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하지 말고

[베드로전서 5장 1절~5절]
1절 -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절 -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절 -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절 -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절 -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결국을 아는 지혜

[베드로전서 1장 5절~9절]
5절 -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절 -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절 -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절 -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절 -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겔 18:20)
연초에 여러분들은 많은 계획을 세우고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해오셨을 줄 압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연초에 시작했던 일들이 지금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요? 아마 여러분들이 일년 뒤를 생각하고 바라보며 그 결국을 예상하면서 살았다면 아마 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 한해가 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을 내다보지 않고 되는대로 사셨다면 지금 올해를 마무리하는 여러분들에게는 많은 후회와 회한이 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지혜있는 사람은 당장 눈 앞에 있는 일만 생가하지 않고,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요, 그 일의 결국을 알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사건과 행위의 결국을 알지 못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청지기 직분을 빼앗기게 된 사람이 청지기직을 그만 둔 후에 될 일을 생각하면서, 땅을 파자니 부끄럽고 얻어 먹자니 부끄럽고 해서 자기가 청지기로 있을 때에 인심이나 써 두자고 생각하여 빚진 자들을 모두 불러다가 탕감해 주는 것을 보고, 그 주인이 지혜있다고 칭찬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듯 일의 결국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을 소유한 자는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한 말씀대로 믿음은 바로 말씀을 통해 모든 일의 결국을 미리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말씀에 의지해서 모든 일의 결국과 삶의 결국을 영감으로 깨닫고 아는 것이 믿음이므로 믿음을 가진 자는 참으로 지혜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거짓된 악한 영이므로 사람을 속여서 일의 결국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특히 죄의 결국을 알지 못하도록 해서 범죄케 하여 멸망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는데 마귀는 하와를 속여서 '따 먹는 날에는 너도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인류의 조상이 이 사단의 거짓말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보다 더 믿고 범죄하여 세상에 불행과 멸망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요 8:44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의 목적은 전 인류를 속여서 결국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겔 18:4절에 보면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했으며, 에스겔 18:20절에도 보면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고 했습니다.
죽이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요, 죽이는 방법은 일의 결국에 대한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고 했는데, 사단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은 믿지 않고 이단 사설, 마귀의 거짓말을 더 믿다가 멸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든 일의 결국과 미래를 알기 원하는데, 알아야 될 것은 알려고 하지 않고, 몰라도 될 것을 더 알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것은 알려고 하지 않고, 알려주지 않는 것은 기어코 알려고 하다가 그만 잘못되고 마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믿어서 마귀에게 속지 말고 미래를 바로 알고 일의 결국을 바로 알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마귀에게 속아서 파멸당하지 않기 위하여 그 일의 결국을 알아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술의 결국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술 마시는데 많은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잠 23:31,32절에 보면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붉은 빛의 술은 아름답게 보이나 피의 색깔입니다. 죽음으로 끝나게 됨을 경고합니다. 알콜은 독약입니다. 알콜은 중추 신경을 마비시키고, 도덕 의식과 책임감을 죽입니다. 위기 의식도 없어지고 분별력도 없어집니다. 적당히 마신다는 것도 중독되어가다 보면 위험합니다.
롯도 적당히 마시는 자였으나, 재산이 불타버리고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고, 결혼한 딸들의 남편들이 불타 죽었을 때 만취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말하기도 부끄럽게 친딸들과 동침하여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술주정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술은 사람을 혼미케 하다가 결국 치명적으로 독사같이 물고, 살모사같이 쏩니다.
만약 아직도 술을 입에 대고 있다면 멈추어 그 치명적인 결국을 생각하십시오. 끊고 돌아서십시오.

2. 성적 범죄의 결국
잠 5:3-5절에 보면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타락한 여자는 더욱 매력과 매혹을 느끼게 합니다. 음란 마귀가 잡힌 여자는 더욱 성적 매력을 풍깁니다. 더 아름다워 보이고, 더 친절해 보이고, 그 입술은 부드럽고 그 몸은 남자의 피를 끓게 합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파멸입니다. 물론 자연적인 성적 본능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잠 7:25-27절에서는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며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 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타락한 여자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고, 타락한 여자 때문에 많은 용사들이 살육되었습니다. 그런 여자의 집은 지옥으로 가는 길입니다.
잠 9:17절에서는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은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음녀의 입술을 맛보기 전에 음녀의 가슴을 안아보기 전에 그 결국이 얼마나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날같이 날카로운가를 알아야 합니다.
미국 텍사스 포트워즈에서 자살 직전에 있던 남자가 붙잡혔는데, 이 남자는 악한 여자 때문에 유산을 탕진하고 성병이 심해져서 귀여운 아들과 뽀뽀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를 받고, 마지막으로 자기 신세를 망친 그녀와 동반 자살을 하려고 권총을 준비하고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미국 어느 곳에서 15세 소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기는 엄마의 죄로 코가 비틀리고, 눈이 골았고, 입이 비틀렸습니다.
실로 이러한 성적 범죄는 철저히 회개치 않으면 기회 있을때마다 또 짓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과 가정, 그리고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멀리하고 피해야 됩니다.

