운 책들로인해 옛 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보완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3) 누가가 쓴 복음서의 내용은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기를 시작하셨던 모든 것'이다.

1) 그리스도는 행하시면서 가르치셨다. 행하면서 가르치는 자들은 가장 훌륭한 사역자들이라고 볼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삶 자체가 진실한 설교가 되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는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다. 그는 기초를 쌓으셨다.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그가 시작하신 것을 수행하고 지속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그 일에 종사하도록 하셨으며, 또한 그것을 계속 행할 것을 그들에게 일임하셨지만, 또한 성령을 보내사 그들에게 권능을 베풀어 주셨다.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 자신이 시작하셨던 복음사업을 전력을 다해 수행하는 자들에게 위로가 된다.

3) 네 복음서 기자들, 특히 누가는 예수께서 행하시면서 가르치시기 시작하신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비록 모든 것을 세세하게 전한 것이 아닌 중요한 것만 전해 주었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나머지 부분을 미루어 판단할수 있다.

(4) 누가복음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날'에서 종결짓고 있다(2절). 따라서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후 복음서에서는 그의 육체적 현존을 더이상 볼수 없게 되었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3)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주장하며 입증하고 있다(3절). 주님의 부활의 가장 큰 증거는 그가 사도들에게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저희에게 보이셨다는 것이다.

(1) 그 증거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써 그가 살아나셨다(그는 그들과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는 사실과 살아나신 분이 다름아닌 그분 자신이시라는 사실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손과 발, 허리의 상처 흔적을 여러번 보여주셨다.

(2) 그런 일이 여러번 있었고 자주 반복되었다. 그는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셨다' 그동안 그들과 함께 항상 계신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에게 자주 모습을 보이셨다.

3. 그리스도의 교훈(3)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줄 교훈에 대하여 대략적인 암시를 주셨다. 그는 그들이 수행해야할 임무에 대하여 교훈을 주셨다.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주께서 사도직에 뽑았던 자들은 그가 그들에게 특권을 주시리라고 기대했으나 오히려 그는 그들에게 계율을 주셨다. 그는 그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계율을 주셨다. 즉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그는 그들에게 계율을 주시는데, 그 위안자는 또한 명령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그들이 가르쳐야할 말씀에 관해서 교훈을 주셨다. 즉 그는 저희에게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3절). 그는 그들에게 그 나라에 대한 보편적인 개념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성령을 받을수 있도록 준비하고 그들이 예정된 길을 가게 하게 위해서 그 나라의 특성에 관해서 더욱 많은 교훈을 주셨는데 그 나라는 이 세상에서는 은총의 나라요, 저 세상에서는 영광의 나라인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하나의 증거였다. 예수께서는 친히 제자들에게 다시 사심을 나타내 보이셨는데 그 제자들은 그가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사실로 인하여, 바로 그분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분이 아니고는 아무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그렇게 명쾌하고 완벽하게 말할수 없었다.

4.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4,5)

제자들은 곧 성령을 받으리라는 특별한 보증을 받았다.

(1) 그는 그들에게 기다릴 것을 명하셨다. 이것은 그들의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약속된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그때는 얼마남지 않았다. 믿음으로 약속된 은혜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때가 올때까지 참고 기다려야만 한다. 그들은 지정된 장소, 즉 예루살렘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거기서 그리스도는 치욕을 당하셨고, 또한 거기서 영광을 얻게될 것이다. 우리의 대적과 핍박자들을 용서하도록 우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이 은사는 예루살렘에서 주어져야 한다. 사도들은 이제 공인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예루살렘은 많은 등불들이 세워지기에 제일 적합한 등경이었다.

(2) 그는 그들이 헛되이 기다리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보증하셨다.

1 )그들에게 예정된 축복이 임할 것이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5절). 예수께서는 이미 성령을 그들에게 불어넣으셨다(요 20:22). 그리고 그들은 그 유익함을 알았다. 이제 그들은 측량할수 없는 은사와 은총과 위로를 받을 것이다. 제사장들이 성직을 맡게될 때 물로 세례를 받고 정결하게 되듯이 그들은 성령으로 정결하게 순결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징표를 가졌듯이 너희도 징표를 가져야할 것이다. 따라서 너희는 이제까지보다 더 열심히 너희 주님을 섬겨야할 것이다. 너희가 다시 그를 버리지 못하도록 너희는 그리스도와 굳게 연합되어야 한다."

