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수신자들에 대한 언급과 인사말 1:1,2
1. 본 서신의 저자(1)
(1) 이름으로서의 베드로라고 언급되어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에게 그의 믿음에 대한 칭찬으로서 반석을 의미하는 베드로라는 별칭을 주셨다.
(2) 직책으로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언급되어 있다. 사도란 기독교 안에서 가장 높은 직책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1) 베드로는 그 자신이 사도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가진체 하는 것은 위선이다. 아울러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은혜를 잊는 태도이다.
2) 그는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그의 정당한 이유와 의무로서 그의 사도적 기능을 언급하고 있다.
2. 수신자들에 대한 언급(1,2)
(1) 그들의 외적 상태로 언급함 :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1절). 현재 그들의 형편은 가난했으며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선한 종들이 고초를 겪었던 동안에 자기들의 본토를 떠나 사방에 흩어져 있을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선한 사람들의 가치는 결코 그들의 현재의 외적 상태에 의해서 평가 되어져서는 안된다.
(2) 그들의 영적 상태로 언급함.
1) 여기서 베드로는 그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 이라고 부른다. 선택함은 직무에 대한 것일수도 있고 혹은 특별한 특권들을 누리는 것이나 영원한 구원에 관한 것일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택에 대하여 살펴 보자.
① 이 선택은 ' 하나님의 미리아심을 따라' 되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리아심'은 다음 두가지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첫째, 단순한 예지, 통찰, 혹은 이해로서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식별력을 뜻한다. 이는 마치 수학자가 일월식이 있게 될 때를 확실히 아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러한 예지가 결코 어떤 일을 일어나게 한 동기가 되지는 못한다.
둘째, '미리아심'은 때때로 계획, 정하심, 승낙 등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예견되었을 뿐 아니라 20절에 나타나는데로 미리 정하여졌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본문에 적용시켜보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계획, 정하심, 그리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② '하나님의 미리아심을 따라'라는 말에 아버지라는 말이 덧붙혀져 있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이에 있어서 선택은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며, 화목케 하심은 아들이, 그리고, 거룩하게 하심은 성령께서 하신 일이다.
2) 그들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었다. 모든 선택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성령에 의해서 거룩하게 하심을 받아야 하며 예수의 피에 의해서 의롭게 되어져야 한다. 여기서 성화는 순종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되어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의무를 하나님 앞에서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곧 성령이시다. 순종함과. 이 낱말은 패역한 죄인들을 다시 순종 가운데로 가져다 주기 위한 성화의 목적을 나타내주는 말이다. 22절의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가 그것을 보여 주고 있다.
3) 그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었다. 여기에 율법 아래에서의 전형적인 피뿌림에 대한 명확한 암시가 나타나 있다. 숭고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충족케 한 희생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피는 흘려졌을 뿐 아니라 택하심을 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또한 뿌려져야만 하며 전달되어져야만 한다. 영생의 목적으로 택하심을 입은 모든 자들은 또한 순종이라는 방법으로 택하심을 받았다. 만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피뿌림을 얻지 못한다면 인생에 있어서 어떤 참된 순종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3. 인사말(2)
베드로가 그들에게 바란 축복은 은혜와 평강이었다. 은혜란 곧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총으로서 그것의 모든 특유한 효력들을 수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평강이란 온갖 종류의 평강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함께한 평강, 즉 우리 자신의 양심으로 느끼는 평강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이 축복들과 관련한 베드로의 기도 혹은 간구는 그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 것이었다. 베드로는 그것들이 그들에게 계속되고 증거되고 온전케 되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축복은 곧 은혜와 평강이며 그것들의 증거이다. 참된 은혜가 없는 것에는 결코 평강이 있을 수 없다. 먼저는 은혜이고 그 다음이 평강이다. 은혜없는 평강은 단지 어리석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잠시 동안 실제적인 평강이 없는 곳일지라도 은혜는 진실로 있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때 고뇌 가운데 계셨었다. 은혜와 평강이 처음 주어질 때 뿐 아니라 그것들이 증거되는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Ⅱ. 거듭남으로써 산 소망이 있게 하신 것에 감사함 1:3-5
(1) 이어서 베드로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간다.
