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에 대한 약속은(말 4:1-6)?

기념책에 기록되며, 특별한 소유가 되는 축복을 받고, 심판 날에 의인과 악인이 구분되어 행한대로 보응을 받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순종할 것을 강조하시는데 이러한 권면은 끝까지 인내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느끼게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메시야의 선구자로 올 엘리야는 누구를 지칭하는가(말 4:5)?

세례 요한.
이는 메시야의 선구자 세례 요한의 출현을 예언한 것으로 이로써 구약 전체를 종결함과 동시에 신약과의 연결 고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은혜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출처 : 갓피플

메시야께서 오시는 목적은(말 3:3)?

레위인들을 정결케하기 위해.
레위인은 모든 성도를 가리키며, 정결케 함은 그리스도의 속죄와 성결을 통한 성화 운동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메시야 곧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말라기가 제시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방법은(말 3:7-12)?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림으로.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적 표시이며, 하나님의 모든 소유와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 되심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십일조와 헌금은 온전한 믿음, 자발적인 헌신의 의지와 기쁨과 감사로 드려야 합니다.


헌금할 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말 3:8)?

즐겁게(고후9:7),
수시로(고전16:2),
정한대로(고후9:7),
어떤 욕심이 없이(마10:8),
넘치도록 채워주심을 믿고(고후8:3),
사욕이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롬12:8),
정한 때를 맞추어서(고전16:2),
시켜서 억지로 함이 아닌 자원함으로(고후9:7),
은밀하게 드려야 합니다(마6:3).


패역한 자들과 경건한 자들의 차이점은(말 3:13-18)?

패역한 자들 - 하나님을 섬기며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은 헛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주장함.
경건한 자들 - 하나님의 심판이 더디지만 반드시 임할 것을 믿고 서로 격려하며 믿음을 지킴.
여호와의 마지막 심판 날은 패역한 자들에게는 멸망의 날이지만 경건한 의인들에게는 기쁨과 소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나의 특별한 소유’가 의미하는 바는(말 3:17,18)?

언약의 백성, 즉 ‘이스라엘의 명칭’인 ‘기업을 이어받을 백성’(신7:6), ‘보배로운 백성’(신26:18)을 의미함.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심판의 날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 다시 말하면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시고 의인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는 오늘날 구속사적 관점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반열에 서게된 성도를 말합니다.


출처 : 갓피플

백성이 행한 두가지 죄악은 무엇인가(말 2:10-16)?

이방인과의 결혼과 이혼.
이들은 이방인들과의 잡혼으로 우상을 섬기는 타락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또한 조강지처를 버리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과의 신성한 약속입니다. 결혼의 언약을 깨뜨리고 아내를 학대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큰 범죄입니다.
그런데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신실하지 못했으며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악을 행하면서도 그 죄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할때 결국은 자멸로 빠질 수밖에 없음을, 역사가 남겨준 교훈을 통해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궤사와 가증한 일의 대표적인 것은(말 2:11)?

우상 숭배자나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
이러한 잡혼은 하나님께서 구별한 백성이 이방화되어 타락하는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하신 이유는 종족적인 순수성이 아니라 종교적인 순수성을 보존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자들은 누구인가(말 2:16)?

이혼하는 자와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
‘옷을 가리운다’는 말은 부부 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학대로 옷을 가리운다’는 말은, 아내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미워하며 남편의 의무를 불성실하게 행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교회의 상징이며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나 가정은,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임을 알고 사랑과 희생, 봉사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패역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향한 질문은(말 2:17)?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패역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불의를 행하면서도 자신들의 불의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침묵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심판날’에 홀연히 임하여 모든 일생을 선악간에 공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출처 : 갓피플

말라기서의 내용은(말라기1-4장)?

하나님에 대한 의심과 신앙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죄 속에 빠져있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과거의 회고를 통해 깨닫게 해 줌.
형식적인 신앙과 비도덕적인 생활을 회개케하며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확증하고 영적, 도덕적 각성을 권고함.

 
말라기의 활동 시기는?

B.C. 430년경. 이때는 포로 귀환 후 약 100년이 지난 시기이며, 성전 재건, 성곽 수축 공사가 끝나 국가 재건의 노력이 일단락된 시기.
그러나 이들의 영적 풍토는 율법을 경시했고 하나님 앞에서의 제사도 형식적으로 드렸으며 죄중에서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영적 타락의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사랑하였노라’에서 사랑의 의미는(말 1:2)?

