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백성을 상징하는 나실인의 삶

 

[사사기 13장 1절~14절]
1절 -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2절 -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3절 -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4절 -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5절 -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6절 -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의 남편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7절 -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8절 -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9절 -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의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10절 -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의 남편에게 알리어 이르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오셨던 그 사람이 내게 나타났나이다 하매
11절 -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니라
12절 -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13절 -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14절 -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하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해 40년간 블레셋에 고통당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실인으로,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에게도 나타나 나실인이 지켜야 할 규례를 알려 줍니다.

 

1. 나실인 삼손의 탄생 예고 (1~5절)

사사기에 등장하는 마지막 사사는 삼손입니다. 삼손이 활동할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최저점에 이른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악(우상 숭배)을 행했고 블레셋의 압제를 받아 40년 동안 고통을 당했습니다. 40년은 지금까지 압제 기간 중 가장 긴 기간입니다. 본문에는 사사기에 상투적으로 나오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도 빠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그 정도로 악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준비하신 인물이 삼손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삼손의 어머니에게 나타나 잉태 소식을 전합니다. 삼손은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되었습니다. 삼손의 사명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 블레셋의 긴 압제 기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내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뜻은 무엇일까요?

 

2. 남편에게 천사의 말을 전함 (6~14절)

삼손의 어머니는 자신에게 찾아온 이가 신적 존재인 것을 감지할 정도로 영적 예민함을 지녔습니다(6절). 그녀는 남편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말해 준 내용을 전합니다. 자신의 몸에서 태어날 아이가 나실인이 될 것이기에, 자신도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도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7절). 어머니가 먹는 것은 곧 태아의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에게도 나타나 나실인이 지켜야 할 것을 알려 줍니다(13~14절). 삼손은 모태에서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되었습니다. 나실인으로 구별된 삼손은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된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구별된 백성임을 망각한 데서 시작됩니다.

* 여호와의 사자가 여인과 그 남편에게 전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7, 13~14절)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내가 구별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죄악과 절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저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불러 주신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도 어떻게 행할지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구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제사를 드리게 하소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기까지 구별된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공동체 연합과 바른 리더십

 

[사사기 12장 1절~15절]
1절 -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2절 -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3절 - 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4절 -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5절 -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6절 -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7절 - 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8절 - 그 뒤를 이어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9절 -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10절 -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11절 -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12절 -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13절 - 그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14절 - 그에게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
15절 -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배경 이해하기]
사사기 10~16장은 돌라, 야일, 입다, 입산, 엘론, 압돈, 삼손 등 일곱 명의 사사를 언급합니다. 사사들의 시대마다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하나님의 진노-이방의 압제-간구-사사를 통한 구원-회복-범죄’ 패턴이 반복됩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17:6)라는 말씀은 사사 시대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습니다.
12장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승리 이후에 찾아온 동족상잔의 비극을 보여 줍니다. 동족 간의 차별과 오해와 협박과 논쟁으로 비롯된 내전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은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함으로 인해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와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사사들의 등장과 전쟁에서의 승리 그리고 다시 찾게 되는 평화를 통해서 임합니다.

