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배교와 하나님의 긍휼하심

 

[사사기 2장 11절~23절]
11절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절 -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13절 -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14절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15절 -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16절 -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절 -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절 -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19절 -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20절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1절 -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절 -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3절 -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자, 하나님은 그들을 노략자의 손에 넘기십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심히 괴로워하고, 하나님은 사사들을 세워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사사가 죽은 후에 그들이 더욱 타락하니, 하나님이 더는 이방 민족을 쫓아내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시험하십니다.

 

1. 이스라엘의 배교와 불순종 (11~15절)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눈앞에서 가나안의 신들인 바알과 아스다롯를 섬깁니다. 바알은 비를 주관하는 폭풍의 신이고, 바알의 배우자 아스다롯은 전쟁과 다산의 여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과 아스다롯이 가나안 땅에 풍요를 준다고 생각해 구원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 신이 주는 거짓된 풍요를 따라갔습니다. 배교에 대한 언약적 징계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방 사람의 손에 팔아넘기십니다(14절).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던 하나님의 손이 '징계의 손'으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은혜를 저버린 자에게 임하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신들을 따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세상의 것을 바라보고 따라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 (16~23절)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이 무한하신 분입니다(시 103:8).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고통당함을 보시고 뜻을 돌이켜 징계의 손을 거두십니다. 그리고 사사들을 세우셔서 이방 민족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16, 18절). 이것은 매를 맞고 아파하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섬김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사들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다시 가나안의 신들을 따라갑니다. 하나님은 좋은 방향으로 돌이키시지만(18절), 이스라엘은 나쁜 방향으로 돌아섭니다(19절). 하나님의 긍휼과 이스라엘의 배교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세상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이스라엘은 배교와 불순종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버리지 못합니다.

*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고통당할 때 어떻게 행하셨나요?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돌이켜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괴롭고 힘들 때면 하나님께 울며 부르짖다가, 긍휼로 구원해 주시면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을 기웃대는 제 패역함을 용서하소서. 날마다 마음과 삶의 뿌리를 말씀에 깊이 내려 견고하고 순전한 신앙인으로 서게 하소서. 평생토록 은혜를 고백하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말씀을 저버린 다음 세대

 

[사사기 2장 1절~10절]
1절 -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절 -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3절 -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4절 -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5절 -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6절 -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7절 -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절 -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절 -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절 -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은 이스라엘을 책망합니다. 이스라엘이 쫓아내지 않은 그 땅 주민이 그들의 가시와 올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에 백성이 소리 높여 웁니다. 여호수아와 그 세대 사람들이 죽은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하나님과 그분이 하신 일을 알지 못합니다.

 

1. 여호와의 사자의 경고 (1~5절)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신적 존재로,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천사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점진적 실패 이후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이스라엘에 경고합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가면서 이스라엘이 실패한 원인을 지적합니다. 길갈은 가나안 입성 직후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와 유월절 의식을 거행한 장소입니다(수 5장). 이스라엘은 이곳에서 언약 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랬던 그들이 정체성을 상실하고 가나안 문화와 종교에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 명령(신 7:2~3)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얻는 유익을 저버리고 세상의 풍요를 따라간 것이 실패의 원인입니다.

*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의지와 이스라엘의 태도는 어떻게 다른가요? 내 삶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2. 새로운 세대의 등장 (6~10절)

여호수아의 죽음은 정복 시대에서 정착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점입니다. 여호수아는 신실한 '여호와의 종'으로 삶을 마감했고, 그와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했던 백성도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일어난 세대는 하나님과 그분의 역사를 알지 못했습니다. 부모 세대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하지 못했기에 자녀 세대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유산(땅)은 전수되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유산(신앙)은 계승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시대가 바뀌며 등장한 세대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신앙은 성도가 다음 세대에 전수해야 하는 가장 소중한 유산입니다.

* 여호수아 세대와 그 이후 세대는 어떠한 차이를 보이나요? 내가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가정과 교회 안의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될까 두렵습니다. 그들이 세상의 가시에 찔리고 우상의 올무에 갇히기 전에,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심고 무릎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게 하소서.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기쁨이고 소망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반쪽 순종, 반쪽 성공 

 

[사사기 1장 22절~36절]
22절 -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23절 - 요셉 가문이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스라
24절 - 정탐꾼들이 그 성읍에서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성읍의 입구를 우리에게 보이라 그리하면 우리가 네게 선대하리라 하매
25절 -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에 그들이 칼날로 그 성읍을 쳤으되 오직 그 사람과 그의 가족을 놓아 보내매
26절 -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건축하고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오늘까지 그 곳의 이름이 되니라
27절 -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28절 -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29절 -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30절 -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1절 -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2절 -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33절 -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34절 -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35절 -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36절 -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요셉 가문은 벧엘(루스)을 정복할 때 성읍 입구를 알려 준 사람과 그 가족을 살려 줍니다. 그 사람은 헷 사람들의 땅에 가서 성읍을 짓고 그 이름을 루스라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거주하다가 강성한 후에야 그들에게 노역을 시킵니다.

 

1. 요셉 지파의 벧엘 점령 (22~26절)

때때로 작은 실수가 큰 실패를 낳습니다. 남쪽 지파들(유다, 시므온, 베냐민)에 이어 요셉 지파가 분배받은 땅을 차지하러 벧엘로 올라갑니다. 요셉 지파의 점령 이야기는 여리고성 정복 이야기(수 2:1~14)와 유사합니다. 여호수아처럼 그들은 정탐꾼을 파견합니다. 정탐꾼들은 벧엘(루스)에서 나오는 가나안 사람을 만나, 성읍의 입구를 알려 주는 조건으로 언약을 맺습니다(24절, '선대하리라'). 요셉 지파는 벧엘을 진멸하고 약속대로 그 사람과 가족을 살려 줍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헷 사람의 땅에 또 다른 루스를 건축합니다. 신앙 고백이 없는 가나안 사람과 언약을 맺음으로써 요셉 지파의 벧엘 점령은 반쪽짜리 성공에 머물고 맙니다.

