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하신 주님을 믿기에 고난도 복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3절~22절]
13절 -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절 -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15절 -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절 -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절 -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절 -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절 -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절 -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절 -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절 -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의를 위해 고난받으면 복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소망에 관한 물음에 늘 대답할 준비를 하고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해 죽으심은 불의한 자들을 하나님 앞에 인도하려 하심입니다. 주님은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1. 의를 위해 받는 고난 (13~17절)
이 세상은 불확실하고 모순된 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항상 선을 행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베드로는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강조합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의를 행하려면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주님으로 인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온유한 태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이 소망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선행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부끄러워하며 복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의인의 선한 양심은 세상에 소망을 주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료하며, 가족과 사회와 민족을 살리는 의의 제사가 됩니다.
* 묵상 질문
의를 위해 받는 고난이 왜 복이 될까요?
* 적용 질문
선한 일을 하다가 오히려 곤경에 처할 때 어떤 믿음을 붙들어야 할까요?

2. 불의한 자 대신 죽으신 예수님 (18~22절)
그리스도께서 의를 위해 고난당하셨으니 우리도 의를 위해 고난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의인이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또한 다시 살아나심으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악한 영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오르셨고, 그분의 발아래 모든 천사와 권세가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고난을 감당하시고 영광을 얻으신 예수님을 믿기에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언제 어디서든 선한 양심으로 행하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들을 다시 묵상해 보세요.
* 적용 질문
누군가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어떤 헌신과 희생을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세상의 위협과 사소한 욕심 때문에 옳은 것을 외면하며 양심을 더럽혔던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저도 승리할 것을 확신하며, 의를 위해 고난받는 이 길도 선한 양심 붙들고 기꺼이 감당하며 걷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이 원하시는 관계로 복을 이어 가게 하소서!

[베드로전서 3장 1절~12절]
1절 -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2절 -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3절 -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절 -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절 -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절 -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7절 -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8절 -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절 -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10절 -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절 -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절 -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 믿지 않는 남편일지라도 아내의 행실로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아내들은 속사람을 온유하게 하고, 남편들은 아내를 귀히 여겨야 합니다. 성도는 형제를 사랑하며 형제를 위해 복을 빌어야 합니다. 선과 화평을 구하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1. 아내와 남편의 도리 (1~7절)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삶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 남편은 아내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며 귀히 여겨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 아내는 신앙 때문에 불신자 남편에게 핍박을 받더라도 인내해야 합니다. 정결하고 온유한 삶으로 자기 믿음을 증명할 때 남편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겉모습보다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고 값진 것은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이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한 몸으로서 동등하며, 아내는 자신과 함께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을 자라는 지식을 남편이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남편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사랑과 순종의 관계를 통해 부부는 영적으로 성장하며 하나님 은혜를 누립니다.
* 묵상 질문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어떤 존재로 여기고,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 적용 질문
내 심령은 온유하고 안정되어 있나요? 속사람을 단장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2. 복을 이어 가는 공동체 (8~12절)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기 위해서는 한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서로에게 겸손히 행하며 상대가 악을 행하더라도 나만은 선을 행하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자신을 핍박하고 욕하는 사람을 위해 복을 빌어 주는 성도, 정직하고 화평한 삶을 추구하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복을 유업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풍성한 사랑을 깨닫고 감사할 때 가능합니다. 그럴 때 형제를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주목하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 적용 질문
교회 공동체를 핍박하거나 욕하는 세상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일지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세요.

오늘의 기도
믿음을 말이 아니라 삶으로 웅변하는 이에게 주님의 눈과 귀가 향함을 봅니다. 존중과 이해와 배려로 가득한 가정, 겸손과 사랑과 화평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이루어 다음 세대가 주님의 복을 이어 받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 주신 자유로 주님 가신 길 따릅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25절]
11절 -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절 -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절 -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절 -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절 -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절 -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절 -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18절 -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절 -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절 -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절 -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절 -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절 -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절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절 -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성도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선한 행실을 통해 비방자들이 주님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인간의 제도에 순종하고, 어떤 주인에게라도 순종하며,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우리를 살게 하신 주님을 따라 참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1. 자유가 있으나 하나님의 종처럼 (11~17절)
그리스도인은 자유롭지만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죄로부터 자유를 얻은 우리는 육체의 정욕을 대적하고 항상 선한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를 악하다고 모함하고 비방하던 불신자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질서를 최대한 존중해서 하나님께 죄가 되지 않는 한 지도자들의 권세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자유롭지만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겨야 할 책임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 묵상 질문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종으로서 불신자들의 무고한 비난을 멈추게 할 만한 삶을 살고 있나요?
 