[관찰과 묵상]
1. 에브라임 사람들은 입다가 암몬 자손을 치러 갈 때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시비를 겁니다. 입다는 어떻게 반응했나요?(1~3절)
입다는 암몬 자손과 싸우러 나갈 때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에브라임 사람들이 그 싸움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11장에는 이스라엘이 암몬과의 싸움에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12장에는 그와 반대로 암울한 사건이 펼쳐집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암몬과의 싸움에서 크게 승리한 길르앗 사람들과 입다를 시기해 시비를 겁니다.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4절)라는 에브라임 사람들의 말은 치욕적인 표현입니다. ‘도망한 자’는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또는 창녀의 아들이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실제 길르앗은 므낫세 지파의 후손으로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들이 아닙니다. “므낫세의 자손 중 마길에게서 난 자손은 마길 종족이라 마길이 길르앗을 낳았고 길르앗에게서 난 자손은 길르앗 종족이라”(민 26:29). 이에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들과 싸움을 하고, 에브라임 사람들이 도리어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맙니다. 도망하던 에브라임 사람들이 요단강 나루터에 이르자 길르앗 사람들이 그들에게 ‘쉽볼렛’을 발음하게 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이 단어를 ‘십볼렛’으로 발음하는 것을 노린 것입니다. 결국 그곳에서 에브라임 사람 42,000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길르앗과 에브라임의 싸움은 여호와 하나님이 명하신 전쟁이 아닙니다. 이는 서로 간의 이권을 위해 일어난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적용과 나눔
어려운 일은 회피하면서 승리의 영광만 차지하고 싶어 하지는 않나요? 내가 공동체의 과업에 적극 동참할 일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연합과 동역으로 세워져 갑니다. 그러나 사사기에서는 연합과 동역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사사기의 특징입니다.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은 연합과 동역에 실패해 하나님의 구속사를 앞당기는 어떤 사명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한동대학교의 슬로건은 “Why not change the world?”입니다. 대학 4년을 다니는 동안 끊임없이 이 구호를 보고, 외치며 이렇게 살아갈 것을 꿈꾼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지, 어떻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할 수 있는지를 꿈꾸는 비전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희생하셨기에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공동체의 누군가가 덕을 보게 됩니다. ‘오늘’이라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웃의 필요를 돌아보고 어려움을 함께하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2. 성경은 사사 입산과 압돈의 삶을 어떻게 묘사하나요?(8~10, 13~15절)
입산은 아들 30명과 딸 30명을 두었으며, 딸들을 밖으로 시집보내고 아들들을 위해 30명의 여자를 데려왔습니다. 압돈은 아들 40명과 손자 30명을 두었고, 어린 나귀 70마리를 탔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사였던 길르앗 사람 입다가 이방과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내부적인 갈등도 해결합니다. 모든 갈등이 평정된 후 입다는 죽어서 길르앗에 장사됩니다. 이후 상대적으로 평온한 시기에 세워진 세 명의 사사가 입산, 엘론, 압돈입니다. 베들레헴의 입산이 7년, 스불론의 엘론이 10년, 비라돈의 압돈이 8년을 다스렸습니다.
사사 시대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 특징적 흐름이 있는데, 그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도력은 하향 곡선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입다에 이어 사사가 된 베들레헴 사람 입산은, 아들 30명과 딸 30명을 가나안 땅 밖으로 시집보내고 며느리들을 밖에서 데려오는 정략결혼을 취합니다. 이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이방 나라들과 화친을 맺은 정책으로, 정략결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전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이방 나라를 의지하는 잘못된 모습입니다. 입산에 이어 사사가 된 압돈도, 40명의 아들과 30명의 손자를 두었습니다. 그의 자손들이 나귀 한 마리씩을 탔다는 것은 권력이 세습되고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사사로이 자기 가정만을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민족과 백성을 위해 섬겨야 함에도 그에게 그런 섬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적용과 나눔
믿음의 하강 곡선이 아닌 상승 곡선을 그리기 위해 영적 긴장감을 유지할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지 나누어 보세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입니다(엡 2:8). 우리는 현재 삶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항상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풍요와 번성과 권력에 물들어 갈 때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하향 곡선을 그리기 쉽습니다. 그럴 때 사도 바울의 고백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우리에게 맡겨 주신 가정, 건강, 교회, 나라,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특히 가정과 공동체에서 리더로 세워지는 것은 큰 책임이 따르는 일입니다. 책임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리더는 평안할 때 더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풍요할 때 더 많은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며 건강하게 가정과 공동체를 이끌어야 합니다.

 

* 이스라엘은 언약 공동체이자 신앙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사사기에서는 공동체의 연합과 동역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언약 백성의 소명을 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언약 공동체의 사명을 나의 사명으로 인정할 때 진정한 연합과 동역이 가능해집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도 각 사람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특히 공동체에서 리더로 세워진 사람에게는 큰 책임이 따릅니다. 리더는 군림하는 자가 아닌 섬기는 자여야 하며, 평안할 때 더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풍요할 때 더 많은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면서 공동체를 이끌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결과를 두려움으로 바라보며, 하나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길 원합니다. 연합하는 일에 늘 마음을 합하며, 제 유익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내부의 분열

 