1) 수행되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2) 이러한 찬양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의해서 묘사되어지고 있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한 분에 대해서 그의 세 직무를 나타내는 세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즉 우주적인 왕으로서 주라고 했고, 제사장 혹은 구주로서 예수라고 했으며 선지자로서 그리스도라고 한 것이다.
3)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많으신 긍휼' 때문이다. 그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이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감사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특별히 그 사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결과인 뛰어난 산 소망의 은총을 생각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그 소망은 산 소망일 뿐 아니라 영속적인 소망으로서 견고한 기초,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나쁜 상황에 처하여 있어도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하거나 찬양할 때에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불러야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와 우리의 봉사들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최상의 축복들을 받은 것을 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 때문으로 여긴다. 세상의 모든 악은 사람의 죄로부터 나타나는 것이지만 모든 선은 하나님의 긍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거듭남은 영생의 산 소망을 낳는다. 새롭게 영적 출생을 한 자들은 새롭게 영적 소망으로 출생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산 소망이라고 하는 탁월성을 지니고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영생의 소망은 그 사람을 살아있게 해주며, 일깨워 주고, 붙들어 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는 소망이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의 거짓된 소망은 헛된 것이며 멸망하는 것이다. 위선자와 그의 소망은 헛된 것이며 멸망하는 것이다. 위선자와 그의 소망은 함께 소멸되며 없어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은 곧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근거가 되며 기초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리스도와 그의 양떼들간의 뗄 수 없는 연합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양떼된 자들은 머리되신 그의 부활의 능력으로 일어나게 된다.
(2) 베드로는 기업이라는 말로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얻게 될 생명을 묘사해가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이 잃었던 것과는 전혀 비교할 수도 없이 더 좋은 새 기업으로 그들이 거듭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하늘나라에 예비된 고귀한 기업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1) 의심할 바 없이 하늘나라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기업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그의 은사들을 주시지만 기업은 오직 자녀에게만 주신다. 이 기업은 우리가 값 주고 산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 아버지의 선물인 것이다. 즉 우리의 공로의 대가가 아니라 은혜의 결과인 것이다.
2) 이 기업의 비교할 수 없는 탁월성 : 그 기업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 그 점에 있어서는 그 조성자와 같은 성질을 지닌다. 부패란 좋은 것에서 나쁜 것으로 변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변화도 없고 끝도 없다. 즉 하늘에 있는 장막은 영원한 것이다. 이 기업은 더럽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는 죄와 비참함이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쇠하지 아니하며 언제나 그 향기와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또한 그 기업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게 될 때까지 그것은 저 세상에 안전하게 보존될 것이다. 그 기업이 누구를 위해서 간직되어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들의 특성에 의해서 묘사되고 있다. 즉 그들은 '산 소망을 얻도록 거듭난 자들'인 것이다.