2) 이제 그는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말한다. 그것은 그에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므로 그들이 의지할만한 것이었다.

첫째, 성령은 약속으로 주어졌다. 하나님의 성령은 인간의 영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처럼 부여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여된 것이다. 그 은사가 더욱 가치있는 것이 되며 더욱 확실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이 은총이 되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성령도 그리스도와 같이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신 아버지의 약속이었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로서 성령을 주실 것인데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약속이다.

셋째, 이러한 아버지의 약속에 대해 그들은 그리스도께로부터 여러번 들었다. 그는 보혜사 성령이 오실 것이라고 되풀이해서 확증하셨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확고하게 해준다.

3) 성령의 은사는 세례 요한이 예언한 것이다(5절). "너희는 내게서 뿐만이 아니라 요한으로부터 그 약속에 대하여 들었다. 요한이 말하기를(마 3:11)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요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요한에게 큰 명예가 된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종들, 즉 그의 사자들의 말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의 사역자들보다 더많은 것을 하실수 있다. 그들이 은혜를 나누어 주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에게 명예로운 일이다. 그러나 은혜의 성령을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특권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들에게 약속된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다음 장에서 보게 된다. 이 약속은 다음 장에서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성경 말씀에 의하면 이 성령의 은사는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졌으며 바로 이 특별한 능력으로인해 첫 복음전도자들은 견딜수 있었던 것이다. 이 약속에 의해 우리는 신약 성경이 신적 영감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Ⅱ. 부활의 증인 1:6-11

그들은 주님의 승천에 대한 증인이 되기 위하여 한곳에 모였다.

1. 제자들의 질문(6)

(1) 그들이 주님께 질문한 내용은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두가지로 해석될수 있다.

1) "주님은 정말 현재의 이스라엘의 통치자들로 나라를 회복하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과 우리들을 미워하고 핍박한 자들에게 권세를 주시겠습니까?"

2) "그들이 주님에게 복종한다면 주님은 유대인의 나라를 회복시켜 주시겠지요?"

(2) 이 질문에는 두가지 잘못이 들어있다.

1) 그 나라에 대한 그들의 기대 : 그들은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시켜 주시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의 왕국 곧 하늘의 왕국을 세우려 오셨지 지상의 왕국인 이스라엘의 왕국을 회복시키러 오신 것은 아니었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① 선한 사람들조차 교회의 행복을 외적인 화려함과 권력에서 찾기가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십자가만 바라고 그 나라는 저 세상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다.

② 우리는 자기의 사고 방식을 고집하는데에서 벗어나거나 교육의 편견을 극복하기가 무척 어렵다. 제자들이 그의 나라가 영적인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③ 우리가 자기 민족에게로 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이 흥하든 망하든 간에 이 세상의 나라는 그의 것이 되어야 했다.

④ 우리는 성경을 오해하고 자기 식대로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따라 자기의 생각을 결정해야 한다.

2) 그때에 관한 질문 : '주여 이 일을 이루심이 이때니이까' 이 질문에서 그들은 그들의 입장을 망각하였다. 즉 그들은 주님이 유도하지 않은 질문을 했던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큰 몫을 기대했던 그 나라가 세워지기를 조급하게 기다렸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보좌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눅 22:30)그들은 곧 왕좌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 그리스도께서 질문을 막으심(7)

그리스도는 '때와 기한은 너희의 알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질문을 막으셨다. 제자들의 실수는 곧 성령 강림으로 교정되었고 그후 그들은 현실적인 나라에 대해서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복음의 왕국이 세워질 것이라는 그들의 기대는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때에 대한 그들의 질문을 제지하셨다.

(1) 때에 대한 지식은 그들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너희의 알바 아니요.

1) 그리스도는 그들을 떠나시려 하시는 이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견책하신다. 그 말씀은 우리의 첫번째 조상들(아담과 하와)을 치명적인 파멸로 치닫게 했던 것, 즉 금지된 지식에 대한 비상한 욕망을 주의하라는 그의 교회에 대한 경고이다.

2)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보다도 더많은 지식을 주셨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들이 알지못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할때 우리가 지식을 자랑함이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가를 알게 된다.

3)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의 임무를 감당하기에 충분한 교훈을 주셨다. 그리고 이 지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실 것이다.