[사사기 12장 1절~15절]
1절 -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2절 -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3절 - 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4절 -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5절 -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6절 -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7절 - 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8절 - 그 뒤를 이어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9절 -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칠 년이라
10절 -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11절 -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12절 -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13절 - 그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14절 - 그에게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
15절 -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암몬 자손과 싸우러 갈 때 왜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느냐며 싸움을 겁니다. 이에 입다는 길르앗 사람을 다 모아 에브라임과 싸우고, 또 길르앗 사람들은 도망하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요단강 나루턱에서 죽입니다. 입다에 이어 입산, 엘론, 압돈이 사사가 됩니다.

 

1. 입다와 에브라임의 전쟁 (1~7절)

때로 외부 적보다 내부 분열이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암몬과 전투가 끝난 후,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찾아와 암몬과 싸울 때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다고 항의합니다. 이들은 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기드온과의 분쟁을 야기한 적이 있습니다(8:1). 에브라임 사람들은 요단 동편 출신인 입다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경계한 듯합니다. 이에 입다는 길르앗 사람들을 이끌고 무력으로 대응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입다의 군대를 피해 도망가다 요단 나루턱에서 42,000명이 죽임을 당합니다. 입다를 '도망자'라 조롱하던 그들이 '도망자'가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4~6절). 이는 요단 동편과 서편 지파 사이의 뿌리 깊은 반목과 질시가 엄청난 비극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에게 불만을 제기한 저의는 무엇일까요?(1절; 참조, 8:1) 나는 사사건건  불만을 표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응하나요?

 

2. 사사 입산, 엘론, 압돈의 행적 (8~15절)

사사 시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지도력의 하향 곡선을 보여 줍니다. 입다에 이어 베들레헴 사람 입산이 사사가 됩니다. 아들 30명과 딸 30명을 둔 것은 그가 많은 아내를 두었음을 의미합니다. 입산은 딸들을 가나안 땅 밖으로 시집보내고 며느리들을 밖에서 데려옵니다(정략결혼). 이후 스불론 사람 엘론이 사사가 되어 10년 동안 다스립니다. 이후 압돈이 사사가 되어 8년을 다스리는데, 그도 입산처럼 많은 아들(40명)과 손자(30명)를 둡니다. 그는 자손들에게 나귀를 한 마리씩 물려주는데, 이는 권력의 세습을 암시합니다. 소사사들의 모습이 점점 이방 왕의 모습을 닮아 갑니다. 섬김의 자리를 외면하고 군림하는 자리에 서는 모습입니다.

* 사사들의 가족 관계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요?(9, 14절) 군림하는 리더가 아닌 섬기는 리더가 되기 위해 내가 주의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 된 성도들 안에 여전히 불신과 시기, 다툼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나뉘고 상처 난 공동체가 주님 사랑으로 치유되게 하시고, 주님의 낮아지심을 본받아 서로를 섬기게 하소서. 세상의 가치에 물들지 않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는 저와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이기적 욕망을 투사한 잘못된 서원

 

[사사기 11장 29절~40절]
29절 -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절 -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절 -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절 -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절 -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절 -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절 -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절 -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절 -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절 -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절 -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절 -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입다는 암몬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오면 가장 먼저 자신을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그가 돌아올 때 그의 무남독녀가 춤추며 나와서 그를 영접합니다. 입다의 딸이 두 달간 친구들과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애곡하고 내려오자 입다는 서원대로 행합니다.

 

1. 이기적인 욕망과 서원 (29~31절)

암몬과의 협상 결렬로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때 하나님의 영이 입다에게 임합니다(29절). 이는 하나님이 입다와 함께하신다는 표징이며,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임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순간 입다는 하나님께 경솔한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이 만약 승리를 주신다면, 집으로 돌아올 때 맨 처음 마중 나온 사람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신 제사로 암몬 사람이 그들의 신 몰렉을 숭배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입다는 암몬과  싸우면서 암몬 사람처럼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입다의 서원은 '머리'(11:9)가 되려는 개인적 욕망과 연결됩니다. 조건을 걸고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것은 불신앙이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행위입니다.