(3) 베드로는 그들이 도중에 혹시 넘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약간의 의혹과 불안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안전하게 영생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온갖 해로운 시험들로부터 그들이 보호하심을 받게 되었다고 대답하고 있다.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자들은 틀림없이 안전하게 그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약속받은 축복은 곧 보호하심이다. 너희가…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리고 그 보호해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보호하심을 입기 위해서 우리가 가지는 수단은 곧 우리 자신의 믿음과 주의이다. 또한 우리가 보호하심을 받는 목적은 구원이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것의 끝과 결말을 확실히 보게 될 때는 말세이다. 따라서 성도들의 현 상태는 위험과 구원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코 정복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생한 자들이 영생에까지 보존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결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보호하심을 입는다는 사실이 자신의 구원을 위한 사람의 노력과 주의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영혼으로 하여금 은혜의 상태를 거쳐 영광의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 특효약이다. 이 구원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것'이다. 즉 구원은 성도들을 위해서 하늘나라에 준비되어 있으며 간직되어 있다. 그러나 구원은 비록 예비되어 있다 할지라도 현재에는 여전히 구원을 기업으로 받게 될 사람들에게조차 상당히 감추어져 있으며 나타나 있지 않다. 그것은 말세에 완전하게 나타날 것이다. 생명과 불멸이 복음에 의해서 이제 빛 가운데 드러났다. 그러나 이 생명은 임종시에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게 될 것이며 그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Ⅲ. 구원으로 인한 기쁨 1:6-9
그러므로. 사도는 '그러므로'라고 말함으로써 성도들의 현재 상태의 탁월함과 장래에 대한 그들의 숭고한 기대에 관하여 자신이 앞서 말한 내용을 그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6절).
(1) 근심 가운데 있던 성도들을 안심케 하는 것들이 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라면 크게 기뻐할만한 어떤 일을 항상 가지고 있다. 선한 그리스도인의 주된 기쁨은 크게 가치있는 것들로 이루어진 보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많은 시험들로 인해서 큰 시험이며 시련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좀처럼 하나로 오지 않고 여러 가지가 제각기 다른 측면에서 오게 되며 그 결과 큰 낙심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의 환난과 근심은 잠시일 뿐이다. 환난이 잠간이라는 사실은 그것으로 인한 낙담을 훨씬 줄게 한다. 큰 낙심은 종종 그리스도인의 유익에 필요하기도 하다. '너희가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가 그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의도적으로 괴롭히시지 않으시며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사려를 가지시고 행하신다. 낙심케 하는 이 고난들은 필요할때 외에는 결코 우리에게 오지 않으며 필요 이상으로 결코 오래 머물지도 아니한다.
(2) 베드로는 성도들의 환난의 목적과 그 환난 아래서 그들이 기뻐하게 되는 근거를 말해 간다(7절).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환난은 그들의 믿음의 시련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괴롭게 하시는 것은 그들을 파멸케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연단시키시기 위해서이다. 이 시련은 주로 믿음에 대해서 있어지는데 이는 이 믿음의 시련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모든 것의 시련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하셨다. 만일 믿음이 서게 된다면 다른 모든 것들도 굳게 서게될 것이다. 연단받은 믿음은 금보다 더욱 귀한 것이다. 여기에 믿음과 금이 동시에 비교되고 있다. 금은 모든 금속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일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덕목 중에서 믿음이 그러하다. 즉 그것은 영혼이 하늘나라에 이르게 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연단은 금의 연단보다 더욱 귀한 것이다. 금은 불 속에서 연단 받으므로 증가되거나 더해지지 않으며 오히려 줄어든다. 그러나 믿음은 많은 환난에 부딪침으로 굳게 서게 되며 더욱 증가된다. 금은 결국엔 없어지게 된다. 없어질 금이라는 말이 그것을 나타내준다. 그러나 믿음의 시련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다. 만일 연단받은 믿음이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하는 것이라면 비록 환난에 의해서 공격을 받고 시련을 겪게 된다 할지라도 금보다 귀한 것이니만큼 이 믿음을 권유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광 중에 다시 나타나실 것이다. 시련은 곧 끝나게 될 것이며 영광과 존귀와 칭찬은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
(3) 베드로는 특별히 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칭찬하고 있다.
1) 믿음의 대상의 탁월하심 : 그 믿음의 대상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예수이다(8절).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존재를 믿는 것과(이는 마귀들도 믿는 바이다) 그를 인격적으로 믿는 것과는 별개이다.
2) 사랑과 기쁨이라고 하는 그들의 믿음의 두 귀중한 산물 혹은 결과 : 특히 이 기쁨은 위에 표현되어 있는대로 매우 큰 것이다.