* 요셉 지파의 벧엘 점령과 여호수아의 여리고성 정복(수 2:1~14)에서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반쪽짜리 성공에 머물지 않도록 살필 일은 무엇인가요?

 

2. 북쪽 지파들의 점진적인 실패 (27~36절)

요셉 지파와 나머지 북쪽 지파들의 정복 이야기가 계속 전개됩니다. 중부 지역에서 북쪽 지역으로 올라갈수록 이스라엘 지파의 정복 전쟁은 점점 더 실패의 정도가 심해집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가나안 원주민을 자신들이 유업으로 받은 땅에 머물게 합니다(27~29절). 그들은 가나안 사람을 종으로 부리며 경제적 이득을 얻고자 한 것 같습니다. 아셀과 납달리는 땅의 주권을 가나안 족속에게 내주고 그들 사이에 거주합니다(31~33절).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것입니다. 단 지파는 분배받은 영토를 지키지 못하고 아모리 족속에 의해 산지로 쫓겨납니다(34절). 유다 지파의 성공으로 시작한 가나안 땅 정복 이야기는 단 지파의 완전한 실패로 끝맺습니다. 영적 타락은 작은 타협에서 시작됩니다.

* 북쪽 지파들이 가나안 원주민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작은 타협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오늘의 기도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세상과 타협했던 제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작게 내어 준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제 전부를 삼키는 죄악의 속성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하소서. 오롯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내기 위해 욕심을 내려놓고 생명을 드리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믿음의 분량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

 

[사사기 1장 11절~21절]
11절 - 거기서 나아가서 드빌의 주민들을 쳤으니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2절 -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3절 -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하였으므로 갈렙이 그의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4절 -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5절 -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16절 -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17절 -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과 함께 가서 스밧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그 곳을 진멸하였으므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18절 - 유다가 또 가사 및 그 지역과 아스글론 및 그 지역과 에그론 및 그 지역을 점령하였고
19절 -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0절 - 그들이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그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21절 -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갈렙은 드빌을 점령하는 자에게 그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고 합니다. 옷니엘이 그 땅을 점령하고 악사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유다는 철 병거가 있는 골짜기 주민은 쫓아내지 못합니다. 갈렙은 헤브론을 차지하고, 베냐민은 예루살렘의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해 그들과 함께 거주합니다. 

 

1. 옷니엘을 통한 드빌 정복 (11~15절)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분량대로 역사하십니다. 헤브론을 점령한 갈렙은 남쪽에 인접한 드빌(기럇 세벨)을 치고자 합니다. 갈렙(당시 85세)은 그의 사위가 되는 조건을 내걸고 드빌을 점령할 용사를 모집합니다. 이에 갈렙의 조카 옷니엘이 드빌을 점령하고 악사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믿음의 사람 옷니엘은 사사기에 나오는 첫 번째 사사입니다. 악사는 아버지에게 결혼 지참금으로 밭과 샘물을 구합니다(14~15절). 악사의 요청에는 유업으로 받은 남방(네게브) 땅을 지키려는 믿음이 나타납니다. 악사의 믿음은 아버지(갈렙)의 믿음을 닮았습니다. 갈렙, 옷니엘, 악사의 모습은 천국 백성이 따라야 할 믿음의 본보기입니다(마 11:12).

* 악사의 믿음은 어떤 면에서 아버지 갈렙을 닮았나요?(수 14:6~12 참조) 내가 믿음으로 담대히 구할 것은 무엇인가요?

 

2.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실패담 (16~21절)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믿음의 싸움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함께 스밧에 있는 가나안 사람을 진멸하고 그곳을 호르마('진멸'이라는 뜻)라 이름합니다. 유다 지파의 정복 전쟁은 팔레스타인 남쪽 해안 지역인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까지 미칩니다(18절). 유다 지파의 승리 배후에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계셨습니다(19절). 전능하신 하나님이 유다 지파에 승리를 안겨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 지파는 골짜기(평지)에 사는 가나안 주민을 쫓아내는 데 실패합니다. 가나안 주민의 최신 무기(철 병거)를 보고 위축되었기 때문입니다(19절). 함께하시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철 병거를 더 크게 여긴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행할 때 하나님 약속이 우리 것이 됩니다.

* 유다 지파가 골짜기의 주민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위축된 마음을 다잡고 믿음으로 용기를 낼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약속보다 현실의 두려움을 더 크게 생각하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제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가장 크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죄악을 철저히 몰아내며 순종의 행보를 이어 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삶

 

[사사기 1장 1절~10절]
1절 -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3절 -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절 -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5절 -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6절 -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7절 -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8절 -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9절 -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0절 -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배경 이해하기]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광야에서 그들을 먹이고 입히셨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는 또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여호수아는 하나님 명령에 따라 지파별로 땅을 분배했고, 각 지파는 분배받은 땅에 거주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는 땅에 여전히 남아 있는 가나안 이방 거류민들을 완전히 정복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백성은 오히려 이방인과 어울리며 우상 숭배의 범죄에 빠졌습니다. 여호수아가 죽기 전까지는 신정 정치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지만, 그가 죽은 후에는 지파별로 거주하는 지역의 형편에 따라 독자적, 자치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선민 이스라엘로서의 민족성과 신앙적 자기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신앙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나안 땅에 거류하던 이방 거류민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이런 위기를 당할 때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지키지 못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도와 달라는 백성의 요청을 들으시고 때마다 지도자를 세워 주셨는데, 이들이 바로 사사입니다. 사사 시대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즉위할 때까지 약 350년간(BC 1390~1050) 계속되었습니다.

