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새사람으로 사십시오

[베드로전서 4장 1절~8절]
1절 -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절 -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절 -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4절 -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절 -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6절 -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7절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절 -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지나간 때에 행한 것처럼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길 것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우니 근신하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 고난의 유익 (1~6절)
육체의 고난은 성화(聖化)를 이루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를 위해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고난을 당하심으로 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고난을 통해 예수님을 묵상하고 의지함으로 죄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음란, 정욕, 술 취함, 방탕, 향락, 우상 숭배를 좇지 않고 하나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이상히 여기며 비방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기억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삶을 낱낱이 고해야 할 날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지금 겪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할 수 없습니다.
* 묵상 질문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할 고난은 무엇이며, 받게 될 영광은 무엇일까요? (롬 8:17~18 참조)
* 적용 질문
지금 내가 그리스도인이기에 감당해야 할 육체의 고난이 있나요? 그것을 잘 감당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2.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 (7~8절)
시대를 분별하고 종말을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진 이때, 우리는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만일 내일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지만, 육체의 고난도 남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순종함으로 이루어야 할 하나님 뜻과 사명도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며, 발견한 하나님 뜻에 순복해야 합니다. 특별히 베드로는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랑으로 상대방의 허다한 죄를 덮어 주는 삶이야말로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는 말세에(딤후 3:1~2)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통로는 성도 간에 나누는 사랑입니다.
* 묵상 질문
'무엇보다도' 사랑하라고 권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공동체에서 서로 사랑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럼에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육체의 남은 때를 사는 동안 만나게 될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주소서. 제게 오는 어떤 사건도 주님 뜻을 이루기 위한 최고의 환경으로 받아들이며, 현재가 선물임을 깨달아 주님과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출처 : 생명의 삶 (큐티)

제목 : 그리스도인이 받은 특별 은총 (피종진 목사님)

[베드로전서 1장 3절~5절]
3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절 -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절 -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은 호칭이 많습니다. '성도'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 '크리스천, 예수의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특별한 은총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 특별 은총을 받은 자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성도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을 갖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했습니다. 성도의 산 소망이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하늘의 유업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받은 특별은총이란

첫째, 긍휼하심을 입은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우리는 불순종과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며, 저들과 똑같이 죄 된 본성을 좇아 행하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온갖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구원 얻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크신 긍휼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엡 2:1~6).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사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무궁하신 긍휼로 인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하셨습니다.

둘째, 유업을 잇게 된 것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4). 여기서 '유업'이란 ‘상속, 할당된 몫’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할당된 몫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땅에서 우리에게 누리게 하시는 유업이 있습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입니다(요한3서 1:2). 또 하나는 내세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하는 자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주시고, 모든 복이 그에게 임하여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으며,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신 28:1~6). 갈라디아서 4장 7절에 보면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을 유업으로 받은 자이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보호하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벧전 1:5) 여기서 '보호하심'이라는 말은 ‘덮는다, 방어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넘어뜨리려고 달려드는 원수들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으로 방어하여 보호해주십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4,5)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121편 3~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요, 보호자요, 나를 지키시고 인도자가 되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긍휼하심을 입게 해주시고, 유업을 잇게 해주시며, 보호하심을 받게 해주시는 그리스도인의 특별 은총이 여러분의 생애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목 : 악을 떠나 선을 행하라 (피종진 목사님)

[베드로전서 3장 10절~12절]
10절 -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11절 -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12절 -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본문은 선과 악의 대조를 말씀합니다. 불법, 타락, 거짓, 사기치는 것, 다 악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세상입니다. 세상은 어디든 어둠의 그늘과 악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악을 떠나야 하는 이유와 선을 행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들이 악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을 거역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하므로 소멸시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민14:35). 악을 떠난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악을 행한 사람은 가나안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거역하고 역행하는 길을 걸어간 사람들에게 고난과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오직 순종하는 길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악을 떠나는 길입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으로 관계가 끊어지지 않길 원하십니다(시94:23). 우리는 하나님의 대열에서 이탈되거나 끊어지면 안 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잘리면 말라서 아궁이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탕자는 그 순간부터 탕진하고 굶주리고 헐벗고 외롭고 쓸쓸하고 돼지가 먹는 열매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도 좋은 사람은 사람사이에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만 되지 않는다면, 포도나무에 매달려있기만 한다면, 다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셋째, 재앙과 심판과 멸망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권면합니다. 악한 말을 반복적으로 하면 말대로 되어버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혀로 악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왜 선을 행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 돌리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것을 본받으라(요삼 1:11).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자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도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레 11:45).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선을 쫓아가길 원하십니다.

둘째,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 초조, 외로움, 불만족, 고독이 왜 점점 우리 인생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선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습니다(롬2:10).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한 종으로 쓰임받습니다. 선을 쫒아가길 원합니다.

셋째, 응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해 있고,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고 있습니다(벧전 3:12).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존귀와 영광과 평강으로 채워주시고 우리의 소원에 응답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악을 떠나 선을 행하라는 말씀을 붙잡고 살아간다면 막힌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고 형통하고 영육 간에 평안하고 행복하게 될 줄 믿고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Ⅰ. 장로들에게 주는 권면 5:1-4

 

(1) 베드로가 본서에서 권면을 주고 있는 자들은 나이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직책에 의해서 장로가 된 자들로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자들이다.

(2) 베드로는 그들에게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장로인 자이며, 또한 그 자신이 친히 본을 보인 것외에는 아무 것도 그들에게 주장하지 아니함을 말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완전하게 누리게 될 '영광에 참예할 자'였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된 것은 베드로에게 있어서 특별한 영예이었으며 보다 큰 영광이었다. 그러나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가 되는 것은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의 특권인 것이다.

(3) 목사의 의무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 그들은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을 가르침으로 '양 무리를 쳐야 한다'.

  2) 그들은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 또한 그들이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한 거룩함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의무들은 반드시 행해져야 하되 '부득이함으로가 아니라' 즐거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해져야 한다. 또한 양털보다는 양 무리를 생각하면서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면서 지배자처럼 해서도 안된다'. 이들 비천하고 멸시받고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양떼들이었다. 이들 외에 세상에 있는 자들은 사나운 야수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위대한 목자장에 의해 하나님께 구속된 유순한 양 무리이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존귀한 칭호가 붙은 자들이다. 즉 일반 대중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은 자들인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므로 사랑과 온유와 자비로써 다스려져야 하며 그들이 속해 있는 하나님을 위해서 다스려져야 한다.

(4) 베드로는 '더러운 이'에 반대하여 위대하신 목자에 의하여 그의 모든 신실한 사역자들에게 있게 될 영광의 면류관을 그들 앞에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양떼와 하나님의 백성의 목자들에 대해서도 목자장이 되신다. 이 목자장은 모든 사역자들과 모든 목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실 것이다. 자신들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던 자들은 목자장으로부터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다.

 

Ⅱ. 젊은 자들에게 주는 교훈 5:5-7

 

베드로는 이제 양 무리를 가르친다.

(1) 베드로는 젊은 자들과 낮은 자들에게 '장로들에게 순복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이 교훈은 서로에 대해서는 서로가 책망과 권고를 받음으로써 서로 복종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만일 너희가 불순종하고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대적하실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겸손은 모든 그리스도인 사회에서 화평과 질서를 지켜 주는 위대한 보존자인 것이다. 반면에 교만은 화평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막강한 파괴자가 된다. 하나님과 교만 사이에는 상호 대립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되 더 큰 은혜와 겸손을 주실 것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다음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서로에 대해서 뿐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겸손해 하라. 만일 너희가 교만하면 그의 전능하신 손길이 너희를 쉽게 끌어 내리실 것이나 만일 너희가 겸손하면 그는 너희를 높이실 것이다." 하나님의 손 아래서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하는 것은 구원과 높임을 받게 되는 제2의 길이 된다.

(2) 베드로는 여전히 닥쳐올 더 큰 시련에 대한 자신의 예고로 인하여 그들이 매우 염려하고 있으리라고 적절하게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깊은 염려가 그들에게 큰 짐이 되었을 것이며 따라서 상당한 시험이 되었으리라고 예상한 베드로는 그들에게 최상의 조언을 주고 있다. 그의 조언은 너희 염려를 버리라, 혹은 너희 염려는 다 주께 맡겨 버리라는 것이다. 즉 안정되고 침착한 마음으로 주께 맡기라는 말이다.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시기 때문이다(7절). 그는 기꺼이 너희를 모든 염려로부터 자유롭게 하실 것이며 너희의 염려를 그에게 맡기도록 하실 것이다.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근심과 극심한 염려의 짐 가운데서 괴로워 하기가 쉽다. 선한 사람들의 염려일지라도 큰 짐이 되고, 죄된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나친 염려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확고히 믿는 신앙은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줄 것이다.

 

Ⅲ. 근신하여 마귀를 대적할 것 5:8,9

 

(1) 베드로는 그들에게 자신이 묘사한 적으로부터의 그들의 위험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다음 두 가지로 적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1) 그의 이름과 특성 : 그는 대적이다. '너희 대적'이라는 말이 그것을 보여 준다. 그 대적은 '마귀'로서 그는 모든 형제들의 으뜸가는 비난자다. 그는 '우는 사자와 같은 자'로서 격렬하고 탐욕스럽게 영혼을 추적하는 자다.

  2) 그의 일 :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것'이다. 그의 전체 목적은 영혼을 삼키는 것이며 파멸시키는 것이다.

(2) 여기서 베드로는 '근신할 것'과 '방심하지 말 것', 그리고 깨어서 부지런히 마귀의 계획을 막아내고 자신의 영혼을 구할 것에 대해서 언급해간다. 믿음을 굳게 하여 적를 대적하라. 사단의 과녁은 바로 성도들의 믿음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믿음을 굳게하여 이 강한 시험과 유혹을 대적할 수 있어야 한다.

(3) 동일한 고난들이 세상 각처에 있는 형제들에게 임하였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은 이 싸움에 있어서 함께 군사된 자들이었다. 마귀는 형제들에게 있어 속이는 자요 비방자일 뿐 아니라 으뜸가는 박해자이다. 근신할 것과 깨어있을 것은 항상 필요하다. 특별히 고난과 박해의 때에 더욱 요구된다. 만일 믿음이 꺽인다면 무너지게 되고 말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고난당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 자신으로 하여금 고난 가운데서 견디게 해주는 적절한 격려가 된다. 그러므로 사도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Ⅳ. 그들을 위한 기도와 축복 5:10-14

 

우리는 이제 본서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게 된다.

(1) 베드로는 가장 무게 있는 기도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는 그 기도를 '모든 은혜의 하나님'되신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1) 그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내용 : '그들이 잠깐 고난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그의 사역을 온전케 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의 후사로 부름 받은 자들일지라도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고난은 잠간 동안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쉬임 없는 기도와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한 의뢰로 열심히 구하고 있는 것이다.

  2) 베드로가 하나님을 찬양함(11절).

(2)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 서신을 써서 보내는 목적을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다(12절). 그가 가르쳤고 그들이 받아들인 구원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은혜의 참된 설명으로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표하신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은 그 안에 견고히 서야만 한다. 우리가 하늘 나라로 가는 참된 길 가운데 있다는 확고한 신념은 견고히 서서 인내하는 최상의 동기가 될 것이다.