히브리어 ‘아하브’는 사랑을 뜻하는 말로, 칠십인역(LXX)에서는 헬라어 ‘아가페’로 번역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세우신 언약의 동기가 조건 없는 사랑임을 의미함.
오늘날의 성도는, 하나님의 선택적 사랑, 언약적 사랑, 주권적인 사랑으로 무조건적인 선택에 의해서 구원의 대열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말 1:6)?

부자 관계 - 하나님의 부성(父性)은 이스라엘에 대한 절대적 사랑을 계시함.(출4:22,23; 신32:6)
주인과 종의 관계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경외의 대상이십니다.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로서,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종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제사장들의 죄악은 무엇인가(말 1:6-14)?

합당치 못한 제물을 드림(말1:7,8,14).
불경한 마음으로 제사를 행함(말1:13).
하나님 앞에서 전혀 죄를 깨닫지 못하고 동일한 범죄를 반복함(말1:6,7).
선민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제사장이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타락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서원제는 무엇인가(말 1:14)?

화목제 가운데 하나(레7:15,16).
제물은 흠 없는 수컷을 드림.
그러나 이 당시 유다인들은 흠 있는 수컷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를 속이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으실 수 없는 분이므로 인간은 정직과 성실을 다하여 그분을 섬겨야 합니다.


출처 : 갓피플

1. 의로운 해

천둥이 치고 난 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위해 태양이 비친다. 태양은 '구원'의 상징이다. 구원이 영광 중에 나타나는 하나님으로서 인격적으로 생각되고 있는지 혹은 내용상,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행복의 총괄 개념으로 생각되고 있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아마도 예언자는 이 둘을 정확하게 구분할 것 같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그에게서는 빛나는 태양에 관한 표상이 의외로 고대 동방에서 잘 알려져 있던 날개 달린 태양의 둥근 면에 관한 표상으로 넘어가고 있다. '태양의 날개'에 달려 있고 그 빛 속에서 있으며, 도래할 구원의 본질에 속하는 것은 '치유'이다. 말하자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괴로움으로 가득찬 기다림의 시간 동안 생겼던 모든 안팎의 상처를 치료하는 일이다. 그 다음 불경한 자들에 대한 심판의 천둥이 치기 전에는 맥을 추지 못했던 경건한 자들이 뛰쳐나와 그 기쁨을 표현할 것인데, 이는 마치 우리에서 풀려 나온 송아지들이 날뛰는 것과 같다. 다시 부연하자면 '의로운 해'는 빛되신 예수그리스도 자신을 지칭한다. 한편 그 '의로운 해'에서 발하는 '치료하는 광선'은 원어상 '그의 날개 안에서 치료한다'란 뜻을 가진다. 이러한 표현은 날개가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의로운 해 되신 그리스도의 신유의 은혜와 죄인들의 영혼을 구원하신 그의 구속 사역을 지칭하는 것이다.

2. 율례와 법도

'호렙 산에서 명한 법'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 호렙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모세 율법을 가리킨다. 또한 율례와 법도에서 '율례'는 도덕, 의식, 시민법 등 세부적으로 규정된 법규들을 의미하며, '법도'는 각 율례에서 파생된 사회 구성원들의 공적, 사적 권리와 의무를 가리킨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말들은 서로 혼용되어 사용되기 때문에 위에 언급된 모세 율례의 교훈들을 강조하여 지칭하는 중언법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실로 이러한 율법은 신약과의 연결 속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므로 이차적으로 그 율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혈통적이고 영적인 이스라엘을 위해 세워진 영원한 언약으로 이해할 수 있다.

