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하나님

[사도행전 10장 34절~43절]
34절 -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절 -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절 -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절 -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절 -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절 -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절 -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절 -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절 -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절 -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기도와 구제

[사도행전 10장 1절~34절]
1절 -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절 -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절 -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절 -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절 -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절 -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절 -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절 -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9절 -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절 -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절 -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절 -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절 -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절 -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절 -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절 -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17절 -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절 -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19절 -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절 -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절 -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절 -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23절 -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24절 -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절 -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절 -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절 -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절 -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절 -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절 -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절 -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절 -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절 -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34절 -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복음은 우리를 돌이키게 합니다

[사도행전 8장 9절~25절]

9절 -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절 -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절 -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절 -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절 -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4절 -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절 -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절 -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17절 -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18절 -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절 -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절 -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절 -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22절 -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절 -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24절 -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25절 -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복음의 능력

[사도행전 8장 1절~8절]

1절 -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절 -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절 -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절 -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절 -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절 -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절 -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절 -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새롭게 되는 날

[사도행전 3장 17절~26절]
17절 -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절 -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절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절 -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절 -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22절 -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절 -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절 -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5절 -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절 -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날마다 성령충만

[사도행전 4장 23절~31절]
23절 -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절 -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25절 -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절 -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절 -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절 -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절 -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절 -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절 -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문을 여시는 예수님

[사도행전 16장 14절]
14절 -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누가는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을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도가 나아가는 앞길의 문을 열어 주시는 분이 주님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 나가노라면 우리에게는 열고 지나가야 할 문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때 굳게 닫힌 문을 열어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친히 마 7:7절에서 우리에게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과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문을 열어 주십니까? 

1.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본문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두아디라 시의 루디아에게 그 마음을 여시사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뿐입니까? 행 14: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도 믿음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현재 여러분의 믿음은 어떠하십니까? 혹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결코 한탄하지 마십시오. 오직 주님을 향해 믿음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주님께서는 눅 11:9절에서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약속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여시고 믿음을 주신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믿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혹 여러분 주위의 누군가에게 믿음을 심어 주어야겠는데 뜻대로 되지 않습니까? 인간적인 방법으로 몸부림치지 마십시오. 믿음의 주님께(히 12:2) 그 마음의 문을 열어 달라고 간구하십시오(골 4:3).

2. 영적 지혜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눅 24:45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간혹 우리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말씀의 심오한 진리를 다 깨우칩니까?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솔직한 고백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요 한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께 나아와 주님께 영적 지혜의 문을 열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안을 가리고 있는 두꺼운 수건은 오직 주님께 나아올 때만 벗겨질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모세는 고후 3:14절에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먼저 주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구하는대로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주님께(약 1:5) 말씀을 읽을 때 그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하라는 말씀입니다.

3. 축복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말 3:1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성도 여러분,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물질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래서 큰 부자가 되고 싶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의 바램입니다. 하지만 어디 그게 제 뜻대로 됩니까? 애쓴다고 부자가 됩니까? 몸부림친다고 재물이 모아집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성도된 자들은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신 28:1~6) 여러분의 보화를 십일조와 구제 등으로 하나님 나라 창고에 쌓아야 합니다(마 6:20). 그럴때 하늘 창고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께서 여러분의 창고에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부어 주십니다. 설사 이 땅에서는 그 축복이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끝내 주님께서는 더 크고 영원한 하늘의 축복을 쏟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서 예수님께 와서 문을 두드렸다가 끝내 거절당하고 돌아간 사람이 있습니까? 물론 이기심이나 욕심 등으로 잘못 구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단언하건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주님께 와서 문을 두드리지 않습니까? 친히 예수님께서 와서 두드리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말입니다.
이제 주님께 와서 문을 두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문, 영적 지혜의 문, 축복의 문, 이 모든 것을 여는 열쇠는 오직 주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와서 이러한 문을 두드리시기 바랍니다. 두드리되 열어 주실 때까지 두드리십시오(눅 11:10). 그 모든 문들이 여러분들을 향해 활짝 열리게 되는 날을 곧 보게 될 것입니다.