(3) 베드로는 실루아노를 천거하면서 그를 통해 그들에게 이 간단히 쓴 편지를 전하였다. 그가 이방인 사역자였으므로 유대인들 중 몇 사람이 실루아노를 무턱대고 미워했는지 모르나 그가 신실한 형제라는 것을 확신한 후 곧 그러한 편견은 벗겨졌을 것이다.

(4) 베드로의 문안 인사와 엄숙한 축복 : 이 문안 인사에서 그는 특별히 당시 그와 함께 있었으며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 그의 아들이었던 복음 전도자 마가를 연관시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들은 서로 가장 애정있는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즉 그들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는 그들에게 서로가 뜨겁게 사랑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한 이것을 '사랑의 입맞춤'이란 말로써 표현하고 있다(14절). 그리고 축복으로 글을 끝맺고 있다. 그는 축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로 한정하고 있다. 그가 그들에 대해서 선포한 축복은 '평강'이었으며 그는 이것으로 온갖 필요한 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Ⅰ. 고난과 고난으로 인한 죄의 종식 4:1-3

 

(1) 권면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1절). 즉 인성에 있어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즉 "그리스도께서 인성에 있어서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너희는 자기 부정과 고행으로 죄의 몸을 죽임으로써 너희의 부패한 본성을 고난 받게 하라. 죄를 그치라. 온갖 죄를 대적하는 가장 강하고 가장 좋은 논증들이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신 것에서부터 취해지고 있다. 수난받으신 자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동정과 연민은 만일 죄를 없이 하지 않는다면 사라질 것이다. 모든 참된 고행의 시작은 육체에 대한 시련과 곤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다.

(2) 권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2절). 소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그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육체 가운데서 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하나님의 나타난 뜻에 스스로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정욕은 그들의 온갖 사악함으로부터 나타난다. 만일 인간 자신의 타락 때문만 아니었다면 수시로 일어나는 시험들은 효력을 나타내지 못했을 것이다. 참된 회심은 그 회심자의 생활과 마음 가운데서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것은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활을 개조시킨다.

(3) 베드로의 권고가 어떻게 주장되고 있는가(3절). 3절의 말씀은 곧 "이전의 너희의 모든 삶을 통하여 너희가 지금까지 죄와 사단을 섬긴 것처럼 이제부터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사람이 참으로 회개했을 때 자기의 지난 날의 삶을 어떻게 보냈는가 생각해 보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매우 쓰라린 일이 된다. 사람의 의지가 성화되지 못하고 부패되어 있는 동안 그 사람은 계속해서 악한 길을 걷게 되며 따라서 점점 더 악한 상태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용납되어진 한 가지 죄는 또다른 죄를 초래하게 된다. 본문에는 여섯 가지의 죄가 언급되어 있다.

  1) 음란. 이는 외모, 몸짓 혹은 행동에서 표현되어지는 것이다.

  2) 정욕, 즉 음탕한 행위를 뜻한다.

  3) 술취함.

  4) 방탕, 즉 너무 지나치거나 빈번하고 너무 사치한 것을 말한다.

  5) 연락. 여기서는 과식의 의미가 포함된다.

  6) 무법한 우상 숭배, 즉 이방인의 우상 숭배를 뜻한다. 커다란 악을 삼가하는 것 뿐 아니라 대체적으로 죄악 되다고 여겨지는 것들까지도 삼가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Ⅱ. 세상 사람의 비방과 하나님의 위로 4:4-6

 

(1) 여기서 우리는 이전 생활이 매우 악했던 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눈으로 보이는 변화를 접하게 된다. 그 사람들에 대한 사악한 친구들의 행위를 보도록 하자.

  1) 그들은 자기들의 옛 친구들이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4절)'.

  2) '그들은 그 친구들에 대해서 비방한다'. 한 번 진실로 회개한 자들은 다시는 그들의 이전 삶의 과정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설득이나 비난도 그들로 이전에 했던 것처럼 행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질이나 행동은 경건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경건치 못한 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신앙인의 최선의 행동은 불신앙인들의 중상모략을 받을수 밖에 없다. 비록 선한 사람들이 이 사랑과 경건과 선의 결실들을 내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사람들을 비방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종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 여기에 덧붙여지고 있다.

  1) 모든 악한 자들은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할 것이다. 악한 세상은 잠시 동안 위대하신 하나님께 하나님 백성에 대한 그들의 모든 사악한 비방들을 직고할 것이다.

  2)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6절). 우리의 죄를 억제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사는 것은 우리에게 전파된 복음으로부터 예상되어지는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복음이 전파된 모든 자들을 셈하시되 그것으로부터 아무 선한 결실도 내지 못한 자들을 셈하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 살고 있다면 육체 안에서 사람을 따라 심판받는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Ⅲ. 기도 사랑 봉사에 대하여 4:7-11

 

우리는 여기서 한 국면과 그것에서부터 이끌어진 추론을 접하게 된다. 그 국면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박해의 기간은 매우 짧게 된다. 너희 자신의 삶과 너희 원수들의 삶은 곧 극한 시기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한 세상 자체 역시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나온 추론은 일련의 권고들로 이루어져 있다.

1. 근신하고 깨어 있을 것(7)

너희 자신으로 너희의 이전 죄와 유혹에 얽매어 고통당하지 않도록 하라(3절). 또한 깨어 기도하라. 즉 "이 마지막이 너희에게 알지 못하게 임하지 않도록 유의하라". 목적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들은 '깨어 기도해야' 한다.

2. 사랑할 것(8)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 상호 애정은 결코 차가워서는 안되며 뜨거워야 한다. 즉, 신실하고 강하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신실한 애정이 무엇보다도 먼저 권고되어지고 있다. 이는 그것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사랑의 한가지 탁월한 효과는 그것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점이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간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 또한 그 안에는 각별한 애정을 요청하는 것으로서 특별한 온화함과 선함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의를 품지 않는다든가 서로에 대해서 일반적인 존경을 갖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그들은 열심히 뜨겁게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참된 사랑의 특성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 대한 비난을 잊거나 용서하게 해주며 다른 사람의 죄를 퍼뜨리거나 악화시키기 보다는 덮도록 만들어 준다.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은 그러한 자들을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손길에 긍휼을 예비하는 것이다.

3. 대접할 것(9)

그리스도인의 대접은 서로가 대상이 된다. 이 의무를 시행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즉 '원망없이' 혹은 부담과 근심으로 인한 시비 없이 편안하고 친절하고 알맞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서로가 사랑해야 할 뿐 아니라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

4. 재능을 활용할 것(11)

  (1) 선을 행하게 하는 무슨 은사나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우리는 서로 봉사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갖가지 은사를 받고 사용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단지 청지기로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2) 베드로는 특별히 두 가지, 즉 말하는 것과 봉사하는 것을 들어 은사에 관한 자신의 교훈의 실례로 삼고 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혹은 가르치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해야 한다. 만일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11절).

   첫째, 서로 하나님의 일을 말하는 것은 공적인 자리에서의 사역들의 의무일 뿐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둘째,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계시에 합당하도록 나타내는 모든 복음 전파자들에게 깊이 관계가 있는 것이다.

   셋째, 우리가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무엇을 하든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삶의 모든 의무와 봉사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견해는 이것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다섯째,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범사에 영광을 받으실 수 있어야 한다.'

 

Ⅳ. 고난 중에서 기뻐할 것 4:12-19

 

이 서신에 매 장에서 고난받는 자들로 생각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주 위로의 말씀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로써 이 새로운 개종자들이 처해 있던 아주 큰 위험이 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일어나게 된 박해임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여기서 그들에게 고난 가운데서 인내할 것이 필요함을 가르친다.

1. 베드로의 친절한 담화의 태도(12)

사랑하는 자들아. 그들은 그의 '사랑하는 자들' 이었다.

2. 그들의 고난과 관계해서 그들에게 주는 베드로의 조언 (13-19)

  (1) 그들은 그 고난들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놀라지 말아야 했다.

   1) 그것들이 비록 매섭고 가혹하다 할지라도 이는 단련코자 함이지 결코 멸하고자 해서 의도되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고난 가운데서 즐거워해야 했는데 이는 그들의 고난이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합당하게 일컬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들로 고통 당하셨으며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셨다. 만일 우리가 그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들이 된다면 우리는 또한 '그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베드로는 이 환난 당하는 불우한 그리스도인들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들을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로 부르고 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역경 가운데 있을 때 피차 가장 사랑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불친절과 핍박을 이상하게 여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는 그것들에 대해서 미리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 모든 것들을 견디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극심하고도 고통스러운 고난들을 참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즐거이 고난 받는 자들은 영광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2) 베드로는 덜 가혹한 핍박에 대한 언급으로 나아간다(14절).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혹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욕을 받고 중상을 당하고 비방을 듣게 되는 경우를 뜻한다. 그러한 경우에 그들이 '복 있는 자'라고 베드로는 단언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영을 가진 자들로서 그 하나님의 영은 또한 영광의 영이시다. 이 영광의 영께서 너희 위에 임하여 계신다. 고난 가운데서 너희가 인내하고 꿋꿋하게 견딤으로써 그는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그러나 너희에게 주어지는 멸시와 비방에 의해서 성령께서도 친히 비방과 훼방을 받으시게 된다". 선한 사람들의 복됨은 그들의 고난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그 고난으로부터 나오기도 한다. 본문의 '복 있는 자로다'가 그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영이 임해있는 자는 그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결코 비참하게 되어질 수 없다. 선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방을 받을 때 성령은 그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2) 그들은 악행하는 자들로 인하여 고난 받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했다(15절). 그들의 원수들은 이런 저런 좋지 못한 죄를 그들에게 씌웠다. 따라서 베드로는 이러한 경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기독교로 인해서 '고난을 받되' 그리스도인의 영으로 인내하면 그사람은 그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서 그를 존귀케 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16절).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나 어리석음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면 아무런 위로함도 없게 된다. 순교자를 만드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그 고난의 동기이다.

  (3) 그들의 심판이 이제 임박했다.(17,18절).

   1)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잘할 때가 되었나니(17절). 이 말씀은 성도들로 하여금 인내를 가지고 앞서 말한 모든 권고들을 수행해 나아가게 해준다. 이러한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자들부터 시작할 것이다. 사악한 세상에 임하게 될 것과 비교해 볼 때 너희의 고통은 가벼운 것이며 짧은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할 것인가?"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종일지라도 때때로 마땅히 하나님께 징계받고 지적받을 많은 잘못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일지라도 이생에서 아주 좋지 못한 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나쁜 상태는 참을 수 있는 것이며 곧 종식될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자들과 불순종하는 자들을 구분 짓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할 것인가'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 베드로는 사악한 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18절). 선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쓰라린 고난들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임하게 될 매우 엄중한 심판의 슬픈 전조인 것이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의인조차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구원의 절대적 필요성과 그것의 어려움은 양립한다. 먼저 극도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도움을 베풀어주신다.

