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는 요나

[요나 1장 17절]
17절 -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요나 2장 1절~10절]
1절 -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절 -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절 -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절 -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절 -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절 -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절 -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절 -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절 -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절 -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 주제별 목록 작성
바다에 던져진 요나
1:17절 :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게 됨
2:2절 : 고난 가운데 부르짖음
2:3절 : 고난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함
2:4절 : 새로운 고백을 드림
2:8-9절 : 서원을 갚을 것을 약속함

* 도움말
1. 스올(2절) : 죽은 사람들이 가는 처소 혹은 무덤을 뜻하며, 영적으로는 형벌과 고난의 장소를 말한다. 여기서는 물고기의 뱃속을 말한다.
2. 산의 뿌리(6절) : 요나가 빠진 바다의 가장 밑바닥을 가리킨다.
3. 구덩이(6절) : 죽은 자들의 처소인 ‘무덤’을 가리키는 문학적 표현이다.

* 말씀묵상
1. 부르짖는 요나
요나는 고난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며, 고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요나는 자신이 자초한 고난의 상황을 ‘주의 목전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4절). 그러나 그는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는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요나는 바다의 심연 속에서 겪은 극심한 고난을 통해 올바른 정체성을 회복합니다.

2. 회복된 요나
요나의 체험은 단순히 바다 속 심연의 고통과 물고기 뱃속에서의 부자유함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들이 겪을 심판의 고통을 요나가 몸소 경험케 하심으로써, 그 심판을 피할 길을 마련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그가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스올의 뱃속에서의 고통은 요나를 회개의 길로 인도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결국 요나는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부르짖어 기도하며 자신의 서원을 새롭게 갱신하고 구원의 하나님의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요나가 하나님께 고백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4, 9절).
* 깊은 묵상
1. 당신은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만을 쏟아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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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종하는 요나

[요나 1장 1절~16절]
1절 -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절 -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절 -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4절 -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절 -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절 -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7절 -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8절 -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9절 -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절 -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11절 -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2절 -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절 -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절 -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절 -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절 -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 주제별 목록 작성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1절 : 요나를 부르심
2절 : 니느웨를 향해 회개를 선포하심
도피하는 요나
3절 : 여호와의 낯을 피함 / 욥바로 내려감 / 다시스 행 배를 탐
5절 : 배 밑층으로 내려가 깊은 잠이 듬

* 도움말
1. 니느웨(2절) : 티그리스 강 상류 동쪽에 위치한 앗수르의 수도이다.
2. 여호와의 얼굴(3절) : ‘심판을 예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칭한다
3. 다시스(3절) : 스페인 서남단에 있는 지브로올트 근처의 도시로서, 니느웨와는 정반대 방향에 있다.

* 말씀묵상
1. 회개를 원하시는 하나님
악은 처벌받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악독이 가득한 니느웨를 보고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전에 회개의 기회를 먼저 주십니다. 심판보다는 회개의 기회를 통해 악을 버리고 열방들이 주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요나를 부르셨고 그들에게 전해야 할 메시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부르심을 받은 요나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 불순종하는 요나
요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거슬렀습니다. 니느웨는 잔인하기로 소문난 앗수르의 수도였기 때문입니다. 전쟁 때 앗수르인들은 초토화 전술을 써서 적의 성읍과 들판을 완전히 파괴한 후 닥치는 대로 사람을 살육 했습니다. 요나는 극악무도한 앗수르인들에게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부르심을 받은 곳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도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으로 결국 그가 제비에 뽑히게 되었습니다. 풍랑의 원인이 자신의 도피 때문임을 인정한 요나는 이제 심연의 바다 속으로 들어갑니다.

[도움질문]
*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 그 내용을 살펴보십시오(1-2절).
2.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합니까?(3, 5절)
* 깊은 묵상
1. 당신은 지금 하나님의 뜻에 합한 곳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까?


제공:프리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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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가 불평했던 이유는(욘 4:1-4)?

