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보답과 보응 4:1-3
구름기둥과 불기둥같은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애굽인들에게는 괴로운 날이 될 것이요, 하나님을 따르는 신실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날이 이르리니. 곧 예수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날이 이른다는 것이다.
(1) 그들 모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자기를 거스려 배반하는 자들을 태워버리시는 불이다. 그의 오시는 날은 '풀무불같이 탈' 것이요 진노의 날, 맹렬한 분개의 날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성품에 대해 완전히 알고 계신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아시고, 모든 사람의 행동도 아시며, 사악하게 행하는 자들도 간파하신다. 그들은 이 불에 그루터기같이 될 것이요, 살라지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될것은 그들 스스로가 이 불에 타기 쉬운 물질인 그루터기이기 때문이며, 전적으로 그들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불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들은 삼켜버리는 불앞에 그들 자신을 찔레와 가시나무같이 두는 것이다(사 27:4,5).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만한 바리새인들과 악을 행한 유대인들에게 공포와 정죄를 말씀하실때 이루어졌다. 그때 그는 장로들의 유전의 찌꺼기를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더한 부패한 해석들을 태워버리시고자 땅위에 불로 오셨던 것이다. 예루살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했으며, 유대나라도 말살되고 말았다. 이것은 주로 다음과 같은 점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다. 즉 우리의 구주께서는 그날들이 '형벌의 날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눅 21:22). 이 말씀은 확실히 심판의 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2) 그들 모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또한 그를 충성스럽게 섬기는 자들을 기쁘게 해주시는 빛이다(2절). 주를 경외하고 그의 이름을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자비와 위로가 여기에 준비되어 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다가오는 그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맑고 밝은 날이 될 것이요, 땅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소생하는 것이 될 것이다. 소알이 평지의 성들로부터 은혜롭게 구별되어졌을때 그 지경위에 솟아오른 해는 특히 주목할만하다(창 19:23). 사람들이 두려움으로인해 실족할때에는 그들의 구속이 가까웠음으로 인하여 기쁨으로 머리를 들게하여야 한다(눅 21:28). '의로운 태양'을 통해 이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확실히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시고자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에 적용되어졌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다. 그는 '사람들의 빛'(요 1:4)이시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의 태양처럼 사람들의 영혼에게도 빛이시다. 태양이 없이는 세상이 토굴감옥이 되고 말듯이 '그리스도의 얼굴' 에 비치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없이는 인간세계 그 자체도 암흑이 되고말 것이다. 그는 '의의 태양' 즉 의로운 구주이시다. 의로움은 때때로 자비 혹은 온화함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다정한 자비였다.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으로 다스림을 받는 자들은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그의 사람이 미친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의 이름을 경외하는 모든 자에게 영광스럽고 환영받는 일출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어두운 세상을 태양처럼 밝히실뿐만 아니라 병들어 앓고 있는 세상을 고치시기 위해서도 오셨다. 유대인들에게는 "태양이 떠오르면 질병들도 줄어든다"는 격언이 있다. 그리스도는 위대한 의사로, 또한 위대한 약으로 세상에 오셨다. 즉 길르앗의 향유와 의사가 되신다(렘 8:22). 땅위에 계셨을때 그는 '백성중에 모든 약한 것과 모든 병든 것을 고치시는' 선을 행하면서 마치 태양이 돌듯 순회여행을 계속하셨다. 그가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것은 사람들의 영혼의 질병을 고치시려고 세상에 오신 위대한 뜻의 한 예이다. "고침을 받은 자들이 일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처럼 너희도 나가야할 것이라." 감옥수들이 빛을 보고 자유를 얻기위해 그들의 토굴감옥에서 나오듯이 사람의 영혼은 죽을때에 그들의 몸에서, 부활때에 그들의 무덤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너희도 마찬가지로 성장해야할 것은 건강하고 자유롭게 회복되어졌기 때문이라. 너희는 지식과 은혜로 지혜를 얻고 선하게 되어진 사람들은 그 은혜로인해 보다 지혜롭고 보다 선하게 된다. 그들의 성장은 빠르고 강하고 알맞게 자라난 '외양간의 송아지들'에 비교되어 진다. 혹자는 '너희는 나가야 할 것'이라고 읽는 대신에 '너희는 너희 자신들을 감동시키거나 기쁨으로 뛰게 해야할 것이며, 외양간의 송아지들이 마치 넓은 들에 놓아졌을 때처럼 들떠서 떠드는 것같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읽는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원수들에게 승리하게 될 것이다(3절).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신자들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겼을때, 그들이 그들 자신의 부패한 욕망과 열정들을 억제했을때, 그리고 평강의 하나님이 사단을 그들의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실때, 그때 그들은 '악인을 밟을' 것이다. 성도들의 개가는 모두 하나님의 정복에 기인하고 있다. 즉 그들이 그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시는 것이다.