3. 불의한 재물의 결국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은 돈이 필요합니다. 돈으로 양식을 사고, 의복도 사고, 거처할 곳도 마련합니다. 또 교육도 하고 하나님의 일도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돌볼 수도 있습니다. 돈은 참으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유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딤전 6:8-10절에 보면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먹을 것, 입을 것을 위한 재물로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탐욕이 무서운 죄를 짓게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탐욕 때문에 가혹한 이자도 받고, 술과 아편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처녀들이 몸을 팔기도 하고, 주일과 십일조도 도둑질합니다.
그러나 렘 17:11절에 보면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갑니다(Easy Come easy go). 그리하여 그것이 멸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눅 12:16절 이하에서 자기만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안심하는 부자에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습니다.

4. 세상 쾌락의 결국
딤전 5:6절에 보면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니 죽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탕자는 세상의 쾌락에 빠져 재산을 모두 탕진해 버리고 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사람은 일을 하고 수고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휴식과 즐기는 일(enjoy)이 있어야 하지만, 세상 쾌락에 아주 빠져 버리면 반드시 악한 세상 속에서 죄악에 빠지고 타락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특히 물질의 여유가 있고 시간적 여유가 있고 사회적으로 존귀하게 되어도 세상 쾌락에 빠지지 않도록 자제해야 됩니다.


이상 특정한 몇 가지 죄의 결국을 살펴 보았습니다.
약 1:15절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죄는 사망으로 이릅니다. 로마서 6:23절에서도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죄를 짓고 있다면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사 55:6,7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죄의 결국이 얼마나 영원하고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를 아시고, 의로운 지혜의 눈을 떠서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 멘-