[관찰과 묵상]
1. 하나님은 가장 먼저 어느 지파가 가나안 족속과 싸우도록 명령하셨나요?(1~2절)
하나님은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싸워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사기의 배경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1절), 즉 가나안 땅 정복 바로 직후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시고,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 가나안 땅에 정착해야 하는 사명이 출애굽 2세대에게 부여됩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했지만 여전히 그곳에는 이방 민족이 남아 있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거류민들을 완전히 몰아낸 후에 정착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지파별로 정복 전쟁을 치르기 전에 백성은 먼저 하나님께 묻습니다. 가나안에 온전히 정착하기 위해 백성은 ‘누가 먼저 올라가 싸우리이까’ 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1절). 여호수아를 리더십으로 했던 가나안 정복 전쟁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싸운 전쟁이었다면, 여호수아 사후 가나안 정착을 위한 전쟁은 땅을 분배받은 곳에서 지파별로 치러야 하는 전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여쭈었다는 것은 전쟁의 승패가 온전히 하나님께 있으며,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신 하나님이 온전히 정착하게 하실 것이라는 고백적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뜻을 구한 백성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첫 번째로 싸워야 할 지파는 유다 지파이고, 싸워야 할 대상은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입니다(4절). 가나안 족속은 블레셋 중부 지방과 요단 서편의 계곡과 평원에 사는 거류민들입니다.
적용과 나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 뜻을 구하나요, 나의 판단대로 결정하나요? 하나님 뜻을 구하고 일을 진행한 경험을 나누어 보세요.
신앙적 삶이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인간의 무지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언제나 옳고 정의로우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경험과 판단, 여러 가지 데이터가 물론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모든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과 경험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온 우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기에 주인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신앙 고백의 절정은 우리의 순종에 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에 순종할 때 비로소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기적처럼 이루어집니다.

2. 유다 지파에 진멸당한 아도니 베섹의 마지막 고백은 무엇이었나요?(5~7절)
아도니 베섹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렸고,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라고 말하며 죽었습니다.
유다 지파는 형제 시므온 지파와 함께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진멸하고, 도망하는 아도니 베섹을 붙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끊어 버립니다. 아도니 베섹은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가나안의 한 성읍 베섹의 왕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아도니 베섹은 그가 정복한 성읍들을 다스리던 왕 70명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끊어 버렸는데,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에 의해 행한 그대로 갚음을 받게 되었습니다(7절). 왕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절단하는 것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전쟁에 패한 적군에게 엄청난 수치를 안겨 주는 행동이었습니다. 엄지손가락이 끊어지면 전쟁에서 사용할 칼이나 창, 활 등의 무기를 손에 쥘 수 없고, 엄지발가락이 없으면 걷는 것이 불가능해 전투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도니 베섹은 그가 70명의 왕에게 행했던 수치를 그대로 당하면서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는 예루살렘과 헤브론을 정복하고 그 땅에 거주하게 됩니다.
적용과 나눔
하나님은 내가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시는 분임을 언제 경험했나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은 어떤 태도를 요구하나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하나님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까지 전부 기억하시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기에 그분 앞에 숨길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기에 우리 죄를 절대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의식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해도 우리 안에는 원죄로 인한 죄성이 있기에 여전히 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를 아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죄 사함을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 즉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야 하며, 또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써 구속의 은혜를 날마다 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고 구하는 사람은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죄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 하나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묻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묻는 행위는 자신의 무지함과 연약함을 알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언제나 옳으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은 그분의 의견을 듣고 내 뜻과 비교해 어느 것이 나은지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뜻만이 온전함을 고백하며 그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 뜻에 순종할 때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 결국 승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소망하도록 성령께서 도우시고 힘을 주십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 뜻을 구하고 전심을 다해 따르길 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앞에 있음을 의식하는 코람데오(Coram Deo)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형통한 사명 성취,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

 

[사사기 1장 1절~10절]
1절 -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2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3절 -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내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자 그리하면 나도 네가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가리라 하니 이에 시므온이 그와 함께 가니라
4절 - 유다가 올라가매 여호와께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시니 그들이 베섹에서 만 명을 죽이고
5절 - 또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만나 그와 싸워서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을 죽이니
6절 - 아도니 베섹이 도망하는지라 그를 쫓아가서 잡아 그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매
7절 - 아도니 베섹이 이르되 옛적에 칠십 명의 왕들이 그들의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고 내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하니라 무리가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더라
8절 -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점령하여 칼날로 치고 그 성을 불살랐으며
9절 - 그 후에 유다 자손이 내려가서 산지와 남방과 평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웠고
10절 -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누가 먼저 가나안 족속과 싸울지 묻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유다를 지목하십니다. 유다가 시므온에게 함께 싸우자고 제안하니, 시므온이 유다와 함께 갑니다. 유다는 가나안과 브리스 족속을 무찌르고, 도망하는 아도니 베섹을 잡아 예루살렘에서 죽입니다.