  (4)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게 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면서' 주로 그 영혼의 안전에 유의할 수 있어야 한다(19절).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을 져주실 것이다. 이는 그가 그들의 조물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육신의 안전보다는 영혼의 안전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선한 사람들이 그들의 영혼을 담대히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것은 그가 그들의 조물주가 되시며 또한 모든 약속을 신실히 이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Ⅰ. 남편들과 아내들의 의무 3:1-7

 

(1)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기혼 여성들이 그들의 그리스도교의 개종을, 자신들의 이교도 남편들이나 혹은 유대인 남편들로부터 자신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여러 가르침을 말한다.

  1) 아내들의 의무.

   ① 순복하라. 이러한 공손한 행위는 말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거나 아내들의 본이 되는 행실을 보는 것외에는 달리 말씀의 진리된 증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불신 남편들을 설복시키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즐거이 하는 '순복' 그리고 애정있고 공손한 존경은 그리스도인 아내들이 자기들의 남편에 대해서, 그들이 선하건 악하건 관계 없이 행해야 하는 의무이다. 사람들을 설복시키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 외에 선한 행실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

   ② '두려워하라' 혹은 존경하라.

   ③ 정결한 행위로써 하라. 악한 자들은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의 행위를 엄격하게 지켜보는 자들이다. '정결한 행위'는 그들로 복음을 믿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④ 몸을 치장하기보다는 마음을 더 치장하도록 하라(3절). 여기서는 세 가지의 치장이 금해지고 있다. '머리의 꾸밈'을 금하고 있다. 이는 그 당시에 대개 음탕한 여자들이 행하던 것이다. '금을 차는 것'을 금하고 있다. 또한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는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우아한 옷에 대해서 금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그들의 모든 외적인 처신이 자신들의 신앙과 조화를 이루도록 유의할 수 있어야 한다. 몸의 외부를 치장하는 것은 종종 매우 지나치게 성적일 수가 있다. 창녀의 옷차림이 결코 정결한 그리스도인 여성에게 어울릴 수는 없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더욱 훌륭하고 아름다운 치장을 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4절).

    첫째, 치장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마음에 숨은 사람. 즉 이는 "너희의 몸보다 너희의 영혼을 치장하고 아름답게 하도록 하라"는 말이다.

    둘째, 치장품에 대해서 지시하고 있다. 그것들은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이어야 한다. 몸의 치장품은 사용하는 가운데 닳아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더 오래 지닐수 있는 것으로 몸의 치장품보다는 더욱 뛰어나고 훌륭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 여성들의 가장 훌륭한 치장품은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인 것이다. 거칠고 신앙에 반대하는 남편에 대해서 아내의 신중하고 온유한 처신만큼 그를 설복시키기에 적절한 방법은 없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주된 관심은 그자의 심령을 바르게 명하고 지시하는 데 있다. 외식자의 행위가 그쳐질 때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시작되어진다. 내적 인간의 차질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주된 치장품이라고 하겠다. 특별히 침착하고 고요하고 안정한 심령은 남자나 여자에게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가져다 준다.

  2) 베드로는 실례를 들어서 자신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다.

   ① 하나님을 믿었던 옛날의 거룩한 부녀들을 실례로 말하고 있다(5절). "너희에게 주어진 의무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전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훌륭했던 부녀들이 행했던 것들이다."

   ② 자신의 남편에게 순종하고 따랐던 사람들로부터 실례를 들고 있다. 6절은 만일 너희가 믿음과 선행에 있어 그녀를 본받는다면 '너희는 그의 딸이 된 것이다'라는 말이다. 아내들이 남편들에 대해서 순복한 것은 일반적으로 모든 시대에 걸쳐 거룩한 부녀들이 행해온 의무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 대해서 자신들의 의무를 행하되 두려움이나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듯이 행해야 한다.

(2)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를 말한다.

  1) 특별한 것으로 '동거하라'는 가르침이 있다. 곧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의무를 아는 현명하고 건실한 남자들답게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는 말씀이다(7절). 또한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하였다. 즉 아내에게 합당한 존중과 신뢰를 베풀고 그를 믿는 것을 말한다.

  2) 그 이유는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생각해 볼 때 아내는 남편과 동등하다. 그들은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피차 화합하여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서로를 위한 그들의 기도는 방해를 받게 될 것이다.

 

Ⅱ. 고난 가운데서 단합하고 인내할 것과 선으로 악을 대할 것을 권고함 3:8-15

 

(1)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에 있어서와 실제적인 애정,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행위에 있어서 모두가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똑같은 마음이 될 수는 없다할지라도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자비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형제처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는 곤궁 가운데 있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 것을, 그리고 모든 자에게 예의 바르게 대할 것을 요구한다.

(2)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원수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 가르친다.

  1) "그들이 너희를 욕할 때 너희는 그들을 축복하며 그들이 너희에게 악한 말을 할 때 너희는 그들에게 좋은 말을 하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너희를 부르셨기 때문이며, 또한 너희에게 영원한 기업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계명은 우리에게 욕하는 대신 축복할 것을 명하고 있다(마 5:44). 우리는 우리를 향해서 욕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위해서 기도하며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그에게 영광스러운 특권일 뿐 아니라 또한 그에게 어려운 의무를 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2) 이 다툼 많고 온전치 못한 세상에서 위로가 될만한 행복된 삶을 위한 뛰어난 훈계(10절) : 그 내용은 시편 34:12-14절의 말씀이 인용된 것이다. 현세적인 이익을 신앙의 동기나 격려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합당하다.

   *신앙 생활의 실행 : 특별히 혀를 바르게 통제하는 것은 인생을 안락하고 번영되게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신실하고 악의 없고 신중한 혀는 이 세상을 평화롭고 안전하게 지내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평화가 주어질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이 거부되어질 때에라도 그것을 구하고 추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3)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악의 없고 인내심 있는 행위가 원수들의 잔인함을 초래케 한다 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12절).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주님은 사악한 핍박자들에게 사람들보다 더 강한 대적자가 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의로운 백성들을 향해 특별한 관심과 아버지로서의 애정을 가지고 계신다.

  4) 이러한 끈기 있고 겸손한 그리스도인의 처신이 더욱 권고되고 있다. 이것은 고난을 막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13절). "대체로 너희처럼 결백하고 유익하게 살아가는 자들을 해하는 아주 극악무도하고 사악한 자들이란 그리많지 않다." 그러나 만일 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면 그것은 너희의 영광과 복이 될 것이라고 했다(14절). 즉 "너희는 너희의 원수들이 너희를 치기 위해서 하려고 하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공포심을 가지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너희 원수들의 격노나 힘에 대해서 크게 염려할 것도, 신경쓸 것도 없다"라는 의미이다. 항상 선을 따르는 것은 해로운 길로 들어서지 않는 최상의 진로이다. 의를 위해서 고난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영예이자 복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원수들의 위협이나 격노를 두려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도리어 사람들에 대해 두려워 하는 대신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됨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15절). "이 원리가 너희 마음속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을 때 다음으로 사람들에 대해 할 일은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도록 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믿음은 온 세상에 대해서 방어하는 무기가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의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기독교를 위해 예비된 답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는 그들이 어리석음이나 환상에 의해서 행한 것이 아님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또한 우리의 믿음의 이러한 고백들은 '온유와 두려움으로' 행해질 수 있어야 한다.

 

Ⅲ. 선한 양심과 선으로 인한 고난 3:16,17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은 '선한 양심'과 '선한 행실'이 아니고서는 결코 확고하게 지지될 수 없다. 양심이란 죄악으로부터 깨끗이 보존되어질 때 선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선행'이란 곧 거룩한 삶이다. "너희 양심과 선행을 잘 살피라. 그러면 사람들이 거짓으로 너희를 악행자라고 비방할지라도 너희는 그들을 부끄럽게 할 것이다. 낙담하지 말라. 왜냐하면 비록 너희가 너희 원수들로 인해서 어려운 가운데 처해있다 할지라도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가장 양심적인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악한 자들의 모략과 비방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도 역시 그처럼 취급당했다. 거짓된 비난은 대개 그 비방자를 부끄럽게 하는 것으로 되돌아온다. 선을 행하는 것이 때때로 선한 사람을 고난가운데 처하게 하듯 악을 행하는 것 역시 악한 자를 고난가운데 떨어뜨릴 것이다. 만일 선한 사람들이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그렇게 가혹하다면 악한 사람들이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Ⅳ. 그리스도를 본으로 말함 3:18-20

 

(1)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본이 인내에 대한 논증으로 제시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이생의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신 이유는 사람들의 죄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18절). 우리 주님께서 고난 당하신 경우에 있어서 의인이신 그가 불의한 자들을 위해서 고난 당하셨던 것이다. 죄를 알지 못하시는 이가 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대신해서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이 되신 공로와 완전함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율법적인 희생 제물은 단 한번 드려졌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죄를 완전히 없이 하셨다. 우리 주님께서 고난 당하신 복된 의도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신 문제를 생각해 보자. 그는 그의 인성으로 죽임을 당하셨다. 그러나 영으로는 다시 살리심을 받으셨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지 않으셨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왜 그것을 각오해야 하겠는가? 그러나 만일 그가 완전하게 의로우심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받으셨다면 철저하게 죄인된 우리가 어찌 고난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가 단번에 고난 당하시고 영광에 들어가셨다면 우리가 어찌 고난 가운데서 인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본으로부터 옛 시대의 본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제 긍휼의 제물을 맞이하였다. 즉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들은 노아의 시대에 불순종하는 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반드시 멸망당할 것이다.

  1) 전파자 : 그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19절).

  2) 듣는 자들 : 베드로는 그때의 그들을 적절하게 옥에 있는 영들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전파하실 때에 실제로 옥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3) 이 사람들의 죄 : 그들은 불순종하였다. 이러한 그들의 죄는 하나님의 참으심과 오래 고통하심으로부터 더욱 중하게 되었다.

  4) 사건의 결과 : 그들의 육체는 멸하여졌다. 그러나 순종하고 믿었던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에서 구원을 얻었다. 비록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죄인들에 대해서 오래 기다리신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침내 끝나게 될 것이다. 즉 헛되이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항상 위대하신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것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가장 좋은 길이거나 가장 현명한 길, 혹은 가장 안전한 길은 아니다. 여기서는 방주 안에 있는 여덟 명을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Ⅴ. 세례와 그리스도의 권세 3:21,22

 

노아가 물 위에 있는 방주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세례에 의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구원 받을 것을 예시해 주는 것이다.

(1) 베드로는 구원의 세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물로써 씻어내는 외적 의식이 아니다. 세례는 그 안에 확고한 선한 양심의 신실한 대답이 내포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2) 구원을 가져다 주는 세례의 효력은 공로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존한 것이다. 바르게 받아들인 세례 의식은 구원의 수단이자 약속이 된다.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21절). 합당한 선한 양심과 선행 없이 세례에 외적으로 참예하는 것은 아무도 구원해 주지 못한다. 거기엔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응답이 있어야만 한다.

(3)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과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 것에 대해서 나아간다(22절).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 깊은 낮아지심 뒤에 그와 같이 영화롭게 되셨다면 성도들은 고난으로 절망할 것이 아니라 이 잠시의 고난 뒤에 올 놀라운 기쁨과 영광을 기대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셔서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모두 그리스도 예수께 순복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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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악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할 것 2:1-3

 

(1) 악한 것을 버리라.