패역한 니느웨의 회개로 인한 심판의 유보 때문에.
요나는 하나님의 초월적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깨닫지 못하고 배타적이고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만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고 만민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박넝쿨이 주는 교훈은(욘 4:5-11)?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귀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합당함을 가르침.
이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은 전우주에 미치며 하나님의 구원 대상은 오직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훈을 통해 만민에 대한 사랑과 구원 의지를 계시하시고, 인본주의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신앙 자세를 꾸짖고 계십니다.


출처 : 갓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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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성도의 자세는(욘 3:1-4)?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함(삼상3:10).
믿음으로 순종해야 함(히11:8-10).
불러주심을 감사해야 함(골3:15).
환경을 탓하지 말아야 함(아16:24).
사리 사욕을 버려야 함(갈5:13).
부르심을 받은대로 행해야 함(고전7:17).
부르신 이에게 충성해야 함(고전4:2).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함(엡4:1-3).


요나가 회개를 선포했을때 니느웨의 반응은(욘 3:3-10)?

왕과 백성이 두려움에 떨었고 니느웨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남.
복음의 역사는, 아무리 강포하고 호전적인 사람들일지라도 무릎을 꿇게 합니다.
이 회개와 구원은, 이스라엘의 배타적 선민 사상을 지적하고 복음의 우주성 및 구원의 보편성을 보여 줍니다.


출처 : 갓피플

회개 기도를 통한 요나의 결단은(욘 2:1-10)?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고백하고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며 소명을 감당할 것을 결단했음.
이와 같은 요나의 결단을 통하여, 인간의 불순종과 실패까지도 선하게 사용하시어 자신이 계획하신 것을 결국에는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치 않다가 저주를 받은 자들은 누구인가(욘 2:1)?

사악한 자(욥10:15).

악을 선하다고 하는 자(사5:20).

여호와께 패역한 자(사30:1).

거짓되고 어리석은 목자(렘23:1).

위선자, 외식하는 자(마23:13).

부만 탐하는 자(눅6:24).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신27:26).

우상 숭배자(신27:15).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자(말3:9).

성도를 핍박하는 자(신30:7).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고전16:22).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갈1:8).

육체를 따라 행하는 자(벧후2:10).


출처 : 갓피플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은 무엇인가(욘 1:1, 2)?

하나님께로부터 전달된 계시를 선포하는 것.
선지자는 그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붙잡힌바 되었기에 전폭적으로 그분의 주권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요나는 선지자적 사명을 무시한채 이방 전도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요나의 어떤 신앙 자세가 소명을 거절하게 했는가(욘 1:3)?

요나의 배타적이고 편협하며 의식적인 신앙 자세.
그는 결국 보편적인 만민구원 사상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셔서 이스라엘의 잘못된 선민 의식을 깨뜨리며, 하나님의 구원 대상에는 민족적, 지역적 제한이 없음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거절한 요나를 위해 예비된 장소는(욘 1:17)?

바다의 큰 물고기 뱃속.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배타적인 특권 의식을 깨뜨리고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대자연을 직접 주장하셨습니다.
이 일로 요나는 현재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 때문임을 고백하고, 자신의 징계가 마땅함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요나서를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진리는(욘 1:1)?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자신의 뜻을 포기하시지 않습니다(롬8:31-39).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으시며 인간 모두를 구원하길 원하십니다(요3:16).
하나님의 눈을 피할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등진 자에게는 그 어느곳도 안식처가 될 수 없습니다(시139편).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자연의 변화를 주도하십니다(막4:39-41).
모든 재난의 궁극적인 해결 방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만 가지고 계십니다(시73:28).

 
불순종의 대가는 고난입니다. 고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욘 1:1)?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게 됨(시51:13).
자신의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눅15:21).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며(욥42:2-6), 더욱 성숙한 신앙의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출처 : 갓피플