 

1.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의 동역 (1~4절)

사사기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진두지휘하던 '여호수아가 죽은 후'(1절)의 역사입니다.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아는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군대 대장이신 하나님이 여전히 이스라엘과 함께하십니다. 전면적인 정복 전쟁을 마친 이스라엘 자손이 남은 땅 점령을 위해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유다가 먼저 올라갈 것을 명하십니다. 유다 지파는 광야 시대부터 앞장서서 헌신한 지파입니다(민 2:3, 9; 13:6).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를 동역자로 삼습니다.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 경내에서 유업을 분배받은 지파입니다(수 19:1~9). 이들이 공통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쳐 동역한 결과는 승리로 나타납니다.

* 유다 지파가 남은 땅 정복을 위해 시므온 지파의 도움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 일을 위해 내가 동역자로 삼을 사람은 누구인가요?

 

2. 예루살렘과 헤브론 정복 (5~10절)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공의의 재판관이십니다. 유다 지파는 남쪽으로 진군해 베섹에서 아도니 베섹을 격퇴합니다. 도망하는 아도니 베섹을 붙잡아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자르는데, 이는 고대 세계에서 전쟁 포로를 다루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가나안의 군주 아도니 베섹은 그가 포로에게 행한 방식 그대로 고통당하며 스스로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합니다(7절). 유다 지파의 승리는 가나안 땅 남부 지역에서도 이어집니다. 그들은 난공불락의 성으로 알려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갈렙의 도움에 힘입어 헤브론 지역에 거주하는 아낙 자손(세새와 아히만과 달매)을 죽입니다(10절; 수 15:14). 유다 지파의 형통한 정복 전쟁 배후에는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2절).

* 아도니 베섹의 고백(7절)을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인가요? 공의의 하나님 앞에 두려움으로 행할 일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오늘도 저와 함께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심이 가장 큰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반드시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맡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주저함 없이 달려가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아름다운 동역이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악순환의 연속

 

[사사기 2장 16절~23절]

16절 -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절 -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절 -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19절 -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20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1절 -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 둔 이방 민족들을 다시는 그들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22절 -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23절 -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여호와를 버리고

 

[사사기 2장 6절~15절]
6절 -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7절 -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절 -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절 -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절 -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11절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절 -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13절 -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14절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15절 -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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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I. 베냐민을 위한 이스라엘의 애곡 21:1-15
(1)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브아 사람들의 죄악을 베냐민 지파가 옹호했기때문에 그 죄악에 대해서 더욱 극렬한 분노를 표시했었다.
1)이스라엘 사람들은 국가 총회가 소집되고 있는동안에 '케룸'(Cherum)이라고 하는 저주의 말로 맹세하기를, 총회에 대표자를 보내지않은 성읍들은 모조리 다 전멸시키자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총회에 대표자를 보내지않은 자들은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에 대해 전혀 분노를 느끼지않으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않게 하기위해 악을 처벌하는 공통의 일에도 전혀 무관심했으며, 총회의 소집을 통고한 공통의견을 무시한 자들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총회에 참석해서 그 사건의 내용을 들었던 이스라엘 사람은 모두(여기에 그들의 후손까지 포함시키려고 하지는 않았다) 할수 있는한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어서는' 안된다는 또 한가지의 맹세를 엄숙히 서약하였다(1절). 이 맹세는 군율이 되었다. 그러나 이 맹세는 베냐민 지파를 근절시키려는 의도에서 행해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전에 가나안 족속에게 했던대로, 즉 전멸시켰을뿐만 아니라 가나안 족속과의 결혼까지 금지시켰던 것처럼 악행자들과 악행을 충동질한 자들을 그렇게 처벌하려고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2) 이스라엘 사람들은 싸움이 끝났을때 베냐민 지파가 멸망한데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여기서 다음 몇가지를 살펴보자.
1)이전에 베냐민 자손들의 죄악에 대해 그처럼 거칠고 강하게 일어났던 그들의 분노의 물결은 수그러지고 이제는 그들의 파멸에 대한 슬픔의 물결이 뒤이어 강하고 높게 일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가로되 오늘날 이스라엘중에 한지파가 끊쳤도다(6절). 그들은 죄에 대하여 분노했던 것을 회개하지는 않았지만 자기들이 행한 일의 슬픈 결과를, 즉 그들이 그 문제를 정당하고 필요한정도 이상으로 처리했다는 사실을 뉘우쳤다. 그들은 무장한 자들만 죽였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들이 농부들이나 목동, 부녀들, 아이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다음 몇가지의 사실을 명심하자.
①잘한 일 가운데서도 지나치게 한일이 있을수도 있다. 대의명분은 하나님의 뜻이었으나 결과가 몰인정한 것이 되지 않기위하여 우리의 열심을 조심스럽게 잘 통제해야 한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것은 결코 훌륭한 신앙이 아니다.
②반드시 필요한 처벌이라해도 동정심을 가지고 시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벌하시는 것을 결코 즐거워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들도 그같이 해야 한다.
③강렬한 격정은 후회를 초래한다. 화가나서 했던 말과 행동은 나중에 냉정히 생각해보면, 대개가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행동들이다.
2)이스라엘 자손들은 베냐민 자손에 대한 그들의 애통함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①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미 자기들이 저질러놓은 파괴를 슬퍼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으로 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일이 있을때마다 그들의 모든 의심과 물음, 염려, 슬픔을 다 하나님께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3절). 베냐민이 베노니가 되었다. 즉 오른손의 아들이 슬픔의 아들이 된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근심속에서 한 제단을 쌓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승리를 쟁취하는 중에 행했던 어리석음을 속죄하고, 당면해있는 곤경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슬픈 일을 당할때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②이스라엘 자손들은 림몬바위에 숨어 고통을 당하고있는 불쌍한 도피자들과 우호적인 조약을 맺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도피자들에게 사면의 조례를 전달하고 더이상 그들을 적으로 여기지않고 형제로서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공적으로 약속하며 그들을 안심시켰다(13절).
③이스라엘 자손들은 베냐민 지파가 다시 세워지고 파괴된 것을 복구할수 있도록 그들이 아내들을 구할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 주었다. 모든 두령들이 베냐민 지파를 다시 세울수 있는 방책을 찾는데 열심을 내었다. 림몬바위 틈에 숨어서 고난을 당하고있던 베냐민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을 멸하기위해 궁리하고 있으리라고 믿고 두려워하고 있을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위한 한가지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야베스 길르앗에서 결혼할수 있는 처녀 400명을 찾아냈는데 이들을 생존해있는 베냐민 자손인 사울도 이렇게 맺어진 베냐민 사람들과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 사이의 인척관계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울을 베냐민 사람이라고 한것은 비록 그 당시 새로운 가족들이 옆에 살았지만 그가 기브아와 더욱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있었기 때문인것 같다(삼상 11;4).