2. 그리스도가 보이신 인내의 본 (18~25절)
베드로는 종의 신분인 성도를 향해 까다롭고 불공평한 상전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인내하며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고난의 상황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견딜 수 있는 힘과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부당한 고난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당하시고 재판받으신 모든 과정은 불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부당한 고난을 당하셨지만 예수님은 목소리를 높이거나 대항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인내하셨습니다.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자신과 모든 상황을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난당하심으로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 의롭다고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주님만을 의지하며 그 고난을 인내와 믿음을 훈련하는 기회로 삼는 사람이 복됩니다.
* 묵상 질문
죄 없으신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이 땅에서 부당한 고난을 당하실 때 보이신 모습을 묵상해 보세요.
* 적용 질문
부당한 고난을 당할 때 나는 주로 어떻게 반응했나요?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한 현실과 마주할 때마다 제 삶을 이끄시고 돌보시는 주님을 신뢰하게 하소서.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제 입술과 행동에 인내를 심고, 믿지 않는 자들의 비난을 막는 선한 행실로 제 삶을 채우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온 세상에 하나님의 덕과 복음을 선포해야 할 사명

[베드로전서 2장 1절~10절]
1절 -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절 -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절 -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절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절 -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절 -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절 -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절 -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절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절 -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 성도는 모든 악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산 돌이신 예수님께 나아가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성도는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도록 긍휼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1. 순전하고 신령한 젖 (1~3절)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은 우리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건강하고 온전하게 합니다. 거듭나게 합니다. 과거에 행하던 죄악 곧 악독, 기만, 외식, 시기,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깊이 묵상해서 삶으로 살아낼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본 사람은 영적으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 아기가 젖을 찾듯 말씀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 묵상 질문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성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 보세요.

2. 보배로운 산 돌 (4~8절)
그리스도인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신령한 집인 교회의 일부가 된 존재며,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신령한 제사는 몸과 물질과 시간과 마음 등 삶의 전 영역을 드리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통해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완성되어 갑니다.
* 묵상 질문
산 돌이신 예수님께 나아간 성도는 그 존재와 역할이 어떻게 변화되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성전이자 제사장으로서 내가 가정과 사회에서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3.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 (9~10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죄로 인한 심판에서 벗어나 아주 특별한 신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고 의롭게 하시며,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주셨으며, 영적 어둠에 있던 우리를 인도해 내어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과 복음을 세상에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신 신분과 특권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긍휼을 얻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나는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저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빛으로 인도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선포하기 위함임을 깨닫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고 묵상하고 적용함으로 주님이 부르신 새로운 존재로서의 모습과 가치를 드러내며 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장 1절~10절]
1절 -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절 -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절 -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절 -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절 -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절 -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절 -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절 -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절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절 -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배경 이해하기]
베드로전서는 기독교가 박해받는 상황을 견뎌야 하는 성도를 격려하기 위한 책입니다.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 곧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성도는 ‘흩어진 나그네’와 같았고(1:1), 여러 가지 시험으로 근심하고 있었으며(1:6), 이방인들에게 근거 없는 비방을 받기도 했으며(2:12), 선을 행하면서도 비난받고 있었습니다(3:16).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해 마귀에게 삼킬 위험에 처한 성도도 있었습니다(5:8). 베드로는 그들을 근심하게 하는 여러 가지 시험은 잠깐일 뿐이고(1:6),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웠으며(4:7), 성도는 그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고 믿음의 결국인 영혼의 구원을 받을 것이라며 그들을 위로합니다(1:7~9). 그리고 구원에 대해 예언자들이 전한 것을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며, 그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증언하고 지시하시는 것을 상고하라고 권면합니다(1:10~11).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야 하며(1:13), 그들을 성도로 부르신 거룩하신 분 곧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고(1:15~17),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하며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되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고도 권합니다(1:22).

[인도자를 위한 본문 연구]
본문 연구 1: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1~3절)
베드로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 가기 위한 비결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비결은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마치 갓난아이가 엄마 젖을 간절히 찾는 것처럼, 힘을 다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마 18:3; 막 10:14~15).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한편, 성도로서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악독’이란 단순한 ‘악의’를 뜻하지 않고 남을 해하려는 무자비한 모든 악을 의미합니다. ‘기만’은 누군가를 속인다는 뜻으로, 헬라어 원어로는 ‘미끼로 끌어들이다’라는 속뜻이 있습니다. ‘외식’은 사람의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뜻합니다. ‘시기’란 자기 우월감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타인이 잘되는 것을 방해하는 죄입니다. ‘모든 비방하는 말’은 악의에 찬 마음에서 비롯되는데, 타인을 중상 모략하거나 헐뜯고 악담하는 것입니다.