사단을 구별하는 성도가 되자

[베드로전서 5장 8절]
8절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오랜 옛날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은 많은 천사들에 둘러쌓여 계셨는데 그 천사들 중에 가장 높은 천사, 루시퍼가 교만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다가 천사장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하늘나라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결코 용납되거나 묵인될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교만입니다.
사단은 영원히 이 타락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방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사 14:12-17; 겔 28:11).
그러나 기독교는 이원론(二元論, Dualism)이 아닙니다. 즉 이 세상은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고, 선과 악의 대등한 입장에서 대결한다는 이원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적인 권위와 능력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사단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타락한 천사이며 파괴적이며 부도덕한 존재인 동시에 하나님과 같은 창조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만 창조적인 분이십니다.
사단은 그 힘과 능력이 제한되어 있어서 하나님을 반역하기는 해도, 하나님을 능가할 힘이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 사단은 이미 패배했으며 예수님은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대의 목적은 타락한 인간을 다시 구원하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서 갈보리 산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최대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이 구원받는 것이라면 사단의 최대 목적은 어찌하든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못믿게 하여 구원받지 못하게 하여 영원히 끓는 지옥불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사단은 대단히 교활하고 가증한 지혜의 피조물입니다. 이 지혜와 계교를 가지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단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사단이 하는 일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우리가 사단을 구별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교활한 개교로 자신을 숨기는 일을 합니다.
사단은 꼭 그렇게 합니다. 엡 6:11절에 "마귀의 궤계(詭計)"란 말씀이 있습니다. 마귀는 여러 가지 궤계, 즉 계교(trick)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계교가 자신을 숨겨서 사람들이 자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목사님, 신학 박사님들 중에서 사단은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목사님, 신학 박사님들 중에서도 사단은 실재하지 않는 상징적이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려고 노력한다면 사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저도 신학 대학을 나오고 잘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지만 초기에는 마귀가 존재한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시골 교회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귀신 들린 사람을 보니 그 마귀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또 밀접하던 그 여자의 이모한테 들어가 쓰러뜨리기도 하고 발광을 하며 말하게 하는 것을 본 뒤부터는 마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구령 사업을 하고, 목회를 하는 동안 수천 번이 넘게 마귀를 대항하며 싸우는 생활을 해왔습니다. 제가 오늘날 마귀와 성령을 몰랐다면, 영적인 승리도 할 수 없었을 것이며 교회가 부흥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마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단은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교활해서 자신을 사람들에게서 잘 숨기기 때문입니다.
현대 만화가들은 사단의 존재를 농담거리로 만들어서 사단을 그릴 때 붉은 옷을 입고 긴 꼬리를 가지고 손에 큰 갈구리를 가지고 있는 괴물로 그려놓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런 흉칙한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고, 아름답고 빛나는 옷을 입고 위장하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본문에 사단은 우는 사자 같다고 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또한 마귀는 뱀이며, 속이는 자, 악한 자, 용이라고 했으므로 자신을 위해서 피해야 합니다.
마귀가 비록 아름답고 빛나는 옷을 입었을지라도 그 속은 악한 마귀가 숨어 있으므로 여기에 속지 말고 대적하여 물리쳐야 됩니다.
옳습니다. 사단은 교활해서 사람들이 자기의 존재를 믿지 못하게 하고, 부인하게 만들어서 범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죄악을 아름다운 것으로 위장하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가증히 여기십니다. 그런데 사단이 하는 일은 죄를 아름답게 위장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는 아름다운 환경에서 부러울 것이 없이 살았는데, 사단은 하와를 꼬여서 죄를 아름답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맛있는 열매가 많이 있는데도 하필이면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도록 해서 결국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반역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도 사단 마귀는 죄에 대해서 아름답게 위장하여 끌리게 만들어서 유혹에 넘어가도록 갖은 꾀를 다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처음에는 좋은 것을 보여주며 유혹해 놓고 나중에는 제일 나쁜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죄를 아름답고 달콤하게 만들어서 죄를 범케한 다음에는 영원한 파멸의 벼랑으로 밀어 넣습니다. 술과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처음에는 다 몽롱하고 붕붕 뜨는 것같은 좋은 기분이 들어서 먹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마귀의 올무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담배나 노름 배후에도 다 마귀가 숨어 있어서 아름다운 것으로 위장하여 넘어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워주신 복된 가정도 사업도, 교회도 파괴시킵니다.
또한 마귀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아내보다 다른 여자가 더 매력있게 보이고, 못견디게 그립게 만듭니다. 내 남편보다 남의 남편이 더 좋아 보이고 매력 있게 보입니다. 이때, 마귀를 직시하고 대적하여 물리치지 않으면 큰 파멸을 가져옵니다. 죄를 짓게 충동을 주는 것은 모두 마귀입니다.
고후 4:4절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라고 했습니다.
한 예로 쥐덫에 매달린 맛있는 미끼를 따 먹다가 형 쥐가 쥐덪에 걸렸답니다. 그것을 본 동생 쥐가 쥐덫에 매달린 미끼를 먹으면 잡혀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눈에 보이는 미끼에 끌려서 그만 따먹다가 형 쥐와 마찬가지로 쥐덫에 걸려서 죽고 말았답니다.
이처럼 여러 세기 동안 마귀는 아름다운 것으로 위장한 덪을 놔서 많은 영혼을 잡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한시도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느슨한 믿음 속에 곧 마귀는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제일 멋있는 장소가 어느 곳입니까? 네온싸인이 번쩍거리고 술과 유혹이 많은 곳은 죄악의 장소입니다. 매력 있는 곳으로 사람들을 꾀어들여서 희생물이 되게 합니다.
여러분, 겉으로는 휘황 찬란한 거리는 마귀의 거리입니다. 눈을 들어 우리의 교회를 보십시오.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곳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성도와 함께 더불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곳이야말로 아름다움이 넘치는 곳입니다. 죄악을 아름다운 것으로 치장하는 마귀에게 속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방해하는 일을 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떠하든지 못받아 들이게 방해하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능력이 있습니다. 고로 이 말씀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면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서 구원받게 되기 때문에 마귀는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갖은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 속에 의심이나 반항심을 일으켜서 말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예배시간에 말씀의 씨앗을 뿌릴 때에 성령께서도 역사하시지만 마귀도 역사해서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집에 도착하기 전에 다 잊어버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설교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들 듣는데서 설교를 비평하면 아이들은 은연중에 '종교란 필요 없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사단에게 이용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받을 때 아멘으로 받고 감사함으로 받고, 순종할 마음으로 받아야겠습니다. '복있는 자는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책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매일 읽고 생활에 적용해야 되겠습니다.

4. 교인들을 미혹하여 넘어지게 하는 일을 합니다.
사단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실족하게 만들고, 불신자들을 그리스도께 접촉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교회 다니다가도 하찮은 일에 섭섭한 마음이 들게 해서 교회를 그만 두게 만들고, 우리 신자들을 미혹케하여 본을 보이지 못해서 불신자들로 하여금 손가락질을 받게 만듭니다. 이 모든 오해와 곡해는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미혹케하여 실족하게 만드는 것이 최대의 목적인 것입니다.
논에는 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도 함께 자랍니다.
우리의 마음속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라지를 뽑아다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지신 것처럼 우리도 사단을 구별하여 내 마음속에서 쫓아내어야 합니다.