  1) 버려야 할 죄악들 : 악독. 악독는 뿌리 깊게 자리잡힌 격분으로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해를 입히도록 하기까지 존속되는 것이다. 궤휼. 이는 곧 말로 속이는 것을 뜻한다. 외식. 복수로 되어있는 이 말은 모든 위선적인 것들을 의미한다. 시기. 이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에 대해서 불쾌해 하는 것이다. 비방하는 말. 이는 다른 사람을 반대하여 말하거나 헐뜯는 것을 의미한다.

  2)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좋지 못한 죄들에 대해서 경계하며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부분적으로는 성화되었지만 아직도 시험 가운데 빠지기 쉽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가장 훌륭한 봉사들이라 할지라도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에 성실치 못한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에게도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 버려져야 할 죄가 버려지지 않을 때 그 죄는 우리의 영적 유익과 지속적인 평안을 방해할 것이다.

(2) 현명한 의사처럼 베드로는 계속해서 그들의 영적인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지시해 주고 있다. 이는 그들로 그것에 의해서 자라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권고된 의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강렬하게 사모하라는 것이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 이는 사람들에 의한 것을 말한다. 갓난아이들 같이. 새로 태어난 생명은 그에 합당한 음식이 필요하다. 유아들은 보통, 젖을 사모한다. 그것을 사모하는 그들의 열심은 때로는 대단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모함 역시 그와 같아야 한다. 이는 그것에 의해 그들이 자라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한 애정과 사모는 사람들의 거듭난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된다. 지혜가 자라나고 은혜가 더욱 풍성해지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바라는 바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그것이 처음 발견한 상태대로 버려두지 않는다.

(3) 베드로는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한 논지를 덧붙이고 있다(3절). 그는 의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음을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 대해서 매우 자비로우시다. 그는 그 자신 안에 충만한 은혜를 가지고 계신다. 우리의 구속자의 자비하심은 그것을 경험으로 직접 맛봄으로써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멀리에 있는 것을 보거나 듣거나 냄새 맡을 수는 있지만 맛볼 수 없다. 그리스도의 자비하심을 경험적으로 맛보려면 믿음에 의해서 그와 연합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있어서 최상의 경우는 이 생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맛보는 것이라고 하겠다.

 

Ⅱ.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2:4-12

 

(1) 사도는 산 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1) 여기서 그리스도는 그의 강대함과 영속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종들에게 그가 그들이 세워질 토대임을 가르치기 위해서 돌로 불리어지고 있다. 그는 그 자신 안에 영생을 가지고 계신 산 돌이시다. 그가 하나님과 인간에게서 받은 평판과 존중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는 버림을 받았으나 하나님께로부터는 택하심을 입었다. 예수에게 나아와(4절). 이렇게 함으로써 믿음에 의해서 우리는 먼저 그와 결합하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 가까와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소망과 행복의 초석이 되신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사악한 세상에 의해서 버림을 당하셨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이셨으며 또한 가치에 있어서도 보배로운 분이셨다. 이 자비로우신 구주로부터 긍휼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그에게 나아가야 하며 또한 이 나아감은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다 할지라도 우리의 행할 바로서 헛된 바램이 아니라 참된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2) 베드로는 계속해서 그를 기초로 해서 세운 상층부에 대해서 말해 간다(6절). 베드로는 여기서 이들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법규를 권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대인의 성전보다도 더욱 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산 성전인 것이다. 그 기초가 되신 그리스도는 산 돌이시다. 그리스도인들은 산 돌들이며 거룩한 제사장들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린다.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안에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영적 생활의 원리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죄와 허물 가운데서 죽은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산 자들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영적인 집이다. 이 집은 매일 세워지는 것이다. 그 집의 모든 부분은 항상 개량되어가며 그 전체는 새로운 구성원들이 증가되어감으로써 전 시대에 걸쳐서 보충된다.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제사장들이다. 이 거룩한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려야 하며 또 드릴 것이다. 가장 훌륭한 사람들의 가장 신령한 제사들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헌납을 그리스도께 가져와야 하며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2) 베드로는 이사야 28:16절의 말씀으로부터 자신이 그리스도를 산 돌로 단언한 것을 더욱 확고하게 하고 있다. 사도들은 성경을 인용함에 있어서 성경의 말씀보다는 그 의미를 더 고수하였다. 성경의 참된 의미가 성경 말씀으로보다는 다른 것으로 더 정확하고 완전하게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의 중요한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는 전적으로 성경의 증거에 의지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규범이다. 하나님께서 성경 가운데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우리에게 주신 기사는 우리들의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것이다. '보라 내가 한 돌을…'(사 28:16).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신령한 건축을 위해서 두신 요긴한 모퉁이 돌이시다. 모퉁이 돌은 건축물과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그 건축물을 받쳐 주고 연합시켜 주며 장식해 주는 돌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거룩한 교회 즉 그의 신령한 집에 대해서 그와 같은 분이시다.

(3) 베드로는 7절에서 중요한 추론을 끌어내고 있다. 그는 믿는 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믿는 너희는 그로부터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이며 영원히 그를 자랑하며 그로 인해 기뻐할 것이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버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대적에도 불구하고 그를 모퉁이의 머릿돌 되게 하실 것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선지자의 증거로부터 추론을 끌어내고 있다. 선지자는 명백하게 그와 같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에서부터 불가피하게 그런한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도록 말했다. 신실한 사역자의 임무, 곧 일반적인 진리를 성도들의 특수한 조건과 상태에 적용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선지자로부터 한 구절을 인용해서(6절) 그것은 개별적으로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게 적용하고 있다. 이런한 일은 지혜와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도들에게 대단히 유익한 것이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결코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들이 다소 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확고한 믿음은 전혀 가지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건축자들이 되어야 할 자들이 종종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겪으시는 가장 악한 원수들이 되곤 한다. 외식된 자들이 허위와 가장 원수된 자들의 대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수행해 가실 것이다.

(4) 베드로는 돌의 비유를 계속 견지하면서 더욱 상세한 묘사를 덧붙이고 있다(8절). 그 말씀은 이사야 8:13, 14절에서부터 취해지고 있다.

  1) 건축자들, 즉 대제사장들은 그를 버렸으며 사람들은 그들을 좇았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딪힌바 된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자신과 그의 교훈에 부딪혔으며 그의 교훈의 정결성에 부딪혔다. 즉 구원의 주관자가 되시는 복되신 예수께서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의 죄와 파멸의 원인이 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반석되신 그에게 걸려 넘어지게 될 것이다.

  2)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은 상당한 특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9절). 유대인들은 그들의 옛날의 특권들을 지나치게 귀중히 여겼다.

   ① 베드로는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며(7,8절), 순종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어떤 참된 특권도 잃어버리지 않게 될 뿐 아니라 계속해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9절).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택하신 족속이다. 즉 그들 모두는 한 가계를 이루고 있으며, 일반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사람들인 것이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의 종들은 죄와 죄인들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 신성하게 정한 바 된 자들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뻐받으실만한 신령한 봉사와 헌납들을 바치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누구이든간에 거룩한 한 나라를 이루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들이 영예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이러한 고귀함과 덕성들은 그들에게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그들의 처음 상태는 지독한 어두움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두움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덕행들로, 자기들을 부르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②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들의 처음 상태와 현재 상태를 비교해 보도록 권하고 있다. 이전에 그들은 백성이 아니었으며 긍휼을 입지도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긍휼을 입은 자들이 되었다.

(5) 베드로는 그들에게 육체의 정욕을 주의하도록 경계시키고 있다(11절). 그는 그 의무가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문제에 대해서 최상의 관심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11절). 그 의무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것이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볼 때 육체의 정욕을 피해야 하였다.

  1)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존중 : 그들은 '사랑하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2) 세상에서 그들의 상태 : 그들은 '나그네와 행인 같은 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지나가는 나라의 정욕에 빠져 자신들의 행로를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죄가 사람에게 끼치는 큰 해 : 죄가 사람에게 큰 해를 끼치는 이유는 그것이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죄 가운데서 '육체의 정욕'만큼 영혼에 해를 주는 것은 없다.

(6) 베드로는 더 나아가 그들에게 선한 행실을 권고한다. 그들은 그들의 숙적들이 될 뿐 아니라, '악행하는 자들'이라고 끊임없이 그들을 비방하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살았다. 12절의 말씀은 곧 다음과 같은 의미였던 것이다. "선한 행실은 그들의 입을 닫게 해 줄 뿐 아니라 그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주는 수단이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선한 행실에 있어서 너희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을 보게 될 때 너희에게 돌아서게 될 것이다. 선한 행실로써 너희 자신을 변호하라. 이것이 그들을 확신시키는 방법이다. 복음이 그들에게 이르고 좋은 효과를 거두게 될 때 선한 행실은 그들의 개종을 고무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악한 행실은 그것을 가로막을 것이다."

 

Ⅲ. 특별한 지시들 2:13-25

 

그리스도인의 행실은 반드시 선해야 한다.

1. 백성들의 경우(13-17)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에 있어서 소문난 개혁자들이었을 뿐 아니라 나라를 소란케 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행정 관리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규범을 정해 놓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1) 요구된 의무는 순복이었다.

  (2) 순복해야 할 사람들과 대상들 : 보다 일반적인 것으로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에 순복해야 했다. 행정 관직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이다. 또한 이것은 모든 족속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반적인 규범이며 확립된 정부의 형태를 이루게 했다. 그리고 특수한 것으로 '위에 있는 왕이나 왕의 보냄을 받은 방백에게' 순복해야 했다.

  (3) 이러한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

   1) 그 이유는 인간의 유익을 위해 행정 관리를 정하신 주를 위해서이다.

   2) 그 이유는 행정관의 직무의 목적과 임무에서 나타난다. 즉 행정관의 직무는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은 시민을 위한 정부에 대해서 최고의 지지를 보낸다. 행정관이 자신의 의무를 가장 잘 수행하는 방법과 세상을 개선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징벌과 포상을 잘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은 행정 관리들에게 순복해야 한다. 이는 선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인 바 이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관계에 있어서 가장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불합리한 비난을 막기 위해서 스스로 힘써 처신해야 한다.

   4)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영적 특성 :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자유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으로부터 자유한 것인가? 이는 결코 의무나, 행정 관리들에게 순복해야 한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자유케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모든 종들은 사람들로부터 자유케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은 자신들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남용하지 않도록 매우 주의해야 한다.

  (4) 베드로는 네 가지 찬탄할만한 가르침으로 글을 맺고 있다.

   1) 웃사람을 공경하며(17절). 모든 사람에 대해서 마땅히 공경해야 할 것이 주어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멸시받아서는 안되며 악한 자들도 공경받아야 하되 그들의 사악함 때문으로가 아니라 다른 어떤 특질 때문으로 공경 받아야 한다.

   2) 형제를 사랑하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 형제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3)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가장 높은 경외감으로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이것이 부족하게 되면 다른 새의무는 결코 행해질 수 없다.