3. 결론

본 절과 6절은 예배를 마무리 짓는 표현 양식으로 메시야의 도래를 선포하기 위한 엘리야의 출현을 예시하고 있다. 이는 이미 말3:1에서 언급된바 있는 세례 요한의 출현을 지시하는 말로, 4절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구약과 신약의 연결점을 제공하고 있다. 선행자가 예언자 엘리야라는 점을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는 비밀로 남아 있다. 이러한 표상은 여기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표상은 다른 증거에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본 절의 엘리야는 엘리야와 유사한 심령과 능력을 가졌던 세례 요한을 가리킨다. 실로 엘리야와 세례 요한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다. 곧 그들은 모두 그 백성들을 열조의 경건으로 인도했고, 크고 두려운 심판을 예언했으며, 불순종과 배역의 상황 속에서 사역했다. 본 절과 같은 표현은 예수그리스도를 다윗과 같은 왕권을 가지신 다윗을 후손으로 언급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실로 본 절은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이 예수에게서 성취되므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이르기 전에 마땅히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을 경청하고 준수하며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촉구하는 의미를 가진다.

4. 그 땅을 칠까 하노라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주하는 약속의 땅이다. 실로 이스라엘의 죄악이 편만할 때마다 그 땅은 그 백성들의 거주를 용납하지 않았다. 따라서 본 구절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죄악에서 회개치 않을때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적 징벌로 인해 결코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의 세례 요한의 외침은 곧 이러한 저주를 면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한편 저주의 경고라는 심각한 말로 구약의 마지막이 종결된다는 점 때문에 유대의 전승들은 좀더 긍정적인 종결을 위해 메시야 대망 사상이 투영된 5절은 본 서의 결구로 보았다.

5. 극렬한 풀무불과 의로운 해

불은 부정하고 순결치 못한 것들에 소멸하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상징하거나 경건치 못한 자들을 징벌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시50:3 ; 사10:17). 따라서 극렬한 풀무불은 멈출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나타낸다.
반면 의로운 해는 태양이 온 세상에 그의 빛을 비추는 것처럼 도래할 하나님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의 의가 온 땅에 전파될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의로운 해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의와 기쁨과 행복의 근원이며, '세상의 빛, 큰 빛'(사9:1)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에게 극렬한 풀무불로 진노하시지만, 순종하는 자에게는 치료의 광선을 발하시는 분이시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여호와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인들은 멸망 받아 사라질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다. 이날에는 악인과 의인들의 운명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동시에 의인들에게 승리의 환호성이 넘쳐날 것이다. 이러한 날이 임하기 전에 주의 선지 엘리야를 먼저 보내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럼 이제부터 심판의 날에 벌어질 악인과 의인의 운명 그리고 이날을 소망하는 주의 백성들이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끝으로 심판의 날 이전에 오실 엘리야가 누구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악인과 의인의 운명(말4:1-3)
본문은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할 심판의 날을 선포하고 있다. 이러한 심판의 날을 말라기 저자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날에 악인들은 저주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였는데, 악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편 심판의 날은 의인들에게 축복과 구원의 날이 되는 것이다. 이때에 의인들은 어떠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가?

1) 구분되는 악인과 의인의 운명
말라기 저자는 심판의 날을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라고 표현하였다. 본래 풀무불은 그 어느 불보다도 가장 뜨거운 불을 가리킨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서는 심판의 날을 불로서 나타내기도 하였다(단3:26 ; 단7:10 ; 사66:15). 여기서 말하는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은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초림을 나타내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한다. 이날에 교만하여 악을 행하던 악인들은 초개같이 된다고 하였다. 초개는 아주 심하게 마른 풀을 의미하는데, 마치 악인들의 운명이 쉽게 불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초개로 표현하고 있다. 한마디로 악인들은 불에 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의인들은 이날에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구원의 즐거움으로 인하여 극도로 기뻐하게 된다. 이러한 기쁨의 근거는 의로운 해이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치료하는 광선, 다시 말해 구원의 진리를 전파하심으로 이 구원의 진리를 받아들인 영혼들에게 참기쁨을 허락하게 되는 것이다.

2) 의인들이 가져야 할 구원의 소망
하박국 선지자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여호와의 말씀에 새 힘을 얻어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고백하였다.(합3:18). 예수님은 회의 속에 잠긴 제자들에게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반드시 임하리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주시기도 하였다(막4장). 복음을 받아들인 의인들은 이처럼 구원의 소망이 있고, 가져야 할 천국이라는 비전이 있다.

2. 율법을 기억하라(말4:4)
임박한 심판에 앞서 말라기 선지자는 율법을 기억하고 준수하라고 명하고 있다. 이 길만이 이스라엘이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 본문에서 말하는 율법, 곧 율례와 법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이 율법은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가? 끝으로 말라기 선지자는 왜 율법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였는가?