4)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지켜야할 것을 말씀해 주셨고, 성령이 장차 올것을 그들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또한 그는 때의 징조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의 사건의 상세한 내용이나 정확한 시간을 알려고 기대하거나 바래서는 안된다. 연중의 때와 기한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우리는 여름과 겨울이 교차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여름이나 겨울 중 특별히 어느날이 맑고 어느날이 흐릴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닥쳐올 특별한 날이 이 날인지 저 날인지 말할수 없다. 다만 그것에 대비해야만 하고 그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그 지식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세안에 두신 것이다. 그 이외에 아무도 장차 올때와 시기를 계시할수 없다. 그분은 때와 시기에 대하여 너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알지 못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분은 그 일을 자신의 권세안에 두셨으며 그것을 합당하게 여기셨다.

3. 그리스도께서 임무를 주심(8)

그는 그들에게 할일을 주시고 권위로써 그들의 성공을 보증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8절).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쓰시고자 한다면 우리가 증인이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 그들의 임무가 명예스럽고 영광스럽게 되리라고 하셨다. 내 증인이 되리라. 그들은 그의 왕으로 선포할 것이다. 그들은 솔직하고 엄숙하게 그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한다. 그들은 세상의 증인들처럼 맹세로써가 아니라 기적과 초월적인 은사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으로써 그들의 증언을 확고하게할 것이다. "너희는 나를 위해 순교자가 되리라" 이와같이 그들은 죽기까지 고통을 당하면서 복음의 진리를 입증했던 것이다.

(2) 이 임무를 위한 그들의 능력이 충분하리라고 하셨다. 그들은 그 일을 위해 그들 자신의 능력이 있었던 것도, 지혜나 용기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너희가 너희에게 임할 성령의 능력을 받으리니, 너희가 복음을 전할 능력을 얻고 기적과 고난으로 복음을 확고히 세울 능력을 얻으리라." 주님의 일에 헌신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그 일을 할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신다.

(3) 그들의 영향력이 크고 광범위하리라고 하셨다. "너희는 증인이 되리라.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하여 너희의 빛이 온 유대에 비치게 되며 또한 사마리아까지 미치리라."

4.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9)

이러한 교훈을 그들에게 남기시고 그리스도는 그들을 떠나신다(9절).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눅 24:50).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그는 그의 제자들이 보고있는 동안 그들의 눈앞에서 승천하셨다. 그들은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마음에 의심이 들지않도록 주의와 정성을 다해 보았다. 그는 그들의 눈앞에서 구름속으로 사라지셨다. 그리스도께서 변모하셨을때 그를 가린 것이 바로 밝은 구름이었고 이 구름도 아마 바로 그와 같은 구름이었을 것이다(마 17:5). 구름은 천상 세계와 지상 세계를 잇는 일종의 통신 수단이다. 즉 구름을 통해 땅으로부터 수증기가 올라가고 하늘로부터 이슬이 내려온다. 그러므로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신 그리스도는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으며,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에게 임하시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 이것이 그의 최후의 모습이었다.

5. 남은 제자들(10)

그가 제자들앞에서 사라진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10절). 비록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그들을 떠나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그의 육체적 현존을 너무나 갈망했기때문에 그가 그들에게 되돌아 올것을 바랬는지도 모른다. (2)그들은 지금 막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셨던 그들 눈앞에 하늘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일찍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되리라(요 1:51)고 말씀하셨으니 이제 그들이 왜 그것을 기대하지 않겠는가?

6. 천사가 나타남(11)

두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의 교회에 대하여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그를 마중나온 천사들 중에 둘을 그의 제자들에게 보내셨는데, 그들은 흰옷 입은 두사람으로 나타났다. 이제 천사들이 그들에게 했던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1) 그들의 호기심을 제지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가 무엇을 보고자 하느냐? 너희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는데 무엇을 더 보려고 하느냐? 무엇을 보면서 서있느냐?"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수행해야할 확실한 명령을 받았기때문에 물끄러미 서있어서는 안되었다.

(2)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그들의 신앙을 확고하게 해주었다. 그들의 주님 또한 그들에게 종종 그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셨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첫째, 전에는 치욕속에 재판을 받으신 바로 이 예수가 다시 영광중에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둘째, 그는 똑같은 방법으로 오실 것이다. "그는 구름속에 가리워지셨다. 너희는 구름에 가려진 그의 모습을 볼수 없다. 그리고 그가 가신 곳으로 그를 따라갈수도 없다. 그러나 그때에는 주님을 만나게될 것이다." 우리가 할일 없이 하늘을 쳐다보며 서있을때 주님이 재림하시리라는 생각이 우리를 자극하고 깨우칠 것이다. 또한 우리가 두려워 떨며 바라보고 있을때 그 생각은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것이다.