-아 멘-

제목 : 말세에 내 영을 부어주리라 (피종진 목사님)

[사도행전 2장 16절~21절]
16절 -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절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절 -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절 -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절 -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절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자식처럼 지켜주실 줄 믿습니다.
요즘에 사람들이 ‘말세’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또한 성경 말씀에도 말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크게 약속하신 말씀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행 2:1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말세에 모든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시는지 본문 말씀을 통해 상고하면서 하나님의 영의 부음을 받는 장본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모든 육체가 성령의 역사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라는 말씀을 성경에 많이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품을 떠났을 때 하나님 안에 거하지 못했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기고 이방인들의 풍습을 쫓을 때에도 하나님 안에 거하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내 안에 거하라...」 (요 15: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말세에는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도 우리 육체가 모두 성령의 역사 안에 거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며,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① “자녀들은 예언한다.”라고 말씀한 ‘예언한다.’의 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된다.’라는 뜻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만민들에게 선포할 수 있도록 그 모든 사명이 성령에 사로잡힐 때 그 속에 열매가 맺히고 역사하심이 나타나 보장해 주시고 축복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육성과 인간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덕, 윤리, 철학, 명언으로 교육을 받더라도 그것이 사람의 영적인 심적 본질까지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사람은 육신의 근성 즉 본질은 나면서부터 감사와 은혜를 모르고 인내심도 약하고 또 넓은 마음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성령 안에 거하게 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므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게 되고 좋은 것, 올바른 것, 정의로운 것을 생각하게 되며 하나님 앞에 영광된 것을 생각하게 되어 하나님 앞에 바른 인격적인 삶으로 육체도 살고 영혼도 새로워지며 마음도 아름다워지는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성경 구절을 암송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하나님 말씀 한 절이라도 심겨진다면 그 말씀이 그 자녀에게 축복이 되고 큰 보화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 “젊은이들은 환상을 본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환상’이란 비전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호라오(헬)’로 ‘체험한다. 깨닫게 된다. 알게 된다.’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성령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고, 깨닫고, 체험하여 실천하게 됩니다. 먹어봐야 맛을 알고 건너봐야 깊이를 알며 겪어봐야 사람 마음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성령을 받고 체험한 것만큼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이적을 체험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고 사랑을 체험할 때 주님의 넓은 마음을 알게 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신 것을 체험할 때 만세반석 위에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주님의 사명을 감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임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③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늙었다.’란 말은 ‘프레스뷔테로이(헬)’로 ‘장로’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굉장히 존경하는 표현으로 쓰는 말이고 존칭으로 높이 칭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꿈을 꾸다.’라는 말은 ‘sweet dream(단꿈)'으로 일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땀 흘리고 수고하여 심은 것을 거두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을 누리고 상급을 누리는 축복받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롭다, 어리석다, 바보 같다.’라는 표준을 어디에 잣대를 댑니까? 심은 것을 거둘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 심고 거두는 아름다움이 성령의 역사 안에서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둘째,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2: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 어려울 때마다 더욱더 “주여!”라고 부르며 주님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찾을 줄도 모르고 혹 부른다 하더라도 어색해서 주님을 제대로 부르지도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쁜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고 우리가 자녀이기 때문에 부를수록 편안하고 안정감이 들며 소망이 넘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라고 말씀하셨고,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아멘.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 1:9) 아멘.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으므로 자녀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수록 기쁜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헤아릴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인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라고 말씀했고,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 50:15) 아멘. 이와 같이 우리가 어려울 때마다 주님을 찾고 부르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삶에서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첫 마디로 어떤 말을 하십니까? 바로 “주여!”라고 부르면서 엎드리며 기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난밤에도 보호해 주신 것 감사드리고 하루 일과에 동행하며 지켜주실 것에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을 맡길 때 우리의 무거운 짐, 모든 염려, 행사를 맡아주셔서 책임져 주시고 역사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 ♪방황하는 나에게 주님 오셔서 못 박힌 손 내밀며 오라 하시네.~~ 할렐루야! 우리는 항상 주의 손을 붙잡고 주님께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8,9)아멘. 우리 신앙생활의 연속은 주님을 부르는데서 이루어집니다. 날마다 쉬지 말고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사로잡아 성령의 역사 안에 우리가 거하면 하나님께서 보장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기사와 능력을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행 2:19,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사와 능력을 자녀에게 나타내게 하시며 주님의 권세를 누리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너희들도 내 이름으로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병이 낫게 되고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낼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 안에 거하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사와 표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 16:17,18) 아멘.
하나님 능력으로 많은 환자들이 낫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불안, 공포로부터 평안을 얻고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 성령이 있는 곳에는 거친 광야도 옥토 밭으로 바뀌고 성령이 함께한 자녀에게는 강퍅한 마음이 있을지라도 백합꽃 향기를 발하는 화원처럼 만들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이여! 임하소서.’라고 간절히 기도드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여러분의 육체에 부어주셔서 역사가 나타나 사로잡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약속이고 변치 않는 약속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육체가 성령의 역사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해서이고,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며, 기사와 능력을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임하여 주님의 축복이 영원토록 여러분에게 임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도행전 ③