Ⅱ. 실로의 딸들을 아내로 줌 21:16-25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기서 아직 아내를 얻지못한채 남아있는 200명의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를 구해주기 위해 한가지 방도를 마련해 주었다.
(1) 실로에서는 그 성읍의 젊은 여자들이 아마도 초막절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여호와 절기'를 축하하여 들판에 모여 춤을 추었다. 그 절기가 초막절일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는 유대 처녀들이 춤을 출수 있는 절기는 오직 그 절기 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춤을 추도록 한것은 오락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다윗이 언약궤앞에서 춤을 추었을때처럼 거룩한 기쁨을 표현하도록 하기위해서였다. 그 춤은 매우 정숙하고 고상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들판에 나와 공공연하게 춤을 추었기때문에 그들을 해치려고 마음먹은 자들에게는 쉽게 당할수 있었다.
(2) 이스라엘 장로들은 베냐민 자손들에게 한 방법을 마련해 주었다. 포도원에 숨어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무도하러 나오거든 너희는…실로의 딸중에서 각각 그 아내를 붙들어 가지고(21절). 이것은 아주 상식을 벗어난 방법이었기때문에 후에 그들 남녀 상호간의 감정과 부모의 승인이 틀림없이 타진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였기때문에 결코 결혼에 대한 하나의 전례로 남을수는 없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서두르는 결혼은 종종 두고두고 후회를 일으키곤 한다. 강제나 혹은 사기로 이루어진 결혼에서 어떤 즐거움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3)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 처녀들의 아버지들을 달랬다. 베냐민 사람들에게는 딸을 주지않기로 맹세했다는 사실이 아마도 그들중 양심이 민감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담을 주었을 것이다. 사정이 절박하여 부득이 그렇게 하지않을수 없었다고 그들은 말했다. 이는 우리가 전쟁할때에 각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주지 못하였고(22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든 부녀를 다 죽인 것이 나쁜 일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베냐민 자손에게 딸을 주지않기로 맹세함으로써 그들을 멸절시켜려 했던, 지나치게 가혹한 자들의 행위에 대해 속죄하기를 원해서 한 말이었다.
(4) 끝으로 우리는 이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게 된다.
첫째, 베냐민 지파가 다시 정착하고 살게 되었다. 얼마 남지않은 극히 소수의 베냐민 사람들이 자기 기업으로 돌아갔다(23절). 이 일 후에 곧 그들가운데서 이스라엘의 두번째 사사로 당대에 유명했던 에훗이 나왔다(3:15절).
둘째, 이스라엘 군대가 해산하여 돌아갔다(24절). 그들은 상비군을 세우지않았고 통치방법을 바꾸려하거나 정부를 세우려고도 하지않았다. 단지 그들은 일때문에 모였기때문에 그 일이 끝나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가운데서 조용히 흩어져 각기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갔다.

# 핵심
21:1-25
이스라엘 백성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이유를 궁금해 했다(3,15절). 기드온의 경우(6:13)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사사기 전체의 역사에 비추어 볼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죄를 짓고 소돔과 고모라처럼 타락했기 때문이었다.