1. 니느웨에 대한 회개의 선포와 그 결과

1) 당시 앗수르인들의 종교관
히브리인 요나의 멸망 선포에 대해 왕과 온 국민들이 회개했다. 그 이유는 죄악을 돌이키지 않으면 40일 후에 멸망 당하리라는 선고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방 앗수르인들이 이스라엘 선지자의 선포에 대한 응답과 회개는 가능한 것일까? 그들의 종교관을 살펴보자면 그들은 여러가지 신들을 우상으로 섬겼다. 특히 바벨론으로부터 전수받은 태양신(사마스), 달신(신), 우뢰의 신(아달), 여성의 신(이스달)들을 섬겼다. 그러나 그들이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신은 '앗수르'라고 불리는 군신(軍神)이다. 군대의 신, 전쟁의 신으로서 그 신의 명칭이 앗수르 국가의 명칭이 된 것이다. 그들은 그 '앗수르' 신을 팔레스틴이나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어떤 신들보다 강한 존재로 자랑했었다(사10:10). 그렇다면 생면부지 이스라엘의 한 선지자의 선언에 온 나라가 회개한 요인은 무엇일까? 먼저 베옷을 입고 온 날 사람들과 왕까지 심지어는 가축들까지 금식하며 회개하는 풍습은 비단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회개 풍습이 아니다. 고대 동양인들이 국가의 큰 재난이나 재앙이 닥치면 행했던 신께 대한 제사 의식 중 한 가지이다. 그 다음 그들은 특이한 신적 존재에 대해 경외심을 나타내는 풍습이 있었다. 앗수르에는 신탁을 받은 술사들이 종종 예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므로 그들은 갑자기 당돌하게 나타나 담대하게 앗수르의 운명을 선포하는 요나에게 어떤 강한 인상과 두려움을 지니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앗수르인들의 회개는 요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돌멩이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구원의 능력이 요나의 선포 속에서 나타났기에 완악한 니느웨 사람들도 그 죄악을 회개했을 것이다.

2) 하나님 뜻이 변혁되는 예
요나는 하나님께서 애초에 니느웨를 멸망시키실 뜻을 돌이키신 사실에 심한 의문과 불만을 나타냈다. 과연 하나님께서 원래 정하신 뜻을 돌이키시는 분이신가? 그 경우는 어떤 때이며 그와 같은 일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지와 조화를 이루는 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니느웨에 대한 멸망을 선고하신 후 그 뜻을 돌이키신 예는 유일한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예는 하나님의 섭리에 여러번 발견된다.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의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렘18:8)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는 그 예가 수없이 많다(시78:38 ; 대하12:12). 이와 같은 하나님의 처사는 그 절대적 구속과 심판의 섭리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절대적인 계획의 일환이 된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이미 악인들이 돌이켜 회개할 사실까지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신30:2, 3).

2. 요나의 불만

1) 섭리에 대한 인식의 한계
요나는 대단한 불만을 나타냈다. '심히 싫어하고'라는 말은 정서적으로 혼란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불만의 감정을 지니게 됐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반드시 심판하사 멸망시키실 것을 크게 기대했던 것이 분명하며 니느웨 민족이 그가 선포한 회개 명령을 불복종하므로써 심판 당할 것을 바랐을 것이다. 그와 같은 기대와 상반된 결과를 하나님께서 이행하신 고로 극한 불만에 쌓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요나의 불만은 당시 율법의 '인과응보' 법칙에 물든 유대인들의 편협된 의식을 발로다. 우리는 '악인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벌하신다'는 의식을 욥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의인은 흥하고 악인은 반드시 망한다는 원리는 맞는 이치다. 그러나 악인도 회개만하면 망하지 않는다는 삼차원적인 원리를 하나님의 용서의 섭리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는 악인만이 반드시 멸망 당할 것이다.

2) 사랑에 대한 이해부족
요나의 불만 요인은 더 적극적인 요소가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외에 이방인이자 원수인 앗수르 민족에게도 관심을 지니고 계신다는 점이 요나의 불만의 핵심이다. 니느웨 사람들을 아끼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이 그야말로 당시 요나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처사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 선민들만 사랑하시고 이방 민족들은 미워하셔야만 했다. 아니 아예 관심을 보이시지 않아야 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관심을 두시고 더 나아가 그들을 당신의 창조와 통치와 구원의 은혜 안에 포함시키려고 하신다는 사실에 경악과 거부감을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은 불만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선민특권 사상, 또는 이방 민족 배타 사상의 발로다. 그리스도 예수는 마20:1-16의 '포도원 품꾼 비유'에서 유대 민족의 편협성을 잘 지적했다. 인자한 포도원 주인이 늦게 온 자들로 부터 똑같은 품삯을 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20:15)고 물은 예와 같다. 하나님의 한없는 초월적인 사랑은 유대인이든 앗수르인이든 차별없이 적용된다는 진리를 요나는 이해치 못했던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회개한 요나에게 하나님은 동일한 사명을 부여하신다. 직접적으로는 개인 요나에 대한, 간접적으로는 이방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본 연구를 통해 드러난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니느웨로 간 요나의 선포에 니느웨의 국가적 회개를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대비시켜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에 대해 선민 사상에 젖어 있는 요나의 편협한 배타적 이기주의 사상을 하나님은 깨뜨리신다.