로마를 향하여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묵묵히 자신을 운명을 헤쳐 나간다. 예수님처럼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로 잡히고 유대인 공회와 로마 총독들 앞에서 재판을 받는다. 결박과 처형의 이유를 찾을 수 없는데도 재판은 진행되고, 바울은 로마 황제 앞에 서기 위해 로마로 향한다. 그 여정에서 풍랑을 만나 또 한 번 죽음의 위기를 넘긴다. 바울은 로마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전파한다.

3차 전도 여행 마무리, 예루살렘으로 가는 바울 (21:1~16)
바울 일행은 고스, 로도, 바다라를 거쳐 두로에 상륙한다. 이곳의 제자들도 성령을 통해 바울에게 일어날 시련을 알고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한다. 하지만 바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바닷가에서 눈물의 기도로 바울을 송별한다. 일행은 돌레마이를 거쳐 가이사랴에 이른다.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빌립의 집에 머무는데 유대에서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내려와 바울의 미래를 예언한다. 이를 듣고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하지만, 이번에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했다며 권함을 받지 않는다.

성난 무리에게 변론하는 바울 (21:17~22:23)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교회는 해묵은 논쟁을 재연한다. 여전히 할례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방인을 위한 바울의 사역을 과소평가한다. 바울은 자신이 분파주의자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정결 의식에 참여한다. 이방 땅에서 많은 업적을 이룬 바울이었지만 예루살렘에서는 자신을 변명하는 데도 힘이 부친다. 결국 바울은 분파주의자라는 자신의 평판을 뒤집지 못한다. 게다가 바울은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갔다는 모함을 받아 고발당한다. 사람들을 선동하고 소동을 일으킨 것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었다(21:27). 이들은 바울이 이방인 드로비모를 성전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고 고소한다. 이는 유대교 율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방인들은 성전에서 이방인의 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억울하게 오해받고 로마 군병에게 체포되지만 군중에게 변론할 기회를 얻는다.


로마 시민권 (22:24~29)

당시 로마 시민이 누린 특권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로마 시민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대단한 특권을 누린 것만은 분명하다. 로마 시민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었고, 로마 시민에게는 함부로 매질할 수도 없었다. 로마의 채찍은 잔혹하고 야만적인 도구다. 채찍질을 당해 평생 불구가 되기도 했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는 자국 시민에게는 채찍질을 가하지 않았다. 로마 본토가 아닌 속주에서 로마 시민권을 소유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바울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다. 바울은 로마 시민의 권한을 잘 알고 있었고, 복음 전하는 일에 이 권리를 사용한다.