# 묵상
베냐민 징계의 교훈 ( 21:1-3 )
우리는 잘한 일 가운데서도 지나친 것이 있는지를 살펴야합니다. 그리고 의를 위해 남을 심판하는 경우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동정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처럼 흥분한 상태에서의 일처리는 후회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기때문입니다. 이렇게 같은 민족내에서의 전쟁은 결과에 관계없이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베냐민 징계이후의 이스라엘 ( 21:4 )
이스라엘은 하나님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죄를 짓고나서는 곧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해 변론하시고 우리의 죄를 도말시켜 주십니다(사1:18).
맹세의 중요성 ( 21:7 )
맹세는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한번 맺은 맹세의 내용은 꼭 지켜야합니다. 만일 그것을 지키지않으면 하나님과의 언약이 파기되어 신실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됩니다. 그러므로 맹세는 아무렇게나, 아무때나 해서는 안되고, 신중하게 기도하면서 결정해야 하며 꼭 지키려는 열심을 가져야합니다.
죄와 사랑의 관계 ( 21:17-23 )
죄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죄인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를 지은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시기까지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인간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절기때의 여자들의 행위 ( 21:21 )
여호와의 절기가 돌아오면 여자들은 하나님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의 때에 온몸과 마음을 다해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경건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서 영광받기를 기뻐하시며 그들에게 영광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사사기의 주제 ( 21:25 )
본서의 총주제는 바로 본절의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라는 말에 담겨있습니다. 사사기의 특징 중 하나는, 백성의 타락 → 하나님께서 이방 백성을 사용하여 그들을 치심 → 백성의 회개 → 사사들을 세움으로 구원하신 이야기가 일곱여 차례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각기 제 좋은대로 행하면 사회는 혼란해지고 도리어 진정한 자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인간의 자유는 오직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에 의해서 다스려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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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Ⅰ. 이스라엘 총회의 소집과 결의 20:1-11
(1) 레위인의 첩에 관한 일을 조사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상의하기위해 이스라엘 총회가 소집되었다(1,2절). 그들은 일치단결하여, 말하자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명예를 위하는 거룩한 열심에 불이 붙어 한마음으로 다같이 모였다.
1)그들이 모인 장소는 '미스바'였으며 그들의 모인 행렬은 미스바에서부터 여호와께서 계시는 곳까지 미쳤다. 왜냐하면 미스바는 실로에 아주 가까이 있었으므로 틀림없이 그들의 진영이 미스바에서 실로에까지 미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는 작은 성읍이었기때문에 백성들의 총회가 하나님앞에 나와야할때는 미스바를 그들의 본거지로 선정했다.
2)이때 모인 사람들은 북쪽끝에 있는 단에서부터 남쪽끝에 있는 브엘세바까지와 그리고 길르앗 땅에서(이 지파 사람들은 요단 저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공동의 선을 위한 일에 다같이 관심을 가졌다. 이 이스라엘 총회에는 백성들의 어른들이(혹은 모퉁이돌 : 왜냐하면 통치자들은 백성들 모두를 받쳐주는 모퉁이돌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사람들의 대표자로 나섰다. 그들은 각각의 지위대로 즉 그들이 다스리는 천사람, 백사람, 오십사람 혹은 열사람의 두령으로 나섰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에게 총사령관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 정도의 질서와 통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모인 것은 첫째, 의논하기 위함이었고 둘째, 싸우기위하여 칼을 뺄수 있는 용사들을 모으기 위함이었다(17절).
(2) 이 모임이 베냐민 자손들에게 알려졌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3절). 그러나 베냐민 자손들은 이 모임에 대한 소식을 듣고서 정신을 차려 그들의 평화와 명예를 위한 일을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완고하게하여 화를 내었다.
(3)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에 관한 엄밀한 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레위인은 그 사건의 경위를 상세하게 진술하였다. 그는 그들의 판결에 호소하면서 그의 진술을 끝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그리고 너희가 '규례와 법률을 알고 있은즉'(에 1:13)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7절).
(4)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서 나라의 치욕과 추문거리가 된 이 악한 성읍에 복수가 행해지는 것을 볼때까지는 지금 함께 모여있는 이 상태에서 흩어지지 말자고 결의하였다. 여기서 다음 몇가지를 살펴보자.
1)그들은 이 추악한 일이 행해졌다는 것에 대해 맹렬히 분개했다. 그들은 아무리 집에서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할일이 기다리고 있다해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명예를 회복할때까지는 집에 돌아가려고 하지않았다.
2)그들은 신중하게 나머지 백성들을 위하여 그들 군대중 일부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다(9,10절). 이의도 없이 의견이 일치했다(8절). 공동의 선언관계된 일에 있어서 여러 지파가 각기 자신의 권익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이 사실은 그들의 영광이요 힘이었다.

Ⅱ. 베냐민 자손의 대항 20:12-17
(1) 진을 치고있던 이스라엘 지파들은 베냐민 지파에게 기브아의 행악자들을 자기들이 처벌할수 있게 넘겨달라고 공정하고 정당한 요구를 하였다(12,13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악행이 행해졌다는 것에 대해서 몹시 분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분개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잃지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만일 베냐민 자손들이 그 범죄자들을 넘겨주기를 거부함으로써 범인들이 처벌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그들 자신도 공범자 즉 '사후 종범자'가 되지않는한, 베냐민 지파 전체를 습격한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2)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 사람들이 일치단결하여 범죄자들을 처벌하기위해 열심을 내듯, 베냐민 자손들은 그 범죄자들의 한편이 되고자 결심하는 지독히 완악하고 비뚤어진 열심을 내었다. 베냐민 자손들은 자신들의 명예나 본분이나 권익 등과 같은 것들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지파 사람들이 자기들의 사건에 간섭한다는 것을 언짢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행할바를 알고있었지만 그들의 형제들에 대해서 상기하게 되었기때문에 그리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통제받는다는 것을 싫어하였기때문에 그 의무를 행하려고 하지않았던 것이다.
(3) 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연합군을 대항하려고 할만큼 무모하게 자만심이 강하고 주제넘었다. 정의에 대항하는 베냐민 자손들의 싸움이 의로우신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고 대제사장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있는 사람들을 대항하는 것이며 따라서 국가의 신성한 최고의 권위를 정면으로 대항하는 행동이 되는데도 어떻게 성공하기를 기대할수 있단 말인가? 베냐민 자손들은 그들의 용사들, 특히 700명의 투석꾼부대의 재간이 그들의 수적인 열세를 메꿀수 있다고 믿었던것 같다. 그 투석꾼들은 비록 왼손잡이였지만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라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었다(16절). 그러나 이 뛰어난 명사수들도 그러한 악한 목적을 위해 싸웠을때는 크게 패배하게 되었다.