본문 연구 2: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라(4~8절)
두 번째 비결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신령하고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맛본 사람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됩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처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셨지만(막 8:31) 결국에는 진정한 건축자이신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시 118:22; 사 28:16; 행 4:11). 이처럼 성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산 돌이신 예수님과 연합해 하나님의 집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뤄야 합니다(고전 3:16; 엡 1:22~23; 2:21~22; 3:6). ‘산 돌’은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상징하고,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모퉁이의 머릿돌’(마 21:42), ‘신령한 반석’(고전 10:4), ‘기초석’(고전 3:11), ‘심판의 돌’(단 2:34)로 비유되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거치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사 8:14)가 되십니다.

본문 연구 3: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라(9~10절)
세 번째 비결은 각자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의 참맛을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자신의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존재의 변화를 겪은 사람입니다.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 베드로는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라는 구약성경을 인용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특권을 가졌지만 이제 그 특권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것으로 확대되고 완성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것이 어두움이며, 이제 그 어두움에서 나와 빛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과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묵상 포인트]
성도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 가려면 모든 악을 버리고,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갓난아기가 젖을 찾듯 사모해야 합니다.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 성도는 자신의 신분을 거룩하게 바꿔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답고 선하신 분인지 세상에 선포해야 합니다.

1.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기 위해 일상 속에서 어떤 것을 버리고,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세요.
성도는 구원에 이르도록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 말씀을 더욱 사모해야 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하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에 선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사건이지만, 구원받고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은 일생 동안 이루어 가야 할 일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말씀을 더욱 깊이 알아 가는 것입니다.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삶이 말씀대로 변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날마다 확인해야 합니다. 자신의 삶으로 체험한 하나님의 역사를 다른 이에게 나누며, 예수님이 우리 모두의 구원자이심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이 이웃과 세상 속에 전해질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내 마음과 삶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또한 앞으로 어떻게 변화되리라 기대하는지 나누어 보세요.
베드로는 성도의 신분을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으로 설명합니다. 첫째, ‘택하신 족속’(사 43:20)은 그리스도 구속의 피로 말미암아 얻은 영적 신분으로서(요 1: 12) 그리스도인이 ‘영적 이스라엘’임을 나타냅니다(1:23; 신 7:6~7; 사 44:1~2). 둘째, ‘왕 같은 제사장’(출 19:6)은 왕인 동시에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롬 5:17). 이는 그리스도인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제사장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셋째, ‘거룩한 나라’(출 19:6)는 성도가 현재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쓰시고자 택하신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출 19:5; 사 43:21; 말 3:17)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라는 특별한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언약 백성으로 삼으셨음을 말합니다(행 20:28; 엡 1:7; 살전 5:10).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은 결과 자신이 이러한 귀한 존재로 변화되었음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삶을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덕을 선포함으로 영적으로 날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 가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나그네 인생

[베드로전서 1장 13절~25절]
13절 -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절 -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절 -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절 -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절 -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절 -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절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절 -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절 -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절 -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절 -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절 -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절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성도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야 합니다. 주님의 거룩함을 본받고, 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며, 보배로운 피로 대속받았음을 알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거듭난 것은 썩지 않을 세세토록 있는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1.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3~16절)
하나님 자녀가 된 성도는 자신을 불러 주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개인적 욕심으로 행하던 삶에서 벗어나 모든 말과 행동에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가기 위해서는 긴장을 늦추지 말고 세상과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예수님이 주실 은혜, 곧 완전한 구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 자녀는 어떤 마음과 원칙으로 행동해야 하나요?
* 적용 질문
내 생각과 태도, 삶의 방식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더 추구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2.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 (17~21절)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는 헛되고 의미 없는 삶을 살았으나,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분의 귀한 피로 우리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르게 하셨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나그네임을 잊지 말고, 마지막 날에 행위대로 심판하실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영광스럽게 하신 하나님이 우리도 고난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과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 묵상 질문
십자가와 믿음, 십자가와 소망은 어떤 연관이 있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둔 나그네의 삶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할 수 있나요?