   4) 왕을 공경하라.

2. 종들의 경우(18-25)

그들은 그들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믿지 아니하는 잔인한 상전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도는 '사환들아 순복하라'고 말한다.

  (1) 베드로는 그들에게 '순복할 것'을 명한다. 그것도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악하고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할 것을 명하고 있다. 어느 한 쪽의 죄악된 비행이 다른 쪽의 죄악된 처신을 결코 정당화 해 주지는 못한다. 종은 비록 그 상전이 죄악되고 까다롭다 할지라도 자신의 의무를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선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들과 아랫 사람들에게 온유하며 관용을 베푸는 자들이다.

  (2) 베드로는 그들에게 순복할 것에 대해서 조리있게 말해 간다.

   1) 만일 그들이 부당하게 고난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역경을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것이 될 것이다(19,20절). 세상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할 만큼 비참한 상태란 없다. 아무리 비참한 가운데 처한 종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가장 양심적인 사람들이 가장 큰 고난을 당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19절). 이런 류의 고난을 당하는 자들은 칭찬받을 만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만한 자들이다. 마땅히 고난당하는 자들은 인내로서 견뎌야만 한다.

   2) 그리스도인 종들이 부당한 고난 가운데서 참아야 할 것을 격려해 주는 더 큰 이유(21절) :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그리스도께서 본이 되신 것에서 취해지고 있다.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당하는 자들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난을 각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즉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고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고난 당하셨다(24절).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신 사실은 우리가 세상에서 직면하게 되는 가장 부당하고 지독한 고통 가운데서도 우리를 잠잠케 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어떻게 죄인된 우리가 후세에 말할 수 없는 축복들을 만들어 주는 이 생의 가벼운 환난들에 순복하지 않겠는가?

  (3) 그리스도께서 순복과 인내의 본을 보이신 것이 여기에 서술되어 있다.

   1)그리스도께서는 부당하게 고난 받으셨다(22절). 그의 행위에 있어서 뿐 아니라 그의 말도 모두 신실했으며 의롭고 옳았다.

   2) 그리스도께서는 인내로 고난 받으셨다(23절). 죄에 대해서 분개한다고 해서 그것이 범한 죄를 정당화 시켜줄 수는 결코 없다. 죄에 대한 변명은 결코 중요치 않다. 더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럴 필요가 없는 보다 강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4)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단지 고난 아래서 참는 것의 본이기 위해서만 계획되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 베드로는 여기서 그 죽으심의 더 영화로운 계획과 결과에 대해서 덧붙여 말해 간다. 친히. 이는 고난 받는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것으로 "몸소"라는 말이다. '친히'라는 표현은 그를 다른 짐승의 피를 드린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과 구분짓기 위해 강조하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그가 당하신 고난들은 책찍에 맞으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이었다. 얼마나 비참하고 굴욕적인 형벌이었는가! 그가 고난 당하신 이유를 보도록 하자.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24절). 그리스도께서는 고난 당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 그는 죄의 형벌을 담당하신 것이다. 마치 속죄 염소가 상징적으로 사람들의 죄를 머리에 지고 멀리 내몰림을 당하여 그 죄를 단번에 담당하시고 세상 죄를 없이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 당하심의 열매는 곧 우리의 성화와 칭의이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은 것이다.

  (5) 그들의 이전 상태와 현재 상태의 차이점(25절).

   1) 인간의 죄 : 그는 길을 잃게 되었다. 이는 인간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다.

   2) 인간의 비참 : 그는 목자와 양떼들로부터 떠나 길을 잃게 된 것이다.

   3) 개종함으로 이러한 상태로부터 회복됨 : 이는 자신의 양떼를 사랑으로 보살피시는 참된 목자가 되시며 가장 부지런히 살피시는 지도자, 감독 혹은 영혼의 감독자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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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수신자들에 대한 언급과 인사말 1:1,2

 

1. 본 서신의 저자(1)

  (1) 이름으로서의 베드로라고 언급되어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에게 그의 믿음에 대한 칭찬으로서 반석을 의미하는 베드로라는 별칭을 주셨다.

  (2) 직책으로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언급되어 있다. 사도란 기독교 안에서 가장 높은 직책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1) 베드로는 그 자신이 사도임을 밝히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가진체 하는 것은 위선이다. 아울러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은혜를 잊는 태도이다.

   2) 그는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그의 정당한 이유와 의무로서 그의 사도적 기능을 언급하고 있다.

2. 수신자들에 대한 언급(1,2)

  (1) 그들의 외적 상태로 언급함 :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1절). 현재 그들의 형편은 가난했으며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선한 종들이 고초를 겪었던 동안에 자기들의 본토를 떠나 사방에 흩어져 있을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선한 사람들의 가치는 결코 그들의 현재의 외적 상태에 의해서 평가 되어져서는 안된다.

  (2) 그들의 영적 상태로 언급함.

   1) 여기서 베드로는 그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 이라고 부른다. 선택함은 직무에 대한 것일수도 있고 혹은 특별한 특권들을 누리는 것이나 영원한 구원에 관한 것일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택에 대하여 살펴 보자.

    ① 이 선택은 ' 하나님의 미리아심을 따라' 되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리아심'은 다음 두가지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첫째, 단순한 예지, 통찰, 혹은 이해로서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식별력을 뜻한다. 이는 마치 수학자가 일월식이 있게 될 때를 확실히 아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러한 예지가 결코 어떤 일을 일어나게 한 동기가 되지는 못한다.

     둘째, '미리아심'은 때때로 계획, 정하심, 승낙 등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예견되었을 뿐 아니라 20절에 나타나는데로 미리 정하여졌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본문에 적용시켜보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계획, 정하심, 그리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따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② '하나님의 미리아심을 따라'라는 말에 아버지라는 말이 덧붙혀져 있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이에 있어서 선택은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며, 화목케 하심은 아들이, 그리고, 거룩하게 하심은 성령께서 하신 일이다.

   2) 그들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었다. 모든 선택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성령에 의해서 거룩하게 하심을 받아야 하며 예수의 피에 의해서 의롭게 되어져야 한다. 여기서 성화는 순종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되어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의무를 하나님 앞에서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곧 성령이시다. 순종함과. 이 낱말은 패역한 죄인들을 다시 순종 가운데로 가져다 주기 위한 성화의 목적을 나타내주는 말이다. 22절의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가 그것을 보여 주고 있다.

   3) 그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었다. 여기에 율법 아래에서의 전형적인 피뿌림에 대한 명확한 암시가 나타나 있다. 숭고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충족케 한 희생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피는 흘려졌을 뿐 아니라 택하심을 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또한 뿌려져야만 하며 전달되어져야만 한다. 영생의 목적으로 택하심을 입은 모든 자들은 또한 순종이라는 방법으로 택하심을 받았다. 만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피뿌림을 얻지 못한다면 인생에 있어서 어떤 참된 순종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3. 인사말(2)

베드로가 그들에게 바란 축복은 은혜와 평강이었다. 은혜란 곧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총으로서 그것의 모든 특유한 효력들을 수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평강이란 온갖 종류의 평강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과 함께한 평강, 즉 우리 자신의 양심으로 느끼는 평강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이 축복들과 관련한 베드로의 기도 혹은 간구는 그 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 것이었다. 베드로는 그것들이 그들에게 계속되고 증거되고 온전케 되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축복은 곧 은혜와 평강이며 그것들의 증거이다. 참된 은혜가 없는 것에는 결코 평강이 있을 수 없다. 먼저는 은혜이고 그 다음이 평강이다. 은혜없는 평강은 단지 어리석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잠시 동안 실제적인 평강이 없는 곳일지라도 은혜는 진실로 있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때 고뇌 가운데 계셨었다. 은혜와 평강이 처음 주어질 때 뿐 아니라 그것들이 증거되는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Ⅱ. 거듭남으로써 산 소망이 있게 하신 것에 감사함 1:3-5

 

(1) 이어서 베드로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간다.

  1) 수행되어야 할 의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2) 이러한 찬양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의해서 묘사되어지고 있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한 분에 대해서 그의 세 직무를 나타내는 세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즉 우주적인 왕으로서 주라고 했고, 제사장 혹은 구주로서 예수라고 했으며 선지자로서 그리스도라고 한 것이다.

  3)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많으신 긍휼' 때문이다. 그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이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감사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특별히 그 사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결과인 뛰어난 산 소망의 은총을 생각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그 소망은 산 소망일 뿐 아니라 영속적인 소망으로서 견고한 기초,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나쁜 상황에 처하여 있어도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하거나 찬양할 때에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불러야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와 우리의 봉사들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최상의 축복들을 받은 것을 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 때문으로 여긴다. 세상의 모든 악은 사람의 죄로부터 나타나는 것이지만 모든 선은 하나님의 긍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거듭남은 영생의 산 소망을 낳는다. 새롭게 영적 출생을 한 자들은 새롭게 영적 소망으로 출생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산 소망이라고 하는 탁월성을 지니고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영생의 소망은 그 사람을 살아있게 해주며, 일깨워 주고, 붙들어 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는 소망이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의 거짓된 소망은 헛된 것이며 멸망하는 것이다. 위선자와 그의 소망은 헛된 것이며 멸망하는 것이다. 위선자와 그의 소망은 함께 소멸되며 없어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은 곧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근거가 되며 기초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리스도와 그의 양떼들간의 뗄 수 없는 연합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양떼된 자들은 머리되신 그의 부활의 능력으로 일어나게 된다.

(2) 베드로는 기업이라는 말로 계속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얻게 될 생명을 묘사해가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이 잃었던 것과는 전혀 비교할 수도 없이 더 좋은 새 기업으로 그들이 거듭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하늘나라에 예비된 고귀한 기업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1) 의심할 바 없이 하늘나라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기업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그의 은사들을 주시지만 기업은 오직 자녀에게만 주신다. 이 기업은 우리가 값 주고 산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 아버지의 선물인 것이다. 즉 우리의 공로의 대가가 아니라 은혜의 결과인 것이다.

  2) 이 기업의 비교할 수 없는 탁월성 : 그 기업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 그 점에 있어서는 그 조성자와 같은 성질을 지닌다. 부패란 좋은 것에서 나쁜 것으로 변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변화도 없고 끝도 없다. 즉 하늘에 있는 장막은 영원한 것이다. 이 기업은 더럽지 않은 것이다. 거기에는 죄와 비참함이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쇠하지 아니하며 언제나 그 향기와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또한 그 기업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게 될 때까지 그것은 저 세상에 안전하게 보존될 것이다. 그 기업이 누구를 위해서 간직되어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들의 특성에 의해서 묘사되고 있다. 즉 그들은 '산 소망을 얻도록 거듭난 자들'인 것이다.