Ⅲ. 이스라엘의 패배 20:18-25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과의 두차례전투에서 모두 참패하였다.
(1) 이스라엘은 첫번째 교전을 하기전에 누가 먼저 이 전투에 나설 것인가를 하나님께 물었고 또 그에 관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무참히 패하였다. 이스라엘 군대가 기브아를 포위 공격하였다(19절). 베냐민 자손은 그 포위망을 뚫기위해 진격하였다. 이스라엘 군대는 이때 베냐민 자손을 맞이하려는 것처럼 준비하고 있다가 돌이켜 그들과 싸우려고 하였다(20절). 그러나 그들은 아주 맹렬한 기세로 정면에서 공격해오는 베냐민 자손들과 그들의 후미를 덮친 기브아 사람들사이에서 빠져 당황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22,000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군사들이 전사했다(21절).
(2) 이스라엘 자손은 두번째 교전에 앞서서 다시 하나님의 뜻을 물었는데 전보다 더 진지하게 물었다. 올라가서 여호와앞에서 저물도록 울며(23절). 그러나 이번에 그들은 누가 먼저 올라가야 하는지를 물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도대체 올라가야 할 것인지 아닌지를 물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올라가라고 명하셨다. 비록 베냐민이 그들의 형제였지만 그들의 몸가운데 부패한 지체였으므로 잘려져야 하기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자손들에 대한 공격을 허락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힘을 얻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마도 하나님의 명령보다는 자신들의 힘을 더욱 믿고서 첫번째 전투가 치러진 바로 그곳에서 반역자들의 군대에 대한 두번째 공격을 시도하였다(22절). 그러나 그들은 이 두번째 교전에서도 18,000명을 잃고 격퇴당하였다(25절). 그처럼 공명정대하고 명예로운 대의가 이렇게 두번씩이나 무참히 짓밟히는 이런 일에 대해서 도대체 무어라고 말을 해야 좋을까? 그들은 죄를 대항하여 하나님의 명예를 위한 싸움을 싸운 것이 아닌가? 다음을 살펴보자.
1)하나님의 생각은 아주 심오하고 그의 길은 바다속에 있는 것처럼 희미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서 그 이유는 다 알수 없을지라도 그 정당성은 확신할수 있다.
2)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그들에게, 또한 그들을 통해서 우리에게도 다음과 같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신 것이다. 즉 빨리 달음질하는 자라고해서 경주에 이기는 것도 아니고 강한 자라고해서 전쟁에 승리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 즉 이스라엘이 그처럼 과신했던 군사의 수효를 우리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셨던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는 결코 육신의 팔을 의지해서는 안되며, 오직 만세 반석인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
3)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를 벌하려고 하셨다. 그들이 기브아 사람들의 악에 대해 그처럼 분개를 표시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의 각 사람에게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거스린 죄가 없었는가? 혹자는 이스라엘이 이러한 참패를 당한 것을 그들이 미가와 단 자손들의 우상숭배를 반대하지 않은데 대한 책망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4)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선한 일이 잠시동안 실패할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며 또 어떤 일이 성공한다고해서 그것을 그 일의 가치때문이라고 생각하지않도록 가르치려는 것이다. 마음속에서나 세상에서는 은혜와 신앙을 위한 일이 좌절되거나 큰손실을 당하며 때로는 완전히 파산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으나 그러나 마침내는 승리하고 말 것이다. 한번 싸움에서는 질수 있으나 전체 싸움에서는 지지않는다. 정의는 한 때 넘어질수도 있으나 곧 다시 일어설 것이다.