* 입다가 하나님께 한 서원의 동기는 무엇이었나요?(11:9절 참조) 내가 아직 포기하지 못한 이기적 욕망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요?

 

2. 입다의 승리와 서원 이행 (32~40절)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지가 인간을 불행으로 몰아갑니다. 하나님은 입다의 서원과 무관하게 이스라엘에 승리를 안겨 주십니다. 개선하고 돌아오는 입다를 처음 맞은 사람은 그의 무남독녀입니다. 입다는 자신의 옷을 찢으며 한탄합니다. 자신이 한 어리석은 서원 때문에 하나뿐인 딸이 희생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승리의 기쁨은 애곡으로 바뀌고 맙니다. 입다의 서원은 믿음을 가장한 무지한 불신의 표현에 불과합니다. 율법은 잘못된 서원을 돌이키거나 축소시킬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레 27:2~8). 결국 율법에 대한 무지가 입다와 그의 딸을 불행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하나님 뜻과 상관없는 헌신은 바른 헌신이 아닙니다.

* 입다의 잘못된 서원이 초래한 불행은 무엇이었나요? 거래(흥정)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도록 하나님의 영으로 세밀히 인도해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요! 그러나 주님 뜻과 상관없이 경솔하게 말을 내뱉어 발목 잡히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욕심과 고집  때문에 승리의 은총을 애곡으로 바꾸지 않도록 늘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심판하시는 여호와, 그분은 진정한 사사

 

[사사기 11장 12절~28절]
12절 -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니
13절 -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14절 -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들을 보내
15절 -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6절 -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고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17절 - 이스라엘이 사자들을 에돔 왕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청하건대 나를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고 또 그와 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도 보냈으나 그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렀더니
18절 -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아서 모압 땅의 해 뜨는 쪽으로 들어가 아르논 저쪽에 진 쳤고 아르논은 모압의 경계이므로 모압 지역 안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며
19절 -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의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20절 -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의 지역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
21절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시매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하되
22절 -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와 광야에서부터 요단까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였느니라
23절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족속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옳으냐
24절 -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한 것을 네가 차지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
25절 -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툰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26절 -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 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삼백 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27절 -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였으나
28절 -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사람을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암몬 왕은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점령한 그들의 땅을 이제 평화롭게 돌려 달라고 합니다. 입다가 그 땅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당시 아모리 족속이 점령했고, 하나님이 그들을 쫓아내셔서 이스라엘이 300년간 거주했다고 반론합니다. 그러나 암몬 왕은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1. 땅 소유의 역사적 정당성 (12~22절)

입다는 이스라엘 역사를 잘 아는 인물입니다. 길르앗의 장로들과 흥정했던 입다가 이제 암몬 왕과 협상을 벌입니다. 길르앗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암몬 왕에게 입다는 과거 역사를 돌아보게 합니다. 입다는 역사적 근거를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이스라엘은 암몬이 아니라 아모리 족속으로부터 길르앗 땅을 차지했습니다(15, 21절). 그 당시 요단 동쪽은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시혼과 옥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선제 공격하는 아모리 왕을 물리치고 길르앗 땅을 점령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요단 동쪽은 두 지파 반의 기업이 되었습니다(22절; 신 3:12~13). 입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땅 소유의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역사를 바로 알고 기억하는 것이 분쟁 해결의 열쇠입니다.

* 암몬 왕의 주장은 어떤 점에서 역사적 사실에 위배되나요?(16~22절) 무력이나 위협이 아닌 정당성을 갖춘 대화로 해결할 일은 무엇인가요?

 

2. 땅 소유의 신학적 정당성 (23~28절)

모든 주장에는 뒷받침할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입다는 땅 소유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에 이어 신학적 정당성 면에서 암몬 왕의 주장을 반박합니다. 그는 온 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길르앗 땅을 이스라엘의 소유로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3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땅 소유를 문제 삼는 것은 부당함을 항변합니다. 역사적 관점과 신학적 관점에서 길르앗 땅의 소유권을 논증한 입다는 최종 판결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두 나라 사이의 영토 문제에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한 것입니다. '심판하시는(히, 하쇼페트) 여호와'(27절)는 '사사(재판관)이신 여호와'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사사이시며 온 세상의 재판관이십니다.