3.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 (22~25절)
진리에 순종함으로 깨끗한 영혼을 소유한 성도는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뜨겁다'로 번역된 말은 원래 '온 힘을 다해 계속해서 노력하다.'란 뜻입니다. 비록 상황이 어렵더라도 진심 어린 마음으로 성도 간에 변함없고 지속적인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며 영원합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한 그 말씀이 우리를 또한 그리스도인답게 온전히 살아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 묵상 질문
거듭남이 하나님 말씀으로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 적용 질문
거듭남을 위해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제 마음과 행실에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피를 담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신실하고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살아 있는 하나님 말씀에 제 삶을 복종시키고 형제를 뜨겁게 사랑함으로 그 은혜를 세상에 흘려보내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주님 주신 산 소망으로 고난도 기쁘게 이깁니다

[베드로전서 1장 1절~12절]
1절 -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절 -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절 -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절 -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절 -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절 -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절 -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절 -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절 -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절 -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절 -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베드로는 삼위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받고 흩어진 성도에게 편지하며 그리스도의 부활로 산 소망을 주시고 하늘의 영원한 유업을 잇도록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성도가 시험 중에도 기뻐함은 선지자와 천사도 살펴보기 원한 것, 즉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 때문입니다.

● 주님 주신 산 소망으로 고난도 기쁘게 이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고난은 축복과 승리의 통로입니다. 주님은 그 시간을 통해 우리 믿음을 정금같이, 우리 인격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베드로는 로마의 극심한 박해로 고난당하며 흩어진 성도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살아 있는 소망을 가졌으니 고난도 기쁘게 감당하라고 격려합니다. 또한 고난으로 연단된 그들의 믿음이 주님의 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것이라고 위로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고난 중에도 기뻐합니다. 고난 중에도 소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할 때,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 묵상 질문
베드로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에게 왜 기뻐하라고 하나요?
* 적용 질문
주님을 향한 확실한 믿음으로 기꺼이 이겨 내야 할 시험과 고난은 무엇인가요?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영원한 것에 근거한 소망

[베드로전서 1장 24절~25절]
24절 -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절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참으로 아름다운 형형 색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계절입니다. 이 꽃들을 볼 때 우리의 마음까지도 밝아지며 오래도록 두고두고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꽃의 생명은 길어야 열흘이 아닙니까?
밀란의 대성당에는 들어가는 문이 삼중으로 되어 있고 아취가 각각 서 있는데 첫째 문 아취에는 장미꽃 화관이 조각되어 있고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 둘째 문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고 그 밑에는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라고 새겨져 있고, 중심이 되는 통로로 연결되는 세번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That only is important which is enternal)라고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인생의 중심부를 꿰뚫는 훌륭한 글귀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즐거움도 잠깐이요 고통도 잠깐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생이 어리석게 신기루와 같고 안개와 같은 세상의 정권, 재물, 부귀영화는 붙잡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참되고 영원한 소망은 붙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인생을 깊이 생각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영원한 것을 소유하기 전에는 참 만족과 평안을 느끼지 못하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풀과 같은 육신만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깊은 내면에는 물질과 명예와 권세로 채울 수 없는 영적인 영원한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의 문제가 해결되고 영원한 소망을 가지기 전에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으며 참 평안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세상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헛된 소망에 속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의 소망을 육적인 것에 근거한 경우와 영원한 것에 근거한 경우를 살펴봄으로써 참으로 우리가 가져야 할 소망의 근거를 깨닫고자 합니다.