1. 니느웨로 간 요나(욘3장)
요나는 완전히 버림 받았고 또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는 행동하기를 거절했으며 사실상 그의 임무를 상실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올바른 생각으로 돌아왔으며 그의 잃어버린 소명에 대한 또 한번의 부르심이 있었다. 요나의 재임무는 무엇인가?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했는가? 말씀에 대한 니느웨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1) 다시 부르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욘3:2) 하셨다. 그러나 큰 성읍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치는 것은 요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욘3:4). 요나가 전하는 말에는 자비로움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은 하였지만 그 마음속에는 여전히 니느웨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차 있었다(욘4:1-3). 그러나 니느웨의 회개 운동은 매우 신속하였고 복잡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은 요나로 향한 목적을 성취하기가 더 어렵고 수고스러웠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하신 명령은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2) 돌이키시는 하나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한 요나의 외침을 듣고 니느웨 사람들은 백성으로부터 왕에 이르기까지 모두 즉각적으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였다. 이들의 진정한 회개가 하나님을 향했을때 하나님은 그의 진노를 돌이키셨다(욘3:9). "하나님을 믿고"(욘3:5)라는 구절에서 이전의 니느웨 백성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요나의 외침은 단순히 닥쳐올 재앙을 선언한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라'는 전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요나를 통해 하나님은 이방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그들도 구원할 의도를 갖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2. 요나의 불평(욘4:1-3)
요나는 하나님이 니느웨의 회개를 받아들여 재앙을 내리시지 않음을 보고 불평을 하고 있다. 여기서 요나는 니느웨가 재앙을 받지 않고 건재함을 볼 바에야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한다. 요나가 노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요나의 불평이 부적절한 이유는 무엇인가?

1) 요나의 불평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요나는 그 날짜까지 지칭하며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했다(욘3:4). 그러므로 자연히 그 예언자로서의 신임도는 과연 그 사건이 이제 일어날 것이냐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만일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의 예언은 잘못된 것이 되고 그의 선지자로서의 명성은 니느웨 백성과 그의 동족에게 있어 치명타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이런 그의 곤경에 처한 이기심의 추구로 말미암아 그는 니느웨가 멸명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여기서 니느웨의 회개는 이스라엘의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또한 많은 이방인들에게 북돋아 주고 장려하는 힘이 되었다. 이것은 요나의 편협한 선민 사상을 깨뜨리는 것이었으므로 요나의 불평이 극에 달하게 된다.

2) 요나의 기도
요나의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 하나님께서 낙담에 빠진 그를 어떻게 구원해 주실 것인가에 주의하지도 않고 구원을 청하지도 않은 채 다만 자기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할 뿐이었다. 때때로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생각될 때 우리는 실망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삶의 현장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신다.

3. 하나님의 가르치심(욘4:4-11)
니느웨의 회개로 심히 괴로워한 요나는 성읍 동편 조그마한 산등성이에서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박넝쿨 그늘에 앉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것인지 시무룩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박넝쿨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가? 박넝쿨이 의미하는 바와 요나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1) 박넝쿨 교훈
전날 소명을 저버린 요나에게 하나님은 대자연을 동원하여 엄정한 재판장으로 나타나셨지만 이제 종교적 편견에 빠져 불평하는 요나에게는 박넝쿨을 소재로 실물 교육을 시키는 자애로운 부모와 교사로서 나타나신다. 하나님은 요나가 햇볕 때문에 당하는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고 박넝쿨을 준비하셨다. 하나님이 박넝쿨을 준비하신 것은 요나가 빠져 있는 악 속에서 그를 빼내려 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나는 니느웨가 구원받는 것을 심히 싫어하여 화를 냈다. 하나님은 그러한 악에 빠져 있는 요나를 깨우치기 위해 박넝쿨을 준비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준비한 박넝쿨을 니느웨 사람과 비교하신다. 식물 하나가 이렇게 소중한 것인데 하물며 니느웨에 있는 수천 명의 사람과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가르치신다. 여기서 하나님은 박넝쿨을 니느웨에 사는 어린이와 동물에 비교함을 통해 니느웨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요나에게 인식시키고 있다.