1)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율례와 법도라는 말은 엄격히 구별하여 말한다면 율례는 규범적이고 원리적인 법을 말하고, 법도는 조례적인 법을 말한다. 하지만 보통 이두 단어는 하나님의 법 또는 말씀을 총괄적으로 나타낼때 쓰인다. 이러한 율법은 온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혈통적이고 민족적인 개념으로써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신앙고백을 통하여 형성된 영적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말라기 선지자는 이 율법을 기억하라고 명하였다. 이렇게 명령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죄를 짓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실 메시야를 맞이할 자세로서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이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이는 곧 하나님 앞에 순종함이요, 헌신을 다짐하는 신앙고백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때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2) 율법대로 살라는 권면
본문에서 말하는 '기억하라'는 단어는 현재 깨달은 사상이나 느끼는 감정을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율법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이성적인 깨달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율법대로 살라는 강력한 권면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인 의지와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속박이나 억압이 아니다. 오히려 참된 자유와 축복을 누리는 유일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3.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예언(말4:5,6)
본문은 말라기의 결론으로서 선지자 엘리야가 와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라는 약속을 예언하고 있다. 그럼 본문에서 말하는 엘리야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무수한 구약의 인물들 가운데 엘리야를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여기서 언급된 엘리야가 무슨 일을 할 것이라고 예언했는가?

1)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
본문에서 언급된 엘리야에 대해 혹자는 실제적으로 승천하였던 디셉 사람 엘리야를 가리킨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주의 길을 예비할 세례 요한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로 두 사람이 활동하던 시기가 아합과 헤롯이 통치하던 가장 암흑한 시대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두 사람의 사역 성경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로서 엘리야를 꼽을 수 있고 마지막 선지자로서 세례 요한을 꼽을 수 있기에 엘리야로 예언된 세례 요한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던 것이다. 엘리야로 예언된 세례 요한이 와서는 아비의 마음과 자녀의 마음을 돌이키게 한다고 하였다. 이는 한 가정의 불화를 해결시켜 준다는 도덕적 개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본문의 아비는 이스라엘의 경건한 족장 내지는 조상을 뜻하는 것으로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훌륭했던 조상들처럼 경건한 신앙을 갖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2) 언약 속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공의와 인자가 공존하고 있다. 죄에 대해서는 엄하신 공의로운 하나님이면서도 한번 약속하신 언약은 반드시 이루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회개치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죄의 심판을 예고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례 요한과 메시야를 약속하시며 구원을 보장해 주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시다.

본문은 말라기서의 결론이자 모든 선지서의 결론이다. 하나님은 본 서를 통하여 저주와 구원이라는 심판의 양면을 제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한쪽을 선택하도록 요구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안타깝게도 저주를 선택하고 말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금 그 인자하신 사랑을 인하여 구세주를 준비하고 계셨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야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사랑

말라기의 예언은 하나의 위로나 격려가 아니라 경고라는 사실을 주의하여야 한다. 이러한 경고는 슥9:1, 슥12:1에도 나타나는데 말라기의 예언은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열두 지파 모두에게 일종의 하나님의 경고의 의미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이 예언은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을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지속적인 사랑을 가지고 계시며 그중에서도 야곱을 선택하심으로써 그의 한량 없는 주권적인 사랑을 강조하고 있다. 혹자는 많은 사람 중에서 야곱만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하고 있으나 사실은 죽은 죄인 중에서 야곱이라도 선택해 주셨다는 것에 대하여 인생들은 감사치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스라엘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라고 뻔뻔스럽게 반문하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의 뿌리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의 죄에 대한 무지에 있는 것이다.
한편 야곱에 대한 사랑과는 대조적으로 에서에 대한 하나님의 미움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해 왔던 에서의 죄에서 기원한 것임으로 타당하며 결국 성경의 예언처럼 나바테인들에 의한 에돔의 공격, 바사와 애굽간의 전쟁, 바벨론인들에 의하여 멸망당하였다.