1. 육적인 것에 근거한 소망
본문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고 인간의 허무한 일생에 대하여 잘 표현하였습니다. 흙에서 난 풀은 마르고 그 꽃은 풀보다 더 빠르게 시들어 떨어지고 마는 것 같이 흙으로 빚어진 육체는 조만간 다 늙고 병들어 죽어 버리고 마는 것이며, 육적인 인간이 성취한 부귀영화, 행복이라는 것도 잠깐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과 같이 속히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심히 짧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미국의 아담스 대통령이 늙어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지나가는데 한 젊은이가 인사를 하면서 '아담스 대통령 각하, 그동안 평안하십니까?'했더니 대답하기를 '아담스는 평안한데, 우리 집이 다 낡아서 서까래가 무너져 지금 기둥을 막대기로 버티고 있다네, 나는 아마도 곧 이사를 가게 될꺼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즉 영혼은 평안하지만 육체는 늙어서 죽게 되어 천국으로 이사가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TV연속 사극에 나오는 조선 왕조 500년의 역대 임금들을 보더라도 각양 좋은 보약은 다 먹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월은 흘러서 지금은 그들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백년을 산다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찬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리면 푸르고 싱싱하던 풀이 금방 시들어 죽고 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또한 우리 인간은 풀과 같이 약합니다. 흙에서 돋아난 풀들은 얼마나 약합니까? 사람에 의해 밟혀서 죽고 병아리나 토끼 같은 작은 짐승이 뜯어 먹어서 죽고 찬바람만 서늘하게 불면 금방 시들어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인간의 육체도 마찬가지로 어떤 이는 차에 치어서 죽고, 어떤 이는 병이 나서도 죽고 또 물에 빠져도 죽고, 불에 타서도 죽습니다. 어떤 분은 이보다 더 하잘것 없는 일에도 죽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이렇게 약한 것인데 영원히 살 것처럼, 육체를 믿고 육신 생활에 소망을 둡니다.
진시 왕은 죽지 않는 약과 음식을 구해다 먹은 것이 요사이 중국요리에 유명한 상어 지느러미 요리(삭스핀), 곰의 발바닥(웅장), 제비집 요리(연채석) 등입니다. 그리고 진시 왕은 일년에 똑같은 음식이 두번만 올라오면 요리사의 목을 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진시 왕은 49세에 죽어 관속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약한 것이 우리 인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 인간은 풀과 같이 낮은 존재입니다. 인간이 고층 빌딩을 짓고, 달나라에 가고, 세계를 정복한다고 해도 풀과 같이 낮고 볼품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 보면 고층빌딩도 성냥갑을 세워 놓은 것 같고, 고급 승용차도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을 한다, 장관을 한다고 아무리 뽐내어도 하나님께서 내려다 볼 때는 도토리 키재기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인간의 영광과 쾌락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고 장관, 국회의원이 되려고 죽을 힘을 다하며 야단법석들 하지만 잠깐 사이에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시들어 떨어지고 맙니다.
육체의 모든 영광, 행복, 쾌락도 꽃과 같이 금방 시들어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2. 영원한 것에 근거한 소망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통령이나 장관을 해도, 수 백억, 수 천억을 벌어도 풀과 같이 시들고, 꽃과 같이 금방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런 것들은 참된 소망이 되지 못하고 참으로 신뢰할 것이 못됩니다.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냈다고 해도 다 별 것 아닙니다. 으시대고 교만할 것이 못됩니다. 병아리들끼리 제 키가 조금 더 크다고 으시대는 것과 같습니다. 렘 9:23절 이하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정 자랑할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영원하신 말씀을 근거로하여 사는 것입니다. 요일 2:15-17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인간은 영원한 것에 근거한 소망을 가져야 참 안식과 만족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소망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성부)의 말씀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을 따라 사는 생활입니다. 벧전 1: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씨앗과 같아서 이 말씀을 믿고 받아들일 때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요 6: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영혼이 살아나고 새 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 말씀 외에 어떤 성현 군자의 말이나 심오한 철학이나 사상의 이론도 영혼을 살리지 못하고 영생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이 곧 영원한 삶의 규범입니다. 요일 2:17절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육신의 소욕을 따라 행한 모든 것은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과 같아서 심판의 불이 임할 때 다 소멸되고 말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생활은 금이나 은으로 지은 것 같아서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따라 사는 생활은 비록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살지라도 영원한 차원에서 사는 것입니다.
또한 육신의 생각대로 사는 삶은 모래 위에 지은 집 같아서 하나님의 심판의 홍수가 임할 때 다 무너지고 말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은 반석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육신의 생명이 다해도, 심판의 홍수가 임해도 영원히 승리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십자가의 보혈(성자)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다가 몸이 쇠약해서 침상에 누워 있는데 마귀가 나타나서 자기가 평생에 지은 죄를 다 기록한 두루마리 책을 펴 놓더랍니다. 루터는 너무나 놀라서 낙심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공로를 믿고 '마귀야, 거기에 기록된 것은 다 내가 지은 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한가지 빠뜨린 것이 있구나. 그 끝에 루터의 이 모든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용서 받았느니라 하는 말은 왜 빼먹었느냐?'하고 호통을 치니까 마귀는 혼비 백산하고 도망가더랍니다.
이와 같이 제법 믿음 생활을 잘 하다가도 실족하여 범죄했거나, 과거의 지은 죄로 마귀의 송사를 받을 때 좌절하거나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백할 때 예수님의 피로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담대하게 송사하는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히 9:13, 14절에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말씀했습니다. 요일 1: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분명히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그의 피가 내 죄를 대속했음을 믿으면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며 틀림없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잘못하고 범죄하면 하나님의 징계는 받을지언정 우리의 구원은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거듭남(성령)입니다.
식물은 몸만 있고 동물은 몸과 혼이 있지만 인간은 몸과 혼과 영이 있습니다. 육체는 풀과 같이 시들어 죽는 때가 오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혼은 영원불멸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영혼이 거듭나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지만, 예수믿고 거듭나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요 3:6, 7절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 3:36절에서는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 믿고는 못살겠다는 각오와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구주로 확실히 믿고 있는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을 것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아 멘-