갈 6:1절에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늘 우리의 심령을 돌아보아 마귀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마귀는 자신을 교활한 계교로 숨기며 다가오고 있고 죄악을 아름다운 것으로 위장하며 다가오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방해하고 우리들을 미혹케 하여 넘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마귀를 분별할 줄 아는 믿음을 다 소유하여서 하나님의 천국 백성이 되시길 바랍니다.
- 아 멘 -


베드로전서

어떻게 고난을 맞이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어둠에서 불려 나와 빛으로 인도되었다. 이 부르심은 고난에 직면한 그리스도인에게 핍박을 이길 힘을 준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영광의 전제였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이겨 냄으로써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증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덕을 선포할 수 있다.

베드로전서 한눈에 보기

본문

1:1~12

1:13~2:17

2:18~4:19

5:1~11

5:12~14

요점

인사말과 산 소망

하나님의 백성

고난을 대하는 자세

리더십

끝인사

저자

베드로로 본다. 베드로 저작설을 의심하는 견해는, 본문의 헬라어가 지나치게 훌륭하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그 점은 편지 말미에 언급된 실루아노(실라)가 대필했기 때문일 수 있다.

연대

바울의 동역자 실루아노나 마가가 베드로와 함께한 것으로 보아, 바울이 투옥되고 처형된 60년대 중반쯤으로 추정할 수 있다.

목적

베드로전서는 특정 교회가 아니라 고난 중에 있는 모든 이를 위한 회람용 서신이다. 편지를 받는 이들에게 신앙을 잃지 말라고 권면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견딜 수 있는 까닭은 그들이 특별히 부름받은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 편지는 고난의 이유보다는 고난이 올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관한 실천적인 문제를 주로 다룬다.

분류

일반 서신


인사말과 산 소망 (1:1~12)
성도는 핍박을 피해 소아시아 각지로 나그네처럼 흩어져야 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등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맥을 이어 갔다. 고난에 맞서 믿음을 지키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현재 진행형이다. 금이 불 속에서 순도를 높이는 것처럼, 고난은 성도의 믿음을 강하게 한다. 이 믿음 때문에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 이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마치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에 관해 알지 못하면서 미리 증언한 것처럼, 이들은 하늘에서 보내신 성령에 힘입어 복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 (1:13~2:17)
그리스도인은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세속적인 방식을 따르는 대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걸맞은 태도를 지녀야 한다. 믿는 자들은 모퉁잇돌이신 예수님을 기초로 신령한 집,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질 것이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은 오해와 미움을 받고, 악의적인 소문의 희생자가 된다. 이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선행밖에 없다. 선행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막고, 주를 위해 인간의 제도에 순종할 필요가 있다. 하늘나라의 시민권자로서 이 땅의 권세자를 존중하라는 권면은 바울의 가르침과 유사하다(롬 13:1).

고난을 대하는 자세 (2:18~4:19)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베드로전서는 고난의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이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가 관심사다. 만약 사환(노예)이라면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순종해야 한다.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는 남편을 인정하고 선한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남편은 아내를 억눌러서는 안 된다. 누구든지 자신의 권리 행사는 삼가고, 선생을 베푸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예수님은 불의한 자들을 위해 고난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셨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당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된다.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는가 (3:19~20; 4:6)
베드로는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스도께서 옥에 있는 영에게 복음을 전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절의 모호함을 명쾌하게 설명할 길은 없다. 옥에 있는 영들이 타락한 천사들이라는 견해도 있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라는 견해도 있다. 저자는 구원 문제에서 노아 이야기를 상징으로 사용하는 듯하다. 노아 시대처럼, 오늘날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리더십과 끝인사 (5:1~14)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충고한다. 지도자는 맡겨진 책무를 사랑으로 수행해야 한다. 돈이나 명예 같은 더러운 이득을 좇지 말아야 한다. 또 젊은이는 지도자에게 순종해야 한다. 모두가 서로에게 겸손해야 한다. 성도의 모임은 섬기는 종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고난으로 가득하고, 대적 마귀가 판을 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를 강건하게 하실 것이다.
편지를 마무리하며 베드로는 동역자들을 소개한다. 실루아노는 저자인 베드로를 대신해 편지를 기록한 듯하다. 마가는 저자의 '아들'로 소개되는데, 그만큼 저자를 가까운 곳에서 보필했다는 의미다. 이를 근거로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이 베드로의 기억과 증언에 의존한다는 전승이 생겼을 것이다.

베드로전서

거룩한 나그네의 인생 철학
베드로는 극심한 박해 속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각지로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쓴다. 첫 번째 편지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신 산 소망을 의지해 고난이 닥치더라도 놀라지 말고 이겨 내라고 당부한다. 두 번째 편지에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변절에도 흔들리지 말고 믿음을 지키며 성숙을 향해 계속 나아갈 것을 권면한다.