* 입다가 하나님께 판결을 요청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27절) 역사를 바라보는 입다의 시각에서 내가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기업을  빼앗기 위해 거짓 주장으로 위협하는 원수의 전략을 깨뜨리는 지혜를 말씀 속에서 배웁니다. 심판주 하나님께 판결을 맡기며 간구합니다. 세상이 주장하는 힘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역사의 주관자요 만왕의 왕이신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세상을 압도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이 세우시는 사람은 출신 배경을 초월합니다

 

[사사기 11장 1절~11절]
1절 -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2절 -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절 -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4절 -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5절 -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6절 -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7절 -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하니라
8절 - 그러므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당신이 우리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매
9절 -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10절 -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11절 -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길르앗이 기생에게서 낳은 아들 입다는 길르앗의 아내가 낳은 아들들에게 쫓겨나 돕 땅에 거주했는데, 잡류가 그와 함께합니다. 암몬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암몬과 싸워 달라고 청합니다. 입다는 자신이 그들의 머리가 된다는 확답을 받고 그들과 동행합니다.

 

● 길르앗 주민의 머리로 추대되는 입다

하나님은 때로 예상치 못한 인물을 구원 역사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암몬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는 싸움꾼 입다입니다. 그는 기생의 아들(서자)이라는 비천한 출신 배경으로 인해, 이복형제들의 핍박을 받아 이방 지역인 돕 땅으로 도피해 살았습니다. 입다는 그곳에서 잡류(불량배)를 거느리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암몬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하자 길르앗의 장로들은 입다에게 군대의 '장관'이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입다는 자신을 멸시했던 과거를 상기시키며 장로들을 질책합니다. 이에 장로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 입다를 자신들의 '머리'(통치자)로 삼겠다고 약속합니다. 미천한 출신 입다가 협상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입니다. 한때 형제들에게 버림받았던 입다는 위기에 빠진 동족을 구원할 자가 되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 입다는 장관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왜 거절했나요?(1~2, 7절) 하나님이 천대 받는 자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은 내게 어떤 교훈을 주나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진정한 회개와 돌이킴에 주님의 긍휼이 임합니다

 

[사사기 10장 10절~18절]
10절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11절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12절 -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13절 -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14절 -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15절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16절 -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17절 -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18절 -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하나님은 다시는 그들을 구원하지 않겠다고 하시며, 그들이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으라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며 이방 신들을 제하고 하나님을 섬깁니다. 암몬이 길르앗에 진을 치자 이스라엘은 누가 먼저 나가서 그들과 싸울지 의논합니다.

 

1. 부르짖는 이스라엘, 거절하시는 하나님 (10~14절)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하지만 죄를 영원히 참지는 않으십니다. 블레셋과 암몬의 압제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바알을 섬긴 죄를 회개하며 전에 없던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반응은 냉담합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13절). 하나님은 그들을 건져 주시기 전에 지금까지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애굽에서부터 시작해 근래의 마온(미디안)까지 하나님은 일곱 나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나 이방 신들을 섬긴 이스라엘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반복적인 배교와 형식적인 회개로는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없습니다.

* 배교와 형식적인 회개를 반복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나요? 하나님 앞에서 버릴 나쁜 습관은 무엇이며 어떻게 끊어 낼까요?

 

2. 회개하는 이스라엘, 돌이키시는 하나님 (15~18절)

하나님의 책망을 들은 이스라엘이 이번에는 진심 어린 회개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 자신의 죄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까지 보입니다. 이방 신들을 제거하고 하나님만 섬기기 시작합니다. 이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마음에 근심하십니다(16절). 본문은 그 이유를 '이스라엘의 곤고함(고통)'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매 맞는 자식을 보며 아파하는 아버지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회개하는 이스라엘을 보시고 마음을 돌이켜 긍휼을 베푸십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은혜의 자리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회개보다 앞서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하심입니다(눅 15:11~32).