 

Ⅲ. 예루살렘에 다시 모인 사도들 1:12-14

1.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장소(12)

그리스도는 감람산에서 승천하셨다(12절). 그곳에서 그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그곳에서 영광스럽게 승천하심으로써 그는 고난의 불명예를 벗으셨다. 그리하여 그는 예루살렘에서 볼수 있는 곳에서 그의 왕국으로 들어가셨다. 이 산은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었으며 그 거리는 안식일에 허용된 여행길 정도로써, 안식일 저녁 공중 예배가 끝난후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명상하기 위해서 걷곤 했던 정도의 거리에 불과했다. 그 거리에 대해 혹자는 일천보라고 하고 혹자는 1,500m라고 한다. 안식일에 허용된 거리 이상으로 여행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은 오늘날 우리와의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것은 허용되었을뿐만 아니라 즐길수도 있는 것이다.

2. 제자들이 돌아온 곳(12)

그들은 주님의 지시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시자 즉시 그들은 감시받게 되었지만 그들이 갈릴리로 갔다고 알려진후 아무도 모르게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왔던 것 같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적의 소굴에서 은신처를 찾아내신다. 예루살렘에서 그들은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거기에 머물렀다. 거기서 그들은 성령강림을 고대하면서 매일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늘 성전에 있었다'(눅 24:53). 그러나 그들은 기도하는 시간에 성전의 뜰에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그들은 방해받지 않고 예배드릴수 있었다. 그러나 이 다락방은 개인 집에 있었던 것 같다.

3. 모인 제자들(13-15)

여기서 열한 사도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으며(13절), 우리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도 나온다(14절). 그리고 이것이 그녀에 대한 마지막 언급이다. 그곳에는 주의 형제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 모인 무리의 수는 모두 12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15절). 70명의 제자들도 모두 혹은 대부분 그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

4. 그들이 한 일(14)

그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가. 그들 모두는 합심하여 기도와 간구를 계속했다. 그들은 기도하고 간구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하는 백성이다. 당시는 고통과 위험의 시기였다. 괴로운 일이 있는가? 그에게 기도하라. 그들은 새로운 임무에 직면하여 그것을 수행하기 전에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들을 처음 보내시면서 그리스도는 먼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데 시간을 바치셨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성령의 축복을 받을수 있는 최상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기도로써 우리는 약속된 긍휼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하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약속의 실현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욱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계속 기도하였다. 그들은 늘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였으며(눅 24:53), 본문에서도 그들이 기도와 간구를 계속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약속을 찬양하는 것은 성취를 갈망하는 올바른 태도이며 이전의 긍휼을 찬양함으로써 큰 자비를 얻게 된다. 그들은 이 일을 구함에 있어 합심으로 기도했다. 평화의 유대 가운데 성령의 일체성을 보존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위로를 받을 조건을 완비한 것이다.

 

Ⅳ. 맛디아가 사도로 선택됨 1:15-26

유다의 죄로 말미암아 열두 사도로 구성된 사도의 수에 공석이 생기게 되었다. 그들이 11명뿐이라면 누구든지 12명을 채우고자 할 것이다. 따라서 그 공석을 채우기 위해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 이 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15)

그 집에는 약 120명이 모여 있었다. 여기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이 120명은 큰나무로 성장하게 될 겨자씨였으며,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할 누룩이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제안을 했던 사람은 언제나 가장 지도적인 입장이었던 베드로였다. 할례자의 사도로 묘사되는 베드로는 그 거룩한 이야기가 유대인에게 퍼졌을때 그는 여전히 할례자의 사도로 소개되었으나 바울의 이야기가 시작될때까지 이방인에게 설교하기도 한다.

2. 베드로의 제안(15-22)

베드로는 다른 사도를 선택하자고 제안했다.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섰다(15절).

(1) 그는 유다의 죽음으로 생긴 공석을 설명하면서 그 일속에서 성경의 말씀이 성취된 것에 주목했다.