베드로전서 한눈에 보기

본문

1:1~12

1:13~2:12

2:13~17

2:18~25

3:1~7

3:8~12

3:13~17

3:18~4:6

4:17~19

5:1~14

구성

성도의 구원

성도의 성화

통치권

사업관계

결혼

생활 전반

고난 중의 행위

그리스도의

모범

고난에 관한 명령

고난 중의 목회

초점

성도의 구원

성도의 복종

성도의 고난

주제

성도의 믿음

성도의 행실

성도의 고난

거룩

조화

겸손

장소/연대

로마 / AD 63~64년경


베드로가 말하는 돌에 대한 해석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반석'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후 설교할 때도 시편 118:22절의 돌에 대한 말씀을 인용했고(행 4:11), 베드로전서 2장에서도 돌을 언급했다.

보배로운 산 돌 (2:4)

예수님을 상징한다. 이사야 28:16절을 인용한 이 말씀은 예수님에게서 영원한 생명이 넘쳐 나옴을 말해 준다(요 1:4).

건축자들의 버린 돌 (2:7)

여기서 건축자는 종교적 유대인을 말하며, 그들이 버린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뜻이다.

모퉁이의 머릿돌 (2:7)

이 돌은 건물의 기초이자 중심이었다. 이를 기준으로 벽돌들이 서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결합되는 진리를 묘사한다.

부딪히는 돌 (2:8)

길가에 있는 돌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와 격돌해 파멸하는 자를 뜻한다.

거치는 반석 (2:8)

자연에 돌출해 있어 보행을 방해하는 돌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마음에 회의를 품은 자를 뜻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백서
1) 그리스도인의 인생 철학 (2:11~12) : 그리스도인은 영혼을 거스르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2:11).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악을 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에게 선한 행실을 보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2) 세상과 직장에서의 삶 (2:13~25) : 주님을 위해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순복해야 한다. 왕과 방백에게도 순복해야 한다. 종은 주인에게 순복하되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선한 마음으로 순복해야 한다. 이것은 선을 행해 어리석은 자들의 무지한 말을 막기 위함이다.
3) 가정에서의 삶 (3:1~7) : 아내는 자신의 행위로 남편을 설복케 할 수 있다. 온유하고 안정된 마음은 남편을 믿음의 길로 인도한다. 또한 남편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근거한 결혼이 가장 이상적이다.
4) 교회에서의 삶 (3:8~12) : 서로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악을 멀리해야 한다. 그리고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해야 한다. 선을 행하고 고난을 기꺼이 받아야 한다.
5) 고난을 견디는 삶 (3:13~4:19) :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셨으므로 성도는 고난을 견디고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

존재의 유형

존재의 이유

선한 시민 (2:13, 14)

어리석은 자들이 조용해질 것이기 때문에 (2:15)

순종하는 종 (2:18)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기 때문에 (2:21)

순종하는 아내 (3:1)

불신 남편이 아내의 본을 통해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3:1~2)

사려 깊은 남편 (3:7)

그들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기 때문에 (3:7)

사랑 많은 형제자매 (3:8)

그들이 복을 유업으로 받기 때문에 (3:9)


베드로전서의 바벨론 저작설
베드로전서 5:13절을 보면 베드로가 이 서신을 '바벨론'에서 기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가 바벨론에 갔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당시의 바벨론은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였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는 그의 생애 마지막 몇 년을 로마에서 보냈다. 따라서 '바벨론'은 우상숭배의 중심지인 로마에 대한 상징적인 호칭이라고 볼 수 있다.


베드로전서와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전서는 예수님이 영적으로 악한 세상에서 고난 당하는 성도들의 소망이 되심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성도들의 '산 소망'(1:3)이시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1:4)이 되신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그분을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셨다(2:24). 예수님은 성도들의 목자와 감독이시며, 다시 오실 때에는 그분을 믿는 모든 자가 영광을 받을 것이다.

애매히 받는 고난

[베드로전서 2장 18절~25절]
18절 -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절 -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절 -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절 -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절 -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절 -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절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절 -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어린 아이는 사탕 한 알을 빼앗겨도 분하다고 울며 발버둥 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성숙해 갈수록 스스로 남에게 베풀어 줄 줄도 억울한 일을 감수할 줄도 알고 그것을 소화시킬 수도 있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이 성숙한 단계에 들어가면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해도 그것을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는 것은 성숙한 신자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일입니다.