Ⅳ. 이스라엘 지파들의 승리 20:26-48
(1) 이스라엘 연합군은 세번째 전투에서 베냐민 자손을 이기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전의 두차례 교전에서는 대의명분의 선함과 그들의 군사 수효상의 우세함, 이 두가지를 지나치게 신뢰하였다. 그들이 힘과 정의를 소유하고 있었고 이것들이 그들에게 큰 유리한 점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번째 전투에서 깨달은 의무를 소홀히 하고 위의 두가지 사실에만 너무 의존하였던 것이다.
1)그들은 이제까지는 싸움의 목적이 선하다는 것에만 너무 의존했으므로 하나님께 그의 임재와 축복을 굳이 간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연히 그들을 축복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은총을 허락받았다고 결론지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이전에는 하나님께 단지 '누가 먼저 올라가리이까'라고나 '우리가 올라가리이까'라고만 물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탄원하고 금식하고 기도하였으며 그들의 죄를 속죄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것을 고백하기위해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26절). 그들이 이러한 생각을 갖고 그와같이 여호와를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세번째 베냐민 지파를 치러 올라가라고 명령하셨을뿐만 아니라 또한 승리를 약속해 주셨다. 내일은 내가 그들을 네손에 붙이리라(28절).
2)이전에는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크게 신뢰했기때문에 복병을 숨겨두거나 어떤 술책을 쓰는 등의 어떤 전략을 짤 필요가 전혀없다고 생각하였고 순전히 그들의 강한 무력만으로도 충분히 정복할수 있으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마치 숫적으로 우세한 적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어떤 책략을 쓰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아이성에서 했던 것처럼(수 8장) 군사를 매복시켜(29절) 목표를 달성하였다.
①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떠한 방법을 동원했는가를 살펴보자. 그들의 군대는 이전과 같이 성문앞으로 나아가 기브아 성읍을 마주 대하여 섰다(30절). 이에 기브아에 진을 치고있던 베냐민 자손들의 군대가 그들을 향하여 물밀듯이 밀려나와 용감무쌍하게 그들에게로 돌진해왔다. 그러자 포위하고 있던 이스라엘 군대는 마치 베냐민 군대들의 용감한 모습에 겁을 집어먹기라도 한것처럼 등을 돌리고 다급하게 후퇴하였다. 그러나 베냐민 자손들이 모두 성에서 빠져나왔을때 매복해있던 복병들이 기브아 성을 점령하고서(37절) 이스라엘 군대에게 신호를 보내자(38,40절) 즉시 이스라엘 군대는 몸을 돌이켜 베냐민 자손들을 향하여 돌격했다. 또 이때 바알다말에 배치되어 있던 상당수의 또다른 군사들도 동시에 베냐민 자손들을 기습했던것 같다(33절). 이렇게해서 완전히 포위된 베냐민 자손들은 사태가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제 그들은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낙담하게 되어 싸울 용기를 잃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그들을 쳤다.
②이 세번째의 싸움에 대해서 다음 몇가지를 살펴보자.
㉠베냐민 자손들은 싸움을 시작하면서 이 날도 자기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때때로 하나님은 사악한 자들이 더욱더 쓰라린 실패를 맛보도록 하기위하여, 그들로 승리하게 하시고 희망에 부풀어있도록 두신다. 그들의 기쁨은 참으로 짧고 그들의 승리도 잠시뿐이다.
㉡베냐민 자손들이 재앙이 그들에게 가까이 이르렀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34절).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이번싸움에서 그들의 역할을 아주 잘 수행했다해도 이 싸움의 승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공로로 돌려야한다(35절). 하나님께서 베냐민 자손들을 대적하여 싸워주셨으므로 그들은 이렇게 행했다. 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에워쌌더니 기브아앞 동편까지 쫓으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43절).
(2) 그들은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고 죄인들을 처형하였다.
1)제일 먼저 추악한 범행의 온상지인 기브아가 파괴당하였다.
2)군대가 들판에서 완전히 참패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다.
3)들판에서 도망친 자들은 추격을 받아 도망치는 도중에 죽임을 당하였다.
4)집에 머물러있던 자들까지도 죽임을 당하였다. 본문에 의하면 이렇게해서 모든 베냐민 자손들가운데서 림몬 바위에 숨어서 넉달을 지낸 600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였던것 같다(47절).
이 기브아의 사건을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타락의 본보기로서 두번이나 언급하였다. '저희는 기브아 시대와 같이 심히 패괴한지라'(호 9:9).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의 시대로부터 범죄하였거늘 흉악한 족속을 치는 전쟁을 거기서 면하였도다'(호 10:9).

# 핵심
20:1-48
레위인과 그의 첩에게 행한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때문에 이스라엘 민족간에 처절한 피의 내전이 일어났다. 사사 시대에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처럼 단합된 행동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1,2,8,11절). 죄에 대한 징벌이 부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동족을 죽인다는 일은 그들에게 큰슬픔을 불러일으켰다(23절). 이 일에 있어서도 가나안 족속을 정복할때와 같이(1:1,2) 유다 지파가 앞장섰다(18절).

# 묵상
공동체의 다툼의 원인 ( 20:3 )
이는 서로 자기들의 이익만을 주장하기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느누구라도 특정한 사람 편에 서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편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결정하고 행동하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그러면 다툼이나 질시가 사라집니다.
하나되는 교회 ( 20:11 )
교회가 하나되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두고 뭉쳐야 가능합니다. 즉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될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한분이시고 주도 하나이시며 성령도 하나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랑의 줄로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지나친 이기주의의 결과 ( 20:13, 14 )
서로간에 충돌을 낳게합니다. 이처럼 잘못을 인정하지않는 이기주의는 교만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서로 돕고 서로 인정하는 삶을 통하여 성도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베냐민 자손의 행동 ( 20:15, 16 )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않고 다른 여러 지파와 싸우려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힘은 자신들의 악한 행동을 응징하려는 연합군을 방어하는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들의 힘을 의존하면서 더욱 죄의 강도를 높여갑니다. 그들은 무한히 강하신 분(고전10:22)을 진노케하여 결국 파멸하게 됩니다.
전쟁의 의미 ( 20:17-35 )
이스라엘 연합군과 베냐민 지파의 전쟁양상을 보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연합군 측에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하나님의 지시대로 전쟁에 나간 그들은 두번이나 패배했습니다. 세번째 싸움에서 베냐민 지파는 거의 전멸되고, 연합군은 그들을 전멸시킨 것을 후회합니다. 이러한 싸움의 경과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자기의 소견대로 행하는 것의 결과가 어떠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패후의 이스라엘 백성들 ( 20:23 )
이들은 자신들이 계획하였던 일이 실패로 돌아가자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일이 실패할때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습니다. 일의 실패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것과,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죄악을 깨닫게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먼저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뢰해야 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살피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두번째 패배후의 이스라엘 ( 20:26 )
울며 금식하고 저물도록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스스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때까지 기다리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에는 먼저 하나님의 의도를 감지할수 있는 경건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전쟁에서의 승리원인 ( 20:35 )
하나님께서 이기게하신 것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탄과의 싸움에서도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즉 승리는 성도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며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교만한 자의 최후 ( 20:36-48 )
완전히 패망하게 됩니다. 자기들의 힘으로 승리를 한것처럼 여기는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 모시기를 싫어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받게됩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입니다(잠16:5).
불의를 행한 자에 대한 성도의 태도 ( 20:46-48 )
성도는 이렇게 잘못한 자를 불쌍히여겨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야하며(고후2:6-8),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또한 이때에 혈기나 악독이나 분노를 행하지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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