2. 하나님의 불만

말라기에 기록된 사실들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시의 부패상에 대하여 매우 불만스러워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도록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해 보라는 선지자의 요구는 회개하라는 심각한 권면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당시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완고한 마음으로 도무지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것에 대하여 말라기 선지자가 호되게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불성실하게 드려졌던 제물들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불경건한 그들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성전 문을 닫아 헛되이 불사르는 것을 금지하라는 표현도 역시 당시에 헛되게 드려졌던 제물과 예배를 그치라는 하나님의 경고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죄악들과 경고들은 바로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있는데 지금도 죄악된 백성들을 통하여 불경건한 예배가 수없이 반복되고 있으며 따라서 성도들은 그들과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여야 할 것이다.

3. 하나님의 사람들의 부패

시내산에서 대부분의 백성들이 황금송아지를 섬기며 절할 때 레위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레위의 중심을 의롭게 여기셨으며 그와 그의 자손들과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언약을 맺으셨다. 즉 그 백성들에게 생명과 구원을 보장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의로운 율법을 결코 자의적으로 해석하지도 않았던 초기의 레위인들과는 달리 말라기 시대의 레위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하였고, 율법 또한 그릇 해석했으며, 언약의 규정에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레위의 언약을 더럽혔다.
한편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오늘날의 하나님의 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임무에 불충했으며 예배와 봉사를 경멸히 여겼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겼다(말1:7,12).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비천하게 만드셨으며 편파적으로 직무를 수행하는 그들에게 징벌을 가하셨다. 이 밖에도 제사장들은 직무 태만뿐만 아니라 뇌물 수수와도 연관됨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자초하였다.

4. 연단시키는 메시야

말3:2에는 메시야가 자기 백성에게 임하는 두가지 양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당대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들을 가리켜 이야기 하기를 "그 날에 하나님의 오심을 감당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한 대답은 그 날에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 당시의 타락을 표현한 것이다. 즉 환난의 날에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어 이스라엘의 모든 찌꺼기, 즉 죄를 심판하시며 나아가 그들의 죄를 씻어내실 것이다.
한편 '연단하는 자의 불'이란 표현은 하나님께서 군주나 해방자로 단순하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명을 찾기 위하여 오시며, 또한 죄로부터의 해방을 위하여 심판관으로 오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될 것인데, 레위 자손들에게 이어질 것이고 나라 전체에 이르기까지 확대될 것이다. 이렇게해서 하나님은 의로운 백성들을 만드시고자 하는 것이다. 의로운 제물을 바치며 경건한 예배를 드릴줄 아는 백성들을 만드시고자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연단시키시는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포로에서 귀환하였고, 성전도 재건하였다. 이때 백성들의 감격은 신앙의 결단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들의 신앙 열정은 식어가고 있었다. 특별히 학개와 스가랴는 그들이 전패했던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자 심각한 회의와 말씀에 대한 불신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회에 만연되어 심지어 백성들을 인도할 제사장들 마저도 심각한 타락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곧바로 하나님과의 단절을 야기시킬 수 밖에 없었다.

1. 제사장들의 타락(말1:1-2:9)
하나님은 장자가 아닌 야곱을 선택하시어 사랑하시듯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선택하시어 사랑하셨음을 먼저 선포하셨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린 이스라엘을 향해, 특별히 제사장들을 향해 그들이 지은 죄를 지적하셨다. 그럼 제사장들이 지은 죄는 무엇인가? 이러한 죄의 결과로 그들은 어떠한 저주를 받게 되는가? 그럼 하나님은 이 저주를 통해 무엇을 이루시고자 하였는가?

1) 제사장들의 죄와 저주
제사장들이 지은 죄는 세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주께서 싫어하시는 제물을 불경한 마음으로 바침으로 여호와를 경멸하였다. 제사장들은 도저히 드릴 수 없는 형편없는 것을 여호와께 드리고 대신 자신들의 탐욕과 이익을 챙겼던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 자신은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도 율법에 넘어지도록 하였다. 셋째는 제사장으로 율법을 집행할 때 공정치 못하게 하였으며 사람에 따라 율법을 그릇되어 적용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들을 저주하시겠다고 하셨다. 다시 말해 제사장으로서 받게 될 십일조와 레위인의 기업 등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똥을 얼굴에 바르면 수치스럽듯이 제사장들이 드린 제물로 자신들이 수치를 느끼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같이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을 저주하신 의도는 진정으로 그들을 멸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이러한 저주 속에서 스스로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사랑이 바로 저자가 의도했던 목적이었다.