본문에 보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운 것"(2:19)이라고 했는데 '아름답다'는 말은 헬라어로 '카라시'라는 원어로서 은혜라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으로 보상해 준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2:21)고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죄가 없으시지만 남을 위해 그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으니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성도들도 억울한 고난과 고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애매하게 욕을 먹거나, 비방을 받으면 분해서 참지 못하고 펄펄 뛰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또 남을 위하여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면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고 보상해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 되고 축복을 많이 받은 아브라함이야말로 억울함을 많이 참은 사람입니다. 자기 때문에 부자가 된 조카 롯과 헤어지면서 아브라함이 말하길 '네가 좌 하면 나는 우 하고 네가 우 하면 나는 좌 하겠다'고 마음 놓고 좋은 땅을 차지해 가라고 했을 때 욕심 꾸러기 롯이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 요단을 선택하여 차지했을 때 참으로 억울했을 것입니다. 마치 재산을 강탈당한 것 같은 아브라함에게 즉시 하나님은 큰 축복을 해 주시면서 위로해 주셨습니다. 창 13:14절에 보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약속하신대로 아브라함은 엄청난 축복을 하니님께로부터 받았으나, 먼 훗날 롯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에 탈 때 온 집과 재산이 다 불타버리고 롯의 처는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애매히 고난을 받고 억울하게 십자가를 진 것을 참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크게 보상해 주시는 날이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으로 일컬어지는 요셉은 평생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한 것 때문에 형들의 시기를 받던 중에 꿈 이야기를 한 것으로 말미암아 형들이 구덩이에 빠뜨려 죽이려고 하다가 애굽의 상인들에게 팔아서 종으로 전락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왕의 시위대장, 요사이로 말하면 대통령의 경호실장쯤 되는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머슴 노릇을 하였습니다.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잘 하였던지 보디발 장군이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모든 열쇠를 다 그에게 맡겼습니다. 17세에 애굽에서 온 요셉은 한 십여년이 지나는 동안 나이가 27세쯤 되는 건장한 젊은이로 변하였습니다. 게다가 용모가 수려한 미남이고 성실한 사람인지라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애정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상당히 미인이었을 것입니다. 미모에 자신이 있는 그녀가 날마다 유혹하며 심지어 '나와 동침하자'고 적극적인 공세로 나왔을 때 웬만한 사람 같으면 범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단호히 거절하며 '사모님, 주인님은 이 집의 재산을 모두 저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주인님을 빼고는 이 집에서 나는 최고의 지위에 있습니다. 주인님이 사모님 외에 나에게 금지한 것이 없습니다. 사모님 당신은 주인님의 아내입니다. 제가 어떻게 당신과 동침하여 하나님 앞에서 이 큰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분명하게 거절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용기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날마다 요청했다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요셉에게 복수하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요셉의 옷깃을 붙잡고 간청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범죄할 가능성이 있는 자리는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때 이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게 아무도 없느냐, 저 놈이 나를 겁탈하려고 덤벼 들어서 내가 소리를 치니까 지금 이 옷을 벗어 던진 채 도망을 갔다'고 하면서 당장 잡아 가두라고 했습니다. 물론 남편에게도 그 옷을 증거물로 보이며 말했습니다. 보디발 장군은 증거물까지 보았는지라 더 이상의 변명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요셉을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정직하게 바르게 살았으면 칭찬과 상급이 돌아와야 할 것인데 전혀 반대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분하다고 소리 지르며 발악을 하지도 않고 묵묵히 감옥생활을 잘했습니다. 보디발의 가정 총무일을 하던 때와 같이 옥중에서도 성실하게 살았더니 전옥의 마음에 들어서 전옥이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감옥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또 요셉은 감옥에서도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왕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갇힌 왕의 식사를 맡은 관원장과 술을 맡은 관원장이 있었는데 두 관원이 어느날 꿈을 꾸고 요셉에게 상의를 했습니다. '포도나무에 세 가지가 있었는데 꽃이 피고 포도가 열려서 그것을 따다 즙을 짜서 왕의 잔에 부어 드렸습니다'라고 하는 꿈을 들은 요셉은 해몽했습니다. '세 가지는 3일인데 당신이 3일 안에 다시 나가 왕의 잔을 받들게 될 것이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이를 듣고 있던 떡 맡은 관원장이 '나도 꿈에 흰 떡 세 광주리가 머리에 있었고 그 안에는 갖가지 구운 음식들이 들어 있었는데 새들이 날아와서 그것을 먹어 버렸습니다'라고 말하자 요셉은 '세 광주리는 3일을 뜻하며 그것은 3일 안에 바로 왕이 당신의 목을 자르고 나무에 매어질 것이며 새들이 당신을 뜯어 먹을 것입니다'라고 해몽해 주었더니 과연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때 술 맡은 관원이 혐의가 풀려서 나갈 때 요셉이 그에게 간청하기를 '당신이 이곳에서 나가 복직하거든 내 일을 잊지 말고 바로 왕에게 고하여 주시오. 나는 여기에 들어올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하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2년이 지나 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형통하더라'고 했습니다. 만 2년 후에 바로 왕이 꿈을 꾸었는데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한 것을 보고 술 맡은 관원이 그제서야 생각이 나서 요셉의 이야기를 해서 비로소 바로 왕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왕의 꿈을 해몽하기를 여윈 소 7마리는 7년 흉년을 뜻하고, 살찐 소 7마리는 7년 풍년을 의미하는 것이며, 마르고 약한 7개의 이삭과 잘 익은 7개의 이삭도 7년 흉년과 7년 풍년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요셉은 바로 왕에게 7년간 큰 풍년이 들고, 그 다음 무서운 흉년이 7년간 계속될 것이니, 잘 준비해서 기근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꿈 해몽 때문에 요셉은 왕 다음으로 가장 높은 자리, 국무총리가 되어서 온 애굽 사람을 기근에서 구원하고, 자기의 온 가족과 친족을 구원하면서 후일 형제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큰 그릇으로 쓸 사람이나 큰 축복을 받을 사람은 억울한 고난과 남을 위한 고난을 많이 당하게 하시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당하면 이것이 나중에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가서 점치는 귀신이 들린 여자 아이를 보고 불쌍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아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고맙다는 인사나 칭찬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그 종의 주인이 이것을 보고 돈 벌이가 막혔으므로 관에 고발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잡혀가 매를 많이 맞고 쇠고랑을 차고 옥에 갇혔습니다. 자,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조금도 분해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무슨 섭리가 계심을 믿고 찬송하며 기도할 때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며 쇠고랑이 풀어져 나가고 옥문이 열려졌습니다. 옥사장은 죄수들이 도망한 줄로 알고 칼을 들어 자결하려는 것을 바울과 실라가 보고 말렸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전도하여 그와 그 집이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와 기적이 나타나기 전에 이런 억울한 고통을 당하는 일이 있음을 기억합시다.