① 감각은 느낄 수 있는 것으로 현재적인 것과 친숙하며 이성은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원리인 것이다. 그러나 신앙은 한층 높이 올라간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것이다.
② 참된 믿음은 결코 믿음 자체로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강한 사랑을 낳는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인격적으로 믿으므로 그에 대해 신실한 사랑을 가진다.
③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과 사랑이 있는 곳에는 말할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이 있다. 그것은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최상의 발견은 그것을 경험함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영광의 충만, 곧 하늘나라의 영광의 충만이다. 성장한 그리스도인의 현재의 기쁨 가운데는 하늘나라와 장래의 영광이 풍성히 들어있다. 그들의 믿음의 근심된 것들을 몰아내며 기뻐할만한 최상의 이유들을 가져다 준다. 이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매우 기뻐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그들이 매일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9절). 그들이 받은 축복을 보도록 하자. 그것은 여기서 믿음의 구원에서 끝이 나게 된다. 영혼의 구원은 이들 그리스도인들이 구한 상급이자 그들이 목표했던 것으로 그것은 매일 매일 그들에게 더욱더 가까와졌다.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매일 그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받는 것이다. 신자들은 거룩함과 하늘에 속한 마음을 소유함으로 하늘나라의 시작을 가졌다. 그들은 세상에서 잃어버리는 편에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들이 받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즉, 비록 그들이 보다 못한 유익은 잃고 있지만 그들은 시종영혼의 구원을 받고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의 복락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만일 전자를 올바르게 구한다면 우리는 후자에도 이르게 될 것이다.
Ⅳ. 선지자가 예언한 구원 1:10-12
베드로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한 근거를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이 전혀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 선지자들의 선례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1. 이것을 부지런히 살폈던 사람들(10)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영감받은 자들로 선지자들이었다.
2. 그들이 살핀 내용(10)
그것은 '구원과 너희에게 임할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들은 빛과 은혜와 위로의 영화로운 시대를 미리 내다 보았으며, 이것은 선지자들과 의인들로 하여금 복음의 시대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보고 듣는 것을 바라게 만들었다.
3. 그들의 연구의 태도(10)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이말은 바닥을 파서 흙 뿐만 아니라 암석까지라도 뚫어서 광석을 캐내는 광부들을 연상케 하는 강하고도 힘있는 표현이다. 이들 경건한 선지자들은 그처럼 열정적으로 알고자 힘썼으며, 자신들의 연구에 부지런했다. 그들이 영감받았다고 하는 사실이 그들의 부지런한 연구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가르침은 가장 위대하고 현명한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고 찬양되어 왔다. 이 큰 구원과 그것을 가져다 준 은혜에 대해서 잘 아는 자들은 그것을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필 수 있어야 한다.
4. 옛 선지자들이 주로 연구한 특별한 내용(11)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연구의 주제였다.
(1) 예수의 낮아지심과 죽으심, 그리고 잇달아 나타나는 영광스러운 결과들 : 이것에 대한 연구는 그들에게 복음 전체를 보게 해 주었다.
(2) 의심할바 없이 이들 경건한 선지자들은 인자의 시대를 보기를 열망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목적에 대해서 어떤 것을 알려주는 한 그 성취의 때에 몰두하였다. 그 시대의 특성에 대해서 또한 엄격히 고찰되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본으로부터, 영광을 얻게 되기 전에 봉사와 고난의 때가 있게 된다는 것을 배우도록 하자. 베드로에게 있어서도 그러했다. 따라서 그 제자는 그의 주보다 뛰어난 자가 아니었다.
5. 그들의 연구가 성취됨으로 결실을 맺음(12)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평온하게 하시기 위하여 만족할만한 계시를 주셨다. 그들은 이러한 일들이 자기들의 시대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라는 말씀이 그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들을 전혀 오류가 없으신 성령의 지시하심 가운데서 온 세상에 알릴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본문에서 우리는 세 부류의 탐구자들을 보게 된다.