2) 요나의 상징
요나서에서 보여 주는 두가지 중요한 부분이 있다. 첫째로 요나는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사실이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 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12:40)는 신약성경의 인용을 통해 요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매장 그리고 그의 부활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로 요나는 이스라엘, 즉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세계 강국에 의해 삼켜졌으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올려질 이스라엘을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을 때 요나를 니느웨로 가는 것을 방해한 것은 그의 자존심과 이스라엘의 선민 사상이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던 요나와 이스라엘에게 보여 주신 귀한 교훈이 있다. 물고기 뱃 속은 이스라엘과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보여 주는 하나님의 채찍이다. 그러나 요나를 다시 살리시고 재임무를 주시며 그의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으시는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통해 오래 참으시는 그분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요나의 불순종과 고뇌

1) 당시 앗수르 니느웨의 위용
고대 희랍인들과 로마인들은 니느웨를 세계에서 가장 큰 성읍으로 불렀었다. 그들은 니느웨를 '니노스'(Ninos) 또는 '니누스'(Ninus)라고 불렀는데, 그 규모를 살펴보려면 약 3일에 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라보(Strabo)에 의하면 니느웨는 아투리아스(Atourias) 벌판에 위치했는데 그 규모는 바벨론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바에 의하면 그 둘레가 약 19km나 된다고 한다. 내용적으로는 네 군데의 위성 성읍으로 구성되었는데 티그리스, 고슬, 가슬이라 불리는 강줄기 가운데 있으며 한쪽 방향에 큰산들이 있어서 인위적으로 댐을 만들어서 지하 수로를 통해 성안으로 물을 공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수로의 거리만 해도 50km가 넘는다. 앗수르의 사르곤 2세 때(B.C. 722-705) 앗수르 제국이의 서울이 되었고, 산헤립(B.C. 705-681)과 그 아들 에살할든(B.C. 681-669), 손자 아술바니팔(B.C. 669-626) 등에 의해 더욱 웅대한 성읍으로 발전했다. 각국에서 끌려온 전쟁 포로들과 조공들이 줄을 이루었고(왕하15:20 ; 렘50:17 ; 호10:6) 22,000장의 토판 문서를 소장한 거대한 도서관도 있었다고 한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때는 아마도 앗수르단 3세(B.C. 771-754)가 다스리고 있었을 때가 아닌가 추정된다.

2) 요나의 불순종의 이유
앗수르 제국은 이스라엘 편에서 볼 때 두렵고 혐오스러운 침략자들이요, 이교도들이었다.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처음 침공한 때는 요나 시대 때보다 거의 100년 전쯤인 B.C. 850년대였다. 살만에셀 3세가 하맏으로 진군하여 다메섹을 비록해 이스라엘까지 침공하려고 했을 때 아합 왕이 연합군으로 참여하여 살만에셀을 격퇴시킨 일이 앗수르와의 첫 싸움이었다(왕상20:36). 그 후 842년 살만에셀의 재침공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기 시작했으며, B.C. 745년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점령 당했으며, 살만에셀 4세에 의해 멸망 당하게 된다. 요나는 그와 같은 앗수르 침략기의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은 것이다. 물론 당연한 것이지만 개인적인 감정으로도 요나가 앗수르 제국의 부흥보다 멸망을 더 원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요나의 불순종과 고뇌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의 고뇌였을 것이다. 앗수르의 부흥은 이스라엘의 패망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루터(Luter)는 요나서 주석에서 말하기를 "율법도 예배도 선지자도 없는 원수 국가인 앗수르 제국에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전하는 것보다 요나는 죽기를 택했을 것"이라고 했다. 요나 시대로부터 700여년이 흐른 A.D. 1세기경 초대 교회 시대의 사도 베드로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하지 못한 사실만봐도(행10장) 당시 요나의 입장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처럼 요나는 하나님의 은총이 이스라엘을 떠나 당시 세계의 실권을 쥐고 있는 앗수르로 옮겨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고뇌한 끝에 명령을 어기는 쪽을 부득불 택한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2. 큰 물고기와 관련된 문제들