공회의 심문과 가이사랴 이송 (22:30~23:35)

공회 앞에 선 바울은 큰 실수를 저지른다. 대제사장을 몰라본 것이다. 이 때문에 바울의 시력이 약하다는 추론이 더욱 설득력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본문의 의도는 조금 더 냉소적인 듯하다. 남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대제사장이 위엄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재판이 시작되자 바울은 모인 사람들을 선동한다. 자신은 죽은 사람의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이라서 핍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바울의 예상대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부활의 믿음을 두고 양편으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하고 재판은 연기된다. 바울을 처벌할 수 없게 되자 일단의 유대인들은 암살하려는 음모를 세운다. 이를 바울의 조카가 듣고 일러 주고, 바울은 기지를 발휘해 이 음모를 피한다. 음모를 들은 천부장은 한밤중에 유대인 모르게 바울을 가이사랴로 압송한다.


가이사랴 심문 (24:1~26:32)

바울이 왜 로마 제국의 심장을 목표로 삼았는지는 분명하다. 예루살렘은 지나가는 곳이었고, 바울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 가이사랴는 로마의 총독관이 있는 곳으로 빌라도의 후임인 벨릭스가 총독으로 있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2년을 보내며 세 번 증언할 기회를 얻는다. 첫 번째는 벨릭스 앞에서(24:10~23), 두 번째는 벨릭스의 후임 베스도 앞에서(25:6~12), 세 번째는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과 베니게 앞에서 였다(26:1~32). 바울의 마지막 변론이 끝나자 사람들은 바울이 사형이나 결박당할 만한 죄를 지은 것은 아니라는 데 합의한다. 하지만 바울은 가이사에게 상소한다. 바울은 결박당한 것 말고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담대히 말한다.


로마로 가다 파선당함 (27:1~44)

바울이 로마에 이르는 항로는 세 가지로 간추려진다. 가이사랴에서 무라, 무라에서 멜리데, 멜리데에서 보디올(오늘날의 나폴리 만)로 가는 길이다. 다른 때라면 상당히 빠른 경로였겠지만, 이때는 동절기(11월 중순~3월 초순경)로 항해하기에는 위험한 시기였다. 당시 교통 여건을 보면 도보로는 하루에 25킬로미터, 말은 50킬로미터를 갈 수 있지만, 배는 순풍을 받기만 하면 170킬로미터나 갈 수 있었다. 일행은 무리에서 곡물을 실은 알렉산드리아 배에 오른다. 말을 잔뜩 실은 배는 매우 더뎠다. 바울은 이 항해가 큰 타격이 있을 것이니 미항에서 겨울을 지낸 후에 떠나자고 권하지만, 선장과 선주는 속히 로마에 가고자 했다. 백부장도 이들의 말을 따랐다. 결국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다 광풍 유라굴로를 만나 모든 짐과 기구를 내버리고 풍랑 가운데 구원의 소망도 없이 헤매게 된다. 14일이 지나고서야 멜리데 섬을 발견해 276명 모두 목숨을 건진다. 사도행전 저자는 전직 선원이 아닌가 할 정도로 난파선의 모험을 자세히 전한다.


바울의 로마 여행


멜리데의 기적 (28:1~10)

바울과 일행은 멜리데 섬에 도착한다. 북아프리카 지중해에 있는 오늘날 몰타 섬이다. 바울은 독사에 물려도 전혀 상하지 않아 원주민들을 놀라게 한다. 게다가 섬의 유력자인 보블리오 부친에게 안수해 병을 고치고 다른 병자들도 고쳐주어 후한 예로 대접받으며 떠날 수 있었다. 바울은 극한 상황에 처했어도 평온함을 유지하며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인정받는다.


로마에 당도한 바울 (28:11~29)

로마에서 바울은 가택 연금을 당한다. 비록 연금 상태긴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 설교하고 글을 쓰고 사색하는 등 어느 정도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무엇보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예수'에 대해 쉬지 않고 전했다. 예수님의 메시아요,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했다. 먼저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선지자 이사야 말대로 이 백성이 도무지 깨닫지 못함(사 6:9~10)을 발견한다. 로마에서도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 보내짐을 알게 된다.