(3) 베드로는 그들이 도중에 혹시 넘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약간의 의혹과 불안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안전하게 영생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온갖 해로운 시험들로부터 그들이 보호하심을 받게 되었다고 대답하고 있다.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자들은 틀림없이 안전하게 그것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약속받은 축복은 곧 보호하심이다. 너희가…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리고 그 보호해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보호하심을 입기 위해서 우리가 가지는 수단은 곧 우리 자신의 믿음과 주의이다. 또한 우리가 보호하심을 받는 목적은 구원이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것의 끝과 결말을 확실히 보게 될 때는 말세이다. 따라서 성도들의 현 상태는 위험과 구원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코 정복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생한 자들이 영생에까지 보존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결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보호하심을 입는다는 사실이 자신의 구원을 위한 사람의 노력과 주의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영혼으로 하여금 은혜의 상태를 거쳐 영광의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 특효약이다. 이 구원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것'이다. 즉 구원은 성도들을 위해서 하늘나라에 준비되어 있으며 간직되어 있다. 그러나 구원은 비록 예비되어 있다 할지라도 현재에는 여전히 구원을 기업으로 받게 될 사람들에게조차 상당히 감추어져 있으며 나타나 있지 않다. 그것은 말세에 완전하게 나타날 것이다. 생명과 불멸이 복음에 의해서 이제 빛 가운데 드러났다. 그러나 이 생명은 임종시에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게 될 것이며 그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Ⅲ. 구원으로 인한 기쁨 1:6-9

 

그러므로. 사도는 '그러므로'라고 말함으로써 성도들의 현재 상태의 탁월함과 장래에 대한 그들의 숭고한 기대에 관하여 자신이 앞서 말한 내용을 그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6절).

(1) 근심 가운데 있던 성도들을 안심케 하는 것들이 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라면 크게 기뻐할만한 어떤 일을 항상 가지고 있다. 선한 그리스도인의 주된 기쁨은 크게 가치있는 것들로 이루어진 보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많은 시험들로 인해서 큰 시험이며 시련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좀처럼 하나로 오지 않고 여러 가지가 제각기 다른 측면에서 오게 되며 그 결과 큰 낙심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의 환난과 근심은 잠시일 뿐이다. 환난이 잠간이라는 사실은 그것으로 인한 낙담을 훨씬 줄게 한다. 큰 낙심은 종종 그리스도인의 유익에 필요하기도 하다. '너희가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가 그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의도적으로 괴롭히시지 않으시며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사려를 가지시고 행하신다. 낙심케 하는 이 고난들은 필요할때 외에는 결코 우리에게 오지 않으며 필요 이상으로 결코 오래 머물지도 아니한다.

(2) 베드로는 성도들의 환난의 목적과 그 환난 아래서 그들이 기뻐하게 되는 근거를 말해 간다(7절).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환난은 그들의 믿음의 시련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괴롭게 하시는 것은 그들을 파멸케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연단시키시기 위해서이다. 이 시련은 주로 믿음에 대해서 있어지는데 이는 이 믿음의 시련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모든 것의 시련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하셨다. 만일 믿음이 서게 된다면 다른 모든 것들도 굳게 서게될 것이다. 연단받은 믿음은 금보다 더욱 귀한 것이다. 여기에 믿음과 금이 동시에 비교되고 있다. 금은 모든 금속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일 뿐만 아니라 가장 오래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덕목 중에서 믿음이 그러하다. 즉 그것은 영혼이 하늘나라에 이르게 될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연단은 금의 연단보다 더욱 귀한 것이다. 금은 불 속에서 연단 받으므로 증가되거나 더해지지 않으며 오히려 줄어든다. 그러나 믿음은 많은 환난에 부딪침으로 굳게 서게 되며 더욱 증가된다. 금은 결국엔 없어지게 된다. 없어질 금이라는 말이 그것을 나타내준다. 그러나 믿음의 시련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다. 만일 연단받은 믿음이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게하는 것이라면 비록 환난에 의해서 공격을 받고 시련을 겪게 된다 할지라도 금보다 귀한 것이니만큼 이 믿음을 권유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광 중에 다시 나타나실 것이다. 시련은 곧 끝나게 될 것이며 영광과 존귀와 칭찬은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

(3) 베드로는 특별히 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칭찬하고 있다.

  1) 믿음의 대상의 탁월하심 : 그 믿음의 대상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예수이다(8절).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존재를 믿는 것과(이는 마귀들도 믿는 바이다) 그를 인격적으로 믿는 것과는 별개이다.

  2) 사랑과 기쁨이라고 하는 그들의 믿음의 두 귀중한 산물 혹은 결과 : 특히 이 기쁨은 위에 표현되어 있는대로 매우 큰 것이다.

   ① 감각은 느낄 수 있는 것으로 현재적인 것과 친숙하며 이성은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원리인 것이다. 그러나 신앙은 한층 높이 올라간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것이다.

   ② 참된 믿음은 결코 믿음 자체로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강한 사랑을 낳는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인격적으로 믿으므로 그에 대해 신실한 사랑을 가진다.

   ③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믿음과 사랑이 있는 곳에는 말할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이 있다. 그것은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최상의 발견은 그것을 경험함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영광의 충만, 곧 하늘나라의 영광의 충만이다. 성장한 그리스도인의 현재의 기쁨 가운데는 하늘나라와 장래의 영광이 풍성히 들어있다. 그들의 믿음의 근심된 것들을 몰아내며 기뻐할만한 최상의 이유들을 가져다 준다. 이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매우 기뻐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그들이 매일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9절). 그들이 받은 축복을 보도록 하자. 그것은 여기서 믿음의 구원에서 끝이 나게 된다. 영혼의 구원은 이들 그리스도인들이 구한 상급이자 그들이 목표했던 것으로 그것은 매일 매일 그들에게 더욱더 가까와졌다.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매일 그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받는 것이다. 신자들은 거룩함과 하늘에 속한 마음을 소유함으로 하늘나라의 시작을 가졌다. 그들은 세상에서 잃어버리는 편에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들이 받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즉, 비록 그들이 보다 못한 유익은 잃고 있지만 그들은 시종영혼의 구원을 받고 있었다.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 자신의 복락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만일 전자를 올바르게 구한다면 우리는 후자에도 이르게 될 것이다.

 

Ⅳ. 선지자가 예언한 구원 1:10-12

 

베드로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한 근거를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이 전혀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기 위해서 선지자들의 선례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1. 이것을 부지런히 살폈던 사람들(10)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영감받은 자들로 선지자들이었다.

2. 그들이 살핀 내용(10)

그것은 '구원과 너희에게 임할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들은 빛과 은혜와 위로의 영화로운 시대를 미리 내다 보았으며, 이것은 선지자들과 의인들로 하여금 복음의 시대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보고 듣는 것을 바라게 만들었다.

3. 그들의 연구의 태도(10)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이말은 바닥을 파서 흙 뿐만 아니라 암석까지라도 뚫어서 광석을 캐내는 광부들을 연상케 하는 강하고도 힘있는 표현이다. 이들 경건한 선지자들은 그처럼 열정적으로 알고자 힘썼으며, 자신들의 연구에 부지런했다. 그들이 영감받았다고 하는 사실이 그들의 부지런한 연구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가르침은 가장 위대하고 현명한 사람들에 의해 연구되고 찬양되어 왔다. 이 큰 구원과 그것을 가져다 준 은혜에 대해서 잘 아는 자들은 그것을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필 수 있어야 한다.

4. 옛 선지자들이 주로 연구한 특별한 내용(11)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연구의 주제였다.

  (1) 예수의 낮아지심과 죽으심, 그리고 잇달아 나타나는 영광스러운 결과들 : 이것에 대한 연구는 그들에게 복음 전체를 보게 해 주었다.

  (2) 의심할바 없이 이들 경건한 선지자들은 인자의 시대를 보기를 열망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목적에 대해서 어떤 것을 알려주는 한 그 성취의 때에 몰두하였다. 그 시대의 특성에 대해서 또한 엄격히 고찰되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본으로부터, 영광을 얻게 되기 전에 봉사와 고난의 때가 있게 된다는 것을 배우도록 하자. 베드로에게 있어서도 그러했다. 따라서 그 제자는 그의 주보다 뛰어난 자가 아니었다.

5. 그들의 연구가 성취됨으로 결실을 맺음(12)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평온하게 하시기 위하여 만족할만한 계시를 주셨다. 그들은 이러한 일들이 자기들의 시대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라는 말씀이 그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들을 전혀 오류가 없으신 성령의 지시하심 가운데서 온 세상에 알릴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본문에서 우리는 세 부류의 탐구자들을 보게 된다.

  (1) 그것을 '부지런히 살펴본 선지자들'.

  (2) 모든 예언을 살펴보고 그것들의 성취를 목격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을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서 다른 사람에게 알린 사도들.

  (3) 이 문제들을 가장 주의 깊게 들여다 보는 천사들. 그리스도에 대해서 부지런히 알고자 힘쓰는 자는 반드시 좋은 성과로 응답받을 것이다. 가장 경건하고 훌륭한 사람들일지라도 때때로 그들의 정당하고 경건한 요구가 거절당할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요구에 따라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자신보다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성이다. 선지자들은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역을 하였다. 자신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들은 시종일관 철저하게 지속되고 있다. 즉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은 동일하신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복음은 성령의 사역이다. 그것의 성과는 그의 역사와 축복에 달려 있다. 이 복음의 비밀들은 매우 영화로운 것이었으므로 복된 천사들조차도 그것들을 살펴 보기를 원하였다.

 

Ⅴ. 근신과 거룩함과 형제 사랑에 대한 권고 1:13-23

 

(1) 베드로는 그들에게 근신할 것을 권고한다.

  1)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13절). 이는 "너희 마음의 허리, 곧 너희 마음의 활력과 힘으로 너희 의무를 힘서 다하도록 하라. 너희를 방해하는 모든 것에서부터 너희 자신을 해방시키고 굳은 각오로 계속해서 순종할 수 있도록 하라"라는 말이다. 근신하라. 이는 "너희 모든 영적 위험과 대적들에 대해서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며 모든 일에 있어서 온순하고 절제하라"는 말이다. 즉 "실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소신에 있어서도 근신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라"는 말이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바르게 지배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근신하는 일에 힘쓸 필요가 있다. 은혜의 상태 가운데 들어갔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의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더 큰 은혜를 바라며 힘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온전히 바라며 우리의 허리를 동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 자신을 일깨우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에 활기있게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2)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14절). 이것은 그들의 현재 상태, 즉 순종하는 자신의 상태와 이전의 사욕과 무지를 좇아 살았던 상태를 고찰함으로서 그들에게 거룩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자신들의 자녀됨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이전에 사욕과 무지의 때가 있었다. 회심한 사람들은 그들의 이전 상태와는 완전히 다르다.

  3)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15, 16절). 이와 같이 성도가 거룩해야 한다는 사실은 강한 어조로 명해지고 있으며, 세 가지 근거 즉,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와, '기록하였으되'로 나타난 그의 명하심, 그리고 그의 모범으로부터 강하게 요청되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온갖 축복을 소유할 수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엄격한 의무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은총들은 거룩할 것을 명할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도 해주는 것이다. 완전한 거룩은 전 그리스도인의 바램이자 의무이다. 그것의 범위는 전반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하며, 벗이든 적이든 상관 없이 모든 사람에 대하여 모든 행실에 있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즉 우리는 모든 교제와 행사에 있어서 늘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거룩의 표본으로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결코 하나님과 같이 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를 닮아갈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숙고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최상의 거룩함에 나아가도록 요구한다.