예전에 해병대를 제대한 제 동생이 은혜를 받고 목사가 되기 전에 저의 집에 와서 있을 때의 일입니다. 걸핏하면 칼부림을 하고, 돌맹이로 문을 부수고, 밥상을 걷어 차고, 우리 큰 애가 두 세 살 났을 때인데 그 아이를 마당에 집어 던지려고 하고, 변소에 집어 넣는다고 위협을 하고 온갖 행패를 다 부렸습니다. 저는 참으로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저 놈을 내가 낳기를 했나. 그렇다고 내가 맏아들인가? 왜 내가 이런 십자가를 져야 하나?'하며 원망스러워 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자그만치 4년이 넘도록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진정으로 동생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는 성령을 받고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일로 저의 가정도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고 억울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누리고, 구원을 받고,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본인 자신도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되고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됩니다.


모세가 자기 일신의 안락만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그 무서운 고난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도리어 애굽의 황제도 될 수 있고, 애굽의 모든 보화도 손에 넣고(히 11:25, 26) 행복한 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백성을 위해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모진 고난 끝에 자기 백성을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뿐 아니라 하늘 나라에서까지 영원히 빛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 봄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애매한 고난을 받고 소화시키는 자가 있을 때 그 가정이 살고 복을 받게 되고, 그 교회가 부흥되고, 그 직장이 잘되며, 이런 사람이 그 나라에 많이 있으면 그 나라가 잘되고 부흥되는 것입니다.
-아 멘-

믿음의 고난은 잠깐이고 그 영광은 영원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14절]
8절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절 -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10절 -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11절 -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12절 -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13절 -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4절 -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으니 깨어 믿음을 굳건히 해 그를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고난당한 성도를 온전하고 굳건하게 하십니다. 베드로는 이 권면들이 하나님 은혜라 하고, 바벨론의 교회와 마가의 문안을 전하며, 주 안에 있는 이들에게 평강을 기원합니다.

1. 근신하라, 깨어라, 대적하라 (8~11절)
사탄은 지금도 우는 사자처럼 쉬지 않고 두루 다니며 멸망시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은 근신하고 깨어서 사탄을 확실히 대적해야 합니다. 특히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사탄의 공격에 쉽게 흔들리며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이 주신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담대히 기도함으로 사탄의 유혹과 공격을 이겨 내야 합니다. 또한 함께 고난받는 형제들이 있다는 사실과 이 고난의 시기가 '잠깐'임을 기억하며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그 백성을 더욱 온전하고 굳건하게 하셔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그 은혜의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 묵상 질문
성도는 사탄의 공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 적용 질문
사탄에게 공격당하기 쉬운 내 감정, 인간관계, 상황은 무엇인가요?

2. 사랑의 입맞춤으로 문안하라 (12~14절)
사탄의 위협과 공격은 공동체의 위로와 격려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지만, 두 사람이면 능히 맞설 수 있습니다(전 4:12). 초대교회 당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황제의 박해로 한시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체포되면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기에 항상 쫓기며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극심한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로마 교회의 문안 인사를 전함으로써 믿음의 동역자가 있음을 알리고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권면합니다. 아울러 바울의 1차 선교 여행 때 중도에 포기해 문제를 일으켰던 마가를 '내 아들'로 소개함으로써, 실수했던 사람이라도 회복시키고 다시 사명을 맡기시는 주님의 은혜를 강조합니다. 성도의 연합과 교제는 믿음 위에 서로 더욱 굳게 세우고 세상을 이기게 하는 힘이 됩니다.
* 묵상 질문
베드로는 편지의 마지막 인사에서 무엇을 당부하나요?
* 적용 질문
공동체 안에서 교제하며 위로해야 할, 고난당한 지체가 있다면 그에게 어떻게 주님의 약속을 전할까요?