결말 (28:30~31)

사도행전은 갑작스럽게 끝난다.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 총독 앞 재판 과정(24~26장)과 비교해 보면 최후 상소 결과가 소개되지 않은 게 이상해 보인다. 결과가 소개되지 않은 것은 저자가 그 결과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게 가장 현실성 있는 이유다. 바울의 상소는 가볍게 기각되었을 수 있다. 물론 바울은 2년이나 셋집에 묶여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로마에 더욱 전파되었다.


사도행전 당시의 로마

신약 시대 로마 제국의 중심으로 황제가 살고 있으며, 상당히 국제적인 도시였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당연히 온갖 종교가 범람했다. 인구는 대략 45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두 배, 예루살렘보다 열 배나 큰 규모였다. 그래서 로마에 처음 온 사람은 누구나 그 드넓은 모습에 기가 질렸을 것이다. 이 도시에는 50년경부터 유대인이 들어와 살았다. 그들은 비교적 가난한 지역에 정착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로마는 유대인을 용인했지만, 49년 클라우디우스(글라우디오) 황제 치하에서 유대인이 추방되기도 했다. 이 일은 유대인이 늘 분란을 겪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즉, 로마에서도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분쟁이 있었던 것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이때 추방되었을 것이다(18:2).



사도행전 ②


세상을 향한 복음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을 받아 세상으로 흩어진다. 하나님이 유대에 갇힌 복음을 풀어 이방인에게 주신 것이다. 또 이를 위해 이방인의 사도를 예비하신다. 마침내 예루살렘 교회는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임하는 복음의 능력을 인정한다. 과거에 핍박자였던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일하며 복음을 위해 핍박을 받는다.

베드로의 세례를 받은 고넬료 (10:1~11:18)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인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이었다. 욥바에 있던 베드로는 청함을 받고 가이사랴에 와서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러자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려오신다. 베드로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성령의 선물이 부어지는 데 놀란다. 이 선물에는 방언도 포함된다.

안디옥 교회 (11:19~30)
스데반이 죽고 일어난 환난으로 흩어진 사람들도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디옥에서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이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한다. 이 일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보내고, 바나바는 다소에서 사울을 데려와 협력한다. 이렇게 해서 안디옥에 첫 이방인 교회가 세워진다. 이 무리는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로 불린다.