1) 유다가 가졌던 직무 :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부분을 맡았던 자라(17절).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과 본성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단지 그리스도인의 수에 포함된다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2) 유다의 죄 : 그는 '예수잡는 자들을 지로(지로)' 하였다. 뻔뻔스럽게도 예수를 체포하려는 무리의 두목앞에 공공연히 나타났다. 그는 그들을 데리고 예수가 계신 곳까지 가서 "이 사람이 바로 그 자다. 꽉 잡아라"고 말하며 예수를 넘겨주었다. 죄의 주모자는 죄인 중에서도 가장 나쁜 죄인이다.

3) 이 죄로인한 유다의 파멸 : 제사장들이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유다는 그들을 건네주고 자기의 생명뿐만이 아니라 재물도 얻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그는 아주 치욕스럽게 그 돈을 잃게 되었다(18절). 그는 불의의 삯이었던 은화 30개로 밭을 샀다. 그는 자신을 위해 땅을 사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그네들이 묻힐 밭을 구입한 결과가 되었다. 과연 그와 그의 가족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이었는가?

둘째, 그는 치욕적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절망하여 밖으로 나가서(마 27:5) 목매달아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왔다. 창자가 터지는 것은 반역자에 대한 벌이었다.

4) 이 일에 대한 일반의 주목 :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이 일을 알게되었다. 마치 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주님을 배반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대해서 온 거민이 이야기 했다(19절). 그것은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고 아무도 그 사건의 진리를 논박하지 않았다. 즉 그 사건은 진실이라고 알려졌다. 여기에 악명이 붙은 좋은 예가 있다. 그 밭은 아겔다마, 즉 피밭이라고 불리웠는데 그것은 피의 삯으로 구입되었기 때문이다.

5) 이 일로 성경말씀이 성취되었으며, 또한 성경은 마땅히 성취되어야 함(16절) : 유다의 배반에 대해 놀라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 다윗은 그의 범죄를 예고했을뿐만 아니라 그가 받을 형벌도 예고했다.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또한 그로인한 공석을 다른 사람이 대신 취하게 되었다. 곧 그의 사도직 혹은 직분을 다른 사람이 맡게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어떤 직분이, 그 직분을 맡은 자들의 사악함때문에 혹은 그 사악함에 대한 수치스러운 형벌로써, 그 직분 자체가 타락하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임무를 맡긴 사람의 실패로 인하여 그의 목적이 좌절되거나 그의 사업이 수행되지 못했다고해서 고통받지도 않으신다. 유다는 죽었으나 사도직은 없어지지 않았다. 증인이 없어도 그리스도의 뜻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 베드로는 다른 사도를 선택할 것을 제의한다(21,22절).

1) 빈자리를 채워야하는 사람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가운데 출입하실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중에 하나를 세워. 낮은 자리에서 맡은바 책임에 성실한 사람은 높은 지위를 맡기에 아주 적합하다. 작은 일에 충성했던 사람은 더큰 일을 맡겨도 신뢰할수 있다. 사도들과 함께다니고 계속 친숙했던 사람이 아니면 사도직을 계승할수가 없다.

2) 새로 부름받은 사람의 할일은 무엇인가? 그는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 사실로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나타나셨을때 열한명의 사도외에 다른 제자들도 있었음을 알수 있다. 사도들이 세상에 대하여 증거하려 했던 위대한 사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세속적인 권위와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전하기 위해서 사도들이 해야할 일을 살펴보자.

3. 유다를 계승할 사람의 추천(23-26)

(1) 그리스도의 성실한 추종자라고 알려졌던 두사람이 후보자로 추천되었다. 저희가 두사람을 천하니(23절). 그들이 추천한 두사람은 요셉과 맛디아였는데 그들에 대한 기록을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두사람은 모두 직분에 적합한 사람들이어서 누가 더 적당하다고 말할수 없었다. 그러나 둘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2) 그들은 둘중에 누구를 뽑을지 지시해 달라고 기도로써 하나님께 간구했다(24,25절).

첫째, 그들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호소했다.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24절). 어떤 사람이 사도로 선택될때는, 그의 마음과 기질과 성벽에 의해 선택되어야만 한다. 우리가 교회의 발전과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할때,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또다른 영을 주심으로 그의 목적을 위하여 그들을 합당하게 만드실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위로해 준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이 누구를 택하실지 알고 싶어했다. "주여 우리에게 보여주소서." 하나님이 자신의 종을 선택하시는 것이 합당하다.

셋째, 그들은 유다가 버리고 제 곳으로 간 봉사와 직무를 대신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형제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유다에게는 반역자의 자리가 더 합당하다. 그리스도를 배반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의 고귀한 관계를 절연함으로써 비참한 지경에 빠진다. 우리의 구세주는 유다의 운명에 대하여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뻔 하였느니라'(마 26:24)고 말씀하시던 적이 있다.

