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자요 통치자이신 하나님
[사사기 9장 16절~25절]
16절 - 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의 손이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17절 - 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냈거늘
18절 - 너희가 오늘 일어나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 그의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들 위에 왕으로 삼았도다
19절 - 만일 너희가 오늘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려니와
20절 -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21절 - 요담이 그의 형제 아비멜렉 앞에서 도망하여 피해서 브엘로 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22절 -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23절 -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24절 -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25절 - 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배경 이해하기]
아비멜렉은 이스라엘의 다섯 번째 사사 기드온과 여섯 번째 사사 돌라 사이에 등장하는 인물로, 기드온의 첩이었던 세겜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사사기 9장에는 이전에 보여 주었던 이야기의 패턴, 즉 ‘이방의 압제와 사사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야욕을 충족하려는 한 통치자로 인해 나라 전체에 위기가 발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은 사사들의 리더십이 오히려 민족의 위협이 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과 연합해 형제들을 살해하고, 인본주의적으로 이스라엘에서 최초의 왕이 됩니다.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이 이 위기를 피하고 난 후 그리심산 꼭대기에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을 비난합니다. 포악한 가시나무 비유를 들며 아비멜렉을 지탄하고 세겜을 저주하는데, 이 저주가 세겜 사람들에게 그대로 임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야욕으로 왕이 된 아비멜렉과 그의 악랄한 선동에 동조해 이스라엘에 영향력을 과시하던 세겜 사람들이 결국 서로 배반하고 대립합니다. 이 대립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23절). 하나님은 그들의 교만과 악행을 갚으시고 심판하시는 분인 것을 사사기는 명확하게 설명합니다(56~57절).
[관찰과 묵상]
1. 요담은 세겜 사람들을 향해 어떤 말로 지탄했나요? 또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했나요?(16~21절)
요담은 세겜 사람들에게 여룹바알(기드온)과 그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하고 의롭지 않다고 지탄했습니다. 그러하기에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에게서 각각 불이 나와서 서로를 사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담은 우화를 들려주며 이야기 속 포악한 가시나무처럼 해를 끼치며 포악한 아비멜렉에게 왕의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8~15절). 그리고 그를 추대한 세겜 사람들의 행위는 여룹바알이 베푼 은혜를 배반한 악행이라고 지적합니다. 요담은 아버지에 대한 배신을 근거로 세겜 사람들을 저주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관점과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금 에봇을 두어 음란하게 섬기게 한 기드온의 죄(8:27)와 권력에 대한 야망으로 형제 70명을 서슴없이 죽인 아비멜렉의 포악(24절)으로 인해 그 집안을 심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서 요담의 저주는 도구가 되었고, 그의 말대로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요담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이 서로 대립해 불사르고 파괴할 것이라고 저주하며, 그 기준으로 ‘진실하고 의로움’을 듭니다(19절). 이 두 표현은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유언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기라고 말할 때 사용했던 단어입니다(수 24:14). 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하고 의로움으로 섬겨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악행에 동조했던 세겜 사람들을 향한 요담의 안타까운 비난의 메시지입니다.
적용과 나눔
개인적 야망과 탐욕이 주변에 끼친 악영향의 사례를 나누어 보세요. 진실함과 의로움을 저버리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아비멜렉의 야망은 70명에 달하는 형제 중에서 인정받지 못한 결핍의 경험과 연결되고, 이는 형제들을 몰살시키는 잔혹하고 포악한 성격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왕이 되기 위해 사람들과 모의하고, 이후 세겜과의 싸움에서도 군대를 나누어 매복할 정도로 주도면밀한 전략가이지만, 하나님 없는 아비멜렉의 교만과 야망은 결국 실패하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됩니다. 이를 지적하는 요담의 말이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의로운가?’라는 질문은 아비멜렉의 방향을 완전히 부정하는 선지자적 표현입니다.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추구하며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과 의로움을 벗겨 내는 행위를 쉽게 허용하게 합니다. 거짓과 포학함으로 욕망을 충족하게 합니다. 아비멜렉은 사사기에서 반복되는 ‘하나님의 통치’라는 주제와 반대되는 인물입니다.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확신과 그분의 통치 아래 삶을 겸손히 내어 드리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은 그 통치를 철저히 인정하는 삶입니다.
2. 3년 후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이 상황은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가요?(22~25절)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 그들의 악행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왕이 되고자 하는 아비멜렉의 야심은 매우 정교한 전략을 바탕으로 진행됩니다. 먼저 세겜 사람들을 불러 선동할 때 아비멜렉은 자신이 세겜 사람들과 형제 관계임을 강조합니다(2절). 그런 다음 그들에게 받은 은으로 불량자들을 매수한 뒤, 형제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살해합니다(5절). 세겜 사람들을 힘입어 왕위에 오른 그의 통치가 견고하게 세워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나자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고, 그의 왕권은 중대한 위기를 맞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셨다고 밝힙니다(23절). 그리고 그 이유는 아비멜렉이 형제들의 피를 흘리게 한 죄와 그를 도운 세겜 사람들의 죄를 갚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24절). 세겜 사람들은 오히려 아비멜렉에게 멸절의 위기를 맞고, 아비멜렉은 한 여인에 의해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습니다. 성경은 이 결과를 보여 주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갚으셨고, 요담의 저주가 응했다고 말합니다(56~57절). 악인들은 교만한 마음으로 악행을 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공의로 그들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선한 계획으로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적용과 나눔
의로우신 하나님은 반드시 악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가 견뎌 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성도는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는 악이 횡행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가 부재한 듯 보입니다. 삶의 주변뿐 아니라 뉴스에서 들려오는 세상 소식은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근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교만과 악행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악을 심판하시고 선으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두 가지 내적 확신을 갖게 됩니다. 첫째, 우리의 믿음에서 인내와 성실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악의 문제를 직면할 때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대하며 거룩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둘째, 세상을 위해 하나님의 관점으로 중보하게 됩니다. 신음하는 영혼들의 소리를 듣고, 치열한 영적 전쟁 한복판으로 들어가 기도로 싸우게 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가르쳐 주시고 본이 되어 보여 주신 믿음의 길이며,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통치가 부재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 하나님이 그분 뜻대로 주관하신다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 줍니다. 사사기는 하나님의 통치가 무엇인지 계속 질문합니다. 아비멜렉은 그의 야욕을 이루고자 온갖 계략과 폭력을 사용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자멸합니다. 성도는 욕망과 죄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를 확신하며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의 악에 대항해 선하고 신실한 믿음의 길을 걸어갈 힘이 채워집니다. 또한 죄로 신음하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고대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제 마음속에 있는 이기적인 욕망과 죄의 유혹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시선으로 불의한 일들을 바라보고 기도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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