교회에 닥치는 박해 (12:1~25)
예루살렘에서는 또다시 박해가 일어난다. 헤롯 대왕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유대교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야고보의 목을 베고 베드로를 투옥한다. 한편 헤롯이 매우 교만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자, 주의 사자가 그를 쳐서 죽게 한다.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13:1~14:28, 47~49년)
이제 사도행전은 바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초대교회의 전략가로서 바울은 로마의 사통팔달 도시마다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바울은 소아시아 지역을 최소한 세 번은 여행한 것으로 보인다. 여행마다 시련과 승리가 거듭되었다. 수많은 회심자들을 얻었지만 박해로 인해 죽을 고비도 넘긴다.
바울과 바나바는 거의 모든 마을과 도시에서 위협을 당한다. 매를 맞고 쫓겨나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같은 장소를 다시 방문하며 성도들을 돌아본다. 더베에서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은 뒤,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지역마다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를 선임한다. 바울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14:22)임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예루살렘 공의회 (15:1~35)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고넬료에게 세례를 준 이후로 제자들은 이방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방인도 반드시 할례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논쟁이 일어나자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파송된다. 사도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이 일을 의논한다. 베드로는 이방인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선포한다. 예수님의 형제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인 야고보도 베드로를 지지한다. 다만 몇 가지 금지 사항을 제시한다. 우상의 제물이나 피를 제거하지 않은 음식을 멀리하고 음행을 피하라는 것이다.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15:36~18:22, 50~52년)
바울과 바나바는 두 번째 여행을 준비한다. 행선지는 전에 복음을 전했던 곳이다. 그런데 수행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대립한다. 마가 요한 때문이다. 바울은 전에 문제를 일으킨 마가를 다시 받아들일 용의가 없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크게 다투게 된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고향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와 수리아로 떠난다. 이 기간에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 내지 2년 정도 머문다.
디모데의 할례 (16:3)
바울은 첫 번째 전도 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방문한다. 루스드라에서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를 둔 디모데를 새 동행으로 택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다. 그는 이방인인 디도가 할례받는 것은 허락지 않았다(갈 2:3~5). 그러나 디모데는 유대인 사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할례를 행한 듯한다. 그의 할례는 문화적 행위일 뿐, 이로써 믿음이 온전해진다고 본 것은 아니었다.
드로아 환상 (16:6~10)
바울의 여정은 성령이 인도하신다. 아무리 바울이 전략적인 선교 목표를 세워도 그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려 했지만 성령이 막으시고,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서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환상을 본다. 이때부터 '우리'를 주어로 하는 보도가 시작되는데, 저자인 누가가 드로아에서 여행에 합류했음을 알 수 있다.
빌립보 교회 (16:11~40)
빌립보 교회 구성원은 실로 다양하다. 일단 거물급 여성 사업가가 회심한다. 귀신 들렸던 전직 점쟁이 여자 노예도 있다. 한때 자결하려 했던 간수와 그의 가족들도 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고 말한다(빌 1:8). 이들은 복음의 시초에 바울의 사역에 유일하게 참여한 교회였으며, 여러 번 바울에게 선교비를 제공하기도 했다(빌 4:15~16).

데살로니가 (17:1~9)

바울은 다른 지역에서처럼 회당에 들어가 설교한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그리스도인 몇 명을 잡아넣는 데 만족해야 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두 번에 걸쳐 편지를 보낸다. 이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뿐 아니라 각처에 믿음으로 소문이 난다(살전 1:8).

베뢰아 (17:10~15)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주목받는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너그럽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복음에 대해 오랫동안 진지하게 생각했다.

아덴 (17:16~34)

당시 아덴은 로마에 필적할 만한 대도시였다. 아덴에서 바울은 회당보다는 시장과 이방 신전에서 활약한다. 아덴 사람들은 종교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한 단도 세울 정도였다. 바울과 쟁론한 에피쿠로스학파 철학자들은 행복이 인생의 중요한 목표라고 믿었다.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과 자기 규율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바울은 철학의 본고장인 이곳에서 철학자의 입장에서 대화를 풀어 간다. 바울의 말을 들은 이들 중 일부는 조롱했고, 어떤 이들은 다시 듣겠다고 한다. 또 바울을 가까이하여 복음을 믿게 된 이들도 있었다.

고린도 (18:1~17)

바울은 고린도에서 약 2년 머문다. 그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tentmaker)으로, 생업 이외의 시간에 설교하고 복음을 전한다. 이즈음에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도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회당장 그리스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인다.

겐그레아 (18:18), 에베소 (18:19~22)

바울은 수리아로 가는 길에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는다. 이는 자신의 서원을 지킨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에 짧게 머문다. 분명 다음에 다시 올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헤어지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간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18:2~3)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다. 로마에 살았지만 49~50년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쫓겨난다. 이들은 바울처럼 천막 만드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 에베소로 가서 아볼로를 가르치고, 후에 로마로 돌아와(롬 16:3) 자신들 집에 교회를 세운다(고전 16:19).

갈리오 (18:12~17)

갈리오는 스토아 철학자로서 네로 황제의 가정 교사였던 세네카의 형제이기도 하다. 그가 아가야 지방의 총독으로 있는 동안 이 지역에서는 로마의 간섭 없이 기독교가 전파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과 유대인의 불화가 종교적인 이유로 인한 사소한 다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볼로 (18:24~28)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복음의 일부만을 들은 듯하다. 그는 성경에 대해 알지 못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더 자세히 가르쳤다. 아볼로는 후에 고린도 교회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된다(고전 1:12; 3:4~9).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18:23~21:16, 53~57년)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을 보낸다.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는 무리를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강론한다.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이들의 반기독교적 폭동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후에 바울은 마게도냐와 그리스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밀레도 항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마지막 항해를 한다. 많은 사람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지만 결국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로마로 가기 위해서였다.