  4)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17절). 우리는 이땅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거룩한 확신과 그를 심판자로서 두려워하는 경외함은 완전히 일치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대로 판단하시지 않으신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이라는 말이 그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로운 동정심으로 사람들을 특별 대우하시지 않으시며 오직 그들의 행위대로 사람들을 판단하신다.

  5) 베드로는 두 번째 논지를 덧붙여 말해간다(18절).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상기시키고 있다.

   ① 그들은 아버지께 드려진 속량으로 구원함을 받았다.

   ② 그들의 구원함을 위해서 치뤄진 대가가 무엇이었는가.

   ③ 그들이 어디로부터 구원함을 받은 것인가. (그들은 이상의 사실들을 알았으며 결코 모르는체 가장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받은 사실을 생각함으로써 거룩함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속적이고 힘있는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를 기대하신다. 금이나 은이나 혹은 이 세상에 썩어질 어떤 것으로도 단 한 영혼도 구원할 수 없다. 그것들은 썩어질 것들로서, 썩지 아니하며 멸하지 아니할 영혼을 결코 구원하지 못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인간 구원의 대가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가장 고귀한 피를 흘리신 목적은 우리를 이후의 영원한 비참한 상태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망령된 행실에서부터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드러난 악행 뿐 아니라 우리의 행실의 공허와 무익함 역시 상당히 위험한 것이다. 인간의 행실은 그것이 가장 망령된 행실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의 옹호를 위해서 고전적 유풍이나 관습 그리고 전통으로 변명을 하려고 한다. 고전적 유풍이 결코 진리의 어떤 규범이 될수는 없다.

  6) 구속자와 구속을 받은 양자 간에 모두 관계된 것들에 대해 언급한다(20,21절).

   ① 구속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더욱 상세하게 묘사되어지고 있다.

    ㉠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였다. 이러한 예고는 의지의 행위나 있어질 일의 결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 그는 '말세에 그들을 위하여 나타내신 바된 자'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바 구속자로 나타나셨다. "그러므로 이 일은 신약과 복음의 마지막 때에 되어졌다. 만일 너희가 그를 믿는다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 그는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로 아버지께서는 그에게 영광을 주셨으며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자기의 아들됨을 온 세상에 알리셨고 창세전에 그가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그 영광으로 그를 영화롭게 하셨다.

   ② 또한 구속을 받은 자들이 그들의 믿음과 소망에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21절).

   ③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는 영원전부터 있어온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그러한 은혜를 나타내시기 오래 전에 이미 그들에 대한 특별한 은총의 뜻을 가지고 계셨다. 이전 세대가 누렸던 것과 비교해 볼 때 말세 때의 복은 엄청난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감사와 봉사는 그러한 은총에 합당한 것이 될 수 있어야만 한다.

(2) 베드로는 그들에게 형제 사랑을 권고한다.

  1) 그는 복음이 이미 그들로 하여금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도록'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다(22절).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영혼이 깨끗하다고 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즉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22절)'가 그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들을 정결케 하는 위대한 도구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들으나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결코 깨끗함을 얻지 못한다.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의 영혼을 깨끗케 하는 큰 동인이 되신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노력하도록 고무시키시며 또 성과를 거두도록 하신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이 우리 자신들의 영혼을 깨끗케 했으며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영혼은 먼저 반드시 깨끗게 되어야 비로소 서로 거짓없이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랑도 깨끗한 마음에서 나오지 아니하고서는 있을 수 없다.

  2)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의 영적 관계를 숙고함으로써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해야 함을 더욱 역설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거듭난 자들이다. 그들은 서로 새롭고도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들은 신생에 의해서 서로 형제가 된 것이다. 이렇게 새롭게 두 번 태어나는 것은 첫 번 것보다 훨씬 바람직한 것이며 탁월한 것이다. 우리는 육체적인 출생에 의해서 사람의 자녀가 되며, 영적인 거듭남에 의해서 가장 높으신 이의 자녀가 된다. 태어날 때부터 형제인 자들은 서로 사랑으로 매이게 되나 영적으로 형제의 관계에 있는 자들은 그 의무가 배가 되어진다.

 

Ⅵ. 하나님 말씀의 영원성 1:24,25

 

베드로는 이제 우리 앞에 자연인의 덧없음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어떤 것도 그를 견실한 실체적 존재로 만들수 없다. 이는 오직 썩지 아니할씨,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만이 가능하다. 이 말씀은 복음 전파 가운데서 우리 앞에 매일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상의 번영과 영광 중에 있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마르고 시들며 죽어가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인간의 재능, 아름다움, 용맹, 강인함, 부귀, 영예 이 모든 것은 들의 꽃과 같아서 곧 시들어 죽고 마는 것이다. 이 없어져 버릴 피조물에게 견고하고 썩지 아니할 것을 가져다 주는 유일한 방법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간직케 하는 것이다. 이는 이것이 그를 영원토록 보존할 것이며 그와 함께 영원토록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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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7절)
장로와 회중에 대한 권면 - 극심한 핍박기에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들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하여 베드로는 구체적인 권면을 한다. 그런 후 장로들에 대한 젊은 회중들의 합당한 자세를 제시한다.
[1절]
장로<신 21:6,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장로'라는 단어에 관사(헬, 호)가 붙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베드로도 장로 직분을 맡은 여러 사람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베드로를 다른 사도보다 뛰어난 위치로 올려 놓고 초대 교황이라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의 견해는 잘못되었으며<막 8:29. 베드로 신앙 고백의 해석>, 모든 교역자들 상호간에 자신을 낮추는 일이 필요함(마 20:20~28)을 깨닫게 된다.
[2절]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께서 디베랴 해변에서 자신에게 부탁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 권면을 한다(요 21:15~17).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하나님의 양을 돌보는 자는 불타는 소명의식을 갖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전 9:16, 17).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은 목회자에게 인간적인 방법과 열심을 요구하지 않으시며(고후 1:24; 빌 1:15, 17), 사람의 마음을 끌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를 원하심(갈 1:10)을 깨닫게 된다.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이것은 목회자들이 물질적 보수를 받지 말아야 된다는 뜻이 아니라(고전 9:9~11; 갈 6:6; 딤전 5:18) 다만 물질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금하는 말이다.
[3절]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하나님의 양들을 독재적으로 지배하지 말아야 될 것을 뜻한다. 다만 목회자는 주의 계명을지키는 선한 행위를 행함으로써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한다(빌 3:17; 살후 3:9). 여기서 우리는 목회자가 회중보다 뛰어난 신앙 인격의 소유자이어야 하며, 회중에 대해 지배적 위치가 아닌 섬기는 위치임을 깨닫게 된다.
[4절]
초대 교회 당시 헬라 사회에서는 운동 경기의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었으나 그것은 곧 시들고 만다(고전 9:25). 그러나 재림 때 심판주로 오실 목자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장로의 직분을 신실히 수행한 자에게 영원히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이다(딤후 4:8).
[5절]
베드로는 교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권면을 한다. 젊은 자들. 연령상 혹은 신앙 경력상 연소한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세속적 기질, 즉 옛 사람의 성품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들에게 순복하라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며 덕을 세우라고 당부한다.
[7절]
맡겨 버리라. 자신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내어 맡기면 하나님은 그에게서 근심, 걱정을 제하여 주실 것이다(빌 4:6, 7). 주께 의지하는 것은 그분이 나의 전체 삶을 감찰하시길 원하는 것이지(눅 6:9; 요 10:14; 롬 8:27) 결코 자아를 포기하는 무기력함이 아니다.
(8~11절)
근신의 삶 - 사도는 방심을 틈타 임하는 마귀의 시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면서, 하나님은 고난을 통과할 힘을 주시며 고난을 통과한 자에게는 영광이 예비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신자는 평안과 경각심을 아울러 가져야 하는 영적 긴장의 구조 속에 살고 있으며, 분명한 내세 소망의 소유자만이 모든 환난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8절]
근신하라 깨어라. 세상의 욕망을 버리고 지속적으로 영적 경계를 해야 된다는 의미이다(마 26:38; 벧전 1:13). 대적 마귀가...삼킬 자를 찾나니. 마귀는 영적으로 방심하고 있는 자를 자신의 희생물 곧 미혹의 대상으로 삼는다(눅 22;31). 한편 성경은 여러 곳에서 수없이 악령의 존재를 가르친다. 악령은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는바 마귀(마 4:1), 사탄(대상 21:1; 마 4:10), 귀신(마 4:24; 막 1:16) 등 그 이름이 다양하며 이 중 사탄은 많은 악령들 중 우두머리로 생각된다. 성경은 악령의 기원에 대해 직접적 단언을 하지 않지만 신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천사가 타락해서 악령이 되었다고 본다. 한편 사이비 기독교 일각에서는 불신자들의 영혼이 귀신이 되어 모든 병을 일으킨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치유 기사가 '귀신들린 자'와 각종 병자를 별도로 구분하고 있다는 점에서(마 4:24; 막 1:34) 그들의 주장은 어불 성설이다. 이 악령들은 '공중 권세 잡은 자'로서 이 세상을 앞세워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도록 하며(엡 2:2),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의 복음을 받지 못하도록 미혹하며(고후 4:3, 4), 신자들을 실족시켜 일시적으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며(마 24:24), 사람 속에 들어가 병을 일으키기도 한다(마 8:28; 마 9:32). 신자들은 담대한 믿음과 능력이 없이는 악령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기 때문에(막 9:18, 28, 29) 결코 이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그러나 신자는 악령은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으며(욥 1장), 악령의 세력이 현저히 꺾이었으며(눅 10:18; 계 12:10, 11; 계 20:1~3),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귀신을 쫓을 능력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막 16:17)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10절]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견고케 하시리라. 신자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신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만 마귀의 궤계를 파(破)할 수 있다(마 12:28; 엡 6:11; 약 4:7).

(12~14절)

작별 인사 - 베드로는 전 성도들에게 보내는 모든 권면을 끝내고 이제 간단하고 사사로운 개인적 인사로써 본 서신의 대미(大尾)를 마무리한다.

[12절]

실루아노. '실라'라는 이름으로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에 참여했던 인물이다(행 15:22~33; 행 15:40~18:5; 살전 1:1; 살후 1:1). 말미암아. 실루아노가 본 서신의 대필자(롬 16:22) 혹은 전달자일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이것이...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본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성도의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생각처럼 긍정적인 모양으로만 나타나지 않으며, 성도가 당하는 현재의 고난은 장래의 영광으로 인도하는 디딤돌임(롬 8:28)을 깨닫게 된다.

[13절]

바벨론에 있는 교회. 여기의 바벨론은 로마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내 아들 마가. 그는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에 참여했다가 도중 하차한 인물(행 13:13)로서 베드로의 친아들이 아닌 믿음의 아들이었다.