Ⅱ. 메시야의 선구자 4:4-6
이 부분에는 엄숙한 결론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메시야의 복음이 시작되기까지는 예언의 영에 의한 지시를 더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이에 다음 두가지 사항이 요구되고 있다.
(1)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대하여 계속해서 정중히 경의를 표하고 있어야 한다(말 4:4). "내 종 모세의 율례를 기억하고 내가 호렙에서 그에게 명한 율법에 따라 행하도록 해야하니라." 모세가 명예스럽게 언급되었다. 말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의 종 모세'라고 그를 부르신다. 의로운 자는 영원한 기억속에 남아야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의 율법또한 명예스럽게 언급되었다. 즉 하나님 자신이 율법을 '명하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것을 명하였고, 우리를 위해 명하셨기때문에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인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이스라엘과의 언약에 대한 유익을 기대한다면(히 8:10),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특히 그들중에서도 영구한 책임을 지고자 작정한 자들에게 부과된 명령을 지켜야 한다. 양심의 임무는 우리로 율법을 기억하도록 명령하는 일이다. 우리가 지식에 있어서 상당한 진척을 가져왔을때에라도 우리는 여전히 실제적인 신앙의 주요원칙들을 지켜야하며, 그 원칙들로써 신앙을 유지하도록 결단을 내려야한다. 선지서들과 계시록을 연구하는 자들도 모세의 율법과 4복음서를 계속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언은 얼마동안 교회에서 끝이 났으며, 예언의 영도 복음이 시작될때까지는 되돌아오지않으므로 그들에게는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즉 그들은 그 규례들과 약속들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있는한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할수 있으며, 그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수 있다. 그들은 메시야의 오심과 그의 복음의 선포와 그의 왕국의 설립을 기대해야 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난후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유익을 기대해야 했다. 그것을 지키고 잘 사용하면 그 유익을 보다 더 받게될 것이요 넘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계속해서 기대해야 하며 그것의 시작을 선지자 엘리야의 출현에서 찾아야 한다(말 4:5,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눅 16:16)로서 그것들을 새벽별이 나타나기까지 다만 교회의 빛으로 계속 이어졌다. 유대의 박사들은 그 선지자를 아합의 시대에 이스라엘에서 예언한 엘리야의 동일 인물일 것이라고 한다. 곧 엘리야가 메시야의 선구자가 되기위해 다시올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중의 다른 사람들은 그를 엘리야와 동일 인물로 보지않고 그와 같은 영을 가진 또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요한이 바로 오게 되어있었던 그 엘리야라는 것을 아주 잘 안다(마 7:10-13, 보다 명확히 표현되기는 마태복음 11:14절에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 그리고 10절에도 같은 사람으로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노니'). 엘리야는 아주 엄격한 사람이었고 죄를 책망하는데 담대한 사람이었다. 세례요한도 엘리야가 그러했던 것처럼 동일한 영과 능력을 힘입어 회개와 개혁을 외쳤다. 세례요한은 임박할 진노와 그리스도의 손에 들린 키에 대해 말하면서 공의로운 경고와 함께 피할 길도 알려주었다. 이 키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타작마당을 깨끗케하시는 도구이다. 마태복음 3:7,10,12절을 보라. 세례요한은 '아비의 마음을 그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하여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할 것이다'(눅 1:16,17). 요한에 관해 약속된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그가 죄와 불신앙의 억센 분출에 대해 담대하게 맞서리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일을 회복하기 위해 그가 오는 것'이라고 불리운다(마 17:11).
2)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는 교리를 전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역을 통해 양심을 깨우쳤다.
3) 그는 자녀들에 대한 아비들의 마음을 그리고 아비들에 대한 자녀들의 마음을(혹자는 이렇게 이해한다) 하나님께와 그들의 의무로 돌린 것이다.
4) 따라서 그는 그들을 모두 하나님께 인도하며 구속함으로써 서로 더욱 단단히 묶이게 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한마음'과 '한영혼'(행 4:32)을 지닌 충실한 시민들이 되게 하는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예비할 것이다. 그곳은 사랑이 넘치며 모든 증오가 사라지는 나라일 것이다. 유대나라는 그들의 불신앙과 회개하지 않음으로해서 하나님의 저주를 자초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저주로 채찍질하시려고 하지만 아직 한번더 그들을 시험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회개를 선포하도록 보내심을 받아 그들로하여금 회개하게 함으로써 혼돈을 막고자 한다. 하나님은 누구도 멸망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씀이 저주인 것을 주목한다. 그것은 축복과 더불어 오시는 그리스도를 우리가 반드시 영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반면에 신약의 마지막 말씀은 축복중에서도 가장 귀한 축복의 말씀으로서 그 축복으로 우리 자신을 무장시켜야 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축복으로 무장시키시든지 해서 위에 언급된 저주에 대항하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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