덮어주는 사랑

[베드로전서 4장 7절~8절]
7절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절 -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요한일서 1장 7절~10절]
7절 -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절 -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절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절 -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한일서 2장 1절~2절]
1절 -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절 -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베드로전서 4:8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죄와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은 무엇보다도 큰 사랑이요 고마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덮어준다는 것은 죄를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을 의미하며 죄를 들춰내지 않고 그대로 감싸주는 것이요, 죄를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려 주는 사랑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고맙고 넓은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덮어주는 사랑에 대해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덮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는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범죄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으려면 소나 양이나 염소를 잡아 그 피를 뿌리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죄가 아무리 크고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 뿌리는 제사를 드리면 어떤 죄를 범했든지 용서를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편 레 17:11절에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죄대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고 용서하시기 위해서 구약 시대에는 양과 염소의 짐승의 피를 뿌려서 용서받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말씀대로 피에 생명이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는 온 애굽의 가정마다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그 재앙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양의 피가 그 집 사람들의 죽음을 대신해 주었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들의 죄를 모두 덮어 주시는 것이기에 이 다음 심판대 앞에서 누구든지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믿고 마음의 문설주에 바른 사람은 지은 죄대로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민수기 19장에 보면 다른 데와 달리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서 제사를 드린 것이 나옵니다.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서 그 피를 회막을 향하여 일곱 번 뿌리고 그 암송아지를 그 가죽과 고기와 심지어 피와 똥까지 불사르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송아지를 불태울 때에 우슬초와 홍색실과 백향목을 함께 태우게 했습니다. 불이 다 탄 후 재는 한 곳에 긁어 모아 두었다가 죄를 지었거나 무슨 부정한 일을 한 자에게 그 재를 물에 타서 그 잿물로 씻으면 부정한 자가 깨끗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여기 붉은 암송아지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대개 남성적인 것은 객관적인 진리와 증거와 신앙을 의미하고 여성적인 것은 주관적인 경험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붉은 암송아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날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개인적으로 체험해야 된다는 것을 뜻하는데 특별히 재라고 하는 것은 그 속에 피가 들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 그 재 속에는 암송아지를 태울 때 함께 넣어 태운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의 재도 포함되어 있는데 백향목과 우슬초는 세상을 의미하고(왕상 4:33) 홍색실은 죄를(사 1:18) 의미합니다.
붉은 암송아지가 위의 모든 것과 함께 태워진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다 걸머지고 죽임을 당하신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재라는 것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재는 모든 물질의 마지막 형태요 또 재는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것이며 또 재는 썩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구속 사업은 최종적인 완성이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며 썩지 않는 구속 사업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아무때라도 어떠한 무서운 죄와 많은 죄를 졌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 나와서 자백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음 받고 용서함 받고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죄까지도 다 담당하시고 대속의 사업을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기 전의 죄나 예수 믿은 후의 죄나 무슨 죄라도 주님 앞에 나와서 자백하면 예수님의 구속의 은총을 힘입어 죄를 용서함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일 1:7절에 보면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빛이라 함은 복음의 빛, 은혜의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우리의 죄대로 판단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속해 주셨다는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그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모든 죄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에서 용서받지 못할 것같은 죄라도 아무리 큰 죄라도 또 아무리 많은 죄를 범했더라도 다 용서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8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죄가 없다고 하고 숨기고 회개가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도리어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범죄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할 것은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미쁘시다"고 하는 말은 이쁘다는 뜻이 아니고 믿으실만하다,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고 믿으실만하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요일 2:1절에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은 후에 범죄하게 되면 구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구원이 없어진다면 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여러분! 어떤 부모가 죄를 졌다고 해서 그 자식을 호적에서 지워버립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니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앞에 대언자가 계신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2절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기 전의 죄나 믿은 후의 죄나 혹은 미래의 죄까지도 예수님은 모두 담당해 주신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모든 죄를 다 담당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거짓말 하실 수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 언약을 안 지키실 수 없으신 것입니다.