(1) 그것을 '부지런히 살펴본 선지자들'.
(2) 모든 예언을 살펴보고 그것들의 성취를 목격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을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서 다른 사람에게 알린 사도들.
(3) 이 문제들을 가장 주의 깊게 들여다 보는 천사들. 그리스도에 대해서 부지런히 알고자 힘쓰는 자는 반드시 좋은 성과로 응답받을 것이다. 가장 경건하고 훌륭한 사람들일지라도 때때로 그들의 정당하고 경건한 요구가 거절당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요구에 따라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자신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성이다. 선지자들은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역을 하였다. 자신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들은 시종일관 철저하게 지속되고 있다. 즉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은 동일하신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복음은 성령의 사역이다. 그것의 성과는 그의 역사와 축복에 달려 있다. 이 복음의 비밀들은 매우 영화로운 것이었으므로 복된 천사들조차도 그것들을 살펴 보기를 원하였다.
Ⅴ. 근신과 거룩함과 형제 사랑에 대한 권고 1:13-23
(1) 베드로는 그들에게 근신할 것을 권고한다.
1)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13절). 이는 "너희 마음의 허리, 곧 너희 마음의 활력과 힘으로 너희 의무를 힘서 다하도록 하라. 너희를 방해하는 모든 것에서부터 너희 자신을 해방시키고 굳은 각오로 계속해서 순종할 수 있도록 하라"라는 말이다. 근신하라. 이는 "너희 모든 영적 위험과 대적들에 대해서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며 모든 일에 있어서 온순하고 절제하라"는 말이다. 즉 "실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소신에 있어서도 근신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라"는 말이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바르게 지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근신하는 일에 힘쓸 필요가 있다. 은혜의 상태 가운데 들어갔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의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더 큰 은혜를 바라며 힘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온전히 바라며 우리의 허리를 동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 자신을 일깨우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활기있게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2)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14절). 이것은 그들의 현재 상태, 즉 순종하는 자신의 상태와 이전의 사욕과 무지를 좇아 살았던 상태를 고찰함으로서 그들에게 거룩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자신들의 자녀됨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이전에 사욕과 무지의 때가 있었다. 회심한 사람들은 그들의 이전 상태와는 완전히 다르다.
3)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15, 16절). 이와 같이 성도가 거룩해야 한다는 사실은 강한 어조로 명해지고 있으며, 세 가지 근거 즉,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와, '기록하였으되'로 나타난 그의 명하심, 그리고 그의 모범으로부터 강하게 요청되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온갖 축복을 소유할 수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엄격한 의무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은총들은 거룩할 것을 명할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도 해주는 것이다. 완전한 거룩은 전 그리스도인의 바램이자 의무이다. 그것의 범위는 전반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하며, 벗이든 적이든 상관 없이 모든 사람에 대하여 모든 행실에 있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즉 우리는 모든 교제와 행사에 있어서 늘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거룩의 표본으로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결코 하나님과 같이 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를 닮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숙고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최상의 거룩함에 나아가도록 요구한다.
4)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17절). 우리는 이땅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거룩한 확신과 그를 심판자로서 두려워하는 경외함은 완전히 일치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대로 판단하시지 않으신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이라는 말이 그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로운 동정심으로 사람들을 특별 대우하시지 않으시며 오직 그들의 행위대로 사람들을 판단하신다.
5) 베드로는 두 번째 논지를 덧붙여 말해간다(18절).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상기시키고 있다.
① 그들은 아버지께 드려진 속량으로 구원함을 받았다.
② 그들의 구원함을 위해서 치뤄진 대가가 무엇이었는가.