오늘의 기도
저만의 고난이고 끝나지 않을 고난인 것처럼 절망하던 마음을 돌이켜 주님이 베푸실 영원한 영광을 소망합니다. 오늘도 믿음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으며, 온전하고 굳건하고 견고하게 회복시키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겸손과 자원함으로 순종하십시오

[베드로전서 5장 1절~7절]
1절 -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절 -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절 -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절 -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절 -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절 -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절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주님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베드로가 장로들에게 양 무리를 치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해서 하며 그들에게 본이 되라 권합니다.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서로 겸손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높이시며 돌보시는 하나님께 염려를 다 맡겨야 합니다.

1. 장로들에 대한 권면 (1~4절)
영적 리더십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신앙 공동체의 지도자는 맡은 양들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섬길 뿐, 기득권을 주장하거나 그들 위에 군림하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목자장이신 주님을 따라 지도자로서 믿음의 본을 보이며, 성도를 인도하고 먹이고 섬기는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특히 불의한 이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공동체가 고난을 당할 때 신실하고 충성된 지도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도자가 바로 서 있는 공동체는 사탄의 어떤 공격에도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목자로서 양들에 대한 책임을 다할 때, 주님이 다시 오셔서 영원한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 묵상 질문
교회 지도자의 책임과 상급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목자장이신 주님의 본을 따르기 위해 가정, 교회, 직장의 지도자로서 나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2. 젊은이들의 합당한 자세 (5~7절)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서로 순종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경건한 지도자의 가르침을 받은 젊은이들은 그 가르침에 순종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공동체의 모든 관계 안에서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젊은이들과 장로들 모두 겸손하게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해 멸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인간관계와 상황을 맡기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하나님이 그분의 때에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필요를 잘 알고 계십니다. 기도로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평강으로 지키십니다.
* 묵상 질문
베드로가 이토록 겸손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영적으로 나를 인도하는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는 편인가요? 그렇지 않았다면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세요.

오늘의 기도
제 짐을 대신 져 주시는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맡기지 못하고, 삶의 염려로 분주했던 교만과 불신을 용서하소서. 돌보시고 높이시는 주님의 은혜만을 바라보며, 저를 세우신 자리에서 겸손하게 사람들을 섬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하나님 뜻대로 받는 고난,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

[베드로전서 4장 12절~19절]
12절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절 -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절 -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절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절 -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절 -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절 -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절 -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연단하는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즐거워하는 것은 영광의 때에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이 있으니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선을 행하며 미쁘신 창조주께 영혼을 의탁해야 합니다.

● 하나님 뜻대로 받는 고난,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
그리스도인으로서 받는 고난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당할 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사실로 인해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단련하시고 삶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주님이 영광 중에 오셔서 그분을 위해 고난당한 자에게 상급과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복음에 순종하지 않고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은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고난 중에라도 주님만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때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 영혼을 지키십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이란 어떤 것인가요?
* 적용 질문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은 내 죄로 인한 것인가요?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그리스도 재림 소망이 오늘의 삶을 바꿉니다

[베드로전서 4장 1절~8절]
1절 -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절 -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절 -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절 -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절 -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6절 -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7절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절 -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절 -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절 -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절 -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 뜻을 따라 남은 때를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근신해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며, 원망 없이 대접하고,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1~6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순종과 고난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과 태도로 자신을 무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롭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죄와 정욕을 버리고, 고난도 기꺼이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과 함께 방탕하던 삶에서 떠나면 세상이 우리를 조롱하고 비방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선악 간에 심판하실 하나님과 인내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죄에 대한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조롱과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해집니다.
* 묵상 질문
정욕을 따르는 삶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은 어떻게 다른가요?
* 적용 질문
내 삶에서 예수님 마음을 갑옷으로 삼아 방어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요?

2. 만물의 마지막 때 (7~11절)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계획은 이제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성도는 재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가까이' 다가온 사건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치열한 영적 전쟁 현장임을 알기에 정신을 차리고 늘 기도에 힘씁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고 용납합니다. 또한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알고 선한 청지기로서 본분에 충성하며 책임을 다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능력 있게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받은 은사와 물질과 시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살 때,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만약 오늘 주님이 오신다면 내 삶에서 무엇을 가장 안타까워하시거나 책망하실까요?

오늘의 기도
육체의 남은 시간 동안 오직 하나님의 뜻을 삶으로 살아 내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날마다 깨어서 기도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겸손하게 헌신하며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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