만일 회개치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마치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께 잘못하고 그것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숨기면 그 아이는 부모들이 아무 말을 안 해도 무섭고 가까이 가기가 싫고 양심이 괴로운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치 않으면 스스로 하나님과 거리감을 느껴서 기도가 나오지 않고 마음도 괴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솔직하고 진실하게 자복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 32:1절에 보면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아무리 무겁다 할지라도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희생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마치 암송아지가 희생의 제물이 되어 불에 탄 재물 물에 타서 그 물로 씻기만 하면 어떠한 더러운 죄라도 다 깨끗함을 입는 것처럼 우리들은 우리의 죄를 아무때라도 그 앞에 자백하기만 하면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와 모든 불의를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덮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도 남의 허물과 죄를 덮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더러운 죄인들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하나도 남김없이 끄집어 내어 심판하신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자가 없고 구원받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다른 사람들의 죄와 허물과 잘못을 덮어주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앞에 놓고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이 여인을 돌로 칠까요 말까요?" 만일 "돌로 치라" 하면 "당신은 사랑을 외치면서 어떻게 돌로 치라고 합니까?" 할 것이고 "용서하라"고 하면 "구약 율법에는 간음죄를 범한 자는 돌로 쳐 죽이라 했는데 왜 율법을 무시합니까?"하고 예수님을 잡으려고 간계를 꾸며 질문한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땅에 글을 쓰시고 나서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돌을 버리고 한 사람 한 사람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물러난 후에 예수님께서는 돌에 맞아 죽을 것을 기다리고 있는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하시고 그 여인을 용서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형제들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노아가 포도 농사를 짓고 포도주를 잔뜩 마시고 취해서 겉옷을 벗어버리고 하체를 드러내 놓고 잠을 자고 있는데 "함"이란 아들이 이 광경을 보고 덮어드리지 않고 뛰어나와 형과 아우에게 흉을 봤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이 말을 듣고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아버지의 하체를 가려 드렸습니다. 후에 잠이 깬 노아는 셈과 야벳은 축복을 했고 함은 저주를 했습니다. 이와 같이 남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우리도 마주볼 때는 충고하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용서해 주고 덮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벧전 4:8절에 보면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잠 10:12절에는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잠 17:9절에 보면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교회에 남편이 외항선을 타고 나간 여자 집사님 한 분이 계시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 신앙 생활 잘 하시는 집사님의 남편이 수개월만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돌아온 주일 예배에 그 집사님이 참석을 안 하셔서 아무리 반갑다해도 주일날 집사가 예배에 참석도 안 하다니 신앙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또 한편으로는 괘씸한 마음도 들어 "다리 몽둥이가 부러져라"하고 교인들 듣는 데서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예배가 끝난 얼마 후 바로 그 여집사한테 전화가 왔더랍니다. 목사님은 이거 정말 다리가 부러진게 아닌가 하고 겁이 덜컹 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그 여집사 말이 "목사님 감사합니다. 저를 그렇게 염려해 주시고 축복 기도까지 해주시다니..." 하더랍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랐는데 후에 알고 보니 그 이웃에 계신 집사님이 그 집사님을 찾아가서 목사님은 다리 몽둥이가 부러져라 했는데 그 말은 한마디도 안하시고 목사님께서 그 남편과 가정을 위해서 크게 축복기도 해 주셨다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여집사가 고맙다고 전화를 한 것이더랍니다. 나쁘게 말했는데 좋게 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사람이 있습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하고 없는 허물도 덮어 씌우고 허물을 억지로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대단히 나쁜 것입니다.
남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라고 무조건 다 허용하고 또 잘못한 것을 잘했다고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필요하면 정직한 충고와 권면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권면이나 충고도 근본적으로는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며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 주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와 허물을 아무리 무서운 죄라도 아무리 큰 죄라도 자복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다 용서해 주시고 덮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가르침대로 남의 허물을 용서하고 덮어주는 사랑의 성도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목 : 나그네의 인생과 삶의 지혜 (피종진 목사님)