2)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오늘날의 성도들은 첫사랑과 첫 믿음을 상실한 채 형식적으로 예배에만 참석하는 경향이 많다. 또한 정성이 없이 무딘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아울러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있다. 이는 마치 제사장들이 병들고 토색한 것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호와를 경멸하는 태도이다. 하나님은 외적인 의식이 아닌 우리들의 순종하는 마음을 원하시고 있다.

2. 백성들의 죄악(말2:10-3:6)
지도자인 제사장의 죄에 이어 이제는 일반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한다. 특별히 백성들의 가정 생활이 타락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당시의 죄악된 분위기를 엿보게 한다. 이에 하나님은 심판주가 임하리라는 예언을 한다. 그럼 어떻게 가정 생활이 타락해졌는가? 그리고 이러한 타락을 심판할 사자가 임한다고 했는데, 이 사자는 누구를 가리키나?

1) 우상숭배자와 결혼하는 백성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이방 여인과 혼인하지 말라고(신7:3,4) 명령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여인과 혼인하였다. 또한 이 혼인을 위하여 자신의 아내를 버리거나 학대하는 등의 악행을 범했다. 이렇게 이스라엘 가정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도 거역하고 심지어 파렴치한 반윤리적 행위도 일삼는 타락에 잠겼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죄악을 심판하시며 한편으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언약을 성취하시고자 언약의 사자인 예수그리스도가 오시리라고 예언하였으며, 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그의 길을 예비할 세례 요한도 올 것이라고 예고했던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서의 사자는 일차적으로는 세례 요한을 가리키나 궁극적인 의미로는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2) 언약으로 이루어진 가정생활
결혼은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를 기초로 한 남녀의 인간적인 언약을 의미한다. 아울러 가정의 기초도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가장으로 모시어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신성한 결혼의 언약을 파기하는 행위는 곧바로 하나님의 언약 관계를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이다.

3.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죄(말3:7-18)
신앙적·도덕적으로 심히 타락한 백성들은 심지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이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럼 백성들이 도적질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십일조의 용도와 내용은 무엇인가? 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적하였는가?

1) 도적질한 십일조와 헌물
바로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은 십일조와 헌물이었다. 이들은 십일조를 정성 없이 드리거나 아예 드리지도 않았다.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려도 제사장들은 이를 숨겨 자신의 것으로 취했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요구하는 재물을 드리기보다는 쓸모없는 것들로 재물을 드렸다. 따라서 이들은 저주를 피할 수 없었다. 십일조는 자신들이 거둬들인 소출의 십일조를 드려 레위인과 제사장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었던 것이며, 성전을 꾸미거나 각종 제례 행사비로 사용하였고,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위해 사용하였다. 한편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교만한 자가 복을 받으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앙적인 사고였던 것이다.

2) 헌금의 의미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통로이자 수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물질이 필요하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물질에 담긴 성도들의 충성된 마음을 원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정성이 담긴 십일조와 헌물은 나의 헌신의 증표요, 사랑의 증거가 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는 총체적인 타락에 잠겨 있었다. 지도자라 할 수 있는 제사장은 말할 것 없이 일반 백성들도 죄악에 탐닉하면서 스스로의 악함을 깨닫지 못했다. 심지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면서 대적하고서도 회개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저주가 임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또다시 참고 인내하사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소원하셨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저자 말라기에 대한 견해

모든 선지서에서는 첫머리에 자신의 이름을 밝힘으로써 본 서가 자신이 저자임을 밝히는 것을 전통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말라기에 등장하는 히브리어 첫 단어 ykalm(말라기)는 단순히 선지자 개인의 이름인지 혹은 히브리어 그대로 '나의 사자'라는 말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칠십인역(LXX)의 경우 후자의 견해를 지지하고 있는데 그들은 흔히 1:1의 '말라기'와 3:1의 '나의 사자' (말라기)를 동일시하고 있다. 한편 역사가 제롬(Jerome)은 말라기는 에스라의 다른 이름이거나 혹은 그에게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으며 탈굼(Targum)도 여기에 동의한다. 그러나 칼빈은 에스라의 별명일 것이라고 못박았다. 또 어떤 학자들이 주장하기를 말라기는 부모가 자기의 어린아이에게 붙여준 이름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말라기는 hykalm(말라기야 ; 여호와의 사자)의 축소형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전혀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선지서의 전통에 의하면 말라기는 개인의 고유명사임에 분명하며, 따라서 그가 저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지배적이다.