③ 그들이 어디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것인가. (그들은 이상의 사실들을 알았으며 결코 모르는체 가장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받은 사실을 생각함으로써 거룩함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속적이고 힘있는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를 기대하신다. 금이나 은이나 혹은 이 세상에 썩어질 어떤 것으로도 단 한 영혼도 구원할 수 없다. 그것들은 썩어질 것들로서, 썩지 아니하며 멸하지 아니할 영혼을 결코 구원하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인간 구원의 대가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가장 고귀한 피를 흘리신 목적은 우리를 이후의 영원한 비참한 상태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망령된 행실에서부터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드러난 악행 뿐 아니라 우리의 행실의 공허와 무익함 역시 상당히 위험한 것이다. 인간의 행실은 그것이 가장 망령된 행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의 옹호를 위해서 고전적 유풍이나 관습 그리고 전통으로 변명을 하려고 한다. 고전적 유풍이 결코 진리의 어떤 규범이 될수는 없다.
6) 구속자와 구속을 받은 양자 간에 모두 관계된 것들에 대해 언급한다(20,21절).
① 구속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더욱 상세하게 묘사되어지고 있다.
㉠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였다. 이러한 예고는 의지의 행위나 있어질 일의 결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 그는 '말세에 그들을 위하여 나타내신 바된 자'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바 구속자로 나타나셨다. "그러므로 이 일은 신약과 복음의 마지막 때에 되어졌다. 만일 너희가 그를 믿는다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 그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로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영광을 주셨으며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자기의 아들됨을 온 세상에 알리셨고 창세전에 그가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그 영광으로 그를 영화롭게 하셨다.
② 또한 구속을 받은 자들이 그들의 믿음과 소망에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21절).
③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는 영원전부터 있어온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그러한 은혜를 나타내시기 오래 전에 이미 그들에 대한 특별한 은총의 뜻을 가지고 계셨다. 이전 세대가 누렸던 것과 비교해 볼 때 말세 때의 복은 엄청난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감사와 봉사는 그러한 은총에 합당한 것이 될 수 있어야만 한다.
(2) 베드로는 그들에게 형제 사랑을 권고한다.
1) 그는 복음이 이미 그들로 하여금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도록'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다(22절).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영혼이 깨끗하다고 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즉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22절)'가 그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들을 정결케 하는 위대한 도구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들으나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결코 깨끗함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의 영혼을 깨끗케 하는 큰 동인이 되신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노력하도록 고무시키시며 또 성과를 거두도록 하신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이 우리 자신들의 영혼을 깨끗케 했으며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먼저 반드시 깨끗게 되어야 비로소 서로 거짓없이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랑도 깨끗한 마음에서 나오지 아니하고서는 있을 수 없다.
2)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의 영적 관계를 숙고함으로써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해야 함을 더욱 역설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자들이다. 그들은 서로 새롭고도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들은 신생에 의해서 서로 형제가 된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두 번 태어나는 것은 첫 번 것보다 훨씬 바람직한 것이며 탁월한 것이다. 우리는 육체적인 출생에 의해서 사람의 자녀가 되며, 영적인 거듭남에 의해서 가장 높으신 이의 자녀가 된다. 태어날 때부터 형제인 자들은 서로 사랑으로 매이게 되나 영적으로 형제의 관계에 있는 자들은 그 의무가 배가 되어진다.
Ⅵ. 하나님 말씀의 영원성 1:24,25
베드로는 이제 우리 앞에 자연인의 덧없음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어떤 것도 그를 견실한 실체적 존재로 만들수 없다. 이는 오직 썩지 아니할씨,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만이 가능하다. 이 말씀은 복음 전파 가운데서 우리 앞에 매일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상의 번영과 영광 중에 있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마르고 시들며 죽어가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인간의 재능, 아름다움, 용맹, 강인함, 부귀, 영예 이 모든 것은 들의 꽃과 같아서 곧 시들어 죽고 마는 것이다. 이 없어져 버릴 피조물에게 견고하고 썩지 아니할 것을 가져다 주는 유일한 방법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간직케 하는 것이다. 이는 이것이 그를 영원토록 보존할 것이며 그와 함께 영원토록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