넷째, 그 선택은 하나님께 호소하는 방법인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는데(26절), 이 방법은 달리 종결지을수 없는 일을 결정하기 위한 합법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지한 종교적 규범속에서 신앙심 깊은 기도와 함께 이루어졌다. 이렇게하여 사도들의 숫자가 채워지게 되었다.

 

# 해설

주님의 부활하심 ( 1 )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의 사역을 통해서 많은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을 통해 지상 사역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부활하신후 40일의 마지막 시간은 예수님에게 아주 귀한 시간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과 증인의 삶에 대한 명령과 소수의 공동체를 다시금 재정비시키는 놀라운 모습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1. 부활의 증거

1) 먼저 쓴글

누가의 먼저 쓴글은 누가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먼저 쓴글에 예수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해서 썼음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즉 두번째 글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날로부터 제자들안에 계신 그분의 영으로 계속해서 행하시고 가르치실 일을 다룰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a.그리스도의 가르침(막4:2)

b.그리스도의 승천(눅24:51)

2) 예수님의 마지막 40일

예수님의 40일은 제자들을 준비시키기에 필요했던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주님의 부활하신후의 여러 모습들은 부활의 실제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에 대한 많은 실제적인 증거들을 보이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신후 40일동안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와 함께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예수님께서 생전에 말씀하신대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터였으므로 제자들로서는 그 말씀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하나님나라가 출범한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있은 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세상을 통치하시고 특별히 이스라엘을 통치하신다는 내용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주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주제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이나 부활하신후 40일간의 사역기간 동안에 주님이 하신 가르침이나 설교의 대부분이었습니다.

a.하나님나라의 전파(행8:12)

b.부활후의 나타나심(요20:19)

3) 성령 세례의 약속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증인이라는 새로운 사명을 주기위해 남은 유일한 일은 성령의 강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을 것과 성령세례를 받게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기 뒤에 오셔서 성령으로 세례주실 분이 자기보다 얼마나 능력이 많은 분인가를 말했었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위해 성령을 받으신 것처럼 '몇날이 못되어' 하나님께서 사역을 앞둔 제자들에게 동일한 영을 부여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a.세례요한의 세례(마3:11)

b.약속된 성령(눅24:49)

 

2. 예수님의 증인

1) 예수님의 명령

주님께서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실때, 제자들은 그것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정치적 독립을 의미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일은 그들의 알바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위대한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민족에 국한될수가 없었고 온세계를 위한 그분의 증인이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은후에 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8절은 특별히 사도행전의 흐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행1-행7), 유대와 사마리아(행8:1-행11:18), 땅끝(행11:19-행28:31)을 말하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a.영적 능력(딤후1:7)

b.복음의 세계 전파(골1:23)

2)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누가는 신약성경 기자들 중에서 예수님의 승천을 곁에서 목격한 사람의 입장에서 세부 정황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증인의 사명을 주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셨습니다. 그때 구름이 주님을 가리워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둘러싸고, 비록 가려진 형태이긴 하나 그 영광이 임재하고 있음을 가리켰습니다. 주님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때, 흰옷 입은 두사람이 사도들에게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친히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영광으로 올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많이 가르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생각하며 피차 위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과 사도들로부터 이어받은 이 교리가 오늘날의 교회의 증거에서는 별로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쉽다 하겠습니다.

a.믿음의 증인(벧전5:1)

b.재림에 대한 예언(히9:28)

3) 마가의 다락방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않고 한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의 친형제들이 그곳에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그 형제들은 분명히 공생애동안 예수님의 사역에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후에 예수님의 제자들과 동일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는 부활하신 주님이 큰동생 야고보에게 나타나셨던 사실을 기억해 볼수 있습니다. 이 일로인해 야고보와 온가족들은 헌신적인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락방에 모인 무리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썼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a.그리스도의 형제들(마12:46)

b.합심 기도(마18:19)

 

3. 맛디아의 선택

1) 가룟 유다의 죽음

120명의 무리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가 이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유다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했습니다. 성령이 다윗을 통해 말씀하셨던 사실이 유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말했습니다. 또한 그 직분을 이을 자를 세워야함을 말했습니다.

a.예언의 성취(요17:12)

b.사도의 직분(고후4:1)