[14절]

사랑의 입맞춤. 성도들간의 사랑과 호의의 외적 표현이다(롬 16:16; 살전 5:26)<삼하 20:9, 성경에 나타난 인사법>.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평강이 있기를 기도함으로 서신을 끝맺는다. '평강'(헬, 에이레네)은 히브리인의 인사말 '샬롬'과 같은 것으로 본 서신을 '평강'으로 시작해서(1:2), '평강'으로 끝을 맺는다. 이 '평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이라는 말과 관련된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소유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 해설

장로와 회중에 대한 권면 (1~11절)

이제 베드로는 본서를 끝맺기에 앞서 당시의 혹독한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지역 교회 회중을 위해 수고하던 장로들의 노고를 치하, 격려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1~4절). 그리고 회중들에게는 그러한 장로들에게 더욱더 순복할 것을 권면함으로써(5절) 서로간의 믿음을 굳게 할 것을 당부한다(6~11절). 이처럼 교역자와 회중은 서로 존중하며 봉사하기를 잊지 않아야 하는데 이는 교회가 온전히 하나 되는 근본 요인이기도 하다(고전 12:12-27).

작별 인사 (12~14절)

주 안에서의 모든 권면을 끝낸 베드로는 이제 성도가 서로 '사랑의 입맞춤'으로 문안하기를 당부하는데, 이는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간에 최고의 형제애를 표하는 공식 행위였다.

 

# 핵심

1~11절

교회 공동체의 질서 유지와 고난 극복을 위해 장로와 평신도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교훈하는 내용이다.

목자장 (4절)

가축의 수가 늘다보면 목자의 수도 늘기 마련인데, 그 목자들을 관리할 책임자가 바로 목자장이다. 그는 목초지와 주변 지형 여건, 기후, 가축의 질병과 예방법 등에 대해 일반 목자들보다 더 많은 전문 지식을 지니고 있고, 자기 뜻대로 목자를 선발하거나 해고하는 권한을 행사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큰 목자"(히 13:20)라고 하였는데, '목자장'과 같은 말이다. 하나님의 양떼인 성도들을 지도하는 목회자가 목자라면, 주님은 그들을 감독하고 상벌을 베푸시는 목자장이시다.

 

# 묵상

장로들의 역할 (1~6절)

장로란 교회의 장로들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장자들을 의미하는 보편적 용어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장로의 역할은 하나님의 사랑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도들을 지도하며, 그들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젊은이들은 그들에게 순종하며 겸손하게 행동할 것이고 장로들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 (8절)

우리의 대적이란 마귀를 가리킵니다. 그는 오늘도 우리를 삼키기 위하여 사자처럼 울부짖으며 파괴의 행위를 일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마귀(헬, 디아볼로스)를 중상자로 지칭하며, 이 외에도 '이 세상 임금'(요 14:30), '이 세상의 신'(고후 4:4),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로서 인간을 지배하려 한다고 증거합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마귀를 이기기 위해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하며 그를 대적해야 합니다(약 4:7).

베드로의 당부 (12~14절)

베드로는 수신자에게 마지막 당부로 하나님의 참된 은혜 안에 굳게 서라고 부탁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들을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구원하시고 반드시 천국의 영광에로 들어가게 하신다는 사실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고, 의인으로서 죄인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까지도 받으셨던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난을 인내하며 선을 행하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이것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도 마땅히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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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y
(1~6절)
그리스도를 본받음 - 그리스도의 고난을 힘입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처럼 고난받을 각오로써 영적 무장을 해야 하며 비록 핍박이 가중되는 상황 가운데서도 경건한 일상적 삶을 살아야 될 것을 권면한다(1:6, 7).
[1절]
갑옷을 삼으라. 박해와 유혹을 극복할 신앙의 무장에 대한 권고이다(롬 13:12; 엡 6:11~17). 죄를 그쳤음이니.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죽음을 당하심으로 신자의 죄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신자들은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 되었음을 가리킨다(롬 6:1~11). 따라서 신자들은 다시는 죄와 타협하지 말아야 하며 아직도 죄에 얽매인 자들에게 속량의 방법을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3절]
본문의 내용은 초대교회 당시의 국도로 부패했던 사회상과 각 개인들의 삶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헬라의 종교 의식 속에는 연락과 음란이 포함되어 있었다. 무법한 우상 숭배. 우상 숭배는 하나님의 법에 철저히 위배된다. 특히 여기에 성적 문란이 부수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민 25:1~18). 이제 이러한 무절제한 생활과는 달리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절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절제는 성령의 열매로서(갈 5:23) 금욕적 요소를 갖기는 하나 금욕 자체는 아니며(고전 7:9) 그리스도인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덕목이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자신을 절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방인과 차이가 있다. 이 절제가 필요한 부분은 음식 섭취, 음욕, 금전 사용 등 다양하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경건한 삶의 유지를 위하여(고전 7:5), 그리고 하나님의 청지기로서(눅 16장) 절제의 삶이 필요한데 이는 절제가 신앙 품격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반드시 필요하며(벧후 1:4, 6) 절제와 경건의 연습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딤전 4:8; 딤후 4:5; 딛 2:2). 따라서 무절제한 육적 만족의 추구는 자신을 하나님과 가까이하지 못하게 한다. 한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재물을 누릴 권리가 있지만 그것을 제멋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눅 16:19 이하). 신약에서 드러난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살펴볼 때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았으므로 주인이신 하나님 뜻대로 사용해야 된다(눅 12:48).
[4절]
저희와 함께...아니하는 것을...비방하나. 과거의 삶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사는 신자에게 다가오는 또 하나의 핍박이다(갈 5:11)<행 8:1, 초대교회가 당한 박해>.
[5절]
직고하리라. 방탕한 자들이 비록 현재는 신자들의 아름다운 삶을 비방하나(롬 1:28~32) 심판 때에는 그 상황이 역전되어 그리스도께 불신자들의 죄를 낱낱이 고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롬2:5~8).
[6절]
죽은 자들. 5절의 '죽은 자'와는 달리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음이 결정된 존재(엡 2:1), 즉 지금은 살아 있으나 곧 죽게 될 자연인을 가리킨다. 이들에게는 복음이 참으로 필요한데 그 이유는 비록 죽게 될 자들이라 할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 전도의 시급한 필요성, 신자가 소유한 복음의 위대성(고후 4:7)을 깨닫게 된다.
(7~11절)
고난 속에 있는 성도의 삶 - 고난에 대처하고 있는 신자들이 말세의 현실 속에서 지켜야 할 사항으로 형제들을 사랑하며 교회 안에서 열심히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7절]
만물의 마지막.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임박했음과 성도들의 시련도 악인들의 핍박도 끝날 때가 가까웠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말세를 당한 신자는 광신적인 자세로 들떠서는 안 되며, 오늘이 지상 생애의 마지막인 것처럼 매일의 삶을 살아야 하며(히 3:13), 자신을 영적으로 정결케 해야 됨(고후 11:2)을 깨닫게 된다.
[8절]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덮느니라. 인간의 사랑이 상대방의 죄를 대속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신자는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사랑하셨듯이(롬 5:8) 서로 사랑함으로써 상대방의 허물을 용서하라는 뜻이다(요 13:34).
[10절]
은사는 교회가 본연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신자 개인에게 각각 다른 모양으로 주어진다(고전 12:4~11; 엡 4:7, 11)<고전 서론,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비교 연구>. 선한 청지기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은사를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많은 은사의 소유자에게는 더 큰 희생과 봉사가 요구됨을 깨닫게 된다.
[11절]
하나님 말씀의 전파나 성도를 위한 봉사.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수행할 것을 가리킨다(엡 3:16).
(12~19절)

고난의 의미 -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의 필연성과 시험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선하고 의롭게 살 것을 권면하고 있는 본문은 첫째, 성도의 시련은 신앙의 연단을 위한 기회이며 둘째, 시련을 통해 성도들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참여하게 되며(빌 3:10) 셋째, 고난을 통해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형제들에게 참된 관심과 사랑을 갖게 된다는 점을 교훈해 준다.

[12절]
불 시험. 신자들의 믿음을 더 굳건케 하려는 연단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히 12:10, 11). 여기서 우리는 악인들의 성도에 대한 핍박은 하나님의 허락하에 가해지며(출 10:20), 하나님은 성도에게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심을 깨닫게 된다.
[13절]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반드시 따라야 할 명령으로(마 16:24; 요 21:18), 기쁨으로 고난에 동참한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약속이 주어진다<욥 2:7, 고난에 대하여>.

[14절]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계심이라.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힘과 평강의 마음을 주신다. 따라서 수욕(受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15절]

남의 일을 간섭. 신자로서의 본분을 떠나 타인의 일에 쓸데없이 개입하여 소동을 일으키는 행동을 의미한다(행 5:36).

[17~18절]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심판 곧 연단을 먼저 받는다면 불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더욱 극심할 수밖에 없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신자들에게 성령이 계시다는 것과 함께 큰 위로를 안겨 준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들의 환난은 불신자들의 멸망에 대한 전조이며, 성도들의 환난은 천국에서 큰 영광을 누리게 한다는 사실(고후 4:17)을 깨닫게 된다.

 

# 해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 (1~11절)

이제 베드로는 앞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기초하여 성도들에게 두 가지를 권면한다. 첫째, 성도는 그분의 고난으로 인해 새 생명을 얻은 자이니 극한 환난 가운데서도 썩어질 구습(엡 4:22)을 좇지 말 것(1~6절)과 둘째, 때가 악할수록 더욱더 근신하여 성도의 제의무를 힘쓸 것(7~11절)을 말하고 있다. 성경은 연합과 대표의 원리(갈 2:15~21 개요)에 의하여 우리가 일단 중생하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주께서 사신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즉 예수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공동체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베드로는 바로 이런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성도들로 하여금 모본 된 예수의 삶을 좇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고난의 의미 (12~19절)

지금껏 언급한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일종의 결론부이다. 즉 베드로는 성도에게 닥치는 고난을 하나님의 '불 시험'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12, 13절)으로 규정짓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성도가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 것이다(14~19절; 약 1:1~18).

 

# 핵심

1~11절

성도는 고난이 성화의 방편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교회 공동체에서 선한 청지기처럼 자신의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 묵상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자세 (1~2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을 때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이겨 내며, 사람의 정욕을 좇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합니다. 또한 믿지 않는 자들이 행하는 음란, 정욕, 술 취함, 방탕, 연락(樂), 우상 숭배를 버리고, 그리스도가 부활을 통하여 사망을 이겼듯이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 가운데는 구원이 약속되어 있음을 기억하며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고난을 이겨야 합니다.

선한 청지기 (10절)

선한 청지기의 삶은 성도간에 용서와 사랑을 베풀고 맡은 바 자신의 직분에 충성하며 교회 공동체의 결속을 위하여 노력하는 삶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닥쳐온 고난을 피하지 않고 고난이 주는 유익을 생각하며 고난 중에도 능히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받지 말아야 할 고난 (15절)

받지 말아야 할 고난이란 사람들이 비방할 나쁜 행동으로 인해서 받는 고난을 말합니다. 즉, 성도는 살인이나 도적질, 타인의 일에 간섭함으로써 받는 고난 등은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16절)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모두를 말합니다. 이 말은 주후 40년경 안디옥 사람들에 의해 최초로 붙여진 것으로서 원래는 좋은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의 자리에까지 영광스럽게 나아갔기에 후에 이 용어는 영광스러운 호칭이 되었습니다.

 

 

출처 : 바이블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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