1) 큰 물고기의 정체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보내신 큰 물고기에 의해 삼키우게 됐다. 그 사건은 오히려 요나에게 구원이 된다. 즉 풍랑이 심한 바다에서의 익사에서 보존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큰 물고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흔히 고래라고 생각하는데 칠십인역에 번역된 kh'to"(케토스)는 정체가 불분명한 '바다 괴물'(창1:21 ; 욥7:12 ; 시74:13)을 뜻한다. 고래는 지중해에서는 보기가 드물며 그 목구멍으로는 작은 프랑크톤이나 새우의 무리만 삼킬 수 있다. 즉 사람을 삼킬 수가 없는 것이 고래의 식도 구조다. 그러므로 산 사람을 통체로 삼킬 수 있는 바다 생물은 상어나 바다개 정도이다. 특히 상어는 물개, 사람, 다랑어 등 닥치는대로 삼키는데 기록에 의하면 소화되지 않은 20여 마리의 큰 다랑어(1마리당 20-30kg의 무게를 지님)를 삼킨 상어를 잡은 사실도 있고 말 한마리를 삼킨 상어를 잡은 기록도 있다고 한다.

2) 큰 물고기 뱃 속에서 살아날 가능성
과연 요나처럼 삼일 낮밤을 물고기 뱃 속에 있다가 살아날 가능성은 과학적으로 있을 수 있을까? 기록에 의하면 1750년대 프랑스 서부 해안에서 폭풍우로 인해 한 선원이 군함에서 바다로 추락한 사고가 벌어졌을때 금시 상어가 삼켰다고 한다. 이에 선장의 명령으로 그 상어를 추적하여 대포로 사격을 가하자 상어는 그 삼킨 선원을 토해냈는데 약간의 상처만 입고 무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3일간씩 물고기 뱃 속에서 지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요나와 관련된 사건들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그리스도의 표현대로 '요나의 기적'으로 봐야 한다. 즉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의 한가지로서 과학으로 규명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요나의 기적을 사실로 인용하셨으며, 그 기적을 무덤에서의 부활 기적의 한 모형으로 말씀하셨음을 유의해야 한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본 서는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살아난 어느 선지자의 기적적인 이야기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중심에는 모든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확증시켜 주는 위대한 사상이 흐르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본 연구를 통해 니느웨로 가라는 명을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가는 요나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의 인위적 결정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살펴보자.

1. 다시스를 향한 요나(욘1:1-3)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외치라는 명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간다. 요나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인가? 왜 요나는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여 다시스로 가고 있는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어떠했는가?

1) 잘못 인도된 애국열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일어나 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달아나려고 곧바로 갔던 것이다(욘1:3).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나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그들의 죄를 깨우치라고 요나에게 명하셨다. 그런데 요나는 오히려 니느웨성이 회개하고 돌아섬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왜냐하면 니느웨 성을 그냥 두어 그들이 멸망한다면 그의 사랑하는 조국 이스라엘은 그 적국의 손에 의해 파멸될 염려가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요나는 깊은 애국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족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애국열은 오도된 것이었다.

2) 주의 낯을 피하여
이 말 속에는 놀라울 정도의 단순성이 내포되어 있다. 여기에 나타난 행위 속에는 놀랍게도 어린애 같은 순진성이 있다. 동쪽으로 가야 했던 요나는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으며 곧바로 내려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그러나 어떤 장소를 옮겼다고 해서 그것이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낯을 벗어나게 할 수는 없다. 야곱은 벧엘에 있었을 때 비록 그가 그것을 몰랐으나 주도 그곳에도 계셨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결국 주의 낯을 피하려는 노력은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게 되었다.