2. 말라기서의 일반적인 특징

어떤 비평가들은 말라기서에 대하여 평하기를 현학적이며 부자연스럽고 내용이 빈약하다고 말한다. 물론 다른 선지서와 비교해 보았을 때 다소 이러한 것들을 느낄 수 있다고 하나 말라기서의 문체는 지금까지의 어떤 선지서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자적이고 탁월한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말라기의 가장 독특한 문체적 특징이라면 질문과 응답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백성, 혹은 하나님과 제사장과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 말라기는 반대자들과 불평자들의 말이 먼저 기록되고, 이어서 부연 설명들이 기록되며, 마침내 이러한 모든 불평들을 일소시킬 만한 책망으로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말라기는 지금까지의 선지자들과는 달리 시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논리적인 측에 속하며 활기차고 정열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연륜이 있는 웅변가다운 차분한 면모를 느끼게 한다. 특히 단순하고도 간결하며 부드러운 그의 말투는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그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비록 그가 다른 선지자들과 같은 권위와 권세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는 언제나 세련되고 품위에 넘치며 때로는 놀라우리만큼 웅변적이기도 한 선지자였다. 이러한 성격들을 바탕으로 한 그의 뛰어난 필적은 말라기 곳곳에서 발견된다.

3.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의 타락

1) 더럽혀진 제사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비와 온유로 자기의 백성들을 사랑하여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온유에 보답하는 생활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멸시하고 심지어는 하나님 앞에 더러운 제물을 드리는 배은망덕한 행실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사를 드리지 못하였는데 제사장들의 책임이 컸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의무에 충실하지 못하였고 자신의 직무에 태만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첫번째 죄는 성전에서의 직무 태만이었다. 즉 하나님께 구별되고 정결한 제물을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드리지 말아야 할 더러운 제물을 드렸던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가 그의 저서에서 제물의 의미로 언급한 '떡'은 분명 제사, 즉 동물의 고기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첫째, 단에 드렸다고 언급한 사실. 둘째, 말1:8의 저는 것, 눈 먼 것, 병든 것에 대한 언급. 셋째, 레21:6,8,17의 제물을 상징한 '떡'의 사용 등의 이유들로 하나님께 드리지 말아야 할 것들 즉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 등을 제물로 드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말라기 선지자는 바로 이러한 제사장들의 타락을 풍자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예배
결코 아무 흠도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우리들에게서 흠 없는 제물과 온전한 예배를 받으실 권리가 있으며, 그의 백성들은 마땅히 그러한 예배와 제물을 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예배는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 계속 되어질 것인데, 이것은 곧 현 세대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천년왕국시대에 이루어질 것에 대한 예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로부터 흠이 없는 제물을 받으시며 기뻐하실 것이고, 결코 더러운 제물은 받지 않으실 것임을 명심하여 온전한 예배와 깨끗한 제물을 드릴 줄 아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1. 저자와 시대적 배경

1) 저자
전통적으로 말1:1의 표제를 근거로하여 본 서의 저자를 말라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말라기의 개인 신상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고, 말라기가 이름을 말하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나의 사자' 또는 '전달자'라는 단순한 일반 명칭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기에 말라기가 저자인지는 불분명한 상태이다. 한편 제롬(Jerome)과 칼빈(Calvin)은 말라기가 서기관 에스라의 다른 이름이거나 별명으로서 본 서의 저자로 에스라를 지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른 선지서에서 보듯이 표제에 저자 이름을 기록하는 전통을 보아서는 말라기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 시대적 배경
본 서의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증거로는 말1:8에 hjp(페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페카는 '총독 폐하'의 뜻으로 페르시아 제국의 총독 관직에 대한 용어이다(느5:14 ; 학1:1). 따라서 이스라엘은 페르시아의 통치를 받고 있던 시기로서 명백히 바벨론 포로 이후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본 서는 학개, 스가랴와 함께 포로귀한 시대부터 느헤미야가 활동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는 한마디로 영적 암흑기였다. 이때에 이미 성전은 재건되어 성전 제사가 행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학개가 외쳤던 예언(학2:6,7), 즉 완공된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리라는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에 백성들은 신앙적인 회의와 탄식에 잠겨 있었다. 이들의 종교적 의식은 형식적인 것이 되었고, 열정도 식어버렸다. 남은 것이라곤 타락과 죄악 뿐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활동한 선지자가 말라기였다.