* 고통당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 마음은 어떠했나요?(16절)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죄를 범한 대가로 곤경에 빠져 부르짖는 백성을 따끔하게 질책하시면서도 긍휼을 품으시는 하나님! 깊어지는 고통 가운데 주저앉지 않고, 저를 위해 근심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의지하며 나아갑니다. 진실한 회개의 열매를 맺고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의 징계에 담긴 '속히 돌아오라'는 외침 

 

[사사기 10장 1절~9절]
1절 -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2절 -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3절 -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4절 -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5절 -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6절 -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7절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8절 - 그 해에 그들이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
9절 -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아비멜렉 뒤를 이어서 돌라와 야일이 사사가 됩니다. 그 후 이스라엘은 또 악을 행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깁니다. 이에 하나님이 진노하시며 이스라엘을 블레셋과 암몬의 손에 파십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고, 암몬이 요단을 건너와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1. 사사 돌라와 야일의 행적 (1~5절)

영적 타락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아비멜렉 이후 돌라가 사사로 등장합니다. '벌레(버러지), 지렁이'라는 뜻(시 22:6; 사 41:14)을 지닌 '돌라'라는 이름은 그가 비천한 출신임을 암시합니다. 보잘것없는 신분임에도 돌라는 하나님 손에 붙들린 도구가 됩니다. 돌라 이후 길르앗 출신 야일이 사사가 됩니다. 야일에게는 3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각각 나귀 한 마리와 성읍 하나를 소유할 만큼 야일은 큰 권세를 누렸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사들에 대한 묘사가 부정적으로 바뀝니다. 섬기는 자로서의 본분을 잊고, 이방 왕들처럼 군림하며 부와 권력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본분을 잊을 때, 타락이 시작됩니다.

* 사사 야일의 가족에 대한 소개(4절)는 무엇을 시사하나요?(8:30~31절 참조) 하나님 종으로서의 본분을 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2. 이스라엘의 배교와 하나님의 징계 (6~9절)

작은 영적 타협이 큰 퇴보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의 점진적인 타락은 입다 시대에 이르러 정점에 이릅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이 섬겼던 '신들'의 목록에서 드러납니다(6절). 여기에는 가나안의 신들뿐 아니라 주변 나라의 신들 이름까지 등장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배교를 징계하기 위해 요단 서쪽의 블레셋 사람과 요단 동쪽의 암몬 사람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7년 압제(6:1)보다 훨씬 긴 열여덟 해 동안, 한 민족이 아닌 두 민족의 압제 아래서 신음하게 됩니다. 압제의 강도와 기간이 이전보다 심해졌습니다. 이는 속히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외침이 커졌음을 의미합니다.

* 배교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어떠한가요? 내 삶에서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기 쉬운 세상 유혹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의 악을 행할 때,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신 하나님 뜻을 헤아려 봅니다. 제 삶에 몰아친 곤고함과 억압이 '악에서 떠나 돌아오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메가폰 소리는 아닌지요. 남 탓과 원망을 멈추고, 주님을 향해 돌이켜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심판

 

[사사기 9장 46절~57절]
46절 - 세겜 망대의 모든 사람들이 이를 듣고 엘브릿 신전의 보루로 들어갔더니
47절 - 세겜 망대의 모든 사람들이 모인 것이 아비멜렉에게 알려지매
48절 - 아비멜렉 및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살몬 산에 오르고 아비멜렉이 손에 도끼를 들고 나뭇가지를 찍어 그것을 들어올려 자기 어깨에 메고 그와 함께 있는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가 행하는 것을 보나니 빨리 나와 같이 행하라 하니
49절 - 모든 백성들도 각각 나뭇가지를 찍어서 아비멜렉을 따라 보루 위에 놓고 그것들이 얹혀 있는 보루에 불을 놓으매 세겜 망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었으니 남녀가 약 천 명이었더라
50절 - 아비멜렉이 데베스에 가서 데베스에 맞서 진 치고 그것을 점령하였더니
51절 - 성읍 중에 견고한 망대가 있으므로 그 성읍 백성의 남녀가 모두 그리로 도망하여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간지라
52절 - 아비멜렉이 망대 앞에 이르러 공격하며 망대의 문에 가까이 나아가서 그것을 불사르려 하더니
53절 -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54절 - 아비멜렉이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을 급히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죽이라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여자가 그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 하니 그 청년이 그를 찌르매 그가 죽은지라
55절 -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각각 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
56절 -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57절 -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아비멜렉은 보루에 불을 놓아 세겜 망대 안 사람들을 다 죽입니다. 그가 데베스의 망대를 공격할 때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그의 머리 위로 내려 던집니다. 아비멜렉은 여자에게 죽임당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무기 든 청년에게 죽여 달라고 합니다. 이는 그의 악행을 하나님이 갚으신 것입니다.