[베드로전서 2장 11절~17절]
11절 -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절 -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절 -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절 -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절 -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절 -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고 같이 하라
17절 -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가슴속에 항상 기억하시는 분은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외로움이란 홀로 있을 때, 누군가를 떠나보냈을 때, 자신의 욕구가 채워지지 못하여 빈곤으로 인하여 오는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전깃불이 없을 때 초롱불이 귀했지만, 전기가 들어오므로 인하여 초롱불의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깜깜한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은 길을 환하게 밝혀주지만, 낮에 햇빛이 비취면 소용없게 되듯이 우리는 순간순간 귀하고 좋은 것은 잊어버리고 새롭고 더 좋은 것에 만족하게 됩니다.
프랑스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일평생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나그네 인생입니다. 정함도 없고, 영원성도 없고, 자신이 생각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 또는 손해가 될 수 있고, 때로는 자기만의 생각을 외치고 있는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그네라는 말은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나그네의 뜻은 케노스(헬)로 ‘외국인, 체류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히 11:13)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이 땅 가운데에서의 잠시 나그네 삶을 인도하시고 또한 삶의 지혜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면 나그네의 인생에 어떤 삶의 지혜를 주셨는지 말씀을 통하여 은혜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첫째, 육체의 정욕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서 나그네 인생 가운데 육체의 정욕에 대한 중요한 점을 강조했습니다.
정욕은 자기의 욕심이나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여 도가 넘는 생각을 하는 것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욕들은 찬송가 가사 「정욕과 죄악에 물든 맘을 성령의 불길로 태우사 정결케 하소서 태우소서 깨끗게 하여 주옵소서」(197장 2절)라고 한 것처럼 성령의 불길로 태워버려야만 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아멘.
사람이 욕심을 비우면 아무런 두려움도 염려도 없습니다. 사람에 대해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게 뒤따르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볼 때 예수님이 보여야만 합니다. 사람이 보이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절대로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대열의 선두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앞장을 섰을 때 요단 강이 갈라지는 이적과 모든 전쟁을 주관하시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이셨고 백성들은 마른 땅을 건너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함께 하나님의 뒤를 따르는 일에는 반드시 자신을 성결케 하라는 삶의 방법을 보여주셨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수 3:5) 아멘.
그러므로 육체의 정욕대로 살지 않는 것이 나그네 인생의 행복한 삶이요, 지혜로운 삶이 됩니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2) 아멘.
베드로의 고백처럼 우리 또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신의 남은 때를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축복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고난과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삶 가운데 흘리는 눈물이 많습니다. 이것은 고난이 함께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한평생 고난과 시련을 싸우면서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창 47:9) 아멘.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그네의 길에는 험난하고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며 도움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손을 꼭 붙잡아야만 합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 아멘.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항상 수고와 슬픔이 있었고 신속히 날아가는 세월을 살았습니다.
저 유명한 나폴레옹도 센트헤레나 섬에서 죽기 전에 마지막 남긴 말은 “육대주에 불어오는 바람은 천만인의 한숨이요, 오대양의 바닷물은 백만 인의 눈물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고난을 겪기 전에는 그릇 행함을 몰랐다고 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라고 하며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한 것입니다.
우리 또한 고난을 겪기 전에는 그릇 행함을 모릅니다. 우리의 본질은 죄악 중에 태어났으므로 착하지 않고 선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구원의 반열에 서지 못하니까 고난이라는 약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께서 주어진 은혜가운데 거할 때 삶이 아름답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후회하지 않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나그네는 한 곳에 멈추어 있는 삶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교통 표지판에 되돌아가라는 유턴(U-turn) 표시가 있듯이 우리의 삶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면 빨리 유턴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세워놓은 법은 세월이 흐르면 바뀌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법칙을 따라 살아가면 우리에게 소망의 길을 열어주시고, 축복의 길을 안내해 주시고, 천국까지 인도해주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T.플러는 “바보는 방황하는 자이며, 현명한 자는 여행을 계속하는 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길은 단 하나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로 향한 푯대를 정했고, 세월을 아끼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위해서 순교를 각오했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신앙으로 일보도 흔들림이 없이 귀하게 살아갔습니다.
또한, 호메로스는 “인생에게서 정처 없이 떠도는 삶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의 지침으로 삶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선량한 백인이 흑인에게 모래시계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는 고귀한 선물이라고 생각하여 뚜껑을 닫아놓고 죽을 때까지 깊이 간직해 놓았습니다. 모래시계는 사용함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한 보화 사명의 직분과 세월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묻어두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의 길을 걸어갈 때 육체의 정욕대로 살지 말아야 할 것과, 고난과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후회가 없는 길을 걸어가라고 나그네 인생의 삶의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후회 없는 승리자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지혜로운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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