2. 기록 연대와 기록 목적

1) 기록 연대
본 서에는 연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본문에 나타난 몇 가지 정황이 기록 연대를 근접하게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첫째, 성전은 이미 재건되었으나 제사 의식이 심히 부패한 점으로 보아(말1:7,10) 스룹바벨 성전이 재건된 해(B. C. 516년)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페르시아 총독이 다스리고 있었기에 느헤미야 총독 시절(B. C. 444-432년)은 아닐 것이다.
셋째, 말라기가 지적한 죄, 곧 제사장들의 부패, 십일조 무시, 이방 여인과의 결혼 언급 등이 느헤미야가 두 번째로 이스라엘에 와서 (B. C.425년) 지적한 죄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서의 기록 연대는 주전 432년부터 주전 425년 사이로 추정되고 있다.

2) 기록 연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째로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들이 가시적으로 성취 되지 않았고, 둘째로 포로귀환과 성전 재건 때 가졌던 뜨거운 신앙이 식어졌다는 이유에 의하여 영적인 회의와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신앙적인 회의주의와 형식주의 그리고 율법에 대한 무시와 도덕적 타락으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과 답변을 하셨다. 이를 통해 백성들의 영적 타락의 원인을 지적하며,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지름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엿보게 한다. 결국 하나님은 본 서를 통해 죄악된 백성일지라도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이키면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리라 약속해 주고 있다.

3. 특성과 내용 구성

1) 특성
본 서는 몇 가지 점에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 말라기서의 강조점이 하나님의 언약에 있다는 것이다. 본 서의 처음과(말1:2-5) 종결 부분(말4:4)이 언약을 기억하고 순종하라는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관계를 부자관계로 설명하고 있다(말1-6 ; 말3:17). 그리고 이스라엘의 가장 심각한 죄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것으로 말하고 있다(말2:1-30). 따라서 말2:2,3에서는 언약을 어긴 징계가 어떠한지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둘째로 다른 민족 곧 열방들에 대한 심판의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이스라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서의 메시지 이면에는 열방들에 관한 심판이 적지않게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말91:5,11,14).
셋째로 예배에 대한 언급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히 예배의 형식적인 의식보다는 여호와께 대한 순종이 더욱 고귀한 것임을 지적해 주고 있다. 끝으로 본 서에는 의인의 이름이 적힌 기념책(말3:16)과 주의 길을 예비할 엘리야(말4:5)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2) 내용구성
말라기의 내용은 크게는 두 부분, 작게는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때 전반부는 1-3장으로 하나님과의 단절을 야기시킨 이스라엘의 타락을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는 4장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다루고 있다.
한편 여섯 부분으로 내용을 구성해 보면 말1:1-5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말1:6-2:9은 타락한 제사장들의 죄와 그들에게 임할 저주를 언급하고 있다. 말2:10-16은 타락한 가정 생활을 통해 일반 백성들의 죄악상을 기록하고 있다. 말2:17-3:6은 심판주 되시는 메시야의 도래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가 임할 것을 예언해 주고 있다. 말3:7-12은 불성실한 십일조로 표현된 이스라엘을 지적하면서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말3:13-4:6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여호와의 날에 있을 악인과 의인들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약속해 주고 있다.

4. 말라기서가 주는 의미

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예언을 기록하고 있다. 동시에 말라기 선지자는 앞으로 있게 될 40년의 영적 암흑기라 할 수 있는 신·구약 중간기를 준비하는 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이다. 특별히 그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세례 요한의 출현을 예고함으로써 구약과 신약의 완벽한 연결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비록 타락한 이스라엘이지만 회개하고 돌이킬 때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리라는 축복을 예언함으로 본 서를 마무리하고 있다.


 

출처 : 갓피플 자료&지식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