 

1. 아비멜렉에 의한 세겜 망대 심판 (46~49절)

진실함과 의로움을 떠나 살면 분노가 이끄는 대로 행합니다. 세겜 사람들을 향한 아비멜렉의 복수가 계속됩니다. 세겜 성읍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세겜 망대 사람들은 엘브릿(바알 브릿) 신전의 보루에 몸을 숨깁니다. '보루'는 땅 밑에 파 놓은 피난처를 가리킵니다. 이를 알아챈 아비멜렉은 산에서 나뭇가지를 베어 보루에 불을 질러 그곳에 있던 세겜 사람 약 1,000명을 죽입니다. 한때 자신을 왕으로 세워 준 이들을 무정하고 잔인하게 죽인 것입니다. 이로써 세겜을 향한 아비멜렉의 복수극이 끝나고,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 세겜 사람들을 사를 것'이라 했던 요담의 첫 번째 저주가 문자적으로 이루어집니다(9:20). 절제되지 않은 분노는 자신과 타인의 영혼을 파괴합니다(잠 16:32).

* 분노한 아비멜렉은 세겜 망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했나요? 절제되지 않은 분노는 결국 자신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2. 무명의 여인에 의한 아비멜렉 심판 (50~57절)

때로 하나님의 심판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세겜 성읍을 진멸한 아비멜렉은 세겜의 위성 도시 데베스로 향합니다. 데베스 사람들이 아비멜렉의 공격을 피해 망대로 도망합니다. 아비멜렉은 세겜 망대에서처럼 망대 가까이 가서 불을 지르려 합니다. 이때 망대 위에 있던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로 던져 그를 죽입니다. 이로써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라 했던 요담의 두 번째 저주가 실현됩니다(9:20). 바위 위에서 이복형제 70명을 죽인 아비멜렉이 한 여인이 던진 돌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불의와 폭력을 행한 아비멜렉이 공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 분노와 잔인함으로 가득했던 아비멜렉의 최후는 어떠했나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주님 앞에 내가 내려놓을 분노와 복수심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악행을 갚으시고 저주를 응하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 경외심으로 무릎 꿇습니다. 악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떵떵거리는 사람들을 주님이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믿습니다. 분노, 잔인함, 폭력성을 합리화하지 않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 가져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악인들을 향한 공의로운 심판

 

[사사기 9장 26절~45절]
26절 - 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의 형제와 더불어 세겜에 이르니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니라
27절 - 그들이 밭에 가서 포도를 거두어다가 밟아 짜서 연회를 베풀고 그들의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니
28절 - 에벳의 아들 가알이 이르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신복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29절 - 이 백성이 내 수하에 있었더라면 내가 아비멜렉을 제거하였으리라 하고 아비멜렉에게 이르되 네 군대를 증원해서 나오라 하니라
30절 - 그 성읍의 방백 스불이 에벳의 아들 가알의 말을 듣고 노하여
31절 - 사자들을 아비멜렉에게 가만히 보내어 이르되 보소서 에벳의 아들 가알과 그의 형제들이 세겜에 이르러 그 성읍이 당신을 대적하게 하니
32절 - 당신은 당신과 함께 있는 백성과 더불어 밤에 일어나 밭에 매복하였다가
33절 - 아침 해 뜰 때에 당신이 일찍 일어나 이 성읍을 엄습하면 가알 및 그와 함께 있는 백성이 나와서 당신을 대적하리니 당신은 기회를 보아 그에게 행하소서 하니
34절 - 아비멜렉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밤에 일어나 네 떼로 나누어 세겜에 맞서 매복하였더니
35절 - 에벳의 아들 가알이 나와서 성읍 문 입구에 설 때에 아비멜렉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이 매복하였던 곳에서 일어난지라
36절 - 가알이 그 백성을 보고 스불에게 이르되 보라 백성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도다 하니 스불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산 그림자를 사람으로 보았느니라 하는지라
37절 - 가알이 다시 말하여 이르되 보라 백성이 밭 가운데를 따라 내려오고 또 한 떼는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길을 따라 오는도다 하니
38절 - 스불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전에 말하기를 아비멜렉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기리요 하던 그 입이 이제 어디 있느냐 이들이 네가 업신여기던 그 백성이 아니냐 청하노니 이제 나가서 그들과 싸우라 하니
39절 - 가알이 세겜 사람들보다 앞에 서서 나가 아비멜렉과 싸우다가
40절 - 아비멜렉이 그를 추격하니 그 앞에서 도망하였고 부상하여 엎드러진 자가 많아 성문 입구까지 이르렀더라
41절 - 아비멜렉은 아루마에 거주하고 스불은 가알과 그의 형제들을 쫓아내어 세겜에 거주하지 못하게 하더니
42절 - 이튿날 백성이 밭으로 나오매 사람들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43절 - 아비멜렉이 자기 백성을 세 무리로 나누어 밭에 매복시켰더니 백성이 성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나 그들을 치되
44절 - 아비멜렉과 그 떼는 돌격하여 성문 입구에 서고 두 무리는 밭에 있는 자들에게 돌격하여 그들을 죽이니
45절 -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마침내는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