2. 배 위의 요나(욘1:4-1:16)
요나가 피하여 달아난 후 하나님께서는 즉시 역사하시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폭풍을 보내신 것이다. 그러나 바다 속에 던져진 요나는 오히려 하나님의 손에 잡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방법을 좇지 않을 때 어떤 이상한 방법을 통하여서라도 우리를 따르게 하신다. 자연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 것이가? 위기를 만난 선원들과 요나는 역경 속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1) 자연과 하나님
불신적인 선지자 요나를 징계한 '폭풍'(욘1:4)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속에는 히브리적인 직접성과 힘이 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여기에서 단지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시적이고 신학적인 표현을 본다고 말하는데 만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대단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무신론자는 자연은 실체이고 신은 하나님의 허구라고 생각한다. 합리적 종교적 견해를 가진 자들은 자연 안에서, 또한 자연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다.

2) 두려움, 제사 그리고 서원
역경의 때는 이따금 우리에게 신앙을 가져다 준다. 우리는 오히려 편안할 때에 감사하지 않는다. 폭풍이 그치자 선원들은 훌륭하게도 여호와를, 폭풍을 잠잠케 하신 자로 구원의 하나님으로 받아 들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종교적 실행의 3가지 양상을 볼 수 있다. 첫째, 경외심이다. 선원들의 행동과 감정에 미신적인 요소가 없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영원자들 두려워하였으며 자신들이 바다를 잠잠케 하는 영원자의 능력에 사로잡혀 있다고 느꼈다. 둘째, 희생이다. 그들이 바친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감사 제물이었다. 그들이 신실하였을진대 이러한 제사는 그들의 전인격과 생애를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셋째, 서원이다. 과거에 경험한 하나님의 자비를 통하여 그들은 미래에도 그와 같은 자비를 기대하였을 것이다.

3. 요나의 회개(욘1:17-2:10)
요나는 바다에 던져진 후 곧 큰 물고기에 삼켜지게 된다. 그는 물고기 뱃 속에서 사흘을 지내면서 오히려 하나님께 구원을 감사하는 진실한 기도를 드렸다.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을 품을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요나는 구원을 간청하는 기도가 이미 받은 구원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요나가 물고기 뱃 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욘2:1)로 인식한 이유로 무엇인가? 고난 중에 요나는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욘2:4)고 고백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1) 그의 하나님
하나님을 생각하는데 있어서 요나는 민족적인 계약과 개인적인 선택과 그의 예언적 소명과 헌신에 따라서 그분을 '그 하나님 여호와'(욘2:1)로 인식했다. 그는 여호와 면전에서 도망치려고 했었는데도 하나님을 그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다. 그는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깨달았다. 그의 뒤 이은 기도는 열심 있는 이스라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던 시편의 많은 회상의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다. 욘2:4에서 그는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솔로몬에게 한 약속을 알고 있었다(왕상8:38). 그는 성전과 언약궤의 궤의 뚜껑과 천사들의 그림자와 모세에게 약속한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에서 네게 이르리라'(출25:22)는 말씀을 생각한다. 그는 이 말씀을 가지고 그 위에 그의 영혼을 세우며 그의 무섭던 환경들을 떨쳐버리고 평화로 들어간다.

2) 고난의 가치
우리는 요나의 기도 속에서 고난의 가치를 발견한다. 고난은 인간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한다. 즉 영적인 자각으로 하나님을 의식하는게 한다. 큰 고난의 그림자에 쌓여 있을때 영혼은 절망에 빠진다. 징계를 받을때 그는 자신의 징계의 필요성을 느끼며 징계가 누구에게서 왔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요나가 피하여 달아난 후 하나님께서는 즉시 역사하시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방법을 좇지 않을때 어떤 이상한 방법을 통하여서라도 따르게 하신다. 본 연구는 요나가 어떻게 자신의 무력함을 알게 되었는지 말해주고 있다. 오랜 기도 끝에 요나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구원은 여호와께 말미암나이다'라고 고백한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유롭게 해주셨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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