2) 제비뽑힌 맛디아

선택할 두사람인 요셉과 맛디아를 놓고 사도들은 기도와 제비뽑기를 행했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선례를 따르는 것이긴 하였으나, 무작위 추첨이 아니라 일반 신자들로부터 천거된 두사람 중 하나를 뽑는 추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인도를 구하고 제비를 뽑자 맛디아가 선택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이후로 맛디아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a.열심있는 기도(살전3:10)

b.제비뽑기(민26:55)

 

결론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하나님나라의 사역을 맡을 자들은 예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를통해 예수님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을 준비시켰음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의 증인으로서 예수님과 함께했었던 사도들의 삶이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살피고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우리의 삶의 자리를 다시 찾아야할 때입니다.

 

# 핵심

1:1-14

본서의 수신자, 기록 목적, 그리고 본서가 누가복음의 후속서라는 사실을 밝히는 머리말과 예수님이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주신 성령강림 약속과 복음전파 명령이다.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1:12)

율법은 안식일에 사람들이 자신의 처소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출 16:29). 유대 랍비들은 이 말씀에 근거하여 ‘안식일에 여행할수 있는 거리’를 산출했다. 그것은 최고 ‘2천 규빗’인데, 1규빗은 45cm정도이므로, 약 1km에 해당한다. 그러나 학자에 따라서는 각기 1.6km, 2.8km, 3.2km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철저히 준수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그 이상의 거리를 다니지 않았다.

 

# 묵상

부활후 사람들과 함께 계셨던 주님 ( 1:3 )

예수님은 부활후 40일동안 사람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4와 7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숫자입니다. 4의 배수인 40도 역시 거룩한 숫자로 여겨졌습니다(출16:35; 민32:13; 왕상19:8; 눅4:1, 2).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 ( 1:5 )

요한의 세례는 물세례이고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세례입니다. 물세례는 단순히 회개를 의미하지만 성령세례는 전인격이 변화되어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 기한 ( 1:7 )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속해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은 그 길을 알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그때 그때’에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이며 하나님 뜻에 합당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최후 ( 1:17-19 )

유다가 죽은 밭의 이름은 ‘아겔다마’이며 ‘피밭’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유다는 예수님을 바로 알지못했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던 것입니다(마27:1-8).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로 알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마16:16).

유다 대신 천거된 사람 ( 1:21-26 )

바사바 또는 유스도라 하는 요셉과 맛디아 두사람이 추천되었고, 이 가운데서 맛디아가 제비뽑기에 의해서 선출되었습니다. 제비를 뽑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동시에 거룩한 의식이었습니다. 요나의 경우에서도 볼수 있듯이 여기에는 인간의 뜻이나 지식이 개입될수 없으며,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선택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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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

[사도행전 10장 23절~33절]
23절 -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24절 -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절 -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절 -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절 -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절 -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절 -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절 -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절 -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절 -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절 -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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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

[사도행전 9장 26절~31절]
27절 -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절 -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절 -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절 -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31절 -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핍박자에서 전도자로

[사도행전 9장 19절~25절]
19절 -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절 -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절 -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절 -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절 -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절 -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절 -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돈이 곧 힘인 시대

[사도행전 8장 18절~24절]
18절 -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절 -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절 -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절 -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절 -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절 -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절 -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순교자의 신앙 따라

[사도행전 7장 54절~60절]
54절 -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절 -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절 -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절 -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절 -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절 -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절 -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제목 : 성령 충만의 3단계 (피종진 목사님)