에베소 (19:1~41)

바울은 세례 요한의 가르침만 알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한다.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주문처럼 사용하는 유대인 신비주의자들도 만난다. 바울의 사역은 아데미 여신의 우상을 만들어 먹고 사는 은장색들에게 타격을 주었다.

드로아 (20:7~12)

이튿날 떠나야 하는 바울은 강론을 멈추지 않는다. 밤은 늦고 실내는 더웠을 것이다. 그때 창에 걸터앉아 바울의 강론을 듣던 유두고가 졸다가 그만 떨어져 죽고 말았다. 바울은 유두고를 되살리고 성도들과 함께 떡을 떼며 날이 샐 때까지 이야기한다.

밀레도 (20:17~38)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러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자신이 모범을 보인 대로 성도들을 잘 돌보라는 것이다. 일행 사이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돈다. 모두가 바울의 투옥과 고초를 예감한다. 이들은 기도와 눈물로 작별한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성령님은 각자에게 달리 말씀하시는가?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작정한다(20:22). 로마라는 목표가 그 너머에 있었다. 바울의 결심이 성령과 무관할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두로의 제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큰 일 당할 것을 알고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말한다(21:4). 예루살렘의 심상치 않은 여론을 들어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가이사랴에서 만난 예언자 아가보도 마찬가지다(21:10~11), '우리' 즉 누가의 다른 동역자들도 바울을 만류한다(21:12). 이들에게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바울은 고난을 감수하고 예루살렘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바울이 받을 고난을 염려했던 이들도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21:14)하고 만류하기를 그만둔다.


바울의 1~3차 전도 여행 경로



주요 사건

본문

장소

요점

예루살렘

교 회

10:1~11:18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함.

11:19~30


안디옥에 복음을 전함.

12:1~25


교회에 닥치는 박해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13:4~5

구브로의 살라미

바나바의 고향. 회당에서 말씀을 전함.

13:6~12

바보

바예수를 누르고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함.

13:13

버가

수행원 요한이 떠남.

13:14~52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설교하다 쫓겨남.

14:1~6

이고니온

회당에서 설교하다 돌 던지는 사람들에게 쫓김.

14:6~20

루스드라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켜 신으로 추앙 받음. 돌에 맞아 죽을 뻔함.

14:20~21

더베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음.

예루살렘 공의회

15:1~35


이방인을 위한 예루살렘 교회의 회의와 결정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15:36~41


바울과 바나바의 갈등

16:1~5

루스드라

디모데를 만남.

16:6~10

드로아

마게도냐로 와서 도우라는 환상을 봄.

16:11~40

빌립보

루디아의 회심.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인들의 고발로 감옥에 갇힘.

이를 계기로 간수가 회심함.

17:1~9

데살로니가

시기한 유대인들이 소동을 일으키고 야손을 고발함.

17:10~15

베뢰아

너그러운 이들이 날마다 성경을 상고함.

17:16~34

아덴

아레오바고에서 철학을 논함.

18:1~17

고린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남. 총독 갈리오가 복음 선포를 허락함.

18:18

겐그레아

서원대로 머리를 깎음.

18:19~21

에베소

후일을 기약함.

18:22~23

가이사랴, 안디옥 외

2차 전도 여행 마감. 기존 교회를 돌아봄.

아볼로

18:24~28

(에베소, 아가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를 가르침.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21장에 계속)

19:1~41

에베소

성령 세례, 두란노 서원 강론. 은장색의 소요

20:7~12

드로아

강론 중에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살림.

20:17~38

밀레도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향한 마지막 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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