 

세겜 사람들이 에벳의 아들 가알을 신뢰하고 아비멜렉을 저주합니다. 가알의 말을 들은 방백 스불은 아비멜렉에게 매복했다가 성을 엄습하라고 권합니다. 다음 날 가알은 스불의 부추김으로 성 밖에 나가 싸우다가 아비멜렉의 추격을 받고 도망합니다. 아비멜렉이 성을 정복하고 소금을 뿌립니다.

 

1. 에벳의 아들 가알의 선동 (26~33절)
세겜 사람들의 반역은 에벳의 아들 가알을 새 지도자로 세우는 것으로 구체화됩니다. 가알은 자신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이라 소개합니다(28절). 하몰은 세겜을 창건한 가나안 원주민입니다(창 34:6). 가알은 세겜 사람들에게 아비멜렉을 배반하고 세겜의 순수 혈통인 자신을 따르라고 선동합니다.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선동했던 방식(지역감정 조장, 9:1~3) 그대로입니다. 세겜의 방백 스불은 아루마에 있던(41절) 아비멜렉에게 이 사실을 밀고합니다. 소식을 들은 아비멜렉은 곧 가알과 세겜 사람들을 치고자 군대를 소집합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람 사이의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닙니다. 죄악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입니다.

* 아비멜렉과 가알은 어떤 방법으로 세겜 사람들을 선동했나요?(9:1~3 참조) 주변 사람을 선동하고 이간하는 행실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까요?

 

2. 세겜을 향한 아비멜렉의 징벌 (34~45절)

하나님의 심판은 악행에 따른 보응입니다. 아비멜렉은 스불의 조언에 따라 군대를 매복시킵니다. 이를 알아챈 가알이 군대를 이끌고 맞서 싸우지만 아비멜렉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아비멜렉은 반역의 주동자인 가알과 그의 형제들을 세겜에서 추방합니다. 또 아버지 기드온이 사용했던 매복 전략을 사용해(43절; 7:16) 밭으로 나온 세겜 사람들을 죽이고 성을 헐어 버린 뒤 소금을 뿌려 저주합니다. 이는 세겜 사람들이 자신과 맺은 '왕과 신하 사이의 언약'을 어겼다고 본 것입니다.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죽이는 불의에 동조하고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을 배반한 세겜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이 세운 불의한 왕에 의해 심판받습니다.

* 아비멜렉이 세겜에 소금을 뿌려 저주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거나 배반하면 그 결과는 어떠할까요?

 

오늘의 기도

가알처럼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선동에 미혹되어 누군가를 추종하다가 또다시 선동에 미혹되어 결국 비참해지는 이들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기 원합니다. 멸망으로 이끄는 세력에 반복적으로 휘둘리지 않도록 제 중심을 주님 말씀에 붙들어 매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