[사도행전 2장 17절~21절]
17절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절 -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절 -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절 -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절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방송을 시청하시는 시청자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는 각자 소원한 것이 있습니다.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은 승진을,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의 번창을, 또 병원의 환우는 건강 회복을, 부모는 자녀들이 잘되기를 소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순간, 하나님을 모시고 모든 일을 행하는 그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와 축복으로 말미암아 소원이 이루어지고 문제가 해결되며 길이 열려 승리로 이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전 800년 전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라고 말씀했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큰 선물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쓰임 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 주시고 함께 하셔서 사명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그러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 충만의 3계단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말씀을 상고하면서 은혜받아 성령 충만하여 축복받는 삶으로 이어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자녀들은 예언을 하게 됩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행 2:16,17) 아멘. 여기에서 ‘자녀들’이란 말은 ‘벤(히)’으로 ‘영적으로 갓 태어난 사람’ 즉 ‘영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나서 갓 태어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영접하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그 순간을 성경에는 ‘자녀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서 새 생명 얻은 사람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언’이라는 말은 보통 ‘미래를 확신하고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프로페투오(헬)’로 예수님 믿고 거듭나게 되면 그때부터 마음, 생각,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이 믿은 대로 되고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며 기도한 대로 응답이 되고 행한 대로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는 우리도 주님을 영접하면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구하고 믿음으로 선포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놀라운 약속의 초점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아멘.
이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어린이, 청년 구별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주님을 영접한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새 생명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와 같다가 영적으로 믿음이 성장하는 단계를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영적으로 믿음이 장성하기를 바라면서 말씀대로 순종하고 은혜롭게 성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장성한 신앙인은 어떠한 여건이나 상황에서도 사탄의 미혹을 받지 않고 성령 충만한 삶으로 하나님 앞에 항상 신실하게 믿음의 길을 굳건히 걸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드리며 날마다 우리 삶 가운데 임한 모든 일들을 영의 눈으로 바라보고 분별한 신앙생활을 하며 신령하고 거룩한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치관을 확립하고 우리의 삶에 똑바른 방향을 설정하여 전진해야 합니다. 이처럼 여러분 모두가 장성한 신앙으로 거듭나 성령 충만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승리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젊은이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행 2:17) 아멘.
여기에서 ‘환상’이란 ‘호라시스(히)’로 ‘큰 비전’을 의미합니다. 즉 어린 아이 같은 믿음에서 장성한 분량으로 믿음이 성장하면 성령 충만함으로 사명의 길을 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즉 성령 안에서 미래를 향해 크게 소망을 외치고 꿈을 외치며 승리를 외치고 축복을 외칠 때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받기 전에는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분별 있게 행하지 못하여 실패한 삶을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지 않으면 세상의 염려와 근심으로 인해 사탄의 노예처럼 끌려 다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이여 임하소서! 역사하옵소서! 행하여 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간구하여 우리 삶에 성령께서 간섭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교회는 자동적으로 부흥이 됩니다.
이처럼 주의 성령이 임하면 평안이 찾아오고 감사와 기쁨이 넘쳐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인해 진정한 행복이 찾아오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4,15) 아멘.
사도 바울은 믿음의 자녀들이 성령 충만하기를 소망했습니다. 성령이 함께하면 비록 육체가 늙어져도 속사람은 새롭게 되기 때문에 담대해지고 능력이 나타나고 축복이 있게 되고 형통함이 있게 되고 승리가 있게 되는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면 탄식, 낙심, 절망, 좌절, 미움, 시기 등 이러한 부정한 것에서 벗어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행하시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 아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땅만 바라보는 소극적인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었던 조카 롯에게 배신을 당하고 홀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허허벌판에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가 서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큰 꿈을 바라보고 비전과 환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인 주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20,21)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의 이름을 통해서 구원받았고 주의 성령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늙은이는 꿈을 꾸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아멘.
여기에서 ‘꿈’이란 ‘sweet dream 단 꿈’으로 인생 여정의 행복한 세월을 심은 대로, 행한 대로 열매를 거두게 하셔서 하나님의 면류관의 상급을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농부가 봄부터 씨를 뿌려 열심히 땀을 흘리고 가꾸어서 가을에 추수할 때 행복을 느끼듯이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최선을 다하여 그 심은 것에 열매를 거둘 때 행복을 느끼고 하나님의 상급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창립한지 50주년 되었습니다. 처음 개척을 할 때 3분의 성도님들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이 되어 두 분이 더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 창립 멤버로 다섯 분이 역사의 기록에 남겨졌습니다. 성령이 계셨기 때문에 개척할 수 있는 담대함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부흥이 된다는 믿음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복음의 전도지를 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방송이라는 전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여서 매 순간 순간마다 승리로 인도하여 주셔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며 사명의 길을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을 바라보며 날마다 꿈을 꾸어야 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엡 4:7,8) 아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때 수많은 고난을 당하고 환난가운데에서도 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감사한 고백을 드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 충만의 3계단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은 예언을 하게 되고, 젊은이는 환상을 보게 하며, 늙은이는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성령 받은 사람이 중생의 계단에서 출발하여 성령 충만의 3계단을 통하여 심은 것을 반드시 거두는 은혜와 축복이 사랑하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만 높아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9장 32절~35절]
32절 -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절 